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21일)
제목: “임재, 항상 그곳에 계신 하나님”(1,2부), “은혜 속으로”(3,4부)
말씀: 에스겔 48:3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선복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김학진 목사님(1,2부-“임재, 항상 그곳에 계신 하나님”),
-윤대혁 목사님(3,4부-“은혜 속으로”)
-----
 
*에스겔 48:35,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베드로후서 1:2-4,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김학진 목사님(1,2부-“임재, 항상 그곳에 계신 하나님”),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저에게 사랑의 교회는 마음의 영적 고향 갈릴리와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돌아오면 마음의 위로가 있고, 포근한 사랑과 격려가 있는 친정집과도 같습니다. 제가 200년부터 2009년까지 이곳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었던 시간은 저게 가장 큰 영광의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다. 라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이는 너무나 큰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이 귀한 강단을 허락해 주신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당회, 그리고 교회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저는 제가 섬기고 있는 뉴욕 장르교회에서 벌써 7년차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배려를 해주셔서 2개월 좀 넘는 시간을 안식월로 이렇게 허락해 주셔서 잠시 한국에 나오게 됐습니다.
 
하나님 이 기간 동안에 혹 하나님께서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영광의 시간을 주신다면 무슨 말씀을 전할까요?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했는데요.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주신 감동의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었던 이 에스겔서가 가장 마지막 절 말씀이었습니다. 특별히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지난 2~3개월 동안 저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그 약속의 말씀이었거든요. 바라기는 오늘 전하는 저나, 듣는 우리 서울 사랑에게 모든 성도님들, 제가 받았던 하늘의 위로와 그 평안보다 더 큰 은혜를 받는 이 시간 그리고 돌아가신 시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드세요? 언제가 가장 힘든 시간이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임재성에 대해서 의심이 생기는 그런 시간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 분명히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데 그런데 이런 질문이 생기는 것이죠. 과연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가? 라고 하는 에 그 정도로 참 아린 가슴, 아픈 가슴, 긴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그런 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별로 나와 힘든 것과 연결시키지 않죠. 그렇지만은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 부분이 정말 힘든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로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것,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라는 것을 우리가 믿죠. 그런데 왜? 그런데 내게 왜? 또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시간들이 주어지는 것일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저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등등, 이런 시간들이 실질적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간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참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오늘 이 본문 말씀은 실은 에스겔서의 결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 이러한 아린 질문들에 대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통찰(通察)력이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귀한 믿음의 에스겔의 신앙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결론이 될 때에, 우리의 모든 질문들이 주안에서 평안함으로 해결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자, 오늘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면은 이런 말씀 아닙니까?
 
*에스겔 48:35,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이 말씀을 조금 더 이해하기가 쉬운 우리 현대인 성경 버전으로 보게 되면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전체 둘레는 약9.5킬로미터이다. 사람들은 그 성을 여호와께서 계시는,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이라 부를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에스겔서는 전체 48장이나 되는 예언서(豫言書)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 아까 말씀드린 거와 같이 가장 마지막 절 말씀이고 결론의 말씀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말씀은 긴 그의 눈물에 신앙의 여정(旅程)을 결론짓는 그리고 결론으로 신앙 고백, 귀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삼마’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귀하신 그 이름을 기록하면서 에스겔서를 마무리합니다. ‘여호와 삼마’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의 이름이죠. 여러분 ‘삼마’라고 하는 이 뜻은 영어로 말하면 데얼(There), ‘그곳’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삼마는 그곳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직역한다면,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이 임재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것이죠.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 이렇게 어 제목을 다룬 곳입니다. 여러분 이 에스겔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에스겔서를 기록하고 특별히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 그의 신앙의 고백 결론으로 이 말씀을 하는 것에 대한 무게라고 할까요?
 
그 무게를 우리가 좀 더 알려면은 이 에스겔 선지자라고 하는 개인에 대한 뒷배경, 그거 어떠한 역사 어떤 배경 가운데에 있었는가, 또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좀 알 때에 에 좀 더 우리가 아 이 말씀의 은혜의 무게를 알 수 있는 것인데, 자 성경은 실은 이 에스겔이라고 하는 개인에 대해서 많이 기록돼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에스겔서, 여러분 처음 등장하는 1장 첫 구절인 1절부터 3절까지를 보게 되면은, 어느 정도 아 이런 시기에 에스겔 선지자가 존재했고, 아 이런 일을 그가 당했고, 아 그는 이러한 개인적인 뒤 배경에서 자라났구나, 아 그래서 이러이러한 사명과 소명이 있었던 자였구나, 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자 우리 그러면은 에스겔서 우리 1장으로 한번 돌아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릴게요. 1절에 보니깐,
 
*에스겔 1:1,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서른째 해, 넷째, 딸 초닷새해라고 시작을 합니다. 자 여기서 30째 해라고 하는 것은 에스겔 선지자의 나이를 말하는 것이에요. 나이, 에이즈 오브 더 리브(Age of the live) 그러니까는 그가 30세 되던 해에, 이렇게 여러분께서 이해하시면 쉽겠습니다. 그가 머물었던 곳입니다. 내가 ‘그 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발 강가는 바벨론 어느 한 외지에 있는 강의 이름입니다.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그러니까 너무나 쉽죠.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가 되었어 그발 강가라고 하는 그곳에 이렇게 거하게 된 노예(奴隸)로 거하게 된 그때를 말하는 그의 나이가 그때 30세였다. 이렇게 우리는 볼 수가 있는 것이죠. 조금 더 역사적인 배경을 2절에 말씀합니다.
 
*에스겔 1:2,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유다 왕의 이름이죠. 여호와 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 그달 처닷새라. 여호와긴 왕이 정확하게 BC 597년에 에스겔과 많은 유다 백성들이 바빌론에 의해 가지고 포로로 잡혀가서 그 발 강가로 끌려가는 것이죠. 그래서 여호와긴 왕이 잡혀서 함께 당신도 이 그발 강가로 노예로 끌려온 지 5년이 지난 해였다. 5년의 지난해였다. 그러니까 그가 25살 정도에 포로로 잡혀 와서, 5년 정도 그곳에 지내면서 30세가 되던 해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고 그러는 것이죠.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하나님의 놀라운 살아있는 말씀이 하늘이 열리면서, 그에게 소명과 사명과 비전과 예언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자 3절을 보게 되면,
 
*에스겔 1:3,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그의 뒤 배경에 대해서 어떻게 자라난 패밀리 백 그라운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대아 땅 그 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그러니까 제사장 가정 레위 지파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사장 부시라고 하는 분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라고 말씀하고 이 당시 비슷한 연대였죠. 이 남유다 이스라엘 가운데 미래가 촉망이 되는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청년이었어요. 다니엘은 에스겔과 받은 소명과 사명의 결이 좀 다릅니다. 둘 다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말 귀한 믿음의 청년들이었지만 다니엘은 제사상 쪽이 아니죠. 다니엘은 신앙이 정말 좋았지마는 다니엘은 정치가 쪽입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아주 탁월한 평신도로서 이 정치 계열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지혜로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애하는 그러한 능력 있고 탁월한 자였었어요. 에 그래서 그는 느브갓네살 왕이 있는 왕궁 쪽으로 아 그가 인제 잡혀가게 되고 이 에스겔은 이제 제사장 결이에요. 그러니까는 미래의 촉망이 되는 청년이었는데, 이 사람은 우리말로 말하면, 미래의 좋은 목사 감이에요. 저 목사감, 그러니까 이 교회와 세상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나라 차원에서 볼 때에 이렇게 참 촉망(囑望)이 되는 기대가 되는 그러한 청년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이 에스겔이에요.
 
우리는 다니엘 하면은 워낙 다니엘 12장을 통해서 주일학교 잘 다니신 분들이라면 얼마나 스펙티컬하고 자꾸 용어가 나옵니다. 죄송합니다. 스펙테컬하고, 이 표현이 이것밖에 안 돼요. 제가 예 얼마나 우리 에피컬한 그런 스토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다니엘 하면은 아 이런,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다니엘이 어떤 인물인 것을 알지만은 에스겔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적어도 우리가 이 정도만 보더라도 에스겔이 참 귀한 청년이었구나, 미래의 이스라엘의 영적인 모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얼마나 중요해요. 이런 모든 영적 일에 참 준비된 자였구나,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죠.
 
민수기 4장에 보게 되면, 레위지파에서 자라난 제사장 가정에 자라난 자녀들, 특별히 아들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제 어깨 너머로 아버지가 하는 이 성전에서 봉사한 모든 일들을 보고 배웁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어떻게 섬겼는지에 대해서, 그런 어떤 영적인 그런 가문 가운데에 레기스가 있어요. 그 에스겔도 어렸을 때부터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그 성전 가운데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아버지와 같이, 할아버지와 같이, 거룩한 의복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겠구나, 이것이 내가 받은 소명이고 사명이구나, 그런 떨리는 가슴, 두근거리는 가슴, 어떻게 보면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어렸을 때부터 잘 자랐을 거예요.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격려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보면서 아 이런, 이런 부분들은 하나님 앞에 내가 더 정결하게 나아가야 되겠구나. 그리고 이 민수기 4장에 또 보게 되면은 25살이 될 때부터 우리말로 말하면 전도사가 될 수가 있어요. 거룩한 의복을 입고, 정으로서는 아니지만, 부로소 성전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30세가 되면은 이제는 정식으로 정이 되어서 제사장 모든 역할들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된 자로 사역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목사가 되는 것이죠. 당연히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이제 25살,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전을 위해서 내가 사역을 할 수 있겠구나. 라고 하는 그 기대감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립니다. 그의 순수하고 맑은 거룩한 그의 눈빛 눈에서 보여주는 사건들은 그렇게 영광스러웠던 솔로몬의 전이 불에 타고, 거룩한 괴물들이 짐승과 같은 저 바빌론의 고악스러운 손길에 의해서 다 빼앗기고, 허리 큰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어 나가고, 이런 비참한 일들을 에스겔 순수한 그 25살에 목도(目睹)하게 된 거예요. 현실은 여호와긴 왕과 함께 잡혀서 그 발 강가로 던져지게 됩니다.
 
그렇게 1년, 2년, 3년, 4년, 5년 서러운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죠. 그 당시 여러분 이 시편 137편 1절과 몇 구절을 보게 되면은 참 우리가 아 좀 이렇겠구나, 서럽겠구나. 라고 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가 있죠.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때 그 당시에 상황의 모습이며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노래를 청하며, 우릴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라. 여러분 상상이 됩니까? 야 너희들 히브리 찬송가 있잖아. 18번 불러봐 당신들의 기쁨을 위해서 술에 만취가 되어, 농락하는 그 어조로 자신들의 기쁨을 위하여 찬성을 부르래요.
 
저와 여러분이 그 상황 속에 누워 있었다면은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래서 4절에 보니깐 우리가 이방 땅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좀 아르덴티파이(Identityify)가 되죠.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에스겔에게 귀한 말씀으로 함께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임하기 전까지는 에스겔의 마음 깊은 곳에 아린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는가? 5년 전 트라우마와 같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든 눈을 감을 때마다 나임 미호와 같이 계속 나타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 일들 가운데에,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과연 그곳에 계셨는가? 내가 믿는 하나님, 내가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 분명히 나를 사랑하사 집합 가운데 태어나게 해주시고 비전을 주시고 소명을 주시고 사명을 주셔서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성전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다 앗아 가버린 그 사건을 놓고 과연 하나님은 그때 그곳에 계셨는가? 질문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 하나님은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가? 도대체 나에게는 어떠한 영적 존재 가치가 한 가닥이라도 남아있는가? 나는 뭐 하면서 사는 것이지, 뭘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이지. 여러분 좀 느껴지나요? 저는 이 말씀 북상하면서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바로 그때에,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권능의 말씀으로 ‘나 살아있다.’ 약속에 미래에 영광스러운 회복의 비전에 계시의 말씀을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여러 환상들 예언의 말씀들이 있지만 때로는 왜 심판을 받아야 되는지, 다 사랑의 음성이죠.
 
특별히 그가 보았던 이 환상 중에 분명한 귀한 환상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는 것이죠. 그리고 성전 이 무너진 성전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전으로 회복이 되는 그 놀라운 비전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마른 뼈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 두 손을 다 늘어뜨리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 있고 자빠져 있고 아무 힘도 발휘 못하는 과연 저들이 살겠는가, 인자야 저들이 살아날 수 있겠는가, 하늘의 생기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심령 속에 불어 들어가죠. 힘을 얻고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서는 환상을 보았어요.
 
그리고 그 성전 가운데에 성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와 같은 그 물들이 범람(汎濫)하고 범람해서 47장에 나오죠. 발목에 찼다가 무릎에 찼다가 허리에 찼다가 도저히 헤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성전에만 머무는 것이 이것이 성전 밖으로 흘러가서 가는 흘러가는 곳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나고 흘러가는 곳곳마다 열매를 맺고 흘러가는 곳곳마다, 가는 곳곳마다 물이 바다 덮음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아나는 놀라운 이 회복의 영광을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일이 이루어졌을까요? 안 이루어졌을까요? 이루어졌죠. 누가 오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므로 이루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가 갈 천국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물론 구원을 통해서 죽음은 천국까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약에서 말쿠트라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바슐레라고 하는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으로,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서 오신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삶에 왕이 되어 주시고 주인이 되시므로 말미암아 내 삶 자체가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이미 천국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성취로 예수님이 오신 것이죠.
 
그래서 이 구약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놓고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뭐라구요?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왜 임마누엘이라고 할까요? 여호와 삼마, 하나님의 약속에 성취,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실체고, 보고 만지고 듣고 우리의 모든 아픔, 고난, 배고픔, 육신의 질병,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억울함, 거절감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홀로 다 담당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죠. 파라클라이토스 파라 곁에 내재하셨어요.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절대로 떠나지 아니하시는 그 성령님이 위로자가 되어 주시고, 그 성령님이 우리에게 상담가가 되어 주시고, 흔들릴 때마다 능력이 되어 주셔서, 내가 너와 함께한다. 함께한다. 함께함을 증거 해주고 함께함이 실체가 되도록 성령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내 교회를 세워오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가 없는 물론 우리의 육신의 생명은 순교를 통해서도 죽을 수가 있고, 암에 걸려서 우리가 일찍 세상을 떠날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절대로, 절대로 뺏어갈 수가 없는 그러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신앙이 저와 여러분의 어떤 상황 가운데서 결론이 되는 믿음의 고백 신앙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때, 그때도 계셨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영원토록 함께 계십니다. 믿으시면 안면해주십시오. 현실은 어때요? 절대로 쉽지가 않죠. 예 우리 다 믿지만 현실은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1984년도에 전도사가 됐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캠퍼스 사역하고 열심히 달려와서 달려와서 달려와서 올해가 몇 년도죠 2024년인가 몇 년 됐습니까? 40년이 됐어요.
 
저도 나름 주의 종으로 헌신해서 40년 됐어요. 살기 점점 갈수록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어떻게 이렇게 잘하세요. 왜냐하면,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기 때문에 감당하라고, 감당하라고 감당을 주시는 십자가 더 무겁구나, 무겁구나 하는 것을 많이 깨닫습니다. 아무튼 40년 동안 달려오면서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죠. 더군다나 서울 사랑의 교회의 10년 정도 사역하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을 만났고, 저의 전도사 사역부터 우리 학생들 지금은 다 어른들이 되고, 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 뒷문으로 들어가면 기가 막힌 기도 제목이 없는 가정에 단 한 가정도 없구나!!! 라고 하는 것이에요. 뭐 저를 포함해서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저도 오늘 예배 바로 오기 전에 너무나 들으면 안 되는 소식을 또 가정 가운데 들어서 걱정하더라고. 설교하는 데 지장이 될까 봐, 바로 오늘 아침까지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현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현실은 쉽지 않겠지만, 이 신앙이 절대로 저와 여러분의 결론이 되는 여호와 삼마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하는 것입니다.
 
1956년이요. 미국 전역, 특별히 시카고가 가장 핫 이슈가 되었죠. 미국 전역에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짐 엘리엇이라고 하는 아주 신실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준비된 청년이었죠. 그와 그의 베스트 프렌즈, 하나님의 나라에 100프로 헌신을 하고 이 4명이 전체 5명이 에콰도르라고 하는 여러분 잘 아시죠? 이 내용 아오카 족속에게 미전도 족속에게 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너무나 많은 시간 동안 준비를 하고, 기도로 그리고 그들에게 나아갔던 자들이었어요. 이미 잘 하시는 대로 그들의 경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에 의해 가지고 비참하게 창에 찔려 단 한 마디도, 단 한 번도, 한순간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비참하게 창에 찔려 여기저기 5명의 전체 다 죽게 된, 이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언네세서리 웨이스트다.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 비아냥 하고, 시카고 이 뉴스 페이퍼 헤드라인에는 그렇게 저희들의 무모한 선교를 비판하는 기사의 내용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에 하나님 의심하게 된 것이죠.
 
