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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2022년 12월 31일)
제목: "왕 같은 제사장의 평생 기도제목"
찬양인도: 연합찬양대
말씀: 시편 20:1~19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대표기도: 김동신 장로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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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0:1~19,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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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 하며, 성도님들이 새벽에 모여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게 되어 주님을 찬양한다. 아마 전 세계에서 이렇게 새벽에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곳은 우리 교회뿐일 것이다. 마음에 성도님들 각 가정마다 개인적으로 영성을 얻고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삶이라는 것은 좋은 일들도 있고 어려운 일들도 있고, 잘 살수도 있고 못 살수도 다 있지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공하지 않으면 나씽(Nothing)이다. 영적으로 모든 성도들 한 분 한 분이 영적으로 성공하기 바란다. 우리가 평생 기도의 제목이 있어야 한다. 기도의 제목이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시는 그런 축복을 받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할 것이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왔다면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한다. 말씀 한 절 한 절마다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서 온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공하길 소원한다. 지난 한 해를 제대로 살았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겠지만 이제는 우리 앞에 새로운 날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기백을 가지고 지팡이를 들고 평소대로 하나님께 6개월, `1년도 안 되어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오늘 말씀은 다윗의 기도이다. 다윗이 이렇게 기도한다.
 
*시편 20:1,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인생이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굴곡도 있고 수많은 일들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9절에 보자.

*시편 20:9,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왕을 구원하여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편은 다윗의 시이자 왕의 시이다. 왕이 기도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인가? 하겠지만 사랑의 교회는 모든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이것이 특권이자 세상으로 보냄 받은 소명자이다. 그래서 특권의식과 소명의식이 같이 가는 것이다. 우리는 특별히 구약의 레위지파나 아론의 자손들이 제사장들이지만 신약에는 우리 모든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구원 받은 자들이다. 똑 같은 신분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약의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 왕 직을 겸한 제사장이다. 그러니까 오늘 이 노래는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확인하고 평생 부를 수 있는 기도의 제목으로 올려도 된다면 다윗의 기도의 제목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평생의 기도의 제목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모두가 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 기도를 주신 줄로 확신한다. 그리고 이 기도를 당당하고 힘 있게 주님께 올려 드릴 때에 그가 어떤 배경이든 얼마나 대단하든 상관이 없이 그리스도인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은 걸 맞는 품위를 주신다. 거룩한 품위와 존엄성을 주신다. 존엄하게 하신다. 그리고 품위를 주실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그 품위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의 용량, 믿음의 그릇을 갖도록 하신다. 갖추어 주신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두 가지이다. 존엄성과 믿음의 용량이다.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교회 중직 자나 처음 오신 분이나 상관이 없이 안아주심의 본당에 발을 딱 들여 놓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존엄성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동시에 믿음의 용량을 여기서 갖추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도록 오늘 성경구절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에게 기도의 제목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편 20:1,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본래 이런 기도가 다윗 왕에게 적용이 된 것이지만 오늘 21세기 왕 같은 제사장,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너에게 너의 네게 할 때, 여기에 이름을 붙여서 다시 읽어보자. 평생 붙잡는 기도 제목이 있는가?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OOO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OOO를 높이 드시며.
-이렇게 이름을 넣어서 말해 보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다윗 왕이 환난날에 가장 강력한 그의 영적 자본과 자산이 무엇인가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응답하신 것이 가장 큰 강력한 영적 자본이다. 오늘 우리 21세기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이름을 대입했다는 것은 여러분이 새벽마다 새벽예배마다 앞으로 예배마다, 여러분의 삶의 여정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임의 가장 강력한 영적 자본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도 언제? 환난 날에 그렇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야곱의 하나님이 너를 높이 드신다고 하신다. 중요하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오늘 특별히 환난 날에 야곱의 하나님이 너를 높이 드신다고 하신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모두 비슷하지 않지만 야곱이 좀 비슷하다. 그 야곱의 됨됨이를 보면 상당히 더 마음이 다가가는 인격이다. 야곱의 생애를 보자. 하나님께서 한 결 같이 다듬으신다. 그 부족함이 많지만 하나님이 붙잡아 주신다. 부흥시리즈 하면서 야곱의 말씀을 깊이 말씀드렸다. 야곱의 생애의 백미가 어디인가? 최고가 어디인가? 히브리서 11장 21절을 보면,
 
*히브리서11:21,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제가 이 지팡이를 강조한 이유가 실체가 있어야 한다. 야곱이 죽을 때 어떻게 했는가? 그의 지팡이를 의지하여 경배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나중에 경배하며.. 우리가 나중에 죽을 때, 하나님께 예배하며 지팡이 들고 죽을 수가 있다. 야곱이 우리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도 복잡하고 힘들고 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그를 생애 마지막에 이 지팡이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다가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지팡이에 기대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야곱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 아무리 힘이 없어 지팡이를 머리에 기대하고 예배할 때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내 생각을 다 버리고 지팡이에 머리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야곱의 모습을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다. 내 때와 내 생각을 다 정리하고 지팡이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 다가오는 새해에 우리는 누가 소중하고 누가 어떻게 할까? 를 수많은 꾀를 낼 수가 있을 것이다. 야곱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듬으시고 다시 한 번 야곱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한다. 이 순간 앞으로 2023년 매 순간을 지팡이의 머리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는 신실한 예배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일하실 것을 믿고 이 다가올 한 해 동안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어떤 젊은이 한 사람이 꿈을 갖고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했다. 완전 실패했다. 그래서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수면제 수십 알을 사가지고 다 털어 먹고 죽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마음 속에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자기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라.’고 하셨던 이야기가 가슴을 때렸다. 그 순간 멈추고 갑자기."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라"라고 하는 말씀이 깨달아져서 기도했다. 내 방식 내 생각대로 살아왔는데, 하나님 아버지께 한 번 만 더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다. 기회를 더 준다면 우리 어머님의 조언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기도했다.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자기에게 사업 자금을 빌려준 투자자들을 찾아서 솔직히 이야기 하고 힘들어서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의 어머니 말씀이 생각이 떠올라서 죽음을 포기하고 다시 한 번 살아보려고 한다고 자기에게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갚겠다고 했다. 그 투자한 사람 중에 제일 많이 투자한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사업을 일으켰는데 바로 이 사람이 Conrad.N.힐튼​이다. 힐튼 호텔이다. 그래서 힐튼 호텔의 방마다 성경책이 있다. 그래서 전 세계 강력한 호텔이 되었다. 가장 깨끗한 호텔이다. 우리 마음에도 이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살아가면서 수면제를 털어넣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왜 없겠는가? 평생의 기도제목이 우리에게 주셔서 야곱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서 우리 마음에도 그런 응답의 축복을 주시길 소원한다.

