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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2월 22일)
제목: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 로마서 1:17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자: 홍진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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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1:17,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홍진기 부목사님
-우리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도를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질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대답일 수도 한 말이,,,
하나님 보여주면 나도 믿을게. 당신도 보지 못한 하나님을 나보고 믿으라구요?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 말을 들으면 우리도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좀 곤란할 때가 있다. 우리가 곤란할 표정을 지으면 불신자들은 “좋았어, 잘 물리쳤어” 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좋아한다. 그런데 이 말은 오류가 있다. 이 오류는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흔히들 이런 오류이면서도 오류인지 모르고 오류를 습관적으로 쓰는 관용적 오류라고 하는 표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문 닫고 나가’ 밥 먹으면서 떠드는 아이에게 ‘입 다물고 먹어’ 또 한 가지는 ‘꼼짝 말고 손들어!’ 어떻게 두 손을 드는가? 이렇게 습관적으로 쓰는 오류의 말들이 있다. 금방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을 보여주면 나도 믿겠다는 이 말도 사실은 오류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믿음과 그리고 확인을 구분해야 한다.
믿음과 확인 하나님을 보여 주면 나도 믿을 게. 이 문장에서 보여 주면 말고 믿으면 믿을 게 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부딪히는 말이다. 보고나서는 확인하는 것이지 본 다음에는 더 이상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보고나서는 더 이상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신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눈으로 확인했으면 더 이상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인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부모 자녀의 사이를 확인과 믿음의 사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녀는 엄마와 아빠가 나의 엄마 아빠라고 믿는다. 자녀들은 내가 엄마에게서 태어난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러 정황을 봐서 이 분이 나의 엄마이고 이 분이 나의 아빠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종종 부모님이 아이들을 놀리려고 “너 내 아들이 아니야,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그런 농담들을 어른들은 그런 말을 많이 했다. 그런 말을 들은 아이들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내가 정말 엄마에게서 태어났는지, 아니면 엄마가 다리 밑에서 주워왔는지, 왜냐하면 아니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니는 엄마, 아빠를 내 부모라고 믿는 것이다.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는 다르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 아이가 나에게서 태어난 것을 눈으로 확인을 했기 때문에, 아빠는 확인했기 때문에, 이 아이가 내 아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냥 엄마 아빠는 이 아이가 내 자녀라고 그냥 확인한 것뿐이다. 그래서 믿음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믿음의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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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둘째, 본 것만큼이나 확신해야 합니다.
-믿음은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어야 한다.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확인하는 대상이 된다. 믿음의 전제 조건의 두 번째는 본 것보다 더 확신을 해야 한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 아니신가? 우리는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만난 것만큼이나 확신한다. “보여주면 믿을 게.” 보는 순간 믿음이 아니라, 확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을게’, 하는 것은 오류인 것이다. 성경에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히브리서 11:1,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이야기 한다. 여기서 바라는 것은 ‘보지 못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바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보지 않는 것을 믿는 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믿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들어온 것이며,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 보지 않는 것에서의 믿는 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다. 오늘 우리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의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진 의인이 산다. 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우리가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첫 번째 의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보통 의인하면 도덕적인 개념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의인, 다른 말로 착한 사람, 법 없어도 살만한 사람, 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 정의는 오늘의 말씀의 흐름과는 맞지 않다. 의인을 착한 사람으로 바꾸어서 이 본문을 읽어보면 오직 착한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어울리지 않는다. 오직 법이 없어도 살만한 사람,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어울리지 않는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의미는 누구인가? 사실 이 본문은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한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가 하박국 2장 4절에 한 말씀을 인용한 말씀이다.

*하박국 2:4,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본문 로마서뿐만이 아니라,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도 한 번 더 언급했을 만큼 사도바울이 좋아했던 말씀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언급한 이 의인은 하박국 선지자가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을 예언하면서 그 어려운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자라는 의미로 의인이라고 인용했다. 사도바울은 이 본문에서 포괄적인 의미에서 더 줄여서 사도바울은 ‘구원받은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라는 의미로 의인을 사용하고 있다. 본문에서 우리가 읽은 17절 말씀과 바로 앞에 16절 말씀에서 그 정의를 조금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그전에 의인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의인, 의로움을 가진 자, 또는 의를 소유한 자의 뜻임을 알 수 있다. 의인이라는 것은 의로운 자, 의를 가지고 있는 자의 뜻이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들어보면 하박국3장 10절에 보면,

*하박국 3:10,
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의인은 이 땅에 한 명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성도를 가리켜 의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의인이 가진 의는 우리가 읽은 17절 본문을 앞에 보면 ‘하나님의 의’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고 말한다.

* 로마서 1:17,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 속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 그 복음이 우리에게 들어왔을 때, 그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나에게 전가 되어서 저와 여러분이 의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그 복음 속에 있는 의가 내 안에 들어와서 내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가 내 안에서 들어오심으로, 전가되므로 나는 하나님의 의인이라고 불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인이 되었다. 이 복음이 무엇인지를 16절 앞 절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16절을 보자.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이 뭐라고 하는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에게는 없는데 복음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의가, 그 복음이 뭐냐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의가 들어있는 또 다른 말로 십자가는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하나님의 의는 다른 말로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의미가 하나님의 의에 들어있다. 이 복음 안에 들어있는 이 복음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이 복음이 내게 올 때, 그 복음 안에 있는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 능력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의가 내게 오게 되므로 나는 의인이 되는 것이다. 기록된바 하나도 없는 의인, 도저히 이 땅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는 의인, 그러나 하나님의 의가 내게 임하면 내게 전가되고 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의인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의인은 하나님의 의, 다른 말로 구원을 주시는 십자가의 능력을 입은 자입니다
-우리 옆에 성도님들께 이렇게 이야기 해보자. “당신은 의인이십니다.”아직까지 내 행동으로 의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주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말로 바꾸면 “당신은 십자가의 능력을 입은 자입니다.” 그렇다. 저와 여러분은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의가 단 1도 없는 의가 하나님의 능력, 우리에게 오게 되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는 줄로 믿는다. 전적으로 은혜이다. 최소한 눈으로 보는 절차도 없이 그 보혈에 적셔져서 그냥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내가 의인이 된 것이,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되어서 된 것이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선물로 부어진바 된 우리, 그래서 의롭게 된 우리, 의인으로 당당히 불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은 의로 말미암아 무엇을 가지게 되는데 그 가지는 그 무엇이 바로 두 번째에 살펴보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II.두 번째 믿음이라는 단어이다.
-일반적인 논리로 보면 우리가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믿으면, 이 먼저이다.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하지만 구속사적으로 정확히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그 결과로 생긴 것이 바로 믿음이다. 실제로는 정확한 표현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내 안에 들어왔을 때, 우리가 믿어지는 믿음을 받게 된 것이다. 먼저는 이 믿음이 뭔지를 살펴보기 전에 앞서 말씀드린 믿음의 전제조건 두 가지를 믿음은 눈으로 본 것이 아니어야 하고, 믿음은 본 것만큼이나 확신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전제조건이고 우리가 의인을 통해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내 의와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이, 하나님의 의가 내게 들어와서 내가 의롭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두 가지 믿음이 생기게 되는데, 현재 서 있는 이 현재를 기점으로 해서 과거에 있었던 일 하나와 미래에 있을 일 하나에 대한 믿음이 우리에게 생기게 되는 것이다. 먼저 우리의 믿음의 첫 번째는 과거에 있었던 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대신 돌아가신 것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의인의 믿음 1.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믿으셨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들이 힘과 능력으로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나에게 주어졌을 때, 이것이 믿어지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천 년 전에 그것도 지구 반대편지역에서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한 유대인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그분이 바로 나를 위해서 죽었다고 한다. 이천 년 후에 나올 나을 위해서,,, 지금 이곳에 있는 나를 위해서, 성경에 보면 그 일이 이천 년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이미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다 선택해 놓으시고 그 하나님이 선택해 놓으신 그 길을 따라서 그 약속대로 완벽히 이루어졌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쉽게 말하는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이천년 후에 나를 위해서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적어도 나와 같은 종족도 아닌 그 한 사람이 나를 위해서 죽었다라는 그 사실을 우리가 믿을 수 있는가?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런데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가? 왜 그 사실이 믿어지는가? 하나님의 의가 구원을 주시는 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임하셨기 때문이다. 복음을 통해 의인에게 생긴 첫 번째 믿음은 과거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나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내 죄를 대신 져 사해주셨다는 그 사실이 바로 믿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믿음은 이제 현재에 내가 서 있는 현재로부터 미래의 일에 대한 한 사건의 대한 믿음이다.

*의인의 믿음 2.
미래에 있을 일,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과 영생을 누린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여러분은 내가 천국에 갈 것을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믿은 것이 아니다. 이것을 믿을 수 있는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 다음 생애가 있고 그 다음 생애 가운데서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고, 이천년 전에 한 번 본적 없고 나와 전혀 다른 한 사람이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그 이유 때문에 내가 죽어서 천국에 영원히 영광스러운 곳에서 영화롭게 산다는 이 사실을 우리의 상식과 논리로 믿을 수 있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믿는 게 아니라 믿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 복음, 그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을 때, 우리에게는 과거에 이천 년 전에 그 사건이 믿어지고 미래의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과 영생하겠다는 그 사실이 믿어지는 그 사람이 바로 의인인줄 믿는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 19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한다.

*고린도전서 15:19,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우리의 삶의 초점이, 우리의 삶의 바람이 이 땅의 삶뿐이면 우리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끝나지 않고 마무리되지 않는다. 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하나님의 의를 십자가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천국의 영생을 누리게 하셨다. 이 사실을 믿는가? 여러분은 이 땅에서가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영화롭게 사는 것을 믿는가? 천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천국에 갔다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본적도 없는데, 가끔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믿지 말라. 천국은 그렇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천국을 언제 갈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천국 가서 영화로운 주님과 영광스런 그 밝고 빛난 곳에서 영원히 살 것을 내가 믿고 있지 않은가?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의, 복음 안에 들어 있는 그 하나님의 의가 저와 여러분에게 부어졌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이다.