그럴 만한 것이 다른 친구들도 너무나 탁월한 친구들이었지만, 특별히 짐 엘리엇이라고 하는 이 친구는 재능도 많고, 은사도 많고, 탁월한 친구들이었어요. 아 짐 앨리엇 친구는 위튼 명문대학에서 수석으로 공부를 했었고, 또 수석으로 졸업한 친구였어요. 탁월한 연설가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경외하는 그런 청년이었어요. 그가 연설을 하면은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가 살아 있었더라면 빌리그레함을 능가하는 최고의 전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그러니까 정신적으로도 육신적으로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레슬링 스포츠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레슬링, 강인한 사람이어야지만 감당하는데 이 디비전 챔피언까지 갔던 친구였어요. 레슬링으로서, 얼마나 참 감동 있게 글을 잘 썼는지, 지금도 그가 쓴 글들이 이 파블릿 시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야 도대체 젊은 이 친구가 어떻게 이렇게 깊은 영성을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쓸 수 있을까? 그의 저널을 보고 다들 놀래요. 이랬던 짐 엘리엇, 미래가 촉망이 되는 짐 앨리엇, 그리고 그의 4명의 친구들 단 한 번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저희들이 비참하게 죽어난 것이고. 그러니깐 언 내세서리 웨이스트다 그 5명의 얼굴을 한번 보시겠어요. 제가 사진 카톡을 준비했는데 나오죠? 예 라지얼 유 더 리온 페이트 플레이미 가운데 짐 엘리엇, 네이트 세인트 또 네이트 세인트 간증했어요. 나중에 애드 맥컬리 다 훌륭한 친구들 인상들 좋죠? 예 저 5명이었습니다. 내려주시죠. 그들은 총들이 있었어요. 죽는 순간에까지도 단 한 명도 총을 잡고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반항하지도 않고 죽어나간 것이에요. 근데 가장 좀 힘들었던 부분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해석하느냐에 있었어요.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의문을 품었으며, 어떤 의문이요. 네, ‘여호와 삼마,’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셨는가? 계셨더라면 또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선하신 하나님이라면, 분명히 저희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저렇게 비참하게 단 한순간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죽어가도록 무능하게 내버려 둘 수가 있는가? 이 여호와 삼마,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었어요. 그리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믿어봤자 소용없어. 저런 무능한 하나님이라면 믿어 봤자 소용없어. 나가 내가 힘들어하는 거와 상관없는 하나님이야. 이러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정황을 놓고 남편이 창에 찔려서 고통 가운데에 죽어갔던 그 아픔보다 더 가슴을 도려내듯 아파하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이 짐 엘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이라고 하는 신앙이 좋은 아내였어요. 그에게는 한 살 난 딸이 있었어요. 원어 웨이스트, 네세서리 웨이스트, 여호와 삼마 하나님, 이 부분에 대해서 이 여인이 이렇게 그대로 기사화합니다. 통역 번역한다면은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라며 말씀을 삼가십시오. 낭비라니요. 내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 생애를 이것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 다음엔 너무나 귀한 신학적이고도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 차원에서 이 말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사명 그 책임을 수행하고 생애 목표를 달성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너무나 귀한 말씀이에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썩어 없어지는 긴 인생이 아니라, 짧더라도 닳아 없어지는 그 인생을 담아요. 행복한 사람이라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죠. 성령의 감동으로 이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간호사 훈련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아오카 부족에게 가기 위한 것이었어요. 네이트 세인트, 아내와 친척들 누이 뭐 이렇게 다 갈 수 있는 사람들 모아서 그 아오카 부족으로 이 여인들이 들어갑니다. 2년 후에 들어갑니다. 다행히 아오카 부족은 남자를 죽이지,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부족이었습니다. 정성껏, 정성껏, 남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주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사랑 복음 십자가의 희생과 정신을 가지고 저희들을 정성껏 돌보고 섬깁니다. 그렇게 5년을 섬기죠. 그리고 이제 일단 미국으로 나오게 되는 그 순간 추장이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당신들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와서 지난 5년 동안 이렇게 희생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서 그때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말을 합니다. ‘저희는 5년 전에 이 강가에서 비참하게 죽은 5명의 미국 사람들의 아내, 남편이 전하기 원했던 바로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섬김으로 한 것뿐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추장의 마음에 감동이 옵니다. 저도 그 미전도 종족에서 추장 이런 비슷한 복음을 전하고 그랬었는데요. 성령의 감동 준비된 추장은 하나님의 때,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세례를 받습니다. 추장이 예수님 영접 세례 받으면 모든 부족 사람들이 받아야 돼요. 오인가 뭔가 안 받으면 죽어 그러면 죽어요. 예, 그러면 다들 겁나서 다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아 할렐루야!!~ 그다음에 역사들이 일어났는데 비슷한 케이스가 일어난 것이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그때부터 하기 시작하는데, 잘 알죠?짐 엘리엇과 친구들을 죽였던 5명의 아오카 부족 사람들, 4명이 목사가 되고, 한 명의 전도자가 되죠. 그래서 교회를 세우고, 특별히 네이트 세인트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샘이죠. 샘 세인트 한번 사진을 보여주시죠. 지금 저기에 나오는 이 민카이라고 하는 아오카 목사예요. 저분은 누구냐 바로 이 네이트 세인트의 아들이거든요. 저분이 샘 사무엘 세인트인데 그 스티브죠 스티브 세인트의 아버지인 네이트 세인트를 죽인 사람이에요. 죽인 사람이 저렇게 목사가 돼서 나중에 아들도 그곳에 자랄 때의 세례를 베풀고, 그리고 동생인 이 캣디도 강가에서 세례를 베푸는 너무나 훌륭한 목사가 된 것입니다. 내려주시죠.
 
엘리자벳 엘리엇도 책을 잘 썼죠 ‘고통은 헛되지 않아요.’라고 하는 이 책자가 있습니다. 식스 체프트로 돼있는 책잔데, 제 아내가 지난 4개월 전부터 이 책을 붙들고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어요. 저도 함께 읽었어요. 그리고 저희들은 인제 북클럽 그래 가지고 신앙 서적 읽기, 나이 드신 권사님도 상관없이 인생이 힘드신 분들 같이 함께 이 책부터 매주 읽으면서 울음바다가 되고, 큰 은혜가 임했어요. 이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고통에 대해서 너무나 잘 썼고, 이 여인의 삶은 계속해서 어려운 일이 있었거든요. 거기에 보게 되면은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이렇게 기록을 했어요. 라틴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은 라틴어에서 CRUX, 라고 하는 이 단어가 핵심이라는 단어이고, 이것이 곧 플러스 CROSS, 십자가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고통에 대한 질문의 십자가 위에서만 우리는 고통과 사랑의 모순을 녹여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절대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계속 파도와 같이 밀려올 때에 이 여인은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 삶이 영원하신 팔에 안겨 있다고 믿든가, 우연에 달려 있다고 믿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중간 지점은 없다.’ 이것은 팀 켈론 목사님의 고통에 대해서 얘기할 때 말씀하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거죠. 그분도 고통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거나, 고통은 또 멀어지게 하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라고 하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이 에스겔의 삶 가운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강하게 하고, 결국 끝에 모든 트라우마, 모든 아픈 고통을 위해서 결국은 의심치 않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결론을 낼 수가 있을까요?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고, 미래의 영광이 이미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를 가지고 오신 예수 안에서 그분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시고, 통치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여호와 삼마 하나님, 나와 항상 함께하신 하나님을 의심치 않고, 힘을 얻고 미래의 영광이 지금의 나에게 힘과 평안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말씀을 이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실은 한 3~4개월 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개인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목회 적으로 힘든 것은 얘기를 안 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제가 개인적으로 힘든 이야기를 뉴욕 장로교에서 여러분 나 너무 이렇게 말하는 목사는 미성숙한 목사죠. 절대로 제 자존심이 목사라고는 자존심 허락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래요. 힘든 성도들 이런저런 어려움 있는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 줘야죠. 목사는 힘든 척 해서도 안 되고, 힘들어서도 안 되지만 힘들면 어떡해,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친정집이잖아요. 여기가 예 친정이니까. 에 말을 좀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치만 뭐 개인적인 왜 힘들었고, 정말 힘들었어요. 구체적인 말씀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네 정말 힘들었어요. 쉽게 말씀드린다면 프라우드 그 스캠 당해 가지고 보이스피싱을 좀 아니 은행에 다 털렸어요. 예 놀라지 마세요. 얼마 없어요. 예 그렇지만 다 털렸어요. 얼마 없는 사람이 털린 거 되게 아픕니다.
 

♣요약

그것은 그것과 같이 평화의 터라는 의미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 우지 않고 원래의 의미인 `여호와삼마` 즉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의미로 불리 우고 있다. 이것은 다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포로들은 돌아온 후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시고, 자기들 중에 거하신다는 확실한 증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복음 교회도 이와 같이 그 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데, 이전에 임재 하시던 것처럼 쉐키나로서가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임하신다는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 때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어떤 영혼이라도 그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은혜의 원칙을 갖고 있기만 하면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고 하시니,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는 하늘의 영광과 축복이 거기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며, 이는 곧 과거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돌아 오셔서 함께 교제하시며 거룩한 친교를 나누심에 감사하며,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이런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21일)
제목: “은혜 속으로”(3,4부)
말씀:*베드로후서 1:2-4,
사회: 유선비 부목사님

설교자: 윤대혁 목사님(3,4부-“은혜 속으로”)
-----

*베드로후서 1:2-4,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함이 우리에게 넘치게 되시길 믿습니다. 우리가 쓰는 물건들 가운데 우리가 100%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아마 우리는 한 결 같이 없다. 라고 이야기를 하게 될 겁니다. 99년도에 처음 노트북을 구입을 했는데 그때 노트북의 하드 용량이 4GB였습니다. 지금은 2테라바이트(Tera byte), 그때 얘기하면 200배가 더 넘는 2테라바이트(Tera byte)의 용량을 갖고 있는데, 특별히 영상이나 이런 걸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순수한 작업이라면 그 노트북의 역량을 채울 사람도 없는 게 일반적인 거죠. 그래서 노트북 처음 샀을 때 4기가를 채우지 못하고 새로운 노트북을 샀던 경험이 있는데요. 우리가 갖고 다니는 태블릿이나 또 전화기 역시도 우리가 만든 사람 역시도 그 기능을 다 알지 못해서 나오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내가 만든 이 기계가 이런 능력과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만든 일마저도 역량과 한계를 측정하지 못한 애들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런 질문을 한번 해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이와 같이 잘 활용하고 누리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 앞에 여러분 어떻게 답을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만약에 그 은혜를 누려야 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은혜가 마치 우리의 삶의 과거가 되어서 그래 옛날에 예전에 좋았었지, 그때는 참 운해가 넘쳤었어. 라는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여러분 그 신앙은 언제 위험에 빠질지 모르는 위기의 신앙에 빠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는 날마다 순만하게 날마다 풍성하게 누려야 되는 은혜가 돼야 될 줄 믿습니다. 왜 그러하냐면 그것은 그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2전 8절에는 이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뭐라고 말하고 있죠. 우리가 받은 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라고 말합니다. 아니 선물을 주고 나서 그 선물을 뭐 잘 썼니, 안 썼니. 이렇게 따져 묻는 건 너무나 속이 좁은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만약에 그 선물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선물을 줄 때 가장 소중한 것을 바꿔서 준 거라면 그의 생명과 바꾸어서 나에게 준 선물이라면 그 선물을 쓰지도 않고 저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반면, 그 준 사람의 마음은 결코 기쁘지 않을 겁니다. 아마 많이 속상할 거예요.

제가 중학교 중등부 사학을 처음 시작을 할 때, 그때 중등부 선생님들이 제가 생일이라고 넥타이 선물을 하나 해 주었습니다. 그 선물을 담당했던 총무 집사님은 패션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옷을 입어도 대체 저 옷은 어디서 구입해서 입으신 거야. 나눌 정도로 화려한 옷이었고, 화장과 헤어스타일 역시도 80년대 미스코리아를 연상하는 그런 화장법과 그런 헤어스타일을 가진 정말 패션의 선두주자 같은 분이었는데요. 그분이 고른 넥타이다. 보니 24살 된 청각 또 학생 전도사에게는 그 넥타이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칼라였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단벌의 양복 가지고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넥타이였고, 그 넥타이에 맞춘다고 해서 양복을 새로 살 수도 없고, 제가 그때 용기를 내서도 했었어야 되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못해서 그 넥타이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선생님들과 그 총무지사님이 저를 보는 눈빛이 좀 이상한 겁니다. 저를 볼 때마다 계속 이렇게 말씀하는 것 같았어요. 넥타이, 넥타이, 이런 느낌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용기를 내서 했었어야 되는데 차마 하지 못해서 그때 아마 했었다면 아마 새로운 패션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했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선물은 이와 같은 거죠. 우리가 선물을 받을 때 여러분 감사합니다. 라는 말도 좋지만 그와 함께 그 선물을 잘 쓰고 잘 활용한다면, 준 사람이 기쁘고 즐거울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 선물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쓰지도 않고 저 구석에 처박아 놓고 받았는지 안 맞는지 모르고 산다면 그 준 사람의 마음이 약간 속상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 계신 선물도 이와 같은 겁니다. 이와 같은 거 그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거고, 그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가 과거의 기억이 되어서 언제 그네가 있었어. 라고 말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죠. 요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위에 계신 은혜의 선물은 어떤 은혜이고 어떤 선물일까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은 우리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고린도전서 15:10,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그 은혜를 2가지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뒀던 사람이고 그를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제면시키기 위해서 나의 모든 젊음을 내 모든 면적을 다 쏟아 부었던 사람인데,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은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말하고 있는 은혜는 그런데 내가 사도를 부름 받아 삶을 할 때 많은 죽음의 위기가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너는 예수님을 핍박한 사람이잖아!’ 누가 무슨 하나의 말씀을 가르쳐! 온갖 모함과 온갖 많은 어려움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사도로써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내 노력과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이거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가 된 것이다. 라는 그 2가지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은혜는 사돈마을만의 은혜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그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죠. 내 힘과 내 노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오게 된 그 모든 가정도, 내가 지금 두 발로 서 있고, 오늘 이 시간까지 온 것도 내 힘과 내 노력으로 도저히 오지 않았고. 설명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 되었었기 때문에, 하나님 나의 모든 것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들의 고백일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는 단번에 1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죠. 여러분께서 베드로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의 말씀에,

*베드로전서 1:2,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라고 말하고 있고, 우리에게 더욱 많을 것이다. 라고 하며,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서 4장6절에서,

*야보고서 4:6,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더 큰 은혜를 주시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더 많은 은혜, 더 큰 은혜를 이야기하니까 마치 내가 받은 은혜가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고 뭔가 더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여러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는 단번에,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내게 주신 그 은혜는 하나님 날마다 부어주신 은혜고 그 은혜가 끝이 없으며 완전하고 날마다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은 그 은혜를 누리며 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려야 되는 더 많은 은혜 더 풍성한 은혜는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금보다 나은 경제적인 삶,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보다 풍성한 삶을 말하는 것만은 여러분 아닐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과거보다 더 좋은 삶을 누리고 있었더니, 그때 신앙을 잃어버렸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고, 지금보다 더 어려운 현실에 건강의 위험에 빠졌을 때, 그제서야 더 하나님의 애들을 붙들고 사는 분들이 있는 걸 본다면 환경적인 거나 상황적인 거에 의해서 더 좋아졌다고 해서 그것을 꼭 더 많은 은혜가 더 풍성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제 목회를 하면서 이제 심방을 잡는다. 비즈니스라고 있는 우리 권사님의 댁에 심방을 가게 되죠. 심방을 다 하고 나서 권사님께 묻죠 권사님 무슨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까? 기도 제목을 알려주십시오. 말하면 어떨 땐 좀 충격적인 기도 제목을 나누시는 권사님들이 계십니다. 목사님, 우리 남편 이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사업 망해야 됩니다. 망하기 위해서 제대를 달라는 거예요. 그 남자 짓을 한 남편은 옆에 둘이 많습니다. 망하게 가라고? 아니 무슨 기둥을 세우고 그러겠습니까? 이상해 우리 남편이요. 사업이 힘들고 어렸을 때는요 예배 한 번 빠진 적 없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매달리고 얼마나 하나님 찬양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사업이 좀 될 만하고 조금 나올 만한 하니깐 교회도 안 가구요. 놀기 바쁘구요. 우리 사업 남편 망해야 되는데 안 가고 그래요. 기도해 달라는 겁니다. 제가 너무나 난감했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죠 그분의 심정은 아니에요. 어렵고 힘들었을 때는 하나님 은행 가운데 있었는데, 뭔가 조금 나아졌더니, 하나님과 벌어진 그 남편의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서 나는 그런 기도 제목이었는데, 이건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구해야 되는 정말 더 많은 은행 더 넘치는 은혜는 어떤 은혜일까요?

오늘 베드로후서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하고 이별을 말씀해 보면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삶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에게 더욱 많은지, 3절 4절이면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1:3-4,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은 이후에 우리가 누려야 되는 더 많은 더 넘치는 은혜는 무엇이냐면 예수를 아는 은혜요. 조님을 닮아 가는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래도 우리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를 계속해서 변화시키시죠. 주님을 알아가게 하시고,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그때마다 더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우리에게 넘쳐난 은혜의 삶을 살게 되고, 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예술을 알게 되고 예술을 닮아간 은혜를 얻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은 은혜가 넘치고 계속 피해서 은혜의 선순환들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닮아감으로 얻게 되는 큰 은혜는 대체 우리 삶에 어떤 은혜의 역사로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크게 2가지를 우리가 함께 나누길 원하는데요. 우리가 은혜 속으로 들어감으로 얻게 되는 영적인 역사와 은혜는 첫 번째는 우리 모두가 죄를 이기며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닮아감으로 누리게 되는 은혜는?
I. 첫 번째는, 우리 모두가 죄를 이긴다.
-사단 마귀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합니다. 우리의 삶에 은혜가 멈추도록 하기 위하여 죄를 유혹해 만들고, 유혹이 빠져 넘어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생을 살게 할려고 하죠.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죄가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못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로마서5장 21절의 말씀을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5:21,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이는 제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 같이 계속해서 죄는 우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은혜에는 그 죄의 길을 다 끊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에스 루이스 기독교 작가인 시스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라는 편지에서 이제 각 사단의 일을 시작하는 조카 워무두에게 사단의 전략을 그 편지로써 쓰게 되는데요. 그 삼촌인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워무두에게 이런 말을 하나 했습니다. 믿는 성도를 환자라고 표현했는데요. “니가 지금 맡고 있는 환자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참으로 내 마음이 착잡하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그 환자의 정신적인 신체적인 습관은 항상 우리 편에 있으니 말이다.” 이게 말 무슨 말이에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육체의 본능과 유혹을 받으면 쉽게 넘어지고 쉽게 쓰러지는 그 습관들을 우리가 갖고 있다. 라는 것이죠. 우리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 가는 길을 끊어버리기 시작하죠. 또 로마서 5장 21절의 말씀에, 우리 한번 다시 한 번 이 말씀 듣겠습니다.

*로마서 5:21,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아무리 제가 힘이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제가 우리 가운데 왕 노릇하려고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가면 그 의외의 진리가 우리를 다스리기 시작하는 줄 믿습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거예요. 죄 영향력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절대로 다스리지 못하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그마다 큰 겁니다. 그 죄의 뿌리와 죄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지요. 로마서 6장 15절에 말씀에,

*로마서 6:15.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은 절대로 죄를 지을 수 없고,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은 절대로 죄 사막 가운데 있을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요 은혜 속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예요. 많은 경우 이렇게 생각합니다. 죄와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이 죄와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까? 우리가 은혜 가운데 들어가면 죄를 떠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빛과 어둠은 싸우지 않아요. 빛이 임하면 어두움은 떠나가게 되는 겁니다. 빛과 어둠은 절대로 싸움의 대상이 되지 않아요. 최근에 인터넷에 보면 하나님과 사단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 중간에 VS 하나님과 사단이 마치 견주어 싸우는 것처럼 표현된 그림이 있는데, 정말 비성경적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은 사단과 싸우지 않습니다. 사단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린 죄와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임하면 우리 세상에 재와 역사가 떠나가게 되는지 믿습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1700년 전에 여러분 다니엘 게이 루이라는 사람이 발견한 자연의 법칙이 있는데요.

이 법칙을 게이루이 법칙으로 얘기하는 건데, 한국말로 얘기하면 양력입니다. 양력은 뭐냐면 비행기가 뜰 때 기상을 쓰이는 힘이죠. 세상의 모든 자연 만물들은 여러분 지구의 중력의 지배를 받죠. 그래서 땅에 2발로 서 있게 됩니다. 근데 비행기를 날 때, 그 양력에 의해서 중력을 이고 하늘을 날죠. 여러분 비행기가 하늘을 날 때 사람들은 중력이 없어졌다라고 말하지 않아요. 중력은 있으니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하지만 그 중력을 이기는 힘이 있는 거예요. 양력이 있으니깐 비상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들의 삶에 죄 유혹과 죄 지배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 앞에 우리가 지배를 당하지 않고, 우리가 그거 앞에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안에 뭐가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 은혜 힘으로 우린 날마다 승리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심 있는 사람들을 믿었다고 해서 문제와 어려움이 없어지나요?

