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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6월 19일)
제목: "바울의 자기소개(自己紹介)"
말씀: 로마서 1:1:-6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윤현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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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6,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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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로마서의 제일 첫 번째 구절인 로마서 1장 1절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구절은 바울의 자기소개입니다. 자기소개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자기소개는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관계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자기소개의 내용은 그 사람의 정체성 및 자격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보를 소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기 위해 선을 보는 경우라든지,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일평생 수고하고 노력해 온 전 생애의 결과물이라고 입증될 수 있는 자기소개를 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가 설립하지도 않은 교회, 그것도 당시 세계 제국의 수도로서 서양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에 있는 교회를 향하여 장문의 서신 서를 쓰면서 자기를 소개합니다. 단순히 설교가 담겨있는 서신 서를 보낼 뿐만 아니라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하여 여러 가지 요구를 하며 이 서신 서를 보냅니다. 바울은 지금 예루살렘을 방문하려고 하는데요. 어 예루살렘에는 바울에게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교회에 이 서신을 보낸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로마 교회가 지지해 줌으로써, 자신들이 바울 자신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을 때, 로마 교회의 지지를 요구하면서 이 서신을 보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바울은 지금 스페인 선교를 하고 싶어 하는데 로마서 15장 23절에서 24절 말씀에 따르면,


*로마서 15:23-24,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아마도 바울이 스페인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로마 교회로부터 후원을 요청하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울은 죽음의 위협 생명에 어 위협이 담겨있는 예루살렘 여행을 떠나면서 로마 교회로부터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또 스페인 선교를 장차 진행하려고 하는데 로마 교회가 후원(後援)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생전 가보지도 않은 교회에 이 서신서를 쓰고 있다면 바울이 로마서 1장 1절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은 아마도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오늘 자기를 어떻게 소개할까요?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로마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교회가 억울한 어거스틴의 신학의 우산 아래에 있는데, 어거스틴이 로마서 13장 9절을 보고 회심(回心)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종교 개혁자 마틴루터가 로마서 1장에 성경 구절들을 가지고 회심했습니다. 이처럼 가장 유명한 이 로마서의 첫 번째 구절의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며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자면, 바울은 가장 첫 번째 구절에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바울의 이 로마서 첫 번째 어구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하였던 바울의 자기소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는,


I. 그리스도의 종은 성별된 존재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는데요. 이 종(從)이라고 되어있는 헬러 단어 둘로 쓰는 사실 노예(奴隸)라고 하는 의미가 힐라어감에 더 강합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노예의 유일한 덕은 주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이었구요. 철학적으로도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노예는 물건이었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노예를 살아있는 재산이라고 말했고, 말하는 도구라고 많은 철학자들이 칭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을 조금 더 살펴보면, 노예가 주인의 소유물이 된 것과 같이 바울이 하나님의 소유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물 되었다. 라고 하는 말씀의 의미는 또한 굉장히 중요한 구약성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약성경의 하나님께서 거룩한 것과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여 거룩한 것을 하나님께서 부정하고 속된 것으로부터 구별할 때 사용하는 단어를 바울은 지금 뒤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라고 할 때 이 ‘받다’ 라고 하는 것은 신적인 선택에 의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하는 것인데 오늘 로마서 6절과 7절에 보면,

*로마서 1:6-7,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장 6절과 7절에 보면,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고 또 성도들은 거룩한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라고 말을 한다면, 아마도 바울이 부르심 받았다. 라고 하는 것은 거룩으로의 부르심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바울은 1장 1절에,

*로마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택정함을 입다. 라고 할 때 사용된 이 단어가 바로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나님의 소유물을 성별할 때 사용한 단어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바울은 하나님의 신적인 선택에 의하여 부정하고 속된 것으로부터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물로 구분되었다. 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위하여 바울을 구분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구분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
오늘 성경 말씀 1장 6절에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리스도의 것으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라고 했다면,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성막에서 부정하고 속된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성소와 지성소 안에 들어갈 물건을 구분하듯이 성도님들을 구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분하신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전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구분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소유물이요. 하나님 앞에 구별된 성별된 존재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다니엘에서 1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나라에서 잡혀온 포로들을 가리켜서 흠(欠)이 없는 자들을 데리고 오너라.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흠이 없다. 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뭐 장애(障礙)가 없거나, 다친 곳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흠이 없다. 라고 하는 것이 구약 시대에 제사 드릴 때 제물에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것을 드려야 하고, 또 제사장이 되려면 흠이 없어야 하는데,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에 끌려온 그 포로들 가운데 흠이 없는 자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는 것은 느부갓네살 왕 앞에 나아가서 그 왕을 섬기고, 왕과 바벨론의 신을 섬기는 것이 바로 바벨론 제국의 제물로 받쳐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바빌론 제국은 무너졌지만, 세상 역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이 바빌론 제국의 성격을 가진 세상 나라는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들여져야 하고, 하나님 앞에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성도들을 향하여 세상 나라는 끊임없이 세상의 영광과 세상의 신들 앞에 충성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성도님, 사도바울이 로마서 첫 번째 구절에서 말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다.’

나는 부름 받았고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 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성도님들에게 말씀하신 하시기 위하여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고, 바울의 그 정체성이 바로 1장 6절에 따를 때,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한 것입니다. 종(從)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에서, 종은 종인데 누구의 종이 되어야 할까요? 로마서 8장과 갈라디아서 4장 5장에 나오는 종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율법의 종, 죄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 종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자입니다.

II. 그리스도의 종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성도님들과 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단어를 잠시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라는 우리 주님에 대한 칭호를 고백하고 읽고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 그리스도가 어떤 의미가 있느냐를 놓고 학자들은 오랜 시간 많은 연구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최근이 아니고, 한 10여 년 전 아주 결정적인 연구에 의하여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 칭호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는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칭호냐면 그리스도는 왕적인 권위를 가진 예수님에 대한 경칭(敬稱)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우리 성도님들께서 신약성경을 펼쳐서 읽으실 때, 그리스도라는 말이 나오는 모든 구절은 ‘왕’이라고 읽으셔야 하겠습니다. 왕이라고 읽으셔 서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다. 라고 하는 이 말은 왕이신 예수님의 종이다. 라고 하는 바울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장 6절을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6,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이 말은 바울이 1장 1절에서 소개하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런데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6장 22절을 제가 한 번 더 읽어드리겠습니다.

*로마서 6:22,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바울이 지금 자기를 소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는 정체성이 지금 로마서 6장 22절과 1장 6절에 따를 때,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도 해당하는 정체성이요.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의 성도들 역시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라.’ 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예수님의 왕이시다. 라고 하는 이 고백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그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회 갔더니, 하라고 하는 게 너무너무 많아서 내 힘들어서 못 가겠다. 현수야, 막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 갈 수 있는 정도까지만 나에게 알려주라. 나를 그렇게 예수님 믿고 싶다. 이야기를 또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또 한 분은 제 대학교 은사님이신데, 그분이 변호사를 하시다가 대학 교수가 되셨는데, 제 은사님의 사모님은 열심히 교회를 다니시고, 예수님을 잘 믿는 분이셨습니다. 제 은사님은 교회를 전혀 나가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에게 이야기하시기를, 나는 교회는 안 가고, 예수님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아내가 십일조를 하고 감사헌금하고, 주일헌금 하는 것은 내가 다 하게 한다. 내 수입도 다 십일조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내가 혹시 죽었는데, 예수님 계실까 봐 걱정이 된다. ‘예수님 제가 제 아내를 통해서 헌금 많이 했으니까 잘 봐주십시오.’ 이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최

근에 제가 어떤 유튜브를 보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유명한 유튜버가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고 하더니, 종교와 진리를 비교한다고 하면서, 종교는 많은 규칙을 만들어 놓고, 죽고 나서 축복을 받고, 복을 받고 또 이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해서는 규칙을 잘 지켜야 된다. 라고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종교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란, 하나님께서 다 해 놓으셨구나! 예수님께서 다 해 놓으셨구나! 그럼 됐네? 라고 그것을 알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이 3가지가, 복음의 일부분의 진리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만한 복음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의 오류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주님이 사도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인 누구라고 소개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이십니다.’ 천지의 창조주시오.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가 우주의 왕이신데,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권위와 권세를 가지신 왕,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그 왕의 노예다. 라고 오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의 첫 단추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를 지옥에서 건져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지옥에 안 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보증금을 제가 드릴 수 있습니까?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의 고통 속에서 행복을 얻는 그 진리를 깨달아서 이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라고 안주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거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기본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오늘 그 유명한 로마서의 첫 번째 구절이 파울루스 나 바울은 돌루스 종이다. 그리스도 왕의 종이다. 로마서의 가장 첫 번째 구절에서 바울은 ‘나는 노예다. 종이다. 왕 되신 예수님의 종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직분을 감당할 때, 내게 직분을 주신 그리스도께서 진정 왕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분의 충성스러운 신하로서 직분을 감당하고 계십니까? 직분을 받을 때도 왕이 주시는 이 직분이고, 직분을 내려놓을 때도 왕이신 주님께서 지금 이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시는지 고민하고 계십니까?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시는 것이 왕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명령입니다. 우리 기도할 때 왕이신 주님 앞에서 왕이신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기도하고, 계십니까? 내가 우리 다락방에서, 어떤 사역 부서에서, 너무너무 내가 맞지 않는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크기 때문에, 다른 사역 부서 가고 다른 다락방으로 이동해 버리면 그 사람 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왕이신 주님께서 용서하기 힘든 사람 피해 다녀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성경은 시종일관(始終一貫) 그리스도가 왕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면 나를 천국에 보내주실까, 그리고 주님 내 마음이 뜨겁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헌신과 섬김과 훈련과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가 않사오니 주님이 어떻게 한번 내 마음을 감동시켜 보십시오. 나는 찬양할 기분이 안 납니다.

주님이 교회를 통해서 설교자들을 통해서 순장님들을 통해서 내 감정을 기쁘게 좀 만들어 보십시오. 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에 창조주시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 주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이요. 오늘 로마서 1장 1절, 6절 그리고 로마서 6장 22절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은, 나는 종이면 좋고, 종 아니면 종이 되어가고 이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을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그리고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다. 라고 하는 이 성경 말씀을 오늘 우리 마음속에 다시 한 번 깊이 새기신 은혜가 있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 전적으로 복종하고 완전히 헌신(獻身)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왕이신데, 어떤 왕이실까요? 우리는 무조건 왕이신 주님 앞에 복종하고, 왕이신 주님께서 시키시는 것이 어떤 것이든 순종해야 하지만, 특별히 우리 주님을 닮아가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이 가장 중요하게 보여줄 것을 우리는 해야 하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세 번째로,

III. 그리스도의 종은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자, 그러면 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서 그리스도에게 충성해야 되는 것 중에 오늘 이 본문에서 말하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종은 물론 사도바울이 살았던 그 당시 그리스 로마의 그 종개념도 가지고 있었지만 또한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종의 개념을 사도바울이 지금 내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라고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많은 하나님의 종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하나님의 종이었고, 모세, 여호수아,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선지자, 심지어 이스라엘 전체가 여호와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종들이 그 종들은 다 부실한 종이었습니다. 종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종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여호와의 종 하나님의 종으로써 사역을 유일하게 잘 감당하신 분이 딱 1분 계십니다. 누구실까요? 바로 이사야서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보내시겠다. 라고 하는 여호와의 종이 나옵니다. 그것이 이사야서 40장에서 55장까지 나오는 여호와의 종인데요. 그 종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이사여서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종으로 나타나는데, 그 왕들로는 하나님의 구원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의 결론이고, 주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 인간 왕으로는 안 된다.

초월적인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나님이 보내신 여호와의 종이 와야만 인류의 구속과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사야서의 주장이고, 바로 그 여호와의 종이 이사야서 40장부터 55장까지 게시된 여호와의 종이십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의 종, 예수 그리스도 참된 하나님의 종이신 주님이 오셔서,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떻게 사역해야 하셨는지가 매우 중요한데, 참된 하나님의 종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것은 사랑과 희생과 섬김의 도를 실천하셨습니다. 자신을 대속 제물로 내어주시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이 대속적인 죽음을 죽어서 다른 이들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가 충격적인 것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여호와의 종이 오시면 그분이 진정으로 세상의 구원과 구속 가져오실 것인데, 그분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식은 자기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자기가 생명과 피를 다 쏟아 부으며 죽음을 통과하여, 세상에 구원을 주시겠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 1장 2절에,

*로마서 1:2,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러니깐 내가 지금 그리스도의 종인데, 나의 주인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 하나님의 복음인데, 그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리스도가 하셨던 모든 일들은 구약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특별히 오늘 읽었던 또한 1장 4절에 따르면,

*로마서 1:4,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사도바울이 지금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내용이 성경에 약속한 대로 성경대로 오셨고, 또 그분이 죽으셨다. 라고 하는 것을 오늘 복음의 내용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서가 예언한 그리스도가 오셔서, 계속적 죽음을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겠다. 라고 하는 그 예언을 그리스도께서 성경 그대로 오셔서 성취했다. 라고 하는 것을 지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구절을 어 한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서 26절인데요.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3:25-26,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지금 3장 25절에서도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데 있어서 그분이 화목제물 되셨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식 세상을 사랑하신 방식이 자기 목숨을 제물로 내어 놓으시며, 희생과 사랑을 실천하셨다. 이것을 바울은 끊임없이, 끊임없이 이 서신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셔서 죽으시므로 세상을 구원하신 것은, 제물을 드리는 것은 제사장의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금 화목재물이 되셨고 죽으셨다. 부활하셨다. 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이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예를 들자면 제사장과 같은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로마서 15장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15:16,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바울은 자신이 나 내가 하나님의 부분에 제사장 직분이다. 라고 하는 것은 제사장과 같이 자기를 제물로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나를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종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로마서 12장 1절에,

*로마서 12:1,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사도바울은 로마스 3장에서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 되셨다. 라고 이야기를 한 다음에,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다. 복음의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다. 라고 이야기를 한 다음에,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는 너희들이 거룩한 산 제물로 너희 몸을 들여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인 모든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으시며, 희생과 사랑을 통하여 세상의 구원을 가져오신 그리스도처럼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생명을 쏟아 부으시며 온몸에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세상의 구원을 향하여 사랑과 희생과 섬김을 베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사도바울의 사명이요. 그리스도에 종 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의 성도들의 사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스도의 종 바울 그리고 그리스도에 종 된,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주시는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 왕이신 그분의 모든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해야 될 뿐만 아니라, 특별하게 우리에게 순종해야 될 것을 말씀해 주시는데 그것은 고난당한 종의 길을 걸어가시며 자기 생명을 대속 제물로 내어놓으시며 세상을 향한 구원의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닮아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희생과 사랑에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오늘 그리스도의 종의 사명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님, 마지막으로, 이렇게 그리스도의 노예되고, 그리스도의 소유물 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면 우리에게 유익이 있을까요?

