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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예배(주후 2021년 5월 26일)
제목:)"은혜의 반석 위에서 계십니까?"
말씀: 마태복음 16:16-25
설교자:장광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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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16-25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장광천 부목사님 설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의 은혜를 받으면 참 많은 것이 변한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생기니 내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지 않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서 살고 싶어진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타인을 섬기며 살아가기를 힘쓰게 된다. 이것이 변화이다. 그러나 이와 달이 예수님의 온전함을 위해 몸부림치지만 연약한 자신의 모습, 더 잘하고 싶지만 실패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실망하고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훈련을 받으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달았는데, 깨달은 만큼, 은혜 받은 만큼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경험한다. 잘하려고 몸부림치는데도 참 어렵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도 또다시 무너지는 모습 가운데, 나의 이 이중성과 양면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나는 언제나 완벽하고 온전해질까를 그렇게 자책하게 되고, 소망과 함께 실망감도 커져간다. 또한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본다. 동시에 교회 안에서 상처도 받고 실망하기도 한다. 이처럼 성도의 온전함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잘 알지만 그만큼 온전하지 못하다. 영광스럽게 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오늘은 이런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 오늘 본문에 시몬 베드로는,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교회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다. 또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는 뜻이다. 그래서 깊은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다. 구약 성경에서는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세 종류이다. 왕, 선지자, 제사장이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죄인 된 인간들과 거룩한 하나님을 연결하는 그 일을 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완전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형상과 뜻을 온전히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특별히 메시아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된 종말론적인 약속을 성취할 구원자를 의미한다. 바로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종말론적인 구원을 성취할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참 기뻐하시면서 칭찬을 하신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여기서 이 복이 있다는 표현은 베드로의 외에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지 않으셨던 특별한 칭찬이셨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는 아람어로 ‘게바’이다.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이며 예수님은 시몬을 만났을 때, 게바, 반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 예수님은 이 반석위에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이 반석이 무엇을 말하는가? 카톨릭과 개신교는 사실 해석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먼저,

♤카톨릭: 반석을 = 베드로, -베드로가 ‘반석’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고 반석위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카톨릭은 믿고 있다. 그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고 그래서 카톨릭은 계속해서 베드로의 그 권위가 교황을 통해서 계승되고 이양된다 라고 주장을 한다. 그래서 이 본문은 카톨릭에서는 교황제도를 옹호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베드로의 권위가 교황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양된다는 근거는 없다.

♤개신교: 반석 = 베드로의 신앙고백, -참 좋은 해석이고 이 해석을 믿는다.


신학자들은 헬라어 단어 ‘베드로’는 남성명사인데 이 뒤에 보면 반석은 페트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여성명사로 되어 있다. 원래는 헬라어에서는 남성명사, 여성명사를 맞추어서 표현한다. 그런데 이 남성명사, 여성명사가 맞지 않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베드로와 뒤에서 말하고 있는 반석 페트라는 사실 다른 것을 지칭한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하겠지만 “베드로는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는 무서운 책망을 듣게 되었다.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은 인간 베드로는 결코 믿을만한 반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종교개혁자들이나 우리 교회는 이 반석은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가 했었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이라는 신앙고백이며 베드로가 했었던 ‘이 반석 같은 신앙고백 위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다’ 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저명한 성경학자들인 마이클 위킨스나, 헤르벤 이데부스, 디엘 칼슨, 프렌스, 이 이름을 말하는 이유는 이 앞서 해석이 워낙 종교개혁자들의 내용을 믿어야 하기 때문에 언급을 한다. 이 학자들은 이 ‘반석’을 ‘베드로’라고 해석한다. 왜냐하면 베드로라는 단어는 사실 예수님이 게바라고 말씀하신 아람어를 기초로 두고 있다. 그렇기에 ‘페트라도 게바’이고, ‘베드로’라고 표현한 것도 ‘게바’이다. 어법상 이 성에 문제나 여성, 남성, 이런 의미에는 상관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반석이며 베드로이며 게바이며 이 게바 위에 바로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은 바로 언어유희(言語遊戲)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실 때에 베드로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언어유희를 통해서 하신다. 베드로는 초대교회 반석과 같은 역할을 감당한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임한 다음에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3천명 5천명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진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게 될 때, 그 때에 성령이 임하게 되고 사마리아 교회가 세워지며, 고넬료와 그의 과정이 복음을 듣게 되고 그 때 성령이 임하게 되므로 말미암아 이방인의 첫 교회가 그 가정에 세워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베드로는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반석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사도들 위에 우리 교회가 세워졌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시작되는 시점 이후부터 예수님 자신이 어떻게 행하실지에 대해서 말씀하기 시작한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되고 다시 살아나게 되실 것을 이때부터 비로소 분명하게 드러내신다. 베드로가 이것을 듣고 당황하기 시작한다. 마음 가운데 불안하게 된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여기서 붙든다는 것은 옆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옆으로 데리고 가서 항변했다는 것은
꾸짖고 책망했다는 것이다. 예수님, 정신 차리라고 하며 이방인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을 받으시고 3일만에 살아나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묻는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정신을 좀 차리라고 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정말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한 것을 들린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을 보면 23절에 나온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무서운 책망을 하신다. 베드로는 영광스러운 고백을 했었던 하나님의 복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가로막고 있는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고 증명받고 있다. 예수님께 책망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게 하는 말은 헬라어로 스칸달론(걸림돌, 덫)이다. 뭔가에 걸려 넘어지게 하고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3:41-42,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심판이다.

*마태복음 18: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심판 받은 사람으로 주님께서는 경계하고 계신다. 영어로는 스텀블럼 럭(Stumble luck-비틀거림, 넘어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 방해물)이다. 예수님의 교회를 장차 든든하게 세워나갈 사람이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가로 막고 있는 예수님을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뿐이겠는가? 우리도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반석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교회와 이웃을 넘어뜨리고 시험에 들 수 있는 사단으로 인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무서운 경고가 주어지고 있다. 그 경고와 핵심에는 은혜와 십자가가 있다.



첫 번째는 은혜이다.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혈육이라는 것은, 사람의 힘과 지혜이다. 인간의 노력과 열심으로 지혜를 얻고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앙고백을 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렇게 영광스러운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의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셨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이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과 진리를 깨닫고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십자가의 은혜를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그 부활의 능력과 생명을 믿고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령님의 깨우쳐주심과 도우심을 점점 선명하게 경험하게 된다. 예수님은 요나의 아들, 시몬아, 이것을 알게 하는 이는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라고 표현하신다. 베드로라고 표현하지 않으신다. 어떤 의미냐면, 시몬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표현할 수 없는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이 영광스런 믿음을 갖게 하시고 이 영광스런 신앙고백을 하게 하셨다. 그래서 그 다음에 너는 베드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다. 무엇이 베드로를 베드로 되게 하시는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반석과 같게끔 만드는가? 우리의 열심이가 아니다. 신앙의 연륜이 아니다. 우리 직분이 아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처럼
우리의 신앙고백인 앞으로의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우리 가운데 말씀을 하신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 그 베드로 위에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인간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이 아닌 그동안 충성 봉사하고 노력하고 많은 것들을 일구어 나간 그 어떤 중직자나 그 어떤 사람을 통해서 세우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은혜에 붙들린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결단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록 베리’라는 목사님이 계신데,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베드로야 너를 믿는다. 나는 너를 충분히 잘 알고 있고 너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에 내가 너를 제자로 선택했다.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믿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다 버리고 떠나리라.’ 라고 말씀하신다. 그때에 베드로가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단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믿지 않는다. ‘오늘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예수님을 베드로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내 생명보다도 더 귀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다. 자신감이 느껴진다. 예수님 사랑이 담겨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믿지 않으신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는 칼을 뺀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아주 용맹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예수님이 잡히자 제자들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다. 베드로 역시 연약하다. 두려워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된다. 자기 확신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베드로가 호언장담을 했던 자가 몇 시간도 안 되어서 예수님을 저주하고 그대들에게 맹세하고 예수님을 부인했다. 요즘 드라마나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이 있는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사람을 고쳐 쓰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를 도저히 고쳐 쓸 수 없다고 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너무 잘 알고 사랑하셨기에 베드로를 믿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반드시 이루게 될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셨다.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될 것을 믿으셨다. 온전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마태복음 21: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태복음 16장에 이 베드로, 반석, 신앙고백을, 베드로 위에 세우겠다고 말씀하시고,
21장에서는 “내가 반석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코 반석이 될 수 없는 시몬을 반석과 같은 게바로, 베드로로 만드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은혜이다. 걸림돌 같고 때로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닌 사탄에 속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도 마침내 우리를 반석과 같으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열심인줄 믿는다.



