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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5. 17)
제목: ''잘 되고 장수하는 일''
말씀: (에베소서 6:1~3)
설교자: 박희천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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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효도하는 자가 받는 축복을 ''네가 잘되고 장수하리라''(3)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잘된 일은 잘되고 장수하는 일이다. 아무리 잘 되어도 장수하지 못하면 그 잘된 행복을 누릴 수 없으니 허사요, 아무리 장수하여도 잘되지 못한 상태에서 장수하면 고생이다. 성경은 이 세 가지 경우를 다 말한다.


I. 잘 됐으나 장수하지 못한 경우
누가복음 12:16~21의 부자는 잘 되었으나 그날 밤으로 죽었으니 잘 된 보람이 어디에 있겠는가?(욥기 27:8) 사람이 세상에 잘 된 표준을 따진다면 왕 이상 잘된 일이 어디 에 있겠는가, 그런데 성경에 보면 세상에서 최고로 잘 된 왕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으나, 그 최고로 잘된 왕의 자리에서 장수하지 못하므로 그 잘 됨을 누리지 못한 경우들이 몇 번 나온다. 열왕기하 15:8~10절에서는 스가랴가 이스라엘 왕이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여섯 달 만에 암살당했고, 역대하 36:9~10에서는 여호야긴이 왕이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석 달 열흘 만에 포로로 끌려갔고 열왕기하 23:31~34에서는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다가 석 달 만에 폐위되었고 열왕기하15:13~14에서는 살룸이 왕이 되었다가 한 달 만에 암살되었고, 열왕기상16:15~20에서는 시므리가 왕이 되었다가 7일 만에 죽었고 열왕기하 8:7~15에서는 아람왕 벤하닷이 병에서 완쾌되었다가 다음 날 심복 부하에게 암살당했으나, 아무리 잘 되었다 하더라도 심지어 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잘 된 상태에서 장수하지 못하니 잘 된 보람이 어디 있는가? (마태복음16:26)


ll. 장수하나 잘 되지 못한 상태에서 장수한 경우
전도서 6:3,6에서는 아무리 장수하되,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하여도 그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한 자의 불행을 말한다. 전도서2:24의 복을 전혜 누리지 못한 상태에서 장수하는 불행한 자가 아닌가,


lll. 잘 되고 장수한 경우
열왕기상 3:11~14에 보면 솔로몬이 잘 된 상태에서 장수했고 역대상29:28, 시편21:4, 61:5~6에서는 다윗이 그러하였다. 욥기 42:12~13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사 7천 마리 양을 만 4천으로, 3천 마리 낙타를 6천으로, 5백 겨리로, 5백 마리 암나귀를 천 마리로 늘리시고 아들 일곱과 딸을 셋을 주셨으니 잘 되었다, ''그 후에 (욥기42:16), 즉 잘 된 후에 욥이 140년을 살았으나 욥은 에베소서 6:3대로 잘 되고 장수한 표준적인 사람이다. 신명기 4:40, 5:33, 11:9, 12:28, 22:7, 시편 91:15~16, 잠언3:2, 16, 22:4에서는 왕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잘 된 상태에서 장수한 경우를 말씀했으니 이런 일들이 참으로 잘 된 일이 아닌가, 이 잘 된 상태여서 장수하는 즉 참으로 잘 되는 축복을 누가 받는가? 에베소서 1:1~3은 말하기를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녀들이 받는다고 하였다. 옛날 왕은 사법권 입법권 행정권을 다 가진 자였다.


결론
사랑의 교회는 모든 자녀들이 부모님을 순종하고 공경하여 잘 된 상태에서 장수하는 참으로 잘 되는 복을 어김없이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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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목사님
코로나 바이러스가 백년에 한번 올까말까 하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앞에 나아가길 바란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 찬양은 '창조에 아버지'의 찬양과 또한 'Way make a miracle woker' 찬양을 주셨다. 그 찬송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든 죄가 씻어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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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바울은 본문에서 효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에 대해 언급했다.
(3) 바울의 이 진술은 십계명의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십계명에 보면 부모를 공경한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5:16)는 약속하고 있다. 이 약속이나 바울의 진술은 내용상 동일하다.
즉 내용을 요약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가 이 땅에서도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서 시인이 복 있는 사람에 대해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1:3)고 노래한 것과 같은 형통의 축복이 효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말씀 한다. 이 같은 축복이 효를 행한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행사를 주장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온유함이 없이는 순종함이 있을 수 없다.


느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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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 예배(2020. 5. 16)

제목: “말씀의 재 부흥

말씀: 느헤미야 8:8-12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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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유는 사명의 기백이 확실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군사가 되기를 바란다. 몇 달간의 사역이 앞으로 향후를 몇 년간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4차 산업혁명시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계획해야 하며 온오프 성도들이 사랑의 성도들은 어떤 사명과 비전을 가져야 할지를 완전히 사명자로 새롭게 각성하고 무장하기를 계획한다. 모든 교우들에게 일련번호를 드리려 한다. 중직 자들부터 모두가 사명자의 번호로 남기를 바란다. 모두가 사명자로 남기를 바란다. 위생위사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지켜야 할 5가지가 있다. 1.말씀의 절대권위, 2.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3.성령님 의 능력과 주권적 인도, 4.거룩한 공교회의 중요성, 5.세계선교의 절박성이다. 우리교회의 섬김과 사명으로 지켜야 할 것을 믿는다.

