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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예배는 영상이 나오는 2부 예배의 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일예배(주후 2023년 3월 12일)
제목: "부흥의 실체를 경험한 사람"
말씀: 역대상 4:9~10
대표기도: 유주은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역대상 4:9~10,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 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 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ㅡㅡㅡㅡㅡㅡ
▶오늘 회중 찬송을 했는데,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그 보좌 앞에 둘러서 그 보좌 앞에 둘러서
큰 영광 돌리세 큰 영광 돌리세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그 보좌 앞에 둘러서 그 보좌 앞에 둘러서
큰 영광 돌리세 큰 영광 돌리세
저 밝고도 묘한 시온 성 향하여 가세
내 주의 찬란한 성에 찬송하며 올라가세
찬송하며 올라가세
내 눈물 다 씻고 늘 찬송 부르리.
저 임마누엘 주 앞에
저 임마누엘 주 앞에
나 영광 누리리 나 영광 누리리.
저 밝고도 묘한 시온 성 향하여 가세
주의 찬란한 성에
주의 찬란한 성에
주의 찬란한 성에
저 임마누엘 주 앞에
저 임마누엘 주 앞에
저 임마누엘 주 앞에
저 밝고도 묘한 시온 성 향하여 가세
주의 찬란한 성에 찬송하며 올라가세.~~
-제가 찬송을 준비하면서 많은 기도를 했다. 우리 성도들 오늘 이 예배당에 들어왔을 때에, 성전 뜰만 밟고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내 주의 찬란한 성에 예배하게 하여 주시길 원한다. 모두가 다 지성소를 경험하게 되길 소망한다. 생수 강을 모두가 다 체험하기를 바란다.
저는 지금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를 하는데, 국가적인 거대담론, 사회의 이런 내용들도 좀 제가 기드온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말씀을 했다. 오늘은 거대담론보다는 우리 개인적으로 필요함을 생각해서 역대상 4장에 야베스에 관한 말씀이다. 제가 볼 때에 그 사업이나 가정에 개업 할 때, 심방할 때 보면 액자가 거의 집안에 있는 말씀이다. 이 ‘야베스의 기도’의 액자는 말씀으로 것이 있는 것과 직접 체험하는 것과는 다르다. 아무리 산해진미가 있어도 먹어보아야 맛을 안다. 최고의 음식이라도 그림으로 있어보아야 잘 모른다. 내 것으로 체험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 것으로 와 닿아야 한다. 지금 신구약 모든 말씀을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확신해야 한다. 흔히 우리가 야베스의 기도를 이야기 하는데 이 야베스가 누구인가? 많은 분들이 야베스를 말할 때, 무슨 아브라함이나, 족장들이나 부잣집으로 생각하는데, 야베스는 그런 아들이 아니었다. 야베스는 오늘 본문을 보면 야베스는 앞에 3장은 찬란한 유다지파의 후손은 다윗이었다. 다윗의 계보가 나오다가 4장은 유다지파 가운데 비주류이다. 이름들을 나열하다가 갑자기 9절과 10절에 와서 어떤 인물 하나를 일방적으로 줌인 하고 클로즈 업 하듯이 그냥 이 야베스가 대단한 집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야베스를 클로즈업을 시킨 것이다. 야베스의 배경을 살펴보았더니 야베스가 오늘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부흥의 실체를 경험하는 데에 야베스가 그의 배경이 부흥의 실체를 이루는 배경은 아니었다. 야베스는 어머니가 야베스란 이름을 지을 때에 그의 이름을 수고로이 낳았다고 해서 ‘고통과 슬픔’으로 의미를 주었다. 그러니까 대단한 배경이 아니었다. 고통과 슬픔이다. 유대인은 이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했다. 그 이름의 뜻이 얼마나 소중한데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지 않는다. 야베스가 고통이다. 슬픔이다. 이렇게 지을 정도로 그가 평탄한 인생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환한 인생이 아니었고 그의 인생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 본문 9절을 보면,
*역대상 4:9,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형제들도 특별히 내 세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이름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수고로이 낳았다. ‘고통, 슬픔’, 그리고 유대 나라는 웬만하면 자기 조상이 언급되는데 심지어는 아간도 언급될 정도인데, 오늘 야베스는 아버지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성경학자들은 이 야베스의 아버지 이름 없는 것을 보니 적어도 9-10절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데에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아버지가 자랑스럽지가 않고 자식에게 무언가 물려줄 수도 없는 것 같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아버지가 무책임한 아버지였다. 물려줄 땅도 없고 유대인들은 흉년이 되면 기업의 유산이 남에게 빼앗긴 뒤에 50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오게 되는데 그런 땅도 없을 정도로 였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아버지가 이름이 없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들에게 치욕을 앗겨줄 사람인 듯하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오죽하면 자식의 이름을 너는 이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야베스’라고 지었겠는가!!
