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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7월 31일)-교회음악하계대학 특별수요찬양축제.
제목: “진정한 찬양은 하나님을 신뢰함에서 나옵니다.”
말씀: 잠언 3:5
 
설교자: 조성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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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5,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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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엔 사랑의 교회 음악목사이시고, 사랑글로벌 아카데미 싸가의 학창이신 조성환 목사님께서 “진정한 찬양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나옵니다.” 잠언 3장 5절의 말씀을 가지시고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 주시겠습니다. 제가 본 말씀 읽겠습니다. 잠언 3장 5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잠언 3:5,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녁 특별수요 찬양 페스티벌로 하나님 앞에 올려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정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의지하지 아니하고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의 목적이 오늘 이 저녁에도 충만하게 일을 하나님 또 예배로 먼저 주님 앞에 올려드릴 때,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 이곳에 모인 모든 교회들의 음악 지도자들 위해 성령님께서 기름 부어주시고, 이 세미나가 마칠 때에 온전히 또한 준비되어 새롭게 된 에너지로 하나님 하나님의 교회에 돌아가서 잘 귀하게 충성 되이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잠깐 나누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기를 원하옵고, 감사하며 우리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저녁까지 아주 좋은 시간을 여러분들이 보내고 계신 줄 믿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서로가 믿고 신뢰하는 것처럼 신뢰하는 것처럼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자신에게 이런 신뢰하는 관계의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75세의 우상을 숭배하던 조상의 땅 화란에서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난 아브라함은 그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그 하나님의 그 약속의 말씀 듣고 믿었을 때, 또 다른 말로 얘기하면 그것은 신뢰했을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창세기 15장은 기록합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서,
 
*창세기 15장 6절,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다른 말로 얘기하면 누구든지 하나의 힘을 열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보이게 됩니다. 말씀하십니다. 근데 그 얘기를 다른 말로 신뢰하니, 좀 설명하면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한 참된 만족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냐면, 예수님께서 인생에서 너무나 목말라 하던 우물가의 여인, 수가성 여인을 만나서 결코 인간이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것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너도 예배 자리로 나오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가치를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라는 단어는 사실 다른 데 쓰여지면 안 되고 하나님께만 드려줘야 됩니다. 이런 하나님을 경험한 모세는 출애굽기 15장에서 너무나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여 신중의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이까, 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가, 워쉽이라고 하는 단어가 제일 먼저 나온 것이었냐면 창세기 22장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러 가면서 종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돌아오리라. 할 때 그 바로 예배라고 하는 것이 워쉽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야 산에서 이삭을 번제(燔祭)로 바치라는 하나님께 아무런 이견을 보이지 않고 말씀을 듣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 산 모리야산으로 올라가서 이삭을 제물(祭物) 대신했고 그 이삭을 향해 순종(順從)과 신뢰(信賴)의 칼을 들이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의 그 신뢰의 예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심으로써, 응답하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잠언에서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라고 한 것은 명철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뭐냐면, 밝은 명, 밝을 철인데요. 영어로 얘기하면 언더스탠딩(Understanding)입니다.
 
그러니까 이해하는 것, 내가 이해하는 것, 그러니까 너의 이해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라. 고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길, 우리의 길을 우리의 인생의 길을 하나님께 온전(穩全)하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가 하나님께는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가 기쁨이 되는 역사가 성경에 또 나오는데, 역대하 20장에서, 여호사밧 왕 때 유다의 연합군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위기였어요. 그래서 역대하 20장 21절에 보니까,
 
*역대하 20장 21절,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요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였으니, 이렇게 나오는데 여러분 엄청난 위기(危機)를 당했을 때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들의 고백 속에서 이런 고백(告白)이 나오는 거였어요.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시편 117편에도 보니까,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하다.” 라고 고백합니다. 정말 우리가 찬양 중에 어떤 스타일의 찬양을 하든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면서 하나님 정말 내 이런 위기 중에서 이런 상황(狀況) 속에서도 내 삶에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무나도 크고 그리고 또 이 상황에 향하신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너무나 크다 라고 크시도다. 라고 고백하게 될 때, 그 신뢰의 고백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역대하 20장 21절의 말씀에도 너무나 많은 얘기들을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 보니까 거룩한 예복(禮服)을 입히고 라고 돼 있잖아요.
 
*역대하 20장 21절,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예복(禮服)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혀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를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지 않고서 어떻게 우리의 셀 수 없는 그 많은 죄들을 용서(容恕)받을 수 있으며 또 그 하나님의 스탠더드를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으로는 절대로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을 받아주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구약에서는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의 제사를 드릴 때, 그 짐승의 피의 역할은 죄를 덮는 것이라고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의 그 피는 어떤 피냐면, 요한복음에서 세례요한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세상 죄를 덮는 것이 아니고 “세상 죄를 쥐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그 예수 그리스도 사랑을 믿고 신뢰하고, 고백 신뢰의 고백을 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냥 죄를 덮는 수준이 아니고, 그 죄를 완전히 가져가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죄가 되심으로 우리를 완전히 자유케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의의 병기로 우리의 삶을 들일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장이라도 나를 삼킬 것 같은 거친 세파의 출렁임 속에서, 너무나 바보 같은 결정 나의 결정 때문에 내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나 자신의 그 연약(軟弱)한 모습 너무나 형편없는 그 모습 때문에, 어 너무나 후회를 막 하고 있는 그런 나의 연약함 속에서도, 자폐아인 그 자녀가 엄마의 머리털을 붙잡고 흔들어내는 그런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그리고 그토록 오랫동안 배우자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했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어 그런 나의 연약함 속에서도, 또 그리고 여기에 모이는 많은 찬양대 대원들과 지휘자들과 반주자들이 있는데, 우리가 얼마나 여러 번,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얼마나 너무나 여러 번 오랫동안 찬양했습니까?
 
그런데 막상 내 인생에 위기가 닥쳤을 때, 무너지는 나의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가 다시금 일어나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찬양으로, 그리고 오늘 저녁에 드려지는 5개의 프로젝트콰이어가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릴 때, 우리는 어 저들이 얼마나 찬양을 잘하는가? 그런 것을 보려고 여기 앉아있는 자들이 아니고 그 모든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우리의 전적인 신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라고 함께 고백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했던 찬양 중에서 ‘거친 파도 날 향해 봐도 주와 함께 날아 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요약
오늘 프로젝트콰이어의 모든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전적인 신뢰를 고백하고 선포하는 축제의 시간이 되어서, 이 시간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올려드려야 한다. 우리의 이해와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는 자로, 우리가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마다 노래가 아닌 신뢰로 가득찬 찬양과 예배를 올려드리기를 간구하며, 온전한 신뢰 속에 예배할 때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하자.
 
첫 번째 우리 프로젝트콰이어는 프로젝트콰이어 5반-1반까지입니다. 인간에게 주신 상상력과 창의력은 정말 귀하고 놀랍습니다. 그 상상력과 창의력이 성령께 붙잡힐 때,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시게 하고, 피조물은 자기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기쁨과 만족 충족됨이 있습니다. 한국 교육에 친근한 찬송가 인애하신 구세주여, 가사를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작곡한 부분으로 시작하여 원곡의 부분을 또 다시 어제와 오늘이 함께 귀한 영성과 아름다움을 더해보는 인애하신 구세주, 그리고 또 성령이 오셨네. 원곡의 기쁨을 더해진 생동감에 성냥님의 강림이 함께해 주시겠습니다. 우리 프로젝트콰이어를 박수로 만나주 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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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7월 22일 (855)

1. 국내 8개 은행이 예적금, 채권 등으로 자금을 조달한 금리를 가중평균해 구하는 ‘자금조달비용지수’로, 대출금리 등의 기준이 되는 이것은?
① 코스피 ② 코스닥
③ 코픽스 ④ 코넥스

2. 기업에 적자가 쌓여 잉여금이 바닥나고 납입자본금까지 까먹기 시작하면 ‘이것’ 상태에 이른다. 부실화의 징후인 이것은?
① 상장폐지 ② 자본잠식
③ 기업공개 ④ 유상증자

3. 다음 중 정부가 ‘가격 통제’에 나서는 사례로 볼 수 있는 것은?
① 지역화폐 발행 ② 최저임금 운영
③ 추가경정예산 편성 ④ 기준금리 인상

4. 시장에 공포와 불안 심리가 극에 달하면서 투자자들이 자산을 앞다퉈 팔아치우는 상황은?
패닉 바잉 ② 패닉 셀
③ 어닝 쇼크 ④ 어닝 서프라이즈

5. 0과 1 사이의 값을 갖는 경제지표다. 1에 가까울수록 부의 불평등이 심각하고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는 의미인 이것은?
① 지니계수 ② 상대적빈곤율
③ 취업유발계수 ④ 엥겔계수

6. 주변 기반시설은 대체로 양호하지만 주거시설이 낙후된 지역에 주택만 다시 짓는 사업을 뜻하는 용어는?
① 분양가상한제 ② 리모델링
③ 재개발 ④ 재건축

7. 증시 호황기를 타고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집중됐던 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업종을 가리키는 별명은?
① FANG ② BBIG
③ ASML ④ BESS

8. 다음 중 국가와 그 나라의 주가지수가 잘못 연결된 것은?
① 영국-FTSE100 ② 미국-S&P500 ③ 독일-CAC40 ④ 일본-닛케이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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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대륙의 실수'는 옛말…차이나 테크의 역습


Cover Story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중국 전기차 기업 BYD의 중형 세단 씰(SEAL)이 한국 시장에 곧 상륙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주행 실험 중인 씰을 봤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알려졌죠. 처음 보는 차라고 해도 중국산이라면 관심을 끄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테슬라를 추격하는 BYD라는 인식이 확산돼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졌어요. 영국 자동차 회사 로터스를 인수한 중국 지리차의 한국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 진출도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한 수 아래라 여겨졌던 중국 제조업이 전자제품, 조선 등 노동집약산업뿐 아니라 최첨단 분야에서 한국을 맹추격 중입니다. 기술력만큼은 미국 턱밑까지 갔다는 평가도 많고, 한국을 추월한 분야도 속속 나옵니다. 중국 전자업체 샤오미의 제품을 두고 한때 ‘대륙의 실수’라고 말하기도 했죠. 생각보다 뛰어난 품질에 놀라면서도 기술력을 살짝 얕보는 듯한 표현이었는데요, 이제는 옛말이 됐습니다. 전기차, 반도체, 로봇, 인공지능(AI) 서비스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 제조업이 한국은 물론, 일본도 앞지르고 있습니다. 가히 ‘차이나 테크의 역습’이라 부를 만합니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산업 수출 규제, 부동산 경기 침체와 청년실업, 사회주의 이념 강화 등으로 경제가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첨단산업은 어떻게 성장세를 이어가는지, 새로운 국가 전략이라는 ‘신품질 생산력’과는 어떻게 연관되는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턱밑까지 추격한 중국의 첨단 기술력
'제조강국'서 '신품질'로 전략 업그레이드


한경DB

중국이 세계 슈퍼파워로 우뚝 일어선 것을 ‘대국굴기(大國起)’라고 합니다. 강대국으로 도약했다는 뜻이죠. 그런데 요즘엔 산업 분야로 좁혀 ‘테크굴기’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중국의 첨단산업이 분야별 세계 1위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는 비유입니다. 해가 다르게 급성장하는 차이나 테크(중국 첨단산업)의 현장을 잠깐 살펴보죠.


