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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토요특별새벽기도회)(주후 2020년 8월 29일)
제목: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말씀: 창세기 22:14절
설교자: 김병종 교수님(서울대학교 전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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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말씀을 듣기를 바란다. 믿음의 처소에서 주님과 온전한 만남이 되고, 특별 새벽예배에 마음을 집중해서 온라인 예배라 할지라도 온전히 드리기를 바란다. ,,,암송과 찬양 기도...
예배를 보는 시간이 되지 말고 특별새벽기도회는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회가 되기를 바란다. 7-8월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게 하심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드린다.(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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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교수님 초빙 설교
창세기 22:14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인문학이나 예술을 감상하듯이 편안하게 예배를 드리기를 바라며, 보는 신앙에 대해서 묵상해 보자.
에어포켓의 공포... 발리그램 목사님과 비행기의 소녀- 아버지가 곁에 것처럼 우리도 평생 하나님을 전하는데 그 소녀만큼도 안 됨을 부끄럽다고 한다. 삶의 에어포켓을 만나면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두려워하지만 지척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믿어야 한다. 믿음은 거리에 비례하는 것 같다. 본문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이 구절은 눈을 들어 산을 보라와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와 같은 맥락이다.

▷보는 믿음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지속적으로 보면 현실로 나타난다는 약속의 비밀의 말씀인 것이다. 삶이 캄캄한 절망감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비전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두려움과 염려,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햇살이 쫙 오는 것처럼 모든 힘들 일이 물러가도록 하신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이 말씀을 되 뇌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을 느끼며 살았다. 하나님을 이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아주 가까이 느껴진다. 우리를 에워싼 창조물과 역사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자. 삶의 처소가 예배의 장소이다. 영역주권이 계시기 때문이다. 연자와 연처럼 하나님과 내가 적절히 유지되면, 모든 날들이 다 좋은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홀로 자녀들을 기도로 기르셨다. 언제나 어려움을 하나님께 의지하시며 평생을 성경과 기도로 보내셨다. 교육에서도 말 한마디도 조심 시키셨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고 하시면서 늘 궁핍하고 힘들게 살 동안의 때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믿음 때문에 살아내셨다.

교회도 여호와의 산이지만 뚜껑 없는 교회에서 편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라 하는 것 같다. 집단에서 나홀로, 믿음의 광야로 서야할 때인 것 같다. 하나님의 창조물이 실제의 산과 꽃과 자연을 보고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자연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창조 미술관임을 알게 된다. 이사야 40장을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안 계심을 핑계 할 수 없다. 지으신 만물을 보면 그분을 핑계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호흡을 느끼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과 가까워진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교회이며 예배의 장소라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 같다.

옥수수가 영글어갈 때 누가 이렇게 만드는가? 누가 네게 이것을 주었는가?(어머니의 질문) 우리 삶속에 주 뜻대로 하소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가 지금 영적인 양식을 스스로 지금 공동체 시간에서 독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적 신앙의 시기,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코람 대오를 체험한 후 보다 믿음의 강성을 주도록 반전의 기회를 주시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훈련도 필요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볼 것인가에 무심하다. 나쁜 것을 많이 보면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잘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베드로가 주목하여 본 후 역사가 일어났다. 깊이 응시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주목하여 응시하여 보신다. 연민과 사랑, 우리의 아픔과 눈물을 닦으시며 손으로 치유하여 주신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문 닫아 교회를 살리는 역사를 하시고 계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바라며 보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제로 이루어진다. 보고 성장한다. 믿음을 가지고 상상하고 바라보면, 늘 상상하던 곳에 가서 있게 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밤낮없이 천국을 바라보고 상상하는 자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바라보고 상상하여 급기야 자신의 나라로 만드는 비밀이다. 창조세계를 시각으로 보는 것은 풍성한 감성, 느낌의 삶, 심미적 삶이다. 풍부한 공감능력이다. 봄으로써 하나님의 호흡에 감사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만 아멘, 할렐루야는 메마른 신앙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그래서 잠시 방학을 주신 이유이다. 다시 말해서 방학동한 가까운 곳에 가서 하나님의 대자연의 솜씨를 느끼고 마음으로 찬양하고 기록해 보기를 바란다. 은혜도 용서도 모두 눈 닿는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담임 목사님은 지각을 아시고도 환하게 웃어주셨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의 용서가 감사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는 평생의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니 더욱 감사한 일이다. 그러기에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의 공식을 우리에 주신 것이다.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면 들으신다는 것이다. 모두 다 눈에 보일만한 것을 용서하고 사랑하라.

​영성과 예술, 부활의 섭리를 다시 회복될 것을 믿음으로 보고 생각해 보라. 아기는 엄마를 봐야 안정감을 느낀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 아브라함에게 별들을 보이시며,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시선이 닿는 곳까지 정복하라고 명령하신다. 바라보라!!! 믿음으로~~ 깨닫고 발견하길 보고 계신다. 모든 자연이 비전 화 되면, 하나님은 한 번 창조하신 것을 날마다 다른 색과 빛으로 창조하시며 우리가 감동하고 느끼며 알아차리라고 하신다. 우리가 너무 문명의 세계에 물들어 있고, 오랜 시간 교회 안에서만 성도의 교제만 익숙하나, 예술이나 자연과의 만남과 사귐이 익숙지 못한다. 우리의 풍성한 삶에 문제가 되며, 아름다음을 보고도 감성에 무디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기쁨과 감동과 찬양의 뛰어난 영적 슬픔을 보고도 무심하다면 주께서 원하시는 삶과 거리가 멀게 된다. 다윗도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에 감탄하고 감사하며 시로 음악으로 만들었다. 감동의 횟수가 인생을 좌우한다. 그러니, 우리 좋은 목사님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셔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도 창조의 섭리와 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예술과 풍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보시기에 좋다고 하신 하나님은 아름다움에 감동하신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길 바란다.정말 죄는 과녁을 빗나가는 것이다. 바로 특권층 같은 오만이 배려와 사랑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과녁을 바르게 맞히어야 한다. *후속세대의 신앙은 보는 것과 상상력이다. 

