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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7월 9일) 제목: "참된 쉼" 말씀: 마태복음 11:28-30,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권진우 부목사님 사회: 손문수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ㅡㅡㅡㅡㅡ ▶오늘 제가 기도하는 것은 혹시 우리 가운데 마음이 어두운 분 또 이렇게 어려운 분, 계시다면 진리의 빛이 비춰질 때 환하게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제가 ‘참된 쉼’에 관해서 말씀을 드릴 텐데 3년 6개월 동안 고생한 모든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이 말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자, 질문하겠습니다. 나는 참된 힘이 필요 없다. 한번 손 한번 들어보세요. 손들어보세요.
오늘 이 시대가 이 삶의 환경 자체가 우리에게 쉼을 주지 못하는 환경이다. 생태계가 그러니까 24시간 동안 sns라든지, 모든 24시간 동안 다 올 킹 하는 거예요. 다 하니까 쉼이 없어요. 데이터 연구 기관에서 뭐라고 얘기하는가 하면 앞으로 향후 3년 동안의 데이터가 지난 30년 동안의 데이터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랬어요. 기가 막힌 거죠. 아니 지난 30년 동안의 빅 데이터는 말로 다 소이 많고 우리 스트레스 받게 하고 막 그러는데 앞으로 3년 동안에 나타날 수많은 데이터들이 지난 30년 보다 더 많다. 이거 얼마나 우리에게 그 침이겠어요 생태계 자체가 우리에게 힘을 주지 못하는 그런 환경이 왔다는 것이죠. 그래서 솔로몬이 얘기한 그 고백이 진짜 고백이에요. 전도서 말씀 전도서 2장 23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전도서 2:23,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시간 계속 움직이니까 밤에도 쉬지를 못한다. 더더구나 해외에 있는 사람들 너 한국 처음이지? 그거 온 사람들이 다 깜짝 놀라는 건 대한민국은 밤이 불야성이에요. 밤이 환한 거예요. 그러니까 밤에도 쉬지를 못하는 이 민족이, 저는 그 신학교 3학년 때 목회학이라는 패스트롤 미니스트리라고 목회학을 하는데 이 많은 성도들이 수많은 스트레스와 짐이 많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짐의 강도를 스트레스의 강도를 매기는데 최고로 스트레스가 많을 때가 언젠가?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자식이 먼저 이렇게 주님을 부름 받거나 또 배우자가 이렇게 어려워지거나 먼저 이럴 때가 최고의 스트레스라는 거 5점, 5점 그런데 동일하게 결혼도 스트레스 5점이에요. 좋은 일도 똑같은 취미에요. 자식이 태어나도 스트레스가 4점인가 하고요. 그러니까 그 총량제가 예를 들어서 30점이 넘으면 사람이 나 뒤집어지는 거에요.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서 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우리가 참된 쉼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이 참된 심의 은혜가 말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여러분들에게 다가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창조의 질서가 뭐냐 하면 우리 모든 피조물들에게 힘이라는 dna를 넣어놓았어요.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니까 하나님은 사실 심히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런데도 불구하고, 창세기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어요. 맞습니까? 쉼이 필요 없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쉼에 대한 하나의 롤 모델 역할을 해주셨어요. 범죄 하기 전에,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힘이 필요했는데 타락하고, 불순종하고 타락하고 난 다음에 더 큰 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희에게 주시는 특별한 쉼을 이 말씀을 통하여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다음에 하나님이 두 가지를 주셨는데 하나님 뭘 주셨는가 할례를 행하라고 그랬어요. 두 제도를, 할례를 행해가지고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다 너희의 정체성이 뭔지를 확고하게 인식시켜줬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영적인 할례를 받은 거예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안식일 제도를 둬가지고 쉴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그런데 이 심이라는 거는 이 심이라는 것은 우리가 예를 들어서 멍 때리기를 하는 것이다. 잠을 충분히 자는 육신이 회복하는 그것만 정도가 포함되는 것이 아니에요. 이 힘에 대한 개념은 어거스틴이 그런 고백을 했죠 뭐라고 고백했냐? 참회록에다가 앞에 서두에