아까 제 친구의 말처럼 딱 천국 갈 수 있는 커트라인까지만 믿어서 천국 가도 천국 가는 거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서 복음의 제사장되고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들여서 온몸을 다 불태워서 주님 앞에 들이는 사람이나 딱 천국 갈 정도로 믿는 사람이나 아 주님이 다 하셨네. 깨닫고 예수님 섬기는 사람이나 다 똑같이 천국에 들어가면 그리스도의 종에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억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네 번째로, 그리스도의 종은 강력한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IV. 그리스도의 종은 강력한 권세가 있습니다.

-종이라고 다 같은 종이 아닙니다. 로마 제국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이 있었습니다. 수천만 명의 종이 있었다. 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종의 신분과 형편을 다 달랐습니다. 는데. 황제의 종은 로마의 정치와 행정에서 막강한 권세를 행사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실 집안사람이라고 하는 의미의 파밀리아 카예사리스라고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황제의 가족과 친척과 관료들도 이 파밀리아 카예사리스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거는 황실 집안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인데요. 이 가운데는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이사르의 집, 즉 황실에서 노예로 봉사하는 노예들은 보통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로마 제국 내에서 행정과 정치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마르쿠스 프로세네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기독교인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사람은 약 40년 동안 황실 노예로서 25개의 관직을 맡았는데, 그 직책들 가운데는 황제의 침실과 의상 하루 일과 심지어 매일 문안하는 자들을 통제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라고 하는 사람도 노예입니다. 황실 노예인데요. 이 사람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노예였는데 그는 경제적 문제와 재정 관리를 황제의 재정 관리를 담당하면서, 큰 권력을 행사했고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로원 의원들조차 그 노예의 눈치를 보면서 행동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 당시 내가 노예요. 라고 하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누구의 노예가 되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강력한 권위 주장일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황제 카이사 카이사르의 노예입니다. 카이사르의 종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종이 하는 말 로마 제국의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카이사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종’이라 라고 사도바울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바울의 직분을 수행하는 한도에 있어서는, 교회와 모든 세상이 그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라고 했는데, 이 복음이라고 하는 단어도 당시 로마 사람들은 황제가 탄생하고 즉위하고 황제가 통치함으로써 로마 제국 내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준 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가 주님이시고 구원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 하나님의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로마의 복음 카이사르의 복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니한 진정한 복음이 있고, 하나님의 복음 앞에서는 제국의 복음이 사실 거짓 복음이다. 라고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 거짓 복음 제국의 복음에 황제의 종 된 자들의 권세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처럼, 사도바울은 그 제국의 노예들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권위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왕이신 예수님의 권세는 단순히 교회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전 우주에 미치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그 권세가 우주적인 권세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우주적이라고 하는 말은 사탄 마귀와 귀신들과 하나님의 복음을 대적하는 모든 흑암의 권세들을 멸절시키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그리스도의 종들에게 주셨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야 할 자가 결단코 없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 그리스도의 참된 종이 될 때 이 권세를 가지실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 우리가 때로는 영적으로 무기력하고 실패하고 낙심하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환난만 바라보고 그것을 없애고 그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의 공격과 세속의 파구 앞에 무기력하게 넘어지고 힘이 없고 권세가 없는 것은 혹시 참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 신실한 사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리스도의 종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권세를 우리가 잃어버렸기 때문에 낙심하고 넘어지고 무기력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바로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 와서 인생 문제와 역경을 해결해 달라고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제1번 우선순위는 우리 정체성을 찾고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특정함을 입었고 선별된 자이고 오직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도록 우리는 바쳐진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셨듯이 우리도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들이고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에 사역을 감당하는 그 신실한 종의 사역을 감당할 때, 저는 세상을 이기며 모든 우주적 흑암의 권세들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신실하신 그리스도의 종인 저희들에게 주님이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 사랑하는 우리 제자 훈련반 사육 훈련반 분들께서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을 그리스도의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국내외 아웃리치를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 훈련생 여러분은 말씀을 연구하고, 적용을 하시고 그 적용한 내용 결단 적용하신 내용을 실천하시는 것이 굉장히 힘드셨을 것입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어떨 때는 피눈물 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르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꼭 기억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르신 주님은 그 부르심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번 아웃리치를 통해서도 가까이는 우리 가족과 이웃을 향한 섬김의 사역을 감당해 오셨지만 국경을 넘어서 또 머나먼 대한민국 땅에 척박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시골 교회에 가셨을 때, 그곳에서 복음의 제사장을 사역을 감당하실 때, 우리 훈련생들도 그리스도에 권세를 가진 종으로 세워지실 뿐만 아니라, 그 교회들도 힘과 능력과 은혜를 얻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사랑 안고 가오리다. 모든 존귀와 영광과 권세는 주님 홀로 받으시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충성하고 섬기시는 그리스도의 종의사명을 올여름 잘 감당하셔서,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그 권세를 소유하여, 세상을 살리시는 하나님 백성 되시기를 우리 훈련생들과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요약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에 복종하며 전적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고,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신 주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며,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복음의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복음을 능력 있게 전파하는 자로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는 자로,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말씀으로 무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기억하여 순명으로 자기 소개를 잘 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 로마서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정체성과 사명을 일깨워 주셨음에 감사해야 하며, 우리 전 존재가 온전히 주님께 바쳐진 자로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충성하여, 고난당하는 종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종으로서, 사랑과 희생과 복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신실한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주께서 주신 권세를 가지고, 흑암의 세력을 무너뜨리며 하나님의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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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 바울의 자기소개와 그리스도의 종에 대한 이해.
1-1. 바울의 자기소개 및 그 의미
-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 소개함
- (중요) 이 소개는 바울의 정체성과 자격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
- 바울이 로마 교회로부터 스페인 선교를 요청한 목적을 명시
- 바울의 자기소개는 신뢰를 형성하고 로마 교회의 지지를 호소함


1-2. 그리스도의 종에 대한 이해.
- 그리스도의 종은 성별된 존재로서, 주인의 소유물이며, 거룩한 존재
- (중요) 그리스도의 종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그를 따르는 자
- 그리스도의 종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되고, 하나님의 소유물로 구분됨
-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소유물이며, 그 앞에 충성해야 함


1-3.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신앙생활.
-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고 거룩한 성도로 인식
- 그리스도는 그 자리에 바울, 우리 모두가 구약성경의 성별과 같이 속된 것으로부터 거룩한 소유물로 선택됨
-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를 섬기며, 세상의 영광과 신들을 섬기는 자가 됨
- (중요) 그리스도라는 칭호에 대한 이해는 정확하고 올바르게 통용되어야 함


2. 그리스도의 왕적 권위와 종의 의미.
2-1. 그리스도와 왕적 권위의 연결
- 그리스도는 칭호로서 왕적인 권위를 가짐
- (중요)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고백은 왕, 즉 예수님의 종이라는 본질을 인정하는 것
- 교회 성도들 역시 왕, 즉 예수님의 종이라는 자격을 가짐
-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천지 창조의 주님으로서 그리스도라는 왕적 자리매김을 가짐
- 이 왕적 권위는 예수님을 의미하며,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


2-2.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신앙의 기본.
-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지옥에서 해방시키는 것임
-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최소한의 보증금을 제공함
- 즉, 죄로부터 자유로워짐은 궁극적인 목표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짐
- 이러한 자유로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오류임
- 이 오류를 이해하고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함


2-3. 그리스도를 닮아서 섬기는 종의 역할.
- (중요) 그리스도의 종은 예수님을 닮아가고, 그리스도의 충성을 보여줌
- 이것은 주님을 섬기는 삶을 통해 드러나야 함
- 왕, 즉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종의 역할 중 하나임
- 또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함
- 이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그리스도의 충성을 보여주는 삶을 통해 드러나야 함.


3.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사명과 그 효과.
3-1. 그리스도의 종이로서의 사도 바울
-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받음
- 자신의 몸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내려놓음
- (중요) 화목제물로 죽어 세상을 구원함
- 예수처럼 섬김과 사랑을 실천
- 예수의 사역과 동일한 사도 바울의 사역


3-2. 그리스도의 종의 강력한 권세.
- 그리스도의 종은 강력한 권세를 받았음
- (중요) 황제의 가족과 친척, 관료들도 파밀리아 카예사리스에 있음
- 마르쿠스 프로세네스는 기독교인이고, 황실 종이
- 황실 종이라는 권한을 이용해 복음을 전파


3-3.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의 가치.
-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 유익함
-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희생
- 사랑과 희생, 섬김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
-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을 실천하며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함
- (중요) 성도들은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아야 함


4. 로마 시대의 교회와 노예
4-1.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의 노예 권력.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는 노예이면서도 황실의 권한을 가졌음
- 그의 권력은 경제적 문제와 재정 관리 분야에서 활약됨
- (중요) 황제 카이사르의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팔라스는 자신의 권위를 주장함
- 팔라스의 권위는 그가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에게 공격 받음
- 사도바울은 이 복음이 진짜 복음임을 명확히 주장함


4-2. 진짜 복음과 제국의 복음의 대결.
- 바울은 복음이 로마의 복음이라 말하며, 이 복음은 황제와 관련된 복음임
- (중요) 바울은 진정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세의 일환임을 강조함
- 그리스도의 권세는 단순한 제국의 복음과는 다름
- 그리스도의 권세는 사탄, 마귀, 귀신의 권세를 이기는 권능을 가짐
- 바울은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권세를 하나님께 바침


4-3.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의 정체성 회복.
-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 위해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은 사명을 잊은 경우임
- 우리의 문제는 정체성을 찾고 발견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임을 기억해야 함
- 훈련생들은 국경을 넘어 복음의 제물을 바치는 일에 참여해야 함
- (중요) 훈련생들은 제자로서 힘과 능력, 은혜를 얻게 될 것임
- 훈련생들은 아웃리치, 국내외에서도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존귀와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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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6월 15일)
제목: "시대는 부른다 무릎기도의 7천 용사를"
말씀: 요한복음 12:20-26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목양8팀 연합찬양팀
대표기도: 정유진 권사님(10대교구장)
말씀봉독: 송희윤 어린이(유년부), 이예성 어린이(유년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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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20-26,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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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아멘!!
-토비새는 강아지가 사자를 이기는 날입니다. 맞습니까? 오늘 아까 기도도,,, 제가 어젯밤에 아무리 찾아도 하얀색이 없어서요. 자 오늘 아침에 비가 왔죠? 네 비오는데,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나는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은 사명으로!!! , 그래서 제가 적어놨어요.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결같은 사명으로”!!! 군단별 구호 외침.
 
-오늘 2가지를 위해서 할 텐데, 오늘 제가 말씀 잘하기 전에 오늘 요절은 이 구절에 있는 말씀이에요. 요한복음 12 24절입니다.
 
*요한복음12: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아멘, 자 그런데 오늘 이 내용 배경은 뭐냐 하면, 20절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바로 다음에 요한은 그 유명한 헬라인의 질문에 대한 답을 바로 기록하고 있어요. 지금의 헬라인들이 이방인들이 헬라인들이, 헬라인들 가운데 구약에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을 갖고 또 생명의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난 다음에, 그 정말 이 복음과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좀 듣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아마도 이분들이 옛날에 동방박사들처럼,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온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듣고 예수님을 여쭙고 찾아온 거에요. 찾아왔는데 그러니까 순수하게 요청을 해요. 21절에,
 
*요한복음 12:21,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우리가 진짜 예수님 만나기를 원한다고, 진정 주님에 살과 피를 먹기를 원한다. 뭐 이런 식으로 생명의 떡을 이런 식으로, 이제 간절히 요청을 하니까, ! 이때 예수님께서 23절에 예상 밖의 말씀하셨어요.
 
*요한복음 12:23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예수님은 자주자주 뭐라 말씀하시냐면,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도다.’ 그렇게 말씀하셨죠? 물이 포도가 되는 사건에도, 근데 오늘 드디어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그럼 언제 영광을 얻는가? 그 영광을 얻는 것이, 한 알의 밀이 썩어질 때에, 그 썩어지는 일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놀라운 하늘의 영광을 깨닫는다는 거죠.
 
오늘의 칠천기도 용산은 기도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는 것이에요. 자 초등부는 못 알아 듣겠지만 여러분들이 한국의 역사와 한국교회와 여러분 가족을 위해 썩어지는 밀알이 되면 예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이에요. 다시 뭐가 된다구요? 기도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이 칠천기도용사 하면서, 지난번에 제가 한번 도전 받는 말씀이라고 말씀드렸죠? 한국의 주사파의 거두하고 제가 대화를 하는데, ‘목사님, 한 줌도 안 되는 주사파가 엉터리 주체사상을 갖고도 대한민국을 이렇게 뒤집어놓고 난리를 치고 엉망을 만드는데, 천만이 되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 그건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칠천 기도 용사가 썩어지는 밀알이 되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이에요. 아멘!!!~ 너무나 놀라운 일이에요? 저와 여러분들의 생애에서 경험이 될 거예요. 오늘 초등부 어디였어요.
 
