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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회사원 K가 보유하고 있는 예금 내역은 아래와 같다. 만약 은행1과 은행2가 파산할 경우 회사원 K가 예금자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얼마인가?

① 8000만원
② 9500만원
③ 1억원
④ 1억1000만원
⑤ 1억1100만원

▶ 해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금융회사의 파산이나 영업정지 등 보험사고로 인해 고객의 예금을 지급할 수 없는 경우 원금과 이자를 합산하여 최대 5000만원까지 예금보험공사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이때 예금자보호금액은 개별 금융기관별로 적용돼 각각 금융기관 예금액에 대해 5000만원씩 보호받을 수 있다. 단, 하나의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여러 지점에 예금했더라도 총 5000만원까지만 보호된다. 따라서 회사원 K가 보호받을 수 있는 금액은 9500만원(은행1 4500만원, 은행2 5000만원)이다.

정답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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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0년 8월9일)

제목: ''마라에서 엘림까지''

말씀: 출애굽기 15:22~27절

설교자: 이동원 목사님(지구촌교회 원로목사님 초빙)
기도: 한재준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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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5:22-27절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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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보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을 때가 있다.

출15:1 - 노래 ㆍ찬송 찬양

15:20 - 춤추더라.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14장에는 홍해바다를 건넌 사건이다. 바로의 군대는 물 속에 수장되었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축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탄식과 한숨이 되었다. 물로 인해 고통이 시작되었다.

출 23절 - 마라는ㅡ‘쓴 물’이라는 뜻이다.→ Bitter water. 고통의 의미이다. 왜 우리에게 이때에 코로나를 주시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고통은

I. 하나님의 시험의 교실이다.

 

출 15:25절 - 시험하실 새, 나싸(히브리어) ㅡTest이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시험일 것이다.

1. 시험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2. 시험은 필요하다.

또한 파괴적, 교육적 시험도 있다.- 하나님은 파괴적이 아닌 교육적인 시험으로 인도하신다.

욥의 시험도 하나님이 허용하신다.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며 교육적 의도이다.

야고보서 1:2 - 여러 가지 시험,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 1:4 -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함이며 그러니 의지적으로 기뻐하라. 그것이 순종이기에 믿어야 한다. 시험 Too rate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라 하신다. 이 시험을 잘 통과 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II. 하나님을 알게 하는 '광야신학교'이다.

출 15:24절 - 지도자를 원망,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는다. 비상함은 비상함으로 기도를 드린다. 평양 대부흥 때에도 터져 나온 한을 기도하고 토하며 부르짖어 하나님께 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기도를 배운다. 거기서 25절에 말씀을 받는 것이다. 진정한 기도와 말씀을 받음. 말씀의 순종을 요구하신다.

출 15:26 -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한다. 하나님을 배워가는 것이다. 고통이 없으면 하나님이 누구인가 알 수 없었다.

 

출 15:3 - 이 고통의 의미는 고통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인 것이다. 아픔 고통이지만 축복으로 가는 통로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터널을 주셔서 새로운 역사를 주시니 하나님의 통로이다.

출 15:27 - 마라에서 엘림은 멀지 않다. 엘림은 물 샘 12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다. - 환상의 오아시스이다. 그들은 병들어서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들은 불평과 절망이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기에 그랬다. 나에게 내일을 주세요!!!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보아야 한다. 오늘의 마라는 그 축복의 통로로 가는 길이다. 그것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가 되어야 한다. 조건은 규례와 율법을 지키고 순종하여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준비하길 바란다.

 

※책 ㅡ광복을 준비하는 자가 있었다. 프랭크 윌리암스 편지이다. '기도가 된 편지'(서만철)-프랭크 우리암으로 발음함. 청청도 공주에서의 활동했다. 최초의 기독교 학교 영명학교이며, 유관순언니가가 다니다가 전학을 간 곳. 그는 1906년 23세에 왔다. 우리나라는 자주권 상실한 국가였다. 제물포에서 아들을 낳았다 아들 ㅡ우광복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한국에 공복에 기여하란 뜻이며, 독립된 것을 위해 기도하라 했다. 미국에서 그는 의사가 되어 해군 지휘관이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1940년에 프랭크가 추방되었다. 인도로 가서 선교사로 갔다. 아들 우광복은 군의관으로 와서 해방 후 한국으로 달려오게 되었다. 영어, 한국어를 잘하니 보좌관으로 세워지며, 그때 추천자를 요청받게 되었는데 35명의 리더들을 추천하게 되었다. 인도로 간 자신의 아버지를 그 중에 추천한다. 그래서 농업정책 고문관으로 와 있게 되었고, 정부가 수립되니 부자는 이곳을 떠난다. 그후 그른 우리나라에 죽으면 영명학교 뒷산에 묻기를 원해서 그렇게 했다. 영명학교 입구에 묘비가 ‘의학박사 우정복’으로 새겨져 있음.