*“우리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쉼을 얻을 때까지는 진짜 쉴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
-동의하십니까? 주님 안에서의 쉼이 아니고서는 참된 힘이 없다. 칼이 참 기가 막힌 거죠. 왕궁에서도, 몰디브에 모이또, 모이또에 있는지, 몰디브에 있는지 모르지만 몰디브에 있어도 마음이 쉬지 못하면 영이 쉬지 못하면 주님이 주시는 힘이 아니면 힘이 없는 거에요. 왕궁, 왕궁에 그 최고로 멋있고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한 왕궁에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왕궁의 암투와 모략과 중상과 오만 거 다 있고 왕비열전, 여인들끼리 힘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힘은 하나님 안에서만 잠시 쉼을 주신다고 그랬을 때 바울 같은 경우는 바울 같은 경우는 빌립보 감옥에서 태장을 받고 그렇게 고통스러운데도 마음의 쉼이 있으니까 거기서 신라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 나 사는 동안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왕국에서 모시는데 몰디브에서도 모시는데 감옥에서도 심이 있다 이거지.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심을 주셔야 우리가 참 심이 있다는 거 우리가 생각하면서 오늘 이 심에 대한 영안을 열기를 바랍니다. 오늘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내 짐은 쉽고 가볍다고 그랬어요. 왜 다른 복음서에는 마가복음이나 누가 복음이나 요한복음에는 이 내용이 없는데 성경에 보면 정말 중요한 거나 복음서도 반복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마태복음에만 이 내용이 나와 있을까? 마태복음에만 이 쉼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으니까 제가 가만히 분석을 해보니까 누가는 의사 누가, 그다음에 요한, 우리 예수님 제자 요한 그리고 마가 이 마가나 누가나 요한에 비해서 이 마태의 삶의 환경이 참 쉼이 필요한 환경이었어요. 여러분 아시는 대로 마테는 뭐 출신이죠? 세리 출신이죠. 당시 유대인의 세리는 다른 거는 몰라도 돈 버는 거는 보장이 됐었어요. 돈은 좀 벌었는데 나중에 그의 삶에 어떤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있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매국노야. 마태는 왜 매국노야, 거기부터 시작해가지고 그 아픔과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는데 마태복음 9장에서 오늘 앞에 9장에서 예수님 만나고 난 다음에 쉽게 말하면 정체성 회복하고 난 다음에 삶이 편하고 난 다음에 마태가 갖고 있던 그 수많은 점들이 벗겨지고 완전히 새로운 참된 안식의 은혜를 받고 나니까 이런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을 또박또박 기억해가지고 이렇게 오늘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마태가 경험한 쉼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마태는 이렇게 되었는데 바로 6시 11장 30절 뒤에 그다음 뭐에? 12장이에요. 30절이 제일 마지막이고 그다음 12장 1절인데 12장에는 말하면 바리새인과 이런 친구들이 나와요. 바리새인과 유대의 지도자들인데 이 친구들은 겉으로 볼 때는 대단히 쉬고 대단한 사람들 같지만요 그 마음에 힘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마음에 쉼이 없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면 남을 비난하는 거예요. 남을 비판하는 거예요. 그렇게 쌓이지 않는 거예요. 제가 최근에 한경직 목사님하고 그다음에 조영규 목사님 설교를 내가 가끔 이렇게 한번 들어보는데요. 참 놀라운 건 뭐냐 하면요 한경직 목사님이나 조용기 목사님은 강단 위에서요. 한 번도 남을 치는 설교를 하지 비판하는 설교를 내가 들어본 적이 없어요.그게 그분의 영적으로 마음의 풍요로움과 뭐가 있어서 그런지 비를 여러분 강단 위에서 막 뭐라 그러고 그런 분들은 저분은 좀 쉼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비난은 안 하더라도 아 나 섭섭해. 며느리 볼 때마다 너무 섭섭해. 그럼 그 시어머니가 쉼이 없는 거예요. 마음에 사회 볼 때 서서면 장모도 마음에 쉼이 없는 거에요. 마음에 쉼이 없으니까. 그런데 마태는 주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가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내로야.
우리가 너무나 잘 하는 말씀, 그래서 오늘 제가 이 본문을 통하여 두 가지 힘을 말씀할 거예요. 두 가지 힘을 몇 가지 힘이 두 가지심을 첫 번째는 뭐냐 어떤 힘이냐 주어진 힘이에요.