*베드로전서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마태복음 21장에 본인이 바로 반석이며 산 돌 되었다는 표현을, 사도 베드로가 본인을 표현하고 있다. 구원의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라고 한다. 그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언제 우리가 산 돌 같이 되는가? 우리가 보배로운 산 돌 되시는 구원의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움을 받게 될 때에만 우리는 보배로운 산 돌 같이 신령하게 세워진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오직 반석 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만을 믿어야 한다. 그 하나님의 은혜의 경계선에 있고 은혜의 울타리에서 멀어질 때에 믿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받을만하지 않고 믿을만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반석 되게 하셨다면 우리는 반석인줄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되심으로 말미암아 너는 반석이라 내가 너를 통하여 영광스런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간절하게 소원한다.



두 번째는 십자가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의 내용이 있다. 23절에 보면,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핵심은 예수님께 베드로는 말한다. 다른 것 다 하셔도 되는데, 십자가를 지시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 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말씀하신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았던 마태복음 4장 10절과 거의 흡사하다.

사탄의 세 가지 유혹과 시험이 있다.

1.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라
2.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려라 그리하면 많은 사람이 너에게 오리라.
3. 나에게 절하면 세상의 영광과 권세를 주리라.


-하나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모든 영광과 성공과 만족을 얻어도 된다라고 말한다. 놀라운 간증으로 은혜 받을 내용이지만 문제는 십자가가 없다. 십자가가 없는 영광, 십자가가 없는 성공, 그것을 얻으라는 것이 마귀의 유혹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일이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샤와 빌립보로 가셔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자신의 할 일을 가르치신다. 자신의 할례도 말씀하신다. 가이샤와 빌립보는 헤롯이 세운 도시이다. 그래서 가이샤는 ‘황제의 도시’이다. 다산의 동물의 신이 유명했고, 로마 황제를 위해 웅장한 대리석으로 지은 신전들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그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로 나타내신다. 로마 황제, 화려한 신전 가운데서는 예수님의 모습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임금과 다른 가치관과 방식으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우리 가운데 그르쳐 주시고자 하셨다. 로마 황제는 더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그 위에 군림했다. 그러면서,


*누가복음 2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이방인 로마의 황제들은 그들 위에 주관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은인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권력을 행사하고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면서 그래도 자기들이 주는 혜택이 있으니 너희들도 나를 은인이라고 부르라고 말한다. 이게 바로 로마황제이고 팍스로마나의 길이다. 로마의 평화와 번영을 의미하며 강한 군사력으로 강한 힘으로 유지되는 평화였다. 만약에 로마에 대항하거나 반역하면 무참히 짓밟는다. 십자가에 못 박아서 그것으로 많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것이 로마 황제의 일이었다. 그것이 그 사람들을 군림하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은인이고 나 때문에 너희가 산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을 현혹하고 예수님을 미혹하는 사람의 일이며, 황제의 일이다. 영화 곡성을 보면, 거기에 유명한 대사가 있다. “무엇이 중한디”..... 영화가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 패러디가 되어서 영화를 보지도 않았지만 잘 알고 있다. 포스트에 나오는 코미디는 ‘절대 현혹되지 마라’이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를 강조한다지만, 현혹되기 쉬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우리도 신앙생활에서 정말 무엇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간과한 채 우리가 교회서나 일터에서나 가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간과한 채 세상의 목소리에 유혹되고 현혹되기 쉽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혹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는데, 엄마들의 모임이다. 가서 이야기 듣고 나면 그때부터 불안해진다. 사랑으로 인내하고 기다리고 있다가도 갑자기 정보들과 잘하는 아이들을 듣고 와서는 불안해진다. 절대 현혹되지 말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듣지 않는다.

제자들 역시 메시아라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로마의 압제 식민 통치로부터 유다를 구원하고 독립시켜 주셔야 한다고 정치적 경제적 메시아를 기대했다. 그러면서 제자들은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가? 누가 더 헌신할 것인가? 누가 예수님을 사랑할 것인가? 누가 더 큰 사람인가? 예수님께서 왕위에 앉으셨을 때, 누가 그 우편, 좌편,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것인가를 제자들은 이것으로 끊임없이 싸우는 일이 제자들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아서고 사람의 길, 황제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던 것들이 바로 제자의 모습이고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힘과 방법을 통해서 더 높은 길로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에 나의 성공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진다. 내가 원하는 것은 갖고, 내 권리를 확장하고 누리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것이 사탄의 유혹이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너의 권리와 능력을 최대한 사용해서 너희 욕구를 채우라. 너는 그것을 가질만한 권리가 있다 라고 한다. 이것이 사람의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는 일. 바로십가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길이었다. 십자가의 핵심은 권리포기와 순종이다. 

 

*빌립보서 2:6-8절에 보면,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 됨의 권리를 포기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기에 바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온전한 순종으로 구원의 반석이 되어 주셨다. 십자가 없는 성공과 영광은 모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리 많은 일을 할지라고 그 과정에 십작의 권리포기와 사랑의 순종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가정. 일터에서 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내 자존심을 지킬 권리가 있다. 이정도는 받아야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만큼 했으니 은인이라고 칭함을 받고 싶고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우리 가운데 불끈불끈 올라오지는 않는가? 그런데 이런 말은 가장 친근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서 들린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그렇게 칭찬했던 그 베드로의 입술에서 바로 사람의 이야기, 사탄의 속임수로 그 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관계 가운데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직위, 위치에서 대접 받는 것이 당연하고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옳다라고 여기는 것,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참된 사랑은, 참된 제자의 길은 권리포기와 사랑의 순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여전히 권리를 포기하기 힘든 우리의 모습을 본다. 그때마다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시고 가장 낮은 가운데 오신 그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십자가만이 우리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랑과 소망, 새 힘이 생겨날 줄 믿는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다. 로마의 그 강한 압제로 인해서 본인이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그래서 합당한 존재여서 그렇게 십자가의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과 존귀함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기쁨으로 자원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마찬가지이이다.