▶과녁을 잘 맞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의도를 살핀다. 보고 생각해 본다. 사랑의 하나님을 집중하여 본다. 하나님의 관점

둘째-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유심히 본다. - 마음을 실어서 보는 것이다. 대충 보면 죄이다.(하말티아)

셋째 –주님을 전제로 하고 본다.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으로 볼때 더 많은 것을 보고 기억하라. 시간은 기억이다.

모든 기억은 우리 영혼에 각인이 된다.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메멘토모리). 우리도 죽음을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서
교회 자체의 묘원을 가졌음 좋겠다. 제2의 성전을 갖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밀접한 어머니의 신앙생활이 하나님과의 삶이었다).

 

 

☆ 연과 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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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주후 2020년 8월26일)

제목: ''만민을 위한 잔치''

말씀: 이사야 25:6~8

설교자: 장명철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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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이전에 없었던 혹독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54일이란 역대 최장의 장마를 보내면서 인명과 재물의 많은 피해를 보았다. 장마 이후에는 폭염으로 고생했다. 또 태풍 ‘바비’로 인해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의 영적 생활에 많은 방해를 받고 있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모니터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에게는 일 년 전만 해도 굉장히 낯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말씀의 위로가 있다고 믿는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이 어려운 때를 인내하며, 통과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축복을 예비하시리라 믿는다. 본문 바로 앞에 4절과 5절을 보면 -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에게 우리의 그늘이 주시리라 믿는다. 본문에 연회를 잔치라고 표현한다. 잔치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나는가?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사야 25장 5-8절이다. 잔치는 명절도 있어서 좋고 다 즐겁고 좋다. 우리 교회의 잔치는 작년에 헌당 감사예배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누가 잔치를 베풀고 계시는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잔치를 베푸신다. 가족, 교회가 하는 잔치도 기쁨이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민을 위한 잔치는 참으로 기쁘고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6절을 보면,, - 본문에 반복 된 말씀은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한 포도주이다. 기름진 것과 오래된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잔치를 위해 마련된 좋은 음식이다. 그래서 쉬운 성경에서 가장 좋은 음식과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시는 것이다. 라고 쓰였다.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를 것 같은 잔치상.

*오래 저장한 포도주(쉬메르)- 최고급의 포두주이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그 포도주는 맑은 포도주가 최고급 포도주였다. 단순히 좋은 음식만을 말씀하지 않는다. 만민을 위한 잔치는 이 산이다. 바로 시온산 또는 예루살렘이다.

우리는 여기서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하라. 요한복음 6:53-5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이후 많은 무리가 따른다.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해 하지 말고 영생을 위하여 하라고 하신다.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하시며 예수님이 주신 떡을 먹으면 세상에 생명을 위한 살이라고 하신다. 자기 살을 주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어떻게 살겠느냐며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심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영적인 잔치이며, 피와 살을 먹는 것이다. 유일한 구원자임을 믿는 자마다. 영적 잔치에 들어간 것이다. 이사야 본문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잔치는 참된 양식과 음료를 제공하시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직접 이러한 잔치를 마련하셔야만 하는가?

*7절을 보면 가리개와 덮개 – 무엇이 보이지 않도록 덮어 놓는 것이다. 이사야가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죽음을 상징한다. 시신을 덮고 있는 수의를 말한다. 모든 민족과 열방이 죽음에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만민을 위한 잔치를 친히 베푸셔야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빠져서 영원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수의와 같이 우리를 덮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만민을 위해서 잔치를 베푸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얼굴을 덮고 있는 덮개와 가리개를 제거할 수 있는가?

사도바울의 통찰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고린도후서 3:16-17절을 보면,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면 우리가 덮고 있는 수건이 벗겨지며, 주님이 임재하시면 사망의 권세가 물러가는 것이다. 자유가 선포되는 것이다. 담임 목사님이 하시는 스가랴 설교 말씀을 늘 하신 것처럼, 돌아오면 회복된다는 것이며, 바로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책 –‘은혜은혜’라는 책이 있다. 이 내용은 엔드류는 고백하는데 탐욕에서 벗어나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죄악의 덮개를 벗겨 주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와서 만민을 위한 잔치에 참여하고 회복을 경험한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은 무엇인가?

 

*8절을 보면 – 만민의 축복을 말한다.

 

▶우리에게 만민에게 주어지는 3가지 축복이 있다.

첫째 – 하나님께서 사망을 영원히 滅하신다. 멸한다는 뜻은 여기서 히브리어로 ‘발라’이다. 삼키다 들이키다 와 같다. 하나님께서 죄의 형벌로 인간에게 주어진 사망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신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기록한 것처럼 죽음의 종노릇에서 완전히 해방한다는 것이다(히브리서 2:14-15).

