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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10월 6일)
제목: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예수님은 누구신가?⑲
말씀: 마가복음 9:17-2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김주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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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17-29,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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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메시지가 사람의 지혜나 생각으로 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영이 통하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라는 거는 물에 물 탄 듯 겨우겨우 하는 것,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또 영광 돌리는 예배를 통하여 영적인 쾌거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모두가 다 복락의 강수를 경험하게 하시고, 영혼의 세포가 춤을 추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처음 우리 교회에 오신 분들은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잘 이해가 안 되시더라도 어쨌든 오늘 한 가지는 꼭 해결하시고 얻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열아홉 번째⑲, 예수님이 누구신가? 시리즈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느니라 그리고 부제로 말하면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또 우리 예수님 시리즈로 말하면 “참 믿음을 가르쳐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귀신 들린 어린아이가 제자들을 통하여 해결안 받지 못하고 이제 나중에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는 과정이 나와 있는데, 오늘 본문 앞에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성의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3명을 데리고 올라갔고 그 나머지 이 제자들이 밑에서 이제 이 귀신들린 정말 어쩔 줄 모르는 그 힘든 아이를 갖고 있는 아버지가 와 가지고 고쳐달라고 그랬을 때, 제자들이 고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몇 명 남아있었죠. 9명,,, 벌써 계산이 안 됩니까? 12 제자 가운데 몇 명 올라갔어요. 3명이 올라가고 그다음에 9명이 남아 있었죠. 이 9명이 남아있었는데, 해결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9명의 제자들이 뭐 오늘 처음 잘 못하고, 뭐 처음 못 고치고, 이런 게 아니에요. 이 마가보문 9장 앞에 보면 마가복음 6장이 있는데, 6장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우실 때에 그냥 어리버리 하게 그렇게 세운 거 아니고, 6장 우리 7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같이 보죠.

*마가복음 6:7,
7 열두 제자를 부르사...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마가복음 6:13,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12제자를 부르사 그 다음에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아무것도 없이 제자 세운 게 아니라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그냥 권능 그냥 주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실제적으로 효과가 발생될 수 있도록 6장 13절에 보니까, 많은 귀신을 쫓아내는 현장도 경험하게 하신 주님이셨습니다. 근데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귀신을 오늘따라 못 쫓아내니까, 아주 의아해하고 번민(煩悶)에 빠지고 궁지(窮地)에 몰린 것 같은 다급한 상황이었어요. 이때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변화산성에 내려오셔 가지고, 무슨 일이냐 물으시니까,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18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달라고 그랬는데, 그들이 능히 하지 못했다. 19절에 보니까, 그래서 그를 내게 데려오라. 20절에 보니까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격련을 잃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려져서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절에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마가복음 9:18-23,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그럼 어릴 때부터 어떻게 됐냐 22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귀신이 어린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혹시 주님 가능하시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서 도와주십시오. 그럴 때도 주님께선 할 수 있거든요.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그런 말씀 하시면서 22절에 이 아이를 물과 불에 던지고 나중에 보면 25절을 보면요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무슨 일이 벌어지냐 하면,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 그래서 제가 이 내용을 보면서 아 우리 식으로 좀 적용할 게 몇 가지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이 시대의 우리 아이들도 동일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이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 못 하는 귀신, 요즘 아이들이요. 말을 잘 못해요.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두요. 문장 하나를 끝까지 다 못 해요. 헐~~~, 대박!~~그냥 헐 대박 이런 말밖에 못해요. 문장을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명확하게 제대로 못 해요. 애들이 전부 다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으니까, 나는 요즘 우리 아이들 보니까 불쌍해 죽겠는 거예요. 여기 40대 50대 60세 70대 어른들은 그래도 나름대로 분별력을 가지고 이건 잘못된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이 창조 질서를 만드시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제3의 성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우리는 분별력 있는 거예요. 근데 우리 아이들은 제3의 성이 있다고 가르치고, 그 다음에 아이들 소수인권이라는 미명하에 아이들을 완전히 부모로부터 떨어지게 하고, 부모의 올바른 가르침을 갖지 못하게 하고,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못 듣고 그저 보는 게 뭐냐 쇼츠나 보고 엉터리, 엉터리 뭡니까? 지식이나 얻고 이래 가지고 아이들이 너무 분별력이 없고 너무 불쌍하고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한국 사회 이 민족의 역사울이 다음 세대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사가 달라져야 할 줄 믿는 것이에요. 애들을 불구덩이로 물구덩이로 집어넣고 있는 거예요. 애들이 제일 큰 희생자예요.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교육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면 이거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니 대한민국 교회가 제대로 방향을 잡아야 되는 것이에요. 자 이런 얘기하면 아이고 지금 한국 교회 뭐 제대로 되겠냐? 너 23절에,,,

*마가복음 9:23,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그래서 오늘 먼저 생각할 것 이런 과제를 앞에 놓고 우리 예수님들의 묵상 할 때 예수님이 우리에게 뭐라 예수님을 참 믿음을 가르칠 때 할 수 있거든요.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우리가 적용하고 생각할 것 참 믿음이 뭔가?

I. 참 믿음이란 무엇인가?
-오늘 여기서 말하는 참 믿음이 뭔가 대개 이 내용을 가지고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뭐 미션 임파서블, 뭐 이런 얘기 하죠. 근데 여기서 말하는 이 믿음은 예수님 믿지 않는 세상에 어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집중하고 인간의 어떤 그 잠재적인 능력을 발휘해 가지고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거,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물론 세상에 그런 일도 일어나지만, 우리가 말하는 참 믿음은 출발과 근원이 다른 것이에요. 세상의 믿음은 자기 믿음이에요. 자기 실력이에요. 자기 의에요. 자기 힘이에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참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에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유를 필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에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새로운 의의, 새로운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도우심, 그 출발이 다른 거예요. 그 세상은 자기 뜻을 끝까지 이루려고 하는 그런 어떤 능력이고, 여기서 말하는 참 믿음은 뭐냐 하면 나는 부족하고 나는 문제 있고, 나 어렵지만 내 어려움과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의가 내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에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들이 잘 될 때, 그 잘되는 걸 향하여 야 이거 행운이다. 럭키다. 운이다. 이런 얘기 하지만 우리는 럭키가 아니고, 우리는 LUCKY가 아니라, 우리는 GRACE이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함께 한 일, 그게 뭐냐면 하나님의 의, 그게 GRACE에요. 그게 은혜예요. 그 세상에는 럭키지만 우리는 그레이스가 되는 것이에요. 근데 이 오늘 한국 교회 안에 종교인들이 많아 갖고 종교인이 뭡니까? 자기가 살아있는 것이고, 자기 스타일, 자기 프레임, 자기 전통, 자기 신앙적인 어떤 원칙 그 대표적인 바울이에요. 바울은 자기 힘 자기 능력, 자기 실력, 자기 어떤 종교적인 힘, 이거 가지고 악착같이 스테반 때려죽이고, 너 또 다른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근데 바울의 자아가 와장창 깨어지고 난 다음에,,, 아이구야 내 믿음이란 게, 내 믿음이었지, 내 인간의 믿음이었지, 종교인의 믿음이었지, 참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믿음이 아니었구나!!!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 4장 29절에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는 거예요. 같이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4:29,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우리의 믿음은 육체를 따르는 믿음이 아니고 성령을 따르는 믿음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믿는 믿음이 돼야 하는 것이에요. 육체를 따라 나온 육체의 씨가 아니라 은혜의 자손의 씨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어떤 내가 어떤 믿음의 소유자인가를 우리가 한번 마음속에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믿음이 뭐냐,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주권적 개입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이에요. 여러분 행운이란 걸 세상 사람들이 자기 뭐 해가지고 행운이라는 것은 그건 비인격적인 거에요. 근데 우리가 갖는 이 믿음을 통한 결과 역사는 비인격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의 피의 사랑을 통한 인격적인 역사예요. 그러니까 차원이 다른 것이에요. 그리고 이 믿음은 정말 신비한 거예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우리의 실력과 능력을 할 수 없는, 하나님만이 전적 개입하셔 도와줄 수 있는 그 일, 그 일을 이루는 것이 참 믿음인 줄로 믿습니다. 자, 예컨대 오늘 10월 첫째 주일이에요. 오늘 저녁부터 우리는 금식을 하고, 하실 수 있는 분들 하시고 다음 주로 특별새벽부흥회를 하고 그다음 주에는 한국 교회 섬김의 날 8천 명의 목사님들, 목회자들 같이 우리 섬기는 이게 보통 일입니까? 거기다가 10월 27일날 200만 한국교회 연합 예배, 이거는 보통 사역이 아니에요. 그럼 이거 돕고, 이거 되겠나? 저는 10월 한 달이 제 생애에서 특별한 한 달이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고 어차피 주님 내일 내 힘으로 이거 못 하오니, 주여, 제가 참 믿음의 사역자로 이 일을 감당하게 하여 주십시오. 어차피 우리는 우리 힘으론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신적개입을 통하여 은혜를 주셔야만 이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 얘기 하면 우리 교회 내에는 어떤 성도님들도 이거 다 되겠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분, 깊이 우리가 묵상을 해야 될 일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믿음이 뭐냐,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과 우리 세상 사람들의 이성적인 말로 설명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통하여 일어날 수 있는 그 일, 그 일을 이 한 달 동안 여러분들이 일마다 때마다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생애 가장 강력한 1달 중에 1달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토마스 아쿠아이나스라고 중세에 기독교 신앙의 나름대로 신학적인 토대 신학대전을 쓴 특별한 우리 선각자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한국 발음은 아퀴나스인데요. 토마스 아퀴나스 믿음이란 뭐냐 잘 봐요. 믿음이란 여기 참 믿음이에요.
“침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설명할 필요가 없고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지금 웃는 분들은 조금 뭔가 와 닿은 분이고, 어떤 분 이게 뭐 무슨 말인가 10월 한 달 동안 있을 수많은 사역들은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역이에요. 그 사역을 우리가 참 믿음을 가지고 감당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그래야 여러분 10월의 멋진 날이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요, 노예 신분이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었습니다.

갈릴리의 초라한 어부들 중심으로 한 12명을 뽑아가지고, 그 어부들이 1세기 대로마 제국 빌립보에 문을 열고, 로마 로마에다가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그래서 AD 350년, 거의 300년쯤 지나가지고 대로마 제국의 반 인상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야말로 빌립보가 문을 열고 로마가 항복을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그 초라한 어부들이 선한 복음 앞에 오늘 이런 경험을 하고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은 어디 있겠는가, 참 믿음에 대한 시각을 갖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기적 같은 일들을 초대교회 수백 년 동안 베풀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앞 예배 뭐 전전예배 앞 예배 마 미어터지도록 왔어요. 사람들이 이 예배도 마찬가지지만 한번 생각을 해보시라고요. 여러분들이 이와 같이 앉아있다는 것 자체가 참 믿음의 하나의 현장이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죠. 너무나 놀라운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참 믿음을 우리가 끝까지 갖고 있는 한 아니 참 믿음이란 것은 내 중심, 내 힘, 내 능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 신적개입 하나님의 하나님이 해주시는 그 기도의 제목 그걸로만 가능하다고 하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이 내용들을 우리가 집중하는 한, 2천년 지나간 교회역사에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답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에요.

근데 좀 지나놓고 보니까, 10월 27일 우리가 200만이 온라인 100만, 오프라인 100만, 200만이 모인다 그랬을 때, 그게 진짜 뭐 그거 어떻게 저는 몇 달 만에 일이 이루어져요. 몇 년 동안 해도 안 될 일인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게 참 믿음의 기도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교회가 지난 수년 동안 주일 대표 기도할 때마다 우리 장로님들 올라와서 기도하실 때 차별금지법 주님 해결해 달라고 기도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지난 몇 년 동안 사랑의 교회 차별금지법 없애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계속해 왔고, 우리 교회뿐입니까?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가 차별금지법을 해결하게 해달라고 수많은 교회들이 기도했는데, 그 기도에 응답을 하나님 몇 달 동안 허락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광화문 시청 앞 서울역 서대문에서 종로까지, 100만 명의 우리 성도들이 함께 모여 가지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는 예배드리고, 영광 돌리고, 큰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외칠 때에 한국교회에 다시 한 번 주님께서 제3의 부흥을 허락해 주실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럼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어요. 자, 제가 옛날에 무엇이 특별한 사람과 보통사람의 차이를 결정하는가? 뭐로 결정되는가? 비전과 사명에 의하여 보통사람과 특별한 사람이 결정된다고 그랬어요.

그거 가지고 실력 재능 이게 아니라, 그럼 오늘 제가 이 말씀을 드릴 때 어떤 분은 그거 되겠나? 되겠나? 그걸 믿어지는 사람과 안 믿어진 사람의 차이가 뭘까? 그것은 바로 마음 밭에 의하여 결정돼 있는 것이 내 마음 밭이 얼마나 믿음의 옥토로 기경되고 있는가, 거기에 결정되고 있는 것이 다른 말로 하면 주님께서 오늘 이 믿음과 생명의 씨로 말씀에 씨로 기도의 씨를 뿌려졌을 때, 그 씨가 발아가 되고, 또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내 맺을 정도의 옥토가 돼 있는가, 아닌가, 거기에서 결정된다는 것이 따라서 오늘 이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마음 밭이 주님이 원하시는 옥토(沃土)로 기경(起耕)되기를 원합니다. 제자들이 전에는 했지만, 못한 이유가 뭐냐, 마음 밭이 거칠어졌어요. 제자들의 마음에 가시덤불이 생겼어요. 제자들의 마음의 잡초가 생겼어요. 제자들의 마음에 그 돌멩이 이런 것들이 막 생겨가지고 옥토가 아니니까, 뿌려진 씨앗과 생명의 씨앗과 기도의 능력이 발아가 안 되는 것이에요.

II. 참 믿음을 위해, 마음 밭이 기경되어야.
그래서 저는 제 마음도 그러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제가 목회자로서 여러분을 섬기는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 아버지 저는 늘 마음이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참 믿음을 위한 옥토로 마음이 기경되게 하여 주십시오. 두 번째 참 믿음을 위하여 옥토로 마음 밭이 기경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이 일을 위하여 지금 현재 맨발, 마음에 있는 가시덤불과 잡초와 그다음에 아주 날카로운 돌멩이라든지. 그다음 뭐, 뭐 척척 갈라지는 마음 밭, 이런 것들이 새로워져야 되고, 기경이 돼가지고 옥토가 돼야 돼요. 그걸 위하여서는 저 자신도 줄 앞에 서는 그날까지, 줄은 내 마음의 순전한 옥토 밭이 계속 이어지게 해달라고 희한하게도 어떤 잘못된 것들이 들어와 가지고, 내 마음에 오염되고 가시덤불이 생기고, 그다음 잡초가 생기고, 쩔쩍 갈라지는 그런 어떤 메마른 밭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저부터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이 평생 준 앞에 살아온 그날까지 끝까지 이 옥토 밭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 밭에 있는 담장과 벽돌과 넝쿨을 제거할 수 있도록, 그걸 위하여 부정한 종도 계속 쓰임 받게 하시고, 제가요 토요비전 새벽 여배를 위하여 여러분들 많이 한 번씩 강조하잖아요.

제가 토요비전 새벽 예배를 제 마음에 갖고 있는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가 하나님 우리 교회 모든 중직자들 저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마음 밭이 옥토가 되게 해달라고,,, 토요일날 나와 가지고 한 주간 동안 오염되었던 수많은 가시덤불과 잘못된 것들을 제거하시고, 끝까지 순전한 옥토로 주님 기경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토요일 날 나와 가지고, 주일 예배를 위하여 주여 내일 주일 예배를 살려달라고, 주여, 한국 교회 주일 예배를 살려달라고 거기에 기도하시는 장로님들이나 예배 담당자들 가운데 세상 적으로 특별한 분들 대단한 분들 많이 계시지만, 어린아이처럼 주여,,, 하고 내일 예배를 살려달라고, 그 마음의 옥토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도록 그리고 토요일 날 나오면 제가 많이 강조하죠.

토비새에 나오면,
⓵토비새에 나오면, 얼굴이 달라집니다.
⓶토비새에 나오면, 은혜의 저수지, 사역의 병참기지가 됩니다.
⓷토비새에 나오면, 고도의 순간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⓸토비새에 나오면, 성경 암송을 통하여 무의식이 영역이 지배받게 됩니다.
⓹토비새에 나오면, 한국교회 강점을 배우게 됩니다.
⓺토비새에 나오면, 거룩한 습관과 환경이 조성됩니다.
⓻토비새에 나오면, 균형감감을 갖춰 시대적 영향력이 생깁니다.
⓼토비새에 나오면, 은혜의식과 올바른 역사의식으로 무장됩니다.

-이게 다 마음 밭에 관한 것이에요. 여러분이나 저나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로 기경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럴려면 하나님은 은혜의 단비를 내려야 되는 거예요. 마음 밭 유지는 내가 은혜에 대한 간절함, 은혜에 대한 갈급함, 은혜를 사모하는 이 강도가 얼마나 있느냐, 그래서 우리의 마음 밭은 은혜로만 경작된다. 어 우리의 마음 밭이 은혜로 경작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되는 것이에요. 그 은혜에 이슬이 내릴 때 그 이슬을 받는 거예요.

그 산 정상에서 은혜 이슬을 받는 것보다도, 산꼭대기보다도 산골짜기에 이슬이 더 많이 내리는 거예요. 신령한 은혜의 이슬비와 비슷합니다. 인생의 정상에 있을 때보다도, 인생의 골짜기에서 우리의 마음 밭이 훨씬 더 잘 경작되는 것이에요. 잘 나갈 때보다도,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의 마음 밭이 주님 앞에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꼼짝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잘나가는 분들은 그럴수록 더 마음이 주님 앞에 낮아져서 은혜 이슬을 사모하고 마음 밭이 옥토 되기를 계속 집중할 때, 하나님은 은혜 중에 끝까지 사용하여 주시는 것이에요. 이 마음 밭이 다시요. 여러분, 여러분의 이 마음 밭이 어떤지 한번 여러분이 스스로 맨발로 여러분들의 마음 밭을 한번 걸어보세요. 마음 밭에 가시가 있고, 마음 밭에 거친 돌멩이가 있고, 마음 밭에 여러분들 덤불이 있고, 이래 되면 여러분들의 맨발이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의 마음 밭에 어떤 다른 사람들이 맨발로 여러분들의 마음 밭을 걷는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돌짝과 가시와 거친 잡초가 있다면 사람들의 맨발이 상처가 입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위해 할 수 있거든이, 참 믿음을 위한 옥토가 형성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좋은 옥토 마음 밭이 있었던 대표적인 예가 데살루니카는 2장 13절의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었어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아멘 최고의 옥토는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질 때, 그 말씀이 발아(發芽)하고 열매를 맺고 역사하는 마음 밭이 최고의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 2주간 우리는 글로벌 리더들 타경회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해 주셨습니다.

그중에 한 분이 리고렉 목사님이십 지난주 2부 예배와 오후에 특별 세미나를 했습니다. 리고렉 목사님은 제가 볼 때, 페스터즈 중에 패스털 목회자들의 목회자예요. 이런 목사의 목회자 목회자들의 목사가 된다는 거는 그 쉬운 거야. 목사들은 다 알거든요. 어느 정도 저 사람이 껍데기냐 안에 진짜인가 좀 감을 잡거든요. 그럼 그 사람이 나보다 한 1살 반 2살이 많아요. 근데 맨날 나 보고 You are good friend! 라고 그래요. 이번에 보니까 숙소에서 잘 도와주는 사람, 보고도 베스트 프렌드라고 그러더라구, 맨날 베스트 프렌드!!! 그러면 되나 하니까, 나는 디피스트 프렌드라고 했어요. 그날 2부 예배를 오시는데 정장을 하고 오셨어요. 리고렉 목사님은 거의 정장을 아니에요. 거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내가 리 웬 정장 그러니까 아 오늘은 자기 마음이 새로워졌대요. 나는 오늘은 오늘 이 시간은 존 오 주니어다. 그러니까 제2의 저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데 2부때, 은혜를 많이 받았고, 나중에 4부 마치 우리 4부 마치고 난 다음에 세미나를 한 2시간 동안 했는데, 그분이 간증을 하고 그 마음에 있는 ‘사명의 성취’를 위한 말씀을 전하고 간증을 하는데 마지막 20분을 간증을 하는데요. 목사님 막내아들이 그 신앙은 있는데, 우울증에 걸려가지고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그거 우리가 뭐 아는 분은 알지만 그 과정을 얘기한대요. 기가 막혔어요. 제 뒤에 있는 자매들이 헉허 소리를 내고 울더라구요. 여러분 세상에 자기자식 편한 사람 세상이 얼마나 되겠어요. 부모 말도 안 듣고 기도 안 듣고, 말도 안 하고 방안에서 혼자서 마음이 아파하고, 그런 부모들이 얼마나 많아 그러니까 막 우는 거예요.

그 마음 내가 볼 때 리고렉 목사님은 세계적인 목사님이고, 대단해도 마음이 옥토예요. 옥토 그러니까 HEART TO HEART!! 커뮤니케이션 마음과 마음이 서로 소통이 되는 거지요. 이런 얘기를 했어요. 자신은 자기 자신은 천재도 아니고 뛰어난 사람도 아니다. 99번 실패를 했는데, 하나님이 한번 성공시켜 주셨다. 그리고 성공시켜 주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받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나누었더니, 사람들에게 나누었을 뿐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놀라운 열매를 주셨. 그게 마음의 옥토에요. 나는 제일 힘든 사람이요. 크레물린 궁전이야. 마음을 알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부교역자 뽑을 때요. 크레밀린 궁전은 안 된다. 써놨어요.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사람, 우리가 준하면 끝까지 하나님 주신 참 믿음을 지키는 옥토가 되기를 바랍니다.

III. 마음 밭을 어떻게 옥토로 만들 수 있나?
자 마지막으로, 그러면 그 옥토를 잘 귀경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오늘 28절에 보니까 마음 밭을 어떻게 옥토로 만들 수 있나 28절에 보니까,

*마가복음 9;28,29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 전혀 모르겠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냐면 같이 보겠습니다. 이 마가복음은요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고 전투력이 막강한 필치예요. 거기 가면 실패를 했기 때문에, 즉시 바로바로 하는 사람이지, 어방한 사람이야, 근데 너무 자세히 있었어요.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왜 조용히 물었을까요? 창피해갖고,,, 예수님, 잠깐만 이렇게 ‘우리는 어찌하여 안 됩니까?’ 그러니까 주님께서 29절에 놀라운 말씀,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전에 어떤 번역판에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다른 것으로 이런 종류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 기도와 금식, 기도하면 우리 뭐 믿는 사람들이 기도 모르는 사람들 어디에 있습니까?
-기도와 금식으로 마음 밭이 기경된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기도가 여러분의 마음을 참 믿음에 옥토 밭으로로 바꿔주느냐, 안 바꿔주느냐, 이게 길요한 거예요. 그래서 그 기도가 좀 더 금식으로 나 금식이 뭡니까? 우리가 금식에 무슨 공로주의입니까? 금식이 무슨 율법주의입니까? 아니에요. 금식이라는 것은 여러분 금식을 며칠 해보면 내 힘이 다 빠져 자기가 다 빠져 하나님의 의가 내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금식이란 건 금식 10일 20일 30일 제가 40일 금식 기도하는 분 옆에서 제가 10일 동안 해봤는데요. 한 30일 지나고 나면요. 몸도 못 움직여요. 하나님이 움직이게 하셔야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10미터도 못 가요. 하나님이 허락하여 가시는 거예요. 뭘 말하는가? 내가 나를 통제하던 인생에서 하나님이 나를 통제하던 인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내가 나를 통제하면 무슨 일이 생깁니까? 내 마음 밭에 가시가 생기고, 내가 나를 통제하면 내 마음 밭이 돌짝밭이 되고, 내가 나를 통제하면 내 마음의 가시덤불이 생기는 것이에요. 근데 하나님이 나를 통제하면 참 믿음의 기도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 능력과 내 실력으로 기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어지고 연약해진 내 마음속에 주님이 오셔서 주님이 일하시니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죠. 그걸 하나님의 사람들은 수없이 깨달았어요.

여러분 우리 10월 한 달 동안 저 사역들, 특별히 10월 27일 200만이 모이는 거는 하나님이 하셔야 됩니다. 어차피 저도 제가 못합니다. 우리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됩니다. 참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그래서 금식을 하는 거예요. 주님이 모든 일을 통제하여 주십시오. 주님이 주인 되어 주시옵소서. 에스더기도 운동이라고 이용희 선교사님, 사람 열심히 하는데 이번 토요일 날 우리 토비새에 오셔갖고 우리 지금 40일 철야 기도를 하고 있어요. 그분들이 그래서 제가 한 좀 믿는 구석이 있는 거예요. 아 우리 인간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렇게 40일 차려기도 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10.27은 한국교회 마치 은혜의 인천상륙작전과 똑같습니다. 몇 달 만에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인 사실은 한국 교회가 수년 동안 기도해 온 응답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래서 기도와 금세기 외에는 이런 류가 나올 수가 없느니라. 10월 한 달 동안 매주 매주가 기적과 같은 참 믿음의 기도에 응답의 열매를 풍성히 주렁주렁 맺히는, 그래 여러분 평생의 기억이 되는 특별한 하나님이 주시는 10월 한 달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개인의 부흥이 개인의 은혜와 믿음의 기도 역사가, 민족의 부흥의 역사로 연결될 줄로 확신합니다. 여러분 다 손을 펼치시고 ♬주사랑 한없고, 주은의 끝없네. 주 권능을 사람이 어찌할까,,,♪ 우리가 아는 찬송이지만 오늘 믿음의 기도로 고백할 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요약
우리 자녀들을 이 세상 문화 앞에 엎드러지는 시대에, 우리에게 신적개입의 참 믿음을 가르쳐 주셔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불가능을 돌파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가시덤불 같은 내 뜻의 마음 밭을 ‘은혜 이슬 같은 기도와 금식’으로 기경하여 주시고, 은혜의식의 옥토위에 시대를 바꾸는 사명과 비전이 불타오르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자. 사랑의 교회 전교인이 금식하며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를 통해 거룩한 전선의 최선봉에 설 때, 하나님께서 친히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위에 강력한 제3의 부흥을 예비하여 주시길 간절히 금식으로 이루어내기를 간구하자.
-우리 모두가 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마음 밭이 기경되어 가시덤불을 제거할 때에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쓰임 받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할 때마다 아니 믿음이 연약하여 하실 수 있거든이, 라고 반신반의했던 오염된 내 마음 밭이,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돌짝들과 가시덤불을 완전히 제거하여 주시길 원하며,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듯이, 무한하신 주님의 능력을 100프로 신뢰하는 믿음의 용장들 삼아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사랑하는 우리 영 가족들이 이번 한 주간 동안 일터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여러 모양으로 금식하며 기도로 나아갈 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세상의 행운과 럭키가 아니라, 하나님의 그레이스, 은혜의 단비를 경험하는 간절한 금식기도를 통하여 이 나라를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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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29일-글로벌 리더특별사경회)-1부
제목: "사자와 어린 양"- The Lion and the Lamb.1부
말씀: 요한계시록 5:1-1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김건 부목사님(1부)

설교자: 마이크 틴달목사님(런던 왕의교회)-통역:장은진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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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5:1-10,-(1부)
1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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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틴달 목사님(런던 왕의교회)-통역: 장은진 부목사님-1부
저를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저를 초대해주신 오정현 담임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를 함께 예배할 수 있고 또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땡큐!!

10년 전에 저는 사랑의 교회에 처음 방문했었습니다. 제가 선기는 유니언 신학교와 함께 그때 방문했습니다. 정말 잊지 못할 그러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그때 경험했던 소중한 기억들을 함께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뒤에 복도에 보면 오래된 복음을 전하신 분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카튼 레더’라는 미국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십니다.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ooo의 중요한 목적은 인간의 영혼에 하나님의 왕관과 보자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보좌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 문구를 본 지 저는 이제 10년이 지났습니다. 저에게 저와 함께 사역하는 분이 카드를 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카드 매더가 한 그 말씀을 똑같이 저에게 써서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우리가 질문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우리 마음속에 다시 회복해 달라고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없습니다. 왜 그러냐면, 이 목적으로 우리가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오! 주요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당신 안에서 안식을 찾을 때까지 우리 마음은 항상 불안합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성경 본문을 읽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를 찾아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것을 보아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계시록을 통해서 우리가 할 수 계시록은 숨겨져 있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커튼을 이렇게 옆으로 거치면서 뒤에 숨겨져 있는 현실 세계를 볼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이 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안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미지와 또 여러 가지 그림으로 보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의 세상을 우리의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계시록 4장과 5장은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누굴 우리가 누구를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항상 변화되며 항상 어렵습니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연약합니다. 누구를 신뢰할 수 있습니까? 계시록 4장의 답은 하나님께서 보좌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계시며 하늘에 계시며 다스리십니다. 저희 교회에 노래하는 찬양이 한 곡이 있는데요. “위대한 하나님 우리가 찬양을 합니다. 지혜와 능력과 힘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우리는 4장의 하나님은 왕 중에 왕이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신 중인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완전히 우리와 다르게 완전히 거룩하신 분임을 우리가 믿습니다. 우리는 그가 창조주의심을 믿습니다. 그는 그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다음에 그것은 4장의 말씀이고요.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 하나님 위대하시고 능력의 하나님은 그의 거룩함과 완벽함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에 계시는 분이시며, 그 위대하신 분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역사 하실 것입니까? 계시록 5장에 바로 이 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어떻게 보면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계시록 5장에 적혀 있습니다. 계시록 5장은 어떻게 보면, 드라마와 같은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의 3가지 요소를 우리가 보겠는데요. 두루마리, 사자 그리고 어린 양입니다.