우리가 권리포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포기해도 마땅한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인가? 내가 무지 당해도 싸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만큼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귀한 자녀이기에 그렇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리 포기를 본받아 우리도 권리포기를 하게 될 때에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는다.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한다는 것이다. 나의 공로,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이기적인 욕망과 욕심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혀 죽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무거운 짐이 아니다. 십자가는 옛 사람의 죽음이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주인이 바뀐다. 죽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내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것이다. 우리 가운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었고 네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이다. 네 주인이 바뀌었음을 인정하라고 하신다. 언제 권리를 포기하고 사랑으로 순종할 수 있는가? 내가 주인이 아닌데,,, 바로 나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랑으로 순종으로 구원을 이루셨음을 믿고, 깨닫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주님의 자녀 되기를 소원한다. 자기 부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나타낼 수 있는 성령 충만한 자가 되어 그 자기 부인으로 기도의 능력을 무장되어야 한다.


♣요약
구원의 반석이신 우리 인생길 가운데서 나의 능력과 나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늘의 영광과 권리를 포기하시고 모든 권리를 버리고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가야한다. 성령 충만으로 채워져서 자기를 부인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왕 되심을 인정하고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 걸림돌이 되지 말고 은혜의 반석 위에 세워진 견고하고 온전한 예수님을 본받아서 세상에 유혹이나 현혹으로 불안해하지 말고 오직 주시는 지혜로 날마다 구원의 반석 되신 그리스도만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그 은혜의 반석 위에 세워져가야 한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성부에 의해 구별되었고 임명되었으며,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대예언자이시다(신18:15). 또한 유일한 대제사장이시며(시110:4), 영원한 왕이시다(시2:6). 베드로의 이러한 신앙 고백은 개인의 자격으로가 아닌 열두 제자를 대표한 것이고,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계시의 빛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되었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의미로, 예수님께서는 그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것을 말씀하셨으며 그리하여 그는 천국 열쇠를 소유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한다. 우리는 자기 본래의 것에 대한 모든 신뢰를 포기하고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한 분께만 매달려야 하며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도 기꺼이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부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의 것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사람은 정죄를 받지만, 주님을 사랑하며 주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칭찬을 받는다. 우리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다가 예수님께 책망받은 일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저지르기 쉬운 잘못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유익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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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08 회 경제상식퀴즈


1. 기업이 보유한 자기 회사의 주식을 말한다. 주주 환원 정책 차원에서 회사가 매입 또는 소각하기도 하는 이것은?
  1. ① 우선주
  2. ② 실권주
  3. ③ 자사주
  4. ④ 배당주
2. 곡물가격이 상승하는 영향으로 일반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은?
  1. ① 스태그플레이션
  2. ② 애그플레이션
  3. ③ 피시플레이션
  4. ④ 디플레이션

    3. 기업에 필요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다른 기업이나 연구조직과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개방형 혁신’ 전략은?
    1. ① 애자일 조직
    2. ② 오픈 이노베이션
    3. ③ 공유경제
    4. ④ 긱 이코노미
4.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단기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경제현상은?
  1. ① 애자일 조직
  2. ② 오픈 이노베이션
  3. ③ 공유경제
  4. ④ 긱 이코노미
5.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햅쌀이나 오미자 음료를, 맥도날드가 인도에서 소고기를 뺀 햄버거를 내놓는 등의 전략에 적합한 표현은?
    1. ① 글로컬리이제이션
    2. ② 규모의 경제
    3. ③ 메기 효과
    4. ④ 수직계열화

      글로컬리제이션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이다. 세계화가 국경 개념이 허물어지는 오늘날의 세계적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지방화는 지방이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말이다.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을 ‘글로컬리제이션’ 이라고 한다. 즉 세계화를 추구하되 현지의 기업풍토를 존중하는 경영을 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글로컬리제이션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지금까지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국가 단위의 개념이 사리지고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세계화를 외쳤지만 공통적인 것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지역의 문화에 잘 접목시킨 것만이 진정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일례로 맥도널드는 인도 지역에서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뺀 햄버거의 컨셉트를 도입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에서는 남녀 좌석을 구분하는 마케팅 전략, 즉 ‘글로컬리제이션’을 썼다.
  •  
6. 다른 회사 주식을 소유하고 사업활동을 지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 회사는?
  1. ① 주식회사
  2. ② 지주회사
  3. ③ 손자회사
  4. ④ 유한회사
7. 이슬람 율법상 먹고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식품, 의약품, 화장품 등에 붙여지는 인증을 가리키는 용어는?
  1. ① 리츠
  2. ② 할랄
  3. ③ 그린벨트
  4. ④ 정크본드
8. 도시의 무질서한 확장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설정, 개발행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지역은?
① 리츠
② 할랄
③ 그린벨트
④ 정크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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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상식 퀴즈 ★

○ 5월 24일 리브메이트 퀴즈
-연극이나 뮤지컬 등에서 주연 배우가 자리를 비울 경우 그를 대신해 주역을 연기하는 배우를

[언더스터디]라고 한다"는 퀴즈를 공개했다.

5월 23일 리브메이트 퀴즈
[밀라노 칙령]과 가장 관련 있는 로마 황제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콘스탄티누스"이다.

5월 22일 리브메이트 퀴즈
-팝아트'는 1960년대 초엽 뉴욕을 중심으로 부상한 미술이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는 누구일까요?
앤디워홀이다.

5월 21일 리브메이트 퀴즈
-코틀랜드에서 발생해 동계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컬링에 쓰이는 스톤의 재질은?
[화강암]이다.

5월20일 리브메이트 퀴즈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에 나와 유명해진 대사 [하쿠나 마타타]는 무슨 뜻일까요?
 '모든 것이 다 잘될 거야' 이다.

5월 19일 리브메이트 퀴즈
-달과 지구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질 때 볼 수 있는 크고 밝은 보름달을 가리키는 말은 무엇일까요?
'슈퍼문'이다.

○ 5월 18일 리브메이트 퀴즈
디저트는 [간단하게 먹다]라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했다?
정답은 x이다.  -디저트는 18, 19세기에 유럽- 

5월 17일 리브메이트 퀴즈
1 첫 번째 문제는 축구 경기에서 카메라가 찍은 영상으로 경기 과정을 판독하는 시스템을 무엇이라 하나요?
정답은 'VAR'이다.
2 두 번째 문제는 수 많은 발명품을 개발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발명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자동차'이다.
3 세 번째 문제는 24절기 중 여덟번째 절기로,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가 있는 절기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소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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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중앙은행 역할은 어디까지일까요?


커버스토리 양경숙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중앙은행의 정책목표에 ‘고용’을 추가하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우리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한국은행법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한은의 양대 책무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용안정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 양 의원의 주장입니다. 지난해부터 중앙은행의 임무에 고용안정을 포함하자는 논의가 본격화하고 관련법이 여러 개 발의됐는데 이번에 양 의원 발의안이 더해지면서 논의가 한층 진전될 전망입니다.

서양에서 17세기에 중앙은행이 처음 생겨난 이후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화폐를 공급하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종이나 금속 쪼가리에 불과한 화폐가 물건을 사거나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데 쓰일 수 있는 것은 중앙은행이 그 화폐의 사용을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민간 은행이 돈이 필요한 정부에 대출해주면서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특허를 얻은 것이 중앙은행의 시작이지만, 현재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 나라에서 중앙은행은 정부 주도로 만들어져 한 나라에 한 개만 존재합니다.