만민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죄와 사망의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둘째 –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씻겨주신다. 눈물을 닦아 주신다. 우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면서 자비로운 손길로 친히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위로가 된다.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부라고 이야기 한다.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우리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자영업자, 고3 수험생,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 또한 일상에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우리 영 가족들,,, 우리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사람의 눈물을 친히 닦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셋째 – 하나님께서 우리의 羞恥를 除去하여 주신다. 여기서 수치는 단순한 부끄러움의 단어가 아니라, 非難, 嘲弄, 蔑視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을 비난 조롱 멸시하는 행위를 완전히 제거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들의 명예를 회복시키신다는 약속인 것이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지나가면서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세계관의 공격을 많이 받았다. 소위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예수 믿는 것을 매우 불쌍히 여기는 풍조가 많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에서 신천지로부터 시작한 교회에 대한 많은 오해와 비방이 도를 넘고 있다. 하지만 시편 25편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 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고 ~~”(시편 25:2-3절).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세상에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도록 우리 모두에게 보호해 주시길 원한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만민을 위한 잔치에 대해서 함께 우리가 묵상했듯이 만민의 잔치는 기름진 것과 맑은 포도주가 있는데, 이것은 영적인 참된 양식과 음료가 되시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만민을 위한 잔치에서 우리의 얼굴을 가리는 덮개가 제거 되는데,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를 통해서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만민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죄와 사망이 완전히 해결되고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며, 수치를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들이 보장되어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하나님이 베푸신 잔치가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 만민을 위한 잔치이다.(All peaple)이다. 만민을 강조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잔치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잔치에 들어와 있지만, 여전히 들어와 있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사람들을 초청하기를 원하신다. 우리 교회가 온라인으로 한 것을 잘했다. 보이지 않는 비 대면이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과연 복음을 전하려면 교회로 초청을 해야 하는데,,, 눈동자 같이 보호하셔서 올해 11월에는 대각성전도축제를(새 새명 축제)가 우리를 위한 잔치가 아닌 모든 사람의 잔치가 되기를 소원한다. 날마다 만민의 잔치를 여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요약
하나님이 진설해 주시는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가지고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누리며 우리가 전해야 할 진정한 복음을 행해서 많은 가족, 부모, 형제, 자매, 친지, 친구에게 전해져서 참자유를 누리도록 죄와 사망의 덮개를 벗겨주도록 주님이 차려 놓으신 잔치에 참여케 하고 섬겨야 함을 세상의 눈치를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순종하기를 소원한다.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잔치를 주님이 주셔서 감사하며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 있었으나 주님께로 돌아오는 회개를 통해 참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여전히 우리 가운데 사망과 눈물과 수치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완전히 제거해 주실 것을 믿고, 만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이 코로나 상황을 뛰어넘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능력을 주시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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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예배(주후 2020년 8월23일)

제목: ''위험을 무릎쓰고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말씀: 46:1~7

설교자: 김지찬 목사님 초빙(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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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때 일수록 당당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지금 펜데믹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말하려고 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찾는 동시에 신앙의 선배들이 전염병의 펜데믹에서 어떻게 과거에 대처했는지를 알고 싶어서 마틴 루터가 흑사병을 경험하고 서신을 기록해 놓은 것을 번역했다. 루터 시대에는 흑사병의 펜데믹이 있었기 때문이다. 흑사병은 피부에 종기가 생기면서 피부가 까맣게 생기는 전염병으로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발병한지 8일 만에 사망하는 치사율이 높은 병이었다. 유럽을 간헐적으로 몰사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모두가 무서워서 상가도 의원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임신 아내도 팽개치고 피신하는 자들도 있었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이후 흑사병이 루터 동네인 비히텐부르크를 덮치게 되었는데, 루터는 도시에 나가서 피신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영적으로 위로하고 돌보는 사역을 감당했다. 주위 친한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고, 부인도 임신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집을 병원으로 사용했다. 그만큼 그도 자주 현기증으로 뇌빈혈로 자구 쓰러지게 되어 설교를 멈추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일어나자, 후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심각한 지병을 앓았으며 그는 흑사병을 앓는 자들을 보살피며 돌봤다. 그 위기에서도 그는 남아서 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하고 작곡한 것은 사탄을 물리치고 흑사병으로부터 이기고 주님의 위로를 받기 위한 곡이다. 우리도 이 펜데믹에서 이겨낼 힘은 바로 위로이다. 이 큰 환란 가운데 루터가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씀은 시편 46편이었다. 4절 5절에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이 시편을 읽고 감동을 받아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시인이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 가운데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천재지변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안전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여기에서 용기를 얻어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시를 썼듯이 우리의 삶이 절망하게 될 때의 유일한 피난처는 세상의 권력과 부귀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품이다. 시편 기자는 자연재해를 말한다. 지진으로 흔들리고, 산, 해일, 바다로 모든 것이 흔들려도 시편 기자는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피난처인 하나님은 환난 중에 피난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과 왕국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산 ↔ 왕국, 바닷물 소리  ↔ 뭍나라가 소리침.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연재앙과 인간 재앙을 나누지 않고 서로 시편 기자는 연결하기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자연재앙이나 인간재앙등도 인간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코로나 19사태도 마찬가지로 자연재해와 인간재해가 연관되면서 우리의 고통은 배가 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자연재앙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정치, 사회에 연결되면서 국가와 사회와 존재의 기반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것을 우리가 지금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강대국 지도자들의 말 한 마디에 전 세계가 요동을 치고, 나라마다 감염 병 대책을 놓고 내부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며 흔들리고 있다. 정부의 지도자들이 백성들의 안전을 겸손하게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욕망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총체적인 계산을 하게 되면 자연재앙이 인간재앙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단순히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인간의 죄 된 본성이 다 쏟아져 나오면서 인간의 사악함의 펜데믹을 만들어 내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되었던 루터는 흑사병을 적대자인 교황과 황제가 만들어내는 안간 재앙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은 항상 그의 곁에 존재하는 도움이시며, 매우 현재적인 도움임을 경험했다. 루터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만, 파문을 당했기에 너무도 어렵고 누구에게도 도움도 없게 되었는데도, 심각한 종교개혁이 최초에 놓이게 되어가도, 루터는 개인, 교회, 정치, 신학적, 사회적 상황은 시편의 46편과 매우 흡사하다. 뭍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리고 개인적으로는 박해와 시련으로 불완전한 상황에서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시편 46편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와 힘이시니 환난 가운데 항상 현존하는 도움이라” 이것이 루터에게는 위로였으며 또한 ‘내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양시를 작사 작곡했던 것이다. 가사를 보면 정말 위로가 된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

