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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2월 25일)
-예수님은 누구신가?’ 설교 시리즈 네 번째 강해.
제목: "21세기의 성막이 됩시다(그 성전이 예수님)"
말씀: 출애굽기 25:8-9, 요한복음 1:1-4
대표기도: 이성준 부목사님
찬양기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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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5:8-9,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요한복음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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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이제는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관치 못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다시 한 번 성령으로 강건케 하시고 충만케 하옵소서 특별히 대한민국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부흥의 새 역사와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리에 앉으시길 바랍니다. 온라인 생중계 예배로 참여하시는 성도님들께서는 교회 홈페이지 혹은 교회 앱에서 주보 일면을 다운받으셔서 예배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 함께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자와를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이성준 목사님 예배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기도:이성준 부목사님(1부)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한 주간도 반석 되신 예수님을 신뢰하게 하사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은혜를 경험케 하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이 시간 영 가족 모두가 주님의 보좌 앞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며 나아가오니 성전에 가득한 여호와의 영광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오늘 단위에 세우신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 시대를 관통하는 영적 통찰력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더 하사 선포하시는 말씀을 통해 온 성도들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21세기 거룩한 성막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교회가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의 회복과 부흥의 문을 여는 은혜의 진원지로 나아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를 통해 모든 훈련반과 다락방마다 생명나무 대신 예수님의 온전한 열매를 풍성히 거두게 하옵소서. 주일 예배와 부흥 헌신, 토요 비전, 새벽 예배에 믿음의 4대 7천 기도 용사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간절히 기도할 때 부흥의 르네상스로 비상하는 봄 사역이 펼쳐지게 하옵소서. 대한민국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대통령과 모든 지도자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청지기로 국정을 수행하게 하여 주옵소서. 4월 10일 총선을 강력한 손으로 붙들어 주사 공정과 인내로 섬기는 지도자들이 세워지게 하옵소서. 남북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기도할 때 북한의 폭정이 무너지게 하시고 평양에서 특세하는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의 날이 도래하게 하옵소서. 사랑의 교회의 섬김과 나눔을 통하여 소외된 이웃들이 생명의 빛으로 나아오는 은혜의 봄날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시고, 디아스포라 이민교회와 선교사님들에게 하늘의 은혜와 성령의 강수를 허락하사 지구촌을 치유하는 사명자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사랑 글로벌 아카데미의 새로운 여정에 은혜를 더 하사 ‘2033-50 비전’을 성취하는 글로벌 영적 사관학교로 귀하게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영광 찬양대의 찬양을 기뻐 받아주시고 곳곳에서 예배를 섬기는 모든 이들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회: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출애굽기 25장 8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과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구약 성경 119페이지와 신약 성경 142페이지입니다. 주신 말씀, 출애굽기 25장 8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교독하시고,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아멘 이제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예수님은 누구신가?’ 설교 시리즈 네 번째 강해 “21세기의 성막이 됩시다” 라는 제목으로 주일 말씀을 전해주시겠습니다.

▶♣오정현 담임목사님.
-우리 찬양대의 귀한 찬양, 정성을 다한 찬양을 주님이 기뻐 받으신 줄로 확신합니다. 오늘도 우리 거룩한 기대감을 갖고 나오신 모든 성도들, 아픈 분들은 치유 받게 하시고, 또 능력이 필요한 분들은 능력을 회복하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말씀에 대한 영안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래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혈의 능력으로 씻음을 받고, 성령께서 우리 영안을 열어주실 때에 생명의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무쪼록 우리 모두의 영안을 열어주시고,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특별히 들을 귀를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21세기의 성막이 되십시다”. 그리고 부제로서는 그 성전 “그 성막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네 번째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출애굽기 본문을 여러분들이 읽으셨는데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이 땅에 하나님이 몸소 거할 처소를 성막을 통하여 정하여 주셨습니다. 8절에 보니까 제가 아니고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서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그랬습니다.

*출애굽기 25:8,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성소는 특별히 성막인데 성막이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성소이다. 아멘!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거할 처소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함께 교제하시고 또 에녹과 노아와 함께 동행 하시고, 아브라함과는 벗이 되신 하나님께서 광야 길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거할 장소를 정하시고 뭘 지으라고 하셨다고요? ‘성막을 지으시라.’ 성막을, 성막을 지으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함께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성막을 짓는 자세한 식양과 블루프린트(blue print) 성막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계도를 9절에 보니까 무릇 내가 너희에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지으라.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성막에 대한 계획들을 직접 설명하시고 매뉴얼을 다 주셨어요. 그리고 오늘 25장 출애굽기가 몇 장까지 있죠? 출애굽기=40장, 창세기=50장, 레위기=27장,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 가끔 창세기는 몇 장입니까? 출애굽기는요? 레위기는요? 그다음에 내가 안 묻겠습니다. 여러분들 내가 걱정이 돼가지고 출애굽기는 몇 장까지 있어요? 40장까지, 그런데 오늘 25장부터 계속 성막에 대한 내용은 31장까지 나오고 마지막 출애굽기의 마지막 대단원을 성막의 완성으로 끝을 내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면 오늘 여러분들이 합동을 했는데 요한복음 1장 14절에 잘한 말씀이죠.

*요한복음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먼저는 말씀이 육신 우리 가운데 뭐예요? 거하셨다. 그러니까 구약에 하나님이 처음으로 제대로 거할 처소를 만든 것이 성막인데 신약의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 그래서 구약의 성막은 ‘예수님을 예표 한다.’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영광을 보니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I. 구약의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여기에 성막이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그랬는데 요한복음 1장에도 거한다는 이 헬라어에 ‘스케네오’ 라는 단어는 ‘천막을 세우다’ ‘천막에 살다’ 직역하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 출애굽기에서 말씀하는 성막은 주로 이동 천막을 말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국신데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랬을 때 유대인들은 이동 성막을 통하여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에 대해서 딱 이게 센스가 있는 것이에요. 유대인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교회 내에도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나름, 나름 저와 여러분이 이해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오늘 이 이해가 여러분들 가운데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우선 제가 이 성막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또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그의 영광을 본다.’ 라고 그랬습니다. 성막의 강력한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이 임한 것처럼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오늘 14절 뒤에 그의 영광을 뭐예요? 보니, 이게 왜 이리 중요한가 하면요.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함부로 못 보았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누구든지 나를 본 자는 죽는다. 그랬어요. 출애굽기 33장에 보니까 너무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영광을 범접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보는 인간의 소원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에요. 특별히 성막을 통해 예표 하는 거예요. 이걸 너무 이게 기적이에요. 이런 기적 인간은 하나님 보면 다 즉사(卽死인데, 너무나도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회중찬송 불렀잖아요.

♪빛~~나고 높은 보자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그다음 뭡니까? 영광이 그다음 뭐예요? 해가 치는 날이 이게 하나님 제대로 깨닫고 본 사람이 진짜 고백하는 거예요. 5절에 보니까 뭐라고 돼 주님의 보좌에 있는데 나같이 천한 몸에 이르러가지고 그 영광을 몸소 배울 때 내 기쁨이 뭐예요? ‘넘친다!’. 오늘 이 기쁨이 우리 다 충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영광의 주님을 찬양할 때 나타나는 그 감격과 기쁨이 우리 가운데 출력이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정리하면 구약의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 구약의 이 성막을 사도행전 7장에서는 광야교회라고 그랬어요. 성막이 광야교회다. 성막이 광야교회가 된 거예요. 구약의 성막과 광야교회가 나중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구약의 성막으로 대표되시는 예수님의 성전이 되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나중에 세우시고, 그 성전에 대령의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고 그리고 또 있어서 그 예루살렘 성전뿐만 아니라 그것이 나중에 예수님이 직접 성전에 대신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세우리라. 그래가지고 그리고 이제 제일 계시의 발전이 제일 아주 그냥 너무나, 너무나 뭐라 그럴까요? 위엄이 있고 찬란한 깨달음과 은혜가 뭐냐 하면 고전 3장 16절에 너희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이 뭐예요?

*고린도전서 3:16,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기가 막힌,,, 성막이 예루살렘 성전이 되고, 예수님 몸이 되고,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믿는 주님과 함께 우리가 십자가에 내가 그리 십자가에 못 박게 한다는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우리가 이 시대의 성전이 된 거예요. 아멘!!! 이거는 어마어마한 진리예요. 구원의 계시예요. 이런 전체적인 제가 그림을 그려드리고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시고 8절에 내가 그들 가운데 뭐하여 거하겠다. ‘내가 그들 중에 거 하겠다’. 이 표현은 기 25장 뒤에도 여러 분 나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한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리고 거 할 뿐만 아니라 25장 22절에 뭐라고 되어 있냐면요.

*출애굽기 25:22,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 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거기서 내가 너희와 뭐예요? 만나고 거할 정도가 아니라 거기서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거예요. 그래서 잘 정리를 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고 이것을 성막을 통하여 확인하시는 것이에요. 저는 이 말씀이 너무 감격이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기 위하여 출애굽 시키게 하시고,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실제적으로 그것을 보여주신 것이에요. 할렐루야 그리고 이 성막은 특징이 뭐냐 하면 이동하기에 용이했습니다. 나중에 지어진 예루살렘 성전과의 차이점은 이동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유목민 나그네 생활을 했죠?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는 상징으로 이동이 가능한 천막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은 이게 이제 중요한 건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유목민이 되시겠다. 하나님이 유목민이 돼 함께 가는 곳마다 함께 하시겠다. 온 우주의 창조 주신 하나님께서 펄럭거리는 그 천막에 계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유목민들과 같이 하시겠다. 아멘, 모세가 이 말씀을 듣고 모세도 당황했을 거예요. 어떻게 하늘의 하나님이 그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성마에 그 하시겠냐? 당황했을 거예요. 감히 만날 수 없는 분 뵈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분이, 그분이 그 주님 하나님의 목자의 심정이 너희들과 함께 거하겠다. 오래 참고, 배신하는 그 백성들을 향하여 주님이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성막으로 함께하겠다. 이것은 수많은 복선을 통하여 선대 신앙의 선배들로부터도 깨닫게 해 주신 거예요. 창세기 28장에 보면 어느 날 야곱이 형에게 팥죽 한 그릇 다 팔아먹고 이제 형 속이고, 도망할 수 없이 도망 나왔어요. 도망 나와 가지고 광야에서 잠을 자는데 돌베개이로 잠을 자는데, 거기에 광야에서 야곱이 꿈을 꾸는데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너무너무 놀라 가지고, 야곱의 창세기 28장에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6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다. 이것이 성막을 통하여 확인된다.

*창세기 28:16,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이 잠이 끼어 이르되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것은 당대 고대 근동 사회의 신적 개념과는 다 너무나,, 그때는 집집마다 우상을 만들고 드라빔을 만들고 만들어 가지고 집에 우상 우리 여기 꼭 한국에 일본에 신주 모시듯 신사하듯이, 다 그 집집마다 있는 뭐 신정도로 생각하고 칠성당 귀신 정도로 생각하고 그랬는데, 하나님이 여기에도 광야에도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안에 계신 곳이 없구나! 하나님은 나와 동행하시는구나!~~. 그래서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구나. 그 하나님의 집에 대한 것이 야곱이 얘기한 벧엘이 성막에 의해 표가 되는 거예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러니까 야곱은 자기가 도망자 신세가 되었는데 그 도망자 신세가 된 자기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에 대해서 야곱의 입장에서는 쇼크를 받은 거예요.

◎인간이 죄로 하나님을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전히 인간 사이에 거하시고 임재하시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 우리 집 거실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이 우리 집 사 우리 사무실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께서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이 내 부엌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이 저 숨겨 벽장 속에 음습한 곳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도다.’
-이걸 좀 더 잘 깨닫기 위하여 우리가 무장해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그가 지으신 우리 인간과 함께하시기를 원하신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에덴동산도 지으시고 아담과 함께하시길 원하셨어요. 그런데 아담이 인간의 죄 때문에 에덴동산에 쫓겨나 그게 끝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셨고, 함께하시길 원하셨어요. 인간과 함께 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고민하다가 포기치 으시고 오늘 드디어 성막을 통하여 새로운 방법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유목민이 되기를 결심하신 것이에요. 그리고 그래서 창조와 성막을 짓는 것 사이에 유사점이 많아요. 창조 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라고 말씀으로 창조를 하셨어요. 성막에 대해서도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라고 출애굽기 25장 1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31장에도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리고 창조 후에 7일째는 안식을 취하셨어요.

*출애굽기 25:1,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성막에 대한 계시를 마치고 나서 인간의 안식 안식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어요. 할렐루야! 출애굽기 35장, 창조하신 피조물이 너무 좋으셔서 하나님이 복을 내리셨습니다. 모세 역시 성막을 지은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게 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창조 이후에 죄의 탈락이 일어났고, 성막 개시 이후에 금송아지 사건이 일어난 것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핵심이 뭐냐? 인간이 죄로 하나님을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인간 사이에 거하시고 임재하시기 원하신 것이에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지난 한 주간 동안 수많은 우리 나름대로 오염되고 고통스러운 거 다 있었지만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 오신 것 자체가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오신 것이에요.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원하셔서 주님이 부르신 거예요. 주님이 안 부르시면 이 자리에 올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 백성들 중에 거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오늘 출애굽기 29장 45절에 이와 같이 놀라운 말씀이 나와 있어요.

*출애굽기 29:45,
5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시작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아라 할렐루야! 여기 액센트를 ‘나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오늘 이 예배에 와가지고 참석한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부르면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가하신 이유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하는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래서 예레미야가 31장에 뭐라고 합니까?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예레미야 31:33,
33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그 정도가 아니라 내 친 백성이 될 것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성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막을 통하여, 성막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거하시길 원하시는데 핵심은 뭐냐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한다. 여러분 이름 한 분 한 분 불러가면서 저와 여러분의 이름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한다. 더더구나 인격적으로 교제하길 원하신다. 시작 시대에는 그리고 히브리서 8장 2절에 보니까,

*히브리서 8:2,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는 구약을 해석한 신약의 놀라운 말씀입니다. 자, ‘이 장막은 누가 세우신 것이요.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우신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셔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어마어마한 놀라운 하나님의 법칙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장막을 주님께서 세우신 다시 한 번요.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와 함께 가시길 원하셔서 성막을 세우시고, 성막이 예수님의 예표가 되시고, 우리가 우주적 성전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인격적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길 원하시고 그리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된다는 말은, 이제 이걸 종합적으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은 ‘21세기에 성막이 된다.’ 그 뜻이에요. 그리고 21세기에 성전이 된다. 그 뜻이에요. 우리 같이 누추한 인생이 21세기에 성전이 된다. 성막이 된다. 이것은 가슴 뛰는 진리이고 어떻게 보면 혁명적인 개념이에요. 어떻게 우리 같은 인생이 성막이 되고 성전이 될 수가 있는가, 이것은 의식 개혁이요. 이것은 완전히 신앙의 새 판 짜기에요. 이것을 깨닫느냐 못 깨느냐에 의해서 영적 성공이 결정되는 것이에요.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냐 없냐는 ‘여러분과 제가 우리가 21세기 성막이다.’ 21세기 주님과 동행하는 성전이다. 이거 각성하면요.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 하나님의 의미와 위엄과 말씀의 깊이에 대해서 제가 두 손 다 들었어요. 그것이 뭐냐 여러분 구약에서 이 성 성막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제일 먼저 이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의미심장한 내용 중에 하나가 사무엘하 7장 11절, 2절인데, 거기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요. 하나님께서 사무엘하 7장 2절, 2절 그게 뭐 다윗이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드리려고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사무엘하 7:2,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교회는 펄럭이는 성전 휘장 가운데 있도 성막 휘장 가운데 있도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하라고 그래도 되겠냐고, 성전 지켰냐고,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이 나타나게 임해가지고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했을 때 오히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했냐면요. 우리는 이래 알고 있죠.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려가지고 너는 성전 지을 자격이 없다. 너는 못 짓는다. 그래서 니 아들이 짓는다. 그거는 겉으로 나타난 것이고 사실은요. 너무너무 놀라운 말씀이 있어요. 뭐라고 돼 있느냐, ‘니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 그 마음을 예쁘게 보시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뭐라고 그러냐면요.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겠다.’ 그랬어요. 너무나 놀라운 말씀이 너는 겉으로 볼 때 자격이 없다가 아니라 그래서 우리가 생각할 때 다윗 슬프겠다. 이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억한 심정이 있는 분이 아니에요. 자격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격이 없죠. 그런 다윗에게 사무엘라 7장 11절 뒤에 뭐라 그러냐면,

*사무엘하 7:11b,
11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겠다.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깨닫는지 모르겠는데 영안을 열어서 주님이 깨닫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흔히 자격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겠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한 분 한 분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겠다. 영원한 언약을 세워주겠다.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겠다고 말씀하시고 12절 바로 이어서, 13절,

*사무엘하 7:12-13,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그리고 16절에 중요합니다.

*사무엘하 7:16,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러분, 이 어마어마한 말씀이 다윗의 집은 영원하지 않았어요. 다윗의 육신의 블러드라인은 영원하지 않았어요. 다 끝났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어주고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내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 이것을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향하여 성막 대신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 너 왕위가 영원히 경고하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저는 이 말씀을요.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이걸 몇 시간 동안 공부를 했어요.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와 계시의 발전사에 대한 물미가 팍 터졌어요. 그 순간부터 나는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일 수 있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은 너무나 영광스럽다.

