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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2023년 4월 26일)
제목: "복음은 기쁨입니다"
말씀: 로마서 1:14~1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설교자: 남동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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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4~17,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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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사랑 형제자매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조금 우리가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행복한 모습이에요. 언제나 우리 사랑도 예배는 이런 모습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번 주 배포되어진 장애인 주간 기념 특별 신문을 읽으셨으면 오늘 본문의 말씀 제목처럼 “복음이 기쁨입니다.”라고 하는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받아보지 못하신 분계시면 나중에 예배를 마치고 가시다 보면 약 사이드에 이 신문이 있을테니 꼭 읽어보시면 정말 이곳에서 복음을 통해서 기쁨을 회복한 성도들을 만나게 되리라고 믿는다. 우리가 지금 3년 이상의 코로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생각지 못하게 우리 마음속에 있던 기쁨은 다 사라지고 보이지 않게 서로 다투거나 힘든 일을 맞이하면 참지 못하고 사건 사고가 이곳저곳에서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조금 힘들면 참아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원래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만드실 때에 아담과 하게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 세상을 창조해 주셨다. 창세기 1장 13절에 3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창세기 1:13,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힘이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들을 위해서 준비해 주신 자연 만물만 봐도 기쁨이 넘치고 행복이 넘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먹구름이 찾아온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을 통해서 우리 안에 죄가 들어오게 되어졌다는 것이다. 죄는 인간과 자기를 파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죄는 인간의 기쁨과 마음의 평화를 빼앗아갈 뿐 아니라 구원의 기쁨조차도 빼앗아갔다. 그래서 다윗은 10편에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해달라 라고 기도하고 있다
 
*시편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의 매개 회복시켜주시오”
-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죄는 자유를 억압하고 죄는 서로를 이간질하고 결국 죄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로마서 6:23,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한다. 이 병에 걸리면 치료할 치료약이 없다. 이 병에 걸린 사람에게 찾아온 것은 어떤 사람도 예외가 없이 죽음에 이르게 되어 진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끝나면 우리에게는 절망이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셨다.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정말 인간이 들어야 될 참 복음인 것이다. 이 복음은 바로 우리에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바 되어주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어 주는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귀한 복음의 메시지인 것이다. 오늘 봉독된 말씀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 에게로다.
-어떤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죄에서 용서 안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져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특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라고 말씀하신다.

*갈라디아서 4:6,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느니라.’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허를 주셨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선행이나 우리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되어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3,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이 아니고서는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장애인 주일 기념 수요 찬양대에 처음오신 우리 장애인 성도 가족 여러분들 우리 가운데 아직도 이 놀라운 복음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이 시간에 “예수님 믿고 싶습니다.” “성령님 도와주십시오.” 요청만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하시고 그 예수님을 나의 구조로 영접하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시간 여러분들의 마음을 열고 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어지는 것이다. 사탄 마귀는 언제나 우리를 좌절케 한다. 우리의 평안을 빼앗아 가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를 슬픔과 절망 우울의 모든 요소들이 가득하게 하고 우리의 매일의 삶이 아픔과 고통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어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가? 범사에 감사하게 여겨지고 모든 일에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말씀이다. 세상 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없고 아무것도 내어놓을 것이 없지만,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이런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나중에 이부 순서에 우리 장애 선교부가 사역하는 영상을 보게 될 텐데 이 사랑부 형제자매들이 주일 예배를 사모하고 기대하는지 예배 가운데서 찬양하는 모습을 볼 때, 천사들이 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주 안에 기쁨이 없다면 어떻게 이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손을 올리면서 찬양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약점을 바라보면 어떻게 저런 모습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으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이 기쁨이다. 제가 웃으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지금 많이 긴장이 돼가지고 제가 사랑부 형제자매들하고 설교할 때는 언제나 기뻐요. 영상을 보시면 되는데 어르신들과 함께 이렇게 예배하면 늘 긴장이 많이 되어진다. 사투리가 나올까 싶어가지고 세상이 주는 기쁨은 여러분 하루 이틀 지나면 유효 기간이 끝난다. 근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유효 기간이 없다. 평생 그 기쁨 안에서 행복을 누릴 줄 믿는다. 제가 섬기고 있는 사랑이 복지관 지난 코로나 가운데서도 귀한 사익을 했다. 오래전에 담임 목사님께서 “이 사랑의 복지관 같은 기관이 북한에서도 세워져서 연약한 자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셔서 저희들이 바자회를 해서 그동안 조금 많은 돈을 모아 놨다. 근데 통일이 빨리 되면 우리가 북한에 가서 우리가 복지관을 지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사실 복지관 후원금은 3년 안에 사실 사용을 해야 된다.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저희들이 고민하고 여러분들 찾는 가운데 간에서 탈북해서 나마비로 내려와 가지고 행복한 삶을 원하던 분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태어났는데 자라면서 모르게 장애 아이가 되어졌다. 사실 북한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이 남한에 와서 환경에 적응하는 데도 굉장히 어렵고 힘든데 태어난 아이가 자기 아이가 되어주니까 이중고를 겪고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겠는가? 마침 저희 복지관과 연결이 되어져서 이분 14가정들을 저희들이 섬기게 되었다.
이 장애 아동들이 필요한 치료비와 또 이 과정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2년 이후에 작년 겨울에 저희들이 사역 보고를 했다. 그들이 사역하는 것 같이 이런 고백을 했다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힘든 시간에 사라이 교회가 자신의 이웃이 되어줘서 함께 이 무거운 짐을 지어주심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심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그들의 고백 가운데 그들이 보고하는 가운데 나타난 것이다. 혼자서 힘들다. 라고 끙끙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와서 그 힘듦을 함께 주고 그들과 함께 웃어주고 그들과 함께 울어주는 귀한 분들이 있어서 이 코로나 가운데서 이 남한에 내려와서 장애 아이를 키우는 그 어음을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고백을 하였다.

 
마침 여러분들이 지난겨울의 추운 가운데서도 사랑의 쌀을 주셔서 또 사랑의 쌀과 함께 성탄절을 맞이해서 제가 이 가정들마다 방문해서 쌀과 케이크를 전하면서 필요한 가정에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었더니 그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뻐했는지 모른다. 이런 놀라운 기적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그 기쁨이 여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고, 정말 이 강대상을 통해서 지역으로 올라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파하게 되어 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웃음을 잃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웃음을 되찾게 해주는 강력한 능력 있는 복음인 줄 믿는다. 우리가 천국 가서 이 기쁨을 누리겠지만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음을 통해 잃어버린 기쁨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면서도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이 기쁨 가운데 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도록 기쁨의 통로로 우리를 사용해 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란다. 혹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 마음에 여러분들 얼굴 표정에 저처럼 이렇게 굳어 있거나 얼굴이 밝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을 한번 체크해 봐야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죄로부터 용서함 받고 영원히 죽어야 되는데, 영원히 지옥 가서 그곳에서 형벌을 받아야 되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나와 상관없이 나의 능력과 지혜와 관계없이, 어떤 모습이든지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 기쁨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기뻐하고 오늘도 이 자리 사모해서 이곳에 와서 예배하는 줄 믿는다. 여러분들 정말 예수 믿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줄 믿는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사모하지 않는가?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에 원래 하나님의 의로우심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 심판을 받아야 되는데,

*로마서 1:17,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들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되어져서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의롭지 않은데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라고 인정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 증거 되어졌고, 이 복음을 우리가 가지고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장애인주 기념해서 우리가 수요 찬양을 드리면서 물론 앞자리에 우리 소망부, 사랑부 형제자매들 가족들이 이렇게 다 앉아 있는 거 보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얼굴만 봐도 예수 믿는지 안 믿는지 알 거야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야 정확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이렇게 알지만 저는 우리 친구들이 우리 형제자매들이 얼굴만 보면 아 이 형제자매가 예수를 믿는구나!“ 알게 되는 거다. 놀라운 기적이다. 이런 경지까지 가기가 쉽지는 않다. 여러분 우리 친구들은 비록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해도 주일날 교회 오는 모습이 너무너무 행복하다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저는 형제자매들과 정말 복음 때문에 이들이 기뻐하고 매일 주일마다 춤을 춘다. 아까도 우리 쉐키나와 찬양할 때 춤을 춘 친구들이 나오고 싶은데, 혹시 여러분들이 당할까 싶어가지고 그 친구들은 자제하고 평소에 아주 온순하고 서 있는 친구들만 나왔다. 혹시 여러분 궁금하시면 주일날 한번 와보아라.
팔딱팔딱 뛰는데 저는 그걸 잘 못해요. 우리 친구들은 뒤에서 앞에서 찾아가면 손을 들고 찬양한다. 저는 사역 가운데 형제자매들과 이런 찬송을 부른다.

