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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부흥헌신(주후 2022년 11월 19일)
제목: "평생 들어야 할 감사의 지팡이"
말씀: 시편 103:1-5
대표기도: 장준영 집사님(목양2팀 남자대교구장)
말씀읽기: 박연서 학생(고등 1,2,부), 이태경 학생(다니엘 중등부)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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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3:1-5,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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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젊어야 한다. 교회는 역사가 깊어가고 교회 중직 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도 교회는 젊어야 한다. 젊게 일해야 교회도 젊다. 목양2팀, 오늘 지팡이의 위력을 한 번 보여주자. 감사 3번, 만세 3번하자. 감사! 감사! 감사! 만세! 만세! 만세!!! 이 지팡이로 하자.
 
여러분, 이게 뭔가! 하지 말고 젊게 하자. 정말 이 자리가 산상 기도회 같은 곳이 되어야 한다. 산상 기도회 올라가는 것 같이 시내 산에 올라가는 것 같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을 짚고 올라가야 하듯이 말씀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이 자리가 정말 모리아 산이 되어야 한다. 이 자리가 850:1인 갈멜산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이 자리가 정말 예수님 변화 산 같이 은혜가 된 것처럼 변화 산이 되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 기도하고 씨름했던 주님 감람산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갈보리 산의 은혜가 이 자리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한다. 제 마음 속에 간직되어 온 산상 기도회의 여섯 산의 은혜가 되기를 원한다. 여기에 사랑의 교회에 청계산, 삼각산, 하늘산, 무척산, 강림산, 여러 산에 이 자리가 영적인 산상기도회가 될 수 있도록 감사 3번, 만세 3번 하고 예배를 드리자. 교회는 역사가 깊어가도 교회는 젊어야 한다. 이런 것 왜 하냐고 하게 되면 늙은 것이다. 이것 왜 하냐고 하면 벌써 늙은 것이다. 우리는 항상 젊어야 한다. 그런 기백을 가지고 예배드려야 한다. 고등부 박연서, 중등부 이태경 용감하다. 그동안 성경봉독 잘했다. 그 너무 감사하다. 박수....
 
하루 전에 저에게 연락이 왔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시다. 목사님, 갑자기 할렐루야!!! 하셨다. 어제 목요일 밤 전에 아니 건초더미 기도운동을 참석했다고 하신다. 너무 쇼크를 받았다고 하시면서 한국교회 희망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한국교회 진짜 희망이 있다고 하신다. 목요일 밤에 건초더미 운동에 너무 감격했다고 유뷰브에 곳곳마다 한국교회 망한다고들 하는 인간들이 있고 핍박하고 온갖 류머로 교회를 뚜드리고 있지만 우리 목요일 밤에 목사님들이 영적인 통찰력이 없이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목요일 밤에 특별한 날이 되었다. 목요일 못 오신 분들을 위해서 잠시 보겠다. 9.26 한국 섬김의 날, 프랜카드도 아직 붙어있다. 그 이유는 지난 3년 동안 2020년 코로나부터 지난난한 고생을 해오면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한국교회의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게 해달라고 했다. 한국교회 부흥으로 가게 해달라고 섬김의 날을 가졌고, 한 달 동안 강단 기도회를 하면서 9.26 섬김의 날에 선포한 것은 문 닫는 한국교회에 다시 문 열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다음 세대에 희망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니까 주일학교에서 바짝 정신을 차려가지고 건초더미 담당인 이민형 목사님을 비롯하여 다음 세대 기도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음세대 주일학교, 사역자들 전체와 함께 실체 있는 대안을 준비하자고 해서 다음세대 기도운동을 준비하고 한 달반 동안 서울, 경기를 포함한 수도권에 사랑의교회 주일학교와 함께 이 운동을 감당해왔다. 그래서 10월 16일부터 서울, 경기, 사랑의교회 목회자 분들과 총대신대원에 홍보와 인타그램에 홍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9.26일 섬김의 날, 강단 기도회와 똑 같이 30일을 기점으로 우리 강단 기도회처럼 매일 기도했다. 주일학교 모든 교사들과 함께 11월 17일 더라이트(The Light),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매일 오전 11시 17분에 한 달 동안, 그래서 목요일 저녁에 참여 교회가 468교회가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교단을 물론 교단을 초월하여 했다. 참여 학교가 511개 중고등학교였다. 참석자 수가 3854명이며 모두 온라인과 함께 4천여 명이다. 너무 큰 집회가 되었다. 청소년들이 집회를 했다는 것이 최근 들어서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집회이다. 그래서 여기에 참석한 어떤 분이 믿음 보고를 올려놓은 분이 있다. 너무 감동 받았다. 무엇인지를 읽어 주겠다. 놀랍다.
 
어젯밤 안아주심의 본당에 있었던 건초더미 기도운동(The Light),
-입장 안내에 따라 우리 부부는 본당 1층 중앙에 자리했다. 저녁 7시부터 안아주신 본당은 드디어 시작된 기도운동 불씨, The Light!!은 10시를 넘겨 마쳐졌다. 담임 목사님의 건초기도더미 운동 선포 이후에 이런 정성스럽게 준비한 청소년 주일학교 교역자님들과 관계자 및 온 성도님들이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로 준비하였기에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고, 기존 청소년 집회와는 사뭇 다른 패러다임 시트, 패러다임 청소년 기도회로 자리매김 되었다. 어젯밤 3시간이 넘도록 안아주신 본당에서 3천여 명의 기도와 지칠 줄 모르는 청소년들의 열기와 힘이 합력하여 한국교회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 청소년 주일학교가 나아가야 할 정확하게 제시한 모범적 집회였다고 평가되기를 소망한다. -어느 성도-
 
어제 집회는 사랑의 교회 45년 역사 중에 제가 함께 했던, 30년 우리 교회 역사 중, 본당에서 개최 된 집회에서 단순한 간증만이 아닌, 중고등 학생들이 강단으로 뛰쳐나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자신들의 관점에서 대두되는 이슈들, 기도의 불씨운동의 당위성과 필요성,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도의 영적동지의 필요성, ‘동성애옹호 및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할 명백한 이유, ‘하나님의 창조질서 보존’ 등을 직접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의 의해 제한되고 군중들로 하여금 기도의 전심으로 동참케 한 것은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했던 전혀 색다른 형태인 기도의 불씨 운동이었다. 우리가 매번 다음 세대를 말하면서도 진정 다음 세대의 언어와 그들의 니드(need),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는지 기성세대인 저부터 지난 주일학교 30년을 성찰하며 반성하기로 결단한다. 어제 청소년 집회 ‘THE LIGHT’에는 서울, 경기 수도권에서 468개 교회와 511개의 학교가 참여한 역사적인 현장에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였다는 것이, 또한 이런 은혜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또 이를 추구하는 교회가 우리 ‘사랑의 교회’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자랑스럽고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우리 사랑의 교회 주일학교가 대한민국의 미래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는 말에 있지 않고 실천에 있다. 이 지팡이를 다시 한 번 들고 우리 “사랑의교회가 한국교회의 미래입니다.” 하면 “할렐루야!!!” 하자. 이 기백이 넘치기를 바란다. 이곳이 여섯 개의 성경에 나오는 산 기도의 은혜와 한국교회의 산 기도의 은혜가 합쳐져 있기를 원한다. 어젯밤에 제가 1분 30초로해서 이 영상인 The Light 영상을 만들라고 했다. 어젯밤 제가 8시, 9시쯤에 요청했다. 그런데 못할 것 같았는데 해놓았다. 아침 새벽에 나오니까 이미 만들었다고 한다. 보자. 어떤지 보자. 영상을!!~~영상 감상,,,
-감사의 지팡이, 저는 뭔가 영적 에너지, 힘을 얻어야 해서, 어떻게 힘을 얻을까를 생각해보니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좋은 음악을 듣고, 어떤 사람은 영적교제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도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시종일관, 한 결 같이 힘을 얻는 것이 뭐냐면, 이 시간, 과거부터 이 순간까지 무조건 감사이다. 요시간 전까지 무조건 감사이다. 제가 부족하고 약한 것도 있지만 오늘 이 순간까지 온 것 자체가 감사이고, 나를 꺾지 않으시고 무너지게 하지 않으신 것이 감사한 것이고, 이 자리에 서서 이 말씀을 나눈 것도 감사한 것이고, 무조건 이 자리까지 감사이다. 그다음은 짐작된다. 내가 어느 시험을 받을 것인가? 담임 목사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 무언지? 이런 것도 짐작되고 어려운 점이 다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믿음으로 모험할 때는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있다. 말세에 믿음을 보신다고 하셨다. 이 두 가지가 늘 지금까지 감사, 믿음, 이 두 가지가 여러분들에게 딱 저 이상으로 각인되어 있어야 이와 같이 기백을 가지고 주님과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 다시 한 번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서 감사이다. 거기에 대한 것이 그냥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니다.
 