여기에 우리의 마음을 같이 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과 생애와 우리의 삶과 소명을 펼쳐주실 것이다. 21세기의 성전의 역할을 감당해 주실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오늘 사무엘라 7장 11절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 그리고 너의 집은 영원히 경고하리라.’ 는 그 말씀은 좀 제가 죄송한 사자성어로 죄송하지만 이거는요. 어떻게 보면 시의 계시의 발전은 천의무봉(天衣無縫)한 거예요. 천의무봉이란 말은 천사의 옷에는요(=하늘나라 사람의 옷은 바느질 자국이 없다는 뜻으로, 시문 등이 일부러 꾸민 데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서 완전무결하여 흠잡을 데가 없음을 이르는 말). 그게 없어요. 흠이 없어요. 이 하나님의 말씀에는요. 흠이 없어요. =천의무봉, 여러분과 저의 인생에 흠이 없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됩니다. 다 아름다운 예루살렘의 금빛 도면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윗 왕국의 이 시대는 영원히 가게 되는 것이에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 다윗의 자손 우리 모두는 영적인 다윗의 자손인 줄로 믿는 것이 우주적 성전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 21세기에 영적 성전이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과거에 성막의 영광은 영광의 빛은 속죄 소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만이 그것을 겨우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1년에 한 차례 속죄의 피를 가지고 지성서 휘장 안에 들어갈 때만 겨우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육신의 장막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심으로 독생자의 영광이 세상에 찬란하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이 영광은 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허락된 영광이었습니다. 성서에 있는 조그마한 그것이, 그 조그마한 그것이 이제는 누구든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누구든지 보게 했는데, 옛날에는 아론의 가문 대제사장 이 사람들만 몇 명 볼 수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성령 안에서 영안이 열린 처음 말씀한 대로 말씀을 통하여 영 안에 열린 저와 여러분들이 다 볼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을 21세기에 걸어다니는 성전으로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통한 예표를 보여주신 것이에요.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리니 너희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이걸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제 우리가 깨닫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뭐냐? 첫 번째 예수님의 성막이 예표이시다. 성막 예수님 옆에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임마누엘 예수님을 통하여 성막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II. 임마누엘 예수님을 통하여 성막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다.

*마태복음 1:23,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주님이 창세부터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에 오시고 유목민처럼 성막에 가하시고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 가하시고 그랬던 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그래서 신앙의 깊은 본질 중에 하나가 임마누엘 신앙에 창조 신앙은 임마누엘 신앙이 돼야 되는 거예요. 우리와 함께, God with us!! 우리 가운데 계신다.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신다. 성막을 치신다. 그리고 그 성막을 치셔가지고 우리를 덮으시고 우리를 감싸시고, 그리고 골로새서 2장 9절에 보니까

*골로새서 2:9,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가하게 되시고, 구약에서 펄럭이는 천막에서 내려오시는 것도 놀라운데, 그 천막보다도 더 누추하고, 더 보잘 것 없는 우리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그 육신의 몸일 뿐만 아니라, 그 주님의 몸을 입으신 그 육신이 우리같이 더럽고 누추한 사유 주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기가 막힌 거. 그래서 솔로몬이 나중에 이것도 예편인데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고, 열왕기상 8장 27절에 뭐라고 설명하는 이렇게 설명 하냐면,

*열왕기상 8:27,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감히 모시지 못하게 했는데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에 오실 수 있겠습니까? 70평에 사는 사람이 아파트 70평 사는 사람이 15평 조그마한데 조그마한 어떤 이런 데 간다. 그거 어렵죠. 어렵죠. 그런데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이 적은 공간에 오신다는 거 이거 이해가 되겠습니까? 지성소만 계산 구약의 지성서만 계산하면 6평밖에 안 돼요. 조그마한 남짓한 거예요. 그런데 그 6평밖에 남짓 그 지성소에 내려오셔 가지고 우리와 함께하는 걸 예표하고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성전 되게 하신다. 잘하는 대로 고전 6장 19절에

*고린도전서 6:19,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 우리같이 오염되고 우리같이 부끄러운데, 주님이 거하신다. 이건 세상 뒤집어질 얘기예요. 진짜 혁명적인 생각이에요. 너무나 영광스러운 거에요. 출애굽기 마지막 40장 34절에,

*출애굽기 40:34,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해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는데 우리같이 연약한 자를 통하여 하나님 영광받기를 원하신다. 이거보다 더 경이로운 것이 있어요? 여러분과 저가 성막의 표 되신 예수님과 함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하여 주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을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이 성막의 문제는 성전에 관한 문제는 에덴동산에서 여러분 생명나무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난 다음, 거기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서 생명나무에 대한 얘기도 쭉 있었잖아요. 그런데 성막 성전 되시는 예수님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 요한계시록 마지막 21장 3 뒷부분에 21장 3절에 같이 보겠습니다. 21장 3절 함께요.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왔어요.

*요한계시록 21:3,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여기에 하나님의 장막이 하나님의 장막이 뭐예요? 하나님의 성막과 하나님의 천막이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최종 우리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구약의 성막 예표가 되어 있는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성막이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미래의 앞으로 이 성막과 성전이 어떻게 될 것인가? 요한계시록 21장 22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21절,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요한계시록 21:22,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러고 난 다음 21장 뒤에 뭐냐 하면요. 뭐라고 돼 있냐면, 성 안에서는 내가 뭘 못 봤어요? 새 예루살렘, 거기에는 성전이 없어요. 이는 그 이유가 성전이 없는 이유가 성막과 성전이 없는 이유가 뭐냐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시니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 되시기 때문이라.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성막과 성전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성막 성전의 실체이신 예표이신 예수님이 완벽하게 새 예루살렘의 임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기는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만물이 새로워지게 되는 겁니다.

오늘 이것을 깨닫는 하나님의 신실한 남녀종들은,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저와 여러분들은, 이 예수님을 믿고 마지막에는 성막이 없다는 예수님이 친히 어린 양 되시는 그분이 성전이 되시는 걸 깨닫는 주의 백성들은 21세기에 주님을 모시는 걸어 다니는 작은 성막 성전, 예수님을 옷 입은 예수님의 처소, 작은 예수의 삶을 우리가 살도록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이제 도처에서 영광을 받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이걸 깨닫는 순간, 하나님이 우리의 집을 지어주시고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고 다윗의 후손을 만드시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성전 관리를 해야 합니까? 성령을 어떻게 합니까? 먼저는 구약에서 이 성막과 성서의 가장 중요한 예표 중에 하나가 사무엘이었어요. 사무엘상 3장 3절에 보면, 사무엘이 성막에 가가지고 어릴 때 받쳐져 가지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다.

*사무엘상 3:3,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사무엘이 할 역할이 성전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영적으로 보면 사무엘은 예수님의 예표였어요. 마지막 사사였기 때문. 왕권을 가졌고 사무엘은 선지자 역할을 했고, 사무엘은 제사장 역할을 하였어요. 삼권을 다 줬어요. 유일하게 구약에 그 사무엘이 한 역할이 뭐냐 성막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사무엘이 예수님의 표가 되는데 사무엘상 2장 2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사무엘상 2:26,
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누가복음 2장 52절에 예수님이 점점 사람의 하나님과 사람 앞에 뭐예요?

*누가복음 2:52,,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똑같은 대조가 되는 것이에요. 오늘 사무엘이 성막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21세기에 걸어 다니는 성전으로서, 우리의 성막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으려면 우리의 성전을 꺼뜨리지 않아 어떻게 해야 되나요? 레위기 8장에 보니까 모세가 관유로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발라서 거룩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가져온 모든 물건들을 거룩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매주 예배, 예배 때마다 우리의 마음의 등불을 켜고, 예배, 예배 때마다 참여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만드는 줄로 믿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성찬식을 통하여 혹은 토요일 비전 새벽 예배를 통하여 관요의 부음을 받게 되고, 주일 예배에는 강력한 관요의 기름부음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배에 거룩한 사람들하고 같이 다니면,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고, 세상적인 사람과 같이 다니면 세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부터 거룩한 관요를 가지고 거룩한 부으심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저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몸을 가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절제하고, 성화시켜야 되는 것이 예수님이 마음껏 거하실 거룩한 처소가 돼야 하는 거예요. 이 성전이 오염되면 되겠습니까? 성전 된 우리의 몸을 그야말로 성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돌아가신 저희 부친은 저한테 전화만 하면 자주자주 “오 목사 성전 관리 잘하나?” “오 목사 성전 관리 잘하나?” 거기에는 여러 가지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우선 우리의 몸을, 몸을 우리의 몸을 우리의 육신의 몸을 거룩하게 하고 통제하고 우리의 몸에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내 심지를 돕는 삶을 살고, 특별히 젊은이들은 육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고 여러분 그거는 성전 관리가 안 되는 거예요. 한 번씩 저에게 얘기합니다마는 우리의 몸은 육체는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더욱 버릇이 없어져요. 주여 우리 성도들을 성전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몸을 관리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또 하나는 마음의 관리예요. 우리가 걸어 다니는 성전으로 걸어다니는 예배자로 우리의 마음의 등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리도 시험 들 때 많고 연약할 때 많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부터 제가 사랑의 교회 성도들에게 제가 이제 제 제안하는 것이 하나 있어요. 저는 시험 들 때 그냥 잠깐 제가 목도를 해요. 하나님 시험 들지 말게 하더라. 주의 성령께서 내 몸이 성전인데 주의 성령께서 우선 내 몸뿐만 아니라 내 마음을 관리하여 주십시오. 내 생각을 관리하여 주십시오. 이걸 이제 오늘 제 우리 교회 용어로 말하면요. 1초 화살, 기도야 3초 화살 기도에요. 주여! 이 시간 내 마음을 관리하여 주십시오.

내 기도의 등불과 내 마음의 등불과 내 인생의 영광의 등불과 영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1초 화살기도, 3초 화살기도, 주여 내 생각을 통제하여 주십시오. 마음의 등불 성령의 역사는 구약 시대와는 다르게 신약에 우리 성전 관리할 때, 주님이 주신 큰 축복은 뭐냐 하면, 구약은 우리의 몸이 연약해가지고 연약해가고 나가떨어질 때가 많이 있지만, 신약은 성령께서 구약에서는 성령께서 그냥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임재하지만 신약에서는 영안을 열어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원하는 주의 신실한 남녀 종 들에게 신약에서는 우리의 영과 마음을 지배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이 시간 3초 화살기도,,, 어려울 때마다 죄송합니다. 부부 싸움을 할 때도 3초가 살기도 주여 내 마음을 내 생각을 주님 감찰하여 주시옵소서. 3초 화살기도, 마음과 생각을 여러분 정리하시고 여러분 모두가 다 걸어다니는 21세기에 소중한 성전으로 여러분들의 등불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성악에 관한한 은총의 통로가 되도록 하나님 여러분 한분, 한분 붙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주적 성전이신 하나님께서 낮고 천한 우리 몸에 거하시게 하여 순간순간 1초 화살기도, 3초 화살기도의 거룩함의 기도를 쏘는 21세기 성막으로 살아가야 한다. 거실에서 사무실에서 여호와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확신하여 내가 알지 못했음을 깨닫고 내 인생에 새 판을 짜시는 임마누엘의 나의 하나님이 일하심을 알아 우리는 걸어 다니는 21세기 영적 성막이 되어 2033-50 비전으로 비상하고 거룩한 제사장으로 쓰임 받아야 한다. 올해 4월에 있는 좋은 지도자를 위해서도 주님을 경외하고 바른 자가 선출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거하시기 위하여 광야 길 가운데 성막에 거하시던 주님께서 오염되고 천한 몸인 우리와 함께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심을 감사하며, 우리 인생을 우주적 성전 되시는 예수님이 영원한 언약을 성취하는 임마누엘로 우리 안에 거하심과 약속을 깨닫고, 우리가 걸어 다니는 예수님의 작은 처소, 걸어 다니는 작은 예배자로 살아가야 한다. 가정마다 일터마다 새 판 짜기를 하여 우리의 몸을 관유로 부어 주시니,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하여, 일마다 때마다 어려울 때마다 3초 화살, 거룩 기도, 화살 생각 기도를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21세기에 주님의 성전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 영상은 2부 영상이며, 1부 예배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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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2월 18일)-예수님은 누구신가? 세 번째 시리즈.
제목: "광야에서 생수를 마셔라"(반석 되신 예수님)
-Drink your living water in the wilderness(Jesus The Rock)
말씀: 출애굽기 17:1~6, 고린도전서 10:3~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홍진기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출애굽기 17:1~6,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고린도전서 10:3~4,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

여러 회중 찬송을 하는데 ‘만세 반석이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 대고 환난 풍파 없도다.’!~ 만세 반석이 열린 곳에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 주십시오.!~~ 몇 분들 보니까 울면서 부르시네요. 여러분 오늘 반석 대신 주님께서 오늘 응답하시고 더 필요한 말씀 꼭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개척교회 할 때는요. 설교하기 전에 이러면 그냥 찬송해요. 그냥 우리도 할까요? 말씀한 1절만 더 하겠습니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1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 마귀 손 못 대고 환난 풍파 없도다.
2 죄에 매여 죽을 인생 편히 쉬기 바라니
주의 가슴 넓은 품에 내가 찾아 안기네.
3 이 땅 위에 평안 없고 기쁜 일을 몰라도
주예수의 참사랑을 내가 이제 알았네.
4 험한 풍파 지나도록 순풍으로 도우 사
평화로운 피난처에 길이 살게 하소서.
후렴)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아멘!~

-그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금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오늘 세 번째 “광야에서 생수를 마시라.” 부제는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특별히 말씀 자체를 통하여 여러분과 저의 영안이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3주 동안 구약의 본문과 또 신약의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구약의 본문과 신약의 해석 신약은 구약의 해설서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도록 그래서 제가 구약과 신약을, 신약을 같이 하고 있는데 여러분 성경은 신구약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한문입니다. 맞습니까? 66권이지만 한 권입니다. 하나의 메시지 하나의 복음 하나의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복음주의 권에서 우리 개혁주의 권에서는 늘 이렇게 얘기합니다. 구약은 시작, 신약의 시작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아멘 그래서 구약은 신약을 미리 표하고 예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신약을 더 잘 깨닫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을 제대로 깨달으면 구약 안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지금 들을 수 있는 것이에요.

출애굽기 17장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거예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오늘 구약의 본문에서 듣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해석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에서 홍해를 건넌 이후에 시내 산을 향하여 가는 도중 일어난 사건이에요. 앞에 17장 앞에 17장 앞에는 몇 장이에요? 그것도 해석이 안 됩니까? 16장에 16장 1절에 보니까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언제예요?

*출애굽기 16:1,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한 6주쯤 됐어요. 6주, 그래서 르비딤 이라는 곳에 하나님께 ‘르비딤’으로 인도하셨어요. 그러니까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엄청난 은혜를 받았는데 그 은혜가 앞에 또 마라의 선물이 있는데요. 3일을 못 갔어요. 사일을 여기서 제가 깨닫는 것이 뭐냐 하면 은혜의 유통기간이 3일밖에 안 돼요. 홍해의 기적 같은 사건을 체험했으면서도 3일 후에 불평하기 시작한 것이에요. 홍해를 지나면 그 이유는 홍해를 지나면 이제는 다 고생 끝, 이렇게 이제 편안함 시장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홍해를 지나면 더 좋은 환경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뭐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광야가 기다리고 있는 거 그러니 3일 만에 홍해 건너고 난 다음에 미리암과 함께 모두가 다 막 찬양하고 막 난리가 났어요. 3일 그거 얼마 안 돼가지고 불평이 찬양이 불평이 돼버린 것이에요.

제가 오늘 보면 오늘이 며칠이에요. 여러분, 세월 가는 것도 잘 모르시겠죠? 오늘이 2월 18일이에요. 그러니까, 새해 지나고 딱 6주가 된 거예요. 지금 거의 거 비슷한 거예요. 지금 이게 홍해 지나고 6주 된 거에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6주되는 것처럼, 새해에 우리가 마음 각오하고 강철 신부터 시작 했는데 벌써 불평한 일들, 벌써 얽히고설킨 수많은 난제들, 구원과 영생은 유통기한이 무한합니다. 이거는 익스파이어 데이트(Expiration date)가 없어요. 유통기한이 없어요. 만료 기간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은혜를 유지하는 데는 은혜는 유통기한이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약점은 은혜를 자꾸 잊어버리는 거예요. 자꾸 잊어버려요. 다시요. 구원과 영생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없다? 그런데 은혜를 유지하는 데는 유통기한이 있다 없다. 그러니까 매주, 매달, 매년 받아야 할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오늘의 급속한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저는 자주 자주 우리는 은혜에 관한 날마다 유통기한을 인식하고 영원한 채무자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매주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고난 주관, 부활 주일 그다음으로 특새 이런 시간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우리 은혜 유통기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이걸 늘 유지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은혜를 한때 많이 받은 분들 가운데 우리가 굳어져 있으면 나중에 큰일 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출애굽을 하고 그다음에 홍해를 건너고, 만나를 경험하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불평을 할 수 있냐고 이 은혜 유통기간이 지난 거예요. 은혜는 자동차 휘발유처럼 떨어지면 채워야 합니다. 은혜의 계기판을 보고 은혜의 탱크가 풀인지, 엠프티가 된 것인지, 매주일 마다 예배를 드리면서 저와 여러분이 점검을 해야 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을 좀 더 자세히 살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약의 말씀을 주려고 시내 산에서 십계명과 귀한 걸 주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 산에 이 언약의 말씀을 주려고 이제 하는데 물이 없는 광야로 데리고 가시는 거예요. 제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 1절에 보세요.

*출애굽기 17:1,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자손은 회중이 그다음 뭐라고 줄 것이요? 여호와의 뭐예요?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다음 뭡니까? 그 노정대로 행하여 루비듬의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여호와의 명령대로 말씀하신 노정대로 주님이 주신 내비게이션대로 따라서 가는데 물이 없는 광야로 가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님 명령대로 르비딤으로 가라. 르비딤으로 갔는데 뭐가 물이 없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오늘 이 자리에 나는 하나님 말씀 순종하고 나왔는데 예배 순종하고 나왔는데 우리의 현실은 앞뒤 좌우를 살펴보아도 광야밖에 없고 물이 없고 소위 죽을 것 같은 그런 환경에 있는 분도 있을지 몰라요. 광야는 목마름과 죽음의 장소이죠. 광야는 뱀과 전갈이 막 날아다니는 곳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곳이에요. 그러나 어떨 때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광야도 하나님의 인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명령대로 갔는데 광야로 간 거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말씀 속에 복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왜? 그의 백성을 때로는 광야로 인도하시고 광야를 지나게 하실까? 너무 잘하는 말씀이지만 다시 한 번 은혜의 유통기간이 있으니까, 회복하기 위해 신명기 8장 2절 익숙한 말씀이 또박또박 같이 보겠습니다.