초등부, 어디 있어요.. 박수, 박수..... 오 초등부는 4층에 다 있나요? 여러분들이 한국의 역사와 한국 교회와 여러분 가정을 위하여 썩어지는 일이 되면 예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떤 일을 해도 허무해, 뭘 해도 허무해요. 강남에 잘나가는 애들 상당한 부를 이루어도 나중에는 허무할 것이고. 세상에 자기 나름대로 뭘 이루어져 다 허무할 것이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어떤 걸 해도 허무하고 허무에 치를 떨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은 절대로 허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예술인의 영광을 위해 사는 최고의 방법이 뭐냐면 주님의 때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의 때는 언제 온다고요? 주님께서 하늘에 밀이 땅에 떨어져 썩어져 썩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자 우리 초등부를 위해 박수 합시다.
 
여러분 쟤네들이 진짜, 진짜 이 민족의 희망입니다. 아시겠죠. 아멘... 이 민족 희망입니다. 우리가 지금 뭐 상해 임시정부 바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민족사를 새로 선택할 때, 상해 가보세요. 아무것도 없어요. 조그마한 방 한쪽 구석에서 몇 명이 일하는 거예요. 그 몇 명이 세상을 바꾸는 거예요.
 
오늘 이 자리에 칠천기도 용사가 정말 무릎 기도를 할 때, 하나님 역사하셨어요. 그리고 시골에 가 농사를 지어보면 보리싹 같은 것들이 있을 때, 그 땅 밑에서 이렇게 보리, 뭐 보리알이 씨알이 어 이렇게 들어가 썩어 가지고, 나중에 보면 껍데기만 남아서 그럴 때 발아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 곡식이 추수일 때가 많아지는 일이 일어났잖아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그런 역할을 하고 그럴 때에, 그렇게 할 때에 시대의 어떤 새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첫 번째 감당해야 할 몫이 뭐냐면, 감당할 몫이 뭐냐 하면 하나는 앞에 우리가 기도할 때 오늘 여러분들 받으셨죠. 들어올 때 뭘 받았습니까? 카드에 오늘 지명, 뒤에 백 명씩 이름을 받았지요? 기도 카드에다가 다 받았죠? 카드에다가 이걸 오늘 여기 뭡니까? 지명해 가지고, 태신 자들을 중보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뭘 위해서, 첫 번째 이 칠천기도 용사로 뭘 위해서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인가?
 
오늘 첫날인데 뭘 위해서 꾸려야 할 것인가? 간절한 마음과 가지고 뭘 위해서 꾸려야 할 것인가?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주님의 칠천기도 용사들이 복음의 신비를 깨닫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마광한 화살처럼 하나님 나라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게 해 주옵소서. 여기에 그 앞에 1면에 보면 토비새 안내지, 여기에 보면, 소년부 유광용, 김민우 어린이가 레고를 쌓아가지고, 거기에 지팡이를 꽂았습니다. 이게 뭔지 압니까? 보입니까? 모세 세대요. 이게 모세대, 어 모세가 레고를 만들어 가지고 기도의 지팡이를 꽂은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7 5 6절에,
 
*출애굽기 17:5-6,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이게 반석에서 물을 낸 그런 사건을 기념해가지고, 목양 6팀의 우리 김선옥 집사님 아이들이 했습니다. 몇 시간 마음을 달하여 그리고 있기 때문에 2페이지 새 생명의 열매가 맺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 이방인들, 헬라인들이 우리가 주님을 보기를 원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오늘 우리 기도를 통하여 생명의 열매를 먼저 드리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 일어나셔 가지고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찬송하고, 우리 기도에 무릎을 꿇고, 오늘 각자 받은 이분들 위하여 정말 전력투구(全力鬪毆)하여 기도 하는 그런 축복을 우리 같이 누리도록 하십시다. 찬송 가사 자체가 기도입니다.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물속에 빠져간다.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지금 곧 건지어라.~~!
 
-칠천의 기도 용서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지금 보여주시옵소서. 찬란한 생명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옵소서. 여러분 오늘 왜 정치도 그러고 이런 것들이 비리비리한가 하면요. 그 일을 위하여 목숨 거는 사람이 없었어서 그래요. 목숨을 걸면 역사가 일어니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누구도 그 일에 목숨 거는 자가 없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지도자가 먼저 목숨을 걸어야 되는 거예요. 대통령도 죽기로 결단을 해야 되는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총리부터 시작해 가지고,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눈이 열린 사람들은 내가 죽겠다고 결심을 해야 되는데, 오늘 저도 마찬가지고 우리 각 중직자 분들, 신념을 위하여, 사명을 위해 죽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죽겠다고 결심하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신념을 위하여 위한 죽겠다는 사람 많은데 사명을 위해 죽겠다.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다시 한 번 우리가 죽겠다는 마음으로 생명줄 던져 생명을 던져 찬양하고 칠천 기도용사로 기도하겠습니다.
 
다 함께 믿으면 사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것은 한국 교회가 끝까지 보금전도의 사정을 완수하는 겁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이 수많은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도구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순서지에 보면 뭐가 나와 있냐면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 2024년 새생명 축제 태신자 현황이 장년부 2 376, 주일학교 5,034명 대학부 4,173명 청년부 1,419명 대청부 482, 그래서 지금 태신자가 31,485명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무릎이 땅에 닿을 때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물이 뿌려진 곳에 생명이 심어지고, 태신 자들의 삶에 움이 돋고 순이 나며 꽃이 피어서 새 생명의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받으신 카드를 다 들고, 2024년 태신 자를 위한 중보 기도 제목을 우리 1,2,3,4 크게 또박또박 같이 합독하겠습니다.
 
2024년 태신자를 위한 중보기도제목
1. 칠천 기도용사가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태신자들의 이름을 부르짖을 때, 그들이 마음의 문이 열리게 하옵소서.
2. 태신자들이 ‘2024 새생명축제에 꼭 참석할 수 있도록 그들의 환경과 상황을 주께서 주장하여 주옵소서(11).
3. 태신자들이 ‘2024 새생명축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4. 사랑의 교회 ‘2024 새생명축제 한국교회 ‘2033-50 비전을 이루는 마중물이 되게 하옵소서.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젊을 때부터 가졌던 비전과 꿈을 거의 하나님이 거의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2033-50 비전도 주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10년 내에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저 휴전선 문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마 이게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우리가 하늘의 씨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의 때가 나타났다. 내 때가 이르렀도다 주여 20335부 비전을 통하여 추림의 때가 이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언제 이루어지는가? 바로 우리가 한 알의 씨가 떨어져 죽을 때, 그럴 때 하나님이 영광의 때가 나타나게 됩니다. 내 때가 이르렀도다. 주여, 2033-50 비전을 통하여 주님의 때가 이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이번에 새생명축제를 통하여 주님의 때가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까지는 주님께서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도다. 말씀하셨지만, 헬라인들의 그 간절한 복음에 대한 열망과 간절함을 갖고 왔을 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스라엘의 유대 예루살렘의 잘난 사람들, 그 사람들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 개처럼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와가지고, 주님을 뵙기를 원하나이다. 마음의 손을 갖고 있으니까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때가 이르렀도다. 헬라인들을 통하여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주여 새 생명의 역사에 일어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의 때를 보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 같이 옆에 무릎을 꿇어도 좋고, 우리 같이 무릎 기도니까, 의자 위에 올라가서 기도해도 좋고, 옆으로 나와서 기도하셔도 좋아요. 우리 다 무릎 꿇고 기도하십니다. 오래간만에 무릎 꿇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하십시다. 초등부, 이렇게 꿇어야 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합시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 역사하십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때를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새생명축제 태신자들이 주님 앞에 구원받는 그런 역사가 반드시 상달될 줄 믿습니다. 우리 자리에 다시 앉겠습니다. 요한복음12:24절과 마태복음 10 39절을 다시 한 번 요약하겠습니다.
 
*요한복음12: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마태복음 10:39,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세상을 바꾸려면 같이 죽을 사람이 있어야 세상을 바꾸는 겁니다. 자기의 이익과 이런 것만을 위해서 그냥 적당히 해갖고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아요. 같이 죽을 사람이 있어야 여러분 세상을 바끕니다. 근데 같이 죽으려면 누가 먼저 죽어야 되는가? 리더들이 먼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잖아요. 저도 그러고 우리 중직 자들도 그렇고 칠천기도용사 천부장도 그렇고, 백 부장도 그렇고, 10부장도 그렇고, 여러분 모두가 다 우리가 먼저 죽을 각오를 해야 돼요.
 
다시요. 죽는 사람이 세상에 바꾸는 거예요. 그런데 앞장서 있던 사람들이 먼저 죽어야 됩니다. 이제 저도 제 나이에 세상 적 평온을 유지하면, 좀 이제 나이 들어서 안정적으로 제가 좀 조용히 살고, 그다음에 좀 이렇게 좀 편안하면 안 됩니까? 칠천 용사를 해 가지고,,,ㅋ ㅋㅋ~~ 그냥 조용히, 조용히 살지,,, 여러분 그게 주님의 음성이에요?. 아니면 세상의 음성이에요? 모르겠어요. 저는 그런데 제가 아는 것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다시요. 리더가 죽는 사람이 새 세상에 바꾸는 것인데 리더가 안 죽으니까 세상이 안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사랑의 교회의 토비새에는 우리가 다 같이 죽자고요. 기도를 위하여, 한국의 사명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 같이 죽자고요. 저는 설교하다가 죽으면 선교적인 심장마비를 설교하고 마치고 내려와서 죽게 알려주십시오. 아멘. 그건 제가 하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는 이 말씀하신 사람으로 살다고 사명으로 죽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죽은 사람이 없으면 세상에 안 바뀌죠. 근데 누가 먼저 죽어야 해요? 리더가 먼저 죽어야 합니다. 사명으로 살다가 사명으로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지금 수많은 대통령이 죽겠다고 결심하면 세상 바뀌는 거예요.
 
오늘 이 무릎 기도의 시간에 우리 모두가 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이 귀한 기도를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오랜 역사 동안 내려오는 잘못된 집요한 모략과 상처 주는 모든 것들이 다 치유되고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군끼리 싸우지 않도록 주의와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다 참 주님들의 사명을 가지고 죽겠다고 결정을 내리면,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 기가 막힌 응답들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뿌린 이 씨를 통하여 기도의 씨를 통하여 싹이 나고, 햇볕을 따라 줄기가 올라가고 잎사귀가 생기고, 우리가 그야말로 꽃봉오리가 생기고, 충만하게 되고 황금빛 밀밭이 되고 황금물결을 만들어낼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물이 바다 덮음같이 복음의 역사가 세상을 덥게 하여 주시옵시고, 오늘 이 자리에 칠천 기도용사를 기도하는 분들은 인생의 그 누구도 아무도 허무를 느끼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아무도 허무한 인생이 없게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과 같이 칠천기도 용사 무릎 기도한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만 천명이 영적 제곱근이 되면 4억이 바뀝니다. 우리의 칠천 기도용사를 통해 4,900만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제 토비새(토요비전새벽예배)는 장로님 기도군단부터, 모두 앞으로 6 10-25분까지 군단별 기도회가 있게 됩니다.
 
요약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을 때에, 그 영광을 얻는 것이니, 한 알의 밀이 썩어질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우리는 칠천 기도용사로서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기도하는 역할을 할 때, 시대의 새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의 때를 보아야 한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복음의 역사가 세상을 덥게 되기를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은 사명으로, 사명을 가지고 죽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죽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에 안 바뀌니, 리더가 먼저 죽어야 하며, 주님의 사명을 가지고 죽겠다고 결정을 내리면, 주님은 역사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새벽마다 주님 앞에 칠천기도 용사로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주님의 자녀로 태신자들을 위해서 매일 그리고 토비새마다 죽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여 주님의 안아주심의 본당이 차고 넘치는 은혜를 함께 누려가야 한다.

- -예수님은 성육하심으로써 땅에 내려오셨다. 게다가 그는 죽으셨다. 그는 씨가 흙 속에 묻히듯이 무덤 속에 누우셨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씨가 다시 푸르게 싹이 나고, 싱싱하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죽으심이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분 앞으로 이끌었다. 이제부터 세상 끝날까지 모든 영혼의 구원은 이 `한 알의 밀알`의 죽으심의 은덕을 입게 될 것이다. 그는 자기를 충심으로 영접하고 진심으로 그의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넘치는 상급을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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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6월 12일)
제목: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말씀: 마가복음 9:14~2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금동훈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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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9:14~24,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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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은 인생을 인생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낙망에 빠져 예수님께 찾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인생에 여러 문제 난제는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그의 아들이 귀신 들렸고, 그 귀신이 아들을 죽이기 위해 물에도 던지고 불에도 던졌다고 말합니다. 이름을 알 수는 없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싶어 합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오기 전에 이미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모든 병(病)을 고치고 모든 귀신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전해 듣고 혹시나 하여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만 역시나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요청하였으나 제자들은 귀신 돌린 아들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는 낙망(落望)하고 좌절(挫折)하였을 것입니다. 근데 이 성경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2천 년 전 나와 상관없는 나라에서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일까요? 최근에 한 50대 중년의 젊은 남자 집사님이 저에게 찾아와서 조용히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저 지난주에 점 보러 갔다 왔어요.” 예전에 여 집사님이나 권사님들께서 그러는 건 제가 좀 보았습니다만 이 남자 집사님이 직접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깐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인생이 너무 안 풀려서 직장에서 버틸 힘이 없어서, 자녀들이 이 부모님들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과 다르게 엇나가니깐, 얼마나 힘들었는지 점집을 찾아가서 점을 보았다고 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길이 보이지 않았으면 도대체 인생의 난제 앞에서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랬을까요? 오늘 성경이 등 등장시키는 귀신 들린 아들을 끌어안고 짠하고 등장한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오늘날 여전히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단순히 한 개인만의 문제일까요? 교회에서도 동일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최근에 대구에 내려가서 목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목사님들이 몇 분이 식사하는데, 그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의 고등부 부장 집사님으로 섬기는 분이 오셔서 대구의 명물 가장 맛있는 막창을 사주기로 하셨습니다. 맛있더라구요!!.
 