*시편 20:2,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이름을 다시 넣고 읽어보자. 성소에서 OOO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OOO를 붙드시고,
:-성소에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시온에서 우리를 붙잡아 주신다. 이 성소와 시온은 무엇인가? 하나님 만나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성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자기의 마음의 어려운 심령들을 다 쏟아놓고 잘못 된 생각은 다 교정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하나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것이 성소가 되는 것이다. 왜 중요한가? 인생살이 중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 많다. 억울한 일도 많고, 열 받을 일도 너무 많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우리 이제 어떤 사람은 잘 나가고 꾀를 부리고 잘 나가는 승승장구한 자들이 많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유명한 말씀을 보자. 시편, 악한 자들 때문에 시험을 받을 때,, 보면,

*시편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3년 한 해 동안 실제적으로 이 안아주심의 본당에 들어올 때마다 인생 전체의 그림이 그려지기를 바란다. 아멘,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기를 바란다. 너무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여기서 주의 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의 전체의 그림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이렇게 새벽부터 예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들은 이 안에 들어와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꿈과 인도하심을 확인하게 되면서 우리가 영적으로 성공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그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과 성소에서 나중에는 성전이 되고 우리가 예배드리는 장소가 되지만 그 성소와 성막은 늘 세 가지를 주셨다. 성소와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갈 때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예표 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두 번째는 성소와 성막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참 쉼과 안식을 주셨다.
세 번째는 성소에 들어가서 언약궤를 지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여러분들과 제가 2023년을 살아가는 동안 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 성소에 들어가 다섯 가지 제사을 드려서 축복이 되기를 소원한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양과 소의 피, 곡식, 가지고 불태우기도 하고 흔들어 드리기도 하고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다섯 가지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말씀으로 드리는 예배, 찬양으로 드리는 예배, 기도로 드리는 예배, 성도의 교제로 드리는 예배, 그냥 물질을 가지고 헌신으로 드리는 예배, 이런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삶에 이 한 해 동안 무슨 은혜를 받아야 되는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고 평안이 있게 하시고 참 신이 있게 하시고 어떤 경우에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 주시길 기도하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21세기 영적인 제사, 다섯 가지 제사는 오늘 이 시대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고, 우리는 날마다 하나만 하면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한 영원한 제사가 되어 주셨다. 구약의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의 이 은혜를 단번에 영원한 제사들 드리므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그 보혈로 단번에 완성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제단에 와서 십자가의 은혜를 간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임하게 하시길 원한다. 매주일 경험될 때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승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에 이 은혜로
 
*시편20:4~5,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단번의 해결하신 그 축복을 가지고 내 마음의 소원과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한 명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우리의 승리, 다 함께 승리, 전쟁도 함께, 그리고 개인적인 짐과 고통도 다 공동체가 교회에서 모임 되어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승리를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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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0:7,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사람이나 학연 지연 등을 의지하고 살아온 과거에 대단한 것 다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새해는 더욱 주님을 자랑하자.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며 모두 신실한 도구로 사용되고 모두가 다 영적으로 승리하기를 원한다.
 
♧요약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는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참 쉼과 안식을 누리며. 성소에 들어가서 언약궤를 지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전에서 모든 고난과 짐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온전히 맡기고 믿음으로 새해에는 야곱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서 예배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평생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한다.
 
-회중과 더불어 간구하는 왕은 일차적으로 다윗 왕을 가리킨다. 하지만 성경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에 왕은 구속사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곧 다윗 왕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 한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승리를 볼 수 있으며,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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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0년 6월 27일)
제목:"믿음의 세대계승(世代繼承), 수선대후(守先待後)"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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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믿음의 축복을 담아서 다음 세대와 이 아이들과 함께 씨름하는 교사들을 축복합시다.
수선대후는 명말 청초(明末 淸初)의 사상가 천췌(1604∼1677)의 말로 선대가 남긴 좋은 전통과 유산을 지키며 후대를 키우고 세우겠다는 뜻이다. 훗날 청나라의 성군 옹정제가 이 말을 편액으로 만들어 맹자의 묘에 바치기도 했다. 오 목사는 이 말처럼 선배들로부터 받은 영적 정신적 혜택을 계승하고, 후배들을 양성해야 할 무한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선대가 남긴 좋은 전통과 유산을 지키며 후대를 세우고 키우겠는 뜻이다. 담임 목사님의 책, 통찰과 예견을 보면 수선대후는 어떻게 사랑의 교회와 한국 교회에서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중국 주성에 맹자의 묘가 있다. 그 묘에 청나라 송군 옹정제가 편액(액자)을 내렸는데, 그 안에 글귀가 바로 ‘수선대후’였다. 중국의 정신사의 핵심 중에 핵심은 바로 공자이다. 하지만 그 공자의 사상을 후대로 전하여 계승하지 않았다면 그이 사상은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맹자가 공자의 사상을 다음세대로 건널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했기에 전해진 것이며 맹자가 있었기에 지금도 중국 사사을 중요한 핵심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중국 주성에 있는 이 ‘수선대후’ 이 맹자의 이 편액의 글씨를 담임 목사님이 보시고 목사님 마음 가운데 쑥 들어왔다라고 되어있다. 아마도 그 맹자의 묘에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녀갔을 것이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과 목사님들도 있을 것이다. 그 글귀가 담임 목사님의 마음에 확 들어온 것은 아마도 우리 사랑의 교회와 한국 교회에 주신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함께 해보게 되었다. 한국 교회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믿음과 신앙의 절개가 있다. 몇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한국교회 한국 기독교는 선교사들보다 먼저 복음이 들어왔다. 1884젼 첫 선교사는 먼저 알렌 선교사이다. 공관의로 입국되었고, 그보다 20년이 앞 선 1866년에 요동강변에 제너럴 셔먼호를 통하여서 토마스 선교사님을 통해 성경 말씀이 한국 교회인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 선대의 말씀 사람은 정말 대단했다. 사경회가 열리면 멀리서 2박 3박4일을 마다하지 않고 산 넘고 물 건너 그 말씀을 듣기 위해 집을 떠나왔다. 또 한국교회 안에는 부르짖는 기도가 있다. 간난아이를 포대기에 들쳐 업고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대고 몇 시간이고 기도하는 선대들의 기도, 새벽이면 곤한 잠을 멈추어 깨고 자녀들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그 불씨, 금요일 저녁이면 간절히 통성기오의 소리들, 기도하는 함성들이 그것이 바로 우리 선대의 기도였다. 찬양의 뜨거움도 예외는 아니다. 우연히 할머니의 찬송가를 본 적이 있다. 악보는 없고 글만 있는 찬송가였다. 정확히 음절이 없는 그 찬송가는 목사님의 입만 보고 따라 하는 찬송가였다. 심지어 8절 9절 10절까지 있는 찬송도 보았다. 요즘은 4절도 부르기 어려운데 10절을 불렀다는 것을 생각하니 전율이 흘렀다. 그런데 인도하시는 목사님은 후렴이 끝날 즈음에 목사님이 다시 “처음부터”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면 그 10절의 찬송가가 20절이 되고 30절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선대의 믿음과 정신을 다음 세대로 전해야 되는 것이 수선대후의 정신이다. 부흥의 진원지였던 유럽을 바라볼 때에 얼마나 그 교회가 황페화(荒廢化) 되었는가? 다시 한 번 우리가 새긴다면 다음 세대를 우해 온 마음으로 집중하여 골든타임을 꼭 붙잡아야 한다. 그래서 2020년 주일학교에서는 수선대후라는 주제아래 가정과 교회가 아름답게 연합하여 후대에게도 계승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주제로 잡고 오늘부터 시작하여 한 달여 동안에 여름 수련회의 대 장정을 시작할 것이다. 성도님들의 관심과 기도가 우리와 다음 세대로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다면 선대의 말씀 사랑과 기도 찬양의 모습을 떠 바치고 있는 핵심중의 핵심을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버지의 신앙이 어떻게 아들이삭에게 계승되고 전수 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다. 오늘 우리가 22장 1절에 먼저 보면 ‘그 일 후에’ 라고 시작된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21장의 내용을 잠시 살펴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정 가운데 어려운 문제 두 가지를 해결해 주신 것을 만나게 된다.