I. 첫 번째는 주어진 쉼.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니까 주님이 주시는 힘이에요. 주님으로부터 얻어지는 힘이에요. 조금 더 나아가면 조금 더 하면 내게로 오라. 나아가기만 하면 얻는 쉼이에요. 나아가기만 하면 순전하게 마음을 순전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특별히 어떤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진 자로서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이 주시는 이 오늘 이 주님이 주시는 쉼이 여러분들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오기만 하면 주시는 쉼이에요. 이 안아주신 본당에 오늘 앞에 예배들 1부 드리면서 수많은 분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오는데, 우리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그러나 또 우리에게 주시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깜짝 놀랄 만한 보이지 않는 숨겨진 비밀이 뭐냐? 여러분들 이 예배 나오기만 해도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쉼을 주시는 것이에요. 이거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특별한 힘인 줄로 확신합니다. 이 희한한 힘을 줄을 주시는 거예요. 나오기만 하면, 그런데 나오기 만해도 시모지 그게 될까? 여러분 앞에 11장 25절에 보면요,
*마태복음 11:25,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이렇게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의 마음속에 쉼을 주실 것이다. 이걸 우리가 정말 순전하게 믿고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쉼을 주시는 것이에요. 다시 어떤 사람에게 쉼을 주신다고요? 수고하고 짐진자들이 이 수고란 말은 헬라어로 ‘코피온테스’ 라고 그러는데 이 수고하다는 말에는 노동으로 쇠약해지고 지쳐있다. 지쳐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도 마찬가지예요. 특별히 이 당시의 율법의 전통적인 굴레에서 큰 짐을 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 나오기만 하면 쉼을 주실 것이다. 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창조되었을 때에, 아담이 일을 할 때 그 일을 아담이 부담으로 하거나 억지로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아담의 기쁨으로 일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즐거워했어요. 그래서 동물들의 이름을 짓고 할 때 아담이 기뻤어요.
근데 불순종하고 범죄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그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고통과 가시와 짐과 그다음에 쉼이 없는 그런 힘든 상태가 된 거죠. 그러니 오늘 우리 여러분 마음속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했을 때 이 말씀 그대로 믿고 주님 앞에 나올 때에 불순종을 통하여 파괴된 하나님과 나와의 질서가 회복돼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가 가정의 주부로서 또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또 비즈니스 직장 모든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고통과 가시와 짐과 슬픔의 내용들이 어떻게 바뀌느냐, 기쁨과 감사와 사명과 축복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똑같이 일을 해도 옛날에 일하던 거고 짐 일하던 거 하고는 달라요. 옛날에 일할 때는 억지로 다시 와 고통과 짐과 무거운 것인데 이게 우리가 참된 힘을 주로 받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면 감사와 기쁨과 이걸 하니까 이게 일을 해도 마음이 쉬는 것이에요. 오늘 이 참된 쉼을 여러분들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불순종 때문에 생긴 고통과 가시와 짐을 다 벗겨주시고, 이 시간 사명과 기쁨과 지혜와 아이디어로 참된 심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쉼, 어떤 쉼이라고요? 주어진 쉼, 또 어떻게 해요? 나오기만 해도 주시는 쉼, 그래서 나중에 요한이 너무 큰 은혜를 받아가지고 요한 계시록 이전 성경 제일 마지막 22장 17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 하면 다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17,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오 목마른 자도 올 것 이오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아멘. 우리가 정말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주님이 주시는 참된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혈류 증 여인을 생각해 보았어요. 여러분 혈루 증을 앓은 여인은 참 비참했어요. 열두 해를 앓으면서 수많은 가산을 탕진하고 거기 보면 수많은 의사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의사들 계시면 용서하시고, 탕진하고 너무 살 길이 없어요. 근데 오늘 예수님이 지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야 내가 이 뭔가 좀 그 여인이 한 일이라고는 무슨 예수님 앞에 가서 무슨 큰 소리를 했다든지 아니면 뭐 예수님께 무슨 자신의 삶을 헌신을 희생해 드렸다든지 그런 건 전혀 없어요. 