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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2023년 1월 28일)-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

제목: “시대를 섬기는 기도의 지팡이”
말씀: 사무엘상 1:26-2:1
대표기도: 조현숙 권사님(여자포에버 회장)
찬양인도: 포에버 찬양(김원준 부목사님 지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말씀읽기: 백세현 형제(대학7부), 김의인 자매(대학7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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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26-2:1,
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1
1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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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2℃도가 넘는데 이 시간, 이 기도회에 주신 우리의 믿음과 환경과 건강과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감사함을 올려드리자. 특별히 고마운 것은 오늘 이 교통봉사가 정말 감사하다. 영하 12℃에 너무 감사하다. 영하 12℃가 넘는 이 시간에 또 한 가지는 오늘 포에버 내 예상보다는 밖에는 안 나왔지만 그래도 정말 고마운 것은 여러분 나이가 들면 넘어지는 것이다. 이 새벽에 넘어지는 것도 불사하고 “그 모든 환경을 뚫고 나오신 포에버 감사합니다.!!~하나님께서 평생 건강 주시기를 바라며 넘어지기 않고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기도의 제목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두 가지이다. 응답 받는 기도,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가 있다. 오늘 새벽에 ‘시대를 향한 기도의 지팡이’의 제목으로 이렇게 나왔는데 우리가 일단 기도의 지팡이를 들었으면 응답을 받아야 한다. 새벽에 정신 차리자.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방송으로 들어온 모든 성도들, 사정상 너무 추워서 못 오신 모든 성도님들, 모두가 마음을 같이 해서 하나님 앞에 응답 받는 기도를 해야 한다. 응답 받지 못한 대표적인 기도의 예는 가인의 제사이다. 가인은 자기중심으로 해서 응답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응답 받으려면 확실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바로 예수님 이름으로, “지금까지 네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안 하였으니 구하라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의 기쁨이 충만하리라.”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하나님 앞에,
기도의 대상은 누구인가?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설악산의 주인이시고, 우리 하나님은 한 강의 주인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대한민국의 전체 장래를 인도하시는 주인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삼라만상의 모든 조물주이시며, 그 하나님의 우리는 영적인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어마어마 한 것이다. 그분 앞에 기도하는 것이다. 아멘!!~~
 
제가 어릴 때, ‘우리 하나님은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이시다.’라고 했다. 한 번 말씀 드렸듯이 일본의 누가 와서 전도를 하는데 포스터의 제목이 뭐냐면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의 아들’이 와서 설교한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멋있는 폭포중의 하나인데 그 주인의 아들이 와서 설교를 하는데 얼마나 대단한가? 그래서 갔더니 목사님이 설교했다. 자 우리 모두가 다 이 한반도의 주인의 아들이다.
 
*무슨 힘으로 기도하는가? 성령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평생의 기도제목이 응답되기를 바란다. 기도의 지팡이를 든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제가 꿈을 꾸고 있는데 무슨 꿈이냐면 ‘6월 3일 날,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이 지팡이가 10만개를 들고 올라가서 주님 앞에 올라가는 것이다. 이 10만개, 하나에 만원만 해도 10억이다. 이것을 어떻게 할까? 여러분들 보고 이것을 내라고 안 할 것이다. 우리교회 밖에서 내라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하여튼 이 10만개를 가지고 모두가 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성령의 능력으로 외칠 때, 저 여리고는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남북문제가 통일되고 해결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그것을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상암 경기장에 이 10만개 기도의 지팡이를 갖고 간다는 것이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토비새(토요새벽기도회) 기도하게 되니까 그게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지금 제가 빌리그래엄 총 집회 제가 책임을 맡았는데 지금 준비위원장이 통합 측에 김의식 목사님이신데 지난번에 작년에 특새(특별새벽기도회)에 오셔서 을 설교하셨다. 기억이 날 것이다. 약국 하시는데 기도하시는 대로 다 되었다고 하시는 분 기억 날 것이다. 그 누님이 우리 교회 권사님이시다. 그런데 이 말을 듣더니 기가 막힌다고 하셨다. 다시 “목사님, 기가 막힙니다.”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는 줄 믿는다.
 
여러분, 조그만 한 기도지팡이를 다 가지고 와서 기도해야 한다. 그 다음에 오늘 같이 이 추운 날 야성을 가지고 내가 받는 기도의 지팡이를 갖고 올 때, 그 때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눈물 나다가 얼어도 상관이 없다. ㅋ 그게 야성이고, 능력이고, 기백이다. 할렐루야!!!~~
 
오늘 저는 엄마의 기도가 자녀의 기도로 연결되는 것이고, 그 연결된 자녀의 기도가 시대를 살렸다는 것을 말씀을 드릴 것이다. 오늘 “시대를 섬기는 기도의 지팡이”를 말씀하겠다.
 
한나의 기도가 기도하는 사무엘을 낳았다. 자 오늘 새벽에 공부를 좀 하겠다. 구약에 있어서 구약 성경에는 크게 세 번 역사의 대 전환기가 있었다. 무엇인가?
 
※구약시대 세 번의 역사의 전환기
첫 번째 –출애굽이다:모세
두 번째 –이스라엘 왕정시대:사무엘
세 번째 –포로귀한 시대:에스라
-이 세 가지가 구약 이스라엘 역사의 아주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는데 그런데 이 세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지도자를 주셨다. 출애굽 시대에는 모세를 주셨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그 광야를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그 다음에는 왕정시대를 여는데 왕정시대를 여는 지도자를 주셨는데 사무엘을 주셨다. 사무엘에 사울도 기름 붓고, 다윗도 기름을 부었다. 사무엘의 역할은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를 열었다. 마지막 사사이자, 제사장이고 선지자이다. 이 3권을 가졌던 그러니까 사사와 제사장과 선지자, 사사의 역할인 왕권을 가졌다. 사무엘이 사사시대에서 제사장 왕정시대로 전환할 때에 그 놀라운 역할을 감당했다. 나중에 포로귀한 시대에는 학자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가 있었다.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 기에서 귀한 해서 다윗왕국의 회복과 재건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는 나중에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의 말씀을 할 때, 학사 에스라도 보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에스라를 통하여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며 수문 앞에, 워터게이트 앞에 부흥이 일어났을까? 이 세 사람 가운데 어머니의 기도를 통하여 그 자식에게 그 기도의 능력이 그대로 전달됨으로 말미암아 어머니의 기도의 응답을 통해 그 왕정시대를 통해 하나님은 어떻게 사무엘을 쓰시는가? 3권을 가진 왕권과 제사장 권과 선지자 권을 가진 어떻게 사무엘일 이런 놀라운 권리를 갖고, 사무엘이 마지막 사사로서 14번째로 일을 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강력한 아들이 나올 수 있었는가? 어떻게 그렇게 시대를 섬기고 새로운 시대를 대 전환한 이스라엘의 제2의 전환을 하나님께서 인물을 주시고 사무엘에게 주셨는가? 이다. 한나, 그 어머니가 기도를 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모든 기도는 기도의 패턴이 있다. 한나의 기도의 패턴은 하나는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의 문을 열어주셨다.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하게 했다. 그러니까 한나에게는 고통이 기도에 대한 초청장이 된 것이다. 기도하게 하셨다. 여러분 모든 것이 잘되고 모든 것이 편안한데 새벽 기도 누가 나오는가? 모든 것이 잘 되고 모든 것이 완벽한데 새벽 기도를 왜 나오겠는가? 누가 기도하겠는가? 대부분 안 나올 것이지만 우리 사랑의 교회의 성도님들은 나온다. 잘되어도 나온다. 잘 되어도 몸부림을 치면서 나온다. 잘 되어도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과 어려움이 있어야 이 기도의 자리에 나온다. 그래서 고난과 고통이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 자꾸 나와서 기도를 하다보면 기도가 성숙해진다. 기도가 성숙해지면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한나가 기도할 때, ‘아 자식 달라고 하는 것은 두 번째이구나!!’를 깨닫고 ‘이 자식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기도를 성숙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께 이 자식을 드리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성숙한 기도를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셨다. 그래서 한나가 더 이상 수색이 없어졌다. 기도는 지난 주일에 말씀했듯이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수색이 없게 하신다. 기도의 패펀이 마음의 평안을 주신다. 그런 후에 기도에 대한 초청, 기도에 대한 성숙, 기도에 대한 응답, 그리고 기도의 대한 수준이 오늘 이 2장 1절처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하나님을 찬양한다. 놀랍게 한다.
 
*사무엘상 2:1,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기도의 찬양이다. 하나님을 찬양한다. 놀라운 찬양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한나에게 이 기도의 패턴을 통하여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는데, 기도하는 어머니가 기도하는 자식을 얻고 기 도 하는 자식을 통하여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두 번째 강력한 터닝 포인트였던 이스라엘 왕정 시대를 열도록 하나님은 사무엘을 사용하여 주신 줄 확신한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사무엘을 낳았다. 또 우리의 기도가 새로운 시대의 패턴을 연다.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는 다른 길이 없다고 했다. 오직 한국사회는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의 이 치열한 구도에서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다른 길이 없다. 제사장 나라가 되고, 이집트도 앗수르도 우리 때문에 복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허락하시는데, 사무엘은 기도의 아들이었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역사를 하시는데 사무엘이 기도의 아들로서 어떻게 새 시대를 열었는지를 보자.
 
