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주일예배(2023년 8월 27일)
제목: "평생의 언약 기도"
말씀: 시편25:10-14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강도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대규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시편25:10-14,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ㅡㅡㅡㅡㅡ
 
​▶할렐루야. 여러분 오늘부터 이제 가을 사역이 시작되는데 다들 준비되셨습니까? 어제 새벽에는 영어로 했는데, Are you ready? 참 감사한 게요 예수 믿으면 참 귀한 것 중에 하나가 늘 주일이 있고 또 이런 가을 사역이 있고 봄 사역이 있고 여러 일을 하면서 이렇게 피니쉬 앤 스타트가 있어갖고 매수가 또 이 매 사역이 이렇게 우리 프레시 하게 오늘 찬송한 대로,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뭐예요 신선함 같이 다시금 외부를 시작해가지고 신선하게 이게 얼마나 감사한지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이 가을 사역을 붙잡으시고 암탉이 참 병아리를 보호하듯이 여러분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2003년도 8월 마지막 주일에 첫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만 20년 지나고 오늘이 21년째 첫 설교입니다. 여러분 보통인지 모르지만 저는 정말 특별합니다. 제 마음속에 그래서 20년 전에 성령이여 새 일을 행해 주십시오. 그렇게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뭘 하겠습니까? 그렇게 말씀 같이 나누고 오늘은 평생의 언약 기도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 같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이게 그냥 적당한 것이 아니고 오늘 시편 25편은 누가 기록했죠? 다윗이요... 제가 소리를 살살 하니까 다른 소리들이 막 들리네요. 시편 25편은 누가 기록했죠? 누가가 기록했어요? 다윗이 기록했어요. 시편 잘 아시는 23편 24편 25편 다윗의 막강한 고백적인 그런 다윗의 시편이에요. 아시다시피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 시편 23편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정복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상승장군이었습니다. 상승장군이고 이렇게 무가 강하면 문이 약합니다. 사람들 문무가 겸비한 자가 별로 없죠. 다윗은 문사철 특별히 시의 달인이었습니다.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가 뭐 정보 왕이고 잘 나가고 뭐 다 잘 되니까 그게 좋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내 목자이시니까 나는 만족한다. 멋지잖아요.
*시편 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그런데 23편 6절에 보면 나의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이런 고백할 수 있겠어요? 내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슈얼리, 정영 반드시 나를 따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 여러분들의 생애에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다음에 선하심이 여러분들을 따라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가을 사역에 그리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는 오늘 21년째 첫 설교를 이 말씀으로 준비를 하면서 그래요. 우리 성도님들을 그렇게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그냥 논리 이론 정도가 아니라, 오늘 14절 뒤에 보면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이렇게 했어요. 보이신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다 ‘야다’는 말은 임상학적인 체험과 그다음에 임상학적인 어떤 삶의 경험이 분명하다. 그런 뜻이 그러니까 어떻게 다윗의 생애가 평생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따를 수 있었나 먼저는 그가 하나님의 언약 적 축복을 받았어요. 그래서 뭐라고 했냐면 10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I. '언약사상'은 은혜사상이다.
*시편25:10,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아멘. 인자와 진리라는 말이 그 인자가 요한복음에는 은혜와 진리로다. 여러분, 은혜와 진리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로다. 은혜와 진리로다. 그러니까 다윗이 벌써 오실 메시아를 깨달은 거예요. 그런데 다윗 편에서는 뭐냐 하면 그 하나님은 언약을 주셨는데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10절에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그런데 또 14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뒤에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오늘 참 중요한 그 단어가 언약이라는 단어인데 이 카비넌트(covenant), 이 언약이라는 단어는 세상적인 단어가 아니에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맺어진 단어예요. 그러니까 10절은 우리 편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그다음 14절은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거예요. 마치 샌드위치와 같이 우리 편에서, 하나님 편에서 그런데 누구에게? 11절에 이렇게 나와 있죠
*시편25:11,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과 생명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죄의 노예 상태에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제는 너희가 내 백성이 되고’ 애굽에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그들에게 너희가 이제는 전에는 종살이했지만 너희가 이제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랬어요. 그걸 일컬어서 언약의 백성 언약 적 관계가 되었다. 그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 제가 첫 번째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는 같이 가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우리가 일반적으로 언약 얘기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하나님께 매려 있나 하나님께 구속되어 있나? 마치 로버트처럼 그렇게 돼 있나? 하나님께 꼼짝 못하냐?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데 너 그것이 아니에요. 진짜 언약은 언약에 깊이 들어가면 언약은 진실 된 은혜이고, 언약에 깊이 들어가면 진짜 언약은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언약이 됐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내가 어떤 언약의 백성이 됐다. 이런 개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언약의 하나님이 된 것이에요.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그러는데 핵심은 하나님은 나의 언약의 하나님이다. 나의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어떤 뜻인가? 내가 언약 적으로 관계가 돼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꼼짝 못하고 무슨 구속이 되고 매여 있다 NO! 하나님이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게 묶여 계시는 것이에요. 이게 제 얘기가 아니고 우리 신앙의 귀한 선배였던 ‘제임스 페커’가 하는 얘기를 한번 보세요. 우리는 연약하고 오염되고 죄 투성이고 문제 많고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로 핏 값을 우리의 실력으로 아니라 예수님의 피 값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머리에 덮어가지고 머리부터 덮어가지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언약의 백성 너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의 언약의 하나님이 되겠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하나님 자시능ㄹ 묶어 놓으시는 거룩한 속박이다. -‘제임스 페커’-
-그리 말씀하셨다는 뜻은 뭐냐 하면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묶어 놓으시고 하나님 편에서 거룩한 속박을 하신 거예요. 이런 뜻이에요. 저는 아들이 둘이 있는데요. 걔들이 어릴 때에 저 놀이공원을 한 번씩 가면 얘네들이 난리야. 너댓 살 될 때 막 좌충우들 그냥 막 뛰어다니고 노릇하다가 놓칠 것 같아 갖고 안 되겠다 싶어갖고 우리 첫째 아들 팔목에다가 줄을 맸어요. 줄을 매가지고 첫째 아들을 이제 메고 있는데 자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어린아이들 줄을 메고 있는데 누가 더 속 타요? 아들이에요. 아버지 아직까지 잘 모르십니까? 아버지가 훨씬 속이 타는 거예요. 아들이 뛰어가는데 같이 뛰어 가주고 아들과 조폭을 맞춰주고 그 눈길을 아들에게 떠나지 않게 하고 아버지의 마음이 노심초사여 노심초사, 나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됐다는 이 사실 앞에 어마어마한 역동성을 느끼는 거예요. 여기에 놀라운 가능성과 놀라운 어떤 깊은 은혜의 경지를 느끼는 것이 여러분과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과 제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스스로 묶이신 것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스스로 묶어주신 거예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자신을 스스로 묶어주신 하나님,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언약이라 언약의 자손이 됐다고 했을 때 언약이라고 쓰고, 사실은 묶인 거예요. 언약이라고 쓰고, 사실은 사랑으로 읽어야 돼 언약이라고 쓰고, 사실은 은혜로 읽어야 돼요. 언약이라고 쓰고, 사실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목자의 심정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우리에게는 너무 귀한 거예요. 언약=은혜 사랑 목자의 심정. 그러니까 성도는 다시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쓰고 하나님의 뭐라고 읽는다고요? 은혜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쓰고 뭐로 읽는다고요? 사랑으로 하나님의 언약으로 쓰고 하나님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는 것이 그래서 이 언약이라는 말은 단순히 어떤 신학적인 용어가 아니고 우리를 살리고 죽이는 용어에, 그래서 이 언약을 제대로 깨달으면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살고 죽는 것임을 깨달아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언약 은혜사상이다.
 
그래서 제가 유아세례를 베풀 때 우리 유아세례를 하나님의 언약 사상과 하나님의 은혜 사상에 근거하여 유아세례를 준다. 그렇게 얘기하는데 여기에 포함돼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 사상에 깨달아지고 언약 안에 들어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러나 저와 여러분의 행복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여 언약 안에 들어가지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아래 생활할 때 진짜 행복한 것이에요. 이렇게 밖에 반응을 못하겠습니까? 다시 우리가 진짜 우리의 여러분의 행복과 여러분들의 은혜와 축복은 하나님 축복은 하나님의 언약의 질서 안에 들어갈 때 진짜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내가 너에게 묶여 있노라 내가 우리 아이에게 벗겨 있노라 그런 식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 들어가면 모두가 다 평안한 거예요. 우리가 살아 은사대로 사는 것도, 창조 질서대로 세상에 돌아가는 창조질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키 중에는 뭐냐 하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에요. 그래서 남자가 내가 이상하다 나 여자인 것 같다. 이러고 여자가 나 이상 남자인 것 같다. 이게 아니에요. 남자와 여자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에요. 하나님의 언약의 질서에 들어오는 것이에요. 그러면 행복하고 그런데 그게 나는 남자 성향이 있다고 또 막 동성애를 하고 말이지 이렇게 확대를 하고 차별 금지법 막 얘기하고 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누가 차별을 하겠습니까?
 
제가 지난주에 미국에서부터 우리 지난 토요일 날 토비새 설교 했던 이충희 목사님이 저한테 어떤 메일을 보내왔는데요. 로스앤젤레스 칠드런 하스피털(Los Angeles children's hospital), 로스앤젤레스 어린이 병원이에요. 커요. 보스톤 칠드론 하스피털, 아주 커요. 거기에 뭐가 있냐 거기에 이제 뭐가 뭐가 무슨 프로그램이 있냐면요. 젠들 서저리 프로그램 어린이 병원에 젠덜 서저리 프로그램이라는 건 뭐냐 하면 성전환 수술 팀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 이게 말이 돼요 이게 10살, 12살 이렇게 밖에 안된 어린 애들에게 나는 이제 나는 남자가 싫다. 나는 여자이고 싶어요. 그럼 남자를 여자로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 수술을, 그리고 여자애가 나 남자 되고 싶다. 그러면 남자로 만들어주는 거 그 수술을 하는 거예요. 그 팀이 있는 거예요. 지금 이게요. 이게 언약의 자손답지 않아. 이게 창조주에서답지 않아요. 그래서 수술을 했는데 남자 여자가 좋다고 여자를 수술을 했는데 좀 나이가 드니까 여자가 좋대요. 아주가 이 깊은 진리를 못 깨달았어요. 하나마나, 수술을 하나 마나, 너무 안타까운 일이 미국은 중국은 공산독재 때문에 망하고 미국은 이 동성애 이것 때문에 망할 거에요. 지금 만일에 모두 화장실을 뜯어고치고, 아이들에게 함부로 저기 뭐야 애들 보고 부모가 막 강요하면 안 되고, 너는 남자야 너는 여자 강요하면 안 되고, 여러분 이건 제가하나 예를 들어 설명했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모든 화장실을 다 두드려 고치고 남자 여자 같이 들어간 화장실을 다 만들고, 멀쩡한 걸 그래서 어제 한국에 좀 대형교회 목사님 몇 집 만났는데 우리가 죽어도 이거는 우리가 지켜낸다. 한국교회가 죽어도 지켜야 한다. 오 목사님 그럼 국회 앞에 가서 왜 피켓 안 들고 있느냐고 나는 어느 날 그 어느 날 썸데이에, 어느 날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들어갈 거예요. 우리 교회도 국회의원들 계십니다마는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아니 우리 교회 국회의원 장로님이 맡고 있어요.
 
지금 5천만 이상 되는 나라 3만 불 이상 되는 나라가 동성애 법이 통과 안 된 나라 우리가 유일해요. 지금 그래서 이 민족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에요. 이거 잘하면 왜 창조 질서대로 하나님의 언약이 이게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그래서 언약의 자손으로 여러분들을 창조 질서대로, 하나님의 귀한 축복을 가지고 이번 가을사역의 평생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오늘 네 가지 언약 적 기도 제목이 있는 것이 네 가지, 네 가지 첫째는 뭐냐 오늘 12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요.
 
*시편 25:12,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첫 번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언약의 백성들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신다(가이던스).
-택할 길을 가르쳐 주신다. 이거는 변개함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에요. 영어로 말하면 가이던스 인도 가이던스(-Guidance), 가이던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GPS를 잡고 계시다.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하나님이 우리 운행하고 계신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저는 이거 믿고, 매일 아침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 내가 언약의 자손이오니 하나님이 내게 묶여 계시는 것이 너무 눈물 나는 일이오니 주여 오늘도 내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매일 아침 저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면 주님 오늘도 새 날을 주시고,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나에게 새 길을 열어 주시옵시고, 하나님이 인도와 택할 길을 가르쳐 보여주옵소서. 모든 사람들은 잘났든 못났든 대단한 위치에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 모두는 모든 사람들은 매일 매일 마다 결정을 해야 합니다.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합니다. 결정할 때마다 하나님 택할 길을 가르쳐 보여주신다고 약속 하셨사오니 그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제가 82년도에 미국 신학교에 유학을 가가지고 파일러 대학교 신학 단에 가가지고, 그때 닥터 글렌 오딜이라고 신학교 학장, 요즘 신학교 총장이죠. 학장님이 신입생이 한 350명 정도 됐는데 350명 신입생 가운데 한국 사람이 2명이었어요. 한 사람은 저 1.5세였고 한국에서 온 사람 나온 저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좀 이렇게 좀 불쌍해 보였는지, 이 목사님이 이 학장님이 3박 4일 동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수양회를 하는데 같이 방에서 같이 있자고, 그래서 이제 3박 4일 동안 학장님하고 같이 있었어요.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침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고, 밤에 주무시기 전에 침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고, 저도 그걸 보고 그 이후에 옛날에는 한국에 침대라는 게 없었잖아요. 미국 가고 침대를 침대 생활하면서 항상 일어나면 기도하고, 밤에 자기 전에 기도하고 그렇게 하는데 내가 물었어요. 닥터 오닐! 내가 질문 안 하겠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데, 뭘 위해 기도하시느냐고? 프레이 퍼 가이던스(Pray for Guidance), 매일매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럼 주무시기 전에는 뭘 위해 기도하셨다고? 프레이 퍼 땡스기빙(Pray for thanksgiving) 오늘도 하나님 인도하심으로 하루 감사합니다. 감사한다. 매일 매일이 그렇다. 그 이후에 저하고 같이, 같이 수양회에 가고 같이 자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두 가지를 제가 가르쳐요. 이제 그래서 교육은 무서운 것이고 귀한 것이에요. 하나님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분 안성 수양관, 제천기도 동산, 곳곳마다 하나님의 가이던스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두 번째 기도제목은 영혼이 평안한 축복이다(peace ,prosperity)
-우리가 언약 적 기도의 두 번째 핵심은 뭐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데 뭐냐 하면 13절 앞에 그의 영원히 평안히 산다고 그랬어요.
*시편25:13,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영혼히 평안한 축복이 여러분과 저의 영혼히 평안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영어로 말하면 한마디로 peace ,prosperity, 평안하다. 여러분 영혼이 평안해야 육신이 평안한 것입니다. 영혼이 잘 돼야 삶의 모든 영역들이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고위 공직자가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목사님, 정말 마음 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대단한 위치인데 괜찮잖아요? 아니에요 목사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한지 마음이 당연하죠. 가인의 자손은 이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인의 자손은 늘 가인이 뭐라고 그랬어요. 아담의 자손 아담의 아들, 가인이 뭐라고 그랬어요? 아벨을 죽이고 난 다음 그 범죄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것 같고, 걱정 근심 우수 사례가 너무 많아 늘 번민이 어떻게 영원히 평안하겠어요? 어떻게 마음이 평안하겠어요? 오늘 우리 주위 보세요. 저 논현동의 점집 미아리의 점집 수많은 사람들은 문정성시에요. 그것도 잘 나타난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평안하지 않으니까 마음이 불안하니까 그런데 하나님 우리에게 언약 적 기도가 있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평안한 축복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걸 esv라는 아주아주 권위 있는 성경에서 잉글리시 스탠더드 버전(English standard verson)이라는 거기 보니까, 영원히 평안하다는 걸 뭐라고 번역했냐면 웰빙으로 써요 웰빙, 어디 다른 데 웰빙 찾지 말고 영원히 평안한 언약 적 기도를 통하여 참된 웰빙이 여러분들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진짜 웰빙은 여기에 있는 것이에요. 영혼이 평안해야 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직장에서는 평가 불안에 시달리고 가정에서는 눈치 불안에 시달리고, 저는 이번 하반기 사역 동안 모든 성도들 영혼히 평안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영혼히 평안하려면 영이 육을 지배해야 되는 거에요. 영혼히 평안함이 이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육신의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생각을 하게 하시는 거에요. 성령의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영혼이 평안해지고 영혼이 평안해지면 자연스럽게 삶의 많은 영역들이 평안해지는 것이에요.
 