 

요약

마틴 루터 흑사병 이후 (치사율75%,쥐벼룩)

비히텐베르크 교회에서 환자들 돌보게 되었다. 친한 신자 부목사 아내아이 흑사병 걸림으로 집을 오픈하고 환자들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 루터도 뇌빈혈로 쇼크가 자주 오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내주는 강한성이요 라는 찬양곡을 작사 작곡하여 하나님께 집중 의지한다.

 

우리는 전염병으로부터 피신해도 되는가? 흑사병속에서도 하나님 주신 생명을 지켜야한다. 내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남아야한다고 루터는 말하고 있다. 목사, 공직자(시장, 판사), 의사 남아야 사회를 지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도 자기 자리를 지켜야한다. 사랑의 법이란 고통당하는 자를 돌봐야 한다. 목회자로서도 이 어려움은 징벌을 위함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을 테스트하시는 하나님 위로임을 알고, 우리는 위로를 나눠야 한다. 당신의 유일한 위가 누구이신가를 말하면 무엇이라고 답을 할 수 있는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의 유일한 위로는 하나님이시다.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이신 하나님이시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만이 위로이다.

an ever-present help in trouble.​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로다.

 

▶그러면 우리가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를 유지하고 계속적으로 살 수 있는가?

→ 첫째. 우리는 사람들에게 교회에 참여하여 설교를 들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 배우라고 權勉해야 한다.

→ 둘째. 모든 사람은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죄를 고백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흑사병이 만연한데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굳이 현장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걱정하는 그리스도인도 많다. 물론 일리가 있다. 기저질환이나 어린이는 조심해야 하지만, 식당과 카페는 우굴 버글 하는데, 그 얼굴에서 두려움의 얼굴을 보시 못했다. 그런 곳은 두렵지 않으면서 가면서도 교회 오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지금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국가의 방역 조치를 잘 따르고, 개인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면 그리스도인은 존재의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비대면 예배는 비상 대책이어야 한다. 치사율이 75%인 흑사병인 대유행 앞에서도 교회에 참석하여 설교들 들음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 고백하고 성찬에 참여함으로 죽음을 준비하라는 루터의 권고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를 등한이 한다면, 어디서 우리는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를 얻을 수 이 있는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이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셋째. 루터가 위험을 무릎 쓰고 비히텐베르크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위험을 무릎 쓰지 않고는 결코 이웃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터는 ‘자신의 안전이나 재산에 손해가 나는 것이 힘들어서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이웃을 도울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웃을 도울 때는 언제나 위험을 甘受해야 하는 일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危險을 무릎 쓰지 않고는 도울 수 없다고 루터는 통찰하고 있다. 한 500년 전 루터를 보면서 정말 대단함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19는 치사율이 1.8%에 불과하다. 흑사병은 그때는 치료약도 없었다. 두려워말고 이웃을 위해 사랑을 권고한다. 루터는 시편 46편을 보면서 ‘내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하면서 사탄마귀 로 다 빼앗긴데도, 내 몸도 다 가져간다고 해도 우리 왕국은 영원하다‘라고 했다.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가 있기에 흑사병의 펜데믹 안에서도 그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런 루터로 인해서 루터의 그 의지를 보면서 지지하는 사람들로 인해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 우한의 선교사는

사명 자는 사명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상황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된다. 사람을 세워가는 일은 말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교회가 병원을 세운 것이 현대의 역사인데,,, 우리는 생사 간에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사역 가운데서 발견하고 생사간의 위로를 가지고 코로나 사태를 주님의 이름으로 이겨내길 소원한다.

 

♧느낀 점.