묘비에는 정부수립에 기여한 사람으로 기리게 되었다.

 

♣ 요약

모세를 원망하는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자손이 수르 광야에 이르러 사흘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러 쓴 물을 만나자,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는 믿는다고 고백하다가 사정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불평하는 자세는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런 불신앙의 모습을 거듭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패역한 백성을 권면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육시키신 것이다. 치료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하신 이유는,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그 앞에 의를 행하며 그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규례를 지키는 사람에게는 질병을 내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치료하는 영적인 교육과 시험을 겸비하게 하신다.

 

♣ 느낀 점.

오늘 예배 말씀에 하나님께서는 사물을 인간에게 유용하게도 하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되었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쓴 물이 달게 하시며, 또한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게 하기 위함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시련을 주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하심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나는 어떤 시험이 와도 인내해야 함을 느꼈다. 하나님이 기대하신 것은 바로 순종이라 여겨진다.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모든 질병하나도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하셨는데, 오늘 나의 아픈 다리와 부종(하지정맥류)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고민과 고통은 건강인데 늘 불평했던 것을 후회했고 회개했다. 우리 교회에 이동원 목사님을 초빙으로 보내주셔서 나에게 귀한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심이 은혜의 자리가 되었다. 그것은 비록 시험일지라도 나를 양육하시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니 주님 안에서 위안과 평안을 얻게 되었다. 말씀을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기를 소원하며 나의 내일 있을 치료가 잘 되길 기도한다. 우광복 닥터 선교사님이 우리 나라를 진정한 사랑꾼이신 가문이셨음에 깊이 감사하게 되었다.

  프랭크 윌리암스(Frank Williams) 편지이다. '기도가 된 편지'(서만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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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상식.일반상식 퀴즈 ☆

Q. 아래의 빈칸 (A), (B)에 해당하는 내용을 올바르게 짝지은 것은?

★비대칭 정보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숨겨진 특성(hidden characteristic)과 숨겨진 행동(hidden action)이 그것이다.
숨겨진 특성은 상품 정보에 대해 거래 당사자 중 한쪽만 알고 있는 상황이다.
주로 판매자만 알고 있으며 소비자는 알지 못하는 상황이 흔하다. 이때 (A)가 발생한다.
(A)는 중고 컴퓨터 또는 중고 자동차 거래 시 주로 관측된다. 숨겨진 행동은 거래나 계약이 발생한 후 어떤 행위에 대한 불완전한 감시나 관찰로 인해 발생하며, 주로 노동계약 등에서 일어난다. 이때 주로 (B)가 발생하게 된다.

 

(A)                                               (B)
① 역선택                                    무임승차자의 문제
② 도덕적                                    해이 역선택
③ 역선택                                    도덕적 해이
④ 도덕적 해이                             주인-대리인 문제
⑤ 주인-대리인 문제                     역선택
 

▶ 해설

 

거래가 발생하기 전에 상품에 대한 정보를 구매자가 적게 알고 있는 상황(숨겨진 특성)에서는 정보가 부족한 측이 불리한 선택을 하게 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 문제가 발생한다.
한편 계약이 이루어진 후 한쪽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와중에 반대 측에 이롭지 못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숨겨진 행동)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
주인-대리인 문제는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정보 비대칭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말하며 숨겨진 특성과 숨겨진 행동 두 가지 모두 나타날 수 있다.
무임승차자의 문제는 사람들이 공공재를 대가 없이 이용함에 따라 시장에서 공공재가 적절하게 공급되지 않는 문제를 말한다.

