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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5월 8일)
제목: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세대”
말씀: 요한일서 5:4-5
설교자: 이민형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예배 마무리 인도와 기도: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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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5:4-5)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담임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 토비새에 나와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며 감사, 회개, 결단으로 주님 앞에 아름다운 믿음 보고, faith의 리포터를 올려드리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지난 수요일까지 부모님들이 부담이 되었다. 오늘부터는 반대로 우리 자녀들이 조금은 부담을 가져야 한다. 주일하교 친구들이 평소에 잘 했으면, 카네이션 한 송이로도 충분하다. 지금 많은 자녀들이 토비새에 나왔다.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아름답고, 존재 자체가 큰 선물이다. 사랑의교회 주일하교에서는 정성을 담은 마음으로 아이들이 감사로 성장하고 있다. 온가족이 함께 밤 9시에 성경을 읽는 시간, 주일하교 유튜브 사랑 채널에는 정말 많은 가정들이 참여해주고 계신다. 구독과 좋아요!가 너무 많다. 다음세대 신앙의 플랫폼을 꿈꾸며 함께 하고 있다. 지금 하루에 성경 3장씩 읽고 있다.


우리 믿음 세대 자녀들이 이렇게 멋지게 쓰임받기 위해서는 생각으로 말로만은 안 된다. 담임 목사님이 늘 강조하심처럼, 실체가 있는 비전이 되고 이것이 모두가 체화되기 우해서는 반드시 구체적인 실천과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비포(before와 에프터(afer)가 명확히 차이가 있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말씀한다. 오늘 함께 읽은 요한일서 5장은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그 실체가 무엇이며, 이 시대 가운데 우리 자녀들이 지켜내야 할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요한일서 1:1-2절,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 소아시아 교회에 들어온 수많은 이단과 잘못된 사상, 즉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며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사역과 십자가의 모든 죽음 부활까지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는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사도요한은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경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었으며,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절대 속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강력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 토비새때에 담임 목사님께서 자녀들과 부모님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 주신 귀한 시간에서 전해주신 말씀이다. 물론 성도님들께서 다 아시겠지만, 말씀에 화답하신 우렁찬 아멘 소리를 잊지 못한다. 기도하는 여러 학부모님들도 함께 마음을 모으시겠다고 한다. 더구나 대법원, 서울지방법원, 대검찰청이 코앞에 있는데,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지 지혜로운 방법을 표명하여 우리 자녀들을 말씀으로 지켜내고 세속화의 거센 물결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영적 강군으로 세우기 위해 몸부림쳐야 함을 해보게 되었다. 요한일서가 기록된 당시에 상황과 현재 2021년 우리가 만나고 있는 현실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영적으로 더 정신 차리고 더욱 깨어있어야 할 때 인줄로 믿는다. 그러나 완전히 끝나지 않는 이 코로나라는 특수한 환경가운데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부정적인 결과들이 하나 둘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5월 6일자 국민일보에서 ‘한국교회 부모 자녀, 신앙생활 소홀해졌다.’ 거기 정확한 수치가 나왔는데, 우리 자녀들이 지난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실제로 조사해본 결과 절반이 넘는 약 53퍼센트 정도가 이런 대답을 했다. 이 짧은 뉴스 제목 안에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 그대로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사 첫머리에 ‘코로나 19사태로 비 대면으로 예배를 드린 한국교회 크리스천 가정의 영적 상태가 이전 보다 약화된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영적 공백 상태가 있음에도 크리스쳔 가정에 신앙교육은 시간부족과 자녀의 학업 등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이 기사의 내용을 읽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영적공백 상태의 원인으로 꼽은 시간부족이다.
-구체적으로 설문항목에서 자녀 신앙교육의 걸림돌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에 각자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로 우리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여행도 못하고 있다. 우리 사랑의교회에서 생각해보면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지난 봄 글로벌특새 이후로 매 예배 시간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가득 차는데, 영적부족으로 시간부족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로 국내, 해외여행도 못하는데, 직장은 재택근무, 학교는 온라인 수업중인데 왜 바쁠까를 생각하게 한다. 무엇 때문에 바쁜가? 우리 손에 들려진 스마트폰이 바쁜 것은 아닌지를 봐야 한다. 손에서 놓지 못한 것은 혹시 네플렉스, 유튜브로 시간을 빼앗긴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한다. 요즘 학부모님들께서는 요즘 학력 격차가 심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학원을 보내지 못하니 온라인 강의 등으로 강제적으로 등록을 시켜서 다른집 아이들도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는데 매일 집에서 뒹구는 아이를 보며 한숨을 지으며 마음에도 없는 진심이 1도 안 남는 아이들에게 하고 있다. 저는 이 코로나 시대가 시간이 없어서 영적공백 상태가 생긴다는 것이 이해가 안됐다.


두 번째로 우리 사랑의교회 가정의 현실은 아니라는 판단에 크게 공감되지 않는다는 것.
지난 봄 글로벌 특새 이후로 매 예배 시간마다 공간마다 성도님들과 우리 아이들로 안아주심의 본당에 가득참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만큼 예배에 대한 사모함과 간절한 마음이 이전보다 더욱 커졌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부족한 부분들도 있지만, 지금 사랑의교회 현재의 모습역시 한국교회 역사에 남을 모범이 되는 사례라고 생각하게 된다. 섬기는 고 3의 한 학생이 현장예배를 하고 있는데, 그 주간에 모의고사도 있던 주간인데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서 붙잡고 물어보니 “시험기간인데 괜찮니?” 했더니 이 친구의 대답은 “목사님, 공부랑 믿음 생활이랑 비교하면 안 되죠”라고 대답했다. 순간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과 이 친구의 대답이 백번이고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시 후 보여드리겠지만, 요셉 브릿지에서 20퍼센트 방역 지침을 지키기 위해 교회로 달려온 아이들을 위해 예배드리게 하고 교사들은 예배 복도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는 모습으로 아이들을 섬겨주시는 모습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광경이며 감동적 장면이었다. 아무튼 뉴스기사의 내용이 100퍼센트 우리의 모습은 아니라고 하더라고 지금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절대 그냥 간과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을 공격하고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마지막 때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교회 안 밖으로 일어나는 일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요한일서 2:18,
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그렇다면 이 마지막 때 인본주의와 무신론의 견고한 진을 파하며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세대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단순명료하게 이야기해 준다.


