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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2월 5일)
제목: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
말씀: 열왕기상 18:30~4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최종민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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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8:30~46,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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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배 시작하면서 쉐키나 찬양 팀이 마스크를 다 벗고 우리 아이들과 어른 다 벗고 함께 찬양 드리니 참 좋다. 찬양대 위에 보면 표어가 '새로운 부흥, 믿음보고 2.0'이다. 3년 전, 2020년 1월 20일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오늘 3년 만에 마치고 마스크를 다 벗게 되었다. 그동안 마스크 속에서 호흡하다가 이제는 새로운 호흡으로 다들 믿음의 용장들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 믿는 것은 우리의 삶의 전부이다. 얼굴에 마스크를 벗는 것 같이, 얼굴에 저고리를 벗는 것 같이, 이제는 찬송도 안 해도 표가 안 났는데 이제는 다 표가 날 것이다. 오늘 "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랑" 말씀을 통하여 모두가 다 짐이 벗기고, 회복을 넘어 부흥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오늘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기도대첩, 한산대첩 하듯이 담력과 기백을 가지고 기도대첩을 하게 되었다. 본문을 보겠다. 지난 주 바알 선지자들이 바알 신에게 불을 내려 달라고 아무리 불러도 어떤 응답도, 어떤 반응도 없었다. 결국 그들이 해결이 안 되니까 28절에 보면 알 수 있다.
 
*열왕기상 18:28,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줄 믿는다. 결국 바알 신을 섬기고 그렇게 하다가 해결이 안 되니까 자기 자신을 자기 스스로 자해(自害)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자해밖에 없었다. 한 생애를 살아보면 이런 우상 섬기는 인생, 하나님 없는 인생은 결국 자기 스스로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결과가가 나오게 된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알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우상이고, 수많은 우상들을 섬긴 사람들은 마지막이 자해하는 인생이며 자기 스스로 망하는 인생이다. 겉으로 볼 때는 오늘 이 갈멜 산 기도대첩, 갈멜 산 본격적인 대결을 할 때는 엘리야가 환경적으로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우선 숫자상으로 850:1 이었고, 31-35절을 보니까 엘리야가 어떻게 했는가? 
 
*열왕기상 18:35,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어떻게 했는가?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막 물을 가지고 와서 제단 주위에 고랑을 파고 거기에 물을 부었다. 저쪽 바알 쪽은 고랑이 없었다. 한 쪽은 물고랑이 있는 곳이고, 한 쪽은 물고랑이 없었다. 또 이쪽에 모든 제물과 나무에 물을 부어서 나무를 흥건하게 젓게 했다. 저쪽은 전혀 물이 없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면 젖은 것보다도 마른 곳이 더 잘 탈 것이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조건이 불리하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느끼는데 어떤 불리한 조건이든 하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은 남들이 볼 때 이렇게 이것은 안 될 것이다. 그 불리한 조건도 우리 하나님은 불리한 조건 극복의 전문가이시다. 
 
*하나님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게 하시는 데 전문가이시다. 
-하나님은 불리한 조건을 너무 좋아하시는 것 아닌가? 말씀 할 정도로 우리가 그런 예가 많다. 요셉을 보라. 애굽에서 총리가 되기 전에 고통의 감옥 속에서 불리한 환경 속에 있었다. 기드온은 큰 대군을 물리치기 위하여 그 군인의 수를 미디안의 대군 앞에서 300명으로 아주 불리한 조건이었다. 다니엘도 사자 굴속에서 절망적인 환경 속에 있게 하셨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최악의 불리한 상황이셨다. 우리 하나님은 불리한 조건 극복의 전문가이시다. 아멘!
 
*열왕기상 18:36-37,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야가 그 불리한 조건 가운데서도 간절한 기도를 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열왕기상 18:38,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온 세계에 많은 기도 응답이 있겠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돌과 흙을 다 태웠다는 것은 진짜 특별한 경우이다. 그런 하나님께서 맞춤형 은혜를 주신 것이다. 불을 내려 주셨다. 불을 내려 달라고 하면 불을 내려 주시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3년 넘는 기간 동안 비도 오지 않는 그 시간에 그 모든 것들을 정리하시고, 이제는 비를 내려주셨다. 마치 우리 얼굴에 마스크를 3년 이후에 벗을 수 있도록 환경을 주신 하나님이신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맞춤형 은혜를 주신 것이다. 여러분, 맞춤형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결과 39절에 보면,
 
*열왕기상 18:39,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기도대첩, 이 놀라운 불의 대첩을 하는 그 때에 나타났던 모든 백성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심을 고백하고 선포한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머뭇거리던 사람들에게 
 
*열왕기상 18:40,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여 버렸다. 그들을 기손 시냇가로 내려다가 다 죽였다. 여러분, 이것을 보고 너무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잔인한 것이 아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예언자였다. 사람은 사람을 죽일 권리가 없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처형하실 권리가 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은 즉각 처벌이다. 왜 즉각 처벌인가를 보니까 어떻게 보면 잔인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누룩처럼 퍼지니까 잘못된 신앙의 뿌리가 퍼지지 않도록 즉결처벌 하신다. 오늘 이 원리는 엘리야 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줄로 믿는다. 이스라엘 땅이나 오늘 서울이나 강남이나, 그 지역을 막론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인종을 막론하고, 이 원리는 그대로 통하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하나님의 인격은 우상으로 같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상숭배는 즉각 처결이다. 우상 숭배 때문에 고통과 저주, 잔인한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차별금지법이라든지, 우리가 세게 반응하는 것은 거의 우상 숭배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즉각 처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하나님은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시기에 악한 것을 조장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보고 계시지 않는다. 변함없으신 영적인 논리이다. 지역을 막론하고 글로벌 스탠다드, 영적인 크리스천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오늘 이를 위해서 모두가 다 기도대첩의 승리자가 되고 영적기백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이 한 분 한 분을 통하여 그때나 지금이나 그 원리가 우리 가운데 그대로 적용되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크리스천 글로벌 스탠다드의 영적 기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을 감당 못할 사랑을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는가? 시대를 초월하는 영적기백을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오늘 엘리야에게 크게 두 가지를 하게 하셨다. 
 
*열왕기상 18:30b,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첫째- 무너진 제단을 수축해야 한다.
-수축했다는 말은 옛날에 그곳에 하나님이 제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제단들이 있었는데 다시 재건하는 것이다. 다시 회복하고 수축하는 것이다. 좀 깊이 들어가면 우리 한국교회 무너진 제단을, 3년 동안 무너진 모든 제단들을 수축하게 되어야 한다. 다시 세우고 새롭게 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하기 위하여 가슴앓이를 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사랑의 교회나 한국교회가 앞으로 제사장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 회복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기도의 제목이 익숙하지 않다면 오늘 공동체 안에서 이런 비전을 공유한다면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아멘!! 
 
그리고 무너진 제단 수축을 뭐 거창하게 찾지 말고 나 한 사람,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너진 제단을 수축할 때, 이 갈멜산 기도대첩 승리에 있어서 엘리야 한 사람부터 시작되었다. 엘리야가 850:1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이긴 사건을 본문에 자세히 기록한 것은 무슨 엘리야의 거룩한 무용담이라든지, 엘리야의 영웅담을 드러내가 위해서가 아니라, 이것을 기록한 것은 하나님 편에 선, 한 사람이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한 시대와 한 민족과 한 왕국을 지키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너진 가정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무너진 가정을 회복하는 것도 여러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간절함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 안하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게 하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리하고 회복하게 하는 것이, 우리식으로 말하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길과 같다. 주님께 새로운 호흡으로 믿음 보고 2.0을 쓰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다 통한다. 한 사람부터 시작된다. 
 
창세기 35장을 보면 야곱이 벧엘로 와서 제단을 쌓는 사건이 나온다. 야곱의 딸 디나가 수치(羞恥)를 당하자, 디나의 오빠들이 이 다 격분(激憤)해서 세겜 족속을 다 몰살(沒殺)했다. 이것 때문에 야곱의 가족들이 전면전의 당할 위기에 봉착했다. 아마도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다급하고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예기치 못한 급박하고 어려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직면할 때가 있다. 앞은 캄캄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망연자실 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한 사람 야곱의 행보가 우리에게 조준 것은 야곱의 그 위기에서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다시 무너진 제단을 쌓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한 사람, 야곱의 인생에 다른 것 하지 아니하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겠다는 마음이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을 야곱은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야곱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다시 쌓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무너진 인생도 다시 쌓은 줄로 확신한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다시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름은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신다는 뜻이다. 야곱이 제단을 쌓은 후에 위기의 가정이 다시 세워졌고 회복되고 민족도 다시 세워지게 된 것이다.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면 그 무너진 제단을 통해서 예배하면 그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것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 인생에 불리한 조건 때문에 어떤 불리한 조건 때문에 환경적으로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예배 자체가 여러분들의 인생에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고 수축하는 시간이 된 줄로 믿는다. 아멘. 그리고 이렇게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고 수축하는 마음으로 코로나 이후에 매주일 주님의 예배를 회복하는 하나님은 여러분의 무너진 삶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아멘!!~반드시 여러분들의 삶의 무너진 제단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는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주님이 이 시대에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시길 기도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길도 막막하고 안정되지 않았고 먹을 것도 없고, 저의 20대 초반 중반일 때, 전국에서 같이 올라온 믿음의 자녀들 5-8명이 모여서 같이 허름한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에서 지구본을 붙잡고 기도하고 울었다. 우리는 우리 몸도 힘들지만 그저 순수하게 무너진 선교를 감당하게 해 달라고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열왕기상 18장을 보고 너무 은혜를 받아서 그러했다. 그 형제들은 벌써 40-50년이 지난 이때에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이다. 이것은 민족의 제단회복과도 연결되었다. 요즘 제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니까 그 유튜브에도 73년도 빌리그래함, 74년도, 80년도 민족부흥 대성회가 인포메이션으로 들어오는데 제가 깜짝 놀랐다. 그것들이 요즘 자주 나온다. 1980년 8월 11일, 지금부터 43년 전이다. 80년도 8월 11일 그날이 한국교회가 복음화 대상으로 세계선교를 위한 복음화였다. 선교를 위해서 한국교회 성도들이 여의도 100만 명 부흥집회에 모였다. 지금은 공원이지만 옛날에는 큰 광장이었다. 지금은 여의도가 지하철도 가고 교통이 많이 확보되었지만 그 당시는 다리를 건너야 하고 그리고 버스로 가야 했다. 그때 마포대교가 그냥 차가 못 다닐 정도였다. 사람으로 가득 차는 날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그날 저녁에 안의숙 여사님의 ‘죽으면 죽으리로다.’의 안의숙 여사님이 그분이 간증을 했다. 그때 기억을 했는데 안의숙 여사의 그때 간증하신 것을 유튜브로 보니까 들었던 것과 이번에 들었던 것이 똑 같았다. 너무 신기했다. 그 때 안 사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본인은 살아있는 것과 순교에 낙오되었다고 하시면서 살아있는 순교자처럼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를 돌이켜보니 한국 사람들이 하나님 믿는다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려고 노력하면서 감옥에 들어가고, 그야말로 처절하게 고생하고, 고문당하고, 상처받고, 가난하고 6.25때는 한국교회가 막 무너지고, 공격당하고, 수많은 고통과 고난이 있는데 본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고 살지만, 신명기 28장ㅜ1-2절을 읽을 때마다 이게 면, 이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신명기 28장 1-2절이 가 우리 민족에게 믿어지지 않고, 본인에게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고난당하고 처절하고 아프고 힘들고 정말 희망이 보이지 않고 이 민족이 그랬는데,,,
 