 

정답은 ③. (A) 역선택 (B) 도덕적해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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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주후 2020년 8월 8일)

제목: ''하나님의 정의''

 말씀: 아모스 3:6~7

설교자: 이정훈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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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 설교 교수님은 가는 곳마다 빛을 준다. ㅋㅋㅋ 머리를 밀고 오심) 인권이 존재하려면 인간이 존엄해야 한다.

 

  어떤 통찰과 어떤 시대를 살아야 하는지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아모스는 양치기이다. 그러나 규모가 좀 큰 목자이다. 하나님이 그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다. 이 시대에 대한민국의 성도들이 특히 영적으로 질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한국교회가 깊이 묵상하고 통찰해야 할 일이 바로 선지들의 강력한 선포와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통치하심을 알아야 한다. 이 아모스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두려움 없이 주시는 말씀이며, 쓴 소리를 들으면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이 하나님께로 우리가 돌아와야 하는 메시지이다. 뼈 때리는 말, 거짓 선지자, 선한 선지자를 분별해야 한다. 스가랴처럼 돌아오면 회복된다..처럼 아모스서도 우리가 살길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요엘서에도 동일한 말씀이 있다. 아모스는 아프지만 하나님께 돌아가는 말씀이다. 우리가 살길이 아브라함 카이퍼처럼 해야 한다. 청년들에게도 많이 강조하는데 우리가 살길이 아브라함 카이퍼의 논리이다. 청년들이 힘이 없기 때문이다. 왕따처럼 되어 교회 오면 친구들이 있어서 온다는 것이다. 크리스천 본질이 빛과 소금이다. 영역주권이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주권으로 선포되는 것이다. 아모스 요엘 속에 하나님이 말씀 중에 살길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땅에 임하는 것이다. 대적하는 자도 이 땅에서 싸우는 것이다. 지금 젠더 이데올로기이다. 종교개혁을 빛나게 하는 그게 우리가 살길이고 악한 세력을 물리치는 것이다. 우리가 돌이키고, 하나님의 영역주권이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관하신다. 그 주권 없이는 이 땅에 바늘하나 꽂을 수가 없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깊이 들어있다. 우리가 살길이 열려있다.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는 길이 우리가 살길이다. 우리를 통해서 그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다. 대적하는 자들은 그래서 인류의 역사와 정치의 흐름에서 보면 다른 성경적으로 모든 영역을 장악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하나님이 약하셔서 재앙이나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기에 그렇고 더 강하게 하기에 강하게 나온다. 우리는 그 대적을 맞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역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라. 그 주권을 믿고 순종하고 회복되어야 한다.

 

▶ 아모스 시대에 북이스라엘은 번성한다.

 앗수르가 강성했지만 침체가 있다. 힘이 없을 때 북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때 엄청난 번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교만하여 초친다. 잘나갈 때 그렇다 선지자들이었다. 헛소리 하면 닥쳐라.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지 않고 회복되지 않았다. 신이 났다. 하나님은 그래서 경고하신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강력하게 말씀해 주신다. 정신 차리라고...그래서 우리도 이 이스라엘의 배반과 하나님의 통치를 깊이 있게 목상하고 바라보라. 그 관계가 회복될 때 우리가 산다. 그래서

아모스 2:2~3절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자가 포효하듯이 비유했다. 그런데 모압이라는 나라의 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모압이라는 나라가 무슨 죄인가? 바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이다.

*폐사 → 반역죄란 뜻이다. 그것은 이방 국가가 폐사 한다. 중국ㅇ공산당이 인권들을 빼앗는 것 같은 일이 모압과 유사하니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한 것이며, 그의 형상인 우리를 함부로 하니,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그런 통치가 인권을 빼앗고 짓밟고 북한처럼도 마찬가지이다. 크리스천들을 순교하게 하는 것도 다 그렇다. 잔혹한 짓이다. 자유가 없는 통치였다. 복음이 전해지지 못하게 하는 탄압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모욕한 것이다. 피조물인 우리는 그의 형상으로 우리가 창조되었기에 모압에게 진노하신 것이다. 좋아하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강력히 심판하신다.

