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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1일)-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일곱 번째 강해. 제목: "신앙의 차렷 자세"-신년 감사 주일 말씀: 잠언 3:1~6 대표기도: 장명철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잠언 3:1~6,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새해 초부터 새 마음까지 사랑하는 성도들, 영 가족 여러분들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을 사랑하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꼭 응답하시고 풍성한 결실로 나타내 주시길 바란다. 오늘은 ‘신앙의 차렷 자세’에 대해서 주님의 메시지를 나누도록 하겠다. 오늘 본문은 제가 젊을 때부터 평소에 소중하게 생각하는 말씀이고, 늘 저로 하여금 신앙생활에 기본으로 하게 하는 말씀이다.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가? 마치 이것은 신앙의 차렷 자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군대에서 훈련할 때에, 항상 기본이 차렷 자세부터 시작한다. 뒤로 돌아 한 다음에 우양 우 좌 양좌 하지 않고, 그것을 하기 이전에 반드시 차렷을 먼저 하고 우양 우, 좌 양좌 한다. 격려할 때도 차렷 자세를 먼저 한다. 우리 학교 다닐 때, 반장을 해 본 사람은 잘 할 것이다. 수업할 때 선생님들이 ‘차렷’ 하고 주목을 시킨다. 그래서 오늘은 새해 첫 주, 신앙의 차렷 자세를 나누려고 한다. 저는 성도님들을 섬기고 목회를 하면서 나름대로 갖는 평생의 법칙이 있다. 그게 뭐냐면 오늘 본문의 ‘신앙의 차렷 자세’가 딱 자리가 잡히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가 받는다. 이 신앙의 차렷 자세가 자리가 딱 잡히면,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인생의 난제 앞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더라도 저는 그때마다 “하나님, 우리 성도들을 난제들이 있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받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모두가 실패의 상징물을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을 실망 시킨 순간의 일을 떠올리는 그런 사건들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부주의한 말 때문에 일어나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베드로 같은 경우는 추운 몸을 녹이려고 쬐였던 모닥불에 있다. 그는 모닥불 숯불만 보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예수님을 실망시킨 순간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실패의 모닥불을 다시 회복의 모닥불로 만들어 주신 줄로 확신한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모닥불을 지피시고 생선을 구우시고 베드로에게 조반을 들라고 하신다. 그 순간 베드로의 모닥불의 실패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는 순간이 되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실패의 모닥불이 회복의 모닥불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린 대로 우리가 어떤 생애에 문제와 난관이 닥치더라도 모두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 엎어지면,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리기만 하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심을 확신한다. 여러분의 실패의 모닥불의 회복의 모닥불로 만들어 주시는 주님을 신뢰하라.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의 차렷 자세이고, 영적 전쟁의 배수의 진이고, 굳게 붙잡아야 할 부흥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신앙의 첫 자세가 무엇일까? 1절에 보면, *잠언 3:1,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법칙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가 세상살이 하는 데에 나름대로 법칙과 원리가 있다. 건강을 위하면 건강의 법칙이 있다. 균형 있는 시간에 식사를 맞추어 하고, 적절한 수명을 취하고, 또 나름 운동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그런 법칙을 다 깨고 퍼져버리면 힘들다. 약간의 긴장을 가지고 몸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건강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고기는 물속에 살아야 하는 법칙이 있고, 공중에 새는 대기권 하늘에 사는 법칙이 있다. 나무는 땅 아래에 뿌리를 흙속에 내리는 법칙이 있다. 물고기가 물이 싫다고 뛰어나오면 안 된다. 공중의 새가 하늘이 싫다고 갑자기 물속에 들어오면 안 된다. 죽는다. 나무뿌리가 땅 속에서 위로 나오면 죽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고, 창조의 질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법칙과 이런 기본 차렷 자세가 지켜져야 한다. *잠언 3:2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오늘 이 신년에 첫 주일이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의 말씀으로 와 닿기를 원한다. 지금 우리는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법칙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오늘 한 가지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법칙을 말씀 드리겠다. 이것이 확실해야 신앙의 기본이 흔들리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올 한 해, 회복을 넘어 부흥을 체험하도록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실 것을 원한다. 지혜의 말씀이 6절이다. *잠언 3:6,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들의 삶이 좀 흔들릴 때, 삶에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을 때, 딱 동서남북을 우리가 파악할 수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북극성과 같은 말씀이다.