정리하면 의인이 믿은 두 가지는 내가 서 있는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의 십자가의 구속 사건이 믿어지는 것, 미래의 천국에 영생에 사건이 믿어지는 것, 이것이 의인이 가진 믿음이다. 사실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믿음들도 있지만 다 부스러기이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는 이 의인이 믿음의 의의 전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어온 것 두 가지, 강력한 믿음의 사건, 이 사건은 조금 멀리 두고 그저 내 주변에 있는 내가 정말 가지고 싶고 내가 정말 말하는 것만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 믿음의 대상을 정말 나의 마음만큼 좁혀놓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돌아보면 좋겠다. 자 이제 복음을 통하여서 의가 전가된 그래서 이롭게 되어 의인이라고 불리어지게 되고 그 의인에게 십자가의 능력으로 두 가지 미음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었다.
*의인의 믿음1: 과거, 십자가 구속의 사건, 의인이 믿음2: 미래, 천국 영생의 사건.
-그 두 가지 믿음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하면

III. 세 번째가 집중해 볼 단어이다. ‘살리라’ 하는 단어이다.
-믿음은 사실 믿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사는 것이다. 정말 믿으면 자연스럽게 살아진다. 우리는 가끔 계단을 오를 때 계산이 높이가 다른 계단을 내려갈 때, 발을 헛디딜 때가 있다. 우리는 계단이 이번 계단과 높이가 같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음 계단을 딛는다. 자연스럽게 딛는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 발을 접 지르거나 넘어지고는 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믿어야지, 믿음대로 살아야지 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다른 말로 의인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천국의 미래의 소망으로 산다는 것은 과거에 그 십자가의 능력이 오늘을 살게 하는 능력이다. 미래의 그 소망이 오늘을 살게 하는 바로 그 능력이다. 우리 담임목사님께서 잘 쓰시는 표현으로 ‘과거의 현재형, 미래의 현재형’, ‘의인이 산다.’ 라는 것은 의인이 된 이후로 현재부터 앞으로 살아갈 삶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살리라’를 미래형으로 이렇게 성경에는 표현해 놓고 있다. 이 ‘산다.’ 라는 것에는 과거에 십자가의 능력이 포함되고, 그리고 미래의 천국이 포함되는 것이 바로 현재를 산다. 라는 그러한 의미가 들어가 있다. 저와 여러분이 현재에 과거의 십자가의 능력이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지옥으로 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얹어져 있을 뿐이다. 저와 여러분의 현재에 미래의 천국의 소망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그저 지옥으로 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얹어져 있을 뿐이다. 믿지 않는 자들은 과거에 쌓아놓은 재력, 능력, 지식, 기술, 그것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그렇지만 십자가로 의롭게 된 의인들은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 그 보혈의 능력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앞으로 개발될 과학, 의학, 이런데 의지하고 소망을 두고 현재를 살아간다. 하지만 의인이 된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들은 미래의 천국 입성할 그날을 기다리면서 그 소망으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그 상급에 대한 소망으로, 그곳에서 만나게 될 수없이 많을 믿음의 가족들을 만남의 소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산다.’ 라는 것은 과거의 십자가의 능력, 미래의 천국의 소망, 이것이 의인에게 믿음으로 자리 잡아서 그 능력으로 앞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믿음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바꾸어보면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살리라 라는 말씀에 한 가지 살펴볼 수가 있다. 바로 문장이 태라는 것을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능동태, 수동태, 그 태이다. 태는 주어가 하는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능동태는 주어가 스스로 가는 동사의 형태를 우리가 능동태라고 이렇게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성경책을 들었다.’는 것은 능동태이다. 그런데 수동태는 주어가 어떤 대상에 의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지게차에 들렸다’ 주어는 나인데 나의 결정과는 상관없이 지게차에 의해서 움직이는 수동이라고 한다. 내가 행동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 살리라는 헬라어에는 우리나라의 말에도 없고 지금 남아 있는 태가 하나 있는데 그 태가 바로 ‘중간 태’이다. 능동도 아닌 수동도 아닌 중간 태라는 아주 독특한 동사의 형태가 있다. 유명한 신학자 유진 피터스는 중간
태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어로 참여하는 데에 내가 참여하는 행동에 내가 주도적이지 않는다. 어중간한 중간의 상태. 예를 들면 내가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지만 응답의 방향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내가 하나님이 감사해서 최선의 삶을 살지만 삶의 주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며 살지만, 그 열매는 주어인 내가 아니라, 그 열매는 하나님이 받으신다. 이게 바로 수동도 아니고 능동도 아닌 중간 태의 의미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문장의 중간 태 의미를 조금 살려서 번역해 보면 이렇게 할 수 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그러나 그 삶은 내가 주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끄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바로 이 형태를 유지한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로버트로 만들이 않았다. 완전히 우리가 수동태가 되어가지고 하나님이 시키는 삶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주권을 모두 다 넘겨주어서 “네 행동 네가 책임져라. 네 구원도 네가 책임져라.”라고 그렇게 우리에게 맡겨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지와 인격을 주셨지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여전히 인도하고 계신다. 헬라어의 이 중간 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선택받은 백성인 의인 사이에 그 아주 미묘한 관계를 설명하는 아주 독특한 동사의 형태가 바로 이 중간 태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그 의인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다. 주어이다. 저와 여러분이 주어가 되어서 허락해 주신 믿음을 가지고 산다. 그렇지만 그 삶은 삶의 주관은 나를 구원하시고 내 삶을 끝까지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는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얼마나 익숙한 말씀인가?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우리가 계속 마음이 불편하다. ‘의인’, ‘나는 의인이 아닌데, 믿음으로 나 믿음 없는데, 살리라, 못사는데’ 이 본문을 볼 때 마다 늘 마음이 불편하다. 왜냐하면 의인의 정의가 잘못되었다. 믿음의 정의가 잘못되었다. 삶의 그 태가 잘못되었다. 수동도 아닌 능동도 아닌 헬라어의 독특한 이 중간 태라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으로 보지 못하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이 우리가 불편한 것이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복음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의인이 된 줄 믿는다.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옆 사람에게 하면 좋겠다. “당신은 의인이십니다.” 이제 안 불편 하는가? 의인에게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이것은 의인에게 주시는 선물과도 같다. 이천 년 전에 그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그 십자가의 예수님이 믿어진다. 내가 예수님이 믿어진다. 그리고 미래의 내 삶의 영원한 소망이 천국에 있다는 사실이 믿어진다. 그것이 우리에게 믿음이다. 내가 주어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그리스도의 능력이 현재로, 미래의 천국의 소망이 현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초점이 십자가에 있을 때, 우리의 초점이 천국에 있을 때, 우리는 믿음 가진 의인답게 이 땅에 살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십자가가 천국이 선명해질수록 오늘의 우리의 믿음의 삶이 선명해진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십자가에 대해서 선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믿음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사나는 것은 내가 주어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그리스도의 능력이 현재로, 미래의 천국의 소망이 현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초점이 십자가에 있을 때, 우리의 초점이 천국에 있을 때, 우리는 믿음 가진 의인답게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십자가가, 천국이 선명해질수록 오늘의 우리의 믿음의 삶이 선명해진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십자가에 대해서 선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여러분들은 믿음으로 존재하고 있는 천국에 대해서 누구에게나 선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드 십자가가 선명하지 않다면 현재 내 믿음의 삶도 선명하지 않다. 라는 것이다. 이천 년 전의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이 선명해질수록 오늘의 믿음의 삶이 선명해진다. 천국의 그 소망이 선명하면 선명할수록 오늘의 믿음의 삶이 선명해질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저 십자가는 이천 년 전에 있었던 일, 천국에는 언젠가는 죽으면 갈 곳이 아니라, 십자가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라. 십자가와 천국에 대해 믿을 필요는 없다. 이것은 믿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믿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와 있다. 그렇지만 십자가와 천국에 대해서 깊이 묵사하라.

전 개인적으로 마틴 로이드 죤슨 목사님의 ‘십자가’라는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 오래 사역훈련생들에게 필독서이기도 하다. 여러분들도 꼭 한 번 읽어보라. 천국에 대한 책은 마틴 로이드 죤슨 목사님인 의 교리강해서 3권짜리가 있다. 이 세권 중에 3권, ‘영광스런 교회와 아름다운 종말’, 이 교리책을 읽으면서 저는 천국에 대해서 굉장히 큰 도움을 얻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겠다. 십자가가 선명해질수록 오늘의 삶이 선명해진다. 오늘의 믿음의 선택이 선명해진다. 미래의 천국이 선명하게 보일수록 오늘의 삶이 선명해진다. 나의 믿음의 시험지는 무엇인가? 나를 의롭게 하는 것은 나에게 십자가와 천국이 내게 얼마나 선명하게 그려지는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어질 때, 나도
믿어질 수 있는 만큼 말할 수 있는 우리에게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사는 의인이 사는 삶이 되는 줄 믿는다.

♣요약
내가 무언가를 해서 의인이 되려고 하는 그런 율법적인 그런 마음을 버리고, 복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기억하여 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의 의로 살아가며 이천 년 전의 나르 구속하신 십자가의 능력의 믿음과 미래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영생의 소망이 믿음으로 과거 현재형, 미래 현재형의 삶을 살고, 십자가의 천국을 선명하게 소개하고 십자가의 천국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진정한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행위나 공로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믿는 자의 칭의를 그 방법으로 보여준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우리에게 구원의 도를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칭의의 도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은 의로운 것을 나타낸다. '복음에는' 그와 같은 의가 '나타나' 있다. 이 같은 복음의 의를 '하나님의 의'라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의이다. 그 의는 우리 자신의 행위로 인한 공로로부터 나오는 의에 대한 모든 주장들을 끊어버린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의이다. 이 같은 복음의 의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즉 우리로 의롭다함을 얻게 해 주는 믿음에서 우리로 살게 해 주는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접붙이게 하는 믿음에서 우리의 뿌리이신 그로부터 덕행을 끌어내는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나타내주는 말이다. 이 두 믿음이 다음의 말에 포함되어 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이란 말은 우리를 의롭게 하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란 말은 우리를 유지시켜 주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그 믿음은 증가하고 계속되며 인내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이 갑작스럽게 유명해진 새로운 교리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구약에서 잘 알려진 성경 한 구절을 인용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는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영광의 삶을 살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의 의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즉 그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의 믿음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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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2월 20일 (786)

1. 물가가 상승하기는 하지만 그 폭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을 뜻하는 말은?
 
