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4년 1월 5일)
제목: "새해, 특별한 초청"
(A New Year of Special Invitation).
-<새로운 길>-이사야 시리즈 ⓵
성경본문 : 이사야 1:1-20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금동훈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
ㅡㅡㅡㅡㅡ
*이사야 1:1-20,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
▶요약▶2025년도 새해 첫 우리 신년예배를 맞이했습니다. 작년에는 우리가 새해 맞이하면서 덕담으로 이천 스물 네 번의)2,024)번의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랬어요. 기억하십니까? 올해는 어떻게 할까? 기도하다가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올해인데 ‘주여, 2025번의 지혜와 명찰을 주십시오.’ 작년에는 감사했던 올해는 2025번의 지혜와 명철을 주셔가지고, 이 안에 여러분들께 가정 가정마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주머니 명철의 주머니를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다사다난이 아니라, 다사다 지혜 ,다사다 명철, 그래서 다사다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부터 저는 이사야서를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서를 강의하면서 전체 주제를 어떻게 할까 기도하다가 ‘악망하라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그런데 한 11일 전부터 마음에 아니 새로운 길만이 아니라, 반드시 새 길이 열리게 하여 주십시오. 이 사회에 반드시란 말이 좀 여러 번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이 반드시,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열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이나 우리가 이사야서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죠. 이사야의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저 생애에서 가만히 돌이켜보면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고 참 쉽지 않은 터널들 지날 때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것인데, 수많은 말씀들이 또 위로가 되었지만 최고의 말씀이 뭐냐면 이사야와 시편이었어요. 최고의 말씀이 시편과 이사야였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좀 삶에 짐을 질 때마다 시편과 이사야가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사야서를 해석하는 두 가지 두 개의 창이 있는데, 하나는 신약의 창이 있고, 신약의 창이 있다는 말은 신약 성경에 제일 많이 인용된 구약 성경이 이사야와 시편이에요. 알 사람만 알도다 또 하나는 church farter들, 교부들은 이 이사야를 어떻게 해석했던가, 어그스틴을 비롯해서 수많은 교부들 있잖아요. 잉나티우스 여러 교부들이 있는데, 이 이사야를 신약으로는 어떻게 해석했는가, 그리고 교부들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 두 가지 창을 제가 늘 마음을 갖고 그 두 창 사이에 이사야의 진리의 빛이 환하게 비쳐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자, 그래서 먼저 첫 번째 제가 여러분들에게 오늘 새해 특별한 초청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이사야 문을 여는데 첫 번째 먼저 이사야서를 통한 초청을 하겠습니다. 이사야 자체를 통한 초청을 하겠습니다. I. 첫 번째, 이사야서에 대한 초청.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신, 구약 성경 전체를 쭉 놓고 볼 때 이사야서가 좀 독특합니다. 여러분 신구약 성경이 몇 권이에요. 어떤 분들은 한 권을이에요. 왜 한 권인가요? 한 권 들고 다니니까 한 권을에 또 어떤 분들은 두 권이래요. 왜냐하면, 신약 한 권, 구약 한 권,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신,구약 성경은 66권이에요. 구약 39권, 신약 27권, 근데 너무 놀랍게 우리 신약의 창으로도 볼 때에 이사야서가 66장까지 있어요. 전편 부분이 39장이고, 후편 부분이 27장이에요. 놀라운 게 뭐냐면 이사야 40장부터 후반에 시작이 되는데, 그 마치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되는 것처럼 여러분 신약이 시작될 때에 신약에 보면 누가 신약의 문을 열었습니까?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세례요한이 신약의 문을 열었거든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이래가지고 나오는데 똑같아요. 이사야 40장 3절에 보면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같이요. *이사야 40장 3절,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구약은 아시는 대로 심판(審判)과 경고(警告)가 있는 것처럼 이사야에 39장 심판과 경고가 있고, 27장 40장부터 66장까지는 복음(福音)과 구원(救援)과 회복(回復)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신약의 신구의 마지막이 요한계시록의 찬란한 어떤 예언으로 끝나는 것처럼 이사야에도 이사회 66장 마지막이 요한계시록처럼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인류 구원사에 대해서, 66장에 새하늘과 새 땅이 있는 것처럼, 이사야 66장도 새하늘과 새 땅을 얘기하고 있어요. 