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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

2020. 4. 18.

제목: ''선한 사마리아인''

말씀: (누가복음 10:30~37)

설교자: 이기원, 남동우 목사님

오정현 목사님

 

이기원 목사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에 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시점에 율법 교사들을 만났다. 그 교사들에게 질문을 받으시는 내용이다. 율법 교사들은 예수님께 두 가지 질문을 한다.“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이다. 이 질문을 하면서 율법 교사들이 두 가지 말씀을 인용하는데 신명기6:5절과 레위기 19:18절을 합쳐서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여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다. 옳다 행하다. 그러면 살리라 하신다. 이때 율법 교사들이 자기들이 옳게 보이려고 가지고 율법적 지식을 피력하고 과시해 보이려고 두 번째 질문을 더 한다. “네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질문한다.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신다. 이 이야기에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첫째는 신분이 확실치 않은 어떤 사람이다. 예루살렘과 여리고 사이에 있는 강도를 만난 사람, -옷이 벗겨지고 죽게 되고 거의 버려져 있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한 제사장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있는 사람을 보고 피하여 그냥 지나간 사람이다.

세 번째는 두 번째와 같이 그냥 지나간 레위인이다. 이 두 사람은 종교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볼 때 어려움에 처에 있는 자들을 정성스럽게 돌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치에 있고, 책임에 있는 사람들임에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네 번째는 이 사람이 이야기의 흐름을 바꾼다. 이 사람이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다. 위헤 두 사람과는 달리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그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붓고 싸매고 자기의 짐 싣는 곳에 태워서 주막에 가서 돌봐주는 사람이다. (다섯 번째는 주막 주인이다).

그 어떤 사마리아 인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주막에서 주막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주인에게 이 사람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 당시에 한 데나리온은 인부의 하루 품삯이며 주막에 묵는 하루 비용이 12분의1 데나리온의 비용인데 과 24일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양의 분을 두 데나리온을 숙박비와 치료비를 주면서 게다가 또 한 가지를 추가하며 나중에 더 갚겠다는 약속까지 한다.

이렇게 이야기 하시면서 예수님은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를 만난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신다. 그 순간에는 어렵지 않게 대답한다. “자비를 베푼자입니다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더 말씀을 하신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 보면 그 뒤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끝난 것 같지만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이야기 해주신 이웃 사랑에 대한 개념은 사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생소했고 그리고 자기들이 갖고 있던 생각 등이 혁신적인 개념이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사마리아인들을 순수하지 못하다하여 개처럼 동물처럼 여기기까지 했다. 이런 사마리아인이 어떤 사람을 도왔는가? 어떤 사람은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고 있지만 많은 신학자들은 아마도 어떤 사람은 유대인이었을 것이란 추측을 한다. 그 이유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는 대상이 유대인이고, 도움을 준 사람이 사마리아인이라고 그런 대조적인 강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통 기록에 보면 이 지역의 도둑들이 금품을 갈취하는 일은 흔하게 있었지만 사람이 죽기까지 해를 가하여서 버려지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죽도록 때린 후 옷을 벗기고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을 가지고 학자들이 추측하는 근거는 아마도 이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볼 때 어떤 한 사람이 옷이 벗겨진 상태로 확인 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고 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 사마리아인은 곤경에 처에 있는 그 대상이 누군지 상관없이 도왔다. 만약 유대인이라면 자신의 가족들을 민족들을 경멸한 자신들을 경멸한 유대인일 수도 있는데, 그냥 도왔다. 어려움과 고통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보고 피하고 지나치지 않고 원수일지도 모르는 그 사람을 도운 것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새로운 차원의 이웃사랑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 제사장과 레위인 들에게 길에서 버려져 의식이 없는 어떤 사람을 도와 줄 수 없고, 도와서는 안 되는 정당하고 합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러면 레위인은 12지파 중에 성결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지파이다. 제사장은 레위인 중에서도 레위인 중에서 아론의 지파로서 다시 성별되어서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당시 자기 반열 4개의 반열이 있었는데 반열 순서가 되면 일 년에 2주간 성소에 가서 제사를 드렸다. 일 년에 2주간 성전에 봉사를 하게 되는데 제사장들은 대부분 예루살렘이 살지 않았다. 전국에 흩어져 살다가 어쩌다 올라가 제사를 드리는데, 특히 여리고가 제사장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자기 반열 순서가 되면 예루살렘에 올라가 봉사를 하면 된다. 딱 두 주간 너무 중요했다.

 

하나님께 섬기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이 사람들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 당시 가장 부정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시체와의 접촉이다. 레위기에도 나오는데 심지어 부모의 시체도 가까이 가면 안 되었기 때문에 벗겨진 사람이 죽은 사람일 수도 있기에 그냥 지나쳤을 가능성도 있다. 자신을 부정하게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도와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남을 도와야 할 때, 할 수 있는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합리화하는 것을 용납지 않으셨다. 이런 말씀에는 방향이 있다. 성경에 예루살렘은 올라가는 곳이다. 지리적으로 그렇다. 여리고는 좀 낮은 곳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언제 어디서나 올라간다. 그런데 제사자은 그 길로 내려가다가 나온다. 레위인도 이와 같이 모든 임무를 마치고 집이 있는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이었을 중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도 오르던 내리던 부정해 지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는 사람이라면 곤경에 처에 있는 이런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교훈을 예수님께서 주고 계신다. 33절에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병든 자를 보면서 가졌던 그런 마음으로, 하트 봉으로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교회로, 주님의 제단으로, 성전으로 올라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사랑을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어려운 이웃들을 최선을 다해 돕는 대사회적 시대적 사명을 담당하는 사랑의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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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우 목사님.