디플레이션 하이퍼인플레이션
③디스인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
 
2. 가상세계와 현실이 뒤섞여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세상이다. 게임, 업무, 교육 등 활용 분야가 넓어지고 있는 이것은?
 
인버스 곱버스
메타버스 위버스
 
3.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에 활용되며 여유 전력을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만든 에너지저장장치는?
 
①ESS ELS ETF ④ELB
 
4.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대형 증권사가 자금 조달을 위해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약속어음은?
 
국고채 정크본드
양도성예금증서(CD) ④발행어음
 
5. 투자자의 은퇴 시기를 목표 시점으로 잡고 생애주기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자산배분 펀드는?
 
NFT ②TDF
ABS NIM
 
6. 애플, 구글, 메타,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단어는?
 
유니콘 ②빅테크
히든 챔피언 벤처캐피털
 
7. 사전적으로는 관로를 뜻하지만, 바이오업계에선 기업이 승인받기 위해 개발 중인 신약, 복제약 등 의약품 자산을 가리키는 말은?
 
마진콜 임상시험
오바마케어 ④파이프라인
 
8. 다음 중 통화정책 결정권을 쥐고 있으며 일명 은행들의 은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기관은?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 ④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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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SM엔터 경영권 싸움…M&A 경쟁 승자는?

방탄소년단(BTS)NCT가 같은 기획사 소속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BTS 기획사인 하이브가 NCT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나섰거든요. 한국 가요계를 이끌어온 ‘K팝의 본류’(SM엔터)K팝을 세계 무대로 진출시킨 글로벌 K팝의 주역’(하이브)이 하나로 뭉친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이브는 SM엔터의 최대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의 SM엔터 지분 14.8%를 넘겨받기로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SM엔터 소액주주 지분 25%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이브의 이런 계획이 성공하면 SM엔터의 지분 약 40%를 확보하게 되고, 경영권도 손에 넣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SM엔터의 현재 경영진이 최대주주인 이 전 총괄에게 반기를 들어왔거든요. 기업 경영진이 최대주주와 대립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SM엔터 경영진은 하이브의 계획을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이라며 반대합니다. 그러면서 카카오가 유상증자를 통해 SM엔터 지분 9.05%를 인수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 총괄 측은 하이브는 오히려 우호적 M&A를 진행하는 것이며, 최대주주의 뜻에 반해 지분을 늘리려고 하는 카카오가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최대주주와 손잡고 SM엔터의 경영권을 노리는 하이브, 그에 대응하는 SM엔터 경영진과 카카오가 맞서고 있는 겁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기업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M&A입니다. M&A에 대해 알아보고, M&A에 맞서기 위한 기업 경영권 방어가 어떤 경우에 주주나 사회에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해봅시다.기업 경영권 차지하려는 인수합병(M&A) 공격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 많아졌어요안갯속 SM엔터 경영권 분쟁’ ‘SM엔터 경영권 전쟁 서막 열려.
 
이번 사태처럼 한 기업의 주인 자리를 놓고 경쟁이 벌어질 때면 경영권이란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경영권을 기업가가 자신의 기업체를 관리·경영하는 권리로,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재산권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기업 경영권이란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경영권에는 회사의 투자 결정 같은 경영판단을 내릴 수 있는 권력 임직원에 대한 인사권 이사를 선임해 이사회를 구성할 권리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통한 대표이사 선임권 등이 포함됩니다. 기업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경영할 수 있는, 또는 다른 사람이 경영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죠.
 
이런 경영권은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과반수를 선임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해, 새 이사회를 구성하고, 대표이사를 교체함으로써 차지하게 됩니다. 하이브도 이런 식으로 SM엔터의 경영권을 차지하려고 하는데요. 우선 다음달 열릴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과반수를 선임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공개매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개매수란 경영권을 위해 지분을 늘리려는 자가 매입 기간, 수량, 가격을 공표해서 공개적으로 주식을 매수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하이브는 다음달 1일까지 소액주주들로부터 발행주식 총수의 약 25%에 해당하는 주식을 주당 12만 원에 사들여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기업 인수합병(M&A)
 
앞서 알아본 것처럼 경영권은 그 기업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니 현재 경영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기업의 경영권을 새로 차지하려면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과 일종의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그런 전쟁은 M&A를 통해 이뤄집니다. 어느 기업이 다른 기업의 경영권을 차지한 뒤 그 기업을 독립된 기업으로 두면 인수(Acquisition)라고 부르고, 자기 회사의 일부분으로 흡수하면 합병(Merger)이라고 합니다. 영어의 앞 글자를 따서 M&A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순서를 바꿔 인수합병이라고 합니다.
 
M&A를 당하는 기업의 경영진 입장에선 원치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대적 M&A’가 흔합니다. SM엔터의 경영진이 하이브의 지분 인수 시도를 적대적 M&A라고 규정한 것처럼 말이죠. 드물지만 M&A가 양측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그런 경우를 우호적 M&A’라고 부릅니다.
 
적대적 M&A의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이전까지 적대적 M&A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97년 증권거래법의 인수합병 관련 조항이 변경된 것을 비롯해 다른 여러 제약요인이 지속적으로 완화되거나 폐지되면서 적대적 M&A가 가능해졌어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재무상태가 취약해진 국내 기업들이 잇달아 외국계 자본에 의해 M&A 타깃이 됐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SK그룹과 외국계 펀드 소버린의 경영권 분쟁입니다. 2003년 소버린은 SK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2대 주주가 돼 경영진 퇴진을 요구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05년 주주총회에서 이사에 선임돼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죠.
 
주주행동주의
 
소버린 사태 이후 적대적 M&A 이슈를 더 뜨겁게 만든 것은 주주행동주의입니다. 주주행동주의는 기업 주주들이 수동적으로 경영진의 결정을 따르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들의 의사를 경영진에 전달해 회사 경영에 반영시키자는 움직임입니다. 한마디로 주주가 주주 자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자는 것이죠.
 
이런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를 행동주의 펀드라고 부릅니다. 이번 SM엔터 사태에도 행동주의 펀드가 등장합니다. 2021년 주주행동주의를 내걸고 설립된 얼라인파트너스인데요. 얼라인파트너스는 SM엔터 경영진을 설득해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무력화하고 사외이사 중심으로 이사회를 재편했습니다.NIE 포인트1. 기업 경영권은 어떤 개념인지 설명해보자.
 
2. 국내외 기업 인수합병(M&A)사례를 조사해보자.
 
3. 주주행동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토론해보자.적대적 M&A를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면
경영권 방어 수단도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요?기업 경영권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우선 해당 기업의 임직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요. 그 기업의 실적이나 배당을 통해 주주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또 그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 또는 투자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거래 기업과 소비자에게도 영향력이 생깁니다. 요약하면 경영권은 임직원은 물론 주주와 사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기업 경영권 시장
 
이렇게 경영권이 중요하다 보니 시장을 통한 경영권 견제의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기업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거래를 시장의 원리로 살펴보려는 것이죠. 시장의 원리에서는 자유로운 거래 보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재화를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이 최대한 규제받지 않고 서로 자유롭게 협상해 거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 경영권 시장이란 개념에도 이것이 적용됩니다. 현재 경영권을 가진 경영진이 언제라도 누군가가 자유롭게 자신의 경영권을 확보하려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경영권의 값이 비싸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경영권의 값이 비싸다는 것은, 현재의 경영진이 경영권을 제대로 행사해 좋은 실적과 주주친화적인 정책들로 주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므로 그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측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경영권의 값이 비쌀수록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줄어들 것이고, 주주들은 더 많은 혜택을 누릴 것입니다. 반면 이런 일이 제대로 안 돼 실제 가치보다 헐값에 살 수 있다고 판단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경영진이 원치 않더라도 주주들을 설득해 경영권을 가져가려고 하겠죠.
 
적대적 M&A와 경영권 방어
 
시장 원리에서 자유로운 거래의 보장만큼 중요한 것이 공정한 거래의 보장입니다. 거래에 참여하는 어느 한쪽이 불리해선 안 된다는 거죠. 기업 경영권 시장에서도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면, 그런 시도에 대응할 적절한 수단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해외 기업들은 차등의결권과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황금주 같은 적극적 방어 수단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포드자동차의 경우 창업주인 포드 집안이 소유한 지분은 7%인데, 그 지분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40%입니다. 스웨덴 발렌베리그룹도 지분 19%41%의 의결권을 행사합니다. 프랑스는 2년 이상 보유한 주식에 대해서는 1주에 2개 의결권을 부여합니다.
 
한국엔 소극적 방어 수단뿐
 
우리나라는 상황이 어떨까요? 적대적 M&A 시도는 자유로운 반면 그에 대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방어수단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단 상법 규정에 따라 ‘11의결권이 원칙으로, 차등의결권과 같은 적극적 방어 수단이 없습니다.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우리나라의 경우 적대적 M&A에 대해 소극적 방어 수단만 행사할 수 있는 실정인데, 그나마도 실효성이 작다고 주장합니다. 소극적 방어 수단으론 이사 해임 가중 요건 이사 시차 임기제 인수합병 승인 안건의 의결정족수 가중 규정 등이 있습니다. 이사 해임 가중 요건은 이사를 해임하려면 발행주식 총수의 2분의 1 이상처럼 상법의 특별결의 요건(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보다 강화하는 방식입니다. 이사 시차 임기제는 이사진의 임기가 동시에 끝나는 걸 막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일 때 매년 1명씩 임기가 끝나도록 하면,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측에서 이사 해임에 필요한 지분을 확보했더라도 일시에 3명 모두를 해임할 순 없는 것이죠. 이런 수단은 주주총회에서 안건이 통과되기 어렵게 하거나 이사진이 한꺼번에 바뀌는 것을 막는 정도라서 소극적방어 수단입니다.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이나 모두 주주가치를 내세웁니다. 행동주의 펀드 등의 적대적 M&A 시도가 계기가 돼 기업들이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 펼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적대적 M&A로 인해 기업 경쟁력이 되레 약화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합니다. 적대적 M&A 시도와 이를 막기 위한 적극적 방어 수단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NIE 포인트1. 자유로운 거래와 공정한 거래에 대해 토론해보자.
 