사무엘은 세 가지 사역을 했다.
-첫째는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3권을 가지고, 왕권과 제사장 권과 선지자 권을 다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특별히 엘리 제사장 시대에 법궤를 빼앗고 회막에 있는 실로라는 중앙 성소가 거기에 성소의 기능을 다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가 해체 위기에 처했다. 그때 사무엘이 미스바 대각 성 운동을 주선해서 우상(偶像)을 척결(剔抉)하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는 종교개혁을 감행했다. 그리고 다른 사사들처럼 블레셋을 물리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존심을 회복했고, 백성들은 평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사무엘의 리더십을 통하여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무엘은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자기 집에 있는 라마로 돌아오는 이러한 사역을 계속 반복했다.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알 수가 있는데 사무엘상 7장을 보면,
 
*사무엘상 7:16-17,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그러니까 그 순회 정치를 한 것이다. 벧엘과 미스바로 순회하고 그 다음에 자기 있는 곳이 라마인데 돌아와서 이 순회 정치가 단순한 순회정치가 아니라 사무엘은 두 가지 정책을 갖고 사람을 키우고, 기도하는 것을 통해서 기도정치, 순회정치를 하게 된 것이다. 순회(巡廻)기도(祈禱)정치(政治)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전환할 때, 중재역할을 했고, 다윗 왕조의 기반을 마련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왕을 통해 다스리는 신정왕국을 세우겠다고 하셨지만 사무엘이 50세쯤 되어가지고 사울을 세웠고,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고,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니까 실패했다. 나중에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다시 기회를 얻었는데, 75세 때쯤에 소년 틴에이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다윗 왕조의 기반을 준비했다. 그러니까 사무엘은 다윗에게 있어서는 살아있는 교과서, 어떤 살아있는 메토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사사시대의 전체의 순회기도정치를 통해서 역사했고 그 다윗 왕국시대를 열게 되었다. 사무엘이 제일 잘 한 것 중에 하나가 라마 나욧이라고 하는 것인데 라마 나욧이라는 거기에 자기집이 있는 선지자 학교를 세웠다. 그 라마는 지명이름이고 나욧은 기숙사라는 뜻이다. 라마의 선지학교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선지자 학교, 요즘 말하면 신학교를 말한다. 신학교의 기원은 어디인가? 바로 사무엘의 라마 나욧이 아닌가 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행전 3:24,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그러니까 사무엘 때부터 선지학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사무엘 시대에 선지학교가 있었다. 어디인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서 도피한 곳에 사무엘을 찾아가서 라마 나욧에 가기도 했다.
 
*사무엘상 19:19-20,
19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그래서 죽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놀라운 일이다. 라마 나욧에는 선지학교가 있었고 주의 영이 임해서 예언하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사무엘은 젊은 생도들을 모아서 토라, 말씀을 읽고, 말씀을 기록하고, 말씀을 쓰고, 말씀의 능력을 찬양하고,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를 배우고, 전문적이고도 집중적인 신앙교육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들이 라마 나욧 출신의 선지자들이, 요즘 말하면 신학생들이 이런 사람들이 사무엘의 사람들이 나중에 다윗 왕정시대에 선지자로, 찬양사역자로, 제사장으로 활동을 해서 다윗 왕조의 기둥 같은 역할을 했다.
 
저는 사랑의 교회 주일학교가 이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사랑의 교회의 대학부, 청년부가 이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이 토요비전 새벽예배가 라마 나욧의 능력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토요비전 출신이 우리 교회의 중직을 감당하기를 바란다. 중직을 감당한 분들은 이 토요비전 새벽예배에 나와서 오늘 이 사무엘이 가르쳤던 감당했던 라마 나욧에서 가르쳤던 기도의 능력과 찬양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역사와 토라의 말씀을 읽고 쓰고 듣고 퍼블릭 리딩 어브 스크립쳐, 말씀을 암송하고 이 자리가 하나의 역사의 흐름을 주조하고 깊이가 스며있는 그런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토요비전새벽헌신 기도회가 21세기의 라마 나욧의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도한다. 이 자리가 기도 자체가 기도는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사무엘이 시작한 선지자 학교에서 배출된 수많은 선지자들과 생도들이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왕과 백성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감당했고, 이런 선지자들의 최고의 역할 모델이 누구인가? 기도로 태어났던 사무엘이었다. 저는 토비새 나오는 여러분들이 토비새에서 말씀을 전하는 여러 귀한 종들이 모두가 다 이 시대의 기도의 역할 모델이 되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SaGa, 사랑글로벌 아카데미인 SaGa를 이 코로나 시대에 세우게 하셨다. 남들은 코로나 기간에 남들은 다 문을 닫는데 우리는 SaGa의 문을 열었다. 코로나이후에 모든 것이 변화가 되고 코로나 이후 역사의 대 전환 시기에 하나님의 관점을 지닌 사무엘과 같은 시대의 인물들이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이 시대를 통해, SaGa를 통해, 사랑의 교회를 통해, 이런 인물을 배출하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뜻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나중에 이 선지학교는 엘리야, 엘리사 시대에 다시 언급 되는데 열왕기하 2장에 길갈, 벧엘, 여리고 같은 도시에 선지자 학교가 있었다고 나온다. 지난번에 말씀을 한 번 드렸다. 남들은 이 문을 닫는 이 코로나 이 시기에 하나님은 SaGa를 열게 하시고 SaGa를 통하여 이 시대의 라마 나욧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소원한다. 이스라엘 다윗 왕국 시대에 놀라운 영적 왕국 시대에 역할을 했던 강력한 선지자들, 정치 지도자들, 찬양인도자들, 제사장들을 배출한 그곳처럼 SaGa, 우리 일터 선교학교, 일터에서 주님을 섬기는 중요한 분들이 80여명이 넘게 등록을 했다. 여러분, 한국의 모든 신학교가 지금 미달이다. 그런데 지금 거의 다 미달이라고 한다. 지금 글로벌 아카데미에 80여명이 온 것이다. 복음 아카데미에도 50여명이 들어왔다. 예배 아카데미, 제자 아카데미 다 열심히 하고 있다. 이미 다 되어 있지만 SaGa가 가슴이 더 뜨거워 진 분들은 라마 나욧이 되게 해달라는 분들이 있으면 몇 명은 더 오픈해서 예배아카데미와 제자아카데미에 내일까지만 더 받을 예정이다. 하나님의 일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줄로 믿어야 한다. 기도의 어머니 한나를 통하여 시대의 터닝 포인트를 새로운 전환점을 갖게 했던 사무엘의 귀한 응답을 통해서 사무엘이 감당했던 세 가지, 마지막 사사로서 시대의 최고의 지도자로, 새로운 변혁을 일어나게 하는 그 모든 역할을 하며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교육을 해서 배출하는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이것이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나온 줄 믿는다. 그 결과 사무엘 상 2:1절을 보면 하나님은 축복하셔서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사무엘상 2:21,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이런 은혜를 주셨는데 찬양하고 이제 기도 응답의 패턴 가운데 고통 초청장, 그 다음에 기도하면 성숙하게 되고, 지난 주일에 이야기 한 것처럼 하나님의 심정은 네가 나에게 좋은 것 원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은 준비만 되면 나에게 더 좋은 것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마음이 평안하고 응답 받고, 이 사이에 무엇이 있냐면, 그 한나는 서원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젖 땔 때에 아이를 성막으로 보낸다. 주의 전에서 수종 들도록, 한나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없는데 마지막 남은 이 사무엘을 그의 모든 것을 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아들을 4-5세 때에 하나님께 아들을 올려드렸듯이 너무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눈물을 대신해서 찬양을 했다. 다시 말하면
 
*사무엘상 2:1,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기도의 선순환, 응답(應答)의 선순환이다. 이런 찬양을 모두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쉬운 일은 아닌데, 서원을 눈물로 하지 않고 찬송을 한 것이다. 기도와 찬양은 하나님 앞에 무장(武裝)이 되고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과 그 다음에 영적인 깊은 세계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대부분 똑똑한 사람들이 많지만 세상 것을 너무 많이 아니까 세상 적인 판단과 방향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움과 기름 부으심을 자꾸 이렇게 대치를 하고 자기 생각을 가지니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것을 많이 알아도 순전(純全)하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깊은 영적 진리 세계에 집중할 때, 내가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올해 6월 3일 날 상암 경기장에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이 이 시대를 바꾸시고 북한 김정은을 만져주셔야 한다. 우리는 방법이 없다. 우리끼리 싸우면 남북이 와장창해진다. 그래서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버려야 남북의 갈등이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더 큰 차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주님 앞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오늘 2장 21절에 보면,
 
*사무엘상 2:21,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한나가 기도를 통해서 얻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니니까 또 다시 세 딸과 다섯 아들을 더 주셨다. 저는 이렇게 한나에게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더 주셨을 때 브닌나의 표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ㅋ ㅋ ㅋ 나는 그게 늘 궁금하다. 우리를 조롱하고 우리를 어렵게 하는 표정이 어떨지 우리가 그걸 기대해 보자.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오늘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시대를 섬기는 하나님의 놀라운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란다. 시대의 어려움, 시대의 어려운 문제, 시대의 어려운 고통, 시대의 어떤 부조리, 이런 것들을 탓하지만 말고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자. 찬송하자. 강단기도 할 때 찬양이었다.
 
★찬송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1. 기도하는 이시간 주께 무릎 꿇고
우리 구세주 앞에 다 나아가네
믿음으로 나가면 주가 보살피사
크신 은혜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속에 기쁨 충만하네
 
2. 기도하는 이시간 주가 곁에 오사
인자하신 얼굴로 귀기울이네
우리 마음 비우고 주를 의지하면
크신 은혜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속에 기쁨 충만하네
 
3. 기도하는 이시간 주께 엎디어서
은밀하게 구할 때 곧 응답받네
잘못 된것 아뢰면 측은히 여기사
크신 은혜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속에 기쁨 충만하네
 
4. 기도하는 이시간 주를 의지하고
크신 은혜 구하면 꼭 받으리라
의지하는 마음에 근심 사라지고
크신 은혜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속에 기쁨 충만하네.

♣요약
하나님의 초청장을 받아 기도의 자리에 달려나온 부모 세대가 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에서 가정을 위한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간구할 때, 우리 자녀에게 기도의 지팡이와 믿음의 용량이 함께 계승되는 영적 변화산의 은혜를 체험해야 하며, 올해 다가올 6월 3일에 진행될 2023년 빌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집회를 통해 한국교회에 생명 사역이 새롭게 일어나는 역사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시대 가운데 우뚝 서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믿음의 포에버 1세대가 간절한 기도의 지팡이를 들 때, 다음 세대를 새 은혜, 새 역사, 새 언약의 거룩한 부흥의 공진을 일으키는 중심으로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한나는 그것을 엘리에게 표시하였다. 왜냐하면 엘 리가 그녀에게 용기를 주어서 안심하고 기도의 응답을 바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한나는 이 아이에 관한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바쳤다.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린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여 얻은 것이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빌려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세례를 통해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 바칠 때는 그들이 엄연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도록 하자. 게다가 그들이 여전히 우리의 위로가 되는 우리의 자녀란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한나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사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써 그 사실을 시인하였다. 감사는 우리가 마땅히 바쳐야 할 세금과도 같은 것이다. 한나가 받은 자비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특히 그것에 대핸 감사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한나의 감사를 여기서는 기도라고 한다. 한나가 기도하여, 왜냐하면 감사는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앞에서 간구했을 때는 그 음성이 들리지 않았으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는 모두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나는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간구했으나 이제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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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월 25일)
제목: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은혜"
말씀: 출애굽기 13:17-2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자: 설성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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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13:17-22,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운전을 하게 되면 우리의 길을 안내 해 주는 네비게이션이 있다. 네비게이션은 우리가 길을 안내 받게 되면 때로는 평소에 다니지 않았던 생소한 그러한 길을 안내하는 경험을 종종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소한 길로 우리를 안내하게 되었을 때, 그 네비게이션에 따르지 않고 내가 평소에 가던 길을 고집하면서 그렇게 가고자 할 때가 우리 가운데 분명하게 있다. 그렇게 내 고집대로 내가 지금까지 운전했었든 길로 우리가 가게 될 때, 어떠한 경험들을 했는가? 제 개인적으로는 내가 익숙한 대로 그 네비게이션을 따르지 않고 갔더니 어김없이 공사 현장이 나온다든가 때로는 접촉 사고로 인하여 차량이 상당히 막혀져 있는 그런 상황이 놓여 져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길을 안내해주는 이 네비게이션은 도로의 상황과 도로의 환경들과 여러 가지 데이터를 취합해서 그렇게 안내자 역할을 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로, 더 쉬운 길로 이 네비게션이 안내를 해주지 않게 되면 때로는 어떤 생각이 들게 되는가?