사명 자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기도제목이다. -요즘 기도하는 것은 가장 먼저는 1.이단이 척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천지가 날아가는 것이며, 2.동성애가 정리되어야 한다. (토비새 영적기도가 세워져야 한다). 3.공산주의가 정리되어야 한다. 4.극단적 사회주의 와 극단적 이슬람세계가 물러가야 한다. 5.기독교에 대해서 악랄하게 하는 적대세력인 앤티세력이 물러가야 한다. 동일한 기도제목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정리해 주시길 바란다.

 

I 말씀의 절대적 권의가 재 부흥 되어야 한다.

말씀의 절대적 권위가 세워지길 바란다. 중세가 암흑기였다. - 이유는 개인적으로 깨달아지고 개인적으로 읽을 수 있는 모든 환경이 없었다. 당시에 라틴어로 되어 일반사람들은 하나님을 깨닫기 어려웠다. 사제들의 전유물이어서 말씀을 맘대로 읽을 수 없고 깨달을 수 없었다. 라틴어가 특정계급의 언어였기에 중세 교회가 암흑기였던 것이다. 말씀을 가지고 도전 받지 않는데 어떻게 바뀌겠는가?! 그래서 말씀의 중요성으로 라틴어를 당시 마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 후에야 나중에 영어로 말씀이 일반화 되었다. 영어로는 위클리 바이블이다. 위클리로부터 말씀이 대중화되기 시작함. 이 성경이 어떻게 주어졌는지 알게 된다. 말씀의 재 부흥의 깃발을 든 사람이 베치카에 불을 피우듯이 위클리가 불을 피웠고, 연료를 제공한 자는 죤 낙스스이며, 종교개혁자다. 횃불은 마틴 루터가 했다. 쟌 낙스가 한 말씀 정리로 그래서 쟌 낙스 칼리지도 있다. 그래서 부흥이 되었다. 한국도 말씀 자본이 강한 곳이다. 한국교회는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 말씀부터 먼저 들어왔다. 나중에 말씀으로 부흥사경회가 되었다. 말씀 사자는 조사 사()로 사용했다. 사경회(査經會)는 보통 강원도에서 등등 일주일씩 걸어서 평양까지 올라갔다. 한국 교회가 말씀 사경회로 불붙듯이 폭발적인 부흥을 주셨고, 단초가 말씀에 대한 부흥이다. 사랑의 교회는 말씀의 절대 주권이 부흥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샘플이 본이 워더케이터에서의 부흥이었다. 닉슨이 워터게이터 때문에 추문이었지만 우리는 대 부흥이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말씀의 재 부흥의 토대가 있기를 소망한다. 영적으로 바쁜 시기이지만 마음의 소원은 안식이다. 영적으로 진정한 은혜는 말씀을 통해 오게 되니 리바이블(Revivable)이 되길 기도한다. 우리 교회가 말씀의 재 부흥이 모든 세대가 마음속에 영혼을 섬기는데 부족함이 없어서 모든 말씀이 재 부흥이 되길 바란다. 우린 느혜미야 8장에서 대 부흥이 되었다. 성도들이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적용이 중요하다. 말씀의 씨가 우리 속에 뿌려져서 깨달아야 한다. 깨닫는 사람들이 부흥을 앞장서게 된다.


말씀을 깨닫는 것이 무슨 뜻인가?

1.내가 누군지 깨닫다. (주제파악이다). 말씀 앞에서 어떤 말씀인가를 알아야 한다. 나에게 관계가 된다. 히브리서 4:12-13절이다. 예전에 사헌부 감찰부처럼 내 마음에 사헌부 감찰관을 파송하는 것이다. 주제파악을 하며 내 마음에 암행어사를 보낸다. 말씀이 깨달아져야 한다.

2. 말씀의 거룩한 슬픔

눈물이 나는 것이다. 그 거룩한 슬픔이 있는 것이다. 내 마음에 사헌부 감찰부를 보내니 눈물이 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게 되며 말씀 앞에 자기를 바라보는 자 되면 그 사람은 향기가 되고 위로가 된다. 그 사람 옆에만 가면 에너지가 소비되는 사람도 있는데 내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든지 말씀이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가고 싶어진다. 말씀으로도 돌아보면 천사와 같다. 나이가 들면 우리가 순결하게 에너지를 함께 주고받기를 바란다.

에스라 10:1- 말씀의 회복이 되어 죄를 자복해서 거룩한 슬픔이 되었다. 자기 주제파악이 되었다.


3. 기쁨의 단계

느헤미야 8:8-12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눈물을 통하여 그 창문에 기쁨과 감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기쁨의 샘, 회복의 기쁨이 된다. 하나님이 나 같은 인생이 용서를 하신다는 것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치며 용서의 기쁨이 넘치기를 바란다. 회복의 기쁨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아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기쁨이 찾아온다. 에레미아 15:16 주의 말씀이 마음의 즐거움이다. 초대교회의 즐거움과 기쁨이 신앙의 차원을 높였다. 기쁨이 강물이 가정과 교회에게 넘실대기를 원한다. 박희천 목사님이 이번 주는 말씀하실 것이다. 내일은 우리교회 역사상 예배 워십 송을 인도할 것이다. 찬양 입례 송에도 기쁨이 충만하길 바라며 주님 앞에 올려 지기를 바란다. 창조의 아버지와 웨이 메이크 어 워커(Way make a worker)를 할 것이다. 기쁨이 충만해져서 현장방송 그대로 미국까지 가서 베스트 애청시간이 될 것이다. 찬송하나라로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바란다. 우리교회 처음 길을 만드시는 주를 노래할 때 그 수준을 유지하고 일상 생활에 기쁨을 결정하길 바란다. 기쁨도 나누라.