1. 이삭과 이스마엘의 분리.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는 이삭이다. 이 이삭을 태어나는 것을 이 위기 가운데 탐탁지 않는 눈으로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는 이스마엘이다. 이스마엘의 입장에서 이삭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의 권리와 권한을 빼앗아 가는 장본이 될 것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었다. 이삭을 부모님이 보지 않을 때에 많이 괴롭힌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성경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많이 놀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사라가 그것을 지켜보던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이야기 한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은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내보내고, 이제 집안의 분란이 없어지는 것이며 이삭과 이스마엘의 분리가 이 문제가 해결 되었다.


2. 아브라함을 시험하신다.

 또 한 가지는 22장 2절 이후에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당시 강국 블레셋의 왕의 방문을 받게 된다.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 세력이 점차 커지게 되자 그랄 왕 아비멜렉은 그의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과 화친 조약을 맺기 위해 찾아온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제의에 應하고 이제 상호 불가침 조약을 締結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국의 한 왕이 일국의 족장이 和親條約을 맺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 성경을 봅시다.
*창21: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렇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화친조약을 맺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가문에 입장으로 본다면 이제 가정 안의 문제도 해결되었고, 또 가정 밖에 있는 문제도 해결이 되었다. 이제 평안을 누릴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주변을 정리 시켜 주시고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것도 두시지 않는 상황 가운데 본질적인 가장 중요한 문제 속으로 아브라함을 초청하신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하신다고 표현하고 있다. 시험에는 결과가 반드시 뒤따른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알려주고 싶었던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이 설교를 통해 그 내용이 무엇이며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무엇을 계승할 지를 핵심적인 내용을 찾아보고자 한다. 시험의 내용은 내 아들 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올라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다. 처음 이 성경을 접했을 때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이 많으시고 사랑의 결정체인 하나님께서 그것도 아브라함이 백세에 어렵게 얻은 아들인데 그 아들을 다시 번제로 달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당시에 가나안의 문화를 살펴보면 조금은 이해가 가게 된다. 가나안 땅에는 함의 막내아들 가나안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함과 가나안의 노아의 수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된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과 결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절상태이다. 하나님을 없는 이들은 무엇이라도 붙잡아야 했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고 자신들만의 살아가는 방식을 고수 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 전반에 나타나는 가나안 땅의 모습은 치열한 전투장의 모습이기도 하고 음행과 우상숭배가 만연한 타락의 땅이기도 하였다. 이 우상 제단의 특징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을 자해하고 상하게 하여 피를 흘리는 제사의식이 있었다.
둘째는 자신의 아이들을 불 가운데에 지나가게 하거나, 혹은 제물을 바치는 인신 제사가 있었다. 바알을 섬기는 우상중에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였다. 이런 시대적인 관점으로 볼 때, 어쩌면 아브라함의 아들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청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이니 아브라함은 지체함 없이 이삭과 종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을 향해 출발했다. 산이 가까이 눈앞에 가까이 왔을 때에 종들을 머물라 하고 이삭과 함께 아주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둘이서 또 다른 출발을 하게 된다. 그때에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 번제 드릴 나무와 불은 준비가 되었는데 이상합니다. 왜 제물이 없는 것인지요?”라고 묻는다. 그 아들의 질문에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우리가 아이가 아플 때에 병원에 가서 주사를 여러 번 맞힌 경험이 있다. 작은 주사바늘 하나가 아이의 피부를 뚫고 있는 모습도 지켜보기가 어렵다.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브라함에 있어서 이삭은 백세에 얻은 아들이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얻은 아들이다. 그 아들을 이제 번제로 바쳐야할 상황을 아브라함은 알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들의 이삭의 질문을 아마도 回避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질문을 한 번 하겠다. 우리는 결말을 잘 알고 있기에 당시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잘 파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정말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릴 작정이었을까요? 이삭은 죽이고, 각을 뜨고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불태워 올리는 이 번제를 드릴 마음이 있었을까요? 속으로 대답해보자. 있다. 없다. 아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성경을 읽어보고 보자.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오늘 아브라함은 아들과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모두가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고 올 것이라고 모두들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5절을 읽으니 조금은 햇갈리기도 할 것이다. 읽어보니 같이 오겠다는 말에 의하면 죽이려는 마음이 없었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정답은 없다. 다시 말씀을 진행 후에 하겠다. 이윽고 아브라함과 이식이 제단 앞에 도착한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제사를 드릴 준비를 위해서 분주했을 것이다. 이때 이삭의 나이을 살펴보면 보통 학자들은 15-20세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초대 유대 전승에는 30세가 넘은 이삭이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장성한 아들이었고, 아브라함이 나무를 쌓고 이를 주도하는 가운데 마지막 이삭을 결박하고 제단 위 나무에 올려놓았을 때에 이삭은 아브라함의 이 일을 피해 도망을 할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주 어린 아이들을 다그치고 훈계할 때에 3학년까지는 어머니의 훈계를 잘 듣는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면 어머니가 아이들 앞에 꼼짝을 못한다. 때로는 너무 화가 나서 체벌하려면 그 아이가 어머니의 그 손을 붙잡고 오히려 억제한다. 이삭은 최소 15-20-30세까지의 장성한 모습이었다면 멀찌감치 도망가며 아버지를 항하여서 아버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다시 생각하시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이삭은 순종적이었고 결박당한 체 그대로 누워있다. 참으로 이상한 모습이다. 아브라함이 이제 이삭을 잡아야 할 때가 되었다. 아까 질문의 정답을 찾아봅시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경 말씀을 찾아봐야 한다.