 

1.하나님의 언약.- 사랑의 언약이며, 깊은 사랑이시다.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책이(마이클센더) 이백 만부 팔렸다고 한다. 정의가 생겼는가???산 사람은 많지만 읽지는 않는 것이며 장식용, 현대적 관점이다. 센델이 그가 주장하는 것은 답이 없다. 하나님의 정의가 있기에 그렇다. 하나님의 정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빛과 소금이 되어서 부르시는 영역에서 깨알같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때에 은혜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정의를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삶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형식화되고 제도화되어 종교 활동만 한다. 헌신하고 있으니 잘되고 있다고들 생각들 한다. 너는 내 언약을 파괴하기에 정의를 누군가가 독점한다고 여기니 그렇다. 나는 성경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성경을 기준으로 이데올로기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모두 그렇게 연구하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를 정치 이데올로기를 이끌려 하지만 누구도 정의를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정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통치를 갈망하고, 그의 통치를 바라며,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의는 이미지에 있지 않다. 뭘 하던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사는 자가 정의이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는 어둠에 가서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서 회복되어야 한다. 외식하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재앙과 전염병 등은 헛된 수고가 아니다. 적의 공격을 깊이 하나님의 판단으로 깊이 이해하여 따뜻하게 섬기라. 그래야 거짓된 시대를 이길 수 있다. 우리가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그 영역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이다. 모든 전반에서 분리하지 말고 회복하여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알리신 것이다. 주님 말씀으로 살아야 이걸 통해서 대각성이 이루어진다.

 

 북이스라엘이 태평성대이다라고 할 때, 주님을 멸시하게 되었다. 더 깊이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서 갈망해서 깨우쳐야 한다. 허위의식으로 이벤트 종교에 빠져서죽음에 이른 것이다. 그 위선을 하나님은 질투하신 것이다. 재앙은 복이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 헌신을 제대로 하며 주님과 교제에 힘쓰라.

 

▶완악함이란 무엇인가? =.아타크

시편 31:18에 보면...방종 오만이다.

1.아타크—아이 성을 쉽게 여김 전략 없이 덤빈다. 이것은 내 경험과 지식의 의이니 묵상을 통해서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2.싸라르 ㅡ도덕적으로 타락

신명기21:18 우리가 아타크와 싸라르는 교회를 망치고 걱정하게 하는 것들이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맞서서 싸우면 안된다. 그들을 더 강성하게 만들게 한다. 우리가 잘못하면 적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욥기 24:2

3. 강포한 = 압비르이다. 이것이 완악이다. 자기의 의식을 우상화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니 이것압비르로 처해서 전멸 당한다.

▶담대함이란 무엇인가. - 아마츠(히브리어)

여호수아1:6, 여기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있다. 요한일서, 5:13, 우리의 담대함으로 하나님 뜻 안에서 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들으신다. 바로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강력하게 들려주시는 말씀이시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신다. 우리의 담대함이 어디 있나?

According to in His will....~~~!!! 반드시 너희가 정복하게 해주신다고 했으니 허위허식에 빠지지 말고, 그의 법을 순종하라.


♣ 요약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역주권을 실천하기 바란다로 말씀을 주셨다.

성 정치 혁명이 어떤 것들이 우리 신앙의 적인가를 생각하고, 배척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와 제대로 명확하게 정리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대적의 접근을 알리는 나팔을 불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떨어야 했다. 성읍에서 나팔소리를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고를 하였는데도 그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주권영역 없이는 우리가 이 땅에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주권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래서 더 기도하고 간구한다. 하나님을 우리가 떠났기 때문이다. 각 영역에서 하나님 통치를 바라라.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비밀을 보이는 것과 그로 인해 예언자가 예언함이 너무도 당연함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선지자에게 비밀을 알리신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비밀을 선지자에게 알리시어 예언을 선포하게 하심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회개케 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회복되면 살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는 곳에서 대적을 담대히 대적할 수 있고, 정의가 나타나서 바른 성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빛과 소금 되어 영역주권 안에서 주눅 들지 말고, 아모스 선지자의 메시지를 기억하여 깊이 묵상하여 승리의 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의 적은 밖에 있지 않다. 그의 법대로 살면, 하나님의 도구로 쓸 때 쓰임 받는다.

