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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4 . 19.

제목: ''새날을 여는 사랑의 능력''

말씀: (요한복음 20:1, 11~16)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코로나 극복시리즈 9

리에게 새날 주심을 감사한다.~

우리 어려운 이 가운데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에 짐을 진 어려운 분들에게 주님이 붙잡아 주시길 바란다. 지난 주 받은 말씀이 그래도 확인되길 원한다. 147: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도다''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길 원한다. - 예배는 상황의 지침을 따르기를 바란다. “사랑하면 새날이 열린다.”

 

1. 오늘 본문은 부활의 목격자인 막달라 마리아

모든 상처와 고통을 덮어 주시길 기도한다.

사랑하면 새날이 온다.

막달라는 마을의 이름의 마리아이다.

달라 마리아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도 나온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1:1대화로 만나주신 이 스토리는 요한복음에만 나와 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만 비춰지는 주인공처럼 나온다. 아마도 요한에게 막달라 마리아가 요한에게 간증한 내용을 요한이 기록한 것이다. 그의 간증이고 이 막달라 마리아 간증이 우리와 동인한 간증이었으면 좋겠다. 간증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간증이다. 간증은 기독교 신앙의 보물 상자를 여는 것이다. 우리도 모두 보물 상자를 열기를 바란다. 그 안에 들여다보니 보석이 들어있다. 이 보물 상자를 여는 신앙이길 바란다. 마리아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가 예수님 만나가 전의 상태,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상태가 나와 있는데 우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상태(Before Christ),

1)막달라 마리아 과거는 누가복음 8:2에 나와 있는데 병 고침을 받았는데 귀신들려서 숨 막히게 살았다. 일곱 귀신이 들었던 것이며 귀신들로부터 지배당했다. 귀신들로부터 노예로 살았던 것이다. 그의 인생을 멈추게 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광스런 존재가 일곱의 귀신의 지배당하고 그녀의 인생을 Stop 되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일곱 귀신이 쫓겨난 줄로 믿는다.

2)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복음 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 마리아와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완전히 reset되고, 새로 고침 되고, 재조정되었다. 다시 시작하는 능력이 되어 인생역전이 되었다.

1)병 고침( therapeow 떼라페오) - 수동완료형: 누군가에 의해서 전적으로 고침을 받은 것.

2) 귀신이 나갔다(exerchomai) - 능동완료형: 신이 나갔다는 뜻이다. V자로 형태로 회복되었다. 완전 치유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100프로 치유되었고, 귀신이 나갔다는 것.

3)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완전히 리셋 되었다. V자 형태로 회복되었다. 단번에 죽은 그녀를 청소하셨다. 오늘 모두에게도 인생이 해결되는 이런 역사를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란다.

 

 

I. 주님의 사랑은 은혜의 주류(主流)에 서게 한다.

1. 누가복음8:3 -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세상으로 가지 않고 팀웍을 이루어 한결같이 섬긴다. 자유함을 얻어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고 후원자가 되고 여성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참된 여성 제자가 된 것이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그녀만이 지켰다.

2. 히브리서9:14, 10:22

주님의 참 사랑을 받게 되니, 주님을 진심을 따르니 순결한 처녀처럼 되었다.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하신다. 평생을 은혜의 주류에 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능력은

3.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의 통치를 받는 은혜의 비주류에서 주님의 통치를 받는 은혜의 주류 인생으로 변화되었다.

모든 분들이 평생을 은혜의 주류에 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 참된 능력은 은혜의 많이많이 사랑받은 자답게 살아야 한다. 은혜의 주류에 산다는 것은 많이 은혜 입은 자가 은혜 입은 자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기가 막힐 때도 있고, 마음이 일곱 귀신 든 자처럼 오염될 때가 있다. 이웃사람 때문에, , 정치, 동기 동창 동서 때문에 오염된다. 이럴 때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는 은혜의 기준을 가지고 많이 사랑받은 자가 은혜로 주류로 섬겨야 한다. 은혜의 주류에 선다는 것은 내 가정적, 사회, 정치적, 경제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II. 주님을 향한 사랑은 모든 환경을 초월한다.