지금 이렇게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됨을 나도 절실히 무섭게 느껴진다. 세상은 계속 정치와 이슈로 더욱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시점을 세상의 이슈나 간사한 정치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 시점이 분명, 하나님의 징계라고 여겨지기에 더 조심하면서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나의 부족함을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납작 엎드리면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주님의 예배를 고대하며 기도할 것이다. 어제 예배에 나간 사람들은 용기가 대단하다. 허탕을 치고 돌아갈 것을 왜 그들은 모른가를 나쁘게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만큼 하나님의 예배를 사모하는 자들임을 보면서 나는 내심 부끄러웠다. 어떤 죽을 상황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 하겠다면서 나는 그냥 교회의 지킴을 따라갈 뿐이라며 핑계를 되 뇌였다. 이제 주님 앞에서 과감하고 용기 있는 선택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루터처럼 위험을 무릎 쓰고 과연 이웃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남의 생각을 믿지 말고 나의 판단을 주님께서 주관해 주실 것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모든 삶은 고난의 연속이고, 그 고난이 주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고 이웃에게 더 나누고 품는 자 되기를 간구한다. 또한 한국교회 그리고 우리 교회의 예언자적인 말씀과 사랑으로 김지찬 목사님(총신대 교수님)을 초빙하셔서 우리에게 주님에 대한 올바른 이치와 진리를 우리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더 깊이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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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주후 2020년 8월 22일)

제목: “생명나무 열매”

말씀: 창세기 3:22-24절

설교자: 이왕재 교수님 초빙(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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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22-24)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22-24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쾌하게 여기셨다.

둘째, 천사들은 그를 대적하였다. 그가 천사들과 우리의 주이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한, 하늘의 군대들과의 평화란 있을 수 없다.

셋째,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막혔다.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들여보내셨던 흠 없는 순결의 길이 막힌 것이다. 그 이후로 그가 첫 번째 언약에 의해서 의와 생명과 행복을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언약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 언약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면 우리는 다 멸망해 버리고 만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아담에게 계시하셨는데 그것은 그를 절망에 빠뜨리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염검을 제거할 약속된 후손 안에서 생명과 행복을 기대하도록 은혜를 베풀고 격려하시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우리와 화해하였고 가장 거룩하신 자에게 이르는 새로운 생명의 길이 우리에게 열렸다.

 

▶이왕재 교수님(장로님)

본인은 좋은 부모님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농촌에서도 믿음의 가문에서 잘 자랐다. 뒷받침 해주실 능력도 없으신 부모님은 그 믿음으로 막내아들을 매일 서울로 가도록, 시골을 떠나도록 기도로 가르쳐 주셨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를 간 것과 그것도 의대를 갔기에 우리나라의 가장 인재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어릴 때부터 자랄 수 있었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곳까지 인도해 주신 것도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이렇게 얼마 남지 않은 퇴직을 두고 설교를 하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 영광 올린다. 끝까지 축복을 해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30년간 지낸 교수연구실을 떠나게 된다(퇴직). 인간적으로는 불만족도 불만도 많이 있었지만 가는 곳마다 본인 곁에 천사를 보내 주시고, 세우셔서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더 큰 역사를 이루어주셨다. 성경에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항상 비슷함을 자신도 그렇데 느낀다. 너무나 뛰어난 사람들과 지냈으며 그것은 다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다. 백지장 하나의 차이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고는 농촌 자녀로서는 감당 못할 일을 하나님은 다 하게 해 주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그것을 알고 못 알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 여긴다. 한 순간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을 믿고, 확실하게 따르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미래가 다르다. 그 사람을 온전하게 높이 들림 받은 자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성경말씀대로 그렇고,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그렇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추할 수밖에 없다. 일주일 뒤에 학교를 떠난다. 인간의 해부학을 전공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가르쳤다. 또한 과학자로서 면역체계인 종양 쪽을 연구했다. 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보고 종양을 치료하기를 힘썼다. 면역학 적으로 연구하면서 암을 早期 診斷보다 더 중요한 것이 早期 豫測을 중요시 한다. 의학적 대책을 하고 있고 계속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문서 선교를 했다. 빛도 없이 소리도 없이 문서학교 잡지가 있는데 ‘건강과 생명’이라는 잡지이다. 1990년에 창간 후 2020년에 360호를 발간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이며 축복이다. 월간지로서 돈을 번 것이 아니다. 잡지가 30년이 넘기 힘 드는데, 30년이 넘었다. 하나님을 영접하는 분들이 그 책을 보고 구원을 받게 되며 인간이 몸이 아프게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그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해주시고 계신 것이다. 바로 이 책이 그러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 책을 보고 수술을 앞에 두고 교회에 들어가 기도하고 있으며 이 책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며 매년 수십 건씩 일어나고 있다. 책을 파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기 위함이다. 전국에 큰 병원마다 원목실이 거의 다 있다. 이 책이 후원으로 지금 들어가고 있으니 이 책을 보고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 주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함이다.

 

