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월부터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기준 하위 70%에 매월 10만~20만원의 기초연금이 지급된다. 지난 9월25일 정부의 기초연금 최종 도입안에 따르면 기초연금 대상자는 자산 조사를 통해 파악된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하위 70%로 결정됐다. 정부안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소득상위 30%를 제외한 노인의 90%인 약 353만명이 20만원을 받게 된다. - 9월26일 한국경제신문
기초연금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 정책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장관직에서 자진 사퇴해 버리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일어났다. 기초연금제가 무엇이길래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기초연금제도는 일정 나이(만 65세) 이상의 노령층에게 최소한 기초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연금(기초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기초연금제 도입이 현실화됐다. 현재도 소득이 하위 70%인 노인층에는 매달 최고 9만6800원(부부는 15만4900원)의 기초노령연금이 지급되고 있는데 정치권이 이 연금보다 더 많이 주고 수혜자도 늘어난 기초연금제를 들고 나온 건 한 표라도 더 얻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었다. 기초노령연금은 기초연금제가 실시되면 폐지된다.
# 기초연금제의 쟁점
기초연금제를 어떻게 실시할 것인가를 놓고선 정부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2월), 국민행복연금위원회(7월)의 논의를 거치면서 축소됐다. 결국 상위 30%는 대상에서 제외됐고, 금액도 10만~20만원으로 줄었다.
기초연금제의 쟁점 사항은 크게 △소득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65세 이상 전 노인층에 월 20만원씩을 줄 것인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노인층에 대해선 어느 정도의 기초연금을 줄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여당이 내걸은 기초연금제 공약은 소득이나 국민연금 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주기로 돼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공약을 수정, 연금 수여 대상을 소득 하위 70% 이하로 줄인 안을 내놨다. 소득 상위 30%(현재 207만명)는 경제적 여력이 있으니 기초연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소득을 판단하는 기준에는 일해서 얻는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이나 금융자산도 포함된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정해진 기준에 따라 소득으로 계산해 소득인정액에 포함시킨다. 하위 70%를 나누는 소득인정액은 노인 단독가구 월 83만원, 노인 부부가구는 월 132만8000원 이하다.
정부안은 또 나머지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도 줄였다.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연계해 최저 10만원에서 최대 20만원까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덜 받도록 했다. 소득 하위 63%까지는 20만원, 64~70%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연금액을 줄여 10만~19만원을 지급한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년 늘 때마다 기초연금이 약 1만원씩 줄어 20년 이상 가입자는 10만원이 된다. 성실하게 노후를 준비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다.
이렇게 되면 소득 하위 70%인 노인의 90%(353만명)가 공약대로 내년 7월부터 월 20만원을, 나머지 38만명은 월 10만~2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는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 여야 시각차 뚜렷
이에 대해 민주당은 ‘대국민 사기’라는 극단적인 용어까지 써가며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난하고 있다. 심지어 거짓 공약(空約)을 내걸고 선거에서 표를 도둑질했다는 표현도 나온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말이 차등 지급안이지 국민차별이며 국민분열정책 선언”이라면서 “지난 대선부터 국민을 속이기로 마음먹고 대국민 사기극을 기획했던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 수석부대표는 “이번 안은 현재 노인 세대의 빈곤을 완화하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면서 지속가능하도록 조정된 것”이라며 “이를 공약파기라고 하는 건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문제의 핵심은 역시 돈이다. 정부가 기초연금제를 축소한 건 말할 필요도 없이 재정 여력이 부족해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만약 공약대로 전 노인층에 월 20만원씩을 지급하게 되면 얼마 못가 나라살림이 거덜날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다.
기초연금에 필요한 돈은 전액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으로 조달된다. 소요 재정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만 해도 약 39조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노령화 추세에 따라 노령인구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박근혜 정부가 끝나는 2018년 이후에는 기초연금에 필요한 자금은 훨씬 많아진다.
