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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예배(주후 2020. 7. 15일)

제목: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 마태복음 6:25-34절

설교자: 배성진 목사님

 

우리시대는 참 염려할 것이 참 많은 세상이다. 혹시 ‘내가 코로나를 걸리지 않았을까’로 위험에 빠지는 것을 아닐까로 염려한다. 우리는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많은 염려로 살아왔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노후에는 과연 무얼먹고 살 수 있을까로 염려한다. 아이들의 공부, 시집도 보내고 결혼도 시킬 수 있을까로 우리 인생은 이렇게 크고 작은 염려 덩어리로 머리에 얹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오래전에 염려가 참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이다. 탕자는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미리 받아서 나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들 탕자는 그 많은 재산을 다 허비하고 결국 거지가 되었다. 탕자는 이제 염려한다. 무엇을 먹을까를 그래도 오늘은 쥐염 열매라도 먹을 수 있는데 내일은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를 염려한다. 또 무엇을 입을까도 염려한다. 옷에서는 더러운 옷으로 갈아입을 옷이 없다.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며 이 탕자는 늘 염려하는 삶이 우리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염려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염려하지 않게 하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몸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길을 주신다.

*우리들에게 주님은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첫째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큰 능력으로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이 우리 삶을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28, 30절 – 28절 -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들판에 아무렇게나 핀 야생화를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다. 대가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꽃이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어서 그 사진을 확대해서 살펴보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정교하고 생김이 기품이 있는 색깔로 도무지 인간이 만들지 못하는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아무도 그 꽃을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비바람에 꺾이고 사라질 꽃들이다. 하찮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하찮은 꽃도 귀하게 입히신다. 그런 하찮은 피조물도 하나님은 귀하게 입히시는데, 하나님은 소중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입히실 것인가!!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지금 이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소중하게 우리 삶을 돌보신다는 것이다. 주님은 들에 백합화를 말씀하시기 전에 공중에 새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신다. 하늘에 보면 널린 것이 새들이다. 어렸을 때 참새를 잡아보았다. 그 고기를 구워먹으면 맛있다. 그래서 마당에 그 망태를 쳐두고 쌀을 보면 참새가 날아와서 먹으려고 할 때, 그 망태의 줄을 당기면 잡힌다. 당시에 나름 상당히 현대적인 사냥 시스템인 셈이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새가 오지 않았다. 참새가 세상에 먹을 것이 천지인데 고작 쌀 몇 톨을 보고 그 망태 밑으로 들어오겠는가! 이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는 참새 먹이가 참 많다는 것을...세상에서 처음 겪은 사업의 실패인 셈이다. 하늘의 새는 먹을 것에 대해 애를 그리 쓰지 않는다. 늘 놀러 다니다. 그렇다고 새들이 굶어죽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26절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들보다 더 귀하게 먹이시고 돌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얼마나 더 먹이시겠는가! 우리를 소중히 돌보시니 우리 삶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

▶둘째 –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아시기 때문이다.

32절 후반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다 아시기에 우리에게 있어야할 것을 주시고, 있지 않아야 할 것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아시고 돌보신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삶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잘 모들 수 있다. 어떤 아들이 배고프다고 돌을 달라고 한다. 배가 고프면 떡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이 떡과 돌을 구별을 못하는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떡 대신에 돌을 달라고 한다. 그 아버지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 아버지가 돌을 달란다고 돌을 줄까요? 그렇지 않다. 돌은 좋은 응답이 아니다. 무척 위험한 응답이다. 아버지는 돌을 주지 않고 배고픈 아들에게 떡을 준다. 그것이 자녀를 잘 알고 돌보는 것이다. 우리도 그 아들 같아서 염려하면서 기도로 뭔가를 구하는데 잘못 구하는 경우가 참 많다. 우리에게 있을 안 되는 것을 구할 때가 있다. 우리가 잘못 구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미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잘 아시는 분이시다. 우리 인생 전체를 심지어 먼 미래까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또 그것을 주신다. 우리 인생을 살펴보시면서 있으면 안 되는 것을 아시고 아무리 우리가 구해도 주시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어떤 때는 왜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염려하고 발을 동동거리고 때론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참 지나고 보면 그것이 내게 있었으면 큰일 날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신데 더욱이 우리를 잘 아시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함을 잘 아시고, 그것을 적절하게 주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무엇을 먹을끼 무엇을 입을까 삶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하신다. 우리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란다.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 하나님을 신뢰하고 염려하지 말고 당장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실망도 말고 결국 하나님께서 선하게 우리 삶을 인도하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자 되길 바란다. 주님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것에 염려하지 말라시며,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주신다.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은 먼저 우리에게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더 중요한가?