*요한1서 5:4~5절,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온 우주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에 무릎 꿇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무릎 꿇게 하는 비결은 다름 아닌 믿음인 줄 믿는다. 구체적으로 그 믿음의 내용은 우리의 소망이요,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온전한 믿음의 고백을 올려 드릴 때,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요한복음에 사도요한은 기록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요한복음 20:31절에,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렇게 선포한다.
*요한복음 3:16절, 16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를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계속해서 사도 요한은 흔들리는 세상 가운데 변함없는 굳건한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제대로 된 신앙고백과 결단을 통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다음세대를 설계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믿음의 고백의 내용은 단순명료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부활하셨다. 그 주님을 믿기만 하면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지금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이것을 못하게 하고 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탄은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절대 걱정하지 말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수많은 위협과 핍박 속에서도 목숨 걸고 지켜낸 이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세상이 아무리 차별금지법이니, 잘못된 교육으로 우리 다음세대를 넘어뜨리려고 해도 생명의 말씀 위에 서면, 우리 사랑하는 자녀, 가족들이 그 말씀 붙잡고 일어서면 반드시 기필코 승리하게 될 것을 믿는다.
-믿음의 세대 계승을 이루는 주일학교 사역보고의 시간을 갖겠다. 화면을 함께 보면,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시겠다는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영원한 약속이 되었고, 많은 사람을 돌아오게 한다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는 다니엘의 이야기처럼, 빛나는 새벽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의 궁극의 소망이 되었다. 태양 빛을 간직하여 밤하늘을 비추는 사랑의교회 다음세대가 언약의 말씀을 통해 약속을 가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져 밤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빛나며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원하는 STAR에 비전을 담았다.


*STAR
‘성경중심’을 통한 영적 성장과 제자훈련을 통한 예수님의 제자양성, 교회와 가정의 연계를 통한 믿음의 세대 계승을 새로 세대의 부흥을 주도할 인재양성이다. 코로나 엄중한 상황 가운데 폭포수와 같은 은혜를 누렸던 주일학교 사역의 현장을 함께 나누겠다.
-다음 세대를 살리는 예배이다. 작은 부활절, 영적 대관식, 기쁨의 혼인잔치에 우리 다음세대는 기쁨으로 올려드리는 예배이다. 마스크를 착용이 익숙해져서 율동과 찬양하는 모습이다. 주일학교 교사들이 성극을 하는 장면이다. 학생들과 은혜를 나누고 있다. 왕년에 한 교회 오빠! 하셨을 것이다.


♣ 요약
이 마지막 때, 인본주의와 무신론의 견고한 진을 파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단순명료한 말씀을 가지고, 온 우주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에 무릎 꿇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무릎 꿇게 하는 비결은 다름 아닌 믿음이니, 우리의 소망이요,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온전한 믿음의 고백을 올려 드릴 때,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부활하셨다. 그 주님을 믿기만 하면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받는 것임을 믿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수많은 위협과 핍박 속에서도 목숨 걸고 지켜낸 이 위대한 신앙고백처럼, 우리도 세상이 아무리 차별금지법이니, 잘못된 교육으로 우리 다음세대를 넘어뜨리려고 해도 생명의 말씀 위에 제대로 서면, 우리 사랑하는 자녀, 가족들이 그 말씀 붙잡고 일어서면 반드시 기필코 승리하게 될 것을 믿는다.

▶주일학교 STAR는
성경중심’을 통한 영적 성장,
제자훈련을 통한 예수님의 제자양성,
교회와 가정의 연계를 통한 믿음의 세대 계승,
새로 세대의 부흥을 주도할 인재양성이다.
코로나 엄중한 상황 가운데 폭포수와 같은 은혜를 누렸던 주일학교 사역의 현장을 이렇게 함께 나누겠다. 

-하나님께 속하여 태어난 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난 자이며, 따라서 다른 세상을 위해 태어난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을 물리치고 정복할 수 있다. 믿음은 승리의 근거가 된다. 믿음 안에서 또한 믿음에 의하여 우리는 세상에 대항하고 그리스도께 신실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이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참된 정복자이다.




-성경통독 최아름(청년F국, 우세현(대학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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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5월 5일)

제목: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라"
말씀: 빌립보서 1:12-18절
설교자: 임병영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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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12-18)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여러분들의 삶이 요즘 기쁨이 가득하다고 느껴지는가? 마음에 혹시 기쁨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가?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상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원하는 경험을 했다고 해도 일시적인 만족을 느낄 뿐, 또다시 기쁨을 상실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고 너무나 아쉬운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다. 작년 6월에 소프트웨어 정책 연구소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분석하고 불안 치수를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한 감정이 분노 두려움, 슬픔, 혐오, 즐거움이라고 하는 5가지 유형으로 표출되었다고 한다. 특히 감정 중에 슬픔에 감정이 다른 감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고 지속 적을 유지된다라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코로나 불루, 코로나 우울과 지결 되어 있고, 우리 국민의 48퍼센트가 이 우울을 경험하거나 또는 경험하고 있다라고 한다. 이 조사 후에 벌써 일 년여 시간이 흘러간 지금, 주변을 우리가 돌아보면, 이러한 감정이 더 좋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렇게 우울한 삶이 기쁨을 상실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 여행을 온전히 다니지 못한 이유와 나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운동이나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서인지, 언제 어떻게 가늠이 될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는 그런 일상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의지 상관없는 일상을 반복하여 마주하는 것 때문일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너무나 안타까운 것 중에 하나가 여행길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여행길이 막혀서 스트레스를 풀길을 갖지 못하는 것이어서 기쁨이 없을 수 있다 라고 여겨진다. 반복되는 일상과 환경을 좀 벗어나면 조금 은 낯선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에 취하다보니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런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는데 그것을 채우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잠시 그러한 기회를 갖는다 해도 그 기쁨이 무한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그 여행만 갔다 오면 내마음이 가득해서 무엇이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또다시 삶에서 다른 기쁨의 이유를 찾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여행만이 아니다. 운동이나 만남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반복적으로 하지 않으면 일시적 기쁨으로 끝날 때가 많이 있다. 또한 그것을 반복적으로 해도 기쁨이 무한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의지와 계획대로 삶을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방법과 시도가 우리에게 온전한 기쁨을 회복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면 그것으로 기쁨이 회복 될 수 있는가? 그것 또한 새로운 문제에 휘둘려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로나 19가 완전히 종식되어서 그 상황이 끝난다면 어떠하겠는가?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그것으로 우리가 잃어 버렸던 그 기쁨을 완전하게 회복시킬 수 있다 라는 말에 얼마나 동의를 하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상실한 기쁨을 찾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코로나 이전에도 환경이 달라졌다 해도 그 기쁨을 완전하게 회복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상실한 기쁨을 찾고 우리의 마음에 무한한 기쁨을 소유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코로나19의 시기만 아니면 또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도 우리가 한결 같은 기쁨을 어떻게 하면 누릴 수 있는가? 오늘 말씀을 기록한 바울처럼 이 빌립보서에 기쁨을 강조한 사람은 성경에 별로 없다. 바울서신에서 약 40퍼센트 비율로 기쁨을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기쁨의 사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바울의 인생은 기쁨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다메섹을 걸어가고 있는 그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그 바울, 그리고 그 예수님으로 인해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후에 그의 인생을 생각해 보자. 그의 인생에는 매를 맞고, 사람들의 조롱과 대적들의 공격의 삶이었다. 여러 번 죽을 뻔했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 금식하여 그가 죽을 때까지 한모금의 물도 먹지 않겠다고 외친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우리들이 지난달까지 날샘큐티를 통해서 바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알 것이다. 읽은 본문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빌립보 교회에 기록한 편지다.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기쁨과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그 바울이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 기쁨을 지금 강조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어떻게 누구보다도 기쁨이 없을 것 같은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기쁨이 상실한 삶을 살 것 같은 그 사람이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라고 강조하여 그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말씀을 함께 나누자.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이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진전이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가이사에게 상소해서 로마로 와서 감옥에 갇혀 있는 미결수 상태로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감옥에서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는 시간을 계속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이 복음 전파의 진전이라고 표현한다. 진전이란 진군이 원활하도록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뜻이다. 로마에서 전쟁을 나갈 때에 그 전쟁을 하기 위해서 길을 만들 때에 사용하는 단어이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도리어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새로운 길을 만들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감옥에 있으면 안 될 상황이지만, 만들어 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방인의 골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성을 지나쳐야 한다. 가지 못했던 성을 가봐야 그곳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복음 전파를 위한 새 길이 만들어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바울이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무엇인가?