정부가 복지에 써야 할 돈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암 등 4대 중증질환 지원, 고교 무상교육 등 공약으로 내세운 복지사업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0~5세 영유아의 무상보육 사업도 시행된 지 1년이 좀 넘었지만 벌써부터 돈이 없어 중단하느니 계속하느니 야단인 판국에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 복지사업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공약을 다 실행하고서 나라살림이 온전하길 바란다면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도 매년 수조원씩 부족한 자금을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줘야 하고, 건강보험 적자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누적 빚은 올해 480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36.2%다. 정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건전하다고 외치지만 앞으론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게 뻔한 이치다. 더군다나 지금도 정부가 책임져야 할 공기업(공공부문) 부채(520조원)까지 따지면 나랏빚이 벌써 GDP의 100%에 육박하는 1000조원을 넘는다. 정부가 갚아야 하는 한 해 이자만도 20조원이다. 올해도 세수가 모자라 나라살림이 23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이는데 내년에도 적자예산을 짜놓은 상태다. 빚내서 복지에 쓰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민주당이 정부와 여당에 ‘공약 사기’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복지 확대엔 찬성해도 세금을 더 내는 데는 강력 반발한다. 정부가 지난 8월 세금 감면 철회 등을 통해 중산층의 세금을 내년에 월 1만원 정도 더 걷겠다는 세제개편안을 내놨을 때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면서 결국 정부가 백기를 들었었다.
정부가 내놓은 기초연금제 안은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어떤 형태로든 국회에서 수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 스웨덴의 교훈
스웨덴은 1946년 보편적인 기초연금을 도입했다. 3년 이상 스웨덴에 거주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경제 불황과 인구 고령화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재정이 연금지급액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된 것이다. 스웨덴은 이후 10년여간의 논쟁을 거쳐 1998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보편적 기초연금을 폐지하고 대신 연금을 적게 받거나 못 받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최저보장연금을 도입했다. 모든 노인에게 100% 지급하는 보편적 연금에서 45% 정도(2010년 기준)에게만 주는 선별적 연금으로 돌아섰다.
기초연금제 파문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세금과 공약의 실천 가능성이 국민들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선진국에선 세율을 올릴 것인가 또는 내릴 것인가, 선거 때 내걸은 공약은 과연 실천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쟁점으로 작용한다. 이제 우리도 정치가의 사탕발림이 아니라 선거 공약과 그 실천가능성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복지는 모래위에 쌓은 성일 뿐이다. 기초연금제 논란은 소득이 많든 적든 모든 사람에게 복지 혜택을 주겠다는 ‘보편적 복지’ 정책이 부른 후유증이기도 하다. 현 세대를 위해 빚을 내 복지를 확대하는 건 미래 세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내년부터 국내총생산(GDP) 계산 방식이 바뀐다. 그동안 GDP로 잡히지 않았던 연구개발(R&D)과 무기류, 문화 콘텐츠에 대한 지출 등이 추가로 GDP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명목 GDP가 4% 정도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 한국의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돌파하는 시점이 당초 2017년에서 2016년으로 앞당겨질 전망이다. - 2013년 9월2일 한국경제신문
☞ GDP는 일정 기간(대체로 분기나 1년) 동안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모든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다. 한 나라의 경제 규모와 국민들의 삶의 질은 GDP와 1인당 GDP를 이용해 간단하게 비교해볼 수 있다. 1인당 GDP는 GDP를 인구 수로 나눈 것이다. 하지만 GDP는 그 유효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행복이나 삶의 질은 GDP만으론 측정할 수 없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미국 케네디 가문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1968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유세장에서 밝힌 연설은 유명하다.
“GDP는 우리 자녀들의 건강, 교육의 질 혹은 그들의 놀이에서 얻는 즐거움 등을 반영하지 않는다. 시의 아름다움이나 결혼생활의 건강함, 국정에 관한 논쟁에서 나타나는 예지, 공무원들의 정직성 등도 포함하지 않는다. 요컨대 GDP에는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고 우리가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이 포함돼 있다.”