첫 번째는 두루마리입니다.
그 다음에 제가 내가 주의 보좌에 앉으신 예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네 글자가 양면에 써있으며 7개의 인으로 봉인이 되어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오른손에 잡혀 있습니다. 오른손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두루마리는 안과 밖에 보 두 곳에 모두 다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많은 내용이 적혀있는 것이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7가지 인으로 봉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완전히 그 어느 누구도 열 수가 없는 인이 봉인되어 있다는 아무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루마리를 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2절에 보면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요한계시록 5:2,
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어 위대한 천사가 큰 목소리로 이렇게 질문합니다. ‘누가 이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누가 이 두루마리를 열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3년 전에 저희 가족은 런던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 저희는 일단 이런 우편을 받았습니다. 정부에서 온 우편인데요. 이렇게 써있습니다. ‘중요합니다. 여기에 써 있는 이곳에 거주하는 거주자만 이 봉투를 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대로 반응하지 않으면은 여러분 보시는 분은 벌금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이것은 투표하라고 저에게 보내줬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선거에 투표할 수 있도록 등록을 하는 그런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편지봉투에 이것을 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만 열 수 있다고 써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권한이 있는 사람 할 수 있는 사람, 여러분이 열겠습니까? 뭐야? 누가 이 인을 떼기에 합당하십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본문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왜 그러냐면, 여기 나와있는 천사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를 샅샅이 뒤졌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이 두루마리를 열 수 있는 사람을 정말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 두루마리를 열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4절에 보면은,

*요한계시록 5:4,
4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이것은 굉장히 개인적으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네 4절에 이렇게 기록이 돼있습니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함으로 내가 크게 물었더니, 계시록을 기록한 요안은 이 인을 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고뇌했냐면, 그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서 울고 또 울고 고뇌함이 울었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 이 두루마리가 도대체 무엇이 길래 여왕이 이렇게 고뇌하며 울었을까요? 요한계시록을 읽은 사람들은 성경을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에스겔서에 이렇게 비슷하게 생긴 두루마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백 년 전에 에스겔이 이러한 똑같은 두루마리의 양면의 글씨가 써있는 그러한 두루마리에 대해서 예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록되어있는 두루마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죄와 악함을 심판하신다고 그 두루마리에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눈에서 아무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루마리를 보면 뭔가 기분이 이상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이 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은 이렇게 인이 하나씩, 하나씩 떼어질 때마다 이 하늘에 있는 이 두루마리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록이 되어있는 것, 그리고 이것은 아주 우리에게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이 두루마리의 마지막은 저와 여러분이 모두 원하는 새 창조의 나라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물에 대한 그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억압하는 자들, 모든 악한 법들, 모든 고난과 모든 아픔을 하나님께서 한 번에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것이죠.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창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누군가가 이 두루마리를 열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까? 얼마나 어려운 세상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요한이 왜 이렇게 고뇌함에 온지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거 열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을 다스리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유는 이 세상을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통해서 온 민족이 복을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을 통해서 그 왕을 통해서 세상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을 다스리기로 이미 작정을 하셨고요. 그리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구원하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둘 다 그렇게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셔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법과 규칙을 그냥 바꾸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창조하셨습니까? 모든 것이 소망이 끊어진 겁니다. 그리고 영화는 울고 굉장히 안 좋은 소식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러나 모든 것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절에는, 우리가 사자의 대해서 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절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5,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장로 중의 한 사람이 울지 마세요. 이렇게 얘기합니다. 유다의 사자를 보십시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다윗의 자손인 사자들, 이 사자는 승리하셨습니다. 이 사자는 이겼습니다. 우리는 승리자이십니다. 이 사자는 이 두루마리를 열 수가 있습니다. 아멘. 이 사자가 누구입니까? 사자만 잠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사자에 대해서입니다.
-런던 제 교회에서 한 2키로 떨어진 데에 동물원 하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파크도 있습니다. 놀이공원 그리고 거기 사자가 몇 마리 있습니까? 그 사자들은 아주 안전하고 이렇게 막힌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굉장히 두려운 존재입니다. 예전에 한 명의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갔었습니다. 다니엘서를 읽고 들어갔었어요.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들어가면 안 되죠. 다니엘에서 읽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굉장히 강렬한 동물입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용맹스럽고 강합니다. 그들의 놀라운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우렁찹니다. 3미터까지 길고요. 250킬로까지 소리가 나갑니다. 사자가 울면은, 8키로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과 장난치지 않습니다. 사자와 그리고 길들이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모든 동물의 왕으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 유다의 사자는 누구일까요?

수백 년 전에 창세기의 이러한 예언이 있었습니다. 유다에게 주어진 이 예언은 야곱의 유다에게 준 예언은 그래서 유다의 자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겠다.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올 때까지 그 왕권은 그대로 유지되겠다. 예언을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유나의 사자라는 것입니다.

800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사야가 예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보내시겠다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이 사회를 정해서 그리고 이 왕은 왕으로 오시지마는 또 전사로 위대한 전사로 싸우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서 싸우고 하나님의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계시록에 보면, 유다의 사자 그리고 다윗의 자손, 이렇게 우리가 봅니다. 바로 그가 이 인을 떼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이 보는 것과 듣는 것에 막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자에 대해서 요한은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어린 양을 보고 너무 다른 거잖아요. 6절에 이렇게 기르게 돼 있습니다.

세 번째, 어린양입니다.
*요한계시록 5:6,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요한이 어떠한 어린 양을 보는데 마치 이 어린 양이 죽임을 당한 것 같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의 보호자 맨 중앙에 서있습니다. 이 어린 양이 어떻게 사자와 어린 양의 이렇게 대조가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죠. 이보다도 다른 동물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사자는 다른 동물을 죽이고 잡아먹습니다. 근데 양보다도 더 사자에게 밥이 되기 쉬운 동물은 없습니다. 왜 그러냐면 양은 온유하고 부드럽고 또 오래 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요한이 보는 이 어린양은 죽임을 당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그리고 이 어린 양은 가장 강한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일곱 뿔을 가지고 있는 어린 양입니다. 이 뿔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곱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눈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오른손에 붙어있는 이 하나님의 그 스크롤을 하나 어린양이 여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이 두루마리를 열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이 땅에 이루실 것입니다. 거즈 굿 앤드 파스 하나님의 좋은 계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왕궁은 반드시 올 줄 우리가 믿습니다. 그런데 이 계시록을 한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사자를 어린 양을 통해서 해석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강력한 사자를 아주 온순하고, 온유한 양을 통해서 해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럼 이 양이 누구입니까? 답을 아시죠? 예수 그리스도인 줄 믿습니다. 바로 이분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까지도 그곳에 서시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줄 믿기 때문입니다. 그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하셨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들은 저와 같은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왜 그러냐면 어린 양의 피로 갖추고 산 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에서 한 분밖에 없는 완전한 사랑인 예수님께서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절대로 죽임을 당하지 말아야 될 그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는 완전히 찢어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완벽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심으로만 알면 아마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죄 지은 자처럼 되시므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이 의로운 자가 된 줄 믿습니다. 그는 완전히 찢어지셨습니다. 왜 그러냐면 저와 여러분이 온전해 지기 위해서요. 근데 여기서 정말 놀라운 사실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될 판 부분이 있습니다. 메시아가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승리하셨습니다. 그는 강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권세를 어린 양으로 사용하십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적들을 한 번에 해치우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본능을 가지신 분이죠. 왜 그러냐면 그분은 완전한 사람이자 완전한 하나님이신데, 그런 줄 믿습니다. 이것을 그의 모든 3년 공생애의 사역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자연 세계를 다스리셨습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드는 오병이어의 역사도 전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줄 우리가 믿습니다. 너무나도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너무 위대한 권위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오셨을 때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그러셨을까요? 왜 그러냐면 저와 여러분 모두 다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 자체가 로마서 3장 2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3:23,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울었다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만약에 우리의 원수들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근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일을 진행하십니다. 그가 죽으시므로 그의 원수들을 용서하십니다. 그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그의 권세와 본능으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죽이심으로 그가 바로 죽은 자 같은 어린 양이 되 오신 것입니다. 근데 여기에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가 숨겨져 예수님은 아직도 어린 양이신 줄 우리가 믿습니다.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을 그는 잊지 않으시고 계십니다. 그가 당한 수치와 수모를 잊지 않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는 울면서 고통이 무엇인지 잊지 아니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떨 때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천국에 가셔서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분이라고 지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요한복음은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도마’ 라는 제자가 의심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는지 증거를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당신의 손과 옆구리와 그가 있는 상처를 도마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계시록 5장에는 천국에 계신 예수님은 아직까지도 죽임 당한 어린 양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창조된 하나님의 세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만 남을 것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는 아주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의 사자로서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을 알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능력을 가지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믿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우리 삶 속에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삶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삶을 이해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납니까? 하며 부르짖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직까지도 어린 양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공생애 사시면서 그때 받았던 상처와 그때 받으셨던 아픔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는 예수님은 연약함과 또 버림받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아름다운 눈, 그리고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자로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능력을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며 그리고 우리가 연약하고 우리가 힘들어 하고 어려워할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중인 줄 우리가 믿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정말로, 정말로 잘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정말로 참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형제 자녀 여러분, 사자가 어린 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거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다스렸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우리 마음속에 임하게 당하고 주님 앞에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가기를 원합니다. 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축복이 함께 되길 바랍니다. 그대로는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요약
하나님은 신뢰할 이 없는 세상에서 ‘거룩한 창조자요, 위대한 주권자’ 이시오니, 날마다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좌와 통치를 온전히 회복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강력한 사자처럼 권능으로 힘주시며 연약한 어린 양처럼 고통과 수치와 아픔을 품어주시니, 가정과 일터에서 새 창조의 전사로서 승리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 모두가 금식하여 헌신해서 10.27일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로 달려가나라를 새롭게 할 때,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위에 복음 통일과 ‘2033-50 비전’ 사명 성취로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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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29일-글로벌 리더특별사경회)-2부
제목: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WHAT TO DO WHEN YOU FEELIKE GIVING UP.(2부)
말씀: 사도행전13:36, 느헤미야 4:6-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호산나 찬양대(2부)
대표기도: 임원빈 장로님

설교자: 릭 워렌 목사님(새들백교회 설립자-목적이 이끄는 삶 저자)-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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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13:36, 느헤미야 4:6-12,(2부)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 느헤미야 4:6-12,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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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사회---우리의 역사상 주일 낮 예배를 우리 특새처럼 하는 건 처음이에요. 우리 릭 워렌 목사님 오늘 나오셔서 임기 55분까지 하셔도 된다고 그래서 55분까지 오늘 한 40분 정도 말씀에 깊은 잔치에 여러분들 함께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또 SNS로 방송으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분들도 오늘 우리 고래 목사님을 통하여 여러분 생애 잊을 수 없는 어떤 변곡점을 맞이하는 특별한 시간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하게 되어 저에게 큰 영광입니다. 특별히 제가 섬기고 있던 새들백 교회는 사랑의 교회와 자매 결혼을 맺은 것 같은 교회인데요. 오정현 목사님은 저의 가장 절친한 친구입니다. 그리고 옥한흠 목사님께서도 저의 절친한 친구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게 돼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띵큐!! 제 인생 구절은 사도행전 20장 24절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사도행전 20:24,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저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역자로서 54년간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남은 생명을 나에게 달려갈 길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바로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께서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사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달려갈 길과 주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는 인생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말 달려갈 길을 가다가 레이스를 하다가 멈추는 경우를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달려갈 길을 가다가 우리가 좌절(挫折)하게 되는 우리 가장 큰 원인들을 오늘 살펴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가장 큰 원인은 좌절입니다. 우리가 달려갈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삶에 놓여있는 낙심과 좌절을 이기는 방법을 배우셔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첫 시작은 너무나 완벽합니다. 그런데 중간쯤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포기해버리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중간쯤 가서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좌절은 너무나 치명(治命)적인 병(病)이자 약(藥)입니다. 굉장히 전염(傳染) 적이기도 하구요. 참고로,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여러분들이 하신다면 여러분들도 같이 좌절하게 될 겁니다.

여러분과 나눈 은혜의 말씀을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느헤미야서를 가지고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느헤미야는 4가지 낙심의 원인들에 대해 알려주고, 그리고 4가지 해결 방안에 대해 알려줍니다. 자, 이게 백 그라운드 얘기를 드리겠습니다. BC 586년에 바벨론이 이스라엘 침략해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라크 지금 바빌론이라 불린 이라크로, 모든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70년 후에 그들은 다시 한 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0년 후에 돌아가 봤더니, 그들의 고향이었던 예루살렘은 폐허(廢墟)가 돼버렸습니다.

마치 한국전쟁 이후에, 우리도 폐허 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벽을 감수했던 그 성벽들이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군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느헤미야에게 꿈을 주셔서, 성벽을 재건하라는 비전과 꿈을 그렇습니다. 그리고 맨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전심을 다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성벽을 중간쯤 건축했을 때, 그들의 정말 처음에 있던 그 열망과 열심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고 싶어 했습니다. 오늘 구절을 제가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느헤미야 4장 6절에서 12절입니다.

* 느헤미야 4:6-12,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육 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이 이야기에서 ‘낙심과 좌절의 4가지 원인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특별히 여러분들이 주목하기 원하는 것은 바로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다. 라는 부분입니다. 사실 좌절과 절망을 우리가 중간쯤 왔을 때, 우리가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산을 중간쯤 나갔을 때, 집을 우리가 페인트 할 때, 중간쯤 페인트 했을 때, 우리의 인생 가운데 중간쯤 왔을 때, 이거를 바로 중년의 위기(危機)라고도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일을 하는 어떤 일을 하건 중간쯤에 와 계시다면, 여러분들은 좌절할 이유들이 있습니다. 느헤미야 구절에는 우리가 4가지 좌절의 원인들에 대해 알게 됩니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피로였습니다.
-낙심과 좌절의 가장 큰 원인 중 첫 번째는, 바로 육적으로, 정신적인 피로가 쌓일 때입니다. 정말로 이젠 더 이상 에너지가 없습니다. 느헤미야 4장 10절입니다.

*느헤미야 4:10,
10 유다 사람들이 얘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정말로 피로가 쌓일 때, 우리는 할 수 없게 돼버립니다. 여러분, 잘 자고 난 이후에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으신가요? 그리고 우리가 피곤할 때면 쉽게 좌절과 낙심하게 됩니다. 신명기 25장 17절 18절 이렇게 얘기합니다.

*신명기 25:17-18,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제가 여러분의 형제 된 우리 영 가족으로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피로와 지친 가운데 있다면, 여러분 공격받으실 것을 기대 예상하셔야 됩니다. 어떠한 공격을 받을까요? 의심(疑心)의 공격입니다. 유혹(誘惑)의 공격(攻擊)입니다. 우리 분노(忿怒)의 공격입니다. 우리 자기 연민(憐憫)의 공격입니다. 정말 좌절과 낙심의 공격입니다. 오늘 오신 분들 중에 정말로 너무 피곤한 상태로 오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좌절과 낙심 쉽게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서 우리가 낙심과 좌절의 두 번째 원인에 대해 보게 됩니다.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우리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느낄 때, 예상보다 일이 더 복잡할 때, 아니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훨씬 더 오래 걸릴 때, 여기 계신 우리 젊은 분들 중에 혹시 에세이를 쓰고 계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쉬울 것 같은데, 이 과제가 너무 오래 걸려버린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낙심과 좌절해서 하기가 싫습니다.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혼란스럽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로 더 이상 너무 계속 밀려나서 더 이상 우리가 쫓아갈 수 없다고 느낄 때, 여러분 혹시 옷장이나 서랍을 정리하다가 다 꺼내놨는데, 야 이거 도대체 어떻게 정리해야 되지 하고서 좌절한 적 있지 않으십니까?

저는 1년에 한 번 정도 제 서랍장을 정리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꺼내서 바닥에 널어놓습니다. 그리고 제가 분류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분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분류를 하다가 좌절하게 됩니다. 다시 그대로 서랍장에 넣고 닫아버립니다. 제가 살고 있던 집에 지반이 무너져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예 한쪽 벽이 아예 지붕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롭게 인테리어를 해야 됐었습니다. 아니 얼마나 오래 걸릴지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웠고, 그런데 더 혼란스러웠던 것은 정말로 쓰레기더미가 너무나 많이 나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시멘트와 와이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이프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것을 흙무더기나 쓰레기라고 표현을 합니다. 우리가 걸려 넘어지는 쓰레기들입니다.

우리가 재건축을 할 때, 무엇이 되든 거기에는 많은 무더기들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서도 동일합니다. 여러분의 살면서 무언가 새롭게 세워나갈 때, 많은 잡동사니와 쓰레기들이 우리를 실망케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했습니다. 느헤미야 4장 10절의 후반부에 바로 두 번째 우리가 좌절하게 되는 원인이 나옵니다. ‘유다 사람들에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삶에서 잡동사니와 흙무더기는 무엇입니까? 이 모든 흙무더기와 잡동사니들은 우리가 계속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방해물(妨害物)들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이미 깨어진 세상입니다. 죄로 인해 모든 것이 망가지고 깨어진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지금 날씨가 망가졌고, 경제가 망가졌고, 우리의 몸도 망가져서 완벽하게 우리 평강치 않습니다. 잘 아실 겁니다. 쓰레기 무더기들은 우리가 일을 하려고 할 때, 이것들 땜에 계속 시간을 낭비(浪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의 에너지도 빨아버리고, 어떠한 많은 문제들과 경쟁 순위가 되고, 우리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가 걱정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지침과 피로라고 했고, 두 번째는 바로 혼란함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혼란함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드는 그 혼란스럽고 좌절스럽게 만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 시간 3가지 법칙을 주겠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쓰레기와 흙더미를 치울 수 있는 방법, ⓵첫 번째 저는 삶에서 내가 이걸 하겠다. 라고 결단을 해야 됩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 계속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오늘 이 순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계속 쌓이기만 할 겁니다. 여러분, 쓰레기는 우리가 보지 않는 순간 이미 갑절로 늘어나 있습니다. 이게 바로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사실 제 인생 가운데 제가 쌓아놓은 쓰레기 더미들을 제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여러분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게 방해물들을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 삶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겸손(謙遜)하십시오. 아니면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기도를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시편 25편16절.

*시편 25:16,
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편 10편 25편 16절입니다. 주님 믿음의 자리를 보여 주십시오. ‘제가 지금 큰 어려움과 절망 가운데 있나이다.’ 그리고 세 번째 우리가 낙심과 좌절하게 되는 원인에 대해 배워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대표가 피로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하게 됩니다.

두 번째 이유는 혼란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에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입니다. 세 번째 느헤미야가 만났던 문제는 바로 실패였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바로 실패였습니다.
-이 세 번째 원인이 실패감이 우리를 좌절케 하는 원인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부족해서 이제는 내가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내 삶을 봤을 때 더 이상 못하겠다고 느낄 때, 손들고 나 이제 그만할래, 포기한다고 말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헌신하고 약속해버렸을 때, 우리 모두는 우리 삶 가운데서 실패할까봐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 성벽을 건축하던 모든 자들에게 같은 증상이 일어났었습니다. 성벽을 절반쯤 걸쳐냈고, 그러나 너무 오래 걸려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지쳤고, 혼란스러웠고, 그리고 실패 감을 느끼게 됩니다. 느헤미야 4장 10절입니다. 후반 절입니다.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다른 번역본에서는 ‘우리는 영원히 건축할 수 없을 거다.’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정말로 그들의 실패 감을 느꼈고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삶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으신 적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내야 되는 어떠한 제안서나 페이퍼가 있을 때,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시간 안에 할 수 없어서 실패 감을 느낄 때, 나는 정말 부끄러운 사람이고, 우리가 정말로 이루길 원하는 목적들이 있었을 때, 그러나 나이만 들어가고 있을 때, 내 삶이 실패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성벽 재건은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려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감을 잃었고, 그리고 그들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여러분들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계획보다 일이 오래 걸릴 때, 무엇을 하십니까? 방금 말씀하셨던 저는 사역을 54년간 했습니다. 사실 그 많은 시간 동안 저는 하나님을 기다렸던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불편한 곳이 어디냐면, 하나님을 대기하고 있는 대기실(待機室)입니다. 여러분 혹시 하나님은 느긋하신데, 여러분은 바쁘신 적 있으신가요? 너무나 지쳐버리고 그럴 때, 너무나 혼란스럽고, 그리고 난 실패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성공했다고 느낄 때, 괜찮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실패했다고 느낄 때, 교육을 받았다고 얘기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살면서 아 이건 안 되는구나, 라고 배웠던 교육의 시간이었습니다.

저희가 새들백 교회에서 사역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려고 했지만, 많은 것들이 실패했었어요. 이걸 했는데 안 됐고, 다른 사역을 했는데 또 안 됐습니다. 99번째 다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100번째가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가 성공했을 때, 이제 세미나 열고서 사람들에게 이거 하면 됩니다. 라고 제가 사실 저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게 바로 열쇠입니다. 여러분 실패하길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것이 안 되는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여러분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잠시 잠깐 우리가 배우는 어려움의 시간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피로와 지침을 느꼈고, 혼란을 느꼈고,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리고 네 번째, 느헤미야는 두려움 자체를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원수들이 예루살렘 성벽 제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수들이 많은 방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원수들이 있던 첫 번째 일은 그 일을 비난하기 시작한 겁니다.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정말 대법원 건너편에 이 아름다운 안아 주신 본당을 건축하기로 계획을 하셨을 때, 많은 사람이 했던 첫 번째 일은 바로 비난(非難)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오정현 담임목사님께서 그 비난을 들으셨다면, 우리가 여기 있을 수가 없습니다. 느헤미야 많은 사람들이 성벽재건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수들이 했던 두 번째 방법은 바로 조롱(嘲弄)하기 시작한 겁니다. 느헤미야가 했던 모든 사역들을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랑의 교회 안아주실 본당을 지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조롱했었는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본당에 대해 농담 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잃어버린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인생에서 위대한 일을 하실 때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 비난을 받으실 겁니다. 저 참 많은 비난과 비판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는 비판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저는 비판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한 명의 청중을 위해 삽니다. 제가 저를 좋아하고,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저를 싫어한다면, 그건 그들의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행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정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청년 분들과 모두 어르신 분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선택하시는 만큼, 행복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행복은 선택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천국에 간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붙지 않을 겁니다.

‘너 왜 모세같이 사역 안 했니?, 너의 아버지 같이 왜 살지 못했냐? 그렇게 묻지 않으시고 너의 언니같이 너 왜 살지 못했니?’ 그렇게 묻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여러분, 여러분 그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인생을 살지 않는다면 누가 여러분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살아야 되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본인의 사명을 완수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원수들은 비난했고, 두 번째는 조롱했고, 그리고 11절에 나옵니다. 드디어 그들이 위협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위협이 여러분 인생에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금 핍박 받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4장 11절입니다.

*느헤미야 4:11,
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이거는 우리를 좌절케 되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한다면, 좌절하게 되는 원인입니다. 그럴 때 성벽을 재건하다 느헤미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 죽을 수도 있어요. 느헤미야는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언제나 좌절을 일으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만약 좌절하셨으면 여러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으셔야 됩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 내가 진짜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이거는 좌절이 아니라, 내가 혼란일 수도 있고, 실패하는 거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피로일 수 있고, 위협일 수 있겠다. 여러분, 느헤미야의 4장을 보신다면 이걸 발견했습니다. 누가 먼저 좌절했을까요? 느헤미야 4장 1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느헤미야 4:12,
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그들 가까이 사는 유다 사람들의 밑줄을 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사람들과 같이 다니신다면 여러분들도 부정적이 될 겁니다. 이렇게 하고 좌절케 하고 두렵게 하는 방송을 보신다면 여러분 그렇게 느끼시게 될 겁니다. 온라인에서 여러분 두렵게 하는 기사들을 보신다면 여러분 계속 두려움에 사로잡힐 겁니다. 그들 가까이 사는 적군 사람들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이 4장은 좌절의 4가지 원인들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도 알려줍니다. 여러분 삶에서 지금 이 메시지가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 인생 가운데 언젠가 나온 사람이 좌절하게 될 겁니다. 그때 이 설교 노트를 여러분 꺼내시고, 느헤미야 시대에 했던 사람들의 행동을 여러분도 하시길 바랍니다. 어떠한 병 때문에 여러분 좌절할 수 있고, 여러분의 직장 땜에 좌절할 수 있고, 어떤 여러분들 결혼 생활에 어려움 때문에 좌절할 수 있고, 받았던 정말 나쁜 성적 때문에 좌절할 수 있고, 우리를 좌절케 하려는 이유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좌절하기를 이겨내고 싶다면, 이 4가지를 하시길 바랍니다. 여기 있습니다. 이기는 방법입니다.

1) 이기는 방법, 첫 번째, 육체적으로 쉬십시오(쉼). 육체적으로 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가장 영적으로 사는 길은 제대로 자는 겁니다. 어떨 때는 잠을 제대로 자는 것보다 기도할 때가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는 잠을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몸을 만드셨을 때는 여러분들이 잘 관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127장 2절입니다. NLT 버전으로 영어를 읽겠습니다.

*시편 127:2,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 한국인들은 참 열심히 일하는 민족이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걸로 유명한 저희들입니다. 한국인들은 참 열심히 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를 오늘 이 자리에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 좀 쉬시길 바랍니다. 쉼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하나님께서 십계명에도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의 여자를 범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고, 거짓말하거나 훔치지 말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일주일 중 하루는 여러분 쉬어라.

여러분 여러분의 세계에서 누구를 죽인다는 생각은 못 하실 겁니까? 아니면 어떠한 정말 범죄를 이렇게 성범죄를 일으킨다고 생각을 못 하실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일주일 중에 하루를 정말 쉬시네요. 그러면 일주일 중 하루 쉬지 않는다. 안식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행복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이야기를 여러분을 오랫동안 생각하셔야 됩니다. 우리의 최고는 우리의 쉼을 요구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사실 일주일도 쉬지 않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탄도 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사탄이 롤 모델이 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안식하지 않는다면 사탄과 같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 시간 정말로 한국에 다시 한 번 부흥(復興)의 불길이 불기를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정말 평양 대부흥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아주사스트리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부흥이 일어섰습니다. 르완다에도 비슷한 시기에 부흥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리고 그 3곳에 일어났던 다른 지역에서 일했던 부흥이 각각의 다른 대륙들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 정말 큰 대 부흥의 사건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엘리야가 40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정말로 씨름했던 그 시기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정말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셨습니다. 정말 다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온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부흥 이후 엘리야는 너무나 지쳐버립니다. 정말로 정신적으로 완전히 고갈됐습니다. 정말 번 아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영적 대부흥 이후에도 우리가 정말 피로와 낙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로 산 정상 이후에는 우리가 내려와야 됩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우울증을 하나님은 이렇게 치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이후에 다시 일어나서 다시 한 번 음식을 주셨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흥 후 엘리야는 너무나 지쳐버립니다. 정말로 정신적으로 완전히 고갈되었습니다. 정말 번 아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정말 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영적 부흥의 이후에도 우리가 정말 피로와 낙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도 산 정상에는 엘리야가 너무나 우울했던 나머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죽여주시옵소서.” 그런데 엘리야의 우울증을 하나님은 이렇게 치료하셨습니다. 정말로 상수리나무에 인도하셨고, 그리고 거기에 재우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많은 동물들을 이용해서 음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재우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다시 일어나서 다시 한 번 음식을 주십니다. 물을 주셨고, 그리고 엘리야가 다시 잠들었습니다. 정말로 이거를 여러 번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울증을 치료하실 때 가끔은 재우시고 먹이시고 재우십니다. 여러분 정말로 잘 쉬시길 바랍니다. 낙심을 절망 가운데 이겨낼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우리 또한 좌절을 이겨내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해야 됩니다.

2) 이기는 방법, 두 번째는 나의 가장 큰 약점을 보강하는 것입니다(약한 것 보강 체크).
-나의 가장 큰 약점을 보강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내 인생에서 내가 어디에 가장 큰 약점이 있는가를 체크하셔야 됩니다. 정말로 체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약점을 알게 됐을 때, 그리고 그 약점을 보강하기를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바로 그 일을 했습니다. 성벽을 재건할 때도 성벽 가운데 어려운 약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말 약점들이 있었고, 성벽을 재건하는 중에 가장 약한 부분으로 적군이 쳐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이렇게 했습니다. 약점을 보강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느헤미야 4장 13절입니다.

*느헤미야 4:13,
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많은 적군들이 그들을 죽이겠다고 했을 때, 그들을 절망했지만, 그들이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보강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교회 여러분, 제가 여러분 사랑하기 때문에, 정말 이 말씀 잘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좌절했다고 여러분들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을 수는 있습니다. 옳은 일을 잘못된 방법으로 할 때 우리는 좌절케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약점을 보강(補强)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정말 동원하시길 바랍니다. 동역 자들과 함께 하시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다시 모든 것들을 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 뜻은 바로 우리 인생에서 최선을 위해 차선을 제하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살면서 모두 쓰레기더미를 치우시길 바랍니다. 가지를 깨끗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우리가 할 순 없습니다. 여러분 만일 촛불을 여기서도 태우고 여기서도 태운다면 생각보다 밝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최선을 위해 차선을 제하라. 그런데 다른 했던 한 가지는 바로 그들을 종족에 따라 배치한 모셨습니다. 제가 있는 소그룹 다락방은 제가 정말로 20년이 넘게 함께 사역했던 분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히브리서 4장 25절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좌절했을 때, 첫 번째 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두 번째 약점을 보강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 다시 집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를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시하시길 바랍니다.

3) 이기는 방법, 세 번째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정말 바라보는 그 눈이 크면 클수록, 여러분의 문제는 작게 보일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본다면, 여러분 절망하게 될 겁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본다면 여러분 우울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주님을 본다면 여러분은 평안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어디를 주목하고 있는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제가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어떻게 다시 집중할 수 있을까요? 느헤미야 4장 9절입니다.

*느헤미야 4장 9절,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패닉 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염려 마시고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지 말 것은, 여러분 하나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한다면, 좌절치 않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좌절하고 있다면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다시 한 번 여러분들 말씀드리겠습니다. 10월 27일 날, ‘한국교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를 여기 서울에서 열리게 됩니다. 우리 200만 한국교회 연합 예배 큰 기도회에 여러분 모두가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200만이 아니라, 300만 400만이 모여서 대한민국을 기도하는 그자들에게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느헤미야 4장 14절,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주님을 기억하라는 부분을 정말 밑줄 치시길 바랍니다. 제가 무엇에 대해서 기억을 해야 될까요? 첫 번째 하나님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선하신 분임을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케어 하시고, 우리 삶에 일하는 모든 일들을 감찰하시며, 하나님께선 모든 것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정말로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여러분, 지금 두려움 가운데 있다면, 여러분이 좌절 가운데 있다면, 여러분이 좌절케 하는 생각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좌절케 하는 생각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 누구도 여러분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좌절하는 생각을 해달라고 누가 여러분에게 총을 겨루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겁니다. 여러분이 선택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좌절을 선택하는 만큼 좌절해야 됩니다. 요나 2:7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요나 2:7,
7 내가 정말로 밑바닥에서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 내가 모든 소망을 잃었을 때 내가 다시 한 번 주님을 바라보았노라.
-라고 요나는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선한 생각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주님 내가 좌절 가운데에 있을 때 주님의 말씀 가운데서 나를 다시 살리셨나이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입니다. 좌절에 굴복하지 말고, 정말 그냥 싸우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정말로 싸우시길 바랍니다. 정말 10만 번, 100만 번, 좌절과 싸우며 살아왔습니다. 14절입니다.

