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0년 8월 16일)

제목: ''攝理의 神祕와 祝福''(광복절 기념 예배)

말씀: (창세기 45:1~5)

(기도: 구성찬 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

요약

▷요셉의 정체를 안 형들

형들을 만난 기쁨에 앞서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이를 알고 안심시키기까지 그들은 참 기쁨을 잊고 있었다. 성도의 참 기쁨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요셉의 섭리 신앙 섭리(攝理)란 이 세상을 다스려 나가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간섭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믿었다. 그가 하는 말에는 항상 ‘하나님’이 언급되고 있다. 이 단어는 그의 전 생애를 조명해 주는 가장 중요한 단어인 것이다. 그러니까 요셉과 형제들 사이에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지는 내용이다. 요셉은 개인적인 불행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한다. 그는 자신이 형제들로부터 겪은 모든 고통이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의 일부였으며, 자신뿐 아니라 악을 저지른 형제들로 인해 유익함이 되었다고 말한다.

 

▷형들의 죄를 용서하는 요셉

요셉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관점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형들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된 가해 행위 자체만을 보고 형들을 미워하거나 복수심을 갖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을 들어 그런 행위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폈던 것이다. 다만 용서하기에 앞서 그 용서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했기에 그는 형들을 시험하며 회개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8.15 광복 특별 메시지...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는다. 영적 기백을 가지고 기도한다. 우리가 건강할 때 평양에서 예배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를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원한다. 우리의 항상 소명과 비전을 가지고 광복 75주년을 맞이하여 섭리의 신비와 축복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개인이나 교회나, 어떤 공동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에 대해서 분명한 신앙 고백이 있고, 또 섭리의 신비에 대한 신학적 뿌리가 확고하면 그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잡혀 사용될 것을 확신한다. 그것이 상록수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

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➁ 우리 인간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질서와 은혜’이다. 하나님의 시각이 있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시각을 주시길 원한다.

인간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이 있다.

 

※ 인간의 시각이란 대부분 프로이드나 니체이며, 한국은 김*욱 같은 사람을 인간의 시각으로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는 것이 없기에 말씀을 통하여 조명하시고 계시하시며, 영감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각이 없기에 육신의 시각만이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인간에게 상처주고, 대부분 똑똑하다고 하는 자들이다. 역사의 상선은 하나님의 시각이 없다. 다람쥐 쳇바퀴가 도는 듯 되었다. 우리는 이 코로나 19 속에서도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자체가 하나님의 시각에 대해서 나름 주님과의 문이 열려있는 것이며 온라인도 마찬가지이다. 방역지침을 잘 지키기를 바란다. 역사의 하선 밑에서 상처받지 말고 역사의 윗선인 하나님의 시각을 수직적으로 신본주의로 하나님 나라 섭리의 신비와 축복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한다. 역사, 정치이슈, 상상이 안 되는 일들이 대처할 수 없는 일이 많다. 남북문제도 그렇고, 시각이 다르니까 고착이며 편파적이라서 그렇다. 모두가 하나님의 시각이 되어야 한다. 1대 대통령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시각이 것이다.

 

▶왜 하나님의 시각, 섭리에 눈이 열려야 하는가?

본문은

요셉에 관한 인물이다.

요셉은 야곱의 노년에 가진 아들이며 91세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채색 옷을 입고 왕자처럼 살았다.

12아들 가운에 편애하니 당연히 형들에게 시기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구덩이에 버려진 것이며,,,그 밑바닥까지 간 것이다. 술 맡은 관원이 도와주었다. 애굽의 총리였다 이것이 인간의 시각이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요셉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은 다르다. 구덩이에서는 큰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의 시각은 생명의 구원의 시각인 것이다.

 

→창세기 37:24절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도망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이다. 얼마나 상처가 컸겠는가!!! 구덩이가 무덤과 같다. 죽는 것이었다. 엄청 잔인한 일이며 비참한 일이다.