케네디 의원의 얘기는 대체로 옳지만 정치가들의 말에는 늘 함정이 숨겨져 있다. 자칫 GDP라는 게 삶의 질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거나, 더 나아가 성장이라는 게 국민들을 스트레스 받게 하고 행복을 오히려 저해한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성장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필요조건은 된다. 잘 살면 행복할 수 있지만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행복해지긴 힘들다. 행복이 아무리 주관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한국은행이 GDP를 계산하는 방식(추계방식)을 바꾸려는 것은 GDP 산출방식의 문제점을 보완해 GDP가 국민 삶의 질을 더 잘 반영하게 하기 위해서다. 추계방식의 변경은 유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추계방식 개편안의 핵심은 그동안 GDP를 계산하는 데 빠져있던 R&D(지식재산권)와 문화 콘텐츠 지출, 무기 시스템 구매가 새로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R&D에 대한 지출은 1년 이상 기간 동안 생산과정에 반복적 지속적으로 사용된다는 측면에서 기계류 등과 같은 고정자산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그동안엔 중간소비로 처리돼 GDP에선 빠져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R&D 지출과 군함 잠수함 전투기 탱크 등 무기시스템이나 오락·문학작품 및 연극·뮤지컬·라디오 프로그램 등 예술품 원본에 대한 지출도 투자로 분류돼 GDP에 포함된다.
GDP를 계산하는 기준(국민계정의 국제기준)은 유엔 산하 국민계정사무국(ISWGNA)이 정한다. 국민소득 통계의 작성 지침서인 SNA(System of National Account·국민계정체계)가 바로 그것이다. 유엔은 1953년 처음 국민소득통계 지침을 만들었고 이후 1968년, 1993년, 2008년 세 차례 지침을 개정했다. SNA는 각국이 GDP를 계산하는 데 있어서 통일된 기준 역할을 한다.
만약 세계 공통으로 적용되는 GDP 산정기준이 없다면 각국의 경제 상황을 비교해보기 힘들 것이다. 유엔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글로벌화에 따른 경제환경 변화를 반영해 2008년 SNA를 개정, 각국이 GDP를 계산하는 데 이 기준에 따르도록 권고하고 있다. ‘2008 SNA’는 R&D 투자와 문화 콘텐츠, 무기류 구매 등을 GDP 산정에 포함토록 하고 있다. 현재 유엔에서 이 기준을 도입한 국가는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이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처음으로 적용한다.
한은은 새로운 추계방식을 적용한 GDP를 내년 3월부터 발표할 계획이다. 1975년 이후 모든 해의 GDP 규모와 성장률 지표가 전면적으로 수정된다. 이에 따라 GDP와 연계된 재정적자와 가계부채 비율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달라진다. 한은은 이번 개편으로 우리나라의 명목 GDP(물가상승을 감안하지 않은 GDP)가 4%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레바논 정도의 경제 규모가 더해지는 것이다. 2010년 기준 R&D 투자 규모는 452억4000만달러, 전투기와 전함 등 무기류 구매는 57억달러로 추산된다. 이게 모두 GDP에 잡힌다.
한은 측은 “우리나라는 R&D와 군사 무기시스템에 대한 지출 규모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커 성장률도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 시기도 앞당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성장률이 높아지더라도 통계방식 변화에 따른 것이어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에는 영향이 없다.
집값 오르면 수익 나눠갖는 모기지 등장
공유형 모기지
정부는 무주택자가 처음으로 집을 살 때 연 1%대의 싼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무주택자 생애 최초 모기지(주택 담보대출)’ 상품을 내놓는다. 현오석 부총리는 28일 세입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8·28 전·월세 대책’을 발표했다. - 2013년 8월28일 연합뉴스
☞ 정부가 뛰는 전셋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안을 최근 내놨다. 핵심은 전세 대신 집을 살 수 있는 주택 수요를 늘려 전세와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전세와 집값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은 상황에서 주택 수요를 늘리면 전세 수요는 줄어들고 침체된 주택 수요는 늘어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주택 수요를 늘리는 방안은 △집을 살 때 내야 하는 세금(취득세)의 인하와 △모기지의 확대가 골자다.