 
♬찬송가 565장 ‘예수께로 가면’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근심 걱정 없이 정말 즐거워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다. 예수께로 가면 맞아주시고 나를 사랑해서 용서하셔요. 예수께로 가면 손을 붙잡고 어디서나 나를 인도하셔요.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
 
-오늘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오늘 우리 모든 사랑부, 소망부 형제자매들 어린아이 같이 예수께로 가면 기쁘고 차장이 나오고 근심 걱정이 다 살아지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곳에 복음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여러분 오늘 가사처럼 우리의 삶이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예수님을 만나기만하면 주님이 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이 기쁨을 우리에게 주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어떤 환경이 온다고 할지라도 어떤 상황이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기쁨이 충만하다. 사실 우리 형제자매들 보면 장애라고 하는 이 높은 장벽이 있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데 이들 마음속에 복음 되신 예수님이 계시니까 그 장벽을 뛰어넘어서 매 주일마다 직장 가운데서, 사회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양할 수 있게 되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14장 17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병관과 희락이더라.”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즐거움이요 희락이라고 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다. 여러분들 매 주마다 여러분들 기쁨으로 교회 오시기를 바란다. 여러분, 혹시 기쁨이 없다고 할지라도 매 주마다 교회를 향해서 수요일 저녁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올 때마다 기쁨으로 나오면 그것은 또 기쁨이 생성되어지는 것이다. 혹시 아직도 여러분들 마음속에 기쁨이 없다면 이 시간이 기쁨 되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정말 기쁘고 행복한 삶이 되어주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한다. 오늘 주신 말씀 때문에 복음 때문에 일평생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기쁨을 잃지 아니하고 항상 기쁨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한다.

♣요약
오늘 장애인 주간 기념 수요 찬양 입을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처럼 우리 모두가 복음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아직도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님 도와주셔서 꼭 예수님을 만나는 결신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도가 영적으로 빚진 것은 먼저 복음을 받은 것과,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과, 다른 성도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은 것이다. 이신칭의(以信稱義), 이는 행위나 공로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2부,
이제 잠시 우리 특별 순서를 좀 진행하려고 한다. 먼저 우리 장애인 선교부 영상을 좀 보도록 하겠다. 이곳은 사랑의 교회에서 가장 사랑이 넘치는 사라이 교회 장애인 선교부 예배 현장이다. 함께 은혜 현장으로 가보실까요. 장애인 선교부는 발달장애인과 함께 예배하는 사랑부 청각장애인 성도들이 예배하는 소망부가 매 주일 기쁨으로 예배하는 문제이다. 사랑부는 1부 8시 이후 10시 3 4부 12시에 예배를 드리고 소망부는 오후 2시 20분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장애인 교성부 예배는 언제나 기쁨의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성도들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다윗처럼 자유하고 찬양하고 있다. 성도들의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천국 자치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다. 예배를 위해 성도들이 직접 대표 기도를 한다. 비록 언어 표현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장애인 선교부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춰 매주 일 은혜로운 말씀을 준비한다. 성도들을 위한 다양한 그림 자료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예배 중에 서로를 축복하며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합심하여 기도한다. 이 시간을 통해 성도도 스스로 기도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장애인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많이 응답해 주시리라 믿는다. 말씀의 능력을 장애인 전교구 성도들도 누리게 하고자 매주 성경 암송과 성경 쓰기를 진행하고 있다. 72구절 말씀을 좀 더 잘 암송하기 위해 손동작을 암송하고 글씨 쓰기가 힘든 성도를 위해 성경을 따라 쓰기로 진행한다. 예배를 마치고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교과 공부 시간이 있다. 장애인 선교부는 공과를 G 러브 비전에 맞춰 예배, 훈련, 사랑 섬김, 복음 전도의 큰 주제로 자체 제작하고 있다. 같은 공문을 설교를 통해 먼저 듣고 교과 공부를 통해 반복 학습을 함으로 성도들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삶에 적용하도록 도와준다.

※간증시간.

▷먼저 부족한 종이 저희 막내아들 준우로 말미암아 이 시간 귀한 감정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질병 치료와 출산을 우석의 힘에 의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집안 어른들 말씀으로는 저도 친가와 외가의 친척 중 세 분의 무속 인이 소위 영험한 국가 백일기도를 드려서 삼신할머니가 점지 하에 태어났으며 예수 믿으면 큰일 난다고 하셔서 저는 어릴 적부터 교회를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저는 4남매 장남으로 장성하여 결혼 후 두 딸을 낳았으나 가문에 대가 끊긴다며 아들 낳기를 종용하는
친척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그 당시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화제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1995년 각고의 노력 끝에 아내는 둘째 딸과 일곱 살 차이 나는 막내아들 준호를 출산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만 준호를 얻은 아내는 세상을 모두 가진 듯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된 준호를 데리고 집안의 결혼식에 다녀온 뒤 준호는 밤새 고열로 울음을 그치지 않아 출생했던 병원에 갔더니 단순 감기라는 처방을 받았고 며칠이 지나도록 열이 떨어지지 않자 몇 가지 검사 끝에 세균성 뇌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의사는 완치를 장담하며 준호는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거의 매일 고열과 특수 검사의 고통 속에서 차도가 없어 다른 종합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 다시 한 달간 입원 치료 끝에 퇴원을 하였으나 준호가 네 살이 되던 해 내막염 후유증으로 인해 심한 경기를 시작하면서 119 구급차와 병원 응급실을 단골처럼 찾게 되었으며 결국 발달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의료소송도 생각했습니다만 아픈 아이를 담보로 돈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소송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제게 주어진 모든 휴가를 준호의 치료에 사용하면서 아내와 함께 명의로 소문난 병원 한의원 침술사 기 치료사 승마 수영 각종 운동시설 언어치료실 등 좋다는 곳을 백방으로 찾아 매달렸으나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아내와 제가 준호의 치료에만 매달리는 동안 준호가 태어날 무렵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둘째 딸은 세 살 위인 큰 딸이 돌봐야 했습니다. 둘 다 엄마 아빠의 손길이 한참 필요한 때였는데 정말 미안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그랬던 딸들이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잘 자라줘서 결혼 후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준호의 교육과 장애 치료를 맡아줄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아내는 대학 다닐 때 믿었던 천주교를 멀리하고, 저의 부모님을 따라 불교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끝에 준호와 같은 아이들을 돌보는 수녀원을 찾아가 아내는 천주교로 개종하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도 큰 도움이 되질 않자 또다시 영험하다는 사찰을 찾아가 일러준 비법대로 실행해보았으나 그것 또한 준호를 제대로 치료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는 교회 복지관을 찾아가게 되었고 다시 종교를 바꿔 사랑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종교를 자주 바꾸는 것이 교회의 제자 사회 훈련과 전도 폭발 과정에 매달려 밤늦도록 고생하는 모습이 싫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라 그냥그냥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준호가 열세 살 되던 해 저는 직장의 건강검진 과정에서 신장 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준호의 치료도 막연하던 차에 저마저 암 선고를 받고 나니 제 인생이 모두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암 치료와 요양을 위해 직장에서 승진도 포기한 채 한직으로 물러나 소망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이 셋을 돌보면서도 지극 정성으로 저를 간호해주던 아내의 모습에서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고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 평소 가족들을 주일 예배에 데려다 주는 저에게 아내가 말했던 우리도 남들처럼 부부가 함께 손잡고 교회 다니는 게 소원이라는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동안 부모님과 친척들의 반대로 교회 다니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던 저는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 주님이 인도하시는 사랑의 교회 본당에 첫 걸음을 옮기게 되었고, 2007년 새 생명 축제에서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에 북받쳐 오르는 회계와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준으로 인해 하늘의 원망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의 무지와 방심과 교만으로 준호의 인생이 바뀐 것이라고는 생각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나 준호는 이제 저의 인생에서 더 이상 애물단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이듬해 저는 그동안 포기했던 서기관 승진과 짧은 기간 내에 부이사관으로 다시 승진하여 모 광역시 기관장을 역임한 후 명예롭게 공직을 퇴임하였으며 신장 암도 완치되어 지금은 전문 자격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아내와 저는 시기는 다르지만 교회 강대상에서 세례 감정을 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준호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크나 큰 은혜였습니다. 저는 나이 예순을 넘겨 사랑의 교회 제자 사회 훈련을 신청하여 훈련 수료 후 지금은 사랑부 다락방 순장과 교구장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고 있으며 아내와 함께 10년째 예배 안내 봉사를 감당하며 지역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익한 종을 불러주셔서 믿고 다듬어 사용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해준 사랑의 교회는 가난 아기가 느끼는 어머님 품 같은 곳이었습니다. 다락방은 하나님을 몰랐던 저에게 말씀을 통해 세상 적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은혜 받는 곳이었고, 특별히 사랑부 다락방은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서로 나누는 위로와 교제의 장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다락방에 참여하기를 망설이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이 다락방에 오셔서 환난을 산 소망으로 있게 하신 주님을 만나보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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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4월 23일)
제목: "신앙의 깊이 측정"
부제: 지성소 신앙의 은혜
말씀: 에스겔47: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남동우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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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47:1~5,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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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예배에 은혜의 지성소가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 자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가 기도한 대로 오늘이 작은 부활절이다. 영광의 대관식이다. 영광의 잔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 가운데 이 시간이 가장 피크가 되어야 나머지 삶도 은혜의 지성소의 물이 흘러서 은혜의 축복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구한 찬송이다. 강단에 모란 작약이 피었다. 오늘은 장애인 주일인데 1년에 함께 축하의 자리이다. 축하의 꽃인 것 같다. 예배에 함께 하고 또한 수고하시는 교사들과 교역자님과 모두께 감사의 박수를 전하자. 예수 믿는다는 것은 감사하고 좋은 것이다. 지난주일 CAL세미나 너무 잘 마쳤다. 제가 특새 하고 CAL세미나 하고 목소리가 갔다. 그러니까 목이 갔지만 거룩한 목소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양해하기 바란다. 120기 제자훈련 37년 동안 CAL세미나를 했다. 얼마나 감사한가! 전 세계가 한결 같은 역동성을 가지고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리고 CAL세미나 중에 하나가 우리가 교회 성장 방법론을 전달하는 노하우가 아니고, CAL세미나의 목회의 본질과 사역의 뿌리가 무엇이냐? 그리고 어떻게든 흔들릴 수 없는 토대, 근거와 신념과 뿌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다루고 싶다. 뿌리가 깊으니까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CAL세미나를 통해 목회자로, 중직 자가 살고, 지역교회가 살면 교회가 사는 줄로 확신한다. 교회가 살면 이 민족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신앙의 깊이 뿌리로 지성소의 신앙으로 부제로 붙여보았다. 19번째 부흥헌신 ‘신앙의 깊이를 측정’하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다.