*느헤미야 4장 14절,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좌절에 굴복하면은 우리가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정말로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 좌절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비밀이십니다.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나에게 오라. 여러분 정말로 좌절의 해답은 사람입니다. 바로 그 사람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지금 좌절 감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 저를 사랑의 교회로 보내셨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포기하고 싶으시다면, 여러분의 결혼 생활을 포기하고 싶으시다면, 여러분의 꿈을 포기하고 싶은시다면, 여러분의 교육을 포기하고 싶으시다면, 아기를 갖길 포기하면, 뭐가 있었던 포기하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정말로 진짜 포기할 준비가 되겠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Don’t do it!!! 절대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포기가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며 나가겠습니다.

♣요약
우리가 좌절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좌절을 이기고 옳은 길로 나아가야 한다. 좌절의 원인인 피로와 혼란과 좌절과 실패가 있다면 육체적으로 쉼을 가져야 하며, 약점을 보강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좌절과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 또한 예수님께 한 번도 정말로 나의 삶을 드린 사람이 없다면, 오늘 주님을 온전히 영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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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29일-글로벌 리더특별사경회)-3부
제목: "요단강 건너에선"- Meanwhile across the Jodan.(3부)
말씀: 룻기 1:1-7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할렐루야 찬양대
대표기도: 김재원 장로님(3부)

설교자: 미첼 리 목사님(그레이스 커뮤니티교회)-통역: 정상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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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1-7,(3부)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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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나님 은혜 속에서 이렇게 다시 또 만나는 것이 너무 기뻐요. 제가 여기 사랑의 교회를 방문하고 난 이후에 제 삶에 새로운 변화가 하나 생겼습니다. 제가 하나 고백을 하려고 하는데요. 이제 안경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제 바로 앞에 있는 게 안 보이는 시기가 왔어요. 제가 가진 아주 큰 아이패드를 선물로 받을 만큼 이제 눈이 안 좋아졌습니다. 지금 시계도 잘 안 보이니까.

미리 죄송합니다. 좀 긴장하죠. 듣는데 그걸 하나님의 말씀이 이 안경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희가 신문에 나오는 헤드라인을 보거나 세상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게 되면 우리의 시선을 잃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 앞에 있는 말씀을 보기 위한 그 안경이 필요합니다. 제가 그래서 여러분의 시선을 좀 고정해 드리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눠드리려고 하는데요. 우리가 오늘 살펴본 룻기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이 룻기의 시작점에 대한 배경을 좀 이야기를 해보죠. 제가 룻기 1장 1절에서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룻기 1:1-2,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이건 굉장히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이거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사사 시대에 있었던 이야긴데요. 사사시대의 상황이 어땠는지 혹시 아시나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때입니다. 단순히 불순종한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요. 이 히브리서에서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죠. 아주 신실하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은 더 그것보다 더 강해요. 바람피는 뜻이에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람 피웠어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따든 것입니다. 삶이 매우, 매우 안 좋게 됐습니다. 너무나 고통을 당하게 됐어요. 하나님께 절규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죠.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백성이 읍소(泣訴)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할 구원자를 일으켜 주세요. 그래서 그 구원자가 와서 백성을 구원해 줍니다. 그리고 나서 평화가 이어지는 걸 보죠.

우리가 이 평화로울 때에 무엇을 보게 되냐면요.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걸 봅니다. 이렇게 되는 일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쳇바퀴 돌듯 돌게 되는 걸 봅니다. 이 사사 시대는 정말 슬픈 시대라 할 수 있어요. 이때 우리가 아는 이 룻기의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얼마나 상황이 열악(劣惡)했으면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가족들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게 돼요. 모압 땅이라 하는 그 땅으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이 모압 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과 원수와 같았던 사람들이 살던 땅이에요.

그런데 이 엘리멜렉이 가족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생활을 시작하죠. 마치 저희 부모님이 1974년도에 이 미국으로 이주하셨던 것처럼요. 이 엘리멜렉의 가족이 이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그곳에서 생활을 할 때에, 굉장히 큰 비극이 일어나죠. 엘리멜렉이 죽구요. 나오미의 두 아들들도 그 땅에 묻히게 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상태가 되죠. 그래서 나오미가 6절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데 이제 어 다시 그럼 그 땅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예요.

이제는 나오미와 또 함께 했던 두 며느리와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오미가 함께하고 있는 두 며느리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돼요. 만약에 모압 여인들이라서 그 땅에 가서 그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그리고 이렇게 남편을 잃어버린 두 자부에게 새로운 남편을 얻게끔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죠. 그래서 나오미가 8절 9절에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룻기 1:8-9,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그래서 나오미가 이 두 며느리를 축복하면서 하나님께서 헤세드, 인자와 자비를 보여주시길 원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해세드’라는 단어는 풀기에 굉장히 복잡한 단어일 수 있어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때 나오미가 그녀들에게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이 오르바란 이름을 가진 한 며느리는 그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룻은 이 시어머니를 붙잡고 떠나지 않죠. 며느리가 남편 없이 시어머니를 붙드는 것이 참 기적이죠. 룻이 나오미 시어머니에게 한 가지를 선언하게 되는데요.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룻기 1:16-17,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여기 모합 여인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와 같았던 그 여인이 유대인 시어머니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민족이 내 민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 나와있는 이 모압 여인이 사사시대에 나온 그 어떤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믿음이 있었던 것을 보여주죠. 이제 두 사람이 베들레햄으로 돌아옵니다. 베들레햄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됐던 때예요. 그 베들레헴에 있었던 옛 이웃들이 깜짝 놀랍니다. 정말 나오미가 맞아 그러자 나오미가 말하죠. 더 이상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마세요. 나오미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나오미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오미는 자신을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말합니다. 이 마라는 이 단어는 슬픔을 이야기 합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났는데 이제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비우셨다구요. 하나님이 나에게 수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려움을 주셨어요. 하나님이 내 삶은 더 어렵게 만드셨어요. 이제 나오미와 또 그의 자부인 룻이 매우 연약한 상태에 놓이게 됐습니다. 땅도 없고, 음식도 없고, 심지어 돈도 없는 상황에 놓였어요. 어떻게 이제 여기에서 머물 수 있게 될까요? 물론 여러분들이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지는지 룻기서을 쭉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서 제가 한번 요약해 드릴게요.

아 엘리멜렉의 이 친척 되는 보아스라는 사람을 루시 만나게 됩니다. 보아스는 굉장히 고귀한 자라고 이 성경에 나와있는데요. 보아스가 룻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풉니다. 그리고 루슬 보호해주죠 모압의 그 원수 철천 지 원수인 그녀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결혼하는 선택을 합니다. 이제 룻기의 마지막 부분을 한번 살펴보시면요. 4장 13절 그리고 17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룻기 4:13-17,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아주 가난하고 그리고 원수 철천지원수와 같았던 그 모압의 여인이 이제는 고귀한 유대인을 통해서 구원을 받게 된 겁니다. 그리고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아들이 이젠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되게 되죠. 이 다윗왕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구원하실 구원자가 이 다윗의 왕의 왕조를 통해서 오시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 하신 그분이 오시게 되죠. 우리가 이렇게 살펴본 룻기의 이 사건, 그 현장, 그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오십니다. 이 사사시대 전체에 걸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됐어요. 한편, 요단강 건너에서는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십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보아스아 룻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만 알 뿐이었어요. 한편, 요단강 건너에선,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이전에 이미 모압 땅에서 열심히 생활을 하고 있었던 가운데에 한편, 요단강 건너에서는 베들레헴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역사를 하고 계신 거예요. 오늘 이 표현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한편, 요당강 건너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우리 삶과 세상 가운데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 신비를 알려주는 좋은 표현이라 생각해요.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한편, 요단강 건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일으켜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한편, 요단강 건너에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동안 바벨론 시기를 견디고 있을 때, 한편, 요단강 건너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돌아올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400년 동안 그 침묵기가 이어질 때도, 한편, 요당강 건내에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할 구원자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난 다음 3일 동안의 그때 한편, 요단강 건너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한편, 요당강 건너에서 여러분, 여러분 삶 가운데서 전혀 이루어진 관계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생각하시는 일은 있으신가요? 이 한편, 요단강 건너에선, 혹시 전혀 반응이 없는 아내나 또 배우자나 자녀들 있으신가요? 한편, 요단강 건너에선, 정말 원하지 않았던 이 건강 상태에 대한 진단 혹시 받게 되셨나요?

한편, 요당강 건너에선,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정말 어려운 시기에 놓여져 계시지는 않나요? 한편, 요단강 건너에선, 한편, 요단강 건너에선, 혹시 삶이 막막하다고 느끼신가요? 혹시 희마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혹시 하나님이 나를 버리고 계신다는 느낌을 갖지 않으세요? 한편, 요단강 건너에서, 이 룻기서의 말씀은 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에 한편, 요단강 건너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 삶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간증하고 싶은데요.

※제가 섬기고 있는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가 막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제가 2016년부터 담임 목사로 거기를 섬기고 있는데요. 저는 2세 재미 교포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로 백인 아프리칸 라틴어 2세 1세들이 이렇게 다 모였습니다. 제가 2016년에 부임하고 나서, 위임 예배를 드릴 때, 한 노트를 제 이 메일 박스에 넣어주신 것을 발견했어요. 2002년도에 우리 교회에서 제가 오기 한참 전에 이 기도제목으로 올려져 있었던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그 페이지 중의 1부분을 이렇게 밑줄을 쳐서 저에게 주신 건데요. 여기에 그 내용이 이렇게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의 곡 읽어주신 내용을 한글로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새로 오실 담임 목사님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만을 위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교회를 세웁니다. 어딘가에서 중요한 삶의 결정을 내리는 그 청년을 위해 우리는 그의 학업, 친구, 가정생활, 영적, 육체적, 건강과 순결 인생 경험 미래 배우자, 미래의 자녀 신실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언젠가 그가 우리와 함께 하게 된다면 2002년에 이미 우리가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정말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새로 오실 우리 담임 목사님은 이미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제 인생 가운데 그 2002년도에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번 말씀을 드릴게요. 제가 정말 인생 가운데 가장 낮은 계곡 가운데 거하고 있었습니다. 제 교만과 오만 때문에 일어났던 어려움들이었어요. 정말 광야 생활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혼자 있는 것 같았어요.

나오미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수치를 주시고, 나에게 너무 힘든 것을 주신다고 이야기를 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2002년도에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어요. 제가 그 노트를 이제 위임 예배 때 받았을 때, 우리 성도들에게 농담을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잘못 기도하셨네요. 한편, 요단강 건너에선,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일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20년 더 지나서야만 알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제 아내인 사라를 준비하고 계셨구요. 그리고 저희 다섯 자녀와 저를 훈련시키고 계셨죠. 정말 저희 가정은 폭탄 맞은 것 같은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제가 있을 이곳을 위해 저를 준비하고 계셨던 거예요. 제가 생각했던 이 인생의 여정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섭고 훨씬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가장 아름다운 여정이기도 했어요. 한편, 요단강 건너에서, 이라는 이 표현을 볼 때마다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일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 그리고 우리의 죽음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하던 그때에도 그리고 우리의 실수가 우리 삶에 임하게 된 저주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끝나게 된다. 생각할 때라도, 한편, 요단강 그 건너에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완벽한 구원을 준비하고 계시고, 완벽하게 우리를 변화시키려고 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 삶 가운데 어디에 있으시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보고 계시고, 함께하신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편, 요단강 건너에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역사를 집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은 그 내용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내일 보게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집필하시는 그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클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사실을 계속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서로를 더 격려하셨으면 좋겠어요. 믿으시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요단강 건너에선,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십니다.

♣요약
우리가 희망이 없다고 느끼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오늘 어떻게 해야 할지 갈 바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주님의 복음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한편, 요단강 건너에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보시고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이 계신 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실 줄 확신하고, 우리 삶 앞에 정말 무엇이 놓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허락해 달라고 항상 간구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약속과 또 구주 되시는 주님 때문에 더 이상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신 그 약속 안에 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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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29일-글로벌 리더특별사경회)-4부
제목: "만민이 기도하는 집"-House of prayer for the nations(4부)
말씀: 마가복음 11:17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시온찬양대
대표기도: 박금희 권사님(4부)

설교자: 스티브 리비 목사님(웨일즈 마운트프레전트교회)-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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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11:17,(4부)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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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랑의 교회에서 함께 하게 된 것이 매우 큰 영광입니다. 내년이면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창립 200주년입니다. 지난 200년 역사 가운데 우리 교회 가장 잘 한 사역은 사랑의 교회와 함께 동역자로 교회를 개척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과 섬김과 사랑을 통해 유럽 전역에 보여주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오늘 제목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은 마가복음 11장 17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11:17,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성전을 가리켜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성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길을 가리켜 ‘기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님을 위한 집을 세우라고 말씀하실 때, 주님은 그곳이 기도하는 장소임을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성전에 올 때에는 희생 제물을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들이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기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제물을 씻기 위해 제물을 물두멍으로 가져옵니다. 그리고는 정결하게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에서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고 있는 대제사장을 그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왜 대제사장을 언급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가장 거룩한 곳인 성전은 우리에게 이 하늘과 땅을 자세히 보여주면서, 우리 인생에서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하나도 없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4:6,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부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성전이나 성막의 구조를 보면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났는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성전에 있는 기구들을 살펴봐도 우리는 기도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동역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8절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18,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을 우리가 통과하든 간에 어떤 기도를 드리든 간에 기도하는 그 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구약 말씀에 등장하는 제단의 분향 단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롭고 거룩한 향은 이 땅에서 들인 우리의 기도가 하늘 가장 높은 곳으로 상달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장로들이 향으로 가득 찬 금 대접을 들고 있는데, 이는 곧 성도들의 기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이든 간에 들여지는 우리의 모든 기도는 하늘로 올라가서 아름다운 생명의 향기를 내며 우리 삶에 있는 모든 죄악의 악취들을 제거하는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가끔 제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얘기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입니다. 저는 이야기 합니다. 가장 위대한 일이 기도인 줄 믿습니다.

우리의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이러한 능력과 유익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돈을 내며 기부하는 일도 훌륭합니다. 때로는 선교도 엄청난 축복입니다. 선교 여행은 선교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들이 웨일즈를 향하여 보여주신 선교 역시요.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바로 ‘기도’입니다. 바로 기도하는 집이 이 말씀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지난번 제가 이 강당에 섰을 때, 많은 분들이 제게 찾아와 유럽 전역에 있는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 제가 특새 했을 때, 일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이 특새 예배 가운데 유럽 전역에 있는 교회를 동지로 여기며 부르짖는 그 기도를 듣고 저는 방으로 돌아가 한참을 울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기도 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그 기도를 하늘보좌로 올리실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적 개입의 놀라운 역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시면 하나님께서 유럽 전역에 있는 교회들을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는 교회,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극소수인 나라에서 사역하고 예배드리는 교회들이 전 세계에는 대단히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하면 중독자들도, 약한 자들도, 가정에 깨어진 자들도 구원받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께서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통해 사업하시는 분들도, 학생들도 다음 세대들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성전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며 사랑의 교회 또한 역시 그러한 줄 믿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그저 기도하는 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종종 놓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며 저 역시 그랬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었습니다. 모두가 기도하는 집이었습니다. 심지어 성막과 성전시대 이전에도 그 집은 모두가 기도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8절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3:8,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로 정하실 것을 성경에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구약 말씀에서 결코 이스라엘만 기도하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신약 성경을 보면 모두가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집이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세상을 향한 심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브라함 역시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기 전에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 말씀에서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 출신이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모세는 이방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애굽 백성이 그 이후에 출애굽을 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을 들어왔던 정탐꾼 갈렙은 바로 그니스 족속 출신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들이 가난한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일은 바로 창녀 라합을 기생 라합을 이방인으로부터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라합은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된 일이 있습니다.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 역시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나아만은 시리아인이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를 찾아가 복음을 전했고 이들의 열방을 사랑하신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으로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심정이 담긴 시편들을 보십시오.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 오면 나눠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심정이 이 말씀들이 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15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구약의 모든 부분 율법이나 모든 선지자들과 시편까지 인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9절부터 읽겠습니다.

*로마서 15:9-12,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구약 말씀을 읽다 보면 누구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창녀나 포악한 자들, 어떤 악인들이든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모두 기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병원에서 사용하시는 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병동을 찾아가 모금을 전할 때마다 목사님께 욕하고 조롱하며 아주 무례하게 굴었던 한 남성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목사님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무례하게 굴었던 일이 매주 일어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성 환자가 있습니다. 어떻게 계속해서 저한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목사님께서 다가가 옆에 앉으시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에 대해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남자는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어. 라고 대답합니다.

목사님께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저 의자에 앉아 계신다면 당신은 예수님께 어떤 말을 건네실 것입니까? 그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던 저는 무섭다고 말할 것입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찰리 더 말하십시오. 그래서 그 남자 언제든 대답합니까? 또 다른 할 말이 있으십니까? 그 남자는 대답합니다. 저는 그분이 제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십시오. 그래서 그 남자가 그 이야기를 또 한 번 꺼냅니다. 다른 또 할 말 있으십니까 아니요. 이제 없습니다. 다음 주가 되고 목사님이 다시 병동을 찾아갔을 때 침대에는 다른 환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간호사에게 그 환자를 다른 곳으로 옮겼느냐고 물었을 때, 간호사는 그때 그 환자는 숨을 거두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께서 다시 돌아가려고 하자, 간호사가 붙잡고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지난주에 돌아가신 뒤로 그 환자는 그 의자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 환자도 완전히 변화되어서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또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다고 말합니다. 간호사들이 그 환자를 발견했을 때, 그 환자는 침대 밖으로 자기의 다리를 꺼내려고 애를 쓴 것 같이 보였고, 나아가서 그 환자는 의자를 껴안은 채 숨을 거둔 것을 우리는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령의 주는 메세지인 줄 믿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서만 선포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바로 교회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성전인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 교회를 주제로 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며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한 교회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많은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작은 처소들에서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그곳은 교회로 세워지고 성장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있었고,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트라 마게도니아 에베소 데살로니가 베레아 고린도 모두 그러한 교회들이 세워진 곳입니다. 이곳에서 간수도 또한 장사하는 사람 누구든지 심지어는 귀신들린 소녀들까지도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신약 성경을 계속 읽다 보면, 우리는 더 많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발견하게 됩니다. 로마에서 갈라디아의 빌립보와 볼루세에도 만민이 기도하는 집들이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도록 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은 계속해서 세워졌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며 교회가 세워질 때마다 그곳에서 구원받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받는 자들이 늘어갑니다.

아프리카에도 인도와 아라비아 유럽 심지어 제가 있는 웨일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세우셨습니다. 인구의 70프로 이상이 구원을 받게 되는 엄청난 대 부흥을 경험한 우리 웨이즈에서, 교회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은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만민에게 고금을 전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200년 전에 어떻게 예배당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세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인터넷도 자동차도 그러한 모든 비행기까지도 없었지만, 심지어 끔찍한 가난 속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끼니를 때우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광산에서 일하며 겨우 받은 임금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원주민들을 위해 기도했고, 주님은 기도하는 집을 곧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해 웨일즈 선교사들을 보내셔서 원주민들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아프리카에 있는 짐바브웨와 홍보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는 웨일즈 선교사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집’으로서 세워진 그 교회들로 말미암아 수만 명의 사람들 수만 명의 성도들을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사실 콩고의 그 대 부흥을 겪었을 때 리더로 섬겼었던 데이비드 데이비스는 제가 사역했던 웨일즈 교회에 있던 사람입니다. 데이비스는 나인틱 엘리디엘스 그때에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섬기기 위해서 살아갔던 청년입니다.

그는 제게 찾아와 홍보 대 부흥 가운데 하나님의 강력한 인재가 임했고, 이를 통해서 수천 명이 구원을 받으며 그 땅 가운데 더 이상 범죄와 부패가 사라지는 역사가 있었다고 저에게 전해왔습니다. 그들은 인도를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이를 통해 웨일즈 선교사들은 인도에 있는 마니푸르주로 가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땅 가운데 ‘만민이 기도하는 집’들이 세워지고 부흥은 일어났으며 이제는 그 땅 가운데 인구의 41%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구원을 경험한 줄 믿습니다. 저는 여기서 더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을 위해서도 기도했고 한국으로 첫 선교사가 1866년에 이 땅을 밟았습니다.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가 제 기회가 세워진 지 41년이 지나고, 이 한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제는 제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유럽 전역에 200개 이상이 되는 그 교회를 우리 사랑의 교회를 통하여 세우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구약에서 시작하신 그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제는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들께서 보이신 그 사랑과 성의를 저는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저를 격려하고 저의 사역을 함께 섬겼던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격려하시며 계속해서 기도의 자리로 이끌어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요약
하늘로 올라가신 큰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끗케 하심을 믿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담대하게 기도하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 되어 열방을 위해 기도할 때, 유럽 전 지역과 세계 민족 가운데 교회를 세워야 하며, 구원받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하기를 간구하며, 우리 교회가 금식하고 헌신하여, 10,27일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로 달려가 나라를 새롭게 할 때,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위에 복음통일과 2033-50 사명성취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1부 예배 사진 및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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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예배 사진 및 동영상


♣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29일-글로벌 리더특별사경회)-2부
제목: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WHAT TO DO WHEN YOU FEELIKE GIVING UP.(2부)
말씀: 사도행전13:36, 느헤미야 4:6-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호산나 찬양대(2부)
대표기도: 임원빈 장로님

설교자: 릭 워렌 목사님(새들백교회 설립자-목적이 이끄는 삶 저자)-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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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예배 사진 및 동영상

♣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29일-글로벌 리더특별사경회)-3부
제목: "요단강 건너에선"- Meanwhile across the Jodan.(3부)
말씀: 룻기 1:1-7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할렐루야 찬양대
대표기도: 김재원 장로님(3부)

설교자: 미첼 리 목사님(그레이스 커뮤니티교회)-통역: 정상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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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예배 사진 및 동영상

♣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29일-글로벌 리더특별사경회)-4부
제목: "만민이 기도하는 집"-House of prayer for the nations(4부)
말씀: 마가복음 11:17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시온찬양대
대표기도: 박금희 권사님(4부)

설교자: 스티브 리비 목사님(웨일즈 마운트프레전트교회)-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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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회 세미나


♣주일예배 오후 세미나(주후 2024년 09월 29일)
제목: “사명성취”
말씀: 사도행전 2:17-18
사회: 조성환 부목사님
찬양인도: 연합찬양대
 
설교자: 릭 워렌 목사님(새들백 교회 설립자-목적이 이끄는 삶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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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가장 중요한 말씀 중 하나는 사도행전 2장 17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교회가 태어나고 나서 교회가 탄생되고 나서 사도 베드로 가 있던 가장 첫 번째 설교이기도 합니다. 바로 오순절 날 일어났던 일입니다. 바로 그 오순절 날 AD 33년에 예수 글씨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말 주님을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왔던 모든 사람들의 그 이야기를 듣고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성경을 말합니다.
 
오순절 날 모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왔다고,,, 그리고 그때 정말로 처음 교회가 탄생됐던 그 시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만 민족이 그곳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교회가 처음 탄생된 그 시점부터 교회는 다민족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정말 모든 사람들이 오는 곳입니다. 모든 남녀노소, 남녀를 남녀 모두 포함해서 모든 민족 사람들이 저는 미국에서 정말 큰 대학 교회를 다니며 샀습니다. 제가 담임을 했을 때 저희 교회에서 67개의 다른 언어로 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새들백 교회를 온 민족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새들백 교회가 천국에서 우리가 모인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우리가 원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천국에서는 다 소수 민족이 될 겁니다. 천국에서는 우리와 같이 한국인이거나 미국인이거나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의 몸은 온 민족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민족들이 왔고 그리고 모든 남녀노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았을 때, 베드로는 그 현상을 설명해야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요엘 2장을 인용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장 2장 17절 18절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 2:17-18,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지금 첫 번째 교회에 설명한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첫 교회 시작에 ‘말세’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 뜻은 바로 말세가 교회 첫 시간 날 같이 시작됐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지금 말세가 2천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세에 더,,, 모든 연령을 초월해서, 남녀노소를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정말로 어린아이와 모든 어르신들까지, 딸과 아들들을, 정말로 사명 성취를 위해 하나님께서 쓰임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한 명도 나는 빠져야 돼, 란 사람 없습니다.
 
지금 사랑의 교회 모여 계신 모든 성도님들 중에 40세 이하인 분들, 40세보다 어리신 분들은 다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게 아니라 40세 미만이신 분들 다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을 믿고 있습니다. 저는 확실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명성취’의 마지막 세대를 이룰 세대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 아들과 딸들입니다. 정말 우리 사명성취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사랑의 교회에 와서 여러분들의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왜냐하면, 9년 후에 바로 성령 강림주일, 2033년 6월 5일에, 그날이 바로 전 세계 교회 2천 번째 생일입니다. 2천 번째 세계교회 생일이 됩니다. 바로 이 2천 번째 생일날, 역사적인 생일날 우리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근데 2천 번째 예수님의 생일, 교회 생일날 여러분 어떤 선물 준비하셨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모든 걸 가지고 계신데, 우리가 어떤 선물을 드려야 될까요? 어떤 생일선물을 예수님께 드리시겠습니까? 정말로 모든 걸 가지셨나요? 예수님이 안 가지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무엇이냐면 우리가 사랑을 드리지 않으면 예수님은 우리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네, 우리가 주님께 신실한 믿음을 드리지 않는다면 주는 우리의 믿음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2천 번째 생일에 예수님께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이것입니다. ‘모든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입니다. 모든 전 세계 사람들의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선택하셔도 이 사명을 성취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대 사명 시대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오정현 담임 목사님은 여러분들이 이 대사로 성취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지원할 것입니다. 이제는 됐습니다.
 
만 40세 이상의 분들 다 일어나시거든요. 만 40세 이상입니다. 조금만 더 일어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든 젊은이들이 방금 일어났었는데요. 우리 젊은 분들 우리 일어나시는 어르신들 바라보시겠습니다. 여러분들, 우리 선배님들을 통해 배우셔야 합니다. 우리 선배님들 바라보고 그대를 멘토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젊은 청년들에게 필요한 4가지가 성공하기 필요한 4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멘토이고, 두 번째는 롤 모델이고, 세 번 째는 파트너이고, 그리고 친구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이 이 4가지를 여러분들을 위해 밀어주실 분들입니다.
 
정말로 지혜가 많으신 분들이고, 베드로가 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을 때, 우리 정말로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고, 그리고 젊은이들의 환상을 본 것이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며, 우리 어르신 분들께서는 꿈을 가지실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면 바로 4세대에 걸쳐서 우리 다세대를 거쳐서 함께 사역하는 것입니다. 우리 40세보다 어리신 분들, 여러분들 비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자,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우리 지금 서 계신 우리 만 40세 이상이신 우리 선배님들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든 젊은이들의 비전, 함께 가야 우리 대 사명을 우리가 함께 연합하고, 동역할 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보면 우리 모든 남성들, 우리 자매님들, 우리 모든 아드님들, 우리 모든 따님들, 모든 젊은 분들, 모두 어르신 분들 우리가 함께 동역하고 하나가 된다면, 이 시대의 대 사명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어르신들은 청년들이 필요하고 우리 청년들은 어르신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젊은 청년들 우리 모든 선배님들이 향해 창밖을 위해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사명을 성취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바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가장 큰 연합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함께 동역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전 세계 교회, 2천 번째 생일을 우리가 목표로 해서 같이 대 사명을 이뤄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개신교회들이 2033년을 향해서 가는 개별적인 목적들이 있지만, 다른 교단들도 목표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 기독교 학교들도 2천 번째 생일을 위한 개별적인 목표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 기독교 비즈니스 회사들도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크리스천들은 이 대 사병명 성취하기 위해서 4가지를 품고 같이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사명성취’라는 것은 정말로 크게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하나의 운동이 아닙니다. 정말로 이 세상에는 많은 좋은 운동들과 신앙 집회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들이 잘 되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사명성취 이 FTT는 대 계명을 실천하는 모든 믿는 자들의 연합입니다. 이 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함께 연합한 것입니다. 정말로 이 FTT는 개별적인 운동이란 어떠한 단체가 아닙니다. 어떠한 교란도 아닙니다. 대 계명을 실천하는 모든 믿는 자들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하나의 대 사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5가지의 대 사명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에 있고, 마가복음에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도 있고, 요한복음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도 있습니다. 만일 성경에서 5번 이상 나온다면 여러분 주의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셨던 마지막 말씀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모든 권한이 모든 권세가 나에게 임하였나니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의 이름으로 세례를 풀고 그리고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베풀고 내가 너희 가르친 모든 것을 분노하여 지키게 하라.” 둘째는 “내가 세상 끝나기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사랑의 교회 그리고 모든 정말 100만개가 넘는 모든 교회들은 바로 이 대 사명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교회는 정말로 이 멤버십의 국민 우리 정말 성도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성도가 아닌 분들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단체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바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을 다가가기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정말로 겸손(謙遜)한 사람들만이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165개국을 다니면서 많은 교회들을 제가 방문했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165개국을 다니며 정말로 100만 명이 넘는 목회자들을 교육시켰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교회같이 이렇게 대단한 교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장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 새들백 교회를 한 명의 동역자와 시작했습니다. 제 아내입니다. 첫 번째 설교는 제 아내에게 했던 설교였습니다. 제 아내가 여기서 너무 길다고 그리고 나서 이제 계속 내리막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44년 후에 아직도 길다고 제 아내가 얘기합니다. 그런데 지금 새들백 교회는 정말로 4개의 다른 대륙에 우리 위성교회들이 있습니다. 새들백 베를린이 있고, 새들백 마닐라가 있고, 새들백 홍콩이 있습니다. 새들백 벤쿠버가 있습니다. 정말 많은 곳에 새들백 교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새들백 교회를 정말로 특별하게 만든 것은, 정말로 저희 교회가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모든 우리 성도님들을 새로운 곳에서 교회 개척을 위해 197개국의 성도님들을 직접 파송해서 교회를 개척시킨 첫 번째 교회입니다. 정말 2004년 어느 날, 제가 언젠간 설교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모든 민족을 향하여 우리가 나아가야 된다고, 그러면 성도님들, 우리 새들백 교회가 정말 모든 민족의 모든 나라를 향해 가는 첫 번째 교회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라고 제가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부교역자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성도님들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 성도님들을 보내면서 저희가 편할까요? 피스 플랜이라는 것을 제가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5가지 삶의 원칙에 기반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5가지를 하셨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으로 모든 민족을 향해서 모든 나라를 향해서 우리는 복음을 향해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셨습니다. 잘 들으셔야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12명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몇몇 특정한 사람들과만 더 깊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3명을 멘토링 하셨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이 예수님과 정말로 멘토 쉽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3명만이 겟세마네의 동산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 변화산의 산상에 이 3명만이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어떠한 다른 사람들을 편애하였던 것일까요? 맞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지만, 120명을 훈련시키셨고, 12명을 제자로 만드셨으며, 3명을 멘토로 삼으셨습니다. 3명은 나중에 야구서에, 갈라디아서의 이 세 명을 교회의 기둥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시간 모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모든 사도들 덕분입니다. 자 여기에 원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많은 시간을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대 사명을 이루길 원하신다면, 여기에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되는 건 첫 번째로, 우리가 사도 바울과 디모데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 모든 크리스천들은 사도 바울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훈련시킬 선배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디모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훈련을 시키는 우리 다음 세대입니다. 그게 바로 제자가 되는 것이자, 제자 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최근에 엄청난 책을 쓰셨습니다.
 