여러분, 우리는 그 마음 가운데 그 네비의 말을 듣기보다는 그냥 내가 운전했던 길로, 내가 익숙한 대로, 이렇게 운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들의 모습일 때가 더 많다. 이와 비슷하게도 오늘 본문 말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오게 하시고 약속의 땅, 그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더 편한 길, 그 지름길로 인도하셨던 것이 아니라,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그 홍해의 광야의 길로 돌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계시는 모습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봤을 때, 눈앞에 보이는 그 바닷길을 따라가는 것이 어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좋은 길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길이 오늘 본문 말씀의 17절에 말씀하고 있는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었다.


* 출애굽기 13:17,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이 길은 상업도로였다. 가는 길이 험하지 않고 잘 닦여진 그러한 길이었다. 그래서 대략 빠르게 걸으면 5일정도 소요가 되기도 하고 조금 천천히 이렇게 걷는다고 할지라고 대략 7일 정도의 소요가 걸린다고 한다. 그러한 짧은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했을 때, 이 지름길은 어떠한 길로 보였을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러한 길이다. 라고 분명히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러한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왜 그러한가?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신 그 가나안 땅으로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인가? 바로 이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기대와는 다르게 본문 말씀에서는 이렇게 17절에 말씀하고 있다.


* 출애굽기 13:17,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그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이 지름길로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으로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그러한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인도하지 않고 왜 광야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도하셨던 것인가? 마치 네이게이션이 도로의 상황을 다 파악하고 막히는 길로 인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상황과 모든 형편을 아시는 그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 시점에서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I. 하나님의 인도하신대로 순종해야 한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애굽에서 탈출하고 난 후에 그들 스스로 길을 정하여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그 광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들은 광야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당장 누가 보더라도 가기 편한 길, 가기 평탄해 보이는 그 지름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빨리 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는 그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은혜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때로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우리의 선택권이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은혜의 순간인줄로 믿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 뜻으로 내 경험으로 내 생각으로 그 길을 선택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로 가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다. 우리의 본능이 그렇다. 더 좋은 길, 더 편한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저는 목회자 자녀로 소위 PK로 태어났다. 부모님께서 교회를 개척하셨기 때문에 실제로 교회는 저의 집이었고, 저의 놀이터였다. 저는 살면서 이 교회를 빼놓고는 절대로 저의 삶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는 저에게 특별한 그런 장소였다. pk로서 어렸을 때부터 목회자에 준하는 그러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필수적으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것이 저의 가정의 모습이었다. 사실 복음을 완전히 깨닫기 전의 저의 모습은 모든 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리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특별히 주일 날 낮 예배드리고, 청소년부서 예배를 드리고, 저녁예배를 드리고, 심지어 부흥 예배가 있는 날이면 예배를 네 번이나 드렸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마음 가운데 만약에 선택할 수 있다면 예배를 이렇게 많이 드리지 않았을 텐데, 라는 그러한 부끄러운 마음이 그때 저의 마음이 들었었다. 예배를 자율적으로 드릴 수 있는 선택권을 부모님이 저에게 주셨을까? 절대로 주시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 복음의 능력을 완전하게 깨닫고 난 저의 모습은 목회자 자녀로서 이 예배에 드릴 수 있는 그 환경이 너무나도 은혜였다는 것을, 너무나도 감사의 조건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선택권이 있는 선택권이 없어서 심지어 억지로 하는 것이어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는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그 어떠한 선택권 없이 하나님이 전적인 인도하심을 받아 우리가 전진하며 나아갈 때에 광야와도 같은 그 장소에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있게 될 줄 믿는다.


* 출애굽기 13:17-18,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갈 길을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름길이 아닌 그 광야 길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그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그러한 은혜를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 광야 길로 인도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은혜를, 그 기적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다 지름길이 아닌 홍해 광야 길로 인도하셨을 때에는 그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목적이 있으셨다. 오늘 본문 말씀 17절에 보면,


* 출애굽기 13:17,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그 길로 인도하시지 않은 이유가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지름길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가?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될 텐데, 애굽 땅에서 힘겹게 탈출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런 전쟁을 하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히 마음을 돌이켜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간다.’ 라는 이 말씀에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시금 노예(奴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는 그러한 인생이 아니라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그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을 영적인 의미로 보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그런 인생에 머무르지 않고, 죄의 종노릇하며 살던 그런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은 고난의 길처럼 보이는 그 험난하고 그 힘든 광야의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더라도 죄의 노예로는 결단코 다시금 돌아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그 하나님의 선한 마음이 담겨있다. 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 애굽의 노예, 그 죄의 노예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원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은 우리의 눈에 좋아 보이는, 빠르게 갈 수 있어 보이는 길은 결코 주님께로 가까이 가는 길이 아니라 결국 과거의 애굽으로, 다시 죄의 노예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런 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이 분명하게 기억하길 소원한다. 신명기 8장 2절 말씀을 보면,


*신명기 8:2,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서 넓은 의미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고 하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며 시험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셨다는 것은 그들을 겸손(謙遜)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시험(試驗)하셨다는 것은 훈련(訓練)의 시간을 의미하고 있다. 4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그 광야의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선택들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을 붙들게 되는 그러한 훈련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주님만을 의지하는 이 훈련의 과정들을 통하여서 내 주장과 내 생각은 철저히 낮아짐은 통하여서 겸손하게 되고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따르는 그런 겸손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시간들을 통하여서 이 40년이란 광야의 시간들을 통하여서 배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우리들의 상황과 환경이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광야와도 상황이 우리의 현장 가운데 펼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그곳에서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광야와도 같은 그 상황과 그 환경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영적인 추억으로 가득한 그러한 추억의 장소로, 그러한 은혜의 장소로, 그 광야의 자리를 만들어 가실 줄로 믿는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저와 여러분이 붙들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대한 전적인 신뢰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그 신뢰와 그 믿음 가운데 우리가 있을 때, 그 광야를 장막으로 보게 되고 험난하고 어려움으로 가득한 그 광야를 하나님이 인도하심으로 가득한 은혜의 장소로 고백하게 되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 가운데 경험되고 고백되어지고 회복되어 질 줄로 믿는다. 광야를 장막으로 바꾸시는 그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II.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늘 경험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우리는 그 모습을 오늘 본문 말씀 21-2절 말씀에서 확인하자.

*출애굽기 13:21-22,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 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매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한 순간도 1분 1초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자 버려두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그런 홍해 길을 만났을 때에도 그 광야 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 막혀버린 바닷길이 갈라지게 되었고, 그 막다른 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의 길이 되었고, 구원의 길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 각자에게 허락하신 그 바닷길은 무엇인가? 그 광야의 길은 무엇인가? 그 바닷길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막막해 보이지만 결국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적을 경험하는 자리가 될 줄 믿는다. 저와 여러분이 마주하게 될 막혀버린 것 같은 그 홍해 바닷길은, 그 광야의 자리는 우리가 주님을 더욱 더 간절하게 찾아야 되는 그러한 자리인 줄 믿는다. 사방이 막혀버린 것 같은 그런 환경 가운데서 오히려 그 상황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되기를 소원한다. 인간적인 눈으로 이 광야를 보게 되면 광야라는 공간은 수시로 야생동물을 만나게 되는 너무도 위험한 공간이다.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그런 정착되지 못한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인간적인 눈으로 이 광야라는 공간을 보게 되면 절대로 우리들이 머물면 안 되는 그런 공간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믿음으로 눈으로 그 광야를 보게 되었을 때, 오히려 그 광야가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광야가 사람이 정착하여 살 수 없는 그런 환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하는 그러한 장소가 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광야를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해석되는 그런 믿음의 눈이 날마다 경험되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광야로 해석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미드바르’ 히브리어 단어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되어지는 히브리어 단어는 ‘다바르’ 단어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로 해석되고 있는 히브리어 단어는 ‘드비르’ 단어이다. 광야와 또 하나님의 말씀, 또 지성소라고 해석되어지고 있는 이 세 가지 히브리어 단어의 어근이 모두 같다라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을 통하여서 영적으로 깨달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살게 하신 광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그런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장소였고,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와 같은 장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하나님께서 광야라는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그 홍해 바다로 막혀버린 그 광야 길은 애굽 군대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던 그 광야는 먹을 음식을 찾지 못해 굶어죽거나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부재는 아무리 좋은 환경도 죽음의 광야로 만들게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아무리 열악한 광야의 환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리 가운데 함께 하시면 생명의 샘으로 바뀌어 지고 구원의 방주로 바뀌어 지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는다. 시편 4편 8절 말씀을 보면

*시편 4:8,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다윗의 평생의 삶에서 그의 고백은 어떠한 고백인가?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하나님 밖에 없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다윗이 이 시를 썼을 때가 언제인지를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이 순간은 바로 다윗의 셋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쫓아오고 있는 그 때에 다윗이 자신의 아들의 반란으로부터 도망가면서 이 시가, 이 고백이 바로 이 하나님을 향한 이 고백이었다. 다윗이 지금 마주 하고 있는 그 상황은 누가 봐도 암울해 보이는 상황이다. 누가 보더라도 절대로 안전해 보이지 않는 그러한 환경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수백 번 보아도 다윗은 현재 상황은 절대로 안전하게 볼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은 무엇인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내가 안전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친 아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그때에 다윗은 자신을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이 놀라운 고백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의 그 고백처럼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모드 어려움 가운데서 안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입술로 날마다 고백하게 될 때, 다윗이 경험했던 그 진정한 평안, 그 진정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경험하게 될 줄로 믿는다.


