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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월 18일)
제목: "일상, 하나님의 나라!"
말씀: 미테복음 4:1-10
찬양인도: 쉐키나(이 디니엘 부목사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자: 빅인기 부목사님(목양 3팀장, 중보기도사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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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복음 4:1-10,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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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시험을 본다. 학창시절 중간고사 기말고사 뿐만이 아니라 수능도 있다. 또한 학교를 졸업하고 난 다음에 직장에 취업하기 위하여 취업시험도 보고 직장에서 진급 시험도 본다. 그뿐이 아니라 어떤 자격증을 갖기 위하여 자격증 시험, 운전면허 시험도 본다. 이런 시험들은 우리를 기쁘게도 하지만 어떨 때는 심각한 좌절 가운데 빠지게 하기도 한다. 저는 운전면허 시험에 떨어져서 좌절에 빠졌다. 무려 8번이나 떨어졌다. 학원비 아껴보려고 친구한테 그냥 한 번씩 배우고, 한 번씩 운전해 보고 시험을 쳤는데, 나중에는 시험 치는 비용이 운전학원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나왔다. 여덟 번 떨어지고 난 다음에 아홉 번째에 붙었는데 너무 기뻤다. 20년 동안 무사고로 운전하고 있는데, 한 번씩 도로에 운전하며 운전연습 차량들을 보면 짠한 동질감을 참 많이 느끼곤 한다. 시험은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도 하고 우리를 기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시험은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도 동일한 여러 시험들이 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 서에서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찾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라고 말씀한다. 성도들을 시험에 빠뜨리기 위하여 어떨 때는 우는 사자의 두려움으로 또한 어떨 때는 광명을 천사처럼 달콤한 유혹으로 성도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위협한다.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두려움을 주고 또한 우리를 유혹하고 결국에는 경계심을 제거하여 시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인류를 대표하는 첫 번째 아담도 뱀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인류를 모든 오염된 가운데 태어나게 하고 살아가게 했다. 이처럼 치명적이다. 또한 너무 어렵고 힘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항상 이 모든 시험들이 어렵다거나 힘들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그의 서신 서에 “네 형제들아 너희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당할 때 우리에게 기쁘게 여길 것들을 권면한다. 수제자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6-7절에 보면,
 
*베드로전서 1:6-7,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신앙인들에게 다가오는 시험, 이 시험을 어떻게 견디고 이기느냐에 따라 우리 신앙생활 가운데 치명적인 어려움을 줄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될 수도 있다고 권면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오는 이 시험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가는 가의 문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멋지고 좋은 모범적인 답안들을 보여주셨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이다. 예수님은공생애를 시작하며 마귀에게 당하시는 이 세 가지의 시험, 이 시험에서 너무나 못 있게 이기심으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 가운데 다가오는 시험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승리의 비결들을 함께 나누고 우리의 삶 가운데 오는 시련과 어려움들을 승리할 수 있는, 비결들을 배워갈 수 있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예수님이 당하신 첫 번째 시험이다.
I. 첫 번째 시험은 삶의 모습에 대한 오해입니다.

-이 시험은 마귀는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께 찾아와서 돌을 변하여 떡으로 만들어 먹을 것들을 촉구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3일을 굶으면 담을 넘지 않을 군자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배고픔들이 너무 심각한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저도 예전에 일주일 정도를 금식한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초반부에는 견디었다. 마지막 2-3일 정도 남겨두고서는 금식 끝나고 나서 먹을 것들을 생각하며 그 상상으로 남은 시간들을 견뎠다. 금식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주일을 금식도 이렇게 힘들 진데 40일 금식하신 예수님,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육체의 모습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동일하게 고통과 배고픔을 경험하신 예수님이셨다. 그 예수님께 마귀가 시험하는 것이다. 먹을 것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예수님께 배고픔의 문제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문제였다. 마귀는 예수님의 약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와 집요하게 공격한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 굶주림은 삶의 중요한 현실이며 우리가 당면한 현실의 어려움을 상징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돈이 없어 고민하고 몸이 아픈 것 때문에 어려워하며 불안한 미래 때문에 힘들어 한다. 우리의 가장 원초적이며 현실적인 어려움 아닌가?
 
예수님도 우리의 어려움들을 아셨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친히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이런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마귀는 우리에게 찾아온다. 또한 예수님께 이야기한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역으로 이야기하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셔야 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친히 너의 자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너를 돕고 일으키시며 그 문제를 하나하나 다 풀어주셔야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의구심들을 우리에게 던진다. 시험하는 자는 구체적인 현실들 앞에서 해결을 주지 않는 예수님께 실망하고 그 결속력들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시험에 빠지면 우리의 속에 원망이 생긴다. “하나님, 왜 이런 문제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가요? 왜 나만 힘든 걸까요? 하나님 나를 사랑하는 것 맞습니까? 아니 하나님 게신 것 맞습니까?” 이런 의구심과 불안함 들이 우리 속에 솟아난다.
 
※얼마 전에 풀룻 연주자인 송솔나무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허준, 이산, 동이, 드라마 주제곡들을 연주한 아주 탁월한 풀룻 연주자이다. 어렸을 때, 참 부자였다고 이야기 한다. 아버지께서 유명한 출판사를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도피성으로 어쩔 수 없이 엄마와 누나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 참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아버지의 사업이 완전히 망했다. 아버지는 도망자가 되에 연락도 안 되었고 엄마와 누나와 함께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던 중, 어려움 끝에 줄리아드 음대에 프리스쿨에 풀룻 연주로 합격했다. 어려운 현실 가운데 엄청난 은혜였다. 이것만이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고 소망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던 중, 그에게 힘겨운 일이 찾아왔다. 음악연주자에게 악기는 생명과 같은데 그 악기를 세 번이나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첫 번째 도둑맞고, 두 번째 도둑맞고, 마지막 한 악기가 남았는데 천만 원이 넘는 그 악기마저 도둑맞은 것이다. 그때 그는 심각한 절망 가운데 빠졌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요? 내 삶을 돌보고 계신 것 맞습니까? 하나님,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교회를 떠났다. 그런데 만약 이런 마귀의 속삭임,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런 속삭임이 예수님을 위한 것인가? 그것이 아니다. 이 마귀의 속삭임은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의 음침한 속삭임이다. 이 비슷한 속삭임이 있다. 마태복음 27:40절에 나온다.
 
*마태복음 27:40,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십자가를 향하여 매달린 예수님께 내 뱉은 사람들의 조롱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동일한 속삭임이다. 마귀의 요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인간, 이것을 가장 원하는 것이며 마귀가 기대하는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라면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해 주셔야 되는 것 아니냐?’는 그의 외침이다. 하나님이 너의 어려움의 삶에 찾아오셔서 너를 건져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너를 도와 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 한다. 혹시 근본적인 문제로 시험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는가? 동일한 이런 마귀의 외침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5-37절에 보면,
 
*로마서 8:35, 37,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가 얼마나 곤고한 문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 어떤 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고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에서 붙들고 계심을 약속하고 있는 줄 믿는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는 어려움 가운데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의 간구 가운데 응답해 주셔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가 맞다 하지만 또 다른 은혜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들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을 믿는다. 시편 23편에 나오는 고백처럼,
 
*시편 23:4-6,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사망의 음침한 가운데서도 주께서 지팡이가 되시고 원수가 바로 앞에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상을 차려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럴 때 성도는 고백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 그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우리에게 고백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
 