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 누구나 삶의 궤도(軌度)를 탈선(脫線)하지 아니하고 삶의 시행착오(試行錯誤)를 줄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법칙대로 하면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수많은 난관을 우주선이 대기권을 돌파하는 것처럼 문제를 돌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 인공위성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인공위성을 쏘는 것을 보면, 인공위성이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대기권을 지나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물리학자들이, 우주 과학자들이 우주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인공위성의 발견은 뉴튼의 제3의 운동법칙으로 날아간다고 말하는데, 사실 이 법칙을 뉴튼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법칙은 영원 전부터 존재한 것인데, 우주과학자들이나 뉴튼이 그것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이 법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미 것이고, 많은 경우 신앙 좋은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세밀하고, 정밀하고, 착실하게, 정확하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신앙법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신앙의 첫 차원으로 살면, 우주선이 날아가듯이 총알처럼 다시 날아가기를 원한다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미리 예비해 두신 것을 발견하고, 깨닫고, 적용하고, 실천하기만 하면 우리가 새로운 차원으로 총알처럼 삶의 어려운 대기권들을 환경을 뚫고 비상할 수가 있다. 이게 영적 법칙이다. *잠언 3:6,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저는 대학부 시절부터 이 말씀을 늘 외웠다. - in all your ways acknowledge him,~~ 제 주위의 형제자매들이 이 말씀으로 자기의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모토로 삼아가지고 인생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경우가 너무 너무 많다. 이 말씀이 본래적으로 갖는 능력이 너무나 어마어마한데 그걸 그냥 사장(事障)시키지 말고 그 어마한 능력과 우주의 법칙을 발견한 것 같이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 발견하기를 소망한다. 그럴 때,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의 수많은 난관들과 정치, 문화, 사회 경제, 교육, 가정, 여러분들의 모든 여러 가지 많은 이런 어떤 영역들이 있듯이 그런 문제가 된다면 다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인공위성처럼 돌파할 것인가? 오늘 새해 첫 주일 날 아니 우리가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범사에 인정한다는 것은 올 한 해 온 성도들이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 이런 뜻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일마다 때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물어보는 것이 인정하는 것임을 확신한다. 물어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신앙의 차렷 자세. I.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것이다. -올 한 해 우리에게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새로운 환경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계속 물어보라는 것이다. 하나님 이것을 물어야 한다.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에게 묻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먼저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순위로,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사울과 다윗의 생애를 대조하면서 너무나 깜짝 놀랐다. 왜 사울 왕이 인생이 실패하고 왜 다윗왕은 성공했는가? 보니까 사울왕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묻지를 않았다. 그가 하나님께 묻지 않아 생긴 비극은 말로 다할 수 없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은 때로는 후회를 갖게 하는 것이다. 역대상을 보면, *역대상 10:13~13,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않아서 죽었다. 사울왕은 인생의 순간이다. 사울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이 실패했다. 우리가 구약시대에서 살지 않고 신약에 살기에 은혜 받아서 그렇지, 만약에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물어보지 않고 다 죽이신다면 오늘 본당에 죽을 사람은 많을 것이다. ㅋ ㅋ ㅋ 아마 반 이상은 다 돌아가실 것이다. 반면에 다윗은 그의 인생에 영적으로 성공한 것은 하나님께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보면 사울이나 다윗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다윗이 사울보다 그렇게 도덕적으로 탁월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사울 왕을 어떻게 죽이시고, 다윗은 살리시는가? 다윗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윗의 신앙의 차렷 자세이다. *사무엘상 23:1~2, 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 하더이다 하니.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은 이렇게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 이 때 다윗의 상황은 사울 왕에게 도망 다니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고통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응답해 주신다. 그 하나님께서 주신 내용을 가지고 자기 참모들과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니까 참모들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환경이 내가 죽을 판이라면서 반대한다. “그래 그럼 안 되겠네.”, 하면서 끝내지 아니하고 다윗이 참 아름다운 태도의 마음을 가진다. *사무엘상 23:4,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저는 이 다시가 확 눈에 들어왔다. 여러분들 다시가 눈에 들어와서 이 한해 동안 계속 하나님께 물어보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안 되면 다시 물어야 한다. 