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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9월 2일)
제목: "주의 나라 재건에 드러나지 않는 제자"
말씀: 사도행전 9:11
대표기도: 서영호 집사(남사역 2반총무)
찬양인도: 믿음의 4대 훈련생 찬양대
말씀읽기: 도지윤(초등부 제자훈련생),임주온 유년부 제자훈련생)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김대순 부목사님( Saga 아카데미 학장)
마무리기도: 오정현 담임 목사님
ㅡㅡㅡㅡㅡㅡㅡ
 
*사도행전 9:11,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ㅡㅡㅡㅡㅡㅡㅡ
 
▶김대순 부목사님( Saga 아카데미 학장)
여러분 참 잘 오셨습니다. 우리 옆에 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새벽에 참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나라를 재건하실 때 드러나서 위대하게 쓰인 인물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조연의 역할을 잘했던 인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보물 같은 제자들이 많이 있어요. 오늘 드러나지 않은 제자들을 통해서 훈련을 받는 저희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되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주눅 드는 일이 딱 한 가지가 있어요.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 얘기를 합니다. 우리 손현보 목사님도 그렇고 우리 박성기 목사님도 강단에 있을 때마다 군대 얘기하면은 남성들은 눈이 그냥 동그래서 저는 군대입구도 가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결심을 하고 제가 이번 여름에 군대에 입대하고 왔습니다. 사진을 한번 보여드릴까요? 사진, 사진이 안 나오는데 우리 방송에서 제가 이번에 미국 켄터키 주에 갔다가 캔드라슨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 가서 제가 군대에 입대한 160년 전에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남북 전쟁 때, 군인들이 입었던 옷을 제가 입고 군대에 입대를 했었습니다. 사진 안 나와요? 사진을 보시면 참 이렇게 재밌으실 건데 파란 모자에다가 제가 북군, 북쪽 군인으로서 제가 거기 서서 한번 160년 전에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인들이 어떤 느낌인가 그것을 한번 제가 한번 느껴봤습니다.
 
그 당시에 흑인들은 노예로 살면서 백인들과 분리된 삶을 살았지만, 흑인들이 군대에 입대하면은 백인 군인들과 함께 같은 방을 썼어요. 그리고 같은 훈련을 받고 전쟁을 위해서 전쟁을 위해서 싸웠던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받았을 때 색깔과 피부에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에 남북 전쟁을 위해서 쓰임 받은 그런 귀한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군대로, 사진 한번 띄워주세요.
 
예, 됐습니다. 저도 군대 갔다 왔습니다. 군인이 된다는 것은 육체적인 훈련도 있지만 특별히 사고의 변화 생각의 변화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제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먼저 소개를 드립니다. 생각에는 5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제가 자세히 설명은 못 드리고 다섯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박스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전통을 지키시는 분, 절대 움직이지 않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틀 안에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있고 무조건 동그라미는 박스 안에 있어야 된다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두 번째로는 여러분이 크로리크이라 그래서 박스 안의 생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박스 안에 박스 밖에 생각하는 거예요. 그쵸? 꼭 왜 동그란 노란 것이 박스 안에 있어야 되는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훈련받으면서 전통도 좋지만 시대에 맞게 생각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박스 안의 생각
 
세 번째로는 요새 새로 나올 겁니다. 박스를 제거하는 생각입니다. 디스트럭 핑킹이라고 그래서 2020 코로나가 터졌을 때 제가 읽은 책 가운데 미래를 창조하라 크리에이터 퓨처리라고 그래서 여기는 박스를, 박스 밖에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박스를 제거하는 겁니다. 거기 내용 가운데 특별히 창의력과 잠재력에 대한 그래프가 나와 있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능은 올라가는데 야성적 창의력은 떨어진다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 아마 예배 앉으실 때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위치에서 아마 예배드리실 거예요. 저는 이 책 2020년 읽고 2020년 이 책을 읽고 주일 예배에 올 때 예배를 드릴 때도 같은 장소에 앉으면 담임 목사님을 좋아해요. 권사님 거기에 앉아 계시고 장로님 거기에 앉아 계시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사랑의 교회 예배드릴 때마다 여러 다른 곳에서 각도에서 예배를 드려봤어요. 왼쪽 오른쪽에도 앉아보고 3층에도 앉아보고 뒤쪽에도 앉아보고 앞쪽에도 앉아보고 2층에도 앉아보고 제가 앉아보지 않은 장소가 딱 한 가지가 있어요. 우리 찬양대... 그러면 지능은 올라가고 책도 많이 읽고 경험도 많은데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화석화가 되지 않을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우리 이건희 전 회장님께서 그랬잖아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왜냐하면 시대가 너무 많이 바뀌기 때문에 이제는 틀 밖에 생각도 해야 되지만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생각을 해야 되는 그런 부분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자 훈련이 지능도 하나님 앞에서 지혜도 올라가지만 제자 훈련을 통해서 어릴 적부터 야생 창의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대가 변할수록 순장으로 장로님으로 교육자로 섬기면서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화석화되지 않도록 저도 신학교 졸업 후에 화석화되기가 너무 쉽거든요.
 
목사님 왜? 학위는 받았으니까 다 이로운 거지만 실제로는 평생 제자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이제 창의적 사고입니다. 왜? 꼭 박스해야 됩니까? 오각형도 있고 원형도 있고 육각형도 있어요. 시대가 바뀌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대에 따라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그다음에 시스템, 시스템 사고입니다. 여러분 내 모에서 동그라미로 갈 때 하나님이 극적으로 변하게 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단계를 통해서 갑니다. 시스템을 산발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실제로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을 보시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11, 한국에서는 응급 때 119를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저희들이 911을 부릅니다. 그리고 미국 912 테러 사건을 여러분이 아실 겁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어떤 한 영혼을 움직이실 때 변화하실 때 훈련을 시키실 때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파트가 많이 깨졌는데 3년의 갈릴리 시대를 지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하시고 예루살렘 시대를 엽니다. 사도 베드로를 밑에서 12 사도들이 사역을 합니다. 유대 지역에서 사역을 했고 12사대가 하는데 12사도 시대가 있었는데 전통 박스를 깨시면서, 하나님께서 바퀴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합니다. 이게 이제 디스트럭터 씽킹(Destructor Thinking) 하나님께서 새로운 것을 역사하십니다. 어떤 역사를 아시냐면 사도도 사용을 주님께 쓰임 받는 영혼들이지만 12 집사들 스데반들 빌립들 유다 아나니아, 6장, 7장, 8장, 9장에 보면 비 사도들 요사히 말하면 평신도도 새롭게 사역하고 이제 글로벌 시대로 주님께서 준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평생 처음 첫 번째로 방문한 기독교인의 집은 누구의 집이었습니까? 그리고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아마 여러분 모태 신앙은 부모님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저처럼 1세대는, 처음 기독교 집안을 방문했을 때, 그분들이 나를 어떻게 환영하고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서 인상이 기독교에 대한 인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하겠습니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평생 처음 첫 번째로 방문한 기독교인의 집은 누구의 집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거리는 한 220km가 되는데 다메섹에 살았던 유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아마 가롯 유다라에서 유다라는 이름이 이렇게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는데 성경에 보면은 유다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러 사람이 나와요. 동명이인인데 다메섹 유다, ‘유다’라는 뜻은 칭찬받는 자예요. 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 토비새로 나와서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을 들을 때 정말 칭찬받는 자가 돼야 되는데 거기 다메색 유다의 가정을 사울이 첫 번째로 방문한 기독교 가정이었어요. 사랑의 교회도 보니까 이름이 비슷한 분이 많아요. 제 이름이 김대순인데, 사랑의 교회도 김대순 어떤 성도님이 계시더라고요. 또 용어 이름이 다니엘 김인데 여러분 이 다니엘 목사님도 계시고 또 다니엘 이름을 가진 분들이 계세요.
 
세 번째 질문을 여러분 해보겠습니다.
이슬람 사원의 총책임자, 이마 이슬람의 사역자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회당에 젊은 청년 여러 명을 동원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당신의 집 문을 꽝꽝 두드린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입니까? 공산당 경찰서장이 경찰관 여러 명을 대동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숨죽이며 조용히 신앙 생활하는 당신의 집 문을 예고 없이 두드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입니까? 이 이야기는 오늘 사도행전 9장의 얘기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박해하고 핍박할 때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찾아가야 되는데 첫 번째 집이 유다의 집이었어요. 아나니야 집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초신 자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초신 자 사울에게 영향을 끼쳤던 멘토들이 여러 분이 있어요.
 
네 분 정도가 성경에 나오는데 첫 번째로는 스데반, 스데반은 순교의 삶을 사도 바울에게 보여주셨어요. 직접 두 사람이 만난 건 아니지만 그런 모델을 받았어요. 훈련생들은 저희들이 제자 훈련을 하고 주님 앞에 나가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환경은 1세기보다 낫고 우리 일본 시대나 6.25 시대보다 낫지만 적어도 순교해하는 마음으로 제자 훈련을 받아야 되겠죠 두 번째로는 아나니야, 제자였습니다. 순종의 삶 아마 가고 싶지 않은, 만나고 싶지 않은 사울을 만나서 직접 삶의 모습을 보여준 아나니야, 세 번째로는 여러분이 잘 아는 바나바, 큰형님 같은 분 가르침의 은사 또 리더십의 삶을 보여줬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입니다.
 
유다는 특별히 자기의 가정을 열어서 사도 바울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될지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며칠 3일 동안 그 집에 머물면서 제자의 삶을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훈련받은 제자 다미 유다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제자도 교훈들 제가 두 가지만 여러분에게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 가정을 여는 훈련입니다. 삶입니다.
가정을 연다는 것은 내 삶을 연다는 것이에요. 훈련받을 때 책으로 교재로 하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나의 삶을 주님 앞에 여는 겁니다. 특별히 안 믿는 분들이 찾아올 때 초신 자들이 찾아올 때, 환영 인사를 잘해야 됩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적응 안 되는 문화 중에 하나가 엘리베이터 문화예요. 엘리베이터를 타면 저희 사는 아파트도 그렇고 교회도 그런데 다들 다른 벽을 보고 계세요. 그래서 서먹서먹해서 아마 벽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엘리베이터 타면 특별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래요. 같이 인사를 합니다. 같은 시간에, 엘리베이를 타서 영광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합니다. 사랑교회에서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옆에 분에게 한번 인사를 할까요? 같은 사랑의 교회 멤버가 되어서 영광입니다.!!!~~
 
인사하시면 한 번 더 하겠습니다. 토비의 영적 동지가 되어서 영광입니다. 유다는 방 집 대문을 여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환영하는가? 저도 본래 부모님 열심히 사시고 힘들게 사셔서 가정의 웃음보다는 인상을 찌그려는 가정이 되었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가 되었어요.
 
두 번째로는 유다 집은 5성 호텔은 아니었지만 5성 서비스였어요.
호텔 좋음 집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사울이 인생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3일 동안 금식할 때 자기 집을 열어서, 사울이 주님 만날 수 있도록 금식 기도원이 되도록 자기 집을 연 사람이 유다였어요. 그리고 사울 같은 초신 자들 아니면 안 믿는 영혼들이 집을 찾아올 수 있도록 뒷문을 활짝 열었어요. 그래서
 
▷사울은 유다를 통해서 신앙 첫 걸음을 배웠습니다. 제가 두 가지만 소개할게요.
 
첫 번째는 대접하는 거, 환대하는 거, 영어로 하스피탈러리(Hospitality 친구+이방인), 다른 사람들을 맞는 얘기를 사도 바울이 성경에 보면 자기 서신 서에 여러 번 얘기를 하고 있어요. 로마서 12장 13절로 나오는데 우리가 제자로 살아갈 때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좋지만 따뜻한 커피,
 
*로마서 12:13,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누구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그리고 사도 바울도 자신도 사도행전 28장 30절 마지막에 사도행전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8:30,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여러분만 셋집에 사는 것이 아니에요. 저도 평생 선교사였기 때문에 새 집에 살았어요. 사도 바울도 로마에 가서 셋집을 살았어요. 세를 들어서 살았어요. 월세든지 전세든지 상관없어요. 주인은 하나님이시니까, 집 대문을 열어서 영접하는 거 어디서 배웠을까요? 저는 인생의 첫 단추를 꼈을 때, 유다라는 이름 없는 드러나지 않은 제자를 통해서 그 모습을 보면서 로마에 가서도 2년 동안 자기 집을 열어서 자기 셋집을 열어서, 로마, 글로벌 아카데미를 열었었어요. 이게 다 로마 글로벌 아카데미예요. 그래서 월컴Wellcome) 두 단어가 합쳐진 복합어, 환영한다는 뜻은 두 단어가 합쳐져서 된 거예요.
 
1) 아포-분리하다. 이곳에서 저쪽으로 분리하다 그런 뜻이 있고,
2) 데코마이 라는 뜻은 손을 펴서 잡아주다, 환영하다. 그런 것이에요. 훈련을 받을 때마다 저희들이 지적으로, 학적으로, 논리적으로 배우 될 부분이 있지만 정말 손을 펴서, 사도바울이 종교에 휩쓸려서 살다가 따뜻한 유다의 손을 통해서 자기 기독교 가정에 들어와서 기독교 가정이 어떻게 된 것을 배웠는 것처럼 사랑의 교회 모든 훈련생들 저도 여러분도 손을 펴서 주님 앞에 다른 영혼들을 잘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는 이 땅에 평생 새들어 살지만 여러분이 주인이라고 생각하세요. 다 주님이 주신 저희들이 세 들어 사는 겁니다. 가정을 항상 열어서 5성급 호스트가 되는 겁니다.
 
이거는 저희 집에서 지난 몇 주일마다 오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외국 자매들을 모아서 저희들 거실이에요. 집을 항상 엽니다. 저희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고 내일 저녁에도 저희들이 또 6시에 또 만나요. 만나서 그러니까 다락방인데 안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외국인들에 의해서 다락방 한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두 번째로는 작년에 하나님이 저희들 미국 서울에서 아파트에 살 수 있도록 주셨으니까
-9.26일의 한국교회 섬기는 날에 제가 두 목사님들을 초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새가 저희들이 세 부부예요. 근데 목욕실은 하나에요. 그래서 여섯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힘들었지만 저희들이 9.26 작년에 섬겼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올해도 10월 달에 23일에 있는데, 가정을 열어서 목사님들이나 이런 분들을 호스트 하시고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주셨던 그런 사람들을 저희들에게 동일하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목사님인데, 제가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 가기 전에 영주에 있는 어떠한 교회에 잠깐 지하에 탁구 치러 갔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른 것보다는 몰라서 불교 집안에 태어났다가 탁구를 쳤을 때,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어떤 친구가 친하지도 않은 실은 그 친구가 저를 생각하면서 미국 가니까 아마 기도를 많이 했나 봐요. 그리고 제가 상품이 이렇게 본인이 착하다고 생각을 해서 아마 미국 가면은 미국에는 교회도 많고, 복음 만날 기회가 많아서 아마 우리 김대순이가 가서 적어도 예수님을 만나고 장로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42년 동안 저를 찾았어요. 근데 제가 미국 가서 이름을 바꿨어요. 법적 이름은 대니얼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김대순을 찾아도 못 찾는 거예요.
 
그래서 코로나 때에 한국 왔을 때, 사람 글로벌 아카데미에 이제 부르쉐를 만들 때 이제 한국 이름을 써야 되니까 김대순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근데 하루는 전화가 이 메일이 왔어요. 옛날 친구를 찾습니다. 혹시 누구누구 어느 그 사람이 아닙니까? 딱 봤더니 이 친구예요. 이 친구가 40년 동안 기도를 많이 했어요.
 
왔더니 그 친구는 부산의 어떤 목사님이 돼 있고 저는 선교사로 이렇게 다시 만났어요. 42년 만에. 그래서 작년에 우리 한국 한국교회 섬기는 날에 제가 초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나서 그랬지. 너 나를 위해서 기도 많이 했지? 니가 기도해서 내가 선교사가 됐잖아. 조금만 하지.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지난 8월 15일 날 저희들이 영주에 갔어요. 제가 우리 광복절 들에서 지금은 영주 시민교회로 바뀌었는데 제가 앞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탁구 치러 가서 그냥 밑에 가서 탁구 좀 치려고 했을 때 예수님을 몰랐는데 이 교회에서 목사도 나오고 선교사도 나왔는데 하나님 이 영주 시민교회가 주님의 제자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주님의 일꾼이 많이 나오도록 가서 기도했어요.
 