돈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일은 아주 어렵습니다. 돈도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흔하면 흔할수록 가치가 떨어집니다. 반대로 너무 적으면 돈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을 치겠죠. 이 때문에 중앙은행은 경기 상황을 잘 관찰하고 경우에 따라 돈을 풀거나 죄거나 해서 경제활동에 꼭 필요한 양의 화폐를 공급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 로비에 ‘물가안정’이라는 네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대리석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은 한은의 존립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더불어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고용 불안이 심해지니까 정치권에서도 한국은행에 고용안정까지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통화정책을 펼칠 때 물가뿐 아니라 고용까지 고려해 적절히 대응하라는 요구입니다.

안그래도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나 제로(0) 금리 시대의 중앙은행 무용(無用·쓸모없음)론,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로 인해 빚어지는 탈(脫)중앙화 움직임 등으로 중앙은행의 위상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한데 한은더러 고용까지 고려하라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은행의 은행’이라고 하는 중앙은행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최근 논란과 함께 4, 5면에서 알아봅시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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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정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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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5월 23일)
제목: ''성령 충만을 통한 온전함''
말씀: 에베소서 5:18~21
사회: 윤하중 부목사님
기도인도: 김대규 부목사님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오대원 목사님(한국 예수전도단 설립자/시애틀 안디옥선교훈련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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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18~21,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온전함 14번째 시리즈.



▶코로나 바이러스 가운데서도 성령강림 주일을 지키게 하심을 찬양한다. 이번 주일날 성령께서 우리를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령께서 기름 부어 주셔서 묶이고, 어려운 일은 다 풀어지고 주님의 귀한 날개로 품어주셔서 많은 것들이 해결되어 주님께 영광돌리기를 소원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허스트테슬 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 허스트 가문은 전 세계적으로 부자 가문이었다. 부자 중에 갖는 취미 중에 하나가 그림 콜렉션이다. 허스트가 하루는 그림 도록(圖錄)을 보다가 자기가 사고 싶은 그림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사려고 사력을 다했다. 그런데 못 샀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자기가 수장하고 있는 창고에서 그 그림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너무 돈이 많아서 많은 그림을 수집했는데 그 그림이 있는 줄도 모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축복을 받고도 가난뱅이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너무나도 놀라운 보혈의 능력과 성령의 축복을 우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모르고 무심하게 가난뱅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감춰진 보화를 캐내어 발견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우리가 성령에 대해서 신구약 전체를 보면 역사하시는 것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창세기1:2에 보면,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성령이 충만하면, 태초에 우주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완벽하기 전에는 혼돈하고 공허했다.
혼돈(混沌)=토후, 공허(空虛)=보후, 황폐하고 공허하고 허접한 깊은 상태였으나,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절서(秩序)가 잡혔다. -주님,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우리의 삶에 질서가 잡히기를 기도하자.


▷두 번째는
창 2:7에 보면,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성령이 충만하면, 흙이 생령이 된 것이며 흙이 사람이 된 것이다. 죽은 것이 살아난 것이다. 우리가 한국교회가 사랑의 교회가 우리 가정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이 자리가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진 곳이다. 귀하고 원더풀이다.


▷세 번째는
누가복음 1:35에 보면,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성령이 충만하면, 역사하시면, 수태고지, 마리아가 임신한 것, 예수님이 탄생함을 말씀하심, 불가능이 가능케 하심을 말한다. 불가능=>가능이 된다.


▷네 번째는
- 성령이 충만하면, nobody가 somebody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있게 만드신다. 평범한 인생이 비범한 인생으로 되는 것이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신다.


*성령이 충만하면,
로마서 8:11에 보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너희 죽을 몸도 살리리라.
ㅡ성령이 역사하시면, 성령이 기름 부어주셔서 죽은 몸도 살리신다. 중독 상태에서 성령의 역사가 되면 젊은이들, 게임, 성 중독된 상태에서 해방과 해결하는 길은 ‘성령의 역사’이다. 모두 사라지며 살아계신 ‘성령의 역사’로만이 사라지게 된다. 오죽하면,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성령으로만이 된다고 하셨다.




▶교회를 섬기면서 모시고 싶은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안의숙 목사님 남편이신 김동명목사님이시다. 이분은 복음의 핵심, 복음의 신비에 대해서 돌아온 탕자에 대해서 그렇게 은혜가 되었다. 순수한 복음의 엑기스를 우리 한국교회, 이 강단에서 들려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돌아가셨다.


또 한 분은 오대원 목사님(데이비드로스), 뉴욕커 신앙인이시다. 83세이시다. 시애틀에 계시는데 코로나 시대여서 줌(Zoom)으로 설교를 요청 드렸다. 오대원 목사님-이 분은 한국에 지성인들을 위한 성령 사역을 하셨다. 균형 잡힌 신앙을 펼치신 분이시다. 83세이시며, 인격적 성령사역을 하셨다. 책도 서술하셨다. 책ㅡ《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을 내신 분이시다. 오늘 성령강림 주일날 팀 프리칭을 하시기로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체험이 되는가를 잘 듣고 은혜가 되길 소망한다.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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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원 목사님,
참으로 반갑다. 사랑의 교회는 대예배여서 안하지만 동생처럼 지낸 오 목사님과 형제처럼 지내서, 또한 비대면 Zoom으로라도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오늘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모든 말은 영과 생명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것이고, 언제든지 우리로 하여금 새 출발을 하게 해 주시는 그런 말씀이다. 우리 생명도 좀 충만하게 되고, 성령 안에 새롭게 해하게 하고, 그리고 주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다.
내가 이르는 모든 말은 영과 진리로


▷말씀은 새 출발하게 하심.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은 새 출발, 목적이 있다. 그러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니까 우리가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이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 충만을 받으라” 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시는가? 이 말씀 그대로 보면 “때가 악하니라”이다.
-요즘은 누구든지 아는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든지 반(反) 기독교적인 세력이 강해지고 교회를 공격하는 세력들이 많아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순교를 당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졌다. 사탄이 전쟁을 통해서 분열을 통해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난민들이 늘어나고 지금은 2,600만 명의 난민들이 있는데 그들 중 절반이나 15세 아래의 어린 아이들이다. 난민들이 폭력 때문에, 혹은 빈곤 때문에, 이런 악한 때가 되었다. 더구나 코로나 19로 인한 것도 있지만, 문제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 안에서도 분열과 증오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런 시기에 사는데,,,


*요한일서 4장 3-4절에 보면,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우리 안에 계시는 분이 누구신가? 성령이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신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려주신 성령께서는 우리 각자 안에 들어와 계시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분은 이렇게 말 할 수 있겠다.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는데, 왜 나는 이렇게 약합니까? 왜 힘이 없습니까?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대답을 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 위에 권능으로 임하시도록 기도하라”고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성령강림 주일에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큰 명령이다.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길밖에 없다. 오직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초대교회 제자들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스스로 우리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우리 안에 없기에 그렇다. 누가복음을 보면, 너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누가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한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자기 힘으로 사역을 하지 말라 너 자신의 힘으로 살도록 노력하지 말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날 저녁에 성령을 그들에게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역사에 대해 그들이 증인들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와 똑같이 말씀하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 제자들이나 오늘 우리나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못한다는 것이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것이 무엇인가?
-성령께서 홀로 나를 주장하시도록 주님께 맡기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어떤 분은 나는 이미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말한다. 내가 성령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맞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내가 성령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보다도 성령께서 나를 갖고 계셔야 한다는 것이다.
-홀로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분이 나를 이끌어주시며, 예수님의 주권 하에 내가 하는 모든 일, 개인의 생활, 습관 같은 것들이라든지 대인관계,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순간마다 moment by moment, 성령님께 맡기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한국에도 구세군이 있다. ‘General William Booth’라는 분이 구세군을 세웠다. 오늘날까지 굉장히 아름다운 열매가 구세군에 있다. 그런데 어떤 분이 한 번 미국에 살 때에 물어보았다. 그분에게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영국 구세군의 비결은 God has all of me!!!. “God has all of me는 하나님께서 나의 전부를 갖고 계신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변화되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셨고,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많은 나라들을 바꾸어 주신 것이다. 자기 나라를 아름답게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 날마다 날마다 나의 삶의 전체를 맡긴다는 것이다.