2. 적극적 경영권 방어 수단을 조사해보자.
 
3. 적극적 경영권 방어 수단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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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2월 19일)-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13강의
제목: "비대칭(非對稱) 전략(戰略)의 신비(神祕)"
말씀: 여호수아 5:2~1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모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임병영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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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5:2~10,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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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본격적인 봄 사역이 시작된다. 말씀을 통하여 영혼의 따뜻한 봄 동산을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설교 제목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13번째인‘비대칭(asymmetry) 전략의 신비’로 했다. 부흥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은혜가 있어야 한다. 비대칭 전략은 대칭 전략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비대칭 전략은 ‘이러면 이럴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른 차원이다. 예를 들어서 골리앗이 다윗을 치려고 칼과 창을 가지고 나왔을 때, 다윗은 칼과 창을 가지고 나간 것이 아니고, 물맷돌을 가지고 나갔다. 그러니까 칼과 창에 비해서 다윗의 물맷돌은 비대칭전략인 것이다. 그러니까 칼과 창의 판을 바꾼 것이다. 그 다음은 미디안 군대의 십삼만 오천 명의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에, 기드온이 300여명의 용사와 함께, 기드온의 전략은 나팔과 항아리 횃불을 가지고 전쟁을 했다. 십삼만 오천 명 앞에 대칭 전략은 대군을 끌고 하다못해 3만 명이라도 대군을 끌고 나가야 되는데 하나님은 그중에 하나님은 뽑으시고 뽑으셔서 생각이 다르게 승리하게 했다. 하나님은 300명을 뽑아서 항아리와 꽹과리와 항아리 횃불을 가지고 나갔다. 역사적으로 비대칭 전략으로 세계사를 바꾼 것 중에 하나가 미국의 남북전쟁 초기에 참혹한 전쟁이었다. 링컨이 이끄는 남군의 압도적인 전투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해방 선포로 승리했다. 그 순간 남군과 북군이 싸울 때, 연방제의 견해의 차이로 시작된 그 남북 전쟁이 정치적 갈등이었다. 정의와 불의의 부류로 싸움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전략을 가지고 하지 않고, 갑자기 링컨이 기도하러 들어가 버렸다. 전쟁할 때, 기도하러 들어간 것이 비대칭 전략의 하나이다. 우리나라도 6.25전쟁 초기에 패배해서 낙동강 일부만 남아있고 공산당이 거의 다 점령당하고 있는 일보직전에 우리가 전투력을 강화시켜야 하는데 그중에 상당한 집중력과 에너지를 가지고 부산의 초량교회에 남아서 목사님들이 눈물로써 기도하고 회개한 것은 비대칭 전략이다. 그래서 기도하는 동안에 비행기가 뜨게 해서 공군력이 강화됨으로 인해 날씨를 맑게 해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의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대칭전략은 이 땅의 법칙이고, 비대칭전략은 하늘의 법칙이다. 이 땅에 있는 모든 법칙은 예를 들어서 중력의 법칙이 있듯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중력의 법칙 때문에 다 죽는 것이다.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도 안 죽는 비결이 있다. 그게 무엇인가? 헹글라이더를 타면 안 죽는다. 그 공기 역학의 법칙을 가질 때에 떨어지지 않고 이렇게 날게 된다. 중력의 법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공기역학이 상위 법칙으로 그 중력법칙을 압도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 가지 말씀이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비대칭의 전략의 은혜를 가지고 세상에 법칙을 압도하는 하늘의 법칙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란다. 최상의 비대칭 전략이 무어냐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다음에 마귀의 세력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 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내가 열두 명의 천사들을 다 두고 나는 다 처치할 있지만 그러나 아니야, 하나님의 뜻대로 할 거야, 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적들이 칼과 뭉치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온갖 것을 다하지만 예수님은 다하실 수 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최고의 비대칭 전략의 최고봉이다. 여호수아 5장 6장에 보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여리고 성이 나오는데 이 여리고 성을 공략을 해야 되는데, 작전이 사다리를 놓고 화살을 쏘아대고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고 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돌라고만 하신다. 가만히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성을 돌라고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일곱 번을 돌라고 하신다. 외치라고 하신다. 이것이 비대칭 전략인 것이다. 아주 현장 중에 현장이다. 오늘 본문을 앞에 두고 여러분이 봄 사역을 두고 비대칭의 은혜를 받기를 바란다. 그 핵심은 딱 두 가지이다. 2절과 3절과 7절과 8절이다. 첫 번째 비대칭 법칙으로,
 
I. 할례를 행하라.
 
*여호수아 5:2,3,7,8절,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큰 장애물 여리고 성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는 것이 뭐냐면 자기 백성의 몸에 칼을 대라는 것이다. 칼을 대는 것은 할례를 받게 해서 꼼짝 못하게 누워있게 하는 것이다. 힘을 쓰지 못하게 해서 칼을 대니까 소위 무장해제이다. 그 큰 여리고성을 앞에 놓고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힘 빼기 작업이시다.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힘이다. 사람이 내 힘이 빠지면 주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다. 적들이 쳐들어오면 몰살을 당할 지경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와 순종 세대는 결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몸을 묶으며 순종하고 있다.
 
*여호수아 5:9,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할례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선택 받은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의 표식이다. 할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창세기 17장에 보면 99세의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시고 계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언가 언약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 복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다. 반드시 마음으로 준비하라고 하신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하나님이 더 원하시는가? 아니면 백성들이 더 원하는가? 하나님이 원하신다. 오죽하면 히브리서를 보면 나온다.
 
*히브리서 6:14,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기복신앙 이런 차원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큰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그런데 허를 찌르는 하나님의 신비한 비대칭 전략이시다. 하나님은 더 큰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준비가 되어야 되는데 아직까지 애굽의 노예근성이 있어서 정리가 안 되는 것이다. 노예근성의 핵심은 자기중심이고 내 것만 생각하고 이런 것이 어쩔 수 없는 이것이 자기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너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야, 너는 축복의 근원이야, 하시며 너를 통한 사람들은 복을 얻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7장에 보면 할례를 행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라고 하신다. 아브람은 적당한 자기생각, 자기중심이지만 아브라함은 땅의 모든 족속의 축복이 되기를 원하신다.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신다. 완전하라고 하신다.
 
*창세기 17:1,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러려면 적당이가 아니라, 살을 베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장 나라의 오합지졸 같은 사람이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비대칭 전략으로 살에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에 새긴 것을 볼 때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야, 아브라함의 자손이야, 너는 열국의 딸이야, 그리고 너는 세상의 방법대로 대칭전략으로 살지 말고 너는 비대칭 전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법칙이 아닌 하나님의 법칙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골로새서 2:11,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우리는 육신의 부패한 본성이 있고, 노예근성이 남아있고, 자기중심이 남아있고, 그 자기 중심으로 있어서 주님을 평생 믿음으로 받고 난 다음에 마음의 할례를 받는데 마음의 가죽을 베어야 하는데 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 상처를 내는 것은 자기중심에서 십자가의 삶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약에서는 십자가 삶이고, 구약에서는 할례이다. 이 시대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얻기 위해서는 내 내면의 할례를 받는 것을 소망한다. 아멘. 아주 중요하다. 그러니까 내가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은 내가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을 내리고 내가 왕좌에 앉아 있는 내 자아를 나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내 자아의 왕권을 끌어내려서 더 이상 나의 노예상태의 성향이 지배하지 않기를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내 마음의 왕좌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육신의 자아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내가 스스로 왕권을 내려놓고 폐위 당하고 난 다음에 더 이상 죄에 휘둘리지 않도록 오늘 마음에 할례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대칭 전략이다.
 
*우리 교회에 튀르키에와 시리아를 우리 교회가 함께 마음을 함께 돕기를 바란다고 플랜카드로 걸어두려고 했으나 비가 와서 관두었다. 그렇게 안 해도 우리는 마음으로 움직여서 도우면 된다. 자연스럽게 돕고 하면, 그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올라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줄로 믿는다. 또 하나의 비대칭 전략의 키는,
 
II. 유월절을 지키라.
 
*여호수아 5:10,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이제 여리고성을 공략하기 전에 주님 앞에서 길갈에 진 쳤고, 아까 할례를 행하고 수치가 물러갔다고 했다. 그리고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여리고 성을 공략할 때에 할례를 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신다. 유월절은 출애굽 할 때와 시내 산에 그랬고, 거의 40년 만에 유월절을 지켰다. 유월절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기적 같은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 유월절이다. 할례는 일생에 한 번 받는 것이다.
 
*할례는 남자가 모두가 다 받는 것이다. 유월절은 매년 반복하는 것이다. 할례가 서양에서는 나중에 세례가 되었고, 유월절은 나중에 신약에서는 성만찬이 되었다. 구약에서 할례=신약에서 세례, 유월절은 매년 반복이다.

-우리가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십자가를 더 잘 지고 나가고 비대칭 전략의 은혜를 더 실천하기 위해서는 매년, 매주, 매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힘과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할례는 내가 받는 것이지만,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압도적으로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비대칭 전략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의 할례를 받아서 이제 노예근성을 벗어버릴 뿐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홍해를 우리 힘으로 가를 수 없는 것이다. 여리고 성도 우리의 힘으로 공략할 수 없다. 하늘의 만나와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도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유월절의 은혜를 허락해 주셔야 하는 것이다. 특별한 능력과 은혜를 주셔야 한다. 우리가 부흥하기 위해, 우리가 잘 되기 위해,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 조금씩 먹고 운동하고 이 땅에 것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는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유월절의 은혜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것을 여러분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비대칭 전략의 중요한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주신 것은 일방적인 은혜이다.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어나가는데 이스라엘의 장자가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축복이다. 이게 유월절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주신 것도, 노아에게 방주를 주신 것도, 아브라함에게 백세 이상을 주신 것도, 요셉이 총리가 되게 하신 것도, 노아에게 방주 주신 것도, 무엇보다도 신약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요청도 안 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도 일방적인 하나님의 일방적인 유월절의 축복인 줄로 믿는다. 아멘.
 