-여기서 그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이다. 오해로 어떤 분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더 열심을 내야한다고 염려한다. 하나님나라에 먼저 힘을 써야한다고 이야기 한다. 굉장히 신앙적이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문맥상 맞지 않다. 그것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문자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얻는 것에 힘을 쓰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힘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돌보심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이 땅에 살 동안 구원받은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돌보심의 안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우리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서 돌보심과 다스림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돌보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혈을 믿었기 때문이며 절반은 얻었다. 나머지 절반의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그의 의는 하나님의 의이다.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이다. 이 역시 문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고 힘을 쓰라는 것이며 하나님 보시시기에 의롭고 합당하게 살라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에 백성이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살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백성이 왕에게 충성하듯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왕 대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 성경 전체에 흐른 언약 개념이다. 우리가 구약성경, 신약에서 약이란 언약을 말한다. 언약의 당사자가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우리가 언약이 왕이신 하나님과 백성인 우리의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돌보시고 그의 백성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충성하고 순종하기를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의 언약개념이다. 하나님은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시다.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기까지 충실하신 분이시다. 그 충실하심으로 우리를 품으시고 돌보신다.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왕으로서 언약에 충실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언약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되 그 말씀 앞에 내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말을 주셨냐하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큰 낭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언약에 충실하지 않아서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고 말았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비참함을 보시고 안타까운 모습을 보시고 너희는 그러지 말라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충실한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언약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주신다는 것이니 하나님을 신뢰하면 되는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났기에 늘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받을 수 없기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으면 탕자는 걱정이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아 그것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늘 기다리신다. 돌아오라 그러면 회복된다라고 아버지는 기다리시는 것이다. 돌아온 탕자는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 아버지께 달라고 할 이유가 없다, 아버지가 다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장 좋은 것으로 먹이신다. 또 아버지는 가장 좋은 옷으로 아들을 입히신다. 계절마다 잘먹고 잘 입게 되고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하나님께 돌아와 아버지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더 이상 내 고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염려할 것이 많은 세상을 넘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삶으로 은혜가 있기를 기원하다.

-하나님과 좋은 언약관계를 유지하면서 염려하지 않고 살아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다윗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하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고백한다.

시편 23편 1-2절에 그 백이 담겨있다.

 

시편 23장 1-2절 –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 역시 수많은 문제와 문제로 염려할 수밖에 없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고백한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한다. 염려할 것이 없다고 한다. 다윗이 그런 고백을 한 것은 하나님과 목자와 양의 관계였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다윗의 목자가 되어주셔서 양 같은 다윗의 삶을 돌보셨기 때문이다. 사실 양은 염려할 것이 많은 동물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약해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 양은 푸른 풀밭에 가야 먹을 수 있고, 쉴 만한 물가로 가야 먹을 수 있다. 어떻게 먹을 것을 찾지를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들짐승에게 잡혀 먹힐지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양은 염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염려 없이 사는 양들이 있다. 바로 목자와 함께 있는 양들이다. 목자 있는 양은 염려할 것이 없다. 목자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갈 양은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목자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목자가 가자고 하면 가고 서라고 하면 서야한다. 순정하면 그래서 염려가 없게 살아가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순종해서 하나님도 양처럼 돌봐주셨다. 다윗의 목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목자이시기에 하나님만 따라가면 된다. 양처럼 우리도 연약하기에 우리도 하나님만 따라가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하여 살면 하나님은 돌봐주신다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께 충실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라.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좇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주님께 돌아오면 회복된다는 것을 믿고 주님이 맡긴 삶을 충실히 해서 살기를 바란다.

♣요약

염려할 것 많은 세상에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심을 믿고 언약에 충실하셔서 우리를 돌봐 주시니 우리도 하나님과 친밀하여 언약에 충실해서 주님을 늘 순종하며, 주님께 충성을 다하길 마음과 뜻을 다하게 해주시길 원한다. 세상일에 염려하기보다는 기도와 찬양과 예배에 열심을 내며, 내게 밑겨 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하며,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은혜롭게 인도하실 것을 믿고 나의 의를 내려놓고 주님 나라의 의를 구하며 뜻을 따라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염려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의식주 문제 ( 6:25-34 )

예수님께서는 의식주 문제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목숨과 몸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인 영혼의 구원이 음식과 의복 같은 부차적인 것에 대한 염려보다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의식주에 연연할 때 물질의 노예가 되기 쉽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급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재 빈부의 문제나 분배의 문제가 괴리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러한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일과 영광을 돌리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세상의 염려에서 벗어나 의식주 문제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워야 한다.