▷나의 삶이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나를 완전히 다스리신다면 God has all of me.~! 우리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오늘 본문에서 현재 동사이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다. 순간순간 마다, 날마다,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생활이 달라지는가?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에도 성령께서 임하셔서 역사가 일어날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모욕했다. 그들이 술 취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행 2:13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 베드로는 사도가 술 취한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충만을 받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술 취한 사람은 걸어가는 것도 다르다. 알아듣기도 어렵다. 왜 이렇게 다르게 걸어가고 다르게 말하는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고 홀로 주관하시게 된다면 걷는 것도, 다르고 행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르다. 우리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 받는다는 것은 나의 삶 전체,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이제는 성령님, 나의 삶을 전체를 다 성령님에게 맡깁니다. 이제 내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제가 삽니다.” 그러니까 술 취한 사람들을 보면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사람들이 금방 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인줄 안다. 우리가 성령으로 행하면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진실함으로 하고, 우리가 말하는 것도 지혜롭게 말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역사하시는 것도 우리가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대인 관계도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보면 성령께서 우리의 삶의 전체를 다스기 시작하신다면,


▷첫째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여 찬송하라.”
-성령 충만을 받으면, 첫째는 찬양이 나온다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에서 그 동안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특별히 은혜를 받은 것 중에 특새와 성령 충만 찬양이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 오정현 목사님은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다. 우리 모두를 찬양하게 하는 은사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찬양하는 은사를 받아서 성령께서 임하시고 홀로 주관하신다면, 항상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성령께서 나를 홀로 다스리기 시작하시면 가장 큰 변화가 온다. 그것이 뭐냐면 성령께서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나를 바꿔 주시는 것이다. 항상 빚어 주시면서 예수님을 닮아 기도록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역사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도, 걸어가는 것도 행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으로 나아간다.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는 노래가 있다. 그리고 모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또 바울 사도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죄를 미워하고, 악을 떠나고,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고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고 미워하시는 것은 오직 죄와 악이다. 사랑하시는 것은 사랑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스도와 몸이 달라진다.

우리 모두 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우리의 대인관계가 달라진다. 우리가 서로서로 이 사람이 나보다 더 낫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어떻게 되는가? Unity,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고 성령님에게 다 맡기고 충만함을 받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한다면 새 역사가 한반도에 일어날 줄로 믿는다. 통일을 위한 가장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우리도 모두 그때그때 어두운 골짜기에 다녀왔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많이도 다니셨을텐데 그렇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다. 이때는 여러분의 때이다. 일어날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지혜를 주시고 축복하시고 이 나라를 축복하고 이 세상을 축복할 수 있는 은혜를 성령 안에서 주실 것을 믿는다. 우리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줄 믿는다. 자, 그러면 준비되었나요?



*성령 충만을 받을 준비-Are you ‘READY’?
R-repent =>회개하라. -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홀로 주관하시고 모든 죄를 벗어버리고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E-expet=>기대하세요. - 글쎄 그랬으면 좋겠다 하자, 마시고, “나는 확실히 기대를 갖고 있다. 주님께서 역사하실 줄 믿는다.
A- ask=>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너희는 약할지라도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D-desire=>소원을 가지세요. - 나의 마음의 소원은 오직 성령께서 홀로 나를 충만하게 채우셔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길 원한다.
Y-yield=>맡기라. - 순복하고, 나의 온 삶을 주님께 맡긴다. Lord, I have all of me. “주님 홀로 나를 주관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우리 각자에게, 온 교회를 향해서 큰 축복을 주시리라 믿는다. -오대원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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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연스럽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우리가 성령님을 알고 성령님을 모시는 것이 중요하다. 성령님이 나를 맡아주시고 홀로 주관하고 계시며, 지배하고 계시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성령님을 모시는 것보다 성령께서 홀로 지배하시는가?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첫째는–①명령형, 성령님을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한다. 순간마다 100%지배하시길 간구하라.
둘째는 -②현재형,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우리가 매일 비타민을 먹는 것처럼, 매일 성령님을 구하라.
셋째는 –③수동태, 성령께서 장악하시고 혼자서만이 아닌 공동체에서도 행하신다. 수양회, 기도회, 교회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도할 때에도 일어나고 역사해 주신다. 그러기에 성령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정현 담임목사님-


♣요약
성령충만을 받으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의 삶에 질서가 잡히게 되며, 흙이 생령(사람)이 된 것처럼, 죽은 것이 살아난 것이며, 불가능이 가능이 되고, 평범한 인생이 비범한 인생으로 되는 것이다. 또한 없는 것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성령이 항상 충만해야 한다. 성령님께서 매순간마다 나에게 완전히 주관하셔서 영적인 장군으로 삼아주시길 간절히 간구하며, 주님의 무한한 가능성을 찬양하고, 항상 범사에 감사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내고, 위로부터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성령 충만하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 민족, 열방까지도 복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회개하고 기대하고, 소원을 가지고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한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성령을 충만하게 채우실 것이다.


ㅡ바울은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이야기 한다. 세상 것에 취해 버리면 방탕한 것이 중심부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중심에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서 세우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사 흠이 없는 공동체로 성숙해지게 된다. 또한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께 복종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성령 충만한 기독교 가정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바로 알고 본받을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한다. 교회는 늘 성장해야 하고 성도도 늘 성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며, 자라지 않는 것은 퇴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오대원목사님(한국 예수전도단 설립자-시애틀 안디옥선교훈련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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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5월 22일)
제목: ''참된 승리의 함성을 위하여''
말씀: 사무엘상 17:1~11
설교자: 이기호 부목사님(사랑의교회 대학부 팀장)

예배 마무리 기도와 인도: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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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1-11,
1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2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3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토비새로 예배에 참여한 모든 성도님들이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의 폭포수가 흘러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골리앗을 앞세워 유대 땅을 침공한 그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다. 사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익숙하게 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다윗과 골리앗을 본문에 우리가 오래 머물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그런 일상에서의 그런 골리앗과 같은 문제들을 다윗처럼 대한 골리앗이 감히 하나님의 일을 욕보이고 저주하며 모욕 퍼붓기를 무려 40일간이나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했다고 한다. 40일간 반복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이스라엘의 군대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게다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를 거부하고 주변국처럼 눈에 보이는 큰 사람들을 동경해 왔던 그 이스라엘,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세운 첫 번째 왕이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큰 사람, 사울이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서는 그 큰 사람 사울은 더 큰 사람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다. 매일 골리앗을 바라보고 그 음성을 듣고 묵상하는 이스라엘 군대에 있어서 그날그날에 느낀 점과 적용 점은 날마다 심히 두려워하며 도망하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대체하여 다른 것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 모든 시도의 헛됨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한 번 하나님 안에서 참된 승리의 함성을 외칠 수 있도록 다윗을 통해 친히 새 역사를 집필해 가신다. 오늘 이 다윗에 대해서 3가지로 살펴보겠다.