4.. 함께 모이는 단계

느헤미야 8:10준비한 것을 나누어 주길 바라고 있다. 은혜의 저수지로 병참기지로 나눔의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 에스라 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시편19:8- “여화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송이 꿀보다도 달도다. 말씀에 갈급함으로 모두가 모이게 합시다. 슈퍼 선데이가 되어 말씀의 축복을 주시길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시편 119176절까지 있다. 시편119:131-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헐떡인다는 가슴이 뛴다는 것이다. 119:148-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읖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새벽부터 야경이 깊기 전에 새벽부터 밤까지 말씀으로 한국 교회가 재 부흥이 되고 V자 회복이 있기를 믿는다. 우리가 말씀의 능력을 믿는다.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믿는 것이다. 말씀은 인격이며,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사랑의 대화이다, 자다가도 벌떡 깨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이 은혜를 다시 한 번 회복시켜 주시길 소원한다.

목사님 유학시절 MDB 교육을 잘 받았다. 내가 받은 교육을 우리 성도들에게 다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 앞에 기도하며 스가랴서를 공부하고 있다. 14장까지인데 소선지자서이다. 6월부터 작업을 한다. 말씀의 깃발을 들고 깨닫는 자 되고, 눈물이 나고 기쁨이 있고 ~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암송도 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말씀의 능력이 함께 되길 바란다. 우리는 토비새에 나와서 더 큰 은혜를 누리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교회에 하나님께서 지키셔서 확진 자가 없는 예배가 되고,불 성곽으로 지켜주시길 바란다.

말씀 암송도 중요하다. ‘새로운 삶’A파트 모두 외웠다. 다음 주는 그리스도를 전파함’B파트 시작이다.

군대 2군단에서 한빛 재건에 감사패를 김재학 소령 목사님이 우리교회 오정현 목사님께서 도우셨다는 감사패를 전달해 주었음.

요약 (느헤미야 8:8-12)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유대인들을 BC 44471일모이게 한다. 그리고 학사 에스라를 초청하여 말씀사경회를 열었다그때에 유대인들은 수문(Water Gate)’라는 곳에 모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구름처럼 사람들이 운집한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강단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학사 에스라는 이른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 책을 낭독했다이 율법 책은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의미한다. 에스라가 율법 책을 낭독할 때에 레위 인들은 백성들 사이사이에 앉았고,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했던 것이다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고 이해되고 깨닫게 되자, 백성들은 통곡을 하고 울며 자신의 죄악을 드러내놓고 회개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때 느헤미야가 말한다. 오늘은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고 기기뻐하자그리고 다시 날짜를 정하여 모이기를 힘써서 회개의 날, 금식의 날을 정하여 기도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우리 교회에 모여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회복하여서 더 주님 앞에 가까이 다가가 예배하고 사명을 다지고 늘 기쁨과 사랑을 실천하여 주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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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0. 5. 10.)

제목: ''내가 사는 이유, 사명''

말씀: (요한복음 20:21~23)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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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Calling, the Reason I Live.''

코로나 극복시리즈 12

이번 주는 '내가 사는 이유, 사명이다'. 현장예배를 위해 소풍가기 전날 밤 같이 주일 예배가 기다려졌다. 찬양대가 정성 다함을 주님은 기뻐 받으실 것이다. 비장한 제목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서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 주일을 지켜야 한다. 코로나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처렁 달려온 것은 사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01. 사랑의 교회가 사명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I. 사명이란 -그래서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사명이란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아래와 같아야 한다.

1. 사명이란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아래와 같아야 한다.

평생 부를 수 있는 노래,

평생 흔들 수 있는 깃발이다.

평생 붙잡을 수 있는 삶의 목적이다.

사명은 개인의 사적 욕심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 온 '고귀한 부르심'이다.

2. 예수님의 삶과 죽으심은 사명 때문이었다.

3. 예수님이 사명자이시기에 우리도 사명자이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사명 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인생 방향이 될 것이다. 사명의 사람들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올라감 같다.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내가 이 예배에 있는 이유는? 예수님은 주님 주시는 사명에 의하여 지배 받으셨다. 예수님의 반사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사명자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이 우리를 결정하신다. 특정한 사람만이 아닌 함께 사명자이다. 평범한 그리스도인도 다 사명자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사명을 죽음으로 성취해야 한다. 사명을 성취함에 영적전투 기백이 능력이 폭발적으로 나오게 된다. 사명은 맥박을 뛰게 한다. 쉼 없이 만드는 것이다. 사명의 심장이 뛰지 않음 죽은 삶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회복시키신 우 먼저 사명을 먼저 주셨다. 예수님은 사명을 통하여 영적인 심폐소생을 주셨기에 다시 한 번 재생되고 충전되고 부활되고 풀로 재현되기를 바란다.