 

13-17절에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밖에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이야기 한다. 이때 시위대 안이란 표현은 시위대를 관장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당시 로마의 시위대란 로마를 지키는 수도 방위군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곳이다. 통상 그렇게 중요한 자리에는 황제 친척이나 최 측근이 맡게 되는 곳이다. 그러니 그곳에는 귀족들과 관리들의 친척들의 만남이 있을 가능이 너무나 많은 곳이었다. 바울이 아무리 일개 시민이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왕족들과 귀족들과 그들의 가족, 형제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그 시위대 안에서는 무궁무진 하게 펼쳐져 있었다는 곳이다. 심지어 그곳을 드나들었던 그 사람들은 이 바울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고, 죄도 없는데 가이사에게 상소문을 올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과 부활의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회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그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그 시위대 안에서 갇혀 있다는 것은 시위대 밖에 있는 여러 그리스도인에도 도전이 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매임으로 인해서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그 상황과 복음을 증거 한다는 것을 보고 시위대 밖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더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바울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자는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접한 자들은 하나님의 인정함을 알고 바울을 긍휼함으로 바라보면서 돕는 자들이었다. 바울이 갇혀 있음을 알고 갇혀있음을 돕고자 했다. 진지하게 더 풍성하게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은 시기하고 질투했던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복음 전파의 주도권을 잡으려 한 자들도 있었다. 또한 투기와 분쟁으로 한 사람들은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바울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고 싶었던 자들이었다. 자신을 위한 욕구와 그 술책을 마다하지 않는 당파적 근성이 있었다. 바울은 그들이 이러한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자 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 한 자들이니 그래도 고마움을 느꼈다. 바울은 분쟁과 투기를 했던 사람들과는 좀 어려웠을 것이다. 때로는 가슴 치며 안타까워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을 그들로 인해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그 비전과 그 꿈을 이루는 것이 나의 삶에 가장 커다란 일이라고 여겼기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 기쁘다는 것이다. 자신이 감옥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기쁨의 이유가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에도 복음 전파에 대한 하나님의 갈망이 제대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감옥이지만 밖에서나 대적 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진지하게 전하는 것이 감사하고 기쁘다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으로 쓰임 받을 때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채워주심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만족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시에스 루이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내 안에 이 세상 어느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갈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내가 또다른 세상을 위해 창조되었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설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만족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되거나 성공을 이루는 삶은 육신의 작은 만족을 줄 뿐이지만,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영혼이 최고의 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기쁨은 내 육신이 잘 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도 고난 가운데서 기뻐하고 또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이땅에서 코로나 시기에 이후에 시기에도 무한한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가?

 

▶우리의 삶에서 상실한 기쁨을 회복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는 우리의 비전을 세상에서 잘되는 것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 것.

-우리의 삶에서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고 그 기쁨을 다시 누리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우리는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아닌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비전을 살펴보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채워져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꿈을 이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것이었다. 바울의 사명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서도 자기 매임으로 그리스도가 전파됨을 기뻐하고 또한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이 있다.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겨라. 무엇보다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라’고 명령하셨다. 특별히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복음 전파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어렵고 곤고한 상황에도 바울을 통해 복음의 진전을 이루셨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그 영광스러운 사명을 우리의 비전으로 삼아서 코로나의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그것들을 이루어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다.

 

두 번째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위해 삶을 바치는 자 되어야 한다.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비전으로 삼게 된다면, 이제는 그것이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야 할지를 찾아야 한다. 또한 그것을 위해 전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

조금은 무겁지만,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을 맡고난 후에 그의 일을 위해 전 인생을 바쳤다.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빌립보서 1:20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

그래서 바울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위해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법을 위해 힘썼다. 세상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채울 수 없는 그 기쁨을 주시고자 하시는 그 기회를 얻는 축복의 통로이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 세상에서 끊임없이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그 기쁨을 하나님으로부터 단번에 채울 수 있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각자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찾아야 한다. 가정, 교회, 직장,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삶을 바칠 수 있는 결단도 하여야 한다. 기쁨이 상실한 일상에서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있음을 확신한다. 이 말씀을 의지해서 어떤 상황에도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바울이 감옥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바울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비전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인한 그 기쁨을 소유할 수 있었다. 우리도 그런 기쁨을 소유할 수 있다 그 비전을 위해 우리도 그 삶을 바치면 세상에서 줄 수 없는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코로나의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어도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게 하시고 비전을 여겨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고 주님이 마음의 온전한 기쁨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고 소망으로 인도하여 주시길 소망한다. 기쁨을 얻을 기회,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찬스가 되어야 한다.

 

♣요약
어렵고 곤고한 상황에도 바울을 통해 복음의 진전을 이루셨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그 영광스러운 사명을 우리의 비전으로 삼아서 코로나의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그것들을 이루어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시는지 다시 기회를 붙잡고 결단하고 헌신을 통해 주님이 온전히 주실 것을 바라며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처럼 기뻐하고 또한 기뻐할 기회를 지속적으로 주실 것이다.