사람은 편한 길, 그리고 빠른 길을 선택해서 가려고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본능적인 모습일 것이다. 왜 그러한가? 편한 길과 빠른 길이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서 가장 좋은 길이다. 라고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편한 길로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들에게 편한 길이 아닌 불편한 길로, 때로는 울퉁불퉁한 그러한 길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때가 있다. 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선하신 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그 믿음으로 그분을 신뢰함으로 그분을 따라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현장 가운데 늘 베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줄로 믿는다. 어떻게 하면 내가 빨리 갈 수 있고, 성공하는 길로만 갈 수 있을까? 내가 가야될 길에 상태와 그러한 길이를 보는 그러한 인생이 아니라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내가 함께 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그 질문을 날마다 내 삶 가운데 되새겨 보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길 위에서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고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요약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맡겨진 그 값진 삶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온전히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실재가 되므로 예수님의 흔적을 드러내어 살며, 어떠한 선택권도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은혜임을 깨달아서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믿음의 선택을 하며 광야와도 같은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끝까지 보호해 주시고 버리시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인도자이셨다. 직접적으로는 모세가 그들을 지휘하였지만 그는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그대로를 지시하였던 것이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애굽 북부에서 가나안의 남쪽을 향해 가는 지름길로서 아마도 4,5일 정도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다른 하나의 길은 광야를 통해서 가는 훨씬 먼 길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실 때 바로 이 길을 선택하셨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으셨다. 이런 인도 방법은 사막을 행진할 때 꼭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즉 하나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기 백성을 돌보시며,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어주시고, 슬플 때 위로해 주시며,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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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22일)-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 10번 째.
제목: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peace) 코리아나"
말씀: 출애굽기 19:3-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의수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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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9:3-6,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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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주일 날 우리는 이 예배당에 불러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오늘 오른쪽에 보면 새해, 새 은혜, 새 역사, 이렇게 해 놓았는데 여러분은 어느 단어가 제일 마음에 닿는가? 올 한 해 새 은혜와 새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자 오늘 온라인과 지방과 가족과 내려간 모든 성도님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가지고 함께 하자. 오늘 본당에 들어오니 무언가 있지 않은가? 천장에 방패가 있다. 방패도 있고 우리 앞 뒤 ‘새 역사를 경험하기를 서로 바란다.
 
저는 명절 주일 마다 평소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목회적인 풀이랄까? 튼실하게 좀 세워야 할 것을 제가 강조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 교회 사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사랑의 교회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가 다 있는데, 교회 사역에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뭐냐면 생명사역인 줄 믿는다. 생명의 역사, 생명의 변화, 라이프 체인지이다.
 
오늘 본문에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6개월 정도 경험을 하고, 출애굽을 이제 해서 홍해를 지나고 17장에 보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이렇게 해서 아마 9개월 정도, 그러니까 모세 입장에서는 1년이지만 지팡이를 들고 난 다음에 일어났던 사건, 지팡이를 들고 한 일 년쯤 지나서 9개월-1년 쯤 된 경험이 나와 있다. 그게 4절에 보면,
 
*출애굽기 19:4,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주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업은 것처럼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그 홍해를 건넌 역사는 기적의 역사이고 죽을 사람이 사는 것이다. 생명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홍해를 건너는 생명의 역사가 지속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 사역의 제일 핵심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서 확대되는 것이다. 생명의 은혜가 계속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은혜가 확대가 되어야 한다. 헬라어로 이 생명이란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 그 놀라운 어떤 영적 신비의 생명, 이것을 ‘조에’라고 이야기 한다. 물리적인 생명, 육신의 유한한 생명, 이런 생명은 ‘비오스’이다. 제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는 일단 여러분이나 사랑의 교회나, 오늘 지방에 가서 오늘 온라인으로 들어온 성도님들, 느낌에 하여튼 가신 곳에서도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조에’의 생명의 역사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영원한 생명, 신비한 생명, 풍성한 생명, 이 생명이 교회는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다들 하지만 우리가 사회적인 이미지가 더 좋아지기도 다 있지만 결국은 그런 것들은 하나의 방법론이고 핵심은 교회 사역을 통하여 계속되는 생명의 역사가 재생산 되고 확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교회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조에(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 그 놀라운 어떤 영적 신비의 생명)
*비오스(물리적인 생명, 육신의 유한한 생명,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생명)
 
I. 교회는 생명 사역이다.
*창세기 1:28,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
-단순이 육신의 생명의 정도가 아닌 충만한 생명, 영적인 생명의 어떤 번성(蕃盛),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한 생명-‘조에’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고 난 다음에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다. 영원한 생명의 역사의 주인공으로 참여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이거는 너무 신비한 것이다. 육신의 눈 갖고는 이해를 못한다. 이것은 천사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한 것이다. 그래서 경건과 생명의 관한 놀라운 것은
 
*에베소서 3:10,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이거는 천사들도 알지 못하는 신비한 것이다. 이제 뭐로 말미암아,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너무 신비하다. 흔히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몸의 관계는 무슨 관계인가? 생명의 관계이다. 생명의 역사가 교회 사역을 통하여 계속 확산 되어가는 것이다. 이게 믿음의 뿌리이고 사역의 뿌리이다. 사랑의 교회가 회복을 넘어 부흥의 뜻이 다른 뜻이 아니라, 이 생명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확산되게 하여 주시고 더 확장 되어서 단순한 ‘비오스’의 어떤 생명이 아니라, 육신의 유한한 생명 정도가 아니라, 영적인 신비한 생명, 영원한 생명, 풍성한 생명의 역사가 사랑의 교회를 통해 계속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어떻게 보면 2차적인 것이다. 제가 과격하게 말하면 나머지는 다 데코레이션이다. 우리가 교회 사역을 해야 된다. 문화 사역도, 여러 가지 다 해야 되지만, 교회의 핵심 사역은 생명사역이며 이것보다 우선 되는 것은 없다. 맞지 않은가? 우리 교회는 이 뿌리를 튼실하게 견지하여 세워 나가야 한다.
 
II.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명을 깨닫는 것이다. 주님께서 가장 섭섭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내 뜻을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 뜻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하나님께서 풍성한 생명을 주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신비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오늘 5절에 나와 있다.
 
*출애굽기 19:5,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우리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나?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내 평생에 내 삶을 통하여 계속 펼쳐질 것인가를 뭐라고 말씀 하냐면,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언약, 우리에게는 생명의 역사가 확산 되어야 한다. 이 신비한 세계를 사람들은 모르고 적당히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차원이 아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 신비한 생명에 대해서 눈이 열린 하나님의 백성인 줄 믿는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며, 어린 양의 피로 되는 것이다. 이제 그렇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내 삶 속에 펼쳐져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언약으로 나타날 때, 언약은 두 종류가 있다. 무조건적인 언약, 조건적인 언약이 있다.
 
무조건적인 언약- 대표적인 것은 창세기 핵심 요절인 창세기 12:1-3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냥 아브라함이 무슨 자격이 있고, 아브라함이 무얼 잘하고 이게 아니고 그냥 불렀다. “너는 조상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창세기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언약이다. 너는 축복의 근원이 되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하신다는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통해 복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며 다 아는데 저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 큰 감동도 있지만 한편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너를 축복(祝福)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咀呪)를 한다는 무조건적인 언약을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을 함부로 폄하가 되는가? 무서운 것이다. 어마하다. 이게 축복 권과 저주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하나님의 놀라움은. 그래서 땅의 모든 족속은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축복의 모든 족속이 우리 식으로 하면 이웃이 축복의 대상이고 우리는 축복의 근원이다. 우리는 축복의 대상이 아니고 우리는 축복의 근원이고 축복의 대상은 땅의 모든 족속이다. 평소에 늘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 번 시내 산 언약을 통하여 이제 출애굽하고 난 다음에 한 9개월 쯤 지나서 시내 산 언약을 통해서 도장을 찍는 것이다. 6절에 보면,
 
*출애굽기 19:6.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특별히 창세기에서는 무조건적인 언약이었지만 출애굽기 여기서는 언약을 지키면,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약간의 조건적인 느낌이 있지만 그러나 크게 보면 그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너희는 내 제사장이 되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션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이다. 오늘 사랑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를 원하는 우리 한국교회 모든 주의 권속들이여,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주시는 아주 확성기 같은 음성을 듣기를 바란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라. 기가 막힌 말씀이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이 나라가 되라.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이 사람들은 지금 겨우 노예생활을 면한 사람이다. 겨우 노예생활을 면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무슨 제사장 나라, 축복의 근원, 이런 것 아직은 어울리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앞에 놓고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하신다.
 
제가 오늘 말씀을 설교제목을 쓰면서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 벌써 어제 누가 목사님, 팍스는 너무 ‘제국주의적’입니다. 라고 했다. 그러면 샬롬으로 할까? 크리스천 샬롬 코리아나? 팍스라는 말은 라틴어로 피스(peace)라는 말이다. 이것이 남용(濫用)이 되어서 그렇지 사실은 좋은 뜻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제목을 붙일 수가 있는가? 아니 하루살이 밥벌이도 힘들고 사람들과의 갈등도 일으키고 마음에 짐이 있고 고통이 있고 수많은 기도의 제목이 있고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우리들에게 어떻게 이런 제목,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 샬롬 코리아나? 여러분, 오늘 이 말슴을 여러분들과 같이 나누는데 여러분들과 저의 환경은 그래도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나은 줄로 믿는다. 시내 산 언약을 받을 때에 이 말씀의 대상인 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우리는 열 배, 백 배도 더 낫다.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고 오늘 이 말씀을 우리의 사명 선언문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오합지졸 같은 인생인데.. 이 명절 주일에 이 말씀을 하냐면 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종살이 한 지, 노예생활에 익숙한 자, 이제 겨우 풀려난 자들이다. 마치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을 놓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의 나라가 되라.”고 하신다. 창세기 12장에 축복의 근원이 무엇인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시고 계신다. 왜냐면 제사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제사장은 자기 배를 두드리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을 위해 사는 것이 제사장 몫이다. 종살이 익숙한 자, 오합지졸 같은 사람, 겨우 이제 어린 양의 피로 생명의 역사를 경험한 자, 기적과 같은 사람들이 홍해를 건넌 자에게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창세기에서 제 1언약을 주신 것을 출애굽기에 제2언약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증시켜 주시는 것이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기도의 제목이 되기를 바란다.
 
