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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월 7일)-평신도지도자, 교역자, 직원, 전교우 시무예배.
제목: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말씀: 스가랴 10:6-8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찬양인도: 창목회 창조회 연합
대표기도:  천동원 부목사님

말씀읽기: 송예란(청년부 리더), 민경윤 형제(대학부리더)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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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10:6-8,
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7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8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우리 창목회는 창조적인 목회자 모임이다. 창조적인 조력자 모임이다. 저희 교회교역자 직원을 말하고 있다. ‘나는 믿네’ 나는 믿네가 우리 창목회 뿐만이 아니라, 온 교우들, 전체의 아름다운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믿네’를 힘차게 부르자. 다음 주일 토비새 오시면 나누어 줄 것이 있다. 우리 사랑의 교회가 올해 45세이지만 이제는 나이 마흔 다섯이면, 실제로 몇 살인가? 옛날 같으면 지금 제 나이도 고려장 치를 나이이다. 그런데 이제는 영적으로 볼 때, 영적X7을 곱하면 사랑의 교회가 몇 살인가? 30세이다. 30세의 마음을 가지고 45주년의 회복을 넘어 회복으로 가는 길이 되길 소원한다. 이 자리가 부흥을 믿고 현장의 은혜가 되는 곳이다. 이 자리에 오기만 하면 회복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 언제라도 축복을 받는 자리이다. 토요비전새벽예배만 오면 불을 얻게 되고, 위로부터 떨어지는 은혜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자리에 오기만 하면 회복이 되는 곳이 될 것이다. 
 
여러분, 미국 가면 롤스케롤라인 샬로스라고 있다. 거기에 가면 빌리그래함 라이브러리가 있다. 그곳은 모든 사람들이 빌리그래함이 제일 잘했던 것은 복음이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복음전도자로 빌리그래햄 목사님을 꼽듯이 그는 복음을 선포했고 그 순수하고 순전한 복음 앞에 예수님을 믿데 된 것이다. 우리 한국도 73년도 78년도에 빌리그램이 왔을 때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그 라이브러리 들어가 보면 복음 듣고 마지막 나오게만 되면 바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곳이다. 지난 달 12일 날 우리 김장한 목사님이 빌리 김 라이브러리가 빌리그래함 라이브러리가 안에 확장 세워졌다. 김장한 목사님을 통한 한국이 빛나고 한국교회가 자랑스런 역사가 전 세계인들에게 소개되는 것이 애국이며 선교의 길임에 모두가 다 감탄한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정말 축하할 일이다. 굉장한 일이다. 우리 교회에 오신 마이크 펜서 부통령도 우리 교회에 오시게 한 것도 다 김장한 목사님의 힘이다. 키는 그 빌리그래함 라이브러리만 들어가면 어떻든 간데 복음이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된다. 이 안에만 들어가면 성경을 믿게 된다. 왜 성경이 진리인가를 알게 된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신앙은 피니쉬와 스타트가 확실해야 한다. 우리는 매주일 새로워지는 것이다. 구약에 있는 사람은 토요일이 안실이고 끝이지만 우리는 내일 주일이 일주일의 첫날이 되는 것이다. 매주 마다 토요일마다 우리는 강단 기도를 통해 ‘내일 주일 예배를 살려주시옵소서!’ 라고 외치고 기도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는 것이 확실히 체험되기를 바라며, 한국교회가 만만하지 않다. 자 한국교회는 독특한 신앙자본과 기도자본과 헌신자본과 순교자본이 있는 줄로 믿는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믿음의 용량을 키워서 2023년도 45주년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를 바란다. “믿음의 용량으로 부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서로 격려하자. 믿음의 용량으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오늘 말씀을 보면, 성경 중에 특별히 제가 감사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구절이다. 2023년도의 중요한 슬로건처럼 생각되는 우리가 기도의 제목으로 삼아야 할 구절이 8저이다. 
 
*스가랴 10:8,
8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할렐루야, 그들이 번성했다는 것이 무엇인가? 한 가족을 보면 야곱 같은 영우는 어느 정도였는가? 70명이 200만 명이 될 정도로 번성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에 번성하다가 신약교회는 어떻게 되는가? 신약에 사도행전에 곳곳마다 부흥의 보고서, 노른자위 보고서가 있는데 거기에는 어떻게 보고가 되는가? 하루아침에 3천 명이 주님 앞에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오천 명이 돌아오게 하시고, 어떻게 장정들 만이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성령 충만으로 회복된 12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강력하게 선포될 때, 3천명, 5천명, 7천명이 주님 앞에 돌아왔다. 그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 같은 사도바울이 회복되어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심지어 그가 받는 고난도 기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기쁨을 가지고 그렇게 기쁨의 깃발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에베소가 문을 열고, 빌립보가 항복을 하고 대 로마제국이 백기를 든 줄 믿는다. 이게 번성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로 말하면 지난 45주년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기름 부으심과 부흥과 번성을 주셨는데 우리 세대로 끝나지 말고 다음세대로 이어가야 한다. 다음세대로, 
*다니엘 9:17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황폐한 성소는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이다.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고 못 쓰게 되어버렸는데 이것이 전에 번성하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완전히 회복되고 주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라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성전인줄 믿는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지난 3년간 보이지 않게 코로나 타격으로 대면 예배가 약해졌고 3년 동안 코로나의 강을 통과하면서 사람들이 영적으로 피폐해지고 영적으로 허해지고 세파의 유혹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에 개인의 삶이 깨어지고 상처받고 씨름하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성전이 회복되고 부흥되는 길은 전에 번성함 같이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표현을 6절에 뭐라고 하는가?
 
*스가랴 10:6,
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는 인생을 살다보면 마음이 짐도 있고 우리 모두의 어떤 과거들이 다 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인생의 다 상처의 모닥불과 트라우마가 다 있다. 어떻게 그것만 생각하면 올라오고 가슴앓이 하고 어떨 때는 귀구명이라도 들어가고 싶고 그런데 그것들을 없었던 같이 하신다고 하신다. 완전한 회복이다. 놀라운 말씀이다. 그것과 함께 7절에 보면, 
*스가랴 10:7,
7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여기 에브라임은 요셉의 지파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인데 에브라임은 북쪽 유다 왕국을 대표하고, 북쪽이 앗수르에게 먼저 망했다. 망한 것이 심각한데 그 에브라임이 그 북왕국을 대표했었는데 그 에브라임이 앗수르식민지 정책에 의하여 북쪽이 혼혈정책에 의해서 북 왕국 사람들이 이방인처럼 되어버렸다. 그 피폐하고 어려웠던 북 왕국의 사람들의 마음이 즐거울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회복되고 번성되고 다시 회복이 되니까 모든 백성들이 참된 기쁨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 기쁨의 상징에서 포도주가 나온다. 
*요한복음 15:11,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2023년도 한 해동안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현장에 늘 주님만이 주시는 기쁨이 자리 잡아야 한다. 이제 오늘 다시 한 번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 위하여 전에 상처가 없었던 같이 없어지리다. 
 