조금 더 나아가면 우리는 부족한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전 세계 성경이 번역이 잘 된 것도 많이 있지만 대한민국 한글 성경이 번역이 잘 된 줄로 믿는다. 이것도 유월절의 축복이다. 우리에게 교회를 주시고, 영적 가족을 주시고, 우리가 오늘 날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부족한 것은 많이 있지만 그래도 과거에 선진들의 비하면 우리는 그래도 이 시대에 좋은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어느 정도 느끼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유월절의 축복이다. 자기중심이 아니라, 열국의 아비가 되는 정말 노예근성을 벗어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게 하는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힘과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 힘과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능력이 유월절을 통하여 깨닫는 축복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유월절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가 날마다 구원의 감격과 구원의 감사와 은혜와 축복으로 소위 은혜의식으로 충만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유월절 은혜가 날마다 있을 때에 우리의 공로의식이 아니라, 은혜의식이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의식이 2이고 공로의식이 1이면, 2/1이다. 그런데 은혜의식이 반쯤 되고, 공로의식이 1이면 마음이 똑같이 1이라도 은혜가 만분을 1이 되면 우리는 흔히 내 공로의식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대체적으로 두 자기 안에 포함되어 있다. 할례사건과 유월절 사건이 늘 반복된다. 할례와 유월절을 통하여 비대칭 전략을 깨닫게 하시고 이것을 가지고 여호수아와 그 순종의 세대는 결사적으로 말씀에 순종했다. 결사적으로 그들은 몸과 마음을 말씀에 묶어버렸다. 드디어 이 비대칭 전략을 통하여 상상할 수 없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 그 금성철벽(金城鐵壁)의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하셨다. 비대칭 전략으로 마음에 준비를 하니까 여리성을 무너뜨려 주셨다. 총 한 번 쏘지 않고 돌멩이도 한 번 던지지 않고 그래서 마음을 하나님께 다하니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하셨다.
 
*여호수아 6:3,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모든 군사는 유월절을 지키고 똘똘 뭉치니 어느 순간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이다. 이 비대칭 전략을 하루에 한 바퀴를 돌 때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었겠는가? 우리가 비대칭 전략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갈 때 많은 사람이 6일 동안 조롱(嘲弄)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이 중요하다. 마지막 여호수아 명령에 따라고 비대칭 전략으로 외치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이다. 우리가 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날마다 기도하면 어느 순간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이다.
 
*여호수아 6:10,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하고.
-이 뜻이 무엇인가? 영적 전쟁이다. 내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들이 유월절과 할례로 하나가 되니까, 결사적으로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고 결사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니까 세상이 뒤집어지고 여리고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새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가 봄 사역을 앞에 두고 결사적으로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가정과 공동체가 말씀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결사적으로 교회 중직자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다시 한 번 여리고가 무너지고 홍해가 갈라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우리를 향하여 복을 주시려고 안달복달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의 자아, 자기중심의 왕좌를 포기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를 늘 감사함을 가지고 공로의식이 아니라, 은혜의식으로 충만해서 축복의 근원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쓰임을 받아야 한다. 우리 속에 노예근성, 애굽의 노예근성,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350킬로이다. 왕복 700킬로 거리가 40년이 걸렸다. 신앙의 비대칭 전략으로 하면 모두가 가족이 남편이 예수를 믿게 된다. 너무 신비한 것은 수많은 난제를 해결 되는 것이다. 날마다 충분하면 우리 속에 노예근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토요일마다 비웃지만 편하게 온라인 예배를 드리지도 않고 이곳 현장에 나와서 기도하고 예배하면 하나님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봉사하고 전도하고 비대칭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호수아 5:1,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주님 사랑과 축복을 끝없이 주실 것을 믿는다.
 
♧요약
신앙의 비대칭을 전략으로 내 왕좌의 자리를 포기하고 세상의 법칙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법칙 가운데 주님께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날마다 압도적으로 내려주시는 축복을 받아서 유월절의 은혜를 체험하고 공로의식이 아닌 은혜의식으로 살아가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를 충만히 받아서 서로 나누며 영혼의 따뜻한 봄 사역에 헌신하는 모두가 되어야 한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명령하신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거 하는 외적인 징표이다. 할례의 진정한 증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신약에서 할례는 세례로 변화되어지는데,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정한 할례(세례)를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 약속의 소유자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 의식을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다. 할례는 아브라함 언약에 대한 육체적 증거이며, 유월절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할례는 언약 백성이 지니는 표시였고, 유월절은 출애굽의 구원을 축하하며 기념하는 축제였다. 가나안 땅에서 이 두 의식을 지켜 행한 이유는 아브라함 언약과 출애굽이 바로 이 성취의 때를 기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교회 대표전화 :02-349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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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2월 18일)
제목: "감란산의 기도의 지팡이 II"
말씀: 마태복음 26:39~48
대표기도: 설외숙 권사님(2권사회장)
찬양인도: 권사회 연합찬양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말씀읽기: 이서린 어린이(소년부), 이지후 어린이(초등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ㅡㅡㅡㅡㅡㅡㅡ
 
**마태복음 26:39~48,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

오정현 담임 목사님.

▶자! 우리 권사 회 할렐루야!!~~우리 성도들이 자동적으로 권사님들의 찬양에 박수가 나왔다. 감사드리고 여러분이 권사 회 찬양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기백이 느껴졌을 것이다. 오늘 새벽예배 시작하기 이미 1시간 전에 아래 지하의 주차장이 다 찼다. 왜냐면 미리 나오셔서 다 권사님들이 준비하느라고, 오늘만 그러지 말고,,, ㅋㅋㅋ

제가 기가 막힌 게 있다. 마음에 치밀어 오르는 감사가 있었다. 그게 뭐냐면 20년 전에 7천 기도용사, 그렇게 했다. 그것을 누가 믿겠는가? 어떻게 7천 기도의 용사가 나오겠냐고 할 것이지만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반드시 7천 기도의 용사의 은혜를 주실 줄 믿는다. 이 지팡이를 들고, 그리고 저는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6월 3일에 상암 집회에서 10만인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말씀을 전하고 폭프랭클린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말씀을 전하고 콜링하고 난 다음에, 아마 특별한 것이 없으면 제가 기도회를 인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교인들이 알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가 선봉 부대이다. 상암 경기장에 기도의 용사들은 특공대이다. 선봉장이고 특전사이다. 그런 마음으로 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우리 한국교회 부흥사의 조금이라고 우리가 섬김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줄 믿는다. 권사회 오늘 찬양을 한 번 더 하시라고 할 것이다.

지금 2월 8일부터 오늘 10일째, 미국의 에즈벌리 대학교에서 회개와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밤낮 없이 10일째 계속해서 찬양과 회개와 부흥을 갈망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오늘 새벽에도 줌으로 들어가니 너무 놀아왔다. 보니까 역시 부흥과 변화와 기름부음과 이런 능력들은 찬양과 거룩함을 사모하고 그 젝 닉클리스 목사님이 로마서 12장, 사랑으로 행하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라는 제목으로 인도하고 계셨다. 주님 앞에서 사랑을 통하여 거룩하게 하고 그런데 찬송을 하는데, 주제 찬송이 알렐루야, 알렐루야! 예수 어린양, worship is the lamb, 전능하신 하나님을 했다. 사랑의 교회도 오래전부터 가슴이 미어지고 힘차게 부르고, 얼마나 은혜로운 찬송인지 모른다. 전능하신 주, 다스리네, 주는 존귀하신 예수 어린양, 이 찬송으로 지금 10일째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에즈벌리 대학교하고 거기와 오늘 서초동과 연결되어 우리가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기를 바란다.

지금 ‘대학 청년부’, 대청부는 우리 교회 대학부가 안성 수양 관에서 함께 수양회를 하고 있다. 안성 수양관에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훈련하고 있다. 여하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15년 전, 20년 전의 기도하는 것을 그대로 기억하시고, 7천의 기도의 용사의 은혜로 마음을 모으게 하심을 찬양한다. 이렇게 환경과 믿음과 기름부음 주시고, 또 우리 마음속에 영육의 건강 주심에 하나님께 감사하다.

여러분 전 세계 어떤 일도 누군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설레이지 아니하고, 기대하지 아니하고, 꿈꾸지 아니하고, 사명을 가지지 않는데, 꿈꾸지 않는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제가 여기 들어올 때 강사실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고 모세가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큰 그림이 있다. 저는 30년 전부터 그 그림을 갖다놓고 저게 언제 되겠나 하면서, 기도의 지팡이조차도 없는데 가능할까 했는데, 오늘 이제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여러분의 인생도 교회도, 한국교회도 시대 앞에 홍해가 갈라지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 일어나서 하나님의 감사하며 외치자.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믿음보고 2.0을 하자. 마음이 간절하면 꿈도 이루어진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는 것을 우리는 그림으로만 보았지만 아니 그것이 실체가 될 줄 믿는다. 그게 오늘 기도의 지팡이가 되어 오늘날 시대를 넘어 홍해를 건너기를 원하며 찬양 한다. 합심해서 기도하자. 이 자리가 기도의 변화 산이 되고, 이 자리가 감란 산이 되고, 이 자리가 능력의 갈멜 산이 되기를 소원한다. 평생을 부르짖는 기도의 응답의 산실이 되어 7천 용사의 기도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7천 용사가 되게 하심을 찬양한다. 7천 용사가 됨을 찬양한다. 저것이 실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것이 오늘 시대 앞에 홍해를 가르는 기도의 능력, 은혜를 주옵소서.!!~ 개인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이 시대를 향하여 상암집회를 위해서 전력투구하며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시간 반포대로 121번지가 은혜의 진원지가 되게 하실 것이다. 3번 크게 외치고 기도하자. 주여, 기도의 능력을 주옵소서.....