근데 이 막창을 막 먹다가 이 집사님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는 장년만 5천 명이 넘습니다.” 안 놀라네요.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예요. 그런데 그 교회에서 고등부 학생들이 60명이 모인답니다. 깜짝 놀랬어요. 어떻게 된 일인가? 그래서 맛있는 막창 앞에서 입맛이 있어서 더 이상 못 먹었어요. 왜 굳이 와서 그런 얘기를 할까요? 사주질 말던가, 어쨌든 이러한 교회의 여러 문제들 가운데 더 큰 문제는 이 한 목사님의 자녀가 기독교 미션스쿨을 다니는데, 미션스쿨 다니면 한 반에 반장도 뽑지만 종교부장도 뽑아야 합니다.
 
그런데 뽑으려고 하는데 1반에 교회 다닌 아이가 1명도 제대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반에서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아이가 그 반의 종교부장이 됐답니다. 슬프지만 웃긴 이상한 이야기, 저도 사실은 청소년 사역을 살아내기 위해서 했습니다. 꽤 오래 전이지만 예전에 우리 강남에 있을 때, 소망관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제가 섬기던 부서는 중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중등 1부였는데요. 그때 당시 제 기억으론 천 명이 넘었어요. 아이들이 중학교 1학년 2학년만 많을 때는 1,500명까지 왔어요. 어마무시해 안 놀래요. 60명이라구요. 여기는 중학교 1~2학년인데 천 명 1천 명 1,500이 넘는다고요. 그 당시 혹시 소방관을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1층에서 저희가 4층에 있었는데, 4층 사패코를 썼는데요.
 
4층까지 올라오는 데 30분 걸려요. 예비 끝나고 내려가는 데 40분 걸려요. 예배는 50분 거리 그때는요 저희가 예배 드릴 때, 찬양할 때 소리를 크게 찬양하면 안 돼요. 찬양할 때 아이들이 신나서 뛰면 안 돼요. 왜요 아이들이 8시, 10시, 12시, 3번 예배를 하는데 그 예배당에 꽉 차니까 산소가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이 찬양하다 쓰러졌어요. 거짓말 같죠? 진짜예요. 그래서 그 당시에 산소 발생기도 갖다 놓고 뭐도 갖다 놓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우리가 그때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찬양할 때도 조용조용히 하라고 그러고 뛸라고 하면 뛰지 말라고 그러고 왜요 예배드리다가 주님 뵐 수 있어 가지구요. 그런데 이제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인구절벽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의 젊은 다음 세대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에 큰 문제가 우리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너무 많은 교회들이 주일 학교에 생명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쉽지 않습니다. 다음 세대에 대한 한국 교회의 열망과 기대는 큽니다만 현실은 너무나 너무나도 반대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교회 공동체도 다음 세대에 대한 큰 위기의 도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게 마치 귀신 들려서 불에도 물에도 던져서 죽일려고 하는 그 모습과 뭐가 다릅니까? 이렇게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공동체 모든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풀리지 않는 난제와 고난 앞에서 도대체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더 힘들어요.
 
난제도 힘들지만 문제가 고난이 시련이 그것 때문에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도 해야 되지만 거기에 더하여서 왜 예수님은 나에게 이런 고난과 난제를 허락하셨는가? 이런 고통 중에 예수님은 나만 버려두고 어디로 숨으셨는가? 라는 의구심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더 버겁습니다. 고난도 고통스러운데 나의 고난과 난제를 풀어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주님을 찾지 못하니, 더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점집에 갔나 봅니다. 이런 이중적 고통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I. 첫 번째로, 우리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첫 번째로, 은혜로 주시는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은혜로 주시는 겁니다. 은혜로 주시는 것인데 이 은혜로 주신 믿음을 통해 그래서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처음 16절 17절 가운데 예수님을 뭐라 부르느냐면 ‘디다칼로스 선생이여!’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23절에서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냐면 우리 개혁계정에서는 안 나오지만 헬라 원어 성경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여기서 ‘주여’가 나옵니다. 아까 16, 17절에는 ‘디다 칼로스 선생님이여’, 했던 이 호칭이 이제 23절에서는 ‘퀴리의 주님’이라고 그 호칭이 바뀌는 겁니다.
 
이 주님이라는 단어는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시고, 또한 부활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생(生)과 사(死)와 화(禍)와 복(福)을 주관 하시는 주님이라는 사실, 이 분만이 세상에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나의 가장 큰 난제, 문제, 고난, 실현, 역경, 아픔, 내 아들의 문제, 내 아들의 죽음의 문제, 귀신 들린 문제, 내 아내의 문제, 내 남편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 바로 이분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 고백이 바로 “주여, 내가 믿나이다.” 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이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의 고백을 조금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게 뭐냐면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고 외칩니다. 조금 이상하지요 내가 믿나이다. 해놓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 주여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언어로 적으면 이상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살펴보면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믿음이 있지만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어요. 이러한 모습은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사건에서도 등장합니다. 한밤중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정말 주님이시라면 저도 주님과 같이 물 위를 걷게 해달라는 베드로의 믿음은 그에게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거센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고 의심하여 빠져버린 베드로를 건져내신 주님께서 믿은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라고 호되게 꾸짖는 예수님 그리고 베드로의 모습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제 자신이 인생의 난제인 아들, 인간의 방법으로는 전혀 고칠 수 없는 해결할 수 없는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분이 바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주관하시는 거룩하고 위대한 주님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리고 이분만이 나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의심, 불신앙에 문제가 뿌리 깊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워하지요.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이 의심, 불신앙의 문제도 주님 앞에 던져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옵소서.’ 이것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그러자 곧 기적이 그의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귀신은 쫓겨납니다. 기적(奇蹟)이 일어났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으로 아이와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면 내가 믿을께. 내가 이 병에서 낳으면 예수님이든 하나님이든 다 믿을게.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기적이 일어나면 그것도 나의 가장 큰 문제인 난제가 내 눈앞에서 해결되면, 나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쉬워질까요? 그래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기적과 이적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런데요. 오늘 말씀을 잘 살펴보면 기적과 믿음의 순서가 바뀌어져 있습니다. 기적이 먼저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인 것입니다. 아들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 그 아버지의 믿음의 문제가 먼저 해결된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강원도 오지에서 살았습니다. 3살 땐가, 4살 땐가 정확히 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저는 몹시 건강이 좋지 않아서 시름시름 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이 병원 저 병원 다 다녀봤지만, 도대체 고칠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머니는 어떡해요. 그냥 아들이 죽어가는 걸 볼 수만 없으니까 여기저기 기웃기웃 찾다가 어느 산 산 밑에 산기슭에 용한 무당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무당을 찾아가니깐 이 무당이 저를 보자마자 ‘어여가, 왜 죽을 사람을 데려왔어?’ 라고 하며 저희 어머니를 쫓아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어떻게 해요? 거기서 포기할 수 없으니깐 그 용한 무당보다 조금 더 용한 무당이 사는 산 중턱에 갔다고 합니다. 가서 또 데려가자마자 문을 보자마자 이 무당이 저를 보자마자 그러더군요. ‘왜 산송장을 데려왔어 가서 장례 준비나 해!’ 쫓아내더라는 거예요. 포기할 수 있습니까? 포기할 수 없어요. 저희 어머니는 저의 엄마니까요?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 포기(抛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요. 그 산 중턱에 사는 용한 무당보다 더 용한 무당이 사는 산꼭대기 사는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자마자 이 용한 무당은 더 용하니깐 냄새만으로도 죽은 송장 썩는 냄새가 난다고 빨리 데려가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어머니가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무당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애원합니다. 내 아이 좀 살려주세요. 내 아이 좀 살려주세요. 10분, 20분, 1시간 2시간이 지나니까 이 무당이 너무너무 힘든 거예요. 왜요 뒤에 손님 받아야 되는데요. 이 어머니가 안 가니까 그렇게 1시간 하고 30분이 지난 다음에 이 무당이 저희 어머니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고 합니다. 이건 영업 비밀인데, 산을 내려가서 길을 따라가면 내과 하나가 나오는데 거기를 건너서 마을 입구에 가면 빨간 벽돌을 지은 땡땡 교회가 하나가 나올거요. 거기 가서 예수라는 선생님을 만나면, 당신 아들은 저는 살아날 겁니다. 어머니는 다 죽어가는 저를 들쳐 업고 날라 가기 시작했습니다. 산을 내려가고 냇가를 건너고 다리를 건너고 한 마을 입구에 빨간 벽돌로 지어져 있는 땡땡 교회를 문을 박차고 뻥 하고 들어가니까, 마침 그곳에 절 막 이게 정장을 입은 한 남자와 또 십 수 명의 여자 분들이 뭔가를 하다가 그 외 뒷문이 뻥 소리가 나면서 크게 들리니까, 깜짝 놀라서 뒤를 쳐다봤다고 합니다. 정적이 흐르는 그 순간, 중년의 남자가 넥타이를 하고 정장을 입은 이 남자분이 저희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그러니깐 저희 어머니께서 우리 어머니 그때 아무것도 몰랐어요.
 
‘혹시 여기 예수라는 선생님이 계시나요? 제가 지금 그분을 급하게 만나야 하는데 어디 계신가요?’ 그런 상황 가운데 이 중년의 남성분이 어머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죄송한데 지금 예수님이 출타 중이라서 제가 봐드려도 될까요?’ 하며 다 죽어 가는 저를 교회 예배당 중앙에 눕히고 십 수 명의 성도들이 둘러싸서 갑자기 큰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주여, 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는데 저희 어머니가 생전 교회란 곳을 가본 적도 없으니까, 저 구석 통에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예수님께 비나이다. 그렇게 30분 정도 기도했더니, 갑자기 죽어가서 시름시름 앉지도 못하던 제가 앉으드래요. 시퍼렇게 변해 가던 입술이 빨갛게 변해 가고 눈엔 생기게 나고 그리고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10분 정도 더 기도하니깐 제가 갑자기 힘을 내서 예배당 이쪽저쪽을 뛰어 댕기면서 날아 댕기더래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이런 기적 같은 겨 이 기적 같은 일을 경험했는데, 이런 제가 예수님 믿는 게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믿음이 적은 세대여, 왜 의심하느냐? 예수 이렇게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고 나서 어떻게 예수가 안 믿겨집니까? 그런 기적을 경험하면 하는데 예수가 안 믿겨지는 게 더 큰 기적이에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이야깁니다. 왜냐 이유가 있어요. 제가 2007년도인가, 2008년도인가 사랑의 교회에 이제 부임해서 수요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한 멋진 목사님께서 수요 예배 강단에서 수요 저녁 기도회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수요 저녁 기도회 가운데 설교를 하다가 자신의 간증을 하는 거예요. 아까 제가 말한 그런 아주 멋들어진 간증이요. 근데 그 간증을 듣는 제가 빠져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 마음 가운데 억울함이 있는 거예요. 주여 저에게는 왜 저런 간증을 안 주십니까 저도 저런 간증을 원합니다. 근데 안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어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기적을 경험한 경험하는 것이 믿음을 얻는 데 더 좋겠습니까? 아니면 기적이라고 기적이란 찾아보지도 못했던 저 같은 사람이 예수님을 더 잘 믿겠습니까? 확신컨대, 저는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예수님이 너무,너무,너무 잘 믿겨집니다. 우리 스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이 너무너무 잘 확실히 믿겨집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에게서 나신 것이 왜 안 믿겨집니까? 너무 확실하게 저는 믿겨집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고 믿는 것이 기적입니까? 아니면 그러한 일이 없이도 우리 주님을 주님이 믿어지는 것이 진짜 기적일까요? 저는 확실히 하기는 후자입니다.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고, 믿는 것으로 누구나 다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없음에도 이렇게 예수님이 확실하게 믿어지는 것, 저는 이것이 더 멋진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실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29,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거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그래서 제가 복됩니다. 우리 사랑하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 바로 이 믿음입니다. 세상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주시는 이 위대한 믿음, 그렇다면 그러면 이 믿음에 어떠한 능력이 있어서 인생의 난제 앞에서 이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선언하실까요? 바로 은혜로 주신 이 믿음은, 이 믿음은 마지막 승리까지 약속이 성취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버틸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2장 4절을 보면, 말씀을 보면
 
*하박국 2:4,
4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히브리어로 ‘애무나’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애무나의 의미 가운데 하나가 버티다 ‘마지막까지 버티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고난과 난제로 인한 고통과 이 고통 앞에서 예수님의 부재로 겪는 이중의 고통이 분명히 있습니다만 이러한 고통 중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능력, 에무나의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끝까지 버틸 수 있다구요.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지금 여기 바로 이 자리에 앉아서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해 애무나의 믿음은 너무도 강력하기에 절대 훼손되거나 깨어지지 않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사랑하게 합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여전히 인생의 난제로 나의 마음이 죽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절대로,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애무나(마지막까지 버티다)의 믿음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오늘도 우리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주신 믿음의 능력으로 오늘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고난 삶의 고난의 문제 앞에서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II. 두 번째로, 우리는 이 믿음으로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교회 다니면 믿음이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 삶 속에서 그 믿음의 능력이 나타날까요? 아마도 그런 경우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럼 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의 능력이 우리 삶에서 자꾸 비껴가고 있을까요? 가만히 살펴보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옛날 과거에 머물어 살아가거나 미래로 우리의 믿음을 믿음의 도전을 미루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고난과 풀리지 않는 난제 앞에서 자꾸 믿음을 과거의 믿음이나 미래로 미루는 믿음으로 오늘 일어나야 될 믿음의 능력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을 잠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예수께서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나사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러자 말하다가 이렇게 예수께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11장이신 21절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1:21,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자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 믿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믿음입니다. 지금 말고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예수님이 오셨더라면 오라버니는 오라버니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합니다. 이런 과거에 머물러 있는 믿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예전엔 사실 금식기도 했다고, 내가 젊은 날에는 엄청난 부흥을 경험하고 중고등학교 청년회 때 회장을 했다고, 무엇 무엇을 했다고 내가 옛날에 뭔가 영적인 큰일을 선교를 하고 전도를 했을 때, 엄청난 일이 일어났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하는 것을 우리는 매우 좋아합니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믿음의 능력이 과거에 머물러서 더 이상 자라나지 않는 믿음의 난쟁이들이 되는 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믿음에 머물러 믿음의 난쟁이가 되었다면 우리는 오늘 어떠한 믿음의 능력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또 1가지 유형은 믿음을 미래로 미루는 분들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3절 24절 말씀 가운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3-24,
23 예수께서 이러시되 내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할 때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에게 오늘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예수님의 능력을 미래로 미루어 버립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잘 알고 예수님을 너무너무 사랑하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살려주시겠다고 하시는 말씀도 믿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아주 나중에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습니다. 또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문제, 난제, 고난을 해결해 주실 것도 아주 잘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의 능력이 나타 나냐는 것은 오늘은 아니랍니다. 나중에 한참 후에, 왜요?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약속도 믿지만 믿음의 겁쟁이들입니다. 혹시나 내가 나의 문제 나의 아픔을 해결해 달라기도 했는데 응답되지 않을까? 봐. 내가 믿는 예수를 혹시 내가 의심할까봐? 그저 도망가기 바쁩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로 얻은 믿음이나 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더 큰 의심이 있기에, 우리는 점잖게 내일로, 내일로 나중으로 도망가기 바쁩니다. 그리고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서 나중에 마지막 날에 부활할 때는 다시 살아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겁쟁이 마르다의 고백이 우리의 속마음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과거의 믿음으로 믿음의 난쟁이가 되어 도망가거나, 미래로 미루는 믿음으로 믿음의 겁쟁이가 되어 뒷걸음질 치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지금 바로 이곳에서. 아멘, 이렇게 우리는 마음의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능력은 과거에 머무르거나 미래로 미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드러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영 가족 여러분, 오늘 이 이야기를 하고 이제 마칠까 합니다.
 