오늘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뭐예요? Guidance, 두 번째는 뭐예요? peace ,prosperity, 이것이 나중에는 바울이나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들은 고난도 겪고 욥도 고난 겪고 다 겪었지만, 하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은 이런 언약 적 기도, 하나님이 우리 언약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신실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 반드시 이런 축복을 주신 줄 믿으셔야 되는 거에요. 그게 믿음이죠. 이번 주간 내에 여러분 좋은 일들이 감사한 일들이 귀한 일들이 많이 생길 거에요. 이런 믿음을 갖고 기도할 때에 될까? 그건 아니에요. 그 언약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세 번째로는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3절 뒷부분에,
 
세 번째 기도제목은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Success).
*시편 25:13b,
13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언약 적 기도가 있는 사람에게 땅을 상속하는 거에요. 이거는 뭐냐 하면 석세스(success) 혹은 인헤리턴스(Inheritance) 땅을 상속하는 거에요. gps가 됐어요. 어느 순간 g가 뭡니까? 가이던스(Guidance), 제가 그냥 제가 마음으로 정리해 보면 p는 뭐예요? 피스(peace), 그다음에 뭐예요? s는 석세스(success), 상속자, 이 땅을 상속한다는 그 당시에 그 유대인의 개념의 땅은 축복의 대명사였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헤브론의 그 유업 기업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고 그다음 나봇 같은 사람은 조상이 준 포도원이라든지 그 땅을 소중하게 여겼어요. 아합 같은 악한 왕이 그 땅을 빼앗으려고 막 위협을 가하고 목숨을 건 위협을 가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봇은 그걸 지키려고 애를 썼어요. 왜냐하면 그 하나님이 주신 이 귀한 것은 내가 소중하게 여겨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땅은 나만 갖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다음 자손대로 계속 이어가야 한다.
 
오늘 우리가 받은 이 축복들이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녀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세대 계승, 영적인 어떤 영적인 세대에서 그래서 자녀들이 부모의 두통거리가 아니고 부모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도록 부모의 이 언약의 기도가 자녀의 평생의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영적인 공간이 확대되는 것이에요. 영원한 유혹을 나중에는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유혹으로 요한계시록에도 나타나 있죠. 이 땅에 있는 물리적인 땅만이 아니라 영적인 지경을 넓힐 수 있도록 영적 땅이 계승될 수 있도록 하나님 한 분 한 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께서 세 가지 첫 번째 뭡니까? Guidance, 두 번째 뭡니까? peace ,prosperity, Success, 믿음의 계승, 이 세 가지가 있어도 마지막에 안 되면 인이 안 되는 거에요. 마지막이 뭐냐 14절 앞부분에,
 
네 번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과 친밀해야 한다(Intimacy).
*시편 25:14,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친밀하다. 그랬을 때, 인티머스(Intimacy),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함 앞에 있는 세 가지가 소중하지만 사실은 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제일 중요한 거에요. 여러분 평생 하나님과 친밀하시기 바랍니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며 나를 친밀하게 하시고 친구 삼으셔서 우리 서로 받은 이 은혜는 알 사람이 없을 정도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하반기 사역 동안 여러분 뭘 목표로 하시나요? 찬양들은 뭘 목표로 하시나요? 오늘 앞 예배 때는 그렇습니다. 찬양대 우리 찬양대는 안보를 해요. 안보 안보가 뭡니까?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에 거의 없는 찬양대의 특색이에요. 안보는 뭐냐 모든 걸 외워서 하는 거에요. 왜 외워서 합니까? 머리가 좋아서? 아마 자녀들이 잘 모를 거야. 우리가 왜 여기 살지 야다 보이시리로다. 임상적으로 이것이 내게 확실하게 체험된 것을 하나님 고백하고 선포합니다. 그 뜻이에요. 찬양대가 저런 고백하고 선포하는 걸 체험한 걸 선포하면 우리가 아멘으로 받으면 그것이 우리 것이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친밀함을 선포하는 거에요. gps 하나님의 가이던스 하나님의 피스 하나님의 석세스는 다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Intimacy)이에요. 평생 동안 우리가 언약의 말씀의 핵심 기도의 제목이 주여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가면 갈수록 더 친밀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해 주십시오. “야다”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체험하게 하여 주십시오. 놀라운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것이 무슨 뜻이냐? 앞에 서 있는 제가 사랑의 교회 목회자로서 여러분들을 섬깁니다마는 여러분, 제가 다른 이들이 다 귀하지만 사실 제게 가장 귀한 것은 가장 이 하반기의 목표는 주님과 나와의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에요. 맨탈 레이션십이에요. 주님과 나와...
 
오늘 우리 가운데 수많은 직분 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 순장도 하시고 그다음 우리 집사님도 하시고 권사님도 하시고 장로님도 하시고 여러 직분자들이 있습니다마는 여러분 장로님 왜 합니까? 아주 털어놓고 순종 왜 합니까? 찬양대 왜 하느냐고? 우리가 맡은 수많은 직분들을 교사들 대학부 리더들 청년부 리더들 왜 하느냐고? 결국 궁극적인 하나님의 언약 적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님과 더 친밀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주님과 더 친해집니다.
 
여러분 오늘 세상 사람들은 다 행복해지기를 원해요. 뭐가 행복한 겁니까? 참, cs 루이스가 놀라운 통찰력 있는 얘기를 했어요. 뭐라고 얘기하는 이런 얘기를 했어요?
 
※외부 사정이 다 좋아도 진정한 행복은 당신이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성격에 달려있다.
-cs 루이스-
-조금 바로 안 올 수도 있는데 쉽게 말하면 니하고 제일 친한 사람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느냐, 남편의 행복은 아내의 성질에 달려 있다니까, 너무 중요한 거에요. 그냥 절실한 표현이에요. 저분은 다시요. 다르시간이 너무 중요한 거에요. 남편의 행복은 아내의 성격에 달려 있는 거에요. 보여 봐요. 봐요. 봐요 봐요. cs 루이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떤 성격이냐? 아니 가장 가까운 사람과 어떤 친밀도를 갖고 있느냐? 그것이 결정되는 아내의 행복은 남편의 성격에 달려 있더라. 한 성격하는 남편들 마음에 안 들면 밥상머리를 밥상 던지고 이런 사람들 인생 복사하고 그런데 그분들이 하나님과 친밀해지면요 아내와 친해지는 거에요. 이거 알 사람이 없도다. 그런데 오늘 우리 여러분들 제일 가까운 사람들의 성격이 진짜 지랄이야... 가장 가고 그래서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요. 성은 배이요 이름이 신자야. 기가 막힌 얘기네. 여러분과 제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의 친밀 지수가 여러분들의 행복 지수를 결정하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 중요한 깨달아서 언약은 하나님이 내게 묶여 있는 거 그거 깨달으면 여러분들의 사역의 질과 인생의 질이 달라요. 신앙의 질이 깊이가 달라지는 거에요. 그리고 또 하나 여러분들의 행복 지수는 하나님과의 친밀 지시에 걸려 있는 것이에요. 질문합니다. 하나님과 친하십니까? 이것밖에 대답을 못 하십니까? 하나님과 친하십니까? 하나님과 친하십니까? 정말로 친해져야 돼. 하나님과 오죽하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뭐예요 보시라고, 보시라고 너무 친한 거야. 하나님.그 수많은 거야. 모세를 일컬어. 하나님께서 수리께서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얘기함과 같이 하나님 모세 모세는 하나님이지. 하나님과 친구야. 주와 나와 동행을 하며 나를 뭐 해요 또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너무 친합니다.
 
또 요한 신비한 복음서를 썼던 사도 요한은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너무 예수를 만지는 거,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 바울 같은 사람은 얼마나 친한지 하나님께서 바울은 나의 택한 나의 그릇이라 뭐든지 다 담아줄게. 그래서 이게 하나님과의 친밀해질수록 너무 행복하니까, 좀 기사대기 맞아도 있죠. 잇츠 오케이, 바울이 그냥 태장을 맞아도 허 웃고, 그다음에 이 언약 친밀 주스를 통한 언약 주소를 확실하게 하니까 바울이 유라굴로 강풍해가지고, 다 죽는다고 다 죽는다고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건 확실하니까 뭐라고 그랬어요? 오늘 이 유라글로 광풍에 배에 탄 2708명입니까? 한 명도 안 죽는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노? 그럼 너는 그리 믿어라. 그러면서 매출 또 발발발 떨고 있잖아. 죽는 사람이 오바이트 하고 토하고, 난리 나고 바울은 다 하나님의 치미의 주수가 높으니까, 다윗도 수많은 관란 신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17세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언약을 다 확정하고,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어도 언약이 확실하니까 주님과 친하니까 나의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를 것을 믿으니까 반드시 믿으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에요.
 
이 하반기에 이런 은혜를 누립시다. 오늘 저는 무슨 설교를 하기 보다는 그냥 여러분들 마음, 여러분 집집마다 신방 가가지고 내 속에 있는 걸 얘기하고 싶은 거에요. 지금 오늘 다 여러분 잘 되기를 바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묶여 있다는 사실 앞에 눈물이 나야 하고 그리고 우리의 영적 웰빙을 주님이 어떻게 예비하고 계시는지, 어떻게 택할 길을 갖고 계시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친밀함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다 받아 누리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다 손을 펴시고 우리 마음속에 정말 그런데 가장 강력한 언약은 뭐냐? 누가복음 22장 22절이에요.
 
*누가복음 22:20,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내 피로 세우는 구약에 이런 하나님의 언약이 계시적 발전을 통하여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하나님의 새 언약이 생긴 거에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뉴카비네트에 참여한 은혜를 주신 거예요. 제가 오죽하면 우리 교회를 짓고 본당하고 그다음에 아름답게 지은 곳이 저 채플 언약채플이 있을 정도로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그래서 이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존경하신 분이요 언약의 예수님이시오 응답을 하시는 예수님이실 줄로 믿습니다.
 
♧요약
하나님의 언약 적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기억하여 주님과 더 친밀해지기 주님과 더욱 친밀해져야 한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염치 불구하고 믿음의 기도를 드렸다. 특히 그는 여호와의 자비와 공의에 기초하여 이같은 간구를 드리고 있다. 실로 하나님의 은총은 죄를 회개하는 자의 심령 위에 풍성하게 내려진다. -(히, 소드) ‘비밀’, ‘은밀한 것’ 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14절 상반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털어놓으신다’는 뜻이다. 아울러 언약을 보이신다는 말씀은 언약을 반복해서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생애가 이 구절의 정확한 예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생각을 숨기지 않으셨으며(18:17,18),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할 때마다 언약을 재확인해 주시곤 했다(창 15,17장).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을 벗처럼 친밀하게 대하신다.
♧요약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염치 불구하고 믿음의 기도를 드렸다. 특히 그는 여호와의 자비와 공의에 기초하여 이같은 간구를 드리고 있다. 실로 하나님의 은총은 죄를 회개하는 자의 심령 위에 풍성하게 내려진다. -(히, 소드) ‘비밀’, ‘은밀한 것’ 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14절 상반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털어놓으신다’는 뜻이다. 아울러 언약을 보이신다는 말씀은 언약을 반복해서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생애가 이 구절의 정확한 예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생각을 숨기지 않으셨으며(18:17,18),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할 때마다 언약을 재확인해 주시곤 했다(창 15,17장).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을 벗처럼 친밀하게 대하신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3년 8월 20일)
제목: "순종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말씀: 열왕기상 13:15~24
대표기도: 노주찬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김지찬 목사님-초빙(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ㅡㅡㅡㅡㅡㅡ
*열왕기상 13:15~24,
15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9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20 그들이 상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21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23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
▶김지찬 목사님-초빙(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2천 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기독교 후기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열악해서 기독교가 한 나라의 제도나 사회, 경제, 교육 등 국민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국가 위에 군림하거나 최소한 국가와 밀월 관계를 유지하던 기독교 시기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유럽은 18세기의 시민혁명으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었고, 경제는 오직 시장 논리로만 움직이고 사회 전 분야가 기독교적 가치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건국 이후에 1960년대까지 200년 동안 기독교 시대를 누리다가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기독교 후기 시대로 들어갔습니다. 1962년에 국립학교에서 주기기도문, 암송이 금지된 것이 결정적 사건입니다. 한국 사회는 원래 세속국가인 데다가 기독교가 다수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서구 같은 형태의 기독교 시대였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해방 이후에 1980년대까지 국가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유사 기독교 시대라고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구한말 시대에 서구의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고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 제도를 철폐하면서 계몽의 선두로 백성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반공과 산업화가 국가 재건의 과제였는데,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사회의 기둥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13명의 대통령 가운데 개신교 출신이 4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반미 정서가 생기고, 반공을 통치 이념으로 삼던 정권과 싸우던 운동권 세력이 기득권층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속화가 한국 사회에 들어오면서 한국은 기독교 후기 시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후기 시대가 되는데 유럽은 1400년 걸렸고, 미국은 200년 걸렸는데, 한국은 채 100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후기 시대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서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 사회의 중심에 있었던 교회와 교회의 스토리가 주변으로 밀려난다.
둘째, 사회 속에서 편안함을 누리던 그리스도인들이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소수를 느끼며 편안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셋째, 기독교 후기 시대 현대인들은 기독교는 여러 세계관 중에 하나이며 웬만해서는 기독교 진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증거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이런 기독교 후기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미 기독교 후기 시대를 경험한 서구 학자들은 세 가지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사회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복음의 증인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라.
둘째, 동교들이 이렇게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 유지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선교적 삶을 살아야 된다.
셋째, 제도적 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교회는 강력한 생명운동과 구원 운동을 벌여야 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포스트 그리스 덤 시대에, 기독교 후기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명과 구원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진리의 증인으로서 적극적인 선교 적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역할, 진리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이들이 기독교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하려면 그 진리에 우리가 목숨을 걸어야 됩니다. 한 사람이 무엇에 목숨을 거는지를 봐야 그 사람이 믿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돈 버는 일에 목숨을 바친다면 그 사람에게는 돈이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후기 시대에서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가치와 신념에 목숨을 거는지 알고 싶어 하고 실제로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고 죽을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진리가 뭐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거 아닙니까? 장차 주님이 심판주로 오셔서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을, 불신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을 선포하실 것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이 진리에 어느 정도까지 목숨을 걸고 순종해야 세상 사람들이 이 진리를 알아줄까요?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순종은 이 순종밖에 없음을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는데 아쉽게도 현대교회는 절대적 순종의 모습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아니 순종이라는 단어 자체도 싫어합니다. 이건 주례를 서보면 금방 압니다. 예전에는 신랑 신부가 주례사를 다소곳이 듣기만 했는데 요새 커플들은 주례사 중에 서로 쳐다보고 웃고 귓속말까지 합니다. 제가 이제 에베소서 5장 24절 본문을 가지고 아내들도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할지라라고 권면하면 이전에는 그냥 아무 표정 없이 듣고 지나갔는데 묘사의 신부들은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아니 어떻게 남편에게 복종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라는 표정을 제가 얼굴에서 읽게 만듭니다. 제가 이제 앞에 5장 18절에서 21절에 보면 성령 충만의 4가지 결과가 나오는데 맨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가 나온다. 그러니까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피차 복종하는 게 더 큰 원리고 그 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목숨을 내어주고 사랑해야 된다. 그러면 그때서야 신부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요. 이렇게 이런 신부가 한둘이 아닙니다. 요사이는 신부 눈치 보여서 주례사도 마음대로 못 합니다. 이렇게 복종이라는 단어가 가정과 교회에서 점차 잃어버린 영적 유산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 대해서 미국 복음주의 리더인 짐 몰리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 교회의 크나 큰 비극은 믿음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많은데 순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적다는 점이다. -짐 몰리스 목사님-
 
오늘 우리는 11기상 13장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까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지, 그리고 왜 순종을 요구하시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면서 절대 순종의 정신을 우리 모두 회복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왕기상 13장을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좀 살펴야 돼요. 솔로몬 이후 르브함이 왕이 되었는데 왕국이 불로 분열이 됩니다. 북방 이스라엘 왕은 여러 보함이었는데 백성들의 마음이 남쪽으로 쏠릴까 봐 세 가지 조치를 취해요.
 