사랑의 교회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훈련생들을 주십니까? 한 분, 한 분, 한 분 기능과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저희들과 여러분에게 훈련받은 제자로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주님 앞에 쓰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도를 하고 왔어요. 유다가 첫 번째로는 가정을 여는 훈련을 했어요. 그걸 했고 두 번째로는 영혼을 섬기는 훈련을 했습니다. 영혼을 섬기는 훈련 두 번째 같이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9:17 19절 시작.
*사도행전 9:17~18,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바로 12사도 시대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시대에 한 5년 동안 베드로를 비롯하여 12사도를 섬겼지만 박해 핍박이 오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패러다임, 이걸 디스트럭터 씽킹(Destructor Thinking) 새로운, 새로운 패러다임을 하시면서 사도뿐만 아니라 비 사도들도 충분히 동등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셨어요. 보면 스데반 집사, 빌립, 사도행전 8장 그리고 오늘 본문에 아나니야와 유다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제자 훈련을 받아야 돼요. 제자 훈련을 받아서 제자가 되는 게 아니라, 제자이기 때문에 제자 훈련을 받아야 되는 거야. 그리고 이 제자 훈련은 1년 코스가 아니에요. 평생 하는 거예요. 특별히 사랑 교회에서 집중해서 하는 코스는 우리 수장님들이나 말씀을 나누는 사역자들을 저희들이 잘 세워서 동등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나님 나라에 유다처럼 섬길 수 있는 영혼들을 세우기 위해서 주님께서 축복해 주셨어요. 그래서 유다는 아나니야 라는 제 같은 제자였지만 선별을 통해서 유다가 배운 몇 가지가 있어요. 가정에 초청했으니까 가족들과 함께 봤을 거예요. 야 평신도였던 아나니아 제자가 말씀 사역을 어떻게 하는지 잘 배우세요. 사랑의 교회는 특별히 말씀 사역에는 이거는 목숨을 걸어야 되는 거예요. 지금 세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경 문맹입니다. 성경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성경을 몰라요. 저 자신도 성경을 보면 볼수록 더 아는 것인데,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아요.
 
하나님 앞에 말씀 가운데 겸손히 말씀 두 번째로는 안수하고 치유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목사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베드로에게 금광은 없지만 일어나라 그런 역사가 유다라는 자기 집 안에서 치유의 사역자 사역지가 됐습니다. 그리고 세례도 아나니야가 줬어요. 그리고 성령 충만하도록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훈련을 받으면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러나지 않지만 주님께 사용할 수 있도록 주신다는 것을 얼마나 제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보다 제가 더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에 저에게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주셨는데, 알고 있는 어떤 우리 부부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저희 아버님 쓰러지셨어요. 지금 병원에 있는데 무의식입니다. 호흡도 못하기 때문에 지금 기계로 호흡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기도를 했습니다. 한 이틀 정도 됐을 때 눈을 뜨셨어요. 의식이 조금 돌아와서 병원에서, 중환자실에 있는데 우리 가족 분 가운데 기독교인이 있어서, 목사님 괜찮으시면 불편하시겠지만 지방에 오셔서 중환자실에 원래는 가족만 들어가게 돼 있는데 목사님이 잠깐이라도 한 30분밖에 시간을 안 줘서 목사님 잠깐 가서 기도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날 비가 엄청나게 많이 있어 올해 비가 많이 왔잖아요. 그래서 가서 운전하고 가서 2시간 반 3시간 운전하고 가서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코비드 테스트도 다 하고 들어갔어요. 근데 이분이 거의 모든 튜브라는 튜브, 호흡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눈만 뜨고 계셨어요.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할까?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제가 복음을 전했어요. 저희 아버님, 암 4기로 3개월 남았는데 저희 가족이 기독교에서 9년 반을 더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제가 하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모르실 거예요.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뭐 이런 것들 잘 모르시지만 제가 저를 믿고 한번 해보세요.
 
그래서 복음을 쭉 전하고 나중에 예수님 믿겠습니까?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이렇게 눈을 꿈뻑 꿈뻑 했어요. 시간이 돼서 나오기 전에 제가 격려하기 위해서 그래서 선생님 혹시 회복이 되시면 제가 선생님인데 밥 한 번 먹으러 한번 대접받으러 오겠습니다. 격려를 했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목사님들이 여러분의 대접만 받기 위해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근데 그분을 격려하기 위해서 그렇지 않아 미국에 갔다 왔어요. 미국에 갔을 때, 한 며칠 지났는데 연락이 왔어요. 목사님 이 목사님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식으로 일반석으로 옮겼대요. 일반 병원으로 옮겼다 얘기합니다. 이거 조금 있다가 얘기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데요. 1년에 이런 분들이 한 분 나올까, 안 나올까, 그리고 우리 아들에게 딸에게 얘기합니다. 기도 많이 하셨죠? 안 믿는 의사 선생님이 그래서 퇴원을 하셔서 집에 가 계셨는데 지난주에 제 집에 가셔서 이제 회복하고 계시는데 지난 토요일 날 제가 또 갔다 왔습니다. 가서 제가 정식 식사를 잘 대접받고 복음을 또다시 전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보시지만 알겠지만 제가 사랑의 교회 성경을 선물로 이렇게 드렸어요. 그리고 선생님뿐만 아니라 우리 어머니 자녀들 가운데 예수 모르는데 한 번도 교회 안 가셨는데 꼭 가십시오.
 
저는 제가 놀랐어요. 본래 갔을 때, 그분이 아마 침대에 누워 있어서 제가 가면은 이렇게 잠깐 기도해 줄 줄 알았는데 얼마나 건강하게 걸어 다니시는지, 3개월 거의 한 달 만에 완전히 회복됐어요. 저는 기도하면서도 주님이 치료해 주신다고 얘기해놓고 반쪽으로는 1년 걸릴까? 내년이나 가서 점심 얻어 먹을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한 달도 안 돼서 이런 역사가 일어났어요.
 
사도바울에게 사울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이 있었을 때 아나니아가 기도에서 기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세요. 하나님도 지금도 여러분과 저를 치유하고 계십니다. 제자 훈련 받으면 받을수록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이 있다. 데어 이즈 파워 인 더 네임 오브 지저스(There is power in the name of Jesus)!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어요. 꼭 목사님뿐 아니라 여러분도 우리 또 유치부부터 훈련받는 모든 젊은이들도 기도하고 하면 아나니야처럼 치유의 역사도 일어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일들이 있을 겁니다.
 
제가 요새 8월 달에 100년 이상 되는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 취미입니다. 한국에 여러 100년 교회가 많지만 그래서 안동에 가면 하회의 마을이 아실 겁니다. 거기 가면은 하회의 교회가 있어요. 제가 8월 달에 잠깐 갔다 왔어요. 살던 마을에 있는데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제가 영주에 살았는데 저희 집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교회가 있었는데 제가 그렇게 10년을 살았는데 교회가 있는지 눈에 안 보였어요.
지금 가서 보니까 바로 옆에 있었어요. 100년이 넘는 120년이 되는 교회가 있었는데 가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대한민국에 주님의 나라가 재건되게 도와주세요. 100년 이상 되면서 교회가 문을 닫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 역할을 저희들이 드러나지 않는 제자지만 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스토리만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의 사랑 추모공원에 가는 길에 가다 보면 여러분 지평리라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 가서 잠깐 어떤 일이 갔다가 거기에 박물관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에 처음으로 제가 몽클라드 장군에 대한 얘기를 들었어요. 이 몽클라드 장군은 프랑스인데 원래 세계 2차 대전에 영웅 같은 삶을 살고 은퇴하셨는데 본래 중장이었어요. 별이 3개였는데 한국의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원래, 별, 장군들은 전투에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기의 위치를 맞춰서 중영으로 한국에 오셔서 지평리 전투라고 아마 군대에 가신 분들 특별히 군복하신 분이나 전쟁 스토리를 좋아하신 분 다 이해하실 겁니다. 중령으로 오셔서 한국전쟁 지평리에서 싸우셨어요. 그 당시에 집행리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제가 이 얘기했지만 저는 군대 입구도 안 갔던 사람이기 때문에 잘 몰라요. 그래서 제가 조금 조사를 했는데 1951년 2월 13일부터 5월 영하 20도에서 그 지평리에서 아군 유엔을 통해서 5,600명이 중공군 5만 명과 싸운 거에요. 1대 10으로 싸운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승리를 했어요. 그리고 왜 당신이 중장인데 다 내려놓고 위치도 내려놓고 계급 떨어놓고 중력으로 왔습니까? 거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저는 중령이라도 좋습니다. 저는 곧 태어난 자식에게 제가 생애 최초의 유엔군 일원으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몽클라드 장군-
-여러분과 저는 영적 레거시를 다음 세대에 남겨야 될 귀한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목사님이셨는지, 장로님인지, 순종했는지 모든 위치 계급 다 내려놓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하나님 우리 세대보다도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더, 더 영광스럽게 교회가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그런 삶을 살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사랑 추모공원 여러분이 가실 때 얼마 안 됩니다. 가보신 분도 계시는데 꼭 가보시면 거기 조그마한 박물관이 하나 있어요. 꼭 가셔서 제가 그때 가서 2년 전에 갔는데 이 책을 가지고 받아서 제가 공부하면 읽으면서 정말 세상에서 전쟁을 위해서 한국 나라를 아는데, 우리는 주의 나라를 위해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다음 세대들이 정말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근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에 겐트교회 갔다가 아브라함 링컨이 태어난 통나무집에 잠깐 갔습니다. 제 아내와 딸입니다. 우리 딸은 우리 오 목사님에게서 세례 유아 세례를 받았어요. 우리 아이들, 둘 다 받았는데 정말 초라한 집이 있어 통나무에서 백악관으로 우리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베들레에 그곳에 오셔서 하늘 보좌에 가셨는데 여러분과 저희가 태어난 환경과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지 마세요. 저도 초가집에서 태어나서 전기도 없고 봉화군, 봉화군 수생리에, 거기 태어났는데 가보니까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복음을 만나서 그래도 조금이라도 진우 해서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몰랐던 것을 이번에 가서 찾았어요. 아브라함 링컨 박물관에 갔다가 아브라함 링컨에 대해서 알았는데, 아브라함 링컨의 5대 선배, 5대 할머니께서 결혼하시고 그 할머니 집 안을 통해서 후손들이 나와 있는데, 여러분이 비행기 처음 만들었던 라이트 형제, 아마 아실 거예요. 후손이에요. 그리고 로아 프로스트라고 그러니까 시인 시를 잘 쓰는 분도 후예였고, 그다음에 포드 대통령이 관계돼 있었어요. 그리고 조지 부시 대통령 아버지 어머니 다 관계가 돼 있던 거예요. 그래서 역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그 가정을 통해서 우리의 선도를 통해서 신앙이 계승되어 가는데 미국 재건의 정말 큰 역할을 보이지 않지만 그 할머니 또 아브라함 아버지는 증조부는 위클릭이나 침례 교회에 건축을 하는데 교회가 세웠는데 도움을 주셨어요. 그리고 거기서 아브라함 링컨이 할아버지를 통해서 정말 흑인들은 인간적으로 대여해줘야 된다. 인종 차별을 거기서 배운 거예요. 흑인들을 노예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음성은 이름 없는 다메섹의 어떤 유다의 집이지만 사울이 바울 되도록, 그 시간에 3일 동안 집을 열어서 섬겼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크게 일어나는지 오늘 사도행전을 여러분 통해서 여러분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제가 여러분에게 격려하는 것은 온전한 제자로 성숙하는 훈련 성숙하도록 훈제 훈련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훈련생뿐만 아니라 저희들도 온전 제대로 성숙하는데 훈련을 잘 받아서 한 시대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잘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훈련생들 정말, 정말 축하합니다. 우리 박수로 우리 축하하겠습니다. 우리 또 오늘 토비새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저희들이, 제자 훈련은 평생 가는 거니까 저는 토비셋 자체가 공동체의 제자 훈련을 하기 때문에 제가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합니다. 꼭 참석하고 이런 은혜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약
우리 교인들 모두가 온전한 제자로 세워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축복받으며, 이제 가을 사역에 훈련받는 모든 성도들에게 오늘 성경 말씀처럼 여러 가지 훈련뿐만 아니라, 삶이 변화되어서 다음 세대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정말 쓰임 받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쓰임 받는 주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이 시간을 통하여 우리가 갖고 있던 생각도 새로워지고 또 눈도 좀 다시 열리게 주시라는 간절한 간구와 우리에게 역사해 주실 줄 믿고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기를 간절히 간구하자.
--그리스도는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곤란 받고 있는 그의 백성을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는지를 매우 잘 아신다. 그는 그들에게는 하늘의 친구가 되시며 그들이 어느 거리에 있는지 어느 집에 있는지, 심지어 어떤 상태에 있는지도 잘 알고 계시다. 아나니아가 가야만 하는 두 가지 이유.
1)사울이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아가는 것은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따라서 첫째, 13, 14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아나니아는 사울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보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다'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는 진심으로 회개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라'는 그것의 확실성을 입증한다. 또한 그것은 그것이 뜻밖의 사건임을 의미한다. "보라,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사울이 기도한 일이 정말 이상한 일인가? 그는 바리새인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그는 이제 전에 하던 방식과는 다르게 기도하고 있다. 그때는 기도문을 외우는 데 불과했으나 지금은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다. 사람이 숨쉬지 않고 살 수가 없다. 숨쉬지 않는다면 살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도하지 않는다면 은총도 없다. 둘째, 아나니아는 지체없이 그를 찾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가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사울은 죄를 자각하고 있었다. 죄에 대한 자각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앞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을 더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사울은 자기를 지도해 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위하여 우리는 기도해야만 한다.
▶마무리기도: 오정현 담임 목사님
여러분과 저 때문에 이 세상이 좀 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바꾸어지기를 바랍니다. 정말 매주일 매주 이 이즈 원 히스토리에요. 내일 주일 예배 참석 안 하면 우리 교회 오래되신 분들도 이거 어떻게 되나? 이렇게 할 정도로 매 주일이 달라져야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매주일 매주일이 한 역사에요. 그렇게 알고 주여 내일 예배를 살려달라고 특별히 내일 말씀 전하는 부족한 종을 살려달라고 담임 목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여러분도 영적 가족이니까 그렇게 해주십시오. 주여, 내일 예배를 살려달라고 할 때 메시지 찬양, 안내, 주차, 교육 봉사, 대표 기도 모든 사회자들 모든 보호자 자리에서 수고하신 분들 주님 함께해 달라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그래야 교회도 살고 여러분 살고 우리 교회 살면 또 한국교회 살고, 모든 교회는 서로 유니버설, 우주적 교회의 일원으로서 서로를 세워주는 그런 축복이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한국교회가 살면, 이 민족 바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말도 아닌 비 진실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한국교회에 살려면 주일 예배가 살아야 되고, 주일 예배가 살려면 주일 말씀이 살아야 되고 찬양과 기도와 성도의 교재가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내일 모든 성도들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주일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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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8월 26일)
제목: "세움을 위해 쓰임받읍시다"
말씀: 에스라 3:3-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대표기도: 노영훈 장로님
말씀읽기: 송다영 자매(청년 3국 리더), 백승우 형제(대학 5부 리더)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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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3:3-4,
3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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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준비되셨습니까? 사랑의 교회가 얼마나 저는 감사한지. 8월 마지막 주일은 가을 사역의 시작 주일입니다. 매마다 그래서 저는 8월 마지막 주일이 될 때마다 가슴이 막 절실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이 하반기 사역을 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감당할 수 있는 건강 주시고, 믿음 주시고,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우리 권사님들 죄송합니다. 영어로 Are you ready? 준비되셨어요? 가을 사역을 위하여 우리 모두가 다 다시 한 번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우선 가을 사역부터 좀 달라질 것 중에 하나가 주일 예배할 때에 찬양대가 찬양하면 박수만 치지 말고 딱 찬양하나 아멘 하고 박수 치는 거예요. 아시겠죠? 오늘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이제 내일 주일부터 그렇게 할 거예요. 내일 주일부터 제가 온 교우들 할 텐데 왜냐하면 우리가 예배가 살아야 이 민족의 장래가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주일 예배드릴 때마다 성경 봉동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억납니까? 이제 좀 달라졌거든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이제 찬양대가 찬양 마치고 나면 우리 박수! 박수! 우리 찬양대가 잘했다. 이것도 있겠지만 이런 귀한 예배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영광스러운 찬양대의 찬양을 주님 받으신 줄 믿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박수하는 거예요. 아시겠죠? 그러니까 앞으로 찬양대 다 끝났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이거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겁니다. 아시겠죠? 다시 한 번 여러분 이번 가을 사역을 위해 준비되셨습니까? 그리고 이번 가을 사역을 통하여 이거 박수하는데 알겠지요? 이번 가을 사역을 위하여 우리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다시 건강 주시고 은혜 주시고 믿음 주시고 환경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이번 가을 사역을 통하여 이번 가을 사역 여러분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사역과 걸음, 걸음을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고 불성과 같이 이렇게 보호해 주시고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그렇게 여러분들을 다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가을 사역을 통하여 여러분 개인도 그러고 사랑의 교회도 그렇고 앞으로 향후 몇 년의 장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특별한 일들이 많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그렇게 마음에 주님 앞에 기대하시고 준비하셔서 우리 교회가 이 가을 사역에 다시 우리가 피닉스 스타트 여름 동안에 모든 걸 정리하고 오늘부터 시작 그래서 오늘 안 나오는 우리 교회 중직 자들은 생각이 조금 짧은 거예요. 그래서 오늘 모든 우리 중직 자들 sns로 들어와서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 이 시간 마음을 같이 해가지고 이번 가을 사역 동안 이번 가을 사역 또한 주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암탉까지 품어주시고 그리고 이번 가을 사역을 통해 우리 개인이나 우리 교회나 또 우리 민족의 향후 장래 몇 년이 결정될 줄로 믿습니다. 하는 그런 마음으로 2023년도 8월 말부터 12월 마지막 주 송구영신 예배드리기까지 하나님께서 다시 눈동자가 지켜주시고 암탉의 보호 없이 지켜주시고 불성 곽으로 보호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저는 세움을 위하여 쓰임 받으십시다. 뭘 위해요? 다시 뭘 위해요? 세움을 위해 그다음 어떻게 하자고요? 쓰임받자고요.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진짜 주님 사랑하고 은혜 받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통적인 특징 하나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지금도 써주고 계시는구나. 오늘도 아침에 나오는데 저는 모르겠어요. 내 요즘 목표가 있죠. 80대가 되었을 때 60대의 얼굴로 그다음 또 뭐예요? 다 잊어버리셨어요. 이래서 반복이 필요한 거예요. 80대의 얼굴로 80대 나이 때 뭐예요? 60대 얼굴로 그다음에 몇 살의 목소리로? 40대의 목소리로 그다음 또 뭐예요 20대의 꿈을 아니 나에게 확실히 얘기했는데, 어른들 다시 한 번 80대가 되었을 때, 60대의 얼굴로 그다음에 우리 권사님도 목표 하면 좋겠죠? 어디나, 저기 뭐야 성형외과 가지 말고 이걸 확실히 하면 되는 거예요. 80이 되었을 때 뭐예요? 60대 얼굴로 그다음에 40대의 목소리로, 그다음 뭐예요 20대의 꿈을 갖고 그러다가 어느 날 주님 앞에 전력투구하여 살다가 시작해도 되는 게 아니야. 어느 순간 우리 부친은 이틀 아프다가 돌아가셨어요. 물론 뭐 좀 안 좋은 건 있으셨지만 그래도 결정적으로 이틀 있다가 아프시고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제 내 앞에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정말로 아름답게 쓰임받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다니 오늘도 아침에 나오면서 제가 막 마음이 절실해지는 거예요. 절절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마음속에 주님 오늘 이 토비새에 놓은 모든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을 주님 끝까지 써주시고 이제 우리 삶에 실수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두가 다 아름답고, 귀하고, 참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주님 써주시옵소서. 다시 나 같은 사람이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이 최고의 감격이고 축복인 줄로 확신합니다. 이게 주님의 백성들이 갖는 특징이에요. 오늘 4시 50분에 나오셨죠?
 