※제가 생각해보면 만23세에 내수동교회 대학부를 맡아서 할 때인데, 하루는 박희천 목사님께서 저에게 설교를 하라고 하셨다. “수요일 저녁에 오 전도사가 설교를 해”, 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가 알겠습니다. 어른들 앞에서 설교를 하라고 하셨다. 만23세에,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가 그래서 덥석 받아서 속으로 ‘박희천 목사님과 같이 설교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없이, 빌립보서 1장 1-6절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잊지 않는다. 나가자마자, “바울은” 시작했다. 그리고 설교 죽 썼었다. ㅋㅋㅋ 그때 생각했다. 완전히 죽 썼다. ‘내가 박희천 목사님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러면서, 제가 미국을 가서 ‘Lh 침례교회’라고 있는 김동명 목사님과 안일순 사모님의 교회, 섬기는 교회에서 어느 날 저보고 주일설교를 하라고 하셨다. 전도사시절이다.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오늘 본문 시편 103편 1-5절이다. 이건 외울 수도 있다. 그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다섯 가지 축복들, 하나님이 모든 성도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피에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 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가지고 우리는 도저히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데, 우리 실력으로는 안 되는데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 사람, 트랜스퍼 된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너무 감사해서 본능적으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여호와를 송축하라. 103편 1절로 잊을 수가 없다. 이게 저에게는 아마 그냥 저의 삶의 체화가 되고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기 때문에 이 시점까지는 감사이고 그 다음은 앞으로는 믿음의 모험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들고(지팡이) 오늘은 마치고 난 다음에 번호를 부를 것이다. 1-7000번까지 번호가 있다. 다 있는데 오늘 부르면 벌떡 일어나서 “감사와 믿음의 고백!!!” 이렇게 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외치는데, 그분들은 이 머그컵을 줄 예정이다. 당첨된 다섯 사람에게다.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리본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의 이름, 이것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처럼 그래서 좀 얼마 동안 우리 사랑의 교회가 이 산상교회 7천 기도용사, 우리 모두가 믿음의 모험을 하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가지고 한국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서 마음이 좀 힘들어도 얼마 동안 이것을 가지고 나오길 바란다. 이것을 갖고 들어오는 순간 무언가 이런 분들이 영적 기백이 생기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데 서초역에 이것을 들고 다 내리더라고 한다. 그걸 보는 순간 영적인 전율이 왔다고 한다. 아는 사람은 안다. 어제 한국의 빈 살만(사우디 총리-왕자)가 다녀갔다. 그 사람이 뭐 2,800조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사람보다 영적으로 더 부자이다. 한국하고 잘 지내는 것은 좋은데 더구나 이슬람에게 돈이 다 들어와서 또 이슬람에게 갈까 걱정도 되지만, 우리는 그것 하나도 부럽지 않듯이 우리는 기백을 가지고 우리 장래를 이끌어 가는 자가 도고 믿음 안에 올바로 서기를 바란다. 자 다시 한 번, 시편 103편 1절을 보자.
 
*시편 103:1,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자 무슨 말인가? 그냥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거룩한 본능이 생기는데 그 본능이 뭐냐?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 2절에 내 영혼아 송축하는 그 이유가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내 모든 죄악을 사해주신다.
-과거, 현재, 미래의 죄악을 다 사해 주신다. 다 사(赦)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둘째는 내 모든 병을 고쳐 주신다.
-모든 병, 모든 병을 고쳐주시고 이 모든 병 안에는 영적인 질병, 육신의 질병, 이 모든 질병 안에는 뭐가 들었냐면, 히스기야의 질병도 치유하시고 나만의 나병도 낫게 하시고 이게 다 포함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다 아픔들, 혈루 증,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된다. 우리에게는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을 보여주신다.
셋째는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신다.
넷째는 속량하셨다.
다섯째는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우셨다.
-우리가 예수 믿는 그 순간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우셔서 하나님의 왕자의 신분을 가졌다. 그래서 시편 8편 5절을 보면,
 
*시편 8:5,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너무나 놀라운 관을 씌워주시고, 그 다음은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시고, 영적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독수리 날개 같이 새롭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 설명할 시간이 없지만 이 다섯 가지가 여러분과 저에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러한 것이 자연스러워서, 영적 기백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도의 산에 올라가서, 복음의 영광위하여 쓰임 받는 거룩한 종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가 2022년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에 두고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시편 103편 1-5절이 다 통하는 찬송하나가 없을까를 생각해보니 찬송 138장 ‘햇빛을 받는 곳마다’ 이 찬송을 보자. 악보를 보면서 햇빛을 받는 곳마다!~~ 찬송하자. 아이삭워치라는 분이 작사한 곡이다. 1719년에 지었다. 지난 400여 년 동안 한 결 같이 조금도 지치지 않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인자와 긍휼을 만들어 주신 찬송이다.


 -이 찬송을 다 부르자. 다 마음속에 영혼의 햇빛이 비춰지기를 바란다. 본래 알았던 분은 거의 없다. 우리가 무식하기 짝이 없다. 굉장히 유명한 찬송이다. 미국의 오래된 교회들이 이 찬송을 한다. 온 교회가 오늘과 내일에 가사가 가정마다 그대로 접목되기를 바란다. 이 찬송이 평생 간다. 아이들과 내용을 보면 그 감사 찬송하도다. 이다. 어린이들도 기뻐서 구주를 찬송하고 이 고백이 현장이 되는 것이다. 이 순간 감사로 하늘의 은혜와 능력이 막 떨어지는 은혜가 있는 것이며 그것을 믿는 게 믿음이다. “주님께 감사해라. 주님께 감사해라.!!~~” 감사절을 놓고 하나님께 어떻게 했는지를 보자.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면서 지팡이를 들고 하자.

마무리이다. 시편 136편을 하겠다.

 
*시편 136:1-26,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6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8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9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0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1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2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제가 이스라엘 회당은 아무나 못 들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그 사람들은 구약만 믿어도 은혜를 받는데 우리는 구약 신약을 다 믿기에 더 은혜가 될 것이다. 오늘 위로부터의 은혜가 떨어지기를 바란다.
 
♣요약
우리의 모든 인생의 은혜를 주시길 원하며 지금까지 인도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자.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를 우리가 다 모르지만 그러나 예측할 수 있는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우리의 본능을 가지고 우리 인생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내 모든 병을 고쳐 주시고,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우셨으니 내 인생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해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새생명축제에 모든 영 가족이 부활절부터 품었던 4만명의 태신자들이 생명의 길, 구원의 길로 나아와서 결신하여 구언의 잔치가 되고 내일 추수감사주일을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올려드리며 회복에서 부흥으로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다음 세대가 건초더미 기도운동(The Light)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체험한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늘의 천사와 땅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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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11월 16일)

제목: "지붕에서 내린 사랑"
말씀: 마가복음 2:1~12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강도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김대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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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1~12,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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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규 부목사님
-딸 셋과 함께 아주 평온하게 화목하게 살 던 어느 가정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가정에 고난이 찾아온다. 둘 째 딸, 딸아이에게 원인 모를 병이 찾아오고 아이의 배가 아파서 점점 부풀어 오르게 된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검사한 결과 이 아이가 나을 수 없는 불치병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골에 살던 엄마와 딸은 어떻게든 치료를 해보기 위해 멀리 떨어진 보스톤의 한 병원에 찾아간다. 수많은 환자로 인해서 병원은 많은 사람이 있었고, 의사조차 만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엄마는 병원을 찾아가 호소하게 되고 불행 중 다행히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진료를 받게 된다. 비행기로 오고가는 거리가 멀고 또 병원비가 만만치 않고 마련해야 되는 병원비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보험 한도가 넘어선다. 많은 경제적 부담이 있지만 부모는 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큰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병을 보이고, 진료를 하고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그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더 이상 딸의 병은 차도가 없다. 엄마는 절망에 빠졌고, 엄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점점 신앙을 잃어가게 된다. 병을 고치지 못한 채 돌아온 아이는 어느 날 언니와 함께 그 아이는 집 앞 큰 나무에 오르게 된다. 그 나무는 그 아이가 아프지 않을 때, 늘 언니와 함께 오르며 놀던 나무이다. 나무에 오르던 중 나뭇가지가 부러지게 되고 아이는 나무 사이 구멍 속, 나무 아래로 추락하게 된다. 소방차가 출동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커다란 나무 중앙으로 떨어진 아이를 구조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아이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엄마는 다시금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한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 아이는 구조되었고, 의식을 잃은 아이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런데 병원으로 이송된 아이의 검사 결과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아이가 추락하면서 긁힌 상처 외에는 뇌에도 이상이 없고 뼈도 한 군데도 부러진 데가 없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추락 후에 검사 결과, 아이의 불치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것이다. 엄마는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게 되고 아이와 함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제가 드린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미라클 프롬 헤븐’이라는 영화의 내용이다.
 
오늘 이와 같은 기적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본문에 등장한다. 그곳은 가버나움이다. 오늘 가버나움 한 집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성경은 문 앞까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인가? 한 사람, 한 분 때문이다. 당시 유명인이었던 요즘 젊은이들의 말로는 핵 인 싸, 핵인싸 인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집 앞에 모여든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이유는 참 다양했다. 예수님에게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 예수님이 기적을 한 번 누려보기 위해서 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적의 현장을 내 눈으로 목격하자는 마음에 온 사람들도 있다. 또한 그 중에는 예수님의 허물을 찾기 위해 몰래 숨어들었던 서기관 같은 자들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친구와 같이 가자고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따라왔던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곳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도를 말씀하고 계신다. 설교를 하시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고 계신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놀라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또한 예수님의 말씀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적은 분명하다. 자신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심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셔야만 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권위 있는 말씀에 놀라며 그가 누구인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때 몇 명의 무리들이 도착한다. 네 사람이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 들것에 들어서 그 집 앞까지 왔다. 네 사람이 직접 자신들의 수고로 이곳까지 그 사람을 옮겨와야만 한다.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중풍 병(中風病)자(者)이다. 움직일 수 없었고, 말하는 것조차 힘든 사람이다.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은 이 네 사람이 누구의 강요나 의무 때문에 이 사람을 매고 예수님이 계신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다. 이 사람들은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이 사람을 스스로 메고 왔다. 이렇게 이 사람들이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이 중풍 병 걸린 사람을 메고 예수님이 계신 집 앞까지 온 목적, 기대는 분명하다. 예수님께서 침상에 누워있는 이 사람을 고쳐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이 이 네 사람과 중풍 병자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마주한 상황이 어떠했는가? 사람들이 문 앞까지 가득 들어차서 예수님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아주 난감한 상황을 대하게 된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보기를 드려볼까?
 