예수님이 당하신 두 번째 시험이다.
II. 두 번째 시험은 삶의 이유에 오해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성전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뛰어내리라고 재촉한다. 이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까지 동원해서 시험을 한다. 시편 91편 11-12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천사들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시편 91:11-12,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 말씀을 인용하여서 “뛰어내려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너를 구해 주실 거야.”라고 이렇게 유혹한다.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에 대하여 확신하며 뛰어내리는 것을 요청한다. 이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권능을 증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그래, 내가 한 번 뛰어내리지. 하나님 정말 권능과 능력이 있어, 내가 뛰어 내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천사들을 통하여 나를 보호해 주실 거야. 야, 잘 봐, 하나님이 얼마나 권능에 있는지, 능력이 있는지, 똑똑히 봐?” 하면서 풀쩍 뛰어내릴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마귀의 예수님은 요청에 전혀 응답하지 않는다. 왜 그랬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증명할 수 있는 이 상황 가운데 왜 예수님은 묵묵부답(黙黙不答)이셨는가? 마귀의 말에는 하나님의 능력만 나타날 뿐이다. 능력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에만 집중할 때, 우리는 시험에 빠진다. 그 능력을 집중하고 신뢰하지만 어떨때는 그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필립 얀이 지은 책 제목 중에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라는 책에 실망하는 것이다. 왜 실망하는 것인가? 실망이라는 항상 기대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며 나타난다.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실망이 없다. 기대하기 때문에 그 기대한 대로 결과들이 나타나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실망할 때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 이만큼 내가 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되죠, 하나님, 내가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봉사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모든 것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하나님 기도 가운데 응답해 주시고,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되죠?”라고 그런 기대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마치 하나님은 능력의 자판기처럼, 내가 어떤 input을 넣으면 하나님으로부터 output이 나와야 된다. 라는 은연중에 그런 기대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나님, 우리 아이가 이번에 대학교 시험에 떡하니 합격해서 하나님께 영광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이번 진급 시험에 합격해서 진급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질병을 주께서 낫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께 영광 올리게 주십시오.” 이런 기도가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하지만 이런 기도들, 이런 바램들, 이런 하나님의 능력, 이 능력 가운데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있다. 그것은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내기 위함보다 하나님과 먼저 교제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가운데서 그 관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어리 적에 가끔 퇴근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사간 적이 있다. 아이들이 치킨을 좋아하고 햄버거를 좋아했다. 유독 많이 좋아했다. 한 번씩 치킨이나 햄버거를 사서 한 손에 들고 집으로 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이들이 저를 보고 막 달려온다. “아빠!!!” 하고 달려와서 저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함과 동시에 다른 편에 있는 봉투를 낚아채서 달려간다. 저는 내심 하이파이브하고 나서 아빠를 안아주기라도 하든지, 뽀뽀라도 한 번 해주든지 해줄지 알고 “아빠 감사해요. 잘 먹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할 줄 알고 시간을 줄줄 알았는데, 이 봉투만 들고 가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왔지만 내심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만 집중할 때,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그 능력만 우리가 바라본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 그 마음이다.
 
고린도전서 1:9,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 이전에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줄 믿는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역대하 16장을 보자.
 
*역대하 16;9,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신다. 그리고 어떤 자들을 찾으시는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하나님을 향해 시선이 고정된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향하여 능력 베푸시는 줄 하나님이신 줄 믿는다. 능력이전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먼저이고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다.
 
제가 지난주에 제천기도동산에 다녀왔다. 신년을 시작하기 위하여 기도하러 간 것도 있고 제 삶들 가운데 여러 어려운 문제들, 제 두 자녀의 문제, 또한 저의 문제, 저의 가정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간구하기 위하여 기도할 문제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기도동산의 본당에 앉아 처절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 문제를 주께서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 도와주셔야 합니다.” 막 기도하는 중에 너무 답답하게 기도하는 중에 주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인기야, 힘드냐? 네 주님, 너무 힘듭니다. 너 힘듦을 내가 모를 것 같냐? 네가 힘들어 하는 것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너는 내 것이다. 너의 삶을 내가 책임진다. 너의 삶, 그 능력 가운데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너의 삶을 책임진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라고 그 마음을 주시는데 하나님 앞에 끄억 끄억 소리 내어 울었다. 저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기대하고 계셨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을 능력의 자판기처럼 오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님은 이 마귀를 향하여 외치신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우리가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때, 이 마귀의 시험은 말씀으로 물리칠 줄 믿는다. 아멘.
 
예수님이 당하신 세 번째 시험이다.
III. 세 번째 시험은 삶의 목적에 대한 오해입니다.
 
-삶의 목적에 대한 오해, 마귀의 마지막 시험은 예수님을 가장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모든 영광들을 다 보여 주신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야기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야기 한다. “이거 다 너에게 모든 것들을 줄게. 나에게 딱 한 번만 절 한다면 모든 것들을 줄게.” 모든 것들을 다 가질 수 있는 정말 좋은 진 기회이다. 마귀에게 절만 한 번 한다면, 마귀의 유혹이다. 이 마귀의 유혹은 세상의 화려한 물질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고 또 마음껏 누리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우리의 욕망들을 부추기며 계속해서 유혹한다. 그 욕망이 유혹으로 넘어간다. 이런 유혹들은 우리의 삶의 도처에 널려있다. 조금만 신앙양심을 접으면 수많은 수익들이 생길 수 있고, 또한 한 번만 눈을 질끔 감으면 얼마간의 소유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신앙이라는 것만 잠깐 접으면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누리는 그 기쁨들을 동일하게, 그 희락들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다. 라고 유혹한다. 마귀의 유혹이다. 잠시 접어두기만 하면 한 번, 한 번만, 접어두기만 하면, 요한은 이런 마귀의 유혹들을 너무나 잘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요한 일서를 보면,
 
*요한일서 2:16,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마귀는 우리를 유혹한다. 이 마귀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한 번만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다 줄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것을 다 줄게.’ 라고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해
 
유명한 신학자 리차드 포스트는 돈과 권력과 섹스, 성으로 표현한다. 마귀의 성 가운데 있는 무기이다. 딱 한 번만 눈을 감으면 그것이 나의 것이 된다고 이야기 한다. 혹시 복 요리를 좋아하는가? 복요리, 아주 맛있는 보양식이다. 하지만 복어가 갖고 있는 독성은 죽음의 아이콘 청산가리보다 몇 십 배나 강력한 독을 품고 있다. 돈, 권력, 성이 우리의 일상이지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갈 때, 이것은 우리의 신앙 가운데 치명상을 일으킨다. 순식간에 절망가운데 빠진다. 불의한 재물이 되고, 오만한 권력이 되고, 불륜이 되는 것이다. 이런 유혹들은 최초 아담의 유혹인 뱀을 유혹하는 것과 흡사하다. 아담이 그 전에도 선악과를 참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뱀이 와서 유혹을 한다. “저거 한 번 먹어봐, 먹는 날에는 하나님처럼 될 거야.” 그때부터 선악과를 보는데 보암직도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하는 탐스러운 과일이 되었다. 그리고 유혹한다. “한 번만, 한 번만”, 이거 한 번이 너무나 치명적이다. 한 번 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그때부터 우리의 삶이 된다. 조금 지나면 어떠한가? 절망적으로 우리의 신앙 가운데 심각한 어려움 가운데 빠지고 수많은 후회들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저의 이야기이다. 제가 목사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참 많이 경계하지만 한 번씩 한 번씩 그런 유혹들이 엄습(掩襲)해 온다. 어떨 때는 그런 유혹 가운데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제 스스로 시달린다. ‘아이구 목사가 되어서... 내가.’ 어렵다.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반대도 있다. 항상 우리가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아담처럼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은 10대의 나이에 이억 만리 바벨론에 포로(捕虜)로 잡혀간다. 10대의 나이에 왕의 진미(眞味), 먹으라고 주는 그 맛있는 음식들을 거부한다. 장년이 되어서는 금 신상에 절하기만 하면, 그가 물을 수 있는 것이 참 많았다. 그런데 그 금 신상에 절하지 않고 그 세 친구들과 함께 풀무 불에 던져지는 것들에 주저(躊躇)하지 않는다. 그의 노년이 되었을 때, 90대의 노후가 되어 왕 외에는 어떤 간구들을 하지 않아야 됨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그렇게 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유혹 가운데서도 그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전에 하던 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다. 한 번만 눈 찔끔 감으면 모든 것들이 해결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자존심을 지키며 그에게 절하기를 원하는 마귀의 유혹가운데 단호하게 맞서 물리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풀무 불 가운데 보호해 주시며 다니엘을 사자의 입 가운데 건져 주신 줄 믿는다. 아멘, 수많은 유혹 가운데서 우리는 얼마나 연약(軟弱)하며 연약하다 못해 나약(懦弱)한 존재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나는 나약하지만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은 절대 나약하지 않는다. 나는 부족하지만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강하고 능하신 용사인줄 믿는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그 성령님이 날마다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신줄 믿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로마서 8:26,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연약함을 너무 잘 아신다. 하지만 그 성령이 우리를 도우신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계속해서 간구하고 계신다. 말씀을 마무리 한다. 앞에서 나왔던 풀롯 연주자, 송솔나무 연주자 이야기 뒤 부분이다.
악기를 세 번이나 도둑맞고 하나님을 떠났다. 십 년이나 하나님을 떠났다. 그렇게 연주자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을 무렵, 그의 친한 동료가 전도 집회 때에 그를 초청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그를 따라가 전도 집회에 앉아있었다. 한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었다. “내가 도둑맞은 게 무엇이냐?” 송솔나무씨가 하나님께 대답한다. “하나님, 제가 생명같이 여기던 풀룻을 도둑맞았어요.” 하니, “아니 네가 도둑맞은 게 무엇이냐?” “아니오. 하나님, 제가 풀룻을 도둑맞았습니다.” “그래, 네가 도둑맞은 것은 풀룻이 아니라, 나의 대한 마음이야. 나를 도둑맞았어.” 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그는 그 자리에서 예배 마칠 때까지 그는 펑펑 울면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성탄절 저녁에 TV를 보는데 TV에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구출하는 한국사람 영상이 나온다. 누굴까? 벤을 구출하는데 벤을 보니 총알자국이 너무 많은 것이다. 언제 죽을지,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벤을 통하여 다른 나라로 구출하는 그 사람이 그 송솔나무 그 사람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서 찾아보니 그분이 바로 송 솔나무씨였다. 하나님 앞에 그를 드리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난이 닥치면 낙심하고 의심에 맞기 쉽다. 또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타락한 우리의 본성이며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 주신 이유는 승리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승리하는 비결들을 보여주셨고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 또한 마귀의 시험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을 줄 믿는다. 마귀의 시험들은 공통점이 있다. 계속해서 우리를 보게 한다.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게 한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시선’이라는 찬양이 계속 떠올랐다. 그 가사를 보면,
 