*내일 일의 문제 ( 6:34 )

예수님께서는 염려가 내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한 불신앙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본문 말씀을 통해 오늘의 은혜는 오늘에 족하고 내일은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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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주후 2020년 7월12일)

제목: ''제3 환상: 성곽 대신, 불 성곽으로''

말씀: 스 2:1~5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기도: 강경식 목사님)

 

 

찬양대 귀한 찬양을 주님이 들으셨을 것이다. 불 성곽으로 보호하시리라 믿는다.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크다. 영적으로 풍성해지길 바라며 축복의 통로가 되라.

◇성벽ㅡ불기둥

제1환상 15절에서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하나님이 심히 진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진노가 네 뿔을 부서뜨리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15절인 제2환상을 통해 일어나며, 16절에 예루살렘에 먹줄이 쳐지리라고 한다. 여기에 근거하여 오늘 말씀은 제3환상인 측량사가 측량줄을 붙잡고 예루살렘을 측량하는 내용이다. 이것이 밑그림이다. 스가랴의 환상 8가지 환상 중에서 아직 5가지가 남았는데 전체를 이런 말씀의 일관성을 가지는 우리의 안목이 되길 바란다.

 

*본문

스 2:1절 -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시대를 초월하라. 한 사림이 측량줄을 잡았다.ㅡ동서남북 줄ㅡ예수님이시며, 측량줄을 잡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초월적 하나님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건축할 때 쓰는 줄이다. 예루살렘의 사방을 재는 줄인데 측량사가 누군가하면 바로 예수님이시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재건하실 분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 에스겔 40:3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자는 구약에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스 2:2절 -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그가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하고 말할 때에.

- 여기서의 질문을 할 것이 있다. 폐허가 되었는데 측량할 것이 없는데 측량한다고 하는가? 예루살렘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적의 위협을 받을 상태이고 절망의 상태인데도 어떻게 측량할 일이 있겠는가! 이다.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자와 앞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너비와 길이 유다 이스라엘은 지금 폐허이고 굴욕적인 환경인데, 이제는 끝이라 두려움 속인데 우리는 예루살렘, 우리 성도를 위한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놀라운 비전과 메시지를 확인이며 미래의 예루살렘의 궁극ㆍ하나님 나라이니 지금 이 순간, 우리 내게 주시는 말씀이다.

 

스 2:3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고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이 말씀이 중요하다. 오늘 주목해야 할 요절이 4절과 5절이다. - 성곽 없는 성읍. 성곽 없는 촌락이라는 것이다.

2:4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l. 성곽 없는 성읍(4절)-

- 측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가 올 하나님의 (신국)새 예루살렘, the city of God는 성벽 없는 성읍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 성곽 없는 성읍(perazah.프라자-트인지역)이 될 것이라​는 것이며, 주님의 특별한 메시지이다. ㅡ 성곽이 없는데 측량할 게 있겠는가? 다가올 성곽 없는 성읍이다. 요새와 대조적이다.

↓ 대조적인 단어가 있는데 구약에 있음을 본다.

-♡에스겔38:11 ㅡ평원의 고을들- 성벽도 없고, 빗장이 없는 것과 같다. “내가 평원의 고을들로 올라가리라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이 다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에게 나아가서

들판의 여러 고을을 말한다. 물리적으로 성벽을 세우면 감당치 못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도저히 한계를 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나에게 한계를 지우지 않고 성벽 없는 성읍이 되는 것이다. 왜 성벽 없는 성읍이 되는가? 수많은 사람과 가축이 예루살렘에 많이 있으므로...번성하고 크기에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풍성함을 담아낼 수 없고, 한계를 정할 수 없으며 궁극의 성벽을 말하는 것이다.

-♡에스겔 36:11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이 성곽 없는 성읍으로 놀라운 비전을 주시는 것은 무엇인가?

빗장 ㆍ문도 없는데 살 수 있는가? 고대의 침략을 막기 위해 빗장이 다 있었다. 현실을 초월한 답은 무엇인가? 비전 사명 꿈만 갖고 살 수 있는가이다. 나에게는 성곽도 문도 빗장도 없는데 보호 장치 없는데 가진 게 없는데 현실은 너무 처절하고 척박한데...꿈만 가지고 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 바울도 고생하도록 놔두셨겠나!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그만큼 자신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가시적인 성벽보다 더 고도의 보호하는 성벽이 있음을 깨닫기를 원하시며, 불로 둘러싼 성곽을 친히 당신 스스로 불 성곽을 만들어주신다.