흔히들 신앙의 나이가 있고 신앙의 경력, 신앙의 연수, 신앙의 역사를 묻는다. 엄격히 말하면 신앙은 나이나 길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 신앙은 깊이에 의해서 결정된다. 묻겠다. 적당히 교회 10년 왔다가 가는 것과, 1년 제자훈련 제대로 하는 신앙과의 누가 더 깊이가 있겠는가? 누가 더 신앙의 깊이가 있는가? 1년 제자훈련이다.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제대로 제자훈련이 신앙이 깊은 것이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포도원 일꾼의 비유가 있다.


*마태복음 20:16,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신앙도 길이도 중요하지만 깊이가 중요하다. 우리 교회도 신앙의 깊이와 뿌리가 내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법칙과도 이와 같다. 나무의 뿌리도, 건물의 높이는 기초공사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얼마나 튼실하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식으로는 다 안다. 다 알지만 그것이 깊이나 뿌리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겉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겉만 멀쩡하면 속을 수가 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3,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 핍박과 유혹에 뜨거운 이글거리면서 사람을 막 뜨겁고 힘들게 하더라고 변함이 없이 꾸준하게 열매를 맺는 이유는 그 뿌리의 근원이 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평생, 우리의 현장이 은혜의 깊은 강수를 마칠 수 있고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우리의 뿌리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잎사귀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내가 신앙의 깊이가 있는가, 없는가의 측정은 내가 열매가 있는가, 없는가이다. 여러분 3년 내로 여러분 때문에 예수 믿는 분이 있는가? 한다. 여러분 때문에 정말 신앙의 어떤 열매의 변화가 되어서 그런 분들이 주위에 있는가? 우리가 그런 면에서 감사한 면이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내가 왜 이러는가? 나 때문에 귀한 영향을 받아서 예수를 믿는다든지 나 때문에 주님 길에 들어서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지, 내 신앙의 수준과 내 측정이 어느 정도인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을 오늘 본문을 가지고 보면, 에스겔서의 47장을 보면, 에스겔의 환상을 보면,


*시편 1:3,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에스겔이 본 환상 가운데 에스겔서 전체가운데 노른자위 말씀이고,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과 함께 오늘 성소에서 물이 흘러 나와서 온 천지가 사막과 적시고 척박한 땅이 적셔져서 죽어가는 것이 다 살아나는 이런 영광스런 일이 보는데, 이 환상을 갖게 된 배경은 에스겔이 25세에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간 이후에 이때가 에스겔이 50세가 된 것이다. 25년이 흐른 뒤이다. 45장에 보면 내가 포로로 잡혀가서 한 25년 쯤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오늘 이 환상을 보고 성전물이 흘러나와가지고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은혜가 이 영광스런 이런 것을 볼만한 그런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포로로 잡혀 와서 바벨론 척박한 환경이었다.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늘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수많은 인생 가운데 ‘큰 짐을 지고 나는 아니냐?, 나는 끝났다’는 그런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자리 잡을 수가 있는데 여러분, 가장 척박한 시기가 가장 영광스런 환상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걸 믿음으로 우리가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음성이 있는 것이다. 아멘. 세밀한 음성이 들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 성전으로부터 물이 나와서 큰 강을 이루어가지고 죽은 바다를 살리고 강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완전한 회복과 우리 식으로 말하면 회복을 넘어 부흥이 되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지성소 신앙의 회복이다. 1절에 보면,


*에스겔 47:1-3,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여러분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오늘부터 우리 교회 계단 쪽에 물이 흐르게 건축되어 있다. 나중에 멋있게 보여드리겠다. 영상으로 보여 주겠다. 에스겔 47장2절에 보면 성전에서 나온 물이 어디로 가는가?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물이 나와서 3절부터 보면,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줄자를 가지고 이제 측량을 한다. 한 척이 50센티 정도이다. 그러니까 1천척, 500미터 정도이다. 500미터 측량하는 것이니 그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는 것이다. 어떤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고 우리의 신앙을 진다하는 것이다. 500미터를 물을 건너 오라가 하셨다. 에스겔 강물을 건너니까 물이 어디까지 찼는가?


*에스겔 47:4~5,
4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500미터 가니까 발목, 그 다음에는 1000미터 가니까 무릎, 그 다음에 1500미터 가니까 허리쯤 차고, 2천미터 가니까, 온 몸이 건널 수 없을 만큼 큰 강이 된 것이다. 가면 갈수록 퍼져 가면 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이다 여기는 물론 성경적으로 구원사적으로 보면 강 전체가 영향을 받을 정도로 복음의 온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줄로 믿는다. 그런 복음의 확장설로 되어 있지만 신앙을 우리가 볼 때에 옛날 어른들은 조금은 우리식으로 표현하지만 신앙은 발목신앙이 있고, 발목으로 왔다 갔다 한다. 또 무릎 신앙은 좀 은혜 받아가지고 무릎으로 기도하는 신앙이 있고, 허리 신앙은 봉사를 좀 열심히 섬기고 잘하고 있고, 그다음은 온몸에 은혜를 받아가지고 지성소 신앙이 있다. 그냥 깊은 신상의 깊은 경지에 닿았다는 것이며 옛날 어른들에 의하면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신앙의 생수의 강이 어느 정도 흐르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우리 신앙의 측정 도는 어디인가? 측량할 때 어느 정도인가? 발목신앙은 아닌가? 그 다음에 기도는 하는가? 봉사는 하는가? 온몸으로 지성소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것을 성전 뜰 신앙, 성소신앙, 지성소 신앙, 이렇게 말씀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오늘 이 말씀을 앞에 놓고 선대의 어른들이 성전 뜰을 이야기 할 때, 성전 뜰은 모든 사람들이 성전에 볼 수 있는 외곽 지대이다. 여기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고, 외적 종교 예배의식이 여기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성전 뜰 신앙이라는 것은 종교인들,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이며, 찬송처럼 찰싹거리는 그 얕은 물가에서 이렇게 보는 것이며 껍데기만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중심, 유아기적인 신앙으로 볼 수 있고, 성소신앙은 제사장들만 들어가서 밖에서 피와 향과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다. 성소신앙은 번제물과 물두멍을 지나서 성전 뜰에나 믿음으로 전진해서 성소에 들어가는 신앙이다. 예수님을 위해 봉사도 하고 남을 위해 기도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소 신앙이 있다할지라도 성소에 들어가 제사장들도 절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누구도 대제사장외에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데 하나님이 정해주시는 그 시간외에는 제사장도 감히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단 대세사장만 1년에 한 번씩 일시적으로 몇 시간동안 거의 소복수준으로 입고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것이다. 잘못하면 그냥 죽어나왔다. 그래서 지성소는 두려움의 자리였고, 자기 죽음의 자리였다. 그런데 이 구약의 대제사장이 거의 죽음을 통과한 자리가 지성소인데 여기의 신양은 뭐냐면 지성소는 대 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 막는 휘장이 밑에서 부터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찢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은혜의 자리, 강력한 임재의 자리,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의 장소가 된 줄로 믿는다. 다시 말하면, 성전 뜰은 그냥 들어가면서 밟으면 되는 것이고, 성소에는 그냥 마음이 낮아지고 무릎을 꿇고 기어서 들어가는 것이고, 지성소에는 대제장이 완전히 죽어서 들어가는 것이다. 완전히 납작 엎드려서 죽은 것처럼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신앙의 단계를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성전 뜰, 발목신앙을 성소, 지성소를 이야기 하는 것처럼 발목신앙을 이야기 한 것처럼. 바울 사도는 예수를 믿어도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The carnal Christian, 예수를 믿어도 세상의 사고방식과 영향을 너무 받아가지고 믿기는 믿는데, 안 믿으려고 하니까 지금까지 믿은 게 너무 억울해서 그냥 포기할 수는 없고 그냥 그 단계만 지나면 젖을 먹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육적인 그리스도는 젖을 먹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이유식, 단단한 것을 못 먹는 것이다. “주님 사랑해요,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 되기 원합니다.” 라고 이런 찬송도 한다. 그런데 누가 옆에 와서 그냥 프라이들 건드리고 누가 뭐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면 팩한다.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도 자기의 죽음의 선이 없다. 그런데 히브리서 5장에 보니까,