지난 3~4개월 전에 한 여 집사님께서 암이 재발됐어요. 2021년도에 수술을 했는데 재발되고 그다음 해 전이되고, 어려운 과정을 겪었습니다. 작년 말에는 의사분이 호스피스 병동까지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제가 전해 듣고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제가 믿음을 가지고 에무나의 믿음 버티는 믿음을 가지고 가서 기도해 드려야 되는데 두려웠어요. 혹시 내가 기도했는데 안 이루어질까 봐요.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믿음의 겁쟁이처럼요. 그래서 믿음의 난쟁이가 되어서 뒤로, 뒤로 뒤로 미루었습니다. 믿음의 난쟁이가 되어 과거의 믿음의 영광만 입으로 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기도해야 되는데, 그래서 기도하면서 그날 치유의 응답이 안 일어날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더 마음의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가야 되었습니다.
 
그런 순간 제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고 담대한 믿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주여 살려주옵소서! 주여, 이 집사님을 살려 주옵소서 제가 가는 곳곳마다 그분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집사님의 이름을 대고 우리 선한 자들을 위해 선한 자들의 기도, 함께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믿으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깨우시는 그 순간순간마다 기도하며, 기도하며 또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몇 개월 전 월요일 날 오후 2시 막 한잠 낮잠이 들려고 하는 그 순간, 몽롱한 순간에 전화가 왔어요. 화가 났어요. 잠을 자야 되는데 월요일에? 이래 전화를 받으니깐 그 집사님의 남편분이에요. 그리고 다짜고짜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뺍니까 맙니까? 뭘 빼고 뭘 말아야 되는지 모르는데, 대답할 수가 없어 자초진종 설명해 보니까 그분이 복수 차고 폐에 물이 차 가지고 폐에다가 관을 꽂았는데 이 관에서 이 물이 다 안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관을 뺀다는 거예요. 그날 가서 기도를 많이 하고 그날 가서 인제 했는데 이제 관에서 물이 폐에서 조금, 조금밖에 안 나오는데 의사가 좀 긴가민가한 거죠. 그래서 집사님한테 물어봤습니다. 근까 이 남편 집사님은 저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저는 뭐라고 답해야 돼요? 나는 지금 비몽사몽인데 이럴 때는 답을 바로 하면 안돼요. 1초 2초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지혜를 주옵소서.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뺐시다. 오늘 뺐시다. 우리는 집사님 우리는 오늘밖에 못 삽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가서 살 수 없고 내일은 아직 안 왔으니 거기도 살 수 없습니다. 오늘 뺍시다 그리고 기적처럼 회복되기 시작해서 그동안 어려워서 할 수 없었던 저랑 같이 섬기는 사역 부서 새 가족 부서에서 스텝으로 생명을 걸고 섬겼습니다. 너무 너무 감동적이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거지요. 그런데 며칠 전에 다시 한 번 집사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항암제도 잘 맞고 마침 아내가 이 항암 치료하는데, 이 약값이 너무 비싼데 마침 우리 집사님부터 보험이 적용됐답니다.‘ 할렐루야, 아닙니까? 그래서 항암치료하고 하루 이틀 하는데, 갑자기 간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간수치가 올라가고 또 의사는 호스피스 병동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목사님 어떡합니까? 저는 어떡합니까? 그래서 오늘 이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생과 사를 주관하시는 우리 하나님, 화와 복을 다스리는 우리의 하나님,
오늘 과거에 내 과거로 나의 믿음을 미뤄 버리고, 미래로 내 믿음을 미뤄서 숨고 도망가는 믿음이 아니라, 애무나의 믿음, 끝까지 버티는 믿음 마지막 승리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강력한 에무나의 믿음 허락하여 주셔서,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시 집사님에게 생명의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여 이 집사님에게 생명의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바로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믿음의 기도로 나갈 때 낙망의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함으로 말미암아 오늘 가장 위대한 소망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우리 귀한 성도님들도 믿음으로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 앞에 놓은 고난과 난제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에무나의 믿음을 가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며 승리해야 한다. 우리 영 가족 공동체가 과거의 믿음에 머무르거나 미래로 믿음을 미루지 말고 어떠한 순간에도 믿음 보고를 올려드리는 영적 군사로 살아가야 한다. 이 믿음으로 현재의 초월적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여,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깨달아, 믿음의 기도용사로 비상하여 주님의 기쁜 자녀로 주님의 지상 명령을 실천하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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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6월 9일)
제목: "사역의 참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 The True Model  of Ministry)
-(예수님은 누구신가?
 )

   
말씀:마태복음 3:13-17
대표기도: 강경식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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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3:13-17,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 5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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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탄생 46주년을 맞이하여 광야(廣野) 같은 우리 삶의 여정(旅庭) 가운데서도 은혜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지켜주신 주님을 찬양(讚揚)합니다. 우리가 목마를 때, 광야에 생수(生水)를 터
드려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헐벗었을 때는 옷이 헤어 지지 않게 하시고, 진리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와 찬양드립니다.
 
저는 오늘 찬송 듣는 가운데 목이 메어 가지고 정말 46년 교회적으로도 그러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수많은 과정들이 있었지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인도하신 것, 하나님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영광과 감사와 존귀를 올려 드립니다. 우리 감사의 박수 한번 올려드리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만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46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은 어떻게 보면 종착역이 아니라, 계속되는 사역의 진행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6년이 되어 이제는 안주하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계속 주님이 주시는 꿈과 사명으로 우리의 사명과 비전의 수레를 그리스도에 메고, 온 성도들이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인 사랑의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걸어 다니는 여러분 한 분, 한 분 무형 교회인 우리가 포부(抱負)의 수레를 그리 속에 메고, 믿음의 경주(競走)를 뚜벅뚜벅 한 결 같이 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46년간의 역사는 이 민족의 역사 앞에 비추어 볼 때에, 우리는 1978년도 강남의 도곡동에 그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고 질척거리는 상가 2층 건물에서 교회를 시작하고, 또 조금 옮겨가지고 짜장면 집 2층에서, 그래서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짜장면 냄새로 하여금 어 참 쉽지 않은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마는 그때는 우리가 개발도상국 그리고 이제 중진국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 시대를 그 시대 때 태어난 교회가 오늘 46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최첨단의 이 도시인 강남에 테헤란의 서초 입구에서 오늘 46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은 감회(感懷)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46년이 되었다. 하는 이 내용보다도 앞으로 우리의 사역을 어떻게 감당(堪當)할 것인가? 오늘 사역의 참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눈에 보이는 사랑일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으로 빚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공무 3장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그런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지난주에 임마누엘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오늘과 다음 주를 거쳐서 두 번에 걸쳐서 한 번은 세례를 받으시고, 또 광야의 시험을 이기시고, 이제 드디어 공생애를 시작하시게 되는 겁니다.
 
오늘 이 내용은 너무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에도 포괄적(包括的)으로 오늘 이 내용이 다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聖徒)라면 또 교회를 섬기는 주의 진실한 종(從)들이라면 반드시 이 내용이 무엇인지를 핵심(核心)을 정확하게 알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복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이 내용들을 통하여 사랑의 교회 미래를 향한 새로운 토대 새로운 패러다임 시프트를 가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13절을 보겠습니다. 뭘 우리 교회의 토대로 삼아야 할 것인가? 뭘 우리 신앙생활(信仰生活)에 토대(土臺)로 삼아야 할 것인가? 13절에 보니까 같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13,
13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첫 번째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여기에는 복음의 깊은 신비(神祕)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난주에 제가 자세히 좀 더 설명을 다 안 드렸습니다마는 이 땅에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지만 예수님은 신성(神聖)을 가지시고 전혀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전혀 죄가 없으신 그분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다. 라고 가까이 세례를 받으시러 나가실 때에, 14절에, 세례요한이 깜짝 놀라가지고 요한이 말려 이르되 아니 주님 내가 주님께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왜 주님이 나한테 세례를 받으십니까?
 
*마태복음 3:14,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거는 이건 말도 안 되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거 아닙니다. 이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예수님을 너무 잘 알거든요. 요한과 예수님은 친척관계입니다. 당시 씨족사회 혈연 사회에서는 친척이면 그 집안의 밥그릇이 몇 개가 있고, 숟가락에 몇 개가 있고, 양이 몇 마리나 있는지 그 집안의 내용을 환하게 알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걸 요한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내가 세례를 받아야지 어떻게 예수님이 제가 세례를 받냐고, 말이 안 됩니다. 그럴 때 주님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15절에 오늘 본문 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I. 복음의 신비.

*마태복음 3:15,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요한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허락하라. 왜? 이와 같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와 같이 해 가지고 모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아니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윤리적 차원 정도가 아니라, 이거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령한 정말 하나님의 구원(救援) 역사의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이 왜 큰 의미가 있냐 하면, 이 요한의 세례를 마가복음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요한의 세례는 회개(悔改)의 세례다. 이렇게 나와 있어요.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제3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 이래 나와 있어요.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神聖)을 가지시고 죄(罪)가 없으신 분이시고 육신의 몸을 입었지만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제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悔改)의 세례(洗禮)를 받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근데 그 주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는 말은 그리고 그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그 일을 통해 하여 하나님의 모든 의(義)를 이룬다는 뜻은 깊은 복음의 신비가 내재(內在)되어 있는 것이에요. 그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공의(公義),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마땅히 형벌(刑罰)을 받아야 되고 우리는 영원한 심판(審判)을 받아야 되고 우리는 영원한 멸망(滅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罪人)인데 예수님인 내가 받아야 할 그 처참(悽慘)한 죄의 형벌(刑罰)일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代身) 서 주셨다 이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는 분이신데, 죄(罪)의 대표자(代表者)가 되어 주셨다 그런 뜻이 그리고 이걸 깨달을 때마다 복음(福音)의 신비와 능력을 깨달을 때마다 가슴에 벅찬 감격(感激)이 있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는 앞으로 50주년, 60주년 계속되어가는 그때까지 70주년 계속될 때까지, 이 복음의 깊은 신비가 철철 흘러넘치는 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야 할 자리에 주님이 대신 서주셨으니 우리가 어떻게 큰소리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대신 서야할 자리에 주님이 형벌을 받으셨는데, 그 형벌이라는 것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주님이 죄의 값을 치르신다고 그랬을 때, 주님은 오늘 죄의 값 정도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모든 연약(軟弱)한 것을 주님이 져 주신 것이에요.
 