나는 벌써 다 듣고 있어요. 누가 4시 50분에 나왔는지, 누가 좀 늦게 나왔는지 그러니까 4시 50분에 나오면서 6시 6시 10분 15분부터 우리 저기 토요일 10시 새벽 토요일은 토요일 전 새벽이라고 했는데 왜 나 4시 50분까지 오라 하나 그런 건 아니죠? 그죠? 남들은 6시 10분 15분까지 나는 준비하기 위하여 4시 50분까지 나와서 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그죠? 그런 마음 갖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근데 뭘 위하여 쓰임 받는다고요? 세음을 위하여 그래서 이제는 이제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는 세워가야 하는 것이에요. 이제는 한국교회가 시대를 더 세워가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는 고소 고발을 너무 잘하는 나라예요. 그리고 데모를 하면 막 저 민노총 이런 사람들이 보도블록을 두드려 빼가지고 깨고 말이죠. 그냥 뭡니까? 뭐예요 버스를 불태우고 말이죠. 그거는 세우는 겁니까? 파괴하는 겁니까? 그건 파괴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 고소 고발 데모가 아니라 세워야 되는 것이 아시겠죠? 한 사람이라도 세워져야 되는 거예요. 그 영원히 세워져도 한 교회라도 세워져야 되고 한 선교지라도 세워져야 되고 그래서 이제는 제가 영어를 한번 만들어봤어요.
 
우리가 아주 부패하고 잘못했을 때는 리폼을 해야 돼요. 개혁을 해야 돼요. 우리 16세기 초반에 종교 개혁하듯이 그러나 지금 코로나 이후는 폭탁한 시대가 된 거예요. 이제는 남들 다 좋은 말 많이 하고 데모도 많이 하고 멋진 말도 많이 하고 뭐야 바른 말도 많이 하고 다 하지만 세우는 사람은 많이 없어. 사랑의 교회는 이 시대를 세워가야 되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에 속한 여러분 그래서 이제는 리포보다도 리빌드(rebuild)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아멘. 세워가야 되는 거예요. 세워가야 되는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가 오늘 본문에 보니까, 에스라 3장을 본문을 보니까
 
*에스라 3:3,
3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은혜가 어떻게 나와 있습니까? 3절에 우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들고 그다음에 재단을 그 터 위에 뭐예요 세우고 수룹바벨의 2차 성전을 짓기 전에 먼저 재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저 성전을 짓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완전히 엉망이 아무것도 없는 다 망한 그런 참 예루살렘에 쓰레기만이 막 있고 아무것도 없는 그 황폐한 곳에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다시 세우는 것이 저는 이 세운다는 말만 하면 열왕기상 18장 30절에 보니까 어떤 말씀이 있냐 하면 무너진 재단을 뭐예요 수축하고 엘리아가 그 아압 왕 시대에 모든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모든 것이 다 비패해가지고 황패한 그 상황에 다시 세우고, 그러다가 이사야가 말씀을 선포하는 그 시기는 낙관론을 펼치기 어려운 그런 상황에서 정말 힘들 때였어요. 그런데 이사야 58장에 보면 너희가 다시 황폐한 곳들을 다 세울 것이라.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리라. 그리하고 이사야 62장 10절에 뭐라고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62:10,
10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만민을 위하여 다 안 된다고 그럴 때, 아니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길을 닦는 사람이 교회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큰 길을 수축해야 되는 것이 그리고 수많은 돌들을 제거하고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드는 것이 우리가 무슨 기치를 들 능력이 있고, 내 주위를 살펴보면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 그대로 믿고 순수하게 기치를 들면, 기치를 들 만한 환경과 인생으로 주님이 바꾸어 주시는 것이 이게 남은 자의 생각 끝까지, 끝까지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이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제가 구약의 역사를 조금 정리해 드릴 테니까, 이 역사를 여러분들 마음속에 새겨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다시 한 번 코로나 이후에 이 시대를 위하여 세움 받고 쓰임 받는 귀한 종들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이런 에스라가 나오고 에스라 선지자의 사역을 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당시에 고대 근동사회가 대반전이 있고 막 역사의 대전환이 있고 이런 일이 일어났어요. 고대 근동 사회에 이집트가 파라오 시대 때부터 강력한 힘을 가졌어요.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을 잘 섬긴 요세아 왕 요세야 왕같이 이렇게 막 참 하나님께 쓰임 받고 이런 사람들이 에집트에 있는 바로 와가지고 무기들에서 죽여 버렸어요.
 
나는 나중에 이해가 잘 안 가요. 왜 요시야와 같이 그렇게 귀한 사람을 마지막 39살에 그렇게 죽는가! 그게 참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그러나 이제 멀리 보면 나중에 유다 왕국에서 시드기야 왕 같은 경우 바벨론 포로 잡고 얼마 있어서 이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데 그런 험한 꼴을 보지 않도록 하나님이 하셨나! 이런 생각도 있을 정도로 하여튼 그런 일을 있고 난 다음에 BC이 605년에 무슨 일이 벌어졌냐면, 그 무깃도에서 앗수르와 이집트 연합군과 신진 제국 아주 그냥 아주 욱일승천하는 태양처럼 일어나는 바벨론 제국의 젊은 느브갓네살 왕과 대전투가 벌어진 일대 그야말로, 천하를 양분하는 그런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게 아마게돈 전쟁, 무깃도 전쟁이었어요. 그게 그걸 이제 역사로 볼 때는 갈그미스 전투라고 그래요. 그 갈거미스 전투를 통하여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 고대의 패자였던 그 패권국이었던 이집트와 앗수르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바벨론이 욱일승천, 바벨론의 시대가 오게 된 것이에요.
 
그 이후에 더 이상 이집트는 지금까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뭘 말하는가, 하나님이 한 번 역사하시면 세계의 역사가 한꺼번에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저는 남북문제 지금 우리는 우리 북쪽에는 가장, 아주 지독한 공산주의 북한 그다음에 공산주의 원조인 러시아 그다음에 공산독재국가 중국 우리 주위에 다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 강력한 앗수르와 이집트의 모든 제국도 하루아침에 바벨론을 통하여 싹 쓸어버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하루아침에 역사의 전환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은 뭐냐 하면 교회의 영광과 교회 거룩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우리가 굳게 지켜나가는 하나님의 남은 자가 되면 하나님 반드시 일해 주시는 것이에요.
 
자, 그러고 난 다음 바벨론이 이제 승자가 되고 난 다음 바벨론이 이스라엘 유다 왕국을 침공해가지고 그전에 앗수르를 통하여 북쪽 이스라엘은 다 없어졌어요. 그리고 북쪽의 1지파도 다 이제 없어진 거예요. 남쪽 유다 왕국을 바벨론이 1, 2, 3차의 침공을 통해, 1차 때는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다니엘과 이 잡아갔어요. 그리고 다니엘 1탄에서 1장 7절에 포로가 됐어요. 2차에는 BC 598년에 에스겔을 비롯한 성직자 귀족을 열왕기야 21장, 2차 포로로 데려갔어요. 3차는 누가 네살이 BC 587년에 세 번째 예루살렘을 쳐들어와 예레미야 39장 나와 있어요. 쳐들어와가지고 39장 나와 있는 52장에 나와 있는데 완전히 무너졌어요.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성전에 있는 금은 기구, 그 성전 귀한 것들을 다 갖고 갔어요. 더 이상 울 기력이 없었어요. 그럴 정도로 나중에 예레미야가, 예레미야 애가 있을 정도로 힘든 1, 2, 3차 포로의 시기를 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이제 끝났다. 이제는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지난번에 말씀 남은 자들 거룩한 그루터기를 통해 이사야 40장 1절, 2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어요.
 
*이사야 40:1-2,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아멘. 놀라운 말씀이에요. 적은 이사야가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가 포로 된 채로 우리가 망한 채로 우리가 아무런 희망과 소망이 없는 채로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치 않아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세움을 위하여 쓰임받기를 원하는 그런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 끝까지 일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근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다 왕국이 망했을까요? 그리고 나중에 아수르는 왜 망했나? 나중에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왜 망했나? 페르시아 제국은 왜 또 망하나 그 제국들이 왜 망하는가? 제국들이 망한 이유는 힘이 없어서, 국방력이 약해서, 무슨 재정이 약해가지고 그렇잖아요. 그 제국들이 망한 이유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모르고 거룩이 없고, 비전이 없고, 도덕성을 잃으면 제국이 망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믿어야 되는 거야. 어떻게 믿어야 되느냐 아무리 우리 주의 강대국이 있더라도 한국교회의 영광이 다시 회복되고, 성도들이 거룩해지고, 우리가 이런 꿈과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끝까지 집중하는 한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것이에요. 제국도 세계적인 제국도 나라도 교회의 영광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고, 도덕이 무너지고, 거룩이 사라지고 그러면 날아가는 것이에요. 이번 가을 사역 또한 사랑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과 능력을 더 선포하는 사역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가지고 이 망하고 난 다음에 다시 이제 포로로 3차가 되어 3차 포로를 됐는데 다시 돌아올 때도 하나님께서는 귀환도 3차에 걸쳐서 귀환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70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BC 605년에 어려움을 당하고, 1차 포로 그런데 BC 536년에 스룹바벨의 지도 하에 1차, 1차 포로가 귀환되었어요. 에스라 2장에 나와 있어요. 그리고 BC 458년에는 에스라의 지도 아래 에스라 7장 있는데 2차 포로 귀환, 그다음 BC 445년에 느헤미야아의 지도 아래 3차 귀환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처음 귀환했을 때, BC 536, 70년 후에 바벨론의 포로 잡혀 있었으면 다시 돌아왔을 때, 얼마가 들어왔냐면 4만 2360명이 돌아왔어요. 몇 명이 돌아왔다고요? 4만 2360명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 돌아온 숫자는 잡혀간 숫자에 비하면 미묘한 숫자였어요. 많은 사람들은 바벨론에 거기에 이제 익숙하고 거기에 이제 살게 되고, 이 사명을 가진 사람들은 4만2360명에게 돌아오는데 돌아와 보니까 완전 예루살렘 피하고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다 눈물로 회개하고 그렇게 하면서 제일 먼저 자들이 오늘 에스라 3장에 여러분들 먼저 제단을 수축하고, 먼저 예배 단을 성전 짓기 전에 예배당부터 이렇게 재단 드릴 수 있도록 제사드릴 수 있는 그런 담부터 먼저 짓는 내용이 오늘 이 내용이에요. 아멘. 지금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제일 먼저 한 것이 뭐냐 하면 번제를 드는 거예요. 에스라 3장에 스숩바벨이 성전 건축 전에 제일 먼저 한 것이 번제를 드는 거예요. 오늘 이 시대의 본자가 뭔가 피의 복음이에요.
 
속죄제와 속건제, 피의 복음이에요. 사랑의 교회는 이 가을 사역을 하면서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시대의 황폐함과 어려움들을 앞에 놓고, 우리가 먼저 번제를 쌓는 마음으로 이아침에 나온 것이에요. 그것은 바로 뭐냐? 우리 교회는 피의 복음 위에 서 있다. 생명의 복음 위에 서 있다. 어떻게 하든지 사랑의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고 구원의 방주가 되고 이 시대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선명하게 선포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 가을에도 여전히 한 결 같이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새 생명 축제를 통하여 대각 성 전도 집회를 통하여 아니 매주일 마다 그리고 매 사역 사역마다 피의 복음이 선명하게 선포됨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 시간 지금 안성수양 관에는 지금 거의 300여 명이 우리 대학 청년 대부, 대청부 우리 대학부가 있고 청년부가 있는데 그 사이 대청부가 있는데 270명이 지금 가 있대요. 지금 거기 가가지고 지금 수양을 하고 있는데 한번 보여줄래요? 거기까지는 내가 보니까 내가 보니까, 대청부(대학청년부)에 아직 잠자고 있는 사람 몇 명 있어. 그러나 대부분은 다 나왔어. 나왔는데 대청부도 우리가 사랑의 교회가 중요한 사역의 비전을 가지고 세웠지만 여러분도 피해 복음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에요.
 