 

▶하나님의 시각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식만 분명하면 ’저주의 구덩이‘가 반드시 ’축복의 구덩이’가 된다. 하나님은 채색 옷을 벗겼다. 채색옷 ㅡ장자 ㆍ상속권을 가지는 것이다. 형들은 동생 요셉의 옷을 다 벗겨버렸다. 거기서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숙련된 대장장이와 같다. 스가랴서의 더러운 옷을 벗긴 것과 같다. 우리도 하나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것이 섭리의 장소이다. 구덩이에서 요셉은 기도했을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거치는 것이다. 옷은 하나님의 섭리시다. 비참하지만 역사의 신비의 구덩이가 축복의 구덩이다. 우리도 이 환경 속에서도 예배드리는 것이 좋다. 좀 부족해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충만한 것이다.

 

▶인간의 시각은

저주의 구덩이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이 있었기에 우리의 고난과 고통이 있었기에 그래서 이 민족이 존재하는 것이다. 섭리의 시각이 열리면 축복의 구덩이가 된다. -회개의 구덩이 깨어짐 ㆍ성숙의 구덩이다.

환경, 어려움, 상처, 코로나 사태, 우리의 안경을 깨끗이 렌즈를 씻어야 하듯이 도수의 초점을 재조정하여야 한다.
★ 섭리의 시각, 도수의 초점을 우리가 리셋하기를 바란다.

 

→창세기 45:1절 - “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I. 인격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남을 배려하는 인격이다. 형들의 잘못을 시종들이 알면 안되기에 다 내보냈다. 요셉은 섭리를 깨달은 자였다. 고난을 당하면서 섭리를 깨달았기에 자기 가족 살리는 자 민족을 살리는 자가 되어 지게 했다. 절망이 섭리가 되었다.

→창세기 39:5 -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처럼 인격의 용량이 커지면 그 주위가 다 복을 받는 것이다. 축복(The blessing)이라는 찬송도 우리의 용량이 커지게 될 것이니 많이 부르기 바란다. 요셉은 하나님의 큰 섭리인 것은 흉년도 되게 하였다. 요셉은 원한을 품지 않고 은혜로 베풀었다. 어떤 왕궁도 중상묘략이 난무한 곳이 왕궁인데 오염되지 않고, 요셉은 용량이 커졌다. 우리도 용량이 커져서 민족도, 용량이 커져서 하나님 나라를 전체를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II. 인식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창세기 45: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궁중 전체에 들릴 정도로 요셉이 방성대곡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달은 것이며, 하나님 주권적으로 역사의 상선, 하나님 관계가 수직적으로 깨닫게 되어 인도와 섭리와 은혜의 통곡이 되었던 것이다. 총리가 우니 얼마나 무서웠겠나? 하나님의 감격하는 요셉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살아야 한다. 요셉이 형들을 부르니,,, 페닉 상태인 형들이 되었을 것이다.

→창세기 45: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창세기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고백 안에는 하나님의 그릇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낮추어서 쓰신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이다. 이렇게 종지가 되지 말고 은혜의 저수지가 되어야 한다.

→창세기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세기 50:20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함부로 인간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으로 보라. 나를 무너뜨릴 사람은 나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정말 많이도 얻어맞은 나라다. 어떤 경우도 승리로 바라보라. 그러면,, 그 자리가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의 독소들을 75주년 다이아몬드 식이다

→스가랴 8: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나를 무너뜨리는 것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 영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 매경TEST 기출문제
Q. 다음 지문에서와 같은 사례가 발생했을 때 효율성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역할로 가장 올바른 것은?

농업용수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한 공장이 있다. 그러나 최근 강의 상류에 염색공장이 이전해 오면서 농산물 공장이 피해를 보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회적 순손실이 발생하게 됐다.


① 농산물 공장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② 농산물 공장을 매입해 공기업화한다.
③ 염색공장에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한다.
④ 염색공장이 생산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⑤ 정부 개입은 비효율을 초래하기 때문에 개입을 하지 않는다.