이제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서 비타민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평생 연구한 것이며, 비타민C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비타민 C를 연구하여 세계 최고의 권위가 있는 작년에 단독으로 스프링거(1942년) 출판사와 함께 영문으로 과학서적을 냈다. 그런 축복을 하나님이 본인에게 주셨다고 한다. 저자로서 과학 서적을 출간했다. 많은 출판사들이 그 곳에서 책을 내기를 원한다. 한 길을 걸은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놀라운 결과를 받았다. 바로 코로나 19 대응 방법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사스도 홍콩의 기자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2002년도이다. 20년 전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고 난리였다. 생명 과학의 시대라고 했다. 그것은 유전자 조작이었다. 그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하게 된 것이다. 줄기세포도 그랬다. 대한민국이 망신을 당한 것도 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사스는 바로 인류와 역사를 같이 한 감기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다 몸속에 가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증식하게 된다. 언제든지 출구전력이 있기에 호흡기에 가깝게 있다. 인두, 후두, 상기도 감기였다. 누가 감기 걸려서 죽었다고 했던 일이 있는가? 사스는 변형된 감기이다. 사양 고양이라는 변종을 일으켜서 사람에게 온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은 인간, 동물은 동물끼지 유전자가 다르는데 사람 세포 속에 들어가야 증식이 가능하다. 그런데 열쇠가 안맞는다. 살기 위해서 그 바이러스가 변종되어 사람에게 들어간 것이다. 농부가 키운 고양이가 변종으로 농부를 전염시킨 것이다. 일파만파 퍼진 것이 바로 홍콩 기자가 보고한 것이 바로 사스였다. 독감은 인풀루엔자인데 몸 속에 없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몸속에 있다. 백신은 쉽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 19의 백신이 없다고 했다. 개발되기를 원하지만 되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방법인데 DNA를 집어넣어서 만드는 것인데 유전자 단백질이 들어가 면역이 일어나는 것인데 엄청 위험하다. 대단히 위험하다. 신속 허가제가 있는데 놀라운 핑계로 그 DNA 백신이 허용되어서 지금 개발하고 있지만 철저하게 봐야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스와 크게 다른게 없다. 단지 숙주만 다르다. 박쥐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걱정되는 나라다. 하나님을 배척하는 나라는 징계하시며 믿는 자들에게 함부로 하면 하나님은 더욱 망하게 하신다. 그들은 교회를 다이나마이트로 교회를 폭싹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나라를 놔두시진 않는다. 바로 징계이다. 계속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한 폐렴도 마찬가지다. 박쥐를 엄청 잘 먹는다. 박쥐가 없어지니 새로운 숙주가 생기고 변종을 일으켜 사람이 많기에 들어간다. 빨판이 15배이상 강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래서 전염력이 강하다.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 사스나, 코로나 거의 비슷하다. 백신 예방 주사는 없다. 변종이 계속 생기기에 더 강하게 일어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백신이 만들어지기 어렵지만,,, 전 세계가 공포이기에 백신이 부작용이 장난이 아니기에 정말 조심해야한다. 그 효능도 검증이 아니니 인풀루엔자는 잘 만들어진다. 여하튼 코로나 바이러스 변종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어서 막을 길이 없다. 백신을 만들고 싶다. 특히나 DNA 유전자를 집어넣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며 그 속에 칩을 넣는 장난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영원히 몸속에서 함께 살고 조종당하게 된다. 과학을 바탕으로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 지금 한 가지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인데 감기정도라 여기고 열이 나면 해열제를 절대 먹지 말라. 독감은 바이러스로 오니 감기와 다르다. 독감을 시즈널 풀루(유행성 독감)이라고 한다. 병원체가 없으니 아무나 걸리지 않는다. 코로나 19는 정착력이 강해 감염력이 높다. 더워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래서 대책이 있다. 방역을 철저히 하고 분명한 것은 지금 감염이 잘되는 이때 우리가 예배를 못 보게 할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 공포에 초기에는 빠졌다. 그러나 사망자들을 자세히 보면,,, 미국,이태리,프랑스,스페인,브라질,,, 전 세계 3.5%이다. 우리나라는 잘 하고 있지만, 대만은 감염이 안 된 것도 바로 대처를 잘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쓰면 된다. 무조건 쓰면 되고 초기에는 많이 죽었다. 논문을 보니 3개 이상의 기저질환자이다.

 

→사망자의 원인

1. 그것은 기저질환자가 죽은 것이다(기저질환-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분).- 몸속에 내란이 일어난 것이다. 밖에서 들어온 바이러스가 들어와 죽는 것이다. 저항을 못하니 그렇다. 98%가 기저질환으로 죽는다. 그래서 우리가 무서워할 병이 아니다. 방역만 잘 하면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fact이다. 그 동안 하루에 8천 건의 검사를 했다. 그러나 약 1%밖에 안 된다. 냉철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대다수 교회들이 모범이게 지키는데 아침에 8시에 대중교통에 얼굴을 맞대고 있다. 지하철에 보면 그러면 멈추어야 한다. 정부는 정말 교회 50명도 못 모이게 하는가? 이것은 기독교 탄압이다.

도대체가 무순 생각으로 이런 보고를 하는 것인지 잘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 신앙을 돌봐야 한다. 너무나 코로나로 교회 안가도 된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사실 모두가 약속이 취소되었다. 일 년 지나고 나면 내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 신앙이 지하철을 타는 만큼도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믿음을 점검하라. 바이러스로 인해서 하나님은 징계의 사인이다. 에이즈로 징계를 주었다. 그것은 성적인 타락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같이할 순한 바이러스와 함께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DNA, RNA바이러스 두 종류 밖에 없다. 다 유전자이다. 유전자 조작이 일상화 되어 있다. 인간의 생명을 만드실 때 건드리지 말라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이런 엄청난 시대에서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말을 안 들으니 깊은 수렁에 넣어주시는 것이다. 정말 깨달아야 한다. 방역을 마스크로 잘 하되 예배도 드리고 다만 요양원과 병원, 기저질환 자는 더 열배로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의 몰락으로 전 세계가 문제가 되게 된다. 창세기에 생명나무의 열매가 나온다. 우리가 선악과로 죄를 알게 되었듯이 생명나무 열매를 놔두어야 하는데 과학자들은 그것을 놔두지 않고 따먹는다. 문서중심인 선교를 바라보라. 비타민 C를 다시 말을 해야 한다. 쥐로 실험을 했다. 면역기능이 안 좋은 자는 폐렴으로 죽는다. 하 기도로 내려가면 죽는다. 비타민 씨를 먹인 쥐와 안 먹인 쥐를 실험해 보니 안 먹인 쥐만 다 죽는다. 죽은 쥐의 바이러스가 바글바글했다. 기관지 액에 바이러스 면역체계가 부족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비타민 C를 먹인 것은 정말 다르니 우리도 비타민 C를 먹어야 한다. 진리를 통하게끔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 요약.