참 신비하죠?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이사야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소가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사야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이 구원자이시다. 그리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뭐가요? 벌써 잊어버리시면 안 돼 이사야의 뭐예요? 이름 자체가,,, 그래서 이사야를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이사야 개인을 좀 살피겠습니다. 오늘 1절에도 나옵니다마는 개인적으로 이사야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를 관통한 선지자예요. 주전 740년부터 680년까지 오랫동안 관통한 선지자인데 1절에 보니까, 이사의 아버지를 뭐라고 돼 있습니까? *이사야 40장 1절,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아모스의 아들 이사였다. 그러니까 이사의 아버지가 누구예요? 아모스에요. 아모스인데 이 아모스는 누구냐 아모스는 아마샤라는 왕의 형제였어요. 그러니까 왕의 조카였어요. 이사야는 어릴 때부터 이 사회는 소위 로얄 아카데미 왕립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한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왕립학교 출신이니까. 이사야가 쓰던 언어, 행실 그다음에 문체 이런 것들이 너무너무 기품이 넘치고 세련되고 그리고 그 이사야서 한 절 한 절이 아주 문장이 수려(秀麗)합니다. 아름답게 말하고 싶은데,,, 이 사이에 문장 하나하나가 뭐하다고요. 수려하다고요. 빼어나고 아름답습니다. 지금 예를 들어서 구약의 대선지서를 얘기할 때 에스겔서도 대단한 성경인데 에스겔서도 길잖아요. 그런데 에스겔서에 나오는 아주 새로운 단어가 1500개 정도를 새로운 단어를 가지고 쓰고 있고, 시편 같은 경우는 150편까지가 있는데, 150편 긴 시편에 2,170의 새로운 단어를 쓰고 있고 그런데 이사회는요 2,186개 성경에서 가장 많은 새롭고도 기품(氣稟)이 있는 세련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사회는 그의 언어, 비유적 표현 시적 천재성은 실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불꽃 같은 영감(靈感)을 가진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한마디로 구약 시대의 사도바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누구라고요. 사도바울 그의 메시지는 바울처럼 강력한 복음적 언어로 선포되었어요. 그래서 이사야서를 읽다 보면 마치 갈릴리오와 유대와 배레와 마지막 갈보리를 걸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걸음과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은, 신약에도 자주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다. 이런 내용들이 많이 나와요. 제가 지금 전체 성경 특별히 신약의 창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이사야 전체에 대한 초청을 하는데 이사야에서의 소중한 특징 중의 하나는 뭐냐면 결코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참으로 우울하고도 비참한 상황에서도 그는 거룩한 낙관을 놓치지 않는 놀라운 선지자였어요. 낙관론(樂觀論)을 펼칠 수 없는 어두운 상황 가운데서도 강력한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묘사한 줄로 믿습니다. 앞부분에 오면 이사야 곳곳마다 어두운 멸망(滅亡), 수치(羞恥), 고난(苦難), 끔찍함 죽음, 질병(疾病), 상실(喪失), 노예(奴隸), 복역(僕役)의 때 이런 가능성 없는 절망의 단어들이 수없이 나오지만 동시에 최상급의 수려한 언어로 영원한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그게 막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거예요. 이제 이사야서를 할 때마다 제가 그 주제에 맞는 찬송도 많이 나오는데요.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 이게 찬송과 가사가 아니라 이사야사에 나오는 성경 구절을 그대로 인용해 가지고 찬송을 하는 거에요. 이사야 11장 9절을 보니까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어떻게 한다고요? *이사야 11장 9절,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러니까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복음의 능력으로, 말씀의 은혜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혼(魂)과 관절(關節)과 골수(骨髓)를 쪼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낙관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제 얘기가 아니라 이사야스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낙관론을 담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갈리 지역에서 처음으로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음 시작하시면서 누가 보면 4장에 보면, 소위 나사렛 선언이라고 하시는 내용이 나와요. 어마어마한 말씀이에요.