-그는 복음을 대적하기로 서원한 자들에 의해서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복음을 맞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은 선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고난은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 사도가 구속이라고 하는 아주 큰 악에서부터 복음의 진보라고 하는 아주 큰 선을 끌어낸 이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라고 하겠다. 그것은 복음 밖에 있던 자들에게 복음을 알게 해 주었다.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3절). 바울의 고난은 그를 궁정에까지 알려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일이 궁정에 있는 사람들 중 몇 사람으로 하여금, 바울에게 고난을 가져다 준 그 복음이 무엇인가를 묻게 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결코 복음에 대해서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매임이 시위대 안에 나타나게 되었을 때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도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복음 안에 있던 자들을 담대하게 해주었다. 그의 대적들은 그의 고난으로 놀랐으나 그의 친구들은 그의 고난으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이하여 주안에서 신뢰하므로(14절).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바울이 투옥된 것을 보았을 때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일에 기가 꺽이기는 커녕 그 일로 인해 더욱 더 담대하게 되었다. 말일 강단에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은 기꺼이 그 고난을 감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그들은 아주 좋은 동역자와 함께 있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바울이 고난 중에 가졌던 위로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란 자신들을 견디게 해줄 뿐 아니라 지지해주는 훌륭한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매임을 인하여 신뢰하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낙담케 하고자 했던 적들의 의도는 오히려 전도되었고 그들은 담대함으로 나아갔다.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그들은 최악의 사태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기에 오히려 모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울은 대적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거짓 친구들로부터도 고난을 받았다(15,17절). 어떤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15절). 교회들 가운데 바울의 명성을 시기하여 그를 모함으로 축출코자 했던 자들이 있었다.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줄로 생각하여(17절). 그러나 바울의 고난으로 인해서 더욱더 활기있게 그리스도를 전파한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15,16절). 이와 같이 고난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해주었다.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바울은 매우 평안하게 되었다.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시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절). 인간들의 행동 원리들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그것은 우리의 영역 밖이다. 바울은 자유롭게 복음을 전파한 자들을 시기하기는커녕 참으로가 아니라 외모로라도 복음을 전파한 자들의 그 복음 전파를 기뻐하였다.  - 목양 5교구 -  기록(이향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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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05 회 경제상식퀴즈


1. 기술력이 있고 장래가 유망한 신생 기업에 자금을 대는 투자전문회사 또는 그 자본을 가리키는 말은?
  1. ① 국부펀드
  2. ② 벤처캐피털
  3. ③ 핫 머니
  4. ④ 라자냐 파이낸싱

2.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자에게 신용도나 담보와 관계없이 해당 사업의 미래 수익성을 보고 대출해주는 금융기법은?

  1. ① 벌처펀드
  2. ② CDC펀드
  3. ③ CDBC캐피털
  4. ④ 프로젝트 파이낸싱

3. 경기가 나빠지고 있거나 침체에 빠진 상황과 거리가 가장 먼 단어는?

  1. ① 스태그플레이션
  2. ② R의 공포
  3. 어닝 서프라이즈
  4. ④ 더블 딥

4. 보험사, 증권사, 카드사, 캐피털 등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용어로 적절한 것은?

  1. ① 1금융권
  2. ② 2금융권
  3. ③ 역내펀드
  4. ④ 역외펀드

5.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 도심의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를 뜻하는 단어는?

  1. ① KTX
  2. ② GTX
  3. ③ PBR
  4. ④ PER

6. 외국투자기업이 현지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계약 위반 등으로 손실을 봤을 때 신청하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는?

  1. ① ISD
  2. ② IPO
  3. ③ FDI
  4. ④ FTA

7. 중간 위험을 배제하고 매우 안전하거나 위험한 극과 극의 조합으로 자산을 배분하는 투자 기법은?

  1. ① 바벨 전략
  2. ② 시스템 트레이딩
  3. ③ 쇼트 셀링
  4. ④ 쇼트 커버링

8. 상점을 거래할 때 기존 점포가 보유하고 있는 충성고객과 영업 노하우 등을 이어받는 대가로 지급하는 돈은?

      1. ① 중도금
      2. ② 잔금
      3. ③ 권리금
      4. ④ 보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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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끊이지 않는 투기…탐욕과 광풍의 역사-


        커버스토리독자 여러분! 지금 인터넷 뉴스 검색창에 광풍, 투기, 과열을 쳐보세요. 세 가지 뉴스가 뜰 겁니다. 비트코인, 부동산, 주식~. 뉴스를 자세히 읽어보면, 비트코인에는 광풍, 부동산에는 투기, 주식에는 과열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검색창을 통해서 본 세상은 온통 ‘광·투·과’에 물든 듯합니다. 부모님들은 부동산에, 형 누나 삼촌은 비트코인과 주식에 꽂혀서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광풍, 투기, 과열 현상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현재와 미래를 불확실하고 불안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불안과 불확실은 탐욕 심리를 부채질합니다. 우리나라에만 ‘광·투·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가 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으로 한몫을 잡으려 합니다.2009년 비트당 0.000994달러였던 비트코인에 돈이 몰리면서 가격이 6만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7000만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탐욕의 광기’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유난히 더 높다고 하니 웬일인지요? 부동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했습니다. 3억원 하던 변두리집이 두세 배 상승했고, 10억원 하던 서울시내 집이 20억원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투기라고 야단이고 정부가 때려잡겠다고 또 난리입니다. 주식시장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을 내서 투자)’로 달아올랐습니다.

        광풍, 투기, 과열, 탐욕의 역사는 인류 역사상 자주 나타났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튤립 광풍’ ‘튤립 탐욕’은 유명합니다. 금융투기의 역사를 가르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죠. 당시 튤립 뿌리 하나의 가격이 비트코인처럼 폭등했더랬습니다. 튤립사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시시피주식회사 사건, 남해주식회사 과열, 미국의 대공황 등이 잇따랐죠.

        《꿀벌의 우화》를 쓴 버나드 맨더빌은 인간의 탐욕이 새로운 것(증기기관, 기차, 전기, 자동차, 휴대폰 등)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고, ‘북학의’를 쓴 조선 실학자 박제가는 탐욕하는 마음이 없어서 조선이 가난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탐욕이 경제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다니 재미있군요.

        최근 비트코인, 부동산, 주식 같은 자산 시장에서 나타나는 탐욕은 어떤가요? 탐욕의 역사, ‘투자와 투기, 도박의 차이’를 4, 5면에서 더 배워봅시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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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5월1일)
제목: ''역리의 세상에서 순리대로 사는 법''
말씀: 로마서 1:24~27
설교자: 조준일 목사님(울산 대영교회 청소년부 회장 초빙)

기도회 인도 :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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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4-27)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오늘은 주일학교 자녀들이 많이 왔다 사람이 바뀌려면 의식개혁이 되어야 한다. 그다음은 생각의 센스가 있어야 한다.-마음이 젊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능력이 중요하다. -담임 목사님-

 

▶조준일 목사님(울산 대영교회 초빙)
-이렇게 귀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어 기쁘다. 담임 목사님과 사랑의교회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고 그 진리 가운데 변화와 결단의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올 때에 사람들은 밀레니엄이라고 해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 변화를 뒤로하고 입대를 했다가 오니 세상이 그 순간 짧은 순간에 많이도 변화가 되었다. 제일 먼저 충격은 오락실이었다. 오락게임 등이었는데 새로 출시된 것들은 발판을 뛰는 것도 나오고 춤을 추는 것이 스텝대로 하는 것 등이 놀라게 했다. 또한 복학을 하려고 보니 수강신청을 하게 되는데 학교에 가서 해야 하는 시스템이 변화하여 인터넷을 통해야 하는 PC방이나 집에서 수강신청을 3분 만에 신청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기계적인 것이어서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인식과 사상의 변화이다. 아직도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변하게 한 것을 잊지 못한다. 충격을 받은 한 수업을 잊지 못한다. 형법강론이라는 수업에서 여자 교수님은 마치 연예인 중에 한사람을 언급했다. 트렌스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자가 여자가 된다는 트랜스젠더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았다.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그 교수님은 젠더들의 신분이 변경신청을 하여 수강을 신청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이 사람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질문하기도 했다. 당시 예비역들은 놀랄 수 없었고, 밀레니엄의 인식의 변화가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여자가 아닌 남자인데 대법원은 본인의 성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법적으로 바뀌게 됨이 인정했다. 밀레니엄의 시대의 인식의 변화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후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극심한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분명히 창조하셨다.