*신명기 28:1~2,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이 말씀을 안 사모님이 볼때는 다 무너지고 있을 때이고 백성들은 너무 그 당시 너무 초라하고 안 됐고 하는데 어떻게 신명이 28장 1-2절의 말씀이 이게 이루어지겠냐고 하셨는데 이와 같이 그날 저녁에 백만 명이 사람들이 여의도에 모여서 이렇게 세계선교대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라고 했다. 이 민족을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 반포대로 121번지, 말이 안 된다.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80년 8월 11일을 그대로 듣고 아멘! 하고 눈물로써 기도하고 백만 명이 기도해서 세계 민족위해 뛰어나게 하실 줄 믿는다. 민족공동체가 무너진 제단을 수복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하나님이 이 시대에 이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잘되고 민주와 산업화가 잘 된 것은 어떤 것으로도 해석을 못한다. 80년 8월 11일이 해석하는 것이다. 그날 생뚱맞게 ‘여러분, 온 세계를 사랑하라.’고 자기만 사랑하지 말고 여러분, 온 세계를 사랑하라고 자기만 사랑하기 힘든 세상에서 그 때는 무슨 말인지를 잘 몰랐다. 그런데 80년 8월 11일 날 그 말씀을 듣고 가만히 보니까, 82년 6월 말에 제가 안의숙 사모님이 섬기는 교회에 제가 대학부 전도사가 되었다. 1년 10개월 만에 그렇게 되었다. 그것도 희한하다. 80년도에 제가 미국을 갈 줄도 몰랐고, 그 당시는 패스포드 나오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여권하나 갖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하나님나라,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려고 마음먹으니까 그런 길을 주셨다. 그래서 1년 15개월 뒤에 여쭈어 보았다. ‘사랑이 승리한다. 자기만 사랑하지 말라. 온 세계를 사랑하라.’를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까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오전도사님 두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는 찹초사랑, 하나는 유실 수 사랑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고 여쭈었더니,,,안의숙 사모님이 그 때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잡초사랑 : 자기만 사랑, 자기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 신경 안 써도 막 자란다. 잡초는 그냥 자란다. 
*유실수사랑 : 힘든 사람도 사랑하는 것, 남이 못하는 사랑을 하는 것, 말도 안 되는 것 사랑하는 것,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사랑하는 거,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지치기를 해야 유실 수 사랑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사랑을 위한 회복 제단이다. 사랑을 위한 올바른 제단을 수축하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이 은혜가 있어야 한다. 잡초사랑이 아니라 유실수사랑을 하면 반드시 이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다. 엘리야의 개인의 무너진 제단의 회복은 이미 그렇게 회복을 하니까 그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회복과 직결이 되었다. 개인제단 회복은 민족제단 회복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사실 21세기에 들어오면 복음주의 약점이 뭐냐면 신앙을 너무 개인화시켜 버렸다. 초대교회의 그 담대한 기백 있는 신앙은 절대로 개인화로 끝나지 않았다. 초대교회는 민족 전체의 역량으로 올라갔다. 성경은 항상 예배하고 했을 때, 예배를 어떤 개인의 예배로 끝나지 않고, “오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 경배하자.” 공동체적 표현을 한 것이다. 개인 문제가 공동체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개인제단의 회복이 민족 제단의 회복으로 가는 것이다. 이 거룩한 파장은 온 공동체와 민족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갈멜산도 마찬가지이다. 갈멜산에서 엘리야 혼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볼 수 있도록 이스라엘 민족이 다 볼 수 있도록 공적 장소에서 제단을 다 쌓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6월 3일 날 상암 경기장에 다 10만 명이 모여서 우리 함께 기도의 지팡이를 들자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에서 나 혼자 골방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그럴 때에 회복과 기백과 담력과 부흥과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지를 않는다. 오늘 주일예배에 온라인에 익숙하다면 여러분 마음을 정리를 해야 한다. 함께 모였을 때 파장이 일어나고 함께 모였을 때 민족제단이 회복되게 하시고 함께 모였을 때, 거룩한 파장과 공진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의 개인주의화는 제자훈련의 독이다. 제자훈련의 은혜는 공동체가 확보되어야 한다. 가나안 성도, 아는가? ‘가나안 성도’인가? ‘안나가 성도’이다. ㅋㅋㅋ~! 여러분 가나안 성도는 정말 위험하다. 본이 아니게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제가 이렇게 하는 말씀은 흘러 듣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별거 아니다. 하나님 나라 은혜를 가지고 이런 개인의 회복을 가지고 거룩한 공동체가 하나님께 공동체로 은혜받고 주님 주신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과 회복되면 우리의 말년이 행복할 것이다. 이것이 정리 안 되면 회한과 탄식과 우리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 위하여 무너진 제단을 개인과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오늘 예화가 뒤에 나오는데 기도와 단판을 하는데 하나님과 기도하고 백성들과 기도하는데 36절을 보면, 
 
▷둘째- 능력 있는 끈질긴 기도가 필요하다. 
*열왕기상 18:36,
36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한편으로는 우상 섬기다가 자기를 자해하고 피를 흘리고 그 다음에는 몸을 상하게 하는 이 엉터리 바알 선지자들과 그 대신 확실하게 내가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엘리야는 너무나 딴 판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확신하는 능력 있는 끈질긴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믿음과 기백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어떻게 확실한 기도를 하는가? 
 
*열왕기상 18:1
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확실하게 비를 내려주실 것이라는 것을 엘리야가 마음에 기억하면서 주의 말씀대로 행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난 다음에 놀라운 기도를 올려드린 다음에 37절에 보면,
 
*열왕기상 18:37,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기도를 하는데 엘리야의 능력이 있는 기도의 특징 중에 하나는 ‘주여 내게 응답하여 주옵소서’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우리는 응답의 문을 열어주시옵소서. 라고 두 번 이야기 한다. 그래서 제가 기도할 때마다 ‘주여, 은혜의 문을, 주여 은혜의 문을 열어주옵소서!’ 한다. 두 번씩 한다. 기도할 때, 주여 기도의 문과 응답의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엘리야처럼 한다. 중요한 것은 ‘주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한다. 확신에 차서 끈질긴 기도를 하는데, 두 가지가 뭐냐면 하나는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것과,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켜 주시는 것이다. 
 
하나-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 
둘- 그들의 마음을 되 돌이켜 주시는 것.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과 하나님의 하나님이신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하여 주시고, 창조주 하나님,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기름부음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심을 증명할 필요할 것이 없지만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는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 생각 속에 잡혀계신 분이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전토 속에만 억매이신 분이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은 또 다른 신이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력에 결박될 분이 아니시다. 상상력 속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상징도 아니시고 하나님은 어떤 우주적 파워도 아니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지금도 역사하시고, 지금 불을 보내시고, 지금 죄를 미워하시고, 지금 우상을 타파하시고, 지금 믿음의 끈질긴 기도를 들으시고, 지금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엘리야의 기도를 통하여 확증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상을 타파하고, 지금 역사하시고, 지금 불을 내리시고, 지금 응답하심을 믿는다. 그게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또 하나는 중요하다 
 
*열왕기상 18:37b,
37b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 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시는가? 사람들이 마음이 돌아설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너희들 제발 좀 돌아오라고 하신다.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신을 섬길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다. 배신한 마음을 가진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배신한 마음들이 오염이 된 것이다. 누룩처럼 다 퍼져버렸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그 배신한 마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그 마음이 돌아오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이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여러분, 마음이 돌아와야 하는 줄로 믿는다. 이스라엘의 엉터리 마음들이 돌아와야 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증명할 필요가 없는데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나님이 불을 다스리시고, 자연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다. 본래 바알신은 바람과 폭풍과 풍요의 신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바알 신에게 빼앗기고 바알 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오염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을 주시는 다음에야 드디어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것이다. 돌이켜서 진심으로 한다. 
 
*열왕기상 18:39,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놀랍다. 그들이 깨달은 것, 하나님이 불을 내리시고, 하나님이 나무와 흙을 태우시고 비를 다스리시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이 다스려 주신다. 
 
*우리 마음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게 되면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신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질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그때부터 우리가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러분이 마음이 돌아오고 그 마음이 돌아올 때, 여러분의 뜻과 방향도 돌아오게 하시고 여러분의 사랑도 돌아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무장되게 도와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으로 무장되면 우리가 믿음의 용량이 커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지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용량으로 채워지는 줄 믿는다. 그 믿음의 용량이 되면 드디어 은혜의 장대비를 내려주신다. 왜 하나님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메마르고 가뭄으로 고통당하고 어려워하는 것을 하나님은 무얼 기뻐하시겠는가? 그런데 바알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데 그냥 하나님께서 장대비를 주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할 것이다.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마음도 안 돌아오고, 준비도 안 되고, 마음의 용량도 없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은혜의 장대비를 채워주시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가서 내 마음이 잘못되었구나,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이시구나를 생각하고 내가 믿었던 우상을 처리하고 바알을 처리하고 내가 하나님 되심을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전심으로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스려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실 때, 그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이 믿음의 채워지고 믿음의 용량이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가 될 때, 하나님은 장대비를 부어주신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장대비를 부어주신다. 오늘 핵심 기도의 제목은 
 
 
*열왕기상 18:37b,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시는 것을 확신한다.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심을 찬양한다. 이 예배에 집중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신다. 마스크만을 벗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새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은혜의 장대비를 퍼부어주신다. 영 가족 여러분, 오늘 방송을 듣는 성도들이여,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주시고 우리 가족을 다스려주시고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의 마음을 다스려주시고 우리 직장동료와 세속화 되는 세상에서 절대로 절망하지 말고 우리가 주님 앞에 든든히 담대하고 영적 기백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다스려주시기를 축원한다. 여러분 이런 은혜가 있을 때 드디어 무슨일이 벌어지는가? 45절을 보면, 
 
*열왕기상 18:45,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마음이 준비되니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데, 46절을 다시 보면, 오늘 주보 제일 앞에도 나와 있다. 
 