예수님이 누가 강도만난 이웃이 되겠느냐?고 하신다.

내 입장에서 강도를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강도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볼 것인가? 본문에 나타나는 두 사람은 자신의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을 바라보니까 지금 당장에는 도와주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자신의 입장을 돌아보니 도저히 도울 수 없어 피하여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강도 만난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니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도와 줄 수 없지만, 강도만난 형편을 보니 도와 줄 수밖에 없어 가까이 가서 사랑을 베푸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빈들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 배고파하는 제자들을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그 백성들을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고 도우신다. 우리 사랑의 교회 대사회적 섬김도 마찬가지다. 교회나 성도들의 입장에서 연약한 자들을 바라보았다면 결코 그들을 도우지 못하고 그들을 피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랑의 교회는 연약한 자들과 장애인들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들을 필요를 채워지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때로는 내가 힘들고 어려워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을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언제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들을 섬기며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지역 사회를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대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사랑의 교회에 24년 전에 사랑의 복지 재단을 세워주셨다. 지역사회를 섬기게 하신 것이다. 특히 서초 구립 요양센터를 우리 직원들이 섬겨오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섬기고 있는데 지금 코로나19가 있어 면회가 안 되었고 섬기지 못하고 있지만 속히 회복되어서 발걸음이 이동되어 섬기기를 바라고 있다. 어르신들을 돕기를 바란다. 그곳에 노인들이 행복해 한다는 이야기와 매주 마다 예배드림과 프로그램이 좋다는 소식을 듣는다. 또한 행복한 꿈 터가 있다. 문제아가 있는데 60여명의 아이들이 양육 받고 보호받고 있다. 선생님들의 따뜻한 돌봄을 통해서 행복한 꿈을 갖고 주님이 쓰시는 자녀가 되리라 본다. 오늘 말씀을 준비 중에 복음성가가 생각이 났다. 더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한다. 주님이 주시는 것을 가지고 더 섬기기를 바란다.

사랑은 더 가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더 버리는 것” ~~이라 한다. 이 코로나19로 인해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생각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베푸는 믿음의 성도가 되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웃을 향해 실천하고 베품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았음 좋겠다. 위기가 곧 기회임을 느껴서 실천하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랑을 나누고 복음의 약속을 실천하길 원한다.

 

- 요약-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다. 마침 제자장과 레위사람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상처를 치유해주고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그리고 주막주인에게 부탁하여 돌보아 주기를 부탁하고 비용을 대주었다. 예수님은 자비를 베푼 사람처럼 너도 실천하라고 하셨다.

그러니까....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살아있었던 그는 누군가 자기를 구해주기를 기다렸지만 제사장도 레위사람도 그를 피하여 돌아갈 뿐 이었다 그러나 유대사람에게 멸시를 받던 그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측은히 여겨 그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주막까지 데려가 돌보아 주었으며 주막집 주인에게 돌보아 주기를 부탁하고 그 비용까지 대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아무런 대가 없이 생면부지의 사마리아 사람을 통하여 긍휼함을 입었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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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예배

 

담임 목사님.

드디어 모였다. 우리가 늘 주일예배 드리면서 본당이 꼭 차면 즐겁고 기뻤듯이 오늘 그래도 함께 모이니 본당뿐만 아니라 아래층과 몇 곳에 사회적 거리 등 흩어져 앉아 예배하니 너무 감사하다. 본령 첫 번째이다. 우리가 장애사역과 북한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칭찬하고, 우리 장애인, 북한 선교 등 격려하자. 우리는 영 가족 여러분 본령이니 기쁘다. 예수님 때문에 보혈의 능력이 있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영적 차원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에 눈이 열려야 한다, 세속역사를 고민하지 말고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우리의 본질 사역에 집중을 주시길 원한다. 온라인 등 모두가 주님 앞에서 찬송과 경배로 이 코로나 사태가 벗어나길 기도한다. 삶의 모든 짐들이 벗겨지길 바란다. 고민하지 말고 복음의 영광을 알아 본질 사역에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군인은 나라를 지키고, 기업인 회사를 잘 지켜야 하고 학자는 학문을 연구를 잘하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예술가는 좋은 예술성을 펼치고 아름답게 가꾸어가야 한다. 교회는 뭘 하는가? 본질은 하나님의 사람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이웃사랑, 주님이 교회에 주신 대 사명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것이고 대 계명은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이 둘을 잘해야 한다.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 가족을 주셨다. 영 가족은 영원한 가족, 영적가족 동시에 영광과 고난을 함께 받는 가족이다. ‘Young 가족은 젊은 대학, 청년부 주일학교이다. 교회는 위임명령과 대 계명을 잘 실천하고 영 가족을 치유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 앞에 올바른 가치관으로 젊은이들을 잘 키워내야만 한다. 이제 우리 모든 중직자를 포함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예배에 집중하도록 기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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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4 . 19.

제목: ''새날을 여는 사랑의 능력''

말씀: (요한복음 20:1, 11~16)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코로나 극복시리즈 9

리에게 새날 주심을 감사한다.~

우리 어려운 이 가운데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에 짐을 진 어려운 분들에게 주님이 붙잡아 주시길 바란다. 지난 주 받은 말씀이 그래도 확인되길 원한다. 147: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도다''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길 원한다. - 예배는 상황의 지침을 따르기를 바란다. “사랑하면 새날이 열린다.”

 

1. 오늘 본문은 부활의 목격자인 막달라 마리아

모든 상처와 고통을 덮어 주시길 기도한다.