1절-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주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2절- 성령이 나를 변화시켜 모든 두려움 사라질 때 주의 일을 보겠네. 황폐한 땅 한 가운데서 주님 마음 알게 되리.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시험이 난무하는 우리의 일상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가운데 우리의 시선들을 내게로부터 주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우리의 일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줄 믿는다. 수많은 시험과 유혹 가운데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봄으로 승리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일상이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  ~~

♣요약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서 일상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여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향하는 시선들을 주님께 고정시켜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능력 주심을 확신하며 모든 연약함과 마귀를 이겨내게 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선포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명한 결투 즉 천사 장 미가엘과 용,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아니 뱀 자신과의 백병전의 사건을 보게 된다. 이 싸움에서 여자의 후손은 시험을 받고 고통을 당하며 그의 발꿈치를 상한다. 그러나 뱀은 그의 시험에서 완전히 실패하며 그의 머리가 깨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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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월 16일 (782)
1. 기업이 발표한 실적이 시장 추정치보다 크게 낮아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상황을 뜻하는 말은?
①어닝 시즌 ②프리어닝 시즌
③어닝 서프라이즈 ④어닝 쇼크
2. 매년 초 근로소득자의 급여에서 전년도에 원천징수된 세액의 과부족 여부를 따져 세금을 더 냈다면 환급하고, 덜 냈다면 더 부과하는 절차는?
①세액공제
②유상증자
③감가상각
④연말정산
3. 한국의 ‘4대 보험’에 속하지 않는 것을 고르면?
①국민연금 ②연금저축
③산재보험 ④고용보험
4. 배를 만드는 산업을 뜻한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이 세계 발주량의 37%를 따내며 선전한 이 업종은?
①해운 ②조선
③방산 ④2차전지
5. 공인회계사가 제시한 네 가지 감사의견 중 기업 존립에 의문이 들 정도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된 가장 심각한 상태는?
①적정 ②한정 ③부적정 ④의견거절
6. 증시 약세 탓에 지난해 ‘이것’ 규모가 세계적으로 65% 급감했다. 기업이 일반투자자에게 주식을 공개하고 증시에 상장하는 절차인 이것은?
①SPAC ②PEF
③IPO ④M&A
7. 국가가 보유한 노동·자본·기술 등 생산요소를 모두 활용하면서도 물가 상승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경제성장률은?
①잠재성장률 ②명목성장률
③실질성장률 ④총요소생산성
8. 산업 현장에서 많이 쓰는 비철금속의 하나로, 가격이 실물 경기를 잘 반영한다고 해서 ‘닥터 코퍼’라는 별명이 붙은 이 금속은?
①구리 ②니켈 ③아연 ④알루미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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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기술 한계는 어디까지? 상상 초월 'CES 2023'

 

인류는 지금 ‘제2의 태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태양 만들기에 성공하면 인류는 석유, 가스, 석탄과 같은 화석 에너지에 집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태양은 핵융합을 통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는데요. 지구에서 태양을 만들려면, 즉 핵융합이 일어나도록 하려면 1억 도 이상의 초고온 상태를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답니다.

진전은 있습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30초 동안 1억 도를 유지하는 기술을 선보였고,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는 레이저를 이용해 핵융합을 일으키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현했습니다. 인류는 언제쯤 만족할 만한 기술을 거머쥘까요?

지난 5~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IT·가전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3’은 이 질문에 답을 줬습니다. “인류가 걸어온 길을 계속 걸어가면 가능하다”는 것이죠. CES는 우리가 상상했던 온갖 기술이 실현되었음을, 또 조만간 구현될 것임을 보여준 최첨단 기술 경연장이었습니다. 돌을 갈아 썼던 우리 조상들이 봤다면 기절했을 기술과 제품이 즐비했습니다. 타제석기에서 마제석기로 진화하는 데 수십만 년이 걸렸던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기술적으로 ‘호모 데우스’, 즉 신의 영역을 넘볼 정도의 수준에 올라설 수 있었을까요? CES 2023을 통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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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뱀·펴고접는 디스플레이·선 없는 TV…상상을 기술로 구현한 혁신에 세계가 '깜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5~8일 열린 세계 IT·가전 전시회 ‘CES 2023’은 기술 진화에 인간 한계는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CES는 코로나19 때문에 3년 만에 열렸는데요. 긴 공백을 메우려는 듯 이전보다 진화된 많은 기술과 신제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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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융복합 기술을 탑재한 로봇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양쪽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다목적 휴머노이드 로봇 ‘아이오’. 그림을 멋지게 그려주는 ‘스케처’. 수도관 누수를 찾는 로봇 뱀 ‘클린 워터 패스파인더’…. 가장 눈길을 끈 기술은 로봇뱀입니다. 로봇뱀은 수도관을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관이 얼마나 부식했는지, 석회화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등을 확인해 지도화합니다. 프랑스의 자율 로봇 스타트업 ACWA로보틱스 제품인데 조만간 상용화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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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고 접는 삼성 디스플레이

삼성은 ‘세상에 없던’ 디스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접혀 있던 디스플레이를 펼치고 또 오른쪽 화면을 당기면 디스플레이가 커지는 기술입니다. 처음엔 스마트폰 크기(7.8형)였다가 펼치면 태블릿PC(10.5형)만 하게 확대되고, 다시 늘리면 12.4형까지 늘어납니다. 화면이 커지면서도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영상은 끊기지 않습니다. 별도의 버튼을 누르지 않고 공책을 펴듯 열면 됩니다. ‘플렉스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작은 크기로 휴대하고 다니다가 필요에 따라 화면을 키워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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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없는 LG TV


선(線) 없는 TV ‘LG 시그니처 올레드M’는 LG전자의 비밀병기로 불렸습니다. LG전자가 축적한 ‘올레드 TV 10년의 노하우’를 모두 담은 TV입니다. 이 TV는 전원을 연결하는 선 외에 아무 선도 필요 없습니다. 너저분한 TV 줄이 없어서 주변이 깔끔한 게 특징입니다. LG전자의 대표 출품작답게 이 TV는 홈시어터 부문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현존하는 TV 중 가장 큰 97형 OLED TV에 세계 최초로 4K·120㎐ 무선 전송 솔루션을 탑재했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선이 없을 경우 화질이 떨어지고 소리가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제품은 그런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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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처럼 색상이 바뀌는 차


BMW는 ‘디지털 영혼을 가진 친구 같은 차’를 콘셉트로 한 전기차 ‘i 비전 Dee’를 공개했습니다. 이 차는 인공지능 친구(비서)를 두었습니다. 비서를 통해 운전자의 감정을 표현하듯 차의 외관 색상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었습니다. 색상과 표정 변화는 특수 안료가 포함된 캡슐 수백만 개가 전기장에 의해 한쪽으로 쏠리는 원리에 따라 구현된답니다.

미국 모빌리티 스타트업 아스카(ASKA)는 도로와 하늘에서 모두 쓸 수 있는 공륙양용 차량 ‘A5’를 공개했습니다. 이 회사가 선보인 것은 4인승이었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가솔린을 동력원으로 쓴다고 합니다. 지상에선 한 번 충전으로 최대 약 400㎞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수직으로 이착륙할 수 있고, 활주로를 이용해 이륙할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로 다니다가 길이 막힐 때 하늘로 붕 떠올라서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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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극복 제품