*스가랴 10:7,
7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에브라임이 앗수르에 망해가지고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하는 그 상황에서도 참된 즐거움을 회복하는 것처럼 우리 온 성도와 우리 한국교회에 회복이 되는 기쁨을 허락해 주시길 소원한다. 전에 번성하는 것 같이 번성하리라. 세계 교회는 복음 자본이 있다. 빌리그래함 라이브러리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올 때문 예수 믿게 되는 것이다. 워싱턴 D.C에 가면 바이블 뮤지엄에 가면 웬만한 사람이면 성경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곳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 방도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힘을 합쳐서 그 워싱톤 DC의 바이블 뮤지엄에 있는 그 환경도 한국교회에 가져오고 싶다. 우리 성도들과 어떤 재미있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거기에 가면 왜 하나님의 말씀이 왜 진리인가를 잘 알 것이다. 이사야가 왜 진짜이고 성령의 감동된 말씀이 오늘도 우리의 삶에 거하고 어떻게 배우고 거할 수 있는가에 우리에게 어떻게 들리는가? 말씀을 듣고 말씀의 음성을 들어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주의 종으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를 깨달아서 각인되기를 바란다. 토비새가 거룩한 현상이고 거룩한 모델 역할이며 상징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암송을 하고 여기서 성경을 듣고 그래서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이번 45주년 기점으로 전에 번성하는 것 같이 번성하여야 함을 확신한다. 다음주 우리 교회 아이들 성경고사 대회도 있다. 우리 교회가 후원도 하고 손님을 모시고 홈그러운드를 입점해서 우리가 일등 해 보자. 우리 교회가 속하는 동서울노회가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놀라운 성경자본이 있다. 한국교회가 전에 번성하는 것 같이 번성해야 한다. 말씀 자본이 더욱 번성해야 하는 것처럼 전국 성경고사도 놀랍다. 전에 번성하는 한국교회 기도자본이 있다. 토요비전새벽예배도 지팡이를 들고 기도하는 전 세계에서도 놀라워한다. 이 자리가 기도자본의 현장이 될 줄 믿는다. 다시 회복하고 사랑의 교회는 청계산 기도회를 하겠지만 사람일이란 모른다. 우리가 항상 회복해야 한다. 산상교회도 회복해야 한다. 거룩한 야성과 담력을 회복하고 80년대 초반 한국의 삼각산, 청계산, 인왕산 등 토요일 저녁에 가면 서로 기도를 하려고 산에 자리를 잡았지만 지금은 잡초가 되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전에 번성하는 것 같이 번성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봄비가 올 때,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봄비는 늦은 비이다. 늦은 비의 능력을 구하여서 봄비. 늦은 비 파종할 때이다. 열매를 맺게 하는 것, .추수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가 45주년이 되도록 많은 은혜를 받았듯이 이제는 봄비의 늦은 비의 능력을 주시기를 소원한다. 
*신명기 28:12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엘셀런트 트레져),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 모든 성도들이 하는 모든 일을 하는 주의 권속들 머리 위에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다. 올해 3월에 리더들이 우리 교회에 올 것이다. 내년에 로잔 세계 대회가 있다. 케이프타운에서 있다. 14년만에 서울 로잔 서울이 열리게 된다. 올해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었고, 개인도 교회도 한국교회도 다 살아야 한다. 다 맞춤형 비가 오기를 소원한다. 적절의 비가 가정마다 개인마다 교회마다에게 오기를 기도한다. 다시 한 번 포도주의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기를 원한다. 
♣요약
올해 우리 교회가 45주년을 맞이하니 우릭 교회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 말씀의 영혼한 양식이 되고,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 되고, 전도는 영혼의 운동이 되고, 이 모든 것들이 맥박이 되어서 찬양과 양식과 호흡과 운동과 맥박이 충만하여야 한다. 평신도 지도자와 교역자, 그리고 교사들 청년 대학부 리더, 주일학교, 목양 팀들, 모두가 최선을 다하여 우리가 수많은 리더 들로서 신실한 종으로 참된 주님의 희망이 되기를 우리의 성소가 전에 번성한 것처럼 우리도 이 성전이 우리 온 성도와 중직 자가 번성하고 하늘의 보고를 충만하게 경험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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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월 4일)
제목:  "믿음을 선택하다"
말씀: 여호수아 14:6~12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임상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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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4:6~12,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ㅡㅡㅡㅡㅡㅡ

▷새해이다. 매우 추운 날이다. 성전으로 발걸음을 향하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이 자리에 나온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다함없는 은혜의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세계적인 리더쉽 전문가인 존 멕스웰이 있다. 그는 그의 책 ‘생각의 법칙’에서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인생을 결정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우리의 행동을 낳고, 우리의 행동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의 행동과 가치는 그 사람의 마음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음 안에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을 드러낸다. 마음 안에 욕심과 욕망을 가진 사람은 결국에는 욕심과 욕망이 드러나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새해를 시작하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의 마음 가운데 어떤 마음이 담겨있는가? 아니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의 마음 가운데 무엇을 담아내기를 소원하고 있는가? 믿음인가? 욕심인가? 한 번 자문해 보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는 위대한 일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만하지 않았던 한 사람, 기적과 같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에 초점을 두지 않았던 한 사람, 바로 그 사람, 갈렙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도대체 갈렙의 마음에 무엇이 가득했기에 그는 온전히 주님을 좇아갔던 것일까? 갈렙은 도대체 그의 마음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살아갔던 것인가? 오늘 이 질문을 우리 앞에 내어놓고 2023년을 새롭게 살아가야 될 우리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는 이 수요저녁기도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다함께 여호수아 14장 6절 상반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여호수아 14:6a,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성경은 그때에 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그때는 바로 이스라엘 자손이 땅을 분배하는 그 때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은 땅의 분배(分配)가 단순히 소유의 분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그 때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너의 자손을 땅의 티끌과 같이 많게 하시겠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이 약속이었다. 도대체 인간의 머리로 계산해 볼 때 이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그 일인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바로 성취하셨다. 또 한 가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있다. 바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했던 이 가나안이 바로 오늘 이 시간 이 본문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바로 역사적인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그들의 마음 가운데에 알지 못하는 긴장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어느 땅을 분배 받을 것인가? 이미 그동안 전쟁을 치러오면서 어느 땅이 좋은 땅인지, 어느 땅이 비옥한 땅인지, 어느 땅이 좀 살기 어려운 땅인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안락함을 주는 땅, 나에게 기쁨을 주는 땅, 그 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족속이 공적이 더 많았는지, 얼마나 애썼는지에 대한 계산이 재빠르게 돌아가는 시점이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그때였지만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다시금 하나님의 뜻보다, 나의 편안함과 나의 안위함을 구하는, 나의 삶의 초점이 다른 곳으로 흘러갈 수 있는 위기의 때이기도 하였다. 내가 손해 보지 않고 나의 권리를 이제 주장할 수 있는 바로 그때였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똘똘 한 마음으로 뭉쳐 있었다. 왜냐하면 전쟁은 생존의 문제였다.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이 하나로 뭉쳐있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미묘한 긴장이 시작된다. 땅의 분배는 단순한 땅의 분배 차원을 넘어서 나의 존재의 가치가 인정받는가? 나의 자신의 힘이 증명되는가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은가? 가족들 간에 우애가 참 깊다. 특별히 어려운 시간을 거치면 가족들이 사랑으로 꽉 뭉쳐져 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지나고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권리를 나누고 이익을 나누는 시점이 되면 사랑했던 가족들이 권리의 문제로 주도권의 문제로 다툼이 일어난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 시간 가운데 놓여져 있었다. 그러한 때에 갈렙이 말하기 시작한다.
 