사랑하면 새날이 온다.

막달라는 마을의 이름의 마리아이다.

달라 마리아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도 나온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1:1대화로 만나주신 이 스토리는 요한복음에만 나와 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만 비춰지는 주인공처럼 나온다. 아마도 요한에게 막달라 마리아가 요한에게 간증한 내용을 요한이 기록한 것이다. 그의 간증이고 이 막달라 마리아 간증이 우리와 동인한 간증이었으면 좋겠다. 간증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간증이다. 간증은 기독교 신앙의 보물 상자를 여는 것이다. 우리도 모두 보물 상자를 열기를 바란다. 그 안에 들여다보니 보석이 들어있다. 이 보물 상자를 여는 신앙이길 바란다. 마리아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가 예수님 만나가 전의 상태,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상태가 나와 있는데 우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상태(Before Christ),

1)막달라 마리아 과거는 누가복음 8:2에 나와 있는데 병 고침을 받았는데 귀신들려서 숨 막히게 살았다. 일곱 귀신이 들었던 것이며 귀신들로부터 지배당했다. 귀신들로부터 노예로 살았던 것이다. 그의 인생을 멈추게 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광스런 존재가 일곱의 귀신의 지배당하고 그녀의 인생을 Stop 되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일곱 귀신이 쫓겨난 줄로 믿는다.

2)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복음 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 마리아와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완전히 reset되고, 새로 고침 되고, 재조정되었다. 다시 시작하는 능력이 되어 인생역전이 되었다.

1)병 고침( therapeow 떼라페오) - 수동완료형: 누군가에 의해서 전적으로 고침을 받은 것.

2) 귀신이 나갔다(exerchomai) - 능동완료형: 신이 나갔다는 뜻이다. V자로 형태로 회복되었다. 완전 치유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100프로 치유되었고, 귀신이 나갔다는 것.

3)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완전히 리셋 되었다. V자 형태로 회복되었다. 단번에 죽은 그녀를 청소하셨다. 오늘 모두에게도 인생이 해결되는 이런 역사를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란다.

 

 

I. 주님의 사랑은 은혜의 주류(主流)에 서게 한다.

1. 누가복음8:3 -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세상으로 가지 않고 팀웍을 이루어 한결같이 섬긴다. 자유함을 얻어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고 후원자가 되고 여성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참된 여성 제자가 된 것이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그녀만이 지켰다.

2. 히브리서9:14, 10:22

주님의 참 사랑을 받게 되니, 주님을 진심을 따르니 순결한 처녀처럼 되었다.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하신다. 평생을 은혜의 주류에 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능력은

3.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의 통치를 받는 은혜의 비주류에서 주님의 통치를 받는 은혜의 주류 인생으로 변화되었다.

모든 분들이 평생을 은혜의 주류에 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 참된 능력은 은혜의 많이많이 사랑받은 자답게 살아야 한다. 은혜의 주류에 산다는 것은 많이 은혜 입은 자가 은혜 입은 자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기가 막힐 때도 있고, 마음이 일곱 귀신 든 자처럼 오염될 때가 있다. 이웃사람 때문에, , 정치, 동기 동창 동서 때문에 오염된다. 이럴 때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는 은혜의 기준을 가지고 많이 사랑받은 자가 은혜로 주류로 섬겨야 한다. 은혜의 주류에 선다는 것은 내 가정적, 사회, 정치적, 경제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II. 주님을 향한 사랑은 모든 환경을 초월한다.

1. 요한복음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1)시간 초월- 아직 어두울 때에 라고 했다. 우리도 끝나자 말자 시간 지체 말고 교회로 모이자. 마리아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쫓아갔다. 주님을 향한 사람은 시간을 초월한다. 진실로 사랑하면 날을 샌다.

2)공간 초월 무덤은 사람이 가장 가기 꺼려한 곳이다. 마리아는 주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로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십자가에서부터 시신을 내릴 때도, 공간을 초월했다.

3)계산 초월 -

막달라 마리아는 장례를 위한 향료품도 준비하고 무덤에 간 것이다. 예수님을 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2.주님을 향한 찬된 사랑은 환경을 초월하는 거룩한 무모함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은 조건이나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환경에 질질 끌려가는 열 한 제자들의 모습처럼이 아닌 마리아는 시공을 초월한다. 순도 높은 사람은 무모할 정도로 환경을 초월한 거룩한 무모함이다. 무대뽀이다. 참된 사랑은 거룩한 무모함이, 마리아의 사랑을 뛰어넘지 못한다. 선교사들의 그 선교가 모두 거룩한 무모함이다.

 

3. “나는 조선 사람을 사랑하였고, 또 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기를 원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사무엘 모어는 조선을 사랑했고, 예수님을 인도했다.

 

여기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고 펑펑 울었다. 왜 우는가? 주님을 향한 절실한 사랑의 순도 때문에 눈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순도 때문에 나온 것이다. 복음의 능력 보혈의 능력이~ 한국교회의 선대의 능력이 세대계승을 하기를 지킬 것을 바란다.

 

 

III.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직접 만나 주셨다.

1. 요한복음 20:18,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처음에 주님을 몰라봤다. 마리아는 슬퍼서 돌아보니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 첫 번째 아담도 동산지기, 두 번째 동산 지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동산지기가 있어야 한다. 마리아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꼭 필요한 자들에게만 만나주신다.

2. 요한복음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요한복음 10:27,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니라

우리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해 주신다.

3. 예수님은 마리아 등 뒤에 계시면서 만나 주셨다.