이 제사장 나라는 세상의 제국이 아니다. 오늘날 세상은 제국을 세우기를 원한다. 자기민족만 잘 되기 위해서 사는 나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에 제사장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제국을 세우시기를 원하신다면 이스라엘은 이미 끝났고 멸절되었을 것이다. 제사장 나라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것을 근거한 거룩한 나라이다. 어떤 거룩한 나라인가 세상의 풍요로운 나라가 아니다. 이 세상 나라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시작된 나라인줄로 확신해야 한다. 어린양의 생명의 피가 이 장자들의 생명을 지켜 주었고 여기에서 제사장 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오늘 우리 주위를 살펴보라.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보면 우리는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가족과 이웃과 사회는 평화와 샬롬과 구원에 복을 하나님이 주시길 원하시는데 그런데 현실은 남북도 둘로 쪼개져 있고, 또 남쪽도 갈등 가운데서 정치적 이념에서 여러 가지 갈등 때문에 어떻게 해결점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와 여러분이 오늘 날 제사장 역할을 잘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제가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라고 했듯이. 라틴어로 피스라는 뜻이다.
*Christian Pax Koreana=(pax=peace, salom) 제가 바라는 팍스 코리아나는 샬롬의 평가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깃발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곳마다 거기에 진정한 샬롬이 임하기를 은혜와 평강을 주시길 소원한다.
 
찢어진 나라가, 갈라진 진영이 서로 하나 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원한다.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주셨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나서 잘 해서 그들이 제사장 자격을 갖고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다. 쟁취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보면,
 
*요한계시록 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신구약 전체를 통틀어서 마지막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면 그 사도요한이 영적인 영안이 열려서 깨달은 것은 우리가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사장 자격이 있어 가지고 된 것이 아니고 쟁취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제사장이 되고자 어떤 능력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아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 용기를 가지고 마치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제 금방 나온 것처럼, 마치 오합지졸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의 부족함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레마의 말씀인 줄 확신한다. 오늘 이것을 마음에 다짐해서 하나님이 나를 제사장 나라로 삼아 주셨음에 너무나 감동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요한계시록 1:5,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나를 하나님이 나를 제사장으로 삼아 주신 그 은혜가 내게 너무 확신하게 되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이 은혜와 평강의 열매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은혜와 평강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것을 날마다 감격하고 감사하기를 바란다. 무슨 뜻인가? 나는 자격이 없고 오합지졸이지만 나는 노예 같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의 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면 여러분과 저의 삶에 무엇이 있겠는가? 바로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것이다. 아멘!!!~~ 여기에 눈물이 나와야 한다. 부친은 “눈물은 아꼈다가 뭐하게?”하셨다. 영웅을 보러 가셔서 울었다고 하셨다. 진짜 마음속에 아무것도 아닌 나를 제사장 삼아 주신 것에 감격해야 한다. 눈물을 두었다가 뭐하게??? 우리에게 날마다 있기를 바란다.
 
III. 우리나라는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인 줄로 확신한다. 데이바이데이, 이어바이 이어가 있으면 역사가 일어날 줄 믿는다.
Christian Pax Koreana, Christian salom Koreana,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샬롬의 평강을 이웃들에게 나누시며 축복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오늘 여러분들이 들어오면서 앞으로 45주년을 사랑의 교회를 놓고 한국교회와 함께 우리는 부흥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한 달 전에 미국 워싱턴 D.C와 뉴욕을 다녀오면서 제가 워싱톤 D.C는 자주 가봤고, 뉴욕은 열다섯 번 정도 가보았다. 제가 오랜만에 워싱턴 D.C를 가니까 워싱톤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정치 1번지 수도이고 뉴욕은 경제 1번지 수도이다. 그런데 뉴욕에 가니까 좀 불편하고 올드 했다. 여전히 정치 1번지이고, 뉴욕은 경제 1번지이다. 여전히 두 도시 영향력은 같다. 변한 게 없다. 그런데 내가 변했다. 여러분 인천공항을 가보면, 세계 여러 나라에 비하면 최고에요. 일본이나 미국이나 창이 가보아도 올드 한데 인천공한은 미래 지향적인 공항이다. 세상이 뭔가 달라졌다.
 
그러니까 서울이란 도시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이며 산이 있고 강이 있다. 그것도 큰 강이 있고 큰 산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가 토요일 날 느즈막에 일어나서 브렌치 먹고 오늘 산에 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30분 만에 산에 갈 수 있는 곳은 서울 밖에 없다. 서울뿐만이 아니라,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런 배산임수도 있을 뿐 아니라 서울은 역사까지도 있다. 독특한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폴란드나 UA라든지 이런 곳에서 몇 조씩 한국에 투자하고 방산, 원전, IT에 투자하지 않은가? 왜 이렇게 해외에서 한국에 투자하는가? 나름대로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나름대로의 기적으로 서울로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지만 그런데 동시에 안타까운 것은 겨우 저 출산율이다.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낮고 아직도 고아수출국이다. 정치적 입장은 말도 못하고 얼굴도 서로 안 보려고 하고 견해가 다르면 부모 자식 간에도 식사를 함께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결혼은 앞둔 커플이 견해가 다르다고 파혼이 되는 경우도 있고 지역, 세대, 이런 갈등보다도 정치이념이 더 심각하다. 한쪽은 한류가 있고 한쪽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올라가고 있는데 또 하나는 너무나 그렇다. 이 두 가지가 너무 큰 벽이다. 여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을까? 그냥 이대로 놔두어야 할 것인가? 제가 볼 때는 새로운 차원의 특별한 비전과 놀라운 새 길과 새로운 방향이 잡혀지지 않으면 나라는 길이 없다. 한쪽은 너무 자랑스러운데, 한쪽은 너무도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래서 여기에 무언가가 새로운 길, 새로운 방향을 하나님이 주셔야만 한다. 아니 우리가 말씀 속에서 우리가 그 말씀을 삼아서 집중을 해서 나아가야 한다. 영적인 새로운 길이 열리려면 우리 민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우리 민족은 조선시대 말기에 비참했다. 관료주의의 득세가 말도 못했다. 그리고 한일의약조약으로 관료들의 보신조약으로 관료들이 자기를 보호하려고 일반 백성들은 안중에 없고 또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로 삼고, 그 사이에 우리는 무슨 길이 있겠는가? 국가의 지도자는 엉망진창이고 일본은 식민지 정책을 쓰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명의 복음으로 주심으로 말미암아 학교를 짓고, 중고등학교를 짓고, 기독교 민족 사업을 짓고, 병원을 짓고, 이렇게 해서 이민족에게 복음으로 유일한 길을 열어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려고 그야말로 역사적인 오합지졸들을 노예 살이 하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좋은 면에 있어서 서울과 한국의 어떤 약진을 말씀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적은 의미의 팍스 코리아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팍스 코리아나를 진보지식인들이나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샬롬 코리아나로 여기면 되고 두 가지 다 평화와 질서, 새 시대를 여는 것이다. 과한 것이 아니다. 아시아나를 살펴보자. 중국은 지금 저대로 가면 희망이 없다. 공산주의이며 희망이 없다. 일본도 겉으로는 선진국이지만 아직까지 신민주의이고, 인도는 계급제도이다. 카스트 제도이다. 그러니까 동아시아의 유일한 희망은 대한민국이다. 본래 성경이 들어와서 번역될 때에 한자, 일본말, 한국말에 ‘자유’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 자유라는 말을 번역할 말이 없었다. 수천 년 봉건사회에서 중국도, 일본도, 한국도, 자유라는 성경적 개념의 이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들어와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해서 그 자유가 들어와서 우리나라가 자유민주공화국이다. ​이것이 오늘 이만큼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예배드리는 축복이 있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동아시아, 아시아, 샬롬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주시길 바란다.
 
*이사야 19:24~25
24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여러분 애굽은 이스라엘을 종살이 시킨 나라이며 못 된 나라이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원수이다. 잔인한 나라이다. 어떻게 애굽과 앗수르가 함께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의 삶을 제대로 살게 되면 주위에 있는 애굽과 앗수르도 함께 샬롬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서 우리를 괴롭힌 나라이고, 일본도 괴롭혔지만 우리가 잘 하면 중국도 복을 받고, 일본도 복을 받는 것이다. 세계 선교 마무리는 중국 사람들이 떼거리로 선교를 나가야 세계 선교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중국 교회가 새로워지려면 우리가 잘하면 된다. 중국교회가 뷰흥을 가져올 수 있도록 우리가 축복의 근원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앗수르 같은 일본, 중국 이스라엘 같은 한국이 같이 축복을 받아서 다 같이 평강을 누리기를
Christian Pax Koreana 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제가 말하는 Christian Pax Koreana는 어린 양의 피로 세워진 나라이다. 이 제사장 나라는 어린양의 피로 세워진 거룩한 나라이다. 올해 45주년에 6월 3일에 빌리그라함의 50주년 기념으로 다시 한 번 이 나라가 부흥으로 임하시길 원한다. 9월 25일 한국교회 섬김의 날에는 교회마다 이 사명을 확증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원한다. 오늘 명절에 개인적으로 적용하자. 이 말씀이 나와 어떤 연관이 있고 나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첫째 적용은- 과거 현재형을 누려야 한다.
-과거의 은혜가 현재화로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제사장나라를 감당하기 위하여 첫째 우리는 과거에 은혜가 우리의 것으로 접목되어야 한다. 과거의 은혜가 현재화 되는 것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길이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백성이 받은 축복을 우리가 받는 것이다. 인생의 진퇴양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 생활에서 받은 축복을 오늘도 받게 하시고 그 이유는 5절이다.
 