바로 ‘온전론’이라는 책인데, 여러분 아직 안 읽으셨다면 꼭 읽으셔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나라로 가서 믿는 자들을 만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모든 민족을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주일 저녁, 오후에 여러분들이 모이셨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제자라는 사실을 저에게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 대 사명을 위해 진지하신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모이신 모든 분들은 여러분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우리 믿음의 선배를 찾으셔야 되고, 여러분들보다 어린 우리 크리스천들을 우리 후배들을 양육할 준비가 되셔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사도바울이 필요하고, 우리가 그 받은 훈련을 또 흘려보낼 우리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이것을 해야만 하고, 우리가 해야 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가 10년 안에 정말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복음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한번 피스 크램, 우리 ‘평화 사회’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P’는 우리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E’는 성도들을 영작으로 무장시키는 제자 훈련입니다.
‘A’ 는 바로 자비를 베푸는 사역입니다. 그러나 이 3가지가 무엇일까요? 이 3가지는 사실 성경의 은행물입니다. 2번이나 우리 성경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마을로 들어가시며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십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습니다. 정말로 이 가르치는 사역은 모든 안 믿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모든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정말 그들을 구원하는 사역입니다. 가르친 사역은 우리가 그들을 정신적으로 무장시키는 일입니다. 결국 우리가 정신적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까요? 바로 그들을 교육시켜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을 받지만 하나는 게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고치는 것은 지금 영적으로, 육적으로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 3가지의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은 여러분들이 해야 되는 사역입니다. 전파하고, 가르치고, 고치시는 일입니다. 정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고 정말로 정신적으로 무장시키며 가르치며,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정말 고치는 살고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중에 3분의 1은 많은 사람들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전파하고, 가르치며, 고치는 믿음입니다. 다른 종교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는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며, 가르치는 것이며, 그리고 몸을 고치는 우리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나라에서 첫 번째 대학들과 첫 번째 병원들이 많은 나라에서 크리스천 선교사들을 통해 시작된 것입니다. 정말 많은 나라들에서, 여러분 많이 모르실 겁니다. 교회가 바로 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2천 년 전에 병원을 설립한 곳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어떤 정부가 우리에게 보험을 준 것이 아니라, 어떤 회사들이 병원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병원을 설립한 것입니다. 우리가 코로나라는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정말 전 세계를 강타했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우리 교회가 시작되고, 첫 300년 동안 로마시대에 정말로 2번이나 큰 팬데믹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역병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페스트 병이라는 것입니다. 전염병이 뭐였습니까? 이 두 개의 전염병으로 인해서 로마 시대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세균이나 경변에 대해 정보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 이 대도시가 병을 전염시키는구나, 하고서 대도시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대도시를 떠나서 사람들이 갔을 때 오직 크리스천들만이 다시 그 대도시로 돌아가 죽어가고 병든 사람들을 정말 케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으로 인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친절과 고심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정말 아픈 곳에 함께 모여 때 우리가 케어 하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정말로 사람들에게 나누는 모습을, 허스피털, ‘병원’이라고 그들이 이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교회에 있어서 여러분 정말로 자부심을 가지시길 원합니다.
 
정말로 교회야말로 가장 큰 연합체입니다. 이 기독교보다 더 큰 연합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연합체는 정말 중국에 있는 모든 인구보다 큽니다. 교회 내 인도보다도 큽니다. 교회는 중국과 미국과 유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합한 숫자보다도 더 큽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이 대사병을 성취해야만 합니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9억 명 있습니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10억 명이 있습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인도에서 이 종교를 맺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슬림을 믿는 사람들은 14억 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오직 1400만 명밖에 안 됩니다. 사실 이거보다도 10배나 더 많아야 되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대학살 때, 5세대가 다 전멸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간 전 세계에는 26억 명의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인 중 3명 중 1명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정말로 민족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민족들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단어들과 똑같은 단어를 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이란 단어와 여러 가지 개념들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26억 명들과 함께 위한 답변을 정말로 이 한 가지만 물어야 되는데 정말 아버지와 내가 성령을 믿느냐, 그러면 그들은 말할 겁니다. 믿는다고 26억 명에게 묻는다면 이거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그렇다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죄를 위하여 돌아가셔 부활을 믿는다고 믿는다면 26억명의 크리스천들은 ‘예’ 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 사명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지, 아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모른다고 할 겁니다. 그러나 그 똑같은 그들에게 크리스천들에게 정말 예수님께서 올라가셨고 나중에 다시 재림하신 것을 믿느냐를 묻는다면, 그들은 예, 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경을 벌써 첫 번째 교회를 시작하는 것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크리스천들은 ‘예’ 라고 답할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래서 우린 이렇게 부릅니다. 문화적 크리스천들이라고, 왜냐하면,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기독교라고 하지만 그들은 개인적으로 정말 알지는 못합니다.
 
사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슬람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습니다. 불교 신자들 중에서도 그냥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불교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힌두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음 그러나 안타깝게 사항이 적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 사명, 속에서 우리가 2가지를 해야 됩니다. 예수 글씨의 복음을 한 번도 못 들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직접적으로 다가야 되고, 그러나 우리가 교회들을 다시 한 번 복음으로 재무장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라고 기독교인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예수님과 정말로 개인적으로 우리가 정말 교제가 없는 사람들에게 다시 재복음화를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 대 사명을 위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롤모델 사실 세계 2차 대전에서 우리가 가져왔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2차 대전이 가장 많은 연합부를 단시간에 모집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 2차 대전은 어떤 한 나라가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 2차 대전을 이길 수 있었던 방법은, 바로 70개의 연합군이 모여서 우리가 이 악을 멈추겠노라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70개의 연합군들은 바로 연합국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에서 사실 모든 나라들이 자기네들의 국기를 가지고 나와서, 캐나다인들은 캐나다 2개를 가지고 나와서, 연합군에 참여했고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나이지리아 국가를 가지고 나와서, 연합군에 참여했고 스리랑카 사람들 가져와서 그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이 악을 우리가 전멸하겠노라고 함께 보이기 시작했죠.
 
여러분, 정말로 여러분들을 깃발 아래에서 같이 나오실 여러분들이 소속된 단체 사랑의 교회라는 이 단체에 정말로 함께 이 사랑의 교회로서 나오시길 바랍니다. 만일 다른 교회 분이시라면 그 다른 교회의 이름으로 같이 연합군에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이 ‘사명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동역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어떤 것을 가장 걱정했는지 아시나요? 예수님은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들이 하나 되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 2번이나 기도하십니다. 2번 다른 구절에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정말로 그들이 하나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나를 믿는 것을 따르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조금 더 구절을 지나서 이렇게 얘기도 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우리 나의 제자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독교의 연합과 하나 됨은 그냥 하나 됨을 위한 하나 됨이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들이 하나 되어야 한 일은 바로 세계선교의 마무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어떤 백그라운드에서 왔던지,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로 나와서 대 사명을 성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10월 27일 200만 한국교회 연합 예배의 큰 기도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거는 정말로 어떠한 한 기독교 그냥 단체나 집회가 아니라, 한국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참여해야 되는 가장 귀하고 중요한 사역입니다. 어떤 한 교단을 위한 일도 아니고, 정말로 이 대한민국 땅의 부흥을 간절히 원하는 모든 세대와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와서 기도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는 모습은 이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는 연합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교단들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점을 사랑하고, 품는 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성경구절 그 어디에도 너희들이 다 똑같이 되어. 라고 한 적은 없고 너희들이 다르지만 하나가 되어, 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여기 계신 모든 사람을 각자 개성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사실 사람들은 다 각자 개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완전 동일한 쌍둥이들도 서로 다른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모두 다 지문이 다릅니다. 예 지문이 다 다르고요. 네 우리 손바닥도 다르고요. 우리 정말로 목소리도 다르고, 우리 발바닥도 다르고, 우리 눈도 다르고, 우리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의 심장도 다르게 띕니다. 사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동일한 사람 창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명 성취를 위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차이점과 다른 점을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만 민족을 우리가 대상으로 전도하기 위해서는 만 민족들이 다 함께 모여서 교회가 모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실 모든 다른 종류의 음악도 필요합니다. 제 가족 중에 5명이 있습니다. 근데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라디오스테이션을 듣습니다. 근데 사실 우리가 같은 뮤지컬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가 함유할 수 없다. 라고 한다면, 그런 건 불가능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민족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각자 모든 다른 개성을 가진 교회들이 하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음 9년 동안 함께 연합되어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 번째 교회 생일날 예수님께 이렇게 우리가 말할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사명을 성취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에게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셨던 말씀은 바로 이 대사명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셨던 유언은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하나의 포인트가 되어야 됩니다.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구원은 내 삶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어야 됩니다. 사실 제가 목사로서, 많은 사람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에 임종을 함께 지켜봤습니다. 사실 마지막 임종을 마무리하는 모든 사람들이 유언을 남기는 그 유언이 참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천국으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셨던 가장 중요한 마지막 말씀은 사실 사명 성취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복음을 전했던 방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우리가 전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께서 하셨던 복음 전파하는 롤 모델을 알려드립니다.
 
사실 제가 성경을 읽고, 읽고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실 거에 전하셨는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공부했습니다. 정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 접근하셨는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도 같은 방식으로 전도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농부들에게 접근하셨을 때는 그들에게 좋은 밭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부들에게 접근하셨을 때는 그들에게 물고기 낚는 자에 대해 얘기 하셨습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우물가 있는 여인에게 가셨을 때는 정말 생수, 생수 정말로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같은 비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전하신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실 증거 증거를 하셨을 때 혹은 그 증거 하셨을 때 질문을 시작한 적이 많습니다. 그들의 감정을 만져주셨고 그들의 어려움 먼저 살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복음을 전하는 이 세일즈 방법으로 이걸 다 외워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했던 것은 성도들에게 정말 이것을 외우고, 외우고, 외워서 이걸 다 외웠을 때야 우리가 드디어 전도할 수 있다라고 가르치기만 했습니다. 사실 기독교인들과 비 기독교인들이 동의하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사실 둘 다 전도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전도라는 것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믿기에는 정말로 이걸 다 외워야만 전도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일즈맨같이 변해버립니다. 세일즈맨은 증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정말로 최고의 친구, 제일 친한 친구에게 가서 어떠한 세일즈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음은 듣고 싶어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정말 베스트 뉴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베스트 뉴스를 정말 잘못된 방식으로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자연스럽게 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대사명 중의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네, 사도행전 일장팔절입니다.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너희들이 나의 어떠한 증언을 하는 자가 될 것이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증인과 우리 변호사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이 법정에 간다면 참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정말로 변호사는 법을 외워야만 합니다.
 
변호사는 이 법을 외워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됩니다. 정말 모든 특별히 판사를 어떻게든 설득시켜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우리 변호사들이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들이 나의 변호사가 될 것이라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증인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증인’은 무엇을 아는 사람일까요? 증인은 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내가 본 것’입니다.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저것이 이렇게 일어나는 것을 내가 보았습니다. 사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 특정한 성경 구절을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기독교가 시작된 1,500년이 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의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15세기에 프린터가 나왔을 때, 우리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1500년의 기독교 시작 동안 우리가 성경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가 앞에 나와서 강단에 나와서 성경을 읽고서 우리가 꼭 듣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성경 외우시기도 바랍니다. 정말 저는 성경 구절 천 구절이 넘는 구절들을 외웠습니다. 정말로 그 성격구절이 필요할 때 성령께서 저에게 역사에 주셔서 그 성경구절 다시 한 번 꺼내주십니다.
 
그러나 증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증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씨를 뿌린 자의 비유입니다. 여러분 잘 알고 계십니다. 씨 뿌린 자에 비유 씨를 뿌렸는데 4가지 다른 종류의 땅에 어 이 씨가 심겨졌습니다. 사실 이 다른 4가지의 밭은 다른 4가지의 마음 밭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 복음에 있어서 열린 마음과 닫힌 마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다른 네 종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마음들입니다.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가운데는 4종류의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바로 이 내게 다른 밭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정말로
 
첫 번째 땅은 안 좋은 땅이었는데. 그 땅은 바로 마음이 굉장히 완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예 복음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란 이름을 얘기해도 화를 내는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시멘트나 아스팔트 같이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심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시멘트에 씨를 뿌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정말로 그 시멘트의 땅에다가 씨를 뿌린 다음에 그냥 새들이 와서 먹어버릴 뿐입니다. 그럴 때는 여러분들의 시간과 그리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완악했던 사람이 1년 후에는 부드러워질 수 있습니다. 아 그러나 이
 
첫 번째는 완악한 마음 정말 딱딱한 단단한 땅입니다.
두 번째는 얕은 땅입니다. 땅에 씨가 심기긴 했지만, 여러 가지 감정적인 반응들이 있을 수 있고, 그러나 좋았던 감정의 반응들이 복음을 들어왔는데 사라집니다. 이것은 바로 아주 기초적인 표면적인 믿음을 얘기합니다.
세 번째는 바로 많은 잡초들이 있는 마을 땅이었습니다.
이 잡초들은 무엇을 뜻하려면 만일 내 마음 가운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다가올 때 예수 글씨의 사역에 아주 조금만 참여하고 정치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나 예수님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버는 데는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사실 예수님보다도 내 성적을 잘 받고 어떤 학위를 따르는 데 더 관심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아주 조금만 알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바로 비옥하고 좋은 땅입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 어떻게 이 사람이 좋은 마음을 가진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작년에 56개의 다른 종류의 야채 채소들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17개의 다른 종류의 나무들을 과일 나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사람들을 세우고, 키우고, 제자를 세우고, 교회를 이 세워나가는 일은 제가 이 가든을 키우면서 배웠던 것들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제가 가든을 키우면서 잡초들에 대해도 배웠고, 정말로 이 성장시키는 촉진제에서도 배웠고, 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정말로 가지치기를 해야지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도 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좋은 땅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 제가 옥수수 하나를 땅에 심는다면 좋은 땅이 있다면 정말로 이게 자라서 저에게 한 알의 옥수수를 다시 주지 않습니다. 정말로 많은 옥수수 열매들이 맺히고 싹 수 천 수 만 개의 옥수수 알갱이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알의 옥수수로부터 좋은 땅에 심기면 정말로 많은 팝콘들을 얻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좋은 땅을 찾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만일 여러분들이 대사명과 함께하길 원하신다면 정말 사명의 성취를 위한다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지 좋을까? 그들이 어떻게 해야지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지 알려드리려 합니다. 정말로 예수님께서 하셨던 이 비유는 진리고, 진리기 때문에 사실 숫자적으로 본다면, 4분의 3의 사람들은 사실 복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회사에 있건, 캠퍼스에 있건, 4분의 3의 사람들은 사실 복음에 관심이 없습니다. 정말로 다친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가 좋은 땅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명에게 우릴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땅들이 정말로 좋은 열매 좋은 땅이 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사실상 조개와 같습니다. 조개가 어떨 땐 열려있기도 하고, 근데 사실 조개는 거의 대부분 닫혀 있습니다.
 
제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들에게 정말 영정의 진리를 얘기했으니 그들은 정말로 제 자녀들이 열려있는 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시기들은 다른 시기에 닫혀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제가 그들과 면담을 하고 1대1로 정말로 일루 와, 라고 했을 때 그들은 언제나 닫힌 마음이었습니다. 만일 제가 제 아들에게 ‘줘시와 잠깐 나랑 대화해야 돼‘라고 한다면, 바로 마음이 닫혀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남편들은 제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아실 것입니다. 아내에게 ’자기 우리 대화좀 해야돼‘ 라고 했을 때, 모든 용기 있던 남자들이 겁쟁이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하나님의 두려움이 그 남편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들의 마음을 다치게 됩니다.
 
사실 가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복음 전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만일 저를 목사님께서 이 길에서 그냥 만나시고 저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제가 그리고 만일 목사님께서 저에게 다가오신다면 예수 그리스를 아는가라고 얘기하신다면, 이 저의 마음은 아실 겁니다. 제 마음은 열리지 않을 겁니다.
 
혹시 제 아이들이 정말 영적으로 마음이 열렸을 때, 언제였냐면 제가 앞에 앉아서 운전을 할 때 그들이 뒤에서 그냥 게임하고 있을 때, 그들의 마음 가장 열려있었습니다. 그들이 뒤에서 그냥 게임하고 있을 때, 그들의 마음도 유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릴렉스가 모든 예수님 만났던 사람들 중에 정말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은 다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 사람들이 왔을 때, 병이 있던, 여러 가지 문제가 있던, 질문이 있던, 여러 가지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관계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저는 지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예수님께 나왔던 모든 사람들의 아픔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저는 목회자들을 이렇게 훈련시켰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대형 교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길 원하신다면 이것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고통에 집중하십시오.
 
사실 4종류의 우리 땅이 있다면, 25프로의 사람들은 정말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사명성취를 위해서 해야 되는 첫 번째 사명은 이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제 삶 가운데 제 주위에 고통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영안이 보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정말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 주위에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우리가 단지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정말 첫 번째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보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너무 바쁩니다.
 
여러분, 조금만 천천히 가신다면, 여러분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결국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 어떤 사람도 고통이 없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여러분, 그 집에 근처에 예수님을 안 믿는 무신론자가 한명 있습니다. 그냥 다친 상태가 아니라 정말로 안티 크리스천입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책을 썼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 이웃은 제가 얼마나 많은 매거진 나왔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나라들을 방문했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얼마나 참 사역적으로도 정말 은혜를 입었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원리는 이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가르쳐 줄, 여러분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 하실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들의 고통이 아니라, 나의 고통을 그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모든 사람들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그것을 대처하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당했던 그 고통과 어려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겸손하게 나눈다면, 그 사람들 마음으로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정말로 제 이웃 사람은 정말 절대로 제가 어떤 보고도 저는 듣지 않았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두요. 그러나 어느 날 제 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제 막내아들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태어났었습니다. 일평생을 우울증을 앓고 살았습니다. 젓가락은 집에서 있죠. 정말로 너무나 어려운 정말로 정신병으로 인해서 너무나 큰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의 삶 가운데서 정말 모든 평생을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역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괴롭히던 정신적인 이 고통은 절대로 사라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간 제 막내아들이 17살 때 저희가 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정말 울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빠 이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는 없습니다. 저 기독교인 거 아는데 저 구원받은 거 아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까지 일어나요? 그러나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정신적인 질환인 절 너무나 고통스럽게 합니다. 아빠 아빠 사실 전 알고 있습니다. 이 병 치료 안 될 걸 알고 있어요.”
 
정말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 선생님도 찾은 찾아와서 진찰하였습니다. 모든 약들도 다 해봤습니다. 모든 크리스천 카운셀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정말로 아버지, 아버지는 믿음의 신실한 사람이십니다. 정말로 어머니는 정말 믿음의 사람이십니다. 그러나 아빠 뭐 죄송하지만 저 안 치유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울었을 때, 저도 같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왜 저 지금 죽으면 안 됩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상관없이 기적이던 상관없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든 상관없이 너가 고통 받지 않기를 위해 기도했단다. 내가 심지어 너가 받는 그 고통을 내가 받을 수 있다면 내가 친구를 오히려 받을 수 있도록 내가 받고 싶다. 매튜, 메튜야, 정말로 우리가 이 깨어진 세상에 살고 있단다. 모든 것이 깨어지고 망가졌단다. 정말로 날씨가 망가졌고, 경제가 망가졌고, 우리 관계가 망가졌고, 우리의 몸도 망가졌단다. 우리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심장에 문제가 있고 그러나 그 사람들이 약을 먹는 것은 어떠한 부끄러움이 아니란다. 어떤 사람은 등이 아파서 약을 먹는다. 메튜야, 그거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다. 어떤 사람은 정신적인 고통 가운데 서서 약을 먹는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다 아픈 것은 죄가 아니란다. 모든 일이 모든 일어나는 일들이 다 하나님 뜻은 아니란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한다고 기도했단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뤄지기를 왜 기도했을까요? 왜냐면,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뜻이 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완벽합니다. 완전하게 즉시 이뤄집니다. 천국에서 하나님 뜻이 정말 다 이뤄집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뤄집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고,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차 사고를 당한다면, 근데 제가 차를 사고를 냈는데 정말로 거기에 임신한 여성을 제가 쳐 가지구 그들을 죽였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죄일 뿐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 뜻이라면, 하나님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늘에서 주님의 뜻이 이뤄진 것 같이 이 땅에도 이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제가 제 막내아들 메튜에게 말했습니다.
 
메투야, 이 세상이 일어나는 일들 중에 안 좋은 일 중에 어떤 일들을 혹시 제 가장 친한 친구가 저와 같이 다락방에 모임에 있습니다. 어 그 제 친구가 3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분만을 할 때 너무 느리게 아이를 빼서 그 아이들이 정말로 산소 공급에 제대로 원하게 되지 그 아이들이 정말로 산소 공급에 제대로 원하게 되지 않았었습니다. 출산할 때, 그리고 모든 세 쌍둥이들이 30년 동안 지금 휠체어를 타고 있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행복하지만 않습니다.
 
하늘에서 모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길 기도해야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맞았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 세 쌍둥이들 야 그 세쌍둥이들 정말로 원치 않은 고통 가운데 있는 세쌍둥이들 같이 어떻게 우리가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유학 투 매니지해야 됩니다. 제가 그래서 아들에게 얘기했어요.
 
매튜야, 내가 매일매일 너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단다. 그러나 이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만일 이게 이런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좋은 의사들을 통해서 좋은 약들을 통해서 좋은 우리 크리스천 친구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영적인 동역 자들을 통해서 치유가 아니라, 오히려 잘 관리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한단다. 그리고 10년 동안 제 막내아들을 잘 관리했습니다. 제 막내아들은 제가 알았던 사람 중 가장 용기 있는 남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일평생 동안 정말로 고통감도 있었지만 예수 그릇의 사명을 위해서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복음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2년 전 어느 날, 스스로 행위를 마감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금요일 저녁 사실 그가 따로 살고 있었는데, 저희 집에 놀러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게임을 했고 제 막내들과 저는 정말 너무나 좋은 관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가 저의 집을 떠날 때,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빠 너무 지쳤어요. 그리고 다시 제 아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48시간 후, 제 아들에게 이런 소식을 들었네요. 왜냐하면, 우리가 맨날 얘기를 대화를 했었는데 아들과 48시간 동안 이야기가 안 돼서 그 아들 집에 제가 찾아갔었습니다. 그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두드렸는데도 아들이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찰을 불러서 이 문을 부셔달라고 했습니다. 제 인생 가운데 가장 어려운 날이었습니다. 제 아내와 저는 정말로 그 갓길에 서서 서로 끌어안고 울면서 정말 다시 경찰이 돌아오기까지 집에 들어갔던 경찰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같이 껴안고 울고 있을 때, 제 아내가 사실은 목걸이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걸이에는 두 단어가 적혀있었습니다. 사실 그녀가 썼던 최근에 썼던 가장 최근에 썼던 책 이름이었습니다. 기쁨을 선택하라 라는 단어가 써 있었습니다. 아내가 그 목걸이를 들어서 ‘기쁨을 선택하라’는 그 단어를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기쁨을 선택할 수 있는가, 내 심장에 지금 1만 가지 조각으로 깨지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경찰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제 죽은 아들의 시체를 가방에 들고 나왔습니다. 제 인생 가운데 가장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10분 안에 저의 다락방 식구들이 저에게 찾아와 주었습니다. 정말로 5커플이 있기 때문에 10명 있었는데, 20년 동안 같이 다락방 소그룹을 했던 우리 공동체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기독교 이 크리스천 생활을 지속하길 원하신다면 여러분 다락방이 필요합니다. 거기 모였던 모든 우리 남자 형제님들이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자매님들은 제 아내를 안아 줬습니다. 끌어안아 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함께하는 사역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정말 상처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큰 상처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십시오. 그들에게 다가가서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가 함께하는 우리가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그들과 함께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단어 파신 분들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지만, 우리가 오늘 그대와 함께 하겠습니다.
 
그 모든 10명의 식구들이 정말 다락방 식구들이 저희 집에 찾아와서 뭐 계단에서도 어디서든 같이 정말 함께 24시간을 보내 주었습니다. 정말 위로와 함께하는 동력의 삶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어느 정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제 아들이 죽었을 때 자살을 했을 때 CNN에서 정말로 뉴스가 아주 크게 났습니다. 심지어 제가 공항에 갔을 때도, 뉴스 기사에 이렇게 떠 있었습니다. 매튜 워렌 제 아들의 이름 그리고 ‘그가 자살을 하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왜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여러분 제가 조금 전에 저희 이웃 가운데 예수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 얘기를 드렸었는데요. 복음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영적으로 성공했는지 상관이 없었고, 제가 얼마나 명예로운 사람인지 상관이 없었고, 그러나 제 아들이 죽은 다음날 제가 운전을 하고 있었을 때, 그의 집 앞에서 그는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단단한 마음을 가졌던 이 사람이 제가 그곳을 지나가고 있을 때, 차를 타보고 그건 저를 보고서 이렇게 손짓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내가 이 사람을 얻었구나, 그리고 그 이웃은 그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됐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의 복음으로 전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중에 가장 큰 방법은 우리의 아픔을 나눴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인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만일 제가 여러분들에게 제가 얼마나 위대하고 멋있고, 성공적인 사회를 했는지 얘기하고 자랑한다면, 정말 많은 연예인들을 만난 것만 얘기한다면, 아 이렇게 얘기할 거죠. 아 그냥 ‘좋겠수다’ 아 ‘너무나 멋진 일이네요.’ 제가 그래서 노래 제가 저장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핸드폰에 울릴 때 강남스타일이 나왔었습니다. 심지어 제 페이스북에도 강남스타일 이렇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싸이가 저를 페이스북에서 팔로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싸이가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저의 강남 스타일을 자기 페이스북에 올려주셨기 때문에 야, 내가 죽어도 천국 가겠구나! 라고 글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 제가 사실은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끈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많은 사람들이 글 속에 이끌어줄 수 있던 방법 중 하나는 제 아픔을 나눴을 때였습니다. 아픔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제 시간이 이제 끝났습니다.
 
마지막 하나만 쉐어하고 싶습니다. 사실 사명성취를 위해서 여러분들과 나눌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 돌아와도 될까요?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주입 가운데 정말 오랜 친구이고 벗이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조금 부끄러운 친구 있으시지 않은가요? 여러분 주위에 정말로 오랜 친구지만 예수님을 모르는 분들이 계십니까? 10년, 20년 친구였지만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분들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오래된 친구에게 주님에 대해 어떻게 증거할 수 있을까? 바로 사죄하는 것입니다. 이건 ‘사죄의 전도’입니다. 만일, 제 이웃이 저랑 같이 15년을 살았다고 해봅시다. 제 이웃에게 정말 단 한 번도 복음을 전한 적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아 근데 너무나 이젠 오래돼 버려가지고 오래 안 사이여서 어우 복음을 전하기 좀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그럼 그때 우리가 사죄를 하면 됩니다. 이웃에게 가서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우리 이웃에게 가서 정말 제가 사죄를 드립니다.
 
제가 정말로 지금부터 얘기할 것에 있어서 그동안 얘기하자는 걸 너무나 부끄럽게 제가 이 시간 사죄하고 싶습니다. 사실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거였는데 지금까지 얘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참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사실 제가 이 얘기를 했을 때, 그대가 떠날 것 같아서 두려워서 제가 얘기를 하지 못했었습니다. 저를 이상한 사람 생각할까 봐 그랬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의 우정을 내가 너무나 소중히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내 친구여, 내가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좋은 친구이기에 우리가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함께 겪어냈기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얘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내가 사죄를 합니다. 나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럼 뭐라고 할까요? 여러분 제일 친한 친구가? 당연하지, 아유 우리 관계를 깰 건 없어 어떤 것 때문에 너가 나에게 사죄하는 거니? 라고 할 겁니다.
 
정말로 그동안 너가 나를 내가 고백하지 않았던 이유는 너가 나를 이상한 종교 광신도로 생각할까 봐 그랬었어. 그러나 이 시간 너에게 얘기하고 싶어. 우리 소중한 이웃이여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야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이야. 내가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해 얘기하지 않아서 너무나 미안해. 우리 정말로 예수님에 대해서 내가 언젠가 너에게 다가가서 얘기해도 괜찮겠니? 당연히 여러분의 친구들은 예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여러분 주위에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자들에게 ‘사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시간이 다 갔기 때문에 이거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너무나 사랑합니다. 땡큐 감사드립니다.
 