우리 삶의 아픔과 우리 삶에 트라우마와 우리의 삶에 모든 고통(苦痛), 죄를 대신 져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연약(軟弱)함을 담당해 주시고, 우리의 병(病)도 짊어주시고, 죄로 인한 고통과 징벌(懲罰)도 담당하셔서, 결과적으로 오늘 우리를 위하여 죄의 대표자가 되셔서 영안의 세례를 받으셨다는 뜻은 오늘 우리를 치유(治癒)하시고 우리에게 샬롬의 평강(平康)을 주신다는 것을 선포(宣布)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매일매일 삶을 살아가면서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제가 한 번씩 말씀드리지만 어느 집안이든지 그 집안의 삶의 커튼을 살짝 열고 그 집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기도 제목 없는 집안이 없고, 많은 가정, 가정 가정들이 예수님을 믿어도 수많은 삶의 애환(哀歡)과 질고(疾苦)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이 귀한 예배에 겉으로는 우리가 정장을 하고 나름대로 평안한 삶을 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그 내면은 감당 못할 일로 엎어진 마음으로 오늘도 ‘천부의 의지 없어 손들고 옵니다.’ 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신 그런 분들도 여러분들이 계실 거예요. 제발 맞아요. 틀려요? 오늘 주님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엎어진 마음으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는 그런 안타까운 심정으로 오신 그분들의 삶에 모든 애환(哀歡)과 질고(疾苦)와 연약(軟弱)함과 병(病)을 다 짊어지셨다. 그 뜻이에요. 그래서 오늘 내가 받아야 할 그 엄청난 죄의 형벌을 주님이 오늘 받으셨다. 회개의 세례를 통하여 받으셨다. 내 대신 그 자리에 주님이 서셔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다. 그걸 생각하는 순간 저와 여러분 복음에 깊은 신비가 깨달아지고 나도 모르게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듣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할렐루야!!~

슬픔만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오늘 찬양대 찬양은 본래 따라라 라라 딴딴 그 솔리스트가 팍 나와야 되는데 방송이 좀 약하게 해 가지고 그 감격(感激)과 고백(告白)은 말로도 할 수 없는 거예요. 천성을 향하여 한 번 더 하실래요? 나중에 마치고 한 번 더 들어보세요. 마치고 나면 그 마치고는 방송할 때, 우리 솔리스트를 크게 틀어줘야 돼요. 주여 듣는 귀를 주시옵소서.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제가 이 찬송을 한 30년 전에 뉴욕에서, 뉴욕의 ‘리버사이트 교회’ 라는 그 당시에 유명한 교회가 있었어요. 거기가 CD를 하나 사 가지고 이걸 듣는데요. 귀가 막히는 거에요. 저 찬송 들으면서 토론토의 집회를 올라가는데, 뉴욕에서 집회로 올라가는데 하면서 밟다가 그냥 뒤에서 경찰이 잔잔잔 따라와 가지고 티켓 1장, 280불 딱 내고, 그 다음에 또 집회마치고 내려오니 듣고, 너무너무 좋아 내려오는데 또 잔잔잔,,, 하여튼 하루 이틀 사이에요. 제가 티켓(벌칙금)을 2장 떼었어요. 그래도 아무런 마음의 짐이 없었어요. 이 찬송이 너무 좋아 가지고 자 이렇게까지 말씀드리면, 우리가 수많은 티켓도 떼고 수많은 어려움도 있고 수많은 확률도 있고 다 있지만,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새, 하는 동안에 삶의 모든 애환(哀歡)이 물러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탄생 46주년을 감사하면서 예수님의 탄생(誕生) 예수님의 세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끊임없이 사랑 이루는 진행(進行)형으로 그리고 진행하여야 하는 시대가 변해도 이 복음의 능력은 계속 이어가야 할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가운데 세례 안 받으신 분이 계시면 오늘 세례 신청서 다 만들어 놨으니까 밖에 나가다가 세례 신청서 신청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했지 않고 능력이 있는 것이고. 실체에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랜만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46주년을 맞이하여 오늘 복음 때문에, 예수님의 회개 세례 때문에, 예수님이 연약한 짐을 지어 주시는 것 때문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여러분들 어떻게 합니까? 적당이가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좋습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번 할까요? 자 본당에 계시는 분들, 별관에 계신 분들, 저 대부도에 계시는 분들, 또 SNS로 또 방송으로 전 세계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 오늘 이 내용 오늘 이 예배는 저 미국에는 현장 중계가 되는데, 현장에 지금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 제가 물을 때 “좋습니다.!!!” 물론 운전하는 분들은 운전대를 들고 해야 되고 붙잡고 해야 되고 여러분들은 좋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한번 고백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날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영 가족 여러분, 사랑의 교회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 여러분, 오늘 46주년을 맞이하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죄인의 대표자로서 대신 회개 세례를 받으셨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오늘 이것 때문에 우리 연약함을 주님이 다 돌봐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이것 때문에 오늘 예수님 때문에, 봄 때문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할렐루야!!~ 다시 한 번, 여러분 제 예상을 뛰어넘으셨어요. 다시 한 번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주님의 몸 된 교회 때문에, 주님의 신비한 복음의 때문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삶에 모든 짐들이 벗어지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의 애환들이 다 벗겨지기를 바라고 삶의 복락(福樂)의 강수(江水)를 체험(體驗)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설교 그만하고 싶습니다. 복음의 신비는 놀라운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16절에 보니까,
 

II. 성령의 능력.

*마태복음 3:16,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그랬습니다. 너무나 장엄(莊嚴)한 장면(場面)입니다. 너무나 고귀(高貴)하고 영광(榮光)스러운 장면입니다. 소위 매제스틱 씬(Majestic Scene)입니다. 매제스틱 하다그요. 성경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완전히 한 장면에서 그대로 그림 언어로 이와 같이 우리가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아주 거의 유일한 장면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으시고, 오늘 이 시간 세례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누가복음에는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臨)했다. 그리고 17절에 승부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마태복음 3:17,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6-17절에 걸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 성부의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아주 그냥 장엄하게 나타나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랑의 교회는, 한국 교회는 계속해서 하늘이 열리는 능력을 받아야만 합니다. 하늘이 열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신비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하늘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입히 우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오늘 이 자리 오늘 서초동의 하늘 문이 열려야만 하는 겁니다. 오늘 1부, 2부, 3부, 4부에 하늘 문이 열려야만 하는 것이고. 반포대로 121번지에 하늘 문이 열려서 성령이 위로부터 임하셔야 되는 것이죠. 성령의 능력이 위로부터 임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걸 누가복음에서는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능력이 입히올 때까지 기다리라 그랬어요. 소위 영어로 임파워링 모우먼트(Empowering Moment)가 필요합니다. 능력이 위로부터 임해지는 거예요. 업폰(Upon), 위로부터, 헬라우르는 에피라고 부르는데, 위로부터 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끝까지 인격적 성령사역에 민감(敏感)한 교회, 하늘 문이 열리는 능력을 체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어제 아침의 노래는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없도록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세상에 종교는 네가 갖고 있는 잠재력(潛在力)을 계발(啓發)하라. 너 정신력(精神力)을 일깨우라. 그렇게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깨달아야 됩니다. 가계 종교입니다. 다 애를 써야 합니다. 면벽(面壁) 구면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신비를 깨닫고 난 다음에는 신앙인은 예외 없이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종교는 내가 근거가 되고, 내가 무엇을 하는 건데,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마치 상한 사자와 강아지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아지는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사자 앞에서는 감당(堪當)이 안 됩니다. 사자 앞에 있는 강아지를 벌벌 떨고 있는 강아지를 보면서, 너 안에 있는 잠재력, 너 안에 있는 포텐셜, 너 안에 있는 힘을 분발하라. 아무리 그렇게 해도 사자를 이길 수가 없는 거예요. 사자를 이기려면 사자를 이길 만한 그 무언가를 위로부터 받아야만 하는 것이에요. 왜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오늘도 마귀(魔鬼)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서도 우는 사자가 강아지를 찾고 있듯이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고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유혹(誘惑)하고 공격(攻擊)하는 것을 모르는 그리스인들이 너무 많아요. 모르고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하면서도 자기 희망으로 살겠다. 라고 한 사람들 너무 많아요. 어떻게 강아지가 사자를 이기겠습니까? 생각을 해보십시오. 아무것도 손에 진 것이 없이, 적의 칼날이나 총알이 난무(亂舞)하는 전쟁(戰爭)터에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신 나간 사람이에요. 전쟁(戰爭)을 위해서는 전신(全身) 갑주(甲冑)를 입어야 합니다.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무언가 전쟁을 할 만한 도구가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아무것도 없다면 하다못해 물맷돌이라도 있다면 하는 것입니다. 그 물맷돌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무장(武裝)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그렇게 왜 그렇게 토요비전새벽 예배(禮拜)를 강조합니까? 토요비전새벽 여배는 강아지가 사자를 이기는 시간인 것입니다. 강아지같이 부족(不足)한 우리 인생이, 사자(獅子)같이 우는 사자같이 우리를 시험(試驗)하려고 하는 마귀(魔鬼)의 세력(勢力)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뭐 나오는 데 관심도 없는 분들이 많아요. 강아지가 사자를 이기는 시간이 토요비전 새벽예배에요. 우리 가운데 아침마다 일어나서 여러분들은 샤워를 하고,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하루의 삶을 시작하시는데, 뭐 살면 허겁지겁 해가지고 아침마다 일어나갖고, 그냥 허겁지겁 그냥 강아지가 사자 앞에 밥이 되는 거예요. 아침마다 일어나 가지고 샤워를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전신갑주를 입혀주시옵소서.’ 매일 매일마다 하늘로부터 능력을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새롭게 되고 그래서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46주년을 마치고, 이제부터 매일매일 매일 아침마다 성도들은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할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세계를 품고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은혜를 받아야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기도보다 앞서지 말게 하여 주시옵시고, 성령보다 앞서 나가지 않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작년과 재작년에 ‘한국교회 섬김의 날’ 작년 2차에 걸쳐서 특별히 작년 같은 경우는 7천여 명의 목회자가 모여서 기도를 하는데, 여러분 그 기도하는 첫날 저녁 기도를 하는데 천장이 울리고 천국의 물소리 같고 그야말로 천둥소리 같은 그런 기도를 하는 거예요. 제가 가만히, 저희가 같이 제가 기도를 인도하면서, 제 마음을 떠오르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이 목사님들이, 목회자들이 감당해야 할 귀한 사역들은 마귀와의 전쟁을 해야 되는 거에요. 대부분의 교회가 크지 않는 교회 목사님들이 많이 오셔 가지고 이제는 내가 교회 문 닫아야 되나?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되나? 이 전쟁터와 같은 이 사역 가운데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러니까 하늘로부터 능력을 입히지 않으면, 입지 않으면 감당이 안 되니까.

너무나, 너무나 간절한 절박(切迫)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하니, 그 기도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 같은 기도요, 천국의 물소리와 같은 기도에요. 우리 천장을 울리는 기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이번 10월 21일도 제3차 한국교회 섬김의 날 나왔는데 말씀한 대로 하루도 안 돼 가지고 7천 명의 목회자가 등록을 했습니다. 그게 많은 분들이 뉴스를 못 듣고, 하고 싶었는데, 등록을 못 했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러면 좀 젊은 분들이 좀 더 기회를 드리겠다 대신 본당에는 못 들어온다. 본당에는 막 미우치고 하고 막 그냥 오만 데 다 앉으면 7천 명 왔는데 본당에는 못 들어온다. 밖에 은혜채플, 사랑채플하고, 밖의 별관에서 집회를 해도 되겠냐? 상관없다고 그것도 하루 만에 또 1044명이 또 젊은 사역자들 중심으로, 8044명이 10월 21일 날, 하늘로부터 부어주신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을 기대(期待)하며 사모하고 메어 달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이 민족을 살려주실 것입니다.

1, 2, 3차 다 합치니까, 교회가 만 4천교회입니다. 여러분, 만4천교회의 한국교회 4분의 1 변화되면, 이민족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인데, 그게 뭐냐 16절에 성령이 어떻게 내려왔는가? 보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뭐와 같이 내려왔다고요. 비둘기같이 내려왔어요. 강한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살고, 내가 그냥 막 휘두르며 사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에 찬송에 있는 거 같이 “비둘기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 그다음에 가사가 거친 마음으로 어루만지사 위로와 평화 주소서.” 성령의 비둘기 같이 오시는 것이에요. 그럴 때 거친 마음이 어루만져져 가지고 위로와 평강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은혜를 받으면 위로부터 능력 받으면 여러분만 평안과 여러분들이 여러분들만 평강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도 그런 은혜를 같이 받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모세는 민수기, 또 신명기에 보면, 모세는요 120세가 될 때까지 기력(氣力)이 쇠(衰)하지 아니하고, 모세는 120세 될 때까지 눈이 흐려지지 않았더라. 전 요즘 갈망(渴望)하고 있어요. 그걸 120세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기력이 쇠하지 않고 그다음 뭐가 있어요. 눈이 흐려지지 않는다. 여러분 눈이 흐려지지 않는 노년(老年)이 되기를 바랍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고 눈이 흐려지지 않는가? 모세가 성령 충만 해서 그래요. 증거가 뭐냐 민수기 12장의 3절에 보면,
 
*민수기 12:3,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의 온유함이 최고였다. 여러분, 온유하면 오래 삽니다. 120세까지 살 거예요. 5년 물론 대신 광년 40년을 걸어야 합니다. 걷고, 40년 걷고, 그다음에 온유하면, 다 백수 누릴 겁니다. 이 말을 그대로 받는 분들은 100살 때, 인사할 거고, 예 서로가, 그 성경은 세상은 정의는 강자가 이기고, 강자 생존이지만 성경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통하여 겸자생존(謙者生存)이 되는 겁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가 사람을 어떻게 겸손 하는가? 대표적인 사람 하나 있고, 대표적인 나라가 하나 있어요. 여러분 바울은요,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는지 몰라요. 난 지 8일 만에 할례(割禮)를 봤고 율법으로는 흠(欽)이 없는 사람이고, 율법(律法)으로는 바리새인이고 바리새인 중에 최고의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베냐민 지파로서 있잖아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흠이 없는 자요. 그때 그가 성령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 돌멩이 들고 스테반 때려 죽여도 괜찮은 막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다음에 살인 면허장 받아 가지고 다마스커스를 갔는데 그것도 막 이런 사람이었는데, 성령 충만 해 가지고 바울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그리스도 안에 내 생명의 능력의 법이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성령의 능력이 나를 죄와 사망의 능력에서 해방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러고 난 다음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바울이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그런 사람은 큰소리치던 사람이 나는 만삭(滿朔)되지 못하게 태어났다. 얼마나 겸손(謙遜)한지, 또 바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怪獸)니라. 기가 막힙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직분을 받습니다. 근데 직분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완장(腕章)을 찬 것처럼 생각해 가지고 받기 전과는 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교회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사랑의 교회는 직분을 받아도 하나님 앞에 신실(信實)하게 섬기는 섬김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그래서 직분 받을 자에게 딱 하나 묻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기는 자가 되겠느냐?’ 이게 성령 충만의 하나의 실체적인 증거가 되는 겁니다. 50주년, 60주년을 향하여 섬김의 역할을 잘 담당하는 교회와 공동체(共同體)가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비둘기 같이 겸비(謙卑)하고 겸손(謙遜)한 마음은 성령이 기름 부으시면, 채널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또 서로 선수는 겸손하면 또 성령의 역사도 겸손 화되고 하 서로서로 이렇게 에 서로 영적인 우리의 선순환이 되는 것이에요. 성령의 역사를 통한 겸비함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나타납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고, 니느웨는 정말 크고 폭력적이고 가장 강한 나라였어요. 근데 요나가 회개(悔改)하지 않으면 너 다 죽는다. 그러니까 성령 역사가 있으니까 요나는 그 말을 전하면서도 회개 안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전했어요. 그런데도 그 앞에 요나서3장에 보니까,
 
*요나 3:6-7,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요나 3:7~8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온 국가가 다 망할 수밖에 없는 국가가, 변화된 것이에요. 한국 교회의 인격적 성령사역의 은혜가 충만히 복음적인 토대와 성령의 은혜가 있어 가지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하나님을 기뻐하신 역사로 바뀌게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이 민족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으로서 성령 충만한 역사를 이루어 가지고 제사상 나라가 되고, 축복의 근원이 반드시 돼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은 이 은혜를 가지고 이사의 61장에 있는 말씀처럼 그걸 누가 보면 사장의 인용해서,
 
*누가복음 4:18,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오늘 이 내용 그대로 하나도 남김없이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 그대로 접목(接目)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가난한 사람의 기쁜 소식을 포로(捕虜)된 자에게 석방(釋放)하게 하시고, 시각(始覺)장애(障礙)는 시력(視力) 회복(回復)을 하게 하시고, 억압(抑壓)받는 자들은 자유롭게 하시고, 첫 번째 질문을 아까,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때문에 어떻습니까?
모르는데 여러분 다 ⓵예수님을 영접 하셨습니까? 두 번째 ⓶여러분 성령 충만하십니까?

