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등 13개 대기업 집단이 채권은행이 관리하는 ‘주채무계열’에 내년부터 포함될 전망이다. 또 3곳 정도가 ‘관리대상계열’로 새로 지정돼 채권은행의 밀착 감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5일 주채무계열 범위를 확대하고 관리대상계열을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기업 부실 사전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 11월 6일 한국경제신문
# 주채무계열 제도란?
대형 금융사의 파산은 금융 시스템뿐만 아니라 국민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5위의 투자은행(IB)이었던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세계경제에 끼친 영향을 보면 대형 금융사의 부실이 얼마나 전염성이 높고 위력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대기업의 파산이나 부도도 나라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막대하다. 특히 한국처럼 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국가의 경우는 더 그렇다. 그래서 적지 않은 나라는 대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빌려준 금융회사를 통해 대기업들이 건전하게 경영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규제하고 감독한다.
‘주채무계열’ 제도는 바로 대기업의 경영 건전성을 규율해 기업 부실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다. 은행 여신(대출)이 많거나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들을 골라 재무구조 등이 건전한지 상시 감독하고 필요할 경우 채권단을 통해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제도다.
주채무계열 제도는 2002년 도입됐다. 외환위기로 대우 기아 고합 등 대기업 그룹이 줄줄이 부실화돼 경제에 큰 충격을 주자 이들에 대한 선제적 부실 관리를 위해 도입한 제도다. 정부가 10여년 만에 이 제도를 크게 손질하기로 한 이유는 부실 우려가 있는 기업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동양 그룹처럼 틈새로 빠져나가는 기업이 늘어나 제도의 실효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판단에서다.
주채무계열 대상이 되는 기업은 현재 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돈이 우리나라 전체 신용공여액의 0.1%(현재 약 1조6000억원) 이상인 기업집단(그룹)이다. 가령 A그룹의 작년말 현재 금융사 신용공여액이 2011년말 현재 금융사 전체 신용공여액의 0.1% 이상이면 주채무계열 대상 기업집단으로 선정된다. 현대자동차, 삼성, SK, LG, 현대중공업, 한화, LS, 대우조선해양, 효성, CJ, 동부, 신세계, STX, 금호아시아나 등 웬만한 그룹은 거의 다 들어가 있다.
2002년 이전에도 주채무계열 제도가 있었는데 당시엔 금융사로부터 빌린 돈이 많은 상위 60개사가 대상이었다. 주채무계열 기업집단은 2002년 35개에서 2004년 25개까지로 줄어들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엔 45개로 늘었다. 현재는 30개사가 지정돼 있다.
주채무계열 그룹으로 지정되면 채권 은행이 대출상황을 포함한 기업 경영정보를 종합 관리하게 되며 상시적으로 재무구조도 평가하게 된다. 또 부실화가 우려되면 채권은행협의회를 구성해 대책도 수립한다. 만약 주채무계열 그룹의 재무구조가 나빠지면 약정체결계열 대상으로 분류,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해 경영개선 계획 등을 면밀히 관리하게 된다. 이와 함께 분기별·반기별로 재무구조개선약정에 명기된 기업의 자구 계획 이행 상황도 점검한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은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라 주채무계열로 정해진 그룹에 대해 매년 초 주채권 은행이 재무구조를 평가, 상태가 나쁜 곳과 약정을 맺고 부채비율 하향, 자산매각을 통한 현금 마련 등 재무상태를 개선하도록 독려하는 제도다.
# 제2 동양 사태 방지가 목표
금융위원회가 이번에 내놓은 ‘기업 부실 사전방지를 위한 관련제도 개선방안’은 이 같은 주채무계열 제도를 더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제2의 동양 그룹 사태를 막는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동양 그룹이 부실화돼 큰 사회적 파장을 야기하고 있으나 주채무계열 제도상의 약점으로 사전에 이를 방지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깔려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주채무계열 편입 대상을 확대하고 △재무구조 평가방식을 개선하며 △관리대상계열 제도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먼저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은 현행 ‘금융권 총신용공여액×0.1%’에서 ‘금융권 총신용공여액×0.075%’로 낮아진다. 이렇게 되면 주채무계열 대상으로 지정되는 그룹들이 늘어나게 된다. 금융위는 대상 그룹이 가장 많았던 2009년 45개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주채무계열로 선정되면 재무구조를 평가받아야 한다. 경기가 별로 좋지 않아 대기업의 수익성 및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추가 부실 우려가 커진 데 따른 대책이다.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2010년 483%에서 2012년 382%로 뚝 떨어졌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지급이자로 나눠 계산하는데 기업이 벌어들인 돈 가운데 어느 정도가 이자로 나가는가를 측정한다. 차입금을 총자산으로 나눈 차입금 의존도는 2010년 19.6%에서 2012년 25.2%로 뛰었다.