1번 사람들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2번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군중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간다.
3번 포기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찾아온다.
여러분 몇 번 선택을 하겠는가? 각자 선택한 것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사람들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예수님을 만난다. 여러분 쉽지 않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다 나올 때까지, 언제 나올지 기다리는 것, 장담할 수가 없다. 오늘 예수님이 뭐하고 계셨는가? 도를 말씀하고 계신다. 설교하시고 계신다. 여러분 우리는 보통 한 20-40분의 설교를 듣는다. 요즘은 길어도 한 시간 넘어가는 설교를 듣는 것이 쉽지가 않다. 어느 교회에서 한 시간 넘게, 두 시간씩 설교하면 사람들이 그 교회에 많이 가겠는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제가 어릴 적 상황을 떠올려보면 부흥회 때는 예전에 길게 설교하시는 목사님들이 계셨던 것 같다. 목사님들이 앞에서 설교하시는 것을 막 은혜를 받다가 30분이 넘어가면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시간이 넘어가면 입으로는 아멘 하는데, 머릿속으로는 목사님께서 ‘언제 과연 설교가 끝나시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끝나지 않으면 뒤에 있는 어머니들께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운다. 그리고 울게 만든다. 그리고 아이들을 풀어놓는다. 설교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어지고,,, 그런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설교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은 절대로 한 시간 이내에 끝내셨던 것 같지가 않다. 한 번 말씀을 전하시면 반나절씩, 몇 시간씩,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에 대해서 전하셨다. 그러니까, 오병(五甁)이(二)어(魚) 같은 기적이 있지 않은가? 때문에 예수님께서 설교를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은 이 사람들에게 아니다.
 
두 번째는 군중 속을 비집고 양해를 구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혼자 왔다면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왔는가? 이 중풍 병 걸린 사람을 네 사람이 메어가지고 왔다.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비켜 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각자 자기의 필요와 자기의 간절함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가버나움이란 동네가 예수님의 사역에 본거지와 같은 곳이다. 물론 가버나움 동네에서 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필경은 멀리서 불치병에 걸려서 극심한 아픔 때문에 아침 일찍, 자신 스스로, 또한 자녀들을 업고, 부모님을 모시고 먼 길을 걸어서 온 사람들도 아주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앞에 있는데 이 네 명의 사람들이 여기 중풍 병 걸린 사람이 있으니까 제발 길 좀 비켜주세요. 라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이 사람만 힘든 게 아니고 나도 힘들어서 왔으니까 순서 지키라고 분명히 이야기 했을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세 번째는 일단 포기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온다. 제 생각에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며 우리가 모두 선택할 수 있는 대안 같다. 중풍 병 걸린 사람과 함께 이곳에 열심히 왔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아주 많이 늦었다. 아마도 들것을 들고 오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늦었을 것이다. 늦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고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들이 포기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중풍병자에게 아쉽지만 다음에는 좀 더 일찍 먼저 와서 우리가 기다려보자고 하면서 돌아갈 수 있다. 여러분 그렇게 말하더라도 중풍병자는 이미 자기를 메고 여기까지 온 네 명이 사람들이 고마워서 충분히 감사한 마음을 표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1번도, 2번도, 3번도 아닌 창의적인 4번에 답을 누군가 제시하게 된다. ‘우리가 지붕으로 올라가자.’ 당시 가버나움의 집 구조를 보면, 외부로 난 계단이나 사다리가 지붕위로 나 있어서 올라가는 것이 가능은 했다. 하지만 이 네 명이 한 침상을 들고 올라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나무로 된 대들보 집을 덮고 더 빡빡하게 엮인 진흙으로 된 진흙 구멍을 뚫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자만 지붕위로 올라가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지붕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굉장히 힘들고 위험한 일이지만 지붕위로 올라온 이들을 진흙을 파내고 지붕을 뜯기 시작한다.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창의적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네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고 이 방법을 실행해 낸다. 하지만 이 지붕을 뜯어냈을 때에 여러분 지붕 밑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 말씀에 집중하면서 아멘! 아멘! 하면서 듣던 사람들의 머리로 흙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소동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들보 사이에서 줄이 달아내려지는 중풍 병에 걸린 사람을 보았을 것이다. 지붕위에 있던 네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향해서 지붕위에서 소리쳤을 것이다. “이 사람이 얼마나 불쌍하고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예수님,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우리를 이해해 주시고, 이 사람을 꼭 고쳐 주십시오.” 라고 예수님께 간청했을 것이다. 예수님과 별개로 이 장면을 밑에서 보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사람들을 향해서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험한 말로 이들의 행동을 사람들은 질책했을 것이다. 성질 급하고 또 왕년에 한 가닥 했던 분들은 욕하면서 협박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꼭 고쳐 주시기를 바랐을 것이다.
 
여러분 이 네 사람들, 정말 용기 있지 않은가? 이 사람들의 용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이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한 번 비교해 보자.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분들이 예수님께로 가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있다. 비단 새 생명 축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일에 예배를 드리면서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내 가족들, 내 친구들, 내 이웃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예수 믿고 구원 받기를 소망할 것이다. 우리 남편이, 우리 형제가, 우리 자녀가,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이곳으로 안아주심의 본당으로 함께 와서 예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 데려오는 것이 쉬운가? 어렵다. 쉽지 않다. 그들 교회 모셔 와서 예수님 만나게 하는 것 너무 힘든 일이다. 중풍 병 걸린 일을 예수님께서 계신 곳까지 데려왔지만 문 앞까지 들어 선 사람들로 인하여서 예수님 만나는 것조차 힘든 어려운 상황처럼,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 역시, 수많은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경우 ‘그들에게 교회 와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라고 입을 떼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여러분, 우리는 왜 이렇게 초청하고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어려운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작정한 태신 자들을, 우리가 마음에 품은 가족, 형제들, 부모님, 이웃들을 주님 앞으로 데려올 수 있겠는가?
 
이 네 명의 친구들 모습 속에서 답을 한 번 찾아보겠다.
 
첫 번째, 믿음이 있었다. 먼저 이 네 명의 친구들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자신 앞에 내린 중풍 병자를 만나셨을 때에 가장 먼저 하셨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무엇인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신 그들의 믿음이 무엇이었을까? 예수님께서 보신 그들의 믿음은 이 중풍 병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예수님에게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반드시 확실히 예수님만 만나면 된다. 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만일 그들이 100% 확신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붕까지 힘들게 중풍 병 걸린 이를 메고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조금의 힘든 수고, 사람들의 비난, 이 모든 것들을 충분히 감내해 낼 수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지붕을 뚫는 것, 사람들에게 욕먹는 것, 조롱 받는 것, 그런 것들은 자신의 아픈 친구가 예수님 만난 후에 생각해 볼 문제라는 확실한 생각이, 믿음이 이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이들만큼 확고한 믿음이 있는가?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는 믿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나의 인생에 대해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지만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확신이 들 것이고, 그 확신이 우리를, 여러분들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와 같은 확신이 없다면 누구에게도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왜? 나도 확실히 믿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안에 먼저 온전한 믿음이 있기를 소망한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인가? 온전히 맡기고 믿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그와 같은 분이신가? 그 믿음이 우리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이들이 중풍 병자에게 가진 마음, 그 사랑이 무엇인가? 이 사람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고, 이 사람의 간절함이 곧 나의 간절함이다. 여러분, 사랑은 나를 넘어서는 것이다. 사랑은 그의 아픔에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가? 부모가 그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 자녀가 아파할 때, 부모는 더 마음 아파하고 그 아픔이 온전히 내 아픔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자녀가 가슴아파하고 눈물 흘릴 때에 그 아픔을 끌어안고 나만 아픔을 바라는 것이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다. 나를 넘어서는 사랑, 하나님의 온전한 마음과 사랑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때에 안타까움과 간절함, 그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부어질 수 있기를 믿어야 한다. 여러분
 
세 번째는 문제의식이다. 이 네 명의 사람들은 중풍 병에 걸린 이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잘 알고 있었다. 이 병 때문에 생긴 어려움, 이 병 때문에 희망 없이 살아가야 하는 아픔, 심각한 절망, 그 절망감을 이 네 명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움직였고,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에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심각한 문제인지,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여러분 제가 묻겠다. 중품 병이 중한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없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인가? 그렇다. 우리는 입으로는 예수 생명 없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중풍 병 걸린 우리 가족은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다. 당장에 병원에 데려간다. 하지만 예수 생명 없는 가족들은 1년, 2년 5년, 10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주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중풍 병보다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수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유가 어디 있었는가?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 중풍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에 대한 인식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전도를 하는 것에 있어서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며 이 자리에 초대하는 것, 예수 생명을 이 본당으로 오게 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환경과 제약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어려움, 장애물을 뛰어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라고 분명하게 이야기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굳건한 믿음, 그 영혼을 향한 나의 간절한 사랑, 예수 사랑이 없는 것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이 우리 안에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이 중풍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첫 번째 하신 말씀하신 일이 무엇인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죄 사함을 선포해 주신다. 이 사람이 중풍 병에 걸린 것인지를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고 있다. 성경은 병에 직접적인 문제가 죄로 온다라고 하는 본문도 있다. 또 이 본문을 해석할 때에 이 사람이 중풍 병을 걸리기 전에 죄를 아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만났을 때에 죄 사함을 먼저 선포하셨다. 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땅에 모든 아픔, 모든 고통의 문제, 고난의 문제는 우리의 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 우리 사회의 고통, 현실의 어려움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은 회개(悔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풍 병자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가장 먼저 기대했던 이 중풍 병자를 위해 지붕을 뚫고 내려 보낸 이 네 명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기대했던 것, 이 사람과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보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가장 기대했던 것이 무엇인가? 이 사람의 병을 단번에 고치시는 예수님의 기적(奇蹟)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왜? 이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다급한 문제, 이 중풍 병자에게 가장 큰 고난, 그 고통이 바로 중풍 병이라고 모두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우선순위의 문제의 고통은 그것이 아니다. “이 중풍 병자에게 가장 급한 것, 가장 필요한 것,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죄(罪) 사(赦)함이다.” 라고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사람의 고통의 근원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죄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는 죄 용서(容恕)가 먼저 필요한 것이었다. 자신의 죄를 먼저 바라보는 것,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이 사람이 여러분, 죄 용서를 받지 않은 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기대대로, 친구들의 기대대로, 모인 사람들의 기대대로, 그의 육신만을 치료받고 돌아갔다면 이 사람의 삶은 어떠했을까? 오히려 중풍 병에 걸려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뻔한 인생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가? 왜 예수님을 아무도 보지 못하는 문제를 우리는 보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 인생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 새 생명축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에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 그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를 통해서 보게 될 것이며, 그 문제가 해결함을 받을 때에 그 인생의 진정한 자유 함을 얻게 될 것이다. 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가? 예수님을 통해서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 인생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 새 생명축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에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 그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를 통해서 보게 될 것이며, 그 문제가 해결함을 받을 때에 그 인생에 진정한 자유 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육신, 삶의 어려움, 환경의 어려움, 아픔,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회복시키신다. 중풍병자를 만난 예수님은 세 가지 명령을 하신다. “일어나 걸어라. 네 상을 가지라. 집으로 가라.”이다.
 