1. 요한복음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1)시간 초월- 아직 어두울 때에 라고 했다. 우리도 끝나자 말자 시간 지체 말고 교회로 모이자. 마리아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쫓아갔다. 주님을 향한 사람은 시간을 초월한다. 진실로 사랑하면 날을 샌다.

2)공간 초월 무덤은 사람이 가장 가기 꺼려한 곳이다. 마리아는 주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로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십자가에서부터 시신을 내릴 때도, 공간을 초월했다.

3)계산 초월 -

막달라 마리아는 장례를 위한 향료품도 준비하고 무덤에 간 것이다. 예수님을 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2.주님을 향한 찬된 사랑은 환경을 초월하는 거룩한 무모함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은 조건이나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환경에 질질 끌려가는 열 한 제자들의 모습처럼이 아닌 마리아는 시공을 초월한다. 순도 높은 사람은 무모할 정도로 환경을 초월한 거룩한 무모함이다. 무대뽀이다. 참된 사랑은 거룩한 무모함이, 마리아의 사랑을 뛰어넘지 못한다. 선교사들의 그 선교가 모두 거룩한 무모함이다.

 

3. “나는 조선 사람을 사랑하였고, 또 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기를 원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사무엘 모어는 조선을 사랑했고, 예수님을 인도했다.

 

여기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고 펑펑 울었다. 왜 우는가? 주님을 향한 절실한 사랑의 순도 때문에 눈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순도 때문에 나온 것이다. 복음의 능력 보혈의 능력이~ 한국교회의 선대의 능력이 세대계승을 하기를 지킬 것을 바란다.

 

 

III.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직접 만나 주셨다.

1. 요한복음 20:18,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처음에 주님을 몰라봤다. 마리아는 슬퍼서 돌아보니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 첫 번째 아담도 동산지기, 두 번째 동산 지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동산지기가 있어야 한다. 마리아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꼭 필요한 자들에게만 만나주신다.

2. 요한복음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요한복음 10:27,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니라

우리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해 주신다.

3. 예수님은 마리아 등 뒤에 계시면서 만나 주셨다.

우리도 나의 등 뒤에서 나를 지키시는 주를 사랑한다. 오늘 부르자 ~~우리도 마리아 등 뒤에 있으니 미래를 향한다. 우리에게는 손에 드는 빽이 아닌 우리에 등 뒤에 진실 된 빽이 있지 않는가!!!

4. 누가복음7:47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것이다. 옥합을 깨서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이는 그를 사랑함이 많다 사함을 많이 받은 자로서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대류에 서라~ 우리는 누구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이다. 지금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된다는 것이 아름답다. 우리의 헌신이 교회의 미래가 결정된다. 수 주간이 수년간을 결정한다. 순도 높은 사랑하면 주님은 행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 받은 자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께 사랑받는 정체성을 가지고 민족의 새날을 여는 데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

 

느낀 점

목사님은 이 코로나19가 속히 가기를 간절히 원하심을 본다. 우리도 그렇게 어서 속히 종식되어 제대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귀신들리고 부족한 사람들이 아직도 천지인데 안아 주시는 본당에서 은혜를 충만히 받고 성령을 체험하는 자가 많아지고 치유 받은 자가 넘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마리아처럼 진전한 여성 제자로서 한결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더 은혜 받은 자가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이 나누며 그 부족한 자들을 사랑하기를 간구한다. 오늘 오랜만에 교회에서 헌금 봉사와 예배를 드리니 너무 좋았다. 계속 이렇게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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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0. 4. 12)

제목: ''부활의 영이 내게 임하면''

말씀: 요한복음 12:23~27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부활 주일은 주님은 죽음을 이기셨다. 그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것과 이 공동체의 머리이신 것임을 믿고 찬양합시다. 카이로스의 신앙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죄악을 이기신 주님을 믿는다. 성도들의 사진을 랜덤으로 골라서 좌석에 붙였으니 마음이 전달되기 바란다. 사랑 올 투게더가 되기를 바란다. 카이로스의 신앙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죄악을 이기신 주님을 믿는다. 리셋하길 바란다. 주님은 부활하셨다!!!!!~~~

 

부활의 영이 내게 임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는가? 예수님이 3일 만에 정말 살아나셨는가? 를 가지고 평생 씨름하다가 어정쩡하게 무덤으로 가는 자가 있다. 부활의 교회를 다녀도 평생 의심도 확신도 아닌 회색지대에 머물다가 부름 받는 자의 경우도 있다.