또 주채무계열 그룹 가운데 경영이 부실해 약정체결대상 그룹으로 선정되는 재무구조평가 기준이 깐깐해진다. 약정체결대상 선정은 현재 △재무평가방식과 △비재무평가방식이 있다. 이 가운데 재무평가방식은 부채비율, 매출액 영업이익률, 이자보상배율 등이 기준이다. 부채비율의 경우 현재는 200% 미만에서 400% 이상까지 5단계로 나눠 평가하는데 이를 8단계로 세분화해 좀 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도록 개선된다.
현재 3개년 단순 평균비율을 적용하고 있는 매출액 영업이익률과 이자보상배율 역시 최근 사업연도의 실적에 더 가중치를 두는 방식으로 개편된다. 재무구조가 취약해질 우려가 있는 대기업들을 조기에 뽑아내기 위한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재는 사실상 반영되고 있지 않은 비재무평가방식도 앞으론 적극 활용된다. 지배구조위험, 영업추이 및 전망, 해외·금융 계열사 상황, 우발채무 위험, 재무적 융통성 등 7개 항목을 평가, 지수화해 약정체결대상 그룹을 고른다.
주채무계열 그룹 중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곳도 ‘관리대상계열’로 지정돼 따로 관리받게 되는 제도도 신설된다. 채권 은행들은 관리대상 기업과 정보제공 약정을 맺어 기업 경영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가이드라인도 체결해 경영 정상화에 노력하게 된다.
# 재계는 경영 자율성 후퇴 우려
금융위는 이달 중 은행권 의견을 수렴해 내년 2월까지 규정 개정을 마무리하고, 내년 주채무계열 선정 때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금융권에서는 현대 그룹을 비롯해 한라 현대산업개발 대성 한국타이어 애경 한솔 SPP 하이트진로 등이 새로 주채무계열 대상 기업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관리대상계열은 재무구조개선 약정 대상에서 간신히 벗어난 3개 정도가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기업 경영에 대한 금융권의 과도한 간섭과 자금 조달 위축 가능성을 우려했다. 주채무계열 확대 등으로 사실상 국내 모든 대기업이 관리 대상에 들어간데다 감시 항목과 대상, 제재까지 강화됐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주채권은행과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경영 활동을 해왔는데 이제는 정부라는 시어머니가 회초리까지 들고 우리를 감시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통화스와프와 원화 국제화…외국 통화와 맞교환…국제 무대 나서는 원화
우리나라가 원화를 활용한 통화스와프를 잇따라 체결하고 있다. 그동안 외환위기에 대비해 미국·일본과 달러화를 매개로 비상자금을 주고받는 통화스와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원화를 활용한 통화스와프는 이례적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달 들어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말레이시아와 연쇄적으로 약 2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 10월22일 한국경제신문
# 통화스와프란?
통화스와프(Currency Swap·CRS)는 서로 다른 통화를 교환(swap)한다는 뜻이다. 원래는 금융시장에서 위험 회피(리스크 헤지)나 유리한 조건으로 외화를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래되는 파생상품의 하나지만 국가 간 통화의 맞교환을 의미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선물, 옵션 등과 함께 대표적인 파생상품으로 꼽히는 스와프 거래는 미래의 특정한 날짜나 기간을 정해 어떤 상품이나 금융자산을 상대방 상품(자산)과 일정 비율로 바꾸는 것이다. 대표적인 교환 상품(자산)에는 통화와 금리가 있다. 통화를 서로 맞바꾸면 통화스와프, 금리를 서로 맞바꾸면 금리스와프(Interest Rate Swap·IRS)다. 따라서 통화스와프는 스와프 계약 형식의 ‘통화 간 교환(currency exchange)’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거래 당사자끼리 계약기간 중 일정 통화를 다른 통화로 바꿔 사용한 뒤 만기에 원래의 통화로 다시 바꾸는 거래다. 금융시장에서 이런 거래가 필요한 이유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고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필요한 외화를 조달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 A는 독일에 현지 투자를 원한다. 또 독일 기업 B는 미 달러화가 필요하다. A사는 미국 금융시장에서 만기 10년짜리 100만달러 채권을 연 7.5%의 금리로, 해외시장(유로본드시장)에선 역시 만기 10년짜리 100만유로 채권을 6.5%에 발행 가능하다. 독일 기업 B는 유로 본드시장에서 만기 10년짜리 100만유로 채권을 연 6.0%에, 미국시장에서 100만달러를 8.0%에 발행할 수 있다.