첫 번째는 일어나라이다. 회복이다. 주저앉은 곳에서 일어나라, 누워있는 곳에서 일어나라. 이것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얻을 수 있는 소망이다. 복이다.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생명이 없는 인생은 그대로 누워있을 수밖에 없다. 죽은 자는 움직일 수 없다. 살아있는 듯하나, 예수 생명이 없으면 죽은 자요, 죽은 그 인생은 의미 없이 누워있는 인생과 같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인생은 의미가 없고 허무하며 목적지가 없는 것이다.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움직일 필요가 없다. 열심히 움직이며 사는 것 같으나 그 인생을 늘 제 자리이다. 그러한 인생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생명을 주시며 “네 자리에서 일어나라.” 이다. 새 생명 축제에서 말씀을 들은 영혼들, 예수 새명을 얻게 된 영혼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날 줄 믿는다.
두 번째는 네 상을 가져라. 예수님께서 굳이 “일어나서 가라” 하시면 되시지, 왜 굳이 “네 침상을 들고 가라.”고 하셨는가? 여러분 그 침상은 중풍 병자에게는 아픔의 장소이다. 죽고 싶지 않은 장소이다. 자신이 의지했던 곳, 자신의 아픔이 있던 곳, 절망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제 그 침상은 더 이상 아픔과 절망의 장소가 아니다. 같은 침상이지만 이제는 자신이 당당히 들고 걸어갈 수 있는 침상이 된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변화가 무엇인가?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 여전히 문제는 곁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누워있지 않는다. 우린 더 이상 그곳에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머문 곳은 더 이상, 아픔의 장소, 절망의 장소로 남아있지 않는다. 우리는 그곳을 복음의 장소로, 희망의 장소로 바꿀 수 있다. 극복할 힘이 우리 가운데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곳은 절망의 장소가 아닌 희망의 장소이다. 수많은 삶의 고통의 문제 속에 누워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네 상을 들고 일어나라, “네 상을 눕지 말고 그것을 들고 나아가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당당히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능력, 이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복음이다. 그 복음의 능력을 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요, 새 생명축제임을 믿는다.
 
세 번째는 집으로 가라. 이제 그는 스스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집은 그에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늘 머물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 집을 벗어날 수만 있으면 벗어나고 싶은 곳이 집이었다. 그러나 이제 집은 그가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다른 이들과 같이 지치고 피곤한 일상에 쉼을 주는 곳이 되었다. 같은 장소인데 다른 장소가 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변화가 무엇인가? 같은 대상을 보고 같은 곳을 보더라도 벗어나고 싶은 곳, 그곳이 아닌 내가 가야할 곳, 내가 있어야 할 곳, 내가 쉬고 싶은 곳이 되는 곳이다. 소망의 장소로 다가온 것이다. 다른 의미로 내 삶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지체 없이 자신의 침상을 들고 일어났을 때에 여러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12절에 말씀을 함께 읽어보다.
 
*마가복음 2:12,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도무지 못한 모든 일을 모든 사람이 보게 되었고 모든 이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게 된다. 2022년 11월 22일부터 시작될 새 생명축제를 통해 도무자 보지 못한 이곳에서 일어나기를 믿으며 소망한다. 중풍 병자와 같은, 아니 그보다 더 지치고 절망적이고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기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신의 문제거리인 침상에 누워 이곳으로 올지라도 예수 복음 듣고 그 침상을 들고 당당히 일어나 생명을 소유하고 돌아가는 일들을 우리가 많이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일을 통해 우리 모두가 놀라게 될 것이며, 우리 모두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우리 사랑의 교회를 향하신 온전하신 뜻이며, 우리 교회에게 주신 온전한 사명임을 우리 모두가 꼭 기억해야 한다. 온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사랑의 교회의 축제가 될 기대를 기대하고 소망하며 지붕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을 달아 내린 자들처럼 우리 모두가 주의 사랑을 달아 내리는 신실한 주의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요약
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시는 주님을 생각하고 의지하여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만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주실 줄 믿고, 한 영혼의 안타까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사랑으로 우리의 가족과 친지들이 주님을 알지 못하는 것에 문제의식이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향하여 강한 촉매제가 되어야 함을 기도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님을 만나 옛 것을 떨쳐내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해야 한다.
-이들의 믿음은 장애물을 극복한 불굴의 믿음이었고, 위험을 감수한 담대한 믿음이며, 타인을 위한 이타적 믿음이요, 구원의 열매를 맺은 결실의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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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1월 14일 (774)

1.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동시에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에 가장 잘 맞는 표현은?

①불황형 흑자 ②쌍둥이 적자
③부의 효과 ④승자의 저주

2. 금리 상승기 가계부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출 상품이다. 변동금리로 받은 주택담보대출을 장기 고정금리로 바꿔주는 이것은?

①햇살론 ②디딤돌대출
③보금자리론 ④안심전환대출

3.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산유국 협의체다. 세계 원유 공급량을 좌우하는 이 모임의 이름은?

①WTO ②WHO
③OPEC ④OPEC+

4. 한국은행과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회의는 원칙적으로 1년에 몇 번 열릴까?

①6회 ②8회 ③10회 ④12회

5. 워런 버핏이 개인투자자에게 권장하는 투자처다. 투자 수익률이 특정 주가지수의 등락률과 거의 비슷한 점이 특징인 이 상품은?

①헤지펀드 ②인덱스펀드
③국부펀드 ④사모펀드

6. 다음 중 과세표준에 관계없이 세율이 동일한 ‘비례세’에 해당하는 세금은?

①소득세 ②상속세
③부가가치세 ④법인세

7. 빚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투자전략으로, 위험 부담 또한 큰 이 방식은?

①레버리지효과 ②립스틱효과
③네트워크효과 ④메기효과

8.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을 때 기업의 경쟁력이 더 강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는?

①레버리지효과 ②립스틱효과
③네트워크효과 ④메기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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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북한이 핵무기 가졌다면 우리도 핵무장 해야 할까?

북한은 핵무기를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지만, 북한은 핵보유국이라고 선전합니다. 이미 여섯 차례나 핵실험을 했고 핵탄두를 실어 나를 발사체도 개발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대한민국도 시급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핵무기를 억지할 수 있는 것은 핵무기뿐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것을 국제정치학에서는 ‘공포의 핵 균형’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꿈꾸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공포의 균형이라도 이뤄야 한다는 것이죠.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1~2년 정도면 자체 개발할 수 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국제사회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주요 국가들이 반대합니다. 미국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한국이 머물면 된다는 입장입니다. 일본과 중국은 ‘핵을 보유한 한국’을 상상하기 싫어하죠. 유럽연합(EU)은 ‘한국 핵=핵무기 확산’ 논리로 거부합니다. 모두 우리와 무역하는 거대 교역 상대여서 이들의 의사를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국제법상 한국이 합법적으로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제10조에 근거가 있습니다. 핵무장에 대한 찬반이 논술, 구술시험 주제로 나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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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앞세운 북한, 올해 31차례 미사일 발사
"우리도 핵무장"…'공포의 균형' 여론도
북한의 공세적 대남 도발 행태가 예사롭지 않다. 도발 위협의 빈도와 수위 강도가 매우 위협적이고 노골적이다. 올해만 벌써 미사일 도발이 30회를 넘어섰다. (중략)

예년에는 ‘말 폭탄’으로만 엄포를 놓았다면 올해는 ‘무력도발로 맞대응(①tit for tat)’하고 있다. 북한이 사실상 전술 ②핵 무력과 다양한 핵 수단을 보유한 것에서 나온 ‘무모한 자신감’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방과 중·러의 대립으로 인해 대북 제재가 불가한 ③국제환경도 또 다른 요인이다. 여기에 김정은 집권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인한 잠재된 내부 불만을 외부로 전환할 필요성도 한몫했다. 하지만 북한 매체는 미사일 발사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미사일 발사=민생 외면’이라는 내부 불만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핵 위협은 실질적 위협이고 7차 핵실험의 징후도 감지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북한의 추가 도발을 제어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북핵 폐기 가능성이 제로인 현실에서 ④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지난 3일 미국 워싱턴DC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북핵 억제 관련 동맹의 의지를 재확인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한·미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대응하는 기본 틀 마련’ ‘확장억제 수단 운용 연습의 연례적 개최’ ‘⑤핵우산 강화와 매년 핵 대응 훈련 실시’ 등에 합의했다. 사실상 ‘나토식 핵 공유’를 ‘한국형 확장억제’로 구체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B-1B 폭격기의 한반도 전개는 확장억제를 위한 것이다. 올해 북한은 전술핵 운용부대를 조직하고 핵 사용을 노골화하고 있다. ⑥공포의 핵 균형을 이룰 실효적 방책을 모색해야 한다. (후략)

-한국경제신문 11월 7일자 시론-
윗글이 강조하는 핵심 주장은 번에 있습니다. 바로 공포의 핵 균형입니다. 북한의 핵무기를 억지하기 위해선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거죠. 핵무기는 가장 큰 파괴력을 지녔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래식 무기를 갖춘 나라라도 핵무기가 없으면 핵보유국을 대적하기 어렵답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구를 파괴할 만큼 많은 양의 핵무기를 보유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서로를 먼저 공격하지 못합니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공포의 핵 균형’이라고 합니다.