*신명기 8:2,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그 이유는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내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이해가 됩니까?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광야로 인도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어요. 하나님 내가 연약한데 나 연약한 나를 왜 광야로 인도하십니까? 답답해도 어쩔 수 없어. 왜냐하면 우리의 미성숙을 성숙하게 하시고, 우리의 불순종을 교정하시고, 이제 제일 좋아해 ●애굽적 체질을 앞으로 약속의 땅 체질로 바꾸시기 위해서는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이에요. 우리는 애굽의 본능적 체질이 있어요. 인간은 태어나서 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하는 본능적 체질이 있는 거예요. 근데 이걸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가지고 가나안 사람들을 그 체질로 바뀌고 그래서 여러분 이 광야의 길을 대부분 다 못 들어갔지만 20세 이하의 우리 젊은 자녀들은 이걸 훈련해가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성경 전체에서 유일한 순종의 세대가 된 것이에요. 유일한, 유일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수많은 생수를 터뜨려주시고 기적을 주시고, 하기를 원하시는데 문제는 이 광야의 길을 잘 지나가야 됩니다.

다시요. 애굽 체제를 무슨 땅 체질로요? 약속의 땅 가나안 체질로 바꾸시는 것이에요. 애굽의 육신적인 본능을 말씀으로 주님 해가지고 그리고 그냥 적당히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와 구체적인 시간과 구체적인 사건을 가지고 조율을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마침내 광야 신명기 마침내 우리에게 복 주시려 하시니라. 마침내, 마침내,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광야로 인도 받았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얻기 위하여 애굽 땅의 체제를 약속의 땅 체제로 바꾸기 위해 뭔가 달라지기 위하여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광야 대학을 나온 것이에요. 모세도 광야 대학 출신이고, 바울도 광야대학 출신이고, 요셉도 광야대학 출신이고, 다윗도 광야대학(Wilderness university) 출신이에요. 그래서 광야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광야도 시각을 바꾸는 광야에 가보면요. 저는 광야를 익숙하게 아는 사람인데 광야의 일몰은요. 끝내줘요(It's awesome). 광야에 일몰은 더 멋있어요. 그리고 광야는 비타민d를 듬뿍 주기 때문에 낮에 밤에 정말 잠이 잘 와요. 이게 안 되어도 할 수 없고, 그러니까 잘만 하면 몸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거예요. 대신 광야는 혼자 있으면 죽어요. 혼자서는 광야의 길을 못 걷습니다. 영적 동지가 꼭 필요한 거예요(공동체). 그리고 이 이 광야는 다시 애굽 체질을 약속의 땅 체제로 바꾸면, 그다음에 제가 한 번씩 말씀드린 놀라운 이사야가 고백한 대로, 이사야 43장에 고백한 대로, 뭐라고 나오느냐,

*이사야 43:20,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내가 광야에 뭘 내고 길을 내고 사막에 뭘 내요 강을 낸다. 그리고 그다음 20절에 보니까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하겠다. 광야에 다시 뭘 내고요 길을 내고 광야에 뭐예요? 사막의 길을 광야에 또 뭐예요? 사막에 뭐예요? 강을 내고 그리고 그 광야를 통하여 광야와 사막을 통하여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이니라.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택한 자인 줄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마시게 하는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그리고 이 광야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뜻도 모르고 이제 두 번째 장면은 애굽 체질이 애굽 본능적 사고방식이 체질화된 그 백성들은 계속해서 화가 나서 원망과 항의를 하는 거에요. 3절 보세요.

*출애굽기 17:3,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뭐 하여 이르되 원망합니다. 광야에 이런 것 뜻도 모르고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 가지고 우리에게 우리와 우리 자녀, 우리 가축을 목말라 뭐 한다고 죽게 한다. 아 백성들은 기가 막힌 거예요. 그러니까 백성들은 불평 전문가야. 물이 없으면 물을 주면 배고프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또 배가 부르면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백성들은 불평 전문가예요. 그러니까 이런 불평 전문가들은 불평의 유통기한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앤들리스 러브가 아니라 엔들리스 컴플래인이야, 끊임없는 불평등한 거예요. 그 이유는 애굽의 노예근성이 처리가 안 됐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리 모습과 비슷하죠. 우리도 금방 은혜 받고, 은혜 받고 또 잊어버리고 금방 불평하고 올해 몇 번 감사하자 그랬어요. 2024번 몇 번이나 하셨나요? 100번 몇 번이나 하셨나요? 그리고 불평할 때 다 비슷해요. 대체적으로 먼저 불평할 대상을, 대상을 그 리더에게 퍼붓는 거예요. 모세에게 그리고 불평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리더에게 지도자에게 퍼붓고 그다음에는 과거에 집중하는 것이 대체적으로 그래요. 비슷해요. 오늘도 뭐예요? 과거에 집중해가지고 우리가 애굽에 있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요. 그리고 리더에게 퍼붓고 과거에 집중하고 그리고 자기가 뭘 하려고 뭘 한번 해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뭘 해달라고 해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뭘 해달라고 데모하고 요구하는 것이 그리고 이 군중 심리는 집단적으로 몰리는 현상이 있어요. 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군중 심리와 여론이 중요한 것이 막 부아뇌동하고 그냥 어느 당과 똑 같아요 아니에요 고라 당이에요. 고라, 고라당, 자기 하는게 그 많은 군중들 가운데서 어떻게 단 한 사람도 모세를 따라봅시다. 우리 함께 기도해보고 결정합시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없느냐고 한 사람도 없는 거야. 그 이유는 집단 심리로 다 몰려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때 아론이 뭐 했을까 아론도 찍소리도 못하고 있잖아요. 금송아지 만드는 데 참여하고, 그런 우유부단한 아론인데도 그 아론의 자손을 가지고 대제사장 만든 거 보면 우리 하나님 진짜 위대하신 거 아니죠 계속해서 모세 당신의 인도 때문에 우리가 목말라 죽게 되었다. 원망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크신 인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못 믿고 생명나무를 선택하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백성들을 선택하는 왜 우리를 데리고 나오냐, 원망과 불평과 항의를 하는 것이에요. 왜 그러냐?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무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만나와 불기둥을 가지고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끝끝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줄 것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이 물을 주지 못하는 무능하신 분으로 원망하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고 능력 있는 하나님이시고 결국은 여러분들을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요. 좀 우리에게 어려움도 있죠. 광야 길을 지나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불평 우리에게도 불평이 많아요. 오늘 이 예배에 와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우리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축복인 것이에요.

지난주만 저에게 우리 교회 어떤 시각장애 집사님으로부터 젊은 집사님이신데 편지가 와서 저한테 e메일을 받았는데, 시각장애니까, 목사님 교인들에게 꼭 좀 얘기해 주세요. 자기의 평생소원은 자기 마음대로 한 번, 그렇잖아요. 평생 자기 마음대로 편하게 건널목 한번 건너보는 것이라 합니다. 자기 평생소원이래요. 여러분 여기 이 자리에 건널목 한번 편하게 못 건너보는 손 한번 들어보세요. 건널목을 건넜으니까 여기 오셨을 거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 근본적으로 있잖아요. 우리는 진짜 원망하면 안 되는 거에요. 마음에 안 드는 거 있고 불편한 거 있어도,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그거 다 하나님 시험하는 거라고 그랬어요. 광야의 원망은요. 그래서 2절에 모세가 뭐라고 그랬어요? 뭐라고 그랬어요?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뭐 하느냐고 시험하는 지금 하나님의 영광과 기적을 맛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주의 권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험은 의심이고 불신이에요. 민수기 14장 22절 23절에,

*민수기 14:22-23,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래서 약속했다가 다 이 세상 장정들은 다 못 들어갔어요. 여호수아 갈렙 빼고는, 그렇다면 이 정도면 하나님이 그냥 쥐어박아야 되는데 그 자격 없는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7:4-5,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부르짖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5절에 나일강을 치던 그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놀랬죠. 나일 강을 치던 그 지팡이를 들고 백성들 앞에서 당당하게 장로들과 함께 걸어가라. 그 불평하는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돌멩이 맞을 것 각오하고 지팡이 들고 지도자들과 함께 같이 걸어가라. 어제 토비새로 말하면 모세가 산에 올라갈 때 같이 올라간 지팡이였죠. 나일 강을 치던 지팡이라고 하신 것은 나일강의 기적을 알고 있지 않냐고, 상기시키는 거지. 애굽의 신인 애굽의 나일 강을 애굽의 신이었어요. 그 나일를 피로 바꾼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그 동일한 능력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것이 오늘 이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이 동일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생애에 지금 동일한 능력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 지팡이를 들고 주님께 기도하는 한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6절이 오늘 요절이에요.

*출애굽기 17:6,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아멘! 오늘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에게 호렙에 불이 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에 대한 영안이 열리기를 바라고 성경적 가치관에다 눈을 열어가지고, 다시 한 번 호렙에서 반석에서 터뜨려 뜨린 하나님의 생수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럼 거기서 뭐가 나온다고요? 물이 나오리라! 반석의 생수 반석을 치면, 생수. 오늘 이 사건을 시편 기자는 시 15편 41절에 해석을 해가지고 다 같이 시편 15편 41절 같이 읽겠습니다.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같이 흘렀다.

*시편 105:41,
41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오늘 이 본문의 말씀과 시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뜻이 뭡니까? 이제부터 오늘 말씀의 클라이맥스,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재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사건을 통하여 바울이 재해석하는데 그 재해석한 것을 주님이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말씀이 고린도전서 10장 4절, 10장 4절,

*고린도전서 10:4,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반석은 이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Who is Jesus? 시리즈, 세 번째” 오늘 키가 뭐냐? 예수님은 지난주는 생명의 나무이시고 예수님은 오늘 반석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반석이시다.

-10장 4절에,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성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이 곧 뭐예요? 그리스도시라, 호렙 산의 반석은 물리적인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왔고, 그다음에 바울이 말한 이 신령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생수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반석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 친다는 말이 뭔가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정통 신학자들의 대체적인 해석은 뭐냐? 반석을 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 하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 한다는 것이 뭡니까? 스가랴 13장 7절에 이런 말이 나와요.

*스가랴 13:7,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목자를 치라 그랬더니 13장 1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리라 그랬어요. 무슨 말입니까? 반석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치면,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내는 보혈의 생수가 터지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보혈의 샘이 되는 거예요. 정리하면 반석 대신 예수님을 침으로 말미암아 물이 흘러넘쳐 나왔는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반석의 샘이 터진 것입니다. 반석을 친다는 것은 예수님 입장에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의 몸에 침을 받은 것이에요.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의 깨어진 육체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물과 피가 쏟아진 것이에요.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물과 피를 흘린 것. 구속 못할 죄인이 그 은혜를 우리가 받았노라. 반석을 치라. 신령한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그의 허리가 창이 치워지고 찔려지고, 그런 가운데서 실제로 물과 피가 흘러나온 것이에요. 실제로 물이 쏟아진 것이에요. 우리가 반석 대신 예수님을 칠 때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깨주시고 깨어지십시오. 깨어지시고 치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깨어진 예수님으로부터 생수를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

*요한복음 19:34,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바울이 이걸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신령한 반석이시다. 그 반석을 창으로 찌르니 치니 물과 피가 나오더라. 예수님의 반석 대신 예수님의 심장으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오게 된 겁니다. 좀 더 신학적인 해석을 하면, 오늘 본문에서 호렙 산에서 모세가 반석을 치는 역할이 중요한 것과 같았는데, 나중에 모세가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나가지고, 40년 후에 가제스 지역에서 물이 없을 때 반석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라 반석에 명령하러 오는데, 모세가 자기 경험에 의하여 반석을 두 번 쳤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요. 그래서 안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대표이지 생명이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적인 가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 귀한 말씀을 깨달을 자 귀 있는 자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물이 어느 정도 흘러나왔는가 시편 105편 41절에,

*시편 105:41,
41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반석을 치신 즉 물이 흘러나와 그다음 뭐예요? 마른 땅에 뭐예요? 이 강같이 흘렀다. 저는 모세가 친 바위의 크기가 얼마인지는 제가 잘 몰라요. 그러나 한 가지 해석할 수 있어요. 적당한 크기의 바위였을까요? 아니면 사랑의 교회 본당 크기의 바위였을까요? 어마어마한 바위였을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 아이들은 다 장정만 60만이니까, 200만 정도 되잖아요?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족하게 물을 마시려면 어느 정도 돼야 할까요? 지금 물 한 병에 7~800원 하는데 풍족하게 마시려면 하루에 4병 마셔야 된다면 하루에 800만 명이 필요한 거예요. 이걸 매일매일 계속 마신다면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할까? 그것도 광야와 사막에서,,, 그 바위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위가 되었을 거예요. 제가 그래서 이름 붙였어요. 물에 관한 “오병이어 반석 바위”, 물에 관한 한, 생수에 관한 오병이어 반석바위 신약에서 말하는 예수님만이 생수의 반석이 되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시간도 제한이 없습니다. 영업시간도 제한이 없습니다. 아침 점심, 저 언제 물의 양이 바닥에 나지 않습니다. 나이도 제한이 없습니다. 장소도 제한이 없어 누구든지 다 와서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반석에서 생수가 철철 흘러나오게 되는 것을 계시의 발전사로 봐가지고, 요한복음 7장 37절에,

*요한복음 7:37,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광야의 목마름과 괴로움이 있으면 예수님께 가서 마실 때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고 제한 없이 생수에 관한 오병이어 반석에서 생수를 터뜨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광야에 목마름과 갈증이 있을 때, 주님께로 와서 마시면 반석 되신 예수님을 치기만 하면, 그 배에서 생수 강이 흘러나와 그 강이 하나 리볼 정도가 아니라 미시시피, 낙동강, 한강, 영산강, 두만강, 압록강, 양자강, 저 나일 강 다 합친 것보다도 영광스러운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반석 되신 예수님을 치면,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으면, 생수의 강이 오늘도 흘러나오게 되고, 우리 하나님은 제한 없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의 광야는 메마름의 장소가 아닙니다. 이럴 때 광야는 전갈과 뱀이 나오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때의 광야는 목마름이 해갈되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말씀한 대로, 광야가 우리 인생이 광야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는 광야가 오히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수를 경험하는 소망의 장소가 됩니다. 대표적으로 요한복음 4장에,

*요한복음 4:14,
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인생의 광야에서 고통 받은 사마리아 우물과 여인에게 예수님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영광스러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반석에서 나온 물,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제 이런 영적인 은혜가 다 연결될 때,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생수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데, 반석에서 나온 물,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 홍해에서의 구출, 매일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 이 과분한 모든 축복들은 반석 대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반석을 친다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를 날마다 깨닫는 것인 줄로 믿으셔야 됩니다. 반석도 그리스도이시고, 나중에 만나도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이시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도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의 광야의 축복을 누리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이런 경험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인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의 생애에서 광야에서 생수를 마시는 풍성하게 마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생수를 마십시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석에서 생수를 터뜨려 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겁니다.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에 살다 보니 질병도 있고 물질적인 여유도 없고 앞길이 막혀가지고 답답해도 반석에서 강 같이 흐르는 생수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듯이 기쁜 것이에요. 오죽하면 이사야 40장 3절에 이사야가 고백합니다.

*이사야 40:3,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광야에 꽃이 피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00년 전에 우리 민족에게 복음이 들어왔을 때 우리 민족은 완전히 광야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19세기 말에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 우리나라는 완전히 우리나라는 나라도 없고, 잃고 희망도 없고, 민족의 광야도 그런 광야가 없어 영토도 다 빼앗기고 오죽하면 남부여대에 가지고, 만주로 다 도망가고,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우리 보릿고개, 초근목피(草根木皮) 하고 살았어요. 그때 복음이 들어왔어요. 광야에 생수, 그래서 사람들이 그 당시에 어떤 평가를 한 줄 압니까? 유교는, 유교는 날마다 유교는 날마다 유교를 믿는 사람들은 집에서 제사 드리는 사람처럼 늘 엄격하고, 어떤 또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맨날 목적도 초상집에 사는 사람 같고, 근데 이상하게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잔칫집에 사는 사람과 같다. 하나는 초상집, 하나는 제삿집 내가 뭐 이름 바뀌면 안 되고, 우리는 잔칫집!!! 예수 믿으면서도 제삿집, 초상집 안 됩니다.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면 우리는 광야에서 생수를 터뜨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 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방수의 생수를 터뜨렸고, 마치 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너무나 영광스럽습니다.