취득세율은 △6억원 이하는 현행 매수가격의 2%에서 1%로 1%포인트 낮추고 △6억원 초과~9억원 이하 주택은 2% △9억원 초과 주택은 4%에서 3%로 낮출 계획이다.
특히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에게는 ‘1%대 저금리 모기지’를 빌려준다. 10월께 대출 상품이 선보인다. 이 모기지는 △저금리 대출로 집을 사고, 나중에 집값이 뛰면 차익을 정부(기금)와 나누는 ‘수익공유형’과 △집값이 오를 때뿐만 아니라 내려도 공유하는 ‘손익공유형’ 등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수익공유형 모기지는 국민주택기금에서 집값의 최대 70%까지(최대 2억원) 연 1.5%의 금리로 최장 20년간 대출해 주는 상품이다.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지만 주택을 팔거나 만기가 됐을 때 매각차익(평가차익)이 발생하면 이를 대출액 비율만큼 주택기금과 공유해야 한다.
손익공유형 모기지는 주택기금이 집값의 최대 40%까지(최대 2억원) 연 1~2%의 금리로 최장 20년간 대출해 주는 상품이다. 주택 구입자와 기금이 매각차익뿐만 아니라 손실까지도 나누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주택 매입가격이 2억원이고 손익공유형 모기지로 8000만원을 빌렸다고 가정할 때 기금의 지분율은 40%다. 나중에 이 집의 가격이 떨어져 1억5000만원에 팔았다고 치면 5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인데, 이때 기금 책임 손실분은 40%인 2000만원이다. 따라서 주택 구입자는 기금으로부터 빌린 8000만원 가운데 2000만원을 뺀 6000만원만 상환하면 된다. 영국은 1990년대 후반 집값 급등에 따른 주거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비슷한 제도를 시행해 큰 효과를 본 적이 있다.
산업은행과 산은금융지주, 정책금융공사가 하나로 합쳐진 ‘통합 산업은행(산은)’이 내년 7월 출범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0월 산은에서 독립한 정책금융공사는 5년 만에 다시 산은에 통합될 처지가 됐다.
금융위원회는 2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올 정기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내년 7월1일 통합 산은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8월28일 한국경제신문
# 산업자금 조달 통로 역할
대학에서 경제학원론 교재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맨큐의 경제학’은 경제학의 10대 원리로 시작한다. 이 10대 원리 가운데 6번째가 ‘일반적으로 시장이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좋은 수단이다(Markets are usually a good way to organize economic activity)이고 이어 바로 그 다음이 ‘경우에 따라 정부가 시장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Government can sometimes improve market outcomes)’는 것이다. 시장이 실패하면 ‘경우에 따라선’ 정부의 개입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이 항상, 그리고 장기간 성과를 내는 건 결코 아니다.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오히려 민간의 창의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정부의 이번 산업은행 조직 재통폐합 결정도 정부의 시장개입이 얼마나 많은 낭비를 낳고 비효율적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산업은행은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라 1954년 설립된 특수법인이다.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순수 정부 은행이기도 하다.
정부가 한국전쟁 후 산업은행을 세운 것은 정부의 신용을 바탕으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으며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얻을 만한 곳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정부가 산업 자금 조달을 전문으로 하는 은행을 만들고, 이 은행을 통해 주요 산업자금을 조달하고 관리하게 된 것이다.
산업은행은 정부의 경제 개발 정책에 맞춰 주로 사회간접자본(SOC)의 형성과 중화학공업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장기성 자본을 융통해 주는 데 주력했다. 필요한 자금은 산업금융채권이라는 공채를 발행하거나 외국에서 빌려 조달했다.