이 사회는 마치 콘센트처럼 인공적으로 법과 사회적 합의라는 젠더를 끼우면 얼마든지 성별이 바뀌게 하는 것처럼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창조질서를 역행하는 역리이다. 반드시 심각한 문제를 야기 할 수밖에 없다. 20년 전 청년의 때의 불길한 예감이 시간이 갈수록 맞아떨어졌다. 지금은 어떤 것이 진짜 성경적인가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혼란스러워하는 문화적 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저 연예인의 문제가 학교, 정치, 사회, 공공기관, 문화, 심지어 교계에까지 들어오게 되고 거기에 대한 성경적 기준을 갖추지 못한 교회나 성도들은 자신도 모르게 비 성경적인 내용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수긍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것을 역리의 시대라고 말한다. 역리라는 것은 순리의 반대이다. 조금 더 성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역리라고 한다. 그리고 역리의 시대란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를 이야기 한다. 순리를 바꾸어 역리가 상식이 되면 역리가 순리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이 익숙하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밀레니엄에 변화가 급속히 빨라지는 세상과 사회가 문화적으로 극심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창조질서를 무시하는 역리였다. 중요한 것은 학교 정치 공공기관 등에 비성경적인 것이 문화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은 그런 시대를 보시며 기뻐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다.

오늘의 본문 로마서는 고린도에 있던 바울이 로마교회를 그 지역 전도를 위해 베이스캠프로 쓰기 위해 쓴 편지이다. 당시 로마교회는 여러 문제가 있었고 바울은 그것을 성경적으로 해결해 주면서 동시에 진짜 복음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바울은 1장에서 복음에 존귀함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18절부터 갑자기 이 시대의 더러운 문화를 고발한다.

 

*로마서 1장 18절을 보면,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이 당시의 로마 사람들의 죄를 보시고 진노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불쾌함이다. 매우 불쾌해 하셨다. 당시 로마시대는 죄악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였던 것 같다. 죄를 짓고 또 짓다 못해서 24절에 보면,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내벼려 두셨다고 하신다. 그 결과는 26절이다.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하나님의 노하심의 절정이 죄의 버려두심이고 버려두심 결과 인간의 욕심이 극에 달한 현상이 동성애로 드러났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순리를 바꾸어 역리로 쓰는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시 로마시대 동성애는 상상을 초월한다. 심각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에 로마황제였던 네로 황제는 자신의 임신한 부인의 배를 차서 죽여 버렸다. 그리고 난 후에 수포로스라는 한 남자청년에게 반해서 동성애를 즐긴다. 그것도 그 청년을 거세시켜서 결혼까지 한다. 그 뒤로도 황제는 사람들이 있던 없던 스포로스와 성적인 유희를 즐겼다고 한다. 역사에 처음 기록된 트랜스젠더인 것이다. 그 외에도 황제열전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그 기록에 열두 명의 황제 중에 열 한 명의 황제들이 동성애를 즐겼다고 나온다. 황제가 이정도이니까 귀족이하 모든 국민들은 쾌락의 끝에 동성애가 있음을 문화로 인지했던 것이다.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그 현상을 보며 바울은 역리가 진리를 대신하는 시대를 안타깝게 여기고 이 상황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우리에게 전하게 된 것이다. 역리가 순리가 되는 것이 비록 로마시대만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역리가 순리가 되어 하나님이 진노하실 만한 일들이, 불쾌하실 일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제도화 되고 있고, 교육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오늘 굉장히 마음이 어렵다. 요즘 청년들은 축복과 격려로 원하는데 어쩌면 지적과 지탄과 회개를 강조하는 설교일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 전에 그 땅에 죄를 먼저 말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더 간절히 바라게 했던 것처럼 오늘 설교 이후에 하나님의 순리를 향한 불같은 마음이 일어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이 땅은 지금 어떤 상황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 26절에 나오는 역리는 파라피쉬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질서에 대항하다는 것이며 대적하고 거스르다 라는 것이다. 26절에 보면, 여인들이 역리로 쓰고 남자들도 순리를 버리고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나온다. 단수가 아닌 여자들 남자들이다. 사회의 다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리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한 두 명이 그 사회에서 그 죄를 지으면 사회적 에피소드 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가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문화가 된다는 것은 역리가 정상으로 인식된다는 것이고 상식이 되는 것이며 제도화 된다는 것이다. 제도화 된다는 이야기는 법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교육되어 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대에 동일한 현상들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이다. 그것이 울산에서 시작이 되고 있다. 가르치는 내용도 놀랍다. 이 작이 오래전부터 서울에서도 이미 착실하게도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울산보다 20년보다 먼저 서울에서 포괄적 성교육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그리고 작년부터 공교육에 커리큘럼에 포괄적 성교육에 엄청나게 애를 쓰고 있다. 우리의 자녀가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포괄적 성교육이 무엇인가?

-교육청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은 여성과 남성의 성에 대해 신체 구조적 차이와 같은 생물학적 특징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생애에서 성과 관련된 모든 경험을 포괄하는 교육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대충 좋은 의미 같다. 남녀가 평등이라는 뜻으로 여겨지고 대충 넘어간다. 정의가 모호하면 강론을 열어보고 구체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의 성교육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유네스코의 제도인 성교육을 따른다고 한다. 그게 무엇인지 서울 성문화센터에서 찾아보니 크게 8가지 영역으로 나온다. 보니 젠더교육이 중간에 떡하니 있다. 젠더교육이 무엇인가? 젠더는 존 머니라는 학자가 처음 제시한 단어이다. 기존의 남성 여성을 해체하고 모든 성은 사회적 역할에 따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여자가 될지, 남자가 될지, 혹은 양성이 될지를 자신의 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며 인정하지 않으면 차별이고 억압이고 부당한 대우이라고 교육하는 것이 젠더 교육이다. 역리가 순리가 되는 교육인 것이다. 이제 성에 대한 아이들에게 성은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거야’ 성이 선천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젠더 차별이야라고 교육하는 것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항하며 순리적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교육이다. 이것을 우리는 찬성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이 교육을 받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반대를 많이 했다. 이것을 이름만 살짝 바꾸어서 ‘성 인지 교육’이라면서 교육한다. 워낙 유명한 단어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라는 단어라고 들어 보았을 것이다. 서울에서도 작년에 초등학교 대상의 부모를 교육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단어 그래도 성에 대한 느낌이다.