여전히 동일한 문제와 어려움과 고민과 환란을 겪게 되죠. 하지만 그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뭔데 뭐 문제없는 교회 없고, 문제없는 가정 없고, 문제없는 인생 있죠. 하지만 그 문제를 만날 때 문제를 넘어서는 인생이 있고 문제 앞에 넘어지는 인생이 있는데, 그 문제를 넘어서게 하는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다. 라는 것이죠. 그 은혜 속으로 날마다 들어갈려면,,, 자 어머님께서 지금 목사 이렇게 목회자 사모님이신데, 목회하는 아들에게 항상 목회 하면서 저한테 누누히 말씀하시는 몇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항상 이렇게 말씀하세요.
“대혁아, 사람은 말이다. 은혜를 받으면 순한 양이 되지만, 은혜가 마르면 사나운 늑대가 된다.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목회자인 저는 항상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 은혜가 넘치도록 교회의 은혜가 가득하도록 항상 말씀을 준비해야 되고, 항상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은혜가 넘치면 순한 양이 되지만 은혜가 메마르면 사나운 늑대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면 문제가 문제로 보이잖아요. 하지만 하나님 은혜가 메마르면 모든 것이 다 거친 광야처럼 느껴지는 게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거죠.

남가주 사랑의 교회 20년 전에, 이제 선교부 사역자로 사역을 시작했을 때, 그때 오정현의 사랑의 교회 담임 목사님이 담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때 한 8개월 정도 목사님을 모시고, 배우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이민자의 삶을 옆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저 역시도 유학생으로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고, 왜 이렇게 막막하고 왜 이렇게 힘든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참 벅차고 힘겨웠던 때가 있었어요. 근데 그때 이 주일 예배 때마다 그리고 토요예배 때마다, 그때 담임 목사님이셨던 오정현 목사님께서 기도할 때, 이런 기도를 늘 외치게 하셨어요. 늘 이렇게 외치셨어요.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저는 그 외침의 지도가 저한테 그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산에 확 불어오는 겁니다. 그 은혜의 힘을 입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죠. 그래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정말 그거 외치고 싶어서 그거 부르짖고 싶어서, 왜요 그러며 살거든요.

지금도 목회를 하면서 저희 교육을 하고 준비한 레벨 레이트 드릴 때 항상 선생님들에게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능력해 당부하면서 말씀드리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사람인데 주님 앞에 기도하고, 예배할 때, 주님, 주님 내게 오늘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내가 이 자리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불어주십시오. 오늘 주님 내게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내가 주님 붙잡은 손 절대로 놓지 않겠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주님, 은혜를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힘든 삶 가운데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게 답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사람의 지혜요? 사람의 능력이요? 많은 것을 가진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은혜 가운데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문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우리 모두가 보게 되죠. 사랑의 교회가 내일 주일 그리고 토요 비전 새벽 예배 때, 또 서요 성경 집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군대 7천 용사들이 모여서 주여, 은혜를 주시라고 외칠 때, 교회 안에 하나님의 풍성이 넘쳐서 한국교회를 섬기는 역사가 넘치게 임하게 될 줄 믿고 그곳에 부르짖는 성도들마다 가정들마다, 자녀들마다 사업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이 떠나듯이, 하나님 은혜 가운데 돌아가면 모든 문제와 모든 어려움은 떠나가게 됩니다.

그 은혜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예수를 알아감으로 또 지금을 닮아감으로 누리게 된 은혜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죄를 이기는 것이라면, 문제를 뛰어넘게 하시는 승리라면 두 번째는 저와 여러분을 낙심치 않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닮아감으로 누리게 되는 은혜는?
II. 두 번째는, 낙심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만나든, 어떤 일을 겪든, 우리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4:16,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왜, 내 눈에 보이는 내 주변의 환경은 사람들이 볼 때 이전보다 안 좋은 것 같은 거예요. 막막하고 힘들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참 두렵고 걱정이 되는 건 많겠지만, 겉 사랑은 그렇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집니다. 어떻게 돼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가 시작된다. 라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을 반드시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선한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걸어가셨던 그 길이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었지만, 그 길 끝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활시켜 살리시고, 모든 이름이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여러분 광야로 쫓겨나 살인자로서 이제 숨어 지낼 때, 다시 하나님께서 그 마지막에는 그 모세를 다시 세워서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하나님이 지도자로 세웠던 일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고자 했지만, 풍랑을 만났습니다. 큰 물고기에 삼킴을 당하여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지옥으로 말했던 이 요나 인생이었지만 그를 다시 회복시키고 그를 다시 하나님의 사명자로 쓰였던 손길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나서 장인인 사울의 손에 죽음의 위엄을 받아 광야로 쫓김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저 정신병자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광약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재건할 수 있는 많은 믿음의 동력 자를 만나게 하시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 영광을 보게 하셨던 하나님의 마지막 결과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 역시도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실종자로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의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사울 봤어? 사울 봤어? 어디 있는지 몰라, 죽은 거 아냐? 실종된 거 아냐? 무명으로 끝날 수 있는 그 인생을, 한 해 3년의 걷는 시간 그를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가지고 신학을 집대성할 수 있는 하나님이 귀한 믿음의 종으로 쓰였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이를 만나도,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낙심하지 말 것은 하나님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삶에 새 일을 행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낙심하지 않아야 됩니다.

※저희 교회에 참 믿음이 귀한 한 형제가 있습니다. 너무나 귀한 형제인데요. 형제의 아버지는 선교사로서 또 인도에서, 중국에서 평생 선교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이 형제 역시 또 아버지를 따라서 한국에서 살지 못했고, 또 인도에서, 이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버지가 이제 안 10년째 미국에 와서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이제 시작할 계획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이제 교회 조명 파트타임 간사를 뽑는다고 하니까, 이 형제가 지원을 했어요. 그 이유로 경제적으로 도와야 될 형편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학교에 가서 이제 2년제 대학교에 가서, 이제 4년제 대학 갈 수 있는 편입을 준비하고 있었고, 또 평일에는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일하고 있었고, 또 주말에는 교회 와서 우리 조명 간사로 이 사약을 열면 귀환 환자였는데요.

조명 간사할 때, 이제 예배 때 키고 끄고 이런 정도의 아주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이 형제가 유튜브를 통해서 그 기계법을 알고 교회 안에 예배를 정말 조명으로 편성하기 위해서 많이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들을 감당해 줬던 대한 형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부모님을 통해서 진행되던 영주권이 거절이 됐어요. 신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에 있지만 유학생으로 공부하기에는 1억에 가까운 학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한국에 가자 이 고등학교까지 나온 기록이 없는 거예요. 제가 다녔던 인도와 중국에 다녔던 현지 학교에서 학적 끈을 띄울 수 없다 보니까, 불가피하게 검정고시를 가야 되는데 한국에서 공부를 안 했으면 이 검정고시 볼 수 있겠어요.

그리고 유일하게 검정고시를 보고 이제 직업군인을 하는 게 이 형제가 갈 수 있는 부모님께 이제 경제적 도움이 돼야 되니까.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런 가운데서 한국에 가기로 결정하고 이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교육, 조명, 간사를 열심히 열심히 수고하고 있습니다. 20살 이 젊은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인생의 너무나 큰 위기 있고, 막막함이었습니다. 아버지 선교사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마치 자신의 인생이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 듯한 그 현실 가운데서 그래서 참 나름대로 열심히 수고하고 성실한 형제로 그러다가 형제가 이제 이곳저곳에 트랜스포 할려고 이제 어 이력서를 학교에서 입학 모집서를 넣는데, 이제 영주권이 안 되니깐 지원했던 뭐 리셑을 당한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 학생에게 한 학교가 너를 학생으로 받아주겠다고, 입학허가서를 준 거예요. 그 대학교가 유시버클리 대학입니다. 굉장히 좋은 대학입니다. 근데 대학생이 아니라 영주권자처럼 학비를 내걸어 다닐 수 있도록 그런 기회를 주는 거예요. 사실은 그럴 수 없거든요. 근데 저는 여기서 이런 어려움을 겪고 나서 그 대학에 갔다. 라는 것으로 간증이 마무리되는 게 아닙니다. 더 놀라운 사건이 뭐냐면, 그 형제가 UC 버클리에 무슨 과를 들어보느냐가 중요해요. UC 버클리 엔지니어링은 미국에서 전미 2등 상위 정도 하는 일을 하는데, 그 형제가 전공했던 지원했던 합격했던 과가 뭐냐면 음향, 조명 엔지니어 꿈이 없었어요. 그냥 아버지 따라왔던 인생 가운데 뭘 해야 되게 막막했어요.

근데 인생의 마지막과 같은 정말 막다른 그 현장에서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해서 했던 조명을 하면서 이 여기서 꿈을 꿉니다.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라고, 엔지니어인데 미국에서 전위 2등 3등 하는 그 학교에서 이렇게 학생으로 오라는 겁니다. 남의 교회 이야기를 그렇게 놀리지 않나요? 엄청난 사건이에요. 아하, 진짜 뭘 깨달았냐 그렇다 인생의 마지막 같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냥 기다려야 되는, 막다른 길 같지만 포기해야 될 것 같지만, 그곳에서 내가 낙심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 것은 하나님 반드시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8월에 이제 샌프란시스코로 올라와요. 그럼 이런 일들이 이 형제만 있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 우리의 삶을 마치 벼랑 끝으로 막다른 길로 인정하시죠. 그 길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깨우는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주님, 그래서 뭐가 필요해요. 나는 주님 은혜밖에 없습니다. 주님 내게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나는 길이 안 걸고 주님 내게 은혜 주지 않으시면 나는 하나도 살지 못해요. 이때 하나님의 그 은혜가 시작되는 거죠. 새 일을 향하시는 일, 길을 여시는 게 가장 좋은 길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선한 길로 임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넘치는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그 은혜가 먼 기억의 외계인가요? 가끔 권사님 장모님들 만나 이럴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래 봬도요 젊을 때는요. 30년 전에는요. 20년 전에는요. 힘이 있었을 땐요. 그대로 달랐습니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지금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도 나에게 있습니다. 마치 갈렙이 얘기했던 것처럼 그때나,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라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먼합니다. 그 은혜를 바라보며 사모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죄를 이기게 하시고, 우리의 삶에 있는 모든 문제를 넘어서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신실한 길로, 은혜의 길로 생명의 길로 열어주시는 그 은혜가 더욱은 삶 가운데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때마다 은혜 가운데 나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아, 주님의 은혜 외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날마다 고백하면서, 그 은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우리들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엎드려서 내려놓고, 날마다 주의 은혜 가운데 돌아가기를 원해야 한다. 더 많은 은혜, 더 넘치는 은혜로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을 닮아가 그 은혜를 통해서 죄를 이기고, 문제를 뛰어넘는 환경과 상황을 압도하는 승리하는 길을 걷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삶에 막다른 길과 같은 어려움과 벼랑 끝에 서는 시간이 있다할지라도 그때 내가 부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밖에 없음을 확신하여 주님의 그 은혜를 붙들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한 뜻을 날마다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7월 20일)

제목: "더욱 사랑"
말씀: 요나 1:1-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이은상 목사님-미국 달라스 세미한 교회)-초빙
-----
 
* 요나 1:1-4,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
▶할렐루야!!!!
-옆에 사람에게 한번 인사할까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이 새벽 안아주신 분당 정말 1층, 2층, 3층 우리 한국교회 희망과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작년 6월 달에 제가 이곳에 섰는데요.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고 할렐루야, 처음 보시는 분들도 계실 줄 믿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은 감사하고 근데 제가 두 번째 왔지만 참 떨리고 설레는 강단입니다.
 
우리 오정현 목사님 말씀 전하시는 강단이고, 한국교회 참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곳, 쓰시는 목회자분들께서 설교자분들께서 이곳에서 쉬시는데 오늘도 많이 떨려서 제가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데 무릎 꿇어라. 라는 마음을 주셔서 무릎 꿇었습니다. 무릎 꿇으면서 기도한 가운데 하나님 주신 마음이 니가 이곳에서 3층까지 있는 분들 중에 가장 낮은 곳에 있다. 딱 무릎 꿇으니깐요. 이 안아주신 본당이 가장 무릎 꿇으니까, 가장 밑에 있더라고요. 제가 그래서 가장 밑에 있구나! 이제 더 내려갈 곳이 없다. 할렐루야! 예 더 내려갈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요 제가 늘 기도할 때 하나님 낮추시되 땅 끝까지 낮추시고 하나님께서 큰 바다라면 저를 물방울 하나 되게 쓰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제가 이 기도가 누구 기도인지 몰랐는데 알고 봤더니, 테레사 수녀님의 기도였대요. 그래서 어떤 뭐 가톨릭 우리 개신교 이런 거 상관없이 하나님이 큰 바다라면 우리가 물방울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 얼마나 감사한 기도예요. 그죠 여러분 하나님의 물방울 하나 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사랑의 교회는 우리 12.3 한국교회를 섬기는 교회이고, 또 앞으로 월드 이든 젤리 고 얼라인즈 WA를 이제 또 섬기고 앞으로 나아가야 되는 글로벌한 교회이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물방울 아니라 큰 바다와 큰 강물과 큰 호수를 내실 줄 믿습니다. 우리 사랑하기 위해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예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뭐예요?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여러분 오늘 아 더욱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윤아서 일장 말씀 함께 보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사랑의 교회 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오늘도 더욱 사랑하고 계십니까? 우리 성도분들 또 우리 중직 분들 다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한데요.
 
제가 기쁨으로 왔습니다. 작년에 제가 이 토비 세례를 마치고 아 우리 대학부 수련회 강사로 갔습니다. 대학부 수련회 강사로 가서요. 정말 3박 4일 동안 너무 행복하게 섬겼어요. 제가 수련회 인도 많이 했지만, 제 인생에 남는 제 인생에 정말 기억 남는 제가 그래서 미국 가서 자랑 많이 했습니다. 한국 교회 MZ 세대 청년들 얘기할 거 없다. 우리만 잘하면 청년들은 새벽 2~3시까지 기도하더라. 여러분 제가 너무 놀랐어요. 사랑의 교회 대학부 가요. 제가 1시쯤 이렇게 말씀 12시 1시까지 전했는데 그때 이윤기 목사님이 2~3시까지 기도를 시키더라고요. 할렐루야 난 그런 대학부를 요새도 있는지 몰랐어요. 여러분 한국교회 소망 있습니다.
 
청년들이 2~3시까지 기도하면 소망 있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랑의 교회가 더욱 사랑할 때 한국 교회 더욱 사랑하는 줄 믿습니다. 사랑의 교회가 더욱 사랑할 때 세상이 더욱 사랑하는 줄 믿습니다. 요한일서 4장 7절 8절 말씀 함께 여러분의 비전의 말씀이니까.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일서 4장 7절 8절,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다 그래요. 그리고 나서 말씀하시는 게 뭡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갓 이즈 러브.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 모른다.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아멘이십니까? 요한복음 13장에 34절 35절에,
 
*요한복음 13:34-35절,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께서 그러십니다. 새 계명을 너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러브 원아더(Love another), 러브 원아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서로 사랑하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니네들이 서로 사랑하면 어떻게 된다. 세상이 너희를 보고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러분 너무나 놀라운 게 오늘 아침에 저 어디에서 왔어요. 제가 달라스, 달라스는 어디 나라에 있어요. 미국에 있어요.
 
미국에서 오늘 영어 공부 잠깐 하실 텐데, 여러분 갓 이즈 러브,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죠 하나님은 사랑하시니라. 가 갓 러브스.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라는 거죠.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을 하시는 동사예요. 액딩 버브 하나님이 사랑을 해주신다. 안아주신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근데요. 요한일서 말씀에 뭐라고 그랬냐면 갓 이즈 러브의 이즈는 뭐냐면 비동사입니다. 비동사 성문 종합영어 기억나시죠잉, 비동사는 뭐예요? 상태에요. 상태 하나님은 어떤 상태시다 사랑이신 상태 그대로시다. 라는 거야.
 
하나님은 사랑을 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상태시다 사랑이신 분이시더라 사랑 그 자체시더라 라는 거예요. 존재론적으로 존재가 하나님은 성품이 존재가 사랑이시다. 정체성 자체가 사랑이시라는 거예요. 두 버브 가 아니라 비벌 비동사로 두 동사가 아니라 비동사 하는 것이죠. 행위 동작 동사가 아니라 상태 동사, 여러분 그런데 놀라운 게 있습니다. 요한복음 23장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어떻게 된대요 세상이 너희를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라고 했잖아요. 여러분 제자훈련 다 받고 계십니까? 제자 훈련받고 계세요.
 
제자 훈련받으신 분들 아멘. 사역 훈련까지 받으신 분들 아멘, 여러분 제자 훈련하는 교회잖아요.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제자 훈련 다 끝났다고 사역 훈련 다 끝났다고 제자가 되는 게 아니라 뭘 해야 제자래요. 사랑해야 제자래요. 그러면 여기에 또 하나의 비동사가 있습니다. 사랑을 한다. 라는 건 두 동사울이가 행위의 동사인데, 어떤 상태 제자인 상태, 너무 신기하죠. 사랑을 하면 우리의 정체성이 제자가 된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은 제자로 알아본다. 라는 거죠. 하나님의 상태 하나님의 비동산은 뭐라구요. GOD IS,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랑을 하면 우리는 누가 된다고요. 제자가 된다는 거예요.
 
역시 사랑의 교회는 수준이 높으셔서 제가 지금 굉장히 복잡하게 얘기를 해도 굉장히 단순하게 잘 알아들으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상태와 정체성이요.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하시래요.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예수님도 오셔서 하신 게 사랑이에요. 왜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죠. 할렐루야 맨 예수님은 지저스 이즈 걸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잖아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랑하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에 너희를 보고 제자인 줄 너희는 진짜 제자가 된다.라는 것이에요. 진짜 제자 사랑하는 제자 우리 모든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정체성이 제자 그래서 사랑하면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옆에 사람에게 한번 축복하겠습니다. 사랑하면 진짜 제자가 됩니다. 당신은 진짜 좋은 제자가 될 겁니다. 이렇게 좋은 제자 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그래서 사랑 이야기인데요. 사랑 이야기예요. 요 나서 말씀해 요나가 사랑 이야기죠. 요나서가 하나님의 사랑이야기 1장 보니까,
 
*요나 1:1-2,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여러분 우리가 요나가 순종 못해서 물고기 뱃속 들어가고, 아이 불순종의 상징으로 어떤 요나를 기억하지만 아니에요. 여러분 요나는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일을 맡겼던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인트터스트 얼마나 믿음직한 선지자였으면 하나님께서 내가 이 악독한 세상에서 너 하나는 믿는다. 니가 가서 내놔 봐, 거쳐 내놔 봐, 니느웨로 가서 내 말씀을 전해라. 라고 믿고 맡기신 사람이 바로 요나입니다. 여러분 요나 그냥 허투루 보지 마세요. 요나 대단한 사람이에요. 여러분 이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 듣고 하나님이 일 시킬 수 있는 제자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 요나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야 내가 너는 믿고 너는 일시키고 싶다. 그런 사람이에요. 근데 어떻게 반전이죠. 3절 말씀에 그러나 요나가 같이 있겠습니다.
 