스 2:5 -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불 성곽 속, 내적으로는 영광이 채워지리라 내가 너희를 위한 고도의 보호막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더 큰 보호막을 주실 것이다.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겠다 하신다. 초라하고 한계이지만 불 성곽으로 보호하시고 쉐키나의 영광이 되실 것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만든 불 성곽이다. 세상이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이 불 성곽이 되어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불 성곽 됨은 과연 어떤 뜻인가? 불 담, 불 벽, 불기둥이 되는 것이다. 광야에서 불기둥으로 보호하여 주신 것과 같다. 외적으로 불성곽이 되시고 우리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다. 너희는 말씀의 풍성함이 되어야 한다. 마음속에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 하나님의 불성곽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성곽 없는 곳에 어떤 곳에서도 털끝하나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12지파 성막에 지켜 주셨듯이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하신다. 구름기둥 불기둥 그리고 영광으로 덮어주시며 임재 해 주신다. 육신의 것에 있으면 잘 못 본다. 그래서 눈을 들어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라는 것이다. 주위의 공격자로 인해서 못 보는 것이다. 여기에 진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이다. 영광의 덮개로 보호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열왕기하 6: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 군대가 쳐들어와서 수많은 병거가 둘러싸여 있지만 게하시가 말들을 보며 떨고 있어서 엘리사는 태연했다. 아람군대의 군사보다도 훨씬더 천군천사가 그 성을 덥고 있었다. 눈에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불말 불 병거를 주시기 때문이다. 놀라운 계획을 우리에게 주시며 이 코로나 사태에서 지켜 주시길 원한다. 하나님의 불이 우리에게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며 주님만이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하겠는가!

-♡이사야 4: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매.

낮에는 구름과 연기, 영광의 덮개 하나님만이 코로나로부터 지켜 주셔야 한다. 순수하게 믿어라!

하나님이 불성곽이 되어주실 것이다. 개인 가정 교회 나라를 불 성곽으로 보호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 매일 삶의 현장에서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니 인생 보험은 성벽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만이 불성곽이 되어 주셔야 한다. 주의하라! 하나님이 그래서 광야로 쫓아버리신다. 들판의 환경을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그렇게 고생시키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면 그 체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육사의 시 광야처럼 그렇다. 불 성곽으로 지켜주실 것이라 믿는다. 삶이 어려워지면 스멀스멀 걱정으로 이런 말씀을 잊어져서 불안이 온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불 성곽을 더 의지함을 믿고 생애 한 번은 점검하라!

 

♣요약ㅡ제3의 환상(세 번째) 환상이며, (2:1-5절)에 측량줄에 대한 환상이다. 이것은 둘째 환상을 확증하는 것으로 예루살렘의 재건과 정착을 말한다. 즉 미래의 예루살렘에 관한 예언이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언약의 완성에 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메시야에 의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기 위함이다. 불 성곽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 바벨론 포로에서 돌이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백성답게 성읍을 주심을 믿고 선포하라. 하나님을 순수하게 믿고, 은혜의 준마를 타고 무한 지평을 달려라. 무한한 자원에 참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 성곽으로 전쟁도 이기고 극복하고 보호하셨다. 측량사로 지도자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하늘 보좌로 나아왔다. 우리 폐허에도 우린 극복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은혜로이 사는 것이다. 무기력한 폐허에서도 믿음의 측량줄을 들고 보호 장치 없는 이 현실에서도 하나님이 친히 불성곽이 되셔서 우리를 지키시며, 천군천사로 장악하시는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를 보내주시어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찬란한 쉐키나의 영광의 덮개로 덮어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기도으 측량사로 헌신하며 납작 엎드려서 우리가 서로 연결하여 영 가족으로서 한계를 정할 수 없는 은혜의 무한지평을 활짝 열어가는 믿음의 신앙가족이 되어, 주님만을 눈을 들어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느낀 점.

