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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穴寺(신혈사) - 大良院君(대량원군)

 

 

★*.
一條流出白雲峰(일조유출백운봉)
萬里滄溟路自通(만리창명노자통)
莫道潺湲岩下在(막도잔원암하재)
不多時日到龍宮(부다시일도용궁)


(해설)

물 한줄기가 백운봉에서 흘러 나오는데,
머나 먼 바다까지 길은 절로 통해 있네.
잔잔한 바위 밑에만 있겠다 하지 마라,
멀지 않은 장래에 용궁에 이르리라.


    *神穴寺(신혈사):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 삼각산 진관사(津寬寺)에 있었던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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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차 한 사발
                             /  혜장(惠藏)스님       

澹靄殘陽照上方 [담애잔양조상방]
半含紅色半含黃 [반함홍색반함황]
淸茶一椀唯吾分 [청차일완유오분]
羶臭人間盡日忙 [전취인간진일망]

엷은 노을 남은 볕이 절집을 비추이니
반쯤은 붉은 빛에 반쯤은 누런 빛.
맑은 차 한 사발이 다만 내 분수거니
누린내 나는 세상 온 종일 바쁘구나.



▒ 아암(兒菴) 혜장(惠藏, 1772-1811)


「산거잡흥(山居雜興)」 20수 중 제 14수다.

뉘엿한 햇살에 노을이 맑다.
빗긴 해가 산 꼭대기 방장으로 빗겨든다.
종일 돌아다녔으니 저도 좀 쉬자는 눈치다.
이때의 이 빛깔을 어찌 설명해야 좋을까.
붉은 빛이라 하기엔 누런 빛을 띠었고,
누렇다고 하자니 붉은 기운이 감돈다.
툭 터진 안계(眼界) 너머로 구름 노을이 탄다.

사람의 한 뉘도 저와 다를 게 없겠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떠오른 아침 해가
서산낙조로 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맑은 차 한 잔을
끓여내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다.
따뜻하다.
이만 하면 내 살림이 참 넉넉하지 싶다.
저 산 아래 중생들의 세상에는
서로 뺏고 빼앗는 아귀 다툼이 한창이다.
헐고 뜯는 싸움판에서 마음은 까맣게 내던져 놓고,
탐욕의 누린내가 진동을 한다.

찻잔을 들어 다향을 맡고,
한 모금 가만히 머금어 내린다.
다 고맙다.
사위(四圍)는 어느새 어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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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國里(or 舊里)   옛 고향
             경운 卿雲  (당나라 말엽의 승려)

 

舊居梨嶺下    옛날 살던 이령 고개 아래는
風景近炎方    풍경이 열대에 가까웠지.
地暖生春早    땅이 따뜻하니 봄은 일찍 왔고
家貧覺歲長    집이 가난하니 세월은 길었네.
石房雲過濕    구름이 지나가 돌집은 눅눅했고
杉徑雨餘香    비내린 삼나무 길은 향기가 맑았네.
日夕竟無事    저물도록 별다른 일이 없이
詩書聊自强    부지런히 시경 서경 읽었다네.

 

 

 *梨嶺: or黎嶺  -> 고개 내지는 작은 산 이름임. 번역엔 문법적으로 별로 달라질 게 없음.
  *早: or草  -> 땅(지역)이 따뜻하니, 즉 기온이 따뜻한 지방이므로 봄풀이 나옴.(?)
  *杉: or松  -> 杉은 삼나무, 松은 소나무, 松일 경우엔 '소나무 길'로 번역해야 함.
  *夕竟: or久覺 -> '일구각무사'라면 '해가 길어 일이 없음을 깨닫다'는 뜻임.

     날은 긴데, 하루하루 가는게 지루한데 별달리 할 일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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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덕원민사2(宿德源民舍2)-허균(許筠)

 

 

★*.

王粲倚樓空作賦(왕찬의루공작부)


杜陵徒步只吟詩(두릉도보지음시)


空聞戰血傾伊洛(공문전혈경이낙)


却敵何人出六奇(각적하인출육기)


(해설)

누대에 기댄 왕찬은 공연히 시를 짓고
맨발의 두보는 오직 시만 읊었어라
전장에 흐른 핏물 이수와 낙수로 든다는데
적 물리침에 누가 기발한 계책 짜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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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님 생각


                       - 민사평(閔思平),情人


情人相見意如存 須到黃龍佛寺門
정인상견의여존 수도황룡불사문

氷雪容顔雖未覩 聲音仿佛尙能聞
빙설용안수미관 성음방불상능문

고운 님
보고픈 생각이 나면 
 
황룡사 문 앞으로
달아 오소서.   

빙설 같은 얼굴이야
비록 못 봐도  

방불(흐릿하거나 어렴풋함)한 그 목소린
여태 들려요.




민간에서 불려지던 노래를
민사평(閔思平)이 한시로 옮긴 것이다.

고려 말 경주의 황룡사는
폐허가 되었을텐데,

그 절집의 문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었을까?

읽기만 해도
마음이 먹먹해 온다.

살다 보면 문득
가버린 님이 생각날 때가 있겠지.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말도 못하게
그리운 날이 있겠지.

그대!
살다가 그런 날 만나게 되거든

아무 말 말고
황룡사 문 앞으로 찾아오소서.

빙설처럼 고운
그 모습이야 보이지 않겠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앞에 서면

그 님의 그 목소리가 지금도
소곤소곤 들려옵니다.

따뜻한 봄 햇살에 종다리들
하늘 꼭대기까지 조잘대며 올라가고,

우리 사랑했던
아름답던 시간들

주춧돌 위에
여태도 남아 반짝입니다.

무지개로 걸리던
빛나던 맹세는 어디로 갔을까?

사랑했던 그 사람은
어디에 숨었나?

잊었던 그 사랑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날이면,

맺지 못한 꿈이
안타까운 날이면,

나는 기둥만 남은
황룡사 일주문 앞에 와서

눈감고 그 기둥(幢竿支柱)에
기대곤 합니다.

더엉,
덩 ..

*
민사평(閔思平1295~1359):
자 탄부(坦夫). 호 급암(及庵)
본관 여흥. 시호 문온(文溫).

산원(散員), 별장(別將) 등
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지내고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다.

충정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던 공으로

충정왕이 즉위하자
공신의 칭호를 받고

첨의참리(僉議參理), 찬성사,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를 역임하였다.

시서(詩書)를 좋아하고
학문에 뛰어나 이제현(李齊賢) 등과 함께
문명을 날렸다.

보물 제708호인
<급암선생시집>은 그의 시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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