*히브리서 11:19 :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브라함은 비장의 마음을 먹고 그를 정말 죽일 작정이었다. 실질적으로 그의 마음은 이미 번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에 드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장면이 너무나 극적이기에 많은 화가들이 이 장면을 당신들의 그림의 소재로 삼는다. 화가들이 그린 그림 중에서 램브란트가 그린 그림이 참 좋아한다. 지금 보는 이 그림을 보아라. 이 그림은 1635년에 그렸다. 이삭에 희생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 보여 지는 부분이 있다. 천사가 아브라함의 손을 붙잡고 힘주어 칼을 떨어뜨리게 만든다. 그런데 그 반대의 손을 보면 얼마나 다급했으면 아브라함의 의지를 꺾기 위해 마치 때리려고 하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그리고 대답이라고 하는 듯이 아브라함이 쫄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브라함은 당황했다. 아브라함이 당황하는 저 모습은 이미 그 마음 가운데서 이삭을 죽이려는 결연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아브라함의 믿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은 그 이삭을 정말로 죽였다. 그런데 그가 이삭을 죽일 수 있었던 이유는 히브리서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리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히브리서에 나와 있다.


히브리서 11:17~18: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하여서 자손들을 주실 거라는 약속을 신실하게 붙잡고 믿었던 것이다. 믿음이란 막연하게 상황이 열릴 것을 기대하거나 혹은 막연하게 잘 될 거라는 희망, 포기하지 않는 어떤 신념, 이런 것들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브라함을 통해서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믿음은 일반적인 기대와 희망, 신념과 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약속은 신실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 하나님을 향한 일관된 태도 그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었다. 왜 그런가? 그의 평생의 삶 가운데 늘 하나님을 대적하고 늘 질척거리며, 늘 의심하였던 그의 삶과는 정 반대로 늘 신실하게 주신 그 약속을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은 나타내고, 드러내고, 이루시고,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 우리 이전 선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이 신실한 약속을 우리의 마음 가운데 신뢰하며,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신뢰하며, 그 신뢰하는 믿음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 그것이 우리 믿음의 선대에게 필요한 믿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종중 학생들이 세상 불안한 느낌으로 부모님을 바라본다. 세상 불안한 눈빛으로 목사님을 바라보고 선생님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입으로는 이제 자기가 소망이 없다고 더는 틀린 인생이라고, 누구에게도 소망이 없는 자라고, 자기만 없으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고 하면서 부모님의 속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서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비관하는 자신을 흔들리고 두려움의 모습가운데 오히려 확신에 찬 모습으로 너희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다라는 것을 부모님의 눈빛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오히려 부모님이 더 그것을 보고 떨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모르기에 불안해하는 것이다. 코로나의 사태가 다가올 때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코로나 뿐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녀들을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자녀의 상황이 나아졌기 때문에? 우리 자녀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아니다. 그런 것 보다. 이 자녀를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 자녀를 끝까지 약속의 자녀로 키워주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상황과 현실이 조금은 불안할지라도 그 하나님을 향하여서 우리의 눈을 고정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 확신에 찬 눈빛으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야” 하나님이 너를 부르셨고, 너를 세상 가운데 보내시고, 부르시고 널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다. 그러니 너는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라고 표현 하고 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사지로 이삭이 비록 내 몰릴지라도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겠지만 하나님은 어떤 상황도 해결하실 수 있는 그 믿음만을 붙잡고 아브라함은 나아갔던 것이다. 눈을 질금 감고 아브라함은 이삭의 심장에 칼을 꽂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꽂으려는 순간 ”아브라함아!“ 급하게 멈추시고 이삭의 생명을 구하셨다. 나는 너의 아들이삭을 바치는 것이 기뻐하는, 인신제물을 바치는 여러 신과 같지 않다. 나는 그런 이방신이 아니다, 나는 비인격적인 이방신이 아니라고 하신다. 내가 너와 화평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모든 것은 내가 준비하게 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 길에서만 나와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것이 바로 여호와 이레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준비하심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탈락, 실패되지 아니하고 구원의 길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바로 여호와 이레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 떨어져도 침묵했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 가운데서도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 어쩌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거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그림 언어를 통하여서 우리가 붙잡아야할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수선대후, 우리가 다음 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을 때 상황 가운데 열어줄 것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너를 감당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너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믿음의 원형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우리에게 그런 신앙이 우리에게 있는가? 어쩌면 우리의 자녀의 신앙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선대인 우리는 다음 세대를 바라보며, 다음 세대를 위해 먼저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붙자고 있는가를 점검해봐야 할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20년 여름학교는 단순히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수선대후는 우리 아이들만이 아닌 우리가 모두가 하나님께 달려 나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번 해본 것이다. 계속되어지는 스가랴를 통해서 회복되고, 재건, 그것이 하나님이 온전하게 주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믿음이 되고 이 시간이 선대의 신앙과 후대의 순종이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다시 회복되어지는 놀라운 은혜가 있는 사랑의 교회가 되고 우리 교회를 통하여서 나아가 한국과 나아가 세계 가운데로 하나님의 부흥이 다시 한 번 이룰 수 있는 기회로 그 놀라운 날개짓과 초석이 놓일 수 있는 여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후 예배.
 오늘 주일 학교 축복 송에 감동했다. 대포를 쏘고 시작하고 축하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보니 이 아이들을 보니,,,성도는 신앙 따라서 신앙 지켰네를 생각하며,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를 생각했다. 워쉽 댄스를 할 때도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어떻게 환난과 팹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오늘 설교 소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듯이 우리 아이들 이 시대의 옷을 입고, 또 시대에 앞서서 선도를 하지만, 신앙의 본질 헌신과 충성, 영적 전쟁, 겸손, 깨어짐, 고난, 자기 죽음, 십자가, 이런 어떻게 믿음으로 가르칠 것인가? 복음의 순수성에 사랑 의교회가 승리하길 바란다. 왕성교회에서 코로나가 나타나 마음이 짐이 컸다. 우리가 철저히 지켜서 방역을 지키고 이 마음을 가지고 주의 전을 지키고 교회를 죽도록 충성하겠네를 믿고 지켜야 한다. 어려운 교회들이 많은 것도 마음이 아프다. 승리하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다. 이 것 외에는 없다. 기도는 타종교도 한다. 우리의 기도의 차이는 말씀과 찬양이 뒷받침 되는 것이다. 말씀과 찬양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Niothing이고 헛것이고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사랑의 교회는 말씀과 찬양이 뒷받침 되어 기도를 잘 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누가 뭐라해도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를 생각하여 이 신앙 지켜 기쁨이 충만했듯이 그래서 이 여름을 하나님이 주신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쉽지 않다. 멀리서도 교회를 온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서 안 나오는 것은 말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시겠는가? 사명으로 순교적인 정신으로 모두가 조심하자.