이들 두 기업을 비교하면 A사는 미국시장에서 독일 B사보다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또 B사는 독일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유리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선 A사가 직접 유로본드 시장에서 유로화 채권을 발행하거나 B사가 미국시장에서 달러화 채권을 발행하기보다 A는 미국서 달러화 채권, B는 유로본드 시장서 유로화 채권을 각각 발행해 달러와 유로를 조달한 다음 서로 통화를 교환하면 유리하다. A는 연 0.5%포인트, B도 0.5%포인트 이자를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교환한 통화는 만기 때 다시 맞바꾸면 계약이 끝난다. 이처럼 통화스와프 계약을 활용하면 이자 비용을 줄이고, 유로나 달러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통화스와프 계약의 매력이다.
# 외환위기 방지가 목적
국가 간 통화스와프는 기업이나 개인 간 통화스와프와는 목적이 다르다. 기업의 통화스와프가 비용 절감이나 환율변동 리스크 헤지가 목적이라면 나라 사이의 통화스와프는 대부분 외환유동성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되돌아보자. 외환위기는 다른 나라에서 상품이나 원자재를 사오면서 지급할 돈이 없어서 생긴 것이다. 원유나 천연가스 등을 수출하는 외국 기업들은 원화를 받지 않는다. 국제 거래의 결제수단으로 활용되는 달러나 유로, 엔화 등만을 받고 원유 등을 내준다. 원화가 국제무역의 결제통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러나 유로 등 주요 외환이 없으면 나라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 이게 바로 1997년 외환위기다.
그런데 만약 나라 간에 통화스와프 계약이 체결돼 있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원화를 맡기고 그에 해당하는 규모의 상대방 나라 화폐를 빌려 국제 결제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 간 통화스와프 계약은 한도, 환율, 기간 등을 미리 정하고 맺어진다. 예를 들어 한·미 간에 계약을 체결할 경우 ‘1000억달러를 1달러=1100원의 조건으로 2014년 말까지’라는 식이다. 이런 계약이 맺어지면 한국은 2014년 말까진 언제라도 필요할 때 1달러=1100원의 조건으로 원화를 미국 중앙은행(Fed)에 맡기고 1000억달러 이내에서 달러화를 가져와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한국이 외환유동성 부족으로 달러화가 모자라게 되면 한국 정부는 Fed에 원화 자금을 맡기고 최대 1000억달러를 빌려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필요할 때 원화를 맡기고 달러화 자금을 미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려올 수 있어 외환위기를 당할 가능성이 한층 줄어든다.
하지만 Fed가 모든 나라와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는 건 아니다. Fed는 과거에 유럽 등 주요 선진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과 멕시코 등 일부 신흥국에도 이를 허용했다. 2008년 10월 한·미 간에 맺어진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 협정은 이미 종료됐다. 일본과는 통화스와프 규모가 한때 700억달러에 달했으나 지금은 미 달러화와 원·엔 통화스와프를 합쳐 100억달러 규모로 축소됐다.
최근 맺어진 한국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달러화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원화와 현지 통화를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은 나라와 달러화 대신 원화나 현지 통화를 사용해 결제한다는 뜻으로 역시 외환위기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국제 무대에서 원화 사용이 늘어나는 원화의 국제화에도 큰 발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있다.
# 원화 국제화에 나선 정부
이달 들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은 나라는 인도네시아, UAE, 말레이시아 등이다. 나라별 규모는 인도네시아 10조7000억원(115조루피아, 약 100억달러), UAE 5조8000억원(200억디르함, 54억달러), 말레이시아 5조원(150억링깃, 47억달러)에 달한다. 만기는 모두 3년이다.