국내 스타트업 닷이 만든 닷패드는 디스플레이 표면에 2400개의 핀이 올라와 PC나 모바일 등에 나온 도형·기호·표 차트 정보를 점자로 표시해주는 촉각 디스플레이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소통할 수 있는 점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언제든 자유롭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셀리코라는 회사는 ‘전자눈’을 선보였습니다. 시세포층에 카메라 역할을 하는 이미지 센서칩을 삽입하는 게 핵심 기술입니다. 이 장치가 빛을 감지한 뒤 이를 생체 전기 신호로 변환해 뇌에 전달합니다. 시력 0.1 이상 수준까지 해상도를 높이는 게 이 회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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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화중인 기술…'밈(meme) 복제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CES 2023’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첨단기술이 모였습니다. 전시회를 둘러본 사람들은 “우와 이런 것까지 구현됐네”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인간은 왜, 어떻게 다른 동물과 달리 새로운 기술, 새로운 도구를 잘 만들 수 있게 됐느냐”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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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가는 데만 수십만 년
인류 조상이 타제(打製)석기인 찍개를 쓰다가 마제(磨製)석기인 돌도끼를 쓰는 신석기 인류로 진화하는 데 수십만~수백만 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깨어져 있는 돌 쓰기’에서 ‘돌을 날카롭게 갈아서 쓰기’로 점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니, 정말 믿기 어렵습니다. 마제석기는 시간이 더 걸려서 청동·철기를 낳았습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아마도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 같은 조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철기시대는 곧 산업혁명을 낳았습니다. 말과 소의 힘을 이용하는 인류는 증기라는 거대한 힘을 에너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대 기술 혁신이었습니다. 철기는 증기를 만나서 기차,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21세기 인간은 이제 만들지 못할 것이 없는, 심지어 ‘제2의 태양’까지 만들려 하는 중입니다. 인류학자들이 ‘도구를 잘 만드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조어(造語)해낸 ‘호모 하빌리스’라는 용어는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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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진 기술 진화
주목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인류 역사 중 99%가량이 구석기 시대였지만 급격한 기술 진화는 길게 잡아야 200여 년 전부터 시작됐고 우리가 즐기는 현대적 최첨단 기술은 최근에야 나타났다는 겁니다. 인류 전체 역사를 24시간으로 본다면 CES에 등장한 기술은 23시간59분59초59에 등장했다는 은유가 가능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늘을 나는 자동차’ ‘커지는 디스플레이’ ‘뱀처럼 기어가는 로봇’ ‘선 없는 TV’를 본다면 아마 기절초풍할 겁니다.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쓴 에릭 바인하커는 ‘석기에서 우주선으로’라는 표현을 써서 인류의 물리적 기술 진화를 찬양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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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도킨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모든 생물은 진화해 오늘날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진화는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밟는다고 했어요. 생물들이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 변이·적응·재생산 과정을 거친다고 했고 이것을 자연선택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다윈은 수억 년, 수십억 년이라는 긴 시간(eon) 동안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단세포는 다세포로, 결국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물로 바뀌었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책 말미에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생물학적 진화는 무엇인지 알겠는데, 인간은 어떻게, 왜 동물과 달리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문화를 가질 수 있었을까라고 자문했습니다. 생물학적 진화론으로는 문화적 진화론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어떻게 현대의 우리는 구석기와 신석기 사람들보다, 그리고 18세기, 19세기 사람보다 더 복잡한 기술, 과학, 정보통신력을 가질 수 있게 됐느냐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유전자(gene)와 매우 유사한 단어인 밈(meme)을 만들었고 밈이 문화적 진화를 이끈다고 했습니다. 유전자가 변이, 적응, 확산하듯이 밈도 복제돼 수많은 사람에게 선택, 확산한다는 겁니다.

<밈>을 쓴 수전 블랙모어는 이것을 밈학(memetics)으로 끌어올리려 했습니다. 인간의 기술력이 갈수록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것은 하나의 밈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빨리 전파, 선택, 변이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늘의 기술과 정보가 내일이면 지구 전체로 번지는 시대에선 기술 변이가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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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뇌와 기술

인간의 뇌는 밈 진화에 적합하게 진화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인간의 큰 뇌는 출산 등에 매우 불리합니다만 언어, 정보, 기술 같은 문화를 복제하고 선택하고 전달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게 밈 진화론의 포인트입니다. 재미있는 관점입니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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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월 14일)
제목: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말씀: 열왕기상 18:20~39
대표기도: 김정한 안수집사님(예배부 안내총괄팀장)
찬양인도: 예배부 봉사자
말씀읽기: 김다니(소년부) 이시우(초등부)
 
설교자:제이슨 하버드 목사님(국제기도커넥트 대표,
이충희 목사님(Blessed International Church)-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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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왕기상 18:20~39,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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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하버드 목사님(국제기도커넥트 대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국제기구 커넥트를 통해서 또 여러분을 섬길 수 있어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제가 어딜 가든지 항상 한국교회를 고맙게 생각하면서 한국교회를 축복하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돌파하고 계신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감사하다. 오늘 우리가 볼 말씀은 열왕기상의 말씀이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갈멜 산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다. 성경책에 나오는 야훼가 아닌 우상인 바알을 섬기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어기고 있었다. 신명기 11:17절에 말씀처럼

*신명기 11:17,

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 이 신명기 말씀에서 나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엘리야와 함께 우리l가 볼 수 있다. 이 이스라엘은 당시에 농업 국가였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이 매우 중요했었다. 만약에 미국으로 친다면 월 스트리트를 완전히 무너뜨리셔서 더 이상 돈으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돈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과 같다. 굉장히 무서운 심판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상숭배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야고보는 야고보서에서 엘리야가 마치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라고 한다. 우리가 마치 기도하는 거처럼, 우리처럼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 다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응답하셨다고 이야기 한다. 이스라엘은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은 가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3년 반 가뭄의 시간을 통해서도 여전히 이스라엘 왕인 아합 왕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인 엘리야를 보내서 그를 책망하셨다. 그래서 엘리야가 전혀 알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아합 왕에게 나타나서 ‘당신이 회개’를 해야 만이 하나님께서 비를 주신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 말씀을 볼 때 제가 참 놀랍게 생각하는 부분이 마치 우리와 같은 인간이 나나타서 3년 반이나 되었던 가뭄이 멈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 열왕기상 18장 말씀이 아주 우리 기도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갈멜 산에서 일어났던 이 전투를 통해서 어떤 신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신 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적을 물리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가 이 바알 선지자들에게 갈멜 산에서 모여서 누가 진짜 신이신지를 겨루어보자고 한다. 그래서 엘리야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열왕기상 18:19,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 엘리야가 이렇게 요청한다. 엘리야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과연 누가 진정한 신이신가? 라고, 이 갈멜 산은 사실 바알의 신이라고 불리는 바알을 숭배하던 산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던 제단이 무너져 내리게 되고 이제 바알을 섬기는 제단이 서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는 그들이 그 신을 섬기는 그 장소에서 만나길 원했다. 그래서 사실 그곳에서 무언가 즐거움을 가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바알을 선택할 것이냐? 를 종용했던 것이다. 이 엘리야 선지자의 심정이 이후에 그가 올린 기도에 잘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백성이 누가 참신이신지 알게 하옵소서!” 이 하나님의 이름이 이제 그 위기 가운데 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동일한 일을 우리가 나라들 가운데서도 볼 수 있다. 힌두교도와 또 불교를 믿는 사람들과 이슬람권에 있는 사람들 중에 85%나 되는 사람들이 전혀 기독교인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 현재 전 세계는 하나님의 이름이 흔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옵소서!“ 어떻게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줄 알겠는가?
 
그래서 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거짓 선지자들이 불을 내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을 때에 수 시간 동안 기도했고 또 열심히 춤을 추었으며 심지어 자해를 하면서 불을 달라고 염원했다. 이제 드디어 엘리야가 하나님께 불을 달라고 요청할 때에 세워 놓은 제단위에 물을 붓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오늘 “하나님이 누구신지 이 사람들이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 주옵소서! 하나님, 내 음성에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이 하나님이 누군지 알게 하옵소서!” 엘리야가 어떤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는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라고 기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주셔서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사람들이 알게 하옵소서.” 라고 엘리야가 기도 하자마자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 이 제단에 있었던 희생제물을 받으시고 완전히 태우시는 것을 보면서 백성이 외친다. “참 신이시구나! 하나님이시구나! 우리의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성경책에 나오는 불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이 성경책에 나오는 불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단 위에서 태우시면서 불로 임재하시는 것을 많이 본다. 마치 이 엘리야에게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불이 그 제물위에 임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삶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 권능으로 하나님의 임재로 우리의 삶을 태워주시길 바라고 있다. 우리의 기도는 늘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내어 놓는 것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 가운데 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 땅 가운데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보여지 하옵소서.’ 마치 천국에서 그러하듯이 이 땅 가운데, 이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에 그
영원한 뜻들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내어드릴 때, 온 맘을 다히새 마치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순종하게 된다. 엘리야가 보았던 그대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제가 섬기고 있는 사역 가운데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열쇠를 가지고 하나님의 그 큰 문을 열 수 있다고...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여러분이 굉장히 작고 연약하다고 느끼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기도라고 불리는 이 작은 열쇠를 여러분들이 쥐고 하나님께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큰 문을 열어주시고, 여러분을 사용하실 줄 믿는다. 아멘... 위고레 목사님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저희가 2032년까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 종족들 가운데에 성경과 그리고 믿는 사람들이 드러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계속해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저희는 이 사역이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돌파해서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더 기도할수록 더 능력이 드러날 것이다. 적게 기도한다면 적게 능력이 드러날 것이다.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능력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저희가 여러 교단과 여러 가정 교회들을 살펴본 결과 90%에 가까운 이 미 전도된 사람들은 110여 개의 도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110여 개의 도시들에서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아서 전략적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유지 될 수 있는 기도 운동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도 함께 이 도시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린다. 작년에 이 기도운동을 시작했을 때에 그래서 여러 국가에 있는 교단들과 또 가정교회들을 통해서 그 결과를 이제 듣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리고 예배를 드높이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 기도를 계속해서 드리는 가운데 57만 개나 되는 교회들이 새롭게 세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800만 명의 성도들이 세워진 것이다. 만약에 11억 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110개 도시들에 새롭게 세워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응답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실 것이라 믿는다. 함께 기도하겠다.
 