예수 믿는다 하면서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평생 씨름하다가 어정쩡하게 의심도 확신도 아닌 회색 지대에 머물다가 이땅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교회 역사와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가장 보편적인 부활의 3가지 증거가 있다.

--- 예수그리스도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의 부활을 성령님으로 믿어지면 그 마음속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생각할 때 기쁜 것이다. 그 주님을 반드시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선포하고 증거 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I. 부활의 증거에 대해서 가장 보편적인 증거 3가지 .

첫째, 빈 무덤이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무덤을 화려하게 만들어서 참배한다. 중국공자무덤, 메카도 이슬람 무하메드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 부활하신 주님의 무덤은 부활하셔서 그 무덤이 비어있는 것이다. (법의학자인 던런 대학장인 노먼 엔더슨경은 -빈 무덤은 부활을 논박하는 모든 이론을 단숨에 파괴해 버리는 바위와 같다

 

2.둘째, 제자들의 혁명적 변화이다. - 제자들은 본래 겁쟁이들이었다. 다 도망갔던 자들이 자기 목숨을 내고 예수님을 증거 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참고고 12명의 제자들 가운데 사도 요한을 제외한 11명이 순교했다. 마지막으로 사도요한도 그런 셈이다. 사도바울에 속한 전도 팀에 속한 바나바 실라 누가 디모데 디도 대부분 순교했다. 부활이 확실하지 않다면 어떻게 순교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혁명적인 순교가 있겠나...!!!

 

3.셋째, 허다한 부활의 증인들. - 고전 15장은 부활장이다. 육신의 몸으로 부활하신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수백 명이며 수천 명이었다. 그래서 부활을 숨길수가 없다. 이 모든 사람의 입을 막는 불가능하다.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증인들이 너무 많았다. 이것이 거짓이었다면 지난 2천역사가 모든 것이 어떻게 밝혀지지 않았겠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 큰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 부활이 문제겠는가?! 우리는 이 세상 끝 날까지 그래서 시공을 초월하고 목숨 걸고 땅 끝까지 증거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요약하면,,,,

첫째 예수님은 확실하게 십자가에 죽으셨는가? 이다. 죽음에 대해서 긴가 민가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과 피를 흘리셨다. 의학적으로 완전히 죽었을 때 분리되었을 때 나온다. 로마병사를 통하여 의학적인 증거가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예수님께서 그 후에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나타나셨는가? 이다.

(고전15:6) - 목격자들이 대부분이 살아있다. 막달라 마리아 엠마오로 내려간 두 제자 도마와 다른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 죽은 자는 산 자들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줄 믿어야 한다. 이걸 베드로가 도장을 찍는다. 사도행전 부활이후에 기록한 우리가 다 증인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리셋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사건 이후에 완전히 한국교회도 새롭게 리셋 되길 원한다. 온 교회가 새롭게 될 거다 v자로 상승되길 기도한다.

 

 

II. 고백인가? 실체인가?

요한복음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선포는 마르다는 24절의 고백,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에 대한 응답이셨다. 예수님 자체가 부활자체요, 부활의 창조주요, 공급자이시다.

 

2. 마르다는 부활 신앙의 고백은 확실한 것이었지만, 그 고백이 자신이 당면한 현재의 슬픔을 극복하게는 못했다. 정신 차리라고 하는 내용이다. 주님이 신앙이 그거밖에 안되냐며 상기시킨다. 자기 체화가 아직 되지 못했다. 그것은 부활이 실제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실체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누구누구야!~ 너는 예수님을 믿느냐 하고싶다.