*히브리서 5:14,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이제는 젖뗄 때가 되었다. 이유식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지만 그런데 만약에 20세 정도의 청년이 대학교 1-2학년이 맨날 집에 가서 젖이나 먹고 집에서 이유식이나 달라고 하면 걸 맞는 자가 아니다. 맞지가 않다. 이제는 좀 장성한 사람의 분량이 되어가지고 좀 자기 죽음도 깨닫고 좀 성숙도 하여야 하는데,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크게 보면 한국교회 대부분 다 비슷하다. 일반 성도들이 발목신앙을 이야기 한다면 은혜의 깊은 수준의 측량을 생각해본다면 교회만 왔다 갔다 예배를 빠지지 않고 착실히 나오는 사람을 ‘다’ 군이라고 한다. 나군은 우리 교회 같으면 영적 성숙을 위해 나름대로 이렇게 훈련에 참여하는 분들이 ‘나’군이다. 가군은 말씀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는 분들이다. 우리 교회를 말하자면 순장(구역장)들 같은 경우 제자반이나 사역반도 말씀으로 섬기고, 이것을 우리가 가군이라고 한다. 가나다라 군으로 나누어 보았다. 저는 소원이 6개월이면 6개월, 1년이면 1년, 그 시기가 지나면 라 군에 있는 자들이 제발 다 군으로 올라가기를 바란다. 주일에 잘 참석하는 성도는 다 군은 훈련을 받아서 영적 재생산에 참여하여 이런 신앙의 단계를 마치고 나서 종합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발목 신앙에서 온 몸에 은혜를 체험하는 그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제가 청년 때 선교 단체에서 훈련을 받는데 그 선교단체는 그 수준을 어떻게 이야기 하냐면 그 수준을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컴벌젼 하다고 한다. Commvolt라고도 한다. 예수님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 그다음은 예수님을 믿고 훈련된 사람을 Disciple이라고 한다. 그다음에 또 다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 받고 나서 그 양육의 일을 담당하는 자에게 Disciple maker라고 한다. 그래서 Disciple maker로 오랫동안 살면서 영향을 미치고 더 큰 사명을 가지고 더 크게 쓰이는 사람을 Leader of the Disciple maker라고 한다. 그래서 컴벌트, 디사이플, 디사이플 메이커, 디러 오브 디사이플이다. 이것을 내 수준으로 만들고 어떻하든지 이 컴볼트가 디사이플 메이커가 되고 리더 애브 디사이플 메이커가 될 수 있도록 다시 마음을 모으고 집중을 했었다. 자 다시 말하자면 여러분과 제가 발목신앙이나, 성전 뜰 신앙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성도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교부시대에 기록으로 보면 세례와 성찬을 2-3년을 안 준적이 있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제 모든 이단으로부터 어떤 유혹으로부터 나름 자신을 추스릴 수 있게 되면 은혜를 주고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러니까 그 이단들이 설칠 수가 없었다. 사랑의 교회는 처음 오시면 새신 자 교육을 받으면 첫 번째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두 번째는 ‘성경이 무엇인가?’ 세 번째는 ‘교회가 무엇인가?’ 네 번째는 ‘어떻게 믿음 생활 잘 할 수 있는가?’ 이 정도를 거치고 난 다음에 우리 교회 성경 대학이나 여러 프로그램 교육을 하면서 다락방에 들어가고 제자 훈련을 1년을 하고 나면 우리교회에서 이단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긴다. 어느 정도 파악을 한다. 비교적 훈련을 제대로 마치고 나면 2단이나 3단이라든지 이런 이단을 차단하게 될 능력이 된다. 이것이 영적 성숙도가 측정이 된다. 그러면 이런 말씀을 놓고 우리는 무엇을 측정해야 되는가? 무얼 적용해야 할까?


첫째, 자기 십자가와 자기 죽음을 측정해야.
-이것은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오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축복이 있는데,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려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구약에서는 지성소가 열리기 위해서는 대제사장이 납작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 수소와 염소와 양이라는 제물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그 십자가의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그 휘장이 찢어지는 것이고 오늘 21세기 AI 쳇 GPT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뭐냐면 구약의 수소와 양이 필요한 것처럼 오늘 내가 제물이 되어가지고 내가 십자가가 되어서 내가 죽음을 선언하고 내가 대속 주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이다. 저는 오를 설교를 하려고 하면서 그런데 컨디션이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 내가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오늘 말씀이 내 제물이 되는 말씀이 되게 해달라고, 주님 내가 제물되는 말씀이 되게 해달라고, 그러면서 구약의 이 지성소에 대제사장이 들어갈 때,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에 은혜를 받았다.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희생 제물이 있어야 한다. 희생제물의 죽음은 마치 한 세트럼 되어야 한다. 죽음과 지성소는 한 세트처럼 연결되어 있다. 희생제물이 없이는 제물을 드리는 죽음이 제사가 없이는 지성소가 열리지가 않는 것이다. 지성소는 1년에 대제사장이 대속죄인 날 한 번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에 백성의 죄와 민족의 죄를 속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삼중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성전에 문지방에 흐르는 물의 그 양광을 체험하기 위하여 지성소의 깊은 은혜가 있어야 하는데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대 속죄로 들어갈 때 3중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첫 번째는


첫 번째는 어린 수송아지를 취하여서 자신의 죄와 가족과 속죄 죄를 먼저 드려야 했다. 그 피의 일부분을 지성소로 가져가서 지성소 앞에 뿌렸다. 이런 과정 가운데 어떤 실수나,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죽는다. 그만큼 엄중했다.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자기의 죄와 가족의 죄를 위해 속죄 죄를 드리고 그 피의 일부를 하나님 앞에 뿌렸다. 지성소에 뿌린 것이다.


두 번째는 염소 두 마리를 가지고 한 염소는 제비를 뽑아서, 한 마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이고, 잡아서 그 피의 일부분을 지성소 안으로 가져가서 거룩한 제단 위에 염소의 피를 뿌렸다.
세 번째는 대제사장이 안수를 하고 머리에다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전부다 실어서 광야로 쫓아버렸다. 레위기 16절을 보면,


*레위기 16:10,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제가 40여 년 전에 신학을 하면서 머리에 모든 민족의 죄를 얹어놓고 음미하고 쫓겨나는데 내가 막 눈물이 났다. 그리고 주로 절벽에다 쫓아 내놓고 떨어져 죽도록 만든다. 지성소를 들어가기 위한 자기 희생과 죽음과 그것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신앙의 깊이에 의하여 내 신앙 깊이가 있냐면 자기 죽음과 십자가를 위하여 순종이 내게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봐야 한다. 내가 이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 내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리라.’ 라고 했을 때에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보면,


*갈라디아서 5:24,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의 지성소 신앙의 수준은 수많은 유혹과 수많은 온갖 것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억지로 못 박을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내가 얼마나 이것이 될 런지, 그래서 모든 지성소 신앙의 깊이는 자기희생과 수준에 의하여 영적 깊이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유가 없다. 고린도후서 12장 1저에 보면,