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에 귀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말씀이 어디서 비롯되는 예수님의 첫 나사렛 선언이 이사야 61장 1절 2절을 인용하시면서 주님께서 나사렛에 강력한 복음 선포를 하신 것이었어요. *누가복음 4장 18-19절,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사야 61장 1-2절,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거기 보니까 포로된 상황, 어두움의 상황, 가난한 상황, 눈먼 상황 이 모든 상황에서 주님이 어떤 선언을 선포하고 계시는가 그것이 이사야서를 통한 해석을 해주신 것이고. 그것을 인용하셨어요. 내용은 똑같은데, 표현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인용하실 때는 세프티오 진이라고 그래갖고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된 그 70인역을 가지고 주님이 쓰셨기 때문에 조금의 표현의 차이는 있는데, 내용은 똑같은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가지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이 나사렛 선언이 역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이사야의 말씀을 제대로 초청하고 듣고 깨달으면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가 치유되어 수치 대신 복음적 환호성을 지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고, 우리의 삶의 영적인 장막터을 넓히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일단 제가 ‘하나님을 앙망(仰望)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그래서 제가 밖에 사람들도 막 이런 거 많은데 우리는 영적으로 한번 하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앙망하면 여러분 새로 반드시 새로운 길인데 일단 오늘은 하나님을 앙망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한번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다음에 이것은 이것은 단순히 그냥 새로운 길이 아니에요. 낙관론을 한다고 그랬을 때 거룩한 낙관을 갖는다는 개념을 바꿔야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 회복되고 다시 구원의 복음이 온다 그랬을 때 그 사람들의 생각은 아 예루살렘 성이 회복되고, 우리의 땅이 복을 받고 우리가 좀 잘 될 것 같다. 이 정도로 생각했어요. 근데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어요. 옛날에 예루살렘의 영광 회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예루살렘에 대한 비전과 환상을 주신 것이 다시요. 단순한 과거의 회귀가 아니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경탄할 만한 사회를 경험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금 어렵지만 잘하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통일도 주실지 모를 거예요. 그래서 오늘 올해 여러분과 제가 이사야서를 공부하면서 다시 한 번 여러분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민족적으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예루살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비전과 환상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걸 오늘 제가 이사서를 통하여 이사야에서 전체를 통한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어려워도 말씀을 통해 우리가 거룩한 낙관을 갖게 되는데, 나사렛 선언을 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단순한 과거의 회귀가 아니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사명과 은혜를 물 붓듯 부어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 우리가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뭔가 하면 우리가 어떤지 오늘 3절부터 8절까지 쭉 내용을 통하여 우리가 뭘 해야 되느냐 하면, 아 탄식하노라 범죄한 국가의 참상이여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깨닫게 돼야 되는 거예요. 두 번째 초청을 제가 할 텐데 두 번째 초청을 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범죄를 했는지 우리의 상황이 어떤지 우리의 현실이 어떤지 이사야는 내왕을 거쳤다고 그랬습니다. 웃시야 요담 아흐스 히스기야 4왕의 통치 시기에, 사역을 했는데 이사야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는 처음에는 멋있게 잘 되었는데, 나중에 그가 순교를 당하는데 유대의 전승사 미슈나에 의하면 히브리스 11장에 나타나는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톱으로 캐임을 당하고 그런데 그 톱으로 캐임을 당해가지고 순교한 사람이 이사야 선지자다. 이렇게 많은 해석을 하고 있어요. 하고 있는데, 히브리서 11장에 톱에 켜서 순교한 사람이 이사야라고 하고 있는데, 그 이사야가 활동하던 그 시기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암울한 시기였어요. 얼마나 어려운 시기였냐면 4절에 보니까, *이사야 40:4,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자 봐요. 