*여호수아 14:6~12,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모두가 예민해 하고 있을 그때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아온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갈렙이 누구인가? 출애굽 1세대 전쟁의 영웅이다. 여호수아와 더불어 혁혁한 공을 세운 자가 바로 갈렙이다. 그는 이스라엘 중에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공적과 용기와 그동안의 행적을 기억할 때, 여호수아 앞에 나아와 이렇게 요구할 수 있다. 저에게 제일 좋은 땅을 주십시오. 그래도 되죠? 그래도 되죠? 수많은 족속들이 그 질문 앞에 아무도 대구할 수 없을 만큼 갈렙은 분명한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전하는 첫 번째 메시지는 바로 가데스 바네아 사건이었다. 민수기 13장에 보면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열두 명의 사람을 정탐하도록 파송한다. 그 열두명의 사람은 각 지파에서 가장 총명하고 민첩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가데스 바네아를 정탐하도록 보낸다. 가데스 바네아는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약속의 땅이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단 한 가지도 거짓이 없었다. 축복의 땅이었다.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정탐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려움이 있었다. 바로 가나안의 견고한 성읍과 그리고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던 아낙자손의 강성함이었다. 정탐꾼들이 이제 다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함께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돌아온 열 명의 정탐꾼이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여러분, 여러분, 그 땅은 너무 좋은 땅이지만 그 땅은 우리가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 땅에 가보니까 아낙 자손이라는 족속이 있는데 그들은 마치 거대한 용사들과 같아서 우리가 그들과 절대로 싸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땅은 보기에 마치 메뚜기 한 마리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기 시작한다. 모세와 아론 앞에 나아와 원망한다. 불평을 쏟아놓는다. 우리를 여기서 죽이려고 여기서 이 고생을 시켰냐고 한다.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모두가 아니라고 말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 라고 말고 있는 그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가슴에 옷을 찢는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담대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우리가 그 땅을 정복해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땅을 정복할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여호수아와 갈렙만 생존하여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갈렙은 땅이 분배되는 이 중요한 시점 가운데 이 일을 다시 한 번 회고(回顧)한다. 이 일을 회상(回想)하면서 갈렙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나님과 여호와의 종 모세 앞에 성실하게 보고하였고 나는 하나님께 충성하였다.’ 라고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갈렙에게 있어서 가데서 바네아는 단순한 정탐의 시간, 모험의 시간, 어떤 추억의 시간이 아니었다. 갈렙에게 있어서 가데서 바네아는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 보고를 올려드리고 믿음의 선택을 하고 믿음을 살아낸 결정적 시간, 결정적 사건이었다. 하나님 앞에 충성되었던 갈렙, 그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이었다. 갈렙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건히 붙잡는다. 지난 4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왔지만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이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을 이루시는 그 약속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마치 뜻을 정한 장인이 외길을 꿋꿋이 걸어가듯이 갈렙은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동안 치러왔던 전쟁에 승리에도 도취되지 않았다. 여호수아의 리더쉽에는 철저하게 복종한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평가와 결과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 그 약속과 그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기를 그토록 갈망하고 소망하고 있다. 갈렙은 왜 이토록 철저하게 자신의 성공과 성취와 노력을 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들게 된 것인가? 갈렙의 마음에 중심축에 자리 잡고 그를 움직이는 그 힘의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다함께 여호수아 14장 10절을 보자.
 
*여호수아 14:10,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성도여러분, 갈렙이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광야에서 방황한 지난 45년 동안 누가 자신을 생존하게 하셨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바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를 생존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I. 갈렙의 마음의 중심 - 말씀하신 대로 생존하게 하신 은혜.
 
-그는 분명히 알았다. 자신이 생존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신 그 은혜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생존해 있음을 그는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ㄴ 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살아 왔음을 아는 자, 그 은혜를 아는 자는 더 이상 자랑하고 더 이상 의지할 것이 없다. 사도 바울이 고백하듯이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다. 라고 한다. 하나님의 그 은혜 외에는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철저히 그의 삶을 붙잡아 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믿었다. 내 인생, 내 인생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셔야만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살아가게 하셔야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온 생애를 통하여 깨달았던 것이다. 이것이 갈렙의 마음을 꽉 채운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은 내가 스스로 챙긴다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준비하고 내가 노력하고 내가 건강을 챙긴다고 우리의 삶이 항상 유지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 삶을 붙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닌 나씽(Nothing)인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이것을 아는 자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된다. 이 믿음 안에 거하는 자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게 된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갈렙과 같은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II. 갈렙의 마음의 중심- 하나님의 약속을 놓지 않는 열망.
 