이들 국가와의 통화스와프는 달러화 필요 없이 서로 자국 통화로 교환하는 LC(local currency) 통화스와프 방식이다. LC 통화스와프는 한국-인도네시아 간에는 원화-루피아화를 맞바꾸고, 한국-말레이시아 간에는 원화-링깃화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UAE와는 원화-디르함화와 맞바꾼다. 이들 나라는 모두 한국에 원유와 천연가스, 고무 등 원자재를 수출하는 나라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자국 통화 간 교환이어서 달러화 유동성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다. 예를 들어 UAE에서 원유를 들여오고 적어도 200억디르함(54억달러)까진 원화로 대금을 결제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두 나라 모두 달러화 의존도를 줄이고, 달러화로 결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외환위기 방지의 안전판을 추가하는 것이다.
은성수 기재부 국제금융관리관은 “이제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 데다 동남아 국가와는 무역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직접 자국 통화로 스와프 협정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국과도 560억달러 규모의 원·위안 통화스와프도 맺어두고 있으며 호주와도 통화스와프 계약을 추진 중이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한국이 이달에만 2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며 “아시아를 비롯해 세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다양한 통화스와프 계약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조금씩 퇴보해나가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세계 상거래와 금융거래 결제수단인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370조원대 투자일임업 시장을 놓고 은행과 증권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은행 측에선 국내 자산관리시장 발전을 위해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증권사들은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은 금융산업과 금융소비자의 관점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10월8일 한국경제신문
☞ 은행과 증권사 간에 투자일임업을 둘러싼 한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만 할 수 있는 투자일임업을 은행에도 허용할지가 이슈다. 은행들은 금융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까닭에 은행들도 투자일임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증권사 등은 이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투자일임업 허용이 은행과 증권사 간 첨예한 이슈로 떠오른 건 금융사의 수익이 최근 별로 좋지 않다는 게 배경이 되고 있다.
투자일임업은 금융회사가 고객으로부터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를 일괄 위임받아 투자자 개별 계좌별로 대신 자산을 운용해주는 금융업을 말한다. 자본시장법은 자본시장 관련 금융업을 △투자매매업 △투자중개업 △집합투자업 △신탁업 △투자일임업 △투자자문업 등 모두 6개로 구분하고 있다. 법에서 투자일임업은 ‘투자자로부터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 판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일임받아 투자자별로 구분하여 금융투자상품을 취득·처분, 그밖의 방법으로 운용하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투자를 일임하려면 고객은 금융사에 종합자산관리계좌인 ‘일임형 랩어카운트’를 개설해야 한다. 투자일임업자(금융사)는 대신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다.
투자일임업과 혼동하기 쉬운 금융업에 투자자문업과 랩어카운트가 있다. 투자자문업은 말 그대로 투자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금융사가 직접 고객 자산을 운용해주는 투자일임업과 다르다. 자본시장법에는 투자자문업을 ‘금융투자상품의 가치 또는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판단에 관한 자문에 응하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것’으로 돼 있다. 랩어카운트는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투자중개와 투자일임의 결합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증권계좌를 지칭하는 용어로 법령에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투자일임업을 할 수 있는 금융사는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회사와 종금업법상의 종금사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선물회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은행은 투자일임업은 할 수 없고 투자자문업만 허용돼 있다.
투자일임업 시장 규모는 지난 6월 말 현재 367조원이다. 2008년 164조4000억원에서 연평균 19.5%의 높은 성장세를 보여왔다. 금융사별로는 6월 말 현재 자산운용사가 288조7000억원, 투자자문사·증권사·선물사가 78조3000억원이다.
은행권의 투자일임업 진출 허용 논란은 금융위원회가 금융산업 비전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지난 7월과 9월 금융위원회와 은행권 PB(프라이빗 뱅킹) 담당 실무자들 간 비공식 간담회에서 은행권은 투자일임업 진출 허용을 강하게 요청했다.
은행권은 고객들에 투자자문만 해주고 실질적 투자는 증권사 등을 통하게 되면 진정한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가 어렵다며 투자일임업이 허용되면 고객의 거래 편의가 훨씬 높아질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저금리 지속으로 예금과 대출 이자 간 차이(예대마진)가 줄고 있어 새로운 수익원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증권사 등은 현재도 300여개사가 투자일임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은행권마저 뛰어든다면 과당경쟁이 우려되고 불완전 판매 등 투자자 보호도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 문제는 2007년과 2010년에도 불거졌는데 2010년 7월 은행법 시행령 개정 당시 증권사 등의 반발로 은행들에 투자자문업을 허용하되 투자일임업은 불허하는 쪽으로 결정됐다.