AI 기술력, 미국과 불과 1년 차

가장 뜨거운 생성형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의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기술은 미국과 1년 정도밖에 시차가 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구글이라 할 수 있는 바이두의 AI 챗봇 ‘어니봇’ 사용자 수가 작년 8월 출시 이후 10개월 만에 3억 명을 돌파한 게 그런 평가의 배경입니다. 명령만 내리면 최대 1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미국 오픈AI의 ‘소라’가 올 초에 화제가 됐는데요, 이 서비스가 정식 출시되기도 전에 중국의 콰이쇼우라는 소셜미디어 회사가 생성형 AI ‘클링’의 동영상 숏폼 공개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AI를 학습시키는 데 쓰이는 토큰(말뭉치)은 AI 칩의 성능을 보완해줄 수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네이버가 2021년 선보인 한국 최초 LLM에 5600억 개의 토큰을 투입할 때 중국 텐센트는 자체 LLM 모델인 훈위안에 최근까지 3조 개 넘게 토큰을 투입했습니다. 투자 규모도 마치 인해전술을 펴는 것 같습니다.

반도체는 첨단 초미세 공정에서 ‘기술 독립’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기업 SMIC는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과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5나노미터급(1nm=10억분의 1m) 칩을 곧 양산한다는 소식입니다. 미국이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시작한 2020년 9월, SMIC는 14나노 공정에 도달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반도체 칩은 나노미터급 숫자가 낮을수록 고부가가치 제품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 기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시장의 5.7%를 점해 세계 3위로 도약했습니다. 중국은 AI 반도체에 필수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자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합니다.

또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석권한 중국 업체들이 이제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최첨단 기술에서도 한국을 추격 중입니다. 디스플레이는 핵심 전자부품이기 때문에 올레드까지 중국 중심 공급망이 형성되면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옵니다. 2차전지 회사 CATL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6.8%로, 2~4위 기업의 점유율을 합한 것보다 큽니다. 미래 에너지원으로 불리는 수소 분야에서도 중국의 성장세는 괄목할 만한데, 중국의 수소 생산은 세계 전체의 45%를 점하며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품질 생산력’을 새 지도 이념으로

중국의 최첨단 기술 개발은 국가전략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그동안은 중국을 제조업 최강국으로 만들자며 ‘중국 제조 2025’란 전략을 밀어붙였는데요, 이제는 ‘신품질 생산력’이란 새로운 슬로건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작년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방을 시찰하며 처음 언급하고, 지난 3월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게 바로 신품질 생산력입니다. 이는 대량 자원 투입에 의존하는 전통적 생산력이 아닌, 기술혁신이 주도하는 생산력을 갖추자는 의미입니다. 당연한 얘기인 듯하나,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나라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미국의 기술 봉쇄와 패권 견제를 뚫어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집권 3기를 맞은 시진핑 체제의 새 지도 이념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됩니다.

중국은 부동산 시장과 소비가 침체돼 있는 데다 청년실업도 심각한 수준이어서 경제성장률 목표치 5%대를 달성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난 1분기에 5.3%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2분기엔 4.7%로 부진했습니다. 그 때문에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신품질 생산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성장세를 유지하려는 겁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6월 과학자 시상식에서 “10년 동안 칼 한 자루만 갈겠다는 결심으로 과학기술 강국을 건설해달라”고 주문했을 정도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전자기기 등을 주변 사물과 연결하는 스마트 커넥티드,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 차), 수소에너지, 신소재, 혁신신약, 바이오제조, 상업용 항공우주, 양자 기술 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중국 첨단산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체험한 바가 있다면 친구들과 공유해보자.

2. 중국 대외전략의 키워드인 대국굴기와 도광양회의 개념을 공부해보자.
3. 반도체 기술 자립을 위해 중국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아보자.

미국 제재가 되려 '기술 독립' 자극해
'원조 제조강국' 한국에 주는 시사점 커


연합뉴스

차이나 테크가 우리나라는 물론, 기술 선진국들을 맹렬하게 추격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이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텐데요, 하나씩 조명해보겠습니다.


먼저 미국 명문대 출신의 기술개발 인력들이 쏟아내는 특허 출원과 연구논문이 압도적입니다. 영국 과학 학술지 <네이처>의 ‘2024 네이처 인덱스’는 지난해 세계 최상위 학술지 145종에 실린 논문 7만5000여 편을 분석해 각국의 기술 영향력을 점수화했습니다. 여기서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어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8위에 머물고 있어요. 또 인공지능(AI) 분야의 연구 수준·특허·정부 전략·민간 투자 등을 평가하는 영국 토터스인텔리전스의 ‘글로벌 AI지수’ 평가에서 중국은 61.5점으로, 미국(100점)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강력해진 중국내 기술 생태계

다음으로 중국이 자체 구축한 기술 생태계의 경쟁력입니다. 미국이 첨단기술 수출 규제를 가하자 중국의 산업체·대학·연구소는 ‘기술 독립’을 목표로 한몸처럼 뭉쳤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굴기로 중국산 AP(모바일 기기용 반도체 칩셋)가 개발되자, 화웨이가 이를 탑재한 스마트폰으로 부활한 게 대표적이죠. 화웨이는 올 1분기 중국 내 점유율 15.5%를 기록하며 애플을 제치고 처음으로 중국 내 1위 스마트폰 제조사가 되었습니다. 2019년 미국이 화웨이의 5G(5세대) 통신장비를 제재할 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지요. 엔지니어들은 AI 기술 개발을 위해 엔비디아의 오픈 플랫폼인 ‘쿠다(CUDA)’를 활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최근엔 바이두 등 중국 업체가 개발한 도구도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중국은 ‘신산업의 요람’이라고 부를 만큼 14억 명 인구와 전 국토가 하나의 실험실이 되고 있습니다. 우한에서 로보택시(자율주행택시)가 운행하는 자율주행 도로는 총연장 3378km에 이릅니다. 도시 전체가 자율주행차의 실험실인 셈이죠. 2016년 뒤늦게 자율주행 기술개발에 들어간 바이두도 그간 베이징 등에서 1억 km 주행 데이터를 축적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화웨이와 샤오미의 자율주행 데이터를 합하면 미국 기업들에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수도 베이징은 도심의 하이뎬공원을 AI 공원으로 꾸몄습니다. 여기에선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 자판기, 자율주행버스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마어마한 투자 규모입니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 펀드를 무려 270억달러(약 37조4000억원) 규모로 조성해 반도체 장비의 80%를 중국산으로 국산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AI 연구개발 투자액도 화웨이, 바이두, 텐센트를 합하면 작년 2496억위안(약 47조5000억원)으로 한국의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의 연구개발 투자액을 합산한 34조원을 능가합니다.

유연하고 꾸준한 ‘선택과 집중’

중국의 새 국가전략인 ‘신품질 생산력’은 기존 제조 강국의 기초 위에 첨단 분야 경쟁력을 더하겠다는 겁니다. 제조업에서 손을 뗀 선진국들은 코로나19 사태 때 방역마스크 하나 생산할 공장이 없어 쩔쩔매기도 했습니다. 이때 제조업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죠. AI 시대에도 제조업의 기초는 중요합니다. AI와 로보틱스 기술이 제조업의 미래를 바꿔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업 공정에서 데이터의 양이 늘어나고 있어 AI 기술 등을 접목하면 제조업의 혁신을 이룰 수 있는데, 중국은 이를 내다보고 있는 거죠.

신품질 생산력은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기술 선도자(first mover)로 도약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또 공급망을 고도화하고,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히든챔피언(우량 강소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겁니다. 이쯤 되면 뭔가 많이 들어본 말 같지요? 이는 우리나라가 근래 10여 년 동안 강조하고 추진해온 산업정책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꾸준히 투자하는 게 중국의 강점입니다. 발전 가능성이 높고 경쟁력 있는 신산업이라 판단되면 시장이 성숙할 때까지 규제를 미루는 융통성도 힘을 보탭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에서 중국보다 불리한데요, 선택과 집중에서 유연함과 꾸준함을 보이는 중국의 모습은 우리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중국이 AI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공부해보자.

2. 테슬라의 로보택시 공개가 연기됐고, 애플은 전기차 개발을 중단했다. 중국의 자율주행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발전했을까.
3. 기술 선도자가 되기 위한 우리나라의 기업 전략과 정부 정책을 살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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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28일)
제목: "괴롭든, 외롭든 존재는 귀하다"
말씀: 창세기 1:1-3
찬양인도: 쉐키나(),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신성식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전광식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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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3,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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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지속된 폭우와 폭염을 뚫고 우리를 위해 은혜스럽고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 불러주신 우리 하나님께 존귀(尊貴)와 영광(榮光)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대부분의 학문은 그 기원이 서양에 있고, 구체적으로는 고대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연유(緣由)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철학자에 의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4가지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지금 앉아 계신 의자를 경우로 생각하면 그 의자를 만든 재료가 되는 나무는 ⓵진료 인, 그리고 니은 자로 되어 있어서 그렇게 앉도록 되어있는 형태는 ⓶형상 인, 그리고 진료에서 형상으로 가는 목수의 손길은 ⓷동력 인, 그리고 여러분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든 것은 그것의 ⓸목적 인 이라는 것입니다.
 
*재료인
*형상인
*동력인
*목적인
 
결국 재료에서 형상으로 힘이 가는 이유는 그 형상(刑象)의 목적(目的)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주장(主張)입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存在)는 목적을 이뤄야 그 존재의 의미가 있고 목적의 구현(具現)이야말로 최고선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목적론적 세계관(世界觀)인데, 이후로 서양 사회는 세상이나 존재를 목적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러한 목적적인 측면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첫 번째로는, 먼저 부정적인 모습인데 목적이 없는 목적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세상의 모습입니다. 사실 목적 없이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인생관(人生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창조주(創造主)가 없는 거고, 창조주가 없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창조되지 않는 것이고. 창조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우연(偶然)의 산물이기 때문에 결국 아무런 목적이나 의미가 없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인간도 결국 이 논리에 의하면 운명의 장난에 의해서 세상이라는 들판에 내팽개치신 존재기 때문에 아무런 목적과 의미가 없게 됩니다. 자,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살게 될까요? 목적과 의미가 없으니까 사람들의 삶은 대개 2가지 극단적(極端的)인 경향으로 흘러갑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들은 심판(審判)도 없고 지옥(地獄)도 없는 것입니다. 심판과 지옥이 없으니까 내세(來世)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로지 지상에서는 죄 승의 조종(操縱)을 받는 욕망에 따라가지고 욕망대로 살게 되겠죠. 결국에는 자기 안에는 욕망(慾望)이 있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런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놀거리, 볼거리, 재미거리들이 질펀하게 펼쳐져 있으니까, 결국 하나님 없는 사람들은 향락주의, 쾌락주의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살면서 많은 경우에 소비 중독, 문화 중독, 마약 중독 그리고 퇴폐(頹廢)적인 삶으로 귀결(歸結)될 것입니다. 쾌락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삶의 의미와 목적이 없다고 하는 거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은 맹목(盲目)성과 삶의 허허로움과 무의미성에 허무주의(虛無主義)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생을 조금이라도 고민해 보는 사람은 죽고 나면, 내세도 없고 영원한 세계도 없는 것이니까, 산다는 것이 서글프게 생각이 되고 허무하게 생각되어서 염세적으로 염세주의(厭世主義)적으로 살게가 살 수가 있게 되고 그것의 극단적인 결과는 자살(自殺)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으니까 한 날개는 허무주의, 다른 날개는 쾌락주의의 날갯짓으로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이들과 반대로 의식이 있는 일반인들이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목적 중심의 삶을 주창을 하고 또 영위를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들어서 ‘미국의 새들백교회의 닉 워렌이라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이분은 쾌락주의와 허무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삶의 길과 방향을 찾는 구도자들의 필요에 맞춰서 맞춤형 저서인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펴내었는데 성경 다음으로, 이것이 전 세계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 흥행을 하자 이어서 ‘목적이 이끄는 교회’라는 책을 내어서 오늘날도 세상의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이것을 도입하여 스터디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복음 중심보다 구도자(求道者)들의 필요중심에 맞춤형으로 다가가기에 아쉬운 점은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가 인생의 목적을 신앙이나 하나님과 연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분이 목적을 정하기 전에 우리 장로교회가 흔히 신앙 고백으로 따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도 제1문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이냐?’ 아마 저보고 하라면은 이걸 제 1문으로 하지 않고, 사람이 주체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무엇이냐?’ 저보고 하라면 그거 1문을 낼 겁니다. 하여튼, 이 질문에 대한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렇게 멋있는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약 성경에도 이런 목적 지향적인 언급이 곧장 등장을 합니다. 이를테면, 사도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고, 달음질하고 달음박질한다. 이런 표현이 엄연히 나와 있습니다. 자 이렇다 보니까 우리 그로스도인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과도하게 목적 중심의 삶을 영위합니다. 이렇게 목적 중심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들이 물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어진 생을 무의미하게 살지 않으려면 몸부림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재능과 달란트를 최대한 발휘하려고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그 옛날 롯의 아내처럼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이런 질펀한 허영의 시장에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서 외골수로 달리는 인생길을 제시하기 때문에 그것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측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번은 이런 목적 절대주의, 목적 중심주의를 반성을 해 봐야 됩니다. 먼저 우리의 이성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살펴보면 여러 문제들이 보입니다.
 