*여호수아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 갈렙이 지금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가나안에서 가장 좋은 금싸라기 땅을 구하고 있는가? 강남 한 복판에 가장 좋은 땅을 구하고 있는가? “그동안 제가 수고했으니, 그동안 제가 믿음으로 많은 전쟁으로 승리했으니, 이제 편안하게 지낼만한 호화로운 저택을 저에게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는가? 결단코 아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말도 안 되는 것을 지금 요청하고 있는데 이 산지를 달라고 하고 있다. 이 산지가 어떤 곳인가? 바로 아낙 자손이 있는 곳이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그 강력한 아낙 자손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그곳이 바로 이 산지이다. 그 성읍들은 크고 강하다. 전쟁이 쉽지 않다. 가장 어려운 곳이다. 모두가 회피하고 모두가 도망치고 모두가 그곳만큼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헤브론이다. 그런데 왜 갈렙은 그 땅을 달라고 그토록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인가? 바로 그 땅이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약속하신 그 땅이기 때문이다. 갈렙은 자신이 가야할 길을 분명히 알았다. 하나님이 주신 그 약속의 땅이기에 그 약속의 땅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 땅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주저하지도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찬양을 부르면서 참 은혜를 받는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우리가 찬양하며 참 많이 울지 않는가? 우리가 간절하게 불렀던 이 산지가 과연 갈렙이 말하고 있는 동일한 산지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고 내가 그토록 소유하고 싶었던 산지는 아니었는가?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이 산지는 내가 너에게 약속한 곳이야.” “갈렙, 힘들고, 어려울 거야, 때때로 눈물도 흘려야 돼, 오해도 받아야 되고, 고생도 해야 되는 곳이 바로 이 산지야, 남들이 다 갖기 싫어하는 그곳이 바로 너에게 약속한 땅이야.”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우리가 애통하며 부르짖을 때가 있다. “하나님, 왜 저를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하셨나요? 하나님, 왜 저를 이 가정에 보내셔서 저를 이토록 고생케 하시나요? 하나님, 왜 저를 이 회사에 보내셔서 제가 이런 모멸과 수치를 당하게 하시는지요? 하나님, 저를 왜 이 학교에 보내셔서 제가 늘 주눅 들고 어렵고 힘겹게 살아가게 하십니까?” 이렇게 부르짖으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고요하게 말씀하신다. “힘들지, 어렵지, 괴롭지, 그런데 그곳이 바로 너를 향한 약속이 이루어질 현장이야.” 라고 하신다. 갈렙은 그 땅을 피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땅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돌진하여 나아간다. 갈렙은 그 부르심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앞에 놓여 진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험준한 산맥과 고통의 나날이 우리 앞에 놓여 져 있다 할지라도 갈렙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만을 꼭 붙잡고 놓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선에 서기를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III. 갈렙의 마음의 중심-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함.
 
*여호수아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갈렙은 분명히 알았다. 그 땅이 어려운 땅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는 어려움과 고통과 고난과 그 모든 것들이 부담되지 않았던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그 어떤 원수도 그 어떤 장벽도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갈렙은 체험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말씀대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말씀대로 애굽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말씀대로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신 그 생명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 말씀대로 반드시 약속을 이루실 것을 분명히 믿은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은 갈렙과 함께 계셨다. 갈렙과 함께 하신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변함없는 사실을 믿는가? 이 믿음이 우리를 승리케 하는 것이다.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어떤 풍파 속에서도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이 믿음을 소유하고 믿음 보고하고 부흥보고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소원한다. 여호수아 14장 14절에 갈렙을 향하여 이렇게 평가를 내린다.
 
*여호수아 14:14,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갈렙은 45년 동안 끊임없이 매순간마다 그는 믿음을 선택했다. 그는 한 결 같이 하나님의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를 만든 것은 믿음이었지 그 다른 무엇이 아니었다. 여기서 온전히 좇았다. 라는 것은 여호와를 따라 채워졌다. 여호와를 따랐기 때문에 충만해졌다. 여호와를 따랐기 때문에 온전히 채워지고 여호와를 따라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 날마다 그 믿음을 선택한 삶이 바로 갈렙의 삶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올 한 해가 시작되었다. 올 한해가 시작되는 이 시작점에서 무엇을 선택하기를 원하는가? 돈, 권력, 명에, 내 자식, 내가 바라는 소망, 안개와 같은 것들을 선택하지 말고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선택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부흥은 다른 것으로 오지 않는다. 부흥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임재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친밀함을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라, 날마다 주님만을 의지하라. 갈렙의 믿음의 보고로 살아갔던 것은 그의 특별함이 아니라, 바로 그의 삶을 가득 채웠던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2023년을 시작하는 우리 가운데 우리의 삶이 다른 그 무엇이 아닌 하나님으로 충만해지시길 원하신다. 믿음을 살아내고 믿음을 살아낸 부흥보고의 고백을 다른 그 누구가 아닌, 다른 그 어떤 사람이 아닌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듣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갈렙을 찾으신다.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와도,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갈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믿음을 선택하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그 믿음을 선택하라. 하나님만을 온전히 좇아가는 신앙을 선택하라. 이러한 믿음을 선택을 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다. 회복을 넘어 부흥을 우리 가운데 반드시 허락하실 것이다. 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요약
매일 선택의 여정 속에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갈렙을 통하여 우리가 정말로 바라보고 의지해야 될 것이 무엇이지를 깨달아서 갈렙과 같이 믿음의 선택을 온전히 순종함으로 선택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체험하며 우리가 수많은 선택의 길 앞에서 우리가 주저하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오직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심을 온전히 믿고 오직 주님만을 따라가는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비록 육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혈통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선물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갈렙은 원래 그나스(그니스) 사람이었는데, 그니스 족속은 에돔의 후손으로 가나안에 거주했고, 정복 대상의 목록에 나왔던 족속이다. 그런데 이 족속은 어느새 이스라엘에 편입되어 들어왔고, 특히 유다 지파에 속하게 되었으며,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자로 활동했던 것이다. 갈렙은 성실과 온전한 순종의 사람으로 말씀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또한 불의를 보면 분개했으며, 영적인 강건함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가나안 땅에서의 기업과 건강, 장수의 복을 받았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성실한 신앙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 언약→믿음→순종→복은 영원히 변함없이 시행되는 하나님의 원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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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1일)-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일곱 번째 강해.
제목: "신앙의 차렷 자세"-신년 감사 주일
말씀: 잠언 3:1~6
대표기도: 장명철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잠언 3:1~6,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새해 초부터 새 마음까지 사랑하는 성도들, 영 가족 여러분들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을 사랑하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꼭 응답하시고 풍성한 결실로 나타내 주시길 바란다. 오늘은 ‘신앙의 차렷 자세’에 대해서 주님의 메시지를 나누도록 하겠다.
 