 

III. 현재적 삶의 부활

1.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이 성령 안에서 확실히 고백되면 예수님의 부활의 영과 예수님의 생명의 영이 내게 전가(轉嫁)된다. Transfer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생명과 부활이 내 몸을 뚫고 들어가서 내 속에서 역사하시기 시작한다.

 

2. 부활의 영이 임하는 자에게는 부활적 삶현재적 삶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내 현재적 삶도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한결 같은 자 되어야 한다. 부활의 영이 계시기에....

 

로마서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3. 부활 신앙은 미래에 있을 부활 사건을 현재의 삶에 침투시킴으로 현재를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한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4.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상의 질서(죽음의 질서)에서 하늘의 질서(부활의 질서)로 바꾸어 준다.

1) 이것은 추상명사나 관념명사가 아니고 현재를 전투적 바폭력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2) 현실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걸으시고(24:15), 말씀을 주시고(24:27),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마음을 뜨겁게 하신다(24:32). 그리서 우리는 옛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사명지로 그러니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

3) 몽구스처럼 우리에게도 모든 독을 해독하는 부활과 생명의 DNA가 있다.

 

그래도 안되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매 순간 아버지의 이름을 부릅시다.(7:11)

아버지여 감사합니다로 외쳐라!~~~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부활의 영과 생명의 영을 가지고 부활 불패의 기백을 가지자. 열왕기하 19장에 앗수르 군대 185천 대군을 천사 하나가 하루아침에 물리친 것처럼 부활 필승의 확신을 주실 것이다.

느낌...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 말씀처럼 한결같이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저도 부활을 믿습니다. 진정한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더욱 힘을 얻고 살아감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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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0. 4.5.)

제목: ''십자가만 자랑합시다''

말씀: 갈라디아서6:14~17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코로나바이러스 극복시리즈 7

 

요즘 십자가란 단어가 익숙해져서 자신이 짊어지는 어려운 것을 십자가라 한다.

자녀들이 십자가라하며 자녀들은 십자가가 부모라 한다. 말 안듣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골치 아픈 사회에서 통용되는 숙어가 아닌 일반용어가 아니다. 본문에서는 갈라디아 교회는 십자가의 깊이를 잘 몰랐다. 바울이 돌까지 맞으면서 세운 교회가 갈라디아 교회였다. 그곳에 편지를 바울이 보낸 이유는 믿음만으로는 십자가의 복음만이 아닌 plus-alpha 있어야 한다고 한다. 예수님 십자가 복음이 빠진 복음이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빠졌다. 할례 선행 등을 열매를 조건처럼 했다. 구원에 조건을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 가지고 오염을 시키고 있다. 지금 인간의 구원은 열매이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작은 로마서이다. 이신득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단들의 십자가의 영광과 능력을 부인한다. 십자가의 복음을 모르면 거짓 복음에 속기 쉽다.

 

바울은 십자가가 심히 중요하다 강조한다.

그리스도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게 없다고 했고, 십자가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하며 신비를 깨달아 마그나카르타로 했다.

십자가를 모르는 자에게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느니라”. 새사람 되는 게 중요하다.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 ~안광이 지배를 철한다는 뜻. 말씀 보는 안목이 뚫어버린다는 뜻.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자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복음을 깨닫는 자가 십자가의 복음을 제대로 믿으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되는 것. 친 백성이 되었다는 것과 그러면 너무 걱정할 필요 없고, 하나님이 보호하실 것을 믿는다. 우리 백성이니까 하나님 나라의 친 백성을 돌보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십자가를 통하그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다. ~

우리도 가정이 중요하고 일상,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안물안궁~ 바울은 이제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십자가의 흔적이라 한다.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치유와 흔적을 주시길 바란다. 십자가 복음을 제대로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스라엘’(the Israel of God)이 되는 것이다. 예령, 본령을 하게 되어 부활절을 맞아 십자가의 자랑이 되자. 성령님이 깨닫게 하신다.