이성을 대할 때 이것이 차별인지 폭력인지 성적인 부당한 대우에 대한 느낌인 것이다. 성 인지 감수성,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단어의 원래 명칭은 젠더 센서티버티(gender sensitivity이다. 젠더 민감성, 사회적 정치적으로 성별을 정할 수 있고 성경이 정한 것 외에 다수의 성이 인정받아야 하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민감성, 젠더 민감성, 이것이 성 인지 감수성의 원래 뜻이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드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한 거룩한 구별이 있기 때문이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이것을 해체하는 것이다. 남성, 여성, 그 외에 다수의 여러 성들을 인정한다. 그리고 성별로 고정된 역할을 주는 것은 차별이고 폭력이며, 젠더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표현하고 있다. 동성애를 보고 이상하다. 정상이 아니다 라고 표현하면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이고, 폭력, 부당한 대우가 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비성경적이며, 죄인이며 죄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된다고 교육하는 것이 바로 역리를 순리인 것처럼 바꾸는 것이 성인지 교육이며 지금 우리 학생들에게 시행하고 있는 교육인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원래 성인지 교육자료인 교재가 작년에 여성가족부에서 나다운 성교육이라고 수천 권을 전국에 다 뿌렸다가 하도 이 항의가 들어와서 전량 회수를 했다. 그런데 또 성 인지 교육 추천으로 또 들어왔다. 아빠인권 선언이라는 책이다. 아빠가 집에서 집행하는 권리이라는 책이다. 처음부터 보면 나쁘지 않게 보인다. 이해할 수 있고 용인 할 수 있고 때로는 추천하고 싶은 내용등도 있다. 마지막에 슬쩍 이 권리를 넣는다. 15조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원하는 대로 동성연애를 할 수 있다는 것의 그림을 넣어놓았다. 동성연애 그림을 넣고 아이는 입양하는 권리를 넣어놓았다. 정상적인 가족처럼 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그림도 있다. 그것의 내용은 “엄마, 아빠가 여자 친구와 함께 연못을 바라보고 있어요.”많은 내용을 생각하게 한다. 일단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1:27절에 보면,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성경은 이것이 분명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순리를 버리고 역리로 쓰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정작 우리 아이들이 받게 되는 성인지 교육은 ‘우리 아빠는 역리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그것은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이다.’라고 세뇌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 인권선이라는 책에서는 더 노골적이다. 15 남자든 여자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이렇게 성경에 대하여 역리를 순리로 만드는 교육이 우리 아이들이 받게 될 포괄적 성교육이며, 성인지 교육이니, 너무 화가 난다. 이 내용에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여러분은 동의가 되는가??? 이 뿐만이 아니다. 초등학교를 상대로 하는 성교육 가이드에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추천도서라고 선정하고 있다. 아이들이 성에 대한 절제와 책임을 배우기보다는 다분히 쾌락적으로 접근하는 조기성애와 될 우려가 매우 높다. 상당히 비성경적이다. 성애화란 모든 것을 성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구조, 인간의 목적을 성적 쾌락에 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거룩한 성전임을 고린도전서 3장에서 말씀하신다. 인간은 그 거룩 성을 대적하여 성적대상화 시키고 있다. 이 성인지 감수성이 이 사회에 얼마나 거세게 몰아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성인지 교육에 대한 교육에 지원이 얼마인지를 아는가?? 코로나로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 맬 때, 무려 35조원이 책정되었다. 국방부 예산이 50-60조이다. 나라 지키는 것도 아닌 35조이면 서울시 1년 예산 수준인 것이다. 천 이백만 인구를 위해 쓸 예산만큼 성인지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무얼할까를 생각해본다. 역리를 순리로 바꾸는 무차별적인 시도를 하는 것이다. 강사를 교육시키고, 교재를 편찬하고, 학교에 수천 권 보급하고 읽히고 가르치고, 성문화센터를 전국 곳곳에 만들어서 역리를 보편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성교육 강사가 오천 명 정도이다. 문제는 지금도 성교육 강사를 양성하고 있고, 특히 영유아 교사들, 학부모까지 계속 성교육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 성교육이지 영유아, 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모두 젠더이데올로기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그걸 배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에게 남자애가 남자애를 사랑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고 그 반 선생님이 가르친다면, 그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곳에 35조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2019-20년에 서울에서 성 평등, 다시 말해서 젠더 이데올로기 사업을 하는 자, 단체들에게 10억 가까이 지원한다. 그 공모에 당첨된 사람 중 4-5명 중에 보면, ‘교회를 바꾸는 젠더스쿨’도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교회에 들어가 있는 젠더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자기들이 바꾸믄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시민 단체가 서울시에게 돈을 달라고 하고 서울시는 좋다라고 하면서 지원해 주는 것이다. 교회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은 이런 젠더사상과 교육이 추구하는 것은 성경에 말하는 가정의 모습, 성경적 성역할의 해체이다. 이런 것을 연구하기 위해 35조를 사용하고 있다.

 

예들 들어서 아빠 힘내세요! 등도 차별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힘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전통적인 성 연구를 고정되게 하는 것이고, 엄마는 밥만 해야 하는 사람으로 여기니 이런 생각들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체주의이다. 아빠 엄마에 대한 거룩한 희생을 해체하는 것이다. 백번 천 번 만 번 양보해서 아빠가 밖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집에서 양육하는 것이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잘못하는 것인가? 밥이 중요하다. 극단적 페니미스트는 역사적으로 젠더 이데올로기와 그 뜻을 같이 한다. 정통적인 성 역할이 차별을 만들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은 이 사회에서 성과 가족의 개념을 해체하고 젠더 사상을 부지런히 교육한다. 그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보게 된다. 공중파 TV에서 본인을 소개하는데 “호모로맨스 에이섹슈얼 안드로진”이다라고 –‘정서적으로는 동성애에 끌리고, 육체적으로는 아무에게도 안 끌리고, 내면에는 남자와 여자의 성이 모두 존재하는 자기가 결정한 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커피 시킬 때 섞어서 시키는 것처럼도 아니고,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자기 성은 자기가 결정한다며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인권운동가라며 소개한다. 이것이 인권이라며 포장되고 교육되고 있는 상황이다. 두려운 것은 연예인 트렌스젠더가 공중파에서 처음 나와서 개념들이 판단 없이 등장하고 있고 소개되고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 소개된다는 것이며, 성에 대한 관념을 바꾸고 일반화 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왜곡시키고 고정되어 있는 질서를 부정적으로 인식시키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교육이다. 성 정체성을 본인이 결정하는 교육이 현재 인권운동, 성인지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것을 열심히 막고 항의해야 한다. 적어도 찾아보고 알아보고 반대하고 서명이라도 해야 한다. 사사기 시대에 자기 시대에 옳은 대로 행하니라의 하나님의 판단이 그 다음 세대에 내려지는 것을 볼 수 있겠는가? 그 결과에 무서움은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롬 1:27절 하반 절에 보면,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그 죄의 결과에 대해 받게 됨을 선언한다. 그것은 에이즈와 같은 고통일 수 있고, 사회적 고통일 수 있다. 영적인 어려움일 수 있다. 그것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역리로 산 인생은 반드시 그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역리의 인생-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신학자들이 이야기 한 것처럼,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기에 하나님을 거절하고 역리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지만, 그 거절의 결과에 대해서는 자유 할 수 없다. 인간이 하나님 뜻을 거절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선 결코 자유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해 진정 하나님의 순리를 배우며 옳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들이 해체하고자 하는 것은 성적인 해체만이 아닌 더 큰 문제는 역리현상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성경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심플하고 정확하고 물러섬 없이 이 죄된 모습의 원인을 이야기 한다.