우리도 나의 등 뒤에서 나를 지키시는 주를 사랑한다. 오늘 부르자 ~~우리도 마리아 등 뒤에 있으니 미래를 향한다. 우리에게는 손에 드는 빽이 아닌 우리에 등 뒤에 진실 된 빽이 있지 않는가!!!

4. 누가복음7:47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것이다. 옥합을 깨서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이는 그를 사랑함이 많다 사함을 많이 받은 자로서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대류에 서라~ 우리는 누구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이다. 지금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된다는 것이 아름답다. 우리의 헌신이 교회의 미래가 결정된다. 수 주간이 수년간을 결정한다. 순도 높은 사랑하면 주님은 행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 받은 자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께 사랑받는 정체성을 가지고 민족의 새날을 여는 데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

 

느낀 점

목사님은 이 코로나19가 속히 가기를 간절히 원하심을 본다. 우리도 그렇게 어서 속히 종식되어 제대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귀신들리고 부족한 사람들이 아직도 천지인데 안아 주시는 본당에서 은혜를 충만히 받고 성령을 체험하는 자가 많아지고 치유 받은 자가 넘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마리아처럼 진전한 여성 제자로서 한결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더 은혜 받은 자가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이 나누며 그 부족한 자들을 사랑하기를 간구한다. 오늘 오랜만에 교회에서 헌금 봉사와 예배를 드리니 너무 좋았다. 계속 이렇게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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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0. 4. 12)

제목: ''부활의 영이 내게 임하면''

말씀: 요한복음 12:23~27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부활 주일은 주님은 죽음을 이기셨다. 그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것과 이 공동체의 머리이신 것임을 믿고 찬양합시다. 카이로스의 신앙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죄악을 이기신 주님을 믿는다. 성도들의 사진을 랜덤으로 골라서 좌석에 붙였으니 마음이 전달되기 바란다. 사랑 올 투게더가 되기를 바란다. 카이로스의 신앙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죄악을 이기신 주님을 믿는다. 리셋하길 바란다. 주님은 부활하셨다!!!!!~~~

 

부활의 영이 내게 임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는가? 예수님이 3일 만에 정말 살아나셨는가? 를 가지고 평생 씨름하다가 어정쩡하게 무덤으로 가는 자가 있다. 부활의 교회를 다녀도 평생 의심도 확신도 아닌 회색지대에 머물다가 부름 받는 자의 경우도 있다.

예수 믿는다 하면서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평생 씨름하다가 어정쩡하게 의심도 확신도 아닌 회색 지대에 머물다가 이땅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교회 역사와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가장 보편적인 부활의 3가지 증거가 있다.

--- 예수그리스도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의 부활을 성령님으로 믿어지면 그 마음속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생각할 때 기쁜 것이다. 그 주님을 반드시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선포하고 증거 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I. 부활의 증거에 대해서 가장 보편적인 증거 3가지 .

첫째, 빈 무덤이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무덤을 화려하게 만들어서 참배한다. 중국공자무덤, 메카도 이슬람 무하메드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 부활하신 주님의 무덤은 부활하셔서 그 무덤이 비어있는 것이다. (법의학자인 던런 대학장인 노먼 엔더슨경은 -빈 무덤은 부활을 논박하는 모든 이론을 단숨에 파괴해 버리는 바위와 같다

 

2.둘째, 제자들의 혁명적 변화이다. - 제자들은 본래 겁쟁이들이었다. 다 도망갔던 자들이 자기 목숨을 내고 예수님을 증거 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참고고 12명의 제자들 가운데 사도 요한을 제외한 11명이 순교했다. 마지막으로 사도요한도 그런 셈이다. 사도바울에 속한 전도 팀에 속한 바나바 실라 누가 디모데 디도 대부분 순교했다. 부활이 확실하지 않다면 어떻게 순교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혁명적인 순교가 있겠나...!!!

 

3.셋째, 허다한 부활의 증인들. - 고전 15장은 부활장이다. 육신의 몸으로 부활하신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수백 명이며 수천 명이었다. 그래서 부활을 숨길수가 없다. 이 모든 사람의 입을 막는 불가능하다.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증인들이 너무 많았다. 이것이 거짓이었다면 지난 2천역사가 모든 것이 어떻게 밝혀지지 않았겠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 큰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 부활이 문제겠는가?! 우리는 이 세상 끝 날까지 그래서 시공을 초월하고 목숨 걸고 땅 끝까지 증거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요약하면,,,,

첫째 예수님은 확실하게 십자가에 죽으셨는가? 이다. 죽음에 대해서 긴가 민가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과 피를 흘리셨다. 의학적으로 완전히 죽었을 때 분리되었을 때 나온다. 로마병사를 통하여 의학적인 증거가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예수님께서 그 후에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나타나셨는가? 이다.

(고전15:6) - 목격자들이 대부분이 살아있다. 막달라 마리아 엠마오로 내려간 두 제자 도마와 다른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 죽은 자는 산 자들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줄 믿어야 한다. 이걸 베드로가 도장을 찍는다. 사도행전 부활이후에 기록한 우리가 다 증인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리셋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사건 이후에 완전히 한국교회도 새롭게 리셋 되길 원한다. 온 교회가 새롭게 될 거다 v자로 상승되길 기도한다.

 

 

II. 고백인가? 실체인가?

요한복음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선포는 마르다는 24절의 고백,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에 대한 응답이셨다. 예수님 자체가 부활자체요, 부활의 창조주요, 공급자이시다.