국가적으로는 허물진 백성이여 범죄한 나라다. 본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나라다.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의 사명을 주신 나라였는데 무슨 나라가 됐냐 범죄한 나라가 되고, 허물진 백성이 됐어요. 하나님이 주신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 되었다. 기가 막힌 거예요. 너무 마음 아픈 얘기에요. 국가적으로는 죄악을 짊어진 나라가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행악의 종자요 부패한 자식이라고 죄악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 가지고 죄가 계속해서 대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저버리고 하나님 이름을 만휼이 여기는 소위 기독교를 저주하고, 오늘 기독교를 멸시하고 모욕하고 기독교를 함부로 욕하는 거 어떻게 보면 행악의 종자들이에요. 그래서 그 결과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너무나도 생생한 범죄의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5절 6절 하면, 같이 앞에는 안 읽었는데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이사야 1:5-6,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기가 막힌 말씀이에요. 머리끝도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고, 온몸이 병들었고 마치 오늘날 에이즈를 묘사한 것과 비슷해요. 인체의 면역 체계를 망가뜨리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영적인 면역 체계를 망가뜨린 것과 비슷한 것이에요. 너무나 리얼하죠. 너무나 너무 실제적이고, 그리고 7절 8절을 보니까, 우선 7절을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이사야 1:7-8,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하나님을 등지면 일어나는 끔찍한 일을 묘사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방어막이 없어지고 방어 기저가 사라지고 보호막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가지고 3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사야 1:3,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무슨 말이냐 너희들은 소나 당나귀보다도 못하다. 질책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이 국가를 돌아보면서 하나님 잃은 면이 있다면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런 마무리 탄시가노라 범죄한 국가의 참상이여, 이런 기가 막힌 어려움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주님이 두 번째로, 초청을 하시는데 8절까지 이런 기가 막힌 어려움이 있는데,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암울한 상황 가운데서도 빛을 보여주십니다. 구절에 다 같이 구절 크게 합독하겠습니다. *이사야 1:9,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아멘, 이런 앞부분에 어려움과 참 범주한 나라의 참상이 있지만 해결 방법은 생존자를 남겨두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씨를 남겨주셨어요. 이 생존자는 다른 말로 하면 남은 자다. 이렇게 했어요. 그래서 이사야서의 곳곳마다 생존자, 남은 자, 거룩한 그루터기의 신학이 뒷받침하고 있어요. 이 사이에서의 곳곳마다 수없이 많이 10장에도 11장에도 37장에도 46장에도, 제가 대표적인 걸 말씀드렸지 더 많은 곳곳마다 남은 자다. 그의 남은 백성이다. 남아있는 자다. 남은 모든 자다. 거룩한 그루터기다. 생존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시고, 생존자로 초청하시고, 남은 자로 초청하실 때 그 남은 자가 거룩한 씨앗이 되어 가지고 남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기가 막힌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II. 두 번째, 남은자에 대한 초청. -남은 자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걸 깨닫고, 남은 자가 없으면 해결이 안 되겠구나! 주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남은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이사야는 오죽하면 자기가 첫 아들을 낳고, 그 첫 아들의 이름을 스알야숲 이렇게 스알야숲이라고 해 가지고 7장에 나오는데, 그 스알야숲이라는 첫째, 아들의 이름의 뜻이 뭐냐면,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오죽하면 아들의 이름을 남은 자, 생존자, 남은 백성이 돌아오리라. 그러니 이 남은 자는 먹구름 위에 은빛 광채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존자를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다면 소돔과 고모라 갖고 다 망했을 것이라고,,, 여러분 하나 예를 들어 알 수가 있는데, 소돔과 고모라 성이 누가 있을 때까지는 안 망했습니까? 롯이 있을 때까지, 롯이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롯을 남은 죄로 남겨놓았고, 롯이라도 있으니까 소돔과 고모가라가 안 망했지, 롯이 나오자마자 소돔과 고모라는 불벼락을 맞는 것이에요. 