이번 가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 갖고 이제, 이제 이런 일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오늘 3장 12절을 보겠습니다. 3장 12절에,
 
*에스라 3:12,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들이 뭐 하지 못했다? 분간하지를 못했다. 젊은이들은 또 예루살렘, 예루살렘 성전의 위엄과 솔로몬 성전의 금빛, 도움을 본 사람들은 그 나이 든 사람들은 이제 기초 쌓인 거 보면서 대성통곡이지 너무 가슴이 아프죠. 그러나 또 새롭게 그걸 못 본 젊은이들은 이제 다시 또 할 수 있다 이랬어요. 그러니까 비슷하긴 하지만 그 느끼는 감각이 좀 다른 거예요. 제가 왜 이런 말씀 저는 한국교회 부흥의 끝자락 세대예요. 이 끝자락 세대라는 말을 제가 함부로 안 합니다. 왜냐하면 끝자락이면 앞으로 안 되잖아. 지금은 내가 디딤돌 세대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시 또 될 거니까. 저는 지금까지 사역을 시작하고 한 주일도 새 가족이 안 나오는 주일이 없었어요. 한 주일도, 16살에 처음 주일학교 교사로 제가 저희 부친교회 14살에 처음 주일학교 교사가 된 지, 지금까지 내가 맡아 사역을 한 그 주 지금까지 그의 50년을 한 주일도 새 가족이 없는 주일이 없었어요.
 
그냥 가만히 계시죠. 그죠? 한 주일도 새 가족이 없는 주일 그러니까 너무나 그러니까 항상 있잖아요. 항상 서는 우리 교회 부역자들이 우리 협동 공사 다 110명인데 우리 교회 모든 부교역자들이 앞으로 사역도 다 그렇게 되기를 제가 기도하고 있는 것이 어제 그저께 우리 교육자 수양회를 다녀왔는데 내 마음에 불붙는 것 같은 거에요. 그러니까 젊은 부교역자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나는 통곡하고 나는 영광을 본 세대니까, 그러나 이걸 그냥 우리 시대로만 끝나면 안 되니까 끝까지 가야 되니까, 여러분 다시 기초를 세우고 다시 세우고, 황폐한 것들을 다시 수리하고 물 된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사역을 위하여, 여러분 모두가 다 우리 모두가 다 거룩하게 쓰임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이제 다음, 다음 주를 좀 안 하겠습니다마는 나중 학개가 이 성전을 다 학개하고 에스라가 이 성전을 다 마무리를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에스라와 같이 귀한 사람을 허락해 주세요. 저는 에스라가 너무 귀한 분이에요. 학자이자, 서기관이자 세계 최초의 강의 설교 학사 에스라가 말씀을 나눌 때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이 다 그 말씀을 듣고 그런 귀한 분인데, 이 에스라와 학개가 있는데 학개 2장 9절에,
 
*학개 2:9,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무나 놀라운 말씀이에요. 어떻게 그 스룹바벨의 성전은 예루살렘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약하거든요. 근데 어떻게 이 성전의 이전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겠는가? 그 성전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적 성전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성령의 전이 된 것이에요. 이 영적인 구속 구원 사적인 발전이에요 계시의 발전이에요. 얼마나 신비한지 몰라요. 여러분과 제가 이 말씀을 깨닫고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겠다 결심하면요. 우주적 성전이 되는 것이에요. 적은 예수들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얼마나 품위가 있고, 영광스럽고, 거룩해지고, 온전해지고 그래서 여러분들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고 옛날에는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예배하는 곳인 줄 아는데, 그게 아니고 이사야가 56장에 깨달은 진리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모든 사람들이 우주적 성전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피의 복음의 생명 역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의로 내가 의롭게 되곤 한다. 우리 모두가 다 성령의 전이 되곤 한다.
 
그래서 저희 부이는 저한테 전화하면 “오 목사 성전 관리 잘하고 있나?” 오 목사 성전 관리 이번처럼 제가 관리를 좀 잘 못한 것 같아요. 수양회하고 뭐 하다 보니까 여러분 모두가 다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으로 여러분들의 거룩한 전이 늘 정비되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야 될 때에 이 거룩한 성전에 대한 깨달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다시 세우는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그 예루살렘 성전, 스룹바벨 성전, 우주적 성전 대신 예수 그리스도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런 걸 깨닫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하여 이 땅의 역사도 굴러가게 되는 것이에요. 나머지는 그냥 세속 역사예요. 하나님 나라에 강력한 역사가 있는 것이에요. 제가 시간이 없어가지고 한 가지 말씀드리면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다 안 된다고 그러는데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졌어요. 2차 성전이 세워졌어요. 그것은 스룹바벨이 돌아오고 난 다음에 스룹바벨 총독이 돌아오고 난 다음에 20년이 지나서 성전 봉헌식을 했어요.
 
에스라 6장에 나와요. 그리고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속죄제가 이루어졌어요. 에스라 6장 17절에 그때부터 더 이상 이제 북쪽에 잃어버린 열지파나 남쪽의 두 지파 더 이상 의미가 없이 모두가 다 이제 하나님 앞에 유월절과 무교절을 에스라 6장에 지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성경 연구를 하게 되면 에스라 6장과 오늘 이제 오늘 3장을 6장과 7장 사이에 6장 1절에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다리가 왕이 조서를 내려가지고 6장 1절에 그리고 7장에 보면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 6:1,
1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
-그러니까 6장 1절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린 것과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이르러가지고 6장 후반부와 7장 초반 사이에 거의 거의 60년의 간극이 있었어요. 정확히 만58년, 이 58년 60년의 간극이 있는데, BC 516년부터 해갖고 BC458년까지 6장과 7장 사이에 거기에 대해서 성경은 아무 기록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사실 세계사적으로는 BC 516년과 BC451년 사이에 세계사적으로 어마어마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어요. 근데 성경 이걸 다 생략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중국에서는 그 58년 60년 기간 동안에 침묵의 기간 동안 중국에는 공자가 살다가 죽었어요. 다시 중국에서 뭐예요? 공자가 살다가 죽었어요. 인도에서는 석가모니가 살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세속 역사에서는 그리 역사에 그리스 역사의 황금시대가 열리고 헤르도토스 역사 알죠? 역사를 기록하고 그다음 투키티데스의 역사가 일어나고, 역사 쓰고 플라톤이 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있고,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있고, 여러분들 그리스 역사의 페리클레스도 알고, 살라미스 전쟁 마라톤 전쟁, 이것들이 다 이 시기에 다 일어났어요. 공자가 죽고 석가가 왔다 갔다 하고 그리스의 황금시대가 있는데 오늘 성경에서는 그걸 하나도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의 역사는 세속 역사를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역사를 주목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식으로 쓰임받느냐가 그것이 핵심인 것이에요. 그 외에는 아무리 대단한 것도 취급하지 않아요. 저는 이 대법원 앞에서 이 강남에서 20년 사역을 하고 있어요. 제가 오늘로써 만 20년이 지나고 21년째에 들어갑니다. 오늘은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수많은 대통령들이 지나가고 수많은 대단한 사람들은 다 지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교회만 영원하리라. 여기에 대해서는 확고한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영적인 의식을 가져야 . 돼요. 이게 거룩한 의식인 거예요. 이것이 이걸 가지고 시대를 세우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서에 말씀하시기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의 지혜는 어마어마한 것이에요.
 
오늘 그런 마음을 가지고 모두가 다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이 58년의 침묵 기관 가운데서도 예외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그게 바로 에스더에게 공자도 사카모니도 투키티데스도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기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기록하신 생명의 역사의 기록이 뭐냐 에스터 사건이었어요. BC 484년에서 465년의 기간이에요. 다 망해가는 민족을 하나님이 다시 세워주는 것이에요. 개인사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어릴 때부터 되게 익숙했어요. 어제 이스라엘 대사하고 오후에 대화를 하는데, 제가 이런 얘기를 이스라엘 대사 하니까 이스라엘 대사가 나가자빠지는 거예요. 어떻게 극동에 있는 사람이 자기 이상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더 열심히 아느냐? 자기는 자기 아버지는 라피 출신인데 아키바, 조셉 토르예요. 자기 아버지는 그런데 좋을 때는 아키바, 그러다가 딱 열날 일 있으면 아키바, 조셉 이런 데 근데 내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분이 반응이 그러면 생명의 생존의 문제로 읽었겠네. 그러더라고요. 성경에 익숙하니, 누가 뭐라든 간에 여러분들 마음속에 이런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그건 이스라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온 우주적 성전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세속 역사가 아무리 대단해도 다 지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 우리 오늘 대청부 우리 아이들 지금 대청부는 다 똑똑하고 지금 다 직장 연주 열심히 하고 어제 직장에서 늦게 와가지고 수양회 참석하고 고생 많아요. 그럼 여러분들 마음속에 딱 붙잡는 게 있어. ‘나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지’ 세속 역사가 아무리 대단 하더라. 세속 역사 간판이 대단하고 세상 사람들 대단하고 다 그거 다 지나가는 거예요. 에스더를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것이 몰드를 기억하시는 것 하만이 권세를 부려도 하나님은 에스더를 살려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힘들면 죽으면 죽으리라. 여러분 죽으면 죽으리라 죽으면 죽으리다. 그런 마음 가지면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망해가는 인생 망해가는 민족을 하나님이 늘 다시 세워주는 것입니다. 이런 의식과 사명을 가진 한 사람을 통하여 애굽에서 요셉, 바벨론에서의 다니엘, 그발 강가에서의 에스겔, 수산 궁에서의 에스더로 이들의 시대를 바꿀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로 시대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다니엘 같은 선지자들이 시대를 지켰습니다.
 
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셔서 이 시대를 지키는 에스라, 다니엘, 에스더 학개 같은 그런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번 가을 사역을 위하여 깊은 관심 중에 하나가, 사랑의 교회가 목자의 심장을 가지고 목욕을 하고 성도들을 많이 우리가 섬기고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잘해야 되겠다. 정말 우리 교회에 목양 적 은사가 있는 평신도 지도자들, 순장을 10년, 20년, 30년 30년 하면서 진짜 영혼을 깊이 돌볼 수 있는 이런 평신도 지도자들, 이분들이 영혼을 더 잘 섬기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이 진국 같은 손자님들과 이 진국 같은 영혼 케어 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모양을 하고 영혼을 케어하고, 이런 시대적 정신을 가지고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사나이는 이번 가을 사역을 통하여 강력하게 집중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혼 돌봄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마 구체적인 내용들은 순장 수양회부터 시작해가지고 쭉 진행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축복하시고 오늘 이 토비새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고 무엇보다도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모두가 다 우주적 성전이 되는 것을 믿으면서 제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마는 그 58년의 공백 기간 동안, 세계사적인 일은 많았지만 영적으로는 다 지나가는 것이고 에스더는 한 사람을 통하여 시대를 보호하고 세우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하반기 사역이 되도록 한 분 한 분을 기름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마음 가질 때 여러분들을 통하여 주님은 반드시 일하실 것입니다.
 
♣요약
우리도 학사와 에스라처엄 우리 가을 사역에 우리나라, 일터와 교회와 가정에서 귀하게 세움을 받고 쓰임 받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들은 즉시로 성전을 가질 수는 없었으나 제단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단을 쌓았다.' 따라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 설교라고 하는 촛대와 성찬이라고 하는 진설병이 없다고 해서 기도와 찬양이라고 하는 희생마저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행할 바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물을 성별시켜 주는 이미 준비된 제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급하게 단을 세웠던 이유가 본문에 나타나 있다.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은 그들과 그들의 신앙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는 적들 가운데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제단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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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8월 19일)
제목: "그 큰 사랑의 생수로"
말씀: 에베소서 2:1-7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백신종 목사님-초빙(메릴랜드 벧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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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1-7,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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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종 목사님-초빙(메릴랜드 벧엘교회)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2013년도에 출간된 행복의 비밀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부재가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75년에 걸친 하버드의 인생 관찰 보고서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268명의 학생들을 75년에 걸쳐서 거의 전 인생을 관찰 조사한 보고서 중에 한 권이 바로 이 행복의 비밀이라고 하는 책입니다.
 
여러분, 이 책의 저자인 조지 베일런트라고 하는 분이 행복의 비결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면서 그중에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가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한 행복의 요인이 된다고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선한 동역 자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사랑의 교회가 정말 만나면 행복한 교회 여러분 이 교회 많은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해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죠. 누군가 나와 만나면 행복해지고 즐거워지고, 인생의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고, 함께 기도하며, 인생의 고비 고비들을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믿음의 동역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의아했던 것이요. 10장의 제목이 ‘예상치 못한 발견’이라고 하는 챕터입니다. 여러분, 10장에서 저자인 조지 베일런는 인생을 그냥 일평생으로 두고 보지 아니하고 인류의 전 역사, 또 인생을 죽음 이후까지 바라보면서 정말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 하는 중요한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행복을 좌지우지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 만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행복과 또 정말 우리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유일한 길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함께 잠시 살펴볼 에베소서는 바울이 이미 2천 년 전에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 인생의 행복의 비결이야말로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베소서 1장에 보면 1절부터 14절까지 사도바울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타락한 인류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어떤 신령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그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가 하면 바로 이어지는 15절부터 마지막 23절까지는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서 그들이 마음의 눈을 떠서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중보 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그런가 하면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2장 1절 말씀부터 1절에 보면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원인에 관해서 이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1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에베소서 2:1,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러분, 사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서술문처럼 기록이 되어 있지만, 원래 헬라어 성경, 원어 성경을 보면 그 은이라고 하는 주어와 살리셨도다. 라고 하는 서술어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킹 제임스 버전이라고 하는 성경의 번역 전통을 따라서 5절에 있는 주어와 서술어를 가져다가 번역한 것인데, 원래 사도바울이 이 에베소서를 기록할 때에는 주어와 서술어를 생략한 채 마치 법원의 판결문처럼 “너희는 죄와 허물로 죽었느니라.” 선언하고 있는 그런 구절입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삼아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럼 그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 된 우리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세상 사람들, 불신자들만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너희도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3절에 가서 보면
 
*에베소서 2:3,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행하여, 여러분 에베소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평생 그 복음을 위해서 살아갔던 사도바울 자신과 함께 동역했던 모든 동역 자들도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서 죽은 자라고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영적인 실상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 그 은혜의 크기를 우리가 헤아릴 수 있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결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평생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유혹과 또 육신의 정욕과 탐심으로 말미암아서 실패하고 무너질 때가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 한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젊은 목사님이 목회를 하면서 너무 육신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참 고통스러우니까, 은퇴하신 한 80대 되시는 은퇴 목사님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목사님! 제가 정말 이런 정욕 때문에 목회하면서 많은 유혹에 시달리고 언제쯤 되어야 이런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이 주보 한 장을 드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래요. 이 주보 한 장 들 수 없을 때까지야! 그렇게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생 씨름해야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인간의 본성은 타락한 죄와 허물로 죽은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면서 끊임없이 본성을 거스려서 하나님을 향한 경향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우리 죄와 욕망으로 죽은 우리의 자아를 인식하고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선하신 뜻을 이루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러분 바울은 우리도 다 그 안에서 행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 21절 이하에 죄로 인해서 갈등하고 그 안에 살아있는 정말 육신의 정욕과 욕망을 씨름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 7:21-24,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세상에 속한 죄인들만 죽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과거의 삶만 죽은 존재가 아니라 여러분 그리스도인들도 살아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아니라, 살아있다고 착각하지만 어쩌면 우리 자신도 영적으로는 여전히 죄와 허물 가운데 죽은 존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이 디모데서 디모데전서 5장 6절 말씀에 디모데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디모데전서 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그럼 세상의 향락을 좋아하는 자 자기 탐욕과 욕심에 이끌려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럼 그 영적인 실상은 죽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럼 자기 향락을 추구해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돈이나 소유나 운동이나 관계나 세상 것에 집착해서 우리가 영원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한 사람들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여러분 감사와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서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충만한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이어지는 2절 말씀에서 우리가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2절 말씀에 보면 반복되는 두 단어가 있는데요.
 