*요나 1:3,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마침, 다시스로 내려 가는 배를 만난 지라. 마침, 여러분 절대서 마침 여호와의 얼굴을 피해서 가는데 마침 거기 배가 있었대요. 우리는 이럴 때 하나님이 마침 그때, 때마침 그 아주 일이 술술 풀리게 해 주셨다고 막 얘기하시는데요. 여러분 그러지 마세요. 여러분 사단도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때 때마침 기다려 갖고 거기에 배를 준비시켜놔요. 하나님이 준비시켜 하나님이 때마침 도망갈 수 있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게 배를 준비시키셨어요.
 
좋으신 하나님 이거 잘못된 해석이에요. 여러분 마침 준비시키신 거, 근데 여러분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어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해서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이 이후에 얘기 아시죠. 풍랑 만나고 뒤집어지고 막 하는데 이제 요날을 던집니다. 그랬더니, 가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이제 물고기 뱃속에서 토해내고 니느웨 가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 말씀 전하는데 하나님이 또 다 용서시켜 주시고 할래니까, 그 꼴을 못 보게 해갖고 막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안 돼요. 안돼요. 막 하다가 야 너 그러면 되냐? 니가 화내면 돼, 막 이러시면서 타이르시면서 끝나는 게 요나세요. 다 아시죠? 여러분 성경책에도 써있죠.
 
여러분, 근데 제가요. 이 3절 말씀만 보더라도, 어떻게 그런 요나가 하나님이 정말 일 맡기시고, 하나님이 정말 믿으신 요나가 하나님의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도망갔을까? 목회자 되니까, 또 다른 방식으로 다른 앵글에서 고민하게 됐어요. 왜 안 갔을까? 왜 안 갔을까? 정말 하나님이 일 맡기실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까지 이렇게 들었던 이 요나가 어떻게 하나님이 일을 맡기셨는데 안 갔을까? 여러분, 주일 학교 잘 나오신 분들은 답을 알아요. 뭐래요. 니느웨가가 앗수르의 수도니까, 적군이었으니까 적의 도시니까 못 가겠다 이거잖아요.
 
여러분, 만약에 우리는 2024년을 살고 있지만 우리 사랑의 교회에서 제자훈련, 사역 훈련까지 받으신 여러분들이라면 일제시대 때 태어났어도 만약에 일제시대 때 여러분들에게 동경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 복음 전하라고 그러면 전하실 분 계세요. 안 계세요?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동경 가서 36년 속국으로 우리 살게 하고 내 형제자매 정말 피범벅이 돼서 그렇게 고난과 역경을 형무소에 가서 거꾸로 매달려서 그 고문당하고 소금물 넣어갖고 막 그 고문당하게 하고 그래서 시체도 못 찾게 해 놓은 그런 정말 올해 36년 그 속국에 그 아픔이지만. 그래도 여러분들께 하나님께서 직접 하지만 네가 일본에 가서 도쿄에 가서 예수교육도 복음 전화해야 된다 하면 아마 사랑의 교회 성도 분들 중에는 순종하고 가시겠다고 해서 복음 전하실 분들 계실 거예요. 여러분들 2024년에 지금도 일본의 선교사님들 많으십니다. 맞아요. 아니에요.
 
하물며, 우리도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말씀하시면 적국이라도 가고, 어떤 나라라도 가는데 어떻게 요나가 안 갔을까? 그냥 적국이라서? 정말 그랬을까? 인간적인 마음에서 그래 못 갔을 수 있겠다.... 하고 끝날 수도 있지만 여러분 조금 더 고민이 된다. 라는 거예요. 여기서 한참 묵상을 했어요. 왜 안 갔을까? 나라면 정말 안 갈까? 나라면 정말 안 갈까? 목회자로써,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셨는데 어쩌면, 어쩌면 원수라서,,, 보다 조금 더 깊은 답이 있겠지. 그게 뭐예요? 사랑하지 못해서. 물론 그 더 깊은 답이 있을 수 있어요.
 
원수라서 못 갔다. 더 밑에 사랑하지 못해서 더 깊이. 더 밑에 더 밑에 가장 밑바닥에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어떤 마음이 있지 않을까, 성경 말씀을 통해서 더 보겠지만, 원수라서 못 갔다. 단순히 아니라 조금 더 깊이 보면 사랑하지 못해서... 라는 답이 맞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여러분 첫 번째 우리가 왜 우리는 사랑하지 못할까를 한번 고민해 봅시다. 사랑학교의 성도 여러분들, 오늘도 사랑하고 계십니까? 사랑하죠. 근데 늘 사랑하긴 힘들잖아요. 모두를 사랑하긴 힘들잖아요.
 
인간은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없이 살아가지 못할까? 국가마다, 시대마다 여러분 저는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 살면은요, 자연스럽게 한인 교포 교민사회에서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어 ‘거기 백인들이 많은 동네라 좋아.’ 제가 너무 인종 차별 자 같습니까? 한 번은 들어보셨죠? ‘거기 흑인이 많아서 우범 지역이야!’ 제가 저희 정도님들한테 우리가 천국 가는 그날까지 그 말은 하지 말자 좀 라틴어 분들 멕시칸 분들 뭐 브라질이든 우리 페루든 이 밑에 남미에서 오신 많은 칠레든 어디 많은 분들이 오세요. 니콰라가나 또 쿠바나 쿠바는 뭐 미국까지 못 오시지만 멕시칸 분들이 굉장히 텍사스는요 굉장히 멕시칸 분들이 많으세요. 여러분 텍사스 하면 뭐가 기억나세요. 스테이크 우리 사랑님께 성도 여러분들 텍사스 오시면 제가 스테이크 빈말이 아니라, 함께 우리 쏘도록 하겠습니다. 저한테 꼭 찾아오세요.
 
목사님 그날 토비새에서 약속하셨으니까 저 스테이크 얻어먹으러 왔어요. 제가 빈말 안 합니다. 그 정도로 우리 동네는 스테이크 쏠 수 있을 정도로 쌉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맛있어요. 맛있어요. 여러분 근데 스테이크 그런데 스테이크보다 더 텍사스에는 우리가 많은 그 경우에 흑인 백인 라틴어 분들 멕시칸이 많아서 텍사스에는 멕시칸들이 많아서요. 텍스맥스라는 이 멕시칸 푸드가 맛있어요. 얼마나 많으시냐면 멕시코 분들이 멕시코에서 먹는 택시맥스보다 여기에서 먹는 멕시칸 푸드가 더 맛있대요. 그 정도예요.
 
여러분 그런 분들에게 멕시칸 분들이라고 하지 않고, 멕시코 그 사람들이라고도 하지 않고 걔네들이라고 할 때가 있어요. 절대로 천국 가기 전까지 그러지 말아라.라고,,, 다른 민족 사람들의 국가를 앞에 하고 왜 비하하냐? 안 되는 거죠. 여러분 인종이, 인종을 나눕니다. 내가 흑인이냐 백인이냐 황인종이냐 나누구요. 백인이 많은 동네가 좋다. 흑인이 많은 동네는 우범 지역이다.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증거예요. 세대가 세대별로 사랑하지 못해요. 국적별로 사랑하지 못해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좀 죄송합니다. 이 새벽에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져 있어요.
 
지금 미국도요. 지금 대통령 선거 그 보이시죠. 바이든 트럼프, 트럼프 바이든 누가 언제 더 먼저 쓰러지실지 모르겠어요. 그러시면 안 되는데 미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미국을 위해서,,, 근데 여러분 너무 나눠져 있어요. 50개 주가 너무 나눠져 있어요. 주마다 나눠져 있어요. 도시마다 나눠져서 학교마다 나눠져 있어요. 가정마다 나눠져 있어 그러니까 뭐라고 그래요. 가정에서 식탁에서 정치 얘기하지 말라 라는 게 미국의 예의예요. 왜? 나뉘어져 있고 서로 품지 못하니깐요. 지키려는 자가 있고 바꾸려는 자가 있습니다. 트레디션이 있고, 체인지가 있습니다. 전통이 있고, 변화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체인지 하나로 슬로건이 되잖아요. 트레디션 지키겠다.
 
장인정신을 강조할 때가 있으면, 개혁정신을 강조할 때가 있어요. 여러분 뭐가 맞을까요? 예전부터 노론과 소론이 있었듯이 계속해서 시대와 세대를 요즘 현대사가 아닙니다.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요. 품지 못하는 나뉘어짐이 있습니다. 왜 사랑하지 못하고 계속 나뉘어질까요?
 
교회가 사랑의 교회처럼 사랑이 많은 교회든 괜찮을 수 있겠지만, 교회들 사이에서도 거룩한 교회, 더 거룩한 교회, 더더 거룩한 교회가 더더 거룩한 교회를 비판하는 더 더 거룩한 교회가 거룩한 교회 조금 더 거룩한 교회를 비판하고, 서로 비난할 때가 너무나 많아요. 서로 더 옳다고, 덜 옳다고 죄송합니다. 왜 우리의 존재 이후 목적 가치가 다른 이는 틀렸고, 내가 맞았다. 라는 거에 이렇게 강조를 할까요? 심지어 외국인 젊은이들이 와서 한국말을 잘 모르겠거든.
 
아니, 근데 그건 아니고! 라고만 말해도 한국말 30분은 이어갈 수 있다고 배웠대요. 아니 근데 그건 아니고 아니 근데 그건 아니고, 아니 근데 그건 아니고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어 아니 근데 그건 아니고 내가 더 알아, 엄마들 모임에서 어느 뭐 교육 방법이 이렇다 아니, 그 자기는 그것만 아는 거야. 이게 더 알아 내가 더 많이 아니까 내 말 들어 여러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가 왜 다른 이가 틀려야 자신이 옳은 것으로 증명이 되냐. 라는 거예요. ‘굿 라이프’ 란 책에서 서울대 최진철 교수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한번 띄워봐 주시면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남들도 그런 줄 안다 그래서 펩시콜라를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공부 이거 미국에서는 정말 많이들 이거에 싸웁니다. 펩시냐? 코크냐? 코크냐 펩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공부 못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남들도 개를 좋아한다고 아니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자기중심성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 심리학에 발견한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 자기중심성이다. 인간은 자신이 세상에 보편적 존재라고 믿고 싶어한다. 자신의 생각 기호 가치 정치적 성향이 지극히 상식적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널리 공유되어 있고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돼? 하면서 의견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강렬한 욕망의 표출이다. 상식을 들먹이는 이유도 상식적인 나와 비상식적인 소수를 구분하기 위함이다. 이 세상은 나를 포함한 상식적인 다수와 비 상습적인 소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
-굿 라이프’ 란 책에서 서울대 최진철 교수-
 
저는 E-BOOK으로 읽어서 잘 모르겠어요. 이 E- BOOK 페이지를 여기 올려놨는데 한국 책을 잘 얻을 수가 없으니까 제가 이북 페이지를 올려놨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말이 돼 상식적으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말이 돼? 그 후보를 뽑는 게 말이 돼 상식적으로 말이야. 뭐예요? 나랑 반대하기만 해봐 당신은 비상식적인 사람이야. 아니 상식적으로 왜 강아지를 안 좋아해? 얼마나 예뻐. 강아지 안 좋아해도 얘는 정말 예쁘잖아. 그럼 옆에서 강아지를 혹시나 힘들어하는 분은 막 여러분 혹시나 강아지를 막 하면서 왜 강아지를 여기 데꼬 왔냐고, 상식적으로 말이 돼 그러면 강아지를 데꼬 왔다가도 막 이렇게 등에 이렇게 이게 뭡니까? 강하게 밀쳐내기 위해서 사랑하지 않겠다. 라는 거죠. 품지 않겠다. 라는 거에요.
 
부부 사이에서 그 집 남편은 그렇대더라. 그집 아빠는 그렇게 애들한테 해 준대더라. 엄마는 그 집 아내는 남편들도 그러죠. 상식적으로 여보 그건 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오늘 절대 예배 끝나시고 그런 대화는 절대 하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아까 혹시 그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이 얘기를 해서 말인데 여보 내가 좀 예 그러시면 안 돼요. 저 미국에서 온 이유가 없어집니다. 아이들한테도 얘 내가 참고, 참고 기다렸다가 상식적으로 말이야.
 
너 지금 몇 시인데 지금 일어나니 어 엄마가 참고, 참고 기다렸어. 아빠가 참고 참고 기다렸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가장 그 사랑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들과 모임이 있다면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시대를 막론하고 예수님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하신 거예요.
 
새 계명을 그냥 계명이 아니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느니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이 그 세상은 1900년대 세상이든 2천 년대 세상이든 그 세상은 너희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너희를 보고, 너희는 내 제자인 줄 알리란 거예요. 근데 가장 그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 교회조차도 교회들조차도, 우리 사랑의 교회 참 사랑하고 다락방 안에서 사랑하고 있지만 교회와 교회들 간의 사랑이 더 많아야 해요. 저는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요. 너무 행복해요. 제가 그건 온라인 라이브로 다 봅니다. 늘 할렐루야!!에요. 왜요 시대 뭐 차별 막론하고요. 어느 교회든 여러분 사랑하고, 품고 품을 내어줘서 안아주는 거잖아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감사해요. 여러분 그 사역을 정말 여러분 돕고, 헌신하고 더 많이 헌신 하셔야 돼요. 아멘이세요? 예 우리 목사님과 사랑의 교회가 너무 큰일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이게 이제, 이제 3년째 하고 하실 테지만 30년 뭐 300년 예수님 오시는 그날까지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계속 품는 거예요. 여러분 잘 들어보십시오. 잘 들어보십시오. 품어줄려고 하는 교회가 있고 안아주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쳐내고 짤라 내는 교회가 있을 거예요. 쳐내고 짤르고 도려내고 찌르는 강단이 있는가 하면 품어주고 안아줄려는 강단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 한국에 다 알 거예요. 우리는 뭘 해야 될까요? 서로 사랑하라. 새 계명을 너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제자도, 제자도는 너무 날이 서 있으면 안 됩니다. 너무 날이 서 있어서 예수님도 안아주려다가 비워버리시면 안 돼요. 아야! 서로 문제는 우리가 틀리다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요나도, 요나의 말씀으로 돌아간 요나도 틀리다는 것을 알아요. 요나가 배에서 그럽니다.
 
이 사단이 왜 일어났냐고 그랬더니, 나 때문에 그래... 그래요. 이방 그 이방 선원들 앞에서 아니 도대체 우리 중에 누가 잘못했길래 지금 이 풍랑과 파도가 치는 거야. 그랬더니, 나야 나 나 내가 히브리 사람인데 하나님이 시킨 거 안 해서 내가 그래. 내가... 여러분 틀린 걸 안다는 거죠. 그런데도 어떻게 해요? 사랑하지 못 하겠는 게 아니라 결론은 사랑하지 않으려고 작정하니까 뭐라고 하냐면 날 바닷물에 갖다 던지십시오. 이래요. 여러분 14절 말씀 한번 보십시오. 14절 말씀 14절 말씀 한번 보겠습니다. 14절 말씀에,

*요나 1:14-16,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요나를 들어 바다의 던짐에 바다가 뛰노는 것이 어쩐지라면 끝까지, 끝까지 이 선원들은요, 이 사람 한번 살려보겠다고 하는데 요나는 나 더러 던져 나 던져 그래놓고서 기다리다가 다시 막 노 젓고 뭐하고 막 하다가 십사절에 와서 하나님 우리 때문에 이 사람 때문에 우리를 다 바라지 맙소사. 하고 결국은 던져요. 그랬더니, 바다가 확 잠잠해지죠. 전 너무 놀라요. 죽기까지 순종한다가 아니라 죽기까지 순종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요나는 자기가 틀린 걸압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시킨 거, 안에서 지금 풍랑이 이렇습니다. 나 때문입니다. 내가 잘못 가고 있습니다. 알죠. 근데 뭐라 그래요. 던지십시오. 여러분, 우리의 혹시나 불순종이나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 그거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오늘 말씀을 들어도 크게 안 바뀌어요. 저는 여러분을 굳게 믿습니다. 안 바껴요 엄마 아빠가 말해도 아이들은 안 바뀌어요. 아내가 많이 얘기해도 남편은 안 바뀌어요. 남편이 많이 얘기해도 아내는 안 바뀌어요. 안 바뀌어요. 왜 요나를 보세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도 안 바뀌어요. 죽을 운명인데도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풍랑이 일어서 막 배를 뒤집어엎을 것 같으면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회개 한번은, 선장 어이 니느웨로 갑시다. 나 니느웨에 내려주면 다 끝나, 당시 이게 모타 보트입니까? 뭐 기름이 필요합니까? 뭐가 기름이 떨어져서 안 됩니다. 노 저어서 가면 돼요. 근데 그 말은 없어요. 날 집어 던지십시오. 안 하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싫으면 죽기까지 안 하는 겁니다. 한국말이 뭐야?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 하겠대. 눈에 흑이 들어와도 안 해, 못해, 안 해, 왜 그럴까요? 왜 품지 못할까요?
 
정말 다르기 때문이라고 정말 다르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선을 긋습니다. 제가 설교 마치기 전에 한번 우리 청력 테스트 시력 테스트 한번 보고 설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재밌죠? 여러분 깨어 계신지 한번 테스트 하겠습니다. 청력테스트, 여러분 미국에서 이게 정말 큰 파장을 일으켰어요. 오늘 아침에 여러분 귀를 쫑긋 세우시고 한번 영상을 하나 틀어봐. 드릴 테니까. 이게 뭐라고 얘기하는지 하나는 ‘야니’ 라고 말할 수도 있고 하나는 ‘노러우’라고 얘기 할 수도 있어요. 여러분이 듣는 음성은 똑같은데, 들리는 게 다를 수 있습니다. 자 한번 영상을 이게요. 유튜브 공개를 해 놓을 수 있는 영상을 제가 찾아서 올려드릴 거니까, 나중에 이게 이상하다 싶으면 다시 한 번 영상을 틀고 보세요. 들어보세요. 다른 분에게도 들어보라고 하세요.
 
놀라운 결과가 일어난 겁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영어로만 들려서 아예 귀를 닫으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어 ‘야니’라고 들으신 분이 있고, 로러우로 들으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자 나는 야니로 들렸다. 손들어보세요. 야니, 이안이 야니 한번 이렇게 돌아보세요. 나는 로러우, 로러우로 들었다. 한번 이렇게 주변을 돌아보세요. 로러우 꽤 되시죠? 지금 다시 한 번 로러우 손 들어보세요.
 