 

부르스월키

악인은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하여 서슴없이 공동체 피해를 주며산다자기 이익 때문에 공동체 피해를 주지만 의인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도모하며 사는 것이다. 악인과 의인의 차이는 사명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래서 사명이 다른 사람은 악인과 같다는 것이다.

 

II.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1. 요한복음 20~21(20:21b)-''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것이 바로 사명의 시작이며, 은혜, 풍성이다. 사명이 부활되길 바란다.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가 죄로 폭망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창조와 타락을 회복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구원의 핵심이다. 그 정도의 진중함을 가지고 보낸다는 것이다.

2. (요한복음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것이다 여러 번 반복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중요할 때마다 나를 보내셔서 일하신다. 하나님이 보내셨음을 확실히 말씀하신다. 사명이라 강조하신다. 나를 보내셔서 사명자로 만드신 것이다. 따라서 내 삶의 ABC는 사명으로만 설명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들이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너를 세상에 보내노라. 너무 고귀하다. 우리같이 부족한 인생에게 사명으로 보내셨다. 이 말씀을 깨달아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그래서 주니의 차원 사명의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주님은 사명으로 오셔서 갇힌 자, 눌린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슬퍼하는 자에게 해방과 위로와 치유를 선포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사명이 확실하면 우리 주위를 치유하고 상처를 해결하는 치유 자가 되는 것이다.

3. (고후5:20)-“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특명 전권) 대사이다. 사명을 받은 것이다. 우리 모두가 또 다른 비결은 특명 전권대사인 것이니 우리의 삶의 격을 바꾸는 것이다. 사명을 감당하면 모범이 되듯 우리의 삶의 격이 달라진다.

III. 사명 자에게는 성령의 능력과 죄 사함 선포의 특권을 주신다.

1. 본문에 요한복음 20: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특명전권 대사에게는 죄 사함의 특권을 주신다. 사명 자에게 권능도 주시는 것이다. 평생 도우시는 성령님이 예수님을 도우셨다. 놀라운 기적을 주셨다. 우리도 성령으로 특명전권 대사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 주님은 맨땅에 해딩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의 권능을 받았기에 우리에게도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하늘 능력의 사명이다. 우리 속에 내주하셔서 때때로 도우신다. 견딜 수 없는 것도 견디게 하시며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신다.

2. 제자들의 두 가지 변화.1) 인격적 성령의 역사 2) 사역적 성령의 역사

1)담대함이다. 제자들이 두려움에서 이기고 회복했다. 성령의 능력으로 선포하고 회복되어야 한다.

2).실제적인 능력 선포자다. 어린 여종에게 말 더듬이를 베드로가 선포하신 것처럼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다.

3. 요한복음 라베테는 능동형, 복수형, 명령형이다. 요한복음 20:22받으라헬라어 라베테(labete)sms 사명에 걸맞는 능력을 주시길 사모해야 한다.

능동형우리는 길을 만들고 능력을 사모하여 모든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사모하라.

복수형함께 받으면 V자로 회복이 된다. 공동체가 함께 하는 것이다.

명령형이다.

4,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1) 죄 사함의 선포의 특권이 있다. 찬양 가운데도, 죄 사함 가운데 사해지는 것이며, 죄 사함으로 용서의 복음을 선포하라.

2) 용서를 체험하고 선포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명자의 사명방식이다. 그래서 모든 사명 자는 가정과 공동체에서 용서의 용량을 넓히는 것이다. 용서의 용량을 넓히는 축복을 주시기를 소원한다. 상처와 쓴 뿌리를 용서해라. 용서 없이는 사명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나도 용서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5. 사명 자에게 용서가 의무가 아니라 (운명)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정해져 있다. 용서가 사명자의 운명인 것은 여기서 악인과 의인이 결정된다. 정신과 환자들이 절반이 용서받지 못함 때문에 입원한다고 한다. 우리가 사명자로서 용서로 특명전권의 대사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란다. 사명을 선포하여 적당히 살지 말고 목숨 걸고 용서가 운명이 되어야 한다.

IV. 사랑의 교회 성도들의 사명 실천

1. 사명은 우리 능력과 자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2. 사명을 위하여 노예근성(slavesoldier)에서 전투력 있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전사로 바꾸신다.

3. 출애굽기 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대열은 전투를 위한 군인들의 대오 정렬을 의미하여 전쟁을 위하여 무장된으로 변역할 수 있다.

4. 민수기 1: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5. 사랑글로벌 아카데미(SaGA)가 영적 사관하고가 되어야 한다.

6.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이 있다.

1) 성경의 절대적 권위

2)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3) 성령이 능력과 주권

4) 거룩한 공교회의 중요성

5) 세계선교의 절발성이다.

 

Sega 사관학교처럼...

사이즈가 중요하지 않고 매그네틱 처치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우리가 지켜야할 사명이니 꼭 지켜서 브이자로 회복하길 바란다. 골든타임 늫치지 말고, 위정위덕이란 정치는 덕으로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위생위사가 우리의 삶은 사명으로 산다이다. 그렇게 집중하여 사명자가 되길 바란다.

 

요약

우리의 사명은--- 사명 자는 실천이다. 모든 성도들은 사명의 사람들로서 복권이 당첨된 것이다. 예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서 사명울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자격도 없는데 주셨다. 도마 같은 자라면 사명을 주시겠나? 출 코로나를 해야 한다. 모두가 골드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 사명을 위해 집중하자. 사명으로 암송 72구절을 하면 괴이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명의 르네상스가 되길 바란다. 사명자로 다음 세대를 계승하고 키우고, 사명의 사람으로 되어 때에 따라 필요한 용서를 하여라. 그래서 사명의 전성기를 맞게 되길 바라며, 올 투게더 하길 소망한다.

