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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4월 24일 (795)






1.‘달러인덱스’를 산출할 때 달러와 비교 대상으로 포함되지 않는 화폐는?

① 유로 ② 엔 ③ 파운드 ④ 위안

2.안정된 직장에 소속되기보다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일하는 근로자가 많아지는 경제 현상은?

① 긱 이코노미
② 미스매치
③ 낙수효과
④ 롱테일 법칙

3.다음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의 도시는?

① 도쿄 ② 히로시마
③ 나고야 ④ 교토

4.다음 중 우리나라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상장사는 어디일까?

① 삼성전자
② SK하이닉스
③ LG에너지솔루션
④ 현대자동차

5.국내외 금융 중심가에서는 ‘이것’의 동상을 많이 볼 수 있다. 강세장을 상징하는 동물인 이것은?

① 황소 ② 곰
③ 비둘기 ④ 매

6.야구에서는 ‘10루타’를, 증시에서는 투자자에게 10배 이상의 수익률을 안겨준 주식 종목을 의미하는 용어는?

① 캐시카우 ② 텐배거
③ 블랙스완 ④ 빅테크

7.혁신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로 유명한 인물로, 국내에서 ‘돈나무 언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사람은?

① 워런 버핏 ② 제이미 다이먼
③ 캐시 우드 ④ 재닛 옐런

8.실질적으로 세금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각종 부담금, 기부금, 성금 등을 통칭하는 말은?

① 직접세 ② 죄악세
③ 역진세 ④ 준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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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360조 신(新)엘도라도 '토큰증권'…
왜 핫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토큰증권’(Security Token)이라는 새로운 엘도라도가 열리고 있습니다. 시장 규모가 수년 내 자그마치 36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4.5%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토큰증권이 과연 뭐길래 이렇게 급성장한다는 걸까요.


토큰증권은 비트코인을 탄생시킨 ‘블록체인 기술’을 주식이나 채권 같은 증권에 결합한 새로운 투자상품입니다. 부동산이나 미술품에서부터 저작권, 지식재산권, 심지어 한우 같은 가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투자 대상의 지분을 여러 개로 쪼갠 뒤 토큰증권으로 만들어 사고팔 수 있게 됩니다.

정부는 이 시장을 키우기 위해 올해 2월 토큰증권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현행 법률의 테두리 밖에 있던 토큰을 자본시장법상 증권의 한 형태로 끌어들여 합법화한 것이죠. 이 계획대로 라면 토큰증권 시장은 그야말로 빅뱅이 예상됩니다. 토큰증권 발행이 합법화되는 내년 34조원으로 시작해 2030년이면 367조원에 이를 전망입니다. 벌써부터 증권회사, 정보통신기술(ICT)업체, 핀테크 기업 등 관련 업체들의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합니다. 증권과 ICT 분야 1위 업체인 미래에셋증권과 SK텔레콤이 손을 잡았고, 한국투자증권과 카카오뱅크가 동맹을 맺었습니다.

토큰증권이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기존의 투자 수단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봅시다. 토큰증권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과 토큰증권 덕분에 활성화될 ‘조각 투자’가 무엇인지도 이해해봅시다.
부동산, 미술품, 저작권, 가축(한우)까지
토큰증권은 투자 대상이 무궁무진해요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이 ‘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봤을 겁니다. 뉴스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도 ‘투자’는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투자를 잘해서 큰돈을 벌었다”거나 “투자에 실패해서 위기를 맞았다” 같은 얘기입니다.


투자 대상은 주로 주식이나 부동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동안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암호화폐)에 대한 투자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석유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 철광석 구리 등의 광물 자원, 밀 옥수수 콩 등 곡물에 이르기까지 투자 대상은 매우 다양합니다.

원금 손실 위험과 기대수익

이처럼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이 다양하긴 하지만, 어느 대상에 투자하더라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고 이자와 원금을 보장받는 예금과 달리, 투자할 때는 투자한 돈(원금)을 잃을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투자에서의 ‘원금 손실 위험’이라고 부릅니다. 투자자들이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이런 기대수익이 클수록 더 큰 원금 손실 위험을 감수하려 합니다. 반대로 원금 손실 위험이 작으면 기대할 수 있는 이익도 작습니다. 즉, 위험과 기대수익은 비례 관계입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위험수용성향)가 다릅니다. 원금 손실 위험을 꺼리는, 위험수용성향이 약한 사람은 기대수익이 작더라도 위험이 작은 대상에 투자하려 하고, 위험보다는 기대수익이 중요한, 위험수용성향이 강한 사람은 가급적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 대상을 선호합니다.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자들이 저마다 다른 위험수용성향과 기대수익에 맞춰 적절한 투자 대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금융회사들이 그동안 매우 다양한 투자 상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놨습니다. 그중에서 ETF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금융혁신’으로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주식처럼 주식거래소(Exchange)에서 거래되는(Traded) 펀드(Fund)라는 의미로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명칭입니다.

ETF는 1993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고 우리나라에는 2002년 도입됐습니다. ETF의 가장 큰 장점은 투자자가 다양한 투자 대상에 매우 쉽게 투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금리가 내려 채권 가격이 오를 것 같다면 ‘채권 ETF’에, 금값 상승이 예상된다면 ‘금 ETF’에, 세계 경제 불황으로 석유 가격이 떨어질 것 같으면 석유 가격이 하락해야 수익을 올리는 ‘석유 인버스(inverse) ETF’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ETF는 투자 대상의 가격이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를 지수(index)로 만들고 그것을 추종하는(따르는) 방식입니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채권 가격은 채권 시장, 금값은 금 시장, 석유 가격은 석유 시장의 가격을 참고로 해서 지수를 만듭니다.

토큰증권의 장점

내년부터 거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토큰증권은 다양한 투자 대상에 손쉽게 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ETF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토큰증권은 부동산 미술품 같은 실물자산뿐만 아니라 저작권 지식재산권 등 무형자산, 심지어 가축(한우)까지도 투자 대상으로 삼을 수 있어 ETF보다 투자 대상의 범위가 훨씬 넓습니다.

그냥 넓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투자의 대상으로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 대거 토큰증권을 통해 투자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투자 대상이 무궁무진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토큰증권은 발행하는 비용이 주식, 채권 같은 일반적인 증권에 비해 40%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토큰증권은 무궁무진하게 많은 투자 대상에 대한 증권을 저렴한 비용으로 발행해 거래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질 전망입니다. 내년에 34조원 규모로 출발해 2030년엔 36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NIE 포인트
1. 원금 손실 위험과 기대수익의 관계를 설명해보자.


2. 상장지수펀드(ETF)의 특징을 정리해보자.

3. 토큰증권의 장점을 생각해보자.블록체인 같은 혁신적·파괴적 기술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줍니다
해적이 등장하는 온라인 게임이나 영화에선 ‘금화’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곤 합니다. 금(gold)으로 만든 금화는 금의 양만큼 가치가 있는 ‘실물화폐’입니다. 해적 시대엔 이런 금화가 통용됐습니다.


금화 같은 실물화폐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어 금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곧 소유권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실물화폐는 가지고 다니기가 번거롭다는 등의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용화폐’가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신용화폐는 화폐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대신 한국은행처럼 화폐를 발행하는 기관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약속에 기반해 그 화폐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신용화폐는 누가 얼마의 가치를 가진 돈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공인기관에 저장된 기록에 의존합니다. 그 기록이 정확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금융결제원이 공인기관의 역할을 합니다.

비트코인의 한계

2009년 비트코인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이 화폐의 역사가 신용화폐에서 ‘암호화폐’로 바뀔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화폐라는 기대를 받으며 비트코인 가격은 엄청나게 치솟았습니다. 등장 초기 수십만원이던 1비트코인 가격이 2021년 11월 820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당시엔 1억원 돌파가 당연시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급반전되면서 1년 만에 2000만원까지 급락했습니다. 이처럼 가격이 급등락을 보이자 ‘가치 저장 수단’인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해졌습니다.