그냥 군중을 뚫고 나와 가지고 그냥 예수님께 나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에 기적과 같은 치유와 변화와 쉼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이에요. 그게 망해가는 상황이에요. 오늘 우리 마음속에 그래요 하나님 아버지 여기에 나오기만 해도 주시는 은혜가 있는 줄로 확신합니다. 순산하게 이걸 다시 앞에 25절에 이걸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것을 똑똑한 사람들에게 숨기시고, 혈루 증처럼 수고와 짐을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 나오기만 해도 주님이시면 축복 그래서 그 당시에 헬로 증인뿐만 아니라 나병환자들, 귀신 들린 자들, 자식을 잃고 고통 하는 자들, 수많은 힘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기만 해도 주시는 쉼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오길 원했다. 주님께 주님께서 나에게로 다 오라 하시는 것은 어떤 뜻인가 하면 이 짐을 나에게 다 맡기라. 그 뜻이에요. 니 혼자서 짐 지고 간다고 헤매지 말고 나한테 이 짐을 다 맡겨라. 지금 이제 여름에 여행하는 분들 많이 계실 텐데, 그 공항에 가가지고 여러분들이 도착했을 때 짐을 찾잖아요. 베이스 클레어밍 가가지고 짐을 찾는데 수화물을 찾는데 가족들과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같이 서서 짐을 찾는데 다섯 살쯤 되는 어린아이가 아버지가 한 20~30kg 되는 큰 짐 백이 있는데 그걸 보니까 우리 거네. 그러면서 그 집을 다섯 살짜리 아이가 그걸 지가 다 찾아가고 하겠다고 했잖아요. 컨베어 벨트가 올라가가지고 난리 치면 걔는 죽는 거예요. 다섯 살짜리 10kg 밖에 안 되는 애는 그걸 감당할 능력이 없는 거예요.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의 삶의 컨베어 벨트에 큰 짐들이 놓여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내 힘으로 근데 내 우리 같이 연약한 어린아이 같은 우리가 그걸 감당하려고 그러면 우리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대신 짐을 컨트롤해 주시면 해결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게로 오라 하는 것은 짐을 나에게 맡기라 그 뜻인 줄 믿습니다. 알겠죠? 이제 또 하나 29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마태복음 11:29,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이 우리에게 선명하게 선포하시는 거예요. 첫 번째 쉼은 주어진 쉼, 두 번째 쉼은 뭐냐 하면요 획득된 힘, 배우는 힘 멍에를 메고 얻는 힘 많은 분들이 첫 번째 내게로 와 주님께로 가가지고 주님이 주시는 주어진 신만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로 끝나니까 그 주어진 쉼이 오래가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 주어진 쉼을 가진 사람이 은혜를 받아가지고 멍에를 메고
II. 두 번째는 배우는 쉼.
배우는 쉼, 배우는 쉼, 획득된 쉼, 주님 안에서 우리가 성숙해가지고 얻어지는 쉼, 그걸 얻게 되면 주님이 주시는 그 쉼을 더 오래 가게하고 더 성숙하게 하고 더 깊이 있게 하고 그 쉼을 통한 생수의 강이 체험되게 하시고 그다음 맑은 샘의 물이 터뜨려지게 하시고 그걸 통하여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멍에를 메워주시고 멍에를 통하여 배우는 쉼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대답 소리가 좀 작아요 네 멍에를 주님의 멍에를 갖고 배우는 쉼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이 멍에는 코뚜레가 아니에요. 당시에 이스라엘의 밭을 좀 큰 바트를 가려면 소 두 마리가 힘 있게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소 두 마리 어깨나 목에다가 이 나무 멍에를 연결시켜놨어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이 멍에는 뭐냐 하면 주인이 좌할 때는 좌하게 하시고 주인이 우할 때는 우하게 하시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기 위하여 멍에를 소에게 씌워놓은 거예요. 멍에가 제가 그림을 그려가지고 이해를 시켜드리면 좋겠지만 설명을 해도 대체적으로 여러분들 이게 감각이 있으시죠? 소 두 마리 어깨나 목에다가 이 나무를 연결시켜가지고 소 두 마리가 제대로 밭으로 갈 수 있도록 아니 주인의 뜻에 좌우하라는 대로 주인이 가자고 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멍에를 매게 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망해를 통하여 배운다는 것이에요.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멍에를 주세요.
이 멍에는 좋은 의미에서 사명이 될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어떤 비전이 될 수도 있고 그다음에 또 이걸 이 멍에는 내가 주님의 멍에를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예를 들어서 작년에 9월 26일 날 9.26 한국 교회 섬기는 날을 했습니다. 사랑의 교회 한 교회가 그 당시에 5,596명의 우리 사역자들을 섬기는 거 그거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거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사명이요 어떻게 보면 좋은 의미에서 멍에에요.