내가 이렇게 주님 안에서 불 성곽으로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보호 장치 안에 살아왔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생각해보니 은혜 중에 은혜이며 하나님께 너무도 감사하다. 이제는 주님만을 눈을 들어 바라보며 산다고 다잡아 보면서 어떤 어려움이나 유혹, 그리고 세상 것에 의지 하지 않아야 함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더욱 주님을 깊이 깨닫고, 엎드려서 회개하여 오직 주님 안에서 모든 영역을 아름답게 현명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해야겠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나를 어둡게 했던 시간들이 속히 사라지길 기도한다. 우리 남편이 퇴직이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볼 때, 남편이 더욱 주님과 친밀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계약될 일도 미루어져서 늘 한숨을 쉬고 살아서인지 몰골이 피접(避接)하여졌기에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에게 더욱 깊이 기도하라고 이렇게 힘든 시간을 주셨음에 깨닫게 되었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일할 수 있는 나이이다. 대기업 임원으로 오랜 기간 일을 했지만 젊은 나이에 퇴직을 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너무 힘이 들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나와 남편이 많은 다툼으로 이어질 일들이 많았으리라 여겨졌다. 수입은 적어졌고, 있던 부동산은 처리가 안 되어서 더욱 그랬지만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가 풍부하지는 않아도 늘 어떤 기회들을 조금씩 나에게도 주셨고, 남편에게도 부모님이 주신 약간의 유산으로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잘 이어왔고, 시간이 흐르니 예약했던 연금이 나오니 한결 편안해졌다. 사람이 욕심으로 살면 안 됨을 많이 느꼈고, 늘 감사해야 함도 깨달았다. 남편이 몸담았던 회사에 다시 재계약되어 계약제로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 많은 일들이 크게 터지는 것을 보니 남편을 쉬게 하는 이유가 있음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아니 해외 사업이 중단되어 지금까지 길을 막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이유가 있으리라 여겨졌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늘 목사님의 이 말씀 중에도 깨닫게 하고 스쳐가게 했다. 이제 우리를 불 성곽으로 지키시리라는 것을 믿기에, 그 기다림도, 주님이 주신 시간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게 해주신 것이었다. 나는 남편이 지금까지 정직하고 자상하고 가정을 지혜롭게 잘다스리고 지켜온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남편이 무엇을 하던 애를 태우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늘 남편과 내가 동행하여 주신 은혜 안에서 항상 감사하며, 불 성곽으로 지켜 주실 것을 믿고 살기를 소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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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 (2020. 7월 11일)-갑절의 은혜를 소망하라.

제목: “하나님의 방법(The Way of God)

말씀: 요한복음 11:1-45

설교자: 채드 헤몬드 목사님-빌리그래함 전도협회 아시아 디렉터(이원준목사님 통역)

 

★담임 목사님----비전과 사명의 포로인 줄 확신한다. 소박함과 순전함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우리 주위의 잘못된 것들인 뿔들을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길 기도한다. 합심해서 2번째 풀 워십(Full worship)으로 기도의 포문을 열기를 바란다. 한국사회가 다 어렵지만 주님만을 바라보며 갑절의 은혜를 주시길 소망한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움직이신다. 하나님은 풀 워십을 통해 영적 전쟁의 물꼬를 트게 하셨으니 모든 환경을 극복하는 길이 열리리라 믿는다.

 

믿음의 4대를 21세기에 순전한 네 대장장이로 삼아주셔서 목자의 심정과 사명, 숙련된 능력을 가지고 일상의 영역주권을 회복하게 하실 줄 믿는다. 오늘 체드 해먼드 목사님을 통해 우리가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회복하며 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주님만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자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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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데 헤먼드 목사님 설교

함께해서 기쁘다. 오정현 목사님과는 가까운 친구사이다. 부산에서 만났었다. 그분의 열정을 보았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오정현 목사님과 빌리그램 목사님과의 두 분의 가까운 관계를 잘 안다. 남한과 북한과의 지혜의 말씀을 달라고 했다. 긴 시간을 통해 그 목사님은 오정현 목사님께서 이야기를 잘 듣고 나서 ‘우리는 기도해야한다’고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전 세계가 지금 삶의 모든 영역이 뒤흔들리고 있다. 교회, 학교만이 아닌 여러 곳에서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답을 구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삶이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질문하고 있다. 오늘 이 시간 어떤 것을 맞닥뜨리고 있어도 분명히 믿기를 바란다. 어려움이나 어두운 도전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때에 하나님께서 승리를 허락하실 줄 믿는다. 요한복음 11장에 담긴 내용이다.

 

*첫 번째 – 간구를 드려졌다는 것,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으며 오늘 본문 부활의 주인공인 나사로와 두 여동생인 마르다와 마리아, 세 식구가 사는 동네이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제자들과 동행하실 때 가끔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 머무시곤 했다. 구하는 것-아이토라는 단어는 절박하게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하면 간절히 구해야 한다. 고난 가운데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주님과 독대해야 한다.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이다.

 

*두번째- 약속이 주어졌다는 것.

예수님께서 선포를 이미 하셨다. 하나님께서 모든 과정을 사용하고 계신다.

 

*세번째 –과정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사랑하셨지만 서두르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이루기를 원하시는지를 바라보라. 하나님이 언제 이루실 것인지 타이밍을 바라봐야 한다. 인간의 관점은 지금 당장의 쾌락에 달려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관점이시다. 하나님은 절대 늦지 않으시고 속히 오신다. 지금 이 시간이 하나님을 기다리를 시즌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면 하나님은 승리를 주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이다. 예수님 사랑을 너무 확신했기 때문에, 나사로가 아프다는 말만 들어도, 예수님이 뭔가를 즉시 행하실 것을 두 자매는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기에 마르다와 마리아는 믿는다는 고백을 한다. 주는 그리스시오,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한다. 그러자 죽은 자가 일어나 나온다. 예수님은 위대한 기적을 나타내신다. 우리 어려운 가운데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와 약속을 굳건히 붙잡으면 분명히 승리의 그 시간이 올 것이다.