*요한계시록 21:6,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할렐루야!! 생명수 샘물을 광야 길 가운데서 목말라 하고 갈증 하는 사람에게 내가 죽겠다. 저희 교회가 키르키스탄의 ‘사랑 아카데미’라고 아주 좋은 명문학교를 만들고 운영을 하고 있어요. 우리 교회 장로님이 지금 거기 가고 교장으로 계시면서 잘 하고 있어요. 제가 10몇 년 전에 거기 한번 가가지고요. 그 학교 옆에 조금 더 가면 이시쿨 이라는 멋진 호수가 있어요. 김지환 시인 같은 사람, 그곳이 우리 한민족의 근원이 되는 호수다. 그런 얘기 이시쿨 호수 뭐 지 보셨어요? 이 식구의 호수보다 더 놀라운 생수를, 그보다 더 놀라운 생수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이다. 바이칼 호에 가면 어마어마한 생수가 전 세계 담수의 20%가 있습니다. 그 생수를 다 마신 것 같은 생수를 허락해 주실 것이다. 오늘 이 말씀 하나하나가 여러분들에게 꼭 내 것으로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부를 오늘 찬송은,,,찬송 38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
1절: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2절: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 한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3절: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고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예수 인도 하셨네.
아멘 ♪~

2절에 보면요.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광야 길 갈 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그다음 가사가 너무 귀한 거예요. 나는 심이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가하지만 그다음에 뭐예요?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니라.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어떤 경우에도 원망하지 말고 반석에서 생수를 터뜨리시는 그분과 함께 모두가 다 영적으로 성공하는 신실한 남녀종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약
광야에서 애굽 체질을 약속의 땅의 체질로 바꾸어 주실 때, 원망과 불평을 물리치고 마침내 복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보혈의 생수로 인류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주신 것처럼 날마다 ‘오병이어 반석’에서 흘러나온 생수의 강으로 모든 목마름을 해갈하여야 한다. 우리 교회가 사랑글로벌 아카데미(SaGA)의 상반기 사역의 개강도 하나님께서 압도적인 은혜를 부어주셔서 대한민국에 생수가 터지는 좋은 지도자의 복을 주시길 간절하게 기도해야 한다. 반석에서 나온 물,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제 이런 영적인 은혜가 다 연결될 때,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생수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데, 반석에서 나온 물,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 홍해에서의 구출, 매일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 이 과분한 모든 축복들은 반석 대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인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맛사’ 또는 ‘므리바’는 다툼이나 시험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면서 하나님이 자신들 가운데 계신가를 시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불신앙을 기념함으로써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모세의 기도응답,- 하나님은 모세더러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지팡이를 잡고 나아가 반석을 치면 물이 나오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불신앙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참고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셨던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큰 특권을 향유했으나 결국 무서운 책벌 아래 떨어지게 된 유대인들을 예로 들고 있다. 하나님의 유대인에 대한 섭리와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특권을 열거한다. 애굽에서 구출 받은 일이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홍해를 지났다. 그리고 그 홍해 속의 길에서 애굽 인들은 수장되었으므로 유대인에게는 생명으로 가는 활로가 되었고 애굽 인들에게는 무덤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적으로 그들을 구원했을 때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다. 유대인은 우리들과 같은 성례를 가졌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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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4년 2월 11일)
제목: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두 번째 강의
말씀: 창세기 2:8-9, 요한계시록 22:1-2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동선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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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2:8-9,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요한계시록 22:1-2,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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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귀한 명절 예배에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양대가 오늘 오직 예수 너무 귀한 찬송 잘했는데 문제는 여러분들 다 까먹으셨어요. 찬송하면 끝나면 어떻게 합니까? 아멘!!!! 하고 박수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금 10분의 1도 안 하셨어요. 우리 오직 예수 주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 명절을 맞이해 가지고 앞에 이런 방패 상당히 아름다운 방패연을 만들어 놓았는데요. 하나는 은상가은(恩上加恩), 보이십니까? 들어오셔서 그냥 기도만 하고 열심히 하느라고 이거 은상가은 또 보이시죠? 이거 이 우리 ‘2033-50 비전’에 관해서, 또 부흥의 르네상스 사명에 관해서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어느 게 제일 좋습니까? 다 우리가 다 필요한데 하여튼 이 세 가지 은혜와 비전과 사명의 연주를 놓치지 않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명절 예배를 당해서 좀 선물 하나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될까 이 생각하다가, 오 목사는 오 목사의 사역 가운데 여러 어떤 뭘까 인생 설교라 할까, 인생 메시지랄까, 그런 게 뭘까 제가 기도하면서 보니까 목자의 심정이라든지, 복음을 즐거워한다든지, 뭐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오늘 제가 드리는 이 말씀 생명나무, 생명나무에 대한 이 메시지가 저에게 있어서는 저를 변화시키고, 저의 사역의 방향을 잡게 하는 데 있어서 큰 축복이 되었는데, 오늘 이 예배에 오시면 특별히 지방에서 혹시 서울을 이렇게 역 귀경 하셔가지고 가족들에게 오신 분들, 자녀들이나 가족들 손에 같이 오신 분들에게 오늘 명절 최고의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더블 데이 시리즈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두 번째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본문을 읽었는데 창세기 2장 8절 9절에 보면,

* 창세기 2:8-9,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안에 두 나무를 주 하나를 뭘 주셨어요?
1. 생명나무를 주시고 또 하나는 뭘 주셨어요?
2.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어요? 생명나무는 죄송합니다.
-영어를 써서
*트리오 라이프(Tree of life), 생명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이렇게 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소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러는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다음에 생명나무를 두세요.

그럼 먼저 우리가 질문 하나입니다. 왜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선악을 하게 한 나무를 두시고 따먹지 말라고 그랬을까? 거기에 대한 복음적 변증은 제가 오늘 할 시간이 없어요. 우선 이 질문만 하겠어요. 왜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두셨을까 그리고 그 나무를 두고 따먹지 말라고 그랬을까요?

◇“선악과는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의미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본네퍼 목사님-
-나중에 자막하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하는 경계선을 말하는 거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주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거룩한 경계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I.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거룩한 경계선을 알게 한다.

-이해가 됩니까? 이제 이해가 될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아담과 하와가 이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왜 따먹었을까?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이 나무를 따먹고 범죄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5절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냐면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을 봐라.

*창세기 3:5,
5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이게 사탄이 아담과 아담을 꼬시는 건데,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가지고 그다음 종류는 뭡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어 그다음에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저는 어릴 때 이 성경을 읽으면서 이게 뭔가, 무슨 뜻인가? 선악을 아는 게 무슨 잘못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악을 이게 선이고 이게 악이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저 뜻은 뭐냐 하면 선악을 안다 하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과 같이 대화하고 연결되어 가지고 하나님처럼 내가 판단하고 산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선악의 기준’을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잘못이다. 그 말이에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약하다 이런 뜻이 아니고 선악의 기준을 인간이 스스로 판단한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선악 기준을 따르지 않겠다. 그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요 배신행위예요.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판단하겠다는 거다. 이거 그러니까 이 선악을 알게 한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않고 승리한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가 요셉인데 요셉이 창세기 50장에 뭐라고 그랬어요?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겠나이까? 요셉이 만약에 복수하고 형들을 내치고 그랬으면 선악을 알게 나무를 먹게 따먹는 것이다.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이후에 그다음 3장 7절에 뭐라 하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창세기3:7,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그러니까 자기 스타일로 눈이 밝아져가지고 눈이 밝아져가지고 하나님처럼 판단한다. 이런 뜻이에요. 오늘 이 세상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눈이 밝아졌다고 생각해가지고 자기의 판단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런 세상이 된 거예요. 하나님처럼 판단하면 그러니까,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가 없고 인간 자신만이 전부가 되는 세상이 되는 그것이 바로 뭐냐 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해가지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판단하겠다. 그런 뜻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그러니까 첫 번째 선악을 나무는 거룩한 경계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런 뜻인데,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 하나님을 선악의 판단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겠다. 이제 이런 뜻인데 지금 우리 한번 읽어봐요. 시작

▷하나님을 선악의 판단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이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제가 이 메시지를 30~40년 전부터 이 메시지를 제가 참 기쁘고 감사한데, 점점 제가 이제 시대에 맞게 제가 이제 옷을 입는데요. 오늘 이 명절에 옷을 입는 거예요. 인간이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겠다. 예를 들어서 어떤 뜻입니까? 지금 AI 인공지능 시대 아닙니까? 사람들은 초 지능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챗 GPT도 마찬가지구요.

1)그러니까 엄청난 지식의 데이터와 상상을 초월하는 학습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 영역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무신론적 감탄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인간의 눈이 밝아진 모습이 이거는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2)또 생명 생명의 관점에서 볼 때, 유전자 코드를 수정하고 조작하고 세포 복제로 생명을 만들고 유전자 변형을 통해서 원하는 생명을 만들 수 있다는 지금까지 인간이 신의 역할을 대신하겠다. 눈이 밝아진 것이고 인간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겠다 그런 뜻이죠. 수명 연장 마치 자동차에 낡은 부품을 교체해서 새 차의 성능을 가질 수 있듯이 인간의 낡은 장기도 교체하여 불로장생하면 좋겠다. 이런 것이ㅔ요. 그리고 가장 요즘 나타난 거 소수 소위 성소수자라는 걸 가지고 남자와 여자가 아닌 트랜스젠더에 제3의 성을 만들고, 그 밑바닥에는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소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한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에요. 피조물인 인간이 또 하나 더 중요한 거는 아주 극단적인 생태환경주의자들, 그런데 우리가 피조물인데 피조물인 인간이 지구의 생태적 보존과 보호를 넘어가지고 마치 창조자로서 지구의 자연계를 통제하려는 극단적인 환경론자들, 아주 심한 분들이 있잖아요. 막 그 모나르자 앞에다가 막 그냥 페인트칠을 해버리고, 우리나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전부 다 뭐냐 하면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하는 이 컬츄롤 막스즘(cultural marxism)이라고 그래서 문화 막시즘을 내서 소위 안토니오 그람시, 여러분들 공부하는 분들 좀 알 터인데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하는 하나의 눈이 밝아진 현상이다 이 말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그러니까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수치를 느끼게 된 거예요. 그 이전까지 아담은 벌었으나 수치를 느끼지 않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까 선악 남을 선택하니까, 마치 다윗이 범죄하고 수치를 느끼듯이, 돌아온 탕자가 돌아오기 전에 그 허랑방탕하면서 나중에 비참하게 수치를 느끼듯이, 수치를 가져오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한 결과에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책임 전가예요. 남 탓으로 돌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을 어긴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거예요. 아담은 하와 탓으로 하와는 뱀 탓으로 선악을 알게 된 나무의 결과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예요. 인간이 얼마나 얄팍한지 아담이 조금 전에는 그 자기 아내에 대해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죄송합니다. 알랑방구 하다가,,,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지금은 막 손가락질을 하는 거예요.

누구는 그런 얘기해요. 선악을 알게 한 남 탓을 너무 많이 하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가 성경에서 사라진 이유가 뭐냐 하면, 아담 이후에 우리가 남 탓하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너무 많이 따먹어가지고 지금 없어져버렸대요. 지금도 우리는 그 열매를 따먹고 있는 거예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어야 되는데 선악을 앓은 나무 남 탓하는 열매를 계속 따먹고, 그러니까 여기서 내로남불이 시작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본성을 제일 잘 갈파한 칼막스가 칼막스는 공산주의, 목사의 아들이에요. 인간이,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가지고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는 그리고 그 결과 남 탓으로 돌리는 이 성향을 너무너무 잘 알아가지고 모든 공산주의자들 이 극단적인 사회주의자를 어떻게 합니까? 모든 것을 남 탓으로 여기는 거예요. 이 약점을 가지고 인민재판하고, 아이들도 심지어 부모 탓을 부모를 고발하고, 이 혈류가 남 탓을 하는 거 아니에요 혈류가 내 탓이라고 그래야지. 아주 그냥 아주 간고한 이 공산주의자들은 이 내로남불 남 탓에 아주 그냥 이게 선악을 알게 나무를 선택한 결과에 아주 그냥 가장 강력한 증거 중에 하나예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 성입니다. 이걸 좀 이걸 좀 읽어보세요. 이 악이 뭐예요? 악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이제 악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는데, 뭐냐 하면 이 세상의 악이란 인간이 지닌 유한함의 결과일 뿐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내가 죄를 지은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약점이 죄를 지었다. 또 내가 죄를 지은 건 내 속에 부족함 때문에 그러지 내가 아니다. 나와 나의 약점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나와 나의 부족함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나와 나의 잘못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그릇된 행동은 우리 속에 있는 상처 탓으로 돌리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이 책임 전가가 무엇이든 간에 그 결과는 이상하고도 괴기스러운 유체이탈(遺體離脫) 화법이 생긴 거예요. 그래 내로남불, 교회 안에서 도요. 상처받았다는 분 많이 계시는데요. 상처 줬다는 분 아무도 없어요. 뻑하면 교회에서 상처 많이 받았다고 하죠? 그럼 그거 아니죠?

제가 존경하는 김준근 목사님은 아주 통찰력 있는 말씀을 하셨는데, “예수님은 악이 이렇게 무슨 남 탓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부터 악이 나온다.” 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의 사회학자는 악은 사회 속의 구조학 때문에 사회 속에 구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도둑질하지 말라고 설교하기 전에 도둑질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심지어 기독교 신학자들조차도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회에 이 죄, 이런 문제에 책임을 전가하는 거예요. 물론 아프리카 같은 하도 후진국 남미의 어려운 나라는 구조학이 있어요. 정보나 이런 것들이 너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일반 사람들이 발버둥을 쳐도 해결이 안 되는 그런 약점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아프리카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강남을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 지금 책임을 전가하는 입장에 책임을 전가하는 걸 선동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요. 내가 누구라고 말 안 했어요. 김모모, 김모모,,, 그럼 이 책임전가의 밑바닥에는 사탄의 치밀한 전략이 자리 잡고 있어요. 1부 예배 때는 뭐 얘기합시다? 2부 때는 안 할 거예요. 전부 책임 전가예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할 때마다 ‘지금 내 마음속에 사탄이 부추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책임 회피나 책임 전가는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고 우리 속에 이미 고착화되고 만성화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만일 오늘 이런 말씀을 듣고 여러분들이 책임 전가를 하고 싶은 그 순간에 책임을 전가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책임지려고 그러고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고 그러고 책임 회피의 오랜 역사를 딱 정리하면 올해는 여러분 앞에서 위대한 순간에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놀라운 신앙의 역사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제가 책임 전가를 멈추게 된다면, 아 책임 전가의 그 오랜 역사가 지금 나한테서 끝장나는구나!!!. 그런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잘 되는 집안과 잘 안 되는 집안을 보세요. 누가 도자기를 깨뜨렸다. 됐다 그러면 누가 깼냐 누가 그 자리에 왜 갖다 놓냐, 너는 머리가 바보냐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집안이 있고 야 내가 안 갔다. 잘못 갖다 놓아서 그렇대 내 잘못이다 그러고 말이지 서로 차이가 하나님 천국에 가는 지옥이에요.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남 탓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사랑의 교회 성도들과 한국교회 성도들은 절대로 책임전가, 내로남불의 역사가 반복되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책임 전가를 하지 않으려면 생명 생명의 능력이, 생명나무가 뭐냐 오늘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따먹지 말고, 다시 날리지 어브 굿 앤 이블(knowledge of good and evil)을 따먹지 말고, 츄리 어브 라이프(Tree of life), 생명나무를 선택하라는 거에요. 그럼 생명나무란 무엇인가?

생명나무란 무엇인가? 생명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나무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자기가 주인이 되어 가서 판단하고 사는 삶을 상징한다면, 생명나무는 반대로 하나님을 경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 중심이 되는 것이에요. 한 번 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II.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생명나무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서 살고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이 생명나무에 관해서 어거스틴이나 유케리우스 같은 교부는 뭐라고 얘기하느냐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랬어요.
다시요. 생명나무는 누구를 예표 한다고요? 예수 그리스도를 피한다. 그러므로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아담 범죄하기 이전에 완벽했던 교재처럼 교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공급하신 인물과 같이 하고 그래서 생명나무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빛 가운데 행하는 것, 영원한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에요.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빛 가운데 가하는 것,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성경은 오늘 창세기 2장의 생명나무로 시작해가지고 마지막 창세기 제일 앞부분으로 시작해가지고 제일 마지막 요한계시록 몇 장까지 있어요? 22장까지 있어요. 요한계시록 제일 마지막에 생명나무로 끝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세요. 그리고 생명나무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하지만 창세기와 계시록을 연결하는 것이 생명이신 예수님이신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창세기 2장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가 존재했고 요한계시록 이 12장에 생명나무로 마무리되는데 그 사이에 예수님이 생명 되는 거예요.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내가 길이요 진리요 뭐예요? 생명이니 그리고 이 생명의 역할을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가능케 되어 있는데 그 나무가 바로 십자가 나무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 때문에 생명나무의 역할을 하신 것이에요.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같이요.

*베드로전서 2:24,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친히 나무에다 십자가의 나무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말은 더 이상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따먹지 말고 생명의 참된 생명나무를 선택하고 살아라. 그런 뜻이에요. 아담의 타락,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의 벽이 생겨가지고 영원한 생명의 길이 막혀버렸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에 생명의 역사를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다시 우리에게는 풍성한 생명을 체험하는 길이 열린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생명나무는 영원한 생명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우리 편에서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가 생명나무 역할을 한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빌리그레함 목사님 뭐라고 말했냐?

*예수님께서 지신 영광의 십자가는 죄로 물든 죄인들의 마음을 씻으며 구원 받은 모든 자에게 생명나무가 된다 -빌리그래함-
-아멘 이해가 되십니까? 아담과 하와는 죄 때문에 쫓겨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화형 금을 든 천사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어요. 이제 막혀버렸어요. 범죄 때문에. 그런데 생명나무를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 생명나무를 다시 가는 유일한 길이 뭐냐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를 통하여 생명의 길이 회복된 줄로 믿습니다 마치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여서 소생하듯이 다시요. 첫 번째 아담 선악을 알게 나무를 먹은 첫 번째 아담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지만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열린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예수님이 생명이 되시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나무를 예표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흘러가지고 이제 군사 쪽으로 에스겔 47장에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되어가지고, 광 좌우에 모든 것이 다 메마르고 다 죽은 나무들인데, 그 예수 그리스도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흐르는 생수를 통하여 그 물이 흘러감으로 말미암아 메마른 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식용으로 사용하고, 잎사귀를 약용으로 사용하는 그 환상이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그 환상이 오늘 요한계시록 22장 2절 오늘 여러분들 주보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까? 여기 보면 22장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죠.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2,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그 잎사귀가 만국을 치료하는 약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만국을 치료한다는 것은 모든 제한을 뛰어넘는다는 말씀도 포함돼 있고, 여기는 모든 이방인들의 개정도 다 포함되어 있고, 또 만국을 소생한다는 것은 여러분 한 사람이 이 생명나무의 역사를 가질 때에 가정이 치유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의 교회가 치유될 때 이 민족이 치유될 줄로 믿습니다. 이거야 대한민국 치유될 때 세계 선교가 마무리될 줄로 확신합니다. 이거예요. 그래서 생명나무 잎사귀가 생명나무 입사기의 약용과 치유의 은혜가 대한민국과 한반도를 넘실되기를 바라고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생명나무 입사기의 약용 익을 통하여 세계가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2033-50 비전’의 어떤 영적인 토대 중에 하나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크라이나를 지난 주간 저는 어디 갔다 오면 갔다 온 얘기 바로 안 합니다. 안 하는데 오늘은 우리가 이 우크라이나는 나라를 제가 좀 살펴보았어요. 마치 우리와 쌍둥이 같은 나라예요. 날마다 그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고통당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50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된, 그 유일하고 첫 번째 전쟁이 지금 지금 이 지금 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되었어요. 지난 70년 가운데서 난민은 500만 명이 온갖 것이 파괴되었어요.