1. 느낌대로 흔들리며 살던 인생이 북극성 같은 사명자로 헌신하게 되고 보냄 받은 가정과 일터에서 폭포수로 거슬러 올라가는 영적 기백과 전투력으로 섬기며 살게 되길 바란다.

2. 영가족 공동체가 예수님처럼 운명적인 용서의 특명전권 대사로 드려질 때, 성령님의 폭발적인 능력을 힘입어 해방과 자유와 치유의 복음을 담하게 선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3. 사명자의 전성기를 누리고, 출 코로나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예수님의 피묻은 십자가 복음의 전사가 되어 V자로 수직상승하기를 간구하고 소원한다.

 

느낀 점.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주일이었다. 말씀에 비추어 보며 내가 사명자로서 진정한 전투력을 갖추고 지금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였다. 목사님은 오늘 무척 강조하신 점은 정말 노예근성을 버리고 진정한 솔져가 되라고 하신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만 바라보았지 않았나 싶다. 정말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오월이면 좋겠다. 내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고 자신이 없어서 주님 앞에 뭐든지 나는 부끄럽다. 더욱 헌신하는 알찬 주님의 자녀가 되고 싶고 사명자로서의 역할을 잘 하여 내가 사는 이유에 자존감이 높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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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2020. 5. 9)

제목: "야곱이 미약하오니"

말씀: 아모스7:1~6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 인터미션-

3차 리더스 컨퍼런스를 통해 우리의 생명되시고 소망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V자로 올라가길 원한다. 한국교회가 회복될 줄 믿는다.

오늘 우리 교회가 컨퍼런스가 한국교회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올 투게더(All together)가 되고 모든 교회 리더들이 모든 분들과 같은 마음을 가져 주님 주시는 축복을 주시길 빈다. 샬롬 라켐~~

 

이번이 컨퍼런스 4차이다. 1:2006~3차는 3년 전 했다. 이 시간 하나님을 카일로스, 크로노스 하나님의 시간으로 바뀌어 향후 10년을 좌우한다. 리더스 컨퍼런스=(리컨)이다. 주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40일 동안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믿음의 재정비를 하겠다고 예수님은 하셨다. 제자들과 한 사역들을 완전 복습하신 것이다.

우리도 사역의 재정비 재충전 재도전의 시간이 되었다. 리더스 컨퍼런스(리컨)도 사랑과 비전을 새롭게 재정립하게 되기를 원한다. 우리도 모두가 리컨을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정립한 것처럼 우리 사랑의 교회에도 올 투게더 새롭게 재정비를 하도록 하자~ 4차 산업시대를 어떻게 지혜롭게 섬길지를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교회가 아름다운 제물이 되어, 평생 사용해 주시길 감사하면서 예배하자.

주님이 뭘 기뻐하실까?- 마음에 감사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거룩한 품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찬양할 때, 크신 은혜를 주심을 보며 재현의 시간을 갖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불붙듯 일해 주실 것이다. 마음의 재정비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주님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이 모든 리더들이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에 이 말씀이 잘 접목되어 주님 앞에 서길 바란다. 메뚜기 재앙, 불의 재앙이 있다. 아모스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우리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는데 하필이면 확진 자가 있음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해서 주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다. 우리 전체를 놓고 진심으로 리더들이 마음을 다하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영적으로 강하고 함께 진정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 마음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늘나라의 선봉장으로 삼으시길 원한다. 거룩한 은혜를 가지고 12년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의 교회에게 재현을 주시길 원한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믿음의 용량을 주셨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4차 컨퍼런스에 쓰임 받고 주님 앞에 귀한 쓰임 받기를 바란다.

 

0I. 은혜의 저수지 사역의 병참기지- 이곳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 찬양 안아주심의 본당이 이렇게 되길 바란다. (시편52:8) - 하나님 집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 찬양 경배하는 곳이다. 안아주심 본당이 복된 본당 성소가 푸른 감람나무가 은혜의 저수지, 사역의 병참 기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가 물댄 동산 같고, 한결 같이 이런 내용이 기도 제목이 되고 소명이 되어야 한다. 지금 올해 6,7개월간이 다른 1년처럼 더 집중하자!

I..일꾼 삼으며 복음 전하는 삶.

 

II.핵심가치

1.지상명령

일꾼으로서 사명을 가지고 복음 전하는 자가 되길 원하며 이 과정이 평신도 지도자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제자로서 일꾼이 되는 사람이 되어 진실하게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며 복음 전파를 위해 구축해야 한다.

2. 한 사람의 소중성 무시 되지 않고 모두를 존중하여,

3.섬김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영혼을 섬기는 것이 자세이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 복음을 위해 목자의 심정이 되어야 한다.

4.최선을 추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온전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잘되기를 원하듯이 우리도 그래서 온전하게 잘 가르쳐야 한다.

 

*대사명과 대계명

대계명이 먼저이다. 순도 높은 사랑이 먼저이다.

대계명 대사명을 가지고 성령님의 역사의 믿음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결국은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 우리 주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임을 믿는다. 이것이 전인적인 구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증거는 우리에게 인격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지성, 감성, 의지, 그래서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성을 있다.