아멘!!! 그 아멘이 그대로 역사가 일어나기를 줄로 믿습니다. 두 가지 사랑의 교회는 끝까지, 복음과 성령, 이제 마지막에 중요한데 17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1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III. 자녀의 사명.

 
*마태복음 3:17,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증(人證)서를 주시는 거예요. 예수님은 내 아들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 거룩한 정체성을 확신(確信)시켜 주시는 거예요. 소위 자녀의 사명을 주시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는 그 사실을 깨닫고 확인하고 기뻐하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의 삶에 아우라와 기쁨과 능력과 존귀함이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아마 이것이 예수님 앞으로 공생애 할 때에 수많은 난관(難關)과 어려움과 십자가와 섬김과 고통과 상처(傷處) 가운데서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야, 하나님의 아들이야, 나는 하나님의 사명 받은 하나님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야. 이걸 깨닫는 순간 계속 이걸 마음에 간직하고 계속 집중하는 순간 어떤 경우에도 약화되자 아니하고 주님이 주신 하나님이 주신 아버지가 주신 사명을 묵묵하게 감당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다 똑 같아요.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돼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엉터리 정체성이 아니에요. 우리는 매일 매일 마다 너무나 엉터리, 엉터리 매일 아침마다 유튜브하고, 너무나 엉터리 정보들을 많이 듣고 있어 수많은 정보들이 귀를 막고 들어서는 안 되는 내용들이 너무 많아요. 특히 SNS에는 부정적이고 영혼을 해치는 독을 뿌리는 정보가 난무(亂舞)하고 있어요. 극단적 팬덤들이 하는 유튜브를 보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은 마치 열 정탐(偵探)꾼이 가나안에 대한 보고를 할 때, 엉터리 겉으로는 맞는 것 같은데, 다 맞는 것 같은데, 여러분의 영혼(靈魂)을 좀먹는 그런 것들이 너무 엉터리들이 많아요. 그런 엉터리 정보(情報)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정체(正體)성을 확인하지 말고 오늘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자야, 내 기뻐하는 자야, 너는 하나님의 자녀에 사명이 있는 자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야, 오늘 이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종합적으로 볼 때 하나님 나라의 왕자가 되고 공주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는 함부로 몸을 굴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認定)받는 그 정체성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아부할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후 유 알 디터민스 왓 유 두?(Who you are dietermins What you do?) 네가 누구냐가 내 행동을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구걸(求乞)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구걸(求乞)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왕(王) 같은 제사장(祭司長)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함부로 내팽개쳐서 강남의 한 골목에서 술 취해 가지고 흐느적, 흐느적거릴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저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인 것을 선포(宣布)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가 아니라, 이 세상 세상에서 노예(奴隸)처럼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 마음속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야, 너는 내 기뻐하는 자야,’ 이 정체성이, 이 사명이, 이 직분이 우리를 존귀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때 우리 눈빛이 달라질 것이고, 우리 표정(表情)이 새로워질 것이고, 우리의 음성(音聲)이 밝아질 것입니다. 앉아있기만 하더라도 여러분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생길 것입니다. 거룩한 정체(正體)성과 거룩한 정체성과 거룩한 품위(品位)를 하나님이 회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목회자(牧會者)자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있었죠. 그러니까 제가 볼 때, 목회자의 아들이 술 마시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목회자 아들이 쌍욕을 하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묵회자의 아들이 고고 추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그래서 저는 춤을 모르고, 저는 술을 모르고, 저는 제 생에 아직까지 찰진 욕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쌍 시옷자를 발언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야, 너는 내 기뻐하는 자야,’ 오늘 17절의 내용을 다시 고백해 보겠습니다.
 
오늘 17절의 내용을 우리가 한 번 같이 합니다.
OOO,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내 기뻐하는 자라.
여러분 이름을 넣었습니다. 시작 오정현은 내 사랑한 아들이야, 크게요~ 우리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할렐루야!!!~
 
이거 계속 여러분들 집중하는 한 여러분들의 음성, 표정, 얼굴 표현, 모든 것이 다 달라지고 아우라가 있게 돼 가지고 여러분들의 남은 미래(未來)가 더 이상 수치(羞恥)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주님이 이걸 믿는 것이 믿음인 거예요.
 
오늘 이 3가지 복음, 사명, 정체성, 예수님은 오늘 요당 강물을 갈라가지고 이거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과거에 여호수아는 요단강물을 똑같이 요당강물을 갈라가지고 가나안에 입성(入城)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물을 갈라 가난을 입성하듯이, 오늘 우리는 이 시대에 이 말씀을 듣고 이 시대의 요단강물을 갈라가지고, 복음과 사명과 정체성을 가지고, 사랑의 교회는 롤 모델의 이신 주님을 닮아, 계속 쓰임 받는 은혜가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제가 윌리엄 윌버퍼스 말씀을 하고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46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 뭐 좀 도움 되는 것이 없습니까? 아마 제가 연구를 하고 찾다가 제가 받은 어떤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윌리엄 윌버폴스 라는 영국의 의회 의원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창기(草創期)에 한 5년 동안 많이 강조(强調)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윌리엄 윌버폴스는 1759년에 태어나 가지고 1833년 그러니까 18세기와 19세기, 2~3기를 산 인물인데, 그 당시 프랑스 대혁명이라 프랑스에는 그냥 피가 강체로 흘렀습니다. 프랑스 혁명 별로 좋은 거 아니에요. 영국은 그러면 안 된다. 영국은 명예 그러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려면 우리가 제일 잘못한 게 뭐가 있냐, 노예제도(奴隸制度)였어요. 그런데 그 노예 제도가 우리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폐지(廢止)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시의 18세기 19세기 영국 기관 산업의, 산업의 제일 중심축이 노예제도였어요. 노예 제도, 노예무역 그걸 철폐(撤廢)한다는 것은 영국의 산업의 발전(發展)을 포기(抛棄)하는 거, 비슷해 가지고 5년, 10년, 20년, 40년을 얘기해도 해결(解決)이 안 되는 거예요. 윌리엄 윌버포스가 정말 마음에 사명을 가지고 한두 대결이 안 되는데, 외롭고 홀로 악한 세력을 대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45년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가 죽기 3일 전에 46년이 지나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제도가 영국 의회에서 폐지(廢止)된 줄로 믿습니다. 남들은 안 된다. 안 된다고 하는데 46년 만에 기도가 응답(應答)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수많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5년, 10년 마음을 집중(集中)할 분이 계시다면 오늘 46주년 이후로 응답 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46년 동안 그렇게 한 결 같이 흔들림 없이 부르심의 길을 한 결 같이 달려 나갈 수 있었던 윌리암 윌버폴스의 비밀이 뭔가? 보니까 윌리엄 윌버폴스를 뒤에서 밀었던 놀라운 공동체(共同體)가 하나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면 클랫폼 공동체라고, (CLAPHAM)클랫폼 공동체라고, 공동체는 기독교 형제단이라는 이름을 가진거에요. 이름을 가진 공동체였는데, 이 공동체가 윌리엄 윌로폴스의 뒤에서 밀었어요. 그래서 그것이 뭐냐면, 그래서 밀어준 윌리엄 윌버폴스가 실제적으로 행동대로 나서게 되고, 꼭 이것은 마치 무엇 같냐면, 활과 화살과 같은 기능이었어요. 윌버폴스는 화살의 기능을 하고, 클래폼 공동체는 활의 기능을 하고, 여러분 아무리 날카로운 화살이라 할지라도 활이 쏘아주지 않으면 과녁을 맞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활이 멋있고, 장군 멋있어도, 화살이 제대로 없으면 마공(磨工)한 화살, 갈고 닦은 화살이 없이는 그 활은 아무리 활을 좋아도 아무런 역할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의 교회는 사랑의 교회라는 공동체 이 공동체(共同體)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시대의 화살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갖는 ‘2033-50 비전’이라는 과녁을 앞에 놓고 여러분과 저는 화살이 되고, 우리 온 교회는 활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주신 사명(使命)을 잘 감당(堪當)할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대의 화살을 알리는 활과 시위의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이 개인과 우리 온 교회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비전을 복음과 성령과 사명으로 잘 감당하는 신실한 주의 종이 될 수 있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덮입혀 주시도록 축원합니다.
 
요약
중한 죄 짐 지고 가는 우리 인생의 고통과 형벌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서 주셨으니, 우리 가정과 일터의 수많은 아픔과 상처가 복음으로 다 치유되고, 나의 절박한 심령 위에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부음 받을 때,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은 겸손한 자가 표효하는 세상을 이기는 강력한 영적기백으로 무장하여 주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심을 받는 제자훈련 선교 공동체의 거룩한 정체성과 2033-50 비전과 사명 위에 설 때, 세계복음주의의 쇠퇴를 막는 시대의 화살로 쓰임 받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오늘 사랑의 교회가 46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 주신 사명을 꿈꾸며, 힘차게 달려가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죄 없으신 주님께서 내가서야 할 그 자리에 서 주셔서, 중한 우리의 삶에 죄 짐을 벗고 고통을 치유하고, 찬양하게 하신 것을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성령께서 서초동의 하늘 문을 열어주시고, 절박(切迫)한 벼랑 끝에 서 있는 성도들에게 능력을 입혀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전신(全身)갑주(甲冑)를 입고 매일 아침마다 성령(聖靈) 충만(充滿)하여 달려 나가는 은혜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마광(磨光)한 갈고 닦은 화살이 되는 사명자로 사랑의 교회는 강력한 활시위로 서로 돕는 공동체가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기도보다 앞서지 말고, 성령보다 앞서지 말아야 한다. 직분이 아니라 성령과 섬김으로 살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21세기 클레팜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자.
 
-요약
1. 창립 46주년 말씀과 기도.
- 교회의 시작은 교회의 창립 46주년을 기도로 시작함
- 46년 동안의 사랑의 교회의 역사를 찬양하며 은혜와 찬송을 올려드림.
- 목사님의 역할을 참 모델로서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압도하는 제자가 되는 것을 다짐.
- 교회의 새 시대적 사명에 대해 기도하며 간절히 바라봄.
- (중요) 국정 수행을 지혜롭게 하여 나라가 강력해지도록 기도함.

1-2.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
- 80년 간 북한의 정권 폭증으로 고통 받는 북한 백성들에 대해 불쌍히 여김.
- (중요) 모든 공의와 진리를 통해 북한 백성들이 속히 자유와 평화를 이루도록 기도함.
- (중요) 사회적 약자들과 이웃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며 공동체로서 쓰임을 다짐.
- 이를 위해 교회가 사회적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함을 강조함.

1-3. 기도를 통한 은혜의 찬양
- 찬양과 찬양대를 통해 예배를 드림.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의지를 다짐.
- 이를 위해 찬양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신령과 진정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함.
-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함을 긍정하며 찬양을 올림.
- (중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베푸시며 열심히 기도함.

2. 복음과 신앙생활의 깊이.
2-1. 예수님의 세례와 신성.
- 예수님은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가 없음.
- (중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함.
- 요한과 예수님은 친척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확실히 알고 있음.
- 요한이 세례를 받게 된 시점에는 예수님이 이미 완전한 신성을 가지고 있음.
-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은 모든 의를 이룬 것의 표시.

2-2. 세례의 의미와 중요성
- (중요)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 즉 복음을 전파하는 역할을 의미함.
-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는 분이지만,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모든 의를 이룬 것.
-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은 죄의 대표자가 되어주기 위한 것.
- 복음의 깊은 신비는 세례를 받아야 죄의 대표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을 말함.
- 이 깨달음은 사랑의 교회가 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
- 사랑의 교회와 복음의 실천.
- 사랑의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 사랑의 교회는 눈에 보이는 사랑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사람을 포괄적 사랑을 의미.
- 46년 동안의 사역을 통해 사랑의 교회가 됨을 증명함.
- 이를 통해 우리는 복음의 깊은 신비와 사랑의 교회를 향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얻게 됨.
- (중요) 이 패러다임은 사랑의 교회가 46년 동안 지속되는 사명과 비전의 수레를 계속 추구함으로써 성취됨.