*에베소서 2:2,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 라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따르다. 라고 하는 표현이 헬라어로는 페리파테오라고 하는 단어인데 여러분 페리는 주변 혹은 옆에서 함께, 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테오는 걷다. 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인데 여러분 주변에서 함께 걷는다는 것이죠. 동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동행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입니까? 에녹이라고 하는 인물이죠. 여러분 구약 성경에 보면 에녹이 65세의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무드셀라라고 부른 후에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더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는 자녀를 낳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사는 사람이었지만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고 자녀를 낳으면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서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 성경에 보면 정말 그런 삶을 갈구했던 인물 중에 하나가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2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빌립보서 3:12,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러분 사도바울은 그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잡기 위해서 달려가는데, 그것이 물질이든 관계이든 성공이든 승진이든 여러분 이 땅에서 무언가를 잡기 위해서 달려가는데 그럼 바울이 잡고자 한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하나님의 손이 닿아 있는 그곳, 하나님의 마음이 닿아 있는 그곳에 바울이 먼저 달려가서 주님께 사로잡혀서 쓰임받기를 원했던 그런 간절한 기도의 어떤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 손에 잡힌 주님의 온전한 제자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그런 이야기가 있죠. 한 신사가 고속도로를 차를 타고 달려가는데 보니까 옆에 갑자기 닭 한 마리가 슝 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너무 신기해서 그 닭을, 닭을 따라잡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먼저 가다가 갑자기 한 농가로 쑥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농가에 들어갔습니다. 주인을 만나서 혹시 빠르게 달리는 닭을 봤는데 당신 닭이요? 그랬더니 제 닭입니다. 이 주인에게 그럼 제가 천불을 드릴 테니까 이 닭을 파십시오. 그랬더니 안팝니다. 그러는 것입니다. 조금 어수룩하게 본 농부가 뭔가 물정을 아나 보다 생각을 하고 그러면 2천불 드릴 테니까 파십시오. 아니 안 판다니까요. 이 농부가 보통 대단한 농부가 아니다 생각을 하고 그럼 제가 만 불을 드릴 테니까 천만 원 드릴 테니까 그 닭 한 마리 파십시오.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농부가 버럭 화를 내면서 아니 안파는 게 아니라 못 판다니까요 도대체 잡혀야 팔지요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닭을 뭐라 그러는지 아십니까? ‘무용지닭’ 아무 쓸모없는 닭이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부르심 받았는데 여러분 정말 주님의 손에 붙잡혀서 사도바울이 간절하게 고백했던 것처럼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럼 주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서지 아니하면 여러분 어떻게 보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도 영적으로는 정말 우리 삶의 본질적인 모습은 어쩌면 허물과 죄로 죽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부족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던 이유는요. 그는 악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세상과 편리해서 그냥 세상에 휩쓸려서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죄를 거스려서 살아갔습니다. 유다서 14절, 15절 말씀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유다서 1:14-15,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악한 세대를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을 성경은 선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제가 구약 성경을 통해서 에녹이 도대체 어떤 예언을 했을까 좀 찾아보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것 중에 하나는 여러분 에녹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무드셀라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무드셀라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 무투, 창이라고 하는 단어와 셀라 던지다라고 하는 히브리어의 합성어 던져진 창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기의 전쟁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고대 사회의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 신들의 전쟁이고 신의 심판인데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창을 던져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아들의 이름으로 부른 거예요. 여러분 사랑하는 아들을 낳고 자녀를 낳고 아무 이름이나 붙여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 자녀가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살기로 소원하면서 그 이름을 지어주는데 여러분 예를 들어서 제가 아들을 낳고 백시니까 제 아들 이름을 핵폭탄 이렇게 지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그 아들의 이름을 통해서 여러분 성경에 가장 오래 산 인물이 누구입니까? 무드셀라예요. 몇 년 살았습니까?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거의 천년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천년 동안 그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이 악한세대를 거스려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여러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간절히 초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 년 동안 기다려주신 거예요. 여러분 그 무드셀라가 죽는 그 해에 바로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심판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의 메시지가 아니라 인류가 정말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부르시는 간절한 사랑의 메시지, 천년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바로 오늘 4절 말씀이죠. 여러분 4절 말씀이 원래 헬라어 성경에는 대라고 하는 그러나라고 하는 접속사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글 성경에는 누락이 되었는데 혹시 여러분 성경과 펜이 있으시면 4절 앞에다 그러나라고 기록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에베소서 2:4,
4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글 성경에는 누락이 되었는데 혹시 여러분 성경과 펜이 있으시면 4절 앞에다 그러나 라고 기록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4절 말씀을 그런 나를 넣어서 우리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본문 4절 말씀 시작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죽은 존재이지만 죄와 허물로 인하여서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러나 여러분이 그러나, 의 위대한 반전을 바울이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베푸신 그 위대한 사랑 오늘도 정말 성령의 거룩한 생수와 같이 우리의 삶을 채워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그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상속자로 세워주신 여러분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저는 모태 신앙으로 자라서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공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하는 목회자였지만 그럼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그 깊이를 경험한 것은 선교 현장에서 정말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사실 오늘은 제가 베델교회, 이민교회 목회자로 설교하기보다 제가 사랑의 교회, 또 후원받는 선교사로서, 캄보디아에서 사역했던 이야기를 간단하게 드리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저희는 2014년도에 캄보디아의 선교사로 가서 저희가 2007년부터 캄보디아에 있는 cus라고 하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과는 좀 사뭇 다른 모습이죠 우리 캄보디아에 있는 한 50만 명 정도 되는 무슬림 공동체 소수 민족이 있는데, 저희는 그 민족을 전도하기 위해서 선교사로 들어가서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 이외에 저희가 이제 처음 들어가서 공용어를 배우면서 캄보디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강의하던 캄보디아, 유니버스 스페셜티스라고 하는 현지의 대학인데요. 이 대학의 문화 교수로 제가 학생들을 가리키게 되면서 이것은 우리 학생들에게 대학생들에게 복음 전하라는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부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학장님이 그렇게 경고하시는 거예요. 백 선생님 제가 크리스찬인 거 아는데 우리 학교에 와서 함부로 복음 전하지 마십시오. 우리 클라스에 들어가시면 매 클라스마다 우리 불교 승려들이 한 교실마다 있는데, 복음 전하다가 그들이 가서 이렇게 신고라도 하게 되면 학교도 불이익 당하고 당신도 쫓겨날 수 있으니까 전도하지 마십시오. 이런 경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수업시간에 전도하려고 하면은 이 스님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거예요. 제가 이 스님들 때문에 전도 못해서 되겠나 하루는 저희 문화하기 전도하기 아주 좋은 과목입니다. 문화의 근본이 종교이고 그 종교 중에서 기독교에 관해서 강의할 수 있는 한 줄을 할당해서 내가 정말 복음에 관해서, 기독교 2천년 역사와 한국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렸는지 좀 전하면서 예수님을 전해야 되겠다. 마음을 먹고 저희 아내에게 제가 기도 부탁했습니다. 오늘 좀 전도하려고 하니까 함께 기도해 주세요. 이렇게 부탁하고 학교에 갔는데 그럼 그날따라 우리 스님들이 다 보통은 이렇게 흩어져서 뒤쪽 자리에 앉는데 제가 교실 문을 열었는데 보니까, 전부 다 앞쪽으로 전진 배치를 하셨더라고요. 귀신같이 알아듣고 오늘 또 전도하는데 영적인 방해가 심하구나. 제가 마음껏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참 전도할 기회를 얻지 못해서 마음에 너무 불편한 마음이 있었어요. 하나님 이 불교 성도들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제가 2007년도였는데 그해 12월이 캄보디아가 굉장히 좀 시원했습니다. 날씨가 굉장히 저온이 내려가는데 2007년도 12월 17일, 날짜도 기억해 제가 그 몇 주 전에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불교 승려들 다 지금 날씨도 기온이 많이 내려가고 추워지는데 다 감기 걸려서 못 오시게 하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복음 전하겠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에게 복음 전하겠습니다. 근데 정말 2007년도 12월 17일에 새벽에 눈을 떴는데 몸이 상쾌한 거예요. 날씨가 굉장히 기온이 내려간 것입니다. 제가 그 며칠 뒤에 이렇게 신문을 보니까 캄보디아 사람들이 얼어 죽었다. 이런 기사가 신문에 났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기온이 17도였습니다. 제가 학교 가서 물어봤어요. 교수님들이 아니 이게 얼어 죽었다는데 무슨 얘기냐 그랬더니 그런 게 아니고 아마 심장마비로 죽었을 거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니까 늘 열대 30도 이상의 기온이었다가 하루 이틀 아주 내려간 적이 있는데 제가 그 17일 아침에 눈을 뜨는데 갑자기 마음이 상쾌해지고 아침에 큐티를 하면서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오늘이다. 이런 음성이 들리는 하나님이 오늘 정말 이 불교 승려들 다 감기 걸려서 못 오겠구나. 오늘 복음 전해야 되겠구나. 제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저희 아내랑 아침 식사하면서 묵상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정말 전도해야 되니까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제가 평소보다 좀 일찍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여러분 교실 문을 딱 열었는데 충격 받은 것이 아무도 와 있지 않고 불교 승려 7명만 딱 와서 앉아 있더라고 그럼 제가 마음속에 하나님 이게 뭡니까? 도대체 오늘 새벽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오늘이다. 음성을 주셨는데 그게 제 생각일 수 없는데 하나님 이게 뭡니까? 너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제가 모교회가 저 혜화동에 해성교회가 제모교회인데 해성교회에서 우리 청년들이 와서 단기 선교하겠다. 무슨 사역을 할까 고민하다가 우리 대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리키는 사역을 합시다. 우리 케이팝 K문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래서 한글 반을 시작하기로 학장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글반을 오픈하려고 하는데 스페셜 코스로 우리가 오픈을 하면 학교와 교수가 이렇게 등록비를 조금 나눠서 받는데 내가 그거 필요 없으니까 50명만 딱 한 클래스 만들어 주십시오.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대신 불교 승려는 등록받지 마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드렸는데 저희 학장님이 전과에 전 학년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너희들 훌륭한 사람 되려면 한국어 배워야 된다. 그래가지고 55명 짜리 클라스를 세 클라스를 만들어 주셨어요. 등록비를 꽤 많이 받으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첫 시간에 수업을 들어가 봤더니 불교 승려들이 또 와서 앉아 있는 제가 달려가 가지고 아니 학장님 제가 승려들은 등록받지 말라고 부탁드리지 않았냐, 그랬더니 이분들은 그냥 와서 등록하기 때문에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다. 그냥 가르쳐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럼 단기 선교 팀들이 와서 일주일 동안 한국어 가르치는데 여러분 일주일 한 이틀만 가르치면 한국어를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국어 자모음이 몇 개입니까? 모음 10개 자음 합하여 24개죠 10개, 자음과 14개의 모음 갑자기 생각도 잘 안 나네요. 24개의 자모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캄보디아어는 자음이 33개, 거기에 받침 자음까지 외우려면 66개를 외워야 됩니다. 모음이 또 23개가 있어요. 그럼 독립 첨자라 그래서 11개가 있어 12 132자를 외워야 그 글을 읽을 수 있는데 이 캄보디아 형제들에게 24개의 알파벳으로 된 한글을 가르치면은요. 불과 한 하루 이틀이면 다 읽을 줄 압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한글 가르치면서 케이팝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케이팝을 어떻게 가르치냐면 이런 노래 가르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한국어면 다 케이팝이니까, 열심히 외워서 막 우리 캄보디아 친구들이 부르고요. 금요일 날 초청해서 캄보디아어로 번역된 찬양을 가르쳐주고 우리가 왜 왔는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신앙 간증을 하면서 우리가 복음 전하자 계획을 가지고 제가 목요일 오후에 이 한글 반 클라스에 갔더니 가장 오른쪽에 얼굴을 들고 있는 친구가 라다나라고 하는 친구인데요. 이 친구가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로쿠로 선생님, 본 프로크너 아이나 제 형 어디 있어요? 내가 니 형을 어떻게 아니? 니 형이 누군데? 그랬더니 이 단기 선교 팀을 인솔해온 성중기 전도사님 지금은 목사님이신데요. 더 웨이츠를 개척한 목사님이신데 그 성중기 전도사님을 자기 형이라 그러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참 신비한 얘기 한국어로나 영어로나 캄보디아어로 서로 소통이 안 되는 두 분이 불과 나흘 만에 호형호제하면서 전도사님과 스님이 이렇게 형제라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이 라다나를 좀 꼭 초청해서 우리가 금요일 날 전도 만찬하면서 좋은 식사 고기와 이렇게 식사를 많이 준비해서 대접하는데 이 라다나 좀 먹였으면 좋겠어요. 선교사님 정말 불쌍하고 이렇게 사랑에 굶주린 것 같은 친구인데 좀 초청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첫날부터 승려들은 올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전도사님이 자꾸 오 초청하자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전도사님 생각해 보세요. 이게 다 불교 학생들인데 승려가 뒤에 와서 앉아 있으면 우리가 예수님 전하고 결신하자고 손들라 그럴 때 누가 손들겠습니까? 전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랬더니 알았다. 나는 그런 승려가 아니라고 그러시면서 자꾸 이야기하시니까 제가 선교사로 어쩔 수도 없고 그 대신 와서 전도할 때는 위층에 따로 가서 앉아 계십시오. 식사는 같이 하는데, 그래서 저희가 한 38명 정도가 전도 만찬에 오겠다고 이렇게 같이 참석을 했고요. 여러분 그중에서 18명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개척이 되어버렸어요. 마지막에 이 승녀 라따나와 우리 성중기 오른쪽에 계시는 분이 성중기 전도사님이신데 그 당시에 전도사님 지금 목사님이십니다. 이분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제가 중간에 통역하면서 상당히 좀 곤란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마지막에 우리 송중기 전도사님이 라따나에게 그러는 거야. 라따나 내가 소원이 하나 있어. 우리 백 선생님 원래 성경 잘 가르키는 성경 선생님인데 난 니가 좀 우리 백 선생님이랑 성경 공부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가슴이 철컹했습니다. 아니 스님이랑 성경 공부를 하라니 내가 이렇게 번역해야 되겠다. 라따나 나에겐 소원이 하나 있는데 성경은 좋은 책이야. 나는 니가 성경 열심히 읽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통역을 하려고 생각을 했는데 저도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이미 벌써 통역을 다 해버린 겁니다.
 