 

십자가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

1.보편(지성): 일반적인 세속의 지성이다. 고전1:18

이 세상의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 볼 때는 결국 구원받지 못한다. 이 십자가가 미련하게 느껴진다.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지성인들이 바울을 멍청하다며 헬라지식인도 바울을 무시했다. 당시 헬라인과 로마인들은 십자가를 수치라고 했다. 바울은 십자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하의 것은 거대한 일반지성에게, 보편지성에게는 바울의 대단한 도전이고 보편지성에 바울의 대자보였다. 바울이 미련하다며 정복 왕 메시아가 저주받은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 우리에게는 구원의 능력인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보혈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신다.

 

2 보편(종교)

예수님의 유일신을 싫어한다.

BABO들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복음이 없는 곳일수록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십자가의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예배한다. 바울시대에 모든 신들이 기독교만은 십자가의 복음이다. 복음을 깊이 깨닫고 나면 창조주 하나님이 죄인인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반종교는 나를 우선한다. 그래서 선행종교라 한다. 그건 열매지 복음이 아니다. 일반종교는 다 귀하지만 행함의 종교이다. 기독교만이 계시이다. 간디나 알버트 슈바이쳐도 구원받지 못했다. 놀라운 이 신비를 믿지 못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백 프로 믿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 사탄은 복음의 진수를 약화시킨다. 슈바이쳐는 박애사상으로 잘했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비를 믿지 못했다. 십자가가 저주와 수치가 영적 눈이 열리면 영광이 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3사이에 넣어라. 영적인 눈을 열면 십자가는 영광이다. 성육신해야 십자가를 진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다. 수난 저주가 영광이며 십자가를 자랑할 때 영광이다. 영광의 극치가 십자가를 통한 것. 아픔과 고통을 겪는 것이 십자가를 통과하면 영광이 될 것이다. 모든 이 땅의 고통 뒤의 십자가를 통과하면 영광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으면 찬란한 영광이다. 아폴로가 달에 도착했음. 암스트롱과 버즈 알드린(장로님)이 다녀왔다. 그곳에 도착하여 알드린은 은색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교회에서 성찬식 기구를 주었고 십자가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다. 달에서 걸어본 것보다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함이 더 좋았다. Under Cross이다. 우주에 다녀와서 주님을 보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으면 반드시 십자가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한국 교회도 십자가의 영광을 깨달으면 십자가의 영광이 될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가 모든 부끄러움이 통과하면 십자가의 은혜가 된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십자가의 효력

1.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상처를 받으셨기에 우리는 치유 받을 수 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며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기에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3.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인하여 정죄를 받으셨기에 우리는 치유할 수 있다.

4.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셨기에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쓸 수 있다.

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에 우리는 심판을 면할 수 있다.

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마르셨기에 우리는 흘러넘치는 생수를 마실 수 있다.

7. 예수님께서 죽임당한 어린양이 되셨기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8.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께 버림을 당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9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기에 우리는 죄가 눈처럼 희어지는 영광의 수혜자가 되었다.

느낌

이 세상에서 내가 살 동안에, 나는 세상의 가치기준에 의하여 살지 않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지신 희생의 구속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그 본을 따라 살아야 한다성령님이시여~!  저를 긍휼히 보시고, 항상 주님의 길을 따라 살 수 있게 하옵소서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의지하고 간구한다. 바울처럼 십자가만 자랑하는 삶 되길 기도하며, 사도 바울처럼 돌에 맞고 죽을 고생하고 헐벗고 굶주린 흔적 없다 할지라도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헌신한 희생, 시간의 희생, 물질의 희생, 자존감의 희생, 이 헌신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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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2020. 4. 1. 여사역11: 이향애
제목: ''바꿔주시는 주님''
말씀: 이사야 61:1~3
설교자: 이한길 목사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온 국민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이걸로 인해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모든 곳에서 불안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염려가 가득하고 근심과 슬픔이 있으며 웃음을 잃었고 노래가 없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폐망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했다. 이스라엘은 폐허가 되어 잡초와 가시덤불이 가득하였고 성전은 무너져 돌무더기가 되었다. 이사야 61장 전체를 보면 그들의 비참한 형편은 황폐한 곳 무너진 곳 황폐한 성읍들, 황폐함이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소망이 없었고 그들은 상처입고 포로로 갇혀있고, 그들의 삶은 슬픔이었고 근심과 아픔이었다. 모든 것이 잿빛이었다. 도저히 소망을 품을 수 없었던 바벨론 포로의 삶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임하실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며 소망이 없이 슬퍼하는 그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기쁨으로 변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바벨론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장차 오시게 될 메시아를 통하여 성취될 구원의 말씀이었다.
 