그러니 범죄한 나라, 면역체계가 사라지고 방어기제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오늘 남은 자 신학 남은 자의 사명 남은 자의 환상을 우리의 것으로 알고 기도하고, 집중할 때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방향을 구원의 역사로 새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은 자가 누굽니까? 대표적으로 노아의 홍수 때 노아가 남은 자입니다. 뭐 남은 자에 대한 신고야기 스토리가 많습니다마는 대표적으로 사도바울은 로마서 11장 4절에, 이 남은 자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는가? 11장 4절을 또박또박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 11장 4절,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몇 명이에요. 7천 명의 거룩한 씨앗 남은 자를 남겨놓았다고 그랬습니다. 이사의 6장 13절에서는, *이사의 6장 13절,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저는 이걸 보면서 그렇구나.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어려워도 남은 자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는구나. 한국 한국 사회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교회가 남은 자가 되면 하나님은 이 민족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경탄할 만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흔히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7교회 얘기할 때에,책망받고 잘못된 교회 중의 하나가 사데교회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좀, 좀, 이렇게 좀 뭐라고 그럴까요? 막 좀 거룩하게 산다고 하는 분들이 사데교회를 가지고 얘기를 하면서 막 한국교회 막 뭐라 그러고 질타하고 그럽니다. 우리가 그런 어떤 내용을 들을 만합니다. 사데교회가 잘못하면 잘못을 인정할 만합니다. 그런데 그 사데교회의 부족함이 있지만, 그 사데교회를 하나님은 어떻게 해결하셨는가? 요한계시록 3장에 한번 보겠습니다. 사데교회 대해서 설명할 때에, 요한계시록 3장 1절에, *요한계시록 3장 1절,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럴 때 사데교회 너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너는 죽은 자로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아요. 그런데 요한계시록 3장 4절에, *요한계시록 3장 4절,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너에게 있다. 할렐루야!!! 망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거기에 사대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 남은 자가 시대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존 스타트 목사님은 이 남은 자를 일컬어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교회 안에 교회이다.’ 사랑의 교회 성도들이여! 교회 안에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교회 안에,,, 오늘 우리가 이사야 이 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모두가 다 교회 안에 교회가 되게 해 주셔서 이 민족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줄로 확신합니다. 교회 안에 교회인 우리의 남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남은 자로서 예수님은 사대 교회에 아직 살아 있는 남은 자들을 너가 굳건히 하라. 굳건히 하라. 사도바울은 그야말로 남은 자가 되어 가지고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했다. 자주자주 사정전에 나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은혜로 남은 자가 된 줄로 믿을지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자가 되어서 교회 안의 교회로서 교회 안에 수많은 사람들을 굳건히 하는 남은 자로서 이 시대의 새로운 길을 열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와 한국 교회는 이 시대에 남은 자로서, 세계 복음주의 교회 쇠퇴를 맞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시대에 대한민국 교회 성도들은 이사야의 맏아들처럼 스알야숲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첫 번째 이사야 전체에 대한 초청,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은 나사렛 선언을 하게 하신 하나님, 그다음에 남은 자에 대한 초청을 통해서 우리가 이야기하신 하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제 또 하나의 초청 하나 더 하겠습니다. 오늘 요절로 나와 있는 것인데 오늘 여러분들 주보에 보니까 이사야 1장 18절이라는 말씀 가지고 했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18절을 다시 한번 또박또박하게 우리 합독하겠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아멘 놀라운 초청이 있는데, 이 사회에 초청 남은 자의 초청인데 오늘 보혈복음으로의 초청이 보혈(寶血)복음(福音)에 대한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오라, 이 오라는 말씀은 이사야에도 요한계시록 계속 나오는데 이 오라 이 말씀은 와서 내가 나하고 싸우겠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소나 당나귀 같이 어리석은 우리를 그냥 내어치지 않으시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말씀을 분석하면서 깨닫는 것 중의 하나가 변론하자. 