첫째, 예루살렘 순례를 막기 위해 북방 이스라엘의 남방 경계 근처인 벧엘에 사단 신전을 세웁니다. 벧엘은 야곱이 꿈을 꾼 곳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이고, 그곳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벧엘에 가서 3일마다 십일조를 드리려므나. 이렇게 호사가 얘기한 걸 보면은 굉장히 중요한 장소고, 사실은 이스라엘 안에서 예루살렘과 거의 맞먹는 중요한 영적인 어떤 장소가 벧엘이거든요. 그 벧엘에다가 이제 신전을 세우고 사당을 세우고, 그리고는 레위자손이 주로 예루살렘 성전 쪽으로 많이 붙어 있으니까
둘째, 일반 사람으로 제사장을 삼고 벧엘의 신전에서 담 옆에서 여러 보안 왕이 분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벧엘의 단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3:1,
1 이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서 분양하는지라.
-하나님의 사람은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이 없습니다. 어떤 묘사가 없습니다. 키가 얼마나 큰지, 성격이 어떤지, 어떤 출신인지, 배경이 어떤지 언급이 없어요. 딱 하나예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람은 외모가 출신과 배경이 어떻든 상관없이 오로지 여호와의 말씀에만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거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직은 여호와의 말씀이 자신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보게 되겠지만, 여호와의 말씀 때문에 이 하나님의 사람은 생명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때론 생명을 담보해야 될지 모르는 매우 위험한 사역에 뛰어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온 이유도 뭐예요? 여호와 말씀 때문이죠.
 
*열왕기상 13:2,
2 하나님의 사람이 재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화 재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아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내 위에 분양하는 산당 제사장을 내 위에서 재물로 바칠 것이오 또 사람의 뼈를 그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다윗의 후손 중에, 그러니까 남방왕국의 다윗의 왕손 중에, 요시야 라는 왕이, 여로보암이 분양하고 있는 그 벧엘의 단 위에서 제사장을 재물로 드리고, 사람의 뼈를 그 단 위에서 불살라 부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저주와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이 본문 현재로는 이게 몇 년 후에 일어날 것인지는 본문에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나중에 역사를 보면 300년 후에 있을 일이에요. 어찌 되었든 여로보암 왕은 이런 저주를 듣고 그 사람을 체포하라고 명령하면서 손을 내밀어서 저 사람을 잡으라. 이렇게 하면서 손을 내밀었는데, 그 순간 몸에 이제 특별히 팔에 마비 증세로 인해 손을 거두어드릴 수가 없었어요. 여호와의 말씀에 능력이 나타나자 여로보암이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열왕기상 13:6,
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데 너는 나를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여호와의 말씀은 왕의 손을 마비시키는 권능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우리들은 인간 왕도 굴복시키는 능력의 말씀을 섬기는 자라는 점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편 여러보암이 하나님의 말씀 능력에 굴복을 하자,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손을 치유하셨어요. 그러자 이제 여러보암이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서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내게 예물을 주리라 이렇게 초청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서부터 베델까지 약 20km 이상을 이제 여행한 것으로 보여요. 산길이기 때문에 나기를 탄다 해도 5시간 이상 걸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왕의 면전에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왕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아마 심신이 굉장히 많이 피곤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한 다음에 다시 길을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게다가 여로보암 마왕이 유화적이 돼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물까지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왕의 잔치 그다음에 얼마나 멋질까요? 왕의 예물이라고 하면 얼마나 대단할까요? 그럼 제가 한 30년 전에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한 교회에서 대학부 교육 목사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시간 강사를 할 때인데 외부로부터 처음으로 제 방에 전화가 걸려왔는데 대학부 부감 집사님이었습니다. 사업하시는 분인데 제 생일날 저와 제 가족을 대접하고 싶으니까 63빌딩으로 오라 그러더라고요. 59층 스카이라운지 룸에서 사실은 코스별로 이렇게 음식이 나오더니 맨 마지막에 이 큰 이 카트에 이렇게 케익이 나오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집사님이 식비 계산할 때 이렇게 어깨 너머로 보니까 35만 원이 나왔습니다. 당시 본국 70만 원 받을 테니까 순간 차라리 현찰로 주시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잠시 그랬을 뿐 그 후에는 식사 대접을 받은 게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로열패밀리의 잔치가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맛보았고 행복한 추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는 그런 대접 안 받았으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목사들은 뭐 그런 걸 좋아한다. 그러시면 안 돼요. 딱 한 번 사업을 하시는 분이 이 정도로 대접을 한다면 왕의 잔치 그러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맛보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면 왕의 잔치에 가서 먹고 마시면서 왕의 예물을 받는 거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볼까요? 8절, 9절 보면
*열왕기상 13:8-9,
8 하나님의 사랑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9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왕에게 절반을 준다 해도 왕의 잔치와 왕의 예물을 받을 수가 없다고 거부합니다. 그 이유가 뭐예요? 여호와의 말씀 때문이죠. 그러면 여호와께서 무엇 때문에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고 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당장 이렇게 나와 있지 않지만 최소한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는 미래에 일어날 일이에요. 언제 일어날지 언급이 없습니다. 나중에 보면 300년 일어나 제가 그랬잖아요. 그러면 더더욱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말씀은 믿기가 힘들어요. 듣는 사람들이 먼 미래에 일어날 일 신빙성을 어떻게 확인하겠어요? 결국 그 메시지의 신빙성은 그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의 신빙성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델의 단을 저주하는 심판은 주전 930년이에요.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 하는 아들을 낳을 건데 이 사람이 이제 내 재단을 사실은 부정하게 만들 거다. 라고 했는데 열왕기하 22장 1절에 보면 요시야가 8살에 왕위에 올라요. 그게 640년이에요. 18년째 되던 해에 율법사를 발견하거든요. 그때가 622년이에요. 그리고 그 후에 이제 사실은 부정하게 만든 거니까. 300년 후에 있을 주요. 심판의 메시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뭐가 달라붙어 있냐면 지금 지켜야 될 명령이 붙어 있는 거예요.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이렇게 붙어 있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에 달려 있는 사소해 보이는 음식 금지 규정을 하나님의 사람이 지금 여기서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는 음식 금지 명령을 주신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 심지어는 왕의 잔치와 왕의 예물을 거절하면서까지 음식 금지 규정을 지금 여기서 지키는 모습에서 우리는 나중에 있을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음식 금지 규정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규정이에요. 원래 인간이 수고한 후에 이에 대한 대가로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도서 5장 19절에 보면 18절부터 볼까요?
 
*전도서 5:18-19,
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유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도서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 게 마타트라고 하는 단어인데 왕이 내가 예물을 주리라고 했을 때 똑같이 ‘마타트’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수고한 다음에 먹고 마시는 거, 조금 낙을 누리는 거 이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신빙성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선물, 최소한 먹고 마시는 낙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거죠.
 
사랑의교회 부목을 하셨던 한 목사님이 저희 학교에 와서 간증을 하셨습니다. 토요일에 이제 설교 준비 때문에 바쁜데 한 권사님이 닭백숙을 해놨으니까 와서 식사하고 가라고 하셨다고 해요. 목사님의 사랑과 배려 감사하지만 설교 준비 때문에 죄송하다. 라고 하자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아니 그 설교가 맨 그 설교구만 왜 유난 떠는지 모르겠다. 이러면서 이제 뚫겠다고 그래요. 성도님들이 볼 때는 맨날 그 설교가 그 설교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맨날 그 설교가 그 설교 같은 설교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저같이 어쩌다가 단타 치고 빠지는 교수는 그나마 괜찮지만, 매주 설교하는 목사님들은 이게 보통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이제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의 사람에게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인간적으로 너무 심하죠. 그러나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왕의 잔치와 예물을 거절할 만큼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 때 그 먹고 마시는 그 낙을 충분히 누리게 해주면 좋을 것을, 왕의 예물도 조금 받아 누리고 좀 살면 될 거를 왜 그렇게 못하게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신빙성이 확보돼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때로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최소한의 선물조차 때로는 금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찌 됐든 이런 절대적인 순종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의 신실함을 믿게 되는 거고, 앞으로 미래에 있을 그가 전한 벧엘을 향한 단의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이것은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화하는 기독교 진리가 뭐예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언젠가 주님이 도둑같이 재림하실 것이고, 그날 모든 인간은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 아닙니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장 29절에서 주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29,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런데 마치 우리가 이 세상이 전부인 양 먹고 마시는 것에 목숨을 걸고 이 땅에서 왕의 예물을 받고 재물을 쌓는 게 그곳에 생명을 건다면 주님이 영광중에 언젠가 재림하여 이 땅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기독교 진리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지금부터 이제 한 35년 전에 제가 이제 유학을 가기 전에 제가 번역을 하던 출판사에 이제 인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 방에 편집부장 방에 이장님 씨가 있었어요. 그 출판사의 직원이 숙제 그냥 거기에 직원이라는 걸 서로 이렇게 알고 있긴 했지만 초면인데 갑자기 저한테 언제 귀국하냐고 묻는 거예요. 한 7년쯤 걸린다고. 그러니까 갑자기 이 사람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다 틀렸네. 이러더니 갑자기 방을 나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편집부장님에게 저 사람 왜 저래요? 물으니까, 이장님 씨가 두 명의 중학생이 받은 계시를 근거로 5년 뒤인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시한부 종말론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이장님을, 제가 7년 후에 돌아온다고 그러니까 그전에 휴가가 있을 건데 유학은 다 쓸데없는 거라는 이유로 다 틀렸네. 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건 휴거를 주장하는 이장님이 추종자들에게 수십억이 넘는 막대한 헌금을 받았습니다. 추종자들이 휴거까지만 먹고 살 돈 남기고 재산을 다미선교에 바친 것입니다. 정말로 웃긴 것은 이장님씨가 자신이 주장하는 휴가 날짜 이후인 1993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환매 조건부 채권을 구입한 사실로 사기죄로 구속되었습니다. 미친 거죠. 그러니까 이게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이야기하면 삶으로 그것을 입증해야 될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죠.
 
다시 성경 본문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가 등장하면서 절대적으로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운명에 극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이 늙은 베델의 선지자는 아들들에게서 베델의 신전에서 일어난 일을 듣게 되어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서는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고 초대합니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두 번째 초청을 받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죠. 아니, 왕의 잔치를 거부한 사람이 평범한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달리 생각해보면 그러나 왕의 잔치는 몰라도, 평범한 백성의 초대야 굳이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사람은 여러 번 왕의 제안을 거절할 때와 거의 동일한 언어로 늙은 이 사람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내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내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여기서도 핵심은 중앙에 여호와의 말씀이 딱 들어 있습니다. 유다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절대적인 순종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자 늙은 선지자가 방법을 달리합니다.
 
*열왕기상 13:18,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늙은 선지자가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다. 이렇게 말해요. 우리를 가장 쉽게 무너뜨리는 사람이 누굽니까? 선배 그리스도인들이죠. 너만 그리스도인이냐? 나도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거 하나 가지고 꼭 그럴 필요 있냐? 사회생활하려면 그것쯤이야. 넘어갈 줄 알아야지 이렇게 말하죠. 주로 똑같아요.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다. 이래놓고는 이제 여호와의 말씀에만 움직이는 사람임을 금방 간파한 늙은 선지자는 천사 운운하죠.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다가 천사를 덧붙였어요. 지금부터 춘사 운운하는 인간들은 조심하셔야 됩니다. 그리고는 이제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떡도 먹고 물도 마시라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거죠. 하나님의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르지만, 성경 기자는 분명하게 이는 그를 속임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선지자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19절에 보면 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리라. 왜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이 속임에 넘어갔나요? 성경 기자는 그의 동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늙은 선지자가 왜 속였는지도 동기가 안 나옵니다. 동기가 선하든 몰라서 그랬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언급을 안 하는 거예요. 아마도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늙은 선지자의 말에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늙은 선지자는 무엇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을 빙자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속이고 있는 걸까요? 본문에 안 나옵니다. 여로보암 산당근처에 살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 이름으로 한가하지 않은 걸 보니까 타소 신앙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라요. 벧엘의 선지자로 베델의 단을 저주한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이 거짓이기를 바랬는지도 몰라요. 벧엘의 사니까, 어찌 됐든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죠? 하나님의 말씀이요? 불순종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안 하고 그 전 하나님의 사람에게 임했는데, 하나님의 사람을 속인 늙은 선지자에게 임해요.
 