첫째 – 전철을 밟아보니 교회 예배를 못하는 것은 과잉이다.

둘째 - 코로나로 죽는 것이 아니라 기저질환으로 죽는 것이다.

셋째 –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비타민 C를 먹으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이다. 정한 양을 먹어야 한다. 6000mm그램을 한꺼번에 먹으면 안 된다. 6시간 이내에 재 보충을 하라. 여서시간을 계산을 해보니 식사하고 바로 먹는다. 음식을 함께 먹어야 한다. ‘비타민 C’가 초기에는 속이 쓰리니 음식과 함께 먹으면 된다. 사람마다 다르다. 면역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타민 C’를 먹어서 유지하라. 여러 번 나누어서 먹어서 면역체계를 갖추길 바란다.

얼이 날 때 해열제를 먹지 말아야 한다. 바이러스는 추운 것을 좋아하니 열이 나면 바이러스가 죽는 것이다. 땀이 난다는 것은 바이러스가 죽는다는 것이다. 해열제를 먹지 말아서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기저질환이 있는 곳은 방역을 잘 하고 확진 자가 많은데 전염된다는데 마스크를 꼭 써야한다. 연구결과이다. 확진 자가 있는 것은 마스크를 안 써서 걸린다. 죽은 자들은 다 기저질환자이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기 바이러스와 같기에 코로나도 기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신앙을 지켜서 하나가 되어서 본이 되어서 신앙을 잘 지키기를 권고한다.

 

우리가 현장 예배를 잘 드릴 수 없는 위기의 상황 속에도 방역을 잘 지켜서 지혜와 능력을 더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다시 회복되어 예배를 온전히 드리기를 원한다.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하며, 면역체계를 순서대로 잘 지켜서 영육을 건강하게 하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생명나무 열매”를 잘 지키는 자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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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0년 8월 19일)

제목: “영혼과 범사가 잘 되는 그리스도인”

말씀: 요한삼서 1:1-8절

설교자: 주성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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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3서 : 1~8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 주 안에서 여러분 모두가 잘 되고 잘 되기를 소망한다. 50일간의 역대 최장의 장마가 끝이 났다. 작년 12월에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장마처럼 끝이 나듯이 끝이 나리라 믿는다. 우리는 어느 때 보다도 영혼이 범사에 잘되어야 할 시기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생애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는 감염 병으로 인한 이 펜데믹시대에 우리의 삶은 더 잘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잘’ 이라는 단어에 뜻은 무엇인지 아는가?

국어사전에 무려 13개의 의미가 있다. 이 잘이라는 말을 붙이면,, 이 부사는 부족함이 없는 만족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성경에도 많이 등장한다. 그중에 요한3서 1장에 15절에 두 번이나 등장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요한삼서는 사도요한이 기록했다. 초대교회 공동체 가운데 에배소 교회에 모였던 지역 교회에 편지를 2번 쓰는데 요한1서와 요한2서이다. 그리고 요한삼서는 지역 교회에 편지하는 것이 아닌 가이오라는 한 개인에게 쓴 편지이다.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라고 쓰고 있다. 요한은 가이오에 대한 . 애정어린 표현은 사랑의 불을 밝히게 한다. 그러면서 인사만 초두에 그가 범사에 잘 됨 같이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한다라도 축복하고 있다. 축복된 말을 할 때에 많이 사랑하고 암송하는 말씀이다. 우리도 ‘사랑하는 성도님, 성도님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축복의 메시지로 인사 나누니 주님 안에서 마음이 평안과 기쁨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 가운데에서는 의미가 좀 다르다. 그리고 성경 말씀에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인생과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잘 되는 인생이 다른 것 같다. 잘 사는 삶이 모두가 다른 의미로 산다. 우리의 잘 되는 인생이 세상 사람들의 잘 사는 인생이 같은 의미로 등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말씀에서 가르치는 교훈과 가르침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전혀 다르다. 세상 사람들의 추구의 잘됨은 무엇인가? 영어로는 Well이다. 그러나 세상적인 잘 사는 것은 잘 먹고 잘 쓰고 잘 나타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다. 머니 토크가 있다. 그것은 돈이 전부라도 믿고 있다. 돈이 다 안 된다. 환경, 기후, 전쟁, 두려움의 감염 병 등도 안 되는 것이다. 진정한 우정과 사랑도 돈으로는 살 수가 없다. 더욱이 영혼의 문제는 돈으로 보장 받을 수 없다. 누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부자를 어리석은 부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자신의 영혼의 평안까지 지 보장 받는 줄 알고 있어서 예수님은 바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평가를 듣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럼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는 것을 바라시는가? 당연히 바라신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물질세계를 도외시 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세기를 보아도 우리의 먹고 사는 것을 가볍게 보시지 않으신다. 인간을 첫째 날 창조하시지 않고 6일째 되는 날 만드셨다. 5일간은 먹고 사는 것을 만드신 것이다. 인간이 혼자 지낼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 것이다. 인간은 식물도, 동물도,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누리고 정복하라고 하신 것이다. 창조의 목적대로 통치하실 것을 명령하시는 것처럼 물질을 도외시 하시지 않는다. 기쁘게 인정하고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릴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범사와 영혼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혼과 범사가 다 잘 되어야 한다.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그들이 잘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도 함께 하셨기에 그들의 영혼과 범사가 잘 되게 하신 것이다. 주님은 임재하시고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영혼과 범사가 잘 되기를 원하신다.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리지 못하며 사는 우리는 불안해 오는 것이 엄습해 온다. 사도 요한은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하듯이 요한삼서에 나온 가이오는 불신자였다. 지역교회의 크리스쳔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했다. 가이오는 칭찬 받을 자격이 있는 자였다. 그가 처한 상황이 만사형통이 아니었다.