♧요약
-하나님의 아들을 기업으로 허락하시고 우리 영 가족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영적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심정으로 간구하고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모든 죄의 습관과 우상을 태워주시고 하버드 목사님의 사역도 인도하셔서 국제기도커넥트 사역을 통해서 미국과 여러 나라와 도시에 복음이 되게 기도하며 이충희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서도 불길처럼 복음이 전파되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사역이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우리도 엘리야의 기도처럼 불로 응답하심을 믿고 복음과 부흥을 위해 충성과 헌신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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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월 11일
제목: "내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말씀: 히브리서 11:23~26
찬양인도: 쉐키나 찬양대(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정상익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히브리서 11:23~26,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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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살면서 불안해 본적이 있는가?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불안한 적은 없을 것 같다. 여러분은 보통 어떤 때에 불안해하는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불안해하는가? 아니면 혹시 건강상에 문제가 있을 때, 불안해한다. 여러분은 어떤 때에 불안함을 가장 많이 느끼시는가? 저는 고3때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 그 때에 어깨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혼자 수술대에 올라갔을 때 굉장히 불안해했다. 목사가 되고 나서 카드 값을 다 내고, 수중에 남은 돈이 하나도 없을 때, 빚을 지며 십일조를 냈을 때, 사실 솔직히 불안해했다. 추가 합격을 놓치고 ‘내가 가야될 대학교가 있을까?’를 불안해하는 고3 수험생이 있을 것 같다. 사업을 시작하신 분들 중에는 올해 특별히 경제가 어렵다고 하던데,
올해 사업은 어떻게 될지에 불안해하실 것이다. 또 건강상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과연 올해는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해하시는 불들도 계실 것 같다. 연말연시를 맞아 직장을 옮겼거나 새로운 부서로 발령 받은 분들은 올해 업무가 어떻게 될지에 불안해하실 것이다.
 
생계를 꾸리고 계신 분들 중에는 금리가 올라서 올해 과연 어떻게 될지에 불안함으로 한해를 시작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것은 적고 불 확신성은 자꾸 커져만 가는 가운데에 사실 신앙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때때로 불안해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불안해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당연히 믿음으로 살 것 같아 보이는 내 모습 안에도 어느 순간 불안이 엄습(掩襲)해 오는 것을 경험하고는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사실 세상에서는 손해를 보고 있고 뒤쳐져 간다는 그런 생각이 우리를 종종 괴롭히곤 한다. 때로는 연약하고 불안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이런 시대를 산다는 것이 벅차고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불안은 믿음의 부재를 의미한다. 우리는 불안할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을 더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사실 내 주위에 있는 환경에 눈을 더 돌리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더 힘을 쓰곤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앞에 두고 믿음 없이 불안해하며 매 순간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결해 보려고 할 때가 많다.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 왜 그렇게 반응하는가? 사실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하나님을 정말 믿는다고 하지만 그런 선택의 순간에 특별히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에 믿음 없이 행동하기 때문에 그렇다. 불안할 때 내게 필요한 것은 믿음을 잘 알면서도 사실 그 믿음을 선택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런 시대 가운데에 믿음을 지키며 살았던 믿음의 영웅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그 불안함 가운데에 끝까지 충성하며 승리했던 사람, 바로 모세의 이야기이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 모세의 이야기를 히브리서 기자가 11장 23절에서 쭈욱 이어서 설명하면서 불안(不安)의 시대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모세가 살아간 시대는 모두가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애굽의 왕이었던 애굽 바로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抑壓)하기 위해서 아주 가혹(苛酷)한 노예(奴隸)정책(政策)과 함께 유아(乳兒)말살(抹殺) 정책을 펼친다. 히브리인들의 남자아이들은 죽음을 맞이할 상황에 놓여 져 있었다. 히브리 산파들이 말을 듣지 않자 남자 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는 그 바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임신했던 그 임산부는 아마 이렇게 불안해했을 것이다. ‘혹시 내 아이가 남자아이면 어떡할까?’ 이미 남자 아이를 출산(出産)한 가정은 더더욱 불안해했을 것이다. 언제 ‘이 금쪽같은 아이가 잡혀가서 나일 강에 던져질까?’ 모두가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가운데 모세가 태어난다. 그리고 그 불안했던 시대를 40년간 살아간다.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는 어떠한가? 안락했던 그 애굽을 떠나서 미디안 광야로 가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다. 언제, 어떻게, 내 삶이 어떻게 굴러갈지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그 시대를 계속해서 살아갔다.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는 어땠을까? 여러분이 아시듯이 애굽 바로 앞에 목숨을 걸고 단판을 짓는 일을 해야 했다. 홍해가 앞에 있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있었던 그 상황 가운데에 행동해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40년 가까이 광야의 생활 가운데 하루하루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불안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생을 통틀어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모세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영웅이라 칭찬한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라.”라고 이야기 하면서 오늘 우리가 읽었던 11장 23-26절을 통해 모세가 가졌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자세하게 이야기 해 준다. 모세가 가졌던 믿음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I. 모세가 가졌던 믿음은 세상에 맞서는 담대한 믿음입니다.
-모세는 세상을 맞서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던 영웅중에 한 사람이다. 히브리서를 보자.
 
*히브리서 11:23,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모세는 세상에 맞서는 담대한 인물이었다. 히브리 사람들은 남자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모세의 부모는 남자아이를 낳았을 뿐 아니라 백일 가까운 그 남자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져서 더 이상 그 아이를 숨기지 못했을 때,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나일강에 던지는 대신 갈대 상자에 담아 떠나보내는 믿음의 모험을 감행한다.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 발각 되었을 때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지만 믿음의 선택을 했던 그 모세의 부모, 그 부모의 믿음대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에게 건짐을 받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바로의 공주의 손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유모로서 자기 친 어머니 아래서 믿음으로 양육 받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모세의 부모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는가?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이야기 한다. 모세의 부모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맞섰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모세의 부모만 세상에 맞선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히브리 산파들도 이 출산을 도와주는 도우미들도 세상에 맞섰던 사람들이었다. 출애굽기 1장을 보면
 
*출애굽기 1:17,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히브리 출산 도우미들은 바로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세상에 맞서서, 세상의 권력을 모두 쥐고 있는 그 바로의 명령에 맞서서 아기들을 지켜내는 놀라운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모세는 믿음의 부모를 통해 그리고 출산 도우미를 통해 주위에서 믿음으로 살아갔던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특별히 세상에 맞서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살아간 사람이었다. 성경은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단어라고 해석되는 헬라어 단어에는 용모의 매력뿐만 아니라, 비범함, 위대함이라는 뜻도 담겨져 있다. 모세는 정말 아름다운, 하나님이 보시기에 평범하게 세상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범하게 세상을 맞서며 살아갔던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주위에도 세상의 시류에 거슬러서 마치 신앙에 연어처럼 살아갔던 사람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 그리고 한국전쟁 때, 신앙을 버리라는 명령을 거스르면서 세상의 시류에 맞서서 싸웠던 신앙의 선배들이 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성경에 침 한 번 뱉으면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발 한 번 올리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그 때에 과감하게 그것을 거절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려고 세상에 맞서 싸웠던 그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날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모세는 마치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일제 강점기 때에 또 한국전쟁 때에 세상의 시류에 맞서 싸운 것처럼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갔던, 세상을 맞서며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II. 모세가 가졌던 믿음은 고난을 감당하는 과감한 믿음입니다.
-모세는 고난을 감당하는 과감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히브리서 24절에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히브리서 11:24,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믿음으로 자랐을 뿐만이 아니라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사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애굽의 0.0001%의 사람도 누리지 못하는 정말 극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이다. 그것도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감히 선택할 수조차 없었던 엄청난 특권이었다. 그런데 그런 특권을 모세가 거부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이야기 한다. 성경 신학자인 유진 H메릴에 따르면 모세를 건져준 바로의 딸은 하셉수트라는 여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 하셉수트라는 사람은 이집트 신왕조, 18왕조의 다섯 번째 파라오였던 여왕이었다. 이집트 역사를 통틀어 가장 번영했던 시기라고 했던 이야기하는 신왕조, 그것도 18왕조의 시작을 알렸던 굉장히 번영했던 시기에 일궈냈던 능력있 던 파라오였다. 물론 모세가 태어난 시기를 100% 확정할 수는 없다. 여러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이 추정하는 것처럼 모세를 건졌던 그 공주가 제18호 왕조였던 다섯 번째 파라오였던 하셉수트가 맞다면 정말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양아들이었던 것과 같다. 사도행전 7장 22절에 보면 이와 같이 나와 있다.
 