♣요약
연약한 가운데 고통 중에 있을 때, 함께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하심을 믿고, ‘주님 우리는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우리는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모자란 건 너무 많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해야 된다. 오늘 이 자리 때문에 대한민국의 복음의 역사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 때문에 한 명이라도 더 구원받고, 우리 때문에 한 교회라도 더 개척되고, 우리 때문에 한 선교사라도 더 배출되게 주님께서 도와주시길 간절하게 기도하고, 겸손하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고통 받는 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모든 선배 세대들은 주님을 향해 주님의 나라를 위해 꿈을 꾸는 우리가 되어야 하며, 정말로 이 사랑의 교회와 모든 교회들이 주님의 등대가 되어,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대한민국에서 시작하고, 바로 이 부흥의 시작이 10월 27일 우리가 함께 하는 이 대연합 예배를 통해 시작되길 소망하며, 우리가 대한민국의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할 증인의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사명 성취를 위하여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전적위탁 올려드려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서 우리가 솔직하고, 우리의 고통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돕는 데 사용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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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22일)
제목: "전심의 마음을 주소서((1부)"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2부),
"온전한 지혜로운 삶의 열쇠"(3부),
"돌아서지 않으리"(4부)
말씀: 시편 86:1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외
대표기도: 장단희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외

설교자:초빙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총재)-1부("전심의 마음을 주소서"-시편86:11)-통역:정상익 부목사님 
(피터 릴백 목사님-웨스터민스터 신학교 총장)-2부("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시편 3:8)통역:김인기 부목사님
(칩 일그램 목사님-리빙 온 더 엣지 대표)-3부("온전한 지혜로운 삶의 열쇠"-잠언 10:9)
(줄리어스 김 목사님-한국어사역부대표)-4부("온전한 지혜로운 삶의 열쇠"-창세기 11:2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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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6:11,(1부)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 시편 3:8,(2부)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잠언 10:9,(3부)
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창세기 11:27-12:9,(4부)
27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12:1-9,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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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총재)-1부("전심의 마음을 주소서"-시편86:11)-통역:정상익 부목사님

-사랑하는 우리 사랑의 괴성도 여러분 이 아침에 다시 이곳에 돌아와서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저에게 참 큰 기쁨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한국 교회 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 중의 하나가 오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전체 세계 교회 역사 가운데서도 아주 중요한 날이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일단 이렇게 GNR에 함께 모이기 때문에 그렇고요. 그리고 특별히 로잔 운동 제4차 대회에 5천여 명에 달하는 전 세계의 목사님들과 신학자들과 사역자들이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로잔대회에 참여하시는 제 동료들도 여기에 이 자리에 많이 와 계신데요. 그리고 오늘 2부 예배, 3부 예배, 4부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들도 모두 로잔 대회에 참여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아는 분들과 함께 함인데요. 여러분들에게 하나 권면드리고 싶어요. 여러분, 2부 예배도 기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3부 예배도 드리시면서 또 4부 예배도 기대하며 보시면 어떨까요? 제가 오늘 2, 3, 4부에서 말씀 전하신 목사님들을 보니까요? 제가 우리 담임목사님한테 이런 말씀드렸어요. 매 예배마다 더 좋은 분이 오시네요. 라구요. 그래서 저는 제가 제일 먼저 그 길을 닦는 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이 로잔 4차 대회를 생각하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2010년에 있었던 그 남아공의 또 케이프타운에서 열렸었던 그 로잔 3차 대회였어요. 제가 왜 이 아침에 여기 있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간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게 당연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이지만, 동시에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이신 오정현 목사님께서 저를 초대해 주셔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2010년 4월 달에 있었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그 시간에 런던에 있었는데요. 모든 비행기들이 이륙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화산재 때문에 이륙하지 못하던 그때의 오정현 목사님도 런던에 계셨어요. 그리고 오정현 목사님 타시려고 했던 비행기도 역시 이륙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도 4월에 있었던 그 주일 날, 저희가 런던 시 한복판에 있었던 택시 승강장에서 만나게 됐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그 자리에서 만나서 오정현 목사님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만남 이후에 사랑의 교회에서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헌신을 해주시게 됐어요. 그 당시에 로잔대회를 할 때, 200명이 넘는 전 세계의 아주 저명한 사역자들께서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요. 굉장히 큰 그룹으로 모이기도 하고, 작은 그룹으로 모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 아시는 그런 목사님이셨어요. 정말 유명한 신학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용감한 우리 선교사님들이 계셨어요.

그런데 그 로잔 3차대회 10일간에 전해졌던 말씀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7살 되었던 북한에서 탈 북한 소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그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이 시편 기자가 그리고 지혜 설을 담당했던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죠. 인간이 계획할지라도 하나님이 운행하신다고요.

저는 여러분과 이 자리에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가 어떤지 잘 잘 모르지만, 물론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오겠죠. 근데 그때에 우리는 아마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공헌하셨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여러분을 통해 또 여러분 안에서 일하셨는지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집중하고자 하는데요. 여러분에게 이 다윗 왕이 하나님께 올려드렸던 기도 내용을 좀 나눠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 시편 기자가 이야기하는 그 기도를 함께 올려 드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번 송도와 서울에서 열리는 로잔 4차 대회에 함께하시는 5천여 명의 사역자들을 위해서 여러분이 이 기도를 함께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 안에서 형제 이제 자매된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이 그 기도를 함께 나눠드립니다. 아, 그리고 이렇게 정말 아름다운 우리 영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저는 너무나 기쁩니다. 근데 저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을 나눠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 여기 계신 남성분들 그리고 자녀분들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에 귀 기울이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삶의 영역 가운데서 3가지 부분에 대해서 이 부분을 보시고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 깊이를 더 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해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이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그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로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이 3가지 이유가 바로 오늘 아침 우리가 모인 이유입니다. 오늘 아침에 모인 이유입니다. 이 오늘 아침에 성도로서 가져야 되는 마음,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우리가 의사를 만나서 우리의 몸 상태를 체크할 때요. 이 의사가 여러 부분, 여러 영역들을 보통 보시잖아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영역을 의사처럼 살펴보실 때, 3가지 이 싸인을 정확히 이 몸의 신호를 보시려고 해요. 첫 번째로, 우리 뇌파를 보시려고 할 겁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심장 파동을 또 보실 겁니다. 맥박을 보실 거예요. 맥박이 정말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실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걸어가는 그 걸음걸이를 보실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제자로서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의 생각이 다시금 재조정 되고 정교하게 만들어지죠.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 기쁨으로 모든 것을 다 뒤로 한 채 예수님을 따라가기로 작정합니다. 이런 이 그림이 제가 그려드렸던 그림이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바와 아마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막 만들어 드렸던 이 그림이 여러분의 삶과 일치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움직이기 시작하구요. 여러분의 이 가슴이 움직이고요. 그리고 여러분이 모시는 그 예수님 그 발자국 뒤를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웃으시면서 고개를 끄덕 끄덕거리는 것 같아요. 이것이 여러분이 추구하는 바, 이잖아요? 이것이 여러분이 가진 그리고 제가 가진 열정이지 않습니까?

저는 71세예요. 저는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5살 때 예수님이 제 마음 가운데 오시기를 여쭤봤고 영접했어요. 제가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겠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있어서 때때로는 나의 열정과 나의 삶의 실제 모습이 다른 걸 볼 때가 있어요. 시편 86편의 말씀을 다시금 보시면 좋겠습니다. 1절부터 11절까지 함께 보겠습니다.

*시편 86:1-11,
1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2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 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 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아멘, 특별히 이 1절부터 11절 말씀 중에 11절의 강조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윗왕이 이렇게 찬양합니다. 여워요 쥐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그렇게 하여서 내가 쥐의 진리에 행하게 해 주시기 원합니다. 저에게 전심 1심을 주셔서 쥐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다윗 왕은 나눠지지 않은 온전히 하나가 된 그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길 바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죠.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키라구요. 예수님께서 대 계명을 또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을 때 그렇게 이야기하십니다. 가서 내 법도를 계명을 알려주라고요. 우리가 이 다윗 왕이 가졌던 일심에 대한 열정을 살펴볼 때, 전심과 일심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때,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 말씀에,

*마태복음 22:37,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예수님이 주신 말씀과 비슷하게 다윗 왕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일심을 주셔서 죄를 경외하게 하소서.” 솔로몬 왕도 그런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했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 이라구요.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그 내용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다윗 왕을 기름 부으시고, 왕으로 삼으셨을 때, ‘내 마음을 아는 자’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근데 특별히 그 다윗 왕이 그런 칭찬을 들었던 다윗 왕이, 시편 86편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 “여호와여, 일심 전심을 주옵소서.” 왜? 다윗 왕이 전심을 달라고, 일심을 달라고 그렇게 노래했을까요? 왜냐하면, 다윗 왕은 언제든지 자신의 마음이 나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적인 그 사탄이 다윗의 적인 사탄이, 찾아와서 마음을 나눠서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이 전쟁사에 있어서 적군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누게 되면 정쟁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만약 그 병사들이 나누어지게 되면, 흩어지고 또 장군들이 서로 일치하지 못하게 되면, 그 부대안에 공통된 목표가 사라지게 되면, 그럼 그 부대는 훨씬 쉽게 패배할 수밖에 없죠.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병사들은 결국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적인 사탄은 매우 똑똑하죠. 정말 영리해서 아주 작은 일들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 앞에 내어놓고 난 이후에, 아 사탄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너 너무 많은 것을 주인께 드린 거 아니야? 네가 사실 원하는 건 이거잖아? 너 이런 이거 보는 거 좋아하잖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도 잘 아는 것처럼 다윗 왕은 정말 많은 유혹을 받았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정말 큰 죄를 지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말 큰 은혜를 받았던 사람이죠. 정말 큰 많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 왕이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 나를 사용하소서. 우리를 사용하소소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나에게 전심, 일심을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나눠질 때에, 우리의 가슴도, 우리의 심장도 나눠지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나눠지고 나눠지게 되면 교회가 약하게 되죠. 그리고 이 5천 명의 로잔 운동으로 모였던 분들이 나눠지게 되면 전 세계교회가 나눠져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통해, 마음이 나누어지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게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당시 자신이 살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간음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모든 백성의 마음이 약해졌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3가지 예를 특별하게 들면서 그 상황을 이야기 하는데요. 그때 호세아가 이런 예를 듭니다. ‘반만 구워진 빵과 같다’고요.

제가 어제 도쿄에 있었는데요. 제 친구가 저를 빵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막 갓 구워진 그 빵에서 나오는 냄새만 맡아도 막 배가 고파지는 그런 곳이었어요. 여러분 빵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은 반쯤 구워진 빵을 한번 드셔보셨습니까? 먹으면 정말 맛이 없죠. 그렇게 반쯤 구워진 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빵이 아닙니다. 그리고 심지어 우상조차도 원하지 않는 모습일 거예요.

호세아서에서는 또 이 백성의 마음이 나눠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 자기 자신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한 노인이 자기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근데 제가 그 말씀 보니까 나한테 하는 말씀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제가 나이가 들었어요. 그래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제 몸이 약해지는 걸 보면 어 나에게 한 말씀인가 싶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가 훨씬 잘생겼었는데 좀 못생겨지니까 저한테 하는 말씀인가? 싶긴 했어요. 농담이기는 합니다만 제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마음을 지켜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호세아에 말씀처럼 마음이 남은 약해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호세와 선지자가 이 새가 정말 미친 듯이 날아다니는 것에 대한 것도 언급을 합니다. 이쪽 우상으로, 저쪽 우상으로, 막 날아다니면서 계속 이곳에서 도움을 구할까, 저곳에서 도움을 구할까, 하는 새처럼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우리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도 동일한 모습 보여 때가 있습니다. 우리 마치 마음이 나눠진 신드롬을 겪는 것처럼요.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시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의 삶의 전부를 주님께 드렸습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원하는 모든 그것들 열정을 주님께 올려드렸나요? 예수님의 주재 권을 인정 하셨나요?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또 찬양을 올려드리고, 실실하게 교회나 신앙생활 하지만 그런데 남은 6일은 마치 세상의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구별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우리가 능력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 기쁨도 사라진 걸 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에베소서 말씀이 그것에 대한 답을 줍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상황들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거죠. 우리가 이 다이드 왕이 준 시편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고 이야기를 해요. 응답해 달라고 이야기하는데 왜 응답해 달라고 하느냐, 가난하고 궁핍하기 때문에요.

여러분, 시편을 굉장히 아름답게 시작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시지 않으세요. 정말 아름답고 수려한 그 말들로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게, 나 자신이 이런 상태여. 라고 인정하는 걸로 시작하죠. ‘하나님 들으소서. 저는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그런데 또 다윗 왕이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한번 살펴볼까요? 5절 말씀에,

*시편 86:5,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하나님 당신은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십니다. 주여, 신들 중에 주화 같은 자가 없사오며. 라고 8절에서도 이야기해요. 10절에 무릇 주는 위대 하사 기이한일을 들 행하시오니 주 만이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15절 말씀에,

*시편 86:15,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임자와 진실을 풍성하게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죠. 얼마나 아름다운 주님을 우리가 모시고 있습니까? 여러분 다윗 왕이 찬양했던 것처럼, 오늘 아침 찬양하실 수 있으신가요? 하나님 저는 정말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저에게 일심, 전심을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우리 마음의 열정을 살펴볼 때, 우리의 열정에 상응하는 유혹이 늘 따라온다는 것을 봅니다. 제가 일본에서 20여 년간 선교사로 사역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저의 모국에 이 신앙의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정말 이 물질적인 세상에서 거기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동시에 점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어가는 궁핍해져가는 걸 봅니다. 우리의 능력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우리의 약점이 되는 것을 봐요. 우리의 이 자유가 방종으로 치닫고요. 우리가 정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축적한 그 부(富)가 이제는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죠. 그리고 결국 우리는 파괴되고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서 너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구요. 세상에 유혹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건 더더욱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시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를 사랑하고, 하나를 미워하는 거 할 수밖에 없다.

제가 여기 그 예배에 참석하신 우리 젊은이들을 보게 되는데요. 그리고 또 중년에 계신 분들도 보구요. 그리고 노년의 삶을 이루고 계신 분들도 봅니다. 저는 특별히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특별히, 손주를 막 볼 나이 대에 계신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제가 지난 6월에 13살 된 제 손주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요. 막 갔던 캠프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때 저한테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할아버지 제가 뭐 하나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슨 일이 혹시 있었니? “할아버지 저 예수님 보고 제 마음 가운데 와 달라고 고백했어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제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정말 똑똑한 손녀였거든요. 그리고 굉장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였어요. 아, 그러다 보니까 또 부모하고의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기도 했죠.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권위에 대한 도전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드리던 기도를 멈추 멈췄던 손녀였어요. 그리고 예배 시간에 찬송가를 부르지 않게 됐던 그런 손녀였어요. 하나님 앞에서 계속 불순종하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손녀가 저에게 얘기한 거예요. ‘예수님이 내 마음 가운데 찾아오시기를 저는 기도했어요.’ 라고요. 교수님 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주재 권은 인정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여름 내내 계속 전화를 해서 상태로 물어봤어요. 근데 계속해서 기쁨의 그 대답을 듣게 됐습니다. 이제 학교가 시작했어요. 2학기가 시작이 됐죠. 그래서 제가 학기 중에 있는 소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이제 손녀가 그러는 거예요.

제가 처음 예수님 만났을 땐 정말 기뻤는데 이젠 좀 힘드네요. 라고 우리 가족과 함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리고 교회 친구들하고 계속 있는 게 아니라서, 이제는 학교에 있는 친구들하고 너무 시간을 보내야 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대부분의 친구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이라서, 나는 그분 그 친구들과도 함께 하고 싶고, 우리 예수님과도 함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손녀가 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소녀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렴.’ 그 말씀을 매일매일 새롭게 만들렴. 그리고 그 하루 종일 그 말씀을 계속해서 너의 것으로 만들렴.

저도 제 인생 가운데 17살 때,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대부분도 다 인생 가운데 그런 순간이 1번쯤은 있으셨을 거예요.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세상을 쫓아야 하는가? 선택하는 그 선택의 기로 말이죠. 제가 17살 때, 함께 했었던 그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이 한 번도 지지 않고 계속 승리했던 아주 유명한 팀이었어요. 여러분 이제 학창 시절에 혹시 그런 축구팀이나 운동 팀이나 또는 밴드나 또 이렇게 함께 하는 합창단 같은 걸 해보셨으면 얼마나 친구들끼리 아주 가까웠는지 아실 거예요. 그리고 그 친구들과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하고 싶어 하죠. 그런데 제 친구가 저녁식사 이후에 우리 파티할 건데 거기 올래? 라고 얘기할 때, 굉장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내 부모님은 그걸 절대 기뻐하시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부모님이 나를 너무나 신뢰하시기 때문에, 내가 만약 거길 간다면 너무 힘들어 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신뢰하시기 때문에 갔다 와도 모르실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내가 갈까, 말까 되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 마음이 나눠지게 됐습니다. 저는 정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믿는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했었어요. 그런데 비밀스럽게 제 개인적인 삶 가운데서는 죄를 짓는 기쁨도 함께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주일 아침에 예배를 드리다가 17살 청소년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사는 것, 하나님께 모든 걸 다 드린 것에 대한 설교를 듣게 됐어요.

그때 바로 예수님께 순종하겠다. 라는 마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파티를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파티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굉장히 문란했더라고요. 예수님을 이 예수님께 영광으로 올려드리는 그런 것을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파티였습니다. 제가 결국 그 파티를 안 가게 됐는데요. 20주년으로 그때 같은 팀에 있었던 친구들과 다시 만나게 됐을 때, 그날 그 파티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근데 20년이 지나서 제 친구가 얘기해 주는 내용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당시에 너가 오길 참 바라긴 했는데, 오지 않았던 것 우리 존중한다.


세상은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진실 되게 사는 걸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기쁘게 사는 걸 바랍니다. 정말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살길 원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보이는 그 삶을 살길 원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마음이 일심이 되어 전심이 되어 예수님께 향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젠가 한번쯤 예수님을 영접하셨을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찾아오시기로 초대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 내 마음은 예수님의 집입니다. 라고 고백했죠. 그래서 우리집, 이 예수님의 집인 내 마음 가운데 예수님이 편안하게 거시길 바랍니다.

정말 아름답고 순수한 이 마음을 주님께 드리길 원하죠. 제가 며칠 전에 계속해서 도쿄에 있었는데요. 일본 도쿄에서 제 누나와 함께 친구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친구가 그 집을 굉장히 아름답게 꾸며놓고 있었어요. 여러 이제 방들을 또 소개를 해줘서 이제 보고 아 참 잘 꾸며 놨다. 했는데요. 어 근데 제 누나가 작은 문 하나가 잠겨있는 걸 발견을 했어요. 그래서 어 이 방엔 또 뭐가 있어? 라고 자연스럽게 묻게 됐죠. 그런데 제 누나가 그렇게 묻자마자 제 친구 어 그 문은 열지 마. 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절대 보지 마. 라고 그러면서 네 그 방 정말 최악이야 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제 누나가 그 문을 또 열더라고요. 단순히 최악이 아니라 정말 심각하게 최악이었던 방이었습니다. 정말 방 안에 모든 게 폭탄이 터진 것처럼 어지럽혀져 있었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오시는 것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정말 아름다운 방을 찾으세요. 어 여기도 아름다운 방이 있구나.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데 문이 잠겨있는 방도 예수님이 발견하십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그 잘 잠겨있는 방을 보시면서 물으세요. 여기에는 뭐가 있니 예수님이 만약 그 잠겨있는 문을 여신다면 무엇을 보실까요? 죄악으로 오염되고 가득 찬 그런 방을 보시지 않을까요? 숨겨놨던 죄들마저 있는 그 방 아니면 그 문을 열었을 때, 오히려 예수님 보시기에 정말 아름답고 예수님을 위해 준비된 방일 수도 있겠죠. 주님 나에게 일심전심을 주옵소서.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영광 올려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기도: 하나님 성령 님을 통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기쁨을 누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정 가운데 걸어갈 때에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의 마음이 더욱 빛이 나고 사용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요약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에는 전심으로, 가정과 일터에서 이웃에게는 진심으로, 유혹을 이기고 진리를 행하는 ‘주님의 집’으로 살아가야 한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사랑으로 맥박치는 심장을 주님께 드려서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평생이 되며, 우리 교회의 ‘2033-50 비전’의 원년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금식하며 섬길 때, 10,27일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가 복음통일의 마중물로 쓰임받기를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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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예배.
제목: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말씀: 시편 3:8
설교자: 피터 릴백 목사님-웨스터민스터 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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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3:8,(2부)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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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릴백 목사님-웨스터민스터 신학교 총장-초빙)-2부-"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시편 3:8)통역;김인기 부목사님

-너무나 멋진 사랑의 교회 선도님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이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특별히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초청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이 오늘 여러분과 나눌 은혜의 말씀은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편을 가지고 은혜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3장의 주제입니다. 사무엘상 2장에서도 찾을 수 있는 내용이고요. 시편 3장 1절입니다.

*시편 3:1-2,
1 여호와의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그러나 지금 이 상황 가운데서 다윗은 자기 아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압살롬이 반란 일으켰고 이제 다윗을 죽이러 오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다윗 왕이 두려움에 휩싸였을까요? 자기 아들이 자기를 죽인다는 게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된 상황이었을까요? 그러나 5절 이렇게 다윗이 고백을 합니다.

*시편 3:5,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다윗 왕의 일생 가운데 가장 어두운 상황 가운데서 그는 주님께서 그를 붙드시고 일으키심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의 압살롬에 대해서도 그가 알았지만 오히려 그는 압살롬보다 하나님에 대해 그는 더 알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3:6,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이다.
-다윗이 이렇게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이렇게 평안과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요? 왜냐하면, 바로 8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시편 3:8,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에게 구원은 여호와께 있 싸움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구원이라는 의미에 대해 우리가 살펴보길 원합니다. 히브리어로 구원은 ‘이샤’라고 합니다. 이 히브리어 단어 이샤는 예수님의 이름에도 포함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의 이름에도 포함되어 있고 이것은 ①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기독교의 근간은 바로 사우베이션, 우리 구원이라는 구원론에 우리가 모든 것을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이라는 뜻은 우선 먼저 구원을 받는다. 라는 뜻입니다. 구원에 담긴 4가지 뜻 중 하나는 ⓶경제적 손실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음식이나 돈을 저축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가뭄 가운데서 요셉이 이집트에서 한 일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구원의 두 번째 의미는 위험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국제적인 구조 신호인 SOS는 배나 비행기가 위험에 처했을 때 사용하는 신호입니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신호입니다. 세 번째 ⓷구원의 뜻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뜨거운 풀무불과 사자 굴에서 구원받는 다니엘서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다니엘과 새 친구들 주님께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네 번째 구원입니다. 바로 ⓸죄로 인한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의 예수님의 목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10,
10 임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특별히 이 시각 우리 서울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든 살아있는 성도님들이 글로벌 복음주의와 그리고 선교를 향해서 나아갈 때,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오신 이 목적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특별히 이 복음주의 운동이 함께하고 있는데,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바로 이 복음을 모든 만민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구원의 의미에 대해서는 우리가 종교 개혁의 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종교개혁의 모토들, 신조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솔라 스크립처럼 ‘오직 성경’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올바로 가르칠 수 이때 오직 그리스도라는 솔라 스크리스도, 솔라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배우면 배울수록 솔라피대,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권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소울라 그레티아 오직 은혜로만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복음을 깨달을 때, 솔리데오 고로리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우리가 돌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에 우리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복음을 이해한 모든 사람들을 뒤늦게 우리가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예전 제사상들이 스스로 책을 읽고 성경을 읽고서 자기네들이 열고 읽은 것 같이, 이제는 우리가 제사장이 되어 우리 스스로 성경책을 읽고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하나님께 있다. 라고 말할 때 정말로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우리가 강조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 온 정말로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오늘 특별히 시편 3장 8절, 가지고 은혜를 나눌 텐데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시편 3:8,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이 구절은 사실 성경구약부터 신약까지의 모든 전반위로는 근간이 되는 말씀입니다. 원시 복음인 창세기 3장 15절에 따르면 구원은 처음부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었으며, 우리 주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할 것을 말씀해 줍니다.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마무리될 것을 확신합니다. 네가 이것을 이루겠노라. 구원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여호와께만 속한 것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리라. 이 진리를 깨달은 다윗은 그렇기 때문에 그가 담대함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 라는 이 진리를 우리가 처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오늘 살펴보게 될 텐데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오늘 제대로 인지하고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시편 37편 39절,

*시편 37:39,
39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시편 62:7,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다윗의 신학은 바로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 그의 이름인 주님께서 구원하신 나라, 이사야도 주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사야 43장 11절입니다.

*이사야 43:11.
11 나 곧 나는 여호하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45장 21절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5:21,
21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오늘 이 시간 성도님들 중에 혹시 내가 이만큼 잘했으니까, 내가 이만큼 선을 쌓았으니까 주늦게 나아갈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도 이 진리를 증거합니다. 3장 23절입니다. 예레미아 3장 23절,

*예레미야 3:23,
2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예레미야인의 당시에 있던 모든 우상들을 보았습니다. 바알, 정말로 풍요를 가져다주자는 바알을 많은 사람들이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교가, 난교가 정말로 이 공동체 가운데 만연하였고 그것이야말로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난교가 하는 눈을 연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것은 우상숭배일 뿐이라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많은 방법이 아니라 한 방법밖에 없다. 바로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호세 선지자도 말합니다. 13장 4절입니다.

*호세아 13:4,
4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라 나밖에 내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요나 2장 9절입니다.

*요나 2:9,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죽게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요나 이야기 잘 아시죠. 요나는 잠수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주 큰 물고기였습니다. 정말 배 위에서 던져져서 이제 물고기의 삼켜줘 버렸습니다. 폭풍이 부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라이프 재킷도 없었고 바닷가까지 수영할 수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오직 할 수 있는 단 하나는 바로 바다에 바라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요나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매일의 삶 가운데 사실 삶 속에서 가라앉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앉고 있는 우리를 주님께서 구원의 손으로 우리를 건져내시며 주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노라.’ 만일 다른 곳에서 구원을 찾으신다면 여러분 틀린 곳을 찾고 계실 겁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우리의 모든 자만을 주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 인간적인 모든 의는 주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에 절대 다다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아 근데 그거 구약의 이야기 아닌가요? 저는 신약을 믿는 사람입니다. 근데 여러분 신약 성경도 이 진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을 아시나요?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정말로 아주 작은 러셀에 담겨있는 복음이라고,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살아가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보다 멸망치 않고 갖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왜 하나님께서 만일 다른 방법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 주님의 독생자를 주셨을까요? 만일 예수님께서 많은 길들이 구원으로 이루는 많은 길들이 있다면 어 아무 데나 가도 돼 근데 나에게 오는 게 가장 편한 길일 수도 있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도 이것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에 사도행견 4장 12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견 4:12,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들이 가르칠 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주의를 보십시오. 많은 우상들 있으면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우상도 우리 주님께로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주님께로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이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라고 사도들이 가르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디모데전서 2장 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디모데전서 2:5,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5장 11절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일서 5:11-12,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이 아들 안에 있기 때문에 아들이 있는 자들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들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요한도 똑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지구의 역사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 모두는 정말로 주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모든 복음의 열매들과 믿었던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찬양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라는 가사를 찬양할 것입니다. 바로 요한계시록 7장 9절에서 10절입니다.

*요한계시록 7:9-10,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민족이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혹시 살아있는 선도님들 이렇게 함께 고백해 볼까요?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약간 작은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할렐루야, 천국에서 한 번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절입니다.

*요한계시록 19:1,
1 이후의 내가 들으니 하늘의 허다한 무리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루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바로 천국의 찬양인 이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시간 이 진리가 우리 신앙생활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몇 가지 포인트들을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모든 신앙 이 신앙에 있는 이 모든 우리 아 말씀들은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구원엔 우리의 공로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착하려고 노력을 해도 구원받을 만한 우리 가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면은 우리가 그때 깨닫게 됩니다. 아 구원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선물이구나. 라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케 하며 우리를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의 우리의 공로는 조금 더 없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글씨 통해 주신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해 깨닫게 되면 우린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은혜의 감격에 반응은 바로 감사입니다. 혹시 오늘 기분이 좀 언짢으신가요? 오늘 불평하며 이 자리에 나오셨나요? 오늘 혹시 이 자리에 나오셔서 하나님 세상을 이렇게 운영하면 안 되죠? 라고 컴플레인하고 계십니까? 아 하나님 제가 한 일이 이만큼 많은데 저 더 주셔야죠. 라고 컴플레인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겁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자세와 우리의 반응을 주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저희에게 거저 주셨고 구원의 영광까지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 가지 의도로 인해 병원으로 다니고 몸이 안 좋아서 아니면, 회사 가운데서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는 짐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걱정이 되고 염려가 돼서 혈압이 올라가는 분도 계실 겁니다. 계속 걱정하고 불평하면 나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가운데 괴로워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오늘 시편 3장 8절 말씀 기억하고 계신가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왕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아멘. 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의 삶을 살아나갈 때 감사뿐만이 아니라, 주님께 전적 위탁으로 매일의 삶을 살아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후서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큰 약속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한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염려를 주님의 약속으로 바꾸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막고 끊을 자가 능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죽게 맡기라 왜냐면, 여러분을 주니께서는 여러분도, 여러분도, 여러분도 사랑하시고 이 시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을 우리가 확실하게 볼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나갈 동안 우리에겐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목적은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것입니다. 혹시 그 말씀 기억하시나요? 여러분들의 머리털 하나도 주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질 수 없다. 라는 말씀, 우리의 삶에 모든 날들을 주님께서 기록하고 계신다는 말씀 주님께서는 성령님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은 우리가 주님과 같이 주님을 마주 보게 되고 우리가 주님과 같이 온전하여 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우리의 공로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께 전적위탁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하나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고백해 볼까요?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신약이 전 세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신학을 거부하는 모든 것들도 이 말씀으로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카톨릭 교회는 우리 교황이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카톨릭 교황을 엄청난 신학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그를 보고서 어떤 부분은 동의하지만 어떤 부분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시간 우리가 교황이 말했던 이 한 가지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거절하고 거부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황이 말했던 이 발언은 절대로 우리가 복음주의를 위하여 복음 확산을 위하여 동의할 수 없는 말을 교황이 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교황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종교는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모든 종교 중에 하나님께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길들이 하나님으로 인도할 수 있다. 라고 교황이 말했습니다.