♣요약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 준비하신 번제물은 숫양으로 하고 아브라함의 온전한 믿음을 확인하시고 친히 숫양을 준비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길을 준비하실 것을 예표 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순종하여 큰 시험에 승리한 아브라함에게 큰 축복이 임한 것처럼 오늘 우리 성도들도 모든 시험을 믿음으로 순종하고 인내로 승리하여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수선대후인 믿음의 다음 세대들과 주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믿고 붙잡고 나아갈 때에 오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다음 세대는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오니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하여 주심으로 어린양을 준비하여 주시고 그 어린양을 통하여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실 줄로 믿기에 그 아름다움 만남과 기쁨의 회복이 모든 성도와 우리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가슴마다 새겨지기를 원한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준비하심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탈락, 실패되지 아니하고 구원의 길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바로 여호와 이레인 것이다.
선대의 신앙과 후대의 순종이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다시 회복되어지는 놀라운 은혜가 있는 사랑의 교회가 되고 우리 교회를 통하여서 나아가 한국과 나아가 세계 가운데로 하나님의 부흥이 다시 한 번 이룰 수 있는 기회로 그 놀라운 날개 짓과 초석이 놓일 수 있는 여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초점을 맞추기 쉽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이 좋아서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쳤다기보다는 철저한 하나님의 주도적 역사임을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본문에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세 번이나 나온다(하늘의 소리1,11,15,). 이로 미루어보아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게 된 것은 그의 믿음이 좋아서나 당시 고대근동의 인본주의적 인신제사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임을 말씀하고 있다. 때문에 본문을 구약의 갈보리 사건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400년 후 모세의 제도(레1:1-9)와 맥을 같이하면서 또한 2천년 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요19:17,18)과 구속사적(救贖史的)으로 직결되는 예표(豫表)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제물은 흠 없는 어린양이어야 한다는 점, 제물은 자발적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제물은 희생되어 그 피가 뿌려져야 된다는 점 등이다(히9: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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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2020. 6. 19)

제목: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
말씀: (마태복음 26:54~56)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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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4대가 함께 하는 은혜의 플랫폼.
훈련생들을 보호하기 바란다. 어제는 49명의 확진자로 조금씩 줄어가고 있다. 6월25일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보호하셨듯이 코로나의 종식을 인도하시고 불 성곽으로 우리 교회 분들을 보호하시길 바란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9명인데 우리나라 들어와서 더 전국에 퍼졌다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 결 같이 기도가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리라 믿는다. 우리 교회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이 모이는 공동체일 것 같다. 무엇이 사람을 견고하게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사람을 견고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가?
하버드 의대교수가 75년간의 임상을 해 와서 보니, 724명을 임상했다. 그 가운데 대상은 하버드 2학년을 상대로 724명을 했고 사회적으로 힘든 사람들과 했다.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애를 끝낸 자도 있다. 하버드 의대 행복은 무엇이 행복인가를 보니 *‘관계’라는 것이었다. 관계를 잘 하면 노후가 건강함을 확인했다. 좋은 관계는 몸만이 아니라 두뇌도 보호한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관계로 에너지를 쓰고 노력해야 한다. 노력해도 쉽지가 않는 것이지만,,,좋은 관계는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평가하기가 어렵다. 서로 섬기며 잉꼬부부처럼 살아 가는 것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토대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관계가 중요하고 든든한 것이 다 많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절대적 관계이다. 그리고 주님과는 절대적 관계는 오늘 우리가 꼭 지키고, 실행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노후가 건강할 것이다. 국제적 제자훈련도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로 6가지를 잘 지킬 때에 우리의 노후와 그렇지 않는 사람들과의 차이가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알 수 있다. 상위층과 어려운 사람들을 상대로 보면, 예수님과의 관계가 더 절대적 관계 속에 만세반석에 세워져 있으면 우리는 끝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토비새에 나온 사람들은 행복할 줄 믿는다. 단순히 사랑의 교회가 절대적 진리를 수호한다고 했을 때, 절대적 진리를 수호하는 것은 하나의 교리적인 과정이고, 위리는 남은 생애가 가장 가치 있고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그리고 토비새에 나오면 의무감이 아니라 토비새에 나오면 신적 개입을 통해 비범한 인생이 된다. 절대적 주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행복한 인생이 된다. 절대적인 주님과의 관계가 되면 절대적 권위로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있고, 잔치가 있게 되고 그래서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의 흔들림 없는 관계 때문에 말씀이 절대적 권위로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마음에 느혜미야 선지자가 있고, 눈물이 나고 마음에 기쁨이 되고, 잔치가 된다. 그러니까 좋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말씀은 좋은 관계로 흔들림 없는 토대가 된다. 이 말씀이 절대적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영감ㆍ조명 ㆍ성령의 계시가 있고, 성경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되며, 또 성경을 통해 주님께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가 그래서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본문 56절에 주님께서는 선지자의 글을 이루려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인용하시는 것은 항상 구약이다. 우리는 구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나와는 좀 초월적일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와 질벌 등 이 특별하다. 구약의 특별함과 비범함이 우리의 평범한 인간들이 보면 안 맞을 수 있다. 나와는 좀 안 맞지만 초월적일 수 있다. 섣불리 다가가기는 힘들고 전문가들에게 늘 맡기려하는 것이 팽배하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나 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소극적이며 그것은 부정적인 생각이다. 왜 우리가 구약을 특별한 생각을 해야 하는가? 스가랴를 보면 그렇지 않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을 사용하시고, 인용하셨기 때문이며 예수님은 구약 성경 확고하게 사용하셨기 때문이며, 구약 전체가 예수님을 위한 성경이다. 또 영적 전쟁으로 싸울 때 인용하셨다. 구약을 의지 하시고, 주위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끊임없이 언급하셨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훈련 받고 남은 인생을 주님과 좋은 관계를 영적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열심히 적용하고 나누는 것이 특권임을 믿기를 바란다. 내일 스가랴를 들을 때 특권으로 생각하라. 오늘 본문인 54절에 말씀을 보자.