*역대상 4:10,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것을 보면 –땅도 없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형제들도 존귀하지 않고 아버지 이름도 없고 오죽하면 야베스가 기도할 때,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했다. 환난이나 근심이라는 말이 야베스 이름에 슬픔과 고통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까 안팎으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환난과 근심이 있는데 이것을 주님께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야베스라고 할 때, 보아스라고 하는 창세기 족장들처럼 그런 부자가 아니다. 그런 그가 앞에 3장에는 다윗의 영광스런 족보이고, 4장은 비주류의 족보이고, 유대인은 족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지 계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것을 정리하면 야베스는 모든 상황이 좋지 못한 조건을 가진 청년이다. 재산을 다 잃어버린 무책임한 아버지, 형제들도 대단하지 않고, 명예도 없고, 자신은 슬프다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 가운데 야베스와 동질감을 느낀 성도님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분은 어릴 때 자식을 버린 집안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집안 환경도 있을 수 있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하나도 없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진짜 억울하게도 빚을 물려받는 자녀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야베스와 같은 동질감의 성도가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분명한 음성이 있으리라 믿는다. 여기에서 이런 내용을 가진 야베스가 이 기도를 통하여 반전이 되는데, 아주 드라마틱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반전하게 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패자 부활전이 가능하게 하신다.
I. 야베스의 배경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한나의 기도가 사무엘에게 미친것처럼 그렇게 어머니가 야베스에게도 기도의 대한 인식을 시켜준 것 같다. 그러니까 10절을 보면,
*역대상 4:10a,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아뢰어 이르되~ 야베스가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히브리어로 찾아보면 적당한 기도의 뜻이 아니다. 아주 절절하게 부르짖음이다. 결사적으로 내가 부르짖음이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결사적으로 외친다는 것이다. 전력투구 해서 기도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래서 이 기도가 자기의 운명을 반전시킨 기도이다. 그의 결사적이고 절절기도이다. 그 핵심은 오늘 이 말씀을 다 외워야 한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아무도 어려운 분이 계시면 안 된다. 이렇게 결사적으로 기도하면 인생이 반전이 되는 것이다. 이게 믿음이고 기도의 능력이다.
저는 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강조하지만 기도지팡이를 어떤 분은 반대도 있지만 우리는 기도의 지팡이에 절실함이 있다. 사라의 교회 지팡이는 기도할 때, 이 지팡이로 마음의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절절하게 기도하고 결사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⓵ 내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개혁 개정판에서는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이렇게 나와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이 복은 초자연적인 복이다. 그러니까 하나님만이 주시는 참된 복이다.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다. 나 좀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다. 진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게 해달라는 것이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복에 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초자연적인 은혜의 복이라는 것을 말한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기적과 같은 은혜이다.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자체를 구하는 것이다. 좀 더 들어가면 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자각하게 해 달라. 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복이다. 나머지는 우수마발이다.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것이 복에 복을 더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나의 창조주이심을 깨닫게 되어야 한다.
⓶내 지경을 넓혀 달라.-세컨 찬스 구한다.
-이것은 야베스 같은 경우는 부모로부터 어떤 좋은 환경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명예가 실추가 되고 우리를 속박하는 것들을 돌파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주님 다 역사하여 주시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컨 찬스가 쉽지 않은 나라이다. 그런데 야베스의 기도를 말하면 지금 세컨 찬스를 얻은 것이다. 지금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옵소서. 했다. 결사적으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소서!’ 이것이 회복을 넘어 부흥인 것이다.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주여 저에게 세컨 찬스를 주시옵소서.” 하라.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⓷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주님의 손은 능력과 권능의 손, 여러분, 주의 손은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시다. 능력의 손이시다. 주의 손이 나를 구원한다는 것은 네비게이션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권능의 손으로 ‘내 인생에 네비게이션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다.