이번에 우크라이스 오신 목사님들 여러분들과 함께 제가 대화를 해보았는데 자기들이 그래요. 자기들의 목표는 대한민국처럼 회복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이렇게 대한민국이 하나의 자기들의 어떤 표상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어떤 반도체의 부흥, 자동차 부흥, 또 조선소 부흥, 이게 목표가 아니고 대한민국 교회처럼 부흥되기를 원한다. 대한민국 교회처럼 부흥돼야 자기 나라도 새로워질 것이다. 이게 뭐예요? 그 우크라이나가 생명나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에요. 만국을 소상하는 은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에스겔이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 생명나무의 특징은 ‘치유와 회복’이고 이것은 모든 것을 모든 지역을 치유하고, 우리가 낙원에서도 이 생명나무의 그 축복을 먹을 수 있겠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예표로 그날이 성취될 것을 믿으며, 오 예표로 이 땅에서 이 은혜를 누리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완전한 생명과 치유의 관계를 회복할 것을 그리고 있어요. 요한계시록에도 나와 있죠? 아픔과 아픔이 없고 고통과 갈등과 눈물과 실망과 망가짐과 찢어짐과 모든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신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가 이 생명나무를 선택하게 되면, 그 놀라운 것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놀라운 것을 이 땅에서 체험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다시요. 아픔과 고통과 갈등과 눈물과 실망과 망가짐과 찢어짐,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예고편을 이 땅에서 맛보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이제 오늘 이 명절날 제가 이제 여러분들이 드리고 싶은 선물이 그거예요.

그럼 우리 와 아 우리 어떻게 살아야 되나(How should we live?)? 사랑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한다는 것은 경계선을 넘어선 것이다.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다. 아담을 통하여 생명으로 가는 길이 다쳤지만, 십자가라는 나무를 통하여 생명의 길이 우리에게 회복된 것이다. 이걸 다 아는 사람들은 그 에스겔 47장에 나타나는 성전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수를 통해서 치유와 변화가 있는데, 메마른 곳이 생수가 되고 생명나무가 되고, 온갖 것을 치워 이 땅에서도 이것을 예고편으로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여러분과 저의 모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쓰는 최고의 우선순위 프라이어티 넘버1이 뭐냐 하면요. 여러분과 저의 생명을 확장하는 일에 우리가 쓰임 받아야 되는 것이에요.

III. 순간순간 생명의 확장을 선택해야 한다.

-생명을 확장하지 않는 일에는 무덤덤해져야 돼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애를 쓰지 말고 내 인생의 생명을 확장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되는 것이에요. 생명을 확장하며 확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를 들어서 남이 나에게 상처 주고 모욕하고 어떨 때는 뺨을 때릴지라도 생명나무를 선택한 사람은 그 상처와 모욕에 집중하지 않고 생명나무 대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냥 견디고 참는 것이 용서하는 것이에요. 반면에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한다는 것은 불순종하고 자기 판단과 자기 생각과 자기중심과 내로나무를 결정하기 때문에 모두가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불붙는 분노 때문에 어쩔 줄 몰라 이 사회가 지금 그렇잖아요. 책임 전가하고 무책임하고 권리만 주장하고, 한 술 더 떠서 복수하고 보복하고, 여러분들은 똑똑해가지고 늘 옳고 그른 걸 따지는 거예요. 그래서 텔레비 tv에 패널들 분들 보세요. 다 자기가 옳고 그른 걸 옳은 걸 주장하죠. 그러나 생명나무를 선택한 사람은 옳은 걸 선택한 사람인 게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고 은총의 원리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에요.

옳고 그른 걸 선택한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옳고 옳고 그르게 우리를 대우하셨던 우리는 벌써 다 죽었어요. 우리는 아무도 은혜받을 수 없는 존재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은총의 원리로 우리를 대우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가 생명을 선택하게 됐다. 은총을 은혜로 선택하게 됐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사람 오래 참고 기도하고, 우리를 대적하고 의롭게 하는 사람들을 그냥 주님께 맡겨버리면 원수가 없는 것을 주님께 맡겨버리는 것이에요.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도 맡길 때 우리 속에 억울하고 상처가 있죠. 그러나 하나님이 처리하실 것을 믿고, 세상의 가치관을 뛰어넘어야 되는 것이 아마 우리 이런 거 없었으면 우리도 다 힘들게 살았을 거예요. 아마 정말 겉으로 볼 때 이게 손해 같지만 사실은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손해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선택해가지고 책임을 전가하게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압니까? 그 순간 우리가 비난하고 비판하는 대상이 우리의 주인이 돼버리는 거예요. 생명나무를 선택하지 않으므로 책임을 전가하게 되면 뇌로 넘버 하게 되면 내가 싫어하는 그 대상이 계속 나를 얽어매고 내에게 생각나게 하고 내 사상을 다스리고 내 삶의 주인으로서 등장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건 중요한 통찰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판할 때 우리는 착각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복수하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다, 내가 응징하고 있다. 내 마음이 시원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 삼족을 멸한 사람, 그 못된 인간을 삼족을 멸해보세요. 잠깐 시원할지 모르지만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내가 미워하고 복수하고 응징하는 게 아니라, 실상은 그 사람들이 오히려 그때부터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 내가 비판하는 그 사람이 내 영혼의 주인 노릇을 하고 앉아 있는 거예요. 왜 내가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해가지고 옳고 그 내가 판단해 내가 응징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거기에 대한 결과 책임전가, 내로남불 수치의 어떤 그것이 내게 들어와 가지고 주인이 바뀌어져 버리는 거에요. 우리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 주님이 주인이 되셔야 되는데, 그 내가 비판하고 내가 진짜 복수하고 싶으면 그 사람들이 내 영혼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나에게 악하게 구는 사람, 그 상황이 나를 통제하도록 우리가 어리석게 해대면 안 되는 거예요. 비판과 분노가 우리의 주인이 되고 책임 전가가 주인 노릇하지 않도록 하나님 여러분들에게 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제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인간의 몸을 믿고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다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됐어요.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다 당하게 됐어요. 그 그거 붙잡고 잘 잘 감당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이 땅에 살아가면서 고난 받고 고통 받는 것만도 안타까운 일인데, 나를 가해하고 나를 괴롭히고, 나를 상처 준 그 사람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날마다 묵상하면 되겠어요. 다시요. 몇 번 못 알아들어서 다 천천히 설명할게요. 내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고난 받고 고통 받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나를 가해하고 나를 핍박한 그 사람을 주인으로 맞아들여가지고, 그 사람을 주님으로 맞아들여가지고 그 사람의 말대로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면 그게 지혜로우냐 이 말이에요. 내가 희생당했다, 내가 섭섭하다 내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가해자에 대한 미움과 원한 때문에 그 원한의 종이 되는 것이에요. 그 순간 우리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하고 마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상대방의 비난이나 그들의 말에 따라 반응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 의해서 조정되는 인생이 되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 나를 핍박하고 고통을 주고 한 그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 여러분과 저의 인생의 주인은 주님밖에 없지 사탄 마귀가 아닌 것이에요. 이것이 영적인 거룩한 비대칭 전략이에요. 여러분 일을 안 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생깁니다. 수많은 일을 하면 수많은 문제가 생겨요. 사랑의 교회도 이 교회를 건축하면서 수많은 우리가 난자를 맞이했어요. 일 안 하면 아무런 문제없어요. 그러나 일하다 보면 수많은 난제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시간 이 귀한 시간에 평생 나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생명나무를 선택하겠다. 결심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생명나무를 선택한다는 말은 좀 추상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말하면 생명이 확장되고 생명의 능력이 강화되고 생명의 역사가 풍성해지는 그것을 위하여 나는 선택하겠다. 예를 들어서 오늘 이 명절날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러 나오셨잖아요. 세상에 세상의 똑똑이들, 세상의 옳고 그름,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선택해 가지고 자기가 인생을 판단하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거 얼마나 어리석게 보입니까?

명절날 나오죠. 아침에 단장에 나오죠. 그다음에 수고하죠. 기도하죠. 정성을 다하죠. 심지어 여러분 땀과 눈물과 노력과 정성의 결정체 물질도 다 드리죠. 남들이 볼 때는 미친 거예요. 미쳤다면 이상하고 우리가 왜 이렇게 합니까? 영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은혜를 확장시키기 때문에,,, 여러분, 이 시간 와서 주님 앞에 기도하고 예배하고 주님 앞에 정성을 다하는 그 순간 내 영적 세계의 영광스러운 어마어마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의 능력이 확장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하고 땀과 눈물을 들이고 그들의 기준을 이해할 수 없어요. 겉으로 볼 때는 손해 같아요. 우리가 선악을 알게 나무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미움과 원망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복수하지 아니하고, 자기 죽음을 선언하고, 남 탓으로 돌며 주님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자기를 부인하고, 온전한 제자의 삶을 사는 이유가 뭡니까? 왜 남이 나를 어렵게 할 때 남들처럼 악착같이 따지지 않습니까?
왜 옳고 그른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명확하게 따지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 생각에 우리가 영적으로 볼 때는요. 그거 따지고 그러는 순간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생명의 능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영적 생명을 죽이기 때문에, 오늘날 도덕적 상대주의가 있고, 1부 때는 또 얘기할게요. 2 3부 때는 나으니까 제가 바쁜 와중에 건국 전쟁을 봤어요. 내가 그래서 기가 찬 거야 그거는 그러니까 온통 우리나라가 진실 중심이 아니라 프레임과 어떤 저기 뭡니까? 내로남불의 역사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왔구나!! 한탄이 저기에 있는 거예요. ‘건국 전쟁’ 다 보러 가세요? 아시겠어요? 2 3부터는 얘기할까요? 안 할 거예요. 진실로 생명을 선택해야 돼요. 저는 지난 몇 년간 영화를 한 번도 안 갔어요. 근데 처음으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 ‘건국 전쟁’을 갔어요. 근데 잠깐만요. 여러분 이게 이게요. 이게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생명의 역사를 진실에 관한 문제 왜 그런지는 가서 보면 알아요.

열 받을 일이 수두룩하고, 부도덕한 일이 수두룩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우리가 보아요. 이제 4월 12일 선거될 때까지 온갖 종류의, 온갖 종류의 정말 악한 마귀와 사탄의 충동전이 있을 거예요. 절대로 부화뇌동(附和雷同) 하면 안 돼요. 아시겠어요? 그 附和雷同이라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죽이기 때문에, 우리가 왜 중독을 피하고, 우리가 왜 도박을 하지 아니하고, 왜 우리가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갖지 아니하고, 왜 우리가 교회 일도 어떨 때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세상 방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기도하고 참고 기다리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우리는 영적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고, 영적 세계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생명의 능력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그것이에요. 여러분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옳고 그름을 잘 따져도 아무리 잘나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실제로 따지고 싸우고 하는 그 순간 우리 안에 생명력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그 순간 그 결과는 성령 안에서의 자유 함이며, 내 영혼의 깊은 곳의 평안이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제 정리를 하면 여러분 이제 오늘 이 명절날 이제 평생 결정을 해야 돼요. 내 남은 인생의 삶의 판단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옳으냐, 그르냐 그것도 필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알고는 있어야 되지만 옳으냐, 그르냐, 내 호불르냐, 아니냐, 내 스타일이냐, 아니냐, 내가 좋으냐, 아니냐, 내 이미지를 좋게 하느냐, 아니냐, 내가 높아지느냐, 낮아지느냐, 내게 유익이 있느냐, 없느냐, 여기에 기준을 두지 말고 모든 판단 기준을 생명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생명이 확장되느냐, 안 확장되느냐, 여기에서 결정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 앞에는 선택이 펼쳐 우리 앞에 길이 있어요. 신명기 30장 19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신명기 30:19,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할렐루야! 우리 앞에는 뭐가 있습니까? 생명과 사망, 또 하나는 복과 저주! 그 두 길이 있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뭘 선택할까요? 우리는 생명을 선택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살기 위하여 생명나무를 선택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앞으로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은 생명과 관계된 것에 집중하느라고 생명과 관계없는 일에는 인생을 낭비하잖아요.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생명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좀 무덤덤해지는 거예요. 좀 무덤덤해지세요. 예민하지 마세요. 누가 나에게 어떻게 할지는 좀 무반응하고,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얘기하잖아요. 성형도 저기 뭡니까? 쌍꺼풀까지는 봐주지만 나머지는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남들에게 상처받았다는 것 자체가 생명나무를 앞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에요. 용서가 안 되어도 주님 때문에 용서하고, 기가 막힌 일이 있어도 주님 앞에 억울함을 올려드리고,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문제보다 더 큰 혜를 주님이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그리고 남은 인생 이 생명나무 선택하시고 생명나무 열매를 배불리 먹고, 치유 받고 영적 건강을 유지하시고 이 생명의 확장을 선택하시고 결론 내리겠습니다.

*잠언 3:18,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할렐루야 솔로몬이요. 잠언 적었을 때는요. IQ가 천도 넘었어요. 영적인 지혜가 너무너무 똑똑했어요.
그의 최고의 절정에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진짜 지혜가 뭐냐 생명나무가 지혜를 가진 자의 생명나무, 생명나무 지혜를 가진 자 무슨 말이냐 해석을 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도 생명나무를 선택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어떨 결에 가족들하고 오신 분들 가운데 여러분 생명나무 선택해 가지고 전에 한 번 제가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한 번 드린 적 있는데 그분이 충격을 받고 아내 따라 왔다가 교회 우리 교회 오셔갖고, 예수님 믿고 제자 훈련하고 사역 훈련하고 지금 순장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대라 몇 명의 이름을 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나무 선택이 이 시대 여러분들의 삶에 영적인 마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패는요 마패의 능력이 있어요. 겉모습이 초라해도 끄떡 안 해요. 나 무시해도 월매가 이몽룡이를 막 우습게 알고 막 그래도 이몽룡이는 끄덕도 안 했어요. 왜냐하면 허리에 뭐가 있으니까 마패가 있으니까 여러분 생명나무가 여러분 생애에 거룩한 마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이 되신 여호와여!!♪ ~~

♣요약
남 탓과 책임전가와 내로남불의 죄 된 성향을 끊어내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위대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인생이 되는 것을 확신하여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주셨으니 복수는 주님께 맡기고 강력한 영적 마태의 능력을 주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 주님의 은혜와 용서로 생명을 확장하며 만국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평안이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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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2월 04일)
재목: "은혜의 가랑비, 부흥의 소낙비"
말씀: 호세아 6:1-3
대표기도: 박단열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설교자: 권성수 목사님(대구동신교회 원로-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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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세아 6:1-3,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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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제 대구 동신교회 원로이시며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특훈 교수이신 권성수 목사님께서 은혜의 가랑비, 부흥의 소낙비라는 제목으로 주일 말씀을 전해주시겠습니다.

▶사랑의 교회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들, 또 온라인으로 예배드리신 여러분 모두가 평소에 은혜의 가랑비에 영혼이 젖으시면서 하나님의 때에 부흥의 소낙비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 제가 강의 혹은 설교 전후에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뭘 해도 안 됩니다. 되는 게 없습니다.’ 웬만한 교회는 제자 훈련 다 하고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면 다 따라서 하는데 ‘생명의 변화가 없습니다. 개척교회도 안 되고 또 기존교회도 안 됩니다. 부목사로 기존 교회 들어가려면 100대 1입니다.’ 상대적으로 예전에 비해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안 된다는 좌절감과 패배 의식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호세아 시대, BC 722년, 722년이 중요한 것은 BC 722년에 북쪽 이스라엘이 아수르의 침공을 받아서 망했기 때문이죠. 북쪽 이스라엘이 망하기 직전 한 30년 동안 예언을 했던 사역자가 호세합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편이었지만 ‘낮에도 넘어지고 밤에도 넘어진다.’ 하나는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떻게 회복하고 어떻게 다시 한 번 재기해야 하겠습니까?

요즘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라고 하는 캐치 프레이즈를 걸고 교회마다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회복하고 부응해야 한다는 갈망으로 매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응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회복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중에 2절에 보시면,

*호세아 6:2,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말씀이 있습니다. 이틀 후에 셋째 날 이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죠. 오랜 세월 아니고 얼마 후에 바로 얼마 후에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며, 살리시며, 살린다. 라고 할 때 NIV 성경을 보면 리 바이블(Rebible)로 나와 있어요. 부흥이 영어로 뭡니까? 리바이벌입니다. 부흥을 주시며 우리에게 부흥을 주시며, 그리고 그 밑에 보면 셋째 날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 살리라 일으키신다. 이것은 리스토어(Restore)-회복시키시다. 리스토어 그러니까 부흥도 주시고 회복도 주신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 것이다 하는 그런 말씀이죠. 이 부흥이라고 하는 거는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는 겁니다. 회복을 주셔야 되고 부흥을 주셔야 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 답게 사명을 감당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축복을 받으며 사는 것이죠. 이게 부흥인데 다시 살리신다는 말씀에 전제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죽었다는 것이에요.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뭘 죽었다고 하느냐?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암시된 죽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이죠. 물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었지만 예수를 믿은 사람도 믿고 있지만 영적으로 죽은 상태 혹은 겁 안 죽은 상태 죽어가는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성경을 보시면, 요한일서 2장 15절에서 17절까지,

*요한일서 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세상에 있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이렇게 말씀을 하죠. 이 세상이라고 할 때, 육신의 정욕, 탐욕, 또 눈에 보이는 대로 갖고 싶어 하는 안목의 정욕, 그렇게 되면 은근히 자랑하고 대놓고 자랑하는 이생의 자랑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습이죠. 근데 신자들도 세상에서 살다 보면 세속화하려고 세속화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세석화가 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귀로 들리지 아니하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세상이오, 귀로 들리는 것은 세상이오, 손으로 만져지는 것은 세상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이 세상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죠.