이렇게 산업자본 조달에 큰 역할을 했던 산업은행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금융산업이 발달하면서 그 역할이 점차 축소됐다. 그래서 2008년 주인을 민간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하면서 그 사전작업으로 2009년 산은금융지주회사(산은지주)와 한국정책금융공사로 분할됐고 산업은행은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정책금융 업무는 정책금융공사로 이관됐다. 대신 산업은행은 일반 시중은행처럼 기업금융과 투자금융, 국제금융, 기업 구조조정 및 컨설팅, 수신 및 개인금융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 돌고 돌아 다시 합친 산은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은 이렇게 분리한 산업은행과 산은지주, 정책금융공사를 다시 하나로 합쳐 5년 만에 다시 예전대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통합 산은’은 산업은행이 지금까지 해온 역할에 정책금융공사로부터 벤처투자 등의 업무를 넘겨받아 국내의 정책금융을 총괄하게 된다. 국내 기업들의 개도국 수출지원과 중장기·대규모 해외건설 및 플랜트 지원 등 대외 정책금융은 현행대로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맡게 된다. 수출입은행은 정책금융공사가 해온 해외 업무(대출 및 투자 약 2조원)도 넘겨받는다. 또 산은 민영화는 중단되는 대신 자회사인 KDB캐피탈, KDB자산운용, KDB생명은 매각된다. 산은 자회사인 대우증권은 매각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의 이번 통합 산은 설립 방침은 세계적인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하겠다며 야심차게 추진됐던 산업은행 민영화가 실패였음을 자인한 것이다. 재통합의 이유는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기관이 분산되고 기능이 중복돼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구상했던 핵심 금융정책 중 하나였다. 산업은행을 민영화해 글로벌 IB로 키우고, 산업은행을 기업공개해 얻게 되는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중소기업 지원에 써 일석이조를 노리겠다는 정책이었다. 당시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주도했다. 이 전 부위원장은 2008년 6월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을 발표하며 “산업은행이 정책금융 기능을 주로 맡았지만 여건만 마련된다면 국제적인 투자은행으로 도약할 자질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민영화를 하려다 보니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살릴 필요가 있었다. 이게 정책금융공사를 따로 설립한 이유다. 2009년 4월 진통 끝에 산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정책금융공사법이 공포됐다. 그해 10월 공사가 설립됐다.
산업은행을 두 개의 조직으로 분리했지만 상황은 당초 생각과 다르게 돌아갔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계기로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산업은행 기업공개 일정이 자꾸만 미뤄졌다. 정책금융공사는 공사대로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산업은행 민영화가 늦어지면서 정책금융을 산업은행도 하고 정책금융공사도 하는 어정쩡한 ‘쌍둥이 체제’가 됐다. 이렇게 돌고 돌아 5년 만에 ‘도로 산은’이 된 것이다. 산은과 정책금융공사가 실제로 통합되려면 국회에서 관련법이 처리돼야 한다. 금융위는 산은법 전부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회 통과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 2500억 세금낭비 책임 누가?
남겨진 건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청구서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그동안 전산망 구축, 지점 설치 등에 쓴 돈은 최소 2500억원이다. 두 기관이 4년간 독자 생존을 모색하면서 늘어난 직원 수도 790여명에 이른다. 쪼갰다 붙였다를 반복하며 생긴 비효율과 갈등에 따른 비용은 셈하기도 어렵다. 5년 동안 이렇게 많은 세금을 허비하고도 책임을 지는 이들은 없다.