*사도행전 7:22,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는 그런 엄청난 양자였을 뿐만이 아니라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가 말과 행동이 능했던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세가 그런 능력도, 그런 지혜도, 심지어 그런 신분(身分)조차도 다 거부(拒否)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고자 했던 그 모습을 우리는 히브리서를 통해 볼 수 있다. 권력자의 아들이었던 모세가 자신의 정체성을 그 권력자와 함께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 백성과 함께 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는데 출애굽기 2장 12절 말씀을 함께 살펴보자.
 
*출애굽기 2:11,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모세는 히브리 사람들을 형제라고 불렀다. 그들을 대신해서 애굽 사람을 쳐 죽이는 선택을 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이런 선택을 했던 이유를 25절을 통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히브리서 11:25,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에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는 일시적인 의미하는 단어가 맞다. 그렇다면 이 세상 가운데 일시적으로 누릴 수 있는 그 낙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 즐거움, 재물, 명예,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감당한다. 실제로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떠났고, 그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출애굽해서 40여 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위대한 설교자로 중 한 명인 찰스 스펄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고난의 바다에 뛰어 드는 자는 진귀한 진주들을 얻는다.” 고난의 바다에 뛰어 드는 자는 진귀한 진주를 얻는다. 라고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진귀한 진주를 얻는 것보다 더 값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처럼 모세는 고난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잘 보고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선택을 했다.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죄악의 낮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을 함께 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믿음이었다.
 
III. 모세가 가졌던 믿음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이다.
-모세의 믿음을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이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한다.
 
히브리서 11:26,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라고 이야기 한다. 이집트의 보화는 감히 누가 상상 할 수도 없을 만큼 큰 보화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 시절에 가장 크게 번영을 누렸던 그 왕국 가운데서 계속해서 모아왔던 그 금은보화를 놓고 본다면 과연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는 것이 더 큰 게 맞는가? 그런데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가 더 큰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구약시대에 살던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수모를 더 큰 것으로 여겼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겠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모세가 하나님을 위해 일한 것처럼 하나님을 위해 선택한 것처럼 행동했던 그 모든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과 같다. 라고 한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하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섬긴 것이라고 말한다. 모세는 모든 평안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선택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았고 때로는 같은 민족에게 수모를 받기까지 하면서 오직 하나님을 영광을 위해 맡겨진 사명을 감당했다. 마침 히브리서를 처음 최초의 독자들도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았던 신앙인들이었다. 그들은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모세가 하나님을 위해 일 한 것처럼 하나님을 위해 선택했던 그 모든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과 같다고 말한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하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섬김 것이라고 한다. 모세는 세상이 주는 모든 평안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선택했다. 하나님을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았고, 때로는 같은 민족에게 수모를 겪기까지 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맡겨진 사명을 감당했다. 마침 히브리서를 처음 읽게 된 독자들도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았던 신앙인들이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일 것 같다. 그래, 모세가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처럼, 내가 선택한 일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었어,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았던 것은 그 어떤 일보다 값진 일이었어. 라고 아마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성경에 펼쳐진 이 모세의 삶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살며 수모를 받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인생인가를 깨닫게 된 것 같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 모세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이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수모를 받으신 적이 있는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가? 최근에 제가 제자 훈련을 위해 면담을 다니다가 한 집사님을 만났다. 믿지 않는 시댁 식구들 때문에 수십 년간 고통을 받으신 분이었다. 제가 면담을 하는데 삶의 스토리를 담다 보니까 면담 시간이 좀 길어졌다. 외간 남자가 내 며느리랑 이렇게 긴 시간을 쓴다고 하면서 화가 나셨던 시아버지께서 역정을 내며 문을 쾅 닫아버리시며 사실상 저를 그 시아버지가 쫓아내셨다. 그런 와중에도 저를 따라 현관문까지 따라 나오신 집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목사님, 우리 아버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라구요. 시부모님 때문에, 시댁 때문에, 믿는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던 그 집사님이 여전히 가정에 파송된 선교사로서 그 고난을 감내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이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영 가족 여러분,
모세는 이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는 것을 더 귀한 것으로 여겼던 사람이다. 세상에 맞서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을 뿐만 아니라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갔던 위대한 믿음의 영웅이었다. 모세는 이와 같은 믿음을 가졌던 신실한 믿음이었는데 불안하면서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는가?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을까? 바로 상주시는 이가 누구신지 그분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렇다. 이집트에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상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사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수모는 정말 큰 희생이 따른다. 그렇게 인내하는 믿음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대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세의 계산이 옳았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수모는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잠시 동안 누릴 수 있는 그 죄의 쾌락보다 그리고 견줄 수 없는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일이다. 우리는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기 때문에 믿음으로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가? 불안해하는 대신에 믿음으로 담대하게 오늘 하루 살아가고 있는가? 불안한 시대에 내게 어떠한 바로 믿음이다. 사실 믿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가? 사실 그러기가 너무 쉽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세상의 것, 그것은 너무 현실적으로 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다. 

그런데 여러분, 고난을 쉽게 감당할 수 있는가? 아인 믿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모두는 고난 받기를 싫어한다. 고난보다는 그래도 복을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가 참 많다. 또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겪는 수모가 싫어서 그 수모를 피하는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웬만하며 회사에서 그리스도인인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시진 않는가? 내 앞에서 교회와 예배와 하나님을 모욕하는 그 사람 앞에서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괜한 일 만들기 싫어서 침묵(沈默)하신 적은 없는가? 사실 우리는 조용히 사려고 하는 때가 더 많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한 시대에서 쉽게 믿음을 선택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오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으로 살아가라. 너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의 선택을 해라.”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주문하신다. 믿음의 용사가 되어서 세상에 맞서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膽大)하고 과감(果敢)하게 그리고 굳건하게 믿음의 용사(勇士)로 서기를 간절(懇切)히 바라고 계신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사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참 어렵다. 아마 성도님들 중에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들도 있다. “목사님, 사실 어려워요. 목사님은 그런 적이 없어서 잘 모르시죠?” 한다. 실제로 제가 사역하면서 한 집사님께 받았던 질문 중에 하나이다. “목사님, 목사님은 사회생활 안 해보셔서 잘 모르시죠? 저는 장교로 군 생활을 했었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곳이 사실 회사와 비슷한 셋팅을 가졌던 곳이었습니다. 군 안에서 건설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사실 건설회사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졌다고 스스로도 고백하는 그런 사무실이었다. 매주 최소 두 번 이상 회식을 하고 회식을 하면 반드시 폭탄(爆彈)주(酒)로 시작하는, 반드시 잔(盞)을 돌려야만 하는, 그런 사무실이었습니다. 당시 회식을 하면 기독교인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반드시 잔을 돌려야만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또 잔을 거절(拒絶)하면 육두문자를 날리면서 온갖 모욕(侮辱)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믿는다고 고백하던 사람들이었다. 함께 했던 그 부서들 안에 교회를 다닌다고 고백했던 사람들 중에 특별히 더 잔을 씻을 수 있는 물을 친히 가져와서 친히 음료수와 함께 어떻게든 잔을 함께 돌리자고 권유했던 것이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머릿속에 믿음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 정말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거의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회식에 끌려 다니면서 1차, 2차, 3차, 4차까지 하고 새벽 두세 시에 들어오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은 이 기류에 휩쓸려가서는 믿음을 지킬 수 없겠구나! 나는 반드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더 굳건히 맞서 싸워야겠구나! 하는 그런 감정을 가졌습니다. 어려움을 겪을수록 더 믿음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급류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은 여러분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급류에 휩쓸려서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게 만들려고 한다. 여러분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상의 급류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가? 계속해서 불안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떠나가게끔 만드는 그 세상을 어떻게 맞서고 있는가?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어떤 믿음인가?
 
▷모세가 가졌던 것처럼 바로 세상에 맞서는 믿음,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이다.