 

2. 마르다는 부활 신앙의 고백은 확실한 것이었지만, 그 고백이 자신이 당면한 현재의 슬픔을 극복하게는 못했다. 정신 차리라고 하는 내용이다. 주님이 신앙이 그거밖에 안되냐며 상기시킨다. 자기 체화가 아직 되지 못했다. 그것은 부활이 실제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실체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누구누구야!~ 너는 예수님을 믿느냐 하고싶다.

 

III. 현재적 삶의 부활

1.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이 성령 안에서 확실히 고백되면 예수님의 부활의 영과 예수님의 생명의 영이 내게 전가(轉嫁)된다. Transfer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생명과 부활이 내 몸을 뚫고 들어가서 내 속에서 역사하시기 시작한다.

 

2. 부활의 영이 임하는 자에게는 부활적 삶현재적 삶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내 현재적 삶도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한결 같은 자 되어야 한다. 부활의 영이 계시기에....

 

로마서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3. 부활 신앙은 미래에 있을 부활 사건을 현재의 삶에 침투시킴으로 현재를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한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4.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상의 질서(죽음의 질서)에서 하늘의 질서(부활의 질서)로 바꾸어 준다.

1) 이것은 추상명사나 관념명사가 아니고 현재를 전투적 바폭력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2) 현실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걸으시고(24:15), 말씀을 주시고(24:27),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마음을 뜨겁게 하신다(24:32). 그리서 우리는 옛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사명지로 그러니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

3) 몽구스처럼 우리에게도 모든 독을 해독하는 부활과 생명의 DNA가 있다.

 

그래도 안되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매 순간 아버지의 이름을 부릅시다.(7:11)

아버지여 감사합니다로 외쳐라!~~~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부활의 영과 생명의 영을 가지고 부활 불패의 기백을 가지자. 열왕기하 19장에 앗수르 군대 185천 대군을 천사 하나가 하루아침에 물리친 것처럼 부활 필승의 확신을 주실 것이다.

느낌...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 말씀처럼 한결같이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저도 부활을 믿습니다. 진정한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더욱 힘을 얻고 살아감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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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2020. 4. 11.)◆
제목: 새로운 삶(New Life)
말씀: (요한1서 1:1~4)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ㅡㅡㅡㅡㅡㅡㅡ
*예령2 토비새이다.
(찬양대의 꽃다발 스토크꽃이며, 역경에도 변치 않는 꽃말이다).

 오늘은 모두가 New Life이고, 암송도 New Life, 이 시간은 카이로스(kairos) 시간이다. 2020년 4월11일은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단 한 번밖에 시간이며 이 시간이 완전히 새로워지게 하시고, 완전히 새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상해임시정부수립 기념일 날이다. 그 국권이 없어지고 자유가 박탁당하고  그 시간 가운데에서도 상해임시정부의 그 용팀 때문에 우리 다시 한 번 이렇게 민족이 회복될 수 있는 근간을 마련된 것처럼 우리의 집중력 헌신, 복음, 생명의 역사, 찬양, 능력, 변화 이것들이 한국교회의 새로운 역사를 가져올 수 있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삶 암송을 한다. 모든 교회가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암송하자. 마음속에 새로운 삶이, 새로운 사역이 새로운 생명의 능력이 동터오길 원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하나님 나라의 소명과 하나님 나라의 확신을 가지고 거룩한 창끝을 가지고 돌 판에 새겨야 한다. 눈사람을 만들 때에 조그마한 핵이 있어야 한다. 그게 점점 커져서 큰 눈덩이를 만들 듯이 지금 토비새에 나온 성도들이 거룩한 눈덩이의 핵이 되고,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꿈꾸는 모든 우리 성도들이 이 시대를 향한 사명자들이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고 거룩한 새 사람의 핵심 멤버인 것을 기억하면서 시대를 밝혀 주시길 원한다. 

♤ 다시 한 번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어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72구절 새로 시작)오늘 이것을 기초로 해서 암송하고 다시 한 번 새로운 사역이 이루어질 원한다. 이번에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모두가 다 AC, BC가 나누어진다고 한다. BC는 Before christ가 아니라 Before Corona, AC가 뭐냐 After christ가 아니라  After Corona이라고 한다. 그런데 또,어떤 사람들은 BC, AD 하며 Before christ, After disease(질병이후)라 하는데 정신가진 몇 사람이 이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New Life의 은혜가 주어지길 원한다.오늘 토비새는 ‘예령2‘ 라고 했다. 우선 이 예령이 되기까지 왜 예령이 되었는가? 요한1서 1장 본문은 보면서 이야기 하겠다. 한국교회가 최강으로 발전한 것은 로 80년대 초반 중반부터 70년대 중반부터 가장 한국교회가 강력하게 부흥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약간 걱정한 것은 한국사외 50퍼센트가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 때였다. 그만큼 부흥을 하고 발전을 했다. 한참 부흥할 때에 목사님의 석사시절이었다. 천 여 명이 시험을 봤다. 얼마나 한 신학대학원이 한 달 동안 숙식을 하면서 수강하고 시험을 보았고 얼마나 치열했는지 모른다. 한국교회가 참으로 부흥했을 때가 있었다. 그 때에 분들이 훨씬 준비된 자원들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5년 10년은 사역자들이 정신 차리면 새로운 미니스트리(ministry)를 감당할 능력이 아직까지는 남아 있다.