예배드릴 때는 하나님을 의식하지만 삶의 현장에 딱 떨어지면 하나님을 잃고, 잊고 살 가능성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의 욕망에 빠진 삶을 자기도 모르게 살게 된다. 세상 사람들 좋아하는 것 같이 좋아하고, 세상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하는 것, 잘 된다고 하는 것, 그걸 갈망하고 똑같이 부정한 방법을 쓰더라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육신의 욕망이 있죠. 세상에 욕망이 있죠. 이 욕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면서 그리도 아무리 죄를 지어도 적당하게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거니까 눈 감고 죄와 함께 쾌락을 누려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죠. 세상의 욕망에 따라 세상의 쾌락에 빠지는 것이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5절에서 6절에 보면,

*디모데전서 5:5-6,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간구하고 기도하는 이 상태가 살아있는 상태예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세상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죠. 세상에 아무리 잘나고 성공하고 승진하고 잘해도 물론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겠지만 그건 다 지나가는 것이거든 다 지나가는 것인데 보이는 것은 잠깐이거든요. 잠깐 지나가는 것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영원하신 하나님, 천국에 소망을 두고 기도하면서 간구하면서 사는 것 이게 영적으로 살아있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에 살다 보면 기도와 간구가 점점 약해지면서 세상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죠. 그러면서 세상에 오염(汚染)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3장에 보면 사대교회의 모습이 나오는데 주님께서 사데교회를 놓고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었다고 했습니다. 또 죽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었다 죽어간다. 라고 하실 때 그 문맥에서 보면 옷을 더럽혔다는 표현이 있어요.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 사람이 있어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몇 사람을 빼고는 세상에서 옷을 더럽히고 산다. 그게 오염이에요. 세상의 욕망과 세상의 쾌락과 죄와 함께하는 세상의 오염, 여기에 빠져 있는 것이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 이게 세속화의 상태인데 여기에서 일어나야 되거든요. 여기서 일어나야 되는데 예수께로 가면 사는 거예요. 예수께로 가면 그래서 세속화에서 벗어나서 예수화, 예수화, 쪽으로 나가라 되는 게 없다. 뭘 해도 안 된다. 낮에도 넘어지고 밤에도 넘어진다 할 때, 외부적인 환경과 또 외부적인 어떤 현상에서 요인을 찾지 말고 심층 요인으로 내가 하나님을 떠났는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는가 여기를 봐야 되거든요. 예수께로 돌아가면 예수의 생명이 약동하고 예수의 생명이 흘러가는 겁니다.

여러분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그 가지로 포도나무 수액이 넘어오죠. 포도나무 수액이 넘어오면 포도나무 가지가 그 수액(水液)으로 힘을 받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 수액이 강해지면 바깥으로 뿜어내는 겁니다. 분출하는데 이게 열매입니다. 열매 우리가 가지로써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으면 예수님의 생명의 수액이 넘어오니까 이 생명의 수액이 우리 속에서 약동하는 거예요. 이 약동하는 수액이 바깥으로 사랑으로 뿜어져 분출(噴出)하는 것이죠. 이게 살아있는 상태입니다. 이게 개인적으로 일어났을 때 개인의 부흥이고, 교회적으로 일어났을 때 교회의 부흥이고 국가적으로 일어나면 국가의 부흥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나타날 때 교회 역사로 보면, 한 국가 전체가 혹은 한 지역 전체가 이 부흥에 휩쓸리는 굉장한 부흥의 바람이 부는 때가 있어요. 그야말로 부흥에 부흥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때가 있죠. 1907년도 한국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말씀에 부흥이 일어나고 기도에 부흥이 일어나고, 전도에 부흥이 일어나면서 회개가 막 터져 나오는 전국적으로 번져나가는 그 현상이 나타났죠.

오늘 본문에 보실 때 싸매심을 체험하고, 나타내심을 체험하고, 임하심을 체험하는데 그 임(臨)하심이 사데 교회 같은 임하심이고 이른 비와 늦은 비 같은 이 말씀인데, 이것을 말로만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해서 실감하면서 이 감격이, 능력이, 이 축복이 바깥으로 흘러가는 거 이것이 부흥 현상이에요. 교회 역사에서 부흥을 도표를 그려보면 여러분이 이해가 훨씬 쉬워질 겁니다. 도표를 여러분 보시면 아시겠지만 부흥이 일어날 때 세 부분을 보세요. 하나님 교회 세상, ‘세상이 왜 이래? 교회가 왜 이래> 이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저 셋을 한꺼번에 보십시오. 사진

부흥이 일어날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비상한 임재가 있어서 보통 때와 달라요. 비상하게 비상하게 임하시고, 비상하게 나타나시고, 비상하게 충만하신 거예요.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 가운데 성령으로 임해 계시지만 비상하게 임하실 때는 여러분 모두가 감지할 정도로 느끼는 거예요. 그리고 불신자가 딱 들어오면 이 분위기 속에서 영적으로 살아있는 분위기 속에서 야 여기 뭔가 있다 하고 느끼는 거예요. 그게 비상한 임하심입니다. 성경에 보면 쏟아 부으심,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과 교회, 한국교회 전체가 아무리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비상하게 임하시면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비상하게 임하실 때 교회와 교인이 바뀌는 거예요. 어떻게 바뀌느냐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냥 듣고 마는 것이 아니거든요.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 다 듣는데 나가실 때 어떤 기자가 조금 전에 무슨 말씀 들었어요. 하면 머리 긁는 게 아니거든요. 이 말입니다. 저는 그런 설교를 나비 설교라 그러고, 그런 메시지를 나비 메시지라고 그러는데 설교 들을 때 잠깐 앉았다가 나가면 날아가 버리는 거에요. 여러분 그렇게 되는 거는요. 아직도 영적으로 민감하지 않다는 거거든요. 성경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면 불같은 성경의 확신이 일어나요. 말씀을 들을 때 한마디 한마디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귓전에서 나 흘러나가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가슴으로 파고 들어오는 거예요. 이 성경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이 성경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말씀이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도를 하든, 교육을 하든, 밖에 나가서 무슨 봉사를 하든 간에, 거기 능력이 임하는 거야 능력, 능력 봉사가 돼요. 그리고 여러분이 끊지 못하던 죄를 전격적으로 어느 순간에 끊어버리는 거 이 교회의 변화에요. 하나님께서 비상하게 나타나셔서 여기 3절에 나오는

*호세아 6:3,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임하심이라 그러는데 임하셔서, 임하셔서 역사하실 때 교회가 교회들이 막 바뀌는 거죠. 평소에 덤덤하던 사람이 성령에 불이 붙어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바뀌면서 이 세상의 변화가 흘러가는 겁니다. 그렇게 흘러갈 때 비상한 집단 회심, 한 마을 전체가 막 돌아오고 한 가족 전체가 막 돌아오고 전국이 영적으로 뒤흔들리는 전국의 영적인 지축이 흔들리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리고 비상한 사회 정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해결되는 사회적인 문제,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는 사회 정화가 나타나죠. 요즘 제가 묵상하는 말씀 가운데 비열한 것이 인간 중에 높임을 받을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 뛰는 도다 하는 건데요.

지금 한국을 보십시오. 비열한 것이 가짜 뉴스가 꼼수가 추앙을 받고 있고 그러다 보니까 악인들이 도처에서 날뛰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이것을 봤을 때 우리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는 거예요. 주여, 이 현상이 이런 부정부패, 부정직, 꼼수 이런 것들이 사라지게 하시고 대한민국의 공과 의가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근데 하나님이 강하게 임하시고 교회가 변하면 사회가 그렇게 변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성령이 역사하실 때, 악령도 역사하기 때문에 박해도 있고, 또 성령의 역사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이 칭송도 하는 거고 이게 비상한 겁니다. 부흥이라는 거는 평소가 아니고 비상한 때 나타난 거예요. 하나님의 타이밍에 하나님께서 비상하게 임재 하셔서 교회를 바꾸시고 세상을 바꾸시는 건데 이런 부흥이 나타날 때 말씀에 대한 열정, 기도에 대한 열정, 전도에 대한 열정 이게 다 살아나죠. 그리고 신유도 나타나고 어떤 게 막 넘어지기도 하고 예언도 막 나타나고 그런데 이런 기적적인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 기적적인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면 삐뚤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되 한탕주의로 한 번 딱 임하시면 모든 게 해결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큰일 나요. 이렇게 되면 인격이 변하기 전에 한탕주의로 흘러버리면 그 한탕주의 한 탕인 그것이 흘러가면 그다음에 또 똑같은 사람이 돼버리거든 전혀 변화가 없어

내면적인 변화가 근본적으로 일어나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부흥의 소나기를 갈망하고, 갈구하면서도 은혜의 가랑비에 젖도록 해야 되는 거예요. 부흥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어요.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누가복음 11:13,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말씀하신 대로 지금도 얼마든지 이 비상한 역사가 나타난다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마음이 열려야 돼요. 그 이상한 현상 나타나면 저거 잘못됐다. 이게 아니고 거기에 악령의 역사도 있으니까 분별해야 되고, 성령의 역사도 있으니까 받아들이고 이렇게 하면서 마음을 열어놓되 초점은 은혜에 가랑비에 두어야 된다. 은혜의 가랑비에 젖어야 된다. 초점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나의 인격, 평소의 생활, 여기에 둬야 된다는 것이죠. 여기 평소에 은혜 가랑비를 맞으면 젖는 거예요. 젖으면서 어느 순간에 부흥의 소낙비가 막 쏟아질 때에 그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죠. 은혜의 가랑비를 체험할 때 어떻게 하면 되는가 여러분이 1절을 보십시오.

*호세아 6:1,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로 나오지 않습니까? 돌아가자는 것은 떠났다는 것이거든. 저 언제 떠났는가, 언제 내가 여호와를 떠났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랬으니까 언제 떠났는가? 근데 또 어떤 과정을 통해서 떠나는가? 여러분, 호세아서를 전체적으로 보시면 아실 수 있고, 또 우리 오늘의 시대를 보시면 아실 수 있지만, 또 교회 역사 전체를 통해서 보시면 아실 수 있지만 호소야 13장 6절이 우리의 문제를 장악하기 시작하는 겁니다.야 13장 6절에 보면,

*호세아 13:6,
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여름에는 잘 된다는 거거든요. 먹여준 대로 배가 불렀고 대한민국이 잘 되는 것, 한류가 많이 일어나서, 전 세계에 어쨌든 한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거 이거 그냥 되는 거 아니거든요. 하나님께서 역사 핸들을 잡으시고 움직이시는 거예요. 잘 되게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배가 부른 상태예요. 배가 부른 상태, 이때에 문제가 이제 다음에 등장하기 시작하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여기가 문제란 말이에요. 배가 부르면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것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잘된 것을 보면서 왜 이렇게 내가 잘 될까? 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지혜와 자신의 역량에 초점을 맞춰요.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지혜로 해가 잘 된 것으로 착각하는 거예요. 이게 교만이에요. 교만 교만에 빠지려고 애쓰는 게 아니고 저절로 교만해져요. 잘 되면 저절로 교만해져요. 몸부림 쳐서 애를 쓰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처럼 육체 가시를 주셔서 교만을 제재하지 아니하시면 교만해지는 거예요. 그러면 교만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을 떠나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나는 모습은 어려울 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잘될 때도 있어요. 번영할 때 번창할 때 교만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잘해서 잘 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의 은혜 의식이 강해야 돼.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는 평생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를 받는 삶, 이럴 때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거거든 번영할 때 떠날 가능성이 있으니까 주의하셔야 되고, 그다음에 고통을 당할 때 떠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통당할 때, 왜 떠나냐? 고통당할 때 갈등이 오죠. 왜 변화가 없는가 왜 해결이 안 되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한마디만 하시면 되시는데, 내 이 고질적인 질병도 하나님이 한마디만 오케이하시면 되시는데, 하나님이 오케이 안 하시려고 입을 꼬매셨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단 말이죠. 이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그러면서 왜 나의 문제를 지금 해결해 주지 않고 나는 이 문제를 지금 가지고 앓고 있어야 되느냐? 왜 내가 고통을 당해야 되냐, 왜 지금 당해야 되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저 이게 갈등이에요.

아까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 서론에서 아무것도 안 된다. 그럴 때 청년들이 교회에 와보는데 기대를 가지고 와보는데 능력도 체험 못하고 변화도 체험 못하고 기도 응답도 체험 못하고 뭐 와 봐도 별거 없더라 하면 떠난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들어가면서 4명 중에 3명이 떠난다는 거거든요.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심각한 문제, 뭔가 기대하고 있는데 기대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떠나버리는 현상, 특별히 고통 중에 갈등하면서 떠나버리면서 고통 중에 제일 큰 문제가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고통의 현존 앞에서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들도 유신론자들이지만 실천적 무신론자들이 되어서 고통의 눈앞에서 갈등하다가 하나님을 떠날 수 있어요.

여러분 한번 답변해 보세요. 하나님 어디 계신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신가 위에서 구경만 하시고 방관하시면서 너희들 왜 잘못했어, 이러시는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으로 이 땅 위에 내려오셨어요. 고통의 현장에 내려오셔서 죄인들은 인간들과 동일시되시고, 같이 고통당하시고 아픔을 당하시고 죄는 안 지으셨지만 모든 시련도 다 당하시면서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하시고 붙잡아주시고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고통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고통의 근본 문제인 죄의 문제를 자신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해결하셨다. 고통을 당해도 고통 중에 하나님께서 인격을 변화시키시고, 툴을 만드시고,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는 방식으로 주시는 방식으로 이렇게 작업을 해나가시는 귀한 역사는 예수님 때문에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과정 중에 이런 은혜를 주시고 마침내 모든 고통이 지나가게 하시고 때로는 이 땅 위에서도 기도하는 대로 또 우리가 노력한 대로 고통이 지나가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면 눈물이 없고, 한숨이 없고, 고통이 없는 그 완성된 낙원 천국에서 영원히 지복을 누리게 될 텐데, 이런 근본적인 궁극적인 고통 해결을 주님이 하셨단 말이죠.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십자가에 계셨어요. 지금도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고통당하는 여러분 모두와 어느 순간도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시고 늘 함께 계시는 줄 믿습니다. 붙잡아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끝까지 가게 만드시면서 큰 틀로 만드시고 마침내 복을 주시는 이 작업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고통 중에 갈등하면서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등지고, 하나님을 등지고 넘어지지 마시고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엎드려져도 하나님을 향해서 우십시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서 우시라고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면 번영 중에도 떠나고 고통 중에도 떠날 수 있는데 떠나면 때리신다고 할 것이다. 이 때리시는 것이 1절에도 보시면 ‘찢으셨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찢으시는 아픔이 크죠. 찢으신다. 호세야 보면 5장 14절에 보면,

*호세아 5:14,
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사자처럼 젊은 사자처럼, 사자 같고 젊은 사자 같고 움켜 갈지라. 같은 움킨다는 말이 영어로 보세요. 테어 투 피시즈, 조각, 조각 사자가 막 뜯어버리는 것처럼 이게 너무 표현이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나님께서 때리신다는 거예요. 찢으신다는 거예요. 아프게 하신다는 거예요. 왜 우리의 아픔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깨닫도록, 우리가 돌아서도록, 우리가 지옥행에서 천국행으로 돌아서도록, 세속화에서 예수로 돌아서도록 우리의 영혼을 바꾸시고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간할 수 있도록 만드시기 위해서 이렇게 돌이키시기 위해서 작업을 하시는 거예요. 이 작업을 하실 때 우리는 돌아서야 합니다. 잘못됐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바로 돌아서야 합니다. 우물쭈물할 필요 없어요. 단호하게 돌아서야 돼요. 내가 잘못됐다 생각될 때 우물우물 하지 말고 교회를 나무라 하지 말고 세상을 나무라지 말고 내 자신이 성령을 통해서 말씀에 찔림을 받으면 바로 돌아서면 돼요. 바로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싸매시고 치료하시고 낫게 하시고 나타나 보이실 줄 믿습니다. 돌아서기가 쉽지 않거든 어려움을 당할 때에 마치 하나님께서 날 어렵게 해놓고 즐기시는 것처럼 가학성이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거든요.

하나님께 돌아서면 세상에 좋은 것을 못 누릴 것처럼 착각할 수 있거든요. 하나님께 돌아서서 하나님 섬기면서 세상에 좋은 것을 말씀의 한도 내에서 누릴 수 있는데 그걸 생각 못하고 그리고 세상 쪽을 등지고 이쪽으로 등진다는 말은 고행주의로 가라. 탈속에서 서돈으로 들어가라. 그거 아니에요? 세상 속에 있으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건데요.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 어려움이 생길 줄로 생각하니까 잘 돌아서질 못해요. 우물우물해요. 제가 예전에 20대 청년이 있을 때 기도할 때 하나님 기도원에 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 저를 누르는 이 손 좀 치워주세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데 저를 막 누르시고 계시는 거 막 누르시고 계시는데 이거 몸도 아프고 재정적으로 힘들고 또 인간관계에서도 힘들고 그런데 막 누르시고 계시는데 하나님 이것 좀 치워주세요. 치워주세요. 제발 좀 치워주세요. 저는요. 하나님이 누르시는 것이 저를 위대한 인물로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위대한 인물 필요 없고요. 누르시는 것만 치워주세요. 누르세요. 고통만 치워주세요. 고통만 당장 고통만 치워주세요. 불 속에 들어가서 연탄 돼서 불순물이 제거되면 난 불순물 있어도 괜찮으니까 적당하게 살게 해주세요. 적당하게 살 못하는 거야. 못하는 거 누르지 마세요. 누르지 마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르셔서 마침내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시거든요. 이 과정이 아픈 과정이에요. 이 아픈 과정에서 제가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을 이루시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어차피 저를 다루시려면 마음대로 주무르시고 다루셔서 온전히 나를 주관하셔서 내가 제가 주님과 함께 같이 살고 있는 걸 만민이 알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항복을 했어요. 돌아서는 겁니다. 돌아서면 즐거움을 다 뺏기고 돌아서면 괴로움뿐일 줄 알지만 돌아서면 주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 있습니다.