지난주 토비새는
첫째는 습관을 쫓아 기도한다.
둘째는 기도의 동지가 필요하다.
셋째는 아빠 아버지 순전한 기도의 자세.
오늘은 두 가지만 더 하겠다. 오늘 39절에 보면

*마태복음 26:39~48,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다. 왜냐면 주님은 인간으로 더 이상 고통을 체험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인성으로서, 십자가를 지신다는 이 어마무시한 이 놀라운 이 엄청난 대 사명 앞에 인류의 모든 죄를 다 지고 가셔야 하시기 때문에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시는 것이 이게 진정성이다. 기도의 전력투구하신다. 오늘 우리가 들고, 찬송을 하지만 어떤 성도님은 오늘 몇 번 반복이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말고 그것 자체가 기도가 된다. 영적인 능력과 자유함이 은혜가 없이는 반복도 할 수 없다. 기름부음과 은혜의 장소가 현장이 되어야만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에즈벌리 대학과 교회에서 지금 하루 종일 찬양과 예배와 말씀 듣는 그 은혜가 무엇이겠는가? 무언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교회 이 강단에서 정말 딱 우리가 이게 주님과의 맞아 떨어졌을 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큰 축복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육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진정성이다. 예수님은 완벽한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갖는 사명의 무게가, 기도의 큰 짐을 인성만 갖고 있는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까 너무나 우리는 마음의 고통, 육신의 고통이 있지만, 물론 영혼의 고통도 있지만 주님의 그 영혼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너무나 큰 영혼의 고통이 있으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짊어지셨다. 그리고 나 혼자만이 아니라 이 땅에 오고는 수많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짐을 다 짊어지신 것이다. 우리 역사에 살았던 모든 자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짐을 짊어질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로 다 짊어지신다. 그러니까 주님의 그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과 영혼의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땅에 엎드리고 간절함을 가지고 진정성을 가지고 기도하신다. 여러분, 이것을 들면 진정성이 생기는가? 저는 이 지팡이를 들 때마다 가슴이 찡하다. 이것을 들때에 우리의 마음과 육신이 다 집중해야 된다. 마음이 간절하면, 몸도 간절해진다. 영혼이 간절하면 진정성을 갖게 된다. 주님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진정성을 가지고 기도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이 진성 성을 가지고 기도하시니 우리가 깨달은 것은 여러분들의 고뇌, 아픔, 슬픔, 고통 모든 짐을 주님이 다 체휼하셨다는 것이다 체휼(體恤)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다 이해하시고 다 공감하시고 다 sympathy가 empathy된다. 그 주님이 동정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와 닿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의 진성 성을 가지고 기도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오늘도 내 고뇌와 아픔과 살다보면 수많은 일들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지난 한 주간도 기도제목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내 힘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감람(橄欖)산(山)에 주님이 엎드려서 기도하시는 그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때 엎어져서 육신의 고통 영혼의 고통, 마음의 고통을 다 짊어지시고 기도하는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오늘 아, 내 마음의 고뇌를 다 알고 계셔, 남이 알 수 없는 이 고뇌와 아픔을 주님이 알고 계셔, 주님, 알아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생각하며 그 마음을 갖고 나올 때마다 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크신 은사를 주시는데, 주님이 나를 이해하고 계신다는 사실 앞에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제 제일 중요한 것은 기도의 사명, 기도의 집중력, 기도의 핵심은 무엇인가? 내 뜻대로 하지말게 하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이다. 그런데 내 뜻대로 말고 주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는 그 기도가 그냥 나온 것이다. 아니다. 예수님의 완벽한 신성과 완벽한 인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완벽한 인성을 가지고 계셨으니 우리가 갖는 고통을 다 알고 계시고 체험하신 분이시다. 똑 같은 체험을 주님의 인성적인 측면에서는 오늘 구절을 보자.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완벽한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의 기도이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오죽하면 주님도 그러실까? 그러나 동시에 사명을 갖고 주님의 그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뜻을 아니까, 39절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신다. 결정을 하나님께 맡기신 것이다. 예수님의 인성과 예수님의 신성이 어떻게 보면 거룩한 충돌을 한 것이다. 결국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사명, 이 땅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목적대로 그래서 이 39절의 상태가 멈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이제 한 단계 올라가서 42절에 보면,

*마태복음 26:42,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예수님의 인성을 가지시고 가능하게 해달라고 하는 그 주님의 인성을 철회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참는 기도가 무엇인가? 기도의 진정 성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가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기도의 목표이다. 기도가 확실하게 세워진다. 우리에게는 기도의 장소가 필요하고, 기도의 동지도 필요하고 기도의 어떤 순전함도 필요하고 기도의 진정성이 필요하지만 기도의 이 목표, 기도의 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기도의 참된 모범이 주님이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인성은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한 그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이다.

여러분 참된 기도는 내가 갖고 있는 인성, 내가 갖고 있는 부족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기 위하여 내 삶을 오픈해 버리고 내 삶을 개방해버리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뜻이 내 가운데 깨달아지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길 원하게 된다. 그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 한나가 그렇게 했다. 그래서 주님 뜻대로 하길 원하는 수준대로 올라가야 한다. 마침내 세 번 기도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6:44,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세 번째 기도는 두 번째 내용을 같이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도의 내용이 같은데 왜 기도를 그렇게 하셨을까? 오늘 마태복음에서 다 파악할 수 없지만 병행하는 누가복음 22장에 병행하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 같은 기도를 한 이유는 육신적으로 이 일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육신적적인 고통으로 이것을 감당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기도하는 이유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위로부터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와 여러분이 기도하다보면 우리 힘으로 안 될 것이 많다. 그런데 위로부터 능력을 받으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감람산 기도의 절정이 무엇이냐면, 최고가 무어냐면 내가 다 안 되지만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게 될 때에 예수님께 있는 그 은혜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최고의 절정이 무어냐면, 감람산의 최고의 절정이 무어냐면, 그게 바로 누가복음에 보면,

*누가복음 22:43,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이게 너무 중요하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님께 나아와 힘을 더한다.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아버지로부터 받는 것이다. 감당할 수 있는 하늘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뜻을 이루려면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대신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께 힘을 더하시게 하신다. 예수님조차도 기도의 능력과 기도의 응답을 당신의 힘으로만 하지 아니하고 천사로부터,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하시는 것이다.

오늘 묻는다. 사랑의 교회 형제자매 여러분, 영 가족 여러분, 중직 자 여러분, 권사님들, 언제 위로부터 천사가 도와서 언제 능력 있는 기도의 체험해 보았는가? 언제 어느 장소가 그런 장소가 되는가? 오늘 그 마음에 간절함을 가지고 우리 교회 속한 모든 성도들은 위로부터 천사가 와서 힘을 더하여 돕는 그런 기도의 용사가 되기를 바란다. 7천 교회의 용사가 되기를 바란다. 어느 장소가 되어야 하는가? 오늘 이 자리가 위로부터 천사가 힘을 다하여 우리의 기도의 체험을 주시는 장소가 바로 이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결과로 46절에 보면,

*마태복음 26:46,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신다. 완전히 능력을 받으셔서 완전한 차원으로 올라가서 이제 정리가 되 었다고 하신다. 가자고 하신다. 시작할 때는 고민하고 슬퍼하여 매우 마음이 죽게 되었다고 하신다. 우리가 살다보면 고민하여 마음이 죽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감람산의 기도의 축복을 받아서 이제 위로부터 힘을 얻어가지고 담대해서 일어나 가라.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백배(勇氣百倍)하라. 토요예배 이 장소를 기도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획하신 놀라운 사명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될 것이다.

♩기도하는 이 시간 찬양하자. ~~♬

※-온전 론 강의 미디어를 달군 것이 있다. “쳇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자동회귀 언어이자 인공지능 체팅 서비스이다. 이것은 웬만하면 다 해준다. 심지어 설교문도 작성해주고 오만 것을 다 해준다. 그런데 그게 영혼이 있는가? 그게 능력이 있고, 성령의 능력이 있는가? 시대 앞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늘 토비새인 줄 믿는다. 영감과 기름부음 가운데, 이제 쳇 GPT 3.0은 거의 인간의 뇌와 유사하게 되고, 4.0이 되면 인간의 뇌가 1000조 개의 신경세포가 된다. 그러니까 GPT4는 1000조 개의 인간의 신경세포와 거의 동일하게 만든 것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시대 앞에 우리가 무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아무리 쳇 GPT가 대단해도 성령의 역사는 없는 것이다. 그게 생명의 역사는 없는 것이다. 기름부음은 없다. 암송과 토비새의 은혜는 없다. 토비새의 은혜 가운데 말씀을 통한 암송과 반복되고 기름부음과 말씀의 능력의 역사는 현장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쳇 GPT’ 이것 인공지능 체팅 서비스를 이겨내는 비결은 암송이다. 오늘 이 시대 사람은 다 모두 스마트 폰으로 해결되고 제공되지만 토비새와 암송은 넘지 못한다. 그래서 암송이 중요하다. 절대 안 되는 것이기에 우리는 암송이 너무 중요하다.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중심되신 그리스도이다. 암송하자.

※튀르키에와 시리아 헌금을 마음을 모아 하시기를 바란다.

*영상도 잠시 시청하겠다. 19년 전에 저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내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실 것을 믿는다. 리프레쉬 하게 해 주실 줄 믿는다.


요약
우리가 습관을 따라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영적 감란 산으로 나아가서 예수님의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도의 동지이자 부흥의 최측근이 되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에 집중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아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면 천사가 예수님께 힘을 더하여 돕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같이 도우시니 지팡이를 들고 간절함으로 기도하여서 하늘로부터 힘을 받아서 체험하고 영적 기백을 회복하고 모자간에, 부부간에, 가족들 간에, 지체들 간에 4세대가 기도의 동지가 되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의 사람으로 무장되어 시대의 홍해를 건너가기를 소원하며 감란 산의 기도의 지팡이로 응답받기를 소원한다.
-주님도 인간적인 약점과 연약함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 뜻을 이루려 하는 열심이 온전히 모든 일을 이루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간절히 기도할 때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는 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깨어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 위해서, 믿음에 굳게 서기 위해서,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서, 찬송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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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2월 15일)

제목:"평신도훈련 개강예배,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 입학감사예배“
말씀: 사도행전 7:36~38
대표기도: 김기상 장로님, 백형선 장로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시온찬양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
 
*사도행전 7:36~38,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
 
▶귀한 입학식과 개강예배를 드림을 주님을 찬양한다. 오늘 찬양대가 ‘거룩한 성’을 너무 잘 했다. 여러분 사실 굉장히 잘 했다. 오늘 개강예배, 입학식에 왜 ‘거룩한 성’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왜 거룩한 성인가! 어거스틴이 이야기 한 대로 신곡 하나님의 도성, The city of God.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주님의 사역의 목표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확산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에 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거룩한 성을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특별히 이 제자훈련과 SaGA 입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더 강하게 이루실 줄 확신한다는 마음을 찬양했다. 하나님이 영광 빋으신 줄로 믿는다.
 