 

◆요약

1973년도처럼 그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준비만 되면 이후에는 부흥을 주실 것이다. 토비새를 통해 합심 기도문

2. 우리가 언제 바라봐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인스턴트를 원한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은 지금 당장을 원하고, 하나님은 영원한 유익을 바라신다. 때로 빨리 오신다. 여러분의 마음을 모르지만 지금 이시간이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 줄 모른다. 질문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이다. 그 당시 휴대폰이 없었다. 예수님은 베다니로 하룻동안 가는 곳이다. 나사로가 죽었음을 알고 계셨다. 제자들은 베다니에소 좋지 않았기에 옥신각신했다. 나사로가 죽었다고 제자들에게 믿게하려 하기 위해 그에게로 가자고 하신다. 물, 눈먼 자, 5천명 먹이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위하여 기뻐한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위해 제자들을 준비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마지막으로 나사로를 살리신다. 이 특히 4일간 무덥에 계셨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마을 어귀에서 예수님을 맞이한다. 오라버니가 예수님이 계셨다면 죽지 않았겠다고 했다. 이 타이밍에 해주시길 말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 즉시 바로 고치시지 않는다. 마르다아 마리아를 준비시키신다. 22절에 이제라도 주께서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주실 줄 믿는다고 한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이것은 나사로가 죽었는데 4일이라 지났는데 사업 관계 건강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많이도 들었다. 예수님은 가능케 하시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 우리의 삶에 분명한 대답을 해야 한다. 마르다는 사람들이 찾아올 때 사람들을 보살핀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듣지만, 마르다를 경험하는 찰나이다.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만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이야기를 쓰기를 바란다.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셍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우리는 승리로 이끈다. 그 얼굴은 수건에 쌓였지만 플어놓아 다니게 하시니라, 죽은 가운데 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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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2020. 7월 8일)

제목: “무거운 숨을 헤라리다”

말씀: 마가복음 10:46-52

설교자: 김승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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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메오는 한 쪽 길가에서 구걸한 자,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 자였다. 본문은 그는 지나가시는 분이 나사렛 예수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계속 소리쳤다. 사람들이 그가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것을 듣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자신의 신앙 고백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고침을 받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만이 우리를 온갖 올무에서 구원받게 해줄 수 있다. 마가복음을 베드로의 목음이라고도 한다. 거침없이 기록되어 있다. 8장에 소경, 10장에도 이렇게 나온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내용인데 제자들이 무지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못 보고 있고, 사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자였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본 원리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베드로의 호언장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12명의 제자가 완전히 실패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가는 제자들의 여정 속에 소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막 같았던 바디메오가 예수님께서 길을 걷게 하심과 같이 사랑하는 제자들도 동일하게 일으켜 주신다. 마가복음은 바디메오를 통해서 열 두 제자들에게 적용하는 내용이다. 바디메오의 무거운 숨만 헤아리지 않으셨던 것이다.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우리 주님이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삶의 무거운 숨 또한 내뱉게 하시고 위로하는 시간이길 소원한다. 마가는 디메오의 아들인 바디메오인데, 디메오라는 이름은 ‘가치있는, 영예로운’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어거스틴은 악명놓은 이름으로 비참함으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단지 시각장애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디메오는 두려움이었다. 신의 부재가, 믿음이 무너진 삶이 두려운 것이다.

 

♣ 요약

본문 이 사건은 마태복음 20:29이하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한다. 단지 마태복음에서는 두 소경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데 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18:35에서는 한 소경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두 소경이 있었다 해도 한 소경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이 한 소경의 이름이 여기에 나오는데 그는 바디매오 곧 디매오의 아들로 불리웠다.

(1) 이 소경은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다(46절).

자신의 노력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능력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자선의 대상이 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 그 소경은 구원을 위해 소리질렀다(47절).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행은 곧 자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3) 그리스도는 그 소경에게 용기를 주었다(48절, 49절). 왜냐하면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셨기' 때문이다. 머물러 섬으로써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때, 그 머물러서는 것이 우리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곁에 있으면서 처음에 그 소경을 막았던 그 사람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부르심을 알리는 사람들이 되었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49절). 우리를 오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초대는 우리의 소망을 크게 북돋아 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게 될 것이다.