첫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육체와 정신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이런 삶의 태도를 견제하는 이들은 늘 과도하게 일을 하고 성사 여부를 두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둘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기 십상이고 그 결과로 가족들의 희생이 수반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예는 많은 훌륭한 분들의 인생 고백에서 이미 우리는 많은 경우를 찾고 있습니다.
셋째, 목적에 너무 골문하다 보니까 삶의 여유가 없어져 가지고 늘 바쁘고 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따라서 인간미도 없어지고 감성의 문이 닫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분들이 들꽃이나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넷째, 목적을 이루면 자기 충족감에 잘난 체할 뿐 아니라 또 자기의 성사된 것을 자기 인생의 자랑으로 여기고 만일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좌절감과 패배의식 속에서 심지어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일까지 생기는 것입니다.
다섯째, 죽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런 목적을 이루려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도 병들고 몸도 병들고 혹 그러다가 일찍 떠나게 되면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비참함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목적 중심주의가 갖고 있는 훨씬 권원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웨스민스터 소요리 문답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목적 설정은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많은 경우에 이런 목적은 겉으로는 고상하고 선해 보여도 그것을 해체하여 그 심층으로 흐르고 있는 흐름을 꿰뚫어 보면, 그 안에는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의 도도한 흐름이 있음을 살필 수가 있습니다. 닉 워렌이라는 목회자가 멋있게 포장(包裝)하는 언어는 신앙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심지어 하나님을 위하여, 그러나 많은 실질적인 경우에는 그리스도인이 목적을 세울 때도 그것은 그냥 음표적인 문제고, 그 목적의 민낯은 자기 영광, 자기 출세, 자기 영광, 따지고 보면 인본주의적인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좀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내 욕망이라는 주체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목적지향적인 삶이나 일을 하게 되면, 목적달성에 혈안(血眼)이 되어서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신학 양식에 맞지 않는 일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로 갈 수 없는 자리에도 가고 할 수 없는 일도 하고 볼 수 없는 것도 본부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까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스스럼없이 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물(萬物)의 영장으로서 살도록 이성을 주셨을 때는 촐랑대고 까불대는 우리의 감정을 좀 통제하도록 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제어(制御)함이 없이, 지 맘대로 달아나는 우리의 욕망을 반성(反省)하고 성찰하기 위한 것으로 주신 것인데 욕망의 도구가 돼서 목적 지향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이 이성은 욕망을 성취하는 수단이나 도구로만 활용될 뿐입니다. 이성뿐만 아닙니다. 이런 목적 지향적인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도 자기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자기 목적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하면 그 사람은 이용할려고 하고, 별 도움이 안 되고 존재감이 없는 그저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때로는 냉담하고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신 불신을 막론하고 출세나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약은 인간들은 대개 이 모양이라 해도 틀림없습니다. 이성이나 사람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기도나 신앙도 자신의 따지고 보면 욕망에 기초한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전락하고, 하나님도 말은 하나님의 영광이지만 그 하나님의 영광을 사실은 실제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다시금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은 이러한 목적 중심주의 목적 절대주의의 관점에서는 목적이 없는 것을 어떻게 볼까요? 그럼 우리가 여러분 질문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이런 목적 지향적인 이들에게 그러면 별 목적이 없이 보이는 존재들은 무가치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드릴 수 있습니다. 길가에 강가의 돌들, 들녘의 이름 없는 들풀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먹이를 찾아서 배회하는 유기견들, 들고양이들, 아니 목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 목적을 찾으려고 해도 평생 찾지 못한 인생들은 무가치한 것입니까?
 
사실 우리 주변에는 목적 없이 사는 분도 많이 있고, 목적을 찾으려 해도 인생을 거의 말년까지 다가가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죽지 못해서 하루하루 연명(連名)하면서 살다시피 하는 힘든 분들도 있는데, 그러면 그들의 존재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존재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고. 어떤 면에서 목적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사실 이런 깨달음은 고대 헬라의 사상가들도 하고 있습니다. 후기 고대에 헬라의 사상가들은 순서를 이렇게 매깁니다.
 
온 조에이 누스, 제가 그리스로 말씀드렸는데 누스, 정신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거 이전에 조에이, 생명이 있어야 되고 또 생명이라는 것은 반드시 온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존재가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것이다. 라는 것이 고대 지혜 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뭐라고 말할까요? 오늘 우리 읽은 본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이 본문은 장엄(莊嚴)한 계시의 역사, 하나님 말씀의 민 성경을 여는 첫 문장입니다. 시인들에게도 시의 첫 줄은 신이 준다고들 말하는데, 이 문장은 정말 신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서두입니다.
 
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게 무슨 뜻입니까? 무의 세계에서 유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고. 비존재의 세계에서 존재의 세계가 지금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고도의 기술의 바벨탑을 쌓아 올린 인류는 대단한 기술을 자랑하지만 다 유(有)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지. 무(無)에서 하는 작업은 없습니다. 제가 아는 대단한 도예(陶藝)가들 그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태토와 나무와 무를 가지고 그 대단한 작품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지만, 우리의 하나님 창조주(創造主)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우리 하나님은 있게 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이 있음보다 더 대단한 것이 어디 있으며, 존재보다 더 앞선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 보십시오. 지금 우주여행(宇宙旅行)을 꿈꾸기도 합니다. 달나라, 별나라 신기해 보이지만 그곳은 모든 것이 죽어 있습니다. 아니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를 보십시오. 사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대자연, 바다 속의 놀라운 고기들의 세계 하늘에 구름과 새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들 이 모든 존재들이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사실 이 존재들을 우리는 매일 겪지만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이 존재가 지닌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깨달으면 하루하루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때로는 신비한지 모를 것 우리만 그런 거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더 기뻐하셨습니다. 창세기의 창조기사는 있으라는 명령을 하신 그 명령에 따라서 있는 결과가 전개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있음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은 기뻐하셨다는 겁니다. 아직 무슨 일들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목적이 펼쳐지는 일이 전혀 아닌데도 그저 있음 자체만으로 창조주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신 것입니다. 자연계만 그런 거 아닙니다. 인간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 하나님은 가장 크게 기뻐하셨다고 성경은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기쁨은 신약의 탕자(蕩子) 비유에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식이 집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는 램브란트의 그림처럼 눈이 짓 이겨질 정도로 눈물로 한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집 나간 자식은 소식이 끊어져 가지고 죽은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소원이 뭐가 있습니까? 그가 돌아와 가지고 가업을 잇고 효도하는 게, 아버지의 소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자식이 객사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요. 설령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딘가 지상에서 살아있는 소식만 하나 들어도 그에게는 감격(感激)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4절,
 
*누가복음 15장 24절,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신약만 아닙니다. 여러분 구약에 잘 아시는 요셉의 경우 한번 보십시오. 아버지 야곱은 22년 동안 그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22년 남모르는 눈물과 고통 속에 야곱이 살았는데 어느 날 요셉이 살아 있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기절초풍할 만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버지가 뭘 생각했습니까?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게 그렇게 감동스러운 거 아닙니다. 이제 애굽으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자식 때문에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것도 그의 큰 소원 아닙니다. 죽었다고 생각한 그 자식 평생 칼에 묻었던 평생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던 그 자식이, 요셉이 살아있다니 살아있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이제 야곱은 창세기 45장 28절,
 
*창세기 45장 28절,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이스라엘의 가로되 족하도다. 그거는 족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무슨 예수 믿어서 출세하고, 성공하고, 잘되고, 번영하고 그게 복음이 아니라, 죽었던 인생, 없던 인생, 생겨나고 죽었던 인생 되살아나고 무 존재에서 존재로 다시 드러나는 게, 그게 부활의 복음이고 복음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존재가 가장 큰 축복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나 야곱에게 가장 큰 기쁨이듯이, 우리가 이 땅에 생명을 유지하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일을 대단하게 안 하시더라도 우리 하나님께는 큰 기쁨이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여러분 웨스민스터 소요리 제1 문답을 보십시다. 우리가 이 문답을 이렇게 착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런 대학에 못 들어가면 영광이 가려워지고, 우리가 성공하고 출세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실패하면 영광이 되지 않고 그거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든지, 우리의 노력의 결과를 통해서 그 하나님께 하나님의 영광에 보탬이 된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錯覺)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4절,
 
*사도행전 17장 24절,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아레오바고 설교에서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미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이요. 영광의 충만 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유무가 우리 행위에 달린 것도 아니고, 우리 삶의 결과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럼 무엇에 기뻐하실까 탕자의 비유해서 그 아버지의 마음이 드러나듯, 잃어버린 한 어린 양을 찾는 것이 목자의 큰 기쁨이라고 말씀하시듯,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 있고, 돌아오고, 말하자면, 우리의 존재 구원받아서 회복된 우리의 존재, 우리의 있음, 그 자체를 우리 하나님은 가장 크게 기뻐하십니다. 존재의 목적은 존재가 있고, 난 이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설령 존재가 없더라도 모든 존재는 귀한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물론 이 땅에 살면서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도록 노력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또 세상에는 의미 없이 목적 없이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우리 청년들, 가운데도 이런 분들이 있을 건데, 그럼 이들은 가치 없는 존재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정말 청년 자살률이 세계 제1위인데, 젊은이들이 살 이유나 목적을 찾지 못해서 생을 마감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좋은 것입니다. 교회가 젊은이들을 향해서 목적을 품어라. 꿈을 지녀라 의미 있는 삶을 살아라.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그것에 앞서서 청년들이여,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여러분이 비틀대고, 쓰러지고, 외롭고, 괴롭다 하더라도, 존재만으로 귀하다. 이걸 가르쳐야 됩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우스트에서 존재는 의무다 비록 일과성이라 할지라도 비록 순간이라 할지라도,’ 아니 괴테만 그렇습니까? 우리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여러분 여기에 우리 예수님의 가치 판단이 나타나는데 천하를 얻는다는 거는 대통령쯤 되는 걸 말하는 것 아닙니다. 온 천하를 손에 쥐는 겁니다. 인생의 성공의 출세에서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나은 성공과 출세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니가 설령 천하를 얻더라도 니 목숨을 잃으면 니 존재를 상실하면, 그게 뭔 가치냐?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이 가치 판단에서 우리가 뭘 깨달을 수 있습니까? 목적이 대단한 것 같지만은 존재는 귀한 것이고, 삶에 대한 이유나 목적을 찾지 못해도 있음만으로 그거는 아름다운 겁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첫째는 인생의 좌표를 설정해야 되겠지만, 과도하게 목적 중심 성취 중심으로 세우지 말고 존재 중심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생 어떠한 세상입니까? 이 도시의 거대한 조직과 질식하듯이 압도하는 분위기는 어린 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 우리를 출세, 경쟁 무한경쟁으로 몰아가고, 우리가 받는 모든 교육은 출세를 위한 조건을 구비하는 데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이 혹한에도 울지 않는 이 냉혹한 세대에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시기(猜忌)하고, 경쟁(競爭)하면서 성공하기 위해서 치열(熾烈)하게 살아가는데 벌써 사람들과의 만남에도 순수함과 착함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겉으로는 교양과 화려함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산다는 것의 재주들로 잘 무장되어 있고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마저도 그 속에서 호흡하고 그 시대정신에 젖어서 의식 없이 살고 있습니다. 밀란 군대라 소설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욕망적 목적의 무거움입니다. 여러분 따라서 이제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목적의 무거움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치와 무거움을 인식해야 할 것임
 