 

*롬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순리를 역리로 바꾸어 살게 된 이유는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기 때문이다. 라고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한다. 바로 우상숭배이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설 때에 역리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상숭배 중에 가장 핵심은 특별히 자기를 섬기는 것이다. 자신의 안락과 평안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신앙행위, 자신을 우상화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 때 인간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 질서를 우리는 권위라고 말한다. 그들은 모든 질서를 나를 억압하기 위한 장치로 인식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와 나다움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순리적은 권위를 해체하는데,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를 해체하고, 학교에서는 교사의 권위를, 교회에서는 목사님의 권위를 해체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권위를 해체하며 오직 나의 즐거움과 편안함만 남게 하는 것, 그것이 우상숭배이며, 최악의 역리의 인생이다.

 

지난 2017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 줄기차게 막아오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젠더 교육과 해체주의의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대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 통해서든 우리에게 또 들어올 것이다. 그게 핵심인 것이다.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학생들이 어떤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고 생각이 들면, 이 조항으로 문제를 들고 항의하게 된다. 교사들은 이 잘못을 지적할 수 없어진다. 뭔가 모자란 부분들을 지도 편달할 수 없다. 차별해선 안되니까 이다. 누구든지 차별 받는다면 못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동생애를 차별하거나 발언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모든 권위를 해체하고 개인의 감정적 만족을 추구하는 이런 교육 환경들이 점점 제도화되고 있는 것이다. 성별 정체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다고 나오고 있다. 이들이 가르치는 개념 속에 하나님이 만드신 거룩한 성에 대한 개념은 한낮 미신의 것과 같이 취급되고 있다. 불평등하고 유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적 진리를 전하는 목회자의 교육은 미신의 것과 같이 치부되고 불평등하고 이 사회의 유해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가정과 교회, 특히 목회자들과 성경의 가치관과 권위를 해체하는데 교육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성별을 바꾸는데 가장 큰 역할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사람이다. 의사이다. 전 세계에서 성전환 수술을 하는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그것도 부산에 있다. 엄청 많은 수술을 하고나서 인터뷰를 적나라하게 하는데 너무 놀라웠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임을 아주 끔찍한 장면들이었다. 더 끔찍한 것은 기자가 신이 만든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요? 물었더니 ‘신이 창조하는 것이니 교리에 어긋나는 것은 맞지만 신의 실수를 바로 잡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신의 실수를 바로잡는다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는데 남자의 영혼을 여자에 몸에 준다는 실수를 반대로 여자의 영혼을 여자의 몸에 준다는 실수를 우리 나라에게만 300명 넘게 실수하셨고, 자기가 바로 잡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부모 교사의 권위를 넘어 하나님의 권위까지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고 있다. 나의 권위는 자신이 결정한다고 하고 역리 중에 역리의 세상이 된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바벨탑을 쌓아올리고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고, 그들의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을 보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이것은 정말 진리와의 싸움이다, 저를 목사님이 이렇게 나를 불러 강의하게 하신 것은 사랑의교회에 대한 사랑이며, 다음세대를 위한 애끓는 심정이 불같이 일어나시기 때문이다. 우리 울산 대영교회는 담임목사님이 허탄한데 시간을 쓰는 것을 싫어하셔서 어떤 정책이 일어나는 곳에는 무조건 보내신다. 때로는 하루 종일 걸리더라도 결정되기까지 힘을 싣게 하신다.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한겨울에도 피켓을 들고 함께 저항하고 우리의 의견을 외치는 것이다. 모든 교회가 왜 그렇게 하겠는가? 이게 진리의 문제이며 본질의 문제이자. 다음세대들의 영혼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음세대를 이런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망치면 안 되니까 절박한 심정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 원인이 있으면 방법도 있다.
▷먼저는 하나님의 형상을 먼저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고 최선을 다해서 그 질서를 순복하여 다음세대에 보여주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 내 가정을 귀하게 여겨라.

남편을 존중하고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영어, 국어, 수학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침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떤 중요한 일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는 부모님의 진심을 다한 그 거룩한 모습을 본다면, 그 어떤 세상의 가치관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거룩한 믿음으로 끝까지 버텨야 한다.

요즘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 없다는 것과 권위를 해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해체주의란? 하나님 권위까지 해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성전인 거룩한 몸을 거룩한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


*로마서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어떤 세상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믿음을 이어갈 때 반드시 살게 될 줄 믿는다. 출애굽 앞에서 기도의 팔을 내리지 않고 모세의 모습에서 나온 ‘에무나’라고 하는 말이다. 도저히 이길 수 없던 상황에서 모세는 그 기도의 두 팔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여 아론과 훌은 그 팔을 잡고 버티며 기도한다. 이때 가만히 있다. 내리지 않다, 버티다가 ‘에무나’이며, 이것이 믿음이 된 것이다. 가만히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내 눈을 고정하고, 하나님이 일하심을 버티어 기다린다는 것이다. 다리에 힘을 기도의 팔을 내리지 않고, 어떤 세파가 몰려와도 끝까지 저항하며 믿음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에무나 믿음이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고리타분하다고, 무식하다고 해도 우리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칼빈주의 3대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인 -아브라함 카이퍼는 1880년 10월 20일 자유주의 대학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영역주권을 위해 외친다.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다.’ 라고 외치지 않은 것은 없다. -아브라함 카이퍼-

이 말의 진짜 뜻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질서대로 사회를 변화시킬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유혹에서도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그 질서를 세우기 위한 믿음이 에무나 믿음이다. 그것이 물러서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그 기도의 팔을 내리지 않아야 한다. 오직 의인은 그렇게 버티는 힘으로 사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에 동참하고 서명하고 의사를 표출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게재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하나님의 기준이 나 혼자라도 버티는 자는 오직 의인으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질서 넘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님이자 세계적인 심리학자, 철학자인 beyond order라는 사람이 낸 책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는 보수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인종 및 젠더사상, 포스트모더니즘, 환경주의 등의 각종 주의(ism)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신 교도와 다를 바 없다.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적용될 때 지금까지 쌓아올린 지식은 힘을 잃고 환상이 세상을 지배한다.