*마태복음 26: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도 메시아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늘의 열 두 명의 천군천사가 데려와서 로마의 군대를 하루아침에 날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될 경우에는 안 되니까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주의 권속들이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한다. 구약성경에 예수님이 '메시아로 270번 이상 나온다. 적어도 330번 이상 메시아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주님은 열 두 명의 천사로 다 쓸어버릴 수 있지만 주님은 피 흘려 십자가의 그 보혈로 죽으셨다. 하나님의 말씀,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했다. 예수님은 피 흘림으로 값을 치루셨다. 오늘 그 은혜로 우리가 이 자리를 앉아서 나라, 남은 생애, 주의 몸 된 교회, 형제를 위해 기도하고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나 소중하고 예수님조차도 목숨을 구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걸었다. 마귀로 인해 비 진리를 용납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런 것을 수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절대적 진리를 훼손함을 참을 수가 없다. 진리는 비 진리를 용납할 수 없고, 소수 인권 등을 막아야 한다. 동성애라든가, 성경을 훼손하려는 시도들이 지난 이천 년간 너무도 많았다. 성경을 박해하고 난도질했고, 성경만큼 고통당하는 것이 이 세상에 없다. 이백년 전에도 성경을 지키는 사람들을 잡아다 불태우고 많이도 죽었다. 성경을 이 땅에서 말살시키려고 했으며, 지금도 무슬렘이 그렇게 하는 자들도 있다. 마귀는 늘 그렇게 장난을 한다. 대표적인 신앙이 바로 자유주의 신학이 문제가 되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을 신학 공부를 시켜서 성경을 도마 위에 두고 난도질 했다. 텍스토 크리스티즘(Text christism)이다. 그래서 비평을 하게 한 것이다. 이런 것으로 교묘하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자유주의가 일제시대에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와서 비평을 받았으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성경을 비평하고 했다. 그것도 안되니까 사회구원설을 가지고 더 훼손하고 있다. 미국에 신학적 자유주의가 들어와서 이제 아이비리그가 명문대가 유니버스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과 대학이 있어야 한다. 법대 ㆍ신과 ㆍ있어야 한다. 인간의 지성과 철학 ㆍ과학적이 되다보니 자유주의 신학으로 다 물들어 버렸다 흐름으로 학교가 오염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 성경대학 운동이 일었다. 세계에서 공대를 최고로 하는 대학이다. 성경 대학이 있는 곳이 바로 메사추세츠에 공대에 최고의 전문가를 만들자는 곳이다. 그곳이 바로 MIT이며, 조지아대학(GIT)이다. 머리가 좋은 자들이 성경도 최고의 전문가로 만들기 위한 것이 바로 무디이다. LA에 최고의 성경 대학도 있다. 그래서 바이블이 발전해서 대학 졸업자가 세미나가 만들어졌다 여러 지역에서 생겼다. 이렇게 어떻게든 성경을 지키려 하고 있다. 세미너리가 잘못되면 세미터리(장지)가 된다. 마귀가 교묘하게 하면 커리큘럼 자체가 철학 중심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것을 반해서 성경 자체만을 공부하게 다시 만들게 되었다. 성경에 관계되는 것을 공부한다. 원어 중심으로 공부하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히브리어 등으로 중심이 되었다. 원어 중심이 되어 강하게 된다. 앞으로 우리 세가(Sega)에는 기본적인 것을 성경적 절대적 권위를 배워 지키는 것을 철저히 수료하게 될 것이다. 훈련생들은 사회가 어지러워도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한다. 예수님도 구약이 이루어지기 위해 목숨 걸었다. 우리 인생을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절대적인 관계인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하여 남은 생애의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적 진리를 지켜야 한다. 좋은 대학에 동성애가 너무 많기도 하다. 우리는 철학 중심이 아니다. 한국에서 좋은 신학자가 있기를 바라며, 원어와 라틴어 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배워야 한다. 원어인 스칼라를 키워야 한다. 성경의 진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One of God! 하나님이며 성경이다. 전능하시는 하나님이다. 우리 모두가 다 주님을 닮아가고 온전해져야 한다. 선지자의 글을(구약) 이루려 함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이 말씀을 사모하고 지켜야 한다. 올바로 해석하라. 하나님 말씀 자체를 믿고 일어나야 하며 돕기를 기도합시다. 복음주의 바탕이 한국에 자리 잡기를 바란다. 아시아 신학이 정통신학을 지키기를 바란다. 말씀을 사모하고 큰 그림을 그리길 소원한다!




♣요약
우리는 좋은 관계가 인생을 행복하게 한다. 그것은 사람 관계도 중요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인 성경의 진리를 확고히 하여 주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하는 것이 인생을 가장 견고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어서 정통적인 신학을 바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복음을 이루어야 하며 말씀을 사모하여 인생을 주님과의 관계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자신이 준비한 칼로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자르게 된다. 그는 그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인 줄 알고 용기를 내어서 행동하였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예수님께서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 행동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자칫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짐을 방해하는 것이 됨을 지적하시고 말고의 귀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가운데 행하는 모든 열심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피고 행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내가 행하는 그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살피는 지혜로움을 가져야 할 것이며, 절대적 권위인 성경을 통해 우리 인생이 행복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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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2020. 6. 13)
제목: ''끝까지 지켜야 할 것''
말씀: (디모데후서 3:14~17)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모든 환경을 뜷고 토비새 나오신 자를 주님이 사랑하심을 믿는다. 복음의 역사를 위해 특새를 연기를 하게 된다. 토비새가 영성의 능력과 비전이 되기를 바란다.
목양 사역에서 우리가 절대적 진리를 지켜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다시 한 번 각오하고 지켜야 한다. 바울의 생의 마지막 장인 이 디모데후서를 듣고 깨닫기를 바란다. 영적으로 자신의 순교를 잘 알았다. 인생의 가장 마지막에는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있게 된다. 사랑했던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 때에 디모데를 만나고 싶었다. 가장 사랑했기 때문이다. 연락을 위해 편지를 쓴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그에게 주신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기를 바란다. 흔들리지 말고 젇래적 진리를 지키라고 하는 말씀이다.


I. 성경 말씀의 절대적 진리를 지켜야 할 것.


1. 말씀(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된다.
디모데후서 3:14절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성경이 아니면 구원이 될 수 없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15절에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피조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성경이란 것은 피 흘림의 생명의 역사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체험을 뛰어넘으며 절대적인 능력이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진리이다. 한국 교회와 사랑의 교회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 말씀의 절대성, 복음의 토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하나님은 완벽하지만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죄의 해결과 영혼의 구원에 대한 분명한 길을 제시한다. 이 구원의 지혜는 예수님이시다.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게 하고 깨닫게 하고 믿음을 얻게 하고 근본적으로 내 삶을 변화시켜주며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2. 말씀(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말씀을 통해서만 성령 충만 받고, 온전하게 하면, 사람을 살린다. 말씀을 통해 온전하게 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이긴다.


3. 말씀(성경)은 우리를 온전케 한다.
디모데후서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 권위 앞에 내 자신이 복종해야 한다. 말씀이 전적으로 내 삶을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 말씀에 비추어 세계관, 인생관, 가훈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때에 비로서 말씀이 우리를 선한 일로 이끌어 주시며 행할 능력도 허락하신다.