안 되면 다시,,,, 물으라. 하나님이 온 성도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성도님들끼리 서로 인사할 때, “성도님, 하나님께 물어 보았어요? 하나님께 다시 물어보았어요? 하나님께 기도해 보셨어요?” 라고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올 한해 인사가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냐?”고 하라. 어떡하면 좋으냐고 할 때, 하나님께 여쭈어보라고 인도하고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네 길을 지도하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 다시 여쭈어 보셨어요?” 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내 길을 지도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와 하나님의 마음의 합하지 않은 자의 차이가 무엇인가? 뭐 다윗처럼 용맹하게 할 정도는 못해도,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와 하나님의 마음의 합하지 않은 자의 차이가 뭐냐면, 하나님께 자주 묻는 인생,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인생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께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인생은 오늘 자기를 의지 하는 사람이다. 5절에 보면 나온다. *잠언3:5,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자기 명철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울과 같은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들은 예의와 겸양이 지나쳐 가지고 이런 것까지 물어볼 수 있는가? 하는 말이 될 수 있는데 여러분, 하나님께 다 물어봐야 한다. 솔직히 웬만한 것은 우리가 다 처리하지 않은가? 웬만하면 우리가 다 알아서 처리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바쁘실 텐데 하면서 알아서 처리하지 않는가? 여러분 조그마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도 하나님께 물어보는가? 저는 몇 대째 내려오는 신앙의 가문에 사람이다. 아내에게 때로는 배우는 게 많다. 조그만 물건을 잃어버려도 아내는 기도를 한다. 나는 하나님이 귀찮으실 테니까 내가 해야지 한다. 우리는 일이 안 풀릴 때에 순수하게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께 계속 묻는 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다. 그동안 재정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물어야 한다. 어떤 일이 생기면, 어떤 사람에게 묻지 말고 이제는 하나님께 물어보기를 바란다. 옛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께 자주 물어보고 사람들에게 손을 비비지 않았다. 우리도 하나님께 손을 비벼야 한다. 하나님께 손을 비비면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통찰력 있는 말씀을 하시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데살로니가전서 5:17,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여러분 사람이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가 있는가? 맨날 기도만 하는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다른 버전이 뭐냐면, “쉬지 말고 하나님께 물어봤어? 다시 물어보았어? 또 다시 물어보았어?” 이 한 해 동안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이 하나님께 물어본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물어야 한다. 그럴 때, 인공위성처럼 총알처럼 문제들이 해결 될 것이다. 두 번째 신앙의 차렷 자세. II.하나님과 친밀 하라. 너는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셨을 때, 인정하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을 조금 더 깊이 알아라. 하나님과 더 친밀해져라. 하나님과 가까워지라. 부부가 3-40년을 같이 살든 50년을 같이 살면 얼굴도 식성도 생각도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생각하니까 다 닮아간다. 심지어 찬송을 할 때도 닮아간다. 왜냐하면 지휘자님이 오늘 찬양을 찬양대가 Way maker, 라는 찬양을 할 줄 알았다. 친밀해지니 다 안다. 닮아가는 것이다. 저는 주일예배를 위해서 토비새에서 강단에 올라오셔서 기도한다. 오랫동안 중직자로 일하셔서인지 마음을 다 안다. 특별히 중직자 등 관계를 통하여 이제는 말씀을 통하여 웬만큼 똑 같다 신앙생활 오래하면 우리가 주님과 가까워지고 친밀해진다. 하나님과 친해지기기를 모두에게 바란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한다. 우리가 어떤 삶의 직분이 목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 땅의 삶의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의 복음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신앙은 우리의 목표는 주님과의 친밀함이다. 주님과 The better life이다. The better relation ship.!!! 주님과 가깝고 친밀한 더 나은 관계가 잘 되면 마치 친구와 같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믿은 후에 여러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더 전진이 되었는가? 누가 “목사님, 성도님들을 볼 때 무엇이 가장 마음이 아프냐?”고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제가 생각을 해본 것인데 가장 안타까운 문제가 무엇이냐면, 아마 저 뿐이 아닐 것이다. 마치 목자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을 깨달은 어떤 목회자라면 다 동일할 것이다. 목회자가 목회하면서 제일 힘든 것은 우리 성도들이 성장해야 하는데 맨날 밑바닥에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자라지 않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것은 성장하지 않는 성도를 보는 것이다. 그냥 어린아이 상태로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로 있는 것, 그래서 사탄에게 맨날 속고, 맨날 두려워하고 맨날 힘들어 한다. 영적으로 고봉으로 가야 하는데 밑바닥에서 있기에 가슴이 아프다. 