그러고 나서 더 놀라운 것이 이 친구가 내 형 그러는 거예요. 내 형!!, 성경 공부할게요. 그럼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기 팀들을 보내놓고 그날 저녁에 밤에 올라가서 제 방에서 이게 도대체 뭔가?? 아니 스님이 성경 공부하겠다니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앉아 있는데 마치 하나님이 저를 막 책망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백 목사야 백 목사야 그날 그 아침에 오늘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 다른 대학생들이 있으면 복음을 들을 수 없는 그 불교 승려들 7명을 하나님이 모아주셨는데, 여러분 저는 불교 승려들이 제 전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선교사로서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러분 늘 미워하면서 저분들만 없으면 내가 전도할 텐데 저분들만 없으면 내가 잘 정말 사역을 할 수 있을 텐데 여러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러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럼 하나님의 그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는 거죠. 하나님은 그 승려들도 사랑하고 변화되기를 원하셨다는 그래서 그날 그 아침에 모아주시고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불순종했더라고요. 그럼 그때 밤에 정말 펑펑 울면서 하나님 내가 다시는 인생의 선을 긋고 담장을 쌓고 누군가를 그 담 밖으로 밀어내지 않겠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사랑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헌신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그 누구도 우리 인생에 그어진 선 밖으로 밀어내어서 여러분 우리가 미워해도 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을 사랑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용서는 감정이 풀어진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여전히 분노하고 미워하지만 우리 마음에 분노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위하여 독생 하신 아들을 내어주시고, 그 피로 죄를 사하셨기에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이 용서예요. 여러분 이 아침에 용서를 선포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풍성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다음 사진에 보시면 그래서 제가 우리 불교 승녀랑 캄보디아에서 1대 1 제자 양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대일 제자 양육을 하면서 보니까 어느 날은 우리가 몰래 나랑 너랑 몰래 성경 공부하는 거다 분명히 얘기했는데 누군가를 또 데려왔어요. 그래서 누구냐 그랬더니 아니 저래서 지금 승려가 되려고 제 밑에서 훈련받는 제자인데 제가 선생님이랑 제자 훈련받으니까 얘도 좀 제자 훈련 받아야 되지 않겠냐고 데려와 가지고 저희 교회로 데려오고요. 전도도 많이 해왔습니다. 제가 어느 날은 보니까 저를 초청장을 가져왔어요. 뭔가 봤더니, 깜뽕 잠에서 가장 큰 절을 짓고 봉헌 예배를 하는데, 저보고 오라는 것이 주지 스님이 보낸 초청장인데 그냥 가는 게 아니라 50불을 봉헌을 해야 돼요. 절에다가 돈을 줘야 됩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보낸 선교 헌금으로 살아가는 선교사가 그 돈을 절에다 50불 헌금한다.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안 가야 되겠다. 이야기를 했더니 저희 아내가 듣더니 여보 그러지 말고 캄보디아 목사님들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제가 전화를 걸어서 여쭤봤더니 교수님, 교수님 그 꼭 하셔야 됩니다. 우리 깜뽕잠에서 교회를 등록하거나 개척하려면 종교성에 종교국의 허가를 받아야 되는데 그 주지 스님이 종교계 사인해 주는 국장이기 때문에 꼭 가서 좀 인사하시고 선교사님 후원금으로 가지 마시고 제가 우리 깜뽕짬 교회협의회 회비로 드릴 테니까 꼭 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가서 그 공원 예배에 참석을 했어요. 가서 보니까 우리 라타나라고 하는 승려가 저를 이렇게 쭉 데리고 다니면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친구가 나타나는데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소개하는데 이렇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 로우 그룹의 프리아산 노사스마크겠습니다. 우리 백 선생님은 기독교의 스님이셔” 이렇게 소개를 하는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나중에 알아봤더니 뿌리 꽁빌 목사라고 하는 단어를 모르고 성경을 읽다 보니까 프리아 성 스님이라는 단어를 캄보디아 성경에서는 제사장으로 번역을 했는데 구약 성경을 읽다가 같은 어떤 스님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또 이렇게 보니까 단기 선교팀들이랑 얘기하면서 너는 불교의 스님이고 우리 성중기 전도사님은 전도사님 쎄임이고 우리 백 목사님은 그거보다 조금 높은 목사님이야.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까 저를 무슨 주지스님 정도로 생각을 하고 제가 얘기했어요. 라따나 니가 나보고, 기독교의 스님이라고 얘기했는데 너도 불교 스님 그만하고 기독교 스님 나랑 같이 하자. 이렇게 초청했더니 이 친구가 25살이 되기 전까지 그전에 파괴를 하면 귀신이 자기를 죽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25살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게 23살 초 무렵이었는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가지고 갑자기 어느 날, 파괴를 하고 나타났어요. 그리고 하는 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정말 변화될 그 승려들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죠.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거의 사찰 집사님처럼 일도 하시고 저희가 이제 안식년으로 들어오면서 운전을 가르쳐서 또 필리핀에서 오신 선교사님, 학교를 하고 계시는 그 학교 운전기사로 취직했다가 나중에 신학 공부까지 하고 전도사로 학교에서 사역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대로
 
*로마서 5:8,
8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온전하고 깨끗해져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여전히 무너지고 죄 가운데 정말 우리의 삶이 그렇게 더럽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또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정결케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 사랑을 기억하시고 정말 경계가 없는 사랑, 주인을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분들을 품고 사랑하는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약
사도바울의 고백과 권면대로 하나님 에베소 성도들이 그 처한 상황 속에서 우상과 물질과 향락으로 타락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그 풍성하신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셨으니 진정으로 감사하며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우리도 그 위대한 사랑으로 살며, 우리 주변에 용서해야 될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으로 넉넉하게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남은 삶이 정말 시대와 이 사회를 품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간구하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신다는 의미는, 먼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인간들이 새 생명을 얻는데, 이 새 생명은 어떤 인간의 공로나 행위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셨고(made us alive), 일으키셨으며(raised us up), 앉히셨다.(made us sit). 하나님은 이렇게 구원을 단계적으로 이루시며 끝까지 보전하고 완성하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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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8월 12일)
제목: "믿음의 기반"
말씀: 고린도전서 2:1-5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대표기도: 김도훈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이충희 목사님-초빙(Blessed International 교회)
ㅡㅡㅡㅡㅡㅡ

*고린도전서 2:1-5,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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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할렐루야. 여름 토요 성령 집회 그 여섯 번째 시간 함께하시는 모든 영 가족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으로는 신약 264면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 그 말씀을 우리가 한 절씩 교독하고 마지막 절은 합독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오늘은 미국 la 블래스트 인터네셔널 처치를 섬기시는 우리 라이언 이충희 목사님께서 “믿음의 기반”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주시겠습니다. 목사님을 보내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로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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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희 목사님-초빙(Blessed International 교회)
네 감사합니다. 제가 12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가가지고 어느새 40년, 4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때 당시에 변호사가 돼서 흔히 우리 부모님들이 좋아하시는 ‘돈을 많이 버는 장로가 되자’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우리 오정현 목사님을 제가 청년 시절 때 만나면서 이렇게 목사로 헌신을 하게 됐습니다. 어떨 때는 오 목사님이 좀 미안해하실 때도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저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아멘!!. 목사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지난 40년, 몇 년 동안 이렇게 미국에서 살아왔는데요. 물론 저희 부모님들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고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지만 저는 오 목사님한테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목사님을 거의 30년 이상 제가 옆에서 지켜봤는데 진짜 사랑의 교회 담임 목사님이신 게 확실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사랑의 교회에서 쭉 있다가, 남가주사랑교회에서 쭉 있다가 성령 체험을 하고 주위에서 이제 다민족 성경 사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는 성경 은사들도 잘 모르고 성령님, 깊이를 잘 몰랐는데 그동안 지난 한 20년 동안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성령 사역을 한다고 그러니까 주위에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이 저희들을 찾아오셔서 기도를 받으세요.

예를 들어서 자녀들이 마약 중독 때문에 벗어나기가 어려운 분들도 있고 부부 관계가 어려운 분들도 있고 그리고 또 저희들이 저랑 저희 와이프가, 이제 약 30개국을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사역을 하는데 사역할 때마다 그런 어려운 분들이 찾아와서 기도를 봤습니다. 특별히 악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불치의 병 걸린 사람들이 찾아와서 기도를 받을 때가 많은데, 한 번은 제가 퍼토리골을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이 이렇게 쭉 줄을 서서 기도를 봤는데 어떤 여인이 자기 남편이랑 울면서 저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기도 제목이 뭐냐고 이제 통역관을 통해서 물어보니까 자기는 고아로 어렸을 때 컸기 때문에, 일평생 원하는 것은 가정을 갖는 것을 원했는데 지금 결혼한 지가 20년이 됐는데, 유산을 벌써 8번에서 9번 했고, 아이를 못 갖는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마흔이 넘어가는 나이에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들었을 때 과연 내가 이분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를 해줘야 되는지 이런 고민들을 한 적이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이런 많은 분들이 찾아왔을 때 이런 고민들을 갖고 찾아왔을 때, 제가 이런 고민을 혼자 많이 해봤어요. 물론 모든 게 병 고치는 것과 병 낫는 것 이런 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 있지만 나로서 하나님과 어떻게 최선을 다해서 파트너 십을 할 수 있을까? 그거를 놓고 많이 고민하면서 제가 깨달았던 게 바로 오늘 이 성경 말씀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이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충만한 교회였어요. 그런데 이 교회에 그렇게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여기 보니까 다툼과 분열 분쟁이 생겼다고 얘기를 합니다. 1장에 쭉 보면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나는 개바에게 속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을 쭉 보면 그런 분열에 대해서 얘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강력한 방식으로 성령님을 부어주셨고, 그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사 안에서 작용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도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일이, 안 좋은 일이 교회 안에서 생기고 있었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속아서 경쟁심과 분열 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을 할 수가 있을까요? 절대 이 사랑의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경쟁, 시기, 질투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죠. 그런데 그때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그리스와 로마 세계 그 당시에는 순회하는 철학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피스트였으며 종종 내용보다는 프레젠테이션이 더 세련됐는지 안 됐는지 거기에 더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하다 보니까 실제 그 사람들한테 중요했던 것은 본질이 아니고 스타일이었습니다. 스타일 누가 더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까 그 스타일이 그 사람들한테는 더 중요했던 것이죠. 근데 이런 사회에서 살다 보니까 어느새 이 고린도 교인들도 자기네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세상적인 생각들이 교회에 스며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세상적인 지혜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2장, 3장을 보면 지혜에 대한 많은 얘기가 있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적인 지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지혜를 추구하다 보니까 본질을 점점 잃어가고 그 스타일을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는 바울이 좋아. 바울은 아주 간단하게 파워풀하게 설교를 하고 설교를 할 때마다 이적들이 따르고 병도 낳고 그래. 그럼 반대쪽에서는 바울은 너무 지루하고 길게 설교해가지고 그 유두고 알잖아 유두고 그냥 밤새 끊지 않고 그냥 설교해가지고 유도고가 떨어져서 죽었잖아. 막 이런 얘기도 하고, 서로 이렇게 스타일이랑 겉면에 있는 거,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에 포커스가 되기 시작하니까 이 본질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외적인 것, 물질적인 것, 육적인 것들 세속적인 것 이런 것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마귀가 들어와서 교회에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아멘. 그래서 다툼이 심하고 그래서 저도 이렇게 교회를 보면서 또 저도 설교자로서 담임 목회자로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은 이런 것을 방치하고 어떻게 하면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요즘에 인터넷에는 이제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가 있죠. 그러면 흔히 성도님들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어떤, 어떤 목사님은 말씀을 진짜 잘 쪼갠다고 그런 말씀 들어 보셨어요? 근데 저도 그래서 이제 한 번 들어봤어요. 나도 이제 배워야 되니까 근데 어떤 목사님들은 말씀을 쪼개고, 쪼개고, 쪼개다 보니까 남는 게 없더라고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근데 여기에서 보면은 사도 바울이 얘기하는 게 뭐냐 하면은 나는 유창하게 설교하는 게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를 알고, 십자가의 돌을 프리치하는 게 나한테는 중요하다고 사도 바울은 2장에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우리의 믿음을 두어야 된다고 얘기를 하고 계신 것이죠. 인간의 지혜는 우리가 정복해야 하는 것, 주로 죄와 결과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지혜만이 그런 것들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장에 복음 메시지의 핵심, 그 중심 성을 얘기하면서 우리가 다시 그 십자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돌아가야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그 십자가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죠. 아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거기에서 살아나신 그 십자가에서만이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점점, 우리가 십자가에서 멀어지면은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아멘.

저도 설교자로서 그래서 이 지혜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가지고 교회에 오는데 어떻게 하면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기반으로 십자가를 기반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설교를 아름답게 해보고도 싶고, 말도 좀 유창하게 해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제가 중고등부 사역을 오래 하다 보니까요. 애들한테 얘기하는 것처럼 얘기할 수밖에 없게 그거는 잘 되는데, 어른들처럼 유창하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결국 이 말씀을 통해서 제가 위로를 많이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로 돌아가서 그 십자가의 능력이 결국은 교회에 있느냐? 없느냐?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나는 우리의 주요 임무가 그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하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 메시지에 힘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성령님의 사역 그리고 말씀의 사역으로 이렇게 나눠서 얘기할 때가 있어요. 말씀 사역하는 교회, 성령 사역하는 교회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생각해 보면 성령 사역이 말씀 사역이고 말씀 사역이 성령 사역입니다. 아멘. 뭐냐면 결국은 말씀은 누가 쓰셨습니까? 성령님이 쓰신 거고, 말씀을 다 보기 위해서는 성령님이 필요하고 또 말씀을 보고 묵상을 하다 보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는 거잖아요. 그래가지고 저는 이 성경 사역, 사람들이 얘기하는 성경 사역을 하다 보니까요 진짜 사람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이 임하시면 말씀 중심으로 삶이 변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잖아요. 진짜 이게 성령님이 임하셔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마귀가 카운터 핏을 하는 것인지 그 열매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셔서 하는 일들은 사람들을 그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요. 말씀의 핵심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요한복음 14:26,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아멘. 무슨 말씀입니까?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초점을 맞추고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춘다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의 핵심은 뭡니까? 십자가라는 거죠. 아멘. 16장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16장 요한복음 16장 13절부터 14절.

*요한복음 16:13-14,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유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내 일을 너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아멘. 결국 성령님을 알고 성령님을 체험하고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게 되고 내 삶 가운데서 예수님이 나타나고 내 삶 가운데서 십자가가 나타난다는 것이죠. 아멘. 그러면 그 십자가가 어떻게 나타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성령님은 우리 상기케 하시고 다시 기억나게 하시고 그것을 그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저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은혜가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을 때는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은혜가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는 말씀을 순종하면 순종할수록 그 은혜를 더욱더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멘. 그래서 예수님께서 결정적인 얘기를 누가복음 9장 23절에 하시죠.

* 누가복음 9:23,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려거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뭐라 그러십니까?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아야 된다고, 예 결국 뭐냐 하면은요 우리가 말씀의 핵심인 십자가로 돌아가서, 십자가를 사모하고 사랑하고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우리가 살아갈 때에는 성령님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난다는 거예요. 아멘. 아멘이 조금 소리가 적은 거 보니까 아직 그 삶을 안 살고 계신 분들이 있나 본데요. 오늘 그 삶을 사시면서 성령님의 그 능력에 나타나심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아멘.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사모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을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도 목사로서 또 사역자로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과 파트너를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매일매일 깨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육신을 죽이고, 십자가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그 팩트를 그 진실을 가지고, 매일매일 살아나갔을 때, 그 십자가의 능력이 거기에서 나타난다는 거예요.

하루는 저희 교인이 저한테 연락이 왔는데 자기 아들이 이제 한 40대 중반 청년이라고 그러긴 그렇고 아저씨인데, 40대 중반 요새는 뭐 60대 70대도 청년이라는 소리를 많이 하더라고요. 근데 40대 중반 아저씨가 이제 자기 아들인데, 갑자기 이 암이 걸렸다고 연락이 왔다고 근데 그래서 이제 암 3기가 됐는데, 이 피부 피부암이 있죠, 스킨 캔슬, 스킨 캔슬인데 그게 이제 완전히 레어 포 스킨 캔슬, 아주 특이한 스킨 캔슬에 의해서, 키모드 받을 수 없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그렇게 이제 의사가 얘기를 했다고 그래서 저한테 연락이 와서 그럼 데리고 와라. 그래가지고 이제 같이 기도를 하자. 그래서 우리 저랑 우리 와이프랑 또 우리 교회 치유하는 사역자들이랑 같이 기도를 하는데, 제일 처음에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 아무게씨는 예수님을 믿습니까? 교회를 다니십니까? 그러니까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자기가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었는데, 지난 한 10몇 년 동안 교회를 안 다녔다고 그래서 왜 교회를 안 다니시게 됐습니까? 그랬더니 자기 라이프가 자기의 삶이 괜찮았었는데 갑자기 자기 사랑하는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티네이저가 되면서 자기는 동성연애자라고 발표를 했대요. 그래가지고 이 아버지가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입은 거예요. 미국 사람인데 그래가지고 근데 자기 아들을 너무 사랑은 하는데 성경은 동성연애자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를 합니까? 죄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맞지가 않으니까 자기 안에 이제 고통이 있고 스트로글이 생긴 거예요. 왜냐하면 동성연애의 삶을 사는 사람은 결국은 회개를 안 한 사람이기 때문에 천국을 갈 수가 없잖아요. 근데 자기가 너무 사랑하는 아들인데 그 아들이 천국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자기가 믿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거예요. 그래가지고 동성연애를 그래도 이렇게 지지하고 믿는 교회도 다녀봤는데 아무리 달려봐도 자기가 성경을 읽으면 이거는 죄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계속 느끼니까 더 이상 교회를 못 다니겠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10년 전에 교회를 떠났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성도님, 힘드신 건 알지만 교회를 떠나시면 절대 안 됩니다. 교회로 다시 돌아가셔서 아들을 위해서 중보를 하셔야지 교회를 떠나면 그거는 성도님한테도 안 좋은 거고 아들한테도 더 안 좋은 거라고요. 아드님이 다시 예수님 앞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위해서 그 가능성이 만약 있다면 성도님이 금식을 하시면서 기도하셔야 된다.”고 회개하시고 먼저 돌아오셔야 된다고 그랬더니 눈물을 흘리시면서 우시더라고요. 내가 우리 아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회개를 하시고 다시 예수님한테 자기 삶을 드리고 같이 기도하고 그 병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그 아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고 진리를 알고 예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같이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기도를 하고 이제 집에 보냈는데 3주 후에 연락이 왔습니다. 3주 후에 이제 병원에 다시 암의 상태를 보기 위해서 갔는데 ct 스캔을 찍어봤더니 암이 싹 다 없어져 버렸더래요. 할렐루야!!! 아멘. 저도 너무 감사하고 놀랐어요. 제가 뭐 특별히 한 것도 없고요 다시 그분을 십자가로 앞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춰준 것였고 성경이 말씀하는 그대로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그러잖아요. 그 기도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가 또 일어나서 저한테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보고 그 십자가의 삶을 살면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서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제가 한 번은 성경을 읽다가 이제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그 장면을 보면서 마리아가 이제 예수님의 시체를 보러 가죠. 근데 이제 주일날 아침에 갔더니 시체가 없고 천사들만 있었고 거기서 울면서 있는데 요한복음 20장에 이런 말씀이 나오는데 울면서 거기 있는데 그때 예수님이 바로 자기 옆에 나타나신 거예요. 그런데 요한복음 20장 14절에 이렇게 말씀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20:14,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인 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의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 지기인 줄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든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다.
-마리아가요 그 장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옆에 서 계신데 모르는 거예요. 그 동산 지기인 줄로만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갑자기 성령님이 제 마음에 이런 마음을 주신 거예요.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성도님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옆에 계시고 우리 안에 살아계신 거를 모른다고,,, 그래가지고 우리가 이런 찬송을 하잖아요. 살아계신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이렇게 찬양을 하고 집에 가서는 걱정 주심을 하시잖아요. 교회에 와서는 막 짐을 싸가지고 와가지고 자기 문제 다 풀어놓고 기도하고 걱정 근심 다 풀어놓고 거기까진 좋은데 그걸 또 다시 다 싸가지고 짊어지고 간단 말이에요.