하는 이 말씀이 있는데, 이 변론(辯論)하자는 말씀은 법정 용어예요. 변론하자는 말씀이 법정 용어인데, 이 용어를 변론하자 그래가지고 이걸 가지고 기소를 한다든지, 고소를 하기 위한 변론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를 변호하기 위한 변론에 대한 초청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이것은 변론하자는 이 말씀은 이치를 따져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목자의 심정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를 용서한 것은 언제부터 용서한 것이죠? 탕자가 돌아온 이후에 용서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미 집을 나설 때부터 아버지는 용서하는 이미 집을 나설 때부터 아버지는 동구 밖에서 돌아온 탕자가 되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라 우리를 오라 변론하자는 이 말씀 가운데는 뭐가 담겨있는가 용서를 전제하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오늘 한번 정리를 했는데, 여러분 가장 위대한 진리가 뭐냐 가장 위대한 진리는 ⓵우리가 죄인이라는 걸 깨닫는 것이에요. 우리가 망하게 된 존재라는 걸 깨닫는 것이 오늘 3절부터 8절까지 참담한 이런 현상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에요. 그런데 더 위대한 진리가 있어요. 그 더 위대한 진리는 무언가? 가장 위대한 진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이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진리는 ⓶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부족함도 있고, 인생살이 살아오면서 얼룩진 것들 많고 누더기 같은 이런 부족함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오라, 변론하자. 오라, 변론하자. 여기 하나님의 자비(慈悲)가 포한돼 있어요. 소나와 당나귀처럼 이해력이 부족한 우리를 하나님 지금도 기다리시면서 설득하시면서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일 미련 방통이 같은 사람 중에 하나가 요나였어요.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을 불쌍히 계시고 살리시길 원하는데, 요나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니까 갑자기 다 변화되니까. 요나가 너무 열받아 가지고 막 화가 났어요. 그럴 때 소나 당나귀 같은 요나에게 너 하나님의 심정을 못 깨닫구나!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하나님께 저항했는데, 그를 인내하시고 그를 설득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셨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변론하자는 것은 용서를 전제한 주님의 초청이었어요. 주님의 첫째, 핵심이 뭡니까?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너의 죄가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여러분, 주홍과 진홍색깔은 죄의 깊이를 말해주고, 주홍과 진홍의 피색은 피와 폭력을 상기시키는 색이에요. 끔찍한 죄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끔찍하고 죄의 깊이를 말해주고 이 기가 막힌 이 더러움과 오염(汚染)됨과 이 처절한 이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뭘 통하여 피의 복음을 통하여 또 다른 보혈 피해 복음을 통하여, 그래서 제가 보혈 복음이라고 그러는데, 어거스틴은 무어라고 말하느냐, 교부 어그스틴의 해석 가운데 예수님 자신이 먼저 이 피해 복음을 통해 해처럼 찬란하게 빛나가지고 그 주님과 부딪치는 수많은 영혼들은 치유받고, 그래서 나 자신부터 어그스틴 나 자신부터 치유받고 바울이 완전히 치유받고, 진홍, 주홍이 눈 양털같이 되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초청받아 변화받은 사람들이 결국은 또 남은 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보혈의 능력은 진홍 같은 죄, 주홍 같은 죄를 해결하는 그런 능력이 있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보혈, 복음의 능력에는 사각지대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것처럼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보혈복음이 우리를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한 줄 알고, ‘우리도 모르게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면 보혈의 능력,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그 다음 우리의 죄를 눈보다 희게할 것은 보혈의 능력, 그리고 주요의 보혈 능력 있도다.’ 이 보혈 복음의 능력은 사각지대가 없다고 그랬어요. 