영 가족 여러분,
세상을 맞서는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될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아멘, 여러분, 고난을 선택하는 과감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선택하고 감당할 때, 그 고난을 견뎌내고 이겨낼 능력을 주실 줄 믿는다. 성도여러분,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을 갖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受侮)를 당할 때,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천국의 상급(賞給)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모세와 같은 그런 믿음의 용사들이 참 많다. 주위를 들러보면 이미 모세처럼 열심히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저와 제자훈련을 받았던 집사님 중에 허리가 아파서 정말 고생을 많이 하신 집사님이 계신다. 그분은 훈련 가운데 척추(脊椎) 분리(分利)증 때문에 시술(施術)을 받게 되었다. 병상에 누워서 시술을 받고 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 집사님을 제가 기억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 같이 허리가 아픈데 왜 굳이 교회에 가서 그런 어려움을 사서 받느냐고 만류(挽留)했다. 그래도 집사님은 훈련의 자리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하는 훈련 공동체를 위해 고난을 감당하는 선택을 했다. 어떻게든 훈련 받고자 누워서 성경을 읽고 어떻게든 훈련에 나아가고자 그 허리를 붙들고 복대를 차고 하루하루 허리를 최대한 안 쓰려고 노력했던 그 집사님, 남편이 실직하고 재취업하는 그 어려운 과정 가운데서도 사역훈련의 자리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그 자리를 끝까지 참석해서 이제 순장으로 파송되어서 열심히 순 원 들을 섬기고 있다. 여전히 경추와 요추 관절에 아픔을 감당해야 하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아름다운 인생을 열심히 사역하고 있다. 여러분 주위에도 세상에 맞서는 용사들이 있을 것이다. 고난을 감당하는 그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믿음의 영웅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도 뚜벅뚜벅 걷고 있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가는 그 영웅들이 주위에 계실 것이다. 그런 작고 큰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히브리서 뒤에 있는 이 믿음의 행전에 계속해서 기록되고 그 믿음행전을 수놓고 있는 줄 믿는다. 회복을 넘어 부흥을 소망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상주시는 이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에 내 믿음이 내 삶에 부흥으로, 그리고 내 삶에 부흥이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 부흥으로 이어질 줄 믿는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모세처럼 세상에 맞서는 담대한 믿음을 가져라.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을 가지길 소망한다. 바로 이 믿음이 부흥을 소망하는 우리에게 오늘 내게 필요한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에게 주실 그 영광을 미리 이 땅에서 맛보는 축복을 전해 주실 것이다. 아멘, 그리고 이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승리할 때, 영원한 상을 이 땅 가운데 먼저 누리며 하나님이 오늘 하루도 나를 지켜주시고, 함께 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줄로 믿는다.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요약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믿고 세상에 시류에 거스르기에는 우리의 믿음이 연약함을 깨달으며 우리를 공격해 오는 마귀를 이기기에는 너무 연약하니, 우리를 모세처럼 세상에 맞서는 믿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 그 믿음으로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실 영원한 상을 바라보면서 나그네 인생 같은 이 땅의 삶 가운데 일하실 주님을 보고 그 영광을 체험하여야 한다. 회복을 넘어 부흥을 소망하며 내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이 먼저 길을 만드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여 진정한 간증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영웅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모세는 세상의 명예를 거절했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세는 오직 보이지 않는 능력의 손을 인내함으로 의지했다. 진정한 믿음은 이처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극복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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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8일)
제목: "45년을 한결같이"(부제: 믿음보고 2.0)
말씀: 민수기 14:22~26,여호수아 14:8~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오규현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민수기 14:22~26,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수아 14:8~12,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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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 귀한 찬양, 하나님께 영광 돌린 줄로 믿는다. 올해도 찬양대 한 주일도 빠지지 말고 기름부음 충만한 찬양되기를 바란다. 사랑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새초부터 새말까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보혈의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주셔서 모든 마음의 소원하는 계획이 응답되기를 바란다. 저는 오늘 45주년을 한 결 같이, 부제 믿음 보고 2.0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다. 창세기 29장 20절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고 말하고 있다. 
 
*창세기29:20,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사람이 7년이란 세월이 길지 않은가? 사랑하니까 7년이 마치 하루 같이, 45년의 사랑의 교회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 결 같이, 우리는 어떻게 45년을 한결 같을 수 있는가? 이 갈렙은 아시는대로 오늘 민수기 14장 여호수아 14장에도 그렇다. 45년 전에 그 나이 40세 때에 그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갔다. 거기서 열 정탐꾼은 다 안 된다고 했다. 아낙자손들 때문에 우리는 안 된다고 우리는 그들의 밥이라고, 우리가 그들 보기에는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했다. 다 그 펙트 리포트를 했지만 있는 그대로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메뚜기 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한다. 왜? 그 열 정탐꾼은 자기들과 환경을 비교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환경을 비교했다. 여러분 BAB,,, 그러니까 믿음보고 펙트 리포트를 Faith report를 했다. 우리 교회가 수년 전부터 믿음 보고를 하지 않은가!! 그래서 얘기 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우리는 그렇게 어려운 것 보다는 믿음 보고를 하자. 그 사람들은 다 우리 교회 교인들이다. 이렇게 할 정도로 우리가 믿음 보고를 한 것이다. 올해 45주년을 맞이하면서 믿음보고 2.0을 하겠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가? 오늘 본문에 8절을 보면, 
 
*여호수아 14:8,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니까, 충성, 9절에도 나온다. 충성하였은즉, 충성한다는 말은 나중에 민수기 14장 24절에 보면 
 
*민수기 14:24,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갈렙에 대해서 나는 온전히 따랐다. 내 종이고 충성스런 종이다. 우리가 충성한다는 것은 21세기 어떤 뜻인가? “우리 중에 아무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죽는 자도 없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맞는가? 사람들은 다 자기를 위해 산다. 바울은 자기를 위해 살아도 안 된다고 바울은 고백하지만 대게 세 종류이다. 자기를 위해 살고, 아니면 조금 더 고상해서 남을 위해 살고, 아니면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그래서 주를 위해서 살 때에 충성이라고 한다. 이것은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것인데 온전히 주님을 따를 때, 사실 45년을 한 결 같이 하게 되는데 여러분 사람을 위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 정도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되면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으니까 한 결 같은 것이다. 여러분에게도 한 결 같은 축복을 주시길 원한다. 
 
저는 늘 기도한다. ‘하룻밤도 꿈 없이 잠들지 말고, 하룻밤도 꿈 없이 깨지 않게 하옵소서.’ 한다. 살아서는 충성, 죽어서는 영광, 목숨보다 중요하다. 한 결 같이, 그런데 오늘은 갈렙이 역할 모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여러분의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과거보다는 사실 현재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 왜냐면 미래가 없는 현재는 그것은 현재가 아니다. 미래를 우리가 기약할 수 없는 현재는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현재에 산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스도인은 진짜 이런 45년을 한 결 같이 이러한 은혜가 있고, 주를 위해 산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이력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이력서를 쓰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은 과거의 이력서를 왔다 갔다 한다. 과거가 어떻다 한다. 그러나 미래의 이력서를 써야 한다. 이미 결정되어서 한 결 같이,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오늘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해서 광야의 길을 갔다. 가는 동안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중에 두 가지 어려움의 적이 있었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이 있었다. 외부의 적은 아말렉 같은 전쟁이며, 또 광야의 환경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내부의 적은 최측근이 반기를 일으킬 때이다. 그럴 때 정말 힘든 것이다.
 
여러분,
미리암과 아론을 알 것이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였고, 아론은 모세의 형이었다. 그런데 모세가 잘 나가는 것을 보니까 누나와 형이라도 이것은 안 되나보다. 누나와 형이라도 지도력과 리더쉽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나와 형이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이 모세하고만 말씀했냐? 우리 하고도 말씀했다고 반역을 했다. 사실은 모세를 향하여 반기를 든 것이 아니라,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께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죽이려고 했다. 그러니까 모세가 아니라고 한다. 모세의 특기는 뭐냐면, 죽이려고 하는 것을 못 죽이게 하는 은사가 있다. 우리누나 살려 달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암을 일주일 동안 나병(癩病)이 걸리게 하시고 격리(隔離)를 시키신다. 그 격리 때문에 모든 회중들이 일주일 동안 광야에 행진을 못하고 모든 회중들이 멈추었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거의 200만이나 1400만 날이 날아가 버렸다. 회중들이 일주일 동안 멈추니까 미리암과 아론의 반기로 일주일 동안 멈추니까 난리가 난 것이다. 그러니까 모세가 허탈했고, 너무나 절망했다. 힘들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 때에 모세에게 터닝 포인트를 주셨다. 그것은 민수기 12장과 13장에 나오고 있다. 13장에 낙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냐면,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라고 하신다. 정탐꾼을 12명을 보내게 하신다. 열 정탐꾼은 환경과 자기를 비교해서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면서 믿음 보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 이런 배경을 앞에 놓고 어떻게 갈렙은 끝까지 믿음보고를 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믿음보고의 요체는 무엇이며 믿음보고를 우리가 이런 45년을 한 결 같이 할 수 있도록 적용할 것이 무엇인가?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여라분, 갈렙은 오늘 본문 여호수아 14:6절을 보면
 
*여호수아 14:6,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그니스 사람은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데, 가나안 족속이다. 이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굉장히 비방하고 멸시하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열주의자이고, 차별주의자들이다. 이방인을 진짜 우습게 여긴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에 나오는 기생 라합도 이방인이다. 나중에 이스라엘 족보에도 올릴 정도로 그런 축복을 받았는데, 갈렙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다. 자기 선조와 자기 그니스 족속 여분네 아들 갈렙이다. 그 어떻게 보면 자기는 이방 출신이다. 그런데 순열주의자들 앞에서 그가 견디기가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참 놀랍다. 우리식으로 하면 소위 수저주의자들이다. 흙 수저, 나는 금 수저다. 등등, 정말 저는 수저주의자를 정말 싫어한다. 우리는 금수저도 아니고 흙 수저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저이다. 정말 오늘 갈렙이 한결 같은 것은 출신, 배경, 스펙, 출신 배경을 극복했다.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라고 한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했다. 자기는 이방 출신이지만 하나님의 종(從)이라고 한다. 
 