그런데 그걸 우리가 먹여야지만 잘 감당하게 되니까 우리가 스테이도 하고 또 지방에서 오신 분들 다 집에 가정에 모시기도 하시고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해 섬기기도 하고 이렇게 다 했더니 나중에 사랑의 교회 지난 9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은혜의 여진이 남아 있는 줄로 믿습니다. 진짜 깊은 어떤 수준의 쉼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원래는 9.26이 12월 23일로 될 터인데 그 9월 그 근처는 추석이 있어가지고 12월 23일로 해가지고 한국 교회 한 7천여 명의 우리 목회자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미션과 거룩한 멍에를 주셨어요. 그래서 그때 주님이 이리 가라 이리 가고 저리 감 쳐라 이렇게 잘 할 때에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축복해 주시리라고 믿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멍에의 특징이 뭐냐 하면 멍에의 특징이 뭐냐 30절에 보니까,
*마태복음 11:30,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오늘 주님이 주신 이 명예와 짐이 여러분들에게는 주님의 은혜를 통하여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겉으로 볼 때는 무거워 보이지만 사실은 이게 있어야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 함이 생기는 것이에요. 독수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데 처음에 날개를 퍼덕거리는데 그 어린 독수리가 날개가 어마어마하게 큰 멍에에요. 큰 짐이에요. 그런데 만약에 독수리가 그 날개가 없다면 어떻게 하늘을 찬국을 나눌 수가 있겠어요? 큰 생선 고기, 바다에 들어가는데 고기에 지느러미가 있는데 지느러미가 무겁다고 그래가 지느러미를 잘라버리면 그 고기는 죽는 것이에요. 독수리가 날개가 무겁다고 그래가지고 잘라버리면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이에요. 멍에는 마치 독수리의 날개와 같고 고기의 지느러미와 똑같은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를 우선 쉽게 말하면 결혼이라는 것은 동성끼리 하는 겁니까? 남녀 간에 결혼하는 것입니까? 결혼은 동성이 아니라 남녀 간에 이것이 하나님의 멍이에요. 하나님의 법이에요. 지난주에 결혼 50주년을 맞이하는 목사님, 사모님 내외분을 내가 뵙고 대화를 할 때 참 축복이 됐어요. 50년 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그게 제 전달이 되어가고 저도 참 기쁨이 되었었어요. 근데 동성의 50주년 축하한다. 이게 있을 수 있습니까? 먹이를 넘긴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명예의 이 어떤 영역에 그게 물질이든 그게 이성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걸 테두리를 벗어나면 그때부터 재앙이 시작되는 것이야. 그때부터 잠시 사라져버리는 것이 모든 힘은커녕 인생의 재앙과 짐과 고통과 가시가 우리를 억누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명예의 그 영역 안에서 우리가 배울 때에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그래서 우리가 첫 번째 힘은 주어지는 쉼, 주님을 통해 나아가기만 해도 얻는 쉼, 두 번째 쉼은 획득된 심, 멍에를 통하여 배우는 쉼, 그랬을 때 우리에게 주시는 결과가 뭐냐 주님의 온유와 주님의 겸손을 배우게 되는 나는 온유하고 겸손을 배우라는 것이에요. 나와 있죠? 나는 마음에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여러분 삶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면요. 마음에 쉼이 있어요. 열 안 받아요. 마음이 온유하다는 말이 뭔가?
*‘온유’라는 말은 예수님의 주권 앞에 전적으로 의탁하는 자세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게 온유한 거예요. 아까 말한 대로 하나님께 컨베어벨트에 있는 짐을 다 부모에게 맡기듯이 전적으로 다 시원하게 하나도 주님께 다 맡기고 힘들 때마다 주님이 다 하시어 그게 온유한 것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겸손인데 겸손은 뭐냐?