오늘 본문은 제가 젊을 때부터 평소에 소중하게 생각하는 말씀이고, 늘 저로 하여금 신앙생활에 기본으로 하게 하는 말씀이다.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가? 마치 이것은 신앙의 차렷 자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군대에서 훈련할 때에, 항상 기본이 차렷 자세부터 시작한다. 뒤로 돌아 한 다음에 우양 우 좌 양좌 하지 않고, 그것을 하기 이전에 반드시 차렷을 먼저 하고 우양 우, 좌 양좌 한다. 격려할 때도 차렷 자세를 먼저 한다. 우리 학교 다닐 때, 반장을 해 본 사람은 잘 할 것이다. 수업할 때 선생님들이 ‘차렷’ 하고 주목을 시킨다.
 
그래서 오늘은 새해 첫 주, 신앙의 차렷 자세를 나누려고 한다. 저는 성도님들을 섬기고 목회를 하면서 나름대로 갖는 평생의 법칙이 있다. 그게 뭐냐면 오늘 본문의 ‘신앙의 차렷 자세’가 딱 자리가 잡히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가 받는다. 이 신앙의 차렷 자세가 자리가 딱 잡히면,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인생의 난제 앞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더라도 저는 그때마다 “하나님, 우리 성도들을 난제들이 있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받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모두가 실패의 상징물을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을 실망 시킨 순간의 일을 떠올리는 그런 사건들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부주의한 말 때문에 일어나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베드로 같은 경우는 추운 몸을 녹이려고 쬐였던 모닥불에 있다. 그는 모닥불 숯불만 보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예수님을 실망시킨 순간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실패의 모닥불을 다시 회복의 모닥불로 만들어 주신 줄로 확신한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모닥불을 지피시고 생선을 구우시고 베드로에게 조반을 들라고 하신다. 그 순간 베드로의 모닥불의 실패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는 순간이 되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실패의 모닥불이 회복의 모닥불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린 대로 우리가 어떤 생애에 문제와 난관이 닥치더라도 모두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 엎어지면,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리기만 하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심을 확신한다. 여러분의 실패의 모닥불의 회복의 모닥불로 만들어 주시는 주님을 신뢰하라.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의 차렷 자세이고, 영적 전쟁의 배수의 진이고, 굳게 붙잡아야 할 부흥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신앙의 첫 자세가 무엇일까? 1절에 보면,
 
*잠언 3:1,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법칙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가 세상살이 하는 데에 나름대로 법칙과 원리가 있다. 건강을 위하면 건강의 법칙이 있다. 균형 있는 시간에 식사를 맞추어 하고, 적절한 수명을 취하고, 또 나름 운동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그런 법칙을 다 깨고 퍼져버리면 힘들다. 약간의 긴장을 가지고 몸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건강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고기는 물속에 살아야 하는 법칙이 있고, 공중에 새는 대기권 하늘에 사는 법칙이 있다. 나무는 땅 아래에 뿌리를 흙속에 내리는 법칙이 있다. 물고기가 물이 싫다고 뛰어나오면 안 된다. 공중의 새가 하늘이 싫다고 갑자기 물속에 들어오면 안 된다. 죽는다. 나무뿌리가 땅 속에서 위로 나오면 죽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고, 창조의 질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법칙과 이런 기본 차렷 자세가 지켜져야 한다.
 
*잠언 3:2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오늘 이 신년에 첫 주일이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의 말씀으로 와 닿기를 원한다. 지금 우리는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법칙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오늘 한 가지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법칙을 말씀 드리겠다. 이것이 확실해야 신앙의 기본이 흔들리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올 한 해, 회복을 넘어 부흥을 체험하도록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실 것을 원한다. 지혜의 말씀이 6절이다.
 
*잠언 3:6,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들의 삶이 좀 흔들릴 때, 삶에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을 때, 딱 동서남북을 우리가 파악할 수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북극성과 같은 말씀이다.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 누구나 삶의 궤도(軌度)를 탈선(脫線)하지 아니하고 삶의 시행착오(試行錯誤)를 줄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법칙대로 하면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수많은 난관을 우주선이 대기권을 돌파하는 것처럼 문제를 돌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 인공위성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인공위성을 쏘는 것을 보면, 인공위성이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대기권을 지나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물리학자들이, 우주 과학자들이 우주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인공위성의 발견은 뉴튼의 제3의 운동법칙으로 날아간다고 말하는데, 사실 이 법칙을 뉴튼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법칙은 영원 전부터 존재한 것인데, 우주과학자들이나 뉴튼이 그것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이 법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미 것이고, 많은 경우 신앙 좋은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세밀하고, 정밀하고, 착실하게, 정확하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신앙법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신앙의 첫 차원으로 살면, 우주선이 날아가듯이 총알처럼 다시 날아가기를 원한다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미리 예비해 두신 것을 발견하고, 깨닫고, 적용하고, 실천하기만 하면 우리가 새로운 차원으로 총알처럼 삶의 어려운 대기권들을 환경을 뚫고 비상할 수가 있다. 이게 영적 법칙이다.
 
*잠언 3:6,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저는 대학부 시절부터 이 말씀을 늘 외웠다. - in all your ways acknowledge him,~~
제 주위의 형제자매들이 이 말씀으로 자기의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모토로 삼아가지고 인생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경우가 너무 너무 많다. 이 말씀이 본래적으로 갖는 능력이 너무나 어마어마한데 그걸 그냥 사장(事障)시키지 말고 그 어마한 능력과 우주의 법칙을 발견한 것 같이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 발견하기를 소망한다. 그럴 때,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의 수많은 난관들과 정치, 문화, 사회 경제, 교육, 가정, 여러분들의 모든 여러 가지 많은 이런 어떤 영역들이 있듯이 그런 문제가 된다면 다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인공위성처럼 돌파할 것인가? 오늘 새해 첫 주일 날 아니 우리가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범사에 인정한다는 것은 올 한 해 온 성도들이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 이런 뜻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일마다 때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물어보는 것이 인정하는 것임을 확신한다. 물어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신앙의 차렷 자세.

I.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것이다.
-올 한 해 우리에게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새로운 환경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계속 물어보라는 것이다. 하나님 이것을 물어야 한다.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에게 묻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먼저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순위로,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사울과 다윗의 생애를 대조하면서 너무나 깜짝 놀랐다. 왜 사울 왕이 인생이 실패하고 왜 다윗왕은 성공했는가? 보니까 사울왕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묻지를 않았다. 그가 하나님께 묻지 않아 생긴 비극은 말로 다할 수 없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은 때로는 후회를 갖게 하는 것이다. 역대상을 보면,
 
*역대상 10:13~13,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않아서 죽었다. 사울왕은 인생의 순간이다. 사울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이 실패했다. 우리가 구약시대에서 살지 않고 신약에 살기에 은혜 받아서 그렇지, 만약에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물어보지 않고 다 죽이신다면 오늘 본당에 죽을 사람은 많을 것이다. ㅋ ㅋ ㅋ 아마 반 이상은 다 돌아가실 것이다. 반면에 다윗은 그의 인생에 영적으로 성공한 것은 하나님께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보면 사울이나 다윗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다윗이 사울보다 그렇게 도덕적으로 탁월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사울 왕을 어떻게 죽이시고, 다윗은 살리시는가? 다윗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윗의 신앙의 차렷 자세이다.
 