국내 제조업에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뼈아픈 구조조정을 거친 후 세계적인 기업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한국 금융산업은 IMF 위기 와중에 168조원이 넘는 혈세까지 지원받았는데도 세계적인 은행 하나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은행들을 손에 쥐고 경영을 쥐락펴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처럼 아무 원칙도 기준도 없이 은행을 뗐다 붙였다 하고 있으니 금융산업이 삼류(三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넘었으나 아직도 많은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공석이거나 이명박 정부 사람들이 그대로 지키고 있다. 이 중에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그대로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바뀔 것으로 예상되던 기관장들인데 재신임 등 특별한 조치 없이 어정쩡한 상태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력대란 우려로 국민들의 걱정을 한몸에 받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균섭 전 사장이 지난 6월 사임한 이후 사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올여름을 보내고 있다. 3개월째 사장이 공석인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서부발전, 남동발전 등도 사장 인선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또 대한석탄공사 등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 해임 건의나 경고를 받은 공기업 수장들도 대부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사장도 빈자리인 채로 남아있다. 박근혜 대통령계 측근 정치인이 내정됐다는 설이 나오면서 인선이 중단된 한국거래소도 2개월 가까이 공석이다. 신용보증기금, 코스콤 등 금융 공기업들도 경영공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많은 공기업들이 지난해 대선전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공기업 임직원이라도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우리 회사와 내 자리가 어찌될지 정치권과 정부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이러고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할 것인가.
경기 회복세를 보이는 선진국과 달리 일부 신흥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인도는 금융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시화로 신흥시장에 자금경색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8월20일 연합뉴스
☞ 한때 중국을 넘보며 세계 2위 경제대국을 꿈꾸던 인도에 위기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1991년 이후 22년 만에 다시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 17일 토요일인데도 불구, 만모한 싱 총리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1991년과 같은 위기는 다시는 없을 것”이라며 시장에서 나도는 외환위기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싱 총리의 말은 시장에서 철저히 무시됐다. 19일 외환시장에서 인도 루피화 가치는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미국 달러에 견줘 루피화 환율은 처음으로 63루피 선을 돌파했다. 글로벌 금융사인 UBS는 루피화 환율이 70루피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루피화 가치는 5월 이래 15% 이상 떨어졌으며 지난 2년 새 40%나 하락했다. 루피화 약세는 수입물가를 부추겨 물가 상승률을 5%로 끌어올렸다.
뭄바이 증시도 약세를 이어갔다. 외국인 자본의 엑소더스가 나타나면서 지난달 10%가량 하락한 센섹스 지수는 지난 16일 4% 떨어진 데 이어 19일에도 1.6% 내림세를 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리는 뜀박질이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8%를 웃돌고 있다.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정부가 빚을 낼 수 있는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그리스나 포르투갈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직전 수준과 비슷하다. 통화 가치와 함께 주식과 채권 가격도 동반 폭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심화되고 있다. 영국 신문 가디언 등은 인도의 금융위기가 ‘초읽기’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인도 경제가 왜 이처럼 추락한 것일까? 우선 미국의 출구전략 우려를 꼽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정책 종료 우려가 취약한 인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Fed 총재인 벤 버냉키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통화를 무제한적으로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펼쳐왔다. 그런데 이제 미국 경제가 완만하게나마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런 정책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을 준비 중이다. 양적완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다간 물가급등이라는 독화살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Fed가 출구전략을 쓰면 미국 금리가 오르고 글로벌 자금의 흐름이 바뀐다. 고금리를 찾아 미국 밖으로 나갔던 달러 자금이 미국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달러 자금이 빠져나가는 국가의 주식과 채권 값, 통화가치는 폭락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이런 우려가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1994년 멕시코의 외환위기는 당시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의 기습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국이 글로벌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미국이 출구전략을 쓴다고 해서 모든 나라가 위기에 빠지진 않는다. 