♬살아계신 주가 내 옆에 있고 내가 살아있으면 사실 우리는 걱정 근심이 없어야 된다는 게 맞는 말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찬양을 하고 그런 고백을 하는데 아직도 우리가 살아계신 주님을 잘 모른다는 거예요. 경험을 많이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는 그 살아계신 주님이 내 옆에서 나를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실 거라는 것을 아직 믿지를 못하고 있어요. 조용한 거 보니까 좀 찔리시는 부분들이 있으신가 봐요. 제가요 이제 50대 들었으니까 흰머리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40대 한 중반부터... 그러니까 이제 저희 딸이 저를 너무너무 사랑해가지고 머리를 이제 흰머리가 보이면 하나하나씩 뽑아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아빠 오늘도 두 개 뽑았다 그러고 이렇게 뽑는데 이제 어느 날 보니까, 더 이상 안 뽑더라고요. 그래서 야! 딸아, 이리 와서 머리 좀 뽑아줘. 그러니까 더 이상 뽑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너무 많아가지고 아빠 포기해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뒤쪽으로 좀 하얀 머리가 있는데, 포기를 했는데 근데 가끔 가다 신경이 쓰여요. 내가 뒤쪽에 있으니까 흰 머리가 몇 개가 있는지를 알고 싶은데, 모르니까 그래서 하루는 그걸 갖고 이제 생각을 하는데요. 여러분, 제가 흰머리가 제 머리카락 안에 몇 개가 있는지 전 잘 모르지만 누구는 아시겠어요? 하나님은 아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시거든요. 오늘도 이제 좀 이렇게 저도 이제 저희 아버님이 이제 머리카락이 많이 없으시기 때문에 또 그런 것도 걱정이 되더라고요. 샤워할 때 머리카락이 빠지면 혹시 오늘 몇 개나 빠졌을까? 저는 몰라도 하나님은 정확하게 아십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아는지에 대한 한계가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신다는 겁니다. 아멘. 그런데 보세요. 이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3,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그럽니다. 무슨 얘기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짐을 안 주신다는 것이죠. 아멘. 그러면 이거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무슨 뜻이냐면 어려운 시험이 우리한테 다가왔을 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시는 거냐면 이 시험은 네가 충분히 감당할 걸 난 안다 이거예요. 너는 모를 수 있지만 나는 너를 알아. 너는 니 믿음으로 나와 함께 이 시험을 감당할 수 있어. 라고 하나님께서는 얘기하신다는 거예요.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옆에서 이렇게 음성을 들려주시고 우리랑 함께하시고 우리가 모든 것을 승리하고 이길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다 해주셨는데요. 아직도 우리가 어떨 때는 패배자 같이 살고 있고요. 낙심하면서, 실망하면서 그러다 보니까 요즘에는 디프레션이 많더라고요. 우울증, 조울증 그렇죠. 저희 사역하는 데도 우울증 때문에 조울증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고 참 힘든 사람들이 많아요. 특별히 어린 학생들 중고등부 학생들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그런 우울증에 빠지는 학생들이 종종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부모님들 보고 다 그런 사람들 저희 교회 데리고 오세요. 그래요 왜냐하면 저는 이 십자가의 능력을 믿거든요. 그 사람들이 십자가 앞으로 돌아오고 그 십자가의 삶을 살면 그 사람들 삶 가운데서 그 능력이 나타난다고 저는 믿어요. 아멘. 그리고 실질적으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아무 약도 안 먹고 이제 그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이겨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저희들은 이 복음의 단순성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런 믿음으로 살아야 되고 사람들을 십자가로 인도해야 됩니다. 그러면은 성령님이 임하시고 말씀이 살아서 우리 삶 가운데서 운행을 하시면요. 그 말씀이 살아서 운행하시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오 목사님을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봤는데요. 사모님이랑 거의 이렇게 다투시는 적이 한 번도 없으신 것 같아요. 너무너무 거룩하셔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사실 뭐 목사들이야 이렇게 다투면 안 되죠. 그렇죠? 우리가 좀 이렇게 열정적인 토론의 시간은 가질 수 있어도,,, 그런데 제가 이렇게 우리 와이프랑 그런 열정적인 토론의 시간을 가지면 성령님이 꼭 찾아오십니다. 꼭 찾아오셔서 저보고 그래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내 아내를 사랑하라 그럼 싫어요. “저는 그리스도가 아니에요.”여자 분들도 마찬가지잖아요. 그쵸?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복종을 하라고. 사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우리가 다 지키잖아요. 이 말씀에 쓰여 진 것만 다 지키잖아요. 그러면은 부흥이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 이고, 말씀 충만은 성령 충만 이기 때문에 거기서 능력이 나타나는 거예요. 목사님 목사님은 제 상황에 안 들어가 보셨기 때문에 몰라요. 우리 남편 이상한 사람이에요. 저보고 찾아와서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희 교회에서도 우리 남편은 마귀인 것 같아요. 막 이러고,,,그럼 저는 뭐라 그러는지 아세요? 자매님 남편을 예수님 섬기듯이 한번 섬겨보세요. 사랑해 보세요. 가면 다시는 상담을 안 오더라고요. 근데 그게 키 인데 그게 키 인데 그 남편을 용서하고, 남편을 사랑해주고 그게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게 성령 충만한 성령 사역이고 말씀 사역이고 말씀이 살아나는 게 능력이 나타나야 되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우리 자식들이 우리를 봤을 때도 엄마 아빠가 맨날 싸우고 다투고 교회는 다니고, 장로님이시고, 권사님이시고 그런데 맨날 싸우고, 다투고 그러면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 능력이 안 나타나잖아요.

제가 중고등부 때 있을 때 사역을 할 때요 제가 중고등부 학생들한테 이런 얘기를 꼭 했어요. 엄마 아빠가 싸우면 그 앞에 그냥 엎드려서 기도를 하라고 통성으로 기도를 하라고 주여 이 죄인들을 용서하시옵소서! 아니 목사님 그러다 맞으면 어떡해요? 보기 힘든 차는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다고 괜찮아 더 큰 상금이 있을 거야.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그거거든요. 사실 부모들이 자기 앞에서 싸우는 거 그런데 그게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산다면 이런 거 완벽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노력은 해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살면 우리 삶의 다른 분야에서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분야에서도 그 능력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아파 그러면 아프면 그냥 기도해. 기도하는데 그 능력이 나타날 수가 있다는 것이죠. 저희 교회 제일 처음에 이제 성령님이 임하시고 이제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 많이 기도하고 그러는데 어떤 학생이 저를 찾아와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가 최대한 성령님 충만으로 살기 위해서 말씀을 그렇게 많이 읽었대요. 그리고 순종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다 보니까 너무너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자기 어머님이 갑자기 유방암이 재발하신 거예요. 그래서 그게 폐까지 퍼져가지고 2주 안에 이제 수술을 하셔야 된다고 그래가지고 그거를 놓고 자기가 막 열심히 기도를 했대요. 새벽에 이 16살짜리 아이가 새벽에 혼자 일어나서 4시, 5시에 일어나서 몇 시간씩 자기 엄마를 위해서 기도를 한 거예요.

그런데 하루는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자기 오른팔이 찌릿찌릿하면서 무슨 전기가 오는 것 같더래요.그래서 이게 심상치 않아서 성령님이 무슨 사인을 주는 것 같아서 그냥 어머니 주무시는 데 가서 그 발에다가 이 손을 놓고 기도를 했대요. 그리고 이제 어머님이 일어나셨을 때 엄마 이런 일이 있어가지고 기도했는데 엄마가 나을 것 같아 그랬더니 에이 쓸데없는 얘기하지 마 이러시더래요. 근데 2주 후에 병원을 가서 ct스캔을 이제 수술하기 전에 ct 스캔을 했는데 이 유방에 있던 암은 싹없어졌더래요. 그리고 폐에 약간의 뭐가 있어가지고 수술을 하기 위해서 그 폐를 오픈했는데 그것도 없어져 버렸더래요. 이게 어떤 목사가 기도한 것도 아니고 장로님이 기도한 것도 아니고 16살짜리 어린 소녀가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는데 그런 능력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이 성경의 말씀은 남녀노소 상관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모하고 그 삶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그런 능력이 종종 나타난다는 거죠.

제가 이제 말씀을 매듭짓겠는데요. 페도 있고 그 기억나시죠? 20년 동안 아이를 부 저는 부임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너무나도 많이 기도했는데, 다들 그냥 아이를 가졌으면 좋겠지만 한 그래도 많이, 많이 하나님께서 저를 도구로 쓰셔서 불임한 자들이 하고 불임 때문에, 어려웠던 자매님들이 아이를 가진 분들이 참 많아요. 근데 이 스토리가 저한테는 제일 큰 스토리였어요. 그래서 저도 이제 그렇게 울길래 와가지고 울길래, 그냥 잠깐 그냥 기도해서 축복의 기도나 해주자 위로의 기도나 해주자 이거는 내가 생각해도 20년 동안 유산을 8번 9번이나 했는데 이게 가능할까 막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손을 얻고 기도를 하는데 성령님이 제 안에서 아주 큰 음성을 들려주셨어요. “선포하라 금년 말까지 이 자매가 아이를 가질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게 이게 뭐야 이거 마귀야 물러가라 막 별 생각이 다 나더라고요. 왜냐하면 이게 상식적으로는 이게 말이 안 되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그리고 괜히 이상한 얘기했다가 괜히 이 교회 초청 또 다시 못 받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고 그냥 계속 기도했는데 또 한 번 울리더라고요. “선포하라” 금년 말까지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이제 그 자매를 놓고 이런 음성이 들리는데 한번 같이 기도하자 남편이랑 일단 배에다 손을 넣고 혹시 용서할 사람들은 다 용서해야 된다. 용서를 못한 것 때문에 성령님의 이게 운행 말씀의 운행하심이 끊길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용서할 사람은 다 용서하고 우리 같이 기도하자 기도했어요. 이제 한 4~5개월이 지났는데 그 목사님한테 와서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 목사님이 그 자매가 4개월 임신이 됐다고 처음으로 3개월을 지난 거래요. 그러더니 결국은 아이를 낳고 또 그 첫 아이를 낳은 다음에도 힘들었는데 둘째까지 낳았어요. 이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특별히 뭐 그렇게 하실 분들은 그렇게 하셔도 되는데, 특별히 산에 올라가서 40일 금식을 하고 뭐 다 그런 거 하셔도 좋긴 좋습니다. 그런데 매일매일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 거기 안에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시면 사실 나타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성령님은 분명히 우리 말씀을 순종하게 만드시고 그 말씀을 순종함 안에서는 엄청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기적과 이적이 나타나고,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나가고, 우울증이 쫓겨나가고 이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

♣요약
하나님께서는 우리 옆에 서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면서 도와주시길 원하시듯이 같이 파트너 십으로 그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시고 승리하게 해 주실 줄 믿고 그 믿음을 가지고, 오늘 같이 기도를 해야 한다. 첫째로 용서하시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다 용서를 하여야 한다. 특별히 고부 관계, 부부관계, 자식들이 잘못한 것들, 다 첫째 용서를 하고, 그다음에 이제 그 어려운 일들을 위해서 같이 기도를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한다. 그 말씀의 핵심인 십자가의 도로 돌아가서 그게 신앙의 기반이 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나갈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불임도 해결되는 것처럼, 믿고 선포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울증, 조울증도 해결주실 줄 믿고 선포하여서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우리 위대하신 하나님보다 더 크신 분은 없으니 주님께서 모든 일을 해결해 주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 체험하기를 소원한다. 광복주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청계산 산상 구국기도회 현장이 갈멜산이 되어서 나라와 민족, 한국교회가 부흥의 세대가 되고, 이번 제 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우리 교회에 초대됨에 감사함을 가지고 우리 나라와 세계가 한 마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고 헌신하여 다음 세대를 키우는 변화의 마중물이 되기를 소원하자.
-전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해 보이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전도의 능력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과 함께 기도가 있어야 나타나게 된다. 또한 자신에게는 그 능력이 없다는 철저한 겸손함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기도를 통하여 주어진다.


▶담임 목사님 마무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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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 주후 2023년 8월 5일)
제목: "그 한마디"
말씀: 요한복음 21:1~4, 15~17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강도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류호근 목사님(순회군선교사, 전 해군종감)
ㅡㅡㅡㅡㅡ

*요한복음 21:1~4, 15~17,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ㅡㅡㅡㅡㅡ
▶할렐루야!!.
먼저 슬픔을 당하신 우리 담임 목사님, 또 저와 신학교 입학 동빈 우리 오정호 목사님과 또 두 형제님, 또 모든 우리 유가족 분들께 마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모든 장례 절차가 죄 은혜 가운데 잘 마쳐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씁니다. 세 번째 사게 됐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부족한 사람을 세워주신 담임 목사님 감사드리고, 또 이 자리에 저희 사관학교 선배님 또 해병대 후배님 등 또 여러분들이 계시고 낯설지 않은 이곳인데, 어제 숙소에서 무릎 꿇고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던 것은 이렇게 어려움을 또 겪으시고, 2년 전에 어머니에 이어서 또 아버님 떠나보내시는 저도 물론 부모님 안 계십니다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하는 마음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성령님께 의지하고 준비된 말씀을 잘 전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6월에 대한민국 최 서북단을 지키는 백령도와 소청도를 다녀왔습니다. 화면에 나올 텐데요. 그 백령도와 소청도에서 정말 엄청난 우리 해병대 여러분들의 수고를 받습니다.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 그 외의 섬들을 지키는 우리 해군 해병대, 육군, 공군 정말 여러분들이 오늘 그러한 주제는 아니지만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군대는 국민의 사랑 속에 큽니다. 사람에게 실수할 수 있고, 넘어지지만 여전히 격려해 주시는 그 사랑에 힘입어서 우리 군대는 열심히 나라를 지킬 것입니다.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말합니다. 잘 모르는 이야기라고,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라고, 그러나 그날 우리 서해 바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에게도, 소중한 어머니, 아버지, 가족, 그리고 동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국을 택했습니다. -끝났습니다. 조국 대한민국을 많이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라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교회가 있고요. 교회가 바로 서야 날아가 있고, 그래서 기도 중에 오늘 짧은 35분 정도의 설교지만은 반드시, 나라 이야기는 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섰습니다. 미국서 목회할 때 스탠포드 대학교 근처에 어느 교회에서 ‘레노바레’ 라고 하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기도라는 책을 쓰신 ‘리차드 포스터’ 목사님이셨는데 저번에 첫 강의의 첫 마디가 “나는 10대에 하나님으로 정말 배고팠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도 귓전에 맴돕니다. 나는 10대에 하나님으로 배고팠다.
 