II. 경 말씀의 절대적 진리를 지켜야 할 것.


- 말씀을 먹어야 한다. 육신에 건강을 위해서도 먹어야 하듯이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 먹어야 한다.
말씀을 먹는 사람은 선포해야 한다.
디모데후서4:1~2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게 하고, 깨닫게 하고, 믿음을 얻게 하고, 근본적으로 내 삶을 변화시켜주며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알기만 하고, 깨닫기만 하면 안 되고 선포해야 한다. 운동선수가 경기에 나가지 않으면 자기는 끝나는 인생이다. 똑똑하기만 하고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면, 영적인 나태이다. 말씀은 달고 오묘하다. 내일부터 스가랴를 시작한다. 말씀을 가지고 선포하지 않으면 교만하다. 우리 성도들이 많이 훈련되어 있는데, 삶의 실천이 나와야 한다. 제자훈련도 반드시 숨을 내 쉬는 제자훈련이다. 선포하는 제자훈련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먹고 선포해야 만이 된다, 우리교회는 순장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 순장사역을 하면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게 되고, 순장 체험을 통해서 더 고귀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순장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 말씀을 꿈꾸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꿈을 이루며, 말씀으로 기도의 사람으로 서는 자가 순장사역이다. 그러니 말씀을 가지고 선포해야 한다. 말씀을 가지고 다른 영혼을 섬기니 은혜이다.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면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중직 자들은 확신하고 이해해서 순장을 놓고 있는 사람은 속히 돌아와 자리를 지켜내라. 그 사역을 말씀으로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절대적인 말씀을 알고 깨닫고, 그것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선포해야 한다.


요약
성경이 아니고서는 구원의 길이 없다.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게 하고, 깨닫게 하고, 믿음을 얻게 하고, 근본적으로 내 삶을 변화시켜주며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을 선포하여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하며, 순장 역을 놓고 있는 자는 속히 제자리로 돌아와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은혜를 얻고 영혼을 섬기기를 바란다. 모든 영 가족들이 성령의 조명과 영감을 통해 절대적 진리의 말씀이 주는 지혜를 얻기를 바라며, 모두가 일터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자기가 꺄어져서 이웃에게 힘을 주어야 한다. 사랑글로벌 아카데미를 통해 열방을 섬기며 모두가 일터 선교사로서의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나 열방을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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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2020. 66
)

제목: ''마른 땅에 굳게 서라''
말씀: (여호수아 3:14~17)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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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적 통일 쥬빌리티 기도회. 800차 기도회를 주신 하나님께 다함없는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다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부르셔서 이 자리에 우리를 불러주심을 확신한다. 800차가 왜 소증한가면 1000회에 할 때에 반드시 평양에서 특새와 예배하도록 환경을 주시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믿고 이 시간을 통해 우리가 믿음의 용량을 넓혔으면 좋겠다. 기도의 용량을 넓혀서 모든 순서 하나하나를 우리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기를 바란다. 마음의 기도를 가지고 하면 천회가 되기 전에 평양에서 특새 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확신한다. 포에버 어른 들 찬양이 너무 좋다. 10년은 젊어지셨을 것이다. 현충일인 오늘 큰 의미가 있다. 나라가 바로 가느냐는 좌우를 뛰어 넘어서 하나님과 바로서서 좌우가 아니며 야당 여당도 아니고 예배당이다.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좌우가 아니다. 오늘 이 시간으로 인해 복음 역사가 새롭게 지필 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길 바란다. 800차에 여기 화분을 가져왔다. 평양에서 이관우 목사님(전사무총장님 목사님)이 통일의 재물로 쓰셔서 먼저 가셨는데, 사모님이 이렇게 작은 나무를 심어서 가져다 주셨다. 누군가가 물을 주고, 애를 써서 오늘까지 온 것이다. 800차라는 것인데, 비가 오나 눈이오나 상록수 신앙이 쉬운 것이 아니다. 오늘 이 자리에 마음으로 흙으로 가꾸고 나무를 가꾸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기를 원한다. 설교가 오늘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설교제목과 본문을 미리 주었다.
쥬빌리티 기도회에서 6개월 동안 여호수아 프로젝트라고 지금 17절에 보면,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이것이 기도의 제목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준비했다. 지금까지 사역을 해오면서 결국은 사역은 믿음의 문제이기에 신앙도 믿음과 직결되어 있다. 문제는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이다. 본문에 앞서
여호수아서 2:24절에,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굉장한 말씀이다.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는 뭐라고 하는가?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다고 한다. 아직 받지도 않았는데 주셨다 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찌르시며 보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제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밤새워서 열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모두가 다 우리는 저 가나안 사람들에 비해서 메뚜기 같다고 한다. 소위 잠재적 불신앙이 전염병이 확 확산되어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밤새도록 울고 안 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그 믿음 갖고는 안 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히브리서 3:19절을 보면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여호수아 갈렙 외에 이스라엘의 모든 민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는 딱하나이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날마다 일마다 때마다 교회, 가정, 믿음 공동체,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늘 믿음을 테스트 한다. 현실은 이런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25살에 죽어가지고, 80세에 묻힌다’ 25살에 죽는다는 것은, 그 나이에 설렘과 꿈과, 믿음과, 소망과, 비전과 하나님 나라 환상과, 기대와, 가슴 뛰는 것이 다 죽어버렸다. 그때 다 죽고 영적으로 하나님나라의 꿈으로 봐서 25살에 다 죽은 것이다. 그리고 육체는 70-80까지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다.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이 너무 많다. 지난주에 노량진에 LABLY 청년센터를 마련했다. 거기 보니 12만명의 공시 생들이 거기서 공부하고 방황한다. 노량진에 청년들이 힘들다. 3퍼센트만 합격하고, 5천여 명만 합격하고 나머지는 무엇이겠는가? 영적으로 다 죽어가고 한국으로 봐서 너무나 큰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적인 쉼터 라블리로 영적인 회복이 되도록 라플리티를 마련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 하신다. 그 잠재적 불신앙과, 메뚜기 신앙을 불식시키시기를 원하신다.
그럼 어떻게 불식시키시는가?
믿음을 테스트 하신다.
1.먼저 기다리게 하신다. 오늘 본문 12절 앞에 보면 요단강을 백성들이 앞에서 3일 동안을 기다리게 하신다.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으로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 하신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한국교회에도 종교 지도 자들끼로 모여서 다 그렇지만 초파일을 연기한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죽어도 부활절 지킨다. 했다. 애를 썼지만... 이태원으로 인해 지금 난리로 확진자 0가 있다가 또 생기니 일들이 생겨 기다리게 하신다. 평양에서 특새 할 것을 준비를 이미 해오고 있고, 특새할 장소와 심지어 전세 비행기까지 마련해 두었다. 갑자기 촛불혁명 등이 일어났고, 모든 것을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영적의 비전의 수준이 되도록, 테스트 하시고, 기다리게 하신다. 그게 요단을 건너기 위하여 히브리어로 소위 아바르(Abar)타임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요단의 물이 멈추고 마른 땅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은 요단강 물이 깊지가 않다. 크지도 않다. 당시 이 시기에 깊이 30미터가 넘었는데, 그걸 건너야 했다. 건너기 위해서 건너다라는 말이 20번 이상 나온다. Abar는 경계선을 넘는다는 뜻이다. 강과 산을 넘는 물리적 경계선도 있고, 국경을 넘거나 정치적 경계선도 있다. 물리적이든 정치적이든 다 건너는 것이다. 기금 남북문제 경계선을 우리는 넘어야 한다. 좌우의 경계선을 넘어야 한다. 코로나 경계선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이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아바르 타임이 필요하다. 인간이 생각해서는 불가능한데 믿음으로 건너라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모든 인간, 공동체는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일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바르 타임인 것이다. 거저 되는 것이 없다. 가치 있는 것 치고 아바르 타임이 있는 것이다. 오늘 여호수아 3:15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강물이었고, 그 장정과 여인 아이들이 20만 명이 강물이 세게 흐르는데 여리고 성과 철병거와 거인들까지 앞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압도하는 두려움이 있고 3일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감당했겠는가? 내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다시 돌아갈까를 생각했을 것이다. 통일에 있어서 우리에게도 그 문제도 아바르 타임을 주시고 계신다. 이 아바르 타임에 잘못 방향을 정하지 말고 이때에 이 시간을 통해 올바른 기도에 집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 아바르 타임에 도망갈 필요도 없고, 싫어할 이유도, 무시할 이유도, 덮어버리고 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