로러우로, 자 지금 안아주신 본당에 지금 보이시죠. 거의 한 40프로 가량은 노우러로 들으셨어요. 자 이안이 이안이로 들었다 한 50~60프로는 지금 ‘야니’로 들으신 것 같아요. 어 여러분은 굉장히 점잖으시네요. 저희 교회에서 1번 했더니, 아니야. 지금 뭐야? 왜 이러니까, 야니라고 했잖아. 막 싸움이 났어요. 노러우, 잖아!! 그죠? 지금 같은 소리가 다르게 들려요. 자 사진 1장 보여드릴 텐데 우리 사랑의 개 LED는 너무 좋아서 이게 하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 한번 사진을 한번 신발, 아 예 옷 사진을 한번 보여주시면 뭐 이게 블루와 블랙으로 보이시는 분이 있으실 거고, 또 다른 색으로 보이신 분 있으세요. 흰색과 금색 나는 흰색과 금색으로 보인다. 손 들어보세요. 네 오우 이건 더 많으시네요. 반 정도 되시네. 흰색과 금색 나는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보인다. 손 들어보세요.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굉장히 없으시네요. 어 한 20~30프로 네 지금 이런 웅성웅성됨이 좋습니다. 예 이름이 나와야 돼요. 자 신발 신발 보여주세요. 자 신발 자 이게 핑크와 흰색으로 보이시는 분 손 들어보세요. 핑크와 흰색 네 더 많이 웅성웅성됩니다. 지금 네 자 파란색과 회색으로 보인다. 하늘색과 회색으로 보였는데, 절 봐주십시오. 지금 파란색과 회색으로 보인다. 아니 저를 영상으로 보여주세요. 파란색과 회색으로 보인다. 네 손 내려 주십시오. 손을 안 내리세요. 막 나 파란색과 회색으로 보여요. 여러분 보십시오. 지금 이 새벽에 다 깨어 있으시잖아요.
 
근데 지금 두 눈 뜨고 같이 우리 한 가족 한 지체에 대해서 봤는데, 어떤 분은 지금 회색과 하늘색으로 봤고, 어떤 분은 흰색과 분홍색으로 봤어요. 같은 사진이에요. 어떤 분은 같은 사진인데, 흰색과 금색 드레스로 봤고 어떤 분은 지금 까만색과 파란색 드레스로 봤어요. 아까 음성도 야니 로 들으신 분 있고 롤 너 들으신 분이 있어요. 제가 놀라운 게요 제 저녁에 밤에 들어갔을 때는 분명히 얀이 노러우었는데. 아니였는데 아침에 들으니까 노러우 된 게 있구요. 아침에 들으니까 또 롤 이 야니가 될 때가 있고 전혀 이게요 그래서 MIT에 여러분 오늘 이 테스트가 그냥 테스트가 아니라요. 사람들의 많은 테스트였지만 MIT에서 분석을 했습니다. MIT 아시죠.
 
매사추세스 인스튜어로브 테크놀로지 매사추세스 공대에서 맥가버린 인스튜드 폴 브레인 리서치 아 이 뇌 과학을 하는 그 연구 단지에서 리서치를 했는데, 왜 이렇게 들렸냐 야니랑 롤이랑 여러분 간단한 장난으로 한 게 아니에요. 그랬더니, 이런 음파를 한 번 보여주시죠. 야니는 위에 주파수가 맞춰져 있는 사람은 야니로 들렸대요 밑에 음파를 듣는 사람은 로렐로 들렸대요 이걸 한국말로 뭐라면 듣고 싶으면 듣는다. 라는 거예요. 싶은 것만 들으면 나는 로러우를 듣고 싶다 그러면 노래를 듣는 거고, 야니를 듣고 싶으면 야니를 나는 고음을 듣고 싶은 고음을 듣는 거고, 저음을 듣고 싶으면 저음을 듣는 거예요.
 
아 할렐루야!!! 초록색 회색 흰색 분홍색 왜 다른지 아세요. 빛에 비춰진 그 각도와 빛의 양에 따라서 다른 한국말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나는 그죠. 내 눈에 들어온 것만 본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왜 품고 사랑하지 못 한다구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 로렐 로렐 로렐 했는데 야니 야니 야니 야니, 야니 아니 야니 했는데 로러우, 로러우 뭔 얘기야, 상식적으로 지금 야니라고 했잖아. 로러우이라고 했는데요. 파란색 금이 검은 색이잖아. 흰색 금색인데요. 이 모든 걸 해결할 방법을 주셨습니다. 우리 어떻게 해야 되나 우리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 빌립보서 2장에,
 
*빌립보서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마음을 비우사, 스캐노우, 비우다. 비우다 본문이죠. 그래서 비우셔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어요. 그때 그 2장 5절부터 8절 말씀 전에 바로 뭐라고 했냐면 빌립보서 2장 한번 보여주세요. 3절 말씀에,
 
*빌립보서 2:3,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여기 있어요.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 옆에 사람에게 저보다 참 나으신 분입니다. 이렇게 축복하세요. 저보다 100배 천 배 나으신 분입니다. ‘10,23 섬김의 날’처럼 모든 다른 한국 교회를 백배, 천 배 나은 교회로 섬길 수 있는 마음은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때만 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잖아요. 교회는 누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에요.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힙박하느냐? 싸웠어. Saul, Saul, why do you persecute me? 교회를 힙박 하는 사울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면, 나를 힙박 한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어떤 잣대로도 교회에 날선 검을 되면은요, 뭐예요? 우리교회보다 다른 교회를 낮게 여기는 그렇게 여기는 언어를 가져야 돼요.
 
그게 너무 좋아, 그게 너무 좋아, 그 정도님 너무 좋으셔, 그 다락방 너무 좋아, 그죠? 우리 사장님께 너무 잘하고 계시잖아. 한국계에 계속 10. 23 이 운동을 통해서도 계속 전파하시고 한국 교회에 그런 아름다운 전통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여러분 제가 아까 그랬죠? 남편 안 바뀝니다. 자녀는 안 바뀝니다. 바뀔 수 있어요. 언제 바뀌냐? 자 희소식, 희소식 복음입니다. 언제 바뀌냐, 우리 부모님들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뭐라고 그래요.
 
너두 너 같은 딸, 너 같은 아들, 꼭 낳아라. 진리의 진리. 엄마 아빠가 되면 알아요. 내 엄마가 있대요. 내가 십대 때, 이십대 때, 우리 아부지가 기다려 준 것이구나! 기다렸어요. 하나님 마음을 하나님 마음을, 갖게 되면 그때 알아요. 요나가 언제 변하느냐, 물고기 뱃속에서 변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 물고기 뱃속에서 변했으면 잘 들어보십시오. 물고기 뱃속에서 변했으면 벌 받아서 변한 요나밖에 안 됩니다.
 
그 신앙은요, 벌주신 하나님이 무서워서 벌 안 받을려고 도망 다니다가 결국 벌 받았네 거봐, 거봐. 거봐 거봐 하나님 저러면 혼내신다니까 이거밖에 안 돼요. 근데 언제 변했냐 요나서 4장의 하나님 정말 용서해 주실 거예요. 정말 용서해 주실 거예요. 그때 박 넝쿨로 다 그늘 만들어주셔서 시원하게 해주셨어요. 아 너무 좋아, 어 너무 행복했는데 벌레가 박 넝쿨 다 갈아먹으니까 죽여주시옵소서! 나 너무 화났습니다. 어떻게 방넝쿨 있는 걸 없애십니까? 그랬더니, 네가 만든 것도 아닌데 왜 화를 내냐? 아니 어제 있다. 없어진 것도 그렇게 너 속상해하는데, 하물며 저 백성들 그렇게 죽어가는 거 보면 내가 안 속상하겠니? 니 니 니 니 니니~~~ 하고 요나 4장은 끝이 나요? 그게 뭐예요?
 
내 마음 좀 알아줘. 여러분 우리 안 변합니다. 우리 쉽게 안 변해요. 언제 쪼끔씩 변하냐면 하나님 마음을 쪼끔씩 안아갈 때, 더 사랑하고, 더 품어주고 안아주신 본당의 이름처럼 더 안아줄 수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오늘 가족 가서 더 안아 주시고 오늘 이웃 가서 더 안아 주시고, 싸운 거 있으시면 다 화해 하시려고 더 안아 주시고 그게 바로 카톡 바로 들고 자기야, 미안해. 당신이랑 싸운 거 어떻게 알고 오늘 말씀이 딱 나네. 하나님 마음이 자기랑 화해하라고 하네. 그 자기는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아내도 될 수도 있고 돈 문제 때문에 싸운 어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사촌이 될 수도 있고, 아멘. 우리 한번 이 찬양 같이 하기를 원합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오늘 이 찬양이 여러분의 고백되기를 원합니다.
 
♣요약
-사랑 없는 메마른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갖기를 소망하며, 성령에 단비로 촉촉하게 적셔서 하나님께 간절히 품지 못한 자를 품게 해주시길 기도하여야 한다. 품지 못한 내 가족을 품고, 품지 못한 내 친구를 품고, 품지 못한 내 순원 품어야 한다. 품지 못한 네 주변인들 품는 사랑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칠천 기도 용사이듯이, 주님이 나를 품으셨듯이, 그렇게 품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은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도록,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나를 변화시켜 주셔서 부족한 내 마음 내 밑바닥을 다 주님께 내어놓고 부끄러울 거 없이, 내 안에 선한 것 없는 거, 주님이 하실 것을 믿고 사랑을 전하고 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 해석되지 않는 문제와 역경 속에서 주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 오늘도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서 순종하는 자로, 주님을 사랑을 실천하며 더욱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번 주 기도 제목.
1 사랑의 교회 믿음의 4대 실천기도용사가 2024 여름 토요 성령 집회 시간을 통해 진심과 전심으로 더욱 사랑을 담아 전진할 때, 모든 영 가족이 새로운 영적 시각 교정을 통하여 은혜의 무한 지평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아멘
 
2 사랑의 교회 모든 여름 사역 위에 수선대후의 은혜를 부어 주사 다음 세대가 강력한 말씀 부흥과 기도 부흥을 경험하고, 사랑과 진리로 무장하여 복음통일시대에 나라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쓰임 받게 하옵소서. 아멘
 
3 사랑의 아웃리치에 참여하는 모든 영 가족 위해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사,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 충만을 경험케 하옵시고,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장되며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아멘
 
4 내일 주일 예배 가운데 모든 영 가족이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은혜와 새 역사의 거룩한 기대감으로 나올 때, 예배의 자리를 개인과 가정, 나라와 민족 가운데 회복과 살롬의 은혜가 활짝 열리게 하옵소서. 아멘!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7월 15일 (854)


1. 증시에서 거래가 얼마나 활발한지 보여주는 지표다. 일정 기간의 거래량을 상장주식 수로 나눈 값은?
① 주가수익비율 ② 주가순자산비율
③ 자기자본이익률 ④ 상장주식회전율


2. 이 나라 총선에서 14년 만에 노동당이 보수당을 이기고 정권교체를 이뤘다. 수도는 런던, 화폐는 파운드를 쓰는 이곳은?
① 프랑스 ② 영국
③ 이탈리아 ④ 스웨덴

3. 경기 동향 지표인 ‘구매관리자지수’와 기업 인수합병(M&A) 이후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작업인 ‘인수 후 통합’의 공통 약어는?
① CPA ② CPI ③ PCE ④ PMI

4.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의 압도적 점유율을 바탕으로 미국 증시 시가총액 ‘빅 3’로 성장한 기업은?
① 브로드컴 ② 세일즈포스
③ 엔비디아 ④ 테슬라

5. 시멘트의 주재료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가격이 급등락해 국내 건설 시장에도 많은 영향을 준 원자재는?
① 유연탄 ② 철광석 ③ 리튬 ④ 니켈

6. 올 들어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 목적은 무엇일까?
① 리쇼어링 촉진 ② 국내 증시 활성화
③ 보편적 증세 ④ 세수 증대

7.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공장이 이 나라에서 지난 3일 가동을 시작했다. 세계 1위 니켈 생산국인 이곳은?
① 인도네시아 ② 인도
③ 멕시코 ④ 아르헨티나

8. 기업에 안정적 수익을 가져다주는 ‘현금 창출원’을 가리키는 말은?
① 오픈소스 ② 카르텔
③ 정크본드 ④ 캐시카우

======

[커버스토리]
인구 감소 위기는 청소년 세대의 문제



그래픽=김선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우리나라 인구 위기와 관련한 뉴스가 연일 쏟아집니다. 급기야는 지난달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습니다. 대통령은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 1.0명’(작년 기준 0.72명)을 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란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그동안의 출생아 수 감소로 인해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15세 이상 인구)는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로 계산해도 2040년까지 19%가량 줄어들 것이란 대한상공회의소의 전망도 나왔습니다. 경제활동이 위축되면 국민이 나눌 ‘파이(경제적 부)’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고령화와 수도권 인구 집중 여파로 2대 도시인 부산마저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2030년이나 2040년 즈음엔 생글생글 독자들이 20~30대가 될 텐데요,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때 이같이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까 걱정입니다. 그런 미래를 살아내야 할 이는 현세대도 현 정부도 아닌, 우리 청소년들입니다.

인구 감소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경제 외형이 작아질 수 있는 시대에 적응할 사회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구 위기가 왜 청소년 자신의 문제인지, ‘인구 역발상’에서 배울 점은 없는지, 지방소멸 대응이 왜 중요한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인구 비상사태'에도 지나친 비관은 금물
사회에 이롭게 활용하는 역발상 필요하죠.

연합뉴스

인구의 크기는 이미 한 세대 전의 출생아 수에 의해 정해진다는 점에서 ‘정해진 미래’라고 흔히 말합니다. 그러면 인구정책을 짜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가 아닐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출생아 수)이 1983년 이미 2명대로 떨어졌는데도 출생아를 줄이려는 정책을 계속했고, 1996년 1.6명에 이른 뒤에야 가족계획을 중단했습니다.

“인구 절벽, 2030년 이후 체감될 것”

인구 감소가 위기 상황으로 인식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으면 인구가 자연적으로 감소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인구의 자연 감소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2022년엔 연간 출생아 수가 24만9000명으로 줄었는데요, 수도권 대학의 정원은 전문대까지 포함해 약 25만 명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젊은이가 지방대학에 가려고 할까요? 지방대 입시에서 대량의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진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저출산이 심각해진 것은 2002년부터입니다. 2001년 출생아 수 60만명이 무너지더니, 다음 해인 2002년 약 49만7000명으로 50만 명이 깨졌습니다. 이때 태어난 사람들이 취직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과 마찬가지로 지방 기업에 취직하려는 사람이 적을 겁니다. 지방의 인재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과 수도권에 더욱 몰려들 테고, 지방에선 고령화와 슬럼화가 가속될 수밖에 없어요.

흔히 말하는 ‘인구 절벽’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인구 전문가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25~59세의 일하는 인구가 2027년 2500만 명 아래로 떨어지고, 2028년부터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하로 내려가야 인구 절벽을 체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인구 위기는 현세대가 아닌, 지금의 청소년들이 체감하고 마주하게 될 현실이란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역발상으로 접근하는 인구 위기

그러면 인구 감소를 위기 요인으로만 바라봐야 할까요?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어떤 나라든, 그 나라의 번영 정도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척도는 인구의 증가”라고 했습니다. 조지프 슘페터도 <경제분석의 역사>에서 “인구 증가는 부의 창출의 주된 요인이고, 인구는 부 그 자체”라고 강조했을 정도로 전통적 이해에선 인구 감소는 큰 문제입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가 줄면 나라의 부가 감소한다는 실증연구도 많습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50년 국내 생산가능인구가 2022년 대비 35% 감소하고, 이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이 28%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나라에서 고령화로 인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포인트 늘어나면 경제성장률이 0.2~0.6%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청소년 입장에선 이로운 점도 있을 겁니다. 인구가 줄면 대입 경쟁률이 낮아져 사교육 문제가 개선될 여지가 있어요. 취업난과 환경문제가 완화되고 경쟁 압력이 줄면서 삶의 질이 나아질 수도 있죠. 특히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뺏어가고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주행하는 시대엔 인구가 줄어드는 게 축복이 되지 않을까요?<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의 저자인 요시카와 히로시 일본 릿쇼대 교수는 인구 비관주의가 지나치다고 말합니다. 그는 선진국의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것은 인구가 아닌, 혁신(innovation)과 노동생산성이라고 강조합니다. 인구 감소가 전체 국민소득을 줄일 순 있어도 혁신이 성공하면 1인당 소득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거죠.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명예교수는 한 콘퍼런스에서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는 성장잠재력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도 “AI 등 첨단기술 발달로 이런 상식이 더는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고령자가 노동·소비시장에 계속 참여할 수 있다면 고령화는 젊은 세대에 부담이 아닌, 인구 위기 극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일터를 고령자 친화적으로 바꿔나가면 더 오래 일하고 생산성도 유지하는 사회가 돼 인구 위기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모든 사회 현상에는 긍정·부정, 유익·무익 등 양면이 존재합니다. 인구 감소 문제를 우리 사회의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는 역발상이 필요한 때입니다.

NIE 포인트
1. 우리나라 연간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 데이터를 50년치 정도 뽑아 살펴보자.
2. ‘인구절벽’의 개념을 알아보자.
3. AI 시대에 인구 감소가 축복이 될 수 있는지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인구 감소·지방 소멸은 동전의 양면
함께 풀어야 인구 위기 넘을 수 있어.


한경DB

인구 위기에 대처하는 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달 일·가정 양립, 주거·출산 등 지원, 교육·돌봄 등 세 가지를 축으로 60여 가지 대책을 묶어 발표했습니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15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올리고, 유치원·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12시간까지 늘려주기로 했습니다. 또 출산 가구에 주택공급 확대, 자녀 세액공제 확대, 난임 시술 대폭 지원 등에 이어 인구전략기획부라는 정부 부처 신설도 추진하기로 했어요.