둘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야곱과 탕자의 아버지의 경우에 보이듯이, 무슨 목적을 이루는 것도 기뻐하시겠지만, 사실은 존재와 생명을 훨씬 더 귀하게 여깁니다. 우리 예수님도 아침 일찍 나와서 성취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오후 늦게 와 가지고 조금 일하는 사람을 똑같이 대우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하시는 달란트 비유도 잘 나가지고 5달란트 남긴 사람이나, 겨우 한 달란트 남긴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면서 말씀해 보시면 글자 하나 안 틀리게 똑같은 대우를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셋째는, 더 나아가서 이제 우리는 좀더 존재 중심과 생명 중심으로 해야 됩니다. -목적이 이끄는 공동체보다 존재가 귀한 공동체가 더 아름다운 집단입니다. 목적 지향적인 사람보다 존재와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더 귀한 분들이라고요. 그러면 이제 목적을 세우지 말까? 아닙니다. 존재가 중함을 알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이제 말씀의 마무리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논의를 하다 보니까 우리가 깨닫는 깨달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는, 한 영혼의 소중함, 귀함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너무 큰 꿈을 지니고 그렇게 나가면, 가시적인 성취 중심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가시적인 결과 중심으로 흐르다 보면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라집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내 인생에 별로 목적에 도움이 안 되면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있는데, 내 인생의 목적에 도움이 되든지 안 되든지 똑같이 소중히 여기고 존기 여겨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앞장서 가지고 직분 받아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 많이 하시고, 헌신하는 분들 당연히 매우 귀한 분들입니다. 그 헌신과 헌금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들 직분을 받은 건 아니니까, 혹 직분이 없고 혹 별로 기여하는 것이 별로 없어 보여서 별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분들도 똑같이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자들입니다.
 
여러분 따라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들녘에 피어 있는 들꽃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시인이십니다. 우리 예수님 뭘 노래했습니까? 들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들꽃이 하나님께 영광을 대단하게 돌려서 어쩌면 그거 아닙니다. 그 들꽃이 사람들은 몰라주고, 거기에 비바람 다 맞고 거기에 온갖 풍랑과 풍상을 다 막다 하더라도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 꾸준히 서가지고 서 있는 들꽃의 존재 자체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혹시 우리 교회 가운데 들꽃 같은 분들 계신다면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병(丙)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뭐 세상 논리처럼 갑(甲)과 을(乙)만 있는 거 아닙니다. 이거는 조직사회서 대표나 책임자가 갑질 한다고 을의 아픔이 물론 있습니다. 그 을의 아픔 때문에 데모도 하고 광화문에 가서 깃발도 드는 분이 있는데, 을의 아픔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그런 시위도 정당성이 많은 경우에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갑과 을만 있는 거 아닙니다. 을이라도 될려면, 직장이라도 있고 조직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세상에는 아무런 을도 되지 못한 소위 병(丙)이 있습니다. 노숙자들, 외톨이들, 실직자들, 독거노인들, 환자들, 장애우들, 고립된 자들, 이건 병(丙)입니다. 교회는 뭐하는 단체냐? 병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들을 돌보는 것이 예수님을 닮은 사이고 그것이 손양원 목사님, 서서평 선교사가 한 일입니다.
 
여러분, 따라서 우리 사랑의 교회가 약한 교회를 돕고, 힘든 목회자들을 격려하는 한국교회 섬김의 날 매년 하시는데 힘들지만은 정말 잘하시는 겁니다. 교회는 아웃사이드,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소외된 민초들을 위한 어쩔 수 없이 승진의 삶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제 표대를 향해서 달리는 것만 아니라, 옆으로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을 지녀야 됩니다. 다시 닉 워렌 목회자의 생명으로 돌아가 봅시다. 영어로 보니까 포포즈 드라이븐(purpose of driven), 목적이 이끄는 데 드라이버, 라고 돼 있다고 저는 드라이버가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것만 생각이 나 가지고 아찔하고 무서운 용어입니다. 이것이 능동태든 수동태든지 간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하게 되면 사고 날 가능성이 늘 있습니다. 인생이란 늘 그렇게 앞만 드라이브하고 달리는 거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을 잘 보시면 창세기도 족장 중심으로 이 게시 역사가 전개되지마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안 하셨습니다. 갑자기 카메라의 앵글이 광야로 확 돌려져 가지고 광야에서 야곱에게 버림받아가지고, 슬피 울면서 목말라서 배고파서 굶어 죽어가는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그 계시의 카메라 앵글이 비추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없이 달리면 옆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항시 개인이나 공동체가 연약한 우리의 이웃들, 연약한 동료들을 돌보는 안목이 있어야 됩니다.
 
※이거는 조선 시대 선비들 했던 겁니다.
⓵경주의 유명한 최 부자, 그분의 소신이 뭡니까? 앞으로 돈을 더 벌어가지고 더 아파트 사놓고 더 땅 투기하고, 더 빌딩 사 놓고, 강남에 그 꿈 안 꿨습니다. ‘100리 안에는 굶는 백성이 없게 하라.’ 나는 충분히 지금 배불리 먹고 사니까 그런 투자를 한 게 아니라 100리 안에 굶는 사람 없게 하자.
 
⓶전라도의 구례의 운조루 그 집에 쌀독에는,,, 큰 쌀독에는 한문으로 ‘타인능해(他人능能解)’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퍼가라. 이겁니다. 그러면서 그 쌀독을 나무 독을 밖에 입구를 두고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끼니가 없으면, 그 집에서 무한정으로 퍼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 운조루가 오랜 세월 동안 그 지역에 있었던 민란, 동학, 여순 사건, 한국동란, 한국전쟁 겪으면서도 건재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아무리 악한 이들이라도 집안이 행한 선행을 알기 때문에 그거는 감히 누가 손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로 이렇게 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목적을 향해서 미친 듯이 드라이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드라이브 덜 하고 좀 느리게 가더라도 우리 주변에 어려운 문제를 돌볼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이웃 사랑의 시각을 지니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존재하는 것이 출세보다 더 큰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 밖으로 햇빛이 비치고, 새소리만 듣는 것도 감사입니다. 아니 아침에 일어났는데 눈이 떠지고, 숨을 쉴 수만 있다면 그것도 은혜요. 행복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뭐가 감동입니까? 목적 성취가 아니라 존재가 지속하는 겁니다.
 
여러분, 따라서 진학하시고 취업하시고, 승진하시고, 당선되시고, 결혼하시고, 자녀 놓으시고, 그런 일에 대해서도 특별감사헌금을 당연히 하셔야 되고, 거기에 더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을 깜빡 잊으시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운 망각 증에 따른 생존 감사헌금을 매주 매일 모아가지고, 드리셔야 그게 수준 높은 신앙이라고요.
 
여러분, 앞으로 사랑의 교회 헌금을 지켜보겠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인생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의 인물들 한번 보십시오. 누가 목적이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이 언제 믿음의 조상이 되려는 목적을 언제 품었습니까? 모세가 한사코 발뺌을 했지, 언제 출애굽의 영도자가 될 계획을 언제 꾸었습니까? 다윗이 양이나 치고 노래나 좋아해서 불렀지, 언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고, 그것도 성군이 될 목적을 언제 세웠습니까? 신약에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요한이 갈릴리 바다에서 그냥 고기나 잡고 살 인생이라 생각했지, 언제 비교가 안 되는 세상의 넓은 바다에서 어부가 살아남은 어부가 될 목적을 언제 꿈꾸었으며, 언제 성경 기자가 되고, 사도가 되고 오는 세대의 믿음의 사표가 될 꿈을 언제 꾸었습니까? 성게의 어떤 인물이 목적을 설정했습니까?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믿음의 인물들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대로 인생의 어떤 삶의 한 순간 하나님의 음성 예수님의 부르신 한 번 듣고, 자기 목적을 성취하는 삶이 아니라 그 부르심에 존재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이제 말씀에 결론을 내립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국을 갑니다. 그 천국이 어떤 세상인지 요한계시록 22장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성의 성곽의 기초 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오, 둘째는 남보석이오.”, 등등,,, 여러분 천국은 우주 최고의 주얼리(Jewelry) 상점입니다. 혹시 보석을 연구하시는 분들은 게시로 22장을 좀 잘 연구하시고, 보석상을 하시는 분들은 천국보석상, 아마 이러면 많이 모여들 겁니다. 저는 여러분 천국이 보석천국인 거 관심 없습니다. 천국에 어디에 관심 있느냐, 이 보석의 세계라 좋은 게 아니라, 시간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영원한 세상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고요. 제가 그래서 하는 이 낙은 인생은 늘 무 존재 위협, 늘 비존재의 불안 속에 노출되어 있고 우리 모두는 그것에 노심초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 시민들인데 우리가 가는 그 세계는 시들고, 병들고, 늙어가는, 죽어가는 세월의 무자비한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영원한 존재의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나 목적을 찾으면 좋을 거지요. 그러나 혹시 삶의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무가치한 인생이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고 의미 없는 삶이 아닙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을 지키는 것이니까, 그것도 대단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내게 많은 복을 주시지 않아도, 숨쉬게 하는 것만도 은혜요. 형언하기 어려운 축복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의 나그네 길이 괴롭든, 외롭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흔들리지 마시고 나그네 길을 아름답게 걸어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삶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들이 숨 쉬고 있는 거, 살아가는 거, 다 하나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며, 세상의 욕망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불평 불만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 의지하고 담담하게 살며, 특별히 부르심이 있을 때 그 부르심 순종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길이 되어야 한다. 있음으로 가치 있는 존재​, 있음만으로도 아름다운 것, 한 영혼의 소중함을 깨달아서, 들꽃도 그자체가 아름다운 것처럼,​ 갑(甲)을(乙)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병(丙)에도 신경 써야한다. 노숙자, 실직자, 독거노인., 아웃사이더들을 돌보는 사역이 소중하며, 옆을 보는 여유와 삶이 주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삶이어야 한다. 질주하는 삶은 아님을 기억하여 항상 그 존재만으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임을 알아 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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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새벽예배(주후 2024년 7월 27일)
제목: "오늘이 축복이다"
말씀: 전도서 9:4~10
찬앙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대표기도: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권호 목사님( 합신대학원대학교 교수/SaGAㆍ제자훈련아카데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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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9:4~10,
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6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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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제가 하나 퀴즈 한번 내보겠습니다. 질문 하나 드려볼게요.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죽은 사자 죽은 사자와 살아있는 개 중에 어떤 것이 더 처지가 낫습니까? 어떤 게 더 좋은 처지입니까? 주기도문으로 마치겠습니다. 진짜 너무 잘하시는데요. 역시 사랑의 교회입니다. 9장 4절이지요.
 