*첫 번째, 다윗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 선포하였다.

-다윗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의 조상을 인도하셔서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를 지나 마침내 이 약속의 땅을 정복하게 하신 만군의 여호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 할례 받지 않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하겠느냐 한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그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함으로써 이미 그에게 시작된 심판을 재촉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대한 이 다윗의 선포는 왕에게까지 전해지며, 잔뜩 움추려든 그 백성의 마음에 한 줄기 소망이었다. 참된 승리의 함성은 크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그분의 살아계심의 선포함으로부터 시작됨을 믿는다. 문제를 묵상하면 그 문제가 우리를 압도하지만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묵상하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압도해 가시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오늘 이 시간 만군의 여호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포할 때, 모든 문제를 압도하는 그 은혜로 우리 모두를 붙들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소망한다.


*두 번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가 가질 진짜 무기는 세상의 무기와는 다르다.

-사울 왕은 어린 다윗에게 자기 놋 투구와 갑옷을 입혀준다. 아직 전쟁에 나설만큼 어리고 체구가 작은 그 소년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갑옷을 입고 엉거주춤 비틀비틀 걷는 모습이 그려지는가? 그런데 세상은 오늘도 우리에게 세상은 눈에 보이는 놋 투구와 갑옷과 칼을 잘 준비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더 크고 더 무거운 갑옷을 준비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쓴다. 하지만 이 이스라엘 앞에서 골리앗 앞에서 서보지도 못하는 이유가 강한 갑옷이 없어서가 아니다. 반대로 입었던 그 갑옷을 내려놓고 다윗의 손에 들린 막대기와 물맷돌에는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도움이심을 다윗의 실체의 신앙고백이 담겨있다. 다윗은 그의 신앙고백을 일상에서 경험했다. 맡은 양을 돌보면서 다윗이 맡서야 했던 곰이든 사자이든 오직 생명을 살리겠다는 그 일념으로 애끓는 어미의 심정으로 자기의 자신을 내어 던질 때마다 일상의 그 모든 현장에서 친히 건져내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대한 실체 있는 신앙 고백이 바로 이 물맷돌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무기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향한 전적위탁의 고백과 그 간증임을 믿는다. 왜냐하면, 전쟁은 사람이 아니라, 갑옷이 아니라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공동체와 소그룹과 그리고 일터와 가정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그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매주 결단하고 적용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들이 거대한 골리앗을 격파하는 참된 승리의 물맷돌로 준비되는 그 은혜를 간절히 소망한다.


*세 번째로 이 다윗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

사무엘상 16:13에,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바로 그날 다윗은 더 이상 이전의 사람일 수가 없었다. 다윗의 모든 재능과 태도와 그 언행에 이르기까지 다윗의 모든 것은 이 전과 이후가 확연이 달라졌다. 성경은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한 그 이유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할 수 있었던 그 이유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무엘하 5:10 절에,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의 시대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성령 충만한 그 사람에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찬양과 실체가 있는 생명의 능력이 힘있게 나타나는 줄 믿는다.


*사도행전 1:8절에,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오늘날 세상은 20대 대학생과 30대 청년들을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세대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세상은 청년들을 약하다고 말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손에 붙들린 청년들은 강하다. 세상은 깨어진 많은 가정을 보면서 가족과 가정에 무용론을 말한다. 하지만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손에 붙들린 그 가정은 주의 빚으심 가운데 더욱 온전해 가는 그 과정에 있을 뿐이다. 세상은 코로나로 인해서 모든 예배가 멈출 것 같이 말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도리어 세계 각 지역이 서로 연결되어서 세계 만국의 언어로 다 함께 높은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린 지난 두 차례의 글로벌 기도를 우리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청년, 가정, 교회와 나라는 강하다. 이러한 영적 기백으로 다윗은 이제 그 꿇었던 무릎을 세워서 이제 빠르게 달려 나간다.


*사무엘상 17:48-49절에,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 성령에 힘입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매주 온전함의 고봉에 올라갈 때, 전진해 나아갈 때, 마침내 참된 승리의 함성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게 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부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러한 소원을 담아 대학부가 온전함을 사모하며, 사역하는 내역을 잠시 나누고자 한다. -대학부-
사진. 
 

▷2021년을 시작한 대학부는 온전함을 사모하는 온전함의 고봉을 향하여 나아간다. 성령충만 은혜는 일상의 온전함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부는 텔레이오스 라이프 플래너를 제작하여 매주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선포되는 담임목사님의 온전함의 설교시리즈를 가지고 매일 마음에 새기고 있다 더 나아가 이전보다는 다른 오늘을 꿈꾸며 설교의 말씀을 일상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일상에서의 온전함은 부활절 생명 나눔을 통해 현재 코로나로 아픔을 겪고 있는 해외 선교지로 이어졌다. 대학부 지체들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 많은 헌신으로 사랑의교회 파송선교지를 섬겼다. 해외 선교지를 향한 온전한 헌신은 시공간을 초월한 온라인 해외선교지로 열매를 맺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연기되었던 단기선교를 지난 겨울 태국 현지와 연결하여 진행하였고, 올 여름에는 태국 일본 키르키스탄과 온라인으로 해외단기선교를 진행하게 되어 더욱 확장하게 된다. 사랑의 교회 대학부는 온전함의 새로운 차원인 영적 기백을 가지고 온전함의 고봉을 향해 멈추지 않고 올라갈 것이다. -대학부-

온전함을 사모하면서 하루에 큐티 한 번, 성경통독 다섯 장, 기도 30분, 한 달에 신앙서적 한 권을, 읽는 ‘15301’ 운동으로 스스로 기록하고 점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일상에서 온전함은 구체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과 코로나로 아픔을 겪고 있는 해외 선교지를 돕는다. 혈액이 부족한 피를 나누었다. 생명 나눔과 헌혈에 동참하고 영적전쟁을 기도하고 후원한다. 열악한 속에서 대학부가 모은 총액이 평균보다 두 배로 더 모였다. 그래서 태국에 인신매매로 아픈 사람들과 아프리카 파송선교 현장에 구체적으로 후원할 수 있었다. 미안마 교회 생존을 위해서도 준비하고 있다. 재정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온라인 단기선교를 본격적으로 준비하여서 국경의 제한이 없이 선교를 더욱 준비하고 있다. 현재 이번 다가오는 여름에는 3개국을 온라인 단기 선교회를 준비하고 있다. 오늘날 급속이 밀려드는 세속주의에서 대학부에서는 세계관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특히 가정의 달에 연애와 성, 가정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을 심는 과정과 기회를 심었고, 가정에 온전함을 사모하여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기존에 복음을 간증함을 넘어서 복음을 변증할 수 있는 심화단계를 구축하여 전도폭발에 참여하였다. 수양회에서 체인지를 준비하며, 기도하고 있다. 캠퍼스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길 바라며, 많은 관심과 기도를 해주시길 바란다.