*열왕기상 18:46,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아멘,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이스르엘에서 아합까지 30킬로 정도를 아함 앞에서 달려가는 것이다. 빗속을 달려간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마라톤 주자가 엘리야이다. 달려, 그냥 달려간 것이 아니다. 아합은 별 볼일이 없지만 엘리야는 아합 앞을 달려가면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승리하시고, 우리 개인뿐이 아니라 민족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라고 외친다. 빗속을 달리면서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신다고 선포한다. 우리 하나님은 돌과 흙까지 태우신다고 한다. 남은 자를 끝까지 지키신다고 하신다. 여러분 가정과 개인을 불로써 타 태우시길 소원한다. 오염된 것을 다 태우시길 원한다. 개인이 회복되면 공동체도 회복될 것이다. 
 
*요약
우리 하나님은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우리는 이 마음을 집중해서 은혜의 장대비를 경험하기를 소원하며, 이기적인 잡초의 사랑이 아닌, 공동체적인 유실수가 되어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 보고 2.0을 올려드리고 새롭게 호흡하며 평생 영적기백을 가지고 가정도 살고, 개인도 살고 교회도 사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여야 한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자신이 주의 종이 됨과, 자기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 해 주시길 기도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엘리야의 기도는 믿음 있는 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시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하나님을 인정했고, 바알 선지자들은 기손 시내로 가서 죽임을 당했다. 이와 같이 본문에서 엘리야는 담대한 하나님의 용사로 부각된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심어주고, 패역한 자들에게는 심판으로 다가오며,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더 큰 믿음의 담력을 갖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태도는 그들이 하나님께 되돌아섰음을 뜻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한 사람 엘리야의 가르침이 이스라엘 왕국 전체를 압도하는 힘이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원해 주시도록 만드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기도는 온 힘과 마음과 영을 다하는 간절한 기도이다. 이러한 기도의 결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비를 내려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 하더라도 그를 회개케 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계속 은혜를 베푸시는 자비롭고 사랑이 많은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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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월 30일 (783)

1. 비철금속의 일종으로 원자번호 13번이다. 철 못지않게 튼튼하면서도 가벼워 은박지, 캔, 새시, 우주선 등 다양한 제품에 활용되는 이것은?

① 구리 ② 알루미늄
③ 아연 ④ 은

2.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1월 스위스의 휴양지에서 개최하는 행사로 세계 정계·학계·재계 유명 인사가 집결하는 이것은?

① 잭슨홀 미팅 ② 다보스포럼
③ 블랙 프라이데이 ④ 양회

3. 중앙은행이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시장 참가자들에게 사전 안내하는 것을 무엇이라 할까?

① 밸류에이션 ② 테이퍼링
③ 포워드 가이던스 ④ 그린 북

4. 두 개 이상의 국가가 상호무역 증진을 위해 맺는 협정을 가리키는 용어는?

① GATT ② WTO
③ FTA ④ ISD

5. 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잠재적 매수자에게 매각 대상 회사의 기본 정보를 소개하기 위해 배포하는 문서는?

① 그린 메일 ② 베이지 북
③ 쇼트 리스트 ④ 티저 레터

6. 페이퍼 컴퍼니의 일종으로 증시에 상장돼 있다. 오직 비상장 기업을 M&A할 목적으로 설립돼 투자금을 모으는 이 회사는?

① 지주회사 ② 스팩
③ 헤지펀드 ④ 한계기업

7. 달러화의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를 산출할 때 비교 대상 통화가 아닌 것은?

① 유로 ② 엔 ③ 크로나 ④ 원

8.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가고 경제 전체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론은?

① 낙수효과 ② 분수효과
③ 기저효과 ④ 구축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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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오래된 문제'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데…

 
새해 들어 뜨거운 이슈 하나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바로 국민연금 개혁 문제입니다. 국민연금? 중·고교 생글 독자들은 “그게 뭔데?”라고 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만큼 여러분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 정책도 없답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시행하는 공적 복지제도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돈을 버는 삶의 전반전에 매월 연금을 붓고, 은퇴하는 삶의 후반전에 매월 돈을 받는 제도입니다. 개인들이 자기 계획에 따라 자유롭게 가입하는 사적연금 상품과 달리 국민연금은 소득 행위를 하는 국민이 의무적으로, 즉 강제적으로 가입하는 연금입니다.

새해 벽두부터 국민연금이 주목받는 이유는 올해가 국민연금 실태를 전면적으로 파악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국민연금 재정추계 발표라고 합니다. 정부는 5년마다 국민연금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를 분석해 발표하도록 돼 있답니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많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여러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포인트인데요. 여러분이 직장을 얻고 연금을 붓기 시작할 때쯤 연금이 고갈될지 모른다는 걱정입니다. 연금을 받는 사람은 많은데, 내는 사람이 적어서 생기는 적자 구조가 2040년께 시작되고 2057년쯤이면 지급할 돈이 고갈된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연금이 운영된다면 말이죠. 그래서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게 쉽지 않다고 합니다.

연금 자체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보험료율·소득대체율·재정추계는 뭐예요?


위 사설은 프랑스 정부가 연금개혁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의 연금도 프랑스처럼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는 겁니다. 연금 이슈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용어를 잘 알아야 합니다.

○연금: 개인이 사적 혹은 공적으로 돈을 붓고 받는 일종의 금융상품입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을 공적연금이라고 하고 개인이 별도로 가입하는 것을 사적연금이라고 합니다. 사설에서 문제가 된 것은 공적연금입니다. 노후 생활을 대비하기 위해 연금제도를 이용하는 것이죠.

○국민연금 가입자: 국민연금은 1988년 생겼어요.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가입자 수는 2222만여 명, 가입자들이 낸 적립금은 915조여원입니다. 원칙적으로 ‘18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이면 모두가 가입해야 합니다. 18세 미만이라도 가입하고 싶으면 가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적용 제외자도 있습니다. ▷학생이나 군인으로 소득이 없는 사람 ▷만 60세 이상자(임의계속 가입은 가능) ▷국민연금 가입자의 무소득 배우자(전업주부) ▷다른 공적연금 가입자(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있습니다.

○보험료율: 연금도 일종의 보험상품이기 때문에 가입자는 매달 돈을 부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험료라고 부릅니다. 보험료율은 매달 받는 월급 중 보험료로 나가는 액수를 %로 나타낸 것입니다. 프랑스는 월급의 28%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낸다고 사설은 말합니다. 월급이 100만원이라면 28만원을 낸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입니다. 프랑스가 우리의 세 배이군요. 주요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보험료율은 18% 정도라고 합니다.

○소득대체율: 월평균 소득의 몇%를 연금으로 받는지를 알려주는 수치입니다. 소득대체율이 50%면 연금액이 연금 가입자가 받은 평균 소득의 절반이라는 의미입니다. 프랑스는 소득대체율이 62%, 우리나라는 40%라고 하는군요.

○국민연금 수령 시기: 우리나라에선 나이대별로 다릅니다. 1952년 이전 태어난 사람은 60세, 1953~1956년생은 61세, 1957~1960년생은 62세, 1961~1964년생은 63세, 1965~1968년생은 65세부터 받습니다. 가입 의무기간은 만 60세까지입니다.

○법정 정년: 프랑스는 62세, 우리나라는 60세입니다. 정년을 늘린다는 것은 직장생활을 더 하도록 해서 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기간을 늘린다는 의미입니다. 국민이 반대하는 보험료 인상보다 정년 연장이 낫다는 거죠.

○연금 재정추계 발표: 우리나라 정부는 5년마다 국민연금 상태를 평가합니다. 연금이 얼마나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알아보죠. 올해가 이런 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해입니다. 결과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개혁안을 협의합니다.

NIE 포인트
1. 4대 공적연금에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자.

2. 프랑스가 왜 연금제도를 개혁하려는지 토론해보자.

3. 연금 보도에 등장하는 전문 용어를 정리해보자.



*연금제도는 19세기 비스마르크가 만들었어요 "끝없는 개혁…국가가 가입 강제하는 게 문제"

연금제도는 19세기 프로이센에서 생겼습니다. 그것을 만든 사람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입니다. 1870년 프랑스를 꺾은 뒤 비스마르크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쟁은 끝났는데 젊은 군인들이 갈 곳이 없었던 겁니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맛본 화려한 도시 모습은 고리타분한 시골과 대비되었고, 젊은이들은 도시에서 자유를 만끽하려 했습니다. 군인들은 점차 정치적, 사회적 불안 요소가 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이들에게 직장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상황이 나빴습니다. 전쟁 뒤에 불황이 닥쳤거든요. 철혈재상은 늙은 노동자를 고향으로 보내고 젊은 실업자를 빈자리에 넣자고 생각했습니다. 늙은 군인과 노동자를 집으로 보낼 ‘당근’이 필요했죠. 그래서 만든 게 정년과 연금제도였습니다.

그냥 은퇴하라면 누가 하겠어요. “은퇴하면 연금을 주겠다. 청년도 좋고 은퇴자도 좋다”였습니다. 비스마르크가 만든 정년은 65세였습니다. 65세부터 연금을 받는다는 거였죠. 이후 ‘65세 정년=65세 연금’은 많은 나라에서 고령, 정년, 연금 수령 나이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금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연금뿐 아니라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이 대동소이한 문제를 노출했습니다. 첫째 문제는 적자와 자금 고갈 이슈입니다. 국민연금은 매월 내는 보험료율보다 가져가는 소득대체율(4면 용어설명 참조)이 높은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1988년 복지제도의 하나로 국민연금을 만들 때 그렇게 설계했죠. 이게 두고두고 문제가 됐습니다.

초기 가입자는 보험료율 3%, 소득대체율 70%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내는 것은 월급의 3%인데 받는 것은 월급의 70%였으니 말이죠. 이 말은 적자가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초기에는 받아가는 연령대 인구가 적고 내는 사람이 많아서 괜찮았죠. 시간이 가면서 받아가는 사람이 많아져 줄 돈이 모자라게 되는 거죠. 뒷사람이 더 많이 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뒷사람의 부담은 더 늘어납니다. 지금처럼 가면, 2040년부터 국민연금 적자가 나타나고 2057년께 연금이 바닥난다고 합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런 구조 탓에 2070년 4대 공적연금(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총 재정수지는 242조7000억원 적자라고 합니다. 공무원연금은 만성 적자여서 세금으로 충당해줍니다.