*사무엘상 23:1~2,
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 하더이다 하니.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은 이렇게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 이 때 다윗의 상황은 사울 왕에게 도망 다니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고통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응답해 주신다. 그 하나님께서 주신 내용을 가지고 자기 참모들과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니까 참모들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환경이 내가 죽을 판이라면서 반대한다. “그래 그럼 안 되겠네.”, 하면서 끝내지 아니하고 다윗이 참 아름다운 태도의 마음을 가진다.
 
*사무엘상 23:4,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저는 이 다시가 확 눈에 들어왔다. 여러분들 다시가 눈에 들어와서 이 한해 동안 계속 하나님께 물어보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안 되면 다시 물어야 한다. 안 되면 다시,,,, 물으라. 하나님이 온 성도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성도님들끼리 서로 인사할 때, “성도님, 하나님께 물어 보았어요? 하나님께 다시 물어보았어요? 하나님께 기도해 보셨어요?” 라고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올 한해 인사가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냐?”고 하라. 어떡하면 좋으냐고 할 때, 하나님께 여쭈어보라고 인도하고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네 길을 지도하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 다시 여쭈어 보셨어요?” 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내 길을 지도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와 하나님의 마음의 합하지 않은 자의 차이가 무엇인가? 뭐 다윗처럼 용맹하게 할 정도는 못해도,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와 하나님의 마음의 합하지 않은 자의 차이가 뭐냐면, 하나님께 자주 묻는 인생,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인생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께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인생은 오늘 자기를 의지 하는 사람이다. 5절에 보면 나온다.
 
*잠언3:5,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자기 명철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울과 같은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들은 예의와 겸양이 지나쳐 가지고 이런 것까지 물어볼 수 있는가? 하는 말이 될 수 있는데 여러분, 하나님께 다 물어봐야 한다. 솔직히 웬만한 것은 우리가 다 처리하지 않은가? 웬만하면 우리가 다 알아서 처리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바쁘실 텐데 하면서 알아서 처리하지 않는가? 여러분 조그마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도 하나님께 물어보는가? 저는 몇 대째 내려오는 신앙의 가문에 사람이다. 아내에게 때로는 배우는 게 많다. 조그만 물건을 잃어버려도 아내는 기도를 한다. 나는 하나님이 귀찮으실 테니까 내가 해야지 한다. 우리는 일이 안 풀릴 때에 순수하게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께 계속 묻는 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다. 그동안 재정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물어야 한다. 어떤 일이 생기면, 어떤 사람에게 묻지 말고 이제는 하나님께 물어보기를 바란다. 옛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께 자주 물어보고 사람들에게 손을 비비지 않았다. 우리도 하나님께 손을 비벼야 한다. 하나님께 손을 비비면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통찰력 있는 말씀을 하시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데살로니가전서 5:17,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여러분 사람이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가 있는가? 맨날 기도만 하는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다른 버전이 뭐냐면, “쉬지 말고 하나님께 물어봤어? 다시 물어보았어? 또 다시 물어보았어?” 이 한 해 동안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이 하나님께 물어본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물어야 한다. 그럴 때, 인공위성처럼 총알처럼 문제들이 해결 될 것이다.
 
두 번째 신앙의 차렷 자세.

II.하나님과 친밀 하라.
너는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셨을 때, 인정하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을 조금 더 깊이 알아라. 하나님과 더 친밀해져라. 하나님과 가까워지라. 부부가 3-40년을 같이 살든 50년을 같이 살면 얼굴도 식성도 생각도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생각하니까 다 닮아간다. 심지어 찬송을 할 때도 닮아간다. 왜냐하면 지휘자님이 오늘 찬양을 찬양대가 Way maker, 라는 찬양을 할 줄 알았다. 친밀해지니 다 안다. 닮아가는 것이다. 저는 주일예배를 위해서 토비새에서 강단에 올라오셔서 기도한다. 오랫동안 중직자로 일하셔서인지 마음을 다 안다. 특별히 중직자 등 관계를 통하여 이제는 말씀을 통하여 웬만큼 똑 같다 신앙생활 오래하면 우리가 주님과 가까워지고 친밀해진다. 하나님과 친해지기기를 모두에게 바란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한다. 우리가 어떤 삶의 직분이 목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 땅의 삶의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의 복음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신앙은 우리의 목표는 주님과의 친밀함이다. 주님과 The better life이다. The better relation ship.!!! 주님과 가깝고 친밀한 더 나은 관계가 잘 되면 마치 친구와 같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믿은 후에 여러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더 전진이 되었는가? 누가 “목사님, 성도님들을 볼 때 무엇이 가장 마음이 아프냐?”고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제가 생각을 해본 것인데 가장 안타까운 문제가 무엇이냐면, 아마 저 뿐이 아닐 것이다. 마치 목자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을 깨달은 어떤 목회자라면 다 동일할 것이다. 목회자가 목회하면서 제일 힘든 것은 우리 성도들이 성장해야 하는데 맨날 밑바닥에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자라지 않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것은 성장하지 않는 성도를 보는 것이다. 그냥 어린아이 상태로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로 있는 것, 그래서 사탄에게 맨날 속고, 맨날 두려워하고 맨날 힘들어 한다. 영적으로 고봉으로 가야 하는데 밑바닥에서 있기에 가슴이 아프다. 이제 이정도가 되면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야 하는데, 든든함과 어떤 성숙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렇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빌립보서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새해 첫 주일 날 주님과 나 사이에 친밀함을 가로 막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정리할 수 있는 결단과 정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 주님을 아는 것, 그것 외에는 다른 것이 배설물이라고 한다. 아는 것 주님과 친밀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신비로움을 베풀어 주신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우물물을 팠다. 그 당시 우물은 생명의 근원이었다. 물이 없으면 살수가 없고 생명의 근원이기에 중요하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삭이 파놓은 우물을 다 빼앗아 갔다. 그럴 때 이삭은 어떻게 했는가? 인간적으로 싸우겠지만 싸우지 않고 그냥 줘버렸다. 대신 이삭의 마음속에 나는 하나님을 의지 하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과 친하니까, 다 빼앗아 가도 하나님은 내 길을 다시 열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주실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가져가도 “He will make a way!” ‘그분이 나의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고, 야곱도 자기 아버지 이삭을 보고 살았기 때문에 그리했고 나중에 라반과도 싸우지 않고 하나님이 길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양보해 버렸다. 그랬더니 이삭을 괴롭혔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창세기에 나온다.
 