♣요약
우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내어드리고 하나님께 전적위탁, 순종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며, 모든 성도와 대학부가 다윗과 같은 영적 기백으로 모든 골리앗의 장애물을 격파하여 텔레이오스(Teleios)로 변화되어 캠퍼스와 이웃, 열방에 그리스도가 왕 되심을 선포하는 자되고, 강한 군대로 쓰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새 역사를 집필하게 하심에 감사하자. 살아계신 복음을 선포하며 성령께만 전적위탁을 통해 이전과 이후가 실체가 되며 복음의 물맷돌이 되어야 한다. 대학부가 서약을 했는데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이루어주시길 기도한다. 21세기의 다윗이 되어 세상에서의 감당하고 세상에서도 승리할 수 있기를 성령강림 주일이니 소중하게 생각하여. 은혜로운 언약의 무지개를 주신 것처럼, 노아에게 주신 것처럼,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말고 구원받은 자체가 승리이신 십자가 앞에 엎어져도 엎어져야 한다. 참된 승리의 함성을 위해 낙심하지 말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의 믿음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인생의 절망을 이겨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 소망이 있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은 사울과 요나단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크게 패한 후 강성했던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울이 악신이 들려 이스라엘이 쇠약해지자, 믹마스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려고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이스라엘을 위협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의 오만 방자함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떨고만 있었다. 이 두려움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된 것이다.



-대학부 헌신의 서약.-

헌신으 마음을 담아 서약한다.

*후 예배(담임 목사님)
-어제가 부부의 날이었다. 결혼 20년 이상, 30년 이상, 39년 이상, 제주도에 결혼 90주년 된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다. 여자 분이 3살이 더 많았다. 남편은 103세, 아내는 106세 살고 계신다. 이렇게 잘 살고 계신 비결을 물었더니 부부싸움을 해도 심심하게 싸웠다. 독하게 안 싸웠다고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쥐어뜯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것을 깨달아서 남을 격려하고 축복하라. 가회동에는 파평 윤씨 대가 댁이 많다. 윤치훈 윤보선 등이 계신다. 그 가정들이 있는데, 시집온 며느리들도 90세 이상 사셨다. 그 윤씨 집안 그 집안의 가풍이 있기에 그렇다. 믿음으로 격려한다. 늘 자녀들에게 미리 믿음으로 격려하고 선포하며 기도제목을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살아야 한다. 우리는 남을 공격하면 안 된다. 남을 세워주고 격려해야 한다. 최근에 TV에서 교회 비난한 앵커인 어떤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남을 잘되게 해야 한다. 오늘 이 말씀으로 인해서 목사님도 결혼 60주년을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미리 선포한다. 우리 장로님과 권사님들 회혼식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믿음으로 싸워도 심심하게 싸우자. 한국 사람들은 극단적이 되는데, 이런 사고를 버리고 살기를 바란다. 다 극복하여야 한다. 남들을 격려하는 사람으로 살아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 되어야 한다.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에서 큰일을 하게 되어도 예수님의 자녀로서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성공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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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예배(주후 2021년 5월 19일)

제목: "바른 관계의 성공"
말씀: 학개 2:10-19
설교자: 강경식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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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2:10~19,
10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6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은혜를 사모하며 안아주심의 본당에서와 온라인 생중계로 수요저녁기도회로 참여한 모든 성도들을 주 안에서 환영하고 축복한다. 이 기도회에 풍성한 기쁨과 은혜를 주시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대한 전적 의탁으로 하나님의 부요함을 누리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많은 사건들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보면 사건과 사고가 많음에 우리 사회가 많은 문제가 있음을 보게 되는데 그중에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가 참 많음을 보게 된다. 인간성 상실에 대해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목적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도구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돈 때문에 친구나 친지들, 심지어는 부모, 친척, 형제, 여러 관계들 속에서도 서로 의를 상해서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있다. 돈 때문에 그런 경우가 거의 그렇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서 해외의 어떤 나라에서는 슈퍼마켓에서 휴지를 두고 싸움으로 칼부림도 나고 있다. 이렇게 소유 때문에 많은 사람이 비인간화 되고 있다. 참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마음이 참 착잡하다.

◈19후반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철학자 '마틴부버'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쓴 책에 현대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나와 너’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는 관계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져 있다. 그 내용은 세상에는 두 가지의 관계만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나와 너, 하나는 나와 그것의 관계이다.




*나와 너=> 나와 너 사이에 상호 인격관계이다. 인격으로서 자신을 깨닫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기 때문에 이 관계는 참다운 대화가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 공동체를 ‘인격 공동체’라고 한다.



반면에
*나와 그것=> 다른 사람을 그것, 비인격적 관계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다른 사람을 나의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다. 오늘날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인간성의 상실 때문이다. 바로 인격과 인격의 관계 속에서 서로 사귐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비인격화해서 그것으로 전락’을 해버리기 때문에 온전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온전히 자기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기 때문에 그것은 오직 독백만 이루어지는 집단적 타협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는 참으로 인간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 사회를 보면 나와 그것에 관계와, 나와 너의 관계가 전체적으로 떨어져있지 않다. 이 사회를 보면, 다 존재한다. 모든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나와 그것의 관계가 전 관계를 지배를 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와 너의 관계였는데 이제는 점점 나와 그것의 관계로 변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는 것을 정말 슬플 밖에 없다.



-우리는 어떠한가? 나와 가족과의 관계, 또한 나와 친구, 나와 성도들과의 관계, 그들과의 관계가 어떠한가?

우리들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가?

나와 그것의 관계인가? 아니면 나와 영원한 너의 관계인가? 예를 들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내가 바라고 생각하는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그 기도만 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또한 평소에 하나님을 안 찾다가 내 문제가 생기고 다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을 때,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떤 관계라고 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스스로 해보라. 성경에서 나와 너의 관계를 가장 잘 실천한 분이 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그 어떠한 자를 구별이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죄인의 친구, 약자의 친구, 연약한 자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예수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약강, 그 어떠한 형편과 사정에도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고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 모두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다. 이런 관계의 측면에서 오늘 본문을 살펴 볼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결단하기를 소망한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19절 하반부에 나와 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한다. 좋은 의미인데 유다 백성이 그 전에는 어떠했기에 오늘부터는 복을 받겠다 라고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인가?


▷본분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살펴보자. 배경은 성경에서 바사, 즉 페르시아라고 하는데, 그 일대, 원년 그 초대 왕인 고레스 왕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칙령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한다.

그래서 이듬해에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해서 유다의 제 1차 귀향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때에 귀환하는 그룹에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기록한 학개 선지자가 포함되어 있다. 성전재건은 BC 538년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때에 이 유대의 귀환이 시작되었고, 진행되다가, 이 고레스 왕이 죽은 이후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모함으로 인해서 그 성전 건축(재건)이 멈추게 된다. 그것이 16년간이나 멈추었다. BC520년까지 그대로 방치가 된 것이다. 그 후 페르시아 4대왕인 다리오 왕이 2년에 선지자 학개, 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해서 성전재건이 다시 시작된다. 그때에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가 다시 시작이 된다. 심지어는 백성들 가운데서도 아직도 하나님께서 짓게 하는 것에 대해서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핑계를 대든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지 못한 사람들은 방해를 한 것이었다. 아직 성전을 재건할 때가 아니었다라고 핑계를 대면서 성전을 내버려둔 백성들을 향하여 학개 선지자는 책망하며 말한다.



*학개 1:4-5절에 보면,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여기서 판벽한 집은 벽에다 판자나 나무를 덧대어 꾸민 집을 말한다. 이렇게 자신의 집을 꾸민다는 것은 그만큼의 여유는 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하였는데 자기들 집은 화려하게 꾸몄다는 것을 말한다. 당시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지 못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건축을 못할 만큼 어려웠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때가 아직 아닌 것도 아니다. 또한 주변 정치적 여건이 그것을 막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결국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하였다는 것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관계가 소홀(召忽)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침 마틴구고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다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가 ‘나와 그것’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일을 하셨다.


