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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1월 10일)
제목: "영원한 약속을 깨닫는 사랑"
말씀: 요한1서 3:18~24
찬양인도: 쉐키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안 바울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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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3:18~24,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ㅡㅡㅡㅡ

​▶연말 연 초에 보면 어렸을 적에 이런저런 행사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제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저와 여러분들과 같이 연말 연 초에는 교회 행사가 되게 많았던 걸로 추억이 됩니다. 우리 며칠 전에 토비세 앞에 붙었던 이름 혹시 기억하십니까? 토비새라는 이름 앞에 우리 새벽송이라는 명칭이 한 번 붙은 적이 있었는데 새벽송이 저에게는 가장 크게 기억이 남습니다. 저는 도시 사람이에요. 도시 사람에서 쭉 자라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대구로 이사를 가게 됐는데, 거기에서 처음으로 새벽송이라는 걸 해봤습니다.

정말 새벽에 돌더라고요. 밤늦은 시간에 그게 도는데, 중학교 2학년 때고 우리 고등학교 형들과 함께 돌았는데 성도님들이 잠을 주무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맞아주시는 거예요. 작은 먹거리들을 준비하시고 또 함께 찬양하면서 집집마다 돌았습니다. 새벽송이라는 것은 집과 집을 건너가면서 찬양을 하고 함께 찬양하면서 먹을 것을 이렇게 받고 그런 것이에요. 얼마나 기억에 남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에 은혜들이 너무나 가득해요. 또 한 가지 기억 남는 연말의 추억이 있다면 중고등부 학생들이 함께 문화제 또 연극제라는 이름하에 발표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고3이 돼서 한 번은 그런 발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주제는 당연히 천지창조부터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이르는 그런 것을 발표를 했었어요. 제가 그 가운데 무슨 역할을 맡았을까요? 루시퍼에요. 악마, 그 분장을 생전 처음으로 이제 제 얼굴에 분칠을 하고 이렇게 그리고 했는데 문제는 악마가 아니라, 이제 악동이 되어 가는 게 문제입니다. 너무나, 너무나 근데 즐거운 추억이에요. 그 자리에서 되지도 않는 인상을 써가면서 그리고 어떨 때는 교활하게 되지도 않는 교활함을 또 표현하면서 그렇게 연극을 또 재미나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다른 기억이 있는데요. 가족 찬양 제라는 게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함께 나와서 찬양 경연대회를 하는 그런 것인데 저의 우락부락하게 생긴 형님이 계세요. 저보다 두 살 많은 형이 피아노를 치고 제가 우리 가족 분들 가족과 함께 저희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사철의 봄바람이라는 찬송을 함께 불렀던 기억도 있습니다. 사철의 봄바람 아시죠? 네 상금은 없었어요. 상은 못 탔는데 너무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정말로 즐겁고 재미있고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은혜의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많은 시간이 지났고 추억 속에 있지만 생생하게 그 순간,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은혜의 소중한 시간들이라서 항상 그 시간들을 기억할 때마다 기쁨이 있고 내 마음에 성령 하나님께서 그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셨구나! 라고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근데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우리 자녀들, 저도 이제 살 2명의 아들이 있는데 9살, 6살의 아들이 있는데 우리 아들들에게는 이런 좋은 추억들이 참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게 한편으로는 아쉬워요. 새벽송이라는 것을 볼 수도 없고, 이렇게 큰 교회에서 찬양 제, 가족 찬양 제라는 것을 할 수도 없고 생각해 보면 좀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값진 추억들과 은혜들이 조금씩 희석되어가고 조금씩 이렇게 바뀌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또 애절함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것들이 제 마음 가운데 있어요. 다음 세대를 바라볼 때, 또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아직 맛보지 못한 한 사람을 한 영혼을 바라볼 때, 그런 긍휼함이 제 마음 가운데 있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이 요한일서의 이 말씀도 그런 사랑의 사도 요한이 가지고 있는 애틋함과 또 긍휼함이 많이 묻어나는 책입니다. 이제 인생의 말년을 가고 있는 사도요한이죠. 인생의 마지막을 달려가는 사도요한이 다음 세대를 바라볼 때, 이제 막 시작한 믿음의 자녀들을 바라볼 때, 복음들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까운 거예요. 그리고 복음들이 점점 희석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깝고 안타까운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계속해서 이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게 뭐냐면 ‘자녀들아’라는 표현입니다.