저는 1988년도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마음에 ‘왜 이 교회를 왜 또 세워야 하나? 주위에 교회들이 많은데 왜 또 교회를 세우고 개척해야 하나?’ 그러면서 물론 제자훈련 목회 철학을 가지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이루는가? 저희 집사람과 저와 둘이서 많은 기도의 제목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분명한 기도제목은 “주여, 마음 맞는 가족 다섯 가정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진짜 열심히 기도했다. 저보다도 집사람이 더 열심히 기도했다. 여러분들은 보통인데 저는 ‘마음 맞는 가정을 다섯 가정이 있게 해’달라고 했다. 뭐든지 중요한 것은 사명이나, 비전이나, 핵심이나 중요한 것은 같이 정렬을 하는 것이고, 같이 얼라인먼트(alignment) 하는 것이고, 같이 어세스먼트(assessment)를 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는 이 SaGA 입학식하고 제자훈련 개강예배가 따로 따로 드리는데, 올해는 같이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같이 하게 되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여러분들도 제자훈련 개강 예배만 드리는 분들은 어떻게 이러한 것을 보겠는가? 이것은 SaGA 입학식에만 드리우는 것이다. 또 SaGA 입학식만 하는 분들은 어떻게 오늘 거룩한 성을 하는 것을 보시겠는가? 오늘 찬양대가 이런 찬양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남들은 주일 예배가 어떠하다 등을 말하지만 공간이 어떻고, 사랑의 교회 시스템이 어떻다. 사랑의 교회 45년의 역사는 어떻다. 이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사랑의 교회 비밀병기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고, 그 키우는 핵심이 뭐냐면 다락방에서 준비된 사람들을 제자훈련과 성도들이 와서 영적 교제, 변화의 산실을 경험하고 거기서 잘 준비되는 사람을 제자훈련, 또 제자훈련을 추천을 하고 또 추천된 사람이 또 사역훈련을 하고 사역훈련을 마치고 나면 말씀으로 섬기는 순장 반을 하고 순장사역을 하면서 영혼을 말씀으로 섬기게 되고 또 우리가 순장반의 말씀으로 섬기다 보니까 아! 조금 더 한 단계 올라가야 되겠다. 한국교회 전체가 다 함께 하나님 나라의 소중한 일꾼이 세워져야 되겠다는 차원의 영적 집현전이요, 영적 사관학교라고 하는 이 SaGA를 사랑 글로벌 아카데미를 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게 다 영적인 비밀병기요, 남들은 겉으로 볼 때 평가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락방, 제자훈련, 사역훈련, 순장 반,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이 모든 내용들이 저희교회의 핵심 사역이다. 그리고 핵심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무장이 되어야 할 것인가? 오늘 우리는 역할 모델을 한 명 잡았다. 모세라는 인물을 역할모델로 잡았다. 사도행전 7장은 오늘 본문은 스테반이 아주 그냥 엑기스가 있는 구약 전체를 정리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모세와 같은 이런 역할모델을 놓고 37절을 보면,
 
*사도행전 7:36-37,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무슨 말인가? 나와 같은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모세가 미리 예표로 감당했다는 그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다락방, 제자훈련, 사역훈련,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이 모든 내용들이 따로 따로 가는 것이 아니고 한 정렬, 얼라인먼트(alignment), 해가지고 우리가 감당을 해야 되는데, 그중에 핵심은 뭐냐면 정말 좋은 가정, 다섯 가정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 귀한 사역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주시길 소원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신다고 할 때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정말 그런 기대감과 익사이팅이 넘치는 사람들을 세워주시길 원한다. 그래서 이 중요한 내용들은 계속 제가 강조할 것이다.
 
알에이토레이(R.A Torrey) 라는 신앙의 선배는 어디가든지 맨날 똑 같은 설교를 500번이나 했다. How do d I be filled with the Holly Sprit?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가? 어느 날 이 알에이토레이(R.A Torrey)가 그날도 똑 같은 설교를 하려고 나갔는데 찬양을 인도하던 존 알렉산드라는 사람이 그걸 몇 번이나 들었기 때문에 다 외우고 있었다. 그래서 찬양을 인도하다가 너무 은혜가 많아가지고 설교자가 할 설교를 찬양 인도자가 다 해버렸다. 그래서 알에이토레이(R.A Torrey)가 큰일이 난 것이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놓고 설교를 좀 더 준비해서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똑 같은 설교를 강조했다. 왜냐하면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내 것이 되어야 주어지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원하고 다 소중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될 것이 아닌가? 오늘 이 자리에 온 성도님들은 여러분들의 생애에 가장 가슴이 뛰고 쓰릴이 넘치고 가장 익사이팅(exciting)하고 가장 여러분의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할 핵심이 뭐냐면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써 주신다는 것이다.
 
이번에 48기 제자훈련, 35기 사역훈련, 특별히 우리 SaGA 입학생들, 모두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이 사실 앞에 가슴이 벌렁벌렁 뛰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이 어떻게 쓰셨는가? 어떻게 쓰시게 되었는가? 그의 인생을 120년을 가지고 돌아볼 때에 모세는 끝까지 주님 앞에 쓰임 받았다. 누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모세는 죽고 난 다음에 끝났다. 모세는 120년 죽기까지 삶은 하나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늙어서 어찌해볼까, 늙어서 노년을 어떻게 보내볼까 이런 것은 다 없고, 모세는 그냥 죽고 끝났다. 말이 좀 이상한가? 여러분, 바로 이 말이다. 우리가 늙어서 어떻게 해볼까, 남은여생을 어떻게 보내볼까 막 복잡한 것 다 두고 여러분 주님 앞에 끝까지 쓰임 받다가 죽어야 좋은 것이다. 아멘.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 담겨있다. 저는 소원이 끝까지 쓰임 받다가 싹 사라지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강단에서 말씀 전하다가 죽게 해달라고도 한다. 그러는데 강단에서 말씀 전하다가 죽으면 말씀 듣는 성도들이 심장마비 걸리니까 강단에서 내려와서 죽게해 달라고 했다.
 
오늘 우리가 이 모세의 내용을 가지고 할 때, 적어도 SaGA의 생도, 영적 집현전, 우리 제자훈련생, 사역훈련생, 정도가 되면 마음에 이런 정도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 우리가 은퇴하고 양지 받는 뙤약볕 밑에 살다가 어찌어찌 하다가 나중에 골골해서 죽지 말고, 그냥 죽고 인생 끝나게 해달라고 해야 한다. 이 경지를 알 사람만이 알도다. 모세는 죽고 끝났다. 여기에 깊은 뜻을 말하자면,,, 죽고 끝났다. 우리도 죽고 끝나야 한다. 그러러면 세 가지가 있다. 잘 아시는 대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모세의 머리를 훈련시키셨다.
 
*사도행전 7:22,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의 생애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1) 40년 동안 He learned something. 그가 배움을 받아 머리를 쓰임 받았다.
2) 40년 동안 몸에 훈련을 하면서 He learned his nothing. 자기 몸을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3) 40년 동안 그의 마음과 그의 생각과 그의 어떤 심정이 훈련을 받아가지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처음 something으로 알다가 자기가 nothing으로 생각하다가 마지막에는 everything이라고 그렇게 고백할 정도로 점점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성숙하니까 죽으면 끝이었다. 다시 이야기한다. 오늘 다시 이야기 한다. 중요하다. 저나 여러분들 SaGA, 제자훈련, 사역훈련생들 모두가 다 여러분들의 생이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을 주시라고 해야 한다. 그 사이에 복잡한 것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죽으면 다 끝나게 해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러면
첫 번째는 -오늘 7:22절처럼 말씀한 대로 모세는 40년간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우고 그의 하는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고 했다. 애굽의 모든 학술을 배웠다. 능통하다고 했다. 사람이 학문을 다해 능통하려면 적어도 모세는 기하학, 천문학 역사학, 수학, 논문학, 건축학, 일곱 가지 학위를 가질 정도로 당시 피라미드를 다 만들고, 애굽의 모든 수사학과 논리학, 파피루스로 쓰고 그 모든 것들, 최고의 머리를 훈련 받았다. 제자훈련 동안에 SaGA, 제자훈련, 사역훈련이 1년 만에 하나님께서 특별하신 은총을 통하여 머리가 개발되기를 바란다. 머리가 개발되는 방법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목요연하게 구원사적이고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머리가 제대로 발전되는 줄로 확신한다. 하나님께 머리에 지혜를 달라고 해야 한다. 그 말씀 한 절 한절이 내 마음에 교훈되게 해달라고 늘 인 사이트 영 사이트를 해야 한다. 영감 력과 통찰력이 충만하게 해달라고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이제 애굽에서 40년 동안 머리 좋게 훈련을 했는데 결과가 살인자가 되었고 광야로 도망갔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서 온갖 종류의 몸의 훈련을 받는다. 모세 양어머니 하셉수트 공주는, 그 아버지 터트머스 1세인데 터트머스 1세가 애굽의 파라오 1세의 강력한 파라오였다. 그런데 터트머스 1세가 아들이 없었다. 그의 딸 하셉수트 공주가 실권자였다. 그러니까 모세가 하셉수트 공주의 양아들이니까 그 아들이니 얼마나 강력했겠는가? 애굽에서 모든 대우를 다 받으면서 자랐다. 그랬던 그가 미디안 광야로 쫓겨나서 거기서 늘 이야기 하지만, 광야는 일교차가 너무 심한 곳이다. 일교차가 너무 심하니까 몸의 훈련이 너무 되는 곳이다. 광야는 일천지하에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찬 냉기이다. 광야는 온도가 보존이 안 된다. 물과 나무도 없다. 거기서 혹독(酷毒)하게 훈련을 받는 것이다.
 