-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교육이념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이념과 싸우는 것도 아니다. 어느 당을 지지하는 것의 하찮은 싸움이 아니다. 지금 주장되는 이데올로기가 이미 신이 되어있다. 그러니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젠더 이데올로기, 페미니즘, 해체주의, 성인식, 온갖 것으로 전도할 것이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 모든 것 중에 가장 뛰어난 복음이 가장 능력이 된다는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의 능력이 회복됨을 이야기 한다. 반드시 살리시는 복음의 능력을 이야기 한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오직 이렇게 살아낼 때에 역리의 세상에서 오직 믿음으로 순리를 고집해 나갈 때, 그렇게 버티고 대항할 때에 하나님께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다시 복음의 능력으로 살리실 줄 믿는다.

 

♣요약

다음세대를 위한 애끓는 심정으로 가정을 귀하게 여기고, 거룩한 믿음으로 버텨서 주님의 산 소망을 이루어가야 한다. 다음세대가 역리를 순리가 되지 않도록 신앙교육을 제대로 시키는 부모가 되어야 하며, 우리 아이들을 젠더 이데올로기, 페미니즘, 해체주의, 성인식, 온갖 것으로 전도할 것이기에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 모든 것 중에 가장 뛰어난 복음이 가장 능력이 된다는 것을 믿고 믿음 안에서 우리는 거룩한 성전인 거룩한 몸을 거룩한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


-하나님을 치욕스럽게 만든 자들이 자신들을 치욕스럽게 하는 일에 내버려졌다. 사람이 자신의 정욕대로 하도록 내버려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노예상태에 빠질 수는 없다. 그들의 더러움과 부끄러운 욕심에서 나오는 행위들은 비정상적인 정욕들이다. 그런데, 많은 이방인들은 물론 그들 가운데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마저도 그런 일들에 악명이 높았다. 아마 사도는 여기서 특별히 그들의 우상숭배를 통해 저질러진 혐오스러운 일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추악한 신들에게 드려지는 추악한 예배이다. 인간의 본성에 어떠한 악이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의 약한 본성을 억제하는 은혜를 얼마나 베푼 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이런 악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단지 천사보다 조금 낮게 지어진 인간이 자신을 마귀보다 더 형편없이 낮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것을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았다'고 말한다.

 

 

 

 

                                                                 (성경읽기- 홍균형 박예서 어린이)

 

 

 

*질서너머- beyond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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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04 회 경제상식퀴즈


1. 다음 중 경우에 따라 마이너스(-) 값으로 떨어지는 것이 가능한 지표는?
  1. ① 지니계수
  2. ② 지급준비율
  3. ③ 전세가율
  4. ④ 기준금리

2. 시중에 풀린 현금은 넘쳐나는데도 기업의 생산·투자와 가계 소비는 늘어나지 않아 경기 개선이 부진한 상황은?

  1. ① 분수효과
  2. ② 구축효과
  3. ③ 유동성 함정
  4. ④ 하이퍼인플레이션

3.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은 반비례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그래프는?

  1. ① 수요공급곡선
  2. ② 필립스곡선
  3. ③ 로렌츠곡선
  4. ④ 래퍼곡선

4. 한 해 증시를 마감하는 연말을 전후로 주가가 오르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은?

  1. ① 어닝 서프라이즈
  2. ② 컨벤션 효과
  3. ③ 허니문 랠리
  4. ④ 산타 랠리

5. 원활한 경제활동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산업이라는 뜻으로 자동차, 철강, 석유, 조선, 화학 등이 대표적 사례인 이것은?

  1. ① 유치산업
  2. ② 기간산업
  3. ③ 전방산업
  4. ④ 사양산업

6. 불필요한 서비스와 운영비를 최소화해 기존 대형 항공사보다 저렴한 운임을 선보이는 ‘저비용 항공사’를 뜻하는 말은?

  1. ① LBO
  2. ② LCC
  3. ③ LED
  4. ④ LTV

7. 법인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다음 중 국내 기업의 90% 이상이 해당하는 일반적인 형태는?

  1. ① 주식회사
  2. ② 지주회사
  3. ③ 유한책임회사
  4. ④ 유한회사

8. 금, 달러, 미국 국채의 공통점으로 가장 가까운 것은?

  1. ① 일명 ‘안전자산’
  2. ② 고위험 고수익
  3. ③ 호황기에 인기 상승
  4. ④ 투자원금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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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환율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A국가와 B국가는 수박 한 통과 참외 10개를 맞교환합니다. 수박과 참외는 1대 10의 등가성(等價性)을 가집니다. A국가와 B국가가 서로 교역을 한다면, 모든 것이 교환 비율을 가질 겁니다. 교환 비율은 고정되어 있거나 변할 겁니다. 수박 농사가 잘 안됐거나, 참외밭이 가뭄으로 망한 경우, 수박과 참외 교환 비율은 달라지겠지요.

A국가와 B국가의 화폐는 어떨까요? 그것에도 교환 비율은 존재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환율(exchange rate)이라고 부릅니다. 환율이 달라지는 이유는 수박과 참외의 관계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한 가지 점에선 환율은 수박-참외와 같습니다. 환율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죠. 가령 H국가의 화폐를 원하는 나라와 기업, 개인이 많으면 즉 수요가 많으면, H국가의 화폐 가치는 올라갈(환율 하락) 겁니다. 반대라면, 화폐 가치는 떨어질(환율 상승) 겁니다.

환율은 공급에 따라서도 변합니다. H국가가 필요 이상으로 돈을 많이 찍어 공급했다면 이 돈의 가치는 떨어질 겁니다. 남아메리카에 있는 베네수엘라는 돈을 인쇄기로 마구 찍어낸 결과 화폐 가치가 아예 사라졌습니다. 아무도 베네수엘라 돈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환율은 한 나라의 경제와 정치 상황에 따라서도 바뀝니다. 예를 들어 C국가의 경제와 정치가 불안해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겁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가지고 있던 C국가의 화폐를 달러로 바꿔나갈 겁니다. 달러 수요가 급증하면? 맞습니다. C국가 화폐가 싸지고 달러가 비싸집니다. 환율이 폭등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C국가가 투자하기 좋은 나라라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달러를 많이 가져와서 C국가 화폐로 바꿀 것입니다. C국가의 화폐 가치가 오를 테지요.

환율은 크게 고정환율제와 변동환율제로 운용됩니다. 고정환율제는 중앙은행이 개입해서 일정한 수준으로 환율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변동환율제는 시장의 수요공급에 따라 자유롭게 조정되는 시스템입니다. 미국은 변동환율제, 중국은 사실상 고정환율제를 씁니다. 우리나라는?

환율을 두고 국제간 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환율 전쟁입니다. 자국에 유리하고, 경쟁국에 불리하게 환율을 운용하는 이기심이 국가 간에도 나타납니다. 환율 방향에 따라 기업과 개인들의 이해관계도 달라집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기업이 좋아하고, 수입기업과 유학생 부모들이 싫어하죠. 환율은 두 얼굴을 가졌습니다. 야누스적이라고 할까요? 4, 5면에서 환율 이론과 환율 이해관계를 더 알아볼까요.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주만 의지해-(마커스워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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