3장 전체를 보면은 ‘자녀들아’라는 표현이 한 네다섯 번 나오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그들을 불러가면서 사랑하는 자들아, 또 형제들아, 그리고 자녀들아, 리를 칠드런, 이렇게 불러가면서 그들을 어떻게 하면 복음의 은혜의 중심지로 데리고 올 수 있을까를 사도 요한이 계속해서 권면하고 강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그 마음 가운데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있을까? 자기는 직접 예수님을 그 따스한 피부에 손을 대어보기도 했고, 또 그의 따스한 음성을 귀로 듣기도 했고, 또 그의 음성을 따스한 음성을 또 들으면서 또 눈으로 직접 보면서 예수님을 바라본 자신인데 그의 다음 세대는 그러지를 못하니까 얼마나 가슴이 에이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이전에도 그런 말씀이 있어요.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인데요. 우리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3절입니다.

*요한일서 1:3-4,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 보니까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하고 우리가 사귐이 있게 한다. 왜냐하면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이것만 알면 이 자리를 누리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사귀기만 하면, 누리기만 하면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에 이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너희들도 좀 알면 좋겠다. 라는 거예요.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거는 우리들이 과연 이런 마음이 있는가라고 하는 겁니다. 긍휼한 마음이 있는가, 목자의 심정이 있는가, 저들이 정말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함께 그 자리 가운데 누리기를 내가 원하고 있는가, 라는 거를 먼저 점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방금 읽은 3절과 4절 말씀을 뜯어서 한번 생각해 보면 첫 번째로는 보고 들은 바를 전할 마음이 있는가? 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전할 마음이 내게도 있는가? 우리가 본 것을, 우리가 만진 것을, 우리가 영적으로 경험한 것을 아직 모르는 그들에게 아직 알지 못하고 답답해하는 그들에게 내가 과연 전할 마음이 있는가, 아니면 내버려두는가? 저들은 저대로 살다 죽겠지 저들은 저대로 지내다가 그냥 죽겠지 내버려두는가, 아니면 내가 전할 마음이 있는가, 또 다른 한편은 이런 거예요. 오늘 3절 말씀에 보니까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는 이 표현을 통해서 보면 내가 이 우리, 라는 바운더리 안에 이 공동체라는 우리라는 바운더리 안에 그들과 함께 사귈 마음이 있는가, 초청할 마음이 있는가, 우리의 다락방에 부서의 공동체에 내 모임에 그들을 초대할 마음이 있는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세상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그들을 포용할 마음이 내게는 있는가, 라는 것을 한번 점검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율법을 많이 알고 말씀을 많이 안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포용할 마음이 없죠. 사귈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선을 정해놓고 백성들과 나는 어떻게 해요? 다르다. 나는 저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죄인들과 세리들과 나는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저들과 나는 다르다. 사귈 마음이 없습니다. 포용할 마음이 없어요.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그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의 마음과 합하여서 하나님의 목자의 심정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여서 말씀을 느끼고 체험하고 볼 때마다 만질 때마다 그것을 전할 마음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귈 마음이, 복음으로 사귈 마음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답하기를 주저하는 분들을 향해서 지금 거의 답이 들리지가 않아요. 답하기를 주저하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 한 구절 더 읽도록 하면 우리 16절 말씀인데요.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16절 말씀 시작.