만약에 우리가 파란 눈에 안경을 끼면 다 파랗게 보이고, 붉은 안경을 끼면 다 붉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 진홍 같고, 주홍 같은 게 붉은 거겠지만, 예수 그리스의 보혈의 색깔로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덮어가지고 예수님의 보혈 렌즈로 우리를 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 모두를 보시기 때문에 깨끗하고 순수하고 용서받은 모습이 되는 것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구절 중에 하나가 요한계시록 7장 14절, 크게 다 같이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14절,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우리의 그 옷이란 누더기 같이 더러운 옷들인데 다 어디에 씻었다고요? 어린 양의 피에 씻은 거예요. 보혈복음에 씻은 거예요. 오라. 너희 죄가 진홍 같을지라도, 주홍 같을지라도, 흰 눈같이 양털처럼 희게 하는 그 은혜를 우리가 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새해 첫 시간 이 말씀을 통하여 이사야 말씀을 통하여 이사야 자체에 대한 초청도 받지만 남은 자에 대한 초청을 복음의 능력을 보혈복음으로 씻음받아 이걸 우리가 응답하고 이미 보일 복음에는 이미 초청받은 우리들이지만 이걸 오늘 깨달을 때, 더 깊이 깨달을 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열리는 그런 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결단이 있다면, 이 보혈복음에 의지해 가지고 우리가 남은 자 거룩한 씨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그럴 때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국가의 미래가 열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 초청에 응할 때 단순한 해결 정도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거예요. 뒤에 이사야 제일 뒤에 이사야 66장 18절을 보니까, *이사야 66:18, 18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아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적당한 과거의 회귀가 아니라 과거의 부흥 정도가 아니라, 때가 되면 뭇 나라의 언어가 다른 모든 민족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다. 작년 10.27의 우리가 기도한 제목들이 올해 10.27의 세계복음주의연맹총회를 통하여 이런 영광이 그대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겁니다. 소위 WEA라는데 어떤 사람은 잘 모르고 WEA가 어떻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WEA는 순수한 복음 우리 장로님이 기도한 것처럼 정통보수, 열린 보수, 그 다음에 모두가 다 순전한 복음 이 보혈복음을 선포하는 올해 10월 마지막이 될 겁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래서 제가 WEA를 자꾸 구상하다가 WEA가, 뭔가?We Are, We Ace, We Amazing이 될 것이다. 이건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이사야 66장 18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뭇 나라의 사람들이 와 가지고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여 갖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 민족의 문제를 적어도 올해 10월 이전에는 싹 다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코로나의 강,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코로나의 강을 스가랴서를 통하여 우리가 이겨 내었듯이,,, 국가적인 위기의 강을 이사야서를 통하여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 좀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믿음 좋은 어른이 고속버스를 탁 타고 옛날에 뒤를 탁 돌아보면서 ‘오늘 너희들은 나 때문에 사는 줄 알아라’ 그랬대요. 말이 안 되는 거지만 그렇지만 우리들 때문에 이 민족이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초청에 응하시므로 우리 모두가 한 분 한 분이 보혈복음의 기초한 하나님 나라의 남은 자가 되어 이 시대를 살리는 거룩한 주의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기도 제목 자체가 벌써 여러분을 살려주실 것입니다. ♣요약 예수님께서 초청하시는 이사야 시리즈를 통해 말씀하실 때, 우리의 인생과 이 땅의 모든 난제들과 혼돈의 시대가 온 땅에 해결되며,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줄로 믿고, 범죄한 나라, 절망적인 참상 앞에서 눈물로 탄식하며 주님을 앙망할 때, 한번도 경험치 못한 경탄할 만한 새로운 길이 반드시 열리게 하여 주시길 간구하며, 오늘 남은 자의 초청을 받아 보혈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교회 안에 교회가 되어야 한다. 정말 은혜 받은 남은 자가 되어서, 오라 변론하자. 주님의 용서에 초청을 통하여 주홍 같이 붉은 끔찍한 죄를 씻어주시는 우리가 이미 믿고 확신하면서 보혈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의 몸과 모든 상황과 국가가 새로워지는 능력을 받기를 간구해야 한다. 1. 이사야를 통한 초청 1-1. 이사야, 선지자 - 이사야, 아모스의 아들로 왕립학교에서 공부함 - 아름다운 언어와 문체로 글을 쓰고 문장이 수려함 - 그의 언어 비유적 표현과 시적 천재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불꽃 같은 영감 덕분이었음 - 사도바울과 같은 복음의 능력자로 불림 - (중요) 갈릴리, 유대, 베레, 갈보리 같은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며 복음을 전함 1-2. 