3. 죄의 대표자로서의 예수님 세례에 대한 깊은 이해.
- 죄의 대표자로서 예수님 세례에 대한 이해.
- 예수님은 죄의 값을 치르며 모든 삶의 고통과 병을 짊어줌.
-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우리의 죄가 짊어짐.
- (중요) 예수님은 우리를 죄의 대표자로 서며 그 자리에 우리를 치유함.
- 죄의 대표자로서 예수님은 모든 애환과 고통을 짊어지고 징벌을 받음.
- 예수님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

4. 사랑의 교회 창립 46주년 감사예배.
- 사랑의 교회 창립과 개인적 신앙성
- 목회자의 아들에 대한 신앙성과 정체성에 대해 언급함.
- 여러분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아들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을 말함
- 그러므로 주님이 이 시대의 요단강물을 갈라가지고 복음과 사명을 말씀하심
- (중요) 믿음의 정체성은 주님이 개인의 남은 미래를 수치와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게 하심
- 개인의 아들에 대한 신앙성이 어떻게 정체성을 형성하는지 설명함

5. 윌리엄 윌버 폴스의 공동체와 그 역할
- (중요) 윌리엄 윌버 폴스가 46주년 이후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제도가 폐지된 사실을 언급함
- 윌리엄 윌버폴스를 사랑의 교회와 화살의 역할을 하는 공동체로 설명함
- 공동체는 윌리엄 윌버폴스의 화살과 활의 공동체 기능을 맡고 있음.
- 공동체는 믿음의 교회로 성장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신실함을 강조함.
- 윌리엄 윌버폴스의 공동체는 클랫폼 공동체로 설명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함.

6. 예배에 앞서의 기도와 감사의 말씀
- 사랑의 교회는 활과 화살의 기능을 맡는 공동체임을 말함.
- 사랑의 교회는 시대의 화살을 알리는 역할을 하며, 이에 따른 기도를 강조함
- 하나님을 통해 온 교회가 활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비전을 복음, 성령과 사명으로 감당함
- (중요) 하나님을 감사하며 그 찬양을 드림
-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욱 행복해짐을 강조함

7. 새로운 시대를 위한 기도와 선교 전략.
- 46년 동안의 은혜의 감사와 고백. 새로운 시대를 기도.
- 토비새를 통해 기도의 터 위를 올려놓음.
- 무릎 꿇어 고백하는 믿음과 기도의 중요성 강조.
- (중요) 사랑의 교회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선교 전략을 준비하고 실행.
- 성도들이 민족과 열방을 섬기는 제자로 성장.

8. 선교의 중요성과 선교 훈련
- 2024년 전문인 선교학교 기본 훈련 과정 시작.
- 코로나 시대에 선교 방향 모색을 위한 선교훈련 진행.
- (중요) 예배를 세우는 사역과 진리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공유.
- 신앙을 통해 즐거움을 닮고 은혜에 빚진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공동체 구축.
-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추구.

9. 창립 46주년 축하와 간절한 선교 꿈.
- 창립 46주년을 감사한 날로 기뻐하며 선교의 중요성을 고백.
- (중요) 2033년까지 대한민국 전 국민의 50프로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민족 복음화를 위한 선교 꿈 설정.
- 기도의 힘으로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하며 창립 46주년을 축하.
- 임마누엘 신앙으로 새로운 눈을 열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시대의 별, 생명의 별이 될 것을 간절히 바람.
- 46년 동안 사랑의 교회의 심정을 담당해온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

10. 하나님의 소명과 선교의 중요성.
- 하나님의 소명과 사회적 책임
- 성도들이 화살이 되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길 기도함.
-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성도를 소명자라 칭함.
-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용서하신 것을 기억해야 함.
- 예수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대신에 우리에게 화해를 청함.
- (중요) 우리는 죄를 다하여도 성도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음.

11. 공동체의 역할과 선교의 중요성.
- 클레팜 공동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축복임.
- 우리의 역할은 화해자가 되는 것, 사회에 기여하는 것임.
- 이민교회와 세계 교회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함.
- 성도들은 선교팀에 파송되며, 이는 주님의 일임.
- (중요) 선교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일임을 감당하는 것임.

12. 선교의 실행과 전투.
- 성도들이 영적 군사의 자위대가 되어 선교활동을 함.
- 국내, 해외에서 아웃리치 선교 활동이 이루어짐.
- (중요) 성도들이 1800여 명으로 진행되는 선교팀으로 구성됨.
- 예수님의 말씀은 싸움의 지침이 됨.
- 선교는 거룩한 전쟁이라는 견해를 지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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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6월 3일 (848)
1.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다음 투자처 가운데 이자나 배당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고르면?
① 미국 국채 ② 달러화 ③ 엔화 ④ 금
2. 미국이 지난달 비트코인에 이어 이 암호화폐의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 시가총액 2위 코인인 이것은?
① 이더리움 ② 솔라나
③ 도지코인 ④ 스테이블코인
3. 라이칭더, TSMC, 자취안지수에서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곳은?
① 태국 ② 대만
③ 필리핀 ④ 인도네시아
4. 중소기업을 벗어나면 각종 정책 지원이 끊겨 불리하다고 판단한 중소기업이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지 않으려 하는 현상은?
① 황금낙하산
② 공유지의 비극
③ 절약의 역설
④ 피터팬증후군
5.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기업의 재정 상태를 나타낸 재무제표다. 자산은 왼쪽에, 부채와 자본은 오른쪽에 적는 이것은?
① 대차대조표 ② 손익계산서
③ 현금흐름표 ④ 자본변동표
6. 기업 인수합병(M&A)이 이뤄질 때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고 자금을 조달해주는 투자자를 가리키는 용어는?
① 재무적투자자 ② 전략적투자자
③ 기관투자자 ④ 연기금
7.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것을 말한다. 최소한의 금액으로 주택을 산 뒤 시세차익을 노릴 때 활용하기도 하는 이 방식은?
① 조각투자 ② 분산투자
③ 갭투자 ④ 분산투자
8.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의 주가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파생상품으로,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이 금융상품은?
① CMA ② MMF ③ ELS ④ RE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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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경제 원리 안 따르는…최저임금제의 민낯
그래픽=이은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지난달 21일 최저임금위원회 1차 회의가 열리며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올해는 물가가 급등해 심의 과정이 더욱 험난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최저임금은 아르바이트 시급에 직결되는 만큼 청소년 여러분도 관심이 많죠? 그런데 최저임금은 매년 오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나요? 최저임금 결정 시 물가상승률을 우선 감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이나 경제 여건, 기업의 지급 능력 등 최저임금 결정에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무리한 인상을 요구하거나 근로자 소득 배분을 늘려야 한다는 이념적 주장을 펼치는 것은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직전 정부 5년간 최저임금을 41.6%나 올리는 바람에 노동시장에 부작용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무인화·자동화 기기를 도입하고 직원을 해고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었습니다. 최저임금 급등이 역으로 일자리를 앗아간 거죠. 마지못해 최저임금 이하로 봉급을 받는 근로자도 전체의 13.7%(약 301만 명)나 됩니다. 또 업종별 생산성에 맞게 최저임금을 정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바람에 농촌의 외국인근로자 임금이 일본보다 최대 3배 높습니다. 경제 원리를 무시한 최저임금제의 민낯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이란 제도가 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 최저임금제 운영이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최소한의 인간적 삶 보장하는 정책으로 출발
새 근로 형태, 외국인 적용은 아직도 논란 중
연합뉴스
최저임금제는 근로자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근로자는 의식주, 수면 및 휴식, 건강, 안전, 자아실현 등 인간의 기본 욕구를 해결하고 사고·판단력, 감정과 정서의 개발 등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노동을 계속 제공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은 이를 위한 필수 재화와 서비스 구매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달리 표현하면 존엄한 인간으로서 누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인데요, 이런 목표를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법칙에만 맡겨둘 수 있을까요? 18~19세기 서구에선 저임금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삶이 본격적으로 조명되면서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는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마련됩니다. 이것이 시장을 통하지 않고, 시장 밖에서 임금의 최저선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제가 나타난 배경입니다.
국민경제 발전이 최종 목표
최저임금제는 노사 간 자율적 임금 결정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용자, 즉 기업 경영자에게 특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근로자에게 지급하라고 법으로 강제합니다. 우리나라도 1987년 헌법 개정 때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제32조 1항)고 못박았습니다. 관련 최저임금법은 1986년에 제정해 1988년 1월부터 시행했습니다.
최저임금법은 제도의 목적(제1조)에 대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
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엔 나와 있지 않지만, 근로자의 임금 격차를 완화해 소득분배 상황을 개선하려는 경제적 목표도 있지요.
민간기업 부담만 늘려선 안 돼
근로자의 최저 생계 보장은 각종 사회복지정책을 통해서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제와 사회보장제도는 상호보완재라 볼 수 있는 거죠. 사회보장제는 다만, 여러 생활필수재를 근로자 개인이 아닌 사회구성원 공동으로 확보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각자의 소득과 자산 규모에 맞게 갹출해 재원을 마련하는 거죠. 일각에선 선진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 최저임금제도의 중요성이 더 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회보장제도의 미비점을 민간기업이 제공하는 최저임금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얘기가 돼 정당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주목할 부분은 최저임금제도와 경제성장의 관계입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 즉 노동소득분배율이 63.2%(문 정부 출범 전인 2015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23번째로 낮다고 봤습니다. 세계노동기구(ILO)는 임금을 높여 경제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임금 주도 성장론을 폈는데요, 문 정부는 이를 ‘소득 주도 성장’이란 비슷한 말로 치환하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추진합니다. 저소득층 소득 증가→소비 증가→생산 및 투자 증가→고용 확대→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죠. 그러나 전통적으로 그리고 계량적·경험적으로 경제성장이 먼저 이뤄지고 그 성장의 과실이 분배되는 과정에서 임금과 소득이 높아지는 게 순서입니다. 거꾸로 최저임금이 경제성장을 이끌어낸다고 하니 ‘마차가 말을 끄는 격’이란 비판이 많았던 겁니다.
플랫폼 종사자에도 최저임금 보장?
최저임금제는 21세기 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택배기사·배달라이더 등 플랫폼 기반 기업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플랫폼 종사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노동계에서 나오는 게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각각이 독립적인 개인사업자인데 근로자와 같은 대우를 해주는 게 맞을까요? 보험설계사·골프 캐디 등 특수형태근로(특고) 종사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 적용 대상은 아니었는데요, 이들도 최저임금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밖에 노동시장의 국경 장벽이 낮아지면서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고, 웬만한 선진국에선 내국인 근로자와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받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국내 근로자와 똑같이 최저임금을 보장해주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숙련도 등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게 이치에 맞는 것인지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최저임금제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공부해보자.
2. 최저임금제는 민간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제도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3. 플랫폼 종사자가 ‘노동 약자’라고 해서 최저임금을 줘야 할까?
일자리 줄이고 범법자 만드는 최저임금제
획일적 운영의 문제부터 개선해나가야죠
연합뉴스
소득과 비교한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결코 낮지 않습니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국의 최저임금은 고소득자부터 저소득자까지 일렬로 늘어놓았을 때 가장 가운데 값을 뜻하는 중위소득의 62.2%로, OECD 국가 중 8번째로 높았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우리와 경쟁하는 미국(28.0%), 일본(46.2%), 독일(54.2%)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자동·무인화 불러
여기엔 과거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을 급속히 끌어올린 영향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이 취약계층의 삶을 개선하는 효과를 낳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역설적 상황이 나타납니다. 올라만 가는 최저임금 때문에 기존 직원을 해고하고 홀로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어요. 숙박업소와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가운데 이른바 ‘나 홀로 사장’ 비중이 2018년엔 46.3%였으나, 지난해 50.6%까지 증가했습니다.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든 거죠. 서빙 로봇이나 테이블 오더 같은 자동화·무인화 기기 사용이 늘면서 저숙련 근로자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월급 120만원 주던 직원 한 명을 월 임차료 60만원짜리 서빙 로봇으로 대체하는 식이죠. 아무리 선의(善意)를 담은 사회정책적 목표에 따라 최저임금을 정해도 노동시장 자율에 맡겨둘 경우에 비해 과도하게 최저임금이 높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에선 최저임금 이하로도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사례, 즉 범법자들이 양산되는 문제도 빚어집니다. 작년 최저임금 이하로 봉급을 받은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13.7%인 301만 명에 달했습니다.
‘고용 줄이는 최저임금’ 연구 많아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이 고용수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 평가를 내립니다. 한때는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가 뉴저지주 패스트푸드점의 최저임금을 연구한 후 임금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오히려 고용을 늘린다는 논문(1994년)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뉴마크와 윌리엄 워셔는 199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중남미·인도네시아를 대상으로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를 추정한 100여 편의 논문을 종합한 결과, 이들 가운데 3분의 2는 최저임금이 고용을 줄였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2008년 지적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최저임금 논쟁입니다. 미국에선 최저임금이 100 오를 경우 10대 청소년 일자리가 8~25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됩니다. 국내에선 남성일 서강대 명예교수가 최저임금의 직접 대상이 되는 아파트 경비 근로자의 고용을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이 10% 높아지면 고용이 3% 감소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법에선 ‘차등 적용’ 가능한데…
최저임금제는 실용적 정책 수단입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근로 형태 등이 변화하면 그에 맞춰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시대적 생각에 갇혀 획일적으로 제도를 운영하면 부작용이 커질 것은 불보듯 뻔합니다. 한국 최저임금제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법은 1986년 제정 이후 15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큰 변화 없이 원래 뼈대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2018년 개정 때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임금의 범위를 규정하는 등 의미 있는 제도 변화가 있었지만, 극히 일부분이었습니다. 1986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835달러였는데요, 작년엔 3만3127달러로 그간 약 12배가 늘었습니다. 국민 경제생활이 양적·질적으로 발전하고 노동시장과 근로 형태 및 관행이 크게 바뀌었음에도 최저임금제는 ‘근로자 최저 생계 보장’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법률에선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제4조)고 해놓고선 현실에선 모든 사업에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일본의 경우 산업별·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정하고 차등 적용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생산성에 맞게 임금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좀 더 유연한 제도 운영이 최저임금제에서 필요한 때입니다.
NIE 포인트
1. 획일적인 최저임금 적용이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 정리해보자.
2. 자신의 주변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인 사례를 찾아보자.
3. 업종별 차등적용을 포함해 선진국의 최저임금제 특징을 살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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