*요한일서 1:16,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셨으니 너희도 버리는 것이 뭐라고요? 마땅하다. 지금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은 멈추는 게 아니라 계속 흘러간다는 거예요. 자기희생이라는 것 그리고 사랑이 전해진다는 것 복음이 흘러간다는 것은 멈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흘러가고, 흘러가고, 흘러갈 뿐 아니라 더 갑절이 되고 곱절이 되어서 더해져야 되는 거예요. 자기희생의 연속입니다. 자기 인생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죠. 우리 교회의 표현으로 이야기하면 제곱근 배가 증식하는 사랑의 재곱근의 역할이 일어나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2024년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거저 우리 가운데 주신 은혜 그대로 또 하나님 앞에 그 모습 그대로 우리가 다른 이웃에게도 거저 흘려보내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함께 묵상해야 할 세 가지 것들이 있는데 1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적용 우리에게 적용해야 할 세 가지 사랑의 측면이 있는데요. 우리 18절 말씀인데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요한1서 3:18,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많이 들어보셨죠?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우리가 사랑을 함에 있어서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함도 더하고, 진실함도 더하자.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제가 이 말씀을 딱 봤을 때는 처음 딱 하고 묵상했을 때, 행함과 진실함의 단계까지도 못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단계가 아니라 말 이 말은 어떤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수님이 죽으시고 한 세대가 지나가고 나니 행함과 진실함은 빠지고 말뿐이 남지 않은 말밖에 남지 않은 모습들을 보면서,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마음 안타까우며 고백을 했나 봅니다.

근데 2천년이 지난 지금을 따져보면 이 시대를 바라봤을 때, 그리고 한국 교회를 바라봤을 때에 말과 행함과 진실함은 모르겠고 말이라도 우리가 사랑을 담으면서 말을 하고 있는가? 내 말에는 사랑이 더해지고 있는가? 내가 그렇게 말을 다른 사람이 듣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I. 첫째-말을 이쁘게 하자.
첫 번째로는 이런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말을 이쁘게 하자. ‘말을 이쁘게 하자’ 아주 원색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아기들한테 뭐라고 이야기해요? 험한 말할 때 애기들이 나쁜 말할 때 말 이쁘게 해야지, 말 이쁘게 해야지, 얘기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과연 말을 이쁘게 하고 있나요? 이쁘게 하고 있나요? 우리의 행함과 진실함을 더하기 전에 우리의 말 가운데 이쁜 말을 해야 될 것 같아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 하나님이 예뻐하시는 말, 기뻐하시는 말을 우리가 우리의 입술에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일 편한 이웃 바로 가족이죠. 가족에게 어떠한 말을 하고 계십니까? 너무 편하기에 막말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마구대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이제 곧 제자 훈련이 시작을 할 텐데 제자 훈련 시작하면 처음에는 굉장히 이제 예의와 존중이 묻어나죠. 선을 바르게 지킵니다. 그런데 어느새 3개월, 6개월 단기 선교 갔다 와서 4박 5일 같이 지내고 나면 언니 동생 하면서 점점 말이 가벼워지기 시작을 하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선을 넘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제자 훈련 시작하시는 분들 끝까지 명심하십시오. 선을 지키셔야 됩니다. 예의와 존중으로 서로를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주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주차 잘하고 계십니까? 교회에 들어올 때 너무나 힘들죠. 사거리 꺾어서 우회전해서 들어오면 늘 막히지 않습니까? 우리 봉사하시는 분들, 안내하시는 분들에게 어떠한 말을 하고 계시나요? 그들도 성도님들이신데 혹여나 너무 험한 이야기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수요 예배에 나오시는 분들이라면 그런 분들은 한 분도 안 계실 줄 믿습니다.