*전도서 9:4~10,
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요즘은 반려견이 대우받는 시대라 이 말씀이 좀 혼란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뭘 말하고 있습니까? 뭘 말하고 있습니까? 살아있는 개가 살아있는 개가 미천해도, 비천하고 미천해도 그거 죽은 동물의 왕이고 힘이 있는 사자보다는 낫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죠. 이 비유를 통해서 과거의 영광과 힘을 가졌으나 죽은 자보다는 살아있는 보통의 사람들이 더 낫다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축복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이, 오늘이 최고의 날이지요. 이것이 단지 긍정적인 생각 또 뭐 YOLO 라이프, 이런 거가 아닙니다. 아니고 정반대죠. 하나님을 깊이 의식하고 하나님 깊이 의식하고 현실을 철저하게 고민한 후에 얻은 영적 깨달음입니다. 솔로몬이 그 깊은 눈으로, 세상을 쫙 바라봅니다. 세상을 바라보지요. 그리고 깨닫습니다. 힘 있는 자나, 약한 자 부한 자나, 가난한 자, 모든 사람들이 그 운명이 똑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9장 2절이지요.
 
*전도서 9:2,
2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일반이라는 것은 똑같다는 겁니다. 의인과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인이니, 제사를 드리는 자를 말하면 오늘로 말하면 예배를 드린 자, 그렇지 않은 자 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 다 똑같다. 얘기를 하는 겁니다.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 확신 있는 자 확신 없는 자, 일반이로다.
3절 또 강조합니다.
 
*전도서 9:3,
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그들의 평-생의 미친 마음 이 미친 마음은 하나님이 없어, 하나님이 없으니 마음껏 살아갈 거야. 내가 원하는 욕구대로 살아갈 거야. 이런 하나님을 부인하는 마음, 욕구대로 살려 가려는 그런 마음입니다. 이런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회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솔로몬이 깨닫는 거지요 인간의 어떤 지혜, 어떤 능력 어떤 부가 있더라도 결국 같은 일반의 일을 겪게 되는데 똑같은 일을 겪게 되는데 바로 그것은 죽음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죽음과 같은 인생의 모든 생사(生死)화복(禍福)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딱 깨닫습니다. 전도서 9장 1절입니다.
 
*전도서 9:1,
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그렇습니다. 말씀이 진리죠. 우리 인생의 중요한 것들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열심히 계획하는 손 중요합니다. 우리 열심히 땀 흘리고 일하는 손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얼마나 전반기 1월부터 6월까지 뛰었는지 모릅니다. 7월도 쉬지 못하고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7월의 마지막 토요일인데, 이렇게 땀 흘리는 손 중요합니다. 또 미래를 계획하는 손 중요합니다. 분명 중요하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손인 줄 믿습니다. 이거를 깨달아야 된다. 얘기를 하는 겁니다.
 
자, 모든 인간이 이렇게 죽습니다. 그런데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살려두셨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숨을 쉽니다. 그리고 저도 오늘 그랬습니다만 커튼을 탁 열면 빛이 보이고 사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구요. 사람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것, 애들이 까르르 웃는 게 들립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고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요 너무 전반기 열심히 살았구요. ‘그러면서 좋은 시간 올 거야. 미래를 생각해보자 우리 미래를 꿈꿔보자 미래 희망을 두자.’ 이렇게 미래를 두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의외죠 너무 미래 미래 미래의 희망에 포커스를 두고 살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격언 같은 말 들어보셨을 거예요. 더 베스트 이즈 옛 투 컴 더 베스트!(The best is yet to come the best). 최고의 것, 최고의 시간은 옛 투 컴 아직 오지 않았다. 가장 좋은 순간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를 기대하면서 우리가 살아야 된다. 미래 희망을 품고 살아야 된다. 이런 말입니다. 이 말은요, 사실 그 격언이 아니고, 노래 제목입니다. ‘프랭크 시나트라’ 라는 미국의 유명한 가수 그리고 엔터테인먼트에 종사했던 사람의 노래죠. 역시 여러분 혹시 시나트라 아세요? 몇 분 아시네요. 앤 나우 디 앤드 이즈 니어~~,(And now the end is near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이거 있죠? 어 떨리네요. 이거 불렀던 그리고 또 하나 유명한 곡 뉴욕(New york), 뉴욕(New york),,, 미국에 탁 뉴욕에 랜딩을 하면 이 노래가 확 나옵니다. 이렇게 유명한 분인데 이분이 ‘최고의 날은 오지 않았다.’ 이거를 여러분 1995년 2월에 불렀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얼마나 잘했는지 아 오늘 하루가 시작됐다. 새소리가 들린다. 나뭇가지 보인다 막 이러고 나는 한 사람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아직 좋은 날은 최상의 시간은 오지 않았다. 이렇게 그 미래를 꿈꾸고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 노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데 그 노래가 히트치고 2년 뒤에 이 분이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회복됐는데 다시 1년 뒤 1998년에 5월에 숨을 거뒀습니다. 여러분 그가 생각했던 더 베스트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것이 심장마비고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요?
 
여러분, 너무 미래가 좋을 거야. 미래 희망을 품고 참자 이렇게 살지 말라는 겁니다. 더 베스트 이즈 엣 투 컴 더 베스트(The best is yet to come the best).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이 이미 왔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오늘이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요. 어떤 사람은 이 소중한 날을 우울하게 삽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 지금 성도들은 그런 분 없지만, 일어나자마자 우울하고 짜증냅니다. 그러면서요. 내가 오늘도 너무 고통스럽다 그러니 그냥 확 늦게 일어나고 막 시간을 낭비 하는 겁니다. 아니죠. 하나님이 주신 오늘이 지금 이 순간이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인 겁니다. 그래서 이 하루를 정말 기쁨으로 받는 성도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자 오늘이지요 바로 그겁니다. 그런데 하우(How)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어떻게 오늘을 최고의 날로 받을 수 있을까? 축복의 날로 받을 수 있을까? 이게 중요하죠. 제 생각이 아니고 우리 생각이 아니고, 말씀을 그대로 보자구요. 말씀이 있는 그대로를 보면 굉장히 놀랍거든요. 자 우리는 오늘을 최고의 날 축복의 날로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말씀이 가르쳐 줍니다. 첫 번째 맛과 멋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한번 따라보겠습니다. 맛과 멋을 즐겨라.
 
I. 맛과 멋을 즐겨라.
 
-전도서는 말합니다. 인생의 고통에만 빠져있지 말고 맛있게 먹어라. 7절입니다.
*전도서 9:7,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내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내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소박한 음식도 기쁨과 감사로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이 기쁜 날, 행복한 날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새벽부터 뭐 좀 꺼내서 먹어볼까요? 이러면 얼마나 놀라워요. 지금 이 보세요. 성경이 금욕주의(禁慾主義)가 아니잖아요. 그쵸. 금욕주의가 아니고 있는 그대로 아니 맛있게 먹고 기쁨으로 먹어라. 이렇게 합니다. 어저께 막 먹고 얼굴 부으신 분들 축복에 말입니다. 이게 있는 그대로 말씀 그대로 그쵸. 맛있게 먹어라. 근데 이 맛에만 포커스가 있지 않고, 멋에도 포커스 있습니다. 멋 좀 내라 멋지게 입고 빛나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8절,
 
*전도서 9:8,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뿐만 아니고 멋을 부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새벽인데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멋집니까? 이렇게 하라는 거죠. 저도요. 새벽 4시부터 또 일어나 가지고 야 오늘 사랑에게 간다. 내 고향에 간다. 그러면서 왜 빨리 해가 안 뜨지 해 가지고 아침에 딱 일어나자마자 머리 감고 여러분 와이셔츠 삭 갈아입고 최고의 양복 입고 넥타이 끼고 왔습니다.
 
좀 멋집니까? 여러분 네 역시 고향이 좋습니다. 아니 맛과 멋을 내라 이겁니다. 아 참 말씀이요.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르군요. 맛과 멋을 즐겨라.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깜짝 놀랍니다. 가족과 행복을 누려라 입니다. 따라해 보십니다. 가족과 행복을 누려라.
 
II. 가족과 행복을 누려라.
 
-9절입니다.
 
*전도서 9:9,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여러분 지금 남편에게 얘기하고 있는가 남자에게 얘기하고 있으니까 다음 대표가 아내입니다. 그러니까 아내를 통해서 얘기하지만 온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라는 겁니다. 여러분, 요약하면 아내하고 싸우면 된다. 안된다.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형제 여러분 아시죠. 이길 수가 없습니다. 자매들 되게 좋아하시는데 우리 남편 분들 좀 냄새나고 돈 못 번다고 구박하면 된다. 안 된다. 안 된다는 거예요. 아니 말씀이 얘기하고 있잖아요. 애들이 공부 좀 못하고 방황(彷徨)한다고 해서 막 화내고 구박하면 안 된다. 이 얘기 하는 겁니다. 각자 해줘야 될 게 있습니다. 각자 해줘야 되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학교 선생이니까. 잔소리를 하기 쉬워요. 그래서 애들에게 잔소리 안하고 딱 들어주고 격려해 주고 막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도 안 좋아할 땐 용돈, 다 이렇게 해서 그들을 크게 기뻐하게 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여러분 아무리 어려워도요 가족이 이렇게 딱 행복하고 화목하면요. 너무 인생이 최고의 날, 기쁨의 날이죠. 반대로 억만금이 있어도 집에 들어가면 인상 쓰게 되고 그러면 인생이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이 아니라는 겁니다. 911 테러 사건, 제가 미국에 갈 때 마다 꼭 그 지역에 한번 가보거든요. 그 장소에 그리고 여러분, 우리 뭐 세월호 때도 그랬습니다. 살려주세요. 무서워요 이런 거 빼고 가장 마지막에 가장 비중 있게 했던 말이 뭡니까? 무겁게 했던 말 내가 말 못 했는데 ‘아빠 존경합니다.’ ‘엄마 미안해 엄마한테도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어. 엄마한테는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어. 내가 소리 지르고 짜증냈는데 엄마 미안해 엄마 사랑해’ 그리고 마지막 숨을 거뒀습니다.
 
여러분, 가족의 소중함을 왜 마지막에 기억하고 말해야 됩니까? 우리 어르신들 여기 몇 분계신데, 참 감사해요. 저희 어머니도 80 중반이 넘으셨는데, 나 빨리 가야 된다. 그래요. 맨날 나 깨끗하게 빨리 가고 싶다. 그게 부모님 마음인가 봐요. 근데 아세요. 여러분이 계셔서 고향이고, 여러분이 계셔서 여러분 가정이에요. 제가 미국의 그렇게 공부할 때 어려워도요. 돈 1불 2불 모아서 비행기 표 사서 원스탑, 투 스탑 해가지고 옵니다. 왜요 거기 여기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 왜 우리가 3~4시간 걸려서 고향에 내려갑니까? 명절 때 한 5시간 6시간, 고향 풍경 보러 가는 게 아니죠. 거기에 아버지가 계신 거예요. 거기 어머니가 계신 거예요.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버텨주는 것, 이렇게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 여러분 그것이 힘이 되고 가족들에게 행복이 되는 것이죠. 제가 최근에 어떤 자매를 만났는데, 너무 스윗해요. 그리고 부모에게도 잘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잘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자매는 옛날부터 이렇게 친절하고 스윗하고 가족에게도 잘 했습니까? 그랬더니,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가 그 지방에서 자랐는데 아버지가 농사짓고 너무 가난 했대요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렇게 하고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동생 데리고 올라와서 둘 다 취업을 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젊은이들 여기 계신데요. 요즘 젊은이들이 저축하구요. 투자하고 이렇게 많이 합니다. 예금 적금 하고 투자하면서 월급의 80%를 그렇게 모아 가구요. 동생이랑 좁은 월세 살면서 그렇게 살아가는데 동생이 언니 나 예쁜 옷 좀 사줘 그믄 아이 그냥 있는 옷 입어 빨아서 입는 게 제일 이쁜 거야. 언니 맛있는 것 좀 먹자. 야 나가면 외식하면 얼마나 비싼데 그거 갖고 적금 1번 더 넣을 수 있고 그거 하고 투자할 수 있는데, 그래서 2년 3년 동안 열심히 살았답니다. 그랬더니, 이게 쑥쑥 재산이 늘어가더래요. 너무 기뻤죠. 그런데 한날 동생이 나가서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언니가 울면서 옷 사줄 걸. 맛있는 거 사줄걸. 그랬다는 거예요. 그리고 깨달은 거예요.
 