심지어 모든 종교는 결국엔 다 같은 거기 때문에 다 같은 예수님을 찬양하는 거기 때문에 어떤 종교도 믿어도 괜찮다고 교황이 얘기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로마 교회를 내가 제가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제가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만 입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 고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 말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보편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경과 위배되는 말이라면 절대로 거짓입니다. 창세기와 다윗과 모든 선지자들과 그리고 사도들 결과 요한계슈로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는 한 믿음 아래 살아야 됩니다. 바로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교회를 개척해 나가고 우리가 교회를 세워나갈 때 우리는 이 믿음 위에 서 있어야 됩니다. 바로 구원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온다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말 종교 개혁을 이뤘던 우리 선조들의 믿음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만 믿을 것이라고 그들은 고백하였습니다. 성경을 열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손을 내밀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성경을 우리가 읽을 때 아 성경 속에는 예수님 한 분만이 계시고 예수님 1분을 통하여 우리가 은혜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뻐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기뻐하며 자랑하겠습니다. 구원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요약
우리의 신령을 주님이 깨뜨려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치유하여 주시길 원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쇄골에 새겨지는 시대가 되게 하여 주시길 간구하며, 주님을 모르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면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생기는 시간되기를 소망하며, 특별히 사랑의 교회가 이 국제적인 복음주의에 사역을 감당하고 모든 세상을 전도하며 나아갈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의 교회를 붙들어 주실 것을 믿고, 모든 감사와 주님께 전적의탁 올려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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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예배
제목: "온전한 지혜로운 삶의 열쇠“
말씀: 잠언 10:9
설교자: 칩 일 그램 목사님(리빙 온 더 엣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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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0:9,
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칩 일그램 목사님-리빙 온 더 엣지 대표)-3부("온전한 지혜로운 삶의 열쇠"-잠언 10:9)
-정말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특권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 특별히 이런 기회를 주심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자라나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요. 그리고 제가 15살, 아마 16살쯤에 교회를 떠났습니다. 정말 저의 삶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게 됐어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거와 또 다르게 삶을 살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믿는다고 하는 성도님들을 볼 때마다 항상 의심의 눈으로 봤습니다. 아 그리고 또 예수님을 정말 따른다는 사람들의 모습도 제가 보게 됐어요.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삶이 이렇게 겹치는 모습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제가 18살이 돼서야 성경책을 처음 펼쳐보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저의 제 입장에서는 성경에 있는 말씀을 믿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제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겠는데, 그리고 아침마다 예수님을 만나는 거 익숙해져 가긴 하구요. 그런데 예전에 옛 모습들이 저에게 너무 많이 남아 있었고, 그리고 제 생각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언어는 여전히 변화하지 않아서 욕도 참 많이 했어요. 제가 학교에 이 농구 장학생으로 가게 됐는데요.
 
그래서 저도 팀 안에서 굉장히 아주 터프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곤 했습니다. 제가 저희 팀에서 가장 키 큰 선수 우리 친구를 대할 때, 섹스텐 섹스 라든 한 190, 2미터가 넘는 그런 선수들이요. 그런 친구들이 제 룸메이트였습니다. 마이클 프랜드, 저의 좋은 친구였고요. 그러면 내 친구하고 싸워! 이렇게요.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할 때 정말 맞는 것 정말 옳은 것을 행하기 참 어렵다고 느끼는 분계신가요?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다 좀 더 나아지길 바랍니다. 정말 저 더 나은 엄마가 되길 바라고요. 그리고 더 나은 아빠가 되기를 바랍니다. 맞습니다. 더 나은 목사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더 나은 성도가 되길 바라시잖아요. 그죠?
 
근데 여러분과 제 사이에 다른 사람들 안 듣는다고 우리 생각 한번 해볼까요? 우리가 같이 이렇게 모이게 되면 그리고 커피 한 잔 하게 되면 그리고 굉장히 가까워지게 되면요. 여러분들이 실제로 살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됐는지 아마 얘기를 해주실 것 같아요. 제가 제 삶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저도 아마 얘기를 안 되겠죠. 우리 모두가 다 어려움을 겪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삶에 대한 사실 1가지가 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아마 동일하게 느낄 거예요.
 
우리 대부분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해서 말하는 건 훨씬 쉬워 하면서도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건 어려워요. 모든 사람이 아마 동일한 마음일 겁니다. 오늘 반갑습니다. 근데 이 오늘 이 하루가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날일 겁니다. 제가 딱 한 단어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하는데요. 딱 한 단어, 여러분의 인생에 그 일상 일생을 다 바꿀 수 있는 딱 한 단어를 나눠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할 때 자꾸 다른 데로 가는 걸 느끼죠? 우리 앞에 그림을 하나 보여주시겠어요.
 
세모로 된 그림으로 어 마치 이렇게 생긴 얼음덩어리 있다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위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 힘을 통해서 일을 통해서 우리의 관계를 그리고 언어를 막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저 위에 있는 것처럼 좋은 것들이죠. 그런데 우리가 바꾸려고 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기초가 있습니다. 딱 그 한 단어 ‘인테그리티’라고 되어있는 온전함이란 단어예요. 인테그리티(진실성-integrity)라고 보통 얘기할 때 정직함을 얘기를 많이 하는데, 단순히 정직함, 단순히 순결함만을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이거야말로 새로운 기적이라고 보여줄 수 있는 단어예요. 이거는 사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통합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함으로 걷는다는 거는 우리가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함께, 여러분의 실제 모습이 똑같은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요. 정말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그 사람들이 우리가 이런 모습의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이렇게 다 맞지 않게끔 행동할 때가 있죠. 크리스천스 우리 모두가 성도들이잖아요. 그런데 성도들처럼 살진 않아요. 미국에서는요. 한 70% 정도 되는 우리 젊은이들이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5년 지난 그 사람일 때, 이런 사랑의 교회와 같은 교회에서 자라난 그 젊은이들이 완전히 신앙의 길을 버려버리곤 합니다.
 
그렇게 70%나 떠난다고 연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근데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보이는 어 겉과 속이 다른 모습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 하나 알려드릴게요. 여러분들이 작은 스텝 스텝을 밟으면서, 정말 온전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도록 알려드릴게요.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말씀 한 구절을 함께 외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정말 100% 늘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이에요. 여러분의 읽으셨던 자문 말씀의 첫 번째 부분은 굉장히 긍정적이지만 반대편은 부정적이죠.
 
*잠언 10:9,
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거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오늘 뭘 할 거냐면요.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이 앞쪽에 있는 분들부터 북측 끝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 우리 성도님들께서 먼저 앞에 있는 부분을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요?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다시 한 번 더 읽겠습니다. 시작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뒷부분을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한 번 더 시작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베히흑 응원자로 행한 자는 드러나리라.” 잘 하셨어요. 네 좋습니다. 잘 하셨어요.
 
오정현 목사님 정말 뛰어난 우리 성도님들이시네요.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 안에 이렇게 쭉 들어오게끔 생각해 보세요. 제가 이 말씀 처음 받았을 때가 20살 때였습니다. 뭐 목사가 될 생각이나 그런 목사님께 받은 것도 아니었어요.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가 3가지라고 저에게 전해 주더라구요.
 
제가 들었던 그 3가지 이유 지금까지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3가지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같이 살펴볼게요. 여러분이 바른길, 온전함을 추구한다면, 물론 완벽하게 할 수는 없어도, 완벽하게는 할 수 없어도, 여러분이 바깥으로 보여 지는 이 모습이 아니더라도, 이 옷 안에 있는 진정한 여러분의 모습을 가지고요.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도, 여러분의 생각도, 여러분의 동기도, 여러분이 온전한 바른 길을 걸으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삶을 살면서 무언가 나에게 다시 와서 나를 힘들게 할 거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이 교회에 온 것처럼 많은 것들을 경험하잖아요.
 
제가 미국에서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는 목사님 한 분이 계신데, 근데 그 목사님은 30년 전에 정말 나쁜 일을 하셨던 분이었어요. 근데 그분이 목사가 돼서 굉장히 큰 교회를 세우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축복하신 거예요. 근데 온전함, 바른 길로 걷는 게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시던 분이었어요. 근데 몇 달 전에 그분의 삶이 완전히 드러나게 돼 버렸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완전히 눈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셨던 말씀이 다 사시게 됐습니다. 이런 일들이 온 세계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단순히 목사님들만 그런 건 아닙니다.
 
여러분, 제가 왜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온전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 교회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삶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저는 싫었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그래서 오늘 3가지 이유, 3가지 제가 꼭 붙들게 된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바른 길로 걷기 위해 온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말 힘을 많이 들여서 거기에 집중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주시는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필요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함께 하는 성도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도와주는 연합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네 앞에 한번 띄워주시겠어요? “온전함이 없으면 관계도 없습니다.” 무슨 얘기지라고 하실 것 같아요. 어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아마 정직하게 솔직하게 예수님 만났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시간 지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라는데, 우물가에 여인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이야기하셨습니까? 어떤 특정 예배 자를 바라신다고 얘기하셨잖아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자, 우리가 만약 진리로 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마치 믿는 사람처럼은 얘기할 수 있지만 그러나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진 않겠죠. 그리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끊어지게 됩니다. 정말 중요해요. 제가 그 대학교 다닐 때 아주 젊은 어 그런 기독교인 중의 한 명, 이제 예수님을 믿게 된 그런 젊은 기록교인이었습니다. 제가 이제 막 성경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게 됐어요. 제가 목요일 저녁에 성경 공부를 하게 됐는데요. 성경 공부하면서 이제 기도하게 됐습니다. 제가 남들 앞에서 큰소리로 기도하기에는 너무 챙피 하더라고요. 그리고 같이 함께 찬양도 좀 했어요.
 
그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는 거가 참 새롭게 느껴졌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죠. 그래서 모임 이후에 대학교의 언덕을 조금씩 걸어내려오면서, 정말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께 찬양을 올렸어요. 근데 그게 목요일 저녁이었어요. 그다음에 제가 이제 농구 선수였으니까 농구 연습을 갔어요. 연습 끝나고 나서 같이 놀자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죠. 우리 술집에 가서 같이 놀까? 그런 얘기를 했던 친구들과 함께했었어요.
 
아빠가 알코올중독 너는 술을 안마시니까, 너는 운전을 우리를 위해서 해줄 수 있잖아. 그래서 제가 금요일 밤, 토요일 밤에 친구들과 도시에 있는 많은 술집들을 다녔습니다. 제가 많은 일들을 했어요. 네,,, 그리고 똑같이 행동을 했습니다. 어 그리고 굉장히 죄스러운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제 안은 너무나 더러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아침에 돌아와서 제가 이렇게 무릎을 꿇고 너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너무 마음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서 다시 또 그다음 주 목요일이 돼서 성경보고 하러 가는 거죠. 네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또 금요일에 와요. 저만 그런 건 아니죠? 이 전 세계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예수님과 정말 관계를 맺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인데, 한쪽 발만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다른 발을 세상에 두는 그런 사람들이죠. 그래서 이 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하는 겁니다. 온전함, 바른 길로 걷는 자는 평안합니다. 그런데 굽은 길로 돌아간다면, 주님께서 그 길을 아시게 될 거예요. 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주 큰 약속이 있습니다. 시편 145편 18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45:18,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주님을 찾는 자에게 주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말씀이에요. 근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찾는 자를 주님이 찾아오신다고 이야기를 해요. 제가 말씀드렸던 그런 목요일의 일 그리고 금요일에 일 그리고 나서 제가 가서 아! 하나님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기도드리는 그 저의 그 가운데 성령님께서 제 귀에 속삭이시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나랑 솔직해지자. 너 죄짓는 거 좋아하는 거 맞지? 너 변화하고 싶지 않잖아. 더 이상 기도 하지 마.’ 그 말씀이 사실 어 사실이었어요.
 
여러분 정말 변화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바꿔달라고 그 마음을 바꿔달라고 기도하셔야 돼요. 그래서 제가 그 사실을 깨닫고, 화요일에 먼저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앞두고 이 잠언 말씀을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지혜로운 길을 걷는 자야말로 지혜롭다구요. 그런데 어리석은 자의 친구들은 고통을 당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계속 같이 걷는다면 그 사람들처럼 될 수밖에 없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된 게 제 삶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여전히 힘들긴 했어요. 그런데 제가 한 가지 깨닫게 된 게 뭔지 아십니까? 뭐 1주, 2주에 걸쳐서 계속 힘들어하고 슬퍼할 필요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하나님과 독대하면서 가장 정직해진 그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그리고 회개(悔改)의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갈 때, 그리고 이 다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갈 때,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두 팔을 벌리시고 안아주시는 아주 선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고자 하십니다. 이 세상은 돈과 권력과 그리고 성을 약속하지만 그리고 거기에 안전이 있고 행복이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요. 근데 우리 모두가 압니다. 거짓말이라는 걸, 저 캘리포니아에서 왔습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예쁜 사람들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많은 곳일 거예요. 근데 왜? 그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기 파트너들을 바꿔갈까요? 왜 결혼생활을 자꾸 이어가지 못할까요? 그런데 왜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면서 그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싶어 하고, 그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하고, 그 사람들처럼 가지고 싶어 하십니까? 네 한 가지 알려드릴게요. 그들의 삶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어요. 저는 북가주에 있습니다. 구글과 애플사가 있는데요. 정말 큰 IT 기업들이 있는데요. 정말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 이 회사들의 자금을 지원하는 그런 일들을 하는 친구들이 저한테 좀 있는데요. 정말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산다고 제가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제가 정말 개인적인 질문 여러분에게 드려도 될까요? 여러분, 교회에 오실 때, 성경 좀 이때 저때 읽으시면서 해야 돼서 하시고 계시지는 않으세요? 아니면 죄책감을 느끼기 싫어서 성경을 읽거나 여기 오시는 건 아니세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초자연적인 삶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앞에서 정직한 솔직한 모습으로 나아갈 때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도 그런 정직함, 온전함이 없으면 가질 수 없어요. 여러분, 다윗 왕이 범죄 했던 것 성경 말씀 있잖아요. 그리고 시편 51편에서 자기 죄를 고백을 합니다. 여러분 간음했다고 본인은 이야기를 해요. 실제로 계획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선지자가 찾아서 이야기하기 전에 거의 1년 가까이 자기의 죄를 숨겼습니다. 시편 32편을 보면 얼마나 그 다윗이 우울해져 있고 굉장히 어려워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근데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서 찬양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 오직 당시 신에 대하여 제가 범죄 하였나이다. 근데 5절, 6절에 이어서 다윗이 그 시편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하나님은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진리를 진정함을 원하신다고요.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에 대해서도 솔직해지셔야 돼요. 그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싫어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싫어하는 게 한 가지 있죠. 우리 위선자(僞善者)들 정말 싫어해요. 어떤 사람이 실수한다고 기분 나쁘죠. 정말 잘못된 일을 했다고 기분 나쁘진 않습니다.
 
제가 정말 실수했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 아 정말 저 실패했어요. 이런 말 하지 말았어야 됐는데 너 너 정말 미안해요. 그렇게 말한 사람들 괜찮아요. 왜요 우리 모두 다 실수하니까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비밀스럽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그런 거 굉장히 기분 나쁘고 화나지 않으세요? 그런데 거울에 비친 그 위선자까지도 우리가 싫어하고 있어요. 이 여러분 우리가 굉장히 영원히 피폐해질 때, 냉장고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열 때를 많이 발견해요.
 
아니면 인터넷에 들어가서, 인터넷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또 방 안에 들어가서 티비를 막 켜서 해야 되겠죠. 뭔가 어떤 소리가 들리기를 원합니다. 마음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면서 잊어버릴려 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잠시 멈춰서 조용히 하나님을 한 시간이라도 만나면, 여러분 그 영혼을 너무 힘들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이제 더 불편하게 돼서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많은 문제들은 우리 대부분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한 증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평생을 다 살아도 우리는 완벽해질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여러분, 시편 15편 첫째, 구절에서 다윗이 질문을 던지는데, 마지막 구절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나님의 그 이 성소 안에서 사람이 거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던졌던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합니다. 이 바른 길로 걷는 자는 그리고 진실 되게 말하는 자는 그리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고 이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내놓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보다는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주님 앞으로 갈 때, 주님 이런 말씀하신다는 거죠.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 말씀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사랑의 말을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나서 함께해야 된다고 이야기하죠.
 
여러분, 모든 관계가 온전해지기 위해서 딱 필요한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신뢰입니다. 신뢰가 없다면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죠. 아 근데 제가 한 가지 고백할게요. 우리가 이런 행동을 하곤 해요. 이게 제 진정한 모습이라면 제가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은 하지만 그리고 정말 더 염려하는 것처럼 행동은 하지만, 그리고 더 거룩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더 신실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 사랑하고 더 좋아할 만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그거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저 포즈를 취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이미지를 만든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 굉장히 이런 모습처럼 아주 좋은 시계를 차고, 그리고 아주 좋은 차를 타고, 아주 좋은 가방을 메고, 네 이런 것 저런 거 좋아하고, 우리가 정말 좋은 사람, 많은 걸 가진 사람인 것처럼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상처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이 죄로 인해서 생겨났던 것들은 감추려고 하죠. 저는 이 부분의 전문가니까, 정말 많은 것들로 우리를 가릴려고 합니다. 아 제가 정말 많은 점수 올릴 수 있어요. 그리고 정말 예뻤던 여자 친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정말 많은 성공을 막 이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누구도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죠.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거절받기 싫어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를 치장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홀로그램의 모습을 보는 거지 여러분 진정한 그 모습을 보지는 못하는 거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거절 받기 싫어서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를 치장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홀로그램을 보는 것이지, 여러분들의 진정한 모습은 보지 못하는 거죠. 근데, 여러분이 온전해지고, 또 진실 되게 바뀌면, 여러분이 신뢰할 수 있는 그 사람들에게 정말 여러분이 누군지를 보여준다면,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고통,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 그리고 여러분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들, 그리고 여러분이 얻고 싶어 하는 것들,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욕망,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함께 경험한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항상 이게 사실이 아닌 것처럼 행동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솔직하게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읽을 때, 그리고 서로를 더 사랑해서 서로를 더 세워줄 때, 온전함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거울을 보면서, ‘그래 나는 완벽하지 않아.’ 라고 이야기하면서 아 오히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거죠. 왜냐면, 하나님의 그 형상을 닮은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담이 범죄하고 숨어 있었던 그 에덴동산에서 성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갈 때랑 똑같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에, 바른 길을 걷고 온전함을 추구하는 자는 안전하고 평안할 것입니다. 그런데 굽은 길로 가는 사람은 드러나게 될 겁니다.
 
제가 20살 때, 이 말씀을 외우게 됐어요. 정말 사랑하는 아내, 장성한 4명의 자녀들, 그리고 12명의 손주들, 정말 목회자로서 오랜 시간을 지금 사역해 왔는데, 여러분들처럼 저도 계속해서 유혹받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근데 그때 제가 깨달았어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생각을 계속 새롭게 하지 않으면, 온전함을 추구하는 바른 길을 걷지 못하겠구나. 저에게 한 3~4명의 정말 제가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 앞에서, 제가 절대로 온전하게 될 수 없겠다고 바른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없겠다고, 고백한 적이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읽었던 잠언 10장 9절 말씀 그다음에 뒷부분을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저에게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줬던 말씀인데요. 굉장히 비극적인 실수를 저질렀던 거를 제가 떠올려 봅니다. 왜냐하면, 다윗 왕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저 약했던 순간이 있었던 거죠. 어떤 사람도 이런 도덕적인 또는 재정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제가 마치 카메라로 쳐다보듯이 그 장면이 하나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제 아내가 여기 같이 함께 앉아있을 때, 바로 옆에 이제 50세가 된 제 장성한 자녀 2명이 있고요. 그리고 43세의 자녀 하나, 그리고 마지막 막내 막내딸인 37살의 딸, 그리고 그렇게 쭈르륵 서 있는 바로 앞에 12명의 손주들이 다 앉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이렇게 쳐다보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요. 제가 지금까지 사역해 오면서 했던 수많은 말들을 다 지키지 못하고 어겼다고 나는 여러분의 용서를 구한다고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장면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제가 그 영화 같은 동영상을 매번 돌려봐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히 잘 모르신다면, 여러분들이 지은 죄가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날 것이구요. 제가 짓는 죄가 제가 누군지를 드러내게 될 겁니다. 정말 온전함을 추구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있죠. “나에게 오렴, 너희 모두 나에게 오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정말 힘들고 어렵고 낙망하고 있을 때, 내가 너에게 평안을 주노라. 나를 따르렴, 종교가 아니라, 같이 살자. 정말 따뜻하게 너를 돌봐주면, 내가 너에게 힘들게 하지 않아, 네가 정말 진실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어떤 죄도 용서할 수 있어. 너를 회복시켜 줄게. 그럴 때, 너에게 평안을 주고 그리고 쉼을 허락해 줄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 함께 조용히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요약
만약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신다면, 이 자리에서 보여주신다면 여러분을 구원해주셨던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야 한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만약 너의 죄를 자백하면 내가 너를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로 우리를 깨끗이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취해야 할 첫 번째 스텝이고, 우리가 정말 믿을 수 있는 신앙이 있는 친구에게 전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스텝이다. 우리의 대적이 우리를 쫓아올 때, 그때 기도에 동역 자가 필요하며, 정말 어려운 일들 있을 때, 주님은 그 일이 기적적으로 해결해 주실 것이다. 우리를 말씀으로 지켜주실 것이니, 그렇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고, 온전함을 추구하며, 지혜로운 삶의 열쇠를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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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4부 예배.
제목: "온전함, 지혜로운 삶의 열쇠“
말씀: 창세기 11:27-12:9
설교자: -줄리어스 김 목사님(미국 웨스터민스터신학교 한국어사역부대표, 글로벌사역부 석좌교수 초빙)-통역: 김예성 강도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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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27-12:9,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12:1-9,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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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 김 목사님(미국 웨스터민스터신학교 한국어사역부대표, 글로벌사역부 석좌교수 초빙)-통역: 김예성 강도사님.
-저는 한국말 잘 못하니깐 영어를 설교하겠습니다. 저는 원래 미국에서 태어나고선 한국말 조금 할머니하고 같이 살면서 할머니에서 좀 많이 사랑도 받고 한국말을 좀 쪼끔 배웠습니다. 요즘에는 지금 뭐 한국 드라마 같은 거도 보고, 더 좀 배우고 그런데 저기 설교는 아직도 좀 힘들어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지금 영어로도 하고 저기 아주 좋은 통역자 있으니깐 너무 감사하죠. 저 영어를 좀 통역해 주세요. 아니요. 시간 없어서 제가 지금 시작했습니다. 저기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이 시간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불러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 시간 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의 영으로 함께 하심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지금 듣고 있사오니, 우리를 찾아와 말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저 특별히 오 목사님한테 좀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말씀을 좀 전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예 진짜 저를 동생과처럼 왜 이렇게 한국말만 나오지 여기 올라오니까 한국말 하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나오네요. 목사님 너무 감사하죠. 그래서 저를 많이 사랑하고 너무너무 챙기고 이렇게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땡큐. 부르심을 기억하면 우리의 소명은 우리의 확신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이 명제는 우리의 삶이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중요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 시간 모인 영 가족 가운데 이러한 시간을 통과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복음은 여러분들은 결코 혼자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은 순례자를 가리켜서 격려하고 응원하는 말씀 속에 많은 순례자들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 속의 아브라함이 그러한 순례자 중의 한 명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이 세상과 인생길을 걸어갈 때, 이 믿음의 길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영 가족 여러분들을 위로하시고 견고히 붙잡아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창세기 12장은 창세기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써 아브라함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라고 불리는 그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저 구약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축복하실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새 언약 백성인 여러분과 저까지도 축복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또한 약속하신 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를 향하여 그저 보이는 것을 따르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걸어가기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영 가족 여러분 절대 ‘돌아서지 마시고 앞으로 전진’ 하십시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함께 나눌 3가지의 진리가 있습니다. ①부르심, ⓶약속, ⓷반응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특별한 이 문맥과 상황 속에서 부르심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본문에서 우리가 살펴볼 첫 번째 진리는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든 것을 등지고 그를 따르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버리고 따르는 것 1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2:1,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단순한 서술 한 문장이지만 결코 평범한 부르심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떠나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떠나라. 는 이 히브리어 단어는 자신을 불리하다. 라는 표현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 칼빈은 이 표현을 가리켜서 ‘눈을 감고 떠나는 것’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저 고향을 떠나라. 하나님께서 그를 본토와 가족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고향을 떠나라, 아버지 친척을 떠나라. 편안함을 떠나라. 이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내가 만약 이 아브라함, 내가 만약 아브라함이었다면 하나님께 아마 여쭈었을 겁니다. 하나님 조금의 힌트를 주실 수 없으십니까 어떤 일반적인 방향을 보여주실 수 없으십니까 제가 거기에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려주실 수 없으십니까? 그 새로운 땅에 가면 저를 도와줄 사람은 있는 겁니까? 근데 응답은 없습니다.
 
그렇죠. 이 생각과 질문의 끝에 하나님은 답을 주시지 않았고, 그저 믿음으로 순종하라는 단순한 부르심만 있었습니다. 뒤에 고향을 두고 떠나가라. 너의 가족을 떠나가라. 너의 안전했던 그곳을 떠나가라. 버리고 줄을 따르라. 버리고 주를 따르라.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보면 매우 독특한 상황이 펼쳐져 있습니다. 멤버들 다 나와요. 이렇게 그렇죠. 11장 보면요 그렇죠. 11장 보믄 2천년 동안 노아부터 샘까지, 에이브람까지 브라잇 제너레이션 마다 제너레이션 나오죠. 영어도 좀 하죠? 그렇죠? 그 제너레이션마다, 제너레이션까지 이렇게 가족마다 가족 이렇게 다 나죠. 2천년까지,,, 그런데 27장을 보면 뭐가 나와요. 보세요. 보세요. 성경 보세요. 27장 보면은 그 이야기가 변해야 되잖아요. 또 스토리 체인지 와이? 27절을 보면 말씀이 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모든 아브라함의 족보가 나열된 다음에 이제는 데라의 첫째, 아들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아내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임입니다. 버리고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에, 아브라함의 상황은 아내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2천 년의 족보들을 나열하신 후에 왜 이러한 상황 가운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 가운데, 그렇게 아브라함을 부르셨을까요? 첫 번째로, 우리가 주목할 점은 2천 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가문이 끊어질 현실적인 어려움을 아브라함이 마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없이는 가문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불명예와 수치와 절망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그저 불명예와 수치와 절망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본문에는 사실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현실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고통과 불안의 근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부르심의 맥락과 상황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많은 종들과 지도자들은 그들의 모든 상황을 척박한 광야라는 표현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성경을 보면 다양한 곳에서 그렇게 광야와 같은 장면을 연출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의 산, 네게브 그리고 바란, 광야와 유다와 광야 같은 것들이 그러한 예입니다. 이 혹독하고 척박한 땅에서는 오직 죽음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척박(瘠薄)한 광야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지도자들과 종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했던 배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어야 합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곳에서는 오직 하나님만 신뢰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과 광야에서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 위탁하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그곳에서는 전적 위탁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모세는 노예로 살던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 노예들을 불러서 자유케 하는 그 부르심을 받은 곳이 광야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예수님 혹시 광야에서 40일 동안 유혹을 받으셨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잘 들어보십시오.
 
이곳은 바로 우리가 전적 위탁하는 법을 배우는 광야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광야에서 헤매고 있을 때, 마치 순례자와 같은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내가 다 뒤로 내버려 둘 때에, 온전히 하나님만 붙잡기를 우리 주님은 원하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종종 방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방해하는 것들을 제가 제거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지만 이 문맥과 상황 안에 또 다른 구체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그러한 내용은 정확히 나와 있진 않습니다. 이 내용 안에서 우리는 에브라함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린 사실 여기서 고향과 가족 외에는 많은 정보를 알 수는 없습니다. 이상하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이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잖아요. 그렇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될 사람입니다. 이제는 복의 근원이 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나아가 온 세상을 축복하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가 복을 받을 만한 어떤 좋은 성격이나 어떠한 대단한 이력이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왜 아브라함이였을까요? 왜 믿음으로 걸어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까요? 결론적으로 보면 그것은 아브라함 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마주하시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축복에 대한 약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 자신에게는 축복을 받을 만한 어떤 선 자격이 있지 않습니다. 그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순례의 길, 여러분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를 놀랍게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신 하나님이 창세기 3장 15절에서 말씀하셨듯이, 결국 죄와 죽음과 사탄을 여자의 후손에 의해 정복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 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이 창세기 3장의 약속을, 이제 창세기 12장으로 넘기시면서 아담과 아브라함의 궁극적인 후손 주 예수 그리스도에 오실 길을 우리에게 준비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입니다. 이제는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함께 살펴봅니다. 2절과 3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2:2-3,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는 이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떤 그의 자격이나 그런 것들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걸어온 길이나 의로움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는 자손과 후손들이 많을 거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더 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가족과는 구별되는 분명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의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민족에 걸쳐 유명해질 것입니다. 셋째,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땅에 모든 족속이 심지어 우리 대한민국까지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브라함이 선택받은 이야기에 우리를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나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라고 하는 이 말씀을 아브라함은 어떻게 받았을까요? 그 아내는 임신이 어려운 상태인데 이제 이 민족을 이루려면 여러 세대가 지나가야 하는데, 내가 생전에 절대 그 장면은 볼 수 없을 텐데, 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둘째로, 나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새로운 땅을 찾아온 이방인으로서 어떻게 빠르게 내가 그렇게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나의 적들을 축복하실 것인가?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민족적인 갈등이 있었는데, 원수를 축복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내가 축복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라고 이러한 솔직한 감정과 의심 속에서 아브라함은 그럼에도 이렇게 반응합니다. 부르심을 듣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좌우되지 않고 믿음으로 달려갑니다. 그의 믿음의 반응 세 번째로, 살펴봅니다. 4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2:4,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언제 어떻게 축복이 올지 몰랐습니다. 그저 하나님만 신뢰하고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그저 희망사항이 아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객관적인 약속에 기초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후손을 주신다. 라는 그리고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말씀과 약속에 그의 믿음은 기초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히브리서 11장에서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8절로 12절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8-12,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보이는 것을 따르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했습니다. 한 가지 더 7절과 8절에서 8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7절과 8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2:7-8,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들었어요. 제단, 왜 제단이 두 번 나오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그가 보인 모습은 그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한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얼마나 예배가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이 말씀이 정말 참으로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서 신앙과 인생길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 우리의 표대와 같은 말씀이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매주 안아 주심의 본당에 들어오는 것은 그저 단순한 일 같지만 이것은 엄청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 안아주심의 본당에 들어와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예배하며 이 안에서 서로 영 가족과 교제하는 이 아름답고도 정기적인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본인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축복을 받을지도 모르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이것은 우리 역시 배워야 할 점입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며 불확실한 세상길에서, 이 시간들 속에서 믿음으로 예배하는 법을 우리는 배워야 하는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믿음, 예배는 믿음의 행동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심이라는 독을 해독하는 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여러분 하나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몇 년 뒤에 사라는 아이를 기적같이 임신하며 이삭을 낳게 됩니다. 이제 드디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바치며 떠나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10장을 넘기고 보면 창세기 22장에서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산에서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어떻게 할까요? 물론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찼지만, 아브라함은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을 따라 걸어갑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찌르려 할 때, 주님께서는 놀라운 신적 개입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마침내 창세기 12장과 창세기 22장의 말씀은 구약성경 전체와 함께 아브라함과 이삭보다 더 크신 분을 우리에게 소개하며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성부 하나님과 하늘 보좌를 버리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대속 제물로 바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라는 부르심을 봤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시기에 부활의 은총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이제 우리에게 죄 사함과 부활의 능력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제 여러분과 저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분을 따라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그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따라가라고 믿음으로 걸어가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과 인재를 통해 결코 우리를 그저 내버려 두시거나 절대로 떠나지 않으신다. 라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신뢰하고 또한 순종하며 하나님만을 예배할 수 있도록 이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든 영 가족들을 언제나 인도하시고 붙잡아주실 것입니다. 버림받으셨던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여러분들을 믿음으로 걷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하며 모든 민족을 축복하라고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의 열매인 줄 믿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모든 무릎을 예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의 열매인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들은 오직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온전히 따르십시오. 그 길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십시오.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걸어가는 사랑의 교회의 모든 영 가족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약(4부)
고통과 불안이 가득한 척박한 삶의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 붙잡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자격 없는 나를 사랑으로 부르신 하나님께 전적위탁하며 전진해야 한다. 매주 이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예배할 때,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사 놀라운 신적개입의 은혜로 순례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힘과 능력을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을 믿고, 우리 사랑의 교회가 2033-50 비전의 원년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금식하며 섬길 때,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와 큰 기도가 복음통일의 마중물로 쓰임 받기를 간절히 간구하자.