금융산업은 기본적으로 라이선스업이다. 정부의 허가 없이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금융산업이 국민생활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정부가 지방은행과 투자신탁회사 설립을 무더기로 허용했는데 이후 이들 금융사가 대거 부실화돼 나라경제에 큰 짐이 된 적이 있다. 금융사 신설을 허용하고 새로운 업무를 허가해주는 건 상당히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노동 생산성 차이…유럽 양대 강국 '경제 희비'
독일 vs 프랑스 경제 비교
프랑스의 경제 성장 부진으로 국내 취업을 포기하는 명문대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고 사학으로 알려진 그랑제콜(Grandes Ecoles) 재학생 중 졸업 후 첫 직장을 프랑스 내에서 구하는 것을 포기하는 학생이 증가하고 있다고 CNBC가 9일 보도했다. - 10월11일 연합뉴스
☞ 유로존 가운데 경기를 이끄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강력한 구조조정 덕에 미국발 금융위기와 남유럽 재정위기를 견뎌내고 유럽의 위기를 탈출하는 중심 국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독일 경제는 2008년 이후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0년 4%, 2011년 3.1%에 이어 지난해에 0.7% 성장했다. 실업률은 올 상반기 기준 5.4%다.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독일이 유로존의 버팀목이 돼온 건 제조업의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 2위 경제대국 프랑스의 사정은 다르다. 2010년과 2011년은 각각 1.7% 성장했지만 지난해는 제자리 걸음(제로 성장)을 했다. 올 2분기 0.5% 성장하면서 반등에 성공했지만 성장세는 강하지 않다. 실업률은 2분기 말 현재 10.9%로 15년 만의 최고치다. 독일의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청년 실업률은 무려 25%다.
재정이 흑자인 독일과 달리 프랑스의 나라살림은 적자 행진이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4.8%로 유로존 평균(3.7%)을 크게 웃돈다. 누적 국가부채도 GDP 대비 90.2%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5년 프랑스의 국가부채가 94%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왜 이처럼 프랑스 경제는 어려운 것일까? 전문가들은 △과도한 과세 및 기업 규제 △높은 단위노동비용(상품 한 단위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 △강성 노동조합 등으로 인한 반자본주의적 정서를 꼽는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고소득자와 기업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했다. 가계와 기업이 새로 내야 하는 세금은 600억유로 규모다.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프랑스의 조세부담률은 44.2%로 OECD 평균(34.0%)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경제위기 이후 위기국들의 단위노동비용은 하락 추세로 돌아선 반면 프랑스의 노동비용은 급속도로 상승했다. 그런데도 노동생산성은 개선되지 않았다. 독일의 단위당 노동비용은 2000년을 100으로 할 경우 2012년 106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프랑스는 138, 영국 137, 이탈리아 134, 스페인 125로 올랐다. 조장옥 서강대 교수는 “저성장의 늪에서 당황하고 있는 대한민국도 경제를 살리는 길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외엔 답이 없다”고 말했다.
CP(기업어음)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떠올랐다. 웅진, STX 등이 부족한 자금을 CP를 발행해 하루하루 메우며 사태를 키우다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동양그룹을 벼랑 끝으로 내몬 주범도 매일 수십억~수백억원의 상환 요청이 돌아오고 있는 CP다. - 9월28일 한국경제신문
☞ 기업이 사업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장사를 잘해 모아둔 자금이 있다면 이 돈을 사용하면 된다. 이런 내부자금이 없다면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을 수도 있고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다.
CP(기업어음, Commercial Paper)도 외부에서 자금을 빌리는 한 수단이다. CP는 기업들이 단기 자금 조달을 위해 자기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융통어음이다. 상거래에 따라 주고받는 어음이 아니라 순전히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된다. 우리나라에선 1981년 처음 선보였다. CP는 그 전까지 고정이율로 발행되던 기업어음과는 달리 기업이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 금리를 자율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신종 기업어음’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기업이 CP를 발행하면 은행이나 증권 등 금융회사가 이를 사들여 기관이나 개인투자자에게 되파는 식으로 유통된다. 과거엔 만기 91일(91일물) 또는 60~270일 CP 등 만기 1년 미만의 CP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09년 정부가 만기 1년 이상의 장기 CP 발행을 허용하면서 현재 장기 CP도 발행되고 있다.