*출애굽기 19:5,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하나님께 속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속한 것이다. 과거의 은혜가 현재화가 된다. 여기에 우리가 집중하면 하나님은 베풀만한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두 번째 적용은- 사명선언문 개인적으로 쓰는 것이다.
-제가 출애굽기 19장은 사명 선언이라고 했다. 오늘날은 많은 젊은이들이 보는 것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사명선언을 쓴다. 비전을 쓴다. 이런 것들을 안 한다. 저희들 시대 때는 아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이 무엇인가를 그걸 써보고 비전선언으로 전략도 만들고 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 것으로 접목이 되어서 여러분의 것으로 사명선언으로 쓰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과거의 은혜가 오늘 우리의 것으로 되길 확신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은혜가 우리에게 과거가 현재형으로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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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적용은- 거룩한 공진이 일어나는 것이다.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는 것처럼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나를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고 두 개들 던지면 더 크게 파장이 되고 여러 개를 던지면 큰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의 제사장적 사명이 과거의 현재형 사명을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집중하면 그것을 같이 할 때, 거룩한 파장과 공감대가 일어난다. 전체가 영향을 끼치고 작은 파문이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온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마음으로 집중할 때, 이 파장이 우리 주위에 그대로 영향을 끼치리라고 확신한다. 얼마나 파장이 커지냐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기도했듯이 전국 교회가 파장이 일어나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교회가 되고 있다. 여러 교회들이 사람에게는 진짐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가 파장이다. 여러분이 제사장 나라가 되면 된다. 내 인생이 오합지졸 같고 아직까지 노예근성이라 할지라도 파동을 일으킬 때,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시며 움추림을 하나님은 펼치게 하시고 갈 바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불태울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거룩한 진동이 있기를 축복한다.
 
♣요약
초라하고 노예 살이 한 우리를 어린양을 통해 생명주심에 감사하며 거룩한 백성 삼아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이새 해에는 새 은혜, 새 역사, 새 언약을 사모하며 엎드려서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의 역사가 확산되는 생명사역의 부흥이 되기를 소원하며 우리 공동체가 모두 한 마음으로 제사장 나라가 되어 사명 선언문을 올려 드릴 때,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고 거룩한 보혈의 제국을 이루어가기를 소원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성도가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신약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즉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할 때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과 불신자 사이를 중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제사장이 되려면 먼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맹세해야 한다. 이 계약의 제정자, 즉 최초의 제안자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다.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신 축복들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받는 모든 위로도 우리가 하나님께 알려진 바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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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월 18일)
제목: "일상, 하나님의 나라!"
말씀: 미테복음 4:1-10
찬양인도: 쉐키나(이 디니엘 부목사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자: 빅인기 부목사님(목양 3팀장, 중보기도사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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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복음 4:1-10,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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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시험을 본다. 학창시절 중간고사 기말고사 뿐만이 아니라 수능도 있다. 또한 학교를 졸업하고 난 다음에 직장에 취업하기 위하여 취업시험도 보고 직장에서 진급 시험도 본다. 그뿐이 아니라 어떤 자격증을 갖기 위하여 자격증 시험, 운전면허 시험도 본다. 이런 시험들은 우리를 기쁘게도 하지만 어떨 때는 심각한 좌절 가운데 빠지게 하기도 한다. 저는 운전면허 시험에 떨어져서 좌절에 빠졌다. 무려 8번이나 떨어졌다. 학원비 아껴보려고 친구한테 그냥 한 번씩 배우고, 한 번씩 운전해 보고 시험을 쳤는데, 나중에는 시험 치는 비용이 운전학원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나왔다. 여덟 번 떨어지고 난 다음에 아홉 번째에 붙었는데 너무 기뻤다. 20년 동안 무사고로 운전하고 있는데, 한 번씩 도로에 운전하며 운전연습 차량들을 보면 짠한 동질감을 참 많이 느끼곤 한다. 시험은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도 하고 우리를 기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시험은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도 동일한 여러 시험들이 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 서에서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찾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라고 말씀한다. 성도들을 시험에 빠뜨리기 위하여 어떨 때는 우는 사자의 두려움으로 또한 어떨 때는 광명을 천사처럼 달콤한 유혹으로 성도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위협한다.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두려움을 주고 또한 우리를 유혹하고 결국에는 경계심을 제거하여 시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인류를 대표하는 첫 번째 아담도 뱀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인류를 모든 오염된 가운데 태어나게 하고 살아가게 했다. 이처럼 치명적이다. 또한 너무 어렵고 힘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항상 이 모든 시험들이 어렵다거나 힘들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그의 서신 서에 “네 형제들아 너희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당할 때 우리에게 기쁘게 여길 것들을 권면한다. 수제자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6-7절에 보면,
 
*베드로전서 1:6-7,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신앙인들에게 다가오는 시험, 이 시험을 어떻게 견디고 이기느냐에 따라 우리 신앙생활 가운데 치명적인 어려움을 줄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될 수도 있다고 권면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오는 이 시험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가는 가의 문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멋지고 좋은 모범적인 답안들을 보여주셨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이다. 예수님은공생애를 시작하며 마귀에게 당하시는 이 세 가지의 시험, 이 시험에서 너무나 못 있게 이기심으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 가운데 다가오는 시험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승리의 비결들을 함께 나누고 우리의 삶 가운데 오는 시련과 어려움들을 승리할 수 있는, 비결들을 배워갈 수 있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예수님이 당하신 첫 번째 시험이다.
I. 첫 번째 시험은 삶의 모습에 대한 오해입니다.

-이 시험은 마귀는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께 찾아와서 돌을 변하여 떡으로 만들어 먹을 것들을 촉구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3일을 굶으면 담을 넘지 않을 군자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배고픔들이 너무 심각한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저도 예전에 일주일 정도를 금식한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초반부에는 견디었다. 마지막 2-3일 정도 남겨두고서는 금식 끝나고 나서 먹을 것들을 생각하며 그 상상으로 남은 시간들을 견뎠다. 금식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주일을 금식도 이렇게 힘들 진데 40일 금식하신 예수님,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육체의 모습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동일하게 고통과 배고픔을 경험하신 예수님이셨다. 그 예수님께 마귀가 시험하는 것이다. 먹을 것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예수님께 배고픔의 문제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문제였다. 마귀는 예수님의 약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와 집요하게 공격한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 굶주림은 삶의 중요한 현실이며 우리가 당면한 현실의 어려움을 상징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돈이 없어 고민하고 몸이 아픈 것 때문에 어려워하며 불안한 미래 때문에 힘들어 한다. 우리의 가장 원초적이며 현실적인 어려움 아닌가?
 
예수님도 우리의 어려움들을 아셨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친히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이런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마귀는 우리에게 찾아온다. 또한 예수님께 이야기한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역으로 이야기하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셔야 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친히 너의 자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너를 돕고 일으키시며 그 문제를 하나하나 다 풀어주셔야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의구심들을 우리에게 던진다. 시험하는 자는 구체적인 현실들 앞에서 해결을 주지 않는 예수님께 실망하고 그 결속력들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시험에 빠지면 우리의 속에 원망이 생긴다. “하나님, 왜 이런 문제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가요? 왜 나만 힘든 걸까요? 하나님 나를 사랑하는 것 맞습니까? 아니 하나님 게신 것 맞습니까?” 이런 의구심과 불안함 들이 우리 속에 솟아난다.
 
※얼마 전에 풀룻 연주자인 송솔나무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허준, 이산, 동이, 드라마 주제곡들을 연주한 아주 탁월한 풀룻 연주자이다. 어렸을 때, 참 부자였다고 이야기 한다. 아버지께서 유명한 출판사를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도피성으로 어쩔 수 없이 엄마와 누나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 참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아버지의 사업이 완전히 망했다. 아버지는 도망자가 되에 연락도 안 되었고 엄마와 누나와 함께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던 중, 어려움 끝에 줄리아드 음대에 프리스쿨에 풀룻 연주로 합격했다. 어려운 현실 가운데 엄청난 은혜였다. 이것만이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고 소망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던 중, 그에게 힘겨운 일이 찾아왔다. 음악연주자에게 악기는 생명과 같은데 그 악기를 세 번이나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첫 번째 도둑맞고, 두 번째 도둑맞고, 마지막 한 악기가 남았는데 천만 원이 넘는 그 악기마저 도둑맞은 것이다. 그때 그는 심각한 절망 가운데 빠졌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요? 내 삶을 돌보고 계신 것 맞습니까? 하나님,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교회를 떠났다. 그런데 만약 이런 마귀의 속삭임,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런 속삭임이 예수님을 위한 것인가? 그것이 아니다. 이 마귀의 속삭임은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의 음침한 속삭임이다. 이 비슷한 속삭임이 있다. 마태복음 27:40절에 나온다.
 
*마태복음 27:40,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십자가를 향하여 매달린 예수님께 내 뱉은 사람들의 조롱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동일한 속삭임이다. 마귀의 요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인간, 이것을 가장 원하는 것이며 마귀가 기대하는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라면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해 주셔야 되는 것 아니냐?’는 그의 외침이다. 하나님이 너의 어려움의 삶에 찾아오셔서 너를 건져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너를 도와 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 한다. 혹시 근본적인 문제로 시험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는가? 동일한 이런 마귀의 외침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5-37절에 보면,
 
*로마서 8:35, 37,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가 얼마나 곤고한 문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 어떤 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고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에서 붙들고 계심을 약속하고 있는 줄 믿는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는 어려움 가운데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의 간구 가운데 응답해 주셔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가 맞다 하지만 또 다른 은혜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들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을 믿는다. 시편 23편에 나오는 고백처럼,
 
*시편 23:4-6,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사망의 음침한 가운데서도 주께서 지팡이가 되시고 원수가 바로 앞에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상을 차려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럴 때 성도는 고백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 그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우리에게 고백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
 
예수님이 당하신 두 번째 시험이다.
II. 두 번째 시험은 삶의 이유에 오해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성전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뛰어내리라고 재촉한다. 이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까지 동원해서 시험을 한다. 시편 91편 11-12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천사들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시편 91:11-12,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 말씀을 인용하여서 “뛰어내려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너를 구해 주실 거야.”라고 이렇게 유혹한다.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에 대하여 확신하며 뛰어내리는 것을 요청한다. 이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권능을 증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그래, 내가 한 번 뛰어내리지. 하나님 정말 권능과 능력이 있어, 내가 뛰어 내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천사들을 통하여 나를 보호해 주실 거야. 야, 잘 봐, 하나님이 얼마나 권능에 있는지, 능력이 있는지, 똑똑히 봐?” 하면서 풀쩍 뛰어내릴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마귀의 예수님은 요청에 전혀 응답하지 않는다. 왜 그랬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증명할 수 있는 이 상황 가운데 왜 예수님은 묵묵부답(黙黙不答)이셨는가? 마귀의 말에는 하나님의 능력만 나타날 뿐이다. 능력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에만 집중할 때, 우리는 시험에 빠진다. 그 능력을 집중하고 신뢰하지만 어떨때는 그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필립 얀이 지은 책 제목 중에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라는 책에 실망하는 것이다. 왜 실망하는 것인가? 실망이라는 항상 기대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며 나타난다.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실망이 없다. 기대하기 때문에 그 기대한 대로 결과들이 나타나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실망할 때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 이만큼 내가 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되죠, 하나님, 내가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봉사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모든 것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하나님 기도 가운데 응답해 주시고,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되죠?”라고 그런 기대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마치 하나님은 능력의 자판기처럼, 내가 어떤 input을 넣으면 하나님으로부터 output이 나와야 된다. 라는 은연중에 그런 기대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나님, 우리 아이가 이번에 대학교 시험에 떡하니 합격해서 하나님께 영광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이번 진급 시험에 합격해서 진급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질병을 주께서 낫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께 영광 올리게 주십시오.” 이런 기도가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하지만 이런 기도들, 이런 바램들, 이런 하나님의 능력, 이 능력 가운데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있다. 그것은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내기 위함보다 하나님과 먼저 교제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가운데서 그 관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어리 적에 가끔 퇴근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사간 적이 있다. 아이들이 치킨을 좋아하고 햄버거를 좋아했다. 유독 많이 좋아했다. 한 번씩 치킨이나 햄버거를 사서 한 손에 들고 집으로 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이들이 저를 보고 막 달려온다. “아빠!!!” 하고 달려와서 저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함과 동시에 다른 편에 있는 봉투를 낚아채서 달려간다. 저는 내심 하이파이브하고 나서 아빠를 안아주기라도 하든지, 뽀뽀라도 한 번 해주든지 해줄지 알고 “아빠 감사해요. 잘 먹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할 줄 알고 시간을 줄줄 알았는데, 이 봉투만 들고 가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왔지만 내심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만 집중할 때,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그 능력만 우리가 바라본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 그 마음이다.
 