 

III.온전한 제자

1. 사고의 온전함

예수님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악하고, 사람의 생각이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온전 론은 우리의 부패한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진리의 말씀에 중심이 되어 변화가 되는 것이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자연스런 거룩한 감정과 순전한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고 순전한 의지로 따라가야 한다.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구별하고 우리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가 없다.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가 이 한해 동안 골든타임을 놓지 말아서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이 리셋 되어야 한다.

 

2. 감정의 온전함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다. 애통하시고 슬퍼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셨으며 기뻐하도록 하셨다. 온전한 감정은 죄를 미워하고 선한 감정이다. 우리의 삶의 상처가 많기에 감정이 치유되지 못하면 안 된다. 상처받은 자, 쓴 뿌리가 치유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남의 상처도 감쌀 능력을 갖추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모두가 치유가 되길 소망한다.

 

3. 의지의 온전함

예수님의 십자가로 절대 구원의 순정으로 구원의 길이 열린다. 그래서 한 사람이 순종하여 많은 사람이 따라오게 하며 우리의 의지는 절대 순종은 자기부인이다. 우리도 의지가 온전하라. 골든타임 놓지 말라.

 

4.관계의 온전함

위의 앞에 모든 게 정리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와 온전하게 된다. 이기적인 자가 되지 말고 이웃과 늘 좋은 관계가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면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된다. 늘 사랑하라. 그러면 모두가 다 좋아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온전한 인격적 관계이다. 서로 사랑하고 남을 대접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

 

5.행실의 온전함

관계가 제대로 되면 모두가 바르게 된다. (고후 5:10)

바울은 몸으로 선한 일을 행한다는 것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선행을 해야 하고 구원의 조건이 아니고 선행은 구원의 열매이기에 우리가 선한 행실이 되어 온 성도들이 주님 앞에 이렇게 서나가야 한다.

온 성도들이 한 해 동안 주님을 더 온전하고 어 온전한 제자로 신실한 종으로 닮아가라.

 

요약--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세 가지 환상을 보이신다. 첫째는 풀(곡식)을 다 먹어 버리는 메뚜기 떼 환상이고, 둘째는 큰 바다와 육지를 삼키는 불을 보이신다. 그때마다 아모스가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한다. 연약한 야곱이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며 위해 청하니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다. 그렇듯이 우리도 이번 코로나를 잘 극복했으니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4차 리컨을 통해 주님께 간구하여 회복되고 평신도들을 재정비해서 섬기고 사랑하고 존중하여 서로 돕고 주님 앞에서 온전한 인격의 지도자로 갖추어서 평신도 제자들을 잘 길러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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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2020. 5. 6.)

제목: ''큰 믿음의 비밀''

말씀 (마태복음 15:21~28)

설교자: 장광천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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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1) 자아를 깨뜨리는 자.

문제(수치심)를 주께 드러내며 경멸. 관계를 깨뜨리는 요인수치와 굴욕 속에도 딸을 살리려는 내 자신 내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주를 바라라.

2) 주가 구원자(메시아)라는 믿음.
이사야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And h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3) 주 앞에 엎드려 말씀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딸만 바라보면 예수님을 도구로 주님의 말씀에 대한 여인의 반응
27“주여 옳소이다마는 (자격 없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지만 주의 긍휼을 받고저 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 프로스퀴네오.절하다, 경배하다.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내 뜻대로 안 될때  그때 말씀 앞에 엎드리라. 은혜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아주셔서 감사하라는 말씀.

 

 

1.어떤 문제 상항 속에서도 나 자신에게 고정된 시선을 돌이켜 주님만을 바라보고, 순순한 사랑과 믿음의 연합으로 큰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기 바란다.

2. 나의 생각과 뜻이 맞지 않아도 먼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나의 소원과 우상을 내려놓고, 주의 위엄 앞에 엎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함.

3. 문제의 자리를 은혜의 자리로, 수치의 자리를 칭찬과 영광의 자리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전작으로 의지하고 자랑하며, 내 뜻보다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역사가 영광스럽게 이루어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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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본문에서 그리스도께서 가나안 여자의 딸로부터 귀신을 내어쫓는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 속에는 그리스도께서 불쌍한 이방인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시는 매우 진기하고 놀라운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고 또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을 위하여 예비해 주신 진기한 사랑이 이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 여기서 이방인을 비추는(2:32) 희미한 빛이 드러난다.

그 여자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이야기 한다.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자녀들이 괴로움을 당하면 부모들이 걱정을 하게 된다. 다정한 부모들은 자신의 분신인 자녀들의 불행을 아주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라고 한 그 여자의 간청 속에는 "귀신들리신 했지만 그 아이는 여전해 내 딸입니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의 가족이 가장 큰 불행을 당했다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애정을 베풀지 않으면 안된다. 가나안 여자가 그리스도에게 나온 것도 그 여자의 가족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자가 믿음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그 여자의 간청을 거절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비록 우리가 어떤 필요에 의해 그리스도에게 나아간다 해도 그리스도는 그런 이유로 우리를 내쫓지 않으실 것이다.