*고린도후서 12:1,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더이상 인생으로 태어나서 영적인 깊이와 수준으로 말하자면 더 이상 논할 수가 없는 최고의 3층전에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알 수 있는 과정에서 보면, 바울사도가 어떤 자가 3층 전에 올라갔다고 말한다. 더 이상 인생으로 태어나서 최고의 삼층 천에 올라갔다고 말한다. 자기희생과 자기 욕심을 못 박는 것이 나오는데 바울은 인정을 하지 않았다. 바울이 굶고 태장 맞고 판선 당하고 너무 바울은 힘들고 했어도 그 이후에 인생이 경험할 수 있는 3층천을 경험한 것이다. 우리도 그리 경험해야 한다.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얼마나 능동 적을 지고 가느냐에 여기에 달려 있다. 자지 죽음으로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우리의 심령에 지성소가 열리기를 확신한다. 대부분의 경우 경험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십자가에 못 박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지성소의 깊은 신앙의 수준을 위하여 제물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고린도후서 12장
둘째. 주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을 측정.
-자기 죽음만 통과하면 되는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은 무엇인가? 주님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뢰와 사랑을 측정해야 한다. 이 예배를 드리고 나면 이전보다 더 주님을 사랑을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이다. 자기를 사랑한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느냐? 우리에게 큰 병이 걸리고 큰 우황이 있을 때, 그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고통과 고난이 있을 때 그것은 고통과 고난을 낭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쉽지 않지만 그것을 통하여 오히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면 그 고통과 사랑이 낭비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제물 되어서 주니 앞에 내가 능동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지만 이것을 통해 주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을 하여야 한다. 병 때문에 슬퍼하는 자도 있고 병 때문에 천국을 더 사모하는 사람이 있다. 큰 병이 있으면 평안과 불안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고, 아니 내 생명을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신앙의 깊이를 깨달으면 “네가 나를 이전보다 더 사랑하느냐?” 라고 하신다. 베드로 보고도 그러하셨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네가 진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셨다. 네가 정말 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아들ㅇ르 보고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신다. 그게 지성소 신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낭비되지 말고 주님을 더 신뢰하고 주님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말씀을 정리하겠다. 오늘 날 지성소가 어디인가? 성전이다. 교회이다.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 지성소이다. 우리가 사모하는 이유는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은혜가 있는 것이다. 내 혼자 특새에 와서 어린양의 피로 내가 들어갑니다. 라고 주님을 사모합니다. 예배합니다. I enter the Holly!! 그런 찬송을 할 때에 함께 찬양을 할 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성소는 더 이상 물리적인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 직장,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임재 하셨다면 그곳이 바로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적 예배와 다락방과 우리의 삶의 현장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가 되기를 바란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 침상이 거룩한 지성서이며 직장에서 전력투구하면서 하나님의 임재 있으면 못 산다고 영적으로 그냥 허리를 동이고 온 몸으로 주님 앞에 반응하면서 주님 나를 살려달라고 십자가에 못 박으면 그 순간 그 자리가 거룩한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오늘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란다. 우리 신앙이 성전 뜰인지, 성소인지, 지성소인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젖이나 먹는 신앙인지, 이제는 단단한 것을 먹는 신앙인지, 라군에 있는 자는 다 군으로, 다 군은 나군으로, 나군은 가군으로 들어 가야한다. 다 손을 펴고 ”그 어린양의 피로“ 찬양을 하자.


♧요약
어린 양의 피로 그 거룩한 지성소로 들어가는 은혜를 주심을 찬양한다. 주님의 보혈의 피로 지성소로가게 하신 주님을 경오하며 영광돌리며, 내가 성전 뜰 신앙이라면 성소에 올라가야 하며, 내가 지성소의 깊은 은혜를 깨달아서 나무의 높이가 뿌리에 의해서 결정되듯이 신앙의 성숙은 길이가 아니가 깊이에 있음을 믿고 얕은 물가에 있지 말고 깊이 있는 강수를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라는 망학 미래는 암울했던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소망의 계시로 임재하신 것처럼 사방이 막혀서 낙심하는 나에게 주 보좌로부터, 성전으로부터, 임재의 물이 흘러나와서 참 회복과 치유가 경험되고 해결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나의 육신적은 신앙과 고통으로 낭비되지 말고 깊은 지성소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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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4월 22일)
제목: "모든 족속으로 제사를 삼아"
말씀: 마태복음 28:18~20
대표기도: 김장호 안수집사님(남순장장)
말씀읽기: 최이레자매(청년3국), 한승표형제(대학부7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마태복음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28:18~20
Great Commission​이며
-우리가 제자훈련의 원리를 깨달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사람 한사람에게 환경과 처지는 다를지 모르지만 더 나은 길을 예비해주실 것이다. 그것은 첫째는 우리에게 확신을 주신다. 이 제자훈련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훈련에 들어가게 되면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과정들이 있었지만 제자훈련 처음하면서 받은 은혜를 내가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진실로 이야기하면 말씀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의로 구원 받은 것을 확신이 있는가? 내 실력과 내 능력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예수님의 의로 내가 구원 받고, 이러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내 마음에 와 닿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 확실할 때, 구원의 확신이 선다. 내가 구원 받은 자녀라면 지금까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리라.”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기도응답의 확신도 주신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기도의 응답을 주신다. 저는 지난 40여년을 목회 가운데 다 지나고 보니까 굴곡도 있고 시간적인 차이도 있지만 기도응답을 주셨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 승리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게 함께 하실 때 주신다. 구원의 확신, 그리고 아무리 승리를 하더라고 우리가 살다보면 육신의 유혹도 받고 죄도 짓고 주님 앞에 죄송하고 초창기 때는 웬만한 죄가 표가 안 났다. 그런데 점점 주님을 닮아가고 점점 순전하게 되면, 여러분 저 반도체 연구실에 들어가면 먼지 하나도 힘들다. 영적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정말 나를 돌아보게 되면,
 
♬내가 주님 앞에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았네. 나 십자가 대할 때♪
-그 눈물 콧물이 쏟아지는 것, 그러니까 내가 십자가를 바라보면 어떤 죄의 사죄의 확신이 수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면 너무 죄송하고 주님께 황송하다. 그럴 때 주님은 사죄의 확신을 주신다. 내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내가 아무리 대단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와 능력과 용서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주님의 용서와 주님의 사죄의 은혜가 내게 물 붇듯이 하는 것이다. 주님의 용서가 없으면 살수가 없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승리의 확신, 사죄의 확신, 그리고 마지막 결론은 주님이 나를 인도하신 인도의 확신(assurance of guidance)을 알게 된다. 평생 주님의 제자로 나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무장시키시고 훈련을 시키실 때,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순례의 길을 주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런 간절한 마음이 우리에게 생기도록 하여 주시고 주님의 제자로 무장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이다. 우리 교회가 우리의 사역 중에 칼 세미나도 잘 섬기게 하여 주시고 이번에 320여명 목사님들 참여하셨다. 보니까 이번에 전남 쪽에서도 큰 규모의 교회의 여러 목사님들도 참여하셨다. 또한 가까이 성민교회에도 오셨다. 천 명이 넘는 교회인데 방배동에 있다. 이번에 거리가 가까운데 정말 목회를 열심히 할 용기와 힘이 생겼다고 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마음을 같이해서 한국교회가 제자훈련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잘 감당하기를 소망한다. 37년 세미나 강사인데 50주년 강사가 된 것을 감사하다. 한 결 같이 주님께 쓰임 받기를 원한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8장 Great Commission을 가지고 설교를 하게 되었다. 우리 사랑의 교회 제자 반, 사역 반에 뭐가 남는 것인가? 제자 반 사역반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소그룹을 하며 거기서 특별한 분도 사귀고 그 다음에 소그룹과 다이나믹스한 훈련을 하면서 지치게 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배려하는 것, 이런 것을 하면서 나와 함께 하는 훈련생이 나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이 열두 명 가운데 나와 죽어도 안 맞는 사람을 갖다 놓는다. 갖다놓고 괜히 주는 것 없이 안 맞아, 그리고 받는 것 없이 안 맞아, 그러면서 계속 내 앞에 놓고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다. 나중에는 그래도 내 동지가 되는 것이다. 알아야 한다. 이 놀라운 가치관이 바뀌고 확신이 바뀌고 예수님의 제자로 무장되는 것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약점으로 일하면 안 되고 강점으로 일해야 된다. 본인이 확신을 가지고 섬겨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복 주시고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의 종으로 삼아 주실 줄 믿는다. 모든 분들, 참관 목사님과 순장님들에게 감사드리고 거기서 일주일 동안 권사회에서 목사님들을 섬기고 순장반도 너무 애를 썼다. 우리교회가 갖고 있는 우리 교회의 은혜의 저력인 줄 믿는다. 우리를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교회들마다 참여한 교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 암송을 하겠다. ‘찬송은 예배합니다.’ 이다.
 