요단강 법칙-우리가 그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믿음 없는 시대에 하나님은 아바르타임을 주시는데 어떻게 하시는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홍해의 법칙이 있듯이 요단강 법칙이 있다.
1. 언약궤를 따르라.
백성에게 이르데 여호수아 3:3절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언약궤 뒤를 따르라는 것이다. 200만의 사람들이 따라간 초대형 GPS이다. 그 앞에 제사장들이 가는데 다 따라간다. 1킬로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소중한 것과 덜 소중한 것, 그냥 지나가도 되는 것과, 꼭 지켜야 되는 것이 있다. 이것이 선명하게 구별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제목과 깨달음을 주셨다.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선명하게 지켜야 할 것은?
1).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 권위 - 오늘도 기도제목과 본문을 보았고, 말씀 자체가 능력이다. “Let the Bible Speak“이다. 말씀 자체가 말하게 하라. 그것을 믿고 기도의 제목을 삼는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의 절대권위를 주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주님 앞에서
2). 예수님의 유일성.
3). 성령님의 주권적 인도.
4). 거룩한 공교회의 중요성.
5). 세계선교의 절박성.
6). 평신도 사역의 소중성.
이 여섯 가지는 우리교회가 지켜야 할 실천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약궤에 뭔가? 언약궤 안에는 두 돌비,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있다. 주님을 집중하고 마음을 모아라. 죽음의 지팡이가 생명의 싹이 나겠나? 설령의 기름 부어서 역사가 아님 안 된다. 우리가 믿어야 할 약속의 언약을 그것을 따르라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특별히 축복받았다. 기본적으로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믿는 교회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약의 말씀으로 절대적 권위를 믿어야 한다. 이 은혜가 계속 지속 될 것이다.
요단강 법칙-우리가 그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2. 성결하게 하라.
여호수아 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우리에게 하나님은 일보다 성결을 중요시 하신다. 거룩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성결해야 한다. 성결한 가정, 민족, 공동체가 성결해야 한다. 무엇을 성결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바래야 한다.


3. 지도자들이 언약궤를 메고 앞장서야 한다.
여호수아 3:11-12,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고 그리고 지도자들이 먼저 앞장서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앞장섰다. 언약궤 성결, 지도자가 앞장서라. 요단물이 말랐어도 같이 건너가게 되지만 요단 물이 마르지 않을 때에 물속에다 지도자들은 집어넣으라는 것을 말씀 하고 계신다. 자기희생이다. 이런 마음으로 사랑의 교회 토비새 나온 성도들은 코로나 사태에 모이기가 어려운 가운데도 모여서 기도하고, 우리가 사명을 가지고 모여서 기도할 때에 800차 소원을 이루어야 한다. 절대적 언약의 말씀을 따르기를 다짐하여 주님을 따르기를 바란다. 모두가 다 영적인 아바르 타임으로 믿음의 용량을 넓혀서 하나님의 뜻을 바라기를 바란다. 영적인 앞장 선자들은 더욱 주님이 인도하시라 본다. 믿음의 용량, 기도의 용량을 넓히자.
요약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복은 자녀들이 번성하고 그 중에서 왕들이 나올 것을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큰 민족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430년간 애굽에 이스라엘이 살게 하셨고 마침내 큰 민족이 되게 하셨다. 430년 간의 종살이는 고난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훈련기간이였으며 그의 약속을 이루시는 기간 이였다. 우리의 살아온 날 들이 힘들었어도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훈련하심이며 아바르 타임이시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곧 들어 갈 줄 알았는데, 40년이 걸려서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앞에 도착한다. 이제 저 강 요단강만 건너가면 되었다. 멀리 강 건너 어렴풋이 여리고 성읍이 보였다. 얼마나 숙망했던 약속의 땅이었겠는가. 낮에는 불볕더위로 살이 타고 밤에는 추위로 벌벌 떨던 광야, 불 뱀과 전갈이 득실거리던 사막 한가운데에서 그 얼마나 고생이 심했던가. 날마다 죽어 넘어지는 동료들의 시체 썩는 냄새를 맡으며 오로지 저기 강 건너 꿈의 땅 하나만 바라고 살아온 인고의 세월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요단강의 수위는 한껏 높아 있었고 건너는 것은 불가능했다. 언약궤를 메고 간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니 하나님이 원하는 때에 반드시 그 약속을 성취하시니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환경을 보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가 잘 모여서 이때 일수록 더욱 예배하고 모여 기도하면 그 아바르 타임에 크고 비밀한 능력을 말씀 가운데 주신다. 우리는 더욱 주님 앞에 모여서 기도하고 주님 말씀을 받아서 앞장서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요단강 건너는 법칙-우리가 그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1. 언약궤를 따르라.
2. 성결하게 하라.
3. 지도자들이 언약궤를 메고 앞장서야 한다.
말씀 안에서 꼭 지켜서 우리는 순간마다 모여 기도하고 예배해야 한다. 우리는 그래서 그 마른 땅에 굳게 서서 주님의 기쁜 자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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