예배 부 섬기시는 분들 또 교통봉사 섬김을 하고 계시는 분들, 모두 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에요. 영적으로 하나 된 영 가족들입니다. 귀한 또 사랑을 담아서 그분들에게 격려해 주시고 또 이렇게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오늘 원고에는 쓰지는 않았지만 저도 방금 저 11층 사무실에서 내려오면서 너무 귀한 사랑의 말을 듣고 왔어요. 엘리베이터에서 타고 이제, 이제 말씀을 준비하고 내려오는데 어떤 권사님께서 저보고 저희 어머니보다 조금 더 연배가 있으신 권사님께서 요새 부목사님들은 참 이뻐, 라고 얘기해 주시는 것 같아요. 얼마나 힘이 나든지 너무 사랑이 많이 담긴 말 아닙니까? 앞에 한 단어가 더 있었어요. 밤톨같이 이뻐, 막 이러셨어요. 너무 행복해요. 여러분들 우리 부교역자 분들 목사님들 볼 때 많이 칭찬해 주시고 이뻐해 주세요. 그들이 힘을 냅니다. 힘을 냅니다. 이 말에 사랑을 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의 사랑을 담는 건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말을 바꾸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에요. 내가 결단하고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것들을 막아내야 그게 가능한 거예요. 때문에 말을 바꾼다는 뜻은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시는 것을 늘 항상 인정하는 삶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음성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이에요. 민수기 14장 28절의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민수기 14:28,
28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저희 어머니가 제가 험한 말할 때마다 늘 이 말씀을 하셨어요. 말한 대로 된다고 말한 대로 된다고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신다고 우리가 말을 가볍게 하는 것은 듣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만약에 우리 앞에 어르신이 계신다고 생각하면 어른이 계신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이야기를 못할 겁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 함께 계신다. 라는 생각을 늘 항상 품고 있어야 간직하고 있어야 말이 바뀌게 되는 거예요. 말은 생각지도 못하게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인데 이 습관을 바꾸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말이라는 것은 마음의 알갱이다. 라고 얘기를 해요. 마음의 알갱이 앞에 글자만 따서 마 알 마음의 알갱이 말, 말, 말 말이 되는 거예요. 자, 그래서 우리의 입술을 다스리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입술을 다스리는 거 입술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먼저 다스려 주시기 때문에, 그 다스림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말이 바뀌게 되는 겁니다. 우리 마태복음 15장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마태복음 15:18,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입에서 나오는 것이 마음에서 나오나니.
-어디서 나온다고요? 마음에서 나온다고 얘기합니다. 마음에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선한 마음으로 선한 말을 내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말을 할 때 누가 제일 먼저 들을까? 하나님 이외에 누가 먼저 제일 들을까? 누구죠? 나 자신입니다. 내 자신에게 지금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우리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때문에 내가 뱉은 그대로 내가 자라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선한 말을 하면 얼굴이 선하게 바뀐다. 라고도 얘기하지 않습니까? 제 얼굴은 어때요? 선한 말을 한 대로 얼굴이 바뀌는 거예요. 나쁜 말, 못된 말을 하면 그렇게 입이 삐뚤어지게 되는 거잖아요. 에베소서 4장 29절에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에베소서 4:29,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제일 먼저 듣는 자, 나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선한 말을 해서 네가 은혜대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말로서 덕이 세워지고 은혜가 끼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말에 힘이 있다. 라는 뜻이죠. 말을 제일 가까이 듣는 우리 자신부터 내 말로 인해서 덕이 세워질 수도 있고, 덕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한 말을 함으로 인해서 내가 하나님으로 받은 은혜를 쏟아내지 않고 담아낼 수도 있고, 내 말이 악함으로 인해서 그 은혜들을 모조리 이렇게 쏟아버리게 되는 일도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말이 중요합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내가 나에게 사랑의 말을 담아서 오늘 나에게 칭찬을 해주어야 해요. 잘했다고, 잘 살았다고 오늘도 애썼다고 칭찬을 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바보 천치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스스로 불러주면서 오늘 하나님 앞에 귀한 백성으로 내가 잘 살았다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편 2편 우리 7절 8절을 우리 자신에게 한번 선포하는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면 좋겠는데, 시작

*시편 3:7-8,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딸이라, 내게 구하라 하나님께 구하라. 내가 이방 백성을 내 유혹으로 죽인 내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모든 것을 이루어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 약속,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자녀 된 호칭, 이 안에 다 담겨 있어요. 여러분들,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매일 마다 하나님 앞에 이 존귀한 자녀가 여전히 기도합니다. 하고 무릎 꿇으며 기도할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때문에 일단 말을 의지적으로 이걸 강조하고 싶어요. 의지적으로 여러분들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가족에게도 그렇고 의지적으로 선한 말을 자주자주 하면 좋겠어요. 사랑의 고백을 자주 하면 좋겠습니다. 아내분들은 남편분에게, 남편분들은 아내분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사랑의 언어를 자주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72구절 암송 있잖아요. 그것도 나에게 선포하는 말씀으로 행함과 진실함이 없다 할지라도 모르겠다. 하면서 그 말을 그 암송을 내게 한번 계속해서 선포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선한 말이 그 암송이 나의 덕을 세우고 은혜를 쌓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말에 대해서 좀 길게 설명을 드렸는데, 그다음에 말 다음에 무엇이 있죠?