저는 우리 생도들과 훈련생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우리 육신은 대우하면 대우할수록 더욱 버릇이 없어진다. 더 잘해달라고 요구한다. 잘해주면 더 높은 수준의 편안함을 더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 부분, 하나님께서 이 훈련하는 기간 동안에 우리의 몸을 훈련하는데 단순히 우리가 무슨 운동선수처럼, 이렇게 머슬 대회 나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The city of God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지고, 하나님의 소명을 가지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겠다는 그런 어떤 큰 가슴 떨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님 내 몸을 관리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생도들과 우리 훈련생들, 밤에 야식을 먹으면 안 될지, 될지요?? 훈련기간 동안에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
 
전에 우리 교회에 주철기 장로님이 계셨다. 주 장로님은 프랑스 대사이시고 외교안보로 청와대에 들어가셔서 얼마나 안보수석으로 얼마나 일이 너무 많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주 장로님은 몸을 어떻게 관리하시냐고 물었더니 선비같이 성실하신 분인데, 국가를 위해 사명을 위해 국가적인 사명을 위해서도 이와 같이 간절함을 가지고 자기 몸을 추스린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일 년 동안 여러분, 죽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고, 이사도 가지 말아야 한다. 제가 3년 동안에 그 어려움 가운데서 몸을 안 지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주위에 한 명도 없이 거의 코로나 다 걸리고 감기도 다 걸렸다. 그런데 저는 안 걸렸다. 이런 이야기 하다가 막판에 2주 동안 감기 걸렸다. ㅋ 내가 조금 눈 속에 손녀딸을 안고 5킬로를 걸었더니 감기가 걸렸다. 육신의 한계가 있다. 여러분 몸 관리해야 한다. 육체는 대우하면 대우할수록 더욱 버릇이 없어진다. 1년 동안 말씀을 통한 머리의 훈련뿐만이 아니라 몸의 훈련도 사관학교 들어갔다고 생각하시고, 운동을 안 하면 살들이 중부지방에 조금씩 모이다가 나중에는 베들레헴 산맥을 이루게 된다.
 
*고린도전서 9:27,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킬 때는 반드시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 시간과 모든 것들을 집중해서 해야 하며 지금도 저에게 부친을 전화하셔서 “오목사, 성전관리 잘 하나?”라고 하신다. 우리 몸 관리가 성전 관리이다. 1년간 잘 해야 한다. 우리는 6/1의 인생이 아니라 6배 인생을 산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주일 날 이 안식 지켜 새 은혜 입어서 구약은 노동이후에 안식이지만, 신약은 안식이후에 노동이다. 그러니까 6분의 1, 안식일을 잘 지키고자 한다. 우리는 주일 하루를 잘 지켜서 나머지 6일을 승리하는 것이다. 나머지 6일을 제대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10년 만에 할 일을 2-3년 만에 다 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와 몸의 훈련을 해도 이제 제일 중요한 것이다. 이 마음의 훈련이 없이는 안 된다. Head, Health를 훈련해도 Heart가 훈련이 안 되지 않으면 소위 broken heart, 깨어진 마음,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우리의 마음이 깨어져서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특별히 자아가 깨어지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80-120세 될 때까지, 모세가 죽을 때까지, 어마 무시한 마음을 훈련시키신다. 모세는 나름대로 사람들은 자기의 믿는 구석이 있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자기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아무리 내가 부족해도 우리 주위에 나보다 부족한 사람은 한 명 더 있다고 생각한다. 늘 사람은 자기의 마음이 그러하다. 그리고 자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자기는 믿는 구석이 하나 남겨둔다. 뭔가 의지할 비빌 언덕이 다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처럼 하나님이 쓰시려면 사람은 마지막 그것까지 싸그리 깨뜨리시고 훈련시키신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 몸의 훈련을 했다. 미디안 광야길, 가이드 투어 1인자이다. 다 하나님께서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려 내가 갖고 있는 미디안 광야의 투어 길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이 다 나름대로 갖고 있으니까 내가 사용해가지고 가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자기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했는가? 광야 투어 가이드를 할 만한 모세를 어떻게 훈련을 시키시는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 구름기둥이 나타났다는 것은 앞으로 가라는 뜻이다. 불기둥은 제자리에 서라는 뜻이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하여 가기 싫을 때가 있다. 나는 그래도 앞으로 가, 구름기둥, 어떤 날은 힘이 남았다. 힘이 남았는데 하나님은 불기둥을 딱 하나님이 주신다. 모세가 알고 있는 광야에 모든 지식을 무용지물로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실 때 반드시 그렇게 하신다. 반드시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라, 마음이 깨어진 똑똑한 사람을 쓰신다. 기독교에 유명한 말이 있다. 서울대학 출신 가운데서 목회 제대로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면 제가 S대학 출신 가운데 목회 잘 하는 사람도 한 명도 없다. 서강, ,,,, 숭실,,, 서울여자 대학 성균관 성신여대, ㅋ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을 깨뜨실 때 그 마음이 와장창 깨어지는 것이 쉽지가 않다.
 
여러분 사랑글로벌 아카데미다. 제자훈련이다. 특별히 제자훈련 사역훈련은 다 마음이 깨어지는 훈련이다. 희한하게도 12명이 나와 케미가 안 맞는 사람을 갖다 놓았다. 좀 나와 스타일이 아니다. 일 년 내내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기가 찬 것이다. 하나님의 신묘(神妙)막측한 훈련인데 마음을 깨뜨리는 훈련이다. 모세는 오죽하면 모세가 이 백성을 제가 낳았냐고 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내가 낳았냐고 묻는다. 그런데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고 난리쳤을 때 그 마음이 깨어진 훈련을 한 모세는 하나님께서 모세가 갖고 있는 머리훈련, 몸의 훈련을 통한 그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모세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게 하시고 그 모세의 마음을 깨뜨리셔서 그 마음이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져서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모세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깨어진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이루시고 그렇게 될 때에 모세가 나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출애굽기 32장 30절에 보면,
 
출애굽기 32:30,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가 너희가 속죄가 될까 하여는 무슨 말인가? 여기서 속죄가 되겠다는 것은 속죄물이 되겠다는 것이다. 제물이 되겠다는 것은 양이나 염소 같은 제물에 각을 뜨고 피를 흘리는 것이다. 온 몸을 불사르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내 온 몸에 각을 뜨고 내가 피를 흘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살려주시라는 것이다. 이 백성을 살리는데 내가 쓰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것이다. 신앙생활하면서 억울한 일, 답답한 일도 당하고 이해할 일도 많고 여러분의 인생에 각을 뜨고 피를 흘려지고 수많은 어려움들이 생긴다. 그때에 비로소 마음이 깨어져서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아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깨달은 사람은 그 순간 주님께 고백하여 이 민족과 이 사람들을 위해서 속죄물이 되겠다고 주님께서 나를 사용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야말로 이런 심정을 가지고 있을 때 무한한 헌신을 할 수 있고, 무한한 섬김을 가질 수 있고 무한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드릴 수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감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적당히는 안 된다. 오늘 여러분들과 만나려고 오후에 이발하고 왔다. 평소에 머리 스타일이 다르다. 무한한 말씀을 해야 되는데 우리는 속죄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의 고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전력투구하는 무한한 헌신, 무한한 섬김, 이것이 아니고는 이 시대의 감동이 안 된다. 훈련 담당하시는 분, 목사님들, 이번에 우리 3기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주의 종들, 생도들, 학장, 부학장, 모든 교수진들, 우리 앞에 많은 일들이 있는데 우리 마음가짐은 무한 헌신과 섬김을 통하여 그냥 나는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의 감동이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실 것을 믿는다.
 
결론은 그렇게 할 때에 머리와 몸과 마음을 통하여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시대를 향한 속죄물이 되고 어떨 때는 피도 흘리고, 어떨 때는 각도 떠야 한다. 우리나라의 진영논리 복잡함의 이것도 다른 방법이 없다. 누군가 이 시대의 심정을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의 심정을 깨닫고, 누군가가 무한한 헌신이 없으면 해결이 안 된다. 그럴 때 여러분과 저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의미 있도록 주님께서 만들어 주실 것이다. 찬양을 하나 하더라도 감동 있는 찬양이 될 것이며, 훈련을 하더라도 거기에 뭔가 열매와 변화가 있다면, 예를 들어 모세는 지팡이 하나라도 남들은 막대기였지만 머리와 몸과 마음의 훈련이 된 모세 같은 지팡이는 홍해를 가르는 지팡이가 된 것이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산에 올라가서 전쟁을 승리하도록 하는 기도의 지팡이가 된 것이다. 그냥 마른 막대기가 시대를 가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사랑의 교회의 이런 평가하고 이런 겉으로 볼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오늘 핵심은 다락방, 제자훈련, 사역훈련, 순장 반,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모두 다 거룩한 훈련 가운데 상승작용을 함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에 쓰임 받은 거룩한 주의 종이 되기를 한 분 한 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맞춤의 은혜를 물 붓듯 주님이 허락해 주실 줄 믿는다. 여러분들이 잘 하면 거룩한 파장을 일으키시는 것이다.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올해 45년 된 교회가 성도들에게도 기쁨과 축복이 되며 처음 나온 성도들에게는 도전이 되고 역할모델을 하게 되고 여러분들이 파장을 일으켜서 거룩한 공진이 되어서 진동이 일어나서 우리 교회에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거룩한 공진과 놀라운 전환점이 있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48기, 35기, 3기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모든 훈련생들을 축복해 주시길 소망한다.
 
♣요약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훈련생도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리며, 한 해 동안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며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훈련되어 주님의 주제 권을 일상에서 살아내고 평신도 훈련으로서 최선을 다해 감당해서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충성된 사명자로 종이 되어야 한다. 아프지도 죽지도 말고, 변화되어서 역할 모델이 되는 주님의 자녀로 성장하여야 한다.


-오늘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입학식과 48기, 35기 제자 반, 사역 반 개강예배를 드리는 이 훈련생들이 주님의 심정을 깨닫는 수많은 모세들이 제2, 제3, 제4의 21세기의 모세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쳇GPT, AI, 4차 산업혁명, VR 수많은 복잡한 이 시대 가운데서 그 모든 것을 깨뜨려 버리고 통거할 만한 기백을 가진 신실한 주의 종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길 소원하며 훈련생 모두를 기억해 주셔서 훈련생과 가르치는 교역자님들과 교수진들이 일 년 동안 무사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순전하게 기쁨으로 집중하도록 전력투구할 수 있도록 환경과 처지와 일정들을 주님이 지켜 주시길 서로 기도해주고, 우리가 노년에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지 말고 우리가 죽으면 끝나는 그 정도의 집중력과 결사적인 신앙의 여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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