*겸손은 자기 자아를 주장하지 않는 자세에요. 자아를 주장하는 자세 그러니까 자기 자아에 대한 자의식이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남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든 나는 이 겸손이 있는 사람은 남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든 열을 받지 않는 것이에요. 근데 자기의 자아가 펄펄 살아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의 자아를 주장하는 사람은 수많은 주의 환경 때문에 막 그 힘이 없어요. 고통이에요. 세상에 쉼이 없는 이유가 누군가가 여러분 대우 안 해주면 마음이 열 받잖아요. 여러분 인정 안 해주고 여러분 무시하고 함부로 하면 스트레스 받는 거 아니에요? 누가 나를 인정 안 해준다. 그래갖고 열 받을 때, 그거는 여러분들이 진짜 겸손의 의미가 좀 확보가 안 된 것입니다. 내가 아는 어떤 분들이 후배들의 모임에 갔어요. 후배들을 갔는데 후배들이 이분을 좀 대우를 안 한 것 같아요. 그래 열 받아가지고 씩씩거리시면서 이놈의 자식들 말이야 선배들 대접도 안 하고 막들이 열 받으셨어요. 제가 듣고 난 다음에 그런 데를 왜 갑니까? 스트레스 받을 일을 하면 안 되는데, 그런 데를 왜 가느냐고, 며느리가 나를 무시한다. 사위가 나를 무시한다.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한다. 여러분 그거 다 마음에 쉼이 없어서 그래요. 겸손은, 겸손은 뭡니까? 자기 자아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쉼이 있어야 가능한 거죠. 그래 수고와 무거운 짐들이 온유와 겸손으로 바뀌게 되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게 은혜의 선순환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에요. 은혜에 살 사람이에요. 아마 지상에서 마음의 쉼이 제일 없었던 사람 중에 하나가 모세일 거예요. 그러니까 모세가 얼마나 괴로운지, 날마다 그냥 백성들이 대모하고 막, 그러니까 모세가 열 받아서 날려났는데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3장 보면요. 그날도 출애굽기 33장 14절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3:14,
1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이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처가 뭐냐 좀 쉬어라. 아니 내가 너에게 진정한 쉼을 주겠다. 그러니까 모세는 한때 사람도 때려죽이고, 열도 받고 하는 그런 성격이었는데, 모세가 참된 쉼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쉼을 갖게 되니까 그다음에 정말 멋진 말씀 민수기 12장 3절에 다 같이 읽어요.
*민수기 12:3,
3 이 사람 오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할렐루야 그래가고 이겨낸 거예요. 이 사람 모세가 아니라, 오늘 이 예배 참석하신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은 여러분의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더 성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이게 참된 쉼이 있으면 이게 가능한 것이에요. 올리심을 통하여 여러분 워라벨이라는 말 들어봤죠? 워라벨, 워라벨이 뭐예요?
*Work –and-Life Balance. 워라벨이 아니라, Worship-and-Life Balance.워라벨이 되어야,
일하는 것과 쉬는 게 이게 이게 서로 균형이죠 그런데 우리는 워라벨이 아니라는 워십 앤드 라이프 밸런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진정한 쉼을 얻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해석이 좀 있지만 하여튼 하나님께서 21세기에 오늘 마태, 21세기에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겸손과 온유로 무장된 참 쉼이 있는 이번 여름 기간되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전에 우리가 청년 시절에 성경 구절을 가지고 그대로 찬송과 가사로 만든 소위 그걸 보고 가스폴 송, 혹은 스크립쳐 송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성경 구절을 그대로 찬송했는데 아주 쉬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 로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런 가사가 있는데 같이 우리 잘 몰라도 악보 읽고 가사가 있으니까 같이 한번 하시겠어요. 하시는 동안에 야 내가 좀 쉬어야지 너 나 좀 쉬어야 합니다. 이것만 생각하면 안 되고 내 자식도 좀 쉬어야지. 내 부모님도 좀 쉬셔야지, 우리 공동체도 좀 쉬어야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고생만 쉬어야지, 우리나라 우리 한국 사람들은 쉬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전부 다 화가 나가 있어요. 다 열 받아 있고 그냥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있고 근데 이걸 여러분 참된 쉼을 통하여 온유와 겸손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에 우리 주위가 하나님 주시는 참된 쉼으로 풍성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이 가사 그대로 한번 해보세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요약,
만성의 피로에 사는 우리에게 참 된 쉼을 주님이 주실 줄을 믿고, 복음의 능력을 통한 진정한 쉼을 얻어서 주님께만 나가면 주어진 참 쉼을 얻음을 깨달아서 멍에를 메고 배우는 쉼의 대상자가 되어 우리의 짐인 무거운 짐들이 온유와 겸손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친 자들이 그 쉼으로 다 치유 받아서 영혼의 회복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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