II. 두 번째로 행함입니다.
-행함, 행함도 이렇게 한번 표현해 봤어요. 행함을 이쁘게 하자. 행함을 이쁘게 하자 하나님께서 이뻐하시는 행함을 하면 좋겠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행함을 더하자. 말이 그 사람의 마음을 쳐서 복종시키고 의지적으로 표현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면 다시오. 말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복음으로 쳐서 하나님의 계심을 늘 상기하고 항상 깨닫고 인지해서 마음을 복종시키고, 의지적으로 표현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면 이제 그 말로만이 아닌 행함을 더하라는 것은 죄 된 본성에 사로잡혀 있는 육체를 쳐서 복음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죄 된 육체를 복음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해요. 육체를 복음으로 다스리게 하는 겁니다. 게으르고 자기만 알고 있는 그런 육체를 복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선하게 쓰일 수 있도록 움직여 보라는 거예요. 육체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사실 이런 모양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로만이 아닌 행함으로라도 계속 믿음을 표현하라. 라고 이야기하는 야고보서에는 우리가 제일 잘하는 말씀이 이것이죠. 2장 15절 17절 말씀인데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야고보서 2:15-17,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이 아니라 정말 선한 행동을 더해서 그 사람이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덕을 쌓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 육체를 다스린다. 라고 하는 것은 육체를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자기희생을 분명히 요구합니다. 반드시 요구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하기 싫은데, 하기 싫은데 해야 한다는 거예요. 말씀을 따라 살려면 나는 하기 싫은데 움직여야 된다는 거예요. 힘들고 귀찮고 그렇지만 내 것을 나의 시간을 나의 힘을 나의 공간을 나의 소유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소유권 변경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싫은 거죠.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모두 다 그런 사랑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다 내어주신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사랑을 빗대서 이제 결혼식 때에도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듯이 교회가 예수님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표현을 많이 하는데요. 결혼식 때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결혼식 할 때 이 사람이 내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면 피곤해지는 거예요. 힘들어지는 거죠. 이 사람이 내 사람이 된 게 아니라, 무엇이, 무엇이 된 겁니까? 내가 그 사람 것이 된 겁니다. 이렇게 반대로 생각하면 좋겠죠. 내 시간과 저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 내게 된 게 아니라 내 시간과 공간과 소유가 저 인생의 것이 된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우리 주례하신 분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렇게도 표현하더라고요. 죽을 사에 쇠고랑 랑이에요. 죽을 사에 쇠고랑 랑, 이제 웃으시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의 매어라는 표현이 오직 주의 사랑의 매어라는 표현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으로 인해서 매어지게 되는 거예요.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사람들을 이 사람을 사랑하기로 내가 그렇게 헌신하고 결단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그것이고 우리가 또 우리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사랑이 그런 사랑입니다. 