기름 부은 자 곧 메시아를 통하여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리셨다는 것은 여기서 나는 이사야 선지자이지만 실질적인 자는 바로 메시이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첫 번째 설교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이사야 말씀을 읽으시고 자신의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 하셨다.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셨다. 즉 예수님께서는 기름은 받은 자이며 메시아라 하였고 사명을 선포하신다. 아름다운 사역을 선포하신다.
 
1.예수님이 선포하신 아름다운 소식은 무엇인가?
1)우리에게 회복과 치유를 주신다.
예수님은 죄로 인하여 신음하고 고통 받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소셔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되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매어 종노릇 한 자에게 자유를 주셨고 마귀의 권세 아래 눌린 자 갇힌 자들을 구원해 주셨다. 또한 예수님께서 슬픔과 절망에 고통에 빠진 자들에게 죄 대신 화관을 주셨다. 슬픔대신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시고, 근심대신 찬송의 옷을 주시고, 고통과 절망에 있었던 백성들에게 기쁨과 찬송이 넘치게 되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여 주신 아름다운 소식이다. 이뿐 아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수치대신 보상을 배나 얻으며 그들이 겪었던 수치와 능욕이 완전히 사라지는 영원한 기쁨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임하셔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자유케 하시고 회복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에서 여인을 만났고 그 여인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고 절망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피했고, 사람들도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찾아오셔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주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절망과 고통 두려움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았다. 죄 대신 화관을 쓰고 기쁨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세리장이요 부자였던 삭게오를 기억하는가? 높은 명예와 부유함으로 그의 삶은 그럴싸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무너졌고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민족의 반역자로 취급받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다. 키도 작아 열등감이 아주 컸다. 이런 삭게오를 예수님께서 찾아와 만나주셨다. 함께 먹고 지내셨다. 삭게오는 예수님을 만나 새 생명을 얻었다. 가진 것은 많았지만 늘 어둡고 힘들었던 인생을 예수님께서 만나주셔서 찬송과 기쁨이 되게 해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다. 생명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갇힌 자를 자유하게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새롭게 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생명을 얻었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주신 회복과 치유는 우리에게 삶의 일부를 고치는 것이 아닌 전 영역을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존재 방식이 본질적으로 변화되고 치유되고 회복되었다.
 
2. 예수님이 선포하신 아름다운 소식은!
우리에게 존귀한 신분과 사명을 주신다.
예수님은 고통과 슬픔이 있는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회복케 하시어
영화롭게 하나님을 섬기는 존귀한 신분과 사명을 허락하셨다.


1). 존귀한 신분과 사명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심으실 의의나무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낼 자, 바로 우리의 신분이며 사명이다. 의의 나무는 사람들이 심어 놓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셔서 심으셨다. 이처럼 의의 나무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와 힘 능력으로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본문에는 예부터 무너진 것이 그곳은 완전히
오래 황폐한 성읍들을 소생불가였고 폐허였지만 하나님이 심으신 의의 나무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의 생수로 다시 쌓고 다시 일으키고 다시 중수한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물이 끊어지지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물댄 동산에 의의 나무 삼으셨다, 그리고 의의 나무를 통하여 다시 쌓고 다시 세우는 사명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세상은 메마른 황무지와 같다. 근심에 쌓여있고 곤고하다.
 