*학개 1:1절을 보면,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어떻게 일을 하셨는가? 씨앗을 부렸어도 그 수확이 너무 적다. 먹었는데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만족이 없다.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일을 하고 돈 모았는데도, 그 돈이 쌓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놓이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 그 자신을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셨는데, 자기 자신을 살피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학개 1:7절에 보면,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유다 백성들이 땅에서 곡물과 포도주의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한 모든 수고에서 한재(旱災)가 들었다는 것이다. 이 한재는 가뭄을 이야기 한다. 결국은 모든 수확(收穫)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가뭄을 들게 하는 것은 누구냐고 성경에서 묻는다.
11절을 보면 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학개 1:9절에 보면,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와 그것의 관계로 생각을 했기에 그들은 자기 죄를 부르는 데에만 집중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교훈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은 복주시기를 원하시지만, 그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지 않고 비인격적인 관계를 이루게 되면 하나님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런 우리의 참 신인 하나님을 일깨우시기 위해 나와 ‘그것의 관계’를 ‘나와 너의 관계’로 나아가 ‘나와 영원한 관계’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삶에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교훈을 통해서 그들이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고자 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은 개입하신다. 하나님은 나와 그것의 관계로 삼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면, 또한 하나님을 자아실현의 대상자로만 생각하고, 그러한 필요로만 채워주시는 분으로만 내가 대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올바르게 맺도록 우리의 삶의 개입하시고, 우리를 주님의 따뜻한 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나와 너의 관계’를 위해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다. 지금은 스룹바벨 성전이 터를 닦고, 막 성전을 짓기 시작하는 보잘 것 없고 이전의 성전에 비해서 초라할 것이다. 비록 인간적인 눈으로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성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함께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영광스럽다고 말씀을 하셨다.



*학개 2:3-4절에 보면,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 2:9절에 보면,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보다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성전은 본전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는 곳이 영광스러운 성전이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우리의 삶이 스룹바벨 성전처럼 겉으로 보기에 초라해 보이고 현실적인 여건이 아무리 암담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더 이상 염려하거나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우리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을 누려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복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보문은 학개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4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 오늘 본문은 3번째 받은 말씀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아직 성전이 완공되려면 4년 6개월 정도가 남아있을 시점이었다. 그동안 성전 건축을 중단한 채, 방치했던 유다 백성들의 죄, 그 성격을 설명하고 있고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그 이후에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 이전에 성전 재건을 시작했기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예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성전재건의 관심을 갖고 성전재건을 시작한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신앙을 점검하고 목자의 심정으로 유다 백성을 격려하고 계신다. 이 시간 하나님 아버지의 목자의 심정을 느끼는 그런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두 가지를 질문하고 그 대답을 들으시면서 백성들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두 가지 질문,
첫째는 거룩한 것,
둘째는 부정한 것에 대한 질문이다.

첫째의 질문은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 기름이나 다른 식물에 닿았다고 해서 그 음식들이 거룩해 지는가?
-성경에는 대답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 12절에 보면,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한한 후에 종교적 의식을 중요시하여 그것을 열심히 행했지만, 그것만으론 그것만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여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배의식을 거룩하게 여기는 자세는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를 때에 가능하다. 그것도 하나님의 바른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한데,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질문은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게 된 자가 다른 것들을 만지면 어떻게 되겠느냐?
-성경에는 그 대답을 부정하여 진다고 대답하고 있다.


*13절에 보면,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어린 아이가 밖에서 진흙탕에서 손을 담그고 손에다가 잔뜩 그 진흙을 묻힌 다음에 그 손을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다 손으로 만지고 다닌다면 그 집은 어떠하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학개 선지자는 유다 백성이 같다고 말하고 있다.


*14절 보면,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유다 백성이 더러워진 손으로 아무리 많은 재물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 제단에 와서 예배에 참여한다고 해도 그것은 소용도 없고 가증스럽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계실까? 본문 15절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5절에 보면,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유다 백성은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놓이지 아니할 때에, 아직 터만 닦아 놓았고, 또 하나님의 성전보다 자신의 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평안과 안녕을 추구할 때에 그 때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아직 터는 닦여 있기만 한데 아직도 공사는 이제 막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것은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의 평안과 안녕, 집을 닦고 또 자기의 배를 채우는 데에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의 자아실현을 하기 위한 데에만 신경을 써서 하나님의 관계가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닌 ‘나와 그것에 관계’로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런 관계가 어땠을까를 본다.


*16절에 보면,
16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자신들이 한 모든 수고에 대한 열매들이 제대로 얻지 못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곡식을 기대했는데, 실제적로 수확을 해보니 절반 밖에 되지 안 되었다는 것이다. 포도주도 절반도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겠는가? 그것은 유다 백성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유다 백성들이 복을 받고 열매가 풍성한 삶이되기를 바라셨는데,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닌 나와 그것의 관계로 변질되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직접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유다 백성의 수고에 대한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게 하셨던 것이다. 유다 백서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위하는 길이 자기 배를 채우고 자신의 집을 챙기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위하는 것과는 점점 멀어져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수고했던 열매가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를 원하셨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개입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고에 대한 열매가 없게 함으로써 그들 자신들 돌아보게 하셨다. 하나님의 관계에 회복을 생각하게 하셨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에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좋은 성과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못할 때가 있다. 그 이유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까닭 없이 잘 안될 때, 왜 이렇게 안 되는 것인가? 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지 믿어야 한다.

▷우리가 안 좋은 일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먼저 우리는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열심히 하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개입을 생각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관계를 친밀하게 하고자 하심을 생각을 해봐야 한다. 현재 상황은 이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주도적으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내용이 바로 있다.

*18-19절에 보면,
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이제는 여호와의 성전지대를 쌓던 날부터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그날부터, 이제는 수고에 대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삶을 돌아보면, 정말 많이 바쁘고 많은 삶을 살아나기 위해서 애쓰고 있고, 그런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한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 아무리 정신없이 힘든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관계에서 만큼은 성공을 해야 한다.

'마틴부버'가 그랬듯이 점점 사회가 비인격화되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시대에 나와 그것에 관계가 온 사회를 덮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나와 너의 관계를 이루기를 소망한다. 또한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와 주변사람과의 관계에서 성공하기를 소망한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와 영원한 너, 영원한 너의 관계를 회복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관계를 통해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힘을 실어주시고 선한 복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와 그것의 관계로 있었다면, 나와 너의 관계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인간성이 회복되고, 공동체가 인격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이런 부분을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선하신 뜻임을 알 수 있게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 영원한 너, 나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나와 너의 관계인 인격적인 관계로, 우리가 성공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오늘부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처럼, 이 시간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관계로, 결단하고, 그 내용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하며, 이 시간부터 구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요약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교훈을 주심을 진정으로 깨달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통해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가 되어 하나님을 찾고 교제하며, 예배하는 자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비인격화 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격적인 관계에서 성공으로 회복하고 우리의 하나님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최우선 영역을 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오늘부터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지금부터 당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인격적이 되고 주변 공동체와 이웃에게도 나와 너의 관계가 되어서 주님이 주시는 복된 약속을 받야야 한다.

-성전 건축의 영적 의미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한다. 만일 근면하지 못하여 영적 나태함에 빠진다면 더 큰 역경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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