마음에 싸매심이 있고, 치료가 있고, 나타나심이 있고 이 말씀이 있어요. 이것이 평소에 이슬비를 맞으면서 젖어가는 방식이죠. 그 밑에 3절에 보시면,

*호세아 6:3,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여기 보시면 새벽빛이 있죠. 새벽빛 해가 뜰 때에 어김없이 뜨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뜨게 하실 때 어김없이 뜨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여호와를 알게 되면 반드시 임하신단 말이야 뜻인데 뜻 그리고 비와 같이, 라고 할 때 이 비는 겨울비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파종할 때 뿌리는 겨울비입니다. 그리고 늦은 비는 봄에 추수할 때 내리는 늦은 비에요. 이스라엘은 물이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과 같은 물, 물과 물을 생명같이 그렇게 주시는데 생명과 생명의 능력 이걸 주신다는 거예요. 이걸 주시는데 때를 따라서 때를 따라서 주신다. 이것이 임할 때에 그 부흥이 나타나는데 이 부흥이 나타날 때 싸매심이 있고, 나타나심이 있고, 임하심이 있고 이런 것이 있는데 이것을 체험할 때에 여러분 이사야 58장 11절을 감격스럽게 고백할 수 있는 거예요.

*이사야 58:11,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내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내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된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힘써 아시게 되면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여러분의 영혼이 메마른 곳에서도 만족하게 하시고, 여러분의 삶이 메마른 곳에서도 육체도 건강하면서 삶이 형통하게 하셔서 물댄 동산같이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같이 하신다는 거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여호와를 힘써 알자는 거거든요. 여호와를 힘써 알자 그러는데 여러분 세속화는 저절로 되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을 아는 거는 힘써야 돼. 힘써야 애써야 돼요. 여러분이 성령의 감동을 받으시고 순종하시면서 애써야 돼요. 애써서 훈련받으시고 애써서 예배당에 참여하시고 애써서 실천하시고 애쓰지 않으면 이룰 수 없습니다. 애써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아는데 여러분 또 말씀하시기를 이고 나 다 아는데, 나 성경 수십 통 했어. 성경 달달 외워 암송하는 구절이 얼마인지 몰라, 다 아는데 뭘 알라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근데 여호와를 알라고 할 때의 아는 것은 참 지식을 말하는 거거든. 참 지식은 마음이 변하면서 생활 속에서 체험하는 거에요..

여러분, 이 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여호와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세상에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세상에 집착 나는 없어 애착도 없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여러분 있습니다. 저도 며칠 전에 요르단하고 한국이 축구 하는데 제 속에 집착이 세더라고요. 요르단은 피파랭킹 70위요. 한국은 23위요. 요르단에는 대단한 선수가 없어요. 한국에는 손흥민, 이강인, 민재 흥분할 정도로 대단한 선수들이 있어요. 그런데 막 밀리는 거예요. 밀리니까 제가 막 감당을 못해요. 그걸 보면서 막 감당을 못해서 속에서 막 올라와요. 올라와요. 아이고 이거 올라오면 안 되는데 이거 주요 내가 죄 지으면 안 되는데 저 감독에 대한 불평이 막 올라오고 막 조금 가면 욕이 나올 것 같아.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주한테 막 올라오는 거예요. 그 순간에 아이코 이거 봐라. 내가 지금 집착하고 있구나. 집착하고 있구나. 요르단 전에서 승리에 집착하고 있고 질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왜 이렇게 집착하고 있지?

여러분, 집착하는 거예요. 집착 여러분이 원하는 것에 집착하는 게 뭐냐 고 집착하는 것이 하나님께로 가는 걸 방해하는 거예요. 하나님께 집착을 내려놓으셔야 돼요. 기도하시지만 기도하시는 것이 제목이 그대로 당장 나타나지 않아도 맡겨 놓으시면 돼요. 하나님께 맡겨놓으시면 하나님이 작업을 하시면서 여러분을 빚어가시면서 틀을 크게 하시면서 때를 따라서 때가 되면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시고 때가 되면 쏟아 부으신 줄 믿습니다. 맡겨놓으셔야 돼. 맡겨놓으시면 집착이 사라져요. 집착을 사라지면 감사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집착을 내려놓으시라. 그리고 하나님을 알 때에 애써서 하나님을 알 때, 머리 지식으로 만족하시면 안 돼요. 머리와 그러니까 지식과 테크닉으로 제자 훈련 받으시면 교만해져요. 지식과 테크닉으로 제자 훈련받은 사람들이 다른 교회 가서 목사님들을 어렵게 해요. 목사님 목회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목회를 왜 그렇게 하세요? 목사님 머리 위에 타고 앉아요. 안 됩니다. 교만하면 안 됩니다. 제자 훈련 받으면 교만하면 안 됩니다. 냉담하고 정지하면 안 됩니다. 제자 훈련받을 때 예수님을 닮아야 되거든요.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에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돼요. 마음이 변해야 돼.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닮아 가시는 의미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닮아 가실 때 머리로만 알지 마시고 가슴으로 묵상하시라.

제가 아까 요즘 묵상하고 있는 구절을 말했죠. 비유라는 것이 인간들 가운데 높임을 받을 때 악인들이 도처에서 날 뛰는 도다. 이거를 자꾸 암송하니까 막 속에서 안타까움이 생기면서 기도가 터져 나오는 거거든. 여러분이 말씀을 묵상하시면 묵상하는 동안에 그 말씀이 여러분 속에 성령의 불이 되는 거예요. 성령의 불이 되면서 막 뜨거워지는 겁니다. 뜨거워 가슴에 불이 붙기 시작해요. 불이 붙기 이것이 바깥으로 터져나가면서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이 생활의 체험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주의 말씀 붙잡고 한마디라도 붙잡고 삶의 현장에 가서 순종하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속에 보이지 아니하시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나타나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그때 체험하는 거예요. 그때 실감하는 거예요. 그때 부흥의 역사를 겪게 되는 겁니다. 아이고 목사님 다 어두웠는데 저 같은 사람이 뭘 어떻게 합니까? 어두운 세상이 변하겠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촛불을 여러분의 자리에서 들고 계시면 돼요. 촛불 들고 제자리 지키면 돼요. 그 사명 감당하시면 돼요. 그러는 동안에 세상을 밝히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 부흥의 소낙비를 갈망하시면서 은혜의 가랑비에 젖도록 하십시오.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세속화를 회개하시고 힘써 여화를 알면서 예수화로 개혁, 개혁, 개혁, 나 자신을 개혁하면서 세상을 개혁하는 쪽으로 가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나타나심, 싸매심, 나타나심을 체험하면서 부흥을 참하게 되고, 예수 생명이 약동하면서 흘러가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 될 텐데,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오늘 말씀이 우리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성령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부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싸매심과 나타나심과 임하심을 체험하도록 역사가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회복과 부흥의 실체로 가득한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혜로 충만하게 채우시는 주님께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예배하고 감사와 찬양을 온전히 드려야 한다. 영 가족 모두가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시며 살리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으로 무장되게 되어 힘써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일에 전력투구하는 평생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바로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닥치는 불행과 행복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다. 때문에, 재난에 빠졌을 때는 그 재난에서 자신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처분, 곧 불쌍히 여기시고 건져 주실 것을 바라고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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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1월 28일)
제목: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첫 번째 강해(예수님은 누구신가?)
말씀: 마태복음 16:13-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건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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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16:13-18,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ㅡㅡㅡㅡㅡ

※강철 신발을 신고, 기쁨의 면류관을 쓰고, 빛의 갑옷을 입고...

▶오늘부터 “예수님은 누구신가?”(Who is Jesus?)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우리 젊은이들 용으로 예수님으로 여러분들의 삶에 밑줄을 쭉 치는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면 좀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하시면 되고 제가 이번 시리즈에 대해서 광고가 되어서 그런지 여러분들이 저에게 목사님 이번 시리즈를 설레이며, 기대합니다라는 e메일을 보내왔어요. 설레며 기대합니다. 제가 그 e 메일을 받고 기뻤겠어요? 어떻겠어요? 물론 기쁨도 있었겠지만 거룩한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말씀의 능력 말씀 자체가 능력이 있으니까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기대와 기대를 채우시고 또 저희에게 더 큰 부담을 극복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말씀의 능력을 더 말수 능력을 얘기하니까 제가 올해 시작하면서 무슨 신발을 신고요? 강철 신발은 신고, 기쁨의 면류관, 쓰고, 빛의 갑옷을 입고, 무슨 옷을 입고요 빛의 갑옷을 입고 무슨 모자를 쓰고요. 기쁨의 면류관을 쓰고요... 그리고 특별히 이 한 해 동안 2024년이니까, 우리가 감사를 몇 번 하자 그랬죠? 2034번, 2024번을 감사하려면 하루에 몇 번 감사해야 한다고요? 하루에 6번, 6번 감사는 간단하다고 그랬죠? 식사하기 전에도 감사하고, 식사 마치고도 감사하고,,,

제가 얼마 전에 이렇게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면서 집사람한테 고기가 왜 이래 질겨요? 그러니까 우리집사람이 가만히 있더니, “여보 감사합시다!” 그러더라고요. 그래 감사를 제가 하니까 그다음 고기가 부드러운 고기가 되었어요. 부드러운 고기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고기가 질기다가 뭐라고 했다가 금방 감사하니까 그다음에 고기가 안 질겼습니다. 그걸 보고 내가 야 이게 순종의 파워가 이렇게 심하냐 순종의 파워가 있구나! 그러니까 앞으로 저나 여러분이나 이 말씀의 수준에 의하여 우리의 삶의 수준이 결정되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시리즈를 왜 시작하게 되었는가? 두 가지 때문에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첫 번째는 다 안다고 하지만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에 대한 삶의, 예수님에 대한 성경적인 어떤 지식과 깨달음이 너무 피상적이에요. 교회를 30년, 40년 믿은 분이 어떤 분에게 이런 얘기를 해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겁니까? 예수님을 믿는 겁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한국교회에 뭔가 문제가 있구나! 지금 답 안 할 거예요. 좀 이따 할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상식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마치 눈 먼 자 이 장님이 앞을 못 보는 사람의 코끼리 만지듯이 피상적이기 때문에,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이 작동하지 않는 겁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믿지 않는 사람하고 똑같은 결정을 하고 사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능력 없는 삶을 사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군중들 가운데 12회 혈루(血淚) 증(症)을 앓던 여인 진짜 기적이 필요한 그 여인이 긴급할 때 예수님의 옷자락을 딱 잡아서 그래 했을 때, 그 여인이 치유를 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까? 치유 받았죠. 그런데 대부분의 군중들은 따르기는 했지만 그런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이것은 무엇 같다면 여러 스마트폰에 있잖아요. 우리 휴대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스마트폰에 많은 기능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제 모든 걸 처리하고 내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요 이제 모든 걸 다 치워버려 스마트폰 하나만 갖고 설교하러 올라갈 때도, 요즘 젊은 것 같고 다 모두 그런 처리해요. 근데 어떤 우리 어른들은 전화로만 쓰잖아요. 이것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시면,,, 그러니까 휴대폰 기능을 제대로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도 크잖아요. 상당한데, 이건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이거는 어마어마한 것이 신앙의 작동 기능이 다를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또 제가 비유를 생각해서 여러분들이 갖고 이 예수님을 향한 여러분들이 갖고 스마트폰의 기능이 어느 정도인지, 오늘 이번 시리즈 하시면서 여러분들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들의 삶에 결정적일 때 믿음이 역사하기를 바라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피상적인 신앙생활 탈피,

두 번째로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고난의 전쟁이다 팔레스타인이나, 또 우리 한국에는 이 극단적인 진영, 진영 갈등, 러시아 같은 데는 지금 푸틴이 황제 같고, 중국 공산 전체주의가 반응하고 있고, 근데 우리는 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되잖아요. 근데 우리가 말씀을 들었습니다마는 자유민주주의의 제일 큰 피해가 뭡니까? 방임과 방종이에요. 그러니까 기독교 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품위 있게 지켜야 하는데 이걸 제대로 못하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모르니까, 이 방임(放任)과 방종(放縱)이 와가지고 동성애가 생기고 트랜스젠더가 타락하고, 마약으로, 마약으로 젊은 때 찌들어 버리고, 최근 미국의 마약 때문에 아이들이 이 거북이 등처럼 돼가지고 그 영상을 보면서 제가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런 걸 보면서 이 공산주의자들하고 이슬람 전체주의자들이 얼마나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라는 걸 막 조롱을 하는지 몰라요.

이런 우리가 조롱을 당해야 되겠느냐고요. 이런 조롱을 당하지 않고, 우리가 방임, 방종하지 않도록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명확하게 알아가지고 이 나라 이 국가를 지켜나가야 되는 것이에요. 이 나라를 지켜야 되는 것이에요. 이 나라를 먼저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되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게 되면 주님과 동행하는 줄로 믿습니다.

어떤 꼬마가 천둥번개 벼락 소리를 듣고 놀라가지고 아빠를 찾았어요. 아빠 어디 계세요? 빨리 오세요. 아빠 무서워요. 그때 아빠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얘야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이 널 사랑하셔. 예수님이 계시니까 너 염려하지 마.” 그러니까 얘가 아빠 나 하나님 사랑하는 것 알아요. 그렇지만 누가 내 곁에 계시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어린아이가 머리로는 알지만 손에 잡히고, 기댈 수 있고, 볼 수 있는 곁에 계신 분이 실제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먼저 제가 생각할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랬을 때 예수님은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세요. 다시요. 예수님은 누구 곁에요? 저와 여러분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세요. 이 한마디가 여러분들에게 참된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중요한 거예요. 너무 신앙이 피상적이고, 예수님이 지금 여러분과 저희 곁에 계신다니까요. 그러니까 오늘 96장 예수님이 누구신가, 우는 자의~~ 할 때 거기에 수많은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거기에 내 하나로 들어보게 와 닿아야 되는 것이에요. 가슴에...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셔도 오늘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생애에 저의 삶에 저의 생애에 결정적인 사건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18살에 부모님을 따라 제가 부산에서 상경을 했어요. 상경을 하는데 부친이 저에게 편지를 하나 주셨어요. 많은 걸 알겠지만 저는 '그 안에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돈은 한 푼도 안 들고, 그 안에 성경 구절이 있었어요. 그중에 하나가,

*고린도전서 3:16,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고 네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여러분 저것이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 그것이 제게 좀 실감이 더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이 저에게 저를 격려도 했지만 또 저를 지키기도 했어요. 수많은 유혹과 이런 것 가운데서도 젊음의 유혹과 그런 가운데서도,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이 나를 눈 뜨고 나를 지켜 나를 보고 해주신다는 것, 그래서 우리 부처는 항상 육신의 아버지보다도 영적인 아버지가 너 곁에 있으니까, 돈도 육신의 아버지에게 구하지 말고, 영적인 아버지 구하라. 그래서 결정적인 제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예수님은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내 곁에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오늘까지 이렇게 주님을 섬기는 중요한 원인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런 제가 서론 격으로 말씀을 드리고 이제 오늘 본문을 또박또박 해석을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라 빌립보로 가셨어요. 그러면서 주님이 13절에,

* 마태복음 16:13-18,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나를 누구라 하느냐? 왜 주님께서는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이런 중요한 질문을 하셨을까요? 가이사라 필리포는 구약 시대는 다 숭배의 중심지였어요. 우상숭배 신약시대에는 이방신들도 헬라 이방신들을 섬기는 웅장한 신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헬라어 성들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아주 그냥 우상숭배가 만연한 영적으로 아주 어둡고도 암흑한 지역이었어요. 그 지역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대답했고, 예수님은 그 베드로의 고백 뒤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엄청난 비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보면 우상을 숭배를 만물이 우상이 되어 있고, 수많은 신념이 우상이 되는 이런 어떤 우상이 우글거리는 이 강남의 한복판에서, 요셉이 기독교의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가 제대로 신앙 고백을 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 된 교회, 교회와 한국교회와 무역 교인 우리 자신도 세워지고 공교회의 또 유형 교회도 세워지는 그런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마태복음 오늘 이 고백 위에 바로 뒤에 있어 28장에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엄청난 사명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니까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냐 물으니까 14절에 보니까,

* 마태복음 16:14,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더러는 엘리야다 어떤 예레미야다. 제가 이것도 다 설명을 해야 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해요.

헤롯 같은 사람은 세례요한 아닌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이제 한두 가지 생각을 했는데 먼저 그러면 주님께서 세례요한이다. 예레미야다, 다니엘, 다 엘리야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니까, 그럼 “너희들은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1부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에게, ‘너는 나를 누구로 하느냐?’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합니까? 여러분들과 저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합니까? 기다리시면, 어제 보니까 특새는, 토비새는 물맷돌이다. 토요일 전일 새벽 예배는 소망이다. 토요일 새벽 예배는 내 은혜의 진원지다. 이런 식으로 고백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합니까? 사랑의 교회는 여러분들 많은 교회가 간증을 할 때, 내가 예수 믿기 전에 내 상태 BC가(Before Christ)있어요. 그다음에 예수 믿게 되는 과정은 온 크라이스트 그다음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결과가 에프터 크라이스트(After Crist), 대개 이제 이 감성이 그런 구조가 돼 있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되돌려 할 때 예수님 믿기 전의 상태 비폴 프라이스 예수 믿게 되는 과정에 온 크라이스트 (On Christ), 그다음에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 에프터 크라이스트(After Crist)가 있는데, 우리 교회는 하나가 추가돼 있어요. 온 크라이스트 가운데 그러니까 BC, OC, AC가 있는데 중간에 CC가 있어요. CC가 뭔 줄 알아요? 컴퓨터 그래픽? 뭐냐면, 컨페셔널 크라이스트(Confessional(고백적) of Christ)-예수님께 대한 나의 고백이에요.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누구보다도 한국교회 성도들은 다 그래 해야 되겠지만, 누구보다도 예수님께 대한 내 고백임을 분명히 여기는 것이에요. 이 고백이 분명하려면 먼저는 너희는 나를 누구냐, 고백이 분명 먼저는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그러니까 그 고백을 하는데 베드로가 기가 막힌 고백을 하는 것이에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그다음 뭐예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너무나 명확한 고백을 하니까 그다음에 뭐라고 했습니다. 17절에,

* 마태복음 16:17,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를 너희에게 알게 하려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너의 뭐 아버지,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셔서 깨닫게 해주셨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여러분들과 제가 CC,- Confessional-of Christ 예수님에 대한 제대로 된 고백을 하려면,

I. 첫 번째, 예수님은 계시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계시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에요. 성령께서 눈을 열어주셔서 깨닫게 해 주셨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러기에 여러분과 저는 기독교는 계시(啓示)의 종교라고 우리가 말을 하는데 종교란 말보다 하여튼 우리는 계시(啓示)예요. 계시 기독교는 계시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 이걸 계시라고 그래요. 오늘 이 자리에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싶고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싶은데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오늘 믿어지지 않는 분들은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계시의 말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 위에 다 덮여지고 어두워졌던 것이 밝게 드러나는 시간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본래 우리 피조물들은, 피조물인 인간의 능력, 우리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능력과 한계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가 없어요.