글 앞부분에서 ①팃 포 탯(tit for tat)으로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합니다. 팃 포 탯은 ‘상대가 가볍게 치면 나도 가볍게 친다’는 뜻인데요. 한마디로 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맞대응 전략이죠.

북한이 핵 무력과 핵 수단을 보유한 상태라는 점을 ②는 강조합니다. 북한은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 때부터 핵무기를 가지려 했습니다. 김일성은 1968년부터 핵무기와 미사일 보유를 향해 움직였습니다. 1990년대 남북고위급 회담을 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고 핵비확산조약(NPT)에도 가입했습니다만, 뒤로 핵무기를 개발했습니다. 2013년 3차 핵심을 통해 핵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세 차례 더 핵실험을 했고, 결국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③국제환경상 북한을 당장 비핵화하기 어려운 단계입니다. 북한은 식량이 부족한 와중에도 세계와 담을 쌓고 살기 때문에 세계가 경제 제재를 해도 잘 먹히지 않습니다. ④ 북핵을 억제하는 방법을 찾는 게 우리로서는 매우 시급합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볼 곳은 우리이기 때문이죠. 해결 방법의 하나로 한국과 미국 정부는 ⑤ 핵우산력 강화에 합의했습니다. 한국이 자체로 핵무기를 개발해 보유하지 않는 대신 미국이 가진 핵에 의존하면 된다는 거죠. 제시된 시론은 핵우산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⑥북핵 위협 속에서 생존을 확보하려면 한국도 자체 핵을 갖는 방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는 거죠. 북한은 핵무장력을 앞세우며 올해에만 31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북한을 비핵화할 단계는 지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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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핵주권론 따라 우리도 개발하자 vs
국제사회가 반대…미국 '핵우산'으로 충분
핵 주권론은 핵무기 보유를 논의할 때 늘 등장하는 키워드입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북한도 핵무기 보유국임을 주장하는 시대에 핵무기를 갖겠다는 나라들의 의지를 막는 게 옳으냐는 겁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여러 개의 견해로 나뉘어 있습니다. 프랑스식 핵무장 논리를 알아 볼까요? 미국이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한 이후 소련은 빠른 속도로 핵무기 개발에 나섰고 1949년 8월 핵무기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프랑스는 소련이 핵무기를 가진 데 불안을 느꼈습니다.

프랑스는 핵무장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물론 미국은 프랑스의 핵무장에 반대했었죠. 프랑스는 “소련이 핵무기로 파리를 공격하면 미국 핵무기로 모스크바를 공격해줄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미국이 모스크바를 공격하면 소련이 곧바로 뉴욕으로 핵미사일을 발사할 것은 뻔했죠. 결국 미국은 프랑스의 핵 개발을 묵인했습니다. 한국도 프랑스 논리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한 편입니다.

핵우산론 논리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핵무기를 전부 가질 필요가 없고 미국이 가진 핵무기 체계를 간접적으로 제공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어차피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해야 하니, 미국의 강력한 국방력에 의존하는 것에 만족하라는 겁니다. 문제는 미국의 핵우산이 찢어질 위험성에 있습니다. 미국은 핵보유국을 조심조심 다룹니다. 가진 게 많은 미국도 무서운 거지요. 그래서 이란 등 다른 나라들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무척 애씁니다. 그런데도 인도,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막지 못했고, 지금 북한도 그런 상태입니다.

독일식 접근법도 있습니다. 소련, 영국, 프랑스가 잇따라 핵무기를 갖자 독일 역시 급해졌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늘 전쟁했던 나라들이죠. 독일도 프랑스처럼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세계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는 독일의 핵무장에 정말 반대했습니다.

미국은 핵우산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독일은 만족하지 않았어요. 독일은 제3의 길을 제안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핵 사용권을 미국과 공동으로 갖자고 했고, 미국은 받아들였습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갖는 방식보다 진일보한 것이죠.

핵확산금지조약(NPT) 제10조를 활용해볼 만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것은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10조는 ‘각 조약 당사국은 자국의 주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본 조약의 주제와 관련된 비상사건이 자국의 최고 이익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판단한다면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다. 그 당사국은 탈퇴 3개월 전에 모든 조약 당사국과 유엔 안보리에 탈퇴를 통보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10조가 말하는 비상사건에 해당합니다. 자국의 최고 이익은 대한민국의 생존이죠. 한국의 생존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위태롭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NPT 탈퇴는 성립한다는 논리입니다.

핵무장 반대론자들은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강대국들이 경제 제재 등에 나설 것을 우려합니다. 한국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핵무기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점을 들어 한국을 제재할 수 있다는 거죠. 무역과 금융 등 경제 전반이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현실론입니다. 이들은 미국의 핵우산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이라고 합니다.

북한과 끝까지 대화해 비핵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견해도 많습니다. 가장 평화적인 해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죠. 핵무기와 핵무장에 관한 한 찬성도, 반대도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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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11월 13일)-성찬식
제목: "부흥을 잉태하는 마음"
말씀: 창세기 42:12-15
대표기도: 백승준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헌금송(영광여성중창단-생명의 양식)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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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2:12-15,
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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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43장 14절부터 본문을 보겠다. 주보를 보라.

*창세기 43:14,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오늘은 성찬을 앞에 놓고 부흥 시리즈, 회복과 부흥의 세 번째에 ‘부흥을 잉태하는 마음’이 오늘 이 말씀이 부흥의 문을 여는 은혜의 비밀 패스워드가 되며 비밀 열쇠가 되길 바란다. 제가 이 부흥 시리즈를 하면서 오늘 야곱에 대해 마무리를 하는데 야곱의 인생 여정에서 커튼을 열어보았다.
 
여러분, 야곱의 인생 가운데 영적으로 언제가 최고의 순간인가? 야곱의 영적인 깊이의 최고의 수준이 도달할 때가 언제였는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생을 살아가는데,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어떤 높은 순간, 어떤 높은 고지에 올라갔을 때가 언제였을까? 형에서를 만나기 전에 얍복 강가에서 철야기도하고 철야 씨름할 때가 그때였을까? 아니면 세겜에서 집안 전체가 멸문치하를 당할 때, 절체절명의 위기 때에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엘벧엘 하나님을 경험할 때였을까? 뭐 그런 순간도 다 좋았지만, 제가 볼 때는 42장, 43장 이 부분에서 야곱의 영적인 최고의 순간, 최고의 신앙고백을 하는 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본문에 42장 43장의 배경은 야곱의 나이가 130세 때이다. 야곱은 그의 고백대로 창세기 47장에 보면, “내가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지극히 어려움의 세월을 보냈다.” 야곱이 지난번에 벧엘에서 서원을 지키고 아버지 이삭이 살았던 고향 땅에 헤브론으로 돌아온 이후에 그 다음부터 엘벧엘 하나님을 만나고 모든 것이 순적해지니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자기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인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고향에 돌아온 지 일 년 정도 지난 후에 야곱이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아들 요셉을 형들의 묘략 때문에 잃어버렸다. 요셉이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20년쯤 지나서 요셉을 그 20년의 세월을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 그 아픔을 부여잡고 고통을 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지난 2년간 그 애굽의 요셉이 총리가 되고 난 다음에 7년간 풍년이 지났고, 흉년을 7년을 지나게 되는데 그 7년 가운데 2년이 지나가는 중에 극심한 기근(饑饉)이 들어서 애굽 뿐만이 아니라, 고대근동 사회가 다 먹을 것이 없었다. 야곱에게는 수많은 가축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축들도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풍년 기간 동안에 창고를 만들어 쌓아놓았다는 그 정보를 듣고 자식들을 애굽으로 보내어 양식을 사오게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이다. 그리고 자식들을 보내는데 10명을 보내가지고 애굽에서 곡식을 사오게 하는데, 한 명은 예외였다. 한 명이 누구인가? 주일학교를 잘 나와야 한다. ‘베냐민’이라는 막내를 야곱이 너무 애지중지 했다. 야곱은 베냐민을 분신보다 더 사랑했던 아들이었다. 요셉까지 없으니까, 야곱게 사랑했던 아내는 라헬이었다. 라헬이 낳은 두 아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다. 요셉은 죽은 줄 알았고, 베냐민은 늘 품에 안고 있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 열 명이 애굽에 가서 곡식을 얻기 위하여 애굽의 총리 앞에 넓적 절을 했을 때, 요셉은 형들인 줄 단숨에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못 알아보았다. 애굽의 그 궁전의 위엄과 떨어져 있어서 못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모른 척하고 너희는 곡식을 사러온 것이 아니라, 정탐(偵探)하러 온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열 명의 형제들이 우리는 정탐꾼이 아니라고 정탐꾼이라면 어떻게 열 명의 형제들이 다 올 수 있냐고 하면서 그건 아니라고 한다. 가족 전체가 정탐꾼이 될 수가 없다고 하니까, 진짜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형들에게 동생을 물었다. 동생은 집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 그 막내가 있다고 했는데 그 막내까지 데려오면 내가 믿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시므온만 볼모로 잡아 놓는다. 보면서 ‘요셉도 뒤끝 작렬이다.’는 생각을 했다.
 
이 후에 곡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애굽에서 갖고 온 그 곡식을 가지고 얼마간 버텼지만, 곡식이 다 떨어지니까,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라. 곡식자루에다 요셉이 곡식자루에 돈 같은 것을 다 넣어버렸다. 그리고 야곱이 다시 자식들에게 곡식을 사오라고 한다. 그러자 자식들이 “아버지, 베냐민 데리고 가지 않으면, 곡식을 못 사옵니다.”라고 한다. 야곱이 베냐민은 내 생명처럼 아끼는데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나마 넷째 아들 유다가 인격적 신뢰를 받았다. “아버지, 제가 생명을 걸겠습니다.” 생명을 걸 테니까, 베냐민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한다. 이런 벼랑끝 상황에서 야곱의 결단을 보는 장면이 오늘 본문이다.
 