*민수기 14:24,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구약의 종이니까 뭐 서번트 라고 생각되지만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네가 내 종이라고 이렇게 호칭한 것 별로 없다. 모세에게 종이라고 했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종이라고 했다. 다윗에게 다니엘에게 엘리야에게 종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것을 알고 나중에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종의섬김을 가져야 하지만 주님이 나를 종이라고 부를 때는 이것은 사도 적 특권이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다. 우리가 한 결 같기 위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서 어벤다운이 없게 진지하게 한 결 같게 하기 위해서 마음의 소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그니스 족속 여분네의 아들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입니다.” 출생, 성별, 배경, 수저 다 극복하는 축복을 주시기를 이 한 해 동안 주시기를 소망한다.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중맘꺾- 중요한 것은 마음이 꺾이지 않는 것, 중요한 것은 마음이 꺾이지 않아야 한다. 내 수저가 어떻다. 마음이 꺾이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꺾이면 안 된다. 출신성분, 두 번째로는 비교의식 가지고 질투하지 않았다. 갈렙은 대단했다. 민수기 14장에서 여호수아 보다 더 갈렙이 더 우선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쓰셔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삼았다. 그래서 40세 이 믿음 보고를 한다. 45년 동안 그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 웬만하면 ‘하나님은 여호수아만 쓰시고 나는 안 쓰시나?’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 텐데,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과 비교하지 않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런데 배경 때문에 약해지지 않고, 동료하고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 섭섭해 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열 번이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원망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낀 적도 없고 모세를 비난하는 무리들에게 낀 적도 없다. 애굽의 고기와 부추를 사모하는 그것 때문에 그들이 불평하는 그것들에 가담한 적도 없고, 금송아지 섬기는 무리들에게 속하지도 않고, 한 결 같이 주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붙잡고 갔다. 
 
지난 45년을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를 인도하셨다. 강남 예배당, 서초 예배당 주의 종들을 통하여 사랑의 교회를 오늘까지 붙잡아 주셨다. 45주년을 고 선대 옥한흠 목사님,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워야 한다는 목적으로 25년 동안 사역을 하시게 하시고 부족한 종이 이어받아서 그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로 온전한 사람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지난 20년을 붙잡고 왔다. 저는 놀랍다. 그리고 우리 교회 초창기부터 성도님들이 45년 동안 한 결 같이 주님을 섬겼다. 이제 45주년을 맞이하는 이 한 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갈렙의 자세로 보면, 
 
*여호수아 14:10-11,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I am still strong. still the same.~~
-85세가 되었어도 가슴이 뛰었다는 것이다. 비교의식 안 하고 불평의식 안 하고 배경 보지 않으니까 그 마음에 한 결 같이, 그때나 지금이나 강건하다는 것이며 육신은 좀 쇠할 수 있지만 마음은 늘 이러하니까 여러분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고 설레고 마음이 한 결 같으면 몸도 따라온다. 몸이 지배를 받는 것이다. 갑자기 괴로운 소리 듣고 고통당하면 마음이 캄캄해서 소화가 되는가? 마음이 괴롭고 어려울 때 소화가 잘 되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고 늘 설레이니까 몸도 마음도 같이 건강해 지는 것이다. 삼국지에 황충 장군처럼 한 결 같이, 벨런스와 균형 잡힌 건강, 그의 지성, 그의 의지, 그의 감성, 그의 행실, 그의 관계가 온전하게 균형 잡혀서 온전한 인격이 되었다. 그렇게 하면서 갈렙의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가지고 이제 45주년을 우리가 믿음 보고 2.0을 보고하는 것이다. 뭐라고 고백하느냐면 
 
*여호수아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이것이 믿음 보고의 2.0이다. 그들이 우리의 밥이다. 믿음보고의 2.0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시리즈 주제처럼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게 하여 주십시오.’와 동일하다. ‘이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할 때 이것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가 막히다. 참 어려운 어떤 상황이었다. 지금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과 7년 전쟁을 하는데, 이제 막바지에 도달했는데 마지막 무얼 못했냐면, 지금 갈렙이 요구하는 이 산지를 아직까지 점령을 못했다. 그 산지는 바로 헤브론 산지였다. 이 헤브론은 아주 구원역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직접적으로 말씀한 것은 창세기 13장 14-15절이다. 
 
*창세기 13:14-15,
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저기에서 크게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땅을 주시고 하는 마음은 있지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헤브론 산지이다. 이 헤브론 산지는 예루살렘, 베들레헴, 그 다음은 갈보리 , 감란 산, 베다니가 포함되어 있다. 소위 구원역사를 이루는 핵심 지역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난 곳이고 아마 갈렙에게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주셔서 구원 역사에 무언가 아낙 자손들 때문에 이 땅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갈렙은 여호수아를 끝까지 돕는다. 한결 같으니까. 45년을 한 결 같으니 그래서 하나님께서 갈렙을 통하여 산지를 주시게 된 것이다. 믿음보고 2.0이 되는 것이다. 
 
우리도 85세가 되어가지고 우리가 이런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다면 우리 생애가 2.0 생애가 될 줄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신앙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야 한다. 믿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야 할 줄로 믿는다. 
 
신앙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야 한다.
믿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야 한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기를 바란다. 갈렙처럼 영적으로 더 강해져야 하고 더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이 더 생겨야 한다. 더 신앙이 깊어져야 한다. 육신적으로 어쩔 수 없지만 영적으로는 더 강해져야 한다. 어느 단체든지 그렇다. 처음에는 믿음의 모험을 한다. 30-40년이 지나면 대부분이 약해진다. 서서히 관료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굳어지면 화석화가 되어서 어느 날 다 깨지고 장례식이 된다. 그러나 갈렙은 그러지 않았다. 지난 45년 전에 가졌던 믿음 보고 1.0을 지금 믿음보고 2.0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이다. 주님 이 어려운 ‘이 헤브론 산지를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한다. 어떤 갈렙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개인 가정에도 이 말씀이 접목되기를 바란다. 이 말씀이 그대로 녹아지기를 바란다. 
 
적용
공동회 때문에 좀 일찍 마치겠다. 갈렙은 45년 동안 한 결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충성된 종이라고 두 번이나 불리고 갈렙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배경을 비관하지 않고 또 여호수아와 비교하지 아니하고 한 결 같이 그리고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떤 식으로 적용하면 되는가? 갈렙은 남들이 불평 불만할 때, 아까 수많은 과정에서 불평 불만할 때 그런 환경들, 그런 사건이 많았지만 불평불만이 없이 믿음으로 충성되게 일관되게 사니까 믿음보고 2.0을 주님 앞에 올려드린 줄 믿는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우리도 불평불만하지 않겠다. 누가 이렇게 말했다.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 것을 걸리는 것은 60년이 걸렸다고 남들의 말을 경청하고 침묵하는 데 60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평불만을 하지 않으려면 몇 년이 걸려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주셔서 불평불만은 지금부터 안 할 수도 있게 된다. 연말에 글을 받았는데 이런 내용이 있다. 
 
“목사님, 제 남은 인생은 절대로 반드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살겠습니다.”라고 해서 그 글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젊을 때부터 이런 마음을 가지면 평생 얼마나 복될까? 믿음보고 2.0. 3.0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 제 남은 인생을 절대로 반드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젊을 때부터 이런 마음으로 살면 여러분 믿음 보고 2.0, 3.0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인제 선택을 해야 한다. 불평하는 할매, 할배가 되지 말고 죽지 말고 피니쉬 웰(finishing well)이 아닌 피니쉬 페일이다. 다시 말하면 폭망이 된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여호수아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나와 함께 하셔서 불평불만 보고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의 보고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약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우리 세대가 평생 믿음보고 2.0이 되어서 배경도 뛰어 넘고 비교도 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극복하고 에너지를 주는 인생이 되어서 어둠을 밝히고 아무리 힘들어도 귀한 21세기의 갈렙이 되어 이 산지를 달라고 믿음의 보고를 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45년을 맞이하면서 갈렙처럼 믿음보고를 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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