블록체인 기술

암호화폐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작아졌지만, 비트코인의 근간을 이루는 ‘블록체인 기술’은 세상을 변화시킬 혁신적인 방식으로 여전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인류의 삶을 바꿔놓은 것처럼 블록체인 기술이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거래 정보를 기록한 장부를 말하는 ‘원장(ledger·元帳)’을 모든 구성원이 각자 보관하고 새로운 거래가 생길 때마다 모든 구성원이 장부를 똑같이 업데이트하는 방식입니다. 원장이 여러 사람에게 분산돼(distributed) 있다는 의미로 ‘분산원장 기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블록체인이란 말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특정 시간(예를 들어 10분) 동안 발생한 모든 거래 정보가 기록된 블록(block)이 생성돼 모든 구성원에게 전송되면, 각자가 가지고 있던 블록들의 모음(chain)에 새로운 블록을 연결하는 원리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에서는 해당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이 신용화폐에서의 공인기관 역할을 대신하는 셈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블록체인을 조작하려면 전체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가진 블록을 바꿀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조각투자

토큰증권은 블록체인 기술, 그러니까 분산원장 기술의 원리를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20억원짜리 건물을 토큰증권으로 만든다면 이 건물의 지분을 20만 개로 쪼개고, 20만 개의 블록에 소유권 등의 정보를 담습니다. 투자자는 20만 개 중 하나를 1만원에 사서 그 건물의 지분을 갖고, 자신이 가진 지분만큼 임대료 수입을 받거나, 자신이 원하는 가격에 다른 사람에게 지분을 팔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의 투자를 가리켜 ‘조각투자’라고 합니다. 하나의 투자 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여러 투자자가 함께 투자하고 이익을 나눠 갖는 것이죠. 투자자로선 소액으로도 큰 규모의 투자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입니다. 또 지금까지는 투자를 받기 어렵거나 불가능했던 투자 대상을 가진 사람도 분산원장 기술과 토큰증권 덕분에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런 혁신 기술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줍니다. 다만 혁신 기술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신중하지 못한 투자로 피해를 보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혁신만큼 투자자 보호도 중요한 가치입니다.

NIE 포인트
1. 실물화폐와 신용화폐의 개념을 정리해보자.


2. 블록체인 기술의 원리를 설명해보자.

3. 조각 투자와 투자자 보호에 대해 토론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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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4월 30일)
제목: "하나님, 질문있습니다"
말씀: 룻기 1:16
찬양인도: 쉐기나(이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현규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박신일 목사님(그레이스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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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16,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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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한 가지 질문을 먼저 드리고 싶다. 여러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머리를 때려하지 마시고 삶의 현실로 대답해 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 가정에는 고난이 오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 가정에 고난을 주신다면 하나님은 선하시는 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고난이 온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며 내가 기도하는 대로 들어주어야 한다. 저는 요즘 젊은 청년들을 만나면서 이런 안타까운 질문들을 하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안타까운 질문들을 하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된다. 자기 친구의 아버지가 너무 신실한 목회자였는데, 암에 걸려 젊은 아버지인데 그 목사님 아들이 기도했는데 결국 낫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 목사님 아들의 친구였던 이 청년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던 하나님이 아직도 원망스럽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과연 선하신가? 이 질문을 우리는 정직하게 해야 되고, 정직하게 대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의 생각이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일들이 종종 있다. 하나님은 사랑하실 때 우리의 머리로는, 삶으로는 의문이 갈 때, 이런 상황들을 직면하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인데, 어떻게 이런 상황 속에서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까? 오늘 룻기 1장은 내 가정이 모압 땅으로 이스라엘에서 모압 땅으로 이사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엘리멜렉의 집안인데, 1장 1절과 2절을 우리 다 같이 한번 보시겠다.

*룻기1:1~2,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엘리멜렉의 가문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을 찾아 모압 땅으로 이주 한 것이다. 아주 이들은 단순한 꿈 때문에 이사한 것이다. 먹고 살기를 원해서, 가정의 소박한 꿈을 따라 이동한 것이다. 혹자는 룻기를 이해할 때, 육의 양식을 따라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으로, 영적 의미로 해석해서 이런 재앙의 왔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해석을 저는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 이 본문을 잘 읽어보면 지나치게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 역시 조금 어려움이 생기면 우리가 살 만한 곳을 찾아 이주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소박한 행복을 찾아가는 결정이다. 여러분 행복해지는 걸 원하잖아요. 다 그런 소박한 것도 다 있다. 그것은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비극이 발생하고 3절부터 5절까지 보겠다.

*룻기 1:3~5,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먹을 것을 찾아 떠났던 이 가족은 남자들이 다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이들의 꿈이 아주 철저하게 깨어져버린 사건이다.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는다. 외국 며느리 두 여인으로 남아 있다.

여러분의 인생을 솔직하게 돌아보실 때 여러분의 꿈은 잘 이루어져 가고 있는가? 진행형인가? 아니면 이미 깨어져 버렸는가? 진행형인가? 깨어졌는가? 제 생각에는 둘 다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꿈 깨어질 게 참 많다. 눈 큰 아내를 찾기 원했건만,,, 우리의 꿈 중에는 깨어진 것이 많이 있다. 우리의 삶으로 돌아오면 우리 가정에 한 가정의 어머니가 연결되어 있다. 중병에 걸렸을 때 어느 가정도 기도하지 않겠는가? 고통을 거두어달라고 우리는 간절해 기도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능력 있는 하나님이 안 고쳐 주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맞다. 모두 주시지 않는다. 만약 우리 가족 중에 한 사람이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고칠 것이다. 근데 하나님은 전능하시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가정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은 얼마나 소박한 꿈인가? 그런데 그 꿈이 깨어져 나갈 때도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은 여전히 살아 있지만 ‘왜 그러실까?’ 라는 우리 마음속의 작은 질문이 지워지지 않은 채 살아갈 때가 우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고쳐주시면서 우리가 원하는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시면서 하나님은 여전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로마서 8장 32절을 우리 다 같이 한번 보겠다.

*로마서 8:32,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침묵하시면서도 주님은 이런 말씀 이게 그렇게 하고 있다. 아들까지 내어주시니 그분이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혼돈스러울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답답하기까지 하다. 왜 하나님은 선하시고 전능하시기까지 하는데, 우리가 고통당할 때, 때로 해결해 주지 않고 왜 비극을 그냥 통과하게 하시는 것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룻과 나오미, 나오미라는 시어머니는 꿈이 산산 조각난 상태이다.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었다. 그리고 그 한 며느리만 따라오겠다고 해서 몸만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때 룻이라는 이 며느리에게 이방인 여인이었던 며느리에게 뜻밖의 고백이다. 자기는 끝까지 쫓아가겠다는 것이다. “너는 젊으니까 모압 땅에서 새로운 남편으로 만 잘 살 거라.” 아무리 이해시켜도 끝까지 따라온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한 말은 “어머니 백성 내 백성들 어머니 하나님 내 아들 됩니다.” 라는 이 믿음으로 쫓아온다. 그래서 이 책은 나오미 서가 아니라 룻기라고 책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관심은 룻에게 있지 않다. 이 나오미에 관한 고난에 대한 이 질문을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을 좀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질문을 해볼까요? 룻이라는 여자가 신앙을 가졌는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있다고 했는데, 이 믿음은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 누구에게 배웠다는 것인가? 시어머니,,, 어느 어머니? 분명히 시어머니의 혜택이었을 것이다. 재밌는 질문은 뭐냐면 시어머니의 믿음이 더 좋은 것인가? 며느리의 믿음이 더 좋은가? 시어머니일 것이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정정을 해드리고 싶은데, 여러분 며느리라고 할 것이다. 시어머니가 룻에게 믿음을 줬고, 믿음이 룻은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10년도 안 됐을 텐데, 여러분 룻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나오미 믿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분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다. 나오미를 여러분 낮게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렇게 믿음으로 말하는 그 며느리한테 여러분 고향으로 돌아오는 나오미는 사람들이 저 여인이 누구냐 라고 물어볼 때, 뭐라고 대답하는지, 한번 어떤 말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오는지 19절과 21절에 보도록 하겠다. 제가 읽어드릴게요