☆ 담임 목사님 인터뷰와
이정훈 목사님의 초빙설교 ★

※목사님의 오늘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반대나, 여러 강의들을 영상을 통해 보고 반응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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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예배(주후 2020년 8월6일)

제목: “눈물로 시작된 성벽의 재건”

말씀: 느헤미야 1:3-5절

설교자: 김은석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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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3-5절)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 요약

느헤미야처럼 우리의 삶은 주님이 원하시는 곳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우리는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릴 때마다 나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나라 보다는 내가 주인이 되는 내나라 보다는 하나님이 주인이신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주님의 몸 된 교회 유익을 위해 결정하고 판단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썩어 없어질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을 딛고 땅위에 서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로들 닮기 원하는 제사라면 내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지 못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슬퍼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목소리 따가 갔고 결국은 약속의 땅을 밟았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느헤미야 같은 고민과 고뇌 속에 섰을 것이다. 그들은 내길 보다는 우리 주님의 길로 내 유익보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야 함을 깨달아서 느헤미야로 하여금 감당하게 했던 그 보이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우리도 느헤미야 같은 사명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성벽을 재건해야 하는 귀한 사명이 우리에게도 있다. 신약의 이스라엘 나라는 많은 어려움과 실패도 만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재건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완성된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하고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며 하나님 나라의 귀한 도구가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명을 가지고 발걸음을 내 디뎠고. 성벽을 재건하고 눈에 보이는 성경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성벽을 다시 세워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하는 일을 감당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일을 위하여서 가라하시는 곳으로 가야하는 사명 자들이라 믿는다. 우리는 나그네이다. 여기서 영원히 살 자들이 아니다.

 

▶느헤미야가 받은 유대 민족과 예루살렘에 대한 우울한 소식(3절) : 느헤미야가 물었던 사람은 하나니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피폐를 사실대로 말했을 뿐만 아니라, 괴로워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 당시 하나니가 수산 궁에 파견된 목적은, 곤궁한 처지에 있는 자신들이 필요한 어떤 호의나 원조를 요청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비참하게 짓밟히고 능욕 당했으며 큰 환난과 치욕 가운데 이웃 나라들에게서 언제나 조롱을 받으며 안락한 자들에게서 경멸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거룩한 도성은 성벽이 헐려,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폐허가 되어 잇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벽은 아직까지 무너진 상태로 남아 있으며, 성문들은 갈대아인들이 버리고 간 그대로 폐허로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주민들의 형편은 자신들의 가난하고 힘든 생활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멸시받기 알맞으며, 더욱이 대적들이 원할 때 쉽게 그들을 약탈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기까지 한 상태였다. 성전이 재건되고 정부가 들어섰으며 약간의 개혁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여지껏 수행할 능력이 없어 시작하지 못한 선한 사업이 남아 있었다. 이 소식으로 인한 느헤미야의 큰 고뇌와 관심으로 그는 울고 슬퍼하였으며 금식하고 기도하였다.

 

슬픔은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살다 보면 억울하고, 분하고,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종종 우리를 사로잡는다.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큰 슬픔을 감내해야 했다. 흔히 충격적인 소식이나 커다란 슬픔을 느끼면 바로 서 있지 못하고 쓰러지게 된다. 지금 느헤미야의 심정이 이와 같다. 그는 서 있을 힘조차 상실하여 주저앉아 수일 동안 눈물 흘리며 통곡하였다. 본문에는 느헤미야가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를 지속했다고 기록되어있다. 하늘의 하나님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 말고 다른 하나님은 없다. 이것은 우리의 고백이자 느헤미야로부터 배우는 것은 고백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충격을 내어놓고 금식하며 기도한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성숙한 그리스도인 됨을 깨달을 수 있다. 슬퍼 울기만 하거나 충격에 빠져 마냥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일어나 그 슬픔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느헤미야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고 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5)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잊지 않고 긍휼을 간구하는 이 고백의 기도는 참으로 훌륭하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며 깊은 고통과 큰 충격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일깨우는 기도이자, 우리의 믿음을 단단히 받쳐 주는 기도이다. 바로 느헤미야의 기도가 그런 기도이다. 슬픔과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서 있을 힘이 없어 주저앉을지라도 주님 앞에서 나아가 그분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 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고백하며 무엇을 하셨는지 기억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우리들을 기대 이상의 기쁨과 평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느헤미야 같이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복된 영혼이 되길 소원한다.

○찬양50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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