 마귀는 온갖 공격을 하는 일들이 많은데, 나름 준비된 사람들로 해주셨다. 이제는 다시 한 번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한국교회 부흥의 은혜를 받았기에 핵심 눈을 가지고 다음세대에 제대로 계승하는 것이 책임임을 말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소명이다. 새 차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U자 곡선이 아닌 우리의 소원은 V자로 부흥하길 원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중직자를 비롯해 모든 교회가 상승하길 바란다. 오른쪽 부위는 올라가길 바란다. 우리가 각오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 이렇게 된 모든 핵심은 New Life, New Ministry이다. 그리고 그 강력한 복음의 핵심이다. 오늘 요한1서 1장 1-4절은 태초부터 생명의 말씀, 복음은 들은 바요, 눈으로 보는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 손으로 만지는 현장성이 확실하다. 확실히 체험된다는 것이며 요한 1서는 본래 과거 영지주의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초대교회 가장 강력한 이단들이었다. 이 이단들의 후예들이 구원파 등등이다. 영지주의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아닌 눈으로 보고 실체가 있다. 우리가 깨달은 복음 실체가 있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들은 복음은 누가 만질 수도 없고 건드릴 수도 없을 정도로 확실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복음을 들은 줄로 믿는다. 들은 복음을 믿는 줄로 확신한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와 미래가 다 해결된 것이다.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요한이 깨달은 눈으로 손으로 보고 만진 것을 신비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확고하게 우리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이 복음을 믿는 줄로 확신한다. 참된 교제는 주님과의 올바른 교제를 통한 풍성한 성령 안에서의 교제이며 성도들 간의 자연스런 교제가 기쁨이다. 생명과 교제와 기쁨은 체험하는 것이다. 생명과 영적교제와 이 기쁨을 실체적으로 나누길 소망한다.
♧ 부흥의 은혜,  부흥의 응답,  부흥의 능력을 주시길 기도하자.

▷현장예배 부활주일 감사예배로 들어가며 자발적으로 잘 지켜서 하는 것이 아닌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새로운 차원으로 4월26일 예배로 시작하게 된다.
우리는 꿈을 꾸고 다시 한 번 더 도전합시다.
▷미국도 돕자. 마스크 컨테이너 박스 같은 것으로~ 선진국들은 빨리 못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돕는 자가 되면 좋겠다. V자의 능력이 나타나길 바라며 반드시 예배가 성공하고 부흥의 능력과 응답을 주시길 기도합시다.

◆합심 기도제목
◇오직 예수님의 명령만을 따르는 십자가 군사, 사랑의교회 토비새
1. 사랑의 교회가 암울한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등불로 쓰임 받아 어둠을 밝히는 영적 등대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2. 흩어져 예배드리던 사랑의교회 모든 영가족들의 현장예배를 위한 열망이 반드시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응답받게 하시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 가득한 찬양의 함성과 십자가 사랑이 이 나라 곳곳에 메아리치게 하옵소서.
3. 안광(眼光)리 지배(紙背)를 철(撤)하는 집중력으로 모든 온라인 훈련마다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십자가 아래서 나눈 풍성한 은혜를 45기  제자훈련생, 32기 사역훈련생의 평생 제자도에 강력한 밑거름 삼아 주옵소서.
4. 내일 부활주일예배에 드려지는 사랑의교회 ‘온. 생, 예’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을 뵈옵는 감격으로 채워질 때,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는 한국교회 회복의 마중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眼光이 紙背를 撤함): 눈빛이 종이의 뒤까지도 꿰뚫어 본다는 뜻이며 독서의 이해력이 날카롭게 깊음을 가리키는 말)-그러니까 게을렀던 정신을 차리고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정신까지도 파악하여 주님과 더 깊은 교제와 주님의 뜻을 이해하라는 뜻임.



*스토크 꽃(찬양대)-역경에도 변치 않는 꽃말이다◆토비새(2020. 4. 11.)◆
제목: 새로운 삶(New Life)
말씀: (요한1서 1:1~4)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ㅡㅡㅡㅡㅡㅡㅡ
*예령2 토비새이다.
(찬양대의 꽃다발 스토크꽃이며, 역경에도 변치 않는 꽃말이다).

 오늘은 모두가 New Life이고, 암송도 New Life, 이 시간은 카이로스(kairos) 시간이다. 2020년 4월11일은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단 한 번밖에 시간이며 이 시간이 완전히 새로워지게 하시고, 완전히 새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상해임시정부수립 기념일 날이다. 그 국권이 없어지고 자유가 박탁당하고  그 시간 가운데에서도 상해임시정부의 그 용팀 때문에 우리 다시 한 번 이렇게 민족이 회복될 수 있는 근간을 마련된 것처럼 우리의 집중력 헌신, 복음, 생명의 역사, 찬양, 능력, 변화 이것들이 한국교회의 새로운 역사를 가져올 수 있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삶 암송을 한다. 모든 교회가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암송하자. 마음속에 새로운 삶이, 새로운 사역이 새로운 생명의 능력이 동터오길 원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하나님 나라의 소명과 하나님 나라의 확신을 가지고 거룩한 창끝을 가지고 돌 판에 새겨야 한다. 눈사람을 만들 때에 조그마한 핵이 있어야 한다. 그게 점점 커져서 큰 눈덩이를 만들 듯이 지금 토비새에 나온 성도들이 거룩한 눈덩이의 핵이 되고,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꿈꾸는 모든 우리 성도들이 이 시대를 향한 사명자들이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고 거룩한 새 사람의 핵심 멤버인 것을 기억하면서 시대를 밝혀 주시길 원한다. 