*열왕기상 13:21,
21절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요하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고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내 시체가 내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심판의 메시지가 즉시 실행돼요. 하나님의 말씀은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택해서 움직이는 거예요. 이 사람을 속였는데 왜 하나님 말씀이 이리로 임합니까? 여기가 순종 안 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열리로 안 임하고 이리로 임하는 거예요.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임에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한 번의 실수인데, 그것도 순종하려고 했던 실수인데 어떻게 이렇게 비극적인 운명을 당해야 했을까? 저는 인간적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이 사람 동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 하나님의 사람을 꼭 죽이셔야만 했을까요? 인간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하나님의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의 불순종은 이 사람이 이어가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신빙성이 지탱하는 기둥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의 순종이 깨어졌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하나님의 말씀 음식 금지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먼 미래의 벧엘에 선포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에 신빙성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람은 위험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삶으로 입증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사역에 뛰어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대적으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는 결코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것이 인간적으로 마음이 아프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이 오히려 그가 전한 말씀의 신빙성을 높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를 봅니다. 그러니까 늙은 선지자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말씀대로 바로 사자에게 물려 죽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을 향해 전한 말씀이 진리임을 확신하게 돼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 삶과 죽음은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과 능력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모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벧엘의 선지자가 자식들에게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고 부탁한 거죠. 그리고는 32절에
 
*열왕기상 13:32,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성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이니라.
-벧엘의 선지자가 선포해요. 그러니까 벧엘에 살면서 약간은 탈락한 것으로 보이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불순종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 모습을 보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제 유다에 속은 하나님의 사람과 베드의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신빙성을 드러내는 형제 선지자가 된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행하다가 결국은 불순종하여 죽는다고 해도, 우리의 죽음이 다른 사람을 회개하게 만들 수 있다는 데 희망이 있는 거예요. 종종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신실한 종들을 때로는 선교지에서, 때로는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데려가시거든요. 절대적으로 순종하는데, 때로는 실수했는지도 모르지만 실수한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왜 이렇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데려갈까? 순종하지 않고 약간 타락해 있는 늙은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경고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내년 2월이면 은퇴라 65세거든요. 옛날에는 막 젊은 선지자, 막 이렇게 난리 치다가 요새는 이렇게 늙은이 나오면 갑자기 내 나이가 지금 이게 늙은이로 들어가고 있구나! 이래가지고 이제 저를 확실히 돌아보게 돼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찌 됐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승리의 행진에 초청을 받은 거예요. 때로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으로, 우리들의 불순종으로, 우리들의 믿음에 있어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승리의 행진을 하지 못하고 잠시 멈춰 설 수 있지만, 끝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승리하게 만드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 승리의 행진에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기자와 베델의 선지자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후에도 26, 29절과 31절에 보면 뭐라고 하냐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해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 이렇게 돼 있긴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인 거죠. 이 두 형제의 선지자는 순종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 제목을 순종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왕은 이런 사실을 눈으로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결과는 눈에 뻔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우리 34절에 보면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열왕기하 3장 16절에 보면
 
*열왕기하 23:16,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한 비석을 가리키면서 이 비석이 뭐냐 그러니까 성읍 사람들이 요시야 왕이 방금 벧엘의 재단에 행한 일을 300년 전에 예언했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다. 라고 하자, 왕이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고 명령해요. 하나님의 사람이 열두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완벽하게 성취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순종하지 않고도 살아남으려고 이렇게 하다가 보면 베드로 늙은 선지자처럼 돼요. 그나마 젊은 선지자가 죽는 모습을 통해 회개하면 괜찮은데, 회개하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방법이 없는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절대적 순종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신앙의 선배 주기철 목사님이 우리에게 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절대적 순종을 보여주신 신앙의 영웅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주 목사님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인간적인 고민보다는 너무 영웅적인 모습만을 강조한 나머지 성도들을 좌절시키는 경향도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불에 타는 모판 위를 주기철 목사님이 걸어가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는데, 이런 장면에서 성도님들은 주 목사님의 용기와 신앙에 감동하면서도 저런 상황에서 나는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 순교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게 아니야? 라고 포기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교회 사가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숨을 내걸고 순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교회 사과에 의하면 아들인 주강자 장로님은 아버지가 마지막 체포당할 때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했다고 합니다.
 
일본 경찰이 아버님을 잡으러 왔을 때 아버님은 팻마루 기둥을 붙잡으시고 가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끌어안고 목사님, 지금 문 밖에 교인들이 와 있습니다. 목사님은 개인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시면서 함께 우셨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그래,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죠. 하시곤 두 분이 손을 잡고 오랫동안 기도하신 후 할머님께 하직 인사를 하시고 성경 찬송을 듣고 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이 증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게세마네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이 자이 지나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세 번씩이나 그리고 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기철 목사님이 결사 각오로 절대적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주님과 교회를 향한 사랑,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함이 절대적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한국교회사를 전공하는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주 목사님이 두 번째로 체포되어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풀려난 후에 산정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인간이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십자가를 지려고 한다면 십자가가 인간을 지고 간다. 그래서 갈보리 산상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 절대적 순종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온전히 주님만 모셔놓고 우리의 정성을 다하여 주를 섬긴다면,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절대적 순종을 하려고 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십자가가 놓인 갈보리 선상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때 세상은 우리가 주님의 진정한 제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조금 후에 우리가 함께 부를 복음성가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온전히 주님만 모셔놓고 나의 정성을 다하여 주를 섬기리. 기쁘나 슬프나 오직 한 마음 주위에 한평생 주만 모시고 찬송하며 살리라. 주는 나의 큰 능력, 주는 나의 큰 소망 내가 항상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이 찬송이 우리의 평생의 고백과 전생의 결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절대 순종의 길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죽기까지 순종했던 주님의 본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믿는 복음, 진리를 위해 절대 순종의 길로 결심하며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왕의 잔치와 예물을 거절하고, 때로는 먹고 마시는 것도 금하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할 때, 주님이 오시는 그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실 것을 기대하며, 주님이 날마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이 세상에 나아가 세상을 이기고 승리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유혹에 넘어갔다. 유혹은 인간의 육체적인 욕구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은데, 유혹이 올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는 것이다. 유혹에 넘어간 선지자는 사자에게 찢겨 죽는 결과를 맞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원하신다.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3년 8월 13일)
제목: "눈물로 꿈꾸는 추수"
말씀: 시편 123: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양은규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시편 123: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담임 목사님께서 “눈물로 꿈꾸는 추수”라는 제목으로 78주년 광복절 특별 메시지를 전해주시겠습니다.
 
▶오정현 담임목사님
-거룩한 기대감을 갖고 나온 모든 성도들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보혜사의 능력으로 덮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주일 예배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저희는 78주년 해방 주일, 광복 주일이라는 그런 오늘 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해방’이라는 말은, 어떤 구속되고 포로 된 곳으로부터 벗어났다. 이런 뜻이고 ‘광복’이라는 말은 빛을 회복 한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 민족적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우리 영적으로도 우리 모두는 죄악의 포로로부터 벗어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빛의 자녀로서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시대 앞에 빛의 역할을 사명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우리 한국 사회에 여러 이제 이슈를 앞에 놓고 정치적 성향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수 믿는 저희들은 똑같은 우리 한 가지 목표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돼야만 합니다.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되려면,,, 정부가 좋은 정부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좋은 정부, 좋은 지도자의 복, 좋은 나라의 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단독 목회하고 35년 동안 한 주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광복주의를 간절한 마음으로 지켰습니다. 광복절을 지키는 이 간절한 소원은 뭐냐 하면 이 광복절을 지키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 다시 한 번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평양에서 특새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제사장 나라, 빛의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저 북한에도 북한 아이들을 성경으로 신앙으로 교육할 수 있는 북한에도 정말 아름다운 주일 학교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뭐 그런 우리가 간절한 소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러분 시편 126편의 이 말씀 오늘 눈물로 꿈꾸는 추수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눈물의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어떤 결과를 주실까? 거기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 중심으로 그다음 시대 앞에서 우리가 참 이게 주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구나! 그렇게 확인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26편은 얼마나 이 시가 좋은 시였냐 하면 ‘성전으로 올라가는 시’라고 그랬어요. 너무나 좋아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 가운데서 해방 받아 나와 가지고 그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자주자주 부르는 시가 되었습니다. 어떤 뜻입니까? 1절에,
 
*시편 123:1,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포로를 돌리실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때는 우리 혀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의 입에는 찬양이 가득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가 뭐 하도다. 기쁘도다. 너무너무 기쁘다. 너무너무 기쁘다. 대사,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여 주신 것이 여러분과 저의 가장 큰 능력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지금 여러분들이 어디 뭘 좋은 걸 찾으세요? 뭐 하고 싶으세요? 다른 거 없어요.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우리 개인 교인, 우리 성도들, 우리 민족을 위여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의 힘이라고 그랬는데, 그 힘을 저희들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1절부터 6절까지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렇게 다 나와 있는 과거는 하나님께서 포로를 돌리시고, 그 은혜가 너무 크니까 그 찬양과 감사가 감사에 대한 1, 2, 3절에는 감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4절에는 주여 우리를 다시 한 번 난방 신내들처럼 만들어 달라고 현재의 강구가 나오고 그다음에 5절, 6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가져올 줄로 믿습니다.
 
*시편 123: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123절은 감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 4절은 주여! 우리를 다시 한 번 남방 시내들처럼 만들어 달라고 현재의 간구가 나오고,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5절 6절은 하나님 아버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가져올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울며 씨를 뿌리면 반드시, 반드시 적는 기쁨으로 추수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확실한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2절 뒤에 보니까 이방 사람들, 못 이웃 사람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야 야 야 야 야!!!!! 여호와께서 유대민족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 이 시편 126편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과 우리 민족의 고백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전제를 하나 해야 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I.. 눈물로 기도하는 남은 자를 통해 일하신다.
-첫 번째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서 눈물로 기도하는 남은 자를 통하여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이 다시요! 뭐로 기도하는 것이냐면요? 눈물로 기도하는 어떤 사람을 통하여 남은 자 남은 자에다가 점을 딱딱딱! 쳐보세요. 눈물로 기도하는 남은 자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유대 민족이 망해가지고 갔는데 여러분 그 망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안타까운 목자의 심정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유대민족 가운데 다 잘못했겠어요? 유대민족 가운데 경건한 자가 하나도 없었겠어요? 다니엘 같은 그런 사람들을 비롯해서 유대민족 가운데서도 상당수의 경건한 자들, 거룩한 자들,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순종하고 사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의 경건과 그들의 헌신과 그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민족 전체가 망하니까 휩쓸려가는 것이 다 휩쓸려 가는 거예요. 따라서 저와 여러분이 나라를 위하여 진짜 간절히 기도하고 사모해야 할 것은 뭐냐 하면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해도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도 고난 겪는 것이에요. 북한 보세요. 지금 그러니까 나라 사랑과 나라 잘 되는 것과 우리 잘 되는 것이 같이 가야 되는 것이에요. 여기에, 여기에 에서서 하나님 사모하고, 하나님 영광 사모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전력투구하고, 순종과 헌신과 거룩을 가진 백성들 가운데서도 그냥 포로로 잡혀가는 그러니까 그 포로로 잡혀가 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남은 자들인데 또 포로로 잡혀갔는데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에요. 그 바벨론 사람들이 조롱하는 거예요. 조롱(嘲弄)과 멸시(蔑視)와 그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나중에 여러분들 아시잖아요? 모르드개와 하만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했어요? 잡아매려고 그랬잖아요. 에스더 시대에,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경건한 소수의 사람들이 울부짖는데도 불구하고 나라가 무너지는 바람에 다 고생하고 이것 자체가 억울하고 슬픈 일이죠.
 
그런데 그 억울하고 슬픔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남은 자로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에요. 바벨론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었겠어요. 노리개 감으로 삼고 희롱하고 무시를 했어요. 에스더서에 보면 유대민족 전체가 멸종을 당할 위기도 당한 것이야. 그러니까 오죽하면 밤낮 금식하고 티끌을 뒤집어쓰고, 통곡하고, 탄식하고, 그야말로 눈물로 씨를 뿌리는 거에요. 예레미야애가 표현처럼 마치 쑥과 담즙을 마시는 것처럼, 담즙은 뭡니까? 곰의 쓸개를 마시는 것 같은 쓴잔이었어요. 생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당시 세계 최고의 발달된 제국 바벨론 제국, 문화에 그 문화와 현실에 타협하라는 미혹 앞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짜 남은 자로 눈물로 씨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로 생활 10년, 20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게 50년, 60년을 가니까 동족들 가운데 신앙 팔아먹고 배신하는 그런 사람들, 부패한 사과 하나가 상자에 있으면 삽시간에 사과 박스 전체를 부패시키듯이, 이 패배주의자들의 논리가 남은 자들의 마음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것은 그야말로 눈물로 씨를 뿌리고 남은 자, 남은 자에요. 여러분 제가 초대 교회사를 보니까 초대 교회사에는 ‘필립 샤프’라는 분이 초대 교회사, 교회사 책을 7권을 써서 집대성을 했는데 초대 교회사에 보면, 로마 황제를 주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말하는 사람은 딱 그 많은 사람은 두 가지 결과밖에 없다. 하나는 순교를 하든지, 또 하나는 남은 자로서 고백자가 되든지, 멀터가 되든지, 아니면 컨페서(Confessor)라는 말 알죠? 컨페서(Confessor)라는 말 우리가 고백한다. 컨페서 (Confessor) 마트가 되든지, 컨페서(Confessor)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이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를 보세요.
 
저는 기독교를 폄하하고 함부로, 함부로 교회를 정말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이런 어떤 그 반기독교 문화 사회 가운데서 마치 바벨론 포로 시대에 바벨론이 희롱하고 욕하고 그렇게 하는 것처럼 또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이 무신론자들 강력한 프레임을 갖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탈락한 세속 문화 이 가운데 우리가 신앙을 올곧게 지켜내는 것 자체가 우리는 남은 자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몫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남은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이에요. 남은 자들을 통하여 일제 36년 시기 가운데서 눈물로 나라를 위하여 애국 구국기도를 하고 평양 부흥을 경험한 그 일들을 통하여 그래도 이 나라를 지켜낸 것이에요. 6.25 때도 마찬가지고, 다 안 된다고 다 끝났다고 그러는데 6.2의 참상을 견뎌내는 눈물로 기도로 씨앗을 부리는 사람들, 한국교회 부흥의 시기에 눈물로 간절히 기도할 때, 그 부흥의 결과로 나타나고, 지금도 교회가 이래 많은데 이렇게 나라가 뭐 이렇다 이런 사람들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교회가 있으니까 이만큼이라도 된 겁니다. 교회가 있으니까 이만큼이라도 된 겁니다. 교회가 있으니까 지금 이 동성애법 이것도 참 기가 막힌 거예요.
 
제가 지난주에 미국에서 한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지금 미국의 큰 병원의 책임자가 지금 고민을 한 게 지금 뭐가 있냐면요. 아이들 이제 외과 의사들이 어린아이들이 내가 남자다 그러면 여자 아이를 남자로 수술하고, 또 여자아이가 나는 남자 남자가 내가 여자다 그러면 남자를 여자아이로 수술하는 그 지금 훈련을 하고 있대요. 지금 여러분 이게 말이 되냐고?? 이 가운데서 우리가 한국교회가 지금 이만큼 하니까 동성애 차별 금지법을 우리가 막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 눈물로 신을 뿌리는 거죠.
 
지난 목요일 날 저녁에 우리 교회는 영국의 2천여 명과 10개국에 한 4천여 명이 와가지고 본당과 이렇게 보이스카웃 잼버리 청소년들이 함께했다. 새만금 난리 났는데, 참 우리가 독립운동 하는 마음으로 사랑의 교회가 독립운동 하는 마음으로 새만금의 관군들이 잘못한 걸, 우리 의병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에요. 눈물로 씨를 뿌리는 거에요. 너무나 놀라운 시편 126편의 말씀이 나오기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겠다고 말트 아니면 컨페서(Confessor)로서, 고백자로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기도로 지키는 자들 여러분들 때문에 오늘 이 자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또 그래 돼야 되고 그래서 오늘 두 가지를 적용하겠습니다. 둘째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릴 때, 기도의 씨를 부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씨는 씨를 뿌려야 되는 것이에요. 진리의 씨를 뿌리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에 보니까 다 같이 보겠습니다.
 