*창세기 26:28,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그 심장을 듣고 주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면 결국은 인생의 삶을 인도하신다.
 
▷두 가지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라.
 
*잠언 3:6,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오늘 이 예배에 오신 한 분 한 분의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법칙이다. 이것은 세상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이것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물어보고 가까워지면 여러분들의 길을 인도하신다. 여기서 길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우리의 삶의 길들 가운데 어떤 길은 막히기도 하고 어떤 길은 패이기도 하고 어떤 길은 골짜기이기도 하고, 어떤 길은 낮아지기도 하면서 수많은 일들이 나타날 텐데 그 수많은 길들 가운데서 물어보고, 수지 않고 계속 기도하고 물어보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면 반드시 길을 지도하신다. 그리고 길을 지도하신다는 말을 보니까 원어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애물(障碍物)들을 치워주신다는 것이다. 막힌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앞에 여러 장애물들이 있어도 하나님이 치워주시면 되는 것이다. 신비로운 일들이 인공위성이 일어나듯이 총알처럼 여러분의 벽들을 무너지게 하실 것이다. 수많은 복수의 길들, 수많은 길들을 새롭게 열어주실 것이다. 닫힌 문도 열어주시고, 거친 길은 부드럽게 하실 것이며 위험한 길은 안전하게 하실 것이며, 외로운 길은 친밀하게 동해하여 주실 것이다.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믿고 어린아이처럼 성장하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성숙해지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을 우리가 인정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인정하신다. 우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는 것이다.
 
*고린도후서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 원수를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이 칭찬하신다. 우리 앞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겠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이다.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마다 때마다 주님께 물어보는 사람이다. 주님과 친해지는 것이다.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면 무슨 결정을 하든지 주님은 현명한 답 주실 것이며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차렷 자세이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이야기 한 영역주권의 주님이 내 삶에 모든 왕이 되게 하신다는 말과 연결될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으면 내가 어디에 살든 내가 누구와 살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주님이 길을 내 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편하게 물어보고,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물어라. 주님과 더 친해라. 어떤 나라들보다도 우리 민족이 주님과 친하면 우리 한국교회는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듯이 우리나라를 인도하실 것이다. 기독교가 있으니 이만큼 우리나라가 되는 것이다.
 
♣요약
우리의 삶의 실패를 회복의 모닥불로 바꾸시는 주님을 신뢰하여 인생의 난제를 하나님께 항상 여쭈어 보고, 주님과 더욱 친밀하여서 어떤 장애물도, 어떤 문제도 치워주실 확신하여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께 기대하며 기도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신앙의 기본을 차렷 자세로 올 한 해를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법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다. 목에 매고 마음 판에 새긴다는 말은,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할 계명으로 여기고 모든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법은 이처럼 지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의 삶의 결단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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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2022년 12월 31일)
제목: "왕 같은 제사장의 평생 기도제목"
찬양인도: 연합찬양대
말씀: 시편 20:1~19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대표기도: 김동신 장로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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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0:1~19,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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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 하며, 성도님들이 새벽에 모여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게 되어 주님을 찬양한다. 아마 전 세계에서 이렇게 새벽에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곳은 우리 교회뿐일 것이다. 마음에 성도님들 각 가정마다 개인적으로 영성을 얻고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삶이라는 것은 좋은 일들도 있고 어려운 일들도 있고, 잘 살수도 있고 못 살수도 다 있지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공하지 않으면 나씽(Nothing)이다. 영적으로 모든 성도들 한 분 한 분이 영적으로 성공하기 바란다. 우리가 평생 기도의 제목이 있어야 한다. 기도의 제목이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시는 그런 축복을 받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할 것이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왔다면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한다. 말씀 한 절 한 절마다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서 온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공하길 소원한다. 지난 한 해를 제대로 살았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겠지만 이제는 우리 앞에 새로운 날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기백을 가지고 지팡이를 들고 평소대로 하나님께 6개월, `1년도 안 되어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오늘 말씀은 다윗의 기도이다. 다윗이 이렇게 기도한다.
 
*시편 20:1,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인생이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굴곡도 있고 수많은 일들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9절에 보자.

*시편 20:9,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왕을 구원하여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편은 다윗의 시이자 왕의 시이다. 왕이 기도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인가? 하겠지만 사랑의 교회는 모든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이것이 특권이자 세상으로 보냄 받은 소명자이다. 그래서 특권의식과 소명의식이 같이 가는 것이다. 우리는 특별히 구약의 레위지파나 아론의 자손들이 제사장들이지만 신약에는 우리 모든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구원 받은 자들이다. 똑 같은 신분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약의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 왕 직을 겸한 제사장이다. 그러니까 오늘 이 노래는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확인하고 평생 부를 수 있는 기도의 제목으로 올려도 된다면 다윗의 기도의 제목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평생의 기도의 제목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모두가 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 기도를 주신 줄로 확신한다. 그리고 이 기도를 당당하고 힘 있게 주님께 올려 드릴 때에 그가 어떤 배경이든 얼마나 대단하든 상관이 없이 그리스도인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은 걸 맞는 품위를 주신다. 거룩한 품위와 존엄성을 주신다. 존엄하게 하신다. 그리고 품위를 주실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그 품위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의 용량, 믿음의 그릇을 갖도록 하신다. 갖추어 주신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두 가지이다. 존엄성과 믿음의 용량이다.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교회 중직 자나 처음 오신 분이나 상관이 없이 안아주심의 본당에 발을 딱 들여 놓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존엄성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동시에 믿음의 용량을 여기서 갖추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도록 오늘 성경구절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에게 기도의 제목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편 20:1,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본래 이런 기도가 다윗 왕에게 적용이 된 것이지만 오늘 21세기 왕 같은 제사장,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너에게 너의 네게 할 때, 여기에 이름을 붙여서 다시 읽어보자. 평생 붙잡는 기도 제목이 있는가?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OOO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OOO를 높이 드시며.
-이렇게 이름을 넣어서 말해 보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다윗 왕이 환난날에 가장 강력한 그의 영적 자본과 자산이 무엇인가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응답하신 것이 가장 큰 강력한 영적 자본이다. 오늘 우리 21세기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이름을 대입했다는 것은 여러분이 새벽마다 새벽예배마다 앞으로 예배마다, 여러분의 삶의 여정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임의 가장 강력한 영적 자본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도 언제? 환난 날에 그렇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야곱의 하나님이 너를 높이 드신다고 하신다. 중요하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오늘 특별히 환난 날에 야곱의 하나님이 너를 높이 드신다고 하신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모두 비슷하지 않지만 야곱이 좀 비슷하다. 그 야곱의 됨됨이를 보면 상당히 더 마음이 다가가는 인격이다. 야곱의 생애를 보자. 하나님께서 한 결 같이 다듬으신다. 그 부족함이 많지만 하나님이 붙잡아 주신다. 부흥시리즈 하면서 야곱의 말씀을 깊이 말씀드렸다. 야곱의 생애의 백미가 어디인가? 최고가 어디인가? 히브리서 11장 21절을 보면,
 