♤ 다시 한 번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어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72구절 새로 시작)오늘 이것을 기초로 해서 암송하고 다시 한 번 새로운 사역이 이루어질 원한다. 이번에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모두가 다 AC, BC가 나누어진다고 한다. BC는 Before christ가 아니라 Before Corona, AC가 뭐냐 After christ가 아니라  After Corona이라고 한다. 그런데 또,어떤 사람들은 BC, AD 하며 Before christ, After disease(질병이후)라 하는데 정신가진 몇 사람이 이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New Life의 은혜가 주어지길 원한다.오늘 토비새는 ‘예령2‘ 라고 했다. 우선 이 예령이 되기까지 왜 예령이 되었는가? 요한1서 1장 본문은 보면서 이야기 하겠다. 한국교회가 최강으로 발전한 것은 로 80년대 초반 중반부터 70년대 중반부터 가장 한국교회가 강력하게 부흥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약간 걱정한 것은 한국사외 50퍼센트가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 때였다. 그만큼 부흥을 하고 발전을 했다. 한참 부흥할 때에 목사님의 석사시절이었다. 천 여 명이 시험을 봤다. 얼마나 한 신학대학원이 한 달 동안 숙식을 하면서 수강하고 시험을 보았고 얼마나 치열했는지 모른다. 한국교회가 참으로 부흥했을 때가 있었다. 그 때에 분들이 훨씬 준비된 자원들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5년 10년은 사역자들이 정신 차리면 새로운 미니스트리(ministry)를 감당할 능력이 아직까지는 남아 있다.

 마귀는 온갖 공격을 하는 일들이 많은데, 나름 준비된 사람들로 해주셨다. 이제는 다시 한 번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한국교회 부흥의 은혜를 받았기에 핵심 눈을 가지고 다음세대에 제대로 계승하는 것이 책임임을 말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소명이다. 새 차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U자 곡선이 아닌 우리의 소원은 V자로 부흥하길 원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중직자를 비롯해 모든 교회가 상승하길 바란다. 오른쪽 부위는 올라가길 바란다. 우리가 각오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 이렇게 된 모든 핵심은 New Life, New Ministry이다. 그리고 그 강력한 복음의 핵심이다. 오늘 요한1서 1장 1-4절은 태초부터 생명의 말씀, 복음은 들은 바요, 눈으로 보는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 손으로 만지는 현장성이 확실하다. 확실히 체험된다는 것이며 요한 1서는 본래 과거 영지주의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초대교회 가장 강력한 이단들이었다. 이 이단들의 후예들이 구원파 등등이다. 영지주의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아닌 눈으로 보고 실체가 있다. 우리가 깨달은 복음 실체가 있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들은 복음은 누가 만질 수도 없고 건드릴 수도 없을 정도로 확실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복음을 들은 줄로 믿는다. 들은 복음을 믿는 줄로 확신한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와 미래가 다 해결된 것이다.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요한이 깨달은 눈으로 손으로 보고 만진 것을 신비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확고하게 우리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이 복음을 믿는 줄로 확신한다. 참된 교제는 주님과의 올바른 교제를 통한 풍성한 성령 안에서의 교제이며 성도들 간의 자연스런 교제가 기쁨이다. 생명과 교제와 기쁨은 체험하는 것이다. 생명과 영적교제와 이 기쁨을 실체적으로 나누길 소망한다.
♧ 부흥의 은혜,  부흥의 응답,  부흥의 능력을 주시길 기도하자.

▷현장예배 부활주일 감사예배로 들어가며 자발적으로 잘 지켜서 하는 것이 아닌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새로운 차원으로 4월26일 예배로 시작하게 된다.
우리는 꿈을 꾸고 다시 한 번 더 도전합시다.
▷미국도 돕자. 마스크 컨테이너 박스 같은 것으로~ 선진국들은 빨리 못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돕는 자가 되면 좋겠다. V자의 능력이 나타나길 바라며 반드시 예배가 성공하고 부흥의 능력과 응답을 주시길 기도합시다.

◆합심 기도제목
◇오직 예수님의 명령만을 따르는 십자가 군사, 사랑의교회 토비새
1. 사랑의 교회가 암울한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등불로 쓰임 받아 어둠을 밝히는 영적 등대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2. 흩어져 예배드리던 사랑의교회 모든 영가족들의 현장예배를 위한 열망이 반드시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응답받게 하시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 가득한 찬양의 함성과 십자가 사랑이 이 나라 곳곳에 메아리치게 하옵소서.
3. 안광(眼光)리 지배(紙背)를 철(撤)하는 집중력으로 모든 온라인 훈련마다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십자가 아래서 나눈 풍성한 은혜를 45기  제자훈련생, 32기 사역훈련생의 평생 제자도에 강력한 밑거름 삼아 주옵소서.
4. 내일 부활주일예배에 드려지는 사랑의교회 ‘온. 생, 예’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을 뵈옵는 감격으로 채워질 때,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는 한국교회 회복의 마중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眼光이 紙背를 撤함): 눈빛이 종이의 뒤까지도 꿰뚫어 본다는 뜻이며 독서의 이해력이 날카롭게 깊음을 가리키는 말)-그러니까 게을렀던 정신을 차리고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정신까지도 파악하여 주님과 더 깊은 교제와 주님의 뜻을 이해하라는 뜻임.



*스토크 꽃(찬양대)-역경에도 변치 않는 꽃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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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0. 4.5.)

제목: ''십자가만 자랑합시다''

말씀: 갈라디아서6:14~17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코로나바이러스 극복시리즈 7

 

요즘 십자가란 단어가 익숙해져서 자신이 짊어지는 어려운 것을 십자가라 한다.