(4)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들은 그 가련한 사람은 떨어진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왔다'(50절), 그는 자기를 넘어뜨릴 위험이 있거나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를 방해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버렸다. 그러므로 예수께 나올 사람들은 자기 자부심의 옷이나 긴 옷에서 얽매이기 쉬운 죄(히 12:1) 등은 모두 내던져야 한다.

(5) 소경이 간구했던 특별한 은혜는 보기를 원하는 것이었다(51절). 그렇게 되면 그는 자기의 생계를 위하여 일할 수 있으며 더 이상 남의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6) 그 소경은 이 은혜를 받았다(52절). 그의 눈이 열렸던 것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즉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셨던 것은 그의 끈질긴 외침 때문이 아니라 그의 믿음 때문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그의 믿음으로 하여금 역사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통해 얻은 은혜보다 더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가 완전히 치유되었으며 더 이상 안내할 사람이 필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즉 보게 되자 그는 예수를 좇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적인 치유를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일단 치유를 받으면 우리는 계속 그를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따르게 할 아름다움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본다.

-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맞아서 치유 받았기에 그가 영혼의 해방만이 아닌 치료 후가 더 집중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바디메오는 예루살렘을 향해 간다. 이제는 무리들과 함께 어깨를 펴고 서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신 길은 법정이었고, 십자가의 형틀이었다. 참 당황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을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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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의아들)디매오(가치있는)-맹인거지 바디매오는 두려움 속에

이사야42:16-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이사야40: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52:14~15 -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이사야25:7~8-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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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 (주후 2020년 7월 4일)

제목: “내 영혼의 풀 워십(Full Worship)”

말씀: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이 새벽에 영광스러운 예배에 현장에 불러주심을 찬양한다. 생명주시고, 찬양주심을 감사하며 지난 5개월 동안 100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한 백년에 한 번 경험하는 코로나를 경험했다. 우리는 이 시간을 지나면서 어떻게 하면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사랑 ON, 온라인, 오프라인 예배에, 가정의 현장에, 이 모든 시련의 과정이 끝나가는가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다. 주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掌握하셔서 해결하여 주시길 바란다. 우리는 겸손하게 다시 한 번 주님 앞에 심령의 무릎을 꿇고, 全力投球하고 주님 앞에 나아갔다. 한국 교회는 전 세계 교회가 특별한 자본이 있다. 그것은 苦難 資本과 讚揚 資本임을 믿는다. 아무리 어려워도 ,어릴 때부터 예배에 전력투구를 했다. 한국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였다. 일마다 때마다 주님 앞에 말씀 듣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한국 교회는 오늘까지 오게 된 것이다. 6.25의 砲火 속에서도 한국 교회는 禮拜를 지켰다. 기억하는 것은 周日 聖壽를 위해서는 전력투구했다. 사람들이 직장의 어려움도 학업에 어려움도 다 주일 성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 상태 가운데에서도 오늘 전 세계에서 이렇게 모여서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쉽지가 않을 터인데도 이런 環境과 恩惠를 주셨음에 주님께 찬양 드린다.

 