*룻기 1:19~21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너무 오랜만에 나타난 거죠. “이 사람이 나오이냐?” 나오미는 다르다는 뜻이다.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대답한다. ‘마라’는 쓰다는 뜻이다. 이름을 개명했다. 자기를 나오미 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 마라라고 부르라고 한다. 우리나라 말로 어떻게 번역이 되는가 하면 이거 내 이름을 그냥 ‘괴로움’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이 괴로움, 박괴로움, 김괴로움, 이렇게 불러달라는 것이다. 자기 인생이 쓰다고 본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냐면 나는 나갈 때 풍족하게 나갔는데, 여호와께서 빈 손 되게 만드셨다고 한다. 질문하겠다. “누가 망하게 만들었는가?” 하나님께서,,, 저는 신앙생활의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정직함’이라고 본다. 여러분 안 믿어지는 걸 믿는 것처럼 표현한 것 같다. 힘든데 힘들지 않는 것처럼, 그럼 신앙이 성숙하지 않는다. 힘들 때, 어떻게 고백해하고 기도해도 ‘하나님 힘들어요!’ 라고 기도하라!~ 맞는가? 안 되는 걸 있는 것처럼 과장하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 나오미를, 자꾸 나오미의 믿음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데, 믿음이 있는 분인데 근데 있는데 힘들어서 뭐라고 말하냐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고 주님께 원망하고 있다. 주님께서 원망해도 괜찮다. 그래서 탄식 기도를 하게 된다. 사람한테 하지 마시고 주님께 하셔야 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의 질문이 있다. 나오미의 입장에서 하나님은 선하신가?

여러분 나오미는 지금 나오미를 생각한 하나님은 전능하신 건 맞는데 선하신가? 여기에는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온다.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바가 있다. 내 꿈이 이루어지고,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내 목표라면 하나님을 따라가고 신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나의 과정이 가장 이루어지고 모든 하나님 나라 만사형통하고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 삶의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면, 주님 따라가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왜? 아닌 경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믿음을 가지면 신앙이 우상숭배로 전락하게 된다. 왜 우리는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을 따라서 가르칠 것이고 우리 신앙은 교회에 앉아있어도 우상순배가 될 수 있다. 주일 예배에 앉아 있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여기 앉아 있다면 하나님을 내 말을 잘 듣는 착한 분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우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신앙의 최종 목표는 나의 행복이 아니라, 주님께. 영광이다. 룻기 1장은 나오마 집안의 소박한 꿈이 다 깨어진 장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한 번 저를 따라 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은 내 꿈을 깨뜨리신다.!!~ 동의하시는가? 안 하셔도 된다. 사실 우리 분들 중에 깨어지는 것이 많지 않는가? 너무 큰 목소리 하시는 분, 교구 목사님의 상담을 좀 받으시기로... ㅋㅋㅋ 오히려 우리 꾼들이 깨어질 때 우리 아이는 질문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런 1장을 피해갈 수는 없다. 혹시라도 우리에게는 우리 가정에는 이런 권한이 뭔지 모른다 그런 분들이 있다면 전혀 고민하실 필요 없다. 다른 질문을 던져 우리의 꿈이 다 깨어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내 꿈이 깨어지는 건 정말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심지어 가족 중에 누가 죽는 건 이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여전히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내 꿈이 깨어질 때,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깨어질 때, 이런 생각을 하고 싶을 것이다. 내 믿음이 흔들리고 믿음이 깨어질 수도 있구나! 의심이 찾아올 수도 있구나! 하나님이 선하시는가? 이런 질문을 내 마음속에 던질 수도 있구나!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내 삶이에요. 그럴 수 있다.

저는 이것을 다른 각도로 좀 올려다보겠다. 이런 의심의 순간이 올 때, 고난이 계속 지속될 때, 진짜 내 믿음이 깨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껍데기 믿음이 되어지는 것인가? 내 믿음의 본질이 흔들리는 것인가? 아니면 형식적인 믿음, 나만이 잘 되길 원했던 잘못된 믿음이 깨어지는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오미는 남편도 잃고 두 아들까지 잃었다 한 여인으로서는 절망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한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면 그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뭔가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만약 아무 일도 없다면 그냥 절망만 준다면 그건 재앙이다. 여러분, 이 꿈이 다 깨져버린 나오미는 뭘 깨달은 것인가? 뭘 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이 이런 고난으로 바닥을 치게 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깨닫는 것이 있다. 그게 뭐냐 하면 아무런 조각도 없다. 남편도 없고 두 아들도 없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 나오미를 마라라고 불러라. 이 고난에 바닥을 칠 때, 믿음의 사랑을 다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 주님만이 선하시다. 아멘. 이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재앙이다. 절망이 올 때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기쁨은 영원한 이름은 주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얻는 것이다.

※미국의 기독교 대학 교수를 지낸 ‘제럴드시처’ 라는 사람 있는데 이 사람은 가족들과 자녀 넷과 아내와 장모님을 모시고 휴가를 간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상대방의 자동차가 직진해서 정면충돌을 한다. 그리고 그 사고로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막내의 딸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 홀로 남고 자녀 셋을 기르고 이 사람은 끝까지 재혼을 하지 않고, 지금 미국에 있는 기독교 대학에 그 학교에서 역사와 영성을 가르치고 있다. 이분은 재혼하지 않는다. 혼자서 평생을 자녀를 키우며 산다. 이런 질문을 그런 던진다. 이 ‘제럴드시처’라는 사람의 책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번역해서 몇 분이 그분이 질문한 것이 이것이다. 이런 사고를 겪고, 재앙을 받았다는 것을 주님은 미리 아셨던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님은 아셨을까? 모르셨을까? - 아셨다는 것이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아셨다는 것이다. 아셨을 거다. 그럼 이 사람의 질문이 이것이다. 이런 미래가 벌어질 줄 알았는데, 알았다면 내가 결혼하는 것이 맞는가? 이런 깊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늘 이런 결론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말 주님이 아셨다 할지라도 그래도 결혼 했던 것이 맞다. 잠깐이지만 그 아름다운 시간의 행복을 누렸고, 그걸 이렇게 한다. “혼자 자녀를 보면서 나는 이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 혼자 자녀를 키우는 동안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슬픔을 돌봐주셨고, 매일 주님은 우리 가정의 위로 자가 되어 주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삶 속에 비극 속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내가 믿고 사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 가족의 비극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속의 구원의 역사를 써 가시는 중이다. 나는 그분을 믿으며 내가 처한 곳에서 오늘도 그분의 뜻을 행하며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주님은 나를 붙들어 주신다 그분이 나를 향한 섭리와 다스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기가 이 기구를 통과하면서 깨달은 게 뭔지 아는가? 비극은 비극인데 자녀 셋으로 홀로 키우면서 하나님이 감정적으로, 인격적으로 나를 돌보시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올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나오미의 집안은 처절하게 꿈이 깨어진다. 주님은 그 비극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써 가신다. 어떻게 가시냐면 룻과 보아스가 만나면서 그들의 후손으로 다윗을 거쳐 예수님이 오게 하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고 계시다는 것이다. 여러분 절망의 시간에 우리 안에 수없이 많은 질문이 올라오지만,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기쁨은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주님이셔야 한다. 우리가 구해야 될 참된 기쁨은 오직 주님이 되기길 바란다.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다. 이 믿음을 고난에서 퍼 올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래서 첫 번째로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 한 번 따라해 보자. 내 꿈이 깨어질 때, 하나님의 꿈이 보인다. 주님이 내 꿈을 그렇게 깨뜨리신 이유가 뭔지 아는가? 저는 하나님의 꿈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프랑스의 정말 믿음으로 살았던 잔느기용은 고난에 대해서 우리에게 깊은 이해를 열어준다. 오늘 두 번째로 나누려고 하는 것은 나오미의 이야기를 잔느기용의 눈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나오미 사건이라든지, 욥기 사건이라든지, 성경에는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하는 고난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자랑하고 싶은 욥, 그 의롭고 경건한 자에게 하나님이 아무런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게 해보라는 것이다. 우리 생각을 이해할 수 일이다. 너무 경건한 자에게 사단이 그 가정을 치는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나오미 역시 마찬가지이다. 룻에게 믿음을 심어준 여인이었지만 절망의 고통을 지나고 있다. 만일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 만일 고난을 상징하는 계절이 있다면 어떤 계절이 고난에 가깝겠는가? 상식적으로 답하시면 된다. 겨울이다. 잔느기용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겨울나무를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겨울나무에는 잎사귀가 있는가? 뭐만 있는가? 사랑의 교회는 늘 아기가 대답을 한다. 작년에 왔을 때, 특새에 예배 때에 3-4살짜리가 적기적소에 “아멘!!!”을 크게 했다.
그날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요. ...ㅋㅋㅎㅎㅎ 겨울나무를 상상해 보라. 그리고 여름나무를 상상해보라.