경제적 지원책 중요하지만…

이번 대책에 대한 평가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나옵니다. 정부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을 줄여주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은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혼인율이 낮아지는 현실에서 얼마나 효과를 낼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있어요. 상대적으로 결혼할 여유가 없는 소득 하위층엔 도움이 안 될 것이란 우려도 있습니다. 과도한 입시·취업 경쟁, 너무 비싼 집값과 사교육비, 성평등이 부족한 사회문화, 출산을 행복으로 여기지 않는 현실 등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물론 경제적 지원의 가치를 무시할 순 없어요. 직원이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으로 1억원을 주는 부영그룹이 화제를 모으면서 이 그룹 공채에 작년의 5배가 넘는 지원자가 몰렸습니다. 전남 강진군이 2022년 1월 이후 태어난 아이 1명당 5040만원의 육아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이 효과 때문인지, 지난해 강진군 출생아 수는 154명으로, 전년(93명)에 비해 크게 늘었습니다. 물론 이런 혜택만 노리고 사람들이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닌다면 총인구의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원을 다 받은 뒤,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 버릴 수도 있죠. 그래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출산 지원을 늘려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수도권 집중은 지금도 진행 중

주목할 부분은 ‘지방 소멸’ 위험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지방의 젊은이들이 진학과 일자리를 찾아 서울과 수도권으로 옮겨가면서 각 지방은 자생할 수 있는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반면 수도권은 인구 집중과 과밀화로 먹고살기 위한 경쟁이 더 격화되고, 집값과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뜁니다. 아무리 정부가 출산장려금을 지원해도 이 돈이 학원비와 주택 관련 대출의 빚을 갚는 데 들어가고 출산 확대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고우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연구교수가 초저출산을 겪는 53개 국가 및 지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큰 도시의 인구 비중이 16.2% 이상인 경우,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아지는 정도가 더욱 커집니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입니다. 일자리나 진학을 위해 자기가 자란 지역을 말 그대로 ‘탈출’하려는 젊은이들을 그 지역에서 잘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지방 소멸 대책이 곧 저출생 극복의 중요 해법이 되는 겁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하는 소멸위험 자료에서 우리나라 2대 도시 부산이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진입했다는 뉴스는 우려를 더합니다. ‘소멸’이란 단어가 주는 과장된 느낌은 경계해야겠지만, 시골만 소멸되는 게 아니라 지방 대도시도 인구가 줄어 활력을 잃어간다는 얘기는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지방 소멸이란 말은 우리보다 이 문제를 먼저 경험한 일본에서 2014년부터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용정보원이 같은 해인 2014년부터 소멸위험지역을 조사했는데요,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77곳(33.8%)이 소멸위험지역으로 꼽혔고, 지금은 이게 121곳(53.1%)까지 늘어났습니다. 분류 기준은 가임기 여성과 고령자 수의 비중입니다. 즉 지역 내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눠 그 값이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합니다. 아이를 낳을 여성은 적고 고령화는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죠.

정부의 인구 대책은 결론적으로 인구의 지역 간 이동, 사회적 이동 문제까지 풀 수 있어야 합니다. 수도권 인구는 2011~2016년 빠져나가는 숫자가 많았지만, 2017년부터 작년까지 7년 연속 순유입이 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에만 4만7000명이 순유입됐죠. 수도권 집중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NIE 포인트
1.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 그동안 어떻게 짜여져 왔는지 확인해보자.
2. 수도권 인구 순유입이 2017년부터 다시 늘어난 원인에 대해 알아보자.
3. 지방 소멸 위험을 줄이거나 속도를 감속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7월 17일)
제목: "정답과 노답의 사이에서 “
말씀: 사도행전 16:19-26
설교자: 최민규 부목사님
-----
 
*사도행전 16:19-26,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
 
▶여러분들은 정답이 좋으십니까? 노답이 좋으십니까? 어 노 답의 의미는 답이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정답이 좋으시죠. 네 다시 질문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정답이십니까? 노 답이십니까? 여기서 정답이라고 말씀하신 분들은 답이 없으신 분들이십니다. 정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삶은 많이 없을 것입니다. 인생 만사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죠. 인생의 모든 것들이 새옹의 말과 같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 의미는 인생의 회복 화와 복이죠. 즉 행복과 불행은 변수가 많으므로 예측하거나 단정하기 힘들다. 라는 의미입니다. 화(禍)가 복(福)이 될 수 있고 복이 화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 인생의 정답이 노답이 될 수 있고, 인생의 노 답이 정답이 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답 같은 노 답을, 노 답 같은 정답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도 노 답과 정답의 사이에서 머뭇거렸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삼손이 그렇죠. 삼손은 나실인입니다. 구별된 사람이죠. 삼손은 블레셋을 무찌르는데 쓰임 받았던 사사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실은 많은 오류가 있죠. 그는 포도주를 가까이하고 시체를 만지며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살아갔던 사사였습니다. 사사기 14장 7절 말씀해 보면, 그의 삶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는데요.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사사기 14장 7절,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삼손의 눈에 들었다란 의미는 삼손이 그 여자와 동침하였더라. 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즉 자신을 보는 대로, 자신이 느끼는 대로,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갔던 사람이 바로 삼손이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히브리소의 기자는 삼손을 믿음의 용장(勇將)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 히브리서 11장 32절에서 33절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2-33절,
32.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믿음의 용장임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에게 질문 드리겠습니다. 삼소는 정답입니까? 노 답입니까? 답답이죠.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도 정말로 믿음과 정답과 노답 사이 안에서 정말 머뭇머릇, 머뭇거리며 갈등했던 사람이 바로 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 사건을 좀 말씀드리자면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바로에게 넘겨준 사건,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넘겨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지 못하고 화가를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사건, 하나님께서 모래를 봐라. 하늘의 별을 봐라. 내가 수많은 것들을 너에게 약속해 줄 거야. 그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 채,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죠. 불순종이죠. ‘어떻게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겠습니까?’ 라고 하나님을 비웃었던 사건, 하지만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거침없이 바친 사건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거장으로 거듭나죠. 아브라함은 정답입니까? 노 답입니까? 답답 답이죠. 아브라함처럼 정답과 노 답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요?
 
제가 주일학교 살고 11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이제 교구로 넘어와서 다락방 순장님들 다락방 순원들을 신망하는데요. 여러분들의 가장 많은 기도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게 하옵소서, 내지는 우리 자녀들이 교회에 꼭 나오게 하옵소서, 내지는 우리 자녀들이 믿음의 회복을 시켜 주옵소서, 자녀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답답할까요? 노 답일까요? 고등부 사역하면서 어떤 한 녀석이 저의 손을 꼭 잡으면서 기도 제목을 이렇게 주었습니다.
 
목사님, 우리 엄마가요. 교회에서만 순장님이 아니라, 집 안에서도 순장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도 제 아내가 순장이거든요. 경제적인 상황은 어떨까요? 코로나 이후에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우리 성도님들은 겪고 있죠. 건강의 문제는 어떨까요? 암에 걸리신 분들, 지금도 응급실에서 생사를 왔다 갔다 하시는 분들, 굉장히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이라는 정답, 신앙일이라는 신앙이라는 정답을 알고 있지만 관계의 문제,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느끼는 삶의 먹먹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제가 2008년도서부터 10년도까지 사랑의 교회 유아부를 섬겼습니다. 유아 부 설교 굉장히 잘합니다. 자동행전 3장 16절 말씀!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제가 사도행전 3장의 말씀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했는데요. 그 설교의 핵심은 ‘성전미문에 있는 장애인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그 설교를 했던 거예요. 굉장히 잘 했습니다. 교만했던 거죠.
 
홈페이지에 어떤 반응들이 올까 막 가슴이 쿵닥 콩닥 뛰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근데 한글이 올라온 거예요. 8월 2일 설교를 들으면서 점점점.... 내심 아 저를 칭찬해주는 그 대응이겠구나,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걸 클릭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내용을 보고 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글이니 그 내용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명입니다.
 
※저희 수민이는 교회에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선생님들도 너무 헌신적이시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 가서 친구들 만나는 것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8월 2일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답니다. 라는 순간서부터 가슴 막 후당당 뛰는 거예요. 이제 큰일 났다 수민이는 걷지 못합니다. 그날 설교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베드로 이야기를 듣고, 제게 조그마한 소리로 말하더군요. 엄마 나도 걸을 수 있어. 4~5세의 아이가 성전미문에 있는 앉은뱅이 장애인을 고침으로 말미암아 엄마 4~5세 여자아이가 나도 걸을 수 있어.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보세요. 나도 걸을 수 있어. 하반신 마미로 신경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걸을 수 없는 수민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순간 난감했습니다. 그래 예수님을 믿으면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라고 해야 하는 건지, 4살짜리 아이한테 저건 그냥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신지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야 너무 희망을 많이 가지면 너의 마음이 아프단다. 라고 이야기해 줄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바디메오의 눈을 고쳤다는 내용이 나왔을 때도 수빈이가 혹시라도 그걸 자기한테 적용시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는데 저는 하나님을 믿지만 당장 기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걷게 해줄 수 있다고 아이에게 말해 주고 싶지는 않고, 그렇게 아이가 믿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도사님, 선생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이라는 정답을 알고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정답을 알고 있어요. 기도, 찬양이라는 정답을 알고 있지만 막상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노 답인 환경과 상황이 너무나도 많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잠언 16장 구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16장 9절,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답은 알고 있지만, 이 땅 가운데 두 발을 내딛고 살아가는 우리의 걸음은 노 답인 상황이 너무나도 많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것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조금 더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숙된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성경에 나오는 배경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의 시작점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세워진 이방 교회를 돌보기 위하여 실라와 함께 떠나기 시작합니다. AD 49년에서 52년까지 3년간 약 2500에서 5600킬로미터를 여행하였습니다. 굉장히 많은 그 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성경 말씀이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죠. 무엇보다 2차 선교여행의 가장 큰 열매는 유럽 지역의 복음이 처음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선교 팀이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 성에 들어갔을 때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정답이구나!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와 그 가족의 예수를 믿게 된 것이죠. 16장 14절 하반 절에서부터 16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14-16,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 성에 들어가서 루디아와 그의 가족에게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지요. 그들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4명의 선교사가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함으로, 자신의 믿음의 실제적인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답이죠.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요? 아 이렇게 복음의 열매들이 맺혀가는구나, 더 복음의 열매들이 맺히겠지. 정답의 삶을 살 수 있겠지. 그런데 이렇게 사역이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는데 이후 노 답의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바울과 신라는 기도하러 가는 도중에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엄청 괴롭혔던 것 같아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조국 사도바울이여 우리를 고쳐주소서 막 이렇게 엄청 괴롭혔던 것 같애요. 그러자 바울은 그녀가 그녀는 귀신 들려 있었고, 상당한 주인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주었던 귀신 들린 여정이었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이로 인해 주인들은 이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화가 난 주인들이 바울과 신라를 고발하죠. 사도행전 16장 20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등장합니다.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수익의 소망이 끊어졌기 때문에 복수를 하게 된 것이죠. 주인들은 두 사람이 빌립보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로마 사람인 자기들도 인정하거나 행하지도 않는 관습을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는 부랑 유대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문제는 고소에 대한 진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바울과 실라는 즉석에서 옷이 벗겨졌고, 간수 들에게 넘겨져 심한 매질을 당했던 것이죠. 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2절 23절 말씀이,
 
*사도행전 16: 22절 23절,
22 우리가 일제에 일어나 고발하니 상간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세계 선교라는 성령의 역사라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라는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한 발 한발 내딛는 그 순간 정답이 아닌 노 답 같은 인생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이때 우리는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인생의 먹먹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가 바로 이 장면에서 보여준 믿음의 자세는 정말 아름다운 자세요. 우리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신앙의 모범입니다. 그 두 가지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노 답과 같은 환경에서도 신앙의 정공법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 25절 말씀을 다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5절 말씀입니다.
 
I. 첫 번째- 신앙의 정공법.
 
*사도행전 16:25,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함에 죄수들이 듣더라.
-노 답과 같은 그 환경 가운데 인생의 칠흑과 같은 한밤중 그 가운데, 기도와 찬양으로 그 모든 상황을 극복하며 이겨내려고 했던 선교사가 사도바울이요. 실라 임을 성경 말씀이 증언(證言)해주고 있는 것이죠. 정공법(正攻法)의 사전적 의기는 의미는 기교한 꾀나 모략을 쓰지 아니하고 정정당당히 공격하는 방법입니다. 기교나 꾀를 쓰지 않는 거예요. 인생의 한밤중일 때, 노 답인 그 상황에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바울과 실라가 붙잡았음을 성경 말씀이 증언해주고 있는 것이죠. 바울과 실라는 심한 매질과 차꼬라는 이중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니엘도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붙잡았던 신앙의 위인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모략 가운데,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 말씀에,
 
*다니엘서 6장 10절,
10 다니엘이 조서의 왕의 도장에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3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인생의 노 답인 환경 가운데 인생의 한밤인 그 환경 가운데 기도와 말씀과 찬양밖에 없구나, 이것을 깨달았던 거죠. 여호사밧은 어떻습니까? 암몬이 쳐들어왔을 때, 모압이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역대하 20장 18절 19절 말씀에,
 
*역대하 20장 18-19절,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 하니라.
-찬성하였다. 찬송을 시작하자마자 전쟁에서 이겼음을 우리는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아! 그렇다면 우린 인생의 한밤 가운데, 인생의 노 답인 환경 가운데, 말씀과 기도와 찬양 신앙의 정공법을 붙드는 신앙인이 되어야 되겠구나. 이런 결단을 이런 멋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신앙의 정공법에 부흥이 가정에서 먼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도와 말씀과 찬양이 살아있는 우리 가정,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 말씀대로 기도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 부모의 모습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는 고등부를 6년 동안 섬겼습니다. 아이들에게 항상 강조했던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믿음, 소망, 사랑, 다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음, 소망, 사랑 다음에 제가 그 고등부 때 올라가 가지고 설교하기 전에 믿음 소망 사랑하면, 아이들이 의리!!, 의리입니다. 사람이 좀 의리가 있어야 됩니다. 4가지 덕목이 의리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자꾸 주입시켰어요. 그 의리는 하나님에 대한 의지를 좀 표현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너희와의 의리, 선생님과 너희와의 의리, 친구들과 너희와의 의리, 나와 너희와의 의리를 꼭 지켜서 하나님께서 핀셋으로 정해준 이 자리 꼭 지켜라.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아이들의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의리를 안 지키는 거예요. 의리 없어요. 예를 들어서 신앙과 자신의 학업이 충돌될 때 의리 안 지켜요. 신앙과 관계적인 문제가 충돌될 때, ㅇ의리 안 지켜요. 신앙과 경제적인 환경이 충돌될 때 의리이 안 지켜요. 교회를 떠나갑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뭐가 문제일까? 제가 하도 죄송합니다. 열이 받아서 이 주제를 가지고 소논문을 썼습니다. “아이들은 왜 의리가 없을까?” 진짜 썼습니다. 그 결론은 그 결론은 결국에는 바로 무엇이냐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아이들이 왜 의리가 없는지 아십니까? 가정이고, 부모예요. 부모가 믿음 적으로 흔들리면 우리 아이들도 흔들려요. 가정 안에 믿음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신앙도 뿌리내리지 않아요. 제가 한번은 이대 교육 공학 박사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자녀에게 있어서 우리 부모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전부입니다. 전부래요. 부모의 신앙이 전부래요.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부친께서는 은사가 있으셨는데, 사업을 말아 드시는 은사가 있으셨습니다. 뭐 하면은 다 이제 말아 드시는 거예요. 만지면 다 말아 드시고, 아 정말 월요일에도 같이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셨는데, 아버지께 입으로 직접 시인하시더라고요. ‘왜 그때는 그렇게 안 됐는지 모르겠다.’ 이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다 말아 드시는 은사가 있으셨습니다. 근데 참 안타까운 것은 화를 죄송합니다. 술로 푸셨습니다. 이제 사업이 안 되시는 것을 늦게까지 술을 드시고 오시면 새벽 1시 2시예요. 와 그때 막 난리가 나는 거예요. 그 당시에 막 정말로 비참하고 처참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제 무서웠기 때문에 이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으면 다른 척을 했죠. 그러면은 모든 상황을 저희 어머니께서 온몸으로 다 받아내셨습니다. 굉장히 처참했고, 비참했고 어려웠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이불을 들고 나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너무 힘드니까, 너무 어려우니깐 집을 나가시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새벽 6시 반에 다시 들어오시는 거예요. 또 그런 일이 반복되면 어머니께서 이불을 들고 나가시는 거예요. 새벽 6시 반이 되면, 다시 들어오시는 거예요. 하루는 제가 어머니께서 이 새벽에 어디를 저렇게 가시나 몰래 따라가 봤습니다. 빌라 옆에 조그만한 교회가 있었는데, 입을 뒤집어쓰시고 철야 기도를 하셨던 거예요. 제가 기도하시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봤습니다.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아요. 이불을 뒤집어쓰시고 남편을 위하여, 저희 누나를 위하여, 저를 위하여 눈물로 밤새도록 기도 하셨던 거죠.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신앙을 저희 아버지 꺾지 못하셨습니다. 오히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전도하셨고, 할아버지 할머니 주변에 있는 모든 식구들을 전도하셨습니다. 아! 믿음이 이렇게 강한 거구나, 믿음은 참으로 아름다운 거구나, 믿음은 참으로 숭고한 거구나, 믿음은 능력이 있구나, 이걸 깨닫게 되었어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명절 때 되면, 저희가 저희 누나네 집에서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근데 이제 제가 그래도 목사니깐 예배를 드리고 맨 마지막으로, 아버지 한 말씀 하십시오. 라고 제가 건의를 드렸어요. 근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안경을 탁 벗으시더니, 막 오열을 하시는 거예요. 손주들도 다 있고 매형도 있고, 제 아내도 있는데, 막 우시는 거예요. 저는 속마음을 또 시작됐구나. 그때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눈물을 다 닦으시더니, 이런 말씀하셨어요. “나는 우리 집에서 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집은 너희 엄마가 기도와 말씀으로 세운 집이다. 너희도 힘들더라도 인생을 길게 바라보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가정은 너희 엄마가 기도와 말씀으로 세운 집이다.” 저희 부친께서는 70대 중반이신데, 아 70 중반에 제가 처음으로 이 고백을 듣게 된 겁니다.
 