고린도전서 1:9,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 이전에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줄 믿는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역대하 16장을 보자.
 
*역대하 16;9,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신다. 그리고 어떤 자들을 찾으시는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하나님을 향해 시선이 고정된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향하여 능력 베푸시는 줄 하나님이신 줄 믿는다. 능력이전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먼저이고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다.
 
제가 지난주에 제천기도동산에 다녀왔다. 신년을 시작하기 위하여 기도하러 간 것도 있고 제 삶들 가운데 여러 어려운 문제들, 제 두 자녀의 문제, 또한 저의 문제, 저의 가정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간구하기 위하여 기도할 문제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기도동산의 본당에 앉아 처절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 문제를 주께서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 도와주셔야 합니다.” 막 기도하는 중에 너무 답답하게 기도하는 중에 주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인기야, 힘드냐? 네 주님, 너무 힘듭니다. 너 힘듦을 내가 모를 것 같냐? 네가 힘들어 하는 것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너는 내 것이다. 너의 삶을 내가 책임진다. 너의 삶, 그 능력 가운데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너의 삶을 책임진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라고 그 마음을 주시는데 하나님 앞에 끄억 끄억 소리 내어 울었다. 저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기대하고 계셨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을 능력의 자판기처럼 오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님은 이 마귀를 향하여 외치신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우리가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때, 이 마귀의 시험은 말씀으로 물리칠 줄 믿는다. 아멘.
 
예수님이 당하신 세 번째 시험이다.
III. 세 번째 시험은 삶의 목적에 대한 오해입니다.
 
-삶의 목적에 대한 오해, 마귀의 마지막 시험은 예수님을 가장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모든 영광들을 다 보여 주신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야기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야기 한다. “이거 다 너에게 모든 것들을 줄게. 나에게 딱 한 번만 절 한다면 모든 것들을 줄게.” 모든 것들을 다 가질 수 있는 정말 좋은 진 기회이다. 마귀에게 절만 한 번 한다면, 마귀의 유혹이다. 이 마귀의 유혹은 세상의 화려한 물질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고 또 마음껏 누리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우리의 욕망들을 부추기며 계속해서 유혹한다. 그 욕망이 유혹으로 넘어간다. 이런 유혹들은 우리의 삶의 도처에 널려있다. 조금만 신앙양심을 접으면 수많은 수익들이 생길 수 있고, 또한 한 번만 눈을 질끔 감으면 얼마간의 소유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신앙이라는 것만 잠깐 접으면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누리는 그 기쁨들을 동일하게, 그 희락들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다. 라고 유혹한다. 마귀의 유혹이다. 잠시 접어두기만 하면 한 번, 한 번만, 접어두기만 하면, 요한은 이런 마귀의 유혹들을 너무나 잘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요한 일서를 보면,
 
*요한일서 2:16,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마귀는 우리를 유혹한다. 이 마귀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한 번만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다 줄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것을 다 줄게.’ 라고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해
 
유명한 신학자 리차드 포스트는 돈과 권력과 섹스, 성으로 표현한다. 마귀의 성 가운데 있는 무기이다. 딱 한 번만 눈을 감으면 그것이 나의 것이 된다고 이야기 한다. 혹시 복 요리를 좋아하는가? 복요리, 아주 맛있는 보양식이다. 하지만 복어가 갖고 있는 독성은 죽음의 아이콘 청산가리보다 몇 십 배나 강력한 독을 품고 있다. 돈, 권력, 성이 우리의 일상이지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갈 때, 이것은 우리의 신앙 가운데 치명상을 일으킨다. 순식간에 절망가운데 빠진다. 불의한 재물이 되고, 오만한 권력이 되고, 불륜이 되는 것이다. 이런 유혹들은 최초 아담의 유혹인 뱀을 유혹하는 것과 흡사하다. 아담이 그 전에도 선악과를 참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뱀이 와서 유혹을 한다. “저거 한 번 먹어봐, 먹는 날에는 하나님처럼 될 거야.” 그때부터 선악과를 보는데 보암직도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하는 탐스러운 과일이 되었다. 그리고 유혹한다. “한 번만, 한 번만”, 이거 한 번이 너무나 치명적이다. 한 번 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그때부터 우리의 삶이 된다. 조금 지나면 어떠한가? 절망적으로 우리의 신앙 가운데 심각한 어려움 가운데 빠지고 수많은 후회들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저의 이야기이다. 제가 목사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참 많이 경계하지만 한 번씩 한 번씩 그런 유혹들이 엄습(掩襲)해 온다. 어떨 때는 그런 유혹 가운데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제 스스로 시달린다. ‘아이구 목사가 되어서... 내가.’ 어렵다.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반대도 있다. 항상 우리가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아담처럼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은 10대의 나이에 이억 만리 바벨론에 포로(捕虜)로 잡혀간다. 10대의 나이에 왕의 진미(眞味), 먹으라고 주는 그 맛있는 음식들을 거부한다. 장년이 되어서는 금 신상에 절하기만 하면, 그가 물을 수 있는 것이 참 많았다. 그런데 그 금 신상에 절하지 않고 그 세 친구들과 함께 풀무 불에 던져지는 것들에 주저(躊躇)하지 않는다. 그의 노년이 되었을 때, 90대의 노후가 되어 왕 외에는 어떤 간구들을 하지 않아야 됨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그렇게 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유혹 가운데서도 그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전에 하던 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다. 한 번만 눈 찔끔 감으면 모든 것들이 해결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자존심을 지키며 그에게 절하기를 원하는 마귀의 유혹가운데 단호하게 맞서 물리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풀무 불 가운데 보호해 주시며 다니엘을 사자의 입 가운데 건져 주신 줄 믿는다. 아멘, 수많은 유혹 가운데서 우리는 얼마나 연약(軟弱)하며 연약하다 못해 나약(懦弱)한 존재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나는 나약하지만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은 절대 나약하지 않는다. 나는 부족하지만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강하고 능하신 용사인줄 믿는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그 성령님이 날마다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신줄 믿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로마서 8:26,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연약함을 너무 잘 아신다. 하지만 그 성령이 우리를 도우신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계속해서 간구하고 계신다. 말씀을 마무리 한다. 앞에서 나왔던 풀롯 연주자, 송솔나무 연주자 이야기 뒤 부분이다.
악기를 세 번이나 도둑맞고 하나님을 떠났다. 십 년이나 하나님을 떠났다. 그렇게 연주자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을 무렵, 그의 친한 동료가 전도 집회 때에 그를 초청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그를 따라가 전도 집회에 앉아있었다. 한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었다. “내가 도둑맞은 게 무엇이냐?” 송솔나무씨가 하나님께 대답한다. “하나님, 제가 생명같이 여기던 풀룻을 도둑맞았어요.” 하니, “아니 네가 도둑맞은 게 무엇이냐?” “아니오. 하나님, 제가 풀룻을 도둑맞았습니다.” “그래, 네가 도둑맞은 것은 풀룻이 아니라, 나의 대한 마음이야. 나를 도둑맞았어.” 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그는 그 자리에서 예배 마칠 때까지 그는 펑펑 울면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성탄절 저녁에 TV를 보는데 TV에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구출하는 한국사람 영상이 나온다. 누굴까? 벤을 구출하는데 벤을 보니 총알자국이 너무 많은 것이다. 언제 죽을지,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벤을 통하여 다른 나라로 구출하는 그 사람이 그 송솔나무 그 사람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서 찾아보니 그분이 바로 송 솔나무씨였다. 하나님 앞에 그를 드리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난이 닥치면 낙심하고 의심에 맞기 쉽다. 또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타락한 우리의 본성이며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 주신 이유는 승리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승리하는 비결들을 보여주셨고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 또한 마귀의 시험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을 줄 믿는다. 마귀의 시험들은 공통점이 있다. 계속해서 우리를 보게 한다.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게 한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시선’이라는 찬양이 계속 떠올랐다. 그 가사를 보면,
 
1절-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주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2절- 성령이 나를 변화시켜 모든 두려움 사라질 때 주의 일을 보겠네. 황폐한 땅 한 가운데서 주님 마음 알게 되리.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시험이 난무하는 우리의 일상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가운데 우리의 시선들을 내게로부터 주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우리의 일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줄 믿는다. 수많은 시험과 유혹 가운데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봄으로 승리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일상이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  ~~