잔느기용은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여름 나무는 가지가 거의 안 보인다. 뭐 때문에?
잎사귀가 다 가리고 있는 무성하다. 겨울이오면 모든 이파리가 다 떨어진다. 가지만이 남는다. 나뭇가지가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나면 가지만이 남는다. 삐뚤어진 모양이 다 보인다. 어쩌면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나무일 수 있다. 그런데 원래 나무는 그 모습이다. 다만 실제 모습을 가려줄 잎들이 지금 사라졌을 뿐이다. 이것이 고난을 당하는 신앙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나오미처럼 룻기의 1장은, 욥기처럼 친구들이 와서 고소를 하며 정죄하던 그 욥기의 시간을 겨울이 찾아왔던 책이라는 것이다. 고난이 오면 우리의 실체가 나뭇가지가 다 떨어지고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를 가리고 있던 모든 잎사귀들 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결함투성이의 본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언제 고난의 날이라는 것이다. 내 내면의 실상이 그대로 노출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그때 보게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욥기를 통해서, 룻기를 통해서, 수많은 하박국이나 이런 책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은 뭐냐면 고난은 내가 외우고 있던 교리, 내가 알고 있는 신앙의 이론으로는 고난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번은 대답할 수 있다. ‘고난이 오면 나 그래도 주님 붙들 거야!’ 대답 한 번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난이 지속될 때는 그 이론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 진심이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욥은 친구들의 정죄와 수많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23장 10절에 이러한 고백이 터진다. 이거는 갑자기 한 말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 고통 속에서 하는 말이다.

*욥기 23:10,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이론이 아니라 고통을 통과하면서, 눈물을 통과하면서 터져 나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욥은 찬바람을 견뎌낸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자신의 믿음이 실제가 되도록 토해내는 고백이다. 여름 나무와 겨울나무에 대해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름에는 열매를 맺히고 무성한 잎사귀가 가득 덮는다. 겨울에는 가지만 남는다. 제가 질문하고 싶은 건, 가지만 남아 있는 겨울나무가 여러분 올 겨울을 잘 보시길 바란다. “겨울나무는 살아있는 것인가? 죽은 나무인가? 아무것도 없는데??살아있어요~~.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데 살아있어요. 죽어 있어요. 왜요?” 살아있다면 내년에는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잎사귀가 자라고 열매가 맺는 거 믿으세요? 여러분, 아멘,

잔느기요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겨울나무, 아무것도 없는 그 내부 깊숙한 곳에는 지난봄에, 여름에 아름다운 잎들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했던 생명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한다. 이것이 욥기를 통해서 눈길을 통해서 룻기를 통해서 주신 주님 음성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초라해도 지금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같은 나오미가 아무리 원망한 것처럼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떠s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믿음의 본질은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그동안 칭찬받았던 거 그런 것들로 둘러싸여 있던 것들, 모든 잎사귀들이 다 떨어져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 나오미는 초라한 겨울나무 같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 치고 있는 중이다. 여러분, 초라해 보여도 믿음이 좋은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무슨 나무가 되는 걸까요? 무슨 나무가 돼요? 그런데 겨울나무는 가장 강한 나무이다. 나무 안에 있는 생명이 겨울나무는 어떤 나무이냐면 생명을 맺는데 지금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가장 생명에 깊숙한 줄기가 보이지 않는 뿌리 부분으로 모든 생명이 모여든다. 겉으로는 죽은 것처럼 나무가 보일지 모르지만 잎사귀가 떨어져 초라해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생명을 지금 지니고 있는 시간이 겨울나무이라는 것이다. 왜? 봄에 그 생명력을
발휘하기 위해서이다. 봄, 여름, 가을까지는 겉모습을 치장하는데 나무가 에너지를 쓴다. 봄, 여름, 가을에는 겉에 보이는 에너지를 쓴다. 하지만 겨울에는 내년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생명의 힘을 뿌리 속에 계속 모으는 시간이 겨울나무라는 것이다. 겨울나무 나무를 죽이는 계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더 강하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잔느기용은 욥이나 나오미처럼 고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이러한 교훈을 남긴다. 따라 해보자. “한겨울에도 믿음은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왔다고 질문이 아무리 있어도 죽을 것이 아니디. 여러분 우리 믿음은 더 강해지기를 믿는다. 우리 모두 고난이 올 때, 겨울나무가 되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질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고통스러운 질문과 기도속에는 이 고난을 이겨 정말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여러분 생명력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을 잊지 말고, 여러분 고난 가운데 믿음이 더 강해지는 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마지막으로 나눌 것이 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 나오미를 보면서 저는 예수님 얘기로 결론을 맺으려고 한다. 이 예수님에게도 가슴 아픈 시간이 있었다. 그것은 감란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실 때이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록되기도 하고, 그것을 감람산이라고 기록하는데 주님은 기도하신다. 십자가에 죽기는 육신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시기에, 우리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신다.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옮겨 주시옵소서.” 어떻게 해달라고 하시는가? 옮겨달라고 하신다. 육신의 고통을 아시기 때문에 피하고 싶으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다시 기도하시는 것이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본심은 지나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우리는 이 기도를 많이 하죠. 지나가게, 빨리 사라지게, 이게 우리의 기도이다. 그런데 예수님도 거절당하신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도 거절당하신다. 그 예수님은 감란 산에서 그 기도를 거절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 감란산은 예수님의 소박한 꿈을 깨뜨리는 산이었다. 그 고난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 피하고 싶으셔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되는 기도가 뭔지 아시고 아시는 기도이다. 예수님은 감람산의 기도를 거절당하시고 죽으셨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감란산은 예수님의 꿈을 깨뜨려버리는 산산조각 내버린 산만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보여준다. 감란 산은요 소망의 산이 된다. 승리의 산이 된다. 왜 그런지 여러분과 마지막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이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하던 감람산이 절망의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감란 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감란 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는가?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이 땅에서 함께 제자들을 만나시고, 그다음에 승천하셨고, 다시 오시게 될 것이다. 우리 교회는 이 믿음이 서 있어야 한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그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사도행전 1장에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다. 1장 11-12절이다.