자녀들이 십자가라하며 자녀들은 십자가가 부모라 한다. 말 안듣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골치 아픈 사회에서 통용되는 숙어가 아닌 일반용어가 아니다. 본문에서는 갈라디아 교회는 십자가의 깊이를 잘 몰랐다. 바울이 돌까지 맞으면서 세운 교회가 갈라디아 교회였다. 그곳에 편지를 바울이 보낸 이유는 믿음만으로는 십자가의 복음만이 아닌 plus-alpha 있어야 한다고 한다. 예수님 십자가 복음이 빠진 복음이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빠졌다. 할례 선행 등을 열매를 조건처럼 했다. 구원에 조건을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 가지고 오염을 시키고 있다. 지금 인간의 구원은 열매이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작은 로마서이다. 이신득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단들의 십자가의 영광과 능력을 부인한다. 십자가의 복음을 모르면 거짓 복음에 속기 쉽다.

 

바울은 십자가가 심히 중요하다 강조한다.

그리스도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게 없다고 했고, 십자가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하며 신비를 깨달아 마그나카르타로 했다.

십자가를 모르는 자에게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느니라”. 새사람 되는 게 중요하다.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 ~안광이 지배를 철한다는 뜻. 말씀 보는 안목이 뚫어버린다는 뜻.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자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복음을 깨닫는 자가 십자가의 복음을 제대로 믿으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되는 것. 친 백성이 되었다는 것과 그러면 너무 걱정할 필요 없고, 하나님이 보호하실 것을 믿는다. 우리 백성이니까 하나님 나라의 친 백성을 돌보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십자가를 통하그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다. ~

우리도 가정이 중요하고 일상,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안물안궁~ 바울은 이제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십자가의 흔적이라 한다.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치유와 흔적을 주시길 바란다. 십자가 복음을 제대로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스라엘’(the Israel of God)이 되는 것이다. 예령, 본령을 하게 되어 부활절을 맞아 십자가의 자랑이 되자. 성령님이 깨닫게 하신다.

 

십자가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

1.보편(지성): 일반적인 세속의 지성이다. 고전1:18

이 세상의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 볼 때는 결국 구원받지 못한다. 이 십자가가 미련하게 느껴진다.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지성인들이 바울을 멍청하다며 헬라지식인도 바울을 무시했다. 당시 헬라인과 로마인들은 십자가를 수치라고 했다. 바울은 십자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하의 것은 거대한 일반지성에게, 보편지성에게는 바울의 대단한 도전이고 보편지성에 바울의 대자보였다. 바울이 미련하다며 정복 왕 메시아가 저주받은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 우리에게는 구원의 능력인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보혈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신다.

 

2 보편(종교)

예수님의 유일신을 싫어한다.

BABO들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복음이 없는 곳일수록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십자가의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예배한다. 바울시대에 모든 신들이 기독교만은 십자가의 복음이다. 복음을 깊이 깨닫고 나면 창조주 하나님이 죄인인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반종교는 나를 우선한다. 그래서 선행종교라 한다. 그건 열매지 복음이 아니다. 일반종교는 다 귀하지만 행함의 종교이다. 기독교만이 계시이다. 간디나 알버트 슈바이쳐도 구원받지 못했다. 놀라운 이 신비를 믿지 못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백 프로 믿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 사탄은 복음의 진수를 약화시킨다. 슈바이쳐는 박애사상으로 잘했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비를 믿지 못했다. 십자가가 저주와 수치가 영적 눈이 열리면 영광이 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3사이에 넣어라. 영적인 눈을 열면 십자가는 영광이다. 성육신해야 십자가를 진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다. 수난 저주가 영광이며 십자가를 자랑할 때 영광이다. 영광의 극치가 십자가를 통한 것. 아픔과 고통을 겪는 것이 십자가를 통과하면 영광이 될 것이다. 모든 이 땅의 고통 뒤의 십자가를 통과하면 영광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으면 찬란한 영광이다. 아폴로가 달에 도착했음. 암스트롱과 버즈 알드린(장로님)이 다녀왔다. 그곳에 도착하여 알드린은 은색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교회에서 성찬식 기구를 주었고 십자가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다. 달에서 걸어본 것보다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함이 더 좋았다. Under Cross이다. 우주에 다녀와서 주님을 보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으면 반드시 십자가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한국 교회도 십자가의 영광을 깨달으면 십자가의 영광이 될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가 모든 부끄러움이 통과하면 십자가의 은혜가 된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십자가의 효력

1.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상처를 받으셨기에 우리는 치유 받을 수 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며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기에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3.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인하여 정죄를 받으셨기에 우리는 치유할 수 있다.

4.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셨기에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쓸 수 있다.

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에 우리는 심판을 면할 수 있다.

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마르셨기에 우리는 흘러넘치는 생수를 마실 수 있다.

7. 예수님께서 죽임당한 어린양이 되셨기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8.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께 버림을 당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9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기에 우리는 죄가 눈처럼 희어지는 영광의 수혜자가 되었다.

느낌

이 세상에서 내가 살 동안에, 나는 세상의 가치기준에 의하여 살지 않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지신 희생의 구속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그 본을 따라 살아야 한다성령님이시여~!  저를 긍휼히 보시고, 항상 주님의 길을 따라 살 수 있게 하옵소서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의지하고 간구한다. 바울처럼 십자가만 자랑하는 삶 되길 기도하며, 사도 바울처럼 돌에 맞고 죽을 고생하고 헐벗고 굶주린 흔적 없다 할지라도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헌신한 희생, 시간의 희생, 물질의 희생, 자존감의 희생, 이 헌신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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