우리가 영 가족이라고 하고 또 복음에 먼저 앞선 자라고 한다면 사랑 죽을 사 쇠고랑 랑을 차서 주님의 사랑에 매어서 이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에 매일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행동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선한 행동을 여러분들의 마음에 담아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자기희생과 자기 부인의 자기 부인의 자리라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감당하셔야 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마땅히 거저 그 은혜를 우리 가운데 허락하시고, 우리가 우리의 죄 가운데서 구원의 백성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이름과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말과 행동을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이라는 부분에서도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적용을 해봤는데, 이 행함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적용을 먼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선한 행동,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행동이 무얼까? 좀 생각해 보면,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내가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부분들 하기 싫은데 복음에 따라 살다 보니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이 무엇일까?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 주일날 보면 저기 2층 3층, 어떤 분들은 2층 천 3층이라고 표현도 하시는데 저기 구석에서 그냥 앉았다가 돌아가시는 등록 안 하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이 등록하셔서 교회에 더 깊이 들어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락방에 아직 참여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내 시간이 아깝고 내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내가 할 힘이 없기 때문에 여건이 안 돼서라고 여러 가지 이유들로 등록 안 하시고 또 다락방도 참여 안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복음의 깊은 진수와 또 기쁨을 맛보기 위하여서 올해만큼은 여러분들이 다락방에 모두 다 참여하셔서 비록 힘들지만, 내 시간이 뺏기는 것 같고 내 공간이 뺏기는 것 같지만 내 힘이 뺏기는 것 같지만 더 크게 더 깊게 더 많이 더 풍성히 채워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다락방에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서만 그런 자리에 참여해서만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그 희락, 하나님의 기쁨의 진수들이 있어요. 공동체 가운데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요. 이웃을 향한 교회를 향한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 여러분들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점점 낮 빛이 어두워져가고 계시는데, 봉사의 자리 가운데 섬김의 자리 가운데 여러분들이 참여해 주시면 그 자리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와 기쁨들이 있어요. 작년에 2년간 제가 예배부로 섬겼는데 예배부 섬김을 하면서 되게 굵직굵직한 그런 섬김의 영역들이 많았습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가서 안내하는 일들도 쉽지 않고 너무 너무나 크잖아요. 사람들도 너무 많고 그런 일들을 이제 예배부가 안내로 섬겼었는데, 저는 장담하기로는 그때 계셨던 이제 임원 분들, 저와 함께 이제 활동하시고 섬겼던 임원 분들에게 그 섬김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라고 부탁드리면 전부 다 아멘으로 순종할 것 같아요. 저만의 확신일까요? 전부 다 아멘으로 순종하실 것 같아요. 그 임원 분들과 그 봉사자분들은,,,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만 그 섬김에서만 그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봉사하시고 안내하시고 섬겨주시는 분들은 분명히 압니다. 알 사람만 압니다. 정말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은혜들이 있는 거예요. 찬양 팀은 찬양 팀만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들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어요. 예배 봉사하시는 분들은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은혜들이 또한 있습니다. 중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은 중보기도 팀 분들은 중보기도 팀에서 느낄 수 있는 영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주일 중보, 주중중보 마찬가지로 다 기쁨들이 있어요. 육체의 힘듦이 있지만 육체의 피곤함이 있지만 그것을 영적으로 채워주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들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대하시면서 그것을 소망하시고 기대하시면서 더 깊이 공동체 가운데 들어와 주시고 예배의 관람자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시고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예배를 섬기시고 섬길 뿐만 아니라 예배를 주도해 가시고 이끌고 가시는 우리 저와 여러분들 되시면 좋겠어요.