*헌금송:남사역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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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부
3부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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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15일)
제목: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말씀: 창세기 22:13-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
대표기도: 남동우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문진호 부목사님(2부) 이기호 부목사님(3부), 임상규 부목사님(4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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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13-18,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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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명절이 될 때마다 신앙의 토대의 뿌리로 간직해야 할 내용들을 한 번 제가 강조하는데 그래서 오늘 지방에 내려간 성도들도 많이 계십니다만 또 역 귀경하신 분들도 계시고 그래서 제가 여러분 명절 선물을 좀 드리고 싶은데 뭘 하나 하는데 오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돈을 주시지’, 그런데 이게 돈 보다도 훨씬 소중한 거에요. 오늘 이 말씀 제가 저의 목회에 목자의 심정이 늘 저에게는 중요하지만 또 동시에 오늘 이 말씀이 아주 중요한 우리 사역의 토대가 된다. 이렇게 여러분 신앙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오늘 주인공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우리에게 믿음의 조상이라고 그랬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란 말은 우리의 삶의 교과서가 된다. 뭐가 된다구요? 교과서가 된다. 소위 롤 모델, 그러니까 역할 모델이 된다. 우리의 삶의 본보기가 된다. 아브라함이 뭐 무슨 본보기가 되나? 키는 아브라함 한 사람 때문에 아브라함의 생애에 그의 인생, 자기는 그렇게 될 줄 몰랐을 거에요.
 
지금부터 4천 년 전 아브라함이 살았던 그 삶을 살아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걸 잘 살고는 자기로서는 끝인 줄 알았는데 4천년 뒤에 지금 우리가 이 추석날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본보기를 가지고 우리도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본보기를 가지고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근원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때문에 아브라함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아브라함의 후에가 되면 그렇게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이렇게 돠는 줄도 몰랐을 거에요. 우리 인생의 교과서가 되는 줄도 몰랐을 거에요.
 
우리 성도들이 가장 소중하게 우리 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서초동의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맞춤형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한가위가 시작되 명절 복된 주일이 되었는데 제가 잠깐 우리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를 멈추고 오늘은 명절 좀 선물을 드릴려고 합니다.
 
명절 좀 선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많은 성도들이 지금 고향 방문을 하고 있고 또 역기경으로 오신 분도 계시는데요. 명절 선물을 드릴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용돈을 주시지 내 용돈보다 더 귀한 것 꼭 정말 필요한 것 제가 명절 주일 될 때마다 정말 우리가 평생 기억해야 할 어떤 신앙의 지침이랄까 토대라 할까 기둥이랄까 그런 내용들을 제가 1번씩 말씀을 나누는데 오늘 드릴 선물은 자 평소에 제가 목자의 심정과 또 오늘 이 드리는 말씀 너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니라. 오늘 말씀대로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아니 목사님 나는 내 한 몸 가누기도 힘든데 나만을 위해 살기도 힘든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하는 그런 분들 계시면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지금 주님이 주신 음성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신앙의 정점이에요.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의 이삭을 바치라는 그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모레아 산에서 바치려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이제 오늘 이 하나님의 테스트에 아브라함이 성공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오늘 이후부터는 아브라함의 큰일이 많이 나오잖아요. 오늘 이게 아주 그냥 아브라함의 어떤 신앙에 아주 야크라이맥스가 정점이에요. 여러분 아브라함을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 그랬잖아요.
 
그리고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라고 그럴 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중요한 축복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겐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축복의 대상이 아니라 땅에 모든 족속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축복의 근원이라는 것이에요. 조금은 쉬운 말로 하면 아브라함이 축복의 유통자가 되는 거예요. 축복의 소통자가 되는 것이 이게 왜 이래 중요한가. 하면 아브라함은 자기가 이렇게 그 시대에 지금부터 한 4천여 년 전에 그 시대에 이렇게 살았는데 자기 산 것으로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까 그 아브라함의 그 삶이 우리 신앙의 교과서가 된 거예요. 본이 된 거예요.
 
아주 교본이 된 거예 로 역할 모델을 한 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내용을 잘 듣고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 그대로 여러분들의 삶에 적용하고 꾸준하게 여러분들이 살아가시다 보면 나중에 여러분들의 자녀 손들이 아 우리 할아버지가 내 신앙의 역할 모델이었다. 별로 반응도 내 할아버지가 아주 할아버지 아린 분들은 내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 뭐 저도 부친이 있고, 저희 할아버지 계셨습니다마는 우리 할아버지가 저에게 역할 모델이셨어요. 근데 우리 할아버지는 나한테 역할모델이라고 생각 안 하셨을 거예요. 근데 그 할아버지의 역할 모델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종을 치시고, 새벽에 새벽이슬을 맞으시고 기도하시고 뭐 특별하신 분이었어요. 야!! 그런데 손자가 오늘 여러분들의 이 얘기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 그러니까 오늘 이 내용을 여러분들이 진짜 남 얘기로 받지 말고 여러분의 말씀으로 받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제가 지난 주일날 우리가 진흙이 아니라, 뭐라 그랬죠? 소금이라고 그랬잖아요. 우리가 소금으로 사는지 안 사는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윤리적으로 어떻게 되나, 좀 우리가 구별되는 삶을 사 이런 것도 있겠지만, 결국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를 원하는 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나, 여러분들의 마지막에 어떻게 되나, 여러분들 끝이 어떻게 되나 우리 교회 용어로 말하면 Finishl well 하는가?
 
오늘 이 예배를 들어오는 방송으로 들어올 모든 분들은 여러분들의 말씀을 통하여 Finishl well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40대, 50대가 인생의 피크가 그러라고 그러는데, 우리는 40~50대가 인생의 피크가 정점이 아니고, 우리는 점점 성화되어 가지고 주님 만나는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정점이 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자 오늘 이 내용은 어느 산에서 된 일이에요.
 
모리아 산에서 된 일이에요. 근데 아브라함은 단순히 모리아 산에서 그냥 이삭을 바치는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걸 나중에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모리아 산의 사건 아브라함 그것이 끝이 아니라, 나중에 이 모리아 산,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다윗이 금 600세겔을 주고 샀어요. 사실은 모리아 산 전체를 다 산거에요.
 
그리고 그 모리아 산에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죠?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건축을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솔로몬 예루살렘의 성전을 건축하고 그걸로 끝이 아니라, 나중에 그 모리아 산 골짜기 또 모리아 산 이 끝자락에 예수님께서 골고다의 십자가를 치고 주님께서 우주적 성전이 되어 주셔 가지고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단순한 것이 아니라, 모리아 산 이삭의 사건 같은데, 사실은 이것이 예루살렘 성전과 오르난의 타작마당과 그다음에 또 뭐죠? 아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우주적 성전의 죄, 그러니까 본인은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이게 어마어마한 일이 된 거예요. 조금 더 들어가면 조금 더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을 주신 축복이 창세기 3장의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그 불순종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난 저주가, 오늘 아브라함의 이 이삭을 바치는 순종의 사건을 통하여 그 모든 불순종을 통한 저주의 역사가 끊어지고, 너무나 놀랍고 신비한 구원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에요. 이걸 바울이 나중에 깨닫고 난 다음에 로마서 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이거는 어마어마한 해석이에요.
 
*로마서 4:17,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죽은 자가 살아나고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프롬 낫팅 투 썸팅(From nothing to something) 아무것도 아닌 게 있는 것이 되는 건데, 지금 우리로 말하면 오늘 이 시간 실적해 가지고 내가 진짜 내가 힘들다 경력 단절이 돼야 지금 힘들다. 하는 그런 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계신다 할지라도 이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 가지고, 오늘 제가 같이 기도하는 기도 제목을 같이 나누고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의 대로를 오늘 열어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에 있는 줄로 확신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윌리엄 윌버 포스’라는 그 영국의 유명한 국회의원이었는데. 좋은 신앙인이에요. 이 말씀을 자기가 그대로 받고 갑자기 마음속에 아 내가 천하만민 오늘 이러면서 16절을 좀 보세요. 16절 같이 또박또박,
 
*창세기 22:16-18,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그리고 종합적으로 오늘 18절, 오늘 설교 제목처럼 시작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걸 윌리엄 윌버프로서는 보다가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천하만국에 복을 줄 수 있는 축복의 유통자가 된다. 그러면서 갈라디아 3장의 바울이 해석한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이방인이나 그다음에 이스라엘 사람이나 여러분 종과 자유자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에요. 당시의 남자와 여자도 넘을 수 없는 벽이고, 특별히 이방인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을 뗄 감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이방인과 이스라엘 사이 이거는 완전히 벽이에요. 그런데 그 모든 걸 초월하는 모든 벽을 부술 수 있는 축복의 근원이 돼야 되겠다. 그걸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제목이 뭐냐면 당시에 노예 무역 제도는 그 당시의 경제 가장 큰 근간이었어요.
 
그 모든 경제의 근간을 다 처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윌리엄 윌버폴스에게 믿음 주시고 기도 제목 주셔갖고 노예 무역제도를 폐지하는, 정말 하나님 나라의 혁혁(赫赫)한 인물이 되는 것이 참 놀라운 것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몇 가지를 기본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 있어요. 그 주신 것을 토대로 해가지고 아브라함이 천하만국의 축복의 소통 자가 된 것인 줄로 믿으셔야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3가지를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뭘 준비를 시켜주셨는가 첫째, 보세요. 뭐라 14절을 보겠습니다. 14절을 보니까,
 
I.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창세기 22:14,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자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된다. 하는 이 말씀이 과거형이에요. 아니면 미래형이에요. 조금 이따 여러분들 숯 양이 다 준비되었는데 이미 준비되었어요. 근데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는 것은 미래형이었어요. 어린 숫양이 준비가 되는데 크게 보아 가지고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이것은 어린 숫양이 준비되는 정도가 아니라, 어린 숫양이 예표가 되어 가지고 앞으로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그 주님을 믿고 사건을 믿고, 구세야주와 주님으로 영접할 때 앞으로 오고는 수많은 사람들과 세대들에게 어마어마한 복음의 신비가 체험된다는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과거 시제를 써야 되는데, 미래 시제를 쓴 것이 여기에 복음의 깊은 신비가 담겨있는 줄로 믿습니다. 미래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요한복음 8장 56절에 보면요. 놀라운 말씀이 있어요. 이 말씀이 옛날엔 해석이 잘 안 되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8:56,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여호와의 산에서 뭐 한다구요? 준비되리라. 그 여호와의 산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이걸 통하여 나중에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사고 솔로몬이 거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이방 많은 사람들이 와서 거기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리고 모든 예루살렘의 성전은 땅의 모든 족속이 와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을 응답하시는 축복의 장소가 되게 만들어주신 것이에요. 그런데 그런 모든 내용들을 나중에 아브라함이 보고 기뻐하였다.
 
예수님 이 말씀을 할 때에 사람들이 아니 너는 50도 안 됐는데 어떻게 네가 아브라함 얘기를 하겠느냐고 그렇게 말을 막 했거든요. 그럴 때, 야!!! 주님께서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기뻐하였느니라. 그래서 창세 1장 7절에 보면요. 아브라함은 선지자라 그랬어요.
 
*창세기 20:7,
....‘그는 선지자라.’
-여러분 지금 오늘 예배를 드리고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냥 오늘 설교 듣는다. 이게 아니고 오늘 이것이 여러분들의 말씀으로 체화가 되고 고백이 되고, 선포가 될 때에 주님이 예배하신 귀한 것들을 보고 즐거워할 때를 주님이 주실 것이에요. 귀한 것이에요. 이걸 깨달은 사도 요한은 이 내용을 깨닫고 요한일서 5장 18절에 뭐라고 말씀하시죠.
 
*요한일서 5:18,
18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라.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양의 보혈의 능력이 함께할 때에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축복을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그게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보너스 축복이에요. 이거 참 우리가 마음 저는 이게 어릴 때부터,,, 야, 나는 부족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그대로 받아 누리면 악한 자가 나를 만지지도 못한다. 저는 이거 에누리 없이 믿습니다. 오늘 말씀과 이 방송을 통한 예배에 참여하면서 또 별관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 마음을 다 같이 해 가지고 ‘주여, 우리 성도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무슨 뭐 보굴관이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에요.
 
오늘 이 시대의 수많은 참 타락하고도 더럽고도 오염된 부패한 수많은 흐름들이 있는데, 그 흐름들이 여러분과 저를 한국 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만지지도 못하게 해 주십시오. 그게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였다. 아브라함이,,, 두 번째로는 뭐가 나와 있습니까? 그걸 위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 준비되는데 두 가지 준비를 시켜주시는데, 하나는 뭐냐면 13절에 보겠습니다. 13절에, 같이 우리 여러분들 이렇게 해서 13절의 시작,
 
II. 일용할 삶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창세기 22:13,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하나님이 이제 모리아 산에서 제물 되는 이런 내용들, 이삭을 드리는데 하느님께서 이삭 대신에 뭘 준비시켜 놨어요. 숫양이 있는데, 그다음에 수풀에 걸려있는지라. 자 이걸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하시는데 먼저 일용할 양식과 필요를 준비시키시고, 일용할 양식과 일용할 필요를 채우신 주님이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이거예요. 그 얘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거, 일용할 삶의 피로를 채우시는 하나님, 무슨 말이냐 숫양이 수풀에 걸려 있다는 것은 아주 우리 뭐 제자훈련 하는 분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겠습니다마는, 지금 아브라함의 이때 나이가 120세쯤 됐어요. 몇 살쯤 됐다고요? 120세예요. 120세가 되면 힘이 있고 재빠르고 빡빡합니까? 아니면 좀 이렇게 좀 이래도 되잖아요. 좀 이렇게 좀 한 박자가 늦잖아요. 한 박자가,,, 교회도 가보면 젊은 분들이 많은 교회는 찬송가를 빨리 부르고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은 경우에는 리듬이 천천히 가요. 천천히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만약에 이 숫양이 양이 수풀 걸려 있지 않고 돌아다니면 아브라함이 그 재물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120세가 되었는데 못 잡아요.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예민하게 아브라함의 처지를 생각 하셔 가지고 아마 슬로비디오처럼 이래 나타나면 안 될 거예요. 그럼 또 옆에 이삭 있지 않습니까? 이삭은 지금 묶여있어요. 지금 이상하게 못 도와줍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다 필요를 아시고, 수풀에 딱 걸려가지고 다 있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숫양을 잡아서 주님께서 아브라함의 필요를 아시고 떠먹여 주셨어요. 우리가 축복의 근원이 된다. 큰 사명이에요. 우리는 축복의 소통 자와 유통자가 큰 사명이에요. 또 하나님 예비하신 준비하신 걸 기대도 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꼭 필요한 것, 일상에 필요한 것, 정말 주님이 응해주시면, 떠먹여주시는 것이에요. 인생을 살다 보면 기도 제목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정말 어려운 일들 많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순순하게 믿을 때, 하나님은 그냥 순수하게 하나님도 반응해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수많은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신명기 2장 7절에 뭐라고 말씀하시냐, 크게 합독합니다.
 
*신명기 2:7,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내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할렐루야!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도 부족함 없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심지어 시편기자가 10편 84편 6절 7절 보면, 더 마음이 찡하게 하는 게 있어요.
 
*시편 84:6-7,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우리가 눈물골짜기가 배제된 그런 인생은 없어요. 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갑니다. 그런데 눈물 골짜기가 지나갈 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은 눈물 골짜기가 많이 샘이 되게 해주신 것이 무슨 말인가 광야 같은 이 땅에서 눈물 골짜기를 지나지는 지나가는 인생들에게 그 눈물 골짜기가 우리를 살게 하시는 샘물이 된다. 이 말이에요. 그 다음에는 또 더 놀라워 7절에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무슨 말입니까? 죽을 것 같이 괴로운 그런 시간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어떤 의미를 주냐,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것이 기력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힘을 얻고 더 얻어 한다. 한 단계 올라가는 그런 삶을 살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자, 산에서 준비되리라. 숯불의 숫양을 준비하신 하나님, 그다음에 이제 또 하나 더 준비하게 하시는 그것이 뭐냐면 12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요. 12절 뒤에 보니까,
 
III. 영혼의 필요를 채우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22:12,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 경외한다는 말은 성숙하게 하나님의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을 경유하는 자리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적인 일용할 피로를 채워주실 뿐 아니라, 영적인 피로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영적인 피로를,그래서 저는 제가 뭐 이렇게 다 말씀을 드릴 수 없지만, 이걸 베드로가 깨닫고 난 다음에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베드로후서 1:3-4,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주님은 우리의 육신의 피로를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시는데, 어떤 노래를 주시는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나는 아까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우리 한 몸 가누기도 힘든 우리 인생에, 신기한 능력으로 제가 황송하고 좀 어떨 때는 좀 부끄럽지만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만들어주시는 거에요. 우리가 뭐라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해주신다. 여러분, 이걸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과연 그런가 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쳐다볼 때에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품, 신성한 하나님의 성품,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축복이 사랑의 교회와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한분 한분들에게 확인되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61세 되신 어떤 여자 집사님이 계시는데, 코로나 기간 동안에 몸이 너무 아팠는데 본인이 몸이 아플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너무 아파 가지고 그 어머니 병수발을 들다가 이분이 그냥 뭐 온라인 예배드리고 막 이렇게 하면서 다 그냥 막 나가떨어졌어요. 몸이 너무 막 그냥 아팠어요. 그런데 내가 이러다가는 온라인 들으다 내가 죽겠구나 싶어갖고 이제 마칠 때 돼 가지고 현장 예배에 오셔갖고 은혜를 받았어요. 어느 현장 예배와 내가 여기서 살겠구나! 하는 그런 어떤 영점 기름 부분부터 은혜를 받았어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죠. 그런데 작년에 한국교회 섬김의 날에 대한 광고를 듣고 아 내가 몸도 아프고 이러지만 그래도 내가 한번 한국교회 섬김의 날에 대해 한번 내가 봉사를 해볼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가 가지고 자원 봉사팀에 들어갔고 작년에 우리 7천여 명의 한국교회 섬김의 날 우리 작년 9월 달 했잖아요. 와가지고 이제 작년에 집회를 하는데 뒤에 섬기다가 첫날 저녁에 주여 삼 칠천여 명의 목회자들이 모여 가지고 주님, 우리를 살려 주시고 주님 우리를 베풀 만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면서 주여 삼창을 하는데, 그 집사람이 같이 주여 삼창하다가 갑자기 불을 받아버렸어요. 그래 가지고 뭐 어깨 통증뿐만 아니라, 관절이 아프고 온몸이 아픈데 갑자기 머리도 발끝까지 쉬어하더니, 싹 치유가 됐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걸 순전하게 하나님이 우리의 육신과 영적인 필요를 채우신다는 걸 믿고 뭐 이런 걸 다 몰라도, 하여튼 순전하게 말씀 받아들이고 할 때, 저는 다 모르지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한 스타일대로 하나님께서 일마다 때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복음의 신선도예요. 신선도,,, 예 제가 정리를 하겠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사회에서는 몰렉 같은 신은 아들을 바쳐가지고 이방신들은 그 바쳐진 소위 인신공양의 파워와 능력을 가지고 신이 아주 힘을 발휘하는 거예요. 그것이 고대 근동사회의 신관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는 이걸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제물 되는 것에 대한 구약의 예표를 보여주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인신 제사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 이삭을 바치는 게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어린 양 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당시 고대 근동사회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뭘 할 수 있는가, 세상의 신은 그랬는데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해 주셨는가? 그러니까 이삭 바치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표현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그 당시에 인신공양의 잘못된 이방의 모든 어떤 이런 제도들과 신적 관념들을 다 처리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성경에 보면 앞에 22장 앞에 보면 아 이삭을 보고 말했어요. ‘하나님이 준비하실 거야.’ 아들 바치라고 그랬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준비하실 거예요.
 
그리고 아브라함 믿음 어디까지 나왔냐면 히브리 11장을 보면, 이 사건을 해석을 하면서 설령 이삭이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려 주실 것을 믿었느니라. 그랬어요. 놀라운 이 복음의 깊은 내용을 깨닫는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걸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은혜가 아브라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교과서가 되고, 하나님께서 그의 육신의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떠먹여주신 것을 통하여 힘을 얻어 이 삶을 실천하니까 그 아들이삭이 그걸 그대로 본받았어요. 교과서 본 대로 하는 거예요. 그냥 그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파고 괴롭히고 이삭 거 빼앗아가고 다 한다더니, 이삭이 It’s OK!, 그냥 넉넉하게 이렇게 이삭이 그 주위에 축복의 근원이 된 줄로 믿습니다. 유통자가 됐어요. 그리고 이삭이 나중에 말년에 야곱의 아들 요셉을 품에 안고 교육을 했어요.
 
그러니까 요셉이 이삭 할아버지에게 받은 그 교육을 가지고 아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눈물 골짜기를 은혜의 샘물을 만들어주신 주님이심을 믿고 찬양합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채우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뭐 이런 비슷한 내용들 말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요셉이 자기가 잘해 가지고 감옥에서도 그 종살이 하면서도 자기가 잘해 가지고 거기서 축복 유통자가 돼갖고 나중에 요셉 한 사람 때문에 고대 근동사회가 다 복을 받고, 모든 굶주림을 해결된 줄로 믿습니다. 그야말로 요셉이 고대 근동사회에 요셉의 창고를 열어 축복의 유통자가 된 것입니다.
 
생명의 공급자,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의 수혜자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이 말씀을 깨달은 사람은 제가 한 번씩 강조합니다마는 시골의 무학 한 할머니도 세계를 위하여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시고, 가난한 달동네의 청년들도 이거 하나 깨닫고 흙 수저로 태어났다고 고민하거나 아파하거나 세상을 비관하거나 한탄하고 세상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생명의 씨앗으로 박히면,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생수가 되면, 이 말씀이 씨앗으로만 있으면 안 되고, 이것이 생수가 되어서 발아가 되고 거기에 싹이 움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되면, 남들이 볼 때 초라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내 것이 끝까지 유지만 하면, 그의 인생이 finishing well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본다 할지라도 거기에 걸 맞는 누가 봐도 아 예수인 삶 다르구나! 하는 그런 축복을 받게 되는 줄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에 맞는 어떤 제가 경험할 뭐가 없나 하고 제가 기도하다가, 2010년도에 에딘 버러 선교 100주년 대회가 있었어요. 그것은 1910년도에 지금부터 한 114년 전이죠. 1910년도에 전 세계의 첫 번째 전 세계 월드 미션 컨퍼런스, 또 더 퍼스트 월드 미션 컨퍼런스가 에든 버럿 대학교에서 있었어요. 에든 버러시였었어요. 그걸 기념해 가지고 100주년을 하는데 그 100주년 하는 첫날 저녁에 제가 키노트 스피커였어요. 월드 리폼드 펠로십 해가지고 세계 게이름 모여갖고 에든버러 대학교 강당에서 말씀을 전했어요.
 
제가 한 50번 정도 사고 싶은 말씀을 그 말씀을 전하고 난 다음에 이제 저는 그 끝나고 바로 LA에 있는 우리 칼 세미나 집회를 인도하러 가야 되는데, 제자훈련 지도자로 가야 되는데 갑자기 끝날 때쯤 돼가지고 아이슬란드의 대폭발 화산대 폭발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비행기가 뜨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리고 여기 우리 얼마나 있어야 되나 보니까 며칠을 더 있어요. 비행기 뜰 때까지는 화산재 가라앉아야 되니까. 그걸 뜰 때 뜰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거기에 있기가 뭣해 가지고 에딘버러에서 런던에 와가지고 이제 런던에서 사역을 하려고 런던 그 킹스 크로스라고 역에 딱 도착을 했는데 에든버러에서 한 5시간 정도 걸려요 도착을 했는데 뒤에서 누가 제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보니까 덕 버셀이라고 당시에 로잔 총재였어요.
 
그래서 저녁에 좀 자기하고 식사같이 할 수 있냐고 좀 얘기할 수 있냐 오케이, 그래서 인제 대화를 하는데 앞으로 10월 달에 그러니까 2010년 10월 한 6개월 정도 남았는데 로잔 3차 세계대회를 위하여 한국 교회가 약속하겠는데, 지금 거의 안 들어오고 있다. 좀 어떻게 좀 도와줄 수 없나 그래서 제가 기도하고, 알아보겠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제가 그 LA로 가가지고 LA에서 그 칼 세미나를 인도하는데 마치고 난 다음 어떤 미국에 있는 사업하시는 장로님을 제가 만났어요. 만나갖고 제가 기도하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고 한국 교회가 역할을 해야 되는데 어떡하면 좋습니까? 좀 장로님 기도해 보세요. 그리고 저도 기도하겠다고 그리고 전 서울 들어왔어요. 들어왔는데 1주일 뒤에 그 장로님이 목사님, 말씀 듣고 제가 로잔을 위하여 100만 불을 내겠습니다. 그랬어요.
 
여러분, 지금도 100만 불은 큰돈이지만 14년 전에 100만 불은 지금 2~30억과 마찬가지일 거예요. 아마 그래갖고 저희 교회도 좀 협조를 하고 그렇게 해서 한국교회가 17만불 이상을 만들어서 로잔 대회에 헌금을 했어요. 첫날 저녁이, 첫날 저녁이 이제 ‘아시안 나잇’이라고 그래갖고 저보고 첫날 저녁에 순서대로 좀 인도하라 특별히 기도회를 인도해 달라고 제가 영어도 스트레스 받고 난 못 한다고 그랬어요. 근데 무조건 그래서 할 수 없이 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갖고 북한에서 탈북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있었어요. 저희 교회에... 근데 걔를 알아보니까 그의 아버지가 북한 고위층이었는데. 탈북을 하고 중국에서 목사님을 만나갖고 이 복음을 들은 거예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어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이분이 이 귀한 예수님을 나 혼자만 알면 어떻겠나, 아니 이건 아닌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탈북한 북한 고위층이 다시 평양으로 들어갔어요. 평양으로 들어가 가지고 전도하다가 총살당했어요. 그리고 얘만 고아로 남겨진 거예요. 그걸 우리가 너무 가슴이 아프고 얘를 도와 그래서 얘를 몇 달 동안 훈련을 해 가지고 그 첫날 저녁에 이 고등학교 2학년 아이가 한 25분간 영어도 잘 못하는데 훈련을 하니까 됐어요. 그래 가지고 간증을 하고 눈물 콧물 그리고 4500명 세계 지도자들이 와가지고 하여튼 그날 그냥 불이 떨어졌어요. 난리가 난 거에요.
 
그리고 마치고 난 다음에 이제 인제 갑자기 인터뷰 한다고 그러는데 전 세계 뭐 기자들이 막 그냥 난 제 생에서 그런 거 처음 봤어요. 뭐 UP AP 로이터 뭐 UPI 이런 통신사들이 막 뛰어 들어오는데 대화를 하고 그런데 그 간증을 들은 분 중의 하나가 미국의 바이올라 대학교에 베리콜이라고 총장님이 계셨어요. 이분이 너무 은혜를 받아 가지고 얘를 4년 풀 스칼라십을 주겠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그래서 시티컬리지에서 공부를 좀 하고 들어갔고 이제 4학년 졸업 제가 몇 년 전에 바이올로 대학교를 방문하는데 뒤에서 누가 목사님하고 허그를 한 거예요. 보니까 그애야, 너 뭐 하냐? 그러니까 보니까 또 남자아이하고 같이 있어요. 1.5세 미국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인데 꿈이 뭐냐? 앞으로 선교를 나가겠다고, 그리고 나는 걔들이 애 낳으면 반드시 선교사 시킬 거라고 내가 생각이 돼요. 자 제가 그냥 좀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화산재 폭발이, 화산재 폭발로 끝난 것이 아니고, 로잔을 위하여 섬김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시고, 그 탈북하신 북한 고위층이 총살당한 것은 너무 아픈 일이지만 거기서도 끝이 아니고, 그 딸이 세계적인 모임 세계 최고의 선교모임에서 첫날 저녁에 간증하게 하시고,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졌냐, 그가 또 남자친구를 만나고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고 그 자녀들이 만약에 될 때, 이게 그야말로 여러분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런 것이 그냥 단순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에 이것이 어떤 식으로 접목이 될지 그리고 이런 것들을 믿고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한 연대기를 가지고 같이 우리가 네트워킹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축복의 근원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지난 월요일 날 우리가 10월 27일 날 온라인으로 100만 명, 오프라인으로 현장에 100만 명 200만 명이 한국 교회가 연합 예배를 드리고, 그다음 큰 기도회를 한다. 지난주는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다음 주에 다음, 다음 주 외국인들이 오셔 가지고 집회를 하기 때문에 제가 이 말씀드릴 기회가 별로 없어서 오늘 드리는 거예요.
 