*사도행전 1:11~12,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 어디에서 돌아왔는가? 어느 산? 제자들이 지금 감란 에서 돌아왔다. 뭘 목격하고 온 것인가? 지금 승천을 목격하고 온 것이다. 예수님이 감란 산에서 절망만 하신 것이 아니다. 그 산에서 주님은 승천하신 그 장소 바로 그것이 감람산이다. 예수님의 소박한 꿈이 깨어진 자리가,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는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분이 누구신지 온 세상에 알리는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할 만한 역사를 일으키는 산으로 주님은 계획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언제나 고통을 이길 능력이나, 행복이나, 우리의 쾌락을 약속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자신이 당한 고난과 절망의 순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심을 붙들고, 믿고 나아가게 하는 위로와 힘이 되어 주실 줄로 믿는다. 예수님은 어느 날 감란 산에서 울며 기도하셨다.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그 꿈은 깨어졌다. 하지만 부활하시고 그 감란 산에서 승천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소망이 계획을 우리 주님은 준비해 두시고 예수님의 그것을 거절하신 것이다. 우리 꿈이 깨어지는 것들이 있다. 내 감란 산이다. 여러분, 그곳이 내 믿음이 살아나고, 부활하고, 다시 일어나는 승리의 감란 산으로 바뀌는 오늘 예배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무너진 곳에서 내 믿음이 부활하는 것, 아멘!!! 내가 고난당하는 그곳에서 “하나님, 살아 계십니까?” 질문하는 그곳에서 두 손 들고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선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한 번 따라하겠다. “나의 감란 산을 가지고 사십시오.” 여러분, 무너진 자리가 믿음이 부활하는 자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요약
내 인생 가운데는 내 꿈이 산산 조각난 고난의 현장들이 있고, 눈물의 자리가 있다. 예수님도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셨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어 달려 죽으실 때,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소박한 꿈을 하나님은 거절하셨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감란 산에서 우리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놀라운 승천의 계획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내가 쓰러지는 곳에 주님께 소리치며, 기도하며 “주님 살아계십니까? 하나님 선하십니까? 하나님 내 인생에 왜 이런 아픔을 주십니까?” 이렇게 기도하게 하시는 뜻을 알아서 그 기도를 넘어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내 믿음이 부활하는 인생이 되고, 예배가 되어야 하며 고난 때문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겨울나무가 되어 내 믿음이 강해지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하나님이 정말로 보이고, 하나님의 꿈이 보이는 믿음이 되고 예배가 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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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역 사랑의 교회---

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2023년 4월 29일).
제목:"사랑의 교회, 믿음의 세대 계승"
말씀: 디모데후 2:1~2
대표기도: 조영옥 권사님(목양1팀 직장인 대교구장)
말씀읽기: 김현무어린이(소년부), 정가은 어린이(유년부)


설교자:
이민형 부목사님(주일학교 팀장)
이윤기 부목사님(대학부 팀장)
이기호 부목사님(청년부 팀장)
ㅡㅡㅡㅡㅡㅡㅡ

디모데후 2:1~2,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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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김도훈 부목사님)
 
-아주 아름답고 묘한 조화를 잘 이루어서 힘 있게 또 말씀을 읽어주셨습니다. 오늘은 믿음의 세대 계승을 위한 중요한 시간으로 ‘사랑의 교회 믿음의 세대 계승’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각 부서 팀장 목사님이신 주일학교 이민영 목사님, 대학부 이윤기 목사님, 청년부 이기호 목사님께서 연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시겠습니다. 특별한 은혜의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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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형 부목사님(주일학교 팀장)
-이런 현상을 전문 용어로 예찬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같은 노래를 부르며 찬양을 하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영적 은혜를 누리는 촉촉한 은혜의 봄비 은혜의 단비가 내린 이 새벽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흥 헌신 토비에 달려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께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꼭 받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토비새에 나오면 세대 차이가 없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를 저에게 꼽으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르는 노래가 같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상에서는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서로 다릅니다. 완전히 다르죠 어른 세대는 이 노래를 들으시면 마음이 울컥하신다고 합니다. 선대에 주신 은혜가 그대로 흘러가는 신앙의 세대 계승이 일어나는 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의 세대가 이 토비새에 나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어야 하는가? 이 자리가 온전한 믿음의 계승이 부어지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대 차이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수선 대후 은혜의 강물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러가듯 선대해 주신 은혜가 후대에 그대로 흘러가는 신앙의 세대 계승이 이루어지는 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왜 믿음의 4대가 부흥하신 토비새에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어야 하는가?! 그것은 이 자리가 바로 전한 믿음의 계승이 이루어지는 현장이기 때문인 줄로 확신합니다.

오늘 함께 읽으신 본문은 지난 2월 말 영접 성인식 캠퍼스 선교사 파송 때, 담임 목사님께서 믿음의 세대 계승의 내용으로 강조해 주신 말씀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주셨던 말씀 중에 저는 이 부분이 기억납니다. 바울, 디데 충성된 사람들, 또 다른 사람들이라는 연결고리로 영적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에는 언제나 같은 사명과 꿈을 가지고 함께 진액을 쏟고 함께 죽을 수 있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이것이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이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신앙의 세대 계승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이죠.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이 유언과 같이 남긴 그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평생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전 생일을 걸 수 있었던 것은 담의 색으로 가는 그 가운데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확실하게 만난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생생한 경험이었죠. 그래서 그가 쓴 여러 서신 서에 보면 자주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증인’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증인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확실한 체험과 동시에 오직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강력한 변화의 원동력이 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역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데 진액을 쏟았습니다. 사도행전 28장 23절 말씀 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28:23,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를 위하여 그리고 바울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은 오직 살아계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로마서 10:17,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이 말씀의 가치와 소중함을 발견한 사도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그의 진심을 전합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6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오늘 사도 바울의 진심이 담긴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온전한 믿음의 세대 계승을 위해 먼저 우리 다음 세대에게 이 말씀의 계승이 이루어져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계승한다는 것은 유일한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 세대에게 잘 가르치고 또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의 자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계승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신명기 6장 6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신명기 6:6~9,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사도 바울 역시 이 엄중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며 그의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다시 한 번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17절의 말씀을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버전으로 다 같이 읽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6~17,
16성령의 모든 부분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깃들어 있어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
17우리에게 진리를 보여주고 반역을 드러내며 우리의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우리를 훈련시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게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온전해지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일을 이어가게 됩니다. 아멘
-우리가 평소 읽는 개혁 개정 성경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이 표현은 헬라어 원어로 데오프니온스토스(Theophnionstus)라고 하는 단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금 읽으신 메시지 성경 버전에서 조금 더 와 닿게 번역을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숨결,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숨결 하나님의 호흡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구약 성경의 한 이야기가 생각나시죠? 생각나시죠? 아멘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무엇을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의 호흡은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문자나 역사책이 아니요.

*창세기 2:7,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지금도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숨결이 그대로 담겨 있는 생명의 책인 줄로 믿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의 생명력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절대 가치와 기준이 사라진 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만 해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을 보면 어른들도 혼란스럽고 멘봉이 찾아올 때가 많은데 다음 세대 우리 자녀들이 맞이하는 현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과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우리 사랑하는 다음 세대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고 이 말씀을 붙들 때에 세상의 능이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온전히 세워지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사랑의 교회 주일 학교에서는 지난주 토요일부터 6주간 ‘일터 선교 글로벌 네트워크 아카데미’에서 앞장서 섬겨주시는 평신도 리더들과 함께 특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공동체 성경 읽기와 함께하는 다음 세대 인공지능 과학 융합 교육 캠프입니다. 빠르면 내년에 함께 참여하는 학생들을 학생들 중에 선발하여서 하버드 대에도 데리고 가신다는 그런 계획을 들었습니다. 입학이 아니라 탐방입니다. 잘 들으셔야 됩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점점 확대해 갈 것입니다. 앞으로 지금 현재는 초등학교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약 한 50여 명 정도 참여하고 있는데요. 이 시간은 단순한 가화 캠프가 아닙니다. 먼저 우리 아이들이 1시간 동안 성경 통독을 합니다. 1시간 동안 별로 안 놀라시는데요. 1시간 동안 성경 통독을 합니다. 그리고 간단한 실험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공지능 여러 가지 관련된 주제를 소개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세상의 모든 과학을 뛰어넘는 진리라는 사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이 모임을 함께 섬기시는 한 집사님의 고백입니다.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모든 답은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혁신과 변역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책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이 프로그램을 함께 섬기고 계시는데요. 믿음의 세대 계승, 그 시작은 말씀의 계승으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다음 세대 말씀 계승의 사역을 위해 저희 주일학교, 대학부, 청년부는 더욱 전심전력(全心全力)하여 섬기겠습니다.