 

▶ 해설


염색공장의 생산 활동으로 인해 농산물 공장이 손해를 입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y)는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수준보다 과다 생산되는 경향이 있으며, `피구세(Pigouvian tax)`나 `코즈적 해법(Coasian solution)` 등을 통해 내부화(internalization)할 수 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농산물 공장은 외부효과를 만들어 내는 경제주체가 아니므로 이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소유권의 재설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농산물 공장을 국영화할 것이 아니라 농산물 공장과 염색공장 소유권을 통합해야 할 것이다. 염색공장의 생산 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외부효과를 통제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염색공장의 생산 활동으로 인한 사회적 잉여도 함께 사라지므로 올바른 해법으로 볼 수 없다. 한편 정부 개입이 항상 비효율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므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답은 ③.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토요새벽기도회(토비새)-(주후 2020년 8월 15일)
제목: "북한의 영적 이해와 복음통일"
말씀: 로마서 9:1-3, 디모데전서 5:8
설교자: 이용희 교수님 초빙(가천대, 에스더기도운동대표)

--------------------------------------------------------------

♣ 요약.

 바울은 로마서 9:1-3절에...자신의 동족들을 보면서 자신이 저주를 받더라도 그들을 살려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동족을 향한 바울의 애 끓는 사랑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동족을 향한 바울의 사랑과 같은 마음으로 아니 그보다 더 큰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이 땅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고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 주셨다.그리고 그로 하여금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사망의 형벌을 받게 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고 손가락질 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서 아무 말 없이 십자가를 지셨다. 사도바울이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골육의 친척들이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것은 바울의 마음속에 자신의 친족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주는 표현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이고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또한 디모데전서 5:8절을 보면, 하나님은 가난한 이웃과 선한 일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기를 원하심을 알 수 있다.

▷광복75주년이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유대인들이 구원 받을 수 있다면 내가 지옥 갈지라도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바울은 원했듯이,
우리 핏줄에게 주는 것처럼, 우리 동족을 위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분단
75년을 맞아서 하나님께서 반쪽의 광복이 한반도 전체의 광복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를
복음적 통일을 위해 기도의 동역자로 하나님은 부르신다. 그러니 북한 동포들의 멍에의 줄을 이제 끊어 주시고,
압제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우리는 지금 예수님 못 믿고 지옥가게 하는 김일성 주체사상의 멍에를 꺾어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북한 동포들 가운데 우리의 눈물과 희생과 섬김이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꿈꾸는 것 같은 하나님께서 대사를 행하셨다고 고백하고 송축하는 기적을 속히 허락하시길 기도한다.
피흘림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해 일해주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기도하는 자 되길 소원한다.

 

민수기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2020년 평신도 사역훈련 11반....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Q.기업의 해외 진출 방식은 수출에 의한 방식, 계약에 의한 방식, 해외 직접 투자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다음 중 계약에 의한 해외 진출 방식은?

① 단독 투자
② 직접 수출
③ 인수·합병
④ 라이선싱
⑤ 조인트벤처

▶ 해설

기업은 수출에 의한 진출, 계약에 의한 진출, 직접 투자를 통해 해외로 진출한다. 직접 수출은 국내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해외에 수출을 통해 진출하는 방식이다. 계약에 의한 방식은 제품의 생산기술은 물론 마케팅 기술, 최신 경영 기법 등과 같은 무형자산을 계약을 맺어 판매하는 것으로 라이선싱, 프랜차이즈가 대표적이다.


정답은 ④.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수요기도예배(주후 2020. 8. 12.)

제목: “되찾은 안식”

말씀: 마가복음 3:1-6절

설교자: 구성찬 목사님.

----------------------------

 

▶장마가 50일째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장마로 휴포자가 되었다. 이것은 휴가를 포기한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이 이러한 시기에 잘 맞는 말씀을 주셨다. 현대인이란 표현은 21세기와 연관된 것은 현대인은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 안식 없는 내용이며 어떤 시대보다 발전된 과학기술인데도 역시 세상에는 안식이 없음을 깨닫는다. 세상은 자족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하고 높은 것 등 탐욕을 목표로 삼기에 만족이란 없는 것이다.