CP의 신용도는 발행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신용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CP 금리는 낮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CP의 경우 발행 기업이 부도를 내면 투자자금을 떼일 수 있다.
CP는 자본시장법상으론 증권이지만 상법상으로는 약속어음이다. 이런 이중적 성격으로 인해 CP는 유가증권인 주식이나 채권과 달리 발행 시 이사회 결의가 필요 없고, 발행 한도나 발행자격 제한도 없다. 또 지난 5월 이전까지만 해도 기업들이 CP를 발행해도 이를 알릴 의무(공시의무)도 없었다. 투자자 보호장치가 미흡했던 것이다.
반면 기업들로선 팔리기만 한다면 별 제한 없이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증권을 발행하면 여러 곳에서 감시와 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CP를 발행하면 이런 간섭을 피할 수 있다. 이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CP가 대거 발행된 배경이다. CP 발행 잔액은 지난해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으며 올 들어선 150조원을 넘어섰다. 10년 전인 2003년 말(15조8000억원)의 9배, 2008년 말(89조6000억원)의 1.7배다.
물론 CP의 순기능도 적지 않다. 자금 유출입이 많은 신세계 등 유통회사들은 일시적으로 결제대금이 필요할 때 싼 금리로 발행해 유용하게 활용한다. 문제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부실 기업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으며, 감독당국도 이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이 적극적인 자구 노력 대신 CP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동양그룹은 CP 발행 등을 통해 연명해오다가 결국 계열사 5곳의 법정관리행을 선택했다. 동양그룹의 은행 대출은 6000억원대에 불과하지만 CP 발행액은 1조1000억원에 달한다. LIG그룹도 LIG건설의 부도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2010년 말부터 이듬해 3월 법정관리 신청 전까지 2151억원의 사기성 CP를 발행한 혐의로 최고경영자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CP는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다. 발행기업이 부도나면 투자금을 고스란히 떼일 가능성이 크다. 동양그룹에서 보듯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안전하다고 선전하며 시중금리의 두 배인 연 7% 이자로 유혹하면 넘어가는 개인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동양 계열사가 발행한 4560억원 규모의 CP를 산 개인 투자자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렇게 CP 시장이 커지고 문제가 많은 데도 금융감독당국은 뒷짐을 져왔다.
게다가 CP에서 파생한 신종 금융상품이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바로 그것이다. ABCP(Asset Backed Commercial Paper)는 자산유동화증권(ABS)과 기업어음(CP)을 결합한 파생증권이다. 건물 지을 땅과 매출채권, 리스 채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만기가 짧은 CP 형태의 어음이다. 2009년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CP 만기 제한(1년 미만)이 없어지면서 ABCP 발행잔액은 일반 CP를 압도하고 있다. 정원현 한국기업평가 실장은 “적극적인 감시와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초래한 파생상품으로 꼽힌다. 금융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데 금융감독은 뒤따라가지 못해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 ‘CP 사태’는 건전한 금융감독이 나라경제의 건전성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30개 美 간판기업의 주가를 평균해 산출한 지수
다우지수 개편
HP가 정보기술(IT) 대표 주자라는 지위를 잃을 위기에 몰렸다. AP통신 등은 HP와 세계 최대 알루미늄업체인 알코아,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3개 회사가 20일 다우지수에서 빠지고 비자, 골드만삭스, 나이키 등 3개 회사가 새로 포함된다고 10일 보도했다. - 9월11일 연합뉴스
☞ 다우지수는 나스닥, S&P500지수와 함께 뉴욕증권시장(NYSE)의 3대 지수다. 정식 이름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다. 미국 맥그로힐 자회사인 S&P 다우존스 인다이시즈(S&P Dow Jones Indices)가 뉴욕 증시에 상장된 우량기업 주식 30개 종목을 대상으로 해 산출한다. 1884년 월스트리트 저널 편집장인 찰스 다우(Charles H Dow)가 창안했으며 1896년 10월7일부터 매일 공표되고 있다. ‘DJIA’ 또는 ‘Dow’라고도 부른다. 다우지수 산출 대상이 되는 상장회사 종목 수(다우지수 편입종목 수)는 1896년 12개였으나 1916년 20개, 1928년 30개로 확대된 뒤 현재까지 30개가 이어지고 있다.