둘째 문제는 연금개혁이 필요하지만 쉽지 않다는 겁니다.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를 올리는 겁니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선진국 수준인 18%로 올리자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반대합니다. 월급에서 더 떼가겠다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정치인들은 여론에 민감하기 때문에 보험료율 인상에 소극적입니다. 연금 액수를 낮추는 방법도 거론됩니다. 초기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연금으로 월 200만원 이상 받았습니다. 이게 갈수록 줄었죠. 100만원대로, 또 그 이하로 줄어들겠지요. 정년을 연장해서 보험료를 내는 기간을 늘리거나, 연금 받는 나이를 늦추는 방법도 있어요. 현행 60세인 정년을 더 늘리면 돈을 내는 사람이 많아지겠지만, 이것은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 논란입니다. 받는 나이를 늦추는 것은 이전 수령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죠.

이런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국민연금 비판자들은 “국가가 왜 연금 가입을 강제하느냐”고 지적합니다. 개인의 노후는 각자 준비하면 되는데 왜 국가가 나서서 풀지도 못할 문제를 자초하냐는 거죠. 개인들이 알아서 저축하거나 사적연금을 들어 노후를 준비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수명이 늘지만 출산율은 떨어지는 시대(받을 사람은 많고 낼 사람은 적어지는 시대)에 연금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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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월 4일)
제목: "감란산 기도의 지팡이 1"
말씀: 마태복음 26:36~41
대표기도: 
찬양인도: 여직장순장반
말씀읽기: 전겸의 학생(고등 1,2부), 차예림 학생(다니엘 중등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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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36~41,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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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목사님-"감란산 기도의 지팡이 1”
-할렐루야!!!~ 이걸 제가 들고 있다. 여러분 너무 놀랍다. 제가 마스크를 벗었다. 여기 다 마스크를 끼고 온 분들도 있지만 마스크를 안 끼고 찬양을 하니까 익숙하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얼굴 모습이 그 모습이었나!!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마스크 3년 동안 끼고 있으면서 아이들의 얼굴이 마스크 있는 게 그대로의 얼굴인지 알았다고 한다. 우리는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이제 진짜 오랜만에 찬양을 하는데 직장 반 순장님들이 이렇게 토요일에 이와 같이 먼저 하나님 앞에 찬양함을 주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신 줄 확신한다. 아마 한국교회 많은 교회들이 아마도 내일부터 마스크 벗는 교회가 반반 될 것이다. 우리가 이 모든 것들도 남들이 생각할 때는 그냥 된 것 같지만 우리가 매 3년 동안 예배 시작할 때에 “주여, 하나님의 은혜로 코로나를 종식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기억이 날 것이다. 이번 주부터 코로나를 종식시켜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를 올리는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토요일 아침 뭐든지 될 때까지 해야 된다. 뭐든지 전에 숭실대학에 안병욱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철학과 교수인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사람이 무슨 일이 되려면 10년은 해야 한다.” 고 하셨듯이 10년을 해야 그 일이 무언가 이루어진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간다는 이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집중하는 이유가 우리가 계속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줄 믿는다. 지금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계속 기도하는데 우리 교회 오시는 여러 손님들이 깜짝 놀란다. 무언가???!! 속으로 될 때까지 가는 것이라고 하며 기도의 응답을 주님이 주실 때까지, 이번 6월 3일에 상암 경기장에서 10만 명의 기도자들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반드시 남북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영광스러운 방향이 잡히리라고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매주 토요일마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이 번호까지 있듯이, 이 기도의 지팡이는 넘버 0001이다. 이것은 강단용 1번이다. 우리가 될 때까지 기도를 하는데 우리가 시내 산 기도를 하고, 갈멜 산 기도도 하고, 오늘은 한국교회가 갖는 수많은 자본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감란 산의 기도, 겟세마네 기도의 이 은혜를 본받아서 한국교회 성도들이 새벽에도 기도하고 그 다음 철야기도, 금식기도, 산 기도도 이렇게 하는데, 오늘 이 자리가 우리가 안아주신 본당, 서초동 반포대로 121번지이지만, 이 자리가 기도의 자리가 되길 소원한다. 여러분, 각자의 마음의 방향과 여러분들이 기도의 제목과 또 어떤 분들은 시내 산이 될 수 있고, 어떤 분들은 감란 산이 될 수 있고, 어떤 분들은 모리아 산이 될 수 있고, 어떤 분들은 갈멜 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우리가 기도의 산에 올라갈 때마다 하나님은 맞춤형 은혜를 주시리라 확신한다.
 
오늘 감람산에 관한 것은 감람산 아래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그러니까 크게 보면 감람산이고, 그 아래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서 오늘 좀 살피겠다. 저희 한국의 캠퍼서 선교를 할 때에 어느 모 대학의 대학생들이 제대로 기도를 한 번 하자고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그 기도 동아리의 이름이 ‘겟세마네기도 동아리’였다. 겟세마네기도 동아리를 통하여 간절히 기도했는데, 성균관대학에서 정말 기도하는 기도 팀들을 통하여 인물들이 굉장히 많이 배출되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가 겟세마네 기도의 핵심을 우리가 잘 가질 때, 여기를 통하여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배출될 줄 믿고 기도의 신실한 종들이 배출될 줄로 확신하는 것이다. 확실하게, 지난주일 날 사무엘을 통하여 라마 나욧에서 사무엘은 마지막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었던 그 사무엘에게 그 사역을 라마 나욧에 있는 선지자, 선지 생도들이 제대로 훈련을 하고 기도를 배우고 그렇게 하니까 그 라마 나욧을 통한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을 통하여 다윗왕국의 놀라운 물고를 텄다고 거기에 제사장도 나오고, 거기에 선지자도 나오고, 예배 인도자도 나오고,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도 나오고 이렇게 한 것처럼, 토요비전새벽예배가, 오늘 이 자리가 기도의 동산이 하나님의 나라의 놀라운 인물들이 배출되기를 바란다. 오늘 보문에는 37-38절을 보니까,
 
*마태복음 26:37-38,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렇다. 아무리 예수님 신성을 가진 예수님이지만 예수님이 전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실 주님이시지만, 예수님은 완벽한 신성을 가지셨지만 또 완벽한 인성을 가지고 계셨다. 또 인성을 가지신 분이시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것이 예수님이 기도하시기 전의 상태였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지만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마태복음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그러니까 일어나라 함께 가자하신다.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고, 기도를 통하여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고, 이제는 다 평강을 가지고 됐다고 이제 가자고 하신다. 십자가를 질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사람은 살다보면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마음에 고민이 되어 죽게 될 정도로 수많은 일들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지만 감란 산에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데 이제 되었다. “일어나 함께 가자.” 하신다. 우리가 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어떨 때는 깊은 고민과 짊을 지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도의 동지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할 때, 딱 마음의 평안을 주셔서 “일어나 함께 가자.” 하신다. 그 이유가 오늘 두 세가지 말씀을 하겠다.
 
첫 번째 –기도의 자리.

-겟세마네는 예수님의 기도의 자리였다. 무슨 자리인가? 기도의 자리이다. 겟세마네는 감람산 하단에 있다. 감란 산의 일부였다. 감란산은 예수님께서 습관을 쫓아 기도하셨던 장소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29장 39절을 보면,
 
*누가복음 22:39,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습관을 따라, 그러니까 겟세마네 이 지역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 털어놓고 기도하는 장소이다. 늘 함께 기도하는 하나님 만나는 장소였다. 생애에 가장 위기를 닥친, 십자가를 짊어져야할 그 상황에서 그 어려움을 당하실 때도 주님은 서슴지 않으시고 늘 습관에 따라 기도하는 장소에 가시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들은 삶의 지치고, 삶의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을 때,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겟세마네가 되기를 바란다. 아니 습관을 쫓아 기도하는 우리의 장소가 있냐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토요비전새벽예배, 이 자리가 내 생애의 가장 큰 짐이나 어떤 기도의 제목이 있을 때, 그 기도의 제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습관을 따라 갈 수 있는 그런 은혜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평소에 그런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겟세마네 기도의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떨 때는 습관을 따라 기도하는 마음가짐 장소가 될 수 있고, 환경이 될 수 있고, 장소가 될 수 있겠다.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자는 반드시 삶의 환경의 자리에서 겟세마네 기도의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니 토요비전새벽예배, 이 자리가 여러분이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장소처럼 여러분도 이 자리가 기도의 장소가 되기를 소원한다. 아멘. 습관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삶이 만만하지 않고, 인생도 만만하지 않다. 그 만만하지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하나님이 주시는 깊은 영적 교제, 그것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겠는가? 고통의 골짜기를 통과할 수 있는 평안과 힘과 영적교제를 누릴만한 그런 기도의 장소가 있을 것인가? 매주 토요일마다 힘과 평안과 영적교제를 누릴 수 있는, 습관을 따라 기도할 수 있는 이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멘. 습관을 따라 기도할 수 있는 장소, 겟세마네 동산 기도의 장소처럼, 우리의 삶이 모든 기도의 제목들을 평소에 기도하던 대로 기도하는 장소가 바로 이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기도의 장소가 중요하다.
 
두 번째는 –함께 기도하는 동지.

*마태복음 26:37,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두 아들이 누구인가? 야고보와 요한이다. 이들은 기도의 동지들이다. 기도의 최측근이다. 예수님의 마음 그대로 그 마음에 주님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상처, 조각, 마음의 수많은 짐들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최측근들이었다.
 
*마태복음 26:38,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얼마나 최측근이었으면 예수님의 마음의 상태, 어떤 주님의 아픔, 기도의 제목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최측근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고민하였다고 하셨듯이, 그런 기도를 나눌 수 있는 최측근이다. 기도의 용사, 기도의 동지들, 저는 토요비전새벽예배에 지팡이에 번호가 다 있듯이, 7천 번까지이다. 그리고 혹시 없는 분들은 이 번호가 없는 분들은 꼭 받아가야 한다. 1-7000번까지가 기도의 최측근이 되기를 바란다. 될 때까지 할 것이다. 진지하게 말씀을 드린다. 될 때까지 할 것이다. 뭐든지 10년을 해야 일이 된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앞으로 10년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집중을 해서 정말 세계선교를 마무리 하는 그런 한국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줄 믿는다. 우리가 이 자리가 겟세마네 장소가 되기만 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기도의 최측근, 우리가 마음에 안타깝고 힘들 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도의 동지가 확보되어야 한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 자리가 굉장히 상징적인 자리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씩 이렇게 마음을 모아서 토요일에 이 자리가 오고 싶어서 막 뛰어올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특새 할 때 보았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온다. 그렇게 와서 특새를 하고 하면, 일주일씩 하게 되면 다 동지가 된다. 그리고 그냥 이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동지의식을 가지고 세목 골 눈이 그냥 편안한 눈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하지 말고 토비새 나온 분들은 동지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도 맨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맨날 평가하고 지적 질하고 비판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기도의 동지가 되어야 한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왜 그러한가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격려하라. 같이 마음을 품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이 없다. 교회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같이 아파해주고 같이 마음을 해야 한다. 물론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감란 산에 최측근 동지가 된 것처럼 사랑의 교회 토비새에 나온 여러분들은 최측근 동지가 되길 바란다. 동지적 안목을 가지고, 동지적 눈을 가지고 쳐다보라. “우리는 기도의 동지입니다.”하면서 기도하기를 바란다.
 