인도에 위기감이 감도는 보다 근본적 이유는 인도 내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투명성이 결여된 정부 정책과 억압적인 관료주의 △만연한 부패 △아웃소싱 성장의 한계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인도 정부는 재정 적자 타개를 위해 외국 기업에 대한 세금 부담을 늘렸다. 지난해에는 주식·채권 투자자 등 ‘가진 자’들의 주머니를 열겠다며 무려 50년 전인 1962년까지 세금을 소급해 거두겠다고 발표했다가 망신을 사기도 했다. 이런 불투명한 정책으로 많은 외국 기업들은 인내심을 잃으면서 인도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싱 총리는 1991년 위기 해결을 주도하면서 해외자본 유치에 앞장섰다. 그 결과 인도는 글로벌 기업들의 아웃소싱 거점이 됐다. 소프트웨어·애니메이션업체와 금융회사 콜센터 등이 인도로 몰리면서 중산층이 빠르게 늘어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자국 기업들의 핵심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 채 아웃소싱에만 의존하던 성장전략은 선진국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줄이자 한계에 봉착했다. 경상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성장률은 곤두박질쳤다. 올해 1분기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은 4.8%로 사상 최대다. 경상수지 적자는 외채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 3월 말 현재 인도 외채는 3900억달러에 이른다. 지난 8년간 연평균 8~9%였던 성장률도 올해 5%를 넘기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인도 정부가 가진 비상용 외환(외환보유액)은 현재 2780억달러다. 1991년 1월 위기 당시(12억달러)보다 엄청나게 많다. 싱 총리는 또 IMF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라구람 라잔을 인도중앙은행(RBI) 수장에 임명했다. ‘인도병’ 치유에 사활을 걸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고 위기의 현실화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 미국, 일본 모두 중앙은행이 경기회복을 위해 막대한 돈을 풀었지만 돈이 잘 돌지 않고 있다. 한국의 본원통화는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지만 통화승수는 2000년대 들어 최저 수준이다. 미국과 일본도 통화승수가 최저로 떨어졌다. - 8월21일 한국경제신문
☞ 시중에 돌아다니는 화폐의 양(통화량)은 나라경제(거시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체로 화폐 유통량이 많으면(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풀면) 산출량(GDP)이 증가하고 고용(일자리)이 늘어난다. 물가는 오름세를 보인다. 반대로 화폐 유통량이 적으면(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돈을 회수하면) 물가는 안정세를 보이는 반면 산출량(GDP)은 줄어들고 고용(일자리)도 축소된다. 하지만 돈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은행이나 가정의 금고에만 잠겨 있거나, 돈이 유통되는 속도가 떨어지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반감된다. 이런 돈의 유통 속도를 보여주는 게 바로 통화승수다.
통화승수(money multiplier)란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통화인 본원통화가 1단위 증가했을 때 통화량이 몇 단위 증가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통화량을 본원통화로 나눠 산출한다. 예를 들어 통화승수가 5배라면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1억원 공급하면 시중의 통화량은 5억원이 된다는 뜻이다. 예금은행들이 중앙은행이 공급한 본원통화를 활용해 신용창조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통화승수는 현금통화와 예금통화의 비율인 현금통화비율과, 고객의 반환요구에 대비해 예금 중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는 지급준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통화승수는 단기적으로 안정적이지만 경제가 비상시일 때는 출렁거리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통화승수는 평상시 수준을 크게 밑돌았다. 시중에 돈이 잘 돌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세계 각국의 ‘통화 폭탄’에도 불구, 경기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은 반면 물가는 안정세를 유지한 이유다. 실제로 한국의 통화승수는 6월 말 현재 18.7배로 2000년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통화승수는 2000년대 초 20~27배 사이에서 오르내리다가 2006년 10월 29.3배로 정점을 찍은 뒤 작년 3월(18.7배) 처음으로 20배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과 일본도 통화승수가 하락세다. 미국 통화승수는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08년 8월 9.2배에서 2011년 3월(3.8배) 4배 아래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 4월 3.5배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통화승수는 2010년 초 11배 수준이었으나 지난 4월 7.5배, 5월 7.3배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통화승수가 낮아진 것은 경제 주체들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보고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이 돈을 움켜쥐고 있는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있는 징후로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