♧요약
모든 민족을 예수님이 제자 삼는 대사명(Great Commission)에 순종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닮아가는 예수님이 닮아가는 신실한 제자가 되고,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이번 칼 세미나에 참여하신 320명의 목사님들과 해외 목사님들에게 그 교회와 열방에게 그리스도의 삶을 감당하는 영적 재생산이 되어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구원의 확신, 승리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사죄의 확신, 인도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일에 더욱 힘쓰는 자 되어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은 내 편이심을 확신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우리가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주님께서는 남은 사역을 제자들에게 맡기셨다. 이 땅의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이러한 명령을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당신의 교회를 이끌어 가시며, 지금도 하늘에서 우리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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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3년4월 19일)
제목: "의의 상속자가 됩시다"
말씀: 히브리서 11:7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자: 양은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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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7,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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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사모하고 부흥보고 수요저녁기도회에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한다. 오늘 본문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읽고 나누겠다. 히브리서 11:7절 말씀을 세 가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않은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다.
-두 번째, 믿음으로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만들어 방주를 준비해서 그 집을 구원하였다.
-세 번째, 믿음으로 노아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설교를 끝냈으면 좋겠다. ㅋㅋㅎㅎ믿음의 결과의 의미가 각각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I. 의의 상속자는 보이지 않는 일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입니다.

-7절에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다. 라고 말씀한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한 말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 메시지는 바로 창세기 6장 13절에 나온다.

*창세기 6:13,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께서 죄가 관영(貫盈)한 이 세상과 사람들을 땅과 함께 멸(滅)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17절에 가면 어떻게 멸할지 그 방법을 말씀한다.

*창세기 6:17,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면서 노아에게 한 가지 더 말씀하신다. “너는 방주를 만들라.” 왜 이것이 보이지 않는 일이라고 했는가? 왜 이것이 보이지 않는 일인가?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번도 본적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있는 일이다. 장래에 있는 일이다. 불확실한 것이다. 여러분, 노아 시대에 물로 온 세상이 심판되어지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일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종말에 불로써 이 세상을 심판하시리라고 말씀하신다. 여러분, 이 세상이 불로 심판하는 것을 믿는가? 불로써 이 세상이 사라지는 것을 믿는가? 모르겠다. 이것이 보이지 않은 일이다. 미래의 일이다.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이렇게 말한다.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이지 않은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들였다. 라며 accept!. 노아시대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다. 노아시대에 보이지 않는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잠시 생각해보자. 노아시대 보이지 않는 것은 첫 번째는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의 딸들을 보았는데 그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의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자기의 아내를 삼았다. 라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다. 번성이 시작했고, 아름다운 것들이 보였고,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취하는 세상이다. 그것이 바로 노아가 살았던 세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신의 존재와 신분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래서 사람의 딸들이 아름다움을 보며, 자기가 원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그 결과 하나님의 아들들과 딸들 사이에 ‘네피림’이라는 존재가 태어난다. 그들을 고대의 용사였고, 명성 있고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제가 짧은 시간에 이 네피림의 이종교배 이런 거 설명을 안 하겠다. 나중에 기회 되면 하겠다. 문제가 뭐냐면 이 보이는 세상 자체가 상당히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그 늘어나는 것과 함께 용사가 되고, 유명하고, 대단하고 뭔가 사람들이 보기에 멋있는 존재들이 거기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단한 발전을 이룬 것 같이 보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네피림을 갈망했는지 모르겠다.

여러분, 실력 있고 힘 있고 유명하고 명성 있고 그리고 키도 크고, 여러분들이 갈망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다시 이야기 하자면, 실력 있고 힘 있고 명성 있고 유명하고 그리고 키도 크고, 아마 여기 결혼하지 않은 자매들은 그런 남성이 있으면 내가 차지하고 싶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갈망하면서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장 27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17:27,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예수님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시대는 외형적으로 확장되기도 했고, 거기에 영웅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갈망하면서 자기들의 좋은 여자들을 아내로 삼고, 그리고 거기에 네피림이 멋있는 존재들이 등장하고 아마 이것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여러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이거 왠지 여러분들이 다 이룬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지 않는가? 여러분 밥 먹었는가? 여러분 장가 안 가고, 시집 안 갔는가?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노아시대에 추구했던 것들을 이미 웬만한 것들은 다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잘 먹고, 잘 살고, 장가 잘 가고, 시집 잘 가고 이것은 제가 매일 받는 여러분들의 기도 제목이다. 우리가 품는 기도 제목과 너무나 비슷하다. 겉으로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 같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 하라. 그것을 다스리고 그것을 정복하라.”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노아시대에 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그렇게 보여 진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는 것이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 아직 보이지 않는 그 일을 생각하고 드러내고 있다. 창세기 3장 6절에 보면,

*창세기 3:6,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러분, 사람이 자기 눈에 보기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이 죄(罪)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그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의 마음대로 취하는 것이 죄(罪)의 관영(貫盈)이다. 그들은 굉장히 네피림과 같은 사람들이 나오면서 대단한 사회를 구성하는 것 같고 굉장히 확장되고 외형적으로 풍성한 사회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그리고 더 좋은 것들을 취하며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바로 죄가 관영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 포악한 땅이 가득했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노아시대나 오늘, 우리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비슷하지 않은가? 마치 보이는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마음대로 맞는 대로 취하는 것, 이것이 죄의 패턴이다.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의 계획이 항상 강퍅하고 죄가 가득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보았다. 노아는 보이지 않는 분의 경고를 들었다. 노아는 보이지 않는 분의 그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현재 일이 아니라 먼 훗날에 언젠가 있을지도 모르는 그날의 이야기, 그 경고를 노아는 믿고 그 일에 깨어있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오늘 살기도 팍팍하지 않는가? 우리는 좋은 것들이 눈에 많이 보이지만 그 좋은 것들을 취하는 방법은 너무 멀지 않은가? 여러분들은 앞으로 장래에 먼 훗날에 여러분들이 살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좋다고 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싶은가? 괜찮은 집이 한두 채 있고 그 다음에 그 다음에 내가 일하지 않아도 재산적인 자본이 좀 돌고 그런 것을 다 준비한 자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 저것을 준비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마치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네피림들을 부러워했던 그들과 같이 우리는 그 삶을 동경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것이다. 노아는 당시 사람들이 자기 눈에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것처럼 그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않았다. 노아는 당시 사람들처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며 취하지 않았다. 노아는 당시 사람들처럼 자기가 쌓고자 하는 대로 그렇게 다 쌓고 살지 않았다. 노아는 보이지 않는 것, 하나님이 아직 보여주시지 않은 그것을 심판의 메시지를 받고 그 말씀에 깨어있었다. 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II. 의의 상속자는 순종으로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사람입니다.
-11장 7절에 이렇게 말씀한다.

*히브리서 11:7,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그 일에 경고를 받고 그리고 방주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 일의 마음의 태도가 뭐냐면 경외함이다. 여러분 경외함이란 무엇인가?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외함이란 것을 단순히 개념으로만 생각하면 참 어려운데 우리는 노아를 통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러분, 노아가 방주가 만들었던 시간이 짧았는가? 아님 길었는가? 모른다. 정확하게 노아가 방주를 만든 시간을 말하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120년간 만들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100년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실재로 노아 방주의 크기를 이렇게 설계도가 나오기 때문에 그 설계도로 만든다면 이게 하루아침에 될 일이 절대 아니다. 이 방주는 아주 우습게 생겼다. 방주는 배가 아니다. 배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 배가 아니고 방주는 관장이다. 축구장만한 관장이다. 그래서 높이는 15미터, 길이는 120미처, 폭은 50-60미터이다. 굉장히 넓은 3층으로 이루어진 관장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면, 어린이 영어 성경을 보니까, 이 방주를 캔이라고 적혀있다. 따 먹는 캔인 듯하다. 캔은 위에서 구멍 한 곳 떼면 없는 것이다. 방주도 하나님께서 뚜껑 하나 딱 닫아버리면 아무것도 없는 키도, 돛도, 닻도 없는 것이다.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아무도 없고 그 방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만 의지해야 되는 것이 방주이다. 주님께서는 상자, 방주,, 상자를 좋아하신다. 모세도 갈대 상자에다 담아서 놓은 것이다. 모세는 자기가 어디로 가야지? 의지해서 그렇게 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 가운데 구원받은 것이다.