 

※월터부르그만 –‘안식일이 저항이다’는 그 이유는, 이 안식일이 상품 생산과 소비가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해 주기 때문이다.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추구.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안식에는 우리에게 쉼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요약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 2:27절을 보면 – 안식일에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신다. 한 주의 모든 일을 그쳐야 하는 날이다. 한 주의 일을 마치고 쉬는 날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날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창조 당시 안식도 바로 이 안식일과 연결되어 있다. 아담의 범죄이후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면서 이 안식이 깨졌다. 각자 바벨탑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인생을 허비하면서 계속해서 달린 것이다. 하나님은 관계 회복을 통해 십계명을 제정해서 보내셨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며 살도록 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회복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속에 가두어 버리고 만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과 같이 안식일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아야 한다.

 

본문 3:1-2절을 보면 안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손이 마른 자이고,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다. 여전히 안식일을 찾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이다. 모세를 통해 안식일을 잃어버린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제정한 안식일의 본질을 잊었다.

2장 23절-24잘을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에 대해 반감을 가진 자들이 이삭을 자르고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노동의 대가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안식일에는 모두 금지였고 생명이 위급할 때만 예외였다.

 

※윌리암 바글레이 –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계속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났어도 하나님의 임재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안식을 왜곡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임.

 

예수님은 사역이 바빠도 한 영혼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마른 손을 가진 자에게 한 영혼을 살리신다. 우리도 영원한 안식을 해결하지 못하는 자의 어려움을, 이 예배에도 안식하지 못하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다. 손 마른 사람이 위급하지 않다고 바리새인의 생각이지만, 예수님은 알고서 손 마른 사람을 바라보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우리도 볼 줄 알아야 한다.

 

1. 안식을 되찾는 출발은 예수님의 시선을 회복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웃의 회복도 나의 회복이다. 사랑의 시선을 회복할 때, 내게 먼저 안식이 찾아오며 가정과 교회까지 안식의 회복이 되는 것이다. 작은 사랑이 흘러서 여기에까지 온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수고하고 무거운 자에게 온다. 이 시선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한다.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죽이실 것도 아시고 계셨다. 그런데도 마른 손을 고치시는 것이다.

3절에 손 마른 남자, 그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라 하신다. 에게이레, 소녀와 일어나라! 와 같은 것이다. 부활과 같은 것이다. 그의 생명을 살리고 안식을 되살리며 침체된 영혼을 일으키신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진정한 믿음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2. 안식을 되찾기 위해 지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가 좋사오니가 아니라, 늘 제자리에 머물러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 쪽 손 마른 사람 같은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고 하신다.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힘들어 말고 예수님 앞에 서라고 하시며 초대하신다. 안식을 잃어버린 바리새인들에게도 안식을 주시려 하시는 것이다.

4절에 선과 악, 생명과 사망을 말씀하시며, 두 가지로 무엇이 옳은지를 그들에게 물으신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다. 행동으로 선으로 행동으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진정한 본질을 되찾아 주시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침묵으로 무너지게 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로 표현하시는 것이다. 창조주의 마음을 담긴 것이기에 창세기 2:3절을 보면,,, 안식일을 친히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다. 안식일을 이렇게 주신 것이다. 안식일의 정신이 주일이다.

 

3. 안식을 되찾기 위해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본질을 일상에서 회복해야 한다.

5b절에 보면 손 마른 사람에게 말씀으로 회복시키신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밀라고 했을 때 쉽게 내밀 수 있었을까? 매주 예배를 드리기도 하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다. 늘 그 손 마른 사람처럼 그렇다. 믿으면서 다 나아가는데, 나만 안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회복이란 것을 느끼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일어나라고 하신다. 부끄러운 손을 내밀라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민다. 바로 회복되었더라 한다. 이 시간 예수님께 손을 내 밀기를 바란다. 능력의 근원은 예수님 앞이다. 더 이상 손 마른 자가 아니다. 우리의 안식도 되찾을 수 있다. 이 예배의 자리에서 주님께 마른 손을 내어드릴 때, 회복이 경험할 것이다. 우리에게 안식을 빼앗아 가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바라보며 회복이 되어 이웃을 향해 가길 바란다. 이것이 매일과 주일이, 선과 생명을 구하는 길이다. 시리고 아픈 손을 오늘 예수님께 내밀기를 바란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