♣요약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서 일상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여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향하는 시선들을 주님께 고정시켜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능력 주심을 확신하며 모든 연약함과 마귀를 이겨내게 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선포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명한 결투 즉 천사 장 미가엘과 용,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아니 뱀 자신과의 백병전의 사건을 보게 된다. 이 싸움에서 여자의 후손은 시험을 받고 고통을 당하며 그의 발꿈치를 상한다. 그러나 뱀은 그의 시험에서 완전히 실패하며 그의 머리가 깨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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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월 16일 (782)
1. 기업이 발표한 실적이 시장 추정치보다 크게 낮아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상황을 뜻하는 말은?
①어닝 시즌 ②프리어닝 시즌
③어닝 서프라이즈 ④어닝 쇼크
2. 매년 초 근로소득자의 급여에서 전년도에 원천징수된 세액의 과부족 여부를 따져 세금을 더 냈다면 환급하고, 덜 냈다면 더 부과하는 절차는?
①세액공제
②유상증자
③감가상각
④연말정산
3. 한국의 ‘4대 보험’에 속하지 않는 것을 고르면?
①국민연금 ②연금저축
③산재보험 ④고용보험
4. 배를 만드는 산업을 뜻한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이 세계 발주량의 37%를 따내며 선전한 이 업종은?
①해운 ②조선
③방산 ④2차전지
5. 공인회계사가 제시한 네 가지 감사의견 중 기업 존립에 의문이 들 정도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된 가장 심각한 상태는?
①적정 ②한정 ③부적정 ④의견거절
6. 증시 약세 탓에 지난해 ‘이것’ 규모가 세계적으로 65% 급감했다. 기업이 일반투자자에게 주식을 공개하고 증시에 상장하는 절차인 이것은?
①SPAC ②PEF
③IPO ④M&A
7. 국가가 보유한 노동·자본·기술 등 생산요소를 모두 활용하면서도 물가 상승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경제성장률은?
①잠재성장률 ②명목성장률
③실질성장률 ④총요소생산성
8. 산업 현장에서 많이 쓰는 비철금속의 하나로, 가격이 실물 경기를 잘 반영한다고 해서 ‘닥터 코퍼’라는 별명이 붙은 이 금속은?
①구리 ②니켈 ③아연 ④알루미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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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기술 한계는 어디까지? 상상 초월 'CES 2023'

 

인류는 지금 ‘제2의 태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태양 만들기에 성공하면 인류는 석유, 가스, 석탄과 같은 화석 에너지에 집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태양은 핵융합을 통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는데요. 지구에서 태양을 만들려면, 즉 핵융합이 일어나도록 하려면 1억 도 이상의 초고온 상태를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답니다.

진전은 있습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30초 동안 1억 도를 유지하는 기술을 선보였고,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는 레이저를 이용해 핵융합을 일으키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현했습니다. 인류는 언제쯤 만족할 만한 기술을 거머쥘까요?

지난 5~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IT·가전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3’은 이 질문에 답을 줬습니다. “인류가 걸어온 길을 계속 걸어가면 가능하다”는 것이죠. CES는 우리가 상상했던 온갖 기술이 실현되었음을, 또 조만간 구현될 것임을 보여준 최첨단 기술 경연장이었습니다. 돌을 갈아 썼던 우리 조상들이 봤다면 기절했을 기술과 제품이 즐비했습니다. 타제석기에서 마제석기로 진화하는 데 수십만 년이 걸렸던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기술적으로 ‘호모 데우스’, 즉 신의 영역을 넘볼 정도의 수준에 올라설 수 있었을까요? CES 2023을 통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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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뱀·펴고접는 디스플레이·선 없는 TV…상상을 기술로 구현한 혁신에 세계가 '깜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5~8일 열린 세계 IT·가전 전시회 ‘CES 2023’은 기술 진화에 인간 한계는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CES는 코로나19 때문에 3년 만에 열렸는데요. 긴 공백을 메우려는 듯 이전보다 진화된 많은 기술과 신제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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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융복합 기술을 탑재한 로봇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양쪽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다목적 휴머노이드 로봇 ‘아이오’. 그림을 멋지게 그려주는 ‘스케처’. 수도관 누수를 찾는 로봇 뱀 ‘클린 워터 패스파인더’…. 가장 눈길을 끈 기술은 로봇뱀입니다. 로봇뱀은 수도관을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관이 얼마나 부식했는지, 석회화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등을 확인해 지도화합니다. 프랑스의 자율 로봇 스타트업 ACWA로보틱스 제품인데 조만간 상용화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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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고 접는 삼성 디스플레이

삼성은 ‘세상에 없던’ 디스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접혀 있던 디스플레이를 펼치고 또 오른쪽 화면을 당기면 디스플레이가 커지는 기술입니다. 처음엔 스마트폰 크기(7.8형)였다가 펼치면 태블릿PC(10.5형)만 하게 확대되고, 다시 늘리면 12.4형까지 늘어납니다. 화면이 커지면서도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영상은 끊기지 않습니다. 별도의 버튼을 누르지 않고 공책을 펴듯 열면 됩니다. ‘플렉스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작은 크기로 휴대하고 다니다가 필요에 따라 화면을 키워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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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없는 LG TV


선(線) 없는 TV ‘LG 시그니처 올레드M’는 LG전자의 비밀병기로 불렸습니다. LG전자가 축적한 ‘올레드 TV 10년의 노하우’를 모두 담은 TV입니다. 이 TV는 전원을 연결하는 선 외에 아무 선도 필요 없습니다. 너저분한 TV 줄이 없어서 주변이 깔끔한 게 특징입니다. LG전자의 대표 출품작답게 이 TV는 홈시어터 부문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현존하는 TV 중 가장 큰 97형 OLED TV에 세계 최초로 4K·120㎐ 무선 전송 솔루션을 탑재했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선이 없을 경우 화질이 떨어지고 소리가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제품은 그런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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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처럼 색상이 바뀌는 차


BMW는 ‘디지털 영혼을 가진 친구 같은 차’를 콘셉트로 한 전기차 ‘i 비전 Dee’를 공개했습니다. 이 차는 인공지능 친구(비서)를 두었습니다. 비서를 통해 운전자의 감정을 표현하듯 차의 외관 색상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었습니다. 색상과 표정 변화는 특수 안료가 포함된 캡슐 수백만 개가 전기장에 의해 한쪽으로 쏠리는 원리에 따라 구현된답니다.

미국 모빌리티 스타트업 아스카(ASKA)는 도로와 하늘에서 모두 쓸 수 있는 공륙양용 차량 ‘A5’를 공개했습니다. 이 회사가 선보인 것은 4인승이었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가솔린을 동력원으로 쓴다고 합니다. 지상에선 한 번 충전으로 최대 약 400㎞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수직으로 이착륙할 수 있고, 활주로를 이용해 이륙할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로 다니다가 길이 막힐 때 하늘로 붕 떠올라서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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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극복 제품

국내 스타트업 닷이 만든 닷패드는 디스플레이 표면에 2400개의 핀이 올라와 PC나 모바일 등에 나온 도형·기호·표 차트 정보를 점자로 표시해주는 촉각 디스플레이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소통할 수 있는 점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언제든 자유롭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셀리코라는 회사는 ‘전자눈’을 선보였습니다. 시세포층에 카메라 역할을 하는 이미지 센서칩을 삽입하는 게 핵심 기술입니다. 이 장치가 빛을 감지한 뒤 이를 생체 전기 신호로 변환해 뇌에 전달합니다. 시력 0.1 이상 수준까지 해상도를 높이는 게 이 회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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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화중인 기술…'밈(meme) 복제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CES 2023’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첨단기술이 모였습니다. 전시회를 둘러본 사람들은 “우와 이런 것까지 구현됐네”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인간은 왜, 어떻게 다른 동물과 달리 새로운 기술, 새로운 도구를 잘 만들 수 있게 됐느냐”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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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가는 데만 수십만 년
인류 조상이 타제(打製)석기인 찍개를 쓰다가 마제(磨製)석기인 돌도끼를 쓰는 신석기 인류로 진화하는 데 수십만~수백만 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깨어져 있는 돌 쓰기’에서 ‘돌을 날카롭게 갈아서 쓰기’로 점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니, 정말 믿기 어렵습니다. 마제석기는 시간이 더 걸려서 청동·철기를 낳았습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아마도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 같은 조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철기시대는 곧 산업혁명을 낳았습니다. 말과 소의 힘을 이용하는 인류는 증기라는 거대한 힘을 에너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대 기술 혁신이었습니다. 철기는 증기를 만나서 기차,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21세기 인간은 이제 만들지 못할 것이 없는, 심지어 ‘제2의 태양’까지 만들려 하는 중입니다. 인류학자들이 ‘도구를 잘 만드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조어(造語)해낸 ‘호모 하빌리스’라는 용어는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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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진 기술 진화
주목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인류 역사 중 99%가량이 구석기 시대였지만 급격한 기술 진화는 길게 잡아야 200여 년 전부터 시작됐고 우리가 즐기는 현대적 최첨단 기술은 최근에야 나타났다는 겁니다. 인류 전체 역사를 24시간으로 본다면 CES에 등장한 기술은 23시간59분59초59에 등장했다는 은유가 가능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늘을 나는 자동차’ ‘커지는 디스플레이’ ‘뱀처럼 기어가는 로봇’ ‘선 없는 TV’를 본다면 아마 기절초풍할 겁니다.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쓴 에릭 바인하커는 ‘석기에서 우주선으로’라는 표현을 써서 인류의 물리적 기술 진화를 찬양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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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도킨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모든 생물은 진화해 오늘날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진화는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밟는다고 했어요. 생물들이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 변이·적응·재생산 과정을 거친다고 했고 이것을 자연선택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다윈은 수억 년, 수십억 년이라는 긴 시간(eon) 동안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단세포는 다세포로, 결국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물로 바뀌었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책 말미에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생물학적 진화는 무엇인지 알겠는데, 인간은 어떻게, 왜 동물과 달리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문화를 가질 수 있었을까라고 자문했습니다. 생물학적 진화론으로는 문화적 진화론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어떻게 현대의 우리는 구석기와 신석기 사람들보다, 그리고 18세기, 19세기 사람보다 더 복잡한 기술, 과학, 정보통신력을 가질 수 있게 됐느냐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유전자(gene)와 매우 유사한 단어인 밈(meme)을 만들었고 밈이 문화적 진화를 이끈다고 했습니다. 유전자가 변이, 적응, 확산하듯이 밈도 복제돼 수많은 사람에게 선택, 확산한다는 겁니다.

<밈>을 쓴 수전 블랙모어는 이것을 밈학(memetics)으로 끌어올리려 했습니다. 인간의 기술력이 갈수록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것은 하나의 밈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빨리 전파, 선택, 변이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늘의 기술과 정보가 내일이면 지구 전체로 번지는 시대에선 기술 변이가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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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뇌와 기술

인간의 뇌는 밈 진화에 적합하게 진화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인간의 큰 뇌는 출산 등에 매우 불리합니다만 언어, 정보, 기술 같은 문화를 복제하고 선택하고 전달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게 밈 진화론의 포인트입니다. 재미있는 관점입니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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