어떻게 물댄 동산으로 회복 할 수 있나? 에스겔 47장을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시작된 이 물이 흐르는 곳곳마다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를 통하여 무너진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길 원한다.
 
2). 존귀한 신분과 사명은 무엇인가?
여호와의 제사장, 하나님의 봉사자이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존귀한 신분과 사명을 주셨다. 온 우주 만물이 다 주께 속하여있다. 그 안에 특별히 우리를 선택하여 어두움과 절망에 있는 자들에게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고 은혜의 통로가 되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아름다운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여호와의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봉사자이다. 복음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풍성한 삶이 있다. 그러므로 절망과 낙심 슬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 생명의 빛과 은혜의 빛을 복음의 빛을 우리가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고 사명이다. 악한 마귀가 틈을 타 절망 가운데로 몰아넣으려 방해하지만 주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여호와의 제사장적인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한다.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을 예비하는 자로로 감당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을 축복하는 자로 삼았다. 백성들을 축복하는 자로 살아간 자들이다. 제사장은 은혜의 통로요 축복의 통로이다. 그들의 제사장이 축복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켜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부르셨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다.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잘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주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 하고 불안하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 정오 기도회를 통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지키실 것이다. 한숨짓는 자를 위해 기도할 때 축복할 때, 세상은 여호와로 인해 복 받은 자라 인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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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29. 여사역11: 이향애

제목: ''소명자의 결단''

말씀: (에스더1~3, 1 12~16)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코로나 극복시리즈 실제

 

I.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두 가지 의식이 있다.

1.청지기 의식: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시는 것이다. 내 목숨도 내것 이 아니다.

2.소명의식이 있다.

 

하나님 나라에 청지기 의식이 있으면 두 가지는 세상 사람과 다른 시각이 다르다.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하나님의 시각인지, 사람의 시각인지 결정적인 시각이다.

에스더 1:1아하수에르 왕 때에는 - 인간의 시각, 인간의 역사

그 당시 최고의 치세를 가진 왕이었다. 그때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에스더 2:6사로 잡아 갈때에 :하나님의 시각, 하나님의 역사. 사로잡혀 갈 때에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이었다. 포로인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행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그 당시 왕의 부인 왕후 와스디가 절세의 미인이었지만 아주 교만했다. 그래서 폐위가 되었다. 그래서 왕후로 간택이 된 자가 에스가 되었다. 유대소녀가 왕후가 되었다. 그런데 왕을 모시는 하인 하만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악안 자였고 음모자였다. 하만은 악한 계책을 하는 자였다.

 

우리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어날 때에 총선이 일어날 때에 이런 것은 인간의 안목이다. 우리 교회가 예배할 때에 하나님과 시간을 정하여 마음과 뜻을 다하여

예배하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금식하고 결단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에스더를 왕이 한 달간 에스더를 찾지 않을 때에, 하만이 왕을 왕답게 여기지도 않는다며 왕에게 아뢰면서 한 민족이 왕의 나라와 백성 중에서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는다며 용납하면 안 된다며 덮어씌우며 모함을 하게 된다. 그 민족이 모반하고 거역하는 것처럼 악한 프레임을 씌운다. 하만은 아말렉 사람으로서 유대민족을 늘 죽이려 한다. 천하에 조서를 내리라며 처단하는 조서를 한 날 한시에 처단하기를 상소한다. 그러니까 집단 학살을 말한다. 어느 시대에도 악한 하만 같은 자가 있다. 자기의 유익과 정치적 야욕이 있기 마련이다. 주의 권속들은 총선에도 정신을 바짝차리고 역사를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잘못된 미디어에 걸려 왔다 갔다 하지 말아야 하며 415일은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겸손한가를 봐야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선택해야 한다.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온 나라가 고생이다.

독일히틀러 베네수엘라차베스처럼 잘 못 뽑아서 망하는 나라가 거지국가가 되었다. 거지국가가 되었듯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뽑아야 한다.