여러분,
이 노아가 이 방주를 만들 때, 이 관짱 같은 엄청나게 큰, 노아가 하루아침에 만든 것이 아니겠지만 얼마나 고생했을까를 여러분은 생각해 보았는가? 여러분이 제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목사님은 고생을 하나도 안 한 손이에요. 손이 너무 부드러우신가요?” 한다. 그 다음부터는 제가 조심한다. 나는 고생도 안 하고 일도 안 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잠깐 하게 된다. 여러분, 노아와 악수했을 때 노아의 손이 어떠했겠는가? 저는 이 방주의 크기를 짓는데 드는 그 코페아 나무를 베어오고, 옮겨오고, 가지치기를 하고, 그 다음에 배열하고 엮고, 그다음에 만들어 가는 과정 가운데 중간에 역청을 바르고 또 바르고, 또 발라서 그게 한 번 발라가지고 그 배가 물에 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 손톱에는 노아의 손톱을 생각하면 안 봐도 알겠다. 시커먼 아스팔트가 가득 끼어있고 손은 아마 웬만한 천하장사보다 더 두껍고 키는 어떠했겠는가? 키는 씨름 선수처럼 되어 있고 얼굴과 몸과 이 모든 것에 수많은 상처 투성이였을 거라고 상상해 보았다. 저는 노아 할아버지가 수염 하얗게 해가지고 선지자처럼 회“개하십시오 회개하십시오.” 이렇게 하는 목사님 같은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아의 모습은 아주 오랜 막노동으로 고생한 누가 봐도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그런 노아의 모습에 대해서 뭐라고 표현 하냐면 ‘경외함’이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마 사람들은 그랬을 것이다. “노아, 당신 왜 그렇게 살아?” 했을 것이다. “비는 와? 언제까지 그렇게 할 거야? 당신 몰골이나 봐, 당신이나 챙겨!”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철저하게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이신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전 시간과 몸과 마음을 거기에 쏟았다. 그게 경외함이다. 창세기 6장 22절과 7장 5절에 보면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6:22,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7:5,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는 것을 다 준행하였다고 이야기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그 대가를 여러분 단순한 시간으로 계산해서 계산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데 여러분은 준행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얼마만의 시간을 드리면 준행된다고 생각하는가? 제자훈련 받는 분들, 1년의 시간을 바쳤는가? 하나님이 사역하신 분들, 여러분 시간을 2년의 시간을 바치셨는가? 전폭하는 하는 분들 이제 2년 반 바치라고 이야기 하는가? 그러면 이제 2년, 2년 반, 4년, 아니면 끝나는가? 아니면 순장 되어서 한 5년 6년 하고 권사 되면 끝나는 것인가? 여러분, 경외라는 것은 어떠한 시간을 정해놓고 것이 아니다. 경외는 어떠한 장소에 가서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예배시간에 와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 시간에 와서 찬양하면서 집중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 일상 가운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신 그 일, 하나님께서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는 그 일에 대해서 우리에게 당부하시고 말씀하시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그것을 지속적인 과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과정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영원한 과정일수도 있다. 어느 한 순간 하나님 앞에 눈물 뚝뚝 흘리며 회개하는 것도 하나님을 경외함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일정한 시간들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드리고 자신을 훈련하는 것도 하나님을 경외함이겠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서 이루어 드리는 전 삶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게 쉽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경외함이 필요하다. 여러분 경외함이란 것은 어쩌면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능력이다. 우리가 경외함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저와 여러분에게 채워주시길 축복한다.

III. 의의 상속자는 은혜를 받고 은혜를 보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7,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 여러분, ‘의의 상속자’는 이게 무슨 말인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지는 상속을 받는 사람.’, 이것이 이신칭의이다. 이신칭의 –‘내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진 삶의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대부분 ‘이신칭의’를 어디서 배우는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의롭게 되었다라고 배운다. 맞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이 구원의 사건을 알고, 그분을 우리의 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면 그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그러나 의의 상속자라는 것은 이 믿음을 가지고, 경외함을 일생을 살아냈을 때, 그것이 바로 의의 상속자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저는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공부했던 것이 뭐냐면 왜 하나님은 노아를 선택하셨을까? 이다. 왜 하나님을 그를 선택하셨을까? 왜 하필이면 노아에게 말씀해 주셨을까? 왜 노아일까? 창세기 6장 8절에 이렇게 말씀한다.

*창세기 6:8,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 6:9,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왜 하필이면 은혜를 입었을까? 6장 9절에 보면 노아의 사람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성경에 영어 성경에 이렇게 되어 있다.
But Noa,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 -제 발음이 너무 좋지 않은가? 영국식 발음이다. ‘노아는 주님의 눈 안에 있는 은혜를 발견했다.’ 는 것이다. 우리 성경은 수동태로 되어 있다. 은혜를 입었다고 표현되어 있다. 영어 성경은 오히려 은혜를 능동태로 은혜를 봤다. 로 표현하고 있다. 노아는 주의 눈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노아가 하나님이 눈을 보았다는 것이다. 눈을 보는 사이는 어떤 사이인가? 친한 사이이다. 여러분, 눈 보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진실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제 아들이 안 왔을 것이라 여기고 이번 주에 아들과 좀 언짢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제 아들과 함께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아들이 벌써 나와 가지고 의자에 탁 앉아서 머리를 푹 숙인다. 나는 이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게 될 것이고 이 아이는 유튜브 음 소거를 하고 듣고 있다고 들어가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들, 아버지 눈 좀 볼래?’하려고 했다. 그 자리에서는 제가 아들을 책망하거나 타이르거나 또 아들에게 교훈하거나 가르치고 했던 자리가 분명하다. 왜? 여러분은 그렇게 안하시나요? 그런데 제 본심은 이 아이가 나의 책망과 나의 티칭과 나의 교훈과 나의 잔소리로 상처받거나 아파하니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저는 정말 이 아이가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자꾸 고개를 떨구는 것이다. 제가 느꼈다. 아들이 지금 나와 친하고 싶지 않구나, ‘내 눈 안에 있는 그 아들을 향한 이 마음을 이아이가 볼려고 하지 않구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아들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가 정말 좋다.“ 라고 했더니 이때까지 가만히 있던 아들이 닭똥같은 눈문을 흘리면서 ”아빠 저 아빠가 생각하는 만큼 저 괜찮은 아들이 아니에요!“ 라고 말을 하는데 ”아니야 너 괜찮아!“ 라고 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팩트인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눈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은 중요하다. 노아는 하나님의 눈 안에 있는 하나님의 그 은혜를 본 것이다. 세상을 멸하겠다는 그 순간에도 세상은 어떻게 보존되어야 되고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이 지켜져야 되는지 그 자비, 그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 눈 안에 있는 것을 노아가 발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는 일에 자신의 몸과 시간을 헌신했다고 생각한다.

베드로후서 2:5,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 여러분 노아가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는 그 세상에서도 그는 의를 전파했다고 말한다. 의를 전파했다. 하나님의 눈 안에 있는 그 의를 전파했다. 여러분들은 회개하가. 삶을 돌이키라. 여러분들의 삶을 발견하라. 방주 안에 들어와야 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여러분 들어와야 한다. 아마도 노아는 배를 만들며 이 의를 하나님의 이 구원을 선포하는 삶을 살았다고 믿고 싶다. 그것은 노아를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신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말세에 산다. 라고 말한다. 지금은 말세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말세인가? 믿는가? 정말 말세인가? 여러분 하나님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차며 하나님은 반드시 이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그 경고를 알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눈 안에 있는 은혜를 먼저 발견하고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녹록치 않을 수 있다. 여러분들의 자녀가 애를 먹일 수가 있다. 여러분의 장래의 재산이 풍전등화 같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내가 아등바등 하지 않으면 보장되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삶이 찾아올 수 있다. 여러분 그것은 노아 시대 때 시집가고 장가가고 네피림의 시대 때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한 시대에 구원의 주, 구원의 방주, 구원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안에 있어라.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도록 초대해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약속의 말씀을 잊지 말라. 너희 자녀와 가족들을 향해서도 잊지 말라. 그리고 우리가 먼저 그분 안에 있는 은혜를 발견하고 그분을 경외함으로 우리의 일생을 주님께 드려서 주님이 주시는 그 구원의 날에 이 방주 안에서 발견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노아가 참 크다고 느껴졌다. 나는 언제 노아처럼 산 적이 있는가? 나는 언제 노아 같은 인생을 살 것인가? 주님은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이 시대 노아 같기를 바라시고 계신지 모른다. 이 믿음과 구원과 이 의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외치는 것을 부끄럽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노아 닮았네” 라고 듣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요약
우리는 늘 보이는 것에 쫓아 사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눈 안에 있는 은혜를 바라보기를 소원해야 한다. 멸망으로 달려가는 이웃과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우리 주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그 은혜를 누리는 자 되어 이 시대의 노아로 부름 받고, 노아의 믿음을 가지고 부끄럽지 않는 의의 상속자로 삶을 살아야 한다.
-아벨은 정결한 마음으로 믿음의 예물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렇게 참된 예배는 먼저 몸과 마음이 헌신되어야 한다. 또한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은혜를 입었는데 그의 영적 성장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가족을 구원하고 불신앙을 정죄하였으며, 의인이란 칭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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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4월 17일 (794)


1.‘이것’의 국제 가격이 온스당 2000달러를 넘어섰다. 대표적 안전자산의 하나인 이것은?