특별히 범죄(犯罪)하고 타락(墮落)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사라지고 훼손(毁損)이 돼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알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스스로 우리에게 계시를 하셨어요. 그 계시의 절정이 바로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고 계시의 절정인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제가 Who is Jesus! 예수님, 시리즈인데 이게 계속 지내는 동안에 아까 제가 처음에 이제 말씀을 드렸죠. 우리가 하나님 믿느냐, 예수님 믿느냐 예수님을 30년, 40년 전에도 정신이 이거 아주 명확하게 안 분들이 계시는데, 오늘 분명히 말씀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시의 절정인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 것이에요.
-교회를 오래 다니는 분들조차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도 헷갈리는 것도 있고, 주님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고, 하나님을 깊이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깨닫고 예수님의 심정을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너무나 신비로운 은혜를 주시는 것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계시의 절정을 놓쳐버리는 것이에요.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C.S 루이스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깨닫게 되고 그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구원자, 나의 창조자로 고백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한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통한 계시에 대해서, 히브리서 1장 2절에,

*히브리서 1:2,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 기독교는 하나님으로서의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을 통한 계시,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르는 계시,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이루는 계시에 기초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 계시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있기에,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확신하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예수님은 10년, 20년, 30년, 50년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예수님에 대해서 누군지, 잘 모른다고 그러면 나중에 예수님도 주여, 주여, 하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데 내가 너를 모른다. 사탄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압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정보가 사탄처럼 없는 어린아이도, 예수님을 성령으로 그대로 순전하게 믿는 축복을 받는 것이에요. 예수님에 대한 신앙 책을 500페이지 천 페이지 쓰는 세계적인 석학도 예수님에 대해서 모를 수가 있어요.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니까 너무 불쌍한 거예요. 이게 계시의 눈. 따라서 오늘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계시의 불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발견해가지고,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사명과 동행한 것처럼, 우리 모두 예수님에 대한 계시의 불이 가슴에 붙어가지고 예수님을 알고, 나를 알아 주님과 동행하는 평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 곁에 계시는 인격적인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이 주님과 동행하면 동행할수록 믿음, 우리 믿음이 자라기르를, 주님을 알면 알수록 세상적인 두려움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어찌 즐거운 일 아닌가?’ 그래서 오늘 첫 번째는 예수님은 뭘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요? 계시 그러면 계시의 핵심이 뭐냐?

예수님의 계시의 핵심은 참 권력이 뭐냐 계시의 핵심은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세 이게 예수님의 계시의 핵심이죠.

II. 계시의 핵심은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시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시는 거예요.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을 보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지금 몸은 초라한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데, 고백은 뭐냐 하면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몸은 100%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는데, 하나님은 주님 하나님의 몸을 입고 계시는 그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시다. 너무나 놀라운 거. 그리고 이걸 깨닫게 한 분이 계시를 통해 깨닫게 했다고 이게 말씀드릴 때 여러분 예수님이 100% 인간이시고 100% 하나님이신 것 아는 여러분들이 하지만 이게, 이게 여러분들 이게, 이게, 이게, 이게 믿어진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지금은요. 신학적으로 정리가 돼 있으니까 이걸 우리가 이해를 하지만 AD 4세기 5세기 될 때까지, AD 4세기 5세기 특별히 5세기 451년에, 라틴으로 칼 키돈 공회라고 그러는데 영어로 ‘칼 세돈’이라고 그러고 칼 세돈 공회가 공의회에서 결정되기 전까지, 한 400년 동안 피 피기는 전쟁을 하고, 노략(擄掠)을 당하고 이단과의 싸움으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이것 때문에 공예가 수차례 결정이 되고, 얼마나,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라는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이 사실이 결정되기까지, 이 사실이 진리로 확정될 때까지, 이 계시가 우리에게 깨달아질 때까지 어마어마한 수고를 했어요. 어떻게 한 인격 안에 완전한 생성과 완전한 인성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무지무지한 논쟁에, 소위 ‘신인 합체’라는 수많은 영적 전쟁과 피 흘린 너무나 많은 선배들의 고난과 소위 크리스토라지(Christology)라. 기독론의 고난, 계시의 절정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핵심 골간이 뭘까? 참 하나님과 참 사람 되셨다. 이게 오늘날 내가 밥 먹고 살고 저녁을 준비해야 되고 매일매일 직장 나가는 우리하고 무슨 관계입니까? 우선 AD 450년의 칼케돈 공회에서 완벽하게 정리가 된 걸 여러분들에게 먼저 말씀을 드렸고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완전하게 구별된 거, 하나님으로 연합된 걸 확정한 거예요. 제가 그걸 여러분들에게 어렵지만 한번 보시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이 두 본성으로 되어 있으며, 그 두 본성은 변하지 않고, 혼합되지도 않으며, 분리되지도 않고, 나누어지지도 않으며, 그 두 본성은 서로 병행하여 존재하며, 한 인격 속에 하나를 이루고 있다.”-(칼케돈 공의회(451년)-
-이거 나올 때까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줄로 믿습니다. 참 하나님이라는 참 하나님은 참 사람이라는 말이 이 이 헬라어로 허모우시우스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 허무시우스라는 말은 동일 본질이다 같은 본질이다 그 말이에요.

*호모시오스(homoouios)-우리는 이것을 믿는 것이다.
*호모이우시오스(homoiousios)-X
-그런데 호모시오스라는 이 헬라어 안에 요트라고 아이, 글자를 넣어가지고, 호머이우시오스, 이거는 뭐냐 하면 유사 본질이에요. 요거 자가 하나 더 들어가면 유사 이타가 들어가 유사 본질인데 이거 하나 더 들어가고요. 피 티기는 전쟁을 한 거예요. 이거는 여러분 우리는 호모시오스를 믿는 거지 호모시우시우스를 믿는 게 아니에요.

목사님, 나 어려우니까 나 안 할랍니다. ㅋㅋㅋ~~, 그러지 말고 요요 이오타 이라고 아이들하고 보이시죠? 저거 하나 때문에 죽을 전쟁을 하고, 이단이 되고 쫓겨나고, 피 튀기고 근데 우리는 지금 편안하게 앉아가지고 칼케돈의 공의회에서 결정된 최고의 계시 결정을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영광스러운 것이에요. 지난 2천년 교회 예루살렘은 그렇게 슈퍼 피셔가 피상적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조롱하고, 껍데기 어디 함부로 또 OOO 같은 인간이 함부로 얘기를 합니까? 제대로 별로 알지도, 잘 모르면서요...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골로새서 2장 9절에 다 같이,, 시작

*골로새서 2:9,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주님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보이다. 참 하나님과 뭐가 되셨다고요? 참 하나님이, 보이는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신성이 같이 있다. 하나님의 충만함이 육체로 구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신다. 이걸 성경 여러분들에게 증명할 수 있지만,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이 예수님을 허머이오시오서가 아니라 바로 호모시오스(homoouios)가 됩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하루는 마태복음 14장 22절, 23절에,

*마태복음 14:22-23,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예수님 뭐 하러 따로 계셨다고, 기도하러,, 따로 사는 예수님이 기도하러 올라가셨다. 예수님이 기도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람 되신 예수님의 인성을 말하는 거예요.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기도했다는 말이 없어요. 연약하니까 도움이 필요하니까 기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은 기도할 필요가 없고 기도할 이유가 없어요. 기도는 인간이 할 일이 인간이 기도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예배를 올려드리는 표현이고, 연약함을, 연약함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 능하시고 모든 것들이, 모든 것이 되시고,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기도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뭐예요? 인성의 즉 인성을 가르친 거예요. 마태복음 17장 22절, 23절 그다음에 25절, 이어서 바로 보면,,

*마태복음 14:25,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기도하는 예수님은 100% 참 사람이시고,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분은 100% 참 하나님이시다. 여기에 신성과 인성이 있는 것이에요. 참 사랑과 참 하나님 믿게 되는 기가 막힌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놀라가지고 바다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고 마태복음 14장 뒤에 33절에,

*마태복음 14:33,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배어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서라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누가복음 8장을 보면, 폭풍이 있는데 예수님이 주무셨어요.

누가복음 8:23,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여러분 광풍이 몰아쳐가지고 배가 요동을 치는데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너무 피곤하신데 너무 피곤하셔요. 그게 우리 인간이 예수님 인생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 인간이 인간 완전한 인간이잖아요. 육신의 몸에 고 완전한 인간, 너무나 인성을 가르치고 찰스 스폴전 목사는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너무나 참 표현을 잘했어요. 시작

“무한하고 무한하신 분, 영원하고 영원하신 분께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셨다. 전능하신 분께서 여인의 젖을 먹고 자라셨다. 우주를 붙들고 주장하신 분이 엄마의 품에 안기셔서 보호받으셨다. 천군 천사를 다스리는 하늘의 왕께서 요셉의 아들이라고 불리셨으며,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목수의 아들이 되셨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_
-이해가 되십니까?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목수의 아들이 되신 거, 이렇게 말씀드릴 때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 그런데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참 사람이시다. 누가복음 8장 24절 바로 이어서 뭐라고 그러냐면,

*누가복음 8:24,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그쳐 잔잔하여 옵니다. 여기서 우리가 빛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풍랑 이는 바다 가운데서 고하게 주무시는 예수님이 인성을 우리가 깨닫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을 때에, 바람과 물결이 잔잔하게 된다는 축복을 주시는 것이에요. 여기 잔잔하다는 말이 슬릭(slick)이에요. 이 말은 거울처럼 깨끗한 상태, 완전한 고요한 상태, 마치 동전 하나를 던지면 그 파장이 나갈 정도로 달이 고요하게 비치며 완전한 고요함을 느끼는 상태를 슬릭이라고 합니다. 광풍 이는 갈릴리, 바다와 바다가 이와 같은 신성을 지닌 주님의 꾸짖음 때문에 절대 고요, 절대 슬릭(slick)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가지고, 누가복음 8장 25절에,

*누가복음 8:25,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오늘 여러분들과 저의 인생에 수많은 풍랑과 광풍이 몰아친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 인생의 풍랑과 어려움 가운데 신하고 고민한 것들을 주님이 처리해 주시는 것이에요. 이게 이제 너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가 고백하는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모든 것들을 최종적으로 경험하고 난 다음에 베드로가 한 고백이 ‘주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이시다. 메시아라는 말은 뭐예요? 왕 직을 갖고 계시고, 제사장 직을 갖고 계시고, 선지자 직을 갖고 계시는 통치자이시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예수님의 참 참 힘되시고 참 인성을 듣고 인성과 신성을 갈구하심을 완벽하게 우리가 깨닫고 고백을 하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가 우리에게 임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저의 삶의 주님이 그리스도가 되게 해 주셔서 메시아가 그에게 주셔서 어떤 삶의 곤경(困境)과 난관(難關)도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기적 같은 수많은 일들을 이어주시는 것이에요. 100% 인성, 100% 신성을 갖고 계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한 면이 스스로 완벽하게 해결되는 거 또 그다음에 이쪽에도 한 면이 완벽하게 해결되는 것 남들은 다 안 된다고 그러지만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이거는 비교한 자가 될지 모르지만 제가 미국에 사역할 때 영어를 해야 되나 한국말을 해야 되나 100% 아메리칸이 되어야 되나 100% 코리안이 돼야 되나, 대개 이제 교회에서 휴일 학교를 50% 영어 가르치고 50% 한국말 가르치고, 다 이렇게 뭔가 방향이 잡히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30몇 년 전 어느 날 이걸 깨달으면서 그렇지,,, 예수는 100% 신성을 가지시고 100% 인간의 인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100% 코리안이야!!! 그러다 100% 아메리칸이야!!! 미국에서 그 동안에 그때부터 수많은 인재들이 매출이 됐고, 수많은 여기서는 별로 실감이 안 나는데, 제가 외국에서 이거 어마어마하 100% 캐나디아, 100% 코리아, 100%, 100% 네덜란드 사람, 100% 한국 사람... 양쪽. 오늘 이 땅에 우리가 강남에 살면서 우리가 100%의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세상사에 수 많은 수많은 100%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 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이 100% 하나님의 그리스도 대신을 믿을 때 태어난 신성과 영광과 능력을 우리가 100%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이 참 사람이시고,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거친 파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 사람이시고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삶의 광풍이 잠잠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것을 깨닫고 수많은 난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100% 신성과 100% 인성을 깨닫는 순간, 예수님의 행적과 사적을 우리가 깨닫는 순간,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사랑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 날마다 베드로처럼 우리에게도 계시의 주님의 계시 문이 열릴 것이고, 주님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입니다. 18절,

*마태복음 16:18,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문법적으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지 못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구원의 계시사적, 전체를 방어하는 100% 인성과 100%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그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이에요. 영광스런 그 고백의 주님의 교회를 그리고 그 교회를 세울 때에 그다음에 18절 뒤에 뭐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b,
18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사탄과 지옥의 영생을 이기지 못하리라. 지옥의 문들, 각종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우리가 받을 수 있겠지만, 참 신과 참 사랑을 제대로 깨달을 그걸 고백할 때, 어떤 사탄의 공격이 와도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모든 사탄을 공격할 때 가장 안전한 장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에요. 사탄의 공격뿐만 아니라, 여러분 주님이 심판하실 때도 제일 안전하게 거할 장소가 교회밖에 없는 것이에요. 홍수의 날의 날에도 물 위를 유유히 뜯어내는 광주가 유일한 장소가 교회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21세기에 베드로가 되어가지고, 예수님에 대한 참된 신앙 고백에 위에 세워진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 세상의 모든 외로움과 거룩감이 다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한 생일 동안 이 음보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는 교회에서 호흡하고, 한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의 인생의 사명과 목적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수많은 광풍과 풍랑과 상처 가운데 이런 분들이 사랑으로 녹아지고 새로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서로서로 이 음부의 권세에 이기려면, 수많은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교회가 이제 완전히 거할 장소가 될 것이다.

오늘 가장 심각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뭡니까? 외로움이 상처 입고, 외로울 것이, 그 외로움을 교회만의 해결도 할 수 있는 것이, 작년도 미국 공중위생국장 비맥 머피가 ‘외로움이 흡연이나 비만보다 더 심각한 공중보건의 위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반려동물이 아니라, 반려로봇의 삶의 현실이 되고 있다는 거, 앞으로 7년 뒤가 되면 반려로봇 로봇의 시장 가치, 반려 로봇의 시장이 70조 이상이 될 것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려 로봇이 여러분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반려 견들, 반려 견들이 여러분들이 인생 문제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아이고야, 요즘 뭐 그냥 난리네. 다들 털들도 날리고,, 여러분 해결됩니까? 일시적인 이로운 결심으로 진짜 해결됩니까? 진짜 해결되는가? 진짜 기로 날마다 예수님은 참 인사를 하시고 묵상하고 예수님이 참 신선하게 묵상하고 인생을 가지고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위로할지 묵상하고 그분이 주님만 여기에 계신다는 걸 묵상하고 그런 하나님의 교회가 공동체를 이루어가지고 우리가 여러분 다락방 식구들 함께 서로 위로하고 그때가 진짜 위로가 되는 것이고 참된 오아시스가 되는 것이고 참된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고,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중독된 우리 사회를 해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 말씀드렸던 두 가지 날짜를 오늘 참 신성과 참 인성을 가지신 그 주님에 대한 제대로 한 고백을 가지고 그 구세주 되시고 메시아 되신 그분을 당신 앞에 우리가 나아갈 때, 여러분의 삶에 많이 문제적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될 줄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찬송 가운데 우리가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이 세상에 주께서 탄생할 때에 참 신과 참 사랑이시라는 .저 동정녀 몸에서 나셨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육신을 입어 날 구원할 구주가 되시고 참신과 참 사람이 되시는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요약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면, 지체없이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하고 100%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계시의 불이 우리 가슴에 임하길 간절히 소원하며 모든 지옥의 권세를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곤경과 난관도 돌파해 주시는 주님을 체험하여 주일 시리즈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를 통해 예수님의 위로와 치유를 받고 그 사랑을 풍성히 누리기를 소망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에 관하여 제자들이 지니고 있는 생각을 개별적으로 질문하는 내용을 대하게 된다.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과 같은 그런 벽지에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리스도를 따랐던 무리들은 다른 곳보다 더 적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제자들과 개별적인 대화를 나누실 수 있도록 여유를 갖게 했다. 베드로는 나머지 다른 제자들을 대표해서 대답한다. 나머지 제자들은 모두 베드로의 답변에 동의했으며 또 의견을 같이 했다. 베드로의 기질은 그로 하여금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앞에 나서서 말하게 했다. 때때로 말을 잘 하기도 했고 잘못 하기도 했다. 어느 단체에서나 말은 잘 못해도 어느 정도 열성 적이고 대담한 사람들이 발견된다. 그런데 베드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베드로의 답변은 간단하지만 완전하고 진실하며 적절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것은 바로 모든 문제의 결론이자 해결이었다. 백성들은 예수를 한 선지자 즉 그 선지자`로 불렀지만 제자들은 그를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인정하고 있다. 예수의 외적인 모습은 유대인들이 메시야에 대해 가졌던 일반적인 생각과는 매우 대조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를 인자라고 불렀지만 제자들은 그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세상의 생명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을 믿었다. 우리도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서 "주 예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의 답변을 어떻게 시인하시는지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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