II.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씨를 뿌리야.
*갈라디아서 6:8,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리의 씨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눈물의 씨가 뿌려져야 한다는 것이에요. 똑같은 대통령이지만 미국의 죤 에프(John F 케네디 대통령은 공립학교에서 성경 과목 성경 가르치는 거 주기도문을 폐지해버렸어요. 그것 때문에 그때부터 그 강력한 미국이 수많은 미국에 참 복음주의자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저 어느 지역은 지금 전부 다 화장실을 남녀 화장실을 다, 다 개조를 하는 거죠. 멀쩡한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을 다 개조를 유니섹스로 해가지고 다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분 진짜 미치지 않았어요? 그거 그런데 우리가 볼 때는 그런데 그거 지금 거기에 당연하게 그리 되고 있는 것이 진리의 씨를 뿌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진리의 영, 진리의 씨가 뿌려진 곳에는 항상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줄로 맺는 것입니다. 진선미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진리의 씨를 뿌릴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씨를 뿌릴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뿌려야 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씨를 뿌린다 할 때 진리를 선포하는 거예요. 진리를 주장하는 거예요. 말하는 것 ,그것만 하면 안 되고 거기에다가 진리의 씨를 뿌릴 때 사랑이 포함되는 것이 여러분과 저는 사랑의 교회는 앞으로 시대 앞에 쓰임 받을 때 우리는 개혁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거예요. 우리는 막 개혁하고 바꾸고 이게 목표가 아니라 우리는 세우는 것이 목표가 되는 거예요. 개혁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할 줄을 확신하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 하면 진리가 중요한데 진리와 함께 세우려면 교회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나라를 세우려면 진리와 함께 뭐 같이 가야 되는 거예요? 사랑이 같이 가야 되는 거 선포만 하면 안 되죠. 그래서 에베소 4장에 보니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뭐예요? 말해라. 진리와 사랑이 같이 가야 되는 거에요.
 
*에베소서 4:25,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이것은 때로는 고통이나 괴로움으로 눈물이 나는 상황 가운데서도 참된 것을 말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랑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에요. 사랑이 없는 공의 혹은 사랑이 없는 정의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한 번씩 말씀드렸어요. 우리가 정직 운동을 해야 되지만 정직과 감사가 같이 가야 되고, 정직과 사랑이 같이 가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5절에 보니까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라는 것이 복수형이에요.
 
*시편 126:5,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Those who sow in tears)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눈물을 흘리고 함께 진리의 시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방식으로 뿌릴 때에 복수의 보수 형이에요. 그래서 우리와 함께 이 예배를 드리는 모두가 다 함께 진리의 씨를 뿌릴 수 있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무슨 일을 함께 뿌릴 때에, 함께 6절에는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간 자는 단수형으로 돼 있어요.
*시편 126:6,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러니까 함께 또 개인적으로 함께 기도하되, 또 단독자로 주님 앞에 설 때에 4절에 남방 시내들 같이 된다. 남방 시내들이라는 말이 놀라운 말이에요.
*시편 126:4,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남방 네게브 사막은요 완전히 사막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남방의 1년 내내 메마른 곳에 하나님께서 꿈꾸는 추수를 위하여 비를 쏟아주시는데, 그 비가 은 하나님의 은혜로 쏟아지게 되면 그 남방이 완전히 메마른 곳이 진초록의 정원으로 바뀌는 거예요.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다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를 진리와 사랑으로 같이 가가지고 뿌릴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줄로 믿습니다. 메마른 곳에 그래서 오늘 찬송에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메었던 종들이 돌아오네.~~ 할렐루야 3절에 뭐예요? 말랐던 시냇물이 흘러 광야에 화초가 피고... 말랐던 시냇물이 흘러오네. 말랐던 곳에 광야의 네게브 사막이 진초록의 정문으로 바뀌는 그런 축복을 받는 것이에요. 또 하나 또 하나 우리가 정리 첫째는 씨를 부릴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또 하나 우리가 정리할 것은 뭐냐 하면 반드시 은혜를 가진 소망을 가진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III. 반드시 은혜로 믿어야
*시편 126:6,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Shouts of joy)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뭐라고 돼 있습니까?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뭐라고 돼 있어요? 반드시 기쁨으로 확실하게 쇼리 그리고 열매 확실하게 그리고 어느 정도인가 하면 기쁨으로라는 영어 단어를 보니까 샤우트 오브 조이 그러니까 복수예요. 복수. 단순한 기쁨이야. 기쁨들이에요. 이게 3절 5절 6절에 세 번이 나오는데 한글 성경에는 기쁨으로 나오지만 조금 약해요. 사실은 기쁨의 외침들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가 기쁨의 외침들이 될 정도로 반드시, 반드시 기쁨의 단을 가져오리라. 는 이 소망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요 씨 뿌리고, 수고하고, 김매고 인내하는 그건 우리의 몫이지만 열매를 맺게 하고 추수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에요. 너무 중요한 거예요. 과정은 어려워요. 수많은 간난, 신고가 있어요. 수많은 즐거움이 있어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정말 죽을 때까지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이 뭐냐 우리가 주님 앞에서 적어도 진리의 씨와 이 은혜를 받아가지고 울면서 주님 앞에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반드시, 반드시 기쁨의, 기쁨의 단들을 거두게 하여 주실 것이다. 곡식 단도 그냥, 그냥 뭡니까? 단수가 아니라 복수예요. 반드시 그러니까 이 단들 안에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가요.
 
여러분들의 삶의 정서적인 고통, 수많은 어려움들, 그다음에 삶의 보람들, 동시에 여기에 경제적인 부요 이런 것도 다 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어마어마한 인도예요. 반드시 반드시 주시리로다. 제가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포로가 되지 않았다면 해방의 기쁨도 몰랐을 거예요. 우리가 고생을 안 해봤으면 이 추수의 은혜도 잘 실감이 안 갈 거예요. 우리가 코로나의 강을 건너면서 죽을 똥 말똥 해봤기 때문에, 일상의 기쁨도 아는 거 아닙니까? 오늘도 좀 몸이 면역이 좀 떨어진 분들은 마스크 다 끼고 오셨잖아요. 옛날 같으면 마스크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거 하면서 야 이거 우리가 몇 년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예배드리고 사는 것도 진짜 주님의 축복 옛날에는 뭐 그거 당연한 줄 알았지. 포로 된 자였기 때문에 해방의 기쁨이 더 크게 되는 것이에요. 그 이런 걸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게, 이게 추수의 역설이고 눈물과 슬픔의 역설이 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흐릴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비 오는 날씨를 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반드시 우리는 기쁨의 단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세상에 무슨 도덕이나 이 세상의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얘기해요. 어려운 날 끝나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막 그런 얘기하는데 제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그 정도의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제가 말한 것은 두 가지가 근거된 것이에요. 이것이 뭐예요? 저희 얘기가 아니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에요. 말씀에 근거한 것이에요. 성경으로 올라갈 때마다 유대인들이 정말 체험하고 눈물로 확신하고, 감격하고, 증명되고 확정된 것들을 매주 마다 선포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확인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니까, 세상의 고진감래하고 다른 것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말씀을 하신 분이 누굽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야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과 신실성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미쁘시니 하나님 자체에 신실하심에 근거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능하심과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근거해가지고 이것을 믿는 것이에요. 그래서 히브리 10장 23절에 보면,
 
*히브리서 10:23,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으라.
-오늘 그러면 이 21세기 오늘, 광복 78주년을 맞는 이 시기에, 이 말씀이 눈물로 씨를 뿌린다는 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개인의 가정의 삶에는 이것이 어떤 뜻으로 다가와야 합니까? 반드시 소망은 어떤 뜻으로 다가와야 합니까? 이런 것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수십 년을 기도했는데도 아직까지 응답이 안 되었을 때 그 눈물로 애통하는 아내의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에요. 그걸 믿는 거예요. 저희 아버지가 개척할 때에 그 가난한 달동네에서 맨날 남편들이 구타하고 지금도 기억해요. 집에 다 닫아 붙어 있으니까 달동네는 1일 노동자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고생이 많아. 그러니까 1일 노동해가지고 저녁에 술 한 잔 마시고 들어와 가지고 아내 보고 막 때리는 거예요. 왜 때리냐 보니까, 반찬을 형편없이 해야 했는데 남편한테 이게 뭐냐 그러니까 아내가 또 얘기하잖아. ‘돈만 많이 벌어줘 봐라 내가 좋은 거 안 해주나?’ 그러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아내가 예수를 믿고 새벽 기도를 나오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남편은 변화되지 않고 그러니까 이게 실화에요. 남편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새벽에 나와 가지고 울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거 다 봤어요. 저는.근데 그런 남편이 변화돼 가지고 자신을 추스리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그래서 그 아이들 가운데 시대 앞에서 임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다시요 평생을 기도해도 응답받지 않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눈물의 아내의 기도가 반드시 소망으로 결실하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혼기를 놓친 자매들, 좋은 신랑만 예수 잘 믿는 신랑 만나겠다고 기다리다가 혼기를 놓친 자매들, 하나님이 반드시 보상하실 것이에요. 떼돈을 벌 수 있었는데 신앙 때문에 타협하지 아니하고 포기하는 분들 하나님께서 반드시 소망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이거는 진리의 씨가 아니야 이거는 이게 진리 선포만 하는 게 사랑이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해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그분들의 헌신을 하나님 앞에 반드시 샤우츠(Shouts)! 기쁨의 단들을 가져오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요. 그래서 우리가 암송하듯이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갈라디아서 6:9-10,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뭐 하지 말지니 낙심하지 말지니 그다음에 뭐예요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 반드시, 저는 이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말씀이 시편 120편 6절이 신약의 재해석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칙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반드시 소망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반드시 6절에 기쁨으로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반드시...
 
오늘 이 자리에 많은 성도들, 중직자들 한번 믿음으로 한번 주님을 섬겨보겠다는 그 헌신의 눈물, 부모님들 가운데 한 번 믿음의 일대로 아브라함처럼 살아봐야 되겠다는 마음의 각오의 눈물, 주일학교 교사로서 다음 세대를 제대로 키워봐야 되겠다는 눈물에 참 기도의 헌신 순장으로서 청년대학부 리더로서, 헌신한 분들의 눈물의 기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차 안내 교육 봉사하시는 분들 사랑 부에서 형제자매들, 아이들을 한 결 같이 섬기는 분들의 수고를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실 것입니다.
 
제가 이거 반드시 갚아주는 것 때문에 헌신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우리는 그대로 믿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통 인생은 시간과 재능에 의하여 시간 곱하기 재능 그 재능과 시간이 합쳐져 가지고 그 삶의 어떤 축복과 열매로 나타난다고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저는 시간과 재능에다가 눈물로 흘리는 기도의 씨앗에 의하여 100배의 차이가 날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한국교회의 선대의 귀한 우리 목회자들, 선대의 귀한 참 영적 지도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제가 네 분의 목사님이 참 귀한 역할을 했다. 한경직 목사님 한국 민족 사회의 기독교가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 조용기 목사님은 성령으로 부흥의 역사가 무엇인지, 우리 옥한흠 목사님은 목회의 본질이 제자 훈련을 통하여 한 사람을 세우라는 것이 무엇인지, 교회는 어떻게 제대로 양육하고 세워져야 되는 것인지, 근데 또 한 분이 있어요. 김준곤 목사님이 계세요. 캠퍼스 크루세이드 크라이스 한국 대학생 선교에 창설하신 김준곤 목사님은 우리 민족을 향하여 애국 애족의 눈물의 씨를 부르셨어요. 제가 김수범 목사님 제가 최근에 이게 설교하신 것 가운데 에스더 기도 운동을 위하여 말씀하셨던 부분이 있었어요. 제가 너무 감동이 됐어요. 제가 다는 못하겠고 제가 웬만하면 영상은 잘 안 해요. 왜냐하면 영상을 하면 설교는 안 남고 영상만 남는 거예요. 제가 거의 영상을 안 하는데 오늘 이 영상을 한, 2분 50초 정도 영사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가 민족을 향하여 눈물로, 눈물로 기도의 씨를 부린다는 게 어떤 뜻인지, 보시겠습니다.
※한국교회는 원래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입니다마는 안으로 밖으로 마귀들이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세력이 많습니다. 참 보면 너무도 통곡할 지경입니다. 이것은 힘으로 내 눈물로도 안 되고 오직 성령으로만 될 수 있는데, 성령이 우리 앞에서 막아주고 쌓아줘야 되겠는데 그 혁명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교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기철 목사가 감옥에 들어가서 선교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일본 경찰에게 부탁해서 최선 교회 설교하기 에서 나와서 설교를 했습니다. !!~~ 기도용사가 되어야 한다.
 
-Prayer, more prayer, much prayer-빌리 그래함 목사- 프레이어, 모어 프레이어 마치 프레이어!!!
오늘 오후에 저희들은 청계산에 갈 것입니다. 반드시 소망을 가지고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이 그럴 때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실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얍복 강가의 기도의 씨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통절하게 가슴 아파하는 과부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여러분 개인도 살리고 우리 교회도 살고 민족도 살리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실 주님을 믿고 순종하고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손을 펼치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밑줄기 기도에 불이 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 주십시오. 평생 소원하는 기도가 응답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천계산 예고편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런 마음을 우리가 찬양하겠습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3년 8월 6일)
제목: "절망을 미래의 소망으로 바꾸다"
말씀: 예레미야 29:10-1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형민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김학진 목사님-초빙(미국뉴욕장로교회)
ㅡㅡㅡㅡㅡㅡㅡ

*예레미야 29:10-14,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ㅡㅡㅡㅡㅡㅡ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제게 있어서 서울 사랑의 교회는 마음의 갈릴리와 같은 곳입니다. 제 마음에 늘 돌아가고 싶은 그런 영적 고향이 바로 서울 사랑의 교회입니다. 제 인생 가운데 가장 허리가 되는 30대 후반에서부터 40대 후반까지 거의 10년을 이곳에서 사역할 수 있는 영광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다른 기억이 없구요. 그냥 교회에서 너무나 저를 사랑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것밖에 기억이 남지 않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나 충분해서 열악한 이민 디아스포라 교회 목회지에서 목회를 하면서요. 저들을 축복하고 또 사랑할 수 있는 부족하지만, 그 은혜가 남아 있음을 충분함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만큼 여러분께서 신앙으로 지금까지 잘 버텨와 주시고 그리고 은혜의 진원지가 되고 메마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서울 ‘사랑의 교회’를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그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누리는 거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그런 은혜를 주신 것 감사를 드리고, 또 여러분의 그러한 신앙 때문에 해외에 있는 많은 참 교회들이 또 세워진다고 하는 것을 꼭 잊지 않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오정현 목사님과 우리 모든 영적 리더들 그리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우리의 현실이죠. 어떻게 하면은 우리에게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절망, 어려운 이 시간들을 먼 훗날 좋아질 거야가 아니라, 지금 미래의 희망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지 그 믿음의 실체에 대해서 같이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같이 신나게 놀았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야 한테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루살이야 오늘 너 때문에 너무 행복했고 참 잘 놀았다. 우리 내일 다시 만나서 또 놀자. 얘기를 한 것이죠. 하루살이는 그 말을 듣고 내일이 뭔데 도대체가 내 일이 무슨 말인지 알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이제 시간들이 좀 지났어요. 늦가을이 되었습니다. 그 메뚜기가 이번에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개구리입니다. 그래서 개구리와 너무나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가 죽이 맞아서 여러 날들을 그렇게 친하게 놀면서 지냈습니다. 추운 겨울이 바로 앞에 왔습니다. 개구리가 이번에는 메뚜기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메뚜기야 너 만나서 나는 이 가을 너무나 행복했고 참 좋았다.’ 우리 내년에 봄이 되면 다시 만나서 또 놀자. 이렇게 말을 한 것이고 메뚜기는 한 철이잖아요. 그래서 메뚜기는 도대체가 이 개구리가 말하는 내년이 무엇인지 봄이 무엇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비슷한 일이 2천 년 전에 우리 역사 가운데 일어났죠.
 