*히브리서11:21,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제가 이 지팡이를 강조한 이유가 실체가 있어야 한다. 야곱이 죽을 때 어떻게 했는가? 그의 지팡이를 의지하여 경배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나중에 경배하며.. 우리가 나중에 죽을 때, 하나님께 예배하며 지팡이 들고 죽을 수가 있다. 야곱이 우리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도 복잡하고 힘들고 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그를 생애 마지막에 이 지팡이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다가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지팡이에 기대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야곱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 아무리 힘이 없어 지팡이를 머리에 기대하고 예배할 때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내 생각을 다 버리고 지팡이에 머리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야곱의 모습을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다. 내 때와 내 생각을 다 정리하고 지팡이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 다가오는 새해에 우리는 누가 소중하고 누가 어떻게 할까? 를 수많은 꾀를 낼 수가 있을 것이다. 야곱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듬으시고 다시 한 번 야곱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한다. 이 순간 앞으로 2023년 매 순간을 지팡이의 머리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는 신실한 예배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일하실 것을 믿고 이 다가올 한 해 동안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어떤 젊은이 한 사람이 꿈을 갖고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했다. 완전 실패했다. 그래서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수면제 수십 알을 사가지고 다 털어 먹고 죽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마음 속에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자기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라.’고 하셨던 이야기가 가슴을 때렸다. 그 순간 멈추고 갑자기."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라"라고 하는 말씀이 깨달아져서 기도했다. 내 방식 내 생각대로 살아왔는데, 하나님 아버지께 한 번 만 더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다. 기회를 더 준다면 우리 어머님의 조언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기도했다.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자기에게 사업 자금을 빌려준 투자자들을 찾아서 솔직히 이야기 하고 힘들어서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의 어머니 말씀이 생각이 떠올라서 죽음을 포기하고 다시 한 번 살아보려고 한다고 자기에게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갚겠다고 했다. 그 투자한 사람 중에 제일 많이 투자한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사업을 일으켰는데 바로 이 사람이 Conrad.N.힐튼​이다. 힐튼 호텔이다. 그래서 힐튼 호텔의 방마다 성경책이 있다. 그래서 전 세계 강력한 호텔이 되었다. 가장 깨끗한 호텔이다. 우리 마음에도 이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살아가면서 수면제를 털어넣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왜 없겠는가? 평생의 기도제목이 우리에게 주셔서 야곱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서 우리 마음에도 그런 응답의 축복을 주시길 소원한다.

*시편 20:2,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이름을 다시 넣고 읽어보자. 성소에서 OOO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OOO를 붙드시고,
:-성소에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시온에서 우리를 붙잡아 주신다. 이 성소와 시온은 무엇인가? 하나님 만나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성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자기의 마음의 어려운 심령들을 다 쏟아놓고 잘못 된 생각은 다 교정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하나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것이 성소가 되는 것이다. 왜 중요한가? 인생살이 중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 많다. 억울한 일도 많고, 열 받을 일도 너무 많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우리 이제 어떤 사람은 잘 나가고 꾀를 부리고 잘 나가는 승승장구한 자들이 많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유명한 말씀을 보자. 시편, 악한 자들 때문에 시험을 받을 때,, 보면,

*시편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3년 한 해 동안 실제적으로 이 안아주심의 본당에 들어올 때마다 인생 전체의 그림이 그려지기를 바란다. 아멘,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기를 바란다. 너무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여기서 주의 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의 전체의 그림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이렇게 새벽부터 예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들은 이 안에 들어와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꿈과 인도하심을 확인하게 되면서 우리가 영적으로 성공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그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과 성소에서 나중에는 성전이 되고 우리가 예배드리는 장소가 되지만 그 성소와 성막은 늘 세 가지를 주셨다. 성소와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갈 때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예표 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두 번째는 성소와 성막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참 쉼과 안식을 주셨다.
세 번째는 성소에 들어가서 언약궤를 지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여러분들과 제가 2023년을 살아가는 동안 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 성소에 들어가 다섯 가지 제사을 드려서 축복이 되기를 소원한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양과 소의 피, 곡식, 가지고 불태우기도 하고 흔들어 드리기도 하고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다섯 가지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말씀으로 드리는 예배, 찬양으로 드리는 예배, 기도로 드리는 예배, 성도의 교제로 드리는 예배, 그냥 물질을 가지고 헌신으로 드리는 예배, 이런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삶에 이 한 해 동안 무슨 은혜를 받아야 되는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고 평안이 있게 하시고 참 신이 있게 하시고 어떤 경우에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 주시길 기도하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21세기 영적인 제사, 다섯 가지 제사는 오늘 이 시대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고, 우리는 날마다 하나만 하면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한 영원한 제사가 되어 주셨다. 구약의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의 이 은혜를 단번에 영원한 제사들 드리므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그 보혈로 단번에 완성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제단에 와서 십자가의 은혜를 간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임하게 하시길 원한다. 매주일 경험될 때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승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에 이 은혜로
 
*시편20:4~5,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단번의 해결하신 그 축복을 가지고 내 마음의 소원과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한 명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우리의 승리, 다 함께 승리, 전쟁도 함께, 그리고 개인적인 짐과 고통도 다 공동체가 교회에서 모임 되어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승리를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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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0:7,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사람이나 학연 지연 등을 의지하고 살아온 과거에 대단한 것 다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새해는 더욱 주님을 자랑하자.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며 모두 신실한 도구로 사용되고 모두가 다 영적으로 승리하기를 원한다.
 
♧요약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는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참 쉼과 안식을 누리며. 성소에 들어가서 언약궤를 지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전에서 모든 고난과 짐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온전히 맡기고 믿음으로 새해에는 야곱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서 예배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평생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한다.
 
-회중과 더불어 간구하는 왕은 일차적으로 다윗 왕을 가리킨다. 하지만 성경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에 왕은 구속사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곧 다윗 왕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 한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승리를 볼 수 있으며,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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