내가 미래 위해서 열심히 적금도 하고 투자도 하고 지금도 해요. 그러나 내 가족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있는 게 아니구나! 오늘을 소중히 여기면서 축복으로 받으면서 그 다음에 미래를 생각해야 된다. 우선순위가 바뀐 겁니다. 여러분, 가정 늘 있지 않아요. 우리 지금 서초 강남에 나와 있는 젊은이 분들, 부모 생각해야죠. 우리 아이들이 방황하고 어려울지라도 우리 애들 소중하게 여기게 되죠. 여러분 우리가 말씀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 말씀의 실천 한번 해야 되겠죠? 우리 정말 못하는 거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새벽 기대회 때는 이런 거 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가족이 있으면 좋은 거고, 가족이 없으면 부담 없으니까, 더 좋은 거고, 한번 연습해 보겠습니다. 마음을 담아서 함께 있어서 좋습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함께 있어서 반갑습니다.”
 
네 우리 얼굴 밝게 해야 됩니다. 자 그 다음에 정말 못하는 거 사랑합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말씀이 되게 놀랍지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조건 짜르고 금욕주의가 아니고 맛있게 먹고 멋을 내라 그리고 가족들과 즐겁게 행복을 누려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세 번째 점점 기대되죠. 세 번째,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III. 세 번째,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한번 따라 해 보겠습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10절
*전도서 9:10,
10 너의 손이 얻은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니라.
-이게 뭡니까?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고 주어진 것 이미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요. 그냥 1~2개 갖지 못한 것 때문에 그렇게 집착을 하고 원망을 해요근데 하나님께서는 니 손을 봐라. 니 손에 이미 많은 게 주어져 있다. 그거 감사해야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이 된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 누구나 지금 잘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잘되는 게 진짜 잘 되는 게 아닐 수 있어요. 돈 많아서 내가 돈 많아 만문에 빠져 갖고 하나님이 안 보인다면, 나 건강해 건강한 몸 갖고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그걸로 온갖 놀러 다니면서 범죄하고 밤새 못된 짓 한다면, 우리 애들이 이렇게 데리고 나와서 기도 안 해도 잘 돼서 아빠 엄마만 믿으면 돼 하나님이 안 보인다면 지금 잘되는 게 진짜 잘 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지금 안 되는 게 지금 잘 안되는 게 인내로 견디고 감사해서 이기면 나중에 진짜 잘되는 걸 쓸 수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연약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랬는데 기도해서 마른 땅에 길이 나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서 아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구나, 그래서 물질로 살지 않고, 빵으로 살지 않고 떡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내가 아팠습니다. 그런데 기도해서 여호와 라파를 경험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면 애들이 방황했어요. 배우자가 방황했습니다. 그랬는데 특사에 나와서 기도하고, 울부짖었는데 하나님께서 배우자들과 자녀들을 돌이키셔서 여보, 아빠 엄마, 하나님이 계신 거 같애 엄마 아빠가 이렇게 기도하는 하나님이 그걸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신 거 같애. 그렇게 아이들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면 지금 어렵고 힘들어도 견뎌서 하나님께 나가는 이 날이 축복의 날이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믿음 가지고요. ‘하나님, 저 오늘 저에 계신 내 가정, 저에게 신 일터, 내 사역터, 하나님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할 때, 여러분 오늘이 축복의 날, 최고의 날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축복합니다.
 
자 이렇게 말씀을 보니까 새롭죠? 잠시 전도서의 말씀을 살펴보니까, 새삼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렇군요. 하나님이 주신 날을 기쁨으로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요.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게 다일까? 믿지 않는 사람들도요. 일반 은총 속에서, 이거를 깨닫습니다. 특별 요청이 아니더라도 말씀과 이런 예배를 통해서가 아니고, 그냥 지혜로 일반 요청으로 깨닫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말을 만들었죠. ‘내가 맞이하는 오늘 하루가 이미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맞이하고 싶었던 바로 그 한날이다.’
 
병원에서 죽어가면서,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 가족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을 만들어서 이 하루가 소중하다. 이런 것들을 기억할려고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렇게 할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이걸 해보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해볼려고 그래두요 음식을 못 먹는데 어떡해요. 스트레스 때문에 아무리 맛있게 먹고 감사하게 먹으려고 해도 안 먹힙니다. 그리구요.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고 행복하게 살려 그래도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데, 내 입에서는 화가 나오는 거예요. 내 입에서는 잔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는 뒤돌아서는 아이고 그런 내가 믿고 그렇게 안 되는 걸 어떡합니까? 또 내 손에 주어진 일들, 최선을 다하려고 그러는데 도저히 그렇게 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 아예 내 손에 아무 일도 없앨 때 어떻게 그날을 행복하게 어떻게 그날을 축복으로 받을 수 있겠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은 이 3가지 일반 은총적인 것 외에 하나를 더 얘기합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죠.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게 뭡니까? 네 번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겁니다. 우리 네 번째 한번 따라보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IV.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여러분, 아멘이 됩니까? 나를 창조하셨기에, 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을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기억하라는 겁니다. 아까 말씀 기억하시죠. 전도서 9장일절 말씀입니다.
 
*전도서 9:1,
1 이 모든 것을 내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 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 이거 기억하라는 겁니다. 분명합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 우리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거 절대 잊지 말라는 겁니다. 자 가장 중요한 이것을요 전도서 12장에서는 결론적 권면으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전도서 12:1-2,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낙이 없다고 하는 게 뭡니까? 젊었는데, 어떤 순간에 이제 인생이 완전히 후반기로 간 거에요. 아무 낚시 없는 겁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무슨 말입니까? 우리 이렇게 새벽이 밝아올 때, 왔습니다. 그런데 여름이지만 곧 있으면 해가 집니다. 어슴푸레지다가 완전히 어두워집니다. 비유로 말하는 거예요. 비유로 말합니다. 니 인생이 그렇게 어두워지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무슨 말입니까? 요즘 우리 장마철에 알 수 있어요. 맑습니다. 갑자기 비가 옵니다. 구름이 일어납니다. 다시 비가 옵니다. 그치고 구름이 낀다 해가 집니다. 장면이 막 바뀝니다. 너의 인생이 그렇게 장면이 확 바뀔 거다. 그리고 어떤 순간 스탑. 멈출 거다 그 전에 니가 돌아가야 될 너에게 인생을 준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된다. 하나님을 기억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여러분 솔로몬이 지금 인생에 많이 남은 젊은이들 청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중반을 넘게 산 중년들과 인생의 마지막에 가까워 오고 있는 우리 이 노년의 성도들에게는 이 말씀이 얼마나 더 소중합니까? 창조주를 기억해야 된다. 너에게 생명 주었던 그 하나님 니가 돌아가야 될 그 하나님을 기억해야 된다. 이 말씀이 얼마나 비중이 있습니까? 여러분 맛과 멋을 즐겨야죠 가족과 행복하게 누리고 살아야 됩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 날이 있습니다. 구름 끼고 비가 오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 나를 만드셨고 나에게 한 말을 주신 하나님 그 창조주를 기억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때 아 하나님이 나에게 다시 이 한 날을 주었구나 그렇구나!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이 이 고난을 통해서 나를 다듬어 가시는구나! 나를 멋지게 만들고 계시는구나, 성장을 시켜 나가고 계시는구나, 하나님 앞에서 고난이 해석된다는 겁니다. 아 내가 정말 눈물 나기 어렵구나, 그렇구나, 하나님이 지금 나를 건강을 통해서 물질을 통해서 관계의 어려움을 통해서 코너로 모는 것 같지만, 그것이 나에게 단순히 고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구나. 아들아 넌 너무 나 없이 살아갔다 딸아 너 세상에 너무 지금 빠져있다.
 
하나님이 이 고난을 통해서 나를 부르시는구나, 지금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구나, 그러면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눈물 나고 힘들고 어렵고 비가 오는 날 같은 그 날이 하나 앞에서 깨달음 속에서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떤 지역에 부흥해 갔더니요. 어떤 집사님께서 담임 목사님 통해서 귀한 분 오셨다고 맛있는 한식을 대접하겠다고 연락이 오셨어요. 제가 우리 부교육자님들 너무 수고하시잖아요. 그래서 담임 목사님께 담임 목사님 강사뿐만 아니고 부교육자님들도 다 같이 모이면 안 됩니까? 그랬더니, 그 집사님께 연락드리고 괜찮습니다. 그래서 한 14명 15명 부교육장님들이 다 식사 장소 나왔습니다. 10만 원 넘는 한식집인데, 함부로 대접하면 큰일 나죠. 그래서 너무 맛있었습니다.
 
특별히 갈비가 얼마나 맛있는지 보들보들하고요. 양념이 그렇게 풍미가 좋았습니다. 막 먹으면서 뜯으면서 집사님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축복 주셔서 이렇게 섬길 수 있어서 참 감사하네요. 그랬더니, 그분이 정색을 하시면서 저 부자 아닙니다. 너무 놀라서 갈비를 떨어뜨렸습니다. 아니, 그럼 밥을 왜 사주셔? 그랬더니, 얘기를 해 주시는데 아버지가 엄청나게 성실하게 일하셔서 중소기업을 잘 키우셨어요. 어머님이 또 권사님이신데, 아주 멋있는 분이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새벽에 기도하시고 가족들을 위해서 늘 헌신하시고 가정예배 드리면서 항상 아들아 너 하나님의 아빠처럼 축복 내려주신다 아빠처럼 너 정말 은혜로 인도하신다. 그럼 너 교회에 섬기고 어려운 사람 섬겨야 돼 우리 아들 사랑한다. 이러면서 가정 예배드린 거예요. 그런데 아들이, 그 아들이 여러분 대학 졸업할 때쯤에 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아들이 하나님께 섭섭하죠. 그래서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랬는데 사업은 이어받아야 되니까. 아버지 사업을 이어 받았는데 너무너무 잘되는 거예요. 사업체가 이게 아빠의 DNA를 타고난 거죠. 그래서 집도 3채 4채 그리고 막 어 자동차도 3대, 4대, 외제 차 막 이렇게 하는데 안 놀래시네요. 부자가 돼 가는데 아시죠. IMF가 딱 터졌습니다.
 
그래갖고 순식간에 다 날라 가고 여러분 집도 다 날라 가고, 월세 써금써금한 집에 사는데 그렇게 여러분 자기한테 굽실 굽실거리던 사람 돈 있을 때 술집 가서 막 놀면서 사람들한테 10만 원 어쨌든 100만 원씩 팁 주면 90도로 인사하드래요. 제가 영원히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축복 어린 삶이에요. 얼마나 힘 있는 삶입니까? 하나님 없이 살아도 되는구만, 이렇게 했다가 망했는데 아무도 안 찾아오더래요. 매일 전화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여러분 돈 받을 사람들, 얼마나 괴롭히던지 아내와 애들이 쭈그러드는데 한 날 이걸 끝내려면 죽어야 되겠다. 이게 아버지 아니에요. 이렇게 사랑하는 삶들이 아버지고, 남편이에요.
 