⓸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고 내 인생을 향도하시고 내 인생의 가이드가 되어 주시면 그 이후는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된다. 아마 야베스가 가정적 상황이나 배경적으로 좋지 아니었지만, 사람마다 연약하고 근심이 있는데 주님이 이 가운데 우리에게 샬롬의 평강을 주시기를 소망한다. 계속해서 절실하게 읽고 기도하여야 한다. 여러분, 우리는 토요일마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나와서 기도하지 않은가? 절실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 하면 내가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족적, 개인적으로 이렇게 해야 살 수가 있다. 많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와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하니까 응답이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야베스는 기도를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붙잡고 절박하게 외친 것이다.
II. 야베스는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기도했다.
*역대상 4:10,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 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는 것들을 허락하셨더라.’라고 하셨다. 저는 이게 너무 좋다. 고난을 뚫고 나갈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열어주신 것이다. 아니면 기대하지 않았는데 땅의 회복을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또 사람들에게 명예가 회복되어서 존경을 받았는지도 모르겠고, 여하간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그리고 앞에 순서가 왔다 갔다 하지만 앞에 2장 55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3장
*역대상 2:55,-야베스의 회복.
55 야베스에 살던 서기관 종족 곧 디랏 종족과 시므앗 종족과 수갓 종족이니 이는 다 레갑 가문의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종족이더라.
-야베스가 땅의 회복을 받아서 이름을 야베스라고 이름을 붙인다. 마치 충무로, 이순신 장군, 세종로, 등으로 그런식으로 야베스의 이름이 회복된 것이다. 이렇게 성경학자들은 대게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기도를 앞에 놓고 나도 이런 기도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부르짖어 보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듣고 응답하실 것이다. 남들이 무어라 함은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성경에 로또가 나온다. 롯,,, 하나님 없이 로또 맞으면 끝이 좋지 않다. 영적인 대 반전이 되어야 한다.
*창세기 39:2,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남들이 뭐라하는 거 필요없고 하나님이 뭐라 하시는지를 잘 보아야 한다. 신약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와 같다. 죄의 횡포가 기승부리지 않도록 도우소서. 믿음보고 2.0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여러분이나 야베스의 참된 복을 구하자!!~ 아무리 세상 적으로 좋아도 하나님의 복을 달라고 해야 한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야베스보다 더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이 십자가를 깨달았으니 피의 복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에 나온다.
*로마서 8:32,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신 그 은혜가 우리에게 진짜 복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일이 안 풀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믿음으로 도전하라. 야베스처럼 절실한 기도를 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못 박힌 기도의 손에서 나온 복이며 창에 찔리신 구세주의 옆구리로부터 나온 복이다.
*‘그리스도의 못 박힌 손으로부터 나온 복.
‘갈보리의 피 묻은 나무로부터 나온 복
‘창에 찔리신 구세주의 옆구리로 부터나온 복.
-우리는 차원이 다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평강과 희락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영적인 분별력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성도와 연합해서 놀라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놀라운 복을 주시는 것이다. 생수의 은혜의 강을 체험해야 한다. 여러분들의 삶에 영적인 반전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런 말씀을 듣고 좋게 인식이 아닌 진짜 미치도록 구하는 것과 다르다. 오목사님은 복을 받은 분이시다. 우리 교회 장로님도, 권사님들도 다 복을 받은 분들이다. 모든 성도들도 복을 받은 분들이다.
*성령께서 우리 영혼 안에서 역사하신 결과로 나오는 모든 것이 진정한 복이다.
*“대부분 성도가 진정으로 부흥을 원하지 않는다.” -찰스 피니-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이 찬송은 노이 마르크라는 독일사람이 먼 길 떠나는데 강도를 만나 무일푼 거지가 되었다. 그 가운데 어떤 목사님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고 법학을 전공했고 하나님을 의지하니 이 찬양 곡을 마음에 주셔서 작사, 작곡 했다고 한다..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요약
우리가 인생이 힘든 자리에서도 절절하고 결사적인 기도로 부르짖으면 야베스의 패자부활처럼 은혜의 축복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권능의 손으로 나에게 새로운 기회로 지경을 넓혀주시고 환난과 근심을 벗어나게 하시고 영적 대반전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십자가의 피에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역대서 기자는 그를 유다 가문의 신앙과 경건을 대표하는 인물로 부각시킨다. 그의 이름은 슬픔과 수고를 뜻한다. 하지만 그는 기도를 통해 축복된 삶을 얻게 되었다. 기도와 믿음을 통해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은 역대 상에 타나는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야베스는 그 같은 축복을 보여 준 산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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