세 번째는 –기도의 자세(아빠 아버지).

*마태복음 2:39,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거기에는 다음에 다시 또 설교하겠다.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에,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신다. 십자가를 지시는 그 놀라운 신성을 가지고 하시는데, 또 하나는 예수님의 인성은 측근과 함께 고통을 나누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의 놀라운 기도의 자세가 있다. “내 아버지여!”하신다. 오늘 토비새에 나오신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에, ‘내 아버지여!’는 호칭이 거창하고도 형식적인 아버지가 아니다. 격식이 있는 그런 호칭이 아니라 ‘아빠 아버지’이다. 집에 아버지께 이야기 할 때, 존경하는 아버님 하지 않는다. 온갖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아빠!!’~ 하듯이 그렇게 한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복음적 신학자, ‘죠하킨 제네미야’가 계신데, The Sun of man. as The Sun of God!=하나님의 아들, 그 사람의 아들, 인자신학이라고 유명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신, 그 일을 앞에 놓고 “내 아버지,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다. 무슨 거창하고 공식적인 이름이 아니라, 아주 친근하게,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아빠!” 하듯이 같다. 토요비전 새벽예배 나와서 이렇게 헌신 기도이 지팡이를 들고 와서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해야 한다. 정말 내 마음의 아픔과 한국교회의 짐과 이 민족이 해결해 나아가야 할 짐을 놓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아주 독특한 관계이다. 여기서 제네미야’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아버지 앞에서 응석 부리는 용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된다. 그래서 나이가 70-80이 되어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 그 순간 다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토요비전새벽예배 때마다 우리가 간절하게 사모하는 것은 이 자리가 순도 높은 기도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순전함을 회복하는 장소가 되기를 소원한다. 우리가 폼 재는 것이 아니라, 친근하게 하나님을 부르는 순간 이 기도는 신앙의 순도를 만들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면 평생의 신앙의 순도, 신앙의 순전함의 은혜를 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기도의 순도를 유지하라. 거룩한 기도의 장소가 이 토비새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 인물들이 배출되고 기도의 인물들이 나오기를 소원하며, 모두가 다 기도의 최측근이 되기를 바란다. 기도할 때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길 소망한다.
 
▶메튜 암스토롱 목사님(Mattew Amstrong)-초빙(통역 김성태 목사님).
-옥스포드 대학에서 왔다. 정말 반갑게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특별히 오정현 목사님께 감사하다. 옥스퍼드 대학에 있는 위클리프 신학대에서 대외 협력 디렉터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옥스퍼드 대학이 처음으로 이렇게 오게 되었다. 오정현 말씀하신대로 전 세계가 복음으로 변화 되어야 한다고 말씀했듯이 옥스퍼드도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정말 어떻게 변화하고 있냐면 리더 자분들의 기도와 말씀, 옥스퍼드의 많은 리더 자들이 정말 성경적으로 든든히 서가며, 복음으로 많은 변화를 시키기를 위해서 사역하고 있다. 전에도 오고 싶었지만 못 왔다. 어쨌든 팬데믹이 지났기 때문에 옥스퍼드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글로벌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같이 하기를 원하며 계속해서 파트너 십을 이루고 같이 사역을 하기를 원한다. 옥스퍼드 대학교가 여러 가지 단과 대학이 모였는데 그 중에서 위클리프 신학대가 유일하게 복음과 성경으로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미니스트리를 말씀 중심으로 사역하기를 원하는 그러한 대학이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사랑의 교회와 옥스퍼드가 같이 연합해서 글로벌 미션을 감당하는 좋은 관계로 이어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요약
모두가 다 무한한 기도의 헌신 자가 되어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회복을 넘어 부흥’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감동을 주심을 믿고 기도하여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자는 반드시 삶의 환경의 자리에서 겟세마네 기도의 장소가 있어야 하며, 예수님의 감란 산에 최측근 동지가 된 것처럼 사랑의 교회 토비새에 나온 여러분들은 서로 최측근 동지가 어서 예수님과 친밀하여서 마음의 거룩한 자세를 가지고 주님께 온전한 기도를 하기를 소원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이 가까이 다가오자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할 수 있거든 잔을 옮겨주시기를 간구하면서도 그 분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셨다. 주님도 인간적인 약점과 연약함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열심이 온전히 모든 일을 이루게 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이처럼 영적으로 잠든 제자들의 모습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깨어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 위해, 믿음에 굳게 서기 위해,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 찬송하기 위해,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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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2월 1일)
제목: "승리의 시작, 마음의 할례"
말씀: 여호수아 5:2~9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백요셉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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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5:2~9,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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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요셉 부목사님-"승리의 시작, 마음의 할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부흥보고 수요저녁예배에 오신 성도님들을 한 분 한 분 축복하며 환영한다. 오늘은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허락하시기를 믿는다.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 말씀이다.
- 부부는 살다 보면 서로 닮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부부가 오래 살다보면 함께 웃고 함께 울기도 하고 함께 한 시간이 많기 때문에 서로 닮아가기 마련이다. 이제 눈빛만 보더라도 또 말투만 듣더라도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은지를 알게 되고 닮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들은 누구를 많이 닮았는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분과 오래 생활을 하다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닮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우리는 심령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사모하고 따라 가야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수요일 이 밤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부흥보고 수요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리고 이 밤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 비결을 깨달아서 정말 결단하고 주님 앞에 더 가까이 가는 귀한 밤이 되기를 소원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다. 그 과정 가운데 열 가지 재앙을 경험하고, 또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인데도 하나님께 끊임없이 불순종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다. 40년이란 시간이 지나자, 광야에서, 광야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젊은 2세들과 일어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 출애굽 할 때는 홍해의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려주셨다면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넘어가는 과정 가운데 요단강이 있었는데, 그 요단강은 허리춤까지 오는 가파른 물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요단강을 밟자마자 그 요단강이 멈추는 하나님의 은혜를 허락해 주셔서 요단강의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려주셨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 땅에서 처음 맞이하는 적군인 여리고 성 전투를 준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리고 성의 정확한 크기와 위치는 우리 알 수 없지만 높은 지대에 있었고, 외곽과 내각의 벽이 촘촘히 있어서 아무도 알 수 무너뜨릴 수 없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듯이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함락시키시기를 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에 순종하여 여리고성이 무너졌고 이것은 정말 충격적이고 쇼킹한 사건이었다. 사실 이런 스토리를 접할 때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삶의 여리고성이 무너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라는 결과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하셨고,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청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왕이면 오늘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를 깨달아 우리들의 삶의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귀하고 복된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음을 여러분이 믿으시길 소원한다.
 
여러분 첫 번째 곧 전투를 시작하는데, 오늘 읽었던 여호수아 5장에서 하나님께서 조금 상식 밖의 일을 요청하시는듯하게 들린다. 그것이 무엇인가? 할례이다. 여러분 할례가 무엇인지를 아는가? 할례(割禮)는 남성의 생식기(生殖器)의 포피(包皮)를 자르는 것을 말한다. 생명을 잘랐다는 뜻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할례는 창세기 17장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는데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창세기 17:7~11.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행하기를 원하셨는데 그 이유는 언약의 표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맺는 언약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말씀과 또 그들을 축복하시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는 이 할례를 통해서 언약의 표징을 삼과 하나님께서 원래 디자인하신 본연의 모습대로,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뜻대로 살아가겠다고 고백하는 상호간의 약속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 많은 사람들이 할례를 통해 언약을 체결(締結)했다는 사건만을 보고 ‘나는 이제 됐구나!’ 라고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체결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요청하고 계신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또 언약 가운데 있는 약속을 이행 받지 못한다. 사실 이것은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이다. 그냥 단순히 축복을 덜 받고 못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못될 수도 있다는 표현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그리고 끊임없이 그분의 백성들을, 그분의 백성들의 어떠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함을 통해서 사랑해 주시고, 오래 참아주시고, 안아주시고 인도해 주신다. 또 언약 안에 있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500년 전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신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으로 애굽 땅을 나왔지만, 불순종으로 광야의 길을 걷고, 광야의 1세대는 다 죽고, 이제는 할례 받지 못한 2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언약을 체결하자고 초청하고 계신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고 너희들의 길을 축복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할례는 무엇인가? 할례는 언약의 초청이자 축복의 초청이다. 오늘 이 밤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초청하고 계신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 내가 너희 길을 축복하고 싶다.” 고 초청하고 계신다. 그런데 할례는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일수도 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라. 여리고 성에 전투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여리고 성 사람들의 입장에서 광야에서 막 나온 사람들이 이제 막 전쟁을 하려고 하는데 무엇을 하나 보니까 할례를 받는 것이다. 남들이 생각할 때에는,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큰 전투를 앞두고 전술(戰術)을 짜고, 전략(戰略)을 짜고, 군사(軍士)를 훈련(訓練)하고 체력(體力)을 길러야 하고 상대방(相對方)의 실태(實態)를 조사(照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적군(敵軍) 앞에서 할례를 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전쟁에 참여할 남성들이 다 할례를 받고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것은 정말 어처구니없고 어이없는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포(宣布)하신다.
 