그 여자는 그리스도의 자비를 간청한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여자의 간청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 것이었다. 그 여자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제한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자비를 구했다. 다시 말해서 그 여자는 필요한 것만을 간청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그리스도에게 맡기고 그리스도의 자비에 의지했다. 자녀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그 부모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과 같다. 곧 우리의 자녀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기의 자녀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부모들의 의무다. 그러므로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 그 자녀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데려오라. 그것은 그리스도만이 그들을 고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간청을 한 뒤 가나안 여자가 직면했던 좌절감.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모든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늘 그를 찾아 온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를 보이시며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소리치기 전에 응답해 주시거나 아니면 그들이 말하는 동안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여기에선 그와 다른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학자는 생각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과 다름없이 이방인들에게도 같은 호의를 베풀어 유대인들을 화나게 하려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여인에게 등을 돌리셨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그 여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여자를 시험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대한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는 그 여자의 믿음이 강하다는 것과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여자가 그와 같은 좌절감을 얼마나 훌륭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지를 알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여자에게 실망을 안겨주셨던 것은 그 여자의 믿음의 시련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백성을 대하실 때, 그들에게 자신의 섭리를 특히 자신의 은혜를 베푸시는 방법 중에 모호하고 어리둥절하게 했던 대부분의 방법들이 이 이야기를 통하여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불쾌한 모습을 보이신다 해도 그의 마음 속에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 여자가 특별히 심한 실망을 받게 된 것을 살펴보자.

그 여자가 그리스도의 뒤에서 소리칠 때 그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셨다. 그리스도는 늘 귀를 기울이시며 자기에게 간구하는 불쌍한 자들의 소리를 경청하셨다. 그런데 이 불쌍한 여인에게 그리스도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여자는 어떤 자비나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시의 행한 일을 알고도 아무 대답을 하시지 않은 것은 그 여자가 더 열심히 기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여자에게 자비를 바랄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그 여자로 하여금 자비를 얻기 위하여 훨씬 더 끈질기게 간구하도록 했다. 하나님께 열납되는 모든 기도는 즉각적으로 응답을 받지 않는다. 때때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기도에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믿음을 시험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개선시키기 위한 것이다.

제자들이 그 여자를 위하여 친절한 말을 하자 그리스도는 그 여자의 간청을 거절하시는 이유를 밝혀 그 여자를 더 실망하게 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 여자를 대신하여 간청한 것은 그 여자에게 어느 정도의 위안을 주었다. 그들은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말했다. 비록 제자들도 그 여자의 요구가 해결되기를 바랬겠지만 그들은 불쌍한 여인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일보다 오히려 그들 자신의 편안함을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건의했던 것이다. 따라서 제자들이 한 말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한 말이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질러 우리를 성가시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창피하게 하오니 그 여자의 딸을 고쳐주어 그 여자를 보내소서"라는 뜻이다. 계속해서 끈질기게 간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은 선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뒤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을 좋아하신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답은 그 여자의 기대를 완전히 좌절시켰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아무리 끈질기게 요구한다고 해도 현명한 사람의 확고한 이유는 좀처럼 변경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그 여자의 요구에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여자를 반박하셨으며 하나의 이유를 들어 그 여자의 입을 막았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속해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 큰 시험에 빠진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여자가 계속 끈질기게 간구하자 그리스도는 그 여자의 간청이 부당하다는 것을 주장하여 그 여자의 간청을 거절하셨을 뿐 아니라 겉으로 보기엔 그 여자를 거의 꾸짖기까지 하셨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6).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그 여자의 모든 희망을 없애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그 여자가 진정으로 아주 강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그 여자는 그리스도의 이 말을 듣고 절망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복음의 은혜와 그 부속물로 생기는 기적적인 치유들이 바로 자녀들에게 주어진 떡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베풀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방에게 결실이 맺어지는 시기를 주어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다(14:16,17). 이들은 곧 특별한 백성에게만 어울리는 특별한 은혜들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로 간주하여 개로 불렀을 만큼 매우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그런 점을 인전 하신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은혜를 이방인이 나누어 갖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여기신다.

이제 그리스도는 이 가나안 여인의 간청을 다음과 같은 말로 반박하신다. "가족도 아닌 이 여자가 어떻게 자녀의 떡을 먹으려고 생각할 수 있느냐?" 그리스도는 먼저 가장 두드러진 영광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낮추시고 그들을 천하고 무가치하게 떨어뜨리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명예를 얻고, 특권을 누리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자비를 전혀 받을 수 없는 개와 같은 존재로 여겨야 한다. 그리스도는 큰 시험을 주셔서 큰 믿음을 갖게 하시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가 시험을 받고 정금과 같아지도록 가장 고통스러운 마지막 시험을 준비해 두신다.

이와 같이 시험을 받으면 많은 사람이 침묵 속에 빠져들거나 갑자기 격분하게 될 것이다. 그 여자가 신앙이 약했다면 다음과 같이 말했을지도 모른다. "불쌍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달갑지 않은 말만 하는구나. 내가 차라리 집에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무시할 뿐만 아니라 개라고 부르기까지 하다니!" 그 여자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란 말인가? 정말 이 사람이 친절하고 다정하며 동정심이 많다고 소문난 그 사람이란 말인가? 나는 개가 아니라 여자다. 나는 불쌍한 처지에 빠져 있는 정직한 여자일 뿐이다. 분명 나를 개라고 부르는 것은 마땅치 않은 일이다." 겸손한 믿음을 가지고 진실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영혼은 모든 것을 선한 쪽으로 말하고 행동할 뿐 아니라 그것을 최선으로 생각한다. 그 여자는 이런 모든 절망을 다음과 같은 태도로 헤쳐 나간다.