① 엔 ② 리튬 ③ 금 ④ 은

2.기업가치가 100억달러(국내에서는 10조원)를 넘어선 것으로 평가 받은 비상장 벤처 회사를 가리키는 말은?

① 유니콘 ② 데카콘
③ 빅테크 ④ 텐배거

3.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벌어질 때 공격을 시도하는 세력을 도와주는 제3자를 가리키는 말은?

① 흑기사 ② 백기사
③ 포이즌 필 ④ 황금낙하산

4. 기업이 발표한 경영 실적이 시장의 예상치를 훨씬 밑도는 상황은?

① 어닝 시즌
② 어닝 쇼크
③ 디스인플레이션
④ 하이퍼인플레이션

5. 우리나라 6대 광역시 중 하나로,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도시는?

① 대전 ② 부산 ③ 광주 ④ 대구

6. 고위험 고수익을 감수하고 강한 투기적 성향을 보이는 투자 자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① 패시브펀드 ② 헤지펀드
③ 섀도뱅킹 ④ 골드뱅킹

7. 경제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R의 공포’라는 용어에서 R은 어떤 단어를 의미할까?

① retirement
② reshoring
③ recognition
④ recession(경기 후퇴, 불경기)

8. 부가가치세와 같이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같은 세율이 적용되는 세금을 가리키는 말은?

① 직접세 ② 간접세
③ 역진세 ④ 비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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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7년 만의 대통령 거부권…"포퓰리즘 법안 노(No)"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7년 만입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법률을 만들고(제정) 개정하는 입법권은 국회의 권한입니다. 국회가 본회의에서 의결한 법률안은 대통령이 공포해야 하는데, ‘이의’(다른 의견)가 있을 때에는 국회에 재의(다시 의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부권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입법부(국회)를 견제하는 민주주의의 고유한 장치입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며 반시장적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방송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등 윤 대통령이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법률안을 잇달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 법률안은 정부가 수차례 반대 의사를 밝힌 것들입니다.

합의제 의사결정 기관인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숙의(deliberation)’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아봅시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법률안 거부권을 정당화하는 사유들은 무엇인지 이해해봅시다.

국회의원들의 '숙의'를 보장하지 않으면…'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 어려워요-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정치 방식입니다. 봉건시대의 왕이나 독재자가 국민을 지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국민 모두가 국가 권력의 주인입니다.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과 대통령 같은 국민의 대표를 뽑아 그들에게 국가 권력를 맡기는 ‘대의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입니다.

‘직접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아테네의 모든 시민들이 권력을 ‘직접’ 행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도 대표를 뽑았습니다. 다만 선거가 아니라 ‘추첨’으로 선출했습니다.

선거와 자유위임-
왜 선거가 아니라 추첨이었을까요. 목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선거로 선출되는 대표자는 ‘공공의 이익(interest)’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와 달리 추첨으로 뽑힌 대표자는 ‘공공의 의사(will)’를 반영해야 합니다.

공공의 이익과 공공의 의사는 무슨 차이가 있냐구요. 먼저, 공공의 의사를 반영해야 하는 추첨을 통해 뽑힌 대표자는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의 의사(뜻)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이를 가리켜 ‘기속위임(binding-mandate)’이라고 합니다. 권력을 위임받기는 했는데 자신이 대표하는 사람들의 의사를 거스를 수 없다는 의미에서 기속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선거로 선출된 대표자는 자유위임(무기속위임)이라는 지위를 갖게 됩니다. 자신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뜻과 다르더라도 공공의 이익과 국가이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유위임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30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해 국회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국회에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력인 입법권을 부여합니다. 개별 국회의원이 입법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국회를 ‘합의제 의사결정 기관’이라고 부릅니다.

입법과정의 핵심 ‘숙의’-
국회의원들에게 자유위임을 보장하는 이유는 그들이 합의제 의사결정 기관인 국회에서 ‘숙의(deliberation)’를 통해 공공의 이익을 찾게 하기 위함입니다. 숙의는 국회의원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법률안에 대한 자신의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유지하거나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비용이 많이 드는 합의제 의사결정 기관을 운영하는 핵심 이유가 바로 숙의입니다.

숙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수결(majority rule)이라는 규칙만 남게 됩니다. 다수당이 본회의를 열어 법률안을 바로 통과시키면 됩니다. 소수의 의견은 묵살되고, 더 좋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논의는 불가능합니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대표(국회의원)에게 공공의 이익을 찾아달라고 자유위임이라는 권한을 부여한 일이 허사가 됩니다.

숙의 배제된 양곡관리법-
국회에서는 국회의원이 숙의할 과정을 생략하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그런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법률안은 세 번의 숙의 단계를 거칩니다. 먼저, 해당 법률안과 관련된 상임위원회(국회에는 총 17개 상임위원회가 있습니다)에서, 다음으로 상임위원회 중 하나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마지막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질의와 토론이 이뤄집니다.

지난해 12월 양곡관리법은 법사위에 계류돼 있었습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빨리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법사위에서 법률안이 60일간 계류됐을 때, 여야 합의가 없어도 해당 상임위원회(양곡관리법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할 경우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는 국회법 규정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농해수위는 총 19명의 의원으로 구성돼 있어서 11명 민주당 의원만으론 5분의 3에 미치지 못했죠. 민주당은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윤미향 의원까지 합해 요건을 충족했고,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법률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지난달 본회의를 통과시켰습니다.

결국 양곡관리법에는 ‘국회의원들의 숙의가 배제된, 다수결만으로 국회를 통과한 법’이란 꼬리표가 붙게 됐습니다.

NIE 포인트
1. 대의민주주의와 자유위임의 개념을 정리해보자.

2. 국회 입법과정에 대해 조사해보자.

3. 입법과정에서 숙의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보자.

국익에 반하고 정부 재정 부담을 키우는 법률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은 정당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다수 국가들은 ‘법치주의’를 표방합니다.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합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때 반드시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근거해야 합니다. 각종 분쟁이나 범죄에 대한 사법적 판단 역시 법률을 따라야 합니다.

이처럼 법은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이런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기 위한 법률안은 국회의원과 정부가 제출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법을 만드는 일은 국회만 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전 국민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입법권을 가진 국회는 어떻게 견제될까요. 4년마다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선거가 가장 중요한 견제 수단입니다. 국민들은 입법권을 제대로 행사할 적임자(국회의원)와 세력(정당)을 투표를 통해 선택합니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국회의원 선거는 4년마다 치러지므로, 그 중간에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고 규정합니다. 다만,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국회에 재의(다시 의결)를 요구할 수 있고(이것이 법률안 거부권입니다),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 법률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원래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총체적 거부권(package veto)’으로 법률안 전체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이 거부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부분적 거부권(partial veto)’으로 법률안 내용 중 자신(대통령)이 선호하지 않는 항목만 거부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대통령이 이런 권한을 가지면 원치 않는 내용은 삭제하고 원하는 내용만 통과시킬 수 있으므로 국회의 입법권이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들은 이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셋째는 대통령이 국회에서 넘어온 법률안을 공포하지 않고 무작정 보유할 수 있는 ‘보유 거부권(pocket veto)’입니다. 한국의 대통령은 국회에서 재의결된 법률안을 5일 이내에 공포해야 하므로, 보유 거부권이 없습니다.

대통령 거부권 정당화 사유-
대통령이 가진 법률안 거부권은 어떻게 정당화될까요. 현행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거부권 정당화 사유가 무엇인지 규정돼 있지 않습니다. 그냥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라고만 돼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유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 해당하는 지는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거부권 정당화 사유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헌법이 침묵하고 있으니, 헌법학자들의 해석에 의존해야 합니다. 여섯 가지 사유가 주로 거론됩니다. ①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안 ②집행 불가능한 법률안 ③국익에 반하는 법률안 ④정부에 부당한 압력을 가하는 법률안 ⑤예산상 뒷받침이 없거나 재정적으로 부담되는 법률안 ⑥대통령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안 등이 그것입니다.

양곡관리법 거부권 정당화 사유-
박근혜 전 대통령은 7년 전(2016년 5월) 국회 청문회 개최 활성화를 핵심으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통제 수단을 벗어난 행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 수단의 신설로 위헌소지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학자들은 이 주장을 위의 여섯 가지 사유 중 ①과 ④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부의 농정 목표에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연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남는 쌀을 강제로 매입할 경우 오히려 쌀값이 떨어져 세금만 낭비할 것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위의 여섯 가지 사유 중 ③, ④, ⑤, ⑥ 등과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NIE 포인트
1. 국회 입법권과 선거의 관계를 설명해보자.

2.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의 종류를 정리해보자.

3. 대통령 거부권의 정당화 사유에 대해 토론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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