*역대하 20:15,
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전쟁은 나의 것이라는 것이다. 전쟁은 나한테 속하였으니 이제 너희들은 언약 안에 있다”고, 이제는 내가 너희를 대신해서 싸우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다시 한 번 언약(言約)을 체결하자고 하신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부분, 영적인 부분들의 해결을 통해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외적인 부분, 눈에 보이는 문제와 어려움들은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할례를 통해서 이제는 너희가 죽고, 너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계시고 이 언약을 통해서 이제는 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실제적인 주인이 되고 왕이 되어 주신다고 인도하시는 인도(引導)자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죽었다고 진짜 죽은 삶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셔서 생명의 강수가 넘쳐흘러 그 예수께서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정말 어처구니없고, 어이없고, 바보 같고 멍청한 것 같은 이 할례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하기를 원하셨고, 심지어 적군 앞에서 행하기를 원하셨다. 왜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도 이 할례를 원하고 계신다. 죽음을 상징(象徵)하는 이 할례(割禮)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는 죽고,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2023년 2월 1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할례를 어떻게 받아야 할까? 우리도 포피를 자르고 표징을 내야 될까? 아니다. 이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 가운데 할례를 받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신명기와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신명기 30:6,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골로새서 2:11,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이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기를 부탁하고 계신다. “성경을 읽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면 되는데, 꼭 이렇게 할례를 받아야 됩니까?” 라고 질문하실 수 있지만 대답은 “꼭 받으셔야 합니다.” 할례는 언약의 표준이고 할례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언약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냥 단순이 믿고 신앙생활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의 자아, 정욕, 욕심, 죄들을 십자가에 다 못 박고 이제는 내가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영에 속한 사람임을 씩씩하게 고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의 삶에 여리고성이 나타나면 우리는 무엇을 가장 먼저 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넘어 트리냐? 라고 전략을 짜고, 우리들의 생각과 계획을 정말 인맥을 동원해서 그것을 고심하고 고민한다. 물론 그리고 기도한다. 그리고 어떻게 기도하는가? “하나님, 내 자아와 고집과 아집이 다 여기 있는데, 하나님, 내가 세운 계획은 여기 다 있는데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이 밀어주시면 저 여리고성 쓰러질 수 있습니다. 쓰러트릴 수 있습니다.” 라고 우리는 기도한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에 치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쟁은 나에게 속하였으니 나한테 와라, 나를 신뢰하라. 나한테 너희들의 믿음을 보여주어라.”라고 요청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사람은 내면의 싸움, 영적인 싸움을 하면서 외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고 믿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고, 서라하시면 서고, 앉으라고 하시면 앉고, 누우라고 하시면 눕고, 일어서라 하시면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된다고 본다. 그래서 오늘은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의 할례를 부탁하고 계신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삶, 우리들의 생각과 방법과 우리들의 능력으로 행하는 삶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삶, 언약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삶을 요청하고 계신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마음의 할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두 가지를 가지고 나누겠다.
 
I. 회개(悔改).

-여러분, 회개할 때, 어떻게 하는가? 그냥 기도하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 생각해 보면서 실수했던 것, 어떻게 보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정적으로 도덕적으로 우리가 넘어졌던 부분을 기도하지는 않는가? 여러분, 그것도 회개(悔改) 맞다. 그것도 맞지만 회개라는 것은 내 입장에서 내가 생각나고 내가 잘못된 것들만이 기도하고 중요한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을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여러분 회개는 물론 내가 저질렀던 것, 실수했던 것, 연약했던 부분들, 내 감정적으로 도덕적으로 부족한 부분들, 주님 앞에 내려놓은 것은 맞다. 그런데 진정한 회개는 내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는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 회개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이 답답해, 왜 저렇게 살지?’ 라고 속으로 욕하는 부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서 지금 ‘백요셉 목사님 왜 눈이 저렇게 적어, 키는 왜 그리 큰 거야!’ 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발음이 왜 저렇게 자꾸 꼬이는 거야’라고 이렇게 하는 속으로 하는 것도 다 회개해야 된다. ㅋㅋㅋ 농담이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관계적으로 지은 죄들, 속으로 지은 죄도 회개해야 되지만 여러분, 한 번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여러분, 우리가 잘 되었을 때, 감사의 조건이 넘쳤을 때, 우리가 했던 행동과 표정을 혹시 다른 사람들이 듣고, 다른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면서 혹시 상처를 받았다면, 혹시 나의 모습 때문에 내가 잘못되고 죄 짓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혹시 내가 보편적으로 살아가는 행동들이 하나님께서 보시고 마음에 드시지 않았다면, 여러분 회개해야 되지 않는가? 내가 감사할 때도, 내가 즐거울 때도, 내가 그 어떠한 때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았다면 여러분, 회개해야 한다.
 
여러분, 디모데후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이 있다고 하신다. 큰 집에는 금 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뭐라고 표현 하셨냐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신다. 여러분 믿는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마음의 할례 중에 이 회개라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러분 내가 생각나지 않더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 이 밤에 오늘 이 시간에 주님 앞에 제가 회개합니다. 주님, 깨끗한 그릇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 생각나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행동이나, 원치 않는 표현을 했다면, “주여 이 시간에 생각나게 하셔서 이 입술로 회개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기도의 영을 부어주셔서 주님 앞에 무릎 꿇어 주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라고 나아가야 된다는 것이다. 여러분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는 주님 앞에 나아와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는 분명히 베풀만한 은혜를 허락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깨끗한 그릇이 되어 주님 앞에 쓰임 받는 평생이 되기를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한다.
 
II. 자기부인.

-자기 부인은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보통 우리들이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는 우리들의 삶과 나의 삶과 생각을 정해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입하기 쉽다 제가 예를 들어보면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하시는가? 정말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하는가? 아니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표현이 너무 조금 강하셔, 너무 극단적이셔, 그냥 요즘 표현대로 “네 이웃을 자상하게 해라, 따뜻하게 해라, 상냥하게 해라, 손 한 번 잡아주어라.”라고 표현하시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표현하신 것은 여러분, 우리가 우리들의 생각과 기준이, 생각대로 기준을 내려놓기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입하려고 하면은 자꾸 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표현은 그냥 조금 극단적인 표현, 패션, 너무나도 다른 표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몸소 실천하신 표현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너희가 작은 예수가 되어서 그 명령을 실행하기를 원한다고 하셨다.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내용이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내 생각과 내 기준을 내려놓지 못해서이다. 그러기에 자기부인은 내 생각과 내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기준이 우리들의 삶에 우선으로 삼고 나의 것을 내려놓는 일을 이야기 한다. 물론 아프다. 물론 고통스럽다. 괴롭다. 어떨 때는 이렇게 사는 것이 맞을까? 라고 생각도 든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모든 믿음의 선조들은 이 자기부인의 시간을 거쳤다.
 
여러분, 야곱을 기억하시는가?
*야곱- 평생 자기 생각, 자기의 방법, 자기의 꾀로 살아가다가 얍복 강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와 씨름해서 자기부인의 시간을 가지고 온전히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또 다윗은 어떠한가?
*다윗- 승승장구한 평생의 삶을 살았지만 자기욕정, 욕망에 못 이겨 범죄하고 난 뒤에 하나님 앞에서 씨름해서 “하나님께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도와주시옵소서. 나를 떠나지 마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자기부인의 시간을 가진 이후에 하나님의 평생친구가 되는 삶을 살았다.

또 요나는 어떠한가?
*요나- 하나님 뜻과 자신의 뜻이 틀리다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도망갔지만 칠 흙 같은 어둠 가운데 그 물고기 뱃속에서 다시 한 번 주님 앞에 돌이키고 자기부인으로 주님 앞에 쓰임 받았다.

또 사울은 어떠한가?

*사울- 자기 의가 넘쳐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그 사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에 평생 자기부인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았다. 다른 사람, 다른 이야기 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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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셨는가? 여러분, 3년의 공생애가 끝난 이후에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직전에 “하나님, 너무 힘듭니다. 라고 기도하시면서 내 잔을 옮겨주시옵소서.”라고 하셨지만 결국에는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부인을 하시며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저희들에게 나타나셨다.
 
여러분, 이 믿음의 선조들이 대충대충 기도하면서 “하나님, 도와주세요. 아니면 말구요.” 라고 이렇게 기도했는가? 아니다. 이들은 정말 땀방울이 핏 방울이 될 때까지 자기의 뜻을 내려놓고 자기부인의 시간을 가졌다. 다리를 절며 평생을 살 때까지 그렇게 될 때까지 하나님께 씨름하면서 자기의 것을 내려놓은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씨름하여 나를 내려놓은 시간은 마음의 할례를 갖는 시간이다. 이제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죽고 이제는 예수님 마음대로 사용해 달라고 고백하는 시간이다. 분명한 것은 이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역사하신다면
나의 살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 내 삶은 가장 영광스런 삶, 나의 삶은 가장 능력이 풍성한 삶, 권능이 있는 삶, 가장 아름다운 열매 맺게 하시는 삶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여러분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여러분, 누가 할례를 받고 싶어 하겠는가? 누가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지고 싶겠는가? 누가 몸에 칼을 대고, 피를 흘리고 싶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기를 원하신다. 내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이제 그렇게 살아서 하나님께서 온전히 역사하시는 삶, 이제는 정말 축복의 통로, 언약의 통로로 세상 가운데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포피를 자르고, 피나는 시간은 죽을 것 같이 아프고, 고통스런 시간일지 모르지만 가장 완벽하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임을 믿으시길 소원한다. 오직 그 시간만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명료하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며, 이제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께서 사시는 시간임을 여러분은 기억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다.
여러분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5장 마지막 절에 여리고 성을 다가가기 전에 이렇게 고백하신다.
 
*여호수아 5:15,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내가 선 땅은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고 이야기 하신다. 여러분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 더러운 것이 있을 수 없다. 라고 말씀하시며 내려놓으라고, 이제는 깨끗해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우리가 우리의 신발을 신고는 우리 뜻대로, 우리 멋대로 가고 싶은 곳 가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삶 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신발을 벗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안아주신다는 것이다. 이제는 신발을 벗고, 하나님께서 업어주셔서 이제는 네가 가는 곳을 같이 가주신다고 하신다. ‘네가 움직이고 네가 행하는 것, 같이 함께 해주시겠다.’ 라고 하나님께서 도전하고 부탁하고 계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 우리들의 삶 가운데, 직면하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여리고성은 무엇인가? 그것이 건강인가? 재정인가? 그것이 가정인가? 그것이 가족인가? 그것이 관계인가? 신앙의 문제인가? 신앙의 문제인가? 마음의 두려움인가?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밤에 우리들에게 도전하고 계신다. “전쟁은 나에게 속하였으니, 이제는 내려놓고 이제는 너희들은 죽고 예수로 사는 너희의 삶이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이 전쟁 가운데는 우리가 할 것은 마음의 할례이고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우리들의 자아를 죽이고 우리들의 모습과 정욕과 우리들의 죄를 죽이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파트를 기다리며 기대하며 소망하며 손을 들고 이제는 나의 신을 벗고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기대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소원하고 바라기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 마음의 할례는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마음의 할례를 통해서 우리의 평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하나님께서 나의 여리고 성을 무너트려주셨다. 라고 간증하고 고백하고 자랑하고 다른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평생이 되기를 축원한다.
 