하나님이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주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우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 문화의 뒤 배경을 이용해서 여러 각도에서 말씀을 했지만 사람들이 도대체가 이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이제 첫 설교라고 하는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에 나와 있죠. 7장까지 나와 있는데 그 산상수훈을 통해서 영혼 전부터 준비하신 메시지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모셔서 당신의 입을 열어 그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첫 설교를 어떻게 해야 될까? 아마 준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입을 열어서, 첫 말씀이 뭐였습니까?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며” 첫 말씀 참 우리가 기대하죠.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선택하셔서 첫 말씀을 인간에게 설교를 했을까? 이 첫 마디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는데 천국이 저들의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왜냐하면 가난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선택해서 첫 포문을 여셨거든요. 왜냐하면 ‘가난’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당시 갈릴리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 중에 하나였습니다.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정말 무엇을 먹어야 될지, 무엇을 마셔야 될지, 그리고 무엇을 입어야 될지, 내일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고서는 하루를 연명할 수 없을 정도의 참 가난한 자들이 모인 것이 갈릴리 바닷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근데 그들에게 가난이란 단어를 택해서 말씀해 ‘푸터코스’라고 하는 이 헬라어의 가난이라고 하는 단어는 가난이라고 하는 단어 중에서 가장 로우스 가장 가난의, 가장 가난한 표현이 ‘푸토쿠스’ 라고 하는 단어예요. 가난도 여러 가지 가난이 있잖아요. 참 가난해 죄송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해요.
 
여러 가난의 표현이 있는데 이 ‘푸터코스’ 라고 하는 이 가난이라고 하는 단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산 상태예요. 그러니까는 빌로우 제로입니다. 도저히 소망이 없어 보이는 그 가난의 표현의 단어가 푸토쿠스라고 하는 단어죠. 그래서 우리가 육신적인 삶의 가난이든 여기서 말씀하시는 어떤 심령의 이 가난한 상태이든 이 푸토코스라고 하는 단어는 정말 듣기 싫은 단어였어요. 그런 상태에 있는 자들이 천국이 저일 것이다. 이해가 됩니까? 그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현재 임한 하나님의 나라이든 그건 더 힘들죠. 이 아기가 죽어서 가는 하나님의 나라이든 상관없이 너무나 어려운 말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말씀할 때 마지막 단어는 더 케이오 펀치였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핍박이란 단어를 선택했어요. 천국이 그들의 것입니다. 라고 말씀해서 도대체 누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핍박, 로마 제국 밑에서 가장 싫어하는 거 받기 싫어하는 것이 ‘핍박’이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들을 피해서 적당한 갈릴리 바닷가에 살고 있는 저들에게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대요. 그리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니라.’ 도저히 이해하기가 너무나 힘든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죠. 특별히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바로 승천하시지 않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40일 동안 사십일 동안 이 땅에 부활의 영광의 몸으로 계시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사도행전 1장 3절에 보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쳤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사도행전 1:3,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가 중요한지, 신앙의 본질인지 그리고 저들이 아직 잘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 이것을 알아야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온 심려를 다해서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말씀을 그렇다면 제자들이 좀 알아들어야 될 것 같은데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예수님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행전 1장에 보게 되면 그들의 마지막 질문이 너무나 주님 보신 한심한 질문이었어요.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가 바로 이때이이니까?’ 그 말의 의지는 뭐예요? 더 이상 고생하기 싫다. 라는 것이죠. 주님이 이 땅에 왕이 되어 주셔서 로마 제국을 뒤집어엎으시고 나에게 한 자리, 자기한테 한 자리 먹고 사는 것 더 이상 내일을 염려하지 않도록 해주시고, 그리고 핍박이 더 이상 없는 그러한 유토피아와 같은 그 날을 지금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고통 끝나고, 고난 끝나고, 지금 서부터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는 겁니까? 아 ‘그건 너희가 알바가 아니다.’ 이해를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 주소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절망이라고 하는 이 ‘고난’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환영하지가 않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때로는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을 우리는 따로 따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현재의 고난이라면 빨리 내일부터는 이 고난의 모든 기도 제목들이 없어지고 어려움이 없는, 절망이 아닌 희망의 삶을 빨리 살기를 우리는 원하는 것이죠. 그 제자들도 현재의 고난 따로, 미래의 소원과 희망 따로, 저희들이 보았기 때문에 그렇다면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죠. 현재의 고난을 복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메시지가 그런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가 않죠.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그 복음의 완성이라고 하는 그것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십자가의 고난 따로, 부활의 영광 따로,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같이 함께 보는 것이 부활의 영광인 것입니다. 이것은 함께 함께 우리가 봐야 되는 중요한 실체인 것이죠.
 
그래서 바울도 우리가 루스드라에서 사도행전을 보게 되면 돌에 맞아 거의 죽어 죽을 뻔한 상황 가운데에 다시 일어나게 되죠. 둘러싼 제자들 앞에서 다시 옷을 털고, 그 피투성이 된 몸을 가지고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들이 지금 보는 이 고난 자체가 고난이 아니야. 무슨 믿음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야.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야. 고난을 피하라는 말을 절대로 사도 바울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왜? 나와 같이 고난을 받으라. 라고 얘기를 했어요. 왜냐하면 고난과 영광은 함께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도바울은 항상 우리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옥중에 있어도 모든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절망으로 보지 않고 주님 안에서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그 영광의 실체를 날마다의 삶 가운데에 그는 적용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여러분, 너무 어려운 말이죠? 저도 끊임없이 적용해야 되는 너무나 어려운 말씀이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나온 거예요. 저를 위한 설교예요. 그렇지 않으면 범이 힘드니까.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오늘 본문 말씀은 처음에 우리가 들으면 참 좋은 말씀 같지만 너무나 이해하기가 힘든 그런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11절 이 말씀은 유명한 말씀이고 정말 구약에서의 요절 같은 말씀이라고 말씀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만 요절과 같은 이 말씀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29장 11절 이 말씀 우리 한 번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29:11,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 아 재앙이 아니라 너희에게 희망과 미래를 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참 믿기가 힘든 말씀입니다. 왜냐면은 구약 전체 가운데 가장 어두웠던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거든요. 예레미야 선지자가 사역하던 이 시기는요 북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남 유다 총체적으로 가장 어둡고 절망스러운 시간이 모든 색깔이 다 다 틀렸어요. 다 어둠 흑암의 색깔이었어요. 소망이라고 하는 빛은 단 한 줄기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가 바로 이런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말을 합니다. 52장에 걸친 이 긴 예언서 52장을 눈물로서 쓴 것도 모자라 ‘예레미야 애가’라고 하는 ‘돌레멘트’ 눈물이거든요. 오 하나님이여, 주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모든 현실들을 보면서요. 눈물로 다섯 장을 더 써야 되는 여러분 그 에레미야 선지자의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었어요. 이분의 성정 자체가 갱년기기 때문에 눈물이 막 나오는 이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당시 모든 이스라엘 상황 자체가 그에게도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절망이다. 그런 시기였어요. 북 이스라엘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앗수르에 의해가지고 멸망했어요.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예언을 해도 안 된다. 그들은 뭐 설 자리도 없어요. 사마리아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올 수도 없고 열 지파들은 완전히 방황한 비참한 생활을 합니다. 저 봐라 예리미아는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것을 거울로 삼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된다. 라고 이야기를 아무리 얘기를 해도, 남 유다 백성 가운데 그 말을 듣고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예레미야서를 쭉 보게 되면은 정말 예레미야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롱당하죠. 오히려 핍박받죠. 진리를 말하는 것 때문에 때는 땅에 구덩이를 파가지고 몸에 들어가서 얼굴만 내놓고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짓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전하고 하나님을 전하기 싫어요. 그래도 전해야 되고, 그러한,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매말되기 전에 그의 눈으로 직접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가지고 완전히 망하게 되는 그것까지도 보게 됩니다.
 
무너져 내린 예루살렘 도성 완전히 파괴된 예루살렘 성벽, 모두 타버린 하나님의 영광이 마치 떠난 것과 같은 예루살렘 성전, 그다음 세대의 유일한 소망이었던 다니엘을 비롯해서 많은, 많은 젊은이들이 다 포로로 잡혀갔어요. 먹을 것도 없어요. 기근이 왔어요. 예레미야서를 보게 되면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그 부녀들이 자식들을 삶아 잡아먹을 정도로, 도대체 이것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삶의 모습인가 할 정도로, 그 바닥이라고 하는 것은 부터 푸터코스, 완전히 파산된 상황이에요. 아니 이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지금 뭐라고 말씀하세요?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어떻게 하면을 할 수 있냐고요 재앙인데 절망인데 이렇게 지금 당하고 있는데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데 재앙이 아니라고요? 미래의 희망이라고요? 너무 힘들죠. 말씀 어려운 말씀이에요. 사랑의 교회는 듣는 귀가 굉장히 높다고 제가 알고 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하면은 절망을 나중에 이루어지는 희망을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절망 자체에서 우리가 어떻게 지금 내가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저는 크게 두 가지로,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잘 적용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누구의 말 누구의 말에 절대적으로 귀를 기울여 듣느냐? 가 우리의 미래 이미 결정이 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래가 이미 결정이 된다. 라고 하는 것이고 오늘 본문 말씀을 한번 자세히 보십시오.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게 되면 감춰져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강조하는 말씀이 이 가운데에 나타납니다. 보실까요? 우리 10절을 보게 되면 이렇게 시작하죠.
 
*예레미야 29:10,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할렐루야!11절에 보게 되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할렐루야 14절에 보게 되니까 보니까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절 마지막 부분에도 보니까는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말씀이라고요? 누구의 말씀이라고요? 여호와의 말씀, 여호와의 말씀이다. 너희들 믿지 않지? 재앙으로 생각하지 소망이 없다. 라고 생각하지 ‘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극적인 절망의 시간을 만나게 되면 하루살이와 메뚜기와 같이 내 일에 대해서 희망을 걸 수가 없죠. 내년에 대해서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 쉽게 좌절하고 두 손을 우리 떨어뜨립니다.
 
우리의 나약함이죠. 그러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러면 안 된다 그러지 말라고 왜냐하면 내가 너의 향한 나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음성이 지금 이 시간 저의 영혼 가운데에, 여러분의 영혼 가운데에 믿음으로 들리게 되면 여러분의 미래는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의 영광은 이미 여러분들의 것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지금 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어떤 분이실까요? 스스로 존재하신 하나님, 창세전부터 계시고, 영혼 끝까지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또한 천 년이 없는 거와 같은 하루와 같은, 그런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검은 머리 흰 머리 다 아세요? 몇 개인지, 매년마다 늘어가는 주름살이 얼마인지, 다 수도 없이 잠 못 이루시는 밤 가운데. 수만 가지 생각 속에서 염려하시고, 근심하시는 그 모든 것 작은 신음으로 탄식하며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하기 전에 우리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그냥 위로의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절대로, 두려워 말라 걱정 말라 그렇게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인지 아세요? 약속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그 한 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를 절망 가운데에 지금 선포하시고 계시는 것이거든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여우가 말씀하시는 여호와께서 어떤 말씀을 약속 가운데에 성취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오늘 10절 말씀이 이 보석과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참여하 약속이에요.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널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신 약속 성진이 이루어졌습니까? 안 이루어졌습니까? 다 이루어졌죠. 지금 이 상황 속에서는 이루어질까“ 라고 의심할 수 있지만은 우리가 시간을 지나가 보면 모든 성경의 역사들은 다 약속하셨고 성취하셨고 약속하셨고 성취하셨고 약속하셨고 성취하셨고, 요한 계시록까지 그 패턴으로 가는 것이죠. 이 말씀을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기록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 같아요. 다른 차원의 눈물인 것이죠. 하나님 하나님이 이미 칠십년이라고 하는 딱 시간을 두고 계셨었군요. 이 가운데 하나님의 깊은 뜻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저와 우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으셨군요. 아 70년까지군요.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그 어렵고 힘든 가운데 이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소망이 되고, 희망이 된 것이죠.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걸로 믿고 살아가는 그 믿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어떻게 보면 다니엘도 어떻게 그 상황에서 이겨낼 수 있었을까 뜻을 정하고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 바벨론 강가에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 에스겔 선지자도 어떻게, 어떻게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었을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절망을, 절망으로 본 것이 아니라 70년이 참여한 반드시 성취하실 그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미 성취된 것으로 믿고 저희들은 살아간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그대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소망이 없어, 아무리 기도해도 안 돼 이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당신 희망 없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끊임없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약속하시고 성취하시기를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 미국에서 1.5세로 14살 때 미국으로 들어가서 이민으로 들어가 살면서 참 어렵게 살았어요. 너무너무 가난하게 힘들게 살았어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정말 그랬어요. 밤 8시부터 형 따라 2시까지 방청소 항상 다녔고 저는 이제 중학교 2학년 되면서 3월에 학교 가지 마 왜냐하면 6월에도 미국 가니까 그래서 안 갔어요. 안 갔다가 이렇게 애들이랑 놀다가 미국에서 9월 달이면 2학년으로 들어갔는데 부모님이 교육에 관심이 없으셔가지고 제가 3학년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니까는 영어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중학교 3학년 책을 받았더니 이거 완전 외계인 글씨예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게 제가 그때 한국에서 배운 영어는 몇 마디밖에 없었는데 ‘아임 어 보이’ 라 근데 이거는 미친 소년도 그렇게 영어를 안 하거든요. 어떤 미친 소년의 아임 어 보이’로 그런 영어가 없어요. 그런 영어 배우고 왔거든요. 써 먹을 수도 없고, 아무튼 그런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 저희 아버님이 참 훌륭하신 목사님이셨어요. 50세에 일찍 돌아가셨어요. 너무나 훌륭하신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몸을 안 돌보시고, 저희 아버님은 실은 이북 분 출신이신데,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교역자님이 있었어요. 당시는 항상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순교하기를 굉장히 로망 하셨어요. 주기철 목사님 같이 있고, 주기철 목사님 같이 성령을 항상 가슴에 다 다니시고 그래서 이게 잡혀 들어가면 너무나 행복하셨대요. 나도 순교하나 보다. 그래서 온갖 고문을 참으려고 노력하는데, 고문을 하긴 하는데, 급이 다르니까 금세 내보내더래요. 금세 내보내고, 그래가지고 저희 아버님이 상처를 받았어요. 다른 것이 아니라, 순교의, 순교의 그릇은 따로 있구나. 그래가지고 그것을 인정하셨고, 대신에 하나님, 저는 설교하다가 그러면 강단에서 데리고 가서 그래서 그대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어요.,저는 설교 강단을 그래서 나름 순교로 생각한 아버님이 어저께 우리 고 오상진 목사님의 그 영정을 보면서, 참 우리 옛날 어르신 목사님들은 이렇게 참 훌륭하다.
 