편입종목은 다우존스사가 산업, 기업 순위 변화 등에 따라 필요할 때마다 교체한다. 지난 9월 교체에는 HP와 알코아,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이 빠지고 비자, 골드만삭스, 나이키 등 3개 회사가 새로 포함됐다. 미국 경제에서 HP 등의 위상이 낮아진 반면 비자 등의 위상은 올라갔다는 뜻이다. 30개 편입종목에는 3M, 듀폰, 머크, 엑슨모빌, 마이크로소프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GE, 화이자, AT&T, P&G, 홈데포, 보잉, 인텔, 캐터필러, IBM,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셰브론, 존슨&존슨, 버라이존, 시스코시스템즈, JP모건 체이스, 코카콜라, 맥도날드, 월트 디즈니, 트래블러스 컴퍼니, 유나이티드 헬스그룹 등이 포함된다.이번 종목 변경은 뉴욕증시의 간판 종목들이 대거 교체됐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우지수를 대표했던 대형 기업을 3개씩이나 동시에 교체한 2004년 4월 이후 9년반 만이다.
한국의 코스피지수 등 대부분의 주가지수는 ‘시가총액 가중치’ 방식으로 산출된다. 상장된 전 종목의 시가총액(주가×발행주식수)을 구해 기준시점(코스피지수의 경우 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구해진다. 이에 비해 다우지수는 30개 대표 종목만을 대상으로 단순 주가 평균만으로 지수를 구한다. 그래서 다우지수는 세계 증시를 이끄는 간판 지수인데도 그동안 △표본종목의 수가 적어 시장 전체의 동향을 대변할 수 없으며 △주가를 기준으로 산출하기 때문에 지수의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증시는 경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다우지수 개편이 미국 경제가 제조업에서 서비스 및 소비재 산업으로 이동하는 것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내년 7월부터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기준 하위 70%에 매월 10만~20만원의 기초연금이 지급된다. 지난 9월25일 정부의 기초연금 최종 도입안에 따르면 기초연금 대상자는 자산 조사를 통해 파악된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하위 70%로 결정됐다. 정부안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소득상위 30%를 제외한 노인의 90%인 약 353만명이 20만원을 받게 된다. - 9월26일 한국경제신문
기초연금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 정책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장관직에서 자진 사퇴해 버리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일어났다. 기초연금제가 무엇이길래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기초연금제도는 일정 나이(만 65세) 이상의 노령층에게 최소한 기초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연금(기초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기초연금제 도입이 현실화됐다. 현재도 소득이 하위 70%인 노인층에는 매달 최고 9만6800원(부부는 15만4900원)의 기초노령연금이 지급되고 있는데 정치권이 이 연금보다 더 많이 주고 수혜자도 늘어난 기초연금제를 들고 나온 건 한 표라도 더 얻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었다. 기초노령연금은 기초연금제가 실시되면 폐지된다.
# 기초연금제의 쟁점
기초연금제를 어떻게 실시할 것인가를 놓고선 정부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2월), 국민행복연금위원회(7월)의 논의를 거치면서 축소됐다. 결국 상위 30%는 대상에서 제외됐고, 금액도 10만~20만원으로 줄었다.
기초연금제의 쟁점 사항은 크게 △소득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65세 이상 전 노인층에 월 20만원씩을 줄 것인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노인층에 대해선 어느 정도의 기초연금을 줄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여당이 내걸은 기초연금제 공약은 소득이나 국민연금 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주기로 돼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공약을 수정, 연금 수여 대상을 소득 하위 70% 이하로 줄인 안을 내놨다. 소득 상위 30%(현재 207만명)는 경제적 여력이 있으니 기초연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소득을 판단하는 기준에는 일해서 얻는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이나 금융자산도 포함된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정해진 기준에 따라 소득으로 계산해 소득인정액에 포함시킨다. 하위 70%를 나누는 소득인정액은 노인 단독가구 월 83만원, 노인 부부가구는 월 132만8000원 이하다.