가이오가 목회했던 교회는 혼란 자체였다. 적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가연설이 있었다. 물질의 세계가 부정하다고 하는 것을 믿는 자의 사고가 가연설이다. 인간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될 수 없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자다. 이런 교회에서 목회를 하니 답답했을 것이다. 배교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남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방해했기에 가이오는 힘들었다. 사도요한을 폄해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접대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혼이 편안하지 못했다. 가이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행한 사람이기에 이 기도문과 같이 확신하고 있다. 그는 많은 형제들 앞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 자이다. 진리로 말미암아 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요 복음적인 사랑이다. 진리 안에서 행하고 말씀대로 살아내는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주었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지금 입시로 인해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 웰빙으로 살다가 잘 살고 잘 죽기를 바랐는데 당장 하루가 힘들다. 내게 처한 상황이 어렵다고들 이웃들이 많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권면할 것인가? 머니 토크 할 것인가?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외침을 동조할 것인가? 성경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에게 권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북돋아 주면, 하나님 말씀 안에서 소망을 주는 자가 되길 바란다. 담임 목사님 말씀에 ‘나를 망치는 것은 나밖에 없다.’라고 하셨듯이 죄에 지친 지체들에게 사랑 안에서 진리를 권면하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의 자리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그들과 내가 영혼과 범사가 잘 될 것이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된다는 것은, 영육의 성장이 조화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한 길로 인도받다. 좋은 여행을 하다. 번성하다. 성공하다인 뜻으로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을 행할 때 우리가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는 줄 믿는다. 가이이오는 동료들의 평가의 의해서 택한 삶이 아니다. 가이오는 오직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이며 귀 기울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기고 원만과 관용으로 품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지켰다.

 

♣요약

그리스도 안에서 잘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는 자로 가이오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고 믿음의 지체로서 본이 되게 살기를 바란다. 우리 영혼이 잘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안다라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라고 한다.

(1) 하늘나라 이편에서 큰 축복인 그의 영혼이 잘되기를 비는 사도의 경건한 기원이 있다. 그의 동료에 대한 경건한 기원은 그의 영혼 잘되며 아울러 몸의 강건함을 바라는 것이다. 은혜는 강건함을 증진시키며 강건함은 은혜를 동반한다.

〔1〕사도 요한은 자기가 들은 그에 대한 좋은 평판을 말하고 있다.

(1) 가이오에 대한 형제들의 증거는 그가 진리 안에서 행하고 사랑으로 이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사랑에 의하여 역사하여야만 한다.

(2) 가이오로부터 온 형제들이 증거를 전했다. 좋은 평판은 그에게서 선한 것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3) 그에 대한 이러한 보고나 증거는 교회 앞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교회는 당시 사도가 거하고 있었던 교회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오직 그들이 보고 느낀 것만을 증거 하였다.

〔2〕사도가 친히 가이오에 대해 내린 평판

그는 언제나 대접하기를 잘하고 선대하였으며 이는 형제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그네에게도 그리하였다. 그는 모든 믿음의 식구들을 환대하였다. 그는 모든 믿음의 식구들을 환대하였다. 그는 또 모든 일에 양심적이었다.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즉 "너는 그 모든 일을 신실한 종처럼 행하였으니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을 상급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3〕그 일로 인한 사도의 기쁨(3절):

진리를 소유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는 그 진리를 좇아 행하는 것이다.

 

〔4〕그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접대할 것에 대하여 추가로 권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여행 중인 전도자와 그리스도인들의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하나의 통례이었던 것 같다.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나그네에게는 큰 친절을 베푸는 것이요 적당한 동행자를 만나는 것이 여행자에게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해진 일이다.

〔5〕이런 일들을 권하는 이유: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들이며 아마 요한 사도에 의하여 파송을 받은 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위하여 나간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고 값없이 나누어 줄 복음을 들고 나갔다. 그런데 직접 복음을 전파하도록 부름 받지 않았어도 그 전파를 위하여 공헌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복음은 그것을 처음 받는 사람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져야 한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또한 참된 신앙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감사가 넘쳐나서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우리가 상황이나 판단으로 선택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사랑을 행함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기를 바란다. 빛이신 하나님나라 안에 우리의 생이 아름답게 살며 불쌍한 자들을 돕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기를 소원한다. 복음을 직접 전하지 못하는 자들도 복음 전하는 자들을 돕고 후원함으로써 복음 전파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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