또한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도 각 가정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이 말씀 계승을 최우선순위로 삼아 함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나누는 이 사명을 감당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에 혹시 옆에 우리 자녀가 있다면 우리 부모님들께서 잠깐 성경책을 들어서 우리 자녀 손에 이렇게 얹혀주시며 네 손에 전해주시면 이렇게 한번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다. “너에게 남겨줄 건 이것밖에 없다.” 한번 해 보시죠!! “너에게 남겨줄 건 이것밖에 없다.” 자녀들의 표정이 갑자기 너에게 남겨줄 건 이것밖에 없다. 이 하나님의 말씀 계승이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우리 다음 세대 그리고 온 연 가족들의 믿음의 가정 가운데 놀라운 변화와 응답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어서 대학부 팀장으로 섬기는 이윤기 목사님이 믿음의 세대 계승을 위한 두 번째 메시지 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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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부목사님(대학부 팀장)
-앞에서 들으신 것처럼 믿음의 새들 계승의 출발점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계승입니다. 우리 주일학교 다음 세대와 그리고 대학부 청년부 모든 청년들이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끝까지 붙잡고 계승할 때에 이 세대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믿음의 세대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온전히 계승해야 하는지 디모데에게 말하는데요. 그것은 바로 훈련을 통해서입니다. 그 훈련의 내용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디모데 후서 2장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디모데후서 2:15,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여기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인 청년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것을 당부하는데요. 그 목적이 무엇이냐면 하반 절에 나오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기 위하여 입니다. 즉 바울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훈련을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옳게 분별하며 라는 이 말을 조금 더 원문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해 보면 정확하고 분명하게 해석하고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라. 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5절을 다시 한 번 제가 해석해 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5절
“디모데야,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해석하고 삶으로 실천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아멘”
-우리 20대 청년들은 아직 인생에서 해결되지 않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1.먼저는 내 삶과 미래의 가정을 책임질 직업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2.두 번째로는 그 일생을 함께 살아갈 배우자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이 20대로 돌아가고 싶으신 분 안 계시지요? 3.마지막으로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명을 많은 청년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20대라는 시간은 주님 앞에서 주님 안에서 이 세 가지를 놓고 끊임없이 시름하고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울은 지금 그러한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훈련이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것이라고 건면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살아가는 캠퍼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저희 사랑의 교회 대학교 교역자들은 항상 학기 중에 청년들이 있는 캠퍼스로 나아가 함께 신방하며 교제하며 예배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요. 그 캠퍼스의 모습은 여기 계신 많은 성도님께서 다니셨던 캠퍼스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삶을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세상의 매스미디어를 타고서 성경적이지 않은 모습들이 우리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습니다. 사귄 지 100일이 되면 무엇을 하냐? 고 물어보면 믿지 않는 청년들은 당연히 100일 기념 여행을 가서 잠자리를 가져야 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에 서로가 잘 맞는지 무엇을 해야 된다. 라고 말을 하냐면 동거를 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 라고도 이야기를 하고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동성애와 이를 옹호하는 많은 세미나 컨퍼런스의 포스터가 학교 게시판에 버젓이 붙어 있습니다. 또한 세속적인 성공에 혈안이 되어서 성공적인 취업과 자아 성취에만 몰두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 그리고 이 모든 것 사이를 뒤집고 들어오는 염세주의와 허무주의 이러한 모습이 우리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는 캠퍼스의 현실이자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 청년들이 살아가는 캠퍼스 한복판에는 세속화라는 무시무시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천만한 현실을 캠퍼스에서 마주하고 있는 우리 크리스천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저 세상의 물결이 너무 거세어서 그 앞에서 좌절하거나 혹은 휩쓸려 살아가며 그것이 현실이라고 자주 섞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최선일까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한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성경을 해석하여 그 말씀을 삶으로 뿌리내리는 훈련을 통하여 이 세대를 휩쓸려 가는 세속화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돌파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대학교에 머무는 그 모든 시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훈련이요, 주님의 몸 된 교회와 공동체를 사랑하는 훈련이며 무엇보다 제자 훈련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해석하고 삶으로 실천하며 복음의 증인이 되는 훈련의 장인 줄로 믿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랑의 교회 대학부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청년들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캠퍼스 시절부터 세상과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자라가는 이들에게 어찌 소망이 없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훈련받고 준비된 이 청년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귀한 일꾼으로 반드시 사용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삶으로 살아내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한데요. 이를 더 잘 감당하기 위해서 바울은 한 가지 훈련을 더 권면합니다. 우리 2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2:22,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아 지금 바울은 청년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력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른 자들과 함께 할 것을 권면합니다. 먼저 청년의 정욕을 피할 것을 강조하는데요. 여기에서의 정욕은 단순히 성적인 욕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가 아닌 방종,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태도, 이기적인 야심 교만함, 성적인 음란함, 이 모든 것들 즉 청년의 때에 마주하는 모든 충동과 욕망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정욕입니다. 그렇다면 피하라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피하라’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도망쳐라!입니다.