10월 27일, 10월 21일 한국교회 섬김의 날 우리 8천여 명의 사역자들이 와서 우리 교회에서 집회하는 것 말고 10월 27일 날 광화문 시청 앞 서울역 용산까지 또 서대문에서 또 종로까지 100만 명이 모여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주님 우리가 이 시대를 향한 선한연대기를 갖고 정말 여 우선 우리가 목표가 ‘악법 차별 금지법’ 이거 저기 뭐야? ‘소수인권법’ 법으로 하는 미명 아래 그야말로 복음의 역사를 훼손하는 이런 일이 있으면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힘을 모으는 그것이 주님 나라를 위한 이런 축복의 근원이 되기 위한 선한 연대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월요일 날 메디아데이, 우리가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를 위하여 그날 최병남 목사님 여러분들 아실 텐데 최 목사님이 본인의 자녀들은 텍사스에 태어나고 자랐는데, 텍사스가 나름 미국에서는 바이블벨트라고 하는 곳이지만 차별금지법, 소수인권법이 통과가 되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가 생각할 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소수의 인권을 장려한다. 그래갖고 다수의 기독교는 학교 가서 기도도 못 해, 근데 소수라고 하는 이슬람은 와가지고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기도할 장소까지 만들어주는 거예요. 다수의 뭐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학교 갖고 가질 못해, 근데 소수라고 하는 이슬람은 뭐예요? 꾸란을 갖고 가는 거예요. 이게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게 정상이 아닌 것만 사실이에요. 맞습니까?
 
우리가 앞으로 이 차별금지법, 소수인권법이 통과되고 나면 정말 축복의 근원이 되는 이 기회가 놓쳐지게 되는 것이에요. 10월 27일 날, 우리가 함께 모여 가지고 모두가 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릴 때 우리 모두가 다 축복의 근원이 될 때 그것이 한국 교회 새로운 부흥의 물꼬가 터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하여 통일로 가는 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어제 새벽에도 말씀드렸지만 100만 명이 그냥 판문점으로 북한까지 가버리면 어떨까요? 500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다 함께 평양으로 가면 어떨까요? 예 500만 명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축복의 근원이 되면 세상이 뒤집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오늘 이 은혜가 우리 온 성도들에게 평생 동안 여러분의 것으로 확인되게 해 주셔서 목자의 심정으로 시대를 바라보며, 축복의 유통자로서 살게 될 때 여러분들을 통하여 이 시대의 역사가 새롭게 집필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요약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여호와 이레로 예비하여 주시는 줄 믿고,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축복의 유통자로 살아가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무한자원에 참여할 때, 눈물 골짜기를 은혜의 샘물과 소낙비로 바꾸어 주시는 줄 확신하며 나로 말미암아 반드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 모두가 은혜의 선한 연대에 금식하며 함께 할 때,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를 통하여 강력한 부흥의 르네상스를 경험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선한 연대에 거룩한 나비효과가 일어나서 한국 교회와 세계 복음주의 교회 쇠퇴를 막는 하나님 나라에 주시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는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는 은총의 소통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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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8일)
제목: "진흙에서 소금으로"-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⑱
말씀: 마태복음 5:1-2,13-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정상익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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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5:1-2,13-16,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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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찬양대가 ‘예수님 이름 높이세!‘ 하는데 주님이 높임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일주일이 여러분 몇 시간인지 아십니까? 어렵습니까? 일주일이 168 시간이죠? 168 시간 가운데 저는 이 주일 아침 이 예배가 저와 여러분의 영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또 육신적으로 핑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나머지 6일 동안 승리를 하는 겁니다. 제가 지난주 우리 교회 은혜 게시판에 나온 어떤 형제의 글을 읽고 마음이 진했어요.
 
어떤 형제가 지금 내 현실에 큰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천국 잔치인 주일 예배를 드리므로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주일 현장 예배에 사 오르는 기쁨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가 없는 참된 기쁨이다. 이 힘을 가지고 나머지 6일을 최선을 다하여 살아낸다. 그 그대로 있는 삶의 간증이에요. 오늘 예배가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지금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를 하고 있는 오늘 18 번째, 오늘은 위대한 산상수훈을 통하여 천국 시민의 헌장을 가르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아멘. 그리고 부제 오늘 제목은 제가 그래서 ‘진흙에서 소금으로’ 진흙에서 소금으로, 주님은 이 땅에 오셔가지고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 1절에 보니까, 산에 올라서 제자들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 마태복음 5:1,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나올 때에 앞에 4장 23절에 예수님 세 가지를 하셨어요.
 
*마태복음 4:23,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다니사 그들에게 해당해서 첫째 뭐예요? 가르치시고, 두 번째는 복음을 전파하시고, 세 번째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예수님은 티칭, 가르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프레칭, 복음을 전파하시고, 예수님 힐링 고치시는 분, 그래서 오늘은 가르치시는 예수님, 뭘 가르치셨는가? 지난 주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름 받은 제자로서 일을 하려면 천국에 대한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그래 천국은 에세나파나 사두계파나 또 바르세파 같은 그런 경직되고 하여튼 경도된 그런 천국에 대한 개념이 아니고, 천국은 마치 혼인 잔치 집과 같다. 그런 혼인 잔치과 같은 그런 은혜를 받았다면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소위 십계명처럼 천국 시민으로서 매일매일 살아내야 하는 삶의 현장에 대해서 주님이 오늘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오늘 말씀하시는가? 오늘 여러분들 13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5:13,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너희는 세상이 뭐예요 속음이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 라는 것은 소금이 왜 필요합니까? 부패하고 또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그래서 세상이 부패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비기독교적입니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교회를 대항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도록 공격(攻擊)하고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아니하고 미혹(迷惑)하는 것입니다. 소위 그래서 이 세상은 미혹케 하는 마귀의 영향을 받는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트렌드가 그리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가지고 절로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되어가는 것 시대의 흐름을 보니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고 어떨 때는 마음이 가슴이 아프기도 해서 참 마음에 큰 짐을 지고 기도가 되는 거예요. 제가 말씀을 다 안 드려도 이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등이 신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말 문제가 커 가지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혼미(昏迷)하고 비기독교적이 되었을까요? 다시오. 그 이유는 사탄이 미혹의 영으로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못차리냐는 겁니다. 요즘 마음 지키기가 참 힘들어요. 마음, 그 이유는 이 세상이 너무 복잡하게 되어 버렸어요. 그걸 좀 전문적인 용어로 복잡계라고 그러는데 복잡한 세계가 되어 버렸어요. 특별히 SNS를 통해 가지고 여러분 몰라도 되는 걸 너무 많이 알게 됐어요. 안 알아도 되는 걸 너무 많이 알게 됐어요. 어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그리고 알고리즘을 가지고 막 융단 폭격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밀려오고 그래서 요새는요. 이 정신이 마음을 못 지켜가고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요. AI나 알고리즘의 내용 가운데 또 뭐냐 하면 가짜가 또 너무 많아요. 그걸 뭐라고 그런다고요 딥페이크(Deepfake)라고 그럽니다. 깊은 가짜, 아니 뭐 지 이런 조커도 못 알아들으면 제가 여러분 못 살아요. 깊은 가짜, deep 페이크, 페이크 가짜라고 deep이라고 깊다 말이죠. 깊은 가짜. 그래서 우리는 이 깊은 가짜 가운데 우리는 가짜의 이 시대가 우리는 딥솔트(deepsolt), 진짜 소금이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은 혼미해져 가지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마음을 지키지 못해 갖고 사람들이 엉뚱한 짓을 하는 거예요. 내면세계의 질서가 엉망이 돼 버렸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사야가 말한 대로 병들었어요.
 
우리 내면세계가, 그리고 우리 국가까지도 이 사회나 국가까지도 복합 중증이 걸려버렸어요. 저 북한 때문에 우리 사우스 코리아, 한국 남한에 사는 사람들은 머리에는 북한 때문에 핵무기를 이고 있고, 등에는 가계 빚 또 이렇게 수천 조의 빚을 지고 있고, 허리에는 지금 0 5%, 후손이 끊어지고 있어요. 지난 주간에 우리 어떤 장로님 청문회를 하는데, 세상에 창조론을 믿는다고 그렇게 아니 창조론을 믿는다고 그걸 그렇게 모욕을 하고 조롱을 하고 정신이 나갔어요. 정말 대한민국을 존경받아야 할 분들이 존경받아야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고, 실제로는 이게 다 영적인 문제들이에요. 영적으로 궁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의 공격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나 여러분이나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마음을 못 지키고 우리의 생각을 조정 당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는 이 말씀을 가지고 왜냐하면 그 시대에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짙은 안개와 어둠 가운데서 암흑에 사로잡혀 가지고 그 시대에 그 당시에도 부패, 붕괴 뭐 온갖 불화, 온갖 약탈, 이런 것들이 다 많았어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저나 여러분이나 한 번 새 마음 새 영, 또 우리가 얼마나 뉴 크리에이션, 우리가 어떤 새 창조물이 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확인하고 감사하고 우리가 딱 무장하는 그런 시간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래서 미혹케 하는 영이 트렌드에 가 있는 이 시대 가운데, 마음 지키기가 힘든 시대 가운데, 우리가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복잡계, 혼미한 세계 혼미계의 어려움을 딱 두 가지로 두 가지로 하나는 소금으로, 하나는 빛으로, 여러분 소금이 먼저 나왔어요? 빛이 먼저 나왔어요. 13절에 보니까 소금이 먼저 나왔어요. 그다음에 14절에 보니까 그다음 뭐예요? 빛이 나왔어요. 소금이 먼저 나왔어요. 두 가지로 딱 두 가지로 여러분 제가 저나 여러분이 오늘 소금과 빛의 이것만 확실해 가지고 이걸 가지고 우리 기도 제목으로 삼고 집중하면, 이 혼미한 세상에서 마음 지키기 힘든 세상에서 내면세계의 질서가 뒤죽박죽이 된 분들이 있다면 오늘 이것을 정리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먼저 빛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다시 뭘 먼저 말씀하셨다고요? 소금을, 그런데 이 소금의 문제는 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실제적으로 깊이 와 닿았어요. 그 당시에도 로마의 어떤 제국의 김나지움, 로마 제국의 교육 시스템이 있었어요. 그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그 소위 ‘김나지움 교육’이라고 그 그걸 전혀 받지 않는 이게 그냥 어부들이었어요. 그냥 대단하지 않은 어부들이었어요. 근데 그 어부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베드로야 너는 세상의 소금이야. 안드레야 너는 세상의 소금이야. 요한아, 너는 세상의 소금이야. 이게 뭔지 이 사람들은 바로 눈치를 탁 쳐버렸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어부였고,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으니까 당시에는 뭐 지금처럼 어묵을 만들고 그런 게 없으니까, 이 잡은 생선을 잡은 고기를 오래 보존하려면 소금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획(漁獲)한 물고기가 부패(腐敗)되지 아니하고, 장기간 보존되는 데는 소금이 절대적이었어요. 이거 없으면 다 썩어버리는 거야.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소금은 부패하지 않는 역할을 합니다. 당시 소금의 용도는 음식의 맛을 내고, 희생 제물 제사 드릴 때 희생 제물을 부패하지 않게 하고, 갓 출생한 영어를 깨끗하게 하고 음식을 보존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그러고 난 다음, 그다음 13절 14절에,
 
*마태복음 5:13,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이 소금과 빛을 선포하시는데 여기에 이제 제가 한 번씩 강조했지만, 너는 너희는 소금이 되라. 빛이 되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주님은 너는 소금이다. 너는 빛이다. 일방적인 선포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소금도 아니고, 빛도 아니고 소금의 자격도 없고, 빛의 자격도 없는데 소금으로 살지도 못하고, 빛으로 살지도 못하는데 주님은 일방적으로 너희는 소금이다. 그리고 여기는 너희라는 이 말은 한 사람이 아니라 복수예요 복수, 그리고 이 말씀을 듣는 모두들 오늘 우리 시간 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예수 믿는 모든 분들 저와 여러분들, 주님은 소금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소금이 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좀 잘 해 가지고 수고하고 애써서 고생하고 도 닦고 세상들에게 사람들에게 좀 어떻게 윤리적으로 성숙해 가지고 어떻게 잘 되어 보라. 그렇게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일방적으로 이유를 모르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소금이다. 하면 너희는 그 당시에 바리새인이나 권세가나 로마 지식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보통 사람들이 나와요.
 
너희는 세상에 어부, 그냥 일반 어부들이 나와요. 그리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 말을 할 때 당시에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역사적인 기록을 볼 때 당시에 세상의 빚, 라잇 어브 월드-right of the world. 세상의 빛이라는 호칭은 신분이 높은 유대교 선생이나 랍비들에게만 수여한 명예 명예로운 선포였어요. 그런데 오늘 빛이라고 호칭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구리빛 얼굴에 껍질이 벗겨진 손을 가진 시골뜨기 어부들, 평범한 사람들 그들을 향하여 그들은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안드레나, 나다니엘이나 이런 사람들은 랍비도 아니고 율법학자도 아니고 산헤드린 공회 존경만의 회원도 아니었어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격 없는 무지 랭이 들어 있어요.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이들을 3년 동안 훈련시키시고 제자들을 훈련시키셔가지고 어느 정도 성숙한 수준에 올라갔을 때, 성숙한 다음에 야 너희들은 이제 훈련 받았으니까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야 빛이야, 이렇게 말씀한 게 아니고 이제 갓 시작도 제대로 안 했는데, 제자로서 이제 함께한 시간이 이제부터 시작인데, 그 초보자들, 어린아이처럼 갓 예수님을 따른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야. 주님이 믿어주신 선포에요. 그러니까 정체성과 기능성이 있는데 우리가 기능이라는 말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잘하면 주님이 너 빛이야 소금이야. 그렇게 할 게 아니고 정체성부터 먼저 선포하는 것이에요. 너희는 소금이야. 너희는 빛이야. 이렇게 하니까 우리가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그런 역할과 기능들이 따라가도록 만들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정체성이 먼저예요? 기능이 먼저예요? 정체성이 제자로서 선포되었기 때문에 제자의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자의 삶을 잘 살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잘 하기 때문에 제자가 된 것이 아니에요. 이거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 나타난 복음이에요. 전후가 바뀌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소금과 빛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주님은 일방적으로 소금과 빛의 정체성을 주는 것이에요. 이게 하나님 나라의 천국 시민 헌장의 독특성이에요. 우리의 실력을 보고, 여러분들과 저의 자격을 보고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너희는 소금이야. 너희는 빛이야. 라고 선포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 중의 복음 가운데 돌아온 탕자 생각해 보세요. 돌아온 탕자는 둘째 아들은 소금이 아니었어요. 밑이 아니었어요. 허랑방탕하고 아버지의 유산을 다 날려버린 인간이에요.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히게 하고, 아버지의 가슴에 날마다 눈물샘을 고이게 하는 인간이에요. 소금이 아닙니다. 빛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돌아와 가지고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 내가 소금이라 내가 빛이라 칭함을 받지를 내가 못합니다. 아니야, 너는 내 아들이야. 너는 이미 소금이고, 너는 이미 빛이야. 그러니까 아들이야. 내가 왜 소금인가? 내가 부끄러운 내가 무슨 내가 빛인가? 그러면서 각성하고, 고민하고, 그 자격이 없고 없는 부족한 나를 믿음으로 소금으로, 빛으로 불러주신 그 아버지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 가지고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이 오니까, 아! 나도 그러면 아버지의 자녀답게 나도 소금답게, 나도 빚답게, 살아봐야지.
 
오늘 예배 참석하신 차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확고한 믿음의 방향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의 일방적인 선포고, 두 번째로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가 세상에 소금이라는 이 정체성에는요. 우리가 진흙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여러분과 저는 소금이지 진흙이 아닌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진흙으로 지어진 존재예요. 창세기 아담을 지을 때 진흙을 가지고 지으셨어요. 하지만 제2의 아담 되시는 예수님의 피로 새로 거듭난 복음의 생목의 생명의 역사에 접목된 저와 여러분들은 이제 진흙이 아니라 소금이 된 줄로 확신합니다. 아담 시대의 진흙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이 시대의 소금이 된 것입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진흙이 간에 소금이 진흙이 아니라 소금이 되게 우리의 속성을 바꾸시는 거예요. 에베소서 4장 23절에 보니까,
 
*에베소서 4:22~23,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소금 되게 하시고, 오직 너의 심령이 새롭게 소금 되게 해가지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로운 소금이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존재인 것이다.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 거예요. 내가 남보다 멋있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 이 생명과 피의 복음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이 진흙에서 소금으로 바뀐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어떤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능력과 공부를 많이 해서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학교를 나와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부족할 수 있지만, 우리가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의 주름이 잡혀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또 트라우마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유는 다 모르지만 주님의 일방적인 선포, 너희는 진흙이 아니라 나는 소금이야. 어떻게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맹렬하고도 강력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이 어떻게 보면 이 절실하고도 맹렬한 이 사랑 때문에 우리가 소금으로 받아들여진 존재가 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걸 베드로가 받아들인 거예요.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평생 이 말씀을 이렇게 그는 본래 진흙 같은 사람이었어요. 건축자의 버려진 돌과 같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을 통하여 소금과 빛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그에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런 버린 돌 같은 그런 행위도 있었지만 그 시대의 산돌이 되게 하시고, 모퉁이 돌 코너 스톤이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가 베드로나 가롯 유다는 문제가 많았어요. 그런데 가롯 유다는 그냥 그 잘못하다 예수님 팔아먹고 난 다음에 그 끝이었지만 베드로와의 차이가 있다면 베드로는 마음속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야 빛이라는 이 각성과 감격의 정도가 가롯유다와 달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는 소금이야.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아 나는 진흙 같지만 하나님이 나를 소금으로 만드셨으니, 거칠고 황폐하고 의미 없던, 별 의미 없던 돌이 하나님 나라의 산돌이 된 줄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소금이 되기를 힘쓰라가 아니라, 소금이라는 이 말씀에 대한 여러분 감격과 센스와 느낌의 정도가 여러분들의 남은 생일을 결정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감격이 있는 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명으로 하나님께서 무장시켜 주실 것이에요. 이걸 깨닫는 순간 흙먼지가 진흙이 소금된 이 감격 된 이것이 있는 순간 에베소서 2장 10절에,
 
*에베소서 2:10,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 받은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거룩한 목표를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 다 너무 중요하니까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인 줄로 믿습니다. 너무 중요하니까 오늘 저는 잘 안 하지만 오늘은 한번 하십시다. 우리 두 명 이상, 늘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입니다. 크게 한번 합시다.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입니다. 크게 합시다. 우리는 진흙이 아멘!! 예배 세상이 다 놀라 들릴 정도 크게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입니다. 크게 한 번 해칩시다. 시작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번 더 할까요? 여러분, 이게 평생 남을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자꾸 시작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입니다.
 
피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소금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걸 깨닫는 이게 이제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진흙에서 속으로 변한 우리들의 존재 방식과 사고방식을 이해를 못합니다. 소금으로서 갖는 감격을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시대의 소금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진흙이었지만 75세에 부름 받아 가지고 사명을 갖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그런 소금의 은혜를 받은 거예요. 다윗도 소금 왕이었어요. 다윗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니에요. 그냥 그런 가장 강력한 정복 왕이었지만 그는 자기가 왕이라고 생각 안하고, 하나님이 나의 왕이라고 생각 왕이신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그의 소금 고백을 하는 거예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이것이 다윗의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바울도 소금이었어요. 소금 사도였어요. 뭐라고? 내 겉 사람은 후퇴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너무 막 안 죽으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다 막 그냥 막 그 주름 안 지려고 너무 그러지 말고 우리 그 사람은 후퇴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리고 바울은 또 이 예수님께서는 또 뭐라고 빛이 있다. 라고 말씀하시고 아니시고 뭐라고 그랬어요? 빛이다. 본래 우리는 어둠이었어요. 볼래? 우리는 어둠에 익숙하고 어둠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제 얘기가 아니고 에베소서 5장 8절에 보니까,
 
*에베소서 5:8,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 주님 모르는 우리 다 어둠이고 다 그랬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뭐해요? 빛이 돼 빛이에요. 주님이 우리가 빛이라고 선포하니 우리는 어둠 자체는 어둠의 일을 좋아하고 마음 새기기 힘든 사람들이고, 그럼 우리를 너희는 빛이라.
 
♬빛의 사자들이요.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빛의 사자들이여 빛의 사자들이요. 그다음 가사가 뭡니까? 복음의 빛이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치는 빛의 사자들이여....
 
진흙에서 소금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바뀌는 존재가 정체성이 바뀌니까, 그렇게 우리의 역할 이런 것들이 이제 테크놀로지는 따라오게 되는 것이에요. 그럼 우리는 소금으로 빛으로 어떻게 합니까? 16절에,
*마태복음 5:16,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구태여 나눈다면 소금은 내면적인 거예요. 소금은 녹아져서 소금이 역할 하는 것이에요. 빛은 등대처럼 비추는 거예요. 빛은 외면적인 거예요. 하나는 내면적인 것이고, 하나는 외부적인 것이에요. 하나는 소극적인 거죠. 하나는 적극적인 역할이에요. 소금의 내면이 무장이 되면 자연스럽게 빛으로써 행동이 발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제가 소금과 빛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수많은 진흙을 소금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에요. 수많은 어두움을 빛으로 밝게 하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어두운 부엌에 바퀴벌레가 왔다 갔다 하는데, 라이트를 딱 켜는 순간 바퀴벌레가 할렐루야!~~ 이 오겠습니까? 타 도망가 빛이 오면 물러가게 돼 있고, 수많은 지능을 소금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우리는 이 땅의 삶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소금과 빛의 정체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역할 모델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어요. 기독교를 욕도 많이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안 보는 것 같이 우리의 삶을 다 보고 있어요. 오늘 이 자리에는 한국 사회의 리더의 역할을 하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직장이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계에서 책임을 지고 위치에 있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요 제가 용어를 만들었어요. ‘굉장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 현장을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할 때 정직하고, 순전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에요. 빛으로서, 이 조심스러운 얘기인데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 이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저는 제 이메일 주소가 JHOHOH에 뜨거운 메일 닷컴, 또 외워놨다가 또 너무 막에 보내지 마세요. 아니면 또 패스터 오@,,, 에 사랑 닷컴 골베이 닷컴, 여러분 김씨는 만약에 바이블 킴@, 여러분 그런 이름 붙이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나 조심스럽고 얼마나 애를 많이 쓰겠어요. 여러분들의 이메일 주소에다가 바이블을 한번 넣어보세요.
 
제가 연관된 분이 있기 때문에 더 말을 말씀을 안 드리겠어요.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그래서 산다는 게 힘든 거예요. 미국 같은 데는 자동차 뒤에다가 익투스, 물고기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거예요. 그러면 그 물고기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동안에 주차 위반도 못 하고, 속도위반도 못하고, 그래서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의 스티커를 앞에 창문에 붙이고 있습니다. 앞 유리의 부착하라고 했어요. 리더들이 가져야 할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을 주목해야 됩니다.
 
또 우리가 직원으로서, 손 위 사람을 섬겨야 할 입장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소금으로 섬기는 사람, 빛으로 섬기는 사람,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고, 일하는 회사나 정부 기관이나 학교나 일터에서 불평하거나, 부정적하거나 그렇게 하면 안 되겠죠 신뢰감을 줘야 되겠죠. 자 이제 제가 좀 정리를 하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하시고 난 다음에 제가 다 읽지 않았습니다. 5장 20절에,,
 
*마태복음 5:20,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뭐라고 나와 있죠? 이렇게 나와 있어요. 시작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르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이 빛으로 소금으로, 소금으로 빛으로 이 선포, 저녁에 소금으로 이 은혜는 우리를 더 의로 더 큰 의로움으로 불러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서기관과 바르새인 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기가 막혀요. 다시오.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르세인보다 더 낫지만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거는 대단한 도전 아닙니까? 왜냐하면 그 시대에 가장 의로운 사람들이 서기학과 바리새인들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보다 더 의로워져야 된다. 우리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나를 빛으로 나를 소금으로 선포해 주신 내가 지을게 아니라, 소금이라고 해 주신, 그 은혜에 감격하며 그들이 가지는 의로움과 다르게 그들은 자기 의죠? 우리는 자기 의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의가 우리는 자기 부인을 통해야 자아 시련이 아니라, 자기 부인을 통하여 바리세인과 서기관이 가진 의가 아니라 그럼 우리가 어떻게 자아 시련이 아니라 자기 부인을 할 수 있습니까?
 
돌아온 탕자처럼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주님이 나를 빛으로 소금으로 일방적으로 선포하신 그 은혜에 너무 감격하여 날마다 눈물 콧물 흘리며 그렇게 해야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에요. 복음적 삶의 태도가 기능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또 하나 주님은 우리를 이 소금으로 빛으로, 이걸 말씀하시는 우리를 더 넓은 사랑으로 부르시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본문 뒤를 보면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에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 그 안에 원수도 포함된다고 그 진리를 선한 사마리아의 교회 비유를 설명하셨어요.
 
서한 사마리아의 비유의 요점이 무엇입니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는 정도 그건 누구나 다 하는 겁니다. 유대인의 꿈도 꿔보지 못했던 아주 그냥 생각들을 확 집어넣는 사마리아 사람, 사마리아 그 인들이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일종의 문화적인 장벽을 넘어서는 충격을 준 그런 삶, 그러니까 우리가 소금으로 빛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런 생각을 뛰어넘는 더 큰 하나님의 의의, 더 넓은 사랑을 붙잡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결론 내리겠습니다. 13절 뒷부분에,
 
*마태복음 5:13,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히게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과 제가 이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지 아니하고 숨기고 살면, 우리는 밟혀 사는 거에요. 숨기고 살면 결국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 짓밟히고 사는 거에요. 하나님이 소금이라고 부르시고, 빛이라고 선포하셨는데 이 사명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고 살면 숨기고 살면 결국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 짓밟히고 살 거예요. 네 가만히 계십니까?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은 우리가 짓밟히고 사는 거예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오늘 우리는 기도하는 게 있습니다. 소음과 빛도 타이밍이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저 러시아가 옛날에 소비에트 연방이, 발트 3국 중에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를 다시 점령해 가지고 그 러시아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그랬을 때,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부활절을 즈음해 가지고 한 달 동안 광장에 20만 명이 모여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찬양 그걸 ‘싱 레볼루션’이라고 그랬어요.
 
우리는 그래서 그 나라를 건졌어요. 찬양하면서 제가 오래 전부터 이 말씀을 드렸고, 그런데 우리 이 시대에도 소금과 빛으로서 밟히지 않고 하나님 앞에 소금과 빛으로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의 지금 저 돌레랑스를 통한 지금 차별 금지법, 동성애, 이 소수 인권법이라는 미명하에 이제 성경의 가치를 다 부정하고, 가정의 가치를 다 무너뜨리고, 성경의 절대 권위를 믿지 아니하고, 잘못된 딥 페이크를 가지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고 어떻게 창조론을 믿는다고 그렇게 조롱을 하고, 그리고 어제 저 말씀 청주 지역의 영동지원에서는 그냥 성전환 수술도 안 했는데 사람 이제 우리 성별을 바꿔주고, 대법원에서는 이 피보험자 이것도 말이죠. 동성끼리 사는 사람들은 보험을 하고 이게 이제 동성의 차별법, 그다음에 이거 이제 통과는 이제 지름길이 이제 길이 열린 거예요.
 
우리가 지금 빛으로 소금으로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살아가는 형제자매 여러분들이요,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과 한국 교회 성도들은 소금과 빛으로의 사명을 감당하십시다. 타이밍 맞게 일어나 우리가 함께 일어나서 길가로 가가지고 제가 적어놨습니다. 오라 우리가 길갈로 올라가서 우리나라를 새롭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10월 27일 날, 종교 개혁 주일날, 한국 교회 성도들 성경 사랑하는 사람은 다 모여라. 가정을 지키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 모여라. 소금으로 빛으로, 소금으로 밟히지 정체성 숨기지 않을 사람들은 다 모여라. 마지막 마지노선인데 이거 지켜야 우리 다음 세대가 지켜지는 것이에요. 3만 5천 불 이상, 5천만 이상 되는 나라치고 이것 통과 안 된 나라가 우리가 유일한데, 마지막 이 선을 지키게 하여 주십시오.
 
오라! 우리가 빛으로 소금으로 모여 가지고 기적의 나라를 만드는 그런 일에 저와 여러분이 쓰임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는 역사가 있는 것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수천 조의 빚을 지고, 후손이 끊어지는 이런 답답한 시대 가운데, 주님 우리를 빛으로, 소금으로 한국교회가 10월 27일 저 경복궁 광화문 시청 앞 서울역까지 저 오프라인으로 100만 명이 모여요. 온라인으로 천만 가운데 이 300만 명이 함께 마음을 모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 민족을 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되겠나? 말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셨으니까 우리가 그걸 믿음으로 받아들여 가지고 헌신할 때 우리는 물도 떠 온 하인처럼, 이 시대를 키는 하나님의 귀한 선봉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 마음을 축복해 주시고, 우리에게 주신 이 사명을 가지고 그래서 소금과 빛은 사명이 될 때 우리는 세상 앞에 빛의 사명을 다 감당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요약
자격 없고 진흙 같은 나에게 ‘너는 세상의 소금이야!’ 일방적으로 믿어주고 선포해 주실 때, 날마다 눈물 젖은 감사와 확신에 찬 소금 고백으로 살아가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현정에서 주님의 정직과 투명함과 순전함으로 살아내서 주님을 빛나게 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소금과 빛으로 천국시민의 사명을 감당할 때,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기적의 나라를 만들어 가게 해달라고 온전한 믿음과 확신으로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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