*창세기 43:14,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베냐민을 앞에 놓고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게 되리로다. 한다. 제가 보기에는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야곱의 인생에서 이 순간만큼 장엄한 시간이 없다. 이 야곱의 벼랑 끝 한계 상황에서 고백하는 이 내용은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것은 자포자기의 고백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완전히 빼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는 절대적 신뢰의 결단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한 마디로 야곱이 하나님께 전적 위탁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시는 대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라헬의 큰 아들 요셉도 잃고 이제 마지막 남은 베냐민만 겨우 살았는데, 44장 뒤에 보면, 아버지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있다. 베냐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버지의 생명과 묶여 있다며 서로 하나다. 라고 그렇게 목숨처럼 사랑하는 베냐민을 잃게 되면 잃겠다. 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 같은 베냐민을 포기하는 포기선언이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자식을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끝까지 붙잡고 있던 것, 이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제가 야곱의 신앙여정 가운데 영적으로 최고의 순간이 이 순간이 아닌가 한다. 피 말리는 아픔이 있고, 자신을 죽이는 아픔이 있고, 그리스도께 전적위탁이다.
 
지난 한 주간 우리는 제자훈련 세미나를 했다. 전 세계 14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과 씨름을 하는데, 제자훈련은 단순히 교회 성장, 반복이 아니고, 목회의 본질이며 교회 론이다. 교회가 뭐냐? 교회는 ㅔ상을 향하여 부름 받은 특권이 아니라, 안주하지 말고 세상을 향하여 보냄 받은 제자들, 사명자로 키워야 하는데, 어떤 전략적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자의 전략적 표준, 그 표준이 없다면, 이탈하게 되고, 이탈하게 되면 어긋나게 되고, 어긋나게 되면 사역의 열매가 없다. 자기 잘못된 방향이 된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마음인데 온전한 제자의 표준, 넘버원이 무엇이냐면, 전적 위탁이다. 종의 마음, 증인의 마음, 다 필요하지만 전적위탁의 마음, 첫째이다.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려면,
 
▷부흥을 잉태하는 마음- 첫 번째 전략적 기준이 전적 위탁이다.
그래서 야곱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자기 버림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이나 저의 인생에 반드시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의 고백이 없는 생활은 사실은 다 껍데기이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의 고백은 그냥 겉만 좋은 것이다. 제가 저도 어려움을 겪어보니까, 조언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냥 편하게 살고 잘나가고 좋은 평판 받고 자기 이름 지키는 분들이 조언하는 것과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하는 죽음을 통과하는 분들의 조언이 달랐다. 저는 죽음을 통과한 분들의 기도가 없었으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설교를 못한다. 그러면 죽음을 통과했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이게 평생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하는 고백을 한 번도 안했다면 피상적이고 퇴패 적인데, 그냥 신앙생활하고 적당히 자기 힘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신앙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는 것인 줄 확신한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면서 이것을 체험해야 한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이 고백을 가지고 나중에 이 보혈의 잔을 높이 들 때에 오늘 주님 은혜 주셔서, 정말 하늘에 불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고, 영적으로 깊은 은혜를 체험하기를 바란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이구야!! 너무 쎈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게 쎈게 아니고 신앙생활의 정상적인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여러분과 제가 주의 신앙이 더 깊어지고 목자의 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엘리엘리 사박다니 하나님이 나를 어찌하여 버리셨나이까?” 그런 우리의 죄악이 깊기 때문에 주님의 그 고통의 외침이다. 주님은 결국 “내가 내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결국은 우리가 복음적 깨달음은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입장에서 내가 내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일맥상통하고 있다.
 
제 생애 가운데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책을 통하여 좋은 영향을 끼친 분 중에 한 분이 ‘폴 드로니에’이다. 스위스의 좋은 신학자이다, 신앙인이었다. 그는 기독교와 심리학을 통합했다. 그리고 그가 말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인격의학’이란 말이 있다. 인격의학이란(Medicine of the person), 이것을 인격의학을 이야기 하면서 세계 의학계와 크리스천 상담학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고,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어릴 적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졌지만 그의 삶에 예수 믿겠다고 회심만큼이나 그의 신앙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었다. 그의 고백이다.
-30년 전 나를 바꾸는 새로운 발걸음을 내 디뎠다. 그때까지 나의 신앙은 지적인 면이 강하였다. 하나님 그리스도, 우리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지적인 면을 중시하는 사고의 세계를 갖고 있었다. -‘폴 투르니에-

-오늘 앞 예배는 지성인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이런 분일수록 우리가 지성신앙이 더 많다. 그것도 귀하다. 그런데 ‘폴 드로니에’가 이야기 한 것은 지성중심의 신앙은 늘 한계에 부닥쳤다. 그래서 지성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영성의 은혜로, 지성에서 영성으로 옮기는 큰 계기 있었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이런 글을 썼다.
 
내 신앙에 없던 것이 내 뜻을 포기하고 매일 실제의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나는 어느 날 스위스 제네바 근교 어느 숲으로 가서 전심으로 진심으로 나를 포기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날 하나님과 맺는 포기의 약속은 내 인생길에 수많은 굴곡의 역사 가운데 최고의 버팀목이 되었다.
-‘폴 투르니에-’



-지성중심의 신앙이 다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인격적인 소위 인격의학, 자기를 포기하는 전적위탁의 선언이다. 오늘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와 같다. 그가 남은 인생에 최고의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이며 제네바 숲 속에 가서 나를 포기하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 그의 신앙을 질적으로 한 단계 올라가게 한 것이다. 이 내용이야 말로 폴 드로니에의 하나님의 전적 위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단조로운 신앙생활을, 왜 생기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얼까? 왜 결혼 생활이 권태인가? 자기가 갖고 있는 보화를 내려놓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위탁하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모든 권태의 신앙에서 생기의 신앙으로 거듭날 수가 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에서도 말씀하신다. ‘자기의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자기 생명을 잃고자 하는 자는 얻을 것이다.’ 십자가 보혈의 사건이 우리가 경험되는 것인데, 여러분, 이런 위탁의 은혜가 주님 앞에 진실 되게 있을 때 우리의 권태롭고 메마르고 단조롭고 답답한 이 신앙생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줄 믿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보화를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무슨 뜻인가 이냐면, 내가 중요하다고 움키고 쥐고 있는 것을 힘 빼기를 통하여 내려놓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한다는 것이다.
 
야곱이 베냐민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려놓을 수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을 내려놓은 것이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삶이 메마르고 답답한가? 왜 그런가? 왜 풍성한 신앙의 단비를 경험하지 못하는가? 복잡한 것 다 정리하면 주님 앞에서 저와 여러분의 포기각서를 못써서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폴 드로니에’가 제네바 숲 속에 그 기도의 장소에 가서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을 하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드릴 때, 이 메마른 신앙생활을 탈피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제네바까지 안 가도 된다. 오늘 성찬식일 때, 하나님의 은혜의 품안에 전적으로 위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적 위탁이란, 하나님 앞에서 전적위탁이다. 오늘 이 잔과 떡을 기념하면서, 우리가 전적 위탁이 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실 것이다. 여러분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움켜쥐고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힘 빼기 작업을 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언제나 예!!!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해가 안 가겠지만 고린도교회가 하도 답답하니까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말씀한다.
 
*고린도후서 1:18-19,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지금 이야기 한 그 내용이다. 예, 만 있다는 것이다. 힘 빼기 작업이다. 잃으면 잃게 되리라. 그렇게 한 뒤에 전적 위탁의 결과는 무엇인가? 자신의 생명과 같은 베냐민을 내려놓는 그 야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창세기 43:14,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마침내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야곱이 자기 입으로 고백을 한 번도 못했다. 처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의 입술로 처음 고백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지성으로 알던 하나님을 드디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진정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진정한 자유 함을 얻게 되었다. 자유 함이 찾아왔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성찬을 통하여 진정한 자유 함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내면 적 변화와 함께 자유 함을 가지고 변화가 따라온 것은 무엇인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긴 야곱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본문 뒤에 보면 애굽에 갖다온 아들들이 뭐라고 하냐면, “아버지, 요셉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잃으면 잃으리로다. 라고 진실로 고백할 때, 요셉이 아직 살았다고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은 45장에서 보면,
 
*창세기 45:26,
26 알리어 이르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더니.
-그걸 믿지 못해가지고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볼을 꼬집으면서 꿈이냐 생시냐 했다. 그런데 어떻게 믿었냐면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 믿었다.고 한다. 요즘 말하면 금장 딱지 롤스로이드를 보낸 것이다. 그제서야 기운이 소생했다.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다시 얻었다. 거의 부활을 체험했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라고 하나님께 완전히 의탁했더니 잃었던 자식까지 찾게 된 것이다. 여기서 닭이 먼저이냐? 닭 알이 먼저이냐? 라고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런 일을 기대하기 때문에 전적 위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순전하게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이 그것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하신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 하나님은 내 전적 위탁이 필요 없다. 내가 전적 위탁을 하면 여러분과 제가 전적위탁을 하게 되면 내가 좋은 것이지 하나님이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순전한 마음으로 전적으로 위탁을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을 다시 돌려주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곱은 너무나 은혜가 되어서 45장 28절에
 