III. 마지막으로 진실함입니다.
-말에 사랑을 담고 또 행함의 사랑을 담았으면 이제 진실함의 문제인데 진실함은 좀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 마음이라는 것은 그냥 쉽사리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진실함을 담아야지 한다고 담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이 마음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코끼리 다 생각하셨죠? 하지 말라고 해서 안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진실함의 문제는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될까? 근데 저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말과 행함에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의지적으로 진실함을 더하라. 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고린도전서 13장에 있는 말씀인데 6절 7절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6~7,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자, 진실함을 담는 게 무엇일까 진실함을 어떻게 의지적으로 담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사랑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시 잠깐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거예요. 사랑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의지적으로 견디고, 의지적으로 참으면서 무엇을 가지고 이루어질 믿음, 이루어질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그냥 내가 나중에 이루어질 그 실상을 바라보면서 지금 현재를 견디고 믿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진실함을 담는다. 라는 것은 이렇게 내가 견디고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자리 가운데 점점 우리의 마음 가운데 진실함을 더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진실함을 더한다면 사랑에는 제한선이 사라지게 돼요. 내가 늘 항상 우리의 죄 된 본성만 따라가면, 받은 만큼만 사랑해야지라는 그런 생각밖에 안 듭니다. 진실함이 없다면 견뎌내지 못하면 인내함이 없다면 받은 만큼만 사랑해야지 그렇게 되면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원수를 사랑하라. 고 하는 사랑의 클라이막스를 이루어낼 수가 없어요. 원수가 내게 공격해 오면 이 사람 나에게 공격했네. 안 되겠다. 더 이상 섬김을 멈춰야지 이렇게 우리의 죄 된 본성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의지적으로 여러분들이 진실함을 행함에 말에 계속해서 넣어야 돼요.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후에 이루실 큰일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이루어 가야 합니다. 우리 CS 루이스가 했던 말이 있는데 제가 한번 읽겠습니다. CS 루이스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법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곧 위대한 비밀 하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싫다고 해서 상처를 주면 점점 더 그가 싫어집니다. 그러나 싫은 사람이라도 잘 대해주면 점점 덜 싫어집니다. -CS 루이스가-
-여러분들이 행동함에 있어서 그 행동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점점 바뀐다는 거예요. 마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주시고 그 자리 가운데 사랑을 계속해서 쌓아주신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부모의 사랑이고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일 것 같아요. 포기하시지 않는 사랑, 내버려두시지 않는 사랑, 끝나지 않고 끊이지 않고 날마다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의 방법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렇게 오늘 말씀을 토대로 기반을 이렇게 표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의지적으로 연약한 모습일지라도 우리의 사랑 가운데 말과 행함을 더하면 분명 그 자리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시도록 인도해 주세요. 우리 19절 말씀인데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일서 3:19,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우리가 말과 행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사랑을 하면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진리에 속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내가 진리 안에 있다. 바로 이 말은 영원한 약속이에요. 하나님께서 뭐라고 이야기 하셨냐면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이 언약은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생명의 영원한 언약입니다.
-이걸 언제 우리가 알게 돼요? 이렇게 진실함으로 사랑을 할 때 우리가 알게 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과정 중에 하나님이 등장하세요. 우리 24절의 말씀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일서 3:24,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아멘 동일하게 생명의 언약이 나타나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의 역사를 깨닫는 그 순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알게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 가운데 말 행함, 진실함을 더하면 더할수록 내가 인내함을 갖고 견뎌내면서 사랑을 해가면 갈수록 성령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주장하시면서 더욱더 하나님을 닮은 사랑을 해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 라는 거예요. 때문에 때로 넘어지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완전히 주저앉는 일은 없게 됩니다. 책망할 일이 있다 할지라도 오늘 말씀과 같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이 우리를 돌봐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은 감정이지, 감정이지만 그 감정만 가지고 하게 되면 언제 무너질지 몰라요. 사랑은 감정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기독교 사랑, 크리스천의 사랑은 죄 된 마음과 육신을 이기기로 작정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이번 한 해를 살아 내시면서 다락방 안에서 그리고 제자 반에서 더 더욱이 아직 복음을 모르는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온전히 끝까지 사랑의 범위와 한계를 생각하지 말고 사랑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자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내가, 내가 진리 가운데 거하는 자다, ‘내가 내 안에 주님이 함께 계신다’. 라고 하는 것을 매일 마다 느끼며 깨달으며 체험하며 살아가는 영적 존재로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환히 붙들고 살아내시는 여러분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과 마음에 합한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시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는 영을 새롭게 하고 살리는 말을 함으로써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쳐 우리 각자가 서 있는 공동체와 개인과 일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힘 있게 살아내야 한다. 자기희생적 사랑의 행동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적, 육적 복이 더 풍성히 넘쳐흐르게 하시 그 자리에 또 하나의 생명의 열매가 맺어야 한다. 나의 모든 말에 하나님의 선한 말을 더해주시고, 나의 행함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묻어나게 하며 모든 것을 진실함으로 하여서 무엇보다 연약한 나의 마음을 주님이 주관하여 주심을 믿고,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겨내면서 십자가의 사랑을 이루신 주님처럼 날마다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으로 살아낼 수 있을 만한 용량을 내게 허락해 주실 것을 확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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