이번 총선이 다니엘서 25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현자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봐야 한다. 하나님의 저울에 합당한 자를 선택해야 한다. 교만하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민족을 품고 미래를 내다보고 열린 눈을 가지고 세계를 선도하고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정파적인 이기적인 초월하고 시각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4차 산업혁명시대에 성령 충만한 사람을 뽑아야한다.

그래서 최악을 막아야 하고 하만의 음모가 통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길 바란다. 에스더4:1 민족이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있게 되어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 통곡을 하며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는다.

 

모르드개는 그 상황에서 에스더에게 세 가지를 인식시켰다.

1)유대인의 피

2) 하나님의 택하신 사랑

3) 면제 될 수 없는 핍박

3.왕후의 자리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소명의 자리였다.

II. 소명의 자리

역사를 보는 눈이 사명의 자리가 되었다.

1) 위기 때 잠잠하면 함께 당한다.(에스더4:13)

2) 소명의 자리를 회피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에스더4:14)

3) 네가 현재 있는 자리가 소명의 자리이다(에스더4:14)

왕후의 자리는 민족을 위한 자리이다.

If I parish~~

 

III. 죽으면 죽으리라.

1.소명의 자리에 있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한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간다.

2. 오직 주만 바라보는 각오로 비장하게 결단한다.

3.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이다.

 

IV. 결단할 때는 결단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안목 어떤 소명을 자리로 왕후에게 주신 것이다. 에스더는 고아였다. 사명을 갖고 살도록 민족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았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도 그렇다. 하나님의 은총 아래 이 나라를 새로운 자유를 낳을 것이다. 국민의, 국민의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and government d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korea under God!!! 우리도 하나님의 아래에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에스더는 금식을 할 때 3일 동안 처절한 금식을 했다. 사생결단의 금식이며 비장한 각오였다. 우리도 사랑 on, 정오 금식기도를 해야 하며 부활절 전날 하루 금식 3일을 금식하여 기도하자! 중보기도의 후원자가 많아 확보된 소명 자가 되어 마침내 쉼과 잔치와 기쁨이 오리라 본다.

느낌과 결단

좀 시간이 많다하여 여유로운 건 아니라 여긴다. 주님이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를 잘 깨달아서 모든 일이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함을 알면서도 오늘도 집안 이것저것을 못했던 집안일을 하느라 핑계 아닌 핑계로 살면서 나를 위로하고 있다. 오늘 교회에 필요한 것들이 있어 서점을 들른 김에 예배를 드렸다. 왠지 서먹했고 오랜 시간을 들락거리지 않으면 그 마음이 다 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남의 집에 온 것처럼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오늘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를 되새기면서 돌아와서 정리를 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다락방 예배로 오늘 드렸고 저녁에는 가족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러니 나의 소명은 한가하지 않은 것이 나의 소명이라 여기면서 열심히 봉사도 하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함을 느꼈다. 세상일에 너무 치우치는 일이 없이 온전히 집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공부하고 순종하며 살기를 작정했으니 게으르지 않도록 노력하며 이번 선거에 잘 뽑아야 함을 강조하신 목사님의 말씀을 귀담아 저울질을 하나님 앞에 잘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

또한 엊그제 내가 구호단체에 가서 봉사를 했는데 진정한 소명자들을 그곳에서도 보았다. 아니 믿지 않는 자들이 더 많은 일을 하게끔 하시는 느낌도 들었다. 한국에 재벌부터 연예인을 시작하여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까지 코로나19대응후원을 했음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마한 것부터 아주 작은 것까지 아끼지 않고 후원해 준 것을 보며 나는 그 일을 도우면서 하나님께 얼마나 기쁘게 해드렸는지를 생각게 했다. 후원금 기부증서와 연말정산 영수증을 전산처리 해서 이 메일로 보내주는 일을 며칠간 선배언니의 요청으로 봉사를 했다. 뜻있긴 했지만 나의 뒷모습이 부끄러웠고 내가 그곳에 가서 봉사하게 한 뜻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내 자리에서 나의 소명을 잘 지키며 주님만을 바라보면 주님께서 소중한 사명으로 나를 인도하시리라 위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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