*창세기 45:28,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그리고 내려가서 ‘족하도다.’ 라고 한다. 진심으로 ‘잃으면 잃으리로다.’라고 하나님 앞에 하면 하나님은 ‘족하도다.’는 그런 단어를 주실 것이다. 여러분 이게 믿음이다. 드디어 부자 상봉을 하게 된다. 그리던 요셉을, 내면은 하나님을 통하여 자유 함을 얻고, 그의 열매는 이제 부자는 끌어안고 한 참을 울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창세기 46:30,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 ‘죽어도 족하도다.’ 한다. ‘잃으면 잃으리로다.’라고 전심으로 하면, 우리가 믿음이 있으면, 죽어도 족한 것이다. 지금 죽어도 족하다. 지금 오늘 성찬을 통하여 이런 은혜가 되길 바란다. 17세에 잃어버린 요셉이 이 순간 39년의 세월이 흘렀다. 39년의 중년이 되었다. 야곱은 23년 동안 17세에 잃어버리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 될 때가 30세이니까 13년에다가 7년 풍년이 지나고 2년 흉년이 더하고 일 년이 지났다. 23년이 지난 것이다. 야곱의 23년 동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요셉도 17세 때는 철부지였다. 자기 마음에 있는 생각을 품지 못하고 형들에게 막 이야기 하다가 시기 질투를 받았는데 그 때 하나님이 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를 먼저 보냈다고 이제는 형들을 위로하는 큰 그릇이 되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이 부흥인 줄 믿는다. 그리고 요셉은 젊을 때부터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아마 요셉이 감옥에서 자기가 꿈 해석해준 사람이 2년 동안 아무 끔쩍도 안 했을 때, 하나님 앞에 섭섭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했다. 만약 평탄했으면 요셉은 애굽에서 감옥에서 하급 관리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보디발의 집안에서 그렇게 모함 당하고 어려움도 있었을 때, 화가 나서 난리 치지 않고,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그렇게 하니까 가정 총무 정도의 수준에서 하나님께서 이 시간, 형들 앞에서 형들에게 복수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라는 마음이 있어서 아마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그런 요셉의 환경 환경이 늘 추워졌지만, 그걸 잘 감당을 안 했으면, 그 당시 고대 근동에 큰 기근이 있을 때에 자신도 형제 가운데 끼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 야곱은 그가 부흥을 경험하고 유명한 49장 22절에 자식을 축복할 때, 특별하게 요셉에게
 
*창세기 49:22,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주위를 다 살렸다. 자식 교육에 있어서 답답한 게 많다. 자녀를 양육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는 성공하기 위하여, 행복을 위하여 자식을 키우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 대부분의 교육의 목적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하여, 부모와 자녀 간에 친밀한 관계를 가지 위해서, 남편과 아내의 다리역할을 하기 위하여, 혹은 노년에 부양할 노년을 위하여, 그것 다 일리가 있다. 그래서 행복하고 성공하고, 그러나 여러분 자녀 양육은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전적으로 자녀를 위탁하는 자녀로 키워야 한다. 요셉처럼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해야 한다. 그리하려면 우리 자녀들 그런 환경을 갖게 해야 한다. 야곱의 가장 문제 중에 하나가 편애였다. 하나님께서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하고 이렇게 용광로로 집어넣는 이유가 뭐냐면, 야곱의 엄마가 리브가가 이삭은 에서를 더 좋아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더 좋아했다. 그 편애가 야곱에게도 그대로 흘렀다. 그것을 요셉과 베냐민을 처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라는 환경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전적 위탁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요셉의 아들의 축복도 누리시길 바란다. 우리가 그런 꿈을 가지고 성찬에 참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토비새에 교회를 데리고 나오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요약
십자가의 보혈의 잔을 높이 들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였으니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는 전적 위탁을 하여 시대의 요셉을 키우는 평생이 되고 내 인생의 힘을 빼 내는 포기각서를 하나님 앞에 내어 드릴 때에 내가 애지중지 하던 베냐민을 해결해 주신 것처럼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로 하나님 앞에 나도 전적 위탁을 하여 순전한 신양생활로 주님 기뻐하시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요셉은 자기에게 절하는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모른 체하고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치면서 혐의를 벗으려면 막내인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했다.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 형들이 베냐민에게는 어떻게 대했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형들의 잘못을 기억케 함으로써 회개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사흘 간 가둠으로써 형들의 본심을 알아보고 과거를 반성할 시간적 여유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형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수 있었고 더욱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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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새벽기도회(주후 2022년 11월 12일)  
제목: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말씀: 마가복음 4:38
대표기도: 이윤기 부목사님(대학부)
말씀읽기:  하지훈 형제(대학부), 신지수 자매(대학부)
찬양인도: 대학부


설교자: 일라이저 로라 목사님(루마니아 Rock Of Ages교회)-유이상 부목사님(통역)
 

ㅡㅡㅡㅡㅡㅡ

*마가복음 4:38,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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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교회에서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라커 베이지스’ 라는 교회에서 담임을 하고 있다. 사랑의 교회에 와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심에 감사드린다. 이곳은 굉장히 거룩한 곳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 장소에서 이 교회로부터 정말 엄청난 그런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사역을 하심에 감사를 다시 드린다. 세상에서 제자를 훈련을 하는 제자를 삼는 이 귀한 무브먼트를 이끄시는 것에 너무나 감사드리고 싶다. 이 자리에 제가 설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너무나 큰 영광이며 너무도 감사하다. 오늘 이렇게 강단에 말씀 나누게 됨에 감사하다. 사랑의 교회의 믿음은 전 세계에 많은 곳에 참 유명하다. 사랑의 교회 오기도 전에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의 교회의 믿음에 대해서 익히 들어왔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이 교회를 방문할 기회를 주시겠지’ 하면서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이곳에 앉아서, 또 이렇게 이 강단에 서서, 이 예배에 참석하며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게 될 줄 몰랐다. 2019년에 그때 특새였다. 이번에 초대를 받았는데 오게 되었다.

 
저는 이 세상에 천상과 같은 곳이 두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과 같이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천국과 같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 짧게나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는 제가 어떻게 생각했느냐면, 제 아들과 제 아내만 데려올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다. 이것은 배울 수도 없는 것이고 이 천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와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토비새, 특새에 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계속 기도를 했고, 언젠가는 이 기적의 장소에 꼭 올 수 있기를 기도를 계속 했다. 그런데 2개월 전에 한국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앞에 보니 한국에서 전화가 온다. 라고 나와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보이스피싱을 한국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전화를 받으면 안 되겠다. 아마 돈 달라고 할 것이야!’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번 전화를 제가 받지 않았다. 그런데 문자가 왔다. 한국에서 ‘나는 아무개 목사인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제 아내에게 갔다. “여보, 사랑의 교회에서 전화가 온 것 같아” 라고 전화가 다시 올 테니 빨리 받으라고 했다. 제가 받는 법을 잊을 정도로 기뻤다. 그리고 칼 세미나에 초청을 받게 되었고, DMGP, 오늘부터 시작되는 DMGP(Disciple Making Global Partner) 컴퍼런스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전전주에 있었던 특새를 참석한 은혜를 맛보았다. 제 스케쥴이 원래 꽉 차있다. 몇 분만 달라고 스케쥴을 다 클리어 하겠다고 몇 분 만에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다 조정되었다. 제 아내는 여기 컴퍼런스도 가야되고 저쪽에도 가야되는데 이거 어떡 하냐고 하면서 우리가 다 클리어 하게 되었다. 어쩔 때는 일을 하기 때문에 돈을 벌면서 섬겨야 하는데 그런 조차도 다 클리어 했다. 특별부흥회를 통해서 5일간 정말 천상을 경험하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칼 세미나에 오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말했다. 이 칼 세미나 5일간을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위대한 제자 만드는 다시이플 메이커가 될 것이다. 라고 했다. 제가 정말 뭐해 등록을 하는지 모르고 들어갔다. 저는 살아남은 것 같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는 것 같이 ‘DMGP’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제가 감사드릴 것이 많이 있지만 제 소견에는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칼 세미나에서 얻은 것, 제자 훈련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목자의 심정이 굉장히 중요함을 깨달았다. 저는 제 직업은 심리학자이다. 사람을 읽어내고 사람을 만나서 카운셀링하는 잡이다. 많은 친구들이 이야기 한다. 나는 읽지 말라고 한다. 기분 나쁘게 읽으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칼 세미나 저녁에 모든 날짜에 걸쳐서 특별히 담임 목사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목자의 심정이 굉장히 중요하구나! 라고, 굉장히 느꼈다. 이것은 어떻게 목자의 심정이 있는 척,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집에 돌아와서 배우자를 “당신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라고 물어보라는 것이다. 제 방으로 돌아가서 제 아내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제 숙소로 돌아와서 “당신은 내가 진정한 디사이플 메이커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저를 쳐다보면서 오늘 이야기 하면서 정말 잠을 못 잘 텐데 각오가 되어 있냐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당신은 진정한 디사이플 메이커입니다. 당신이 나를 제자훈련 시켰잖아요!” 라고 제 아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벌써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날...
 
2008년에 제가 벌써 여러 해 목사로서 섬겼던 해이다. 그때 제가 번 아웃(탈진)된 상태였다.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것이 사역자의 모습인가?’를 생각하면서 여기서 ‘이제 그만두겠다.’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제가 ‘설교만 하는 그냥 기계였다.’ 라고 느꼈다. ‘내가 이것을 하려고 과연 목사를 한 것인가? 라고 생각도 했다. 이것이 다라면 나는 좀 쉬는 것이 어떨까?’를 생각을 했다. 한 달 동안 쉬면서 기도하면서 나의 갈 길을 찾기를 고민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진정한 제자를 만드는, 제자를 훈련시키는 저의 친구 한 명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제일 처음으로, 첫 번째로 과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를 제대로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제가 맨 처음에 접한 아이디어는 제자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가? 였다. 그 당시에 오늘 읽었던 본문 마가복음 4장 38절을 제가 되새기면서 많은 변화를 체험했다.
 
*마가복음 4:38,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베개를 베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워서 선생님이여,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도 아니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했다. 우리가 정말 가라앉게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은 상관도 안하십니까? 그것이 진정한 의문이다.
 