 내영혼의 풀 워십이란 제목을 잠시 안내장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17년간 ‘내영혼의 풀 콘서트’를 했다. 오늘 한 시간 전에 주차도 완료 되었듯이 주님께 집중하고 예배하는데 ‘돌아오면 回復’된다는 이 내용으로 이 풀 콘서트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알 수 있다. 찬양이 울려 퍼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마음의 소원을 갖고 온 성도가 찬양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 인생의 새로운 날, 새로운 일, 새로운 召命이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삶에 새로운 次元의 靈的인 地平이 열리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마른 뼈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한다. 특별히 우리의 영혼의 세포 하나하나가 하늘을 향하여 열리고 우리의 육체의 香油의 玉盒을 깨뜨림으로 무한한 성령의 은혜가 삶 속에 흐르길 원한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초월적인 治癒와 奇蹟도 체험하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 이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寶血이 뿜어져 나오는 영광스러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 비록 우리가 마스크를 끼고 찬양하지만, 모든 것을 뚫어버리는,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님을 限量없이 찬양하는 영광스런 시간이 되기를 懇切히 바란다. 오늘 찬양은 내 영혼을 무엇을 하던 12곡일 것이지만 다 하지 못해도 예배로 여기고 오케스트라와 찬양대를 감상가운데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매절마다 grace가 절마다 나온다. 32번이란 단어로 나오니 은혜가 충만하여 한국 교회와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복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대하길 바란다. 다 일어나서 잔치하는 마음과 결혼식에 參與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하자.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에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광장, 영국의 트라팔가 광장, 이태리의 피렌체 두오모 광장 등 전 세계 광장들이 완전히 쥐 죽은 가운데서 정말 복음주의 교회가 온 세계가 불리 울 앞장 선 찬양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이 찬송이다. 우리 개인도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우리를 완전히 씻어주시길 바란다. - 보혈의 생명의 능력이 넘치기를 바란다. ‘나를 정케 하심은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내영혼의 풀 콘서트가 정말 영적인 잔치가 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복음이 잔치이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복음이 잔치이기에 그렇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와 관념은 늘 영적 자유함이 없었기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치관을 바꾸어서 옥죄어 있는 가운데에서 억눌린 것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를 주셨으며 첫 번째 잔치가 예수님의 가나 혼인잔치를 주신 것이다. 생각의 틀을 바꾸신 것이다. 율법주의에서 자유함과 생명의 역사를 주셨다. 결혼식처럼 옷을 입고 풀 콘서트를 한 것이다. 귀걸이도 하고 목사님의 결혼식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셔서 웃었다. 그 때에 불러 주었던 찬양곡이 있는데 ‘주의 사랑 비칠 때에 ~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이 찬송을 불러주었기에 오늘 부르게 되었다. 이 자리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대단한 자리가 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게 하시길 기도하며 확신하면서 ‘주사랑 한 없고~~ 주은혜 끝없네~’ 우리가 육신적으로 치유 받고, 환경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참 하나님 인도하심을 믿고 나아가면 우리의 영혼이 편안하게 될 것이다. 육신적으로 피곤해도 영혼이 춤을 추게 하시고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리라 믿는다. 광야같은 인생길, 사막에서 목이 말라서 그 어려움 가운데서 물이 필요하듯이 오아시스를 만나면 된다. 따라서 우리에게 뉴 노멀이 필요하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사막의 샘이 솟는 것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샘을 허락하시길 기도한다. 내 영혼의 풀 콘서트로 새로운 뉴 노멀을 갖게 되는데,

◇새로운 차원의 샘을 주시리라 믿는다. 믿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샘이 넘쳐나야 한다.

 

▶첫 번째 샘은 사랑의 샘이다.- 주님과 나만이 아는 사랑의 샘이다. 오늘도 주님을 사랑하여 이 자리에 있다. 사랑의 표준이 형성되게 하시길 기도하라.

▶두 번째 샘은 기쁨의 샘이다. 주님 주시는 기쁨이 되어야 한다. 암이 치료되어서 나았다면 얼마나 기쁜가~!! 손자 손녀를 주셨다! 아들 안 낳고 손자 손녀를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웃음 ㅋㅋ

직장을 주심도 기쁘다. 그런 기쁨도 기쁨이지만, 비교가 안되는 기쁨의 샘을 터트리길 바란다.

▶세 번째 샘은 믿음의 샘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옛날에 좋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며, 옛날에 나빴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지나고 나니 별거 아니었다. 그 때 판단과 다를 수 있다. 인생이란 초반전, 중반전, 종반전은 있다. 인생의 종반전이 중요하다. 영흔의 구원을 받음이라~~아멘, 그래서 구원의 샘이 새로운 표준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 말씀과 훈련, 예배 등으로 사랑의 샘과 기쁨의 샘,믿음의 샘으로 살기를 바란다. 종반전이 승리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차원, 뉴 노멀(new normal)로 거듭나서 주님이 임하시길 원한다.

 

♣요약
 영가족 모두가 마음을 모아 최고 수준의 영광스러운 찬양을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고,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한 능력이 되어 시대를 회복시키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영적 잔치로 변곡점 삼아서 우리가 대한민국의 잔치로 확장되는 은혜의 샘이 되어 특별 새벽기도회에서 하나님이 게신 이 성전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역설의 현장이 되기를 간구하며 사랑의 샘, 기쁨의 샘, 믿음과 구원의 샘이 표준이 되어 승리하기를 소망한다.

찬양을 통해 그리스도의 보혈히 뿜어져 나와 가슴을 적시고 살아나는 은혜,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르는 감람나무가 되는 은혜를 주시길 기도하며, 모두가 찬양하고 경배하기를 바란다.

 

내 영혼의 풀 워십(Full Worship)-사랑의 교회(특별 토비새 찬양곡)

1.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2.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3. 나의 죄를 씻기는

4. 주의 사랑 비칠 때에

5. 은혜 더 주시네

6. 사랑하는 주님 섬기리

7. 내 평생 가는 길

8. 햇빛이 찬란한 아침과

9. 내 진정 사모하는

10. 아름다운 우리 교회

11. 나의 맘속에 온전히

12. 길 만드시는 주(Way Maker)


★토요일 특별 새벽 기도회(토비새) -내 영혼의 풀 워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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