이사야의 특징 -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어두운 상황에서도 복음을 선포함 - 우울하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묘사함 -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복음을 전함 - 구약 시대의 사도바울과 연관 지어 설명함 - 신약의 창에서 이사야의 해석과 교부들의 시각을 소개함 1-3. 이사야서의 중요성 - 신구약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 이사야서가 독특함 - 신구약 성경은 66권이고, 이사야서는 66장으로 구성됨 - 신구약의 시작과 연결되는 세례요한의 역할을 소개함 - 이사야서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비추고, 인류 구원의 길을 열 것임을 암시함 - 하나님의 구원자이자 인류의 구원자인 예수님을 깨닫게 함 2. 이사야서와 낙관론. 2-1. 이사야서의 이해 - 이사야서를 통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찬송과 가사를 이룸 - 이사야 11장에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인용함 -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복음의 능력으로 영혼을 새롭게 함 - 예수님의 공생애와 나사렛 선언을 통해 이사야서의 해석을 제시함 - (중요) 나사렛 선언은 이사야서를 통해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복음의 능력을 보여줌 2-2. 이사야서의 해석과 적용 - 이사야서는 이사야의 통찰을 통해 완성된 것으로, 그 해석은 예수님의 말씀과 연결됨 - 이사야서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인용하여 낙관론을 제시함 -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시작한 공생애를 통해 이사야서의 해석을 제시함 - 이사야서의 표현은 같지만, 주님의 선언의 강력한 차이점은 표현의 차이임 - 예수님은 표현의 차이를 통해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의 능력을 입증함 2-3. 회개와 변화 - 하나님을 악망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그 길은 거룩한 낙관론임 -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의 영광 회복에만 집중하여 새로운 비전을 간과함 - 하나님은 새로운 예루살렘에 대한 비전과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심 - 우리는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사회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비전과 환상을 확인해야 함 - 우리의 죄악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새롭게 변화하고 낙관하도록 은혜를 구해야 함 3. 남은 자 3-1. 남은 자를 향한 초청 - 남은 자, 거룩한 그룹기의 신학을 뒷받침해야 함 - 이사야에서 곳곳마다 남은 자, 남은 백성이라는 언급이 많음 - 남은 자는 먹구름 위의 은빛광채라 불림 - 로시가 소돔과 고모라에게 망하기 전에 남겨둔 것 같이, 우리도 남겨야 함 - 남은 자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심 3-2. 남은 자의 사명 - 노아의 홍수 때, 노아가 남은 자였음 - 사도바울은 로마서 11장 4절에서 남은 자에 대해 언급함 - 이사야 6장 13절에서 남은 자는 배임 당하더라도 남을 것이라 함 - (중요)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서 사데 교회를 살아있는 자들로 표현함 - 사데 교회의 부족함은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해결하심 3-3. 사데 교회와 남은 자 - 사데 교회는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 나오는 모습과 같음 - 한국 교회는 남은 자로서, 세계 복음주의 쇠퇴를 맞아야 함 - 한국 교회 성도들은 이사야의 맏아들처럼 스알야숲이 되어야 함 - 이사야 1장 18절의 "오라"는 보혈복음에 대한 초청을 의미함 - 변론하자는 말씀은 법정 용어이지만, 용서와 초청을 전제하고 있음 4. 변화의 복음 4-1. 변론하자의 시작 - 요나는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자 함 - 소나와 당나귀 같은 요나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전달하지 못하자, 요나는 분노함 - 하나님은 요나를 인내시고, 설득하시고, 자비를 베푸심 - 우리는 용서를 전제한 주님의 초청을 받음 - (중요) 죄의 깊이와 종류에 관계없이, 우리는 용서받고 변화될 수 있음 4-2. 변화의 과정 - 변화의 과정에서 보혈복음 의 중요성을 강조함 - 어거스틴은 보혈복음 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이 치유와 변화를 가져옴을 주장함 - 보혈복음은 주홍과 같은 죄와 눈과 같이 흔한 죄를 용서해줌 - 주님의 보혈복음은 우리를 깨끗하고 순수하게 변화시킴 - 보혈복음 은 사각지대가 없는 능력임 4-3. 변화의 결과 - 보혈복음 은 죄를 용서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임 - 우리는 보혈복음을 통해 변화받고, 남은 자의 역할을 하게 됨 - 변화의 결과는 주홍과 같은 죄를 해결하는 능력임 - 보혈복음 우리의 죄를 희게 하는 은혜임 - 새로운 길은 보혈복음 에 의지하여 헌신하는 것에서 시작됨. |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