♣요약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으니 이 시간에 나의 마음을 주님께 맡기며, 이제는 내 생각, 내 계획, 내 방법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이제는 이 여리고 성을 주님께 맡기고, 영적인 부분과 내면적인 부문과 관계를 정리하여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서 이제는 전쟁은 하나님께만 속하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삶이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서 오직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복하여 주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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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29일)
제목: "영적 기백(氣魄)"
말씀: 열왕기상 18:20~29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이삭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옥사님
ㅡㅡㅡㅡㅡㅡㅡ
*열왕기상 18:20~29,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추운 날씨에 이렇게 나올 수 있는 환경과 믿음 주시고 건강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축복이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 11번째이다. 지난주에 고향 교회를 가니까 제목이 거기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였다.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랑의 교회를 따라 하는 것은 아니냐고 하고, 좀 창의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그 담임 목사님이 기가 막힌 대답을 하셨다. “이것보다 더 좋은 표어가 어디 있습니까?” 하시며 그리고 “한국교회 모든 교회들이 가장 절실하게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니 그 반을 듣고 제가 너무 감사했다. 오늘 이 회복을 넘어 이 시리즈는 우리 개인의 어떤 공동체 사고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도 이 제목을 통해 많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오늘 제목은 영적기백(氣魄)이다. 찬송할 때, ‘믿는 사람들은 주의 권세이니’ 할 때 어떤 분들은 기운 있게 ‘앞서 가신 주를 따라갑시다.’ 라고 하는데 어떤 분들은 이게 무슨 찬송인지도 몰라 하신 분들도 있다. 하여튼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완전한 기백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회복으로 넘어 부흥’으로 가는 이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영적 기백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앙의 엔진이라 말할 수 있다. 여러분, 20-30년 된 차라 할지라도, 오래된 차라 할지라도 엔진이 좋으면 그냥 끄떡 없이 잘 나간다 맞는가? 우리가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또 환경도 바뀌고 시절도 변하지만 영적기백이라는 이 신앙의 과업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영적기백을 소유하면 나이가 들어가도 환경이나 지역이나 시대나 상관이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기백이 왜 이 단어가 필요한가? 우리 입장에서 당장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엔진이기도 하지만 왜 필요하냐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신앙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적기백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영적 전쟁터에 발을 들여놓기 때문인 것이다. 다 영적 전쟁터이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잘하면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전투함을 타고 전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날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달려드는데, 우리는 만약에 패잔병(敗殘兵)처럼, 정말 당나라 군사들처럼 가만히 있다면 안 된다. 오합지졸(烏合之卒)처럼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적 전쟁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우리가 막무가내로 아무런 준비가 없이 뛰어들면 안 되고, 그래서 영적기백을 가져야 한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서 위해 너무 중요하다. 영적기백과 담력을 회복하고 우리 것으로 무장(武將)되는 영광스런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
 
저는 오늘 구약의 열왕기상 18장, 여러분이 잘 아는 말씀이지만, 여러분 저는 신구약, 특별히 구약 말씀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실히 믿는다. 이 21세기의 한국과 서울에 사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나침반으로서 이 말씀을 주셨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의 현장과 직결(直決)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본문을 보겠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다스린 지 100년 정도 지난 구약 스토리이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솔로몬 이후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북이스라엘이 아합 왕이었고, 이런 하나님을 버리 바알 신을 섬겼다. 그리고 아합 왕은 악명 높은 이세벨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였다. 아합 왕이 잘못된 것에 3년간의 기근(饑饉)이 들었다. 온 나라가 고통 했다. 고토이후에 갈멜 산의 영적 전투가 벌어진다. 만약에 이 갈멜 산의 전투를 누가 영상으로 촬영을 했다면 참으로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올 것이다. 소위 이 신들의 전투, 우리가 이렇게 설명하지만 이 신들의 전투를 보게 된다. 여호와냐? 바알이냐?를 보게 된다. 이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떼를 지어 갈멜 산으로 다 올라갔다. 한쪽 편에는 바알 선지자들이 화려한 예복을 입고 서 있다. 바알과 이스라엘 선지자 850명이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은 태양신을 그들은 숭배했기 때문에 태양의 빛을 발하는 금송아지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 빛에 눈이 부셔서 눈을 뜨기 힘들었을 것이다. 폭군이 왕이 화려한 옷을 입고 왕실 침대에 서 있다. 그런데 맞은편에는 광야출신 엘리야가 초라한 옷을 입고 수염을 길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서 있다. 지팡이... 우리는 무얼 하든지 제대로 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한 쪽은 너무나 위세가 등등해 보이고, 한 쪽은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한 쪽은 찬란해 보였고 한 쪽은 불쌍해 보였다. 오늘 본문 앞에를 보면 아합이 뭐라고 하냐면,
 
*열왕기상 17~18,
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아합 왕이 그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너냐고 묻는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기가 죽지 아니하고 18절에 보면,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 너라고 한다. 내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집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눈동자도 하나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위 영적 기백이 있는 것이다. 그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I 영적 기백이 있는 교회.
 
*열왕기상 18:19,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여러분 제가 이렇게 왕 앞에서 담대한 기백을 가지고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가? 엘리야는 광야의 고난을 경험했다. 그리 시냇가에서 배고픔도 체험했다. 엘리야의 기백은 왕실의 산해진미와 안락함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목마름도 경험하고 환경적 고통과 가난한 백성들과 가뭄과 기근을 경험하면서 소위 고난의 과정을 거친 영적 기백인 것이다. 광야를 거친 광야에서 체득된 기백인 것이다. 이런 영적 기백이 우리 교회와 개인도 있을 수 있지만 한국교회가 이런 광야의 경험을 거치고 한국교회가 영적기백이 있는 주님 주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구약의 말씀과 오늘 신앙생활의 우리가 연결이 되어야 한다. 영적 기백의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 과거에 고난의 길을 경험했다. 저는 지금도 고난의 길에서 은혜 받았던 장소나 길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시골에 기도원이나 교회 마룻바닥에서 새벽에 아무도 오지 않은 시간에 혼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들과 한 두 명의 성도들이 모여 통회하며 주님께 매어 달리고 기도하는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안아주심의 본당도 겉으로는 귀하고 아름다운 그런 본당이지만 이런 고난의 정신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가 오늘 이와 같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 믿는다. 본당에 들어올 때마다 한국교회의 기도원의 야성과 고난을 이겨낸 야성이 여기에 축적된 줄로 믿는다고 기도하며 오죽하면 토비새(토요비전새벽예배)마다 이곳이 하나님 아버지 갈멜 산의 전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곳이 모리아 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감람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시내 산이 되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한다. 이 자리가 한국교회의 영적기백의 토대가 되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도록 공동체와 개인에게 허락하실 것이라 믿는다.
 
저는 한국교회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국교회의 혈관에는 고난의 영적기백의 DNA가 흐르고 있다. 한국에 전해지는 복음은 영적전투를 통해 처음 강하게 들어왔고, 강력한 유교에 대치해서 한국교회 선교사를 보니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보름을 기하여 한국교회의 외국인 가옥을 불태워 훼파하라.’ 외국인 가옥과 교회당을 다 불태우고 파괴하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 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할 것 없이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훼파하라고 탈취하라고 하만이 유대인을 죽이도록 전국에 내린 조서였다.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에 1900년에 이용익이나 김영준 같은 수구파들이 전국에 선교사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일시에 박멸하는 계획을 비슷하게 세워가지고 선교사의 집과 교회당을 불태우고 파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마치 이 내용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에스더서를 보면,
 
*에스더 3:13
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지금부터 125년 전 1898년에 유교의 이름으로 부상들을 부추겨서 우리가 국사 공부할 때 배웠을 것이다. 황국협회라는 것을 내 세워서 반기독교 적 운동을 조직했다. 보부상들은 1898년에 10월에 기독교 학교와 교회당에 경고장을 보내면서 교회를 박멸하려고 협박했다.
1898년에 10월9일자 황성신문에는 보부상들이 교회당들을 훼파하고 교회 신도들을 도륙했다.
-이후 한국교회는 3.1운동에서 첫 3개월 동안 오만 명 이상이 처형되거나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재암리교회 학살 사건을 알 것이다. 교인들이 예배드리고 있는데 다 불태워 죽였다. 절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고생한 것이다. 6.25전쟁, 전쟁초기 6개월 동안 508명의 목사님들이 순교를 당했다. 2천 여개 교회들이 파괴가 되었다. 우리교회 가끔 오셔서 말씀하시는 박영규 목사님, 한국교회사 전문가이신 박영규 교수님은 한국교회 박해 사를 이렇게 정리했다.
*복음은 신분과 민족과 성을 초월하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그것 때문에 교회는 박해를 통해 더욱 성장해 왔던 것이다. -김용규 교수-
고난이 한국교회 영적기백을 가져온 것이다. 오늘 이러한 한국교회의 역사와 또 엘리야의 역사와 이것이 우리에게 연결되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럼 어떻게 영적기백을 회복할 것인가? 아니 영적기백을 놓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 영적기백을 회복할 것인가이다. 21절부터 두 세가지 정리를 해보겠다.
 
II. 어떻게 영적 기백을 회복할 것인가?
 
*열왕기상18:21,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진정한 영적 기백은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첫째 진정한 영적 기백은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엘리야가 백성들을 질타했다. 기회주의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가지고 양다리를 취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느냐고 묻고 있다. 여기서 히브리어로 머뭇머뭇거리다는 본래 원어에서는 절뚝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26절에 보면 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하고 한 말씀처럼 춤을 추며 뛰놀다의 동사와 똑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과 같은 단어이다. 백성들이 머뭇거리는 것과 우상에서 뛰 노는 것과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 왜 같은 단어라고 성경기자는 사용하고 있냐면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바알을 섬기지는 않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 소위 회색(灰色)지대(地代)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러하니까 영적 담력과 기백이 안서는 것이고, 소위 종교다원주의 가운데서 담력이 안 생기는 것이다. 혼합주의 밑에서 신음하고 맥아리가 없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영적기백의 DNA가 흐르게 하려면 머뭇거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머뭇거리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에 우리가 민감해져야 하는데, 다른 신들을 따르지 않고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과 우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오늘 결단할 것이 무엇인가? 회색지대는 없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선택하라.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하라고 한다. 지난 수천 역사에서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바알을 선택할 것인가? 이다. 태양신, 지금도 미국에도 ‘조르아스터교=배화교’를 섬기는 자들이 있다. 중동에도 있다. 태양이나 불을 섬기는 자들이다. 일본의 식민지 시대는 천조대 신이다. 그때도 태양신과 같다. 그 태양신을 섬기지 않는다고 해서 일제 강점기 우리도 순교를 당했다.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가기 전에 장로교 목사님들과 함께 금강산 수양 관에서 총회 수양회를 했는데 그 때 설교가 지금 남아있다. 그 제목이 뭐냐면, ‘예언자의 권위’였다. 한국교회가 엘리야처럼 영적권위를 회복할 것을 주 목사님이 설교하신 것이다. 주 목사님은
“여러분들도 엘리야의 신앙, 엘리야의 기도가 있으면 엘리야의 권능과 선지자의 권위와 담대함을 회복할 수 있다. 생사여탈의 대권을 잡은 임금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책망하는 엘리야는 일사각오의 기백을 가졌다.” -주기철 목사-
-오늘 이 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설교가 쉽지는 않은데 여러분과 제가 이 시대를 향하여 영적기백을 가지고 일사각오를 가진다면 수많은 강들이 돌파가 될 것이다.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자들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신다면,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겠는가? 여호와이냐? 바알이냐?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부흥이고 영적 기백이고 일사각오가 되는 것이다. 엘리야의 기백이 있으니까 여유가 있는 것이다. 여유가 있으니까 유머가 있고 담력이 있는 여유가 있다. 바알의 응답이 없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열왕기상 18:27,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그런 식으로 조롱한다. 이런 것이 다 여유가 있는 것이다. 오늘 엘리야가 조롱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신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영적기백이 있을 때는 장소에 따라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거짓 신을 섬기고 자신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러한 거룩한 조롱도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30절에 보면,
 
*열왕기상 18:30,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증인이 되라고 요청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영적기백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하늘의 불이 떨어지도록 해서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돌과 흙까지 태운 줄로 확신한다. 어느 시대에 돌과 흙까지 태우지는 시기가 어디 있는가? 자, 이런 내용을 가지고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한 가지는 세상의 숫자보다도 하나님의 숫자에 더 민감하면 된다.
 