저는 목마름의 근원이 사랑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신앙과 영성의 근원을 사랑이라고 봐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목마르게 그 사람이 보고 싶지 또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면 더 그 사람이 보고 싶어요. 저는 성령 충만 혹은 목마름의 뿌리가 사랑이다 확신하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닭이 울고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주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심히 통곡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돌이켜 보셨다는 말씀은 누가복음만 나옵니다. 영어 성경의 NIV는 루트 스트레이트 에트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끌려가는 그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 왜 베드로를 보셨을까 NIV 번역대로 똑바로 무섭게 즉시하신 것일까? 그렇게 믿은 내가 나를 배신해서 날카롭게 쳐다보신 것일까? 보시니라고 하는 에네 블레센, 그 원형은 엠블레포 입니다. 안으로 주의하여 보다 눈여겨 살핀다. 기도 중에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를 주의 깊게 바라보신 것은 저 연약한 베드로가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고, 미안해하고 아파할까? 혹 자신을 너무나 미워해서 회복의 기회마저 놓치지 않을까?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눈빛을 주셨다. 그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하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고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그 순간에도 베드로가 완전히 무너질까 봐, 염려하신 예수님께서 네 배신도 있지만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너를 향한 기대는 여전하단다. 하는 눈길을 보내주신 거예요. ‘사랑하는 베드로야!’ 나는 지금 끌려가기 때문에 노래를 볼 수가 없다. 가까이 할 수가 없다. 큰 소리 지를 수 없다. 그러니 Look at me, 나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 눈빛을 보고 나의 사랑을 느껴라. “베드로야 사랑한다.” 저는 이 장면을 제가 상상해 보면 눈물이 자주 나옵니다.
 
어제도 혼자 울면서 설교를 봤습니다. 아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구나. 베드로가 난데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갈릴리에 먼저 와 계신 장면이죠.
 
본문에서 세 번째, 또 숯불이라는 말에 주목을 해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세 번째라는 서수가 두 번 나온다. 먼저 14절에 벌어진 주님께서 세 번째로 나타나셨다 그랬습니다. 또 한 번 15절 이하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냐, 고 물으십니다. 이 세 번이라는 숫자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또 주목할 단어가 있으니 ‘숯불’, 입니다. 숯불 숯불은 요한복음에만 두 번 나오죠. 안나스 대 제상의 때에 숯불을 쬐다가 부인하게 됩니다. 다른 한 곳은 디베라 호숫가입니다. 숯불이 있는 뜻에서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를 디베라 호숫가 촛불 곁에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고 계시죠. 이름 하여 숯불 대 숯불이다. 이렇게 만들어봤습니다. 베드로가 숯불 옆에서 첫사랑을 놓쳤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장소, 곧 숯불 옆에서, 주님 첫사랑을 회복시켜주시고, 재기의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 장소 그때가 어디일까요? 신앙생활은 리턴 하는 곳입니다. 날마다 돌아가는 것이에요. 뜨거운 장소로 기도 중에 깨닫게 됩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장소도 중요하지만, 뜨거웠던 그 때가 더 소중했다. 왜?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에요. 다시 한 번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그 자리가 어디였을까? 예수님께서 사도 연안을 통해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죠.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저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한 번에 기회를 더 주셔서 거꾸로 하게 하신다면 나는 그때 하고 싶다. 바로 저는 저희 생도 시절입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던 순수했던 그때로 하고 싶어요. 그래서 교회만 가면 노래를 하고 지나가다가 시골교회에서 특성을 하고 그랬던 시절이 가장 그리워요. 주님이 저를 다시 그 옛날 그 교회당으로 이끌어주신다면 저는 그저 울 것 같아요. 저 교회는 제가 나중에 담임 목사가 돼서 생도들 목회했던 곳입니다. 제가 은혜 받았던 작은 교회당에서 조금 더 커진 저 교회당에서, 제가 목사가 돼서 목회를 했어요. 여러분들은 그때 그 자리가 어디일까요? 지금 해사 교회는 저렇게 아름답게 배 한척에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름다운 교회는 진해의 해군사관학교 교회당입니다. 이제 조반을 준비하신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니? 아이 그럼요. 그래 내 양을 먹여라. 요한의 아들 시모나 본래의 이름을 부르셨어요. 주님을 등졌던 세상으로 향했던, 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그의 약함을 긍휼의 가슴으로 안아 주고 계시지요. 그런데 하나 붙자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두 번째 또 같은 질문하시죠.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똑같이 말을 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계속 아시지 않습니까? 세 번째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을 받고 베드로의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무거워져요. 베드로가 근심하면서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제가 약해서 우리처럼 너무나 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졌지만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는 맘이 제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비우기, 채우기 나누기, 로 나눠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더러운 죄를 씻고, 그 빈자리에 예수님의 영으로 가득 채웁니다. 성령 충만 이죠. 그리고 그 예수님을 세상에 나누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가 바로 충만의 다음 단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우연히 발견한 영상이에요. 2년 전에 이 청년이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전도하는 장면을 제가 보여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유튜브를 뒤졌어요. 암흑의 이름을 치면서 보니까 저 영상이 나왔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이 청년이 자기가 만난 예수를 증거 하는 모습이에요. 여러분 보세요. 옆에 흑인 친구는 스피커를 들고, 이 친구는 열심히 좁은 길을 걸으라고 예수를 만나라고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나누는 것이죠. 비우고, 채우고,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잠깐 간증을 해요. 저는 고일 때 교회를 처음 나갔습니다. 그래도 그래서 그때 교회를 처음 나가서 가장 부러웠던 가정은 목사님 가정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그저께 세상을 떠나시고, 천국에 가셨지만 우리 오 목사님 가정을 전 부러워하죠. 장로님 가정, 권사님 가정, 집사님 가정을 참 부러워했어요. 혼자 교회 나갔기 때문에 제 친구가 저를 전도합니다. 교회 나가서 열심히 다녔어요. 그리고 제가 일곱 명을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서 한 명도 안 나와요.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전도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 원인을 제가 분석해 보니까 두 가지입니다. 저는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기도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6개월 뒤에 교회를 다 안 다니더라고요. 수십 년이 지나서 저를 전도한 친구를 만났더니 그 친구도 교회를 안 다녀요. 그 제가 물었어요. 아무개야 네가 날 전도해서 목사 하는데 넌 교회 안다니냐? 잘 들으세요. ‘우리 와이프가 교회 하지 말래’ 왜? 다른 데 다니거든 교회가 아니라는 얘기죠. 딴 종교를 다닌다는 거예요. 어느 종교란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마는 간단인데요. 제가 그 친구 말하고 가슴이 아파서 지금도 기도하고 있어요. 그런데 7명 전도한 친구 중에 한 명이 교회를 다닌 것을 제가 발견하게 됐습니다. 인제대 모 교수인데, ‘최 교수 자네 교회 다닌다면서? 야 내가 그때 전도한 게 효력이 있었네.’ 아니야, 난 그대로 쭉 안 다녔어. 그러다가 와이프를 잘 만났어. 누구인데? 전도사님이야. 전사님 만난 거예요. 그게 교회를 다닌 거에요. 이 짧은 말 속에 결혼의 의미도 있는 거죠. 영혼 구원이 이양되는 것이 아니다 말이죠. 한 사람은 저를 전도하러 안 다니고, 한 사람은 전사님 만나서 결혼해서 교회 잘 다니고 말이죠.
 
여러분, 실패하고 낙망한 우리에게도 주님은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아가 파스메?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이 가장 원하신 것은? 충성, 물질, 헌신, 봉사, 글쎄요 저는 ‘사랑’이라고 봐요. 사랑이다. 주님 제가 넘어지지만 그러나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 한마디를 주님이 듣기를 원하세요. 그런데 보세요. 주님이 얼마나 세밀하십니까? 예수님의 레벨은 아가페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두 번씩이나 아가페의 질문 앞에 필리어로 답을 하죠.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맡길 영혼을 사랑하려면 아가페의 사랑까지 가야 한다. 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계속 필리어로 우정의 사랑 정도로 그렇게 답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수준으로 주님을 사랑하시고 이웃을 사랑하실까요? 보십시오. 세 번째로 이제 예수님께서 아가페의 수준에 아가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베드로에게 눈높이를 맞춰주세요. 필레오에 저는 이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이다. 필레오를 물으시면서 필레오로 답을 얻으시고, 이쪽 오케이 하시면서 그를 격려하시는 그의 눈높이 사랑 때문에 제가 지금 서 있는 거예요. 필로데, 그렇게 답을 하고 ‘됐다’.
 
여러분 눈높이가 뭘까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인카네이션 그 성육신이 눈높이입니다. 그리고 나 같은 죄인 때문에 죽으신 그 십자가의 죽음이 눈높이에 클라이맥스입니다. 저 같이 못난 사람을 이 귀한 단에 세우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눈높이 사랑이에요. 베드로에게 아가페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낮추시고, 품으시고, 필레오를 들으시고 그리고 오케이, 하시면서 아임 센딩 유(I’m sending you). 보내시는 그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마치 옛날 죤 레논의 ‘러브’란 노래의 가사처럼 사랑은 느낌이에요. 필링입니다. 그분의 터치를 느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특별히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그리고 디베라 호숫가로 찾아가신 그 목적도 베드로에게 남아 있는 그 첫사랑을 길어 올리셔서 “됐다”. 하시면서 어떠한 사랑의 단어조차 내놓지 못할 부끄러운 그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비록 작은 단어지만 필레오를 집어넣으셔서 사랑하는 고백을 듣게 하시고 말하게 하시고 됐다. 아임 센딩 유(I’m sending you). 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만일 제가 그때 베드로였다면, 저는 저의 죄 때문에 저의 수만 가지의 배신 때문에, 그냥 울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제 변할지 모르는 저의 모습 사랑합니다. 는 어떤 상투어도 더 이상 말 못하고, 은혜로만 들어가네. 은혜로만 선다네. 은혜의 찬양을 할 것 같아요. 저는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 수년 전부터 대한민국 최초로 ‘순회군 선교사’의 길을 걷습니다. 부족하지만 대한민국 최초 회사 출신으로서, 6년간 위탁 교육을 하고 목사가 된 제가 주의 은혜로 군정감이 되었고,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순회군 선교사가 되어, 한번 보실까요? -동영상 보기-...
 
여러분, 저는 신명준이라는 형제가 기억이 나요. 눈물이 납니다. 제가 주는 작은 핫도그 하나에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를 받는데 말이죠. 제가 더 울었습니다. 작은 사랑에 녹아내리는 육해공군 해병대, 여러분들의 기도의 대상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나눌까요? 만남으로써 하고, 그들을 터치해 줌으로써 우리가 받은 사랑을 말하는 것이죠. 저 앞에 앉아 있는 우리 해병대 소령 출신 안집사님 계신데요. 저와 함께 기도하고 있어요. 우리 대한민국 순회군선교 같이 열심히 하자. “예 제가 돈 많이 벌어서 가이오가 되겠습니다.” 제 신세계에 곧도 납품하시고, 큰 화원을 하시는데 꽃으로 사랑으로 나누겠습니다. 설교를 맺겠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속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원했던 것이 사랑 고백일까요?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그 고백을 듣길 원했을까요? 기도 중에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신 그 한마디는 I love you Lord!, 그것이 아니라 ‘I love you Peter!를 베드로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낙망하고 쓰러지고 사탄이 너를 정지하고 넌 못한다. 너 같은 죄인이, 너 같은 배신자가, 낙망한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세 번씩 유도하시면서 원했던 것은 I love you Lord!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베드로야!” 그 사랑을 꼭 알기 바란다는 그 한마디가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목적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벌하신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 영원히 변치 않은 사랑을 경험하고 치유 받았던 베드로가 이제 예수님 부활하시고 40일이 지나고 승천하신 지 열흘 이 된 오순절 다락방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 어떻게 변했는지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 성령 충만 이전에는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그 뜨거운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사랑을 깨닫고 가슴이 무너지고 너무나 감격해서, 주께 남은 인생을 드리겠나이다. 하고 다짐했던 그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던 뜨거운 마음이었어요.
 
저는 2001년 해군 군정관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5년이 채 안 돼서 서울 바로 여기서 멀지 않은 강남 모 교회에서 저를 청빙하고자 급히 오라고 해서 아무런 서류도 없이 그냥 달려왔습니다. 일 년이 채 안돼서, 저는 다시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분이 저를 다시 보낸 거죠.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롱 스토리를 길게 말하잖아요. 제가 부족하니까 1년 뒤에 전 돌아가요. 저는 비전인 줄 알고 왔지만 저의 야심이 컸었습니다. 돌아가서 제 목회지가 없습니다. 이미 제 목회자를 다른 분에게 인계하고 왔기 때문에 교회가 없었어요. 그때 제 큰아들이, 오 목사님의 둘째 아들 이제 닥터 오의 3년 후배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요. 둘째 아들은 중학생이었습니다. 교회가 없습니다. 기도원에 없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목회자를 주십시오. 제가 꿈을 가지고 한국에 나갔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고 저희 야망이었고, 저의 부족으로 좀 돌아왔습니다. 근데 주님, 목회 지를 주세요. 기도 안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첫 시간에 주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바로 저거였습니다. “효근아, 효근아 나를 먼저 구하면 안 되겠니? 나를 구할 수 없겠니?” 여러분 저는 그 응답을 받고 엄청 올라왔습니다. 주님 원하신 것은 주님 그 한 분이구나. 주님에 대한 사랑이구나. 저거 나 나를 사랑할 수 없니? 목회자보다 너의 자녀들보다 어떤 세상의 명예보다, 너희 비전의 크기보다, 나를 구할 수 없겠니? 그 응답을 받고 그냥 내려왔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구하십니까? 성령 충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파스킬은는 말하죠. ‘인간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 사람이 세울 수 없고 세상이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을 하나님으로 채우고, 예수님의 영으로 채우고, 예수님 한 분으로 채울 때, 드디어 인생은 만족하고 행복하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시작점이 되는 거죠. 무엇을 구하십니까? 하나님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빈 공간을 그분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세요. 지금 여러분 곁에 오셔서 속삭이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세요. ‘내가 너를 너무나 많이 사랑한다.’ 너무나 많이 사랑한단다. 너의 어떠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너의 허물과 불순종까지도 나의 십자가의 피로 다 닦았다. 우리 주님이 꼭 들려주고 싶은 그 한마디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하고, 생수를 마시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이고 예수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충만으로 가는 길이고, 그리고 성령 충만의 도화선이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눈을 감으십시다. 다 같이 조수아 씨의 찬양을 들으시면서 저의 사랑을 한번 마음껏 깨달아보십시다. 다 같이 눈을 감고 조용히 한번 기도해 보세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너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나로 인한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없어 너희의 모습 때문이 아니오 너희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 하시죠. 하나님은 그 사랑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세요. 그 불변의 사랑 그 한없으신 용서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 사랑에 힘입어서 나는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그 에너지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예수님만이 주시는 시원한 생명수를 목마른 내가 먼저 마시고 목마른 이웃들에게 마시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요약
우리의 연약함에도 끝까지 돌봐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을 통하여 베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보며 우리의 더 깊고 넓은 연약함과 부족함과 죄악 된 심령과 행동을 다시 돌아보며, 회개의 마음으로 주 앞에 회개하고 회복되어서 그 첫사랑의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오직 주님 한 분만이라고 고백하는 모든 영 가족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 믿음의 4세대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여전한 그 사랑 때문에 오늘도 힘을 얻고 세상으로 향함에 감사드려야 한다. 우리 목마름의 근원이 바로 나를 향한 주의 사랑을 깨닫는 것 그 사실을 알았기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무더위 속에 특별히 우리 오정현 목사님 은혜롭고 하늘의 소망 넘치는 장례 절차가 되게 하시며 위로를 드려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생과 졸 사이의 인생의 모습, 도전받게 하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야겠다는 도전 속에서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그 간 눈길을 마주하며 질타의 눈길이 아니라 극렬과 염려와 또 끝까지 책임지시는 그 눈길을 우리를 향하여 지금도 돌리심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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