그래서 옥상에 올라갔답니다. 그리고 진짜 그런다고 그러대요 신발을 딱 벗고 더 이상 걷지 않으리 나 여기서 있다. 간다 신발 벗고 올라가서 뛰어 내리려고 하는데 딱 하나가 생각이 들더래요. 이건 뭘까요? 어머니라고도 안 하더라구요. 엄마, 엄마 미안해, 그런데 내가 꿈꿨던 삶이 이런 삶이 아니었어. 엄마, 미안해. 그러고 뛰어내리려고 그러는데, 엄마 생각이 계속 이어지면서 엄마랑 예배 드렸던 게 생각나더래요. 너무 멋지다 우리 아들 정말 하나님 축복해 주실 거야. 너 교회와 어려운 삶으로서 살아가라. 그리고 엄마랑 불렀던 찬양,,, ‘예수사랑하심은 나의 사랑하심,,,, 우리 아들 멋지다, 그 엄마가 생각나는데 그 찬양을 보면서 엉엉 울면서요. 다시 내려와서 신발 옆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다시 삶을 시작했다는 거예요. 이런 무슨 그런 얘기를 갈비 먹을 때 합니까? 결국 갈비도 못 먹고 체했습니다. 심하게, 그래서 어떻게 사업은 회복하셨습니까? 아니 아니구요. 그냥 최선 다해서 조그마한 사업체 하고 있고, 그냥 써금써금한 차 몰고 있습니다.
 
아이 근데 왜 갈비를 사신다고 그러셨어요? 했더니, 웃으시면서 아니 제가 이날을 위해서 살면서 조금조금 돈을 모아서 강사님들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이렇게 도우며 살고 있는데, 꼭 부자여서 뭐 해야 됩니까? 이렇게 소박하게 하는 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아닐까요? 엄마 기도대로 사는 것 아닐까요? 이러는데 감동이 확 오더라고요. 여러분 옥상에 올라가서 삶을 포기하려던 성도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최고의 난 축복의 날이 됐습니까? 절망의 순간에 나를 만드셨고 하나님의 엄마를 통해서 생명을 주신 그 하나님이 생각난 거야. 엄마가 예배하던 하나님이 생각난 거지요 그리고 그 하나님 어떤 하나님입니까?
 
엄마의 눈물 어린 기도를 잊지 아니하시는 그 하나님 꺼져가는 촛불을 끄지 아니하고, 상한 갈때를 꺾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생각나면서 내가 왜 포기해 하면서 그 하나님께 돌이켰을 때, 여러분 최악의 날이 최고의 날이 된 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 앞에 계십니다. 하나님 우리를 보고 계시죠. 여러분, 인생에 왜 눈물 나지 않을 때가 있겠습니까? 눈물이 흘러서요. 눈물의 맛이 느껴집니다. 안 그래도 힘든데 비가 와서 쫄딱 맞아서 정말 비 맞은 강아지처럼 인생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 어두워질 때가 있죠.
 
그때도요.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을 받기 위해서 내 앞에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거지요. 내가 먼저,,, 누가 먼저요? 내가 먼저요. 이 자리에 지금 많은 분들이 나왔는데 남편 뭐 아내 애들 생각하지 말고, 내가 먼저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찡해 올 때, 그렇다면 내가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내가 먼저 다시 한 번 그분 앞에 일어서는 거예요. 배우자가 우리 집엔 희망이 없어. 엄마 아빠 이게 뭐야? 라고 말할 때 그래서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되는데 아니야. 여보, 얘들아 괜찮아. 근데 그게 그냥 됩니까? 애들에게는 더 웃고 더 격려했지만, 배우자에겐 그렇겠지만, 새벽에 나와서 저녁에 기도할 때 울면서 하나님을 부르면서 하나님 저에게 이 삶을 주셨어요. 하나님 저에게 이 가정 주셨습니다. 저 절대 하나님 우리 가족 포기 안 합니다. 제 일터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를 기억하면서 부르짖을 때 우리가 믿음의 우산을 펴고 다 버텨줄 때, 배우자들과 아이들이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그 속에서 어렵고 힘든 날인데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이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이에요. 오늘 오늘이 그렇게 해야 되는 겁니다. 내가 먼저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는 겁니다. 동시에 우리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특새 올 때마다 부부가 같이 온 분들 또 특별히 자녀들 너무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제가 이 자리입니다. 유학 가기 전에 저쪽에서 저도 부목사님들처럼 안내하고 있었어요. 우리 그때 오 목사님이 그 가득 찼었는데 너무 감동하시면서 헐렐루야! ‘성도 여러분 우리 가족들이 축복입니다.’ 이러셨어요. 그러면서 손 얹어서 우리 자녀들과 다 위에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면 그렇기도 하는데 잘 봤습니다. 딱 봤더니, 얼마나 자기 배우자와 이렇게 허그하고 안고 기도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도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때 청년부들도 많이 왔는데 청년 1명이 일어섰는데 가족이 없잖아요. 그래 가지고는 어떻게 기도하지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라는데? 안 돼가지고 제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이제 자녀들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애들에게 엄마 아빠 뒤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거 가르쳐주고 싶어요.
 
저희 딸이 제가 사랑의 교회 있다가 유학 갈 때 뭐 가진 거 없죠 그냥 다 털고 갔는데 가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영어 적응하느라고 적응할 때쯤에 제가 공부 마치고 돌아 와가지고 여기 와서 또 한국말 못해서 고생 되게 많이 했습니다. 양쪽으로 고생했는데 아부지 믿었다가 얘가 중고등학교 열심히 여기서 지내고, 아빠 나 대학은 내가 자라면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아빠 나 학비 대줄 수 있어? 그래서 제가 1초도 주전하고 아니!! 높 그랬습니다. 아 왜요? 아니 무슨 목사가 또 신학교 교수가 무슨 돈이 있겠어. 높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애가 얼굴이 엄청 어두워져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은 알려줘야 되잖아요. 그래서 아빠는 가난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가난하지 않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얘가 아멘. 했겠어요. 아니고 아빠 미워 그러고 갔습니다. 지 방으로 옆에 있던 아내가 왜 애를 기를 죽이냐고 애를 그래 가지고 아내한테 엄청 혼났습니다. 저는 그냥 하나님을 알려준 건데 엄청 혼났습니다. 그날 너무 우울해서 초저녁에 잠들었는데 12시쯤 깼어요. 그래서 목이 말라서 냉장고 문을 여는데 그 냉장고 옆에가 저희 딸 방이었습니다. 딸이 물론 기도하는 애였는데, 간절히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가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러면서 하나님을 붙드는 거예요. 마음이 찡했죠. 그리고서 이제 입시 때가 됐는데 미국은 여러분 아시지만 우리나라도 들어왔더라구요. 에세이라는 걸 씁니다. 글을 써요 그래서 입학을 위한 에세이, 또 장학금을 받기 위한 에세이를 쓰는데 얘는 뭐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 가지구 에세이를 썼대요. 그래서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첫 문장이 이랬다고 그러더라구요. 아이 헤브 노 머니(I have no money), 미국은 이렇게 글을 안 써요. 돌려 돌려 말하거든요. 근데 얘가 인제 영어 못할 때 미국에 가서 얼마나 고생했어요. 그래서 막 놀림도 받고 그랬는데 좋은 선생님을 만났거든요. 완전히 얘가 적응을 하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 얘기를 쓰고 나는 교육의 중요성이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안다. 난 교육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교육학을 공부할려고 그러는데 나는 뜨거운 경험이 있고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 다음에 식지 않는 열정이 있다. 하나 없는 거는 돈이다. 아예 뭐 너 뭐니 이렇게 썼어요. 그래서 장학금을 잘 안 주는 학교인데 웃었는지, 울었는지 모르지만 그래 너 장학금 대준다고 해서 이제 대줬어요.
 
그래서 인제 걔가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가 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제가 꼭 학비를 아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거는 아니지 않지 않습니다. 근데 어쨌든 그것도 기쁘지만 얘가 이제 하나님을 알게 된 게 너무 기쁜 거예요. 2살 어린 막내가 있는데, 집이 돌아간 걸 보니까 누나도 다 봤잖아요. 아버지에겐 희망이 없다는 걸 안 거예요. 그 얘도 인제 기도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2년 뒤에 똑같은 학교에다가 이제 글을 썼어요. 뭐 비슷하게 썼습니다. 아이 헤븐 노 모니 투(I have no money two), 그랬더니, 학교에서 똑같이 다 배웠어요.
 
그래 그럼 너도 돈을 줄란다. 해 가지고 둘이 이제 같은 지역에 가서 어려운 지역인데 거기서 캠퍼스 돌보고, 어려운 친구들 기도해 주면서 하나님 살아 계신다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지 뭐 해주시는 분들은 참 감사한 거 그냥 해 주십시오. 못해준 건 어떡해요? 좋은 차도 사주고 싶고 집도 해주고 싶고, 공부도 시키고 싶지만 그러시는 분들이 있는 분도 있지만 없는 분들도 많아요. 부모 마음이라는 게 뼈라도 빼서 주고 싶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요. 본문은 더 중요한 걸 얘기해요. 너를 알려주는 것보다 나를 알려 주는 게 더 중요해. 그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왜 애들의 날에 어두운 날이 없겠어요. 젊은 아이들이지만 비가 와서 비 오는 날, 인생이 그렇게 축축한 날이 왜 없겠습니까? 그때, 그때 아빠 엄마가 가르쳐 줬던 그렇게 가기 싫었는데 가야 된다. 나는 기도에 용사다. 아빠 안가 용돈이 기다리고 있다. 갈께 때로는 이렇게 하면서 데려 왔고, 때로는 아내와 남편이 몸이 아픈 데도 왔는데 그 과정 속에서 비 오는 날, 아빠가 왜 기도했는지 알겠다. 엄마가 왜 기대는지 알겠다. 그 하나님 기억하면서 일어서는 거죠. 성도 여러분, 미래가 아닙니다. 축복의 날입니다. 하필이면 올림픽이 시작하는 날 제가 말씀을 전하게 되다니,,, 그러면서 이것도 축복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오늘 뭐 맛있는 거 먹구요. 올림픽도 보면서 너무 늦게 주무시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보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끝나고 또 좀 맛있는 거 드신 다음에 옷도 예쁜 것 하나 사면된다. 안 된다. 아 사도 된다. 남편 분들 카드 준비해 주시고 너무 비싼 거는 말고, 그 다음에 가족들과 행복을 누리면서 어 ‘너, 너무 멋지다 아빠가 너 사랑해.’ 이런 말도 해주시구요. 그리고 오늘처럼 주어진 일에 최선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래도 어렵거든.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한 날을 주셨구요. 이 새벽에 지금 제가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부를 거예요. 여러분의 믿음으로 일어서서 여러분의 가족들과 모든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날이지만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을 오히려 누릴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우리가 미래도 중요하지만 오늘이 최고의 날 축복의 날이다. 때로는 힘들고 눈물 나는 날일지라도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이 이날을 누려야 한다. 이 최고의 날, 축복의 날 하루하루 쌓여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계획이 나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에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하자.
-우리 믿음의 4대 7천 기도용사가 토요일성령집회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 때, 창조주 하나님과 오늘이 축복임을 기억하고 오직 감사와 행복으로 살아가야 한다. 사랑의 교회 모든 영 가족이 인생과 운명과 죽음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리며 전적위탁의 신앙으로 나아가, 주의 부르심과 사명을 순명으로 삼고 최고의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고백해야 한다. 국내아웃리치와 단기선교, 주일학교 여름 성경학교 위에 성령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부어주시길 간구하며,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목도함으로 모든 순간이 축복의 날, 최고의 날이 되기를 소망하며 내일 주일예배에 모둔 영 가족이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인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뜨겁게 만나는 주일이 되어, 인생의 문제들이 하늘의 관점과 지혜로 풀어져서 참 행복을 누리는 주님의 참 자녀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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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7월 24일)
제목: “의인과 믿음”
말씀: 로마서 1:16-17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최종민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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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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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처럼 바로 유대인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이 거리까지 십자가의 복음이 거리끼는 것이었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도 바울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했었던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럴까요? 바로 복음은 모두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 이 놀라운 능력 앞에서 이 사도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하고 난 이것을 붙들고 평생을 영원토록 살아간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동일한 고백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 사도바울은 이 복음의 능력, 복음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평생을 드렸던 사람입니다. 그 보금 안에 있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저도 중학교 3학년 때 주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믿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서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제가 8살, 9살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면 TV에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만화영화가 아침에 꼭 교회 가야 되는 그 시간에 시작했습니다. 디즈니만화동산 그걸 보고 싶어서 엄마한테 애걸 했습니다. 오늘 한 번만 교회 안 가면 안 되겠냐고 ‘교회 안 가면 내 자식 아니다.’
 