그 여자는 자기의 간청을 그리스도께서 들어주시기를 열심히 구했다. 이런 태도는 방금 전에 그리스도로부터 거절을 당했을 때도 나타났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25). 그 여자는 계속해서 간구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제자들을 잠잠케 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더 이상 말을 듣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응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이와 같이 우리는 부담을 더 민감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그 부담을 제거하기 위하여 더욱 굳은 결의로 기도해야 한다. 그 여자는 더욱 간청하였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욕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실수한 것이 아닌가 하고 돌이켜 보는 것 같다. 그 여자는 더욱 겸손하게, 자신의 행동이 예수님께 혹시나 거만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와서 예수께 절하였다.' '또한 그 여자는 자기의 열심히 부족하지 않았는가 하여 이제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외쳤던 것이다. 기도의 응답이 늦춰질 때 하나님은 응답이 늦어지는 것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이 기도하고 더 좋은 기도를 하도록 가르치신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실망을 당하게 될 때 기도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 여자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도 보내셨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믿음이 약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에 대한 선택 때문에 질문하고 의심함으로써 당황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자기들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 좋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한 그 여자의 기도는 매우 간절하지만 포괄적이고도 열렬했다. 그 여자가 이와 같은 기도를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었다.

 

첫째, 그 여자는 자기의 처지를 슬퍼했다. 상한 심령을 가진 자들이 슬퍼하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때에 그들을 살피시기 때문이다. 또한

둘째, 그 여자는 시험을 당하는 이때에 자기를 도와주시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그 여자는 이처럼 언짢은 일을 당했을 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셋째, 그 여자는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한 본래의 요구를 굳게 주장했다. 이 말은 곧 "주여 제가 오게 된 목적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한 것이다. 그 여자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도울 수 있으며 또 기꺼이 도우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 여자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선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자기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도가 웃음거리로 되고 또 우리가 그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한다면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여자는 경건하고 훌륭한 믿음으로 매우 놀라운 간청을 했다. 이 가련한 여인을 그리스도의 말씀을 반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응하기로 결심한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7). "주여 옳소이다"라고 한 그 여자의 고백은 매우 겸손했다. 우리는 겸손한 신도를 그와 같이 비천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는 언제든지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다. "주여 옳소이다. 제가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개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자녀의 떡을 함께 나눌 권리가 없습니다." 그 여자가 이 말을 하고 나서 간청을 한 것은 매우 영리한 행동이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 여자가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통하여 논증을 한 것은 매우 총명하고 영적으로 기민하고 영민했기 때문이었다. 생동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은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까지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한다. 우리는 우리를 실망케 하는 것 속에서도 믿음을 통하여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그 믿음은 우리를 밀어내려고 뻗어진 손을 잡음으로써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도록 한다. 그 여자의 간청은 바로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한 것이다. 진실로 충분한 정식은 자녀들만을 위하여 마련되지만 그 자녀들이 먹다 떨어뜨리는 작은 부스러기들은 개들이 먹어도 아까와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여자의 겸손과 궁핍은 그 여자로 하여금 부스러기라도 기뻐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아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에 감사할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있는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신자에게는 귀한 것이며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생명의 떡 부스러기이기 때문이다. 그 여자의 믿음이 그녀로 하여금 이런 부스러기를 기대하도록 자극했다. 부자의 식탁에서 그 자녀가 먹듯이 개도 떡 부스러기를 먹는데 하물며 그리스도의 식탁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그 여자는 그리스도의 식탁을 주인의 식탁이라고 부른다. 진정 그 여자가 개라면 그 여자는 주인인 그리스도의 개가 될 것이다. 비록 우리가 문지방에 거한다 해도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라면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간청에 대한 좋은 결과의 성공 : 그 여자는 이 노력을 통하여 신뢰와 위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비록 가나안 사람이었지만 진실한 이스라엘의 딸임을 입증하였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28). 이제 그리스도는 본심으로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신다. 그러므로 그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시는 것은 바로 그 여자의 믿음이다. 그 여자가 기지를 발휘하여 이 일을 잘 처리한 것은 여러 가지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곧 지혜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꾸준한 기도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바로 그 여자가 지니고 있는 믿음의 산물이었다. 믿음은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데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은혜들로 말미암아 믿음에 대해 가장 큰 영광을 돌리신다. 그것이 바로 그 여자의 믿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모든 성도들의 믿음이 다 귀중하지만 그들의 믿음이 모두 다 강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모두 같은 정도의 발전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의 위대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원수로 대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를 절대적으로 신봉하여 친구로 여겨 사랑하고 신뢰하는 데 있다. 진실하기만 하다면 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거절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큰 자는 칭찬까지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여자의 딸을 고쳐 주셨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곧 "내가 너의 간청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으니 네가 온 목적을 이루고 가라"라는 뜻이다. 믿음이 큰 자들은 구하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는 뜻과 부합되었을 때 그의 의지도 우리가 바라는 뜻과 일치할 것이다. 결코 그리스도를 거절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비록 한동안 자신의 모습을 그들로부터 숨기시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을 끝까지 거절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화답하였다.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그 어미의 믿음이 딸을 치유하게 한 것이다. "그가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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