▷둘째 세상의 숫자보다 하나님의 숫자에 더 민감한 사람이 되어야.
-이제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엘리야가 850대 숫자만 생각했으면, 아마 어떻게 담대함과 영적기백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850:1을 가지고 엘리야 850:1(엘리야) 하나 밖에 없는 엘리야를 불쌍하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엘리야는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 없는 850명을 불쌍히 여긴 것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 이 원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100명이 천 명을 당하고 작은 자가 강국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의 천을 이루는 것을 잘 모른다. 신명기에 보면
 
*신명기 32:30,
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
-영적기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하나가 열이 둘이 만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적기백의 공식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 -바알신을 섬기는 자,
▷1명의 엘리야X성삼위 하나님(3)=3(만군의 하나님)-이스라엘 백성들. 영적 기백이 된다.
-그래서 저는 3을 좋아한다. 마음 맞는 세 명만 있으면 나라도 세운다고 했다. 이런 3위 은혜가 열두 명이 되고, 이 열두 명 문도가 70명이 되고, 120명이 되는 것이다. 300명의 기도의 용사가 되고, 500명이 예수님 승천의 형제가 되고, 그 다음에 3천 명의 변화가 된 사람이 되고, 7천명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게 영적 기백을 향한 독특한 공식이다. 변화 산상에서 예수님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3명을 데리고 변화 산상에 올라갔다. 세 명씩 열 두 제사를 나누게 하신 것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가 된다. 꽝이다.
우리 자신X성삼위하나님(3)=3이 되면 세상의 어떤 숫자보다도 압도적인 능력을 가지고 영적 기백의 현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저 그런 사람의 다수의 사람을 쓰신 것이 아니라 영적기백으로 무장된 몇 명의 사람들을 쓰신다. 자신X성삼위하나님(3)=3이 된다.
 
*사도행전 17:6,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그 바울의 초대 교회 그 강력한 복음 앞에 대로마제국이 항복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일으켜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11:38,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여러분, 영적기백을 가지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영적인 핵심 중에 하나이다. 이 한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도 그런데 우리는 영적기백으로 또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한 알의 사과 씨를 가지고 수백 개의 열매를 볼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의 눈, 영적기백이 필요한 것이다. 수천 구루의 나무로 울창해진 숲도 한 톨의 도토리로 시작된다. 도토리 가운데서 수천 구루의 나무를 보고 한 통의 도토리에서 울창해진 숲을 보는 기백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알의 사과 씨를 가지고 수백 개를 볼 수 있는 기백을 가진 사람들을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오늘 우리 가운데 남모르는 큰 고통을 가지고 계시면, 오늘 이 영적기백의 회복을 주시길 소원한다. 기백을 회복해야 한다. 영적기백의 독특한 공식,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크라이막스가 있다.
 
엘리야가 만약에 “나만 홀로 남았네!” 바알에게 무릎 꿇는 자가 7천 명이 있다하더라도 이 시대는 지금 다 동굴에 숨어있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나만 홀로 남았네.’ 라고 했으면, 그리고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대로 쓰러져버렸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엘리야는 이 순간에 문제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의 사람이 되었다.
 
▷셋째 문제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의 사람이 되어야.
-그래야 영적기백을 가진 것이다. 나 혼자만이 아닌 엘리야는 문제보다도 가능성의 지팡이를 들었다.
환경이 물론 어렵다. 나 혼자만 갈멜 산에 왔다고 탄식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보다도 더 큰 은혜를 사모했다. 문제보다도 가능성에 눈을 뜬 것이다. 요즘 2023년에 들어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든 환경들에 대해서 모두가 다 어렵다. 물론 상황이 어렵다. 진짜 문제는 우리들의 신앙이 어떤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문제만을 계속 집중하면 우리는 엎어진다. 우리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problem finder, ●problem magnifier, ●problem maker. 이 세 가지 중에 -기도제목을 빙자한 수(기빙수), 계속 문제를 확산시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문제 증후군에 걸리고 문제 지향의 사람이다.
 
▷우리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1) 문제 발견하는 자=problem finder,
2) 문제 확대하는 자=problem magnifier,
3)문제를 해결하는 자=problem maker.
문제를 가지고 해결하는 자는 가능성을 바라보는 자이다. 이 자리에 모두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의 문제없는 교회, 문제없는 성도,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살아가고 이 땅을 영위하는 동안에는 모둔 사람들은 문제를 갖고 있다. 아무 일도 안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긴다. 지난 3천 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다. 누구인가? 이집트 미이라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다 아는 것 아닌가? 미이라는 누워있으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자식을 키워야 하고 매일 우리는 삶의 현장에 부딪혀야 하는데 왜 거기에 문제가 없겠는가? 교회도 이 귀한 공동체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앞으로 수많은 우리에게 주신 어떤 사명을 가지고 감당을 하려고 하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 앞에서 문제의 지향성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가능성 지향이 될 것인가?를 우리에게 달려 있고 거기에 영적기백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잘 아시듯이 faith report, 믿음 보고를 한 여호수아, 갈렙은 무엇을 보았는가? 문제를 바라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 한다.
 
*민수기 13:30,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 이것은 문제의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이다.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열 정탐꾼은 환경과 아낙 자손을 바라본 것이다. 믿음 보고를 못하고 환경보고를 한 것이다. 우리는 다 메뚜기 같다고 한다. 우리가 다 그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여호수아 갈렙도 환경도 보고, 거인들도 다 보았지만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을 보았고, 먹구름 위에 은빛 광채를 본 것이다. 오늘 예배에 와서 예배와 찬송을 하면서 주님을 집중하면서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영적 가능성에 확 열리기를 바란다. 아멘!!~~ 지금 한국의 상황이나 인터넷 댓글들을 보라. 너무나 고통스럽고 문제 지향적이다. 이 문제 지향적인 것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화살을 쏘아 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짐하고 가야 될 것이 있다.
 
우리 교회는 신학적 바탕인가? 정통보수주의인가? 정통보수주의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신앙의 흐름이 있다. 이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지식, 지혜, 인간의 판단, 인간의 능력을 더 인정하고 인간의 이성의 틀 안에서 이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성경이 그래서 안 믿어진다. 예수님의 부활도 안 믿어진다. 성경에 능력도 안 믿는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인간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적극적인 사고를 다른 차원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적인 것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내가 힘을 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행운을 얻는 이 아니다. 우리는 그 가능성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가?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영적기백을 갖는 것을 박탈한 것이다. 사랑의 교회 신앙적 바탕은 우리는 정통보수주이 신학의 바탕에 서 있다. 우리는 성경의 기적을 믿는다. 구약의 기적을 믿는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오늘도 이 자리에 임한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너무나도 과학의 발달로 있지만 우리의 프레임은 안 된다는 것은 많지만 똑똑한 사람일수록 문제의 대해서 예민하다. 그러니까 똑똑한 사람에게는 기적이 안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문제의 지향이아니라 가능성을 열어 놓고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아니라, 정통 보수 주의인 하나님의 가능성에 대한 귀의 문을 열고 영적기백을 회복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가능성 지향은 세상의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의 마인드가 아니라, 우리는 가능성 지향은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태복음을 보면 대표적인 인물은 예수님이시다.
 
*자유주의 신학 (인간의 이성의 틀 안에서..내가 좋으면 하는 것)=Liberal theology
*정통주의 신학 (나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믿는 것)=Orthodox theology
-
*마태복음 13:58,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나병환자, 어떻게 나았는가? 주님이 하시면 가능하다. 가능성을 주님께 두는 것이다. 마가복음을 보면,
 
*마가복음 5:28,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 혈루병인 여인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그 자체가 어려웠지만 그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라고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제자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어도 경호하는 사람들이 못 오게 해도,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라고 하듯이 그녀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이다. 오늘 주님의 옷자락에게만 손을 대어도 낫는다는 것이 여러분에게도 주어지기를 바란다.
 
*마가복음 7:26~28,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귀신 들린 딸의 귀신을 쫓아내기를 간구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모욕(侮辱) 중에 모욕이다. 그러나 가능성 지향의 극치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 나병환자나 혈루증인 여인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자기 딸이 귀신 들었다. 이것 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영적기백을 가지고 놀라운 가능성 회복하자. 저희들은 원래 6월 3일에 한국교회가 상암 경기장에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의 표어로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그렇게 해서 그날 참여해서 기도의 지팡이를 다 들고 10만 명이 모여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 가능성을 가지고 믿음의 눈으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외치는 이 민족의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은 무너지리라 믿는다. 오늘은 영적 기백이 필요하니까 마음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용사 된 나에게 주의 일을 맡기는 찬양을 하자. 지금 2023년을 앞에 놓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과학, 우리 모든 분야에서 예측이 있지만 그러나 오늘 영적기백을 가지고 그들의 전망이 어떻든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 모두는 믿음의 기백을 가지고 담대함으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이 한 해 전문가가 무어라고 이야기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정통신학을 따라서 가능성 지향을 가지고 이 시대를 주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요약
영적 전쟁터에서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머뭇거리지 말고 영적 기백을 회복하여 강력한 부흥으로 나아가며 850:1의 심각한 위기 앞에서도 문제의 지향의 사람이 되지 말고 하늘의 불이 임하는 가능 지향의 사람이 다 되어야 한다. 6월 3일 상암 경기장 집회에 모두가 영적기백으로 충만하여 10만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우리 민족의 홍해가 갈라지는 시대의 여리고 성을 무너지는 기도를 올려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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