이제 이정도가 되면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야 하는데, 든든함과 어떤 성숙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렇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빌립보서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새해 첫 주일 날 주님과 나 사이에 친밀함을 가로 막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정리할 수 있는 결단과 정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 주님을 아는 것, 그것 외에는 다른 것이 배설물이라고 한다. 아는 것 주님과 친밀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신비로움을 베풀어 주신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우물물을 팠다. 그 당시 우물은 생명의 근원이었다. 물이 없으면 살수가 없고 생명의 근원이기에 중요하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삭이 파놓은 우물을 다 빼앗아 갔다. 그럴 때 이삭은 어떻게 했는가? 인간적으로 싸우겠지만 싸우지 않고 그냥 줘버렸다. 대신 이삭의 마음속에 나는 하나님을 의지 하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과 친하니까, 다 빼앗아 가도 하나님은 내 길을 다시 열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주실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가져가도 “He will make a way!” ‘그분이 나의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고, 야곱도 자기 아버지 이삭을 보고 살았기 때문에 그리했고 나중에 라반과도 싸우지 않고 하나님이 길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양보해 버렸다. 그랬더니 이삭을 괴롭혔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창세기에 나온다. *창세기 26:28,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그 심장을 듣고 주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면 결국은 인생의 삶을 인도하신다. ▷두 가지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라. *잠언 3:6,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오늘 이 예배에 오신 한 분 한 분의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법칙이다. 이것은 세상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이것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물어보고 가까워지면 여러분들의 길을 인도하신다. 여기서 길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우리의 삶의 길들 가운데 어떤 길은 막히기도 하고 어떤 길은 패이기도 하고 어떤 길은 골짜기이기도 하고, 어떤 길은 낮아지기도 하면서 수많은 일들이 나타날 텐데 그 수많은 길들 가운데서 물어보고, 수지 않고 계속 기도하고 물어보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면 반드시 길을 지도하신다. 그리고 길을 지도하신다는 말을 보니까 원어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애물(障碍物)들을 치워주신다는 것이다. 막힌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앞에 여러 장애물들이 있어도 하나님이 치워주시면 되는 것이다. 신비로운 일들이 인공위성이 일어나듯이 총알처럼 여러분의 벽들을 무너지게 하실 것이다. 수많은 복수의 길들, 수많은 길들을 새롭게 열어주실 것이다. 닫힌 문도 열어주시고, 거친 길은 부드럽게 하실 것이며 위험한 길은 안전하게 하실 것이며, 외로운 길은 친밀하게 동해하여 주실 것이다.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믿고 어린아이처럼 성장하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성숙해지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을 우리가 인정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인정하신다. 우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는 것이다. *고린도후서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 원수를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이 칭찬하신다. 우리 앞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겠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이다.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마다 때마다 주님께 물어보는 사람이다. 주님과 친해지는 것이다.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면 무슨 결정을 하든지 주님은 현명한 답 주실 것이며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차렷 자세이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이야기 한 영역주권의 주님이 내 삶에 모든 왕이 되게 하신다는 말과 연결될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으면 내가 어디에 살든 내가 누구와 살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주님이 길을 내 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편하게 물어보고,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물어라. 주님과 더 친해라. 어떤 나라들보다도 우리 민족이 주님과 친하면 우리 한국교회는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듯이 우리나라를 인도하실 것이다. 기독교가 있으니 이만큼 우리나라가 되는 것이다. ♣요약 우리의 삶의 실패를 회복의 모닥불로 바꾸시는 주님을 신뢰하여 인생의 난제를 하나님께 항상 여쭈어 보고, 주님과 더욱 친밀하여서 어떤 장애물도, 어떤 문제도 치워주실 확신하여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께 기대하며 기도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신앙의 기본을 차렷 자세로 올 한 해를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법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다. 목에 매고 마음 판에 새긴다는 말은,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할 계명으로 여기고 모든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법은 이처럼 지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의 삶의 결단을 요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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