그런 마음 저희 아버지는 너무나 훌륭하셔서 청빈하셔서 돌아가시면서 남겨놓은 거 숟가락 하나 젓가락 두 개, 어머님 그다음부터 공장 나가시고 살 집이 없어져가지고요. 저 형들이 알아서 살았어야 되고 그다음에 저와 누님들과 어머님은 어디서 살았냐면 3년 동안 청소년 시기에 잘 사는 친구 집 뒤에 그라지 자동차 주차하는 그라지에서 3년 동안 살았어요. 안 믿어지시죠? 그라쥐은 자동차가 사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에요. 3년 동안 거기서 살았다니까요. 저만큼 고생한 사람 없어요. 정말로 예 생긴 게 고생 안 한 것처럼 생겨서 그렇지 고생 많이 했어요. 여러분 정말로 고생 안 한 것도 생긴 것은 다른 이 우리 어머님 쪽을 닮아서 그래요. 어머님 쪽이 다 귀티 나게 생겼어요. 좀 이렇게 외삼촌들 보면 다 의사들이에요. 황해도 다 의사들이고 보면 홍콩 무비스다 같다. 뭔가 있어 보이고 그쪽을 제가 조금 닮았어요. 그러다가 하나님이 저를 만나주셨어요.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못된 모태 신앙에서 거듭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보는 은혜를 주셨어요.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태 신앙이라서 지식도 많이 나름대로 성경 기준에 1등 놓지 않기 위해서 알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 다 믿었어요. 홍해 가르는 것 정말 믿었고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 다 믿었고 부활하신 것 다 믿었어요. 한 가지만 안 믿었어요. 말씀이 꿀 송이보다 달다는 거 그건 제가 안 믿었어요. 말이 안 돼요. 그래서 그거는 안 믿었거든요. 근데 정말로 거듭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꿀 속에 같이 단 거예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2년 동안 그 말씀을 아침, 저녁 보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내가 이런 죄를 졌군요. 빨간 줄을 긋고 회개를 했어요. 그다음에 이 말은 너무나 좋습니다. 이렇게 살게 해주세요. 약속의 말씀 파란 줄을 긋고, 그렇게 제가 기도하면서 내 삶을 축복하면서 이렇게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아침에 어느 날 아침에 하나님 말씀을 또 묵상하는데 갑자기 어느 한 구절이 이렇게 올라오는 것과 같아요.
 
뚜리디, 알아들으시죠? 오정현 목사님 3d라고 말씀하시는데 뚜리디, 뚜리디, 올라오는 말씀인데 이게 저는 장로교 목사 아들이기 때문에 저 신비한 거 많이 안 믿었는데, 정말 그래요. 아무리 눈을 뒤져도 똑같이 올라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의 감동이 주신 말씀이 이 말 먹어라. 내가 니 삶을 향한 내 약속의 말이다. 가진 것 아무것도 없는 일 1,5세, 가난뱅이 몸도 없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 먹으라는 거예요. 근데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이었냐면 창세기 12장 3절 말씀이었어요.
 
*창세기 12:3,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저한테 잘하세요. 그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 그러면 저는 저주받은 목사죠. 그 다음에 나오는 이 약속의 말씀이 너무나 기가 막혔고 도저 제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어요. 땅의 모든 족속이 땅의 모든 족속의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저는 그 당시 때 이 말씀이 내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먹으라고 하시니까 마음에 담고 안 먹어도 혼자 볼 거 없잖아요. 먹었어요. 정말로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인 줄 알았을까 그리고 그 약속을 믿고 선포했어요. 그다음부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가시는데, 계단과 같이 여러 가시는데 ‘케이스 m’이라고 하는 학원 단체를 만들게 하시고 그 단체를 통해가지고 12개국의 나라들을 단기 선교로 갈 수 있는 은혜를 80년도 중반부터 허락해 주셔서 사람에게 와서 사역하면서 얼마나 열방을 나중에 축복하기 위해서 복을 받고 복 받고 복을 받고 복을 받고 복을 받고 복을 받았어요. 너무나 귀한 글로벌 리더들 다 만나게 해주시고 통역도 하게 하고 어머니 큰 은혜를 주셨어요. 그래가지고 인도네시아까지 저를 보냈잖아요. 아시나요? 인도네시아 제가 한 6년 7년 사역하면서 거의 선교적 교회에서 선교 많이 하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어요. 이용규 선교사님 그 기적과 같은 제 아이유 작가는 인터넷 유니버스는 저랑 같이 함께 시작하도록 은혜를 주셨고, 삼진 교회 세우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일들을 너무나 많이 행하셨어요. 이 무슬림 중에서 가장 강성 부족 중에 하나, 국제 선교에서 얘기하는 미전도 종족 중에 하나가 ‘순다족’이에요. 인도의 순다족 정말 자존심 강한 분들인데 가사를 돕는 식모 자매가 순다족 무슬림이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불쌍하죠. 교회도 가서 잘해야 되고 집에 와서 더 잘해야 되고 기독교를 믿는 목사는 어떻게 사나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하나님이 참 피곤하게 역사하시잖아요. 그래도 난 끝까지 모든 족속에 노래는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 이래서 이런 거구나 그래가지고 그냥 잘해야 되잖아요. 나중에 너무나 좋은 열매를 주셨고 지금은 뉴욕에 가서 저 고생 엄청 합니다. 아무튼 뉴욕 가서
거기 수많은 여러 다민족들이 다 모여 있는 세계에서 ‘뉴욕’이라는 곳이 1년에 거의 5,700만에 1년 동안에 지난 23년 동안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150개국 이상의 나라 제가 있는 지 쿠윈스라고 하는 지역은 그래서 다민족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에요. 우리 교회도 그래서 다민족을 위해서 열어놓고 많은 사역들을 합니다. 모든 난민 분들을 위해서도 사역하고 몽골, 그다음에 뭐 여러 여러 나라들 얼마 전에는 땅 끝이라고 하는 이 북한 탈 북민 목회자들, 처음으로 뉴욕에 오셔가지고 우리가 열심히 섬기고 간증 또 집회하면서 큰 은혜 받고 또 그것이 좋다고 그래가지고 또 뉴욕장로교회로 또 오세요. 그래가지고 이번에 탈 북민 신학생들, 와서 간증하고 은혜를 같이 함께 나누고 섬길 수 있고 이 모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 가운데에 제가 있는 것이죠. 근데 너무 힘들어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각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거든요. 복음이 죽음과 부활의 하나이듯이 무슨 말일까요? 저는 이 말씀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움직여주세요. 죽을 때까지 움직일 거예요. 무엇을 이루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고맙다.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래에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들과 같이 살 수 있나 봐라. 저는 그 영광의 자리에 이미 간사람 같이 살아요. 현실은 너무 힘들어요. 저 미치지 않았거든요.
 
여러분 하나님은 그런 분이세요. 작은 일서부터 큰일까지 저는 말씀을 이제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고난의 칠십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했을까?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이 저들을 만나고 싶어서 허락하신 거예요. 저들의 인생 가운데에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 인생을 창세전부터 아신 하나님, 손바닥에 새긴 하나님의 선택된 자녀들, 저와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나를 네가 만나야, 네 인생이 내가 원하는 길로 갈 수가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겪게 된 아픔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계속해서 피하고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저희들이 예배 가운데도 하나님이 없어요. 만날 수가 없어 기도에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 이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백성들이 다시 나를 깊이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70년이라고 하는 이 시간을 하나님이 특별하게 디자인하신 것이죠. 70, 완벽한 하나님, 온전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그 시간을 통해서 만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죠. 저는 말씀을 이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12절, 13절, 14절에 그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2-14,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할렐루야 기도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짖어 나의 얼굴을 구하도록 하기 위해서, 절망의 시간을 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너를 만날 것이다. 내가 너를 만날 것이고 나를 만나게 되면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게 뭐냐면 평안의 축복이, 평안, 재앙이 아니다. 평안이다. 나의 평안 나의 평안이다. 제자들이 여러분 십자가에 죽으신 다음에 예수님 다 절망으로 생각했어요. 문을 꼭꼭 닫고 우리도 예루살렘에 가면 잡혀주고 맞아주고 다 숨어 있었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영광의 몸으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서 처음 하신 말씀이 뭔지 아세요? 샬롬, 평안하뇨? 내 평안을 내게 주노라 성령을 받으라. 평강해졌어요. 평안은 땅 끝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을 떠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저희들은 떠났죠. 그러니까 마음에 평안이 없는 곳이죠. 하나님은 ‘너희들은 나를 만나야 돼. 나를 만나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고,’ 내가 너와 함께해야 너희들은 세상에 줄 수 없는 평안으로, 절망을 고난을, 고통을,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나와 함께 그 평안을 가지고 말씀을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므로 이 땅에서 우리의 날마다의 삶이 죽어서 천국 가는 그 신앙을 뛰어넘어서, 이미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의 신앙으로 십자가의 죽음의 고난과 부활의 그 영광이 내 삶 가운데 복음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그러한 평안이 절대적으로 다스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나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지금의 절망이 미래의 희망이 되는 삶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이 은혜를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절망의 상황 속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는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절대 소망을 가진 믿음의 길로 걸어가며 인생의 모든 길을 주님께 전적으로 위탁하여서 간절한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여야 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 기가 막힌 절망, 모든 삶,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금의 미래의 희망과 믿음과 평안을 다스리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한다. 사랑하는 아버님을 먼저 천국에 보내고 슬픔에 잠겨 있는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모든 유가족 가운데, 모든 장례 절차 가운데 절대적인 하늘의 평안으로 하나님 붙들어 주시길 기도하자.
--유다의 바벨론 포로 기간은 70년으로, 이는 바벨론의 지배력이 3대 동안 계속되리라는 말씀의 성취였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주전 612년)에서 바벨론 멸망까지는 73년이며 느부갓네살이 즉위하던 해(주전 605년)부터 바벨론 멸망까지는 66년이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구원이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그 구원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의뢰할 수 있다. '찾으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우리가 좌우명으로 삼을 말씀이 여기에 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라고 하신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3년 7월 30일)
제목: "사랑의 우선순위(優先順位)
말씀: 마태복음 22:37-40, 고린도전서 13:13
대표기도: 신성식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영광찬양대(1부)  
설교자: 김상복 목사님-초빙

(할렐루야 교회, 전 세계복음주의연맹회장)
ㅡㅡㅡㅡㅡ
 
*마태복음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린도전서 13:13,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ㅡㅡㅡㅡㅡ


▶사랑의 교회의 오 목사님께서 다시 이렇게 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사랑의 교회에 와서 무슨 사랑에 대한 설교를 하냐고 하겠지만 사랑의 교회에 왔기 때문에 제가 교회에 사랑의 설교를 하려고 한다. 사랑의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제자훈련으로 앞장 선 교회로 잘 알려져 있고, 대표적인 건물만 하더라도 한국의 기독교 건축의 대표적이고 소중한 건물이다. 또 사랑의 교회는 아주 바쁜 교회이고 일을 많이 한다. 또한 이 교회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사역하는 교회이다. 열심히 사역하고 열심히 섬기다보면 사랑이 빠지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라고 교회의 구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서 사랑 얘기를 좀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그 말씀을 우리가 보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나 이것은 항상 있는 것이고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믿음이 시작이더라고요. 믿음이 믿음이라는 게 뭐냐? 믿음이라는 것은 영적인 지식,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지식은 객관적인 인포메이션이에요. 지식이라는 것은 정보다. 인포메이션이 객관적이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그 말씀 진리를 그냥 알고 있으면 그건 믿음이 아니다. 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고 이해하고 그리고 그 지식을 객관적인 지식을 주관적으로 내 것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내 것이 되기 전까지는 지식이다. 그냥 하나의 정보다. 그래서 이 신앙의 모든 것이 그렇다.
 
여러분이 이제 제가 조금 전에 말하니까 아멘 그랬어요. 그 왜 아멘! 이라고 하냐? 그거를 믿는 사람이고 그 말씀이 옳고 그게 내가 바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아멘 하는 거예요. 그래요. 그래서 하면 하는 거예요. 그냥 아무리 뭐 뭐 말로 해도 괜찮고 속으로 해도 괜찮고 괜찮아요. 말로 하나 뭘 하나 나는 지금 하시는 그 말씀을 하나님 말씀을 ‘나 자신의 것으로 믿습니다.’ 모든 믿음이 다 그래요. 성경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때까지는 그저 지식이에요.
 
지식이 믿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것이 되시길 바래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얘기가 여기 보면 하나님 사랑하라, 이웃 사랑하라, 그리고 너 자신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제 사랑의 세 가지를 얘기를 했는데 왜 이렇게 사랑하라는 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가장 위대한 계명이고 모든 계명 가운데 최고의 첫 번째 계명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둘째도 있고 근데 너 자신과 이웃과 내 자신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이 갖고 계시는 성경은 제가 보니까 1750 몇 페이지 대가 되더라고요. 제가 한번 찾아봤어요. 이 1700 메시 개의 페이지에 있는 이 책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 딱 하나가 있다는 거예요. 이 안에 복잡하고 별 얘기가 다 있죠. 다 있는데 이 전체를 성경 전체를 요약해서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이다.
 
아 저도 젊었을 때는 이 성경 읽고 공부하느라고 참 머리 아팠어요. 교회 생활은 참 복잡했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 생활이 복잡하고 힘든가?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어요. 그거 다 걱정하지 마. 성경의 초점과 요약은 사람이니라. 이 하나만 철저히 알고 이해하고 내 것으로 믿고 믿는 대로 살면 그것으로서 기독교의 신앙은 끝났다. 교회 생활을 복잡했는데 이것을 깨닫는 순간에 아이 신앙생활이 쉬워지더라고요. 교회 생활은 어려워요. 근데 신앙생활은 갑자기 쉬워졌어요. 초점이 맞추니까 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초점과 요약을 알아서 시험에 합격하면 성경이 말하는 게 뭐냐? ‘사랑’ 그럼 합격했다는 거야.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것이다. 그 한 가지로 율법을 전부 다 지킨 것이다. 제가 얼마나 편해졌는지 이제부터 나는 걱정할 게 없구나. 나는 그 교회 생활하면서 젊었을 때도 교회 다니면서 참 너무 너무 너무너무 복잡해서 어떨 때는 어떡하다가 어떡하다가 내가 예수 믿는 집에 태어나가지고 이 교상하는 거 별 생각 다 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너무 골치가 아파서 성경을 이제 을 내 동댕이치고는 나 다시 교회 안 가! 했다. 제가 고등부 회장이었거든요. 아 그런데 주일날 돼서는 또 성경 집어가지고 다시 갔어요. 아 힘들더라고요. 정말 성경 보니까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 내 마음으로 잘못한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은 살인한 것이다.
 
어떻게 안 미워하고 삽니까? 맨날 살인하고 맨날 간음하고 맨날 도둑질하고 이게 도대체 어떡하다가 내가 이렇게 예수 믿는 집에 태어나서 교회를 다니게 됐나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어느 날이 믿음이 생긴 거야. 그거 다 다 걱정하지 마. 다 내려놓고 그저 이제부터는 사랑만 해. 사랑만 하면 돼. 날 사랑하고 옆에 사람 사랑하고, 사람같이 생겼으면 사랑해라. 골라서 사랑 하려면 골치 아프다. 저 사람 좋아할까 말까 어떡할까 아이고 이쁘니까, 사랑해야 되겠네. 그런 거 고르면 힘들어요. 그래서 그저 사람하고 비슷하게 생겼으면 그냥 딴 거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잘생겼나 못생겼냐 아니면 날 좋아하냐 나빠하냐? 날 미워하냐? 그런 거 아무 상관이 없는 거 그렇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그러다 고맙게도 너도 사랑해. 너 자신도 너 자신도 사랑해. 내가 너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그래야 남을 사랑하지.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잘 되는 것도 아니야.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들만 사랑할 수 있어요.
 