-우리가 인생의 노 답인 환경 가운데 인생의 한밤중인 그 환경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알려 수 있을까요? 신앙의 정공법, 기도와 말씀과 찬양 외에 우리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을 알려주신 적이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러한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오직 신앙의 정공법, 정공법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가정을 세우고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님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첫 번째 신앙의 정공법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의 전 존재를 내어 드리는 거예요. 26절 말씀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II. 두 번째- 하나님의 섭리
 
*사도행전 16:26,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과 신라가 한 것은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계속 찬양 적으로 암송했던 것 뿐이죠. 그거 왜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 지진을 일으키셔서 옥터를 움직이고, 문을 열어주시므로 모든 사람의 메인 것을 벗겨 주셨다. 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하심이 그들의 삶 가운데 있었음을 우린 알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저는 항상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왜 바울과 실라가 침묵했을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 권자였습니다. 그러한 대우를 안 받아도 되는 사람들이었어요. 로마 시민이 법정 앞에 설 때 죄의 목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매질이나 고문을 당하지 않을 특권이 있었습니다. 이유 없이 때릴 수 없다. 라는 거예요. BC 2세기 제정된 법에 따르면, 로마 시민들은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형태의 처벌을 면제받았으며 법과 관련해서 설정된 가치 있는 특정 권리들을 누렸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과정을 겪어야 됐고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신문이 필요했고, 적당한 절차와 합리적인 이유들이 있어야 됨을 어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때린 거예요. 근데 침묵한 거죠. 37절 모든 상황이 끝난 이후에 바울이 다음 같이 얘기합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너희가 묻지도 않고 로마 사람들을 이렇게 대우해도 되느냐?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이에 로마 관리들은 그들이 로마 사람인 것을 알고, 듣고 두려워하였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 상황 가운데 바울과 실라가 침묵했을까요? 그것은 고난 앞에 노 답이라는 환경 앞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록 노답인 환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인생의 한밤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을 거야.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을 거야.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거야. 라는 마음의 믿음의 확신이 있었던 것이죠. 섭리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을 유지하시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참여하시며, 만물을 그들의 지정된 목적으로 인도하시는 신적 에너지의 지속적인 실행이다. 칼빈은 이를 하나님의 돌봄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이 유지하시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참여하시며 만물을 하나님의 지정된 목적으로 인도하시는 신적 에너지의 실행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힘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 바로 섭리다. -칼빈-
-라고 하는 것이죠. 비록 노 답과 같은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심이 하나님의 지속적인 신적 에너지가 그들의 삶 가운데 있음을 바울과 실라는 믿었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집니까? 칼로 자결하려던 간수를 살립니다. 그의 집에 들어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세례를 베풀고 식사 교제를 합니다. 34절 말씀에, “그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하니라.” 노 답과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그 가운데 있음을 믿고 침묵하며 나아갔던 것이죠. 여러분들 환경 가운데 삶 가운데 노 답인 환경이 있습니까? 그런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돌보시고, 위로하시며 마침내 결국 우리의 모든 기도 제목을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저의 그 신대원(신학대학원) 동기 형이 1명 있었습니다. 그 형에게 소식을 이제 저희가 목사한테 받고 캄보디아 땅으로 선교를 떠나간다는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훈련을 받고 아내와 함께 캄보디아 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2018년도에 사랑의 교회, 고등 1~2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캄보디아 선교를 갔을 때, 그 선교사님 같이 만나면서 교제하기도 했었습니다.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언어도 배우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열심히 일하고,,, 그런데 뜻밖의 비보(悲報)가 전해졌습니다. 제 최원예 선교사님이시거든요. 주일날 첫 번째 캄보디아어로 설교를 하고, 그 저녁에 쉬던 도중 심정지로 세상을 떠난 거예요. 첫 번째 캄보디아어로 설교를 한 다음에 세상을 떠난 거예요. 사모님 홀로 남겨둔 사모님은 유방암에 걸리셨습니다. 제가 만나 뵀을 때는 머리가 없으신 거예요. 머리가 노 답이죠. 그 삶을 우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좀 흘러 신대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한 누님께서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 글을 읽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이 글을 나누기 원합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실 수 있다. 하나님 제 얼굴에 보면 이 오른쪽엔 상처가 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이쪽을 피해서 제 잘생긴 이쪽을 보여줍니다. 보기 흉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 이쪽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쪽을 통해 일하실 수 있다. 라는 거예요. 개인적인 기대가 하나님의 방법과 다를 때 우리는 그것을 흔히 고난이라고 부른다. 어떤 이에게는 죽음이, 병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가난이 외로움이 그렇겠지. 그러나 우리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여정은 그것을 고난이라고 부르는 대신, 아멘!!으로 부르기를 선택하는 여정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우리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법으로 배워가고 그 간극을 좁혀 나간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앞에 그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의 뜻 앞에 아멘!의 작은 읊조림을 해본다. 하나님, 하나님, 아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 아멘!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거죠.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는 거죠. 모든 것에는 갈라진 틈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죠. 하지만 그 갈라진 그 틈새를 통하여 반드시 빛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두 가지입니다. 신앙의 정공법으로 나아가는 것,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해피엔딩, 하나님의 해피엔딩,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에 이 한 구절을 위해서 사도 바울과 신라가 고생했던 거예요.
 
*사도행전 16장 31절,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이 한 구절을 위하여 바울과 실라는 신앙의 정공법으로 전적(全的) 위탁(委託)으로 나아갔던 것이죠. 인내 하셔야 합니다. 버티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해피엔딩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대다 하나님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이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결말은 하나님의 해피엔딩,
 
사랑하는 성도님들, 노 답인 환경 가운데 있으십니까? 다른 것 의지하지 마시고 신앙의 정공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인생의 한밤중에 계십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들을 이끄시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멘 하나님 아멘!!! 믿음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해피엔딩을 기다리는 인내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요약
우리의 인생이 한밤중일 때, 다른 것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오직 전적 위탁함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앙의 정공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을 기억하여, 주님 앞에서 참된 신앙인으로 바울과 실라처럼 정답이든 노 답이든 간에 주님 앞에 진정한 헌신자로 살아내어 주님의 기쁜 자녀로 영광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14일) 1부, 4부
제목: "죽음을 뚫고 생명으로"
말씀: 사무엘 상 2:10, 사무엘하 22:50-51,
누가복음 1:46-48
대표기도: 유종성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김정우 목사님(한국신학정보연구원)
ㅡㅡㅡㅡㅡ
 
*사무엘상 2:10,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사무엘하 22:50-51,
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51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누가복음 1:46-48,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
 

▶김정우 목사님
-한나의 인생에는 모순이 많았습니다. 그 이름은 한나인데 은혜를 뜻합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그녀의 태를 닫아서 임신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생명의 문이 닫혔는데, 주님의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한나는 거의 남편 엘가나의 첫째, 아내입니다. 첫째는 창세기 일장의 첫째, 날처럼 특별하고 유일하고 유니크한 날인데 첫째인데 넘버원인데 둘째, 브닌나에게 습관적으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온 나라가 축제를 맞이하면 모든 사람들이 가정들이 실로 성소로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1년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을 먹는 날인데 브닌나는 주님의 집에서도 한나를 괴롭혔습니다. 한나 너 안나 하나님이 너희 태를 닫았는데 무슨 한나 그때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나 보고 왜 우세요. 왜 안 막으세요? 왜 슬퍼하세요?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소?” 웬 근거 없는 자신감? 자식을 낳을 수 없어서 고통당하는데 내가 당신에게 10아들보다 낫다 이 말이 무슨 도움이 되죠. 엘가나는 한나의 깊은 고통에 신체적이고 영적인 고통에 공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나를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의 정서에 대해서 반응하는데 늘 서툴러요 의도는 좋은데 결과는 늘 나빠요 나는 나의 아내에게 사과를 하거나 위로를 할 때면 늘 더 화내게 하는 특별한 의사가 저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서 성전에 들어가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대제사상 앨리가 한나를 보고 술을 그만 마시게나. 포도주 끊으세요! 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제사장께서 이렇게 피상적으로 단정적으로 나를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인생에서 모순에 부딪치면 어떤 반응을 합니까? 당황스럽고 화가 나고 좌절스럽고 다 포기해버리고 싶습니다. 또 때로는 지나치게 방어적이 되어서 오히려 공격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좀 살아보니까 모순이 인생의 기회구나! 아이러니가 패러독스의 기회구나! 모순이 역설의 기회구나! 아 이 모순은 나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라고 하는 현실로 내게 다가온 것이구나! 한나는 자신의 모순을 방치하지 않고 대면하였습니다. 직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뚫고 생명으로 나아갔습니다. 한나는 태가 닫혔지만 아들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문이 꽉 닫혔는데 열어달라고 두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닫았으니 하나님이 여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나는 믿음을 선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직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힘을 준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원인과 결과를 방정식대로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은 곡선으로 일하시는 분이고, 변화구를 던지시는 분이고 바나나킥을 차시는 분입니다. 김중권 목사님의 말씀대로 변장된 축복으로 늘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한 나는 하나님께서 만약 나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 아들을 바치겠다고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역설입니다. 평생 갖고 싶은 것을 주시면 내가 그것을 드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상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모든 권리를 내가 포기(抛棄)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유일한 아들 사무예를 하나님께 평생 동안 드리기로 서원하고 있습니다. 평생 드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자식의 연대감은 우리 남자들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자들에게 자식은 분신과 같습니다. 살이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인데 평생 드리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날 한나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래 기도 했습니다. 기도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기도가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것들이 폭발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생명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불임의 태, 생명이 꿈틀거렸습니다. 죽은 태가 살아났습니다.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뭔가 약동했습니다. 어렵던 마음이 녹았습니다. 막혔던 것이 뚫렸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위축되었는데 영원히 팽창하고 감각이 살아났습니다. 노래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한나의 노래는 대작은 아니지만, 아주 강력한 노래입니다. 이미지도 강력합니다. 플롯도 탄탄하고 주제가 선명합니다. 한나는 내 뿔이 높아졌다. 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그동안 너무나 뿔이 없어 가지고 치이고 살았습니다. 조롱과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뿔이 솟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내면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니까 내면에 힘이 생겼습니다. 기세가 생겼습니다. 기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자신 속에 권위와 위엄이 생겼습니다.
 
뿔이 솟으니까, 추위의 다른 짐승들이 감히 덤비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들에게도 뿔이 솟아나기를 축원 드립니다. 자신의 뿔을 높여주신 주님을 한나는 찬양했습니다. 여호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다. 주님밖에 다른 이가 없다. 우리 하나님과 같은 반석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비교 불가능한 분이었습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었습니다. 거룩하신 주님께서 우리 역사와 인생에 개입 하시고야 만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로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이 세상의 질서는 영원한 것 같지만 주님은 권력의 도치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용사의 활이 어느 날 꺾여버리고 넘어지는 자가 힘으로 뛰뛰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경제력의 도치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늘 부익부 빈익빈의 원칙이 역사의 철칙이 되지 않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해서 품을 팔고, 줄이던 자들은 다시는 줄이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생명력과 생산력과 영향력의 도치를 만드시는 분이라고 노래합니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가 히브리어로 아카라, 아카라 가슴 아픈 단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로 가 일곱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많은 자녀를 낳았던 자는 쇠약하다. 한나 자신의 체험이었습니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한나는 이 시의 정중앙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6절예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살리시기도 한다. 죽이시기도 하고 살리시기도 하고 서울에 내리기도 하시고 거기서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 이 시에서 한나의 시에서 가장 놀라운 말씀입니다. 정중앙에서 터닝 포인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왜 이것이 한나의 시에서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까?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주님에 대한 찬양이 왜 놀라운 말씀입니까? 왜냐하면, 이 말씀은 모세의 노래를 인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2장 39절에 모세가 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32:29,
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원 사를 총정리하면서 모세가 마지막으로, 했던 것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 시도 하는 주님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한나는 모세의 고백과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의 탄생과 소멸은 단순한 자연적 과정만은 아니다. 주님은 인생과 역사에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한나가 연이어서 7가지를 분사 형으로 말하는데 하나님이 늘 하시는 일, 지금도 하고 계시는 일, 일곱 아들을 얻은 한나가 7가지 찬양을 하시는데,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내리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이 모든 일을 주님께서 하신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한 민족과 나라와 가정과 개인이 높아지고 낮아지는 데는 주님의 주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높아짐과 낮아짐은 인셜라도 아니고 별자리도 아니고 묘 자리도 아니고, 주님의 주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주님은 가난한 자라.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 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 도다. 비로소 한나가 부자가 아니라 귀족이 아니라 가난한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빈궁한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물질적이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회에서 궁핍한 사람들에게 1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 정치적으로는 장로교입니다. 신학 사상으로 말하자면, 개혁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실천에 있어서는 복음주의라고 합니다. 복음주의운동은 1846년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한참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사회적 모순이 너무 많이 일어났고 어린아이들을 일찍 공장에 보내고 하루 종일 일하게 하는 그런 모순이 있었습니다. 사회적 모순이 극심했고 그래서 1948년에는 칼 막스와 앵겔스가 커뮤니스트 매니페스토, 공산당 선언을 하는 그런 역사적인 배경 가운데 복음주의가 우리의 믿음은 복음 증거뿐만 아니라, 사회 참여요. 사회 개혁에 있다는 것을 선언하면서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주의 사상을 이어받은 로잔 언약은 복음 전도와 사회적 관심은 상호 배타기적이지 않고 교회는 이 두 가지 의무를 늘 같이 수행해야 한다고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한교섬도 하고 사랑 광주리도 하고 열심히 이 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 주님은 빈궁했던 우리 가난했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 대한민국을 이렇게 부강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가난한 자 빈궁한 자는 본질적으로 영적입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을 영광의 자리로 기어이 인도하십니다.
 
한나는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 받은 저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로 맞히고 있습니다. 아직 왕이 없습니다. 사사시대 말기입니다. 그렇지만 한나는 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구약성경에서 여기에 처음 나오고 있습니다. 한나는 이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누가 이룰 것인가? 가난한 자를 진토해서 일으켜서 영광의 자리로 인도할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실현할 자가 누구인가? 메시아가 와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뿔을 높이신 주님께서 메시아의 뿔을 높이셔서, 이 사사 시대의 마지막 대혼란을 정리해주실 것을 한나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나는 죽음을 뚫고 생명으로 나아갈 자신뿐 아니라 메시아 왕을 통하여 온 나라가 영광의 자리로 나아갈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한나의 기도는 어떻게 성취되었을까요? 사무엘서는 한나의 노래로 시작을 하고, 다윗의 노래로 마치고 있습니다. 한나의 노래가 사무엘서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한나의 기도를 붙들고 그 꿈을 이룬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한나의 기도가 예언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이 한나의 노래를 꽃피우고 확장하였습니다. 사무엘하 22장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51절 52절, 대작은 시를 썼습니다. 왜 시인들은 이런 대작은 시를 쓸까요?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모순을 역설로 만드신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가, 그 수많은 죽음을 뚫고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가, 다 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후세에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시인으로서, 내 시가 얼마나 멋지겠어요. 저 있는지 여러분들 알기나 하시오? 이런 걸 또 좀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큰 그림을 우리에게 큰 그림을 그려줘서, 우리가 너무 작은 그림을 그리고 살면 모순 속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늘 큰 그림을 우주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받은 구원이 큰 구원이었다고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런데 놀랍게도 한나의 노래를 계속해서 가져오고 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뿔을 높이신 주님의 능력을 찬송하다가 마지막으로,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주님께서 높이 들릴 것이라고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이 이제 뭐라고 찬송합니까? 3절에 보니까, 주님은 너의 구원의 뿔이시다 주님이 내 구원의 뿌리시다. 한나가 바라본 그 뿔이 다윗에게 난 것입니다. 한나는 내가 주님의 구원을 기뻐한다고 노래했는데 다윗은 주님께서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 하셨도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구원에 있어서 아주 강력한 이미지는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다. 라는 노래였는데 다윗은 이 반석 이미지를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구원의 피난처가 되는 이 반석 이미지를 이 시에서 계속 뿌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영원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내가 피할 피난처시여 나이 망대시오. 32절에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왜 누가 하나님이시며, 우리 하나님 왜 누가 반석이시냐? 47절에,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인생은 너무나 가변적이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나는 늘 흔들리고 나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지만 주님이 나의 반석이시다. 거대한 삼각산 같은 인수봉 같은 마사달 같은 영원히 피할 반석이라고 한나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 나에게 원수가 있었고, 대적이 있었는데, 다윗에게 대적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내 대적이 강한 원수들이었다. 그들은 프로들이었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었다. 사악한 자들이었다고 원수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한나의 노래의 핵심 주제는 여호와는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고 노래했는데 다윗은 28절에서 주께서 권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라. 사무엘서 전체 주제가 높이시는 하나님, 낮추시는 하나님, 교만한 자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센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주님이 기어이 낮추고 마시는 엘리를 낮추시고, 사울을 낮추시고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겸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무엘을 높이시고 다윗을 높이시는 이 운명의 역전을, 사무엘에서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데, 곤고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주님을 그러니까 다윗은 늘 마음의 자리가 영광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곤고한 백성들의 신음에 그들의 고통에 그들의 토탄에 그들을 어떻게 새롭게 하고 갱신할 것인가에 다윗은 있었습니다.
 
한나가 마지막으로, 여왕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며, 자기 왕에게 힘을 주소서! 라고 기도를 했는데 바위선 44절에 “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전하사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나를 섬기리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주님께서 다윗을 모든 열방의, 모든 민족의, 모든 언어의 머리로 대표로 세우실 것까지는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든 열방의 메시아로 세울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도 한나도 못 본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나의 핵심 주제는 영원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서울에 내리기도 하시고 거기서 올리기도 하시는 분이었는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수를 다 물리쳐 주실 것을 바라보았고, 거의 원수들을 스올에 던질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자신은 영광스러운 메시아가 될 것으로 착각했는데, 이 스올에 던져진 사람은 거의 원수가 아니라, 다윗 자신이었습니다.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다. 다윗도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죽음의 물결이 죽음의 물결 가운데 다윗은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스올의 포승줄이, 죽음의 사자의 포승줄이, 나를 꽁꽁 매어 싸고 삼왕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메시아가 스올에 던져졌습니다. 다윗은 온갖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어디에 있는가, 하느님의 섭리가 어디에 있는가, 다윗은 하나님의 비선형적 통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윈이 거기에 자신이 이렇게 내가 열심히 사는데 어찌하여 내가 죽음을 당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는 죽음 가운데서 기도했고, 다윗이 스올에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다윗을 건지시기 위해서 하늘 성전에서 친히 내려오시는데, 하늘장막을 찢으시고 친히 천군천사와 바람 날개를 타고 걸음을 타고 내려오시면서 흑암을 뚫고 내려오시고 그러니까 땅이 막 뒤흔들리고 지진이 일어나고, 우뢰 소리를 발하고, 그 깊은 죽음의 물 가운데서 다윗을 구원하는 이야기, 하나님의 구원, 우리는 예수 믿어 재산 받는 구원만 생각을 하는데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주적인 전쟁 가운데 하나님께서 물에 빠져 죽음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교회와 성도들을 건져 주시는 어마어마한 우주적 전쟁의 사건 가운데서 다윗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대한민국을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자유 민주주의적인 헌법도 주시고 제헌절도 주시는 이런 하나님을 다윗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다윗이 내가 받은 구원이 큰 구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50절에 다윗은 이름으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 죽게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다. 로 마치고 있습니다. 18장 50절 “내가 모든 열방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하겠다. 주의 이름을 찬양하겠다.” 그런데 바울이 이 말씀을 하나님의 구원 사를 쭉 이야기를 하다가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하네요. 로마서 15장 9절에,
 
*로마서 15:9,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세계 선교의 핵심적인 구절이 되겠습니다. 복음주의 신앙고백을 이렇게 정수로 만든 로잔 언약에서는 이 구절을 가지고 해석을 할 때, 세계의 모든 교회가 홀 처치가, 홀 가스팰을, 온전한 복음을 홀 월드의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한나의 기도를 통해서 다윈을 통하여 이렇게 확장되고 전개되면서 전 세계적인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나라는 망했습니다. 다윗의 후손들은 왕권을 잃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다윗의 꿈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던 한 여자가 있었는데, 나사렛에서 살고 있는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가 이 한나와 다윗의 노래를 가져오면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이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몇 절 되지 않습니다. 참 소박합니다. 수수한 노래입니다. 모짜르트도 여기에서 매그니피컷을 노래했는데, 세바스찬 바흐도, 슈베르트도, 리발디도 누가 복음의 첫 찬양이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노래 자체는 너무나 소박합니다. 한나의 기도와 다윗은 노래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참 담백한데 특별합니다. 유니크하죠.
 