바울은 청년들에게 청년이어 청년의 때에 마주하는 모든 충동과 욕망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도망가라 라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욕으로부터 혹은 유혹으로부터 도망치는 삶을 가장 잘 실천했던 창세기의 인물이 한 명이 있는데 혹시 누군지 아실까요. 요셉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할 때 요셉은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지 않았어요. 요셉이 그 여인의 말을 청종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려 애를 썼더라. 라고 써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셉이 어떻게 했죠? 도망칩니다. 옷을 벗어두고 도망칩니다. 지금 이 모습이 우리 청년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대학부를 담당하고 있지만 이곳에는 대학부뿐만 아니라 우리 많은 믿음의 온 세대가 함께 모여 있습니다. 여기서의 청년은 비단 20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늘 말씀해 주신 것처럼 주님 앞에서 마음이 되면 모든 주님의 성도들께서도 포함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세속적인 문화는 거침없이 우리 삶으로 파고 들어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동성애의 문제 마약의 문제 물질 만능주의의 문제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청년들의 연애에서 세상 속에서 보여주는 너무나,너무나,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들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드라마, 영화 우리 청년들이 믿음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청년들에게 요청하신 것이 바로 도망쳐라!!! 입니다. 괜히 마주하는 다양한 유혹과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도망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렇다면 산으로 도망치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반 절에서 도망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하는데요. 22절 하반 절인데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디모데후서 2:22,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중간고사 기간만 되면 대학부에서는 두 가지 기류가 형성됩니다. 주일의 캠퍼스로 가서 공부를 하여 나의 시험 점수를 올릴 것인가? ㅎㅎㅎ 아니면 교회에 나와서 내가 예배하며 주님 앞에서의 우선순위를 세울 것인가? 저는 우리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일에 공부한다고 해서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 않니? ㅎㅎㅎ 아마도 토비새에 나오시는 우리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무슨 소리냐 교회에 가야지 하며 등짝 스메싱을 날리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우리 대학부 주체들은 캠퍼스에 남아 공부하는 다른 청년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드나 봅니다. 내가 이 황금과 같은 주말 시간을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예배하고 대학부 공동체들에 모여서 함께 교제하며 말씀을 나누는 것이 너무 어리석은가? 이렇게 뒤처지다 보면 세상에서 낙오되는 것은 아닌가? 이번 중간고사를 망치면 내 학점이 망쳐지고, 내 학점이 망쳐지면 내 취업이 망쳐지고, 내 취업이 망쳐지면 내 결혼이 망쳐지고, 이렇게 불안해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저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학부에 함께 모여 주님께 나아가는 그 자체가 훈련인 줄로 믿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삶의 최우선순위를 하나님을 예배하며 나아가는 것이 바로 훈련입니다. 나의 이기적인 욕망을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으로 바꾸어가는 것이 훈련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해 성경적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인생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공동체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번 한 주를 살아갈 새 힘과 새 은혜를 공급받는 것 그것이 바로 훈련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훈련을 통하여 준비된 한 사람을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인물로 사용하시리라 믿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계승하고 그 말씀을 훈련받는 모든 성도님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리라 다시 한 번 확신합니다. 또한 매주 토비새 모이시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기도와 격려가 다음 세대와 청년 세대를 살리는 귀한 통로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어서 청년부 팀장으로 섬기시는 이기호 목사님께서 믿음의 세대 계층을 위한 세 번째 메시지를 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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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부목사님(청년부 팀장)
-앞서 들으신 대로 ‘믿음의 세대 계승’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계승’ 되어야 하고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청년의 때에 정욕을 피하며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들이기를 힘쓰는 그 훈련이 따라야 합니다. 이 말씀의 계승과 훈련에 이어서 이제 신앙 계승 신앙의 믿음 계승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서는 말씀이 이제 전파되어야 합니다. 바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생애를 마감하면서 그리고 이 최후의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이것을 부탁합니다. 우리 함께 자막에 띄워주시는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2,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아멘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말씀을 전파하라. 라고 말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전파하다.’ 라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선포하여서 이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 공동체의 삶 전체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계승되고 훈련된 그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결국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선명히 드러나고 또 구체적으로 전파되고 선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도 오늘도 교회 각 소그룹과 다락방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말씀을 나누고 그 말씀을 가정과 일터와 가정과 일터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하며 또 복음을 힘 있게 전파할 때, 우리 하나님의 나라가 말을 잊지 않고, 능력에 있음을 이 땅 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 30대 청년들의 상황은 과연 그 배운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전에 그 믿음의 세대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갈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러한 것에 대한 본격적인 시험대가 되는 너무나도 중요한 시기가 30대 청년의 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돌아보면 20대에 교회 공동체와 캠퍼스에서 훈련받으면서 외쳐왔던 참 많은 믿음의 구호들이 있지 않습니까? 가령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내수동교회 대학부 시절에 동역 자들과 함께 고백하셨고, 또 지금도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영 가족들과 외치는 참 많은 구호들이 있기도 합니다. 또 특별히 아마 이 구호가 익숙히 아실 텐데요. 함께 한번 외쳐보실까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오직 한 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아멘, 너무나도 잘 아시죠? 또 우리 사랑의 교회 대학부에는 또 이러한 구호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제자 내일의 중심’ 또 나아가서 저희 사랑의 교회 청년부는 ‘하나님 나라의 청년 제자 운동’이라는 이 비전을 가지고 그렇게 전진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30대 청년의 시기부터는 이렇게 외쳐오는 이 믿음의 구호들을 과연 치열한 그 삶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실전에 돌입하게 되는 시기가 이 30대인 것 같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일터와 직장에서 실력과 경력을 쌓고 이력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에서 세상에 헛되고 망령된 말과 허탄한 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않고 투명하지 못한 돈과 명예와 달콤해 보이는 그 성적 유혹들을 따르지 않고 오직 말씀을 통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 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그 거대한 도전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러한 사실들이 또한 있지 않습니까? 경제가 어렵다고 할수록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말씀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sns를 통해서 때마다 또 주말마다 얼마나 많은 나라들로 해외여행을 다니는지 참 쉴 새 없이 많은 사진들이 공유가 됩니다. 그리고 현재 내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그리고 내가 사는 집이 어디이며 그리고 지금 내 통장 잔고와 자산 가치가 얼마나 되고 내가 가진 인맥과 경력이 얼마나 화려한지 바로 이러한 것들이 더욱 이 세상에 자랑이 되고 때로는 나를 이 세상에서 드러내는 무기가 된다. 라는 바로 그러한 현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러한 때에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그러한 이들이 있습니다. 막히는 출근길을 피해서 더 이른 시각에 회사 근처 카페로 삼삼오오 모여서 큐티로 하루를 시작하고 해외여행을 가는 대신에 휴가를 이용해서 단기 선교를 다녀오고 주말마다 어려운 이웃과 농촌 교회를 돕는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바로 그 말씀이 이끄는 삶을 살아내려는 그러한 청년부 지체들이 우리 사랑의 교회에 있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주일 오후와 저녁을 이런저런 모임으로, 강남에서 명동에서 서울 외곽 곳곳에서 만끽하고 있을 때 우리 청년들이 이 안아주심의 본당으로 나아와 함께 한마음으로 예배합니다. 다음 날 월요일 이른 출근을 앞두고도 주일 늦은 시간까지 소그룹으로, 말씀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영혼을 살리며, 참으로 한 주간을 다시 한 번 더 힘 있게 말씀으로 살아내고자 그 간절한 마음으로 이 말씀의 은혜를 차곡차곡 담는 그 우리 청년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지면서 참 이러한 소원을 품게 됩니다.

“주님, 우리 청년들이 훈련을 통해 배운 대로 그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분투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말씀 붙들고 섬기며 복음 전파하며 나아갈 때에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셔서 이 시대에 여호수아와 갈렙으로 믿음 보고 하는 다음 세대로 우뚝 세워 주시옵소서!” 바울과 디모데와 그리고 충성된 사람들로 이어진 그 믿음의 계보가 오늘날 이 시대에 더욱 힘 있게 이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이러한 소원을 품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성도님들께서도 바로 이러한 청년의 시기를 지나서 가장으로 그리고 부모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를 참 아름답게 세워오고 계실 텐데요. 매주 올려드리는 바로 이 토비세가 절망 가득한 이 세상 가운데서도 말씀의 빛을 들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그 선대의 신앙의 유산이 후대에 계승되는 믿음 보고 수선 대후의 현장으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사용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나아가 이 믿음의 세대 계승 그 수선 대후의 은혜가 이제 사랑의 교회를 넘어 한국 교회 전체에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신 지난 봄 특제를 기억하실 텐데요. 이제 우리 모두는 상암에서의 육삼(6.3) 빌리그래함 전도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역사를 보면 1973년도 여의도 빌리그래함 전도 집회를 시작으로 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 있게 하나님의 말씀이 곳곳에 전파된 그 놀라운 부흥이 그 여의도 빌리그래함 집회 이후에 불길같이 일어났던 것들을 우리는 보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라기는 이번 6.3 빌리그래함 전도 대회를 통해서 이제 사랑의 교회 믿음의 사대만이 아니라, 바로 한국 교회 믿음의 사대가 함께 모여서 한 손에는 복음의 말씀을 또 한 손에는 기도의 지팡이를 붙들고 믿음 보호하며 간절히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한국 교회 부흥의 새 시대를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새벽 말씀을 통해 사랑의 교회와 한국 교회 믿음의 세대 계승을 꿈꾸며 나아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절대 가치 기준이 사라지고 거짓과 죄악이 난무하는 이때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말씀 앞에 모두 무너지게 하옵시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말씀의 증인으로 서서 바울과 디모데와 충성된 사람들로 이어지는 그 믿음의 계보를 더욱더 힘 있게 이어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명 되시며 유일한 소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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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김도훈 부목사님.
각 현장에 가장 필요한 말씀으로 섬겨주신 우리 목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의 세대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또 마음껏 축복하는 심정으로 찬양을 올려드리고 싶은데요. 아까 처음에 우리 이민영 목사님 말씀하신 두 개의 노래를 저는 다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참 마음이 안타까웠는데 지금 올려드리는 우리 찬송은 아마 다 아시는 찬송 기쁨으로 찬양 36장 그의 생각 가사를 생각하시면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마음으로 축복하기 원합니다. 처음으로 우리 다음 세대가 주님이 원하는 세대임을 간절히 인도하는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심을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알려주기를 원합니다. 우리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심장에 품고 오직 주님 앞에서 정금같이 훈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힘 있게 어떠한 모양으로든 전파하며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다음 세대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다음 세대 믿음의 세대 개선 기도문 우리 1번부터 우리 3번의기도 제목을 우리가 먼저 함께 읽고 그리고 우리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읽습니다. 사랑의 길이 주일 학교가 세상 풍절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과 주권을 인정하는 세대가 되게 하시고 온전한 말씀 계승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옵소서. 사랑의 교회 대학부 우리 함께 봅니다. 사랑의 교회 대학부가 진리의 말씀으로 훈련받아 영적 야성을 갖추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세속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이 시대를 압도하는 거룩한 세대 되게 하옵소서. 아멘


세 분 기도 제목입니다.
사랑의 교회 청년부와 치열한 삶의 현장 가운데서도 훈련받고 배운 말씀의 진리를 붙들고 섬기며 전파하며 살아갈 때 가정과 직전과 일터 가운데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신실한 일꾼들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우리가 시간 기도할 때에 먼저 주일 학교를 위해서 우리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십시다 우리 주일학교 어린이 청소년들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그 은혜로 온전히 새롭게 되고 그 말씀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세대가 되도록 온전한 말씀 계승의 은혜가 바로 이 토비의 안아주심의 본당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주일학교 모든 구석, 부서가 풍성한 그 은혜를 누리도록 우리의 우리 주일 학교를 축복하면서 이 시간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자로 신실히 나아가는 그 모습이 우리의 보람이며 우리의 미래입니다. 주일 학교를 위해서 이 시간 마음으로 축복하며 저를 따라 고백하며 기도하며 나가겠습니다.