정부안은 또 나머지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도 줄였다.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연계해 최저 10만원에서 최대 20만원까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덜 받도록 했다. 소득 하위 63%까지는 20만원, 64~70%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연금액을 줄여 10만~19만원을 지급한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년 늘 때마다 기초연금이 약 1만원씩 줄어 20년 이상 가입자는 10만원이 된다. 성실하게 노후를 준비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다.
이렇게 되면 소득 하위 70%인 노인의 90%(353만명)가 공약대로 내년 7월부터 월 20만원을, 나머지 38만명은 월 10만~2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는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 여야 시각차 뚜렷
이에 대해 민주당은 ‘대국민 사기’라는 극단적인 용어까지 써가며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난하고 있다. 심지어 거짓 공약(空約)을 내걸고 선거에서 표를 도둑질했다는 표현도 나온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말이 차등 지급안이지 국민차별이며 국민분열정책 선언”이라면서 “지난 대선부터 국민을 속이기로 마음먹고 대국민 사기극을 기획했던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 수석부대표는 “이번 안은 현재 노인 세대의 빈곤을 완화하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면서 지속가능하도록 조정된 것”이라며 “이를 공약파기라고 하는 건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문제의 핵심은 역시 돈이다. 정부가 기초연금제를 축소한 건 말할 필요도 없이 재정 여력이 부족해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만약 공약대로 전 노인층에 월 20만원씩을 지급하게 되면 얼마 못가 나라살림이 거덜날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다.
기초연금에 필요한 돈은 전액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으로 조달된다. 소요 재정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만 해도 약 39조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노령화 추세에 따라 노령인구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박근혜 정부가 끝나는 2018년 이후에는 기초연금에 필요한 자금은 훨씬 많아진다.
정부가 복지에 써야 할 돈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암 등 4대 중증질환 지원, 고교 무상교육 등 공약으로 내세운 복지사업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0~5세 영유아의 무상보육 사업도 시행된 지 1년이 좀 넘었지만 벌써부터 돈이 없어 중단하느니 계속하느니 야단인 판국에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 복지사업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공약을 다 실행하고서 나라살림이 온전하길 바란다면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도 매년 수조원씩 부족한 자금을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줘야 하고, 건강보험 적자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누적 빚은 올해 480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36.2%다. 정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건전하다고 외치지만 앞으론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게 뻔한 이치다. 더군다나 지금도 정부가 책임져야 할 공기업(공공부문) 부채(520조원)까지 따지면 나랏빚이 벌써 GDP의 100%에 육박하는 1000조원을 넘는다. 정부가 갚아야 하는 한 해 이자만도 20조원이다. 올해도 세수가 모자라 나라살림이 23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이는데 내년에도 적자예산을 짜놓은 상태다. 빚내서 복지에 쓰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민주당이 정부와 여당에 ‘공약 사기’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복지 확대엔 찬성해도 세금을 더 내는 데는 강력 반발한다. 정부가 지난 8월 세금 감면 철회 등을 통해 중산층의 세금을 내년에 월 1만원 정도 더 걷겠다는 세제개편안을 내놨을 때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면서 결국 정부가 백기를 들었었다.
정부가 내놓은 기초연금제 안은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어떤 형태로든 국회에서 수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 스웨덴의 교훈
스웨덴은 1946년 보편적인 기초연금을 도입했다. 3년 이상 스웨덴에 거주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경제 불황과 인구 고령화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재정이 연금지급액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된 것이다. 스웨덴은 이후 10년여간의 논쟁을 거쳐 1998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보편적 기초연금을 폐지하고 대신 연금을 적게 받거나 못 받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최저보장연금을 도입했다. 모든 노인에게 100% 지급하는 보편적 연금에서 45% 정도(2010년 기준)에게만 주는 선별적 연금으로 돌아섰다.
기초연금제 파문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세금과 공약의 실천 가능성이 국민들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선진국에선 세율을 올릴 것인가 또는 내릴 것인가, 선거 때 내걸은 공약은 과연 실천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쟁점으로 작용한다. 이제 우리도 정치가의 사탕발림이 아니라 선거 공약과 그 실천가능성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복지는 모래위에 쌓은 성일 뿐이다. 기초연금제 논란은 소득이 많든 적든 모든 사람에게 복지 혜택을 주겠다는 ‘보편적 복지’ 정책이 부른 후유증이기도 하다. 현 세대를 위해 빚을 내 복지를 확대하는 건 미래 세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