뭐라 해도 어떤 때는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들 때문에 또 우리는 사랑을 못 받은 사람도 있어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몸에 맞고 자라면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제가 청소년 수련에 갔다가 한아이가 자살하려고 그런대요. 그렇다고 강사님 나를 보고 빨리 목사님 제가 좀 구해 주세요. 그래서 내가 갔어요. 어디 있냐 갔더니 화장실 안에 잠궈 놓고 들어가 있더라고. 자살하는데 왜 화장실 들어가요. 이렇게 문 열으니까 안 열어요. 그래서 계속 설득해가지고 내가 내놨더니 너 왜 그렇게 죽을려고 그랬냐? 우리 아버지가요 제가 공부를 비교적 잘 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a를 받았는데 b가 하나만 나오면 집에 가서 벽들로 매를 맞았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때렸어요. b 하나 맞았다고 그러고 자라났다는 거야. 살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아 b하나 맞고도 매 맞아야 되는 그 딸이 자살하고 싶은 심정을 이해를 할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아이는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어요. 자기를 사랑할 수 없어요. 자기를 미워해요. 왜? b를 받았기 때문에 맨날 a 받는 아이가 b를 받아놓으니까 내가 왜 a를 못 받고 왜 이번엔 b를 받았나! 싫은 거예요.
 
사랑은 사랑을 경험해보고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어요. 아 근데 이게 힘든 거죠. 저는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랐어요. 내가 잘못해서 못 받은 건 아니고, 우리 이건 형제가 아홉이었거든요. 우리 부모가 누굴 사랑합니까? 그런 내에서 학교 보내기도 바쁜데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그냥 밥 먹고 학교 다니고 그러다가 6.25가 나서 제가 평양에서 태어났는데, 6.25 때 11살에 부모를 떠나서 부모의 사랑을 받아볼 기회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살아남은 것은 부모의 사랑 때문에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살아났어요.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의 사랑 때문에 애타했지만은 부모의 사랑은 부족했어도 없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니까, 갚아버리는 거야 상실해버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사랑이 주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것이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때부터 내 가슴속은 풍성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해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아이고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사람을 사랑해 이웃사랑 해야 돼, 나를 사랑해야 돼, 그걸 명령으로 알면 부담이 돼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이 그저 하나의 객관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여러분 제가 알고 이해하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 속에 이 생기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 율법 하나 율법 전체를 지키기 위해서 한 가지만 사랑을 개발하면 되는데 이 사랑이 그 저주 되는 게 아니거든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알고, 듣고, 이해하고 믿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하나님의 사랑이 최우선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최우선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면은 그 복이 천대까지 간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보니까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킨 자에게는 천대까지 간다. 수천 대까지 대대손손이 내가 은혜를 베풀 것이다. 여러분이 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과 가족 대대손손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갚으신다. 나 한 사람의 사랑이, 한 사람의 부모가 돼서, 조상이 돼서, 내가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나 때문에 내 가족과 내 후손이 수천 대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얼마나 소중합니까? 예!! 미국에 조나산 에드워드라는 목사님이 계셨어요. 200년 전에 미국 대각성 시대의 전화로 이분은 예일 대학교 총장이었습니다. 이분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에요. 그런 분인데 그분의 후손들을 이제 조사를 해봤어요. 사백 명을 조사했더니 그 400명 속에 어떤 사람들이 태어났나? 그 후손들이 200년 동안에, 아버지하고 외할아버지가 목사님이었어요. 이분은 대학교 총장이었고 그런데 이분 후손들 가운데 대학교 총장이 14명이 나왔답니다.
 
대학교 교수가 100명이 나오고 변호사, 판사가 100명, 의사가 60명 나머지는 유명한 작가들 신문사 편집인들 경제계 지도자들, 곳곳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그런 분들이 이 후손에서 나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똑같은 시대에 뉴욕에 즉수라고 하는 죄수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후손들 1200명을 조사해 보니까, 사백 명이 자살했대요. 삼백여명이 거지가 됐답니다. 거짓 생활을 평생 했대요. 130명이 죄수가 됐고, 60명이 도둑이 됐고, 소매치기가 일곱 명이에요. 살인자가 2명이 20% 정도의 사람들이 절반이 감옥에 갔다 왔답니다. 어떻게? 똑같은 시대에 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악한 사람이 되었었는데 그 결과가 그 한 사람 때문에 후손들이 이렇게 영향이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사랑의 교회 교회들이지만 여러분이 사람의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나와 내 가정과 내 후손들이 수천 대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그 기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럼 왜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더라고요.
 
너무 이유가 많아요. 이 사랑에 대한 걸 제가 창세기부터 요한이 사랑이 교회에 온다고 그래서 좀 잘 공부하려고 사랑에 대해서 성경을 창세기 부서 요한계시록 쫙 봤더니 6백8십 한 절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681절을 다 하지 않겠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만 요약해서 말씀드린
 
첫째는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작품입니다.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작품인 데도요. 경쟁을 뚫고 들어왔어요. 우리 아버지에 정자가 10억 개가 있었어요. 십억 개의 정자가 있었는데 그 10억 개의 정자 가운데 다 죽고, 나만 살았다. 십억 대 일 여러분의 존재는 십억 대 일의 경제를 뚫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해서 특별히 하나님 담도록 만들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하나님의 작품인 것을 감사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는 것은 하나님의 dna를 받았다는 거, 여러분 대부분 부모 같이 보이는데 앞으로 뭐 부모 될 사람도 있겠지만, 부모는요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재주가 없어요. 어쩔 수 없습니다. 본능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때때로 자식들은 부모가 나를 사랑하나 의심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부모에게는 그런 의심이 없어요. 아무리 내 자식이 못 돼도, 그 자식을 부모는 사랑합니다. 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자식은 부모의 dna를 받았기 때문에, 부모의 형상대로 부모의 dna를 받았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과 또 특별히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아요. 본능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사실 저도 보니까요 자식 사랑은 훨씬 더 쉽더라고요. 본능이에요. 근데 부모와 부모 두 분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dna가 섞여 있지 않아요. 완전히 다른 예네요. 그래서 결혼한다면 의지적인 사랑이 의지적인 삶 이런 악물로 사랑하는 거예요. 아 그렇습니다. 많이들 체험한 것 같으네요. ㅋㅋㅋ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어떤 모습이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잘못을, 잘못을 했더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고백하기 전에 하나님 벌써 알고 있었어요.
 
우리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우리에게 죄 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죄 성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도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감격하는 거죠. 감사합니다. 죄를 이렇게 사랑해 주셔서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걸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에베소서 이야기 합니다. 이 걸 작품으로 만들었다면 이것은 제일 잘한 분인데 사도 바울과 다윗에요.
 
다윗은 시편 139편 4절에 이렇게 말했어요.
*시편 139편 4,
4 내가 주께 감사 하옴은 나를 지기지우심이 심히 기묘함이라.
-옛날 성경에는 신묘막측(神妙莫測) 함이라고 처음에 무슨 말인지 잘 몰랐어요. 알고 봤더니 신기하고 기가 막히게 우리를 창조했다. 네 영혼히 이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다윗이 그랬어요. 여러분도 묘막측(神妙莫測)하게, 신기하고 놀랍게 창조한 여러분 자신을 볼 때, 자신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이렇게도 신기하게 만들어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하신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격해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요. 그런가 하면은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그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 전지전능하신 그분이 내가 하나님이라. 이겁니다. 나의 하나님 레위기에 보니까요. 23번이나 말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안 믿을까 봐 너의 하나님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야. 안 믿을까 봐 안 믿으니까, 23번이나 신명기 한 권에 23번이나 그게 반복했더라고요.
 
여러분 그것이 지식이 아니고 여러분 자신의 하나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군요. 나의 하늘 나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나를 걸 작품으로 만드신 하나님이시군요. 여러분 가슴속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알면 알수록 깊은 감동과 감화와 열정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그런데 또 우리의 가치에 대해서도 말했어요. 어떤 때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어떤 때는 우린 또 우리 자신을 싫어할 때도 있어요. 어느 한 해 제가 신문에 보니까 서울대학교 입학생 신입생 가운데 95퍼센트가 열등감이 있다는 거예요. 서울 대학생이면 열등함이 없을 것 같은데 95%가 있다니까요. 왜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거죠 자신이 없어요.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 한 사람은 온 세상을 다다 한 것보다 더 소중하다. 더 귀하다 더 비싸다. 예수님의 말씀이에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일이 있냐? 그만큼 여러분 한 사람이 소중하고 귀하고 아주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몰랐을 때는 내가 나 자신의 가치를 생각해도 늘 부끄럽고 부족하고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야. 너는 전 세계 우주 만물보다 너 한 사람이 더 중요하고 더 소중하고 더 가치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자존심 자존감이 솟아오르길 바랍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제는요 이제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하신 일을 볼 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다음에 보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어.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깨달을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우리 마음이 감격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의무감이 아니에요. 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면 뭐라고 그럽니까?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존재감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너는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내가 너를 사랑하느니라. 또 보니까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알면 알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설레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여러분은 아직도 감격 안 했어요? 또 뭐라고 그럽니까? 너는 내 눈동자 같다. 너를 건드리는 사람은 내 눈동자를 건드리는 거야. 가만 안 있어. 가만 안 너 건드리는 사람은 내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야. 우리는 너무너무 정교해서 예수님 하나님의 눈동자 같다는 거예요.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겠다고 널 건드린 자는 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다 참 놀랍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 됐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겠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리라. 와 나한테 함부로 말하면 큰일 나겠네. 사람이 나를 미워하고 뭐라고 욕 한 마디 하면 아이고 저 사람 큰일 났네 나한테 저렇게 말하더니 저 사람 큰일 났네 미워하는 게 아니라 불쌍한 거예요. 나를 저주하는 사람, 나한테 욕하는 사람, 나한테 나쁜 말 하는 사람은 불쌍한 거예요. 아이고, 저 큰일 났네. 저 사람 어떡하려고 저렇게 나한테 좋지 않게 말하지.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겠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직접 저주하리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에요.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우리 속에서 그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막 솟구쳐 오르죠. 사랑하라는 것이 명령이 아니에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서 사랑을 감동시키고, 사랑을 경험하게 해서 사랑을 깨달아서 그걸 믿게 해서 드디어 내 가슴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나타나는 거죠. 그런 우리를 우리가 본래 죄인인데 죄인을 구원하셔서 의로운 자를 만들어주시고 영광스러운 자로 만들어졌다 그럽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보니까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됐다.
 
*로마서 3:24,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죄가 있는데 없다고 인정받은 영원히 죄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서 우리를 덮어서 의롭다. 영광스러운 자로 만들었다. 아 참 지식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내 것입니다. 예레미아 31장 3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제가 이 제일 좋아하는 생명 구절 가운데 하나인데 내가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느니라.
 
*예레미야 31:3,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하나님의 사랑은 방해받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나를 사는데 내가 어떡합니까? 사랑에 굴복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길밖에는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 여러분과 저의 것을 오늘도 분명히 여러분의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어야 됩니다. 믿지 않으면 객관적인 지식에 불과해요. 믿을 때 그 속에서 감격이 일어납니다. 사랑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런데 그 사랑도 요한복음에 보니까 요한일서에 보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느니라.” 문제는 우리가 몰랐던 거죠. 몰랐어요. 지식이 없었어요. 정보가 없었어요. 근데 어느 날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정보를 알게 되는데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쪽에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나를 찾기 위해서 찾을 때까지 찾아다녔다. 쫓아가서, 쫓아가서 행복할 때까지 쫓아다녔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려고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됐고, 하나님의 우리보다도 하나님이 먼저 사랑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알게 된 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었습니다. 근데 그 사랑의 증거가 있어야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증거마저도 보여주셨어요. 그 증거가 어디 있냐? 로마서 5장 10절에 보니까
 
*로마서 5:10,
10 아직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죄 성이 있고 범죄 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였느니라.
 
-증거를 보였어요. 얼마나, 얼마나 사랑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어떻게 이렇게까지 살아갈 수 있나? 게다가 하나님 우리를 세상 끝날까지 사랑하겠다고 그래요. 이사야 46장에 보니까 내가 너를 품을 것이라.
 
*이사야 46:4,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내가 너희를 창조하였으니 어떻게 안 사랑합니까? 내 자식인데 어떻게 안 사랑합니까? 내가 너희를 품고 다니겠고 안고 다니겠고 또 구원하여 주겠다. 근데 오늘 이 성경부들 가운데 제가 좋아하는 게 너희가 늙어도 그렇게 하겠다고 아 얼마나 고마운지 얼마나 여러분 여러분들 조금만 기다려 봐요. 너희를 나와 누구를 견주겠느냐 누가 나와 같겠느냐?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는 분은 세상에 없고, 유일한 분인데 여러분은 여러분을 이렇게까지 끝까지, 끝 날까지, 세상 끝 날까지, 여러분이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천국에서 영원히, 영원히 여러분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를 거룩한 제사장, 왕과 같은 제사장, 복음의 일꾼을 삼아주셨다고, 하 이런 사랑을 입혀서 우리를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의 일꾼을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올립니다. 그러고 나서 너 자신 사랑해라. 훨씬 쉬워진 거예요.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내가 얼마나 종기하고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가치 있고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존재인지를 알게 되니까 사랑이 쉬워진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그런 존재가 나는 늘 나에게 불만스럽고, 내가 어쩌고, 아 내가 저거 한 3센치만 더 컸으면 멋질 텐데 맨날 불평불만 했는데 아 이제는 이 모습 이대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어렵지가 않아요. 야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는 난데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다니, 나 사랑하는 그 사랑이 그 사랑에 감격해서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을 사랑할 수 있는 그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면서 여러분을 인 조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웃을 사랑하라. 아 전에는 이웃 사랑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걸 다 알고 나의 존재를 알고 나니까 옆에 사람 보니까 아이고 저 사람도 나하고 똑같네 저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고 저 사람도 신기하고 그 다리 사람들이 그냥 가치가 올라가는 거예요. 사람을 볼 때마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나 같은 존재를 이렇게 위대한 존재를 만들어줬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처음에 사람같이 생겼으면 사랑하자 사람을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어디나 가도 있거든요. 내가 사랑할 대상이 어디가든지 있어요. 사람을 안 좋아하고 미워하면 불행이요. 어디 가든지 있거든요. 피할 길이 없어요. 좀 조용하게, 조용하게 있으려고 그랬는데 너무 복잡해서 너무 설악산 속에 들어 거기도 있어요. 글쎄, 여러분들이 사랑하며 살 것인지, 불평하며 미워하며 살 것인지 뻔하지 않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사랑 꽃이 생겼으면 사랑하면 어디나 있으니까 오늘 여러분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사랑의 첫 번째 우선순위가 가족입니다. 이웃의 나를 빼놓은 첫 번째 대상이 내 가족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누구든지 자기 가족, 자기 친족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니라.”
 
다 알면서 다 알면서 자기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믿는다고 그래도 믿음을 부인한 사람과 똑같다. 그리고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악하다. 어, 제가 옛날에 미국에 살다가 이 성경 구절을 보고는 놀라가지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런데 그다음에 보니까 원수도 사랑하라. 자식 사랑은 쉬워요. 저도 보니까 뭐 그냥 우리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마지막 해질 때도 아이 러브 유, 그러고 해지는데, 부부 간에는 안 그래요?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원수가 돼도 사랑하라.
 
아 우리가 피할 데가 없어요. 도망갈 데가 없어요. 그래 아예 사랑해버려야지. 원수까지 사랑하라는데 그래서 이제 우리가 전체적으로 이제 말할 때 신앙생활이 뭔가 신앙생활은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면서 사람으로 꽉 찬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사랑의 교회 여러분들, 여러분이 그 사랑의 사람이 돼서 여러분이 복을 받고 여러분의 후손이 수천 대까지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여러분과 우리가 다 되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사랑할 자격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원해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진귀한 존재라고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심에 감사하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온전하게 의지하여 우리가 더 하나님 볼 때마다, 하나님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 나를 사랑하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진실한 사랑을 해야 한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