나가라 그래서 네 교회를 열심히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 가운데서 부모님이 가셨던 그 줄 성수와 또한 믿음에 대한 열정으로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부터 제 마음 가운데 들었던 고민이 무엇이냐면 과연 이름은 무엇인가, 나는 믿음이 좋은 사람인가, 나는 구원받은 사람인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저는 매일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씨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짜 내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았는가? 왜냐하면, 제 안에는 아직도 죄의 문제가 남아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거룩한 삶이 아니라, 죄 가운데 계속적으로 싸워서 승리함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넘어지는 삶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오기 때문에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저만 그렇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여름에 이 시간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말씀, 기도할 때 하나님께 주신 이 말씀 함께 깊이 나누고자 합니다. 그 복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 능력을 나는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믿음이 없는 자처럼 행동하는가? 과연 믿음은 무엇이고, 과연 의인은 누구인가? 같이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16절 말씀에 바로 이제 사도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면서 17절 말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17절 말씀은 바로 16절 말씀의 근거 구절이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개혁 개정에는 나오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무엇이 등장하냐면 ‘왜냐하면’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로마서 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왜냐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주신은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라는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근거 구절인 17절 말씀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7절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2가지 중요한 핵심 구절을 집중해야 되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 여기에 대해서 보통 신학자들은 3가지 견해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이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 그분의 의로우심, 하나님의 의로운 속성을 의미한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는 무엇이냐면 그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행하신 모든 의로우신 구원의 행위가 바로 하나님의 의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견해는 무엇이냐면 바로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서 의인이라는 거룩한 신분을 허락하신 것이다. 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말한 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견해 중에서 오늘 말씀 해당되는 그런 견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마음속으로 대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몇 번이든 상관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 의해 적합한 해석이고, 이 모든 것들이 다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좀 더 적합한 것이 있다면 3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견해 무엇인지 기억나시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의인이라는 거룩한 신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1번부터 3번까지 견해를 합쳐보면,
 
하나님의 의는 거룩한 의로운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그분이 행하신 의로운 구원의 행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의로운 신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의로운 신분을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복음 안에 하나님께서 거룩한 의로운 신분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위해서 두셨다 그리고 그것을 나타내셨다. 라고 17절은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서 주님이 이것을 드러내시고 나타내실까요? 바로 그것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이 구절 가운데 나와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 정말 많은 신학자들의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교부들을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이것은 구약에서의 믿음과 신약에서의 믿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라고 그렇게 설명하고 있고 또한 어거스티는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자의 믿음, 또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믿음을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존 칼비는 이것을 사람이 갖고 있는 믿음이 점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통해서 커져가는 그런 의로움이다. 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가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구절을 좀 더 우리가 참고해야 되는데, 그 말씀이 고린도후서 2장 16절 멘스입니다. 제가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2:16,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사도바울은 믿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다. 라고 말하면서 이 구절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구절에서 무엇이라 말하냐면 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향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설명하면서 사망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기 위해서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 또한 생명을 강조하기 위해서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 말씀을 따라서 이해한다면,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른다. 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오직 믿음을 통하여 오직 믿음을 통하여, 그렇다면 17절 말씀을 다시금 설명한다면, 다시금 우리가 해석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행하신 우롱 구원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신분, 이 신분이 어떻게 나타나냐면 바로 믿음을 통하여 나타난다. 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여기서 나타난다는 것은 계시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의로심이 우리를 거룩한 유인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어디에 있냐면, 복음 안에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어떻게 계시됐느냐, 바로 믿음을 통하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로운 우리를 향한 거룩한 신분을 드러내시는데 게시하시는데, 그 계시하시는 것은 바로 오직 믿음을 통하여 주님이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근데 여기서 아까 전에 제가 말씀드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온전한 믿음이 있을까요?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과 상담하게 되면, 여기에 대해서 무조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듭니다.
 
제가 처음 사육을 시작했을 때에, 중고등부를 담당했습니다. 광명의 한 교회에서 제가 중고등부를 저는 제가 전도사로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에 제가 반에 서서 말씀을 선포하면 아이들이 다 뒤집어질 줄 알았습니다. 떼굴떼굴 구르면서 아이들이 통에 자복하며 눈물 흘리며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내가 예수님만으로 살겠습니다.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었습니다. 근데 제가 처음 전도사로 부임하고 나아갔을 때, 복음을 전했을 때 어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 잠에 들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제가 어떤 마음이 들었냐 하면 제 안에다가 항상 사직서를 놓고 다녔습니다.
 
하나님, 저는 아무래도 이 일이 아닌가 봐요. 그럴 때에 어떤 한 친구가 저와 면담을 하게 됐는데 상담을 하게 됐는데, 전도사님 그때는 전도사였으니까요. 전도사님 저에게는 믿음이 없는 것 같아요. 전도사님 저는 믿음이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저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구요. 이런저런 죄들 다 짓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나도 너랑 똑같았어. 그런데 너에게는 믿음이 있어. 너 예수님 믿지 너 예수님이 너의 구원자임을 고백하지? 네 그럼 넌 믿음이 있는 거야. 믿음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안에 있는 능력, 힘, 파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우선적으로 이 믿음은 나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우리는 믿고 고백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같이 한목소리 읽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아멘 전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믿음, 구원이 나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란 것을 이 말씀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죠. 여기서부터 자유함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구원을 주셔야,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죠. 하나님이 아무리 우리를 구원하셨다 할지라도 내 안에서 구원에 합당한 일들이 일어나야 되고, 또한 믿음을 향한 어떤 거룩한 노력이 일어나야 되고,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으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은혜와 믿음 구원을 우리에게 주실까요? 우리 안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 가운데 성육신 사람으로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 하시고, 또한 3일 만에 부활케 하시며 또한 승천하심으로, 지금도 하나님 보좌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며 나아가시도록 주님을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바로 우리게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소유에 의한 것입니다. 이것을 고백하며 나갈 때에 우리 안에 진정한 평안과 자유함이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먼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게 하십니다. 또한 더불어서 우린 어떻게 고백해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이 놀라운 믿음이 바로 우리를 위해서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13절 말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아멘. 이 말씀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냐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영접한다는 것이고.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 구원의 능력, 그 이름의 권세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냐며 믿는다는 그런 행위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응당 마땅히 행해야 될 것,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될 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죠.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지적인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지를 우리가 믿고 따르면서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분만을 의지하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입니다. 믿음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버지를 바라봐야 되고요.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면, 그분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의지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주님은 그것을 향하여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제 여름철이기 때문에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데리고서 여행을 가십니다. 여행을 갈 때 자녀들이 캐리어를 쌓으면서 막 고민하는 거 들어보셨어요? 한 이번에 여행가는데 돈이 얼마나 들 것 같은데, 걱정이네 이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아 가서 뭐 먹지 어디서 자지 이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어린 아이는 어떻게 하냐면 룰루랄라 신나가지고 자기 장난감만 잔뜩 싸는 겁니다. 사춘기 아이는 한마디 합니다. 엄마 아빠 와이파이 돼? 그거 말고는 원하는 것이 없어요.
 
왜냐하면,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가장 좋은 곳에 데려갈 것이고, 그리고 부모님께서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 거라는 전적인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굳건한 관계성은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믿음을 자아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그렇게 의지하고 있나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나요? 주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너에게 믿음이 있느냐? 물으실 때 주님께선 그것을 물어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에겐 진정으로 아버지 되는 나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어떠한 삶의 요동이 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서 나를 신뢰함으로 세상의 모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며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너에게 있느냐? 주님은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적인 신뢰와 의지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예술 그리스도께서 과부와 재판장 비율을 말씀하시면서 이 말씀 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 8절입니다. 같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8장 8절,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불의한 재판장이 한 명 있습니다. 그 누구의 말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악독합니다. 항상 판결을 굳게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지인들이 편한 대로, 그렇게 판결하는 악한 불의한 재판장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장이 한 과부가 매일 찾아와서 매일 원하고 바라기 때문에 너무나도 귀찮고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그 과부의 청을 들어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과부에게는 불의한 재판장의 대한 그를 향한 그런 굳건한 신뢰가 있습니까? 의지함이 있습니까? 너무나 선한 재판장이 내가 간과하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다. 라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까? 없어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진정으로 자신을 이 돌파할 것은 이 재판장 밖에 없다는 그런 간절한 신뢰와 의지함으로 글을 찾아갔을 때에, 그 재판장도 불의한 재판장도 그 과부의 청을 들어줍니다. 하물며 우리가 신뢰에 맞이하는 우리의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때에,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귀를 닫으시고 듣지 않으시며 눈을 가리시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갈 것은,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주시는 신뢰할 만한 유일한 분이심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것은 세상 끝날 되면 힘들고 어려운 고난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떠나가고 마음이 떠나가서 믿음을 못 보겠구나! 그런 한탄이 의한 것이 아니라 나는 믿음을 보길 원한다.
 
내 제자들아 사랑하는 내 사람들아, 나에게 믿음을 보여다오. 굳건한 믿음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오는 그러한 신실한 사람들이 되렴.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 가운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이 나의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서 갖게 되는 온전한 신뢰와 의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해서 말하고자 하는 이 의인됨은 누구를 말합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나는 하나님 믿음의 모든 것 되어드릴 만한 그런 선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해주셨기 때문에 지금 부족해도 나는 주님만을 의지하며 신뢰하며 나아갑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렇게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시작하신 그 거룩한 믿음의 시작을 더욱더 창대하게 하시고, 우리를 주의 거룩한 품에 안으시고 평생 주의 거룩한 뜻 가운데 살아가며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세상 가운데 넘어져서 쓰러져 있느냐? 다시 일어나렴. 다시 일어나서 내가 너에게 준 믿음으로 신뢰와 의지함으로 이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의 싸움을 쌓으며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이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마지막 구절이 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내용들을 다시금 돌아본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오직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와 의지함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 승리하며 살리라. 그와 같이 주의 거룩한 말씀대로 진정을 우리가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신뢰합니다. 믿습니다. 그런 믿음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 예수 그릿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거룩한 사람들로 다시금 세우셔서, 주의 말씀대로 이 세상 가운데 승리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이 연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은 있는 그대로 나오라 가십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진정으로 우리 삶 가운데 작은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 있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 우리를 통하여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2033-50 비전’이 바로 주의 거룩한 이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서, 이 땅 가운데 펼쳐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겨자씨와 같은 믿음을 보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거룩한 씨앗을 심으셨으니깐요. 이제는 열매를 맺어야 될 때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열매를 맺어야 될 때입니다.
 
순이 나고, 움이 트고, 싹이 피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야 되는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주님 나는 믿음이 없습니다. 나는 믿음이 연약합니다. 내가 믿음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렇게 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 없는 자를 다시금 진토해서 일으켜 세우시며, 우리를 온전케 해주시며, 거룩한 능력으로 굳건히 세우시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아가는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와 같이 살아가기를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이 준 옆에 나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 요약
믿음의 주권자이시며 유일한 주인 되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주 안에서 믿음을 찾아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내 안에서 믿음을 찾아 헤매는 영적 방황을 마쳐야 한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확신하는 굳건한 관계성을 통하여 세상의 그 어떤 거친 파도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며, 우리가 날마다 의인이자 주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갈 때, 복음 안에서 계시하신 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과 거룩한 구원의 역사가 세상 가운데 온전히 나타나기를 간절히 간구하자. 우리의 상황과 우리 환경이 어렵고 눈물 나게 하고 아프고 참으로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망 가운데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고 우리는 이 믿음을 붙잡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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