이런 노래가 없죠. 왜요 왜 그렇습니까? 배경이 놀랍습니다. 이 찬양의 배경이 뭐냐 하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잉태하고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갔는데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만나자마자 태중에 있던 태중에 있던 요한이 태 안에서 태 안에서, 기쁨으로 내 복 중에서 뛰놀았도다. 태 속에 있는 아이가 복중해서 뛰놀았다. 이 뛰놀았다는 이 헬라의 단어는 히브리어로 번역을 하자면 춤추다. 의 춤추다 아이가 태속에서 춤을 추는, 아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의 임재를 태속에 있는 아이가, 아기 예수 앞에 6개월 늦게 생긴 아기 예수 앞에서, 임재를 느끼면서 춤을 추는 성령으로 부른 찬양입니다. 성령의 감동 가운데 마리아가 찬양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약동과 충만, 성령께서 직접적이고 전인격적인 감동을 주시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송가는 본질적으로 여기에 있는 모든 구절들이 대부분의 구절들이 하나의 노래에서 온 것이고, 다윗의 노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나가 내 마음이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내가 주의 구원을 기뻐합니다. 라고 찬양했는데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을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 노래의 중심 사상은 48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다 비천하다. 한나는 이 마리아는 자신의 상황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상황을 비천(卑賤)하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말하던 주리던 자, 임신하지 못 하던 자, 가난한 자, 빈궁한 자, 걸음더미에 있는 자, 이것을 추상적으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비천하다 우리가 지금 참 비천하게 되었다. 이것은 마리아 자신의 상황이라기보다는 온 이스라엘의 공동체적인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가 느끼는 비천함은 영적이었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설 때, 우리는 늘 우리가 한없이 비천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비천한 나에게 비천한 나에게,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하겠다.
 
다윗은 큰 구원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후손을 통해서 큰 구원을 바라보았는데, 주님의 큰 구원이 나사렛에서의 처녀 마리아에게 큰 일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너무나 큰일을 이루시기 때문에 만세에, 만세의 나를 복이 있다. 행복하다고 일컬을 것이다. 마리아는 만세에 복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버렸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바빙크라고 하는 이 개혁주의 조직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 특별한 선택과 은혜를 입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성자의 어머니가 되도록 준비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가 자신의 어머니 되기를 원하셨다.
-헤르만 바빙크-
 
구원사의 정점이 하나님이 인류 역사에서 이루실 가장 큰 사건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임마누엘이 되는 이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육신의 영광이 이제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마리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냥 신이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견줄 바 없는 하나님이 영광의 모든 속성을 가지신 그 하나님께서 비천한 인간인 우리와 같이 되신 것입니다. 무한히 유한이 되셨습니다. 영원히 시간 속에 들어왔습니다. 불변이 가변이 되었습니다. 창조주가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지존 자께서 엄마의 태속에 있고 어머니를 젖을 파는 완전한 의존 자가 되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었습니다. 초자연이 자연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신비입니다. 초월입니다. 비선형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공로로,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선행으로 우리의 도덕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하고 똑같은 혈육을 입으시고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시고,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성육신의 은총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이제는 대대로 있을 것이라고 마리아가 말하고 있습니다. 성육신을 통하여 주님의 자비로움이 은총이 우리에게 캐쉬가 된 것입니다. 성육신의 하나님께서 이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히 평생 우리가 어떤 인생의 과정을 통과하든지 간에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53절에 주리는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다. 이제는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경건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이 더 이상 해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이 성육신의 약속은 다윈에게 약속한 것 정도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치 3명의 오페라 가수들이 각자의 아리아를 부르는 것 같은 한나가 자신의 아리아를 불러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51절에 걸치는 찬양을 드리고, 마리아의 그 청순하고 아름다운 이 매그니픽 컷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이 세 사람 다 인생으로 말하자면, 모순의 극치 가운데 살았습니다. 극한 모순 가운데 살아서 극단적 모순 가운데 살았지만 이 인생의 모순을 대면하고 역설로 디바인 패러독스로 하나님의 패러독스로 만들어서 주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 다 각자의 많은 죽음을 뚫고 생명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생명으로 나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몸을 입고 오신 이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도 너무나 많은 모순들, 문명사적인 선언 속에서 우리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돈과 모순 가운데 있지만 우리의 수많은 모순을 맞닥뜨리고 받아들이고, 패러독스로 만들고 주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뿔이 높아질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요약










=====
 

-2부, 3부.
▶설교자: 김장한 목사님(극동방송 이사장)

2부ㆍ3부
제목: "이상적인 교회"
말씀: 사도행전 2:41~47
설교자: 김장한 목사님(극동방송 이사장)
ㅡㅡㅡㅡㅡㅡ
*사도행전 2:41~47,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김장한 목사님(극동방송 이사장)
▶조금 아까 오정현 목사님 전화를 주시면서 거기 지금 몇 시입니까? 그러니까 토요일 날 저녁 한 7시 반, 8시 됐다고 그러시더라구. 내일 주일날 아마 거기서 설교하시는 것 같은데, 저더러 떠나시기 전에도 목사님 예배 좀 잘 드려주세요.
 
그러고 떠나시더라구 그래서 2부 예배 잘 드렸는데 3부 예배도 잘 드릴 것을 믿습니다. “이상적인 교회”, 오늘 초대교회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하고 사랑의 교회하고 비교를 해 봤는데 그때 피 예배당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을 거라고 느껴지지만 하루에 3천 명이 더해주는 걸 보면은 거기도 많이 모였구요. 그때 찬양대가 여기 찬양대 만큼 했는지, 난 잘 몰르는데 그래도 찬양을 그때 했을 것 같고, 사실 교회는 빌딩이 아니라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교회인 줄 믿으시면 알면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까 2부 예배에 ‘이상적인 교회’ 만약 규정한다면, 오늘 본문에 난 말씀을 근거로 성장하는 교회 그로잉 러치, 어린애가 자라서 성장해야지 정상적이죠. 교회가 개척해 가지고 계속 성장해야 이상적인 교회가 되고 두 번째로, 2부 예배 말씀드린 게 선교하는 교회 고잉 처치, 제가 중앙교에 목회할 때 장기 선교사는 안 되더라도 단기 선교사로도 1번 다녀오라고 내가 목회하는 동안에 우리 중앙 교회 성도들은 다 선교 지를 1번 다녀오라 그랬어요.
 
선교하는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다. 그래서 오늘 세 번째로는 빛나는 교회, 글로잉 트러치 네 번째 눈물 있는 교회, 이제 이렇게 마감이 될 텐데 만약 2부 예배 안 나오신 분들은 아마 카세트 사시면은 2부 예배 설교가 나올 거예요. 자 어느 날 3부에 빛나는 교회가 글로잉 처치, 사도 행전 2장 44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이것이 빛나는 교회, 사실 글로잉 처치, 사랑의 교회 어디서 봐도 빛나는 교회예요.
 
사람들이 많아서도 아니고, 건물이 좋아서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상적인 교회로 인정하시기 때문에 빛나는 교회예요. 울리엄 캐리, 소년이죠.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꿈과 소망 없이 살아가던 울리엄 캐리, 예수님을 믿고 인생관이 완전히 변했어요. 가치관이 달라졌고 꿈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변화를 시켰어요. 울리엄 캐리, 그는 구두 수선 가게를 차려놓고 그 앞에다가 세계 지도를 펴놓고 거기 3가지 표현을 써놨어요.
 
큰 비션을 가져라. 그레이피션, 두 번째로, 큰 기도를 해라. 그레이트 프레이, 세 번째로, 큰 기대를 걸라. 그레이트 익스펙테이션, 그 3가지를 써놓고 매일 구두 수선을 하면서 선교의 꿈을 접지를 않았습니다. 남의 구두 수선 가게에서 수선을 하나 사람이 꿈을 품어 봤자 수선 가게 하나 정도 차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지만은 윌리엄 캐리의 꿈은 그거하고 달랐습니다. 그는 세계 지도를 품에 넣고 그 당시 아무도 외국 선교로 나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자원을 했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습니다. 후원자도 없을 텐데 아내까지도 선교사 나가는 걸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도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선교의 아버지, 선교의 원조 윌리엄 캐리,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꿈을 가졌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일을 해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분 때문에 오늘도 희망차게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빛나는 교회는 꿈과 환상을 가졌다고 하죠.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실천하는 교회, 사자행전 11장 26절에, 만남의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1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실천하는 교회, 행하는 교회 무엇이 달라도 다릅니다. 자기만 위한 교회가 아니라 이웃과 남을 위한 교회, 사회에서 큰 빛이 되는 교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사도행전 4장 13절에,
 
*사도행전 4:13,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우리 한국 부흥의 역사를 볼 것 같으면, 김익두 목사라는 분이 계셨어요. 깡패가 그 동네 친구의 권유로 이웃동네 금산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울리엄 스왈론이라 하는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사람이 변합니다. 김익두 얼마나 개망나니였냐고 할 것 같으면은 교회 부흥이 하고 있는데, 거기 신발을 다 걷어다가 화장실에 집어넣는 사람이었고, 그는 산으로 나무를 해러 한 게 아니라 시장으로 나무를 하러 가가지고 제일 보기 좋은 장작은 자기가 지고 갑니다. 누구도 말하는 사람도 없죠. 그러다가 울리엄 스왈론의 설교를 듣고 김익두 전도사는 다시 태어납니다. 어느 날 신방을 다녀오던 중 김익두 전도사는 거지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고쳐봐 고쳐보겠다고 생각을 하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과수원 돌담 밑으로 거지를 데려가 가서,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했는데 아무 사건이 일어나질 않았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그 자리 도망칠 수밖에 없어서 김 전도사는 자식의 무능함을 탄식하다가 담요를 싸들고 산으로 올라가서 금식과 철화를 하며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나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불같은 성령이 그에게 임했고, 전도사님은 성령의 능력이 충만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오다가 김 전도사는 얼마 전에 앉은뱅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 부끄러움도 없이 그의 손을 잡고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가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김익두 목사의 첫 번째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 후 2만 명의 난치병 환자들을 안수해 기도해서 고쳐 주었고, 208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200여 명의 신학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김익두 목사님과 한국교회 성도들은 정말 군산 천막 교회 집회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고, 교회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6.25 사변이 터짐으로써 공상군에 맞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이런 큰 능력은 기도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죠. 김익두 목사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7절 이하에 보면,
 
*마가복음 9:29,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2:39,
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기도하러, 기도하는 가정은 변화됩니다. 기도하는 개인도 변화합니다. 기도하는 교회도 변화가 됩니다. 기도하는 나라는 반드시 변화가 오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영국의 노예 해방에 운동하였던 울리엄 웨어포스는 자기 아들에게 새벽 기도의 중요성을 관하여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니게 원하는 것이 하나 있단다 그것은 결코 아침 기도를 무시하거나 짧게 해버리거나 성급하게 마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골방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이 하지 않도록 주의했으면 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달리 없다. 만약 내가 아침부터 하나님과 친근한 교제를 하게 된다면 너는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울리엄 웨어포스-
 
- 노예 해방을 지지하고 살아있는 신앙을 행동으로 보여준 투사의 삶이 올리엄 웨어포스라고 하지요 하루에 첫 시간을 어떻게 시작하는가에 따라서 하루의 결과가 어떠리라. 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새벽을 여는 사람은 충만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네 번째로, 어떤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냐, 눈물있는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로잉 처치, 사도행전 2장 44절 45절에,
 
*사도행전 2:44-45,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허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과 함께 울지 않고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과 나누지 못하는 교회는 이상적인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적어도 3번이나 우셨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냐, 새벽마다 나와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면서 통행하는 그런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
 
여집사님이 남편의 무지한핍박을 가두면서도 새벽기도 빠지지 않고 주위를 성소하고, 수요일날 저녁 예배 꼭 참석을 했는데 그 남편은 부인이 교회 다닌다고 얼마나 하루는 그 여집사님이 자기 남편 신발 한 짝을 가지고 새벽 기도에 가서 앞에 남편의 구두를 놓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신발 임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고 이 교회 장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통곡으로 기도를 합니다. 남편이 벌떡 일어나 보니까, 아내가 없어졌어요. 틀림없이 교세 교회 갔을 거다. 교회를 갑니다. 암만 신발을 찾아도 한쪽밖에 없어. 그래서 다른 신발을 신고 교회 가보니까 자기 부인이 자기 구두 1짝을 갖다 놓고 통곡을 하면서 울면서 이 사람이 교회 나와서 회개하고, 교회가 열심히 봉사하고 교회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장로가 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는 그 부인의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은 거예요. 다음 주일부터 교회 나가야지. 부인을 따라서 교회 나가기 시작해서 몇 년 후에 그 교회의 수석 장로가 됐다고 하죠.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그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1절에,
 
*사도행전 20:31,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그랬습니다. 제가 중앙교회 45년 목회를 하면서, 헌금봉토에 기도 제목을 쓰라 그래요. 우리 교회의 기도 제목 90프로가 남편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 제목이에요. 그런 분들이 새벽 예배에 와서 눈물로 통회하면서 남편, 시부모, 예수 믿게 해달라고 통곡하는 사람들, ‘구하라 그러면 너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믄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잃은 영혼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습니까? 여러분 사랑하는 식구들 중에 아직 믿지 않는 사람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 믿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눈물을 흘리면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통곡을 하며 기도를 했나 두 번째로,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잠언 10:12에,
 
*잠언 10:12,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 고 했습니다. 1997년 9월에 소천한 테레사 수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녀입니다. 그녀가 그와 같이 헌신하게 된 삶을 살게 된 경위는 기차를 타고 가는데 도중에 테레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합니다.
 
테레사야, 너는 5만 명의 거지와 2만 명의 문등 환자가 있는 칼카다에 가서, 그들은 길가에서 나서 길가에서 살다가 길가에서 죽는다. 네가 그들에게 잠자리를 주고, 죽을 때 무덤을 만들어줘라. 테레사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면서 2년 동안 인도 여행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48년 8월 8일 마침내 인도 켈커다로 향합니다. 그때 그녀의 팀은 찬송가 1권, 성경책 1권, 입고 있는 수녀복 1벌이 전부였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1벌의 옷이 헤어지면 저는 무슨 옷을 입을지 모릅니다. 오늘 밤 어디서 잘지도 모릅니다. 내일 아침 어디서 먹게 될 지도 모르고 떠납니다. 내 일생을 당신에게 책임져 주시옵소서. 그후 30년이 지난 오늘날 그녀의 수고로 100여 곳에 고아원이 세워졌고, 세계 각처의 사랑의 선교회 미셔너리 오브 처치가 세워졌습니다.
 
저는 캘커다에 가서 테레스 수녀를 두 번 만났습니다. 가서 만나보니까 키가 작은 할머니 양로원도 하고 고아원도 하고 참 굉장히 서민적으로 사는데, 내가 인도 동북부에서 부흥회를 하고 나오다가 갈 거 다 해서 비행기 타고 서울로 돌아와야 되는데 내 가방에 있던 옷 다 넣고, 그때 선물을 15개를 받았어요. 그게 뭐냐, 사람들이 손으로 짠 셔라고 하는 게 있어 담요 비슷한 거, 각 집하에서 나한테 선물 1 주는데 15장을 받았어요. 제가 그걸 갖고 나와서 테레사 수녀한테 혹시 이게 당신에게 필요하면 내가 다 주고 가겠다. 그게 절대 필요하다고 그래서 내가 지갑에 있던 돈 그때 딸라 가져갔죠. 다 넣고 내가 입고 없던 1벌만 남기고 다 주고 그 샤 15개를 거기다 다 주고 왔는데, 참 자기 고국을 떠나서 30년 동안 캘카다에 살면서 그 죽어가는 사람들하고 함께 생활을 하면서 세계적인 우인이 됐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에 어떤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냐? 고린도전서 10장 33절이라는 말씀 그대로
 
*고린도전서 10:33,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오늘 이 설교를 마치기 전에, 예화 하나를 드리고 마칠게요. 열광적인 샘보다 제자가 쉽다는 윌리엄 볼드의 선교적 생애입니다. 윌리엄 볼드라고 하는 학생은 어마어마한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남들은 국내에서 수학여행을 하는데 올리엄 볼드는 그 부모님이 고등학교 졸업 예물로 세계 여행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윌리엄 볼드는 세계 여행을 하던 중에 예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고통 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선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하는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회사의 후계를 포기하고 자신의 성경책을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노 리설(No reserve), 남김이 없이 모두 바친다. 실크 로드로 갔던 이슬람 문화가 많이 자리 잡고 있었을 때의 윌리엄 볼드는 이집트 카이로를 떠나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게 됐습니다. 극에서 위생 비 위생적이지요. 한센 병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윌리엄 볼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은 척수막염이 걸려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책에 이러한 글을 써놨습니다. 노 리트릿(No retreat), 후퇴하지 않겠다. 한 달 뒤에 25살의 나이에 결국 윌리엄 볼드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사망하기 전에 자신의 성경책에 유언처럼 다음과 같은 문장을 실렸습니다. 노 리트릿(No retreat), 노 리그렛(No regrets), 노 리서브(No reserve), 마지막에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을 먼저 보낸 후 그의 어머니는 한센 병 환자들을 위해서 복음 병원을 차려줍니다. 복음병원은 현재 제2 인민 병원으로 이름이 바꿔졌습니다. 윌리엄 볼드는 기린은 작은 역사관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부호의 자제로서 태어난 남부럽지 않은 편안한 삶을 얼마든지 살 수가 있었던 윌리엄 볼드는 자신의 모든 기회, 권리, 소유, 즉 자기 자신을 모두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치고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입니다. 자신이 남긴 말처럼 노 리서브(No reserve)-남김없이, 노 리트릿No reserve)-후퇴 없이, 노 리그렛(No regrets)-후회 없이, 그 수첩에 적어놓고 실천해 옮겼다고 합니다.
 
언제나 자신에게는 노!라고 말하고 예수님에게는 예스! 라고 말을 하면서 살아온 울리엄 볼드, 그가 세상을 떠나 이집트에 있는 그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그는 일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며 형제 사랑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속에 열정이 불타오르며 소망으로 기뻐하고 고난을 인내하며 기도에 힘쓰며 성도와 교통하다가 세상을 떠났느니라.”
 
-참 하나님께 그만큼 바칠 수 있는 윌리엄 볼드를 보면서 오늘 내가 사는 삶이 어떠한 삶인가? 이 교회가 대한민국의 아니 전 세계에 이상적인 교회가 되고, 한국에 있는 많은 교회가 사랑의 교회를 본받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