제가 이 사역을 하면서 정말 물 안에 가라앉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이 있었다. 제가 심방도 많이 하고 설교 준비도 많이 했다. 그러나 그 사역 안에 제자를 훈련시키고 제자를 만들어내는 사역은 없었다. 그리고 이 십 년 동안 사역하는 동안 2008년이 될 때까지 이 질문을 주님께 많이 던졌다. “하나님, 예수님, 내가 이렇게 일하는데 저를 상관을 하십니까? 제 이름이나 아십니까? 제가 누군지는 아십니까? 이 교회의 목사인 제가 기는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 저는 지금 물에 가라앉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제 사무실에 들어와서 이제 그만하라고 너무 많이 한다고 작작해도 된다고 했다. 성경 안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논의 하고 계시는 부분이 있나를 제가 찾기 시작했다. 마태복음 8장과 마가복음 4장에 유일하게 성경에서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다는 말이 나온다. 제자들이 자고 있었던 표현은 많이 있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제자들이 골아 떨어졌었다. 그렇지만 이 본문에서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광풍을 체험하고 있었다. 요즘에 이런 시기 때에 사탄이 우리에게 공격해오고 있는데 유럽이 한국과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면 크리스천에게는 아무런 광풍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말을 사탄이 한다. 제가 그것을 가르친 적도 있다. 예수님만 잘 따르면 문제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오늘 이 본문, 전 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야기 하신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라고 선포하신다. 제자들이 생각이 아니었고 예수님께서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선포하신다. “저기 수영해서 가자.”라고 하시지 않는다. “비행기 타고 가자.” 라고 하지 않으신다. “잠수함을 타고 물 밑으로 가자.”라고 하지 않으신다. “나를 따르라 우리가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다. 자기네 대한 상황은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구세주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이런 광풍이 찾아올 때가 굉장히 많이 있다. 우리의 삶이 가라앉는다고 생각할 때가 있고, 우리의 나의 배가 가라앉는다고 느낀다. 그리고 주님은 어디 가셨는지 모르지만 눈에 안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는 하는데 우리 주님께서 우리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라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성경에 많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가 많은 이런 광풍들이 다가오는데 우리 자신 때문에, 나로 인해, 당하는 그런 광풍들이 있다. 우리가 순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광풍을 일으킬 때가 있다. 바로 이런 케이스가 요나의 케이스이다.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반대방향을 향해서 간다. 그런데 배가 가라앉기 시작한다. 두 번째 광풍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런 광풍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눈을 뗄 때, 하나님은 광풍을 보내시는데, 우리를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리려고,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광풍을 보내실 때가 있다. 그리고 세 번째의 광풍은 사탄이 보내는 그런 광풍이다. 사탄이 보내는 광풍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광풍이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성경은 강조한다. 그래서 그들이 취했던 상황은 광풍이 몰아 닥쳤는데 구세주는 주무시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 것만 같다.
 
제가 두 달 전에 우크라이나에 사역을 하러 다녀온 적이 있다. 우크라이나에 난민 사역을 하는데 제가 그들을 볼 때 이런 상황이었다. “하나님, 이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상관은 하십니까?” 제가 우크라이나에 가서 사역을 여러 번 했는데, 우크라이나에 갈 때, 첫 번째 갈 때에는 제 아내에게 거의 간다고 이야기를 안 했다. 2월 24일 날, 어떤 큰 사건이 있었다. 정말 제 삶이 크게 흔들리는 사건이었다. 우크라이나 난민이 한 백만 명 정도가 지금 루마니아에 들어와 있는데 몰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제가 이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이들을 섬겨야 되지 않겠냐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힘을 모았다. 워라디아를 지나가는 그런 난민들을 위해서 하루에 8명의 음식을 준비해서 이들을 대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섬길 수 있으면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찾아가야 되지 않겠느냐 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저의 차에 여러 가지 물품들, 식용품을 넣어서 우크라이나를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같이 반포대로 121번지 같은 번지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GPS를 위성에 콜드 맵 넘버, 그것만 보고 가는 것이다. 제가 우크라이나에 국경을 넘어 들어갔을 때, 아! 잘못한 것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이것을 말 할 것인가? 아니 말을 하면 안 되지, 하면서 계속 가기 시작했다. 저를 제자훈련 시킨 목사님한테 제가 문자를 보냈다. “만약 앞으로 48시간 내에 연락을 받지 못하면 제 아내에게 말해 주세요. 남편이 없다고, 죽었다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재혼을 하던지, 잘 알아서 사시라고” 말해 달라고 했다. 제가 국경을 넘는데 군인들이 제 가슴에 빨란 레이저 포인터들이 여러 개가 있었다. 영화 같았다. 군인이 저에게 말했다. 어디가냐고.. 모른다고 대답했다. 전쟁 중에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통과 시켜 달라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뭐를 싣고 가냐고 물어서 우크라이나에서 필요한 여러 물품들과 기구들을 싣고 간다고 말했다. 이 국경을 넘어 들어가면, 죽을 것 같고 다시 살아오지 못할 확률을 당신은 아냐고 저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다시 생각을 해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거기서 처참한 모습을 여기서 설명을 못할 그런 처참함이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향해서 많이 기도를 한다. 거기 갔을 때 교회에 많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수백 명의 그러한 난민들이 작은 교회에 몰려 있었다. 제가 이 음식을 나누어줄 때 엄마 아빠들이 저에게 와서 이야기를 한다. 어린아이들이 30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한다. 어른들한테는 당신은 앞으로 30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것은 어느 정도 캐치할 수 있다. 우리 같이 살을 빼야 하는 사람들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 살짜리, 네 살짜리에게 30시간 동안 너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다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제가 거기 갈 수 있는 그런 도움 밖에 없었다. 제가 어떻게 돌아올지에 저에게 답이 없었다. 그런데 그 때 제 은행에서 저에게 문자가 하나 왔다. 유니온 파운데이션에서 2천불을 저에게 보내주었다는 문자였다. 라는 그런 문자였다. 제가 유니온이 누군지 몰랐다. 이것 지금 실수인 것 같은데 당장 돈이 필요하니까 우선 쓰고 보자. 왜냐면 집에 다시 돌아와야 하니까, 집에 가서 은행을 컴퓨터를 통해서 보니까, ‘사랑의 교회’에서 왔다는 것을 제가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을 우린 섬긴다. 이런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능하신 분이시고 행하시는 분이시다. 제가 만약에 우크라이나에 가지 않았으면 아마 그 아마 2천불이 오지 않았을 수 있다. 솔직히 이런 경험을 제가 못했을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교회들이 저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수님을 앞에 두고 제자들의 어떤 행동, 그것을 똑같이 해야 된다. 라고 저는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다. 그렇지만 거기 계셨다. 우리의 해법은 그 주님을 향하여 달려 나가는 것이다.
 
오늘 이 아침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전 드린다. 예수님을 향하여 우리가 달려갑시다. 우리 앞에 이 미래에 펼쳐질 그 예수님이 하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가 달려 나갑시다. 사랑의 교회에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이 앞으로 아프리카에서 유럽에서, 미주에서 어떻게 사역하실지, 어떤 역사를 일으키실지 기대하면서 달려 나갑시다. 저는 전 세계에 많은 나라들을 방문했다. 많은 교회를 갔다. 유럽의 교회가 죽고 있다.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새로운 무브먼트가 운동이 필요하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터치하셔서 우리가 다시 부흥을 체험하는 그것이 꼭 필요한 그러한 시기이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런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나누고 마치려고 한다.
우리도 그렇게 처할 때가 있는데 제자들은 주무시는 주님과 그리고 광풍이 몰아닥치는 것을 본다.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 그렇지만 더 영광스런 것이 있다. 그들의 구원이다. 성경이 기록하길 예수님께서 일어나신다면 예수님을 맞 대항할 그런 적은 아무도 없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신다면 예수님을 이길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무도 없다. 여러분들께서 예수님과 함께 사인이 있다면 예수님 편에 있다면 그 누구도,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공격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 이 아침 새벽에 모였는데 기도할 때에 예수님을 하나님을 경배할 때에,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우리를 기도하는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셔서 우리를 위해서 일어나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일어나시면, 우리 삶은, 우리의 교회는, 이 나라는,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부흥이 일어날 줄로 믿는다. 그렇지만 잊지 말라. 많은 그런 큰 고통과 광풍이 여러분에게 겁을 주지만, 그런 모든 광풍들은 예수님의 발아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저는 항상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루마니아의 공산권 산하에게 태어났을 때, 공산권 산하에서 오랜 세월을 거쳐 자랐다. 네비게이터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아버님과 제자훈련을 하곤 했다. 이 거실에서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의 화장실에서 제자훈련을 했다. 거기 비밀경찰에 의해서 항상 쫓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화장실에서 예배했다. 도청장치가 있기 때문에 조금씩 하다가, 샤워도 키고, 또 변기의 물도 내리면서 성경 공부를 그 안에서 했다. 제가 이 어린 아이로서 절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가 그 다음날 학교를 가야되는데 많은 놀림을 받는다. 많은 경우 놀림을 당하고 친구들에게, 저를 보고 따귀를 때리기도 한다. 우리 부모님의 믿음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자랐다. 내가 크면 ‘나는 절대로 크리스천이 되지 않을 거야.’ 라고 ‘내가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어서 정말 잘 살 거야.’라고 결심을 하면서 저는 소년기를 보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것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오늘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서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어나실 수 있다고 여러분들과 저에게 나누고 있다. 우리의 상황을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다. 나의 교회를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다.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어나 주시길 기도합시다.
 
♧요약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며 부르짖어 기도하고 인생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을 뛰어넘어 새로운 부흥의 지평을 열어가는 신대기가 되며, 제 119기 제자훈련 세미나를 성료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기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깨달아서 모든 참가 목회자 들이 교회를 섬기는 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길 소원한다. 역사하심을 친히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역사하심을 믿는다. 우리의 마음을 향하여 우리의 삶을 통하여 역사하심을 믿고 우리가 지금 기도하면서 원하니 우리를 위하여 일어나실 줄 믿고 순종해야 한다. 교회와 직장과 가정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며 크고 놀라운 역사 가운데 물 떠온 하인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을 섬길 때 기쁨과 열매가 맺는 은혜가 되기를 소원한다.

-인생 항로에는 잦은 풍랑이 있는데 그러한 풍랑 중에는 주님이 즉시 구원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풍랑에도 주님은 성도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풍랑을 이겨야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면 주님의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풍랑이 닥치자 크게 두려워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주님이 항상 함께 계심을 믿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 인생은 세상의 풍파만 보면 겁먹고 좌절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는 임마누엘 신앙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하겠다. 루마니아 공산권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신 부모님을 소년기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곳 교회에 와서 저는 여러분 앞에 섰다. 주님은 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역사하심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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