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尹銑)의 추담집(秋潭集)에 실린 나해봉의 한시 감상
아래 시는 秋潭先生文集卷之六, 詩 五言四律
輓(추담선생 죽음을 애도하는) 羅應瑞 海鳳의 二首이다.
윤선(尹銑)은 1559 (명종14)∼1637(인조15)대의 인물로 자(字)는 택원(澤遠), 호(號)는 추담(秋潭)이다.
관직(官職)은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양대(兩代)에 걸쳐 대사간(大司諫)·대사성(大司成)·도승지(都承旨)·의정부(議政府) 우참찬(右參贊) 등을 역임하였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 되었다.
丹穴金章備(단혈금장비)/ 단혈의 금장이 준비되면
秋天玉露滋(추천옥로자)/ 옥로가 커지는 가을 하늘이로다.
雄奇西漢賦(웅기서한부)/ 서한부의 웅대하고도 기이한 성루는
淸苦晩唐詩(청고만당시)/ 만당시의 청빈한 기상이다.
命薄身長病(명박신장병)/ 사람 키 때문에 병을 가진 기박한 운명
名高官獨卑(명고관독비)/ 가장 왜소하지만 이름난 고관이도다.
平生同臭味(평생동취미)/ 더불어 동고동락을 평생 하였으니
今日更何爲(금일경하위)/ 어찌 하리까 오늘은
短小能精悍(단소능정한)/키가 작은 것은 능히 날쌔고 용감하고
仍兼術業優(잉겸술업우)/겸하여 뛰어난 음양 업을 가졌구나.
居鄕惟直道(거향유직도)/시골에서의 삶은 도로서 오직 곧아야 하고
行世愼交遊(행세신교유)/사람을 사귀는데 신중하게 행세하니
命薄天何遠(명박천하원)/하늘이 멀다고 어찌 기박한 운명일까
官卑人可尤(관비인가우)/벼슬이 낮다고 사람을 허물하는 것은
同心同病久(동심동병구)/오랫동안 동심 동병이려니
臨挽涕交流(임만체교류)/그대 죽음에 애도하려니 눈물이 교류하네.
만시의 글로 보아 추담은 매우 키가 작았던 것 같다.
만시 2수 모두 작은 키이지만 훌륭한 정치가임을 시사하였다.
추담은 예조참의(禮曹參議), 호조참의(戶曹參議), 승정원우승지(承政院右承旨), 좌승지(左承旨), 도승지(都承旨),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이조참의(吏曹參議)를 하다가 병으로 고향에 내려와 추담정사(秋潭精舍)를 짓고 자연을 즐기면 지냈다.
그 후 50세 때 1608년(선조 41년)에 예조참판(禮曹參判), 이조참판(吏曹參判), 병조참판(兵曹參判),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제수되었다.
남간공이 1632(인조10)에 수도 서울의 수성금화사 별제와 별좌로 승진한 2년의 벼슬을 하는 동안에 추담과의 인맥이 연결된 듯하다.
추담이 1637년에 돌아가시고 남간은 1638년 5월에 돌아가셨으니, 추담을 위한 輓詩 2수가 남간공의 마지막 시 작품인 것 같아 마음이 아련하다. 남간의 25년 선배인 추담에게 보낸 만시가 훗날 추담집에 편집되어 오늘날 다시 후손에게 전해 오니 후손으로서 기쁘기 한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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