주여, 우리가 부르짖나이다.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사랑의 교회 주의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분과 같이 주님의 할례로야 감사와 찬성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 그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 되어 그들의 신자가 이 시간은 우리 대학과 청년부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우리 대학부 청년부 청년들이 이 세속화의 물결 가운데 힘들게 버티며 분투하며 나아가고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이 이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하여 훈련을 통하여 영적 야성을 갖추게 도와주시고, 경건함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를 압도하는 거룩한 세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청년들이 훈련받은 대로 말씀대로 이 세상에 나가 적응하려 하나 정말 쉽지 않은 현장에 현실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가정과 직전과 일타 가운데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신실한 일꾼들로 세워 주시옵소서. 오늘 잠시 쓰러지나 완전히 쓰러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힘 있게 일어나는 우리 청년들 될 수 있도록 우리 캠퍼스에 우리 모든 대학부 지체들 우리 청년부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이 시간 다시 한 번 마음을 모아 축복하며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도할 때에 우리 주일학교 대학부 청년부 우리 귀한 지체들을 섬기기 위하여 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우리 모든 우리 교사들 그리고 각 부서의 리더들, 우리 스텝 분들, 순장님들, 우리 교육자님들, 무엇보다도 전체를 책임지시며 이끌어 가시는 담임 목사님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리더십들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이들을 통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가 정근과 같이 귀하게 단련되어 주님 앞에 나올 줄로 확신합니다. 하나님 우리 주일 학교 교사들과 스텝들을 붙잡아주시고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가장 좋은 곳으로 공급해 주시고 먼저 성령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동료들과 동력 자들을 섬기는 우리 대학부 청년부 리더들 이들은 먼저 지치나 지친다고 말할 수 없고 심령이 외롭고 괴로우나 지체들에게 외롭고 괴롭다고 말할 수 오직 주님 앞에서 그렇게 훈련받아 나아가는 우리 리더들 우리 순장님들 하나님 붙잡아 주시옵소서 막대한 부담감과 또 주님 앞에 영적 책임감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 교육자들 쥐어 붙잡아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세우신 담임 목사님, 이 모든 사역들 앞에서 지휘하심을 이끌어 가시는데 주께서 신안에 강건하심을 성령이 충만하심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든 리더십들을 위하여 이 시간 다시 한 번 마음을 모아 축복하며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세대를 계승하여 주님의 이름이 영광받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 세대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바라옵기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우리에게 주셨던 은혜보다 더욱 차고 넘치게 은혜를 받기를 소원하오니, 마치 엘리사가 엘리아의 영감에 갑절을 구했던 것처럼 구합니다. 우리 주일학교 학생들 하나님의 말씀과 주권을 인정하는 세대가 되게 하여 주시고 디모데와 같이 어릴 적부터 말씀을 배우고 알고 준비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대학 부 지체들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압도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세스코의 물결에 배금주의의 신앙에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와 정욕에 휩싸여 있는 이 세대 앞에 순결히 정결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청년부 형제자매들, 치열한 삶의 현장 가정 일터 관계 가운데 때로는 쓰러지고 때로는 그 기준이 흔들리며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나아가는 우리보다 더 멀찌감치 나아가는 지체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플지라도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며 한 걸음씩 힘차게 걸어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일을 위하여 수고하고 애쓰시는 교역자들과 교사들 스텝들 우리 리더들 우리 순장님들 훈련생들 주여 붙잡아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고 때마다 감사와 기쁨과 보람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세우신 담임 목사님 더욱 강건케 하여 주시고 사형마다 부흥의 능력으로 채워주옵소서 홀로 영광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이 시간 믿음의 세대 계승을 이루어가는 사랑의 교회 영 가족 합심 기도문, 우리 다시 한 번 1번부터 4번까지를 저희가 쭉 한번 같이 읽고 기도의 마무리로 마음을 또 정리토록 하겠습니다.
우리 한 분 같이 기도의 제목 같이 읽고 고백하겠습니다.

1. 사랑의 교회의 믿음의 사대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믿음으로 전진할 때 가정이 은혜의 지성소가 되게 하사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성경적 각 기지를 굳게 지켜 나가게 하옵소서.
2.사랑의 교회 다음 세대에 온전한 믿음의 세대 계승을 이루어 주시고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 나라와 민족 가운데 나타내는 부흥의 선봉장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3. 현재 진행 중인 제121기 미주 제자 언론 지도자 세미나를 통해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삼는 목회 철학이 대륙 전체에 퍼져 나가 예수님의 대 사명을 교회마다 체화하게 하옵소서.
4. 내일 주일 예배가 작은 부활절 영광의 대관식 기쁨의 혼인 잔치가 되게 하사 선포되는 말씀과 찬양 기도를 통해 참된 예배자로서 한결같은 신선도와 밀도를 유지하게 하옵소서.


믿음의 4세대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함께 올려드린 기도의 제목과 같이 때마다 마음을 모아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 시간은 늘 우리 토비새의 마지막쯤에 마음 가운데 긴장하지만 기다리는 72구절 암송의 시간입니다.

-우리 함께 부른 이후에 일어나서 담임 우리 함께 72구절 우리 하나님을 의뢰함 성령 능력 성실까지 우리 여섯 구절을 암송할 텐데요. 모두 일어서시겠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함 우리 함께 암송 들어가겠습니다.

☆ 이번주 암송구절
-하나님을 의뢰함-
1.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은 알지 못하느냐.
2.
고린도전서 2장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시니.
3.
이사야 41장 12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내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워서 너를 붙들리라.
4.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5.
예레미야 3장 22절 23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운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6.
민수기 23장 19절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십니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요약
사랑의 교회 대학부 청년부가 치열한 삶의 현장 가운데서도 훈련받고 배운 말씀의 진리를 붙들고 섬기며 전파하며 살아갈 때 가정과 직전과 일터 가운데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신실한 일꾼들로 쓰임 받으며, 우리 주일학교 어린이, 청소년들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그 은혜로 온전히 새롭게 되고, 그 말씀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세대가 되도록 온전한 말씀 계승의 은혜가 바로 이 토비새의 안아주심의 본당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주일학교 모든 구석구석의 부서가 풍성한 그 은혜를 누리는 은혜가 있어야 한다. 섬기는 교사와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 드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자로 신실히 나아가는 그 모습이 우리의 보람이며 우리의 미래임을 알고 항상 미래세대와 우리 세대계승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도우며 헌신하는 기도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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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2023년 4월 26일)
제목: "복음은 기쁨입니다"
말씀: 로마서 1:14~1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설교자: 남동우 부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로마서 1:14~17,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ㅡㅡㅡㅡㅡㅡ
 
▶오늘 우리 사랑 형제자매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조금 우리가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행복한 모습이에요. 언제나 우리 사랑도 예배는 이런 모습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번 주 배포되어진 장애인 주간 기념 특별 신문을 읽으셨으면 오늘 본문의 말씀 제목처럼 “복음이 기쁨입니다.”라고 하는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받아보지 못하신 분계시면 나중에 예배를 마치고 가시다 보면 약 사이드에 이 신문이 있을테니 꼭 읽어보시면 정말 이곳에서 복음을 통해서 기쁨을 회복한 성도들을 만나게 되리라고 믿는다. 우리가 지금 3년 이상의 코로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생각지 못하게 우리 마음속에 있던 기쁨은 다 사라지고 보이지 않게 서로 다투거나 힘든 일을 맞이하면 참지 못하고 사건 사고가 이곳저곳에서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조금 힘들면 참아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원래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만드실 때에 아담과 하게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 세상을 창조해 주셨다. 창세기 1장 13절에 3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창세기 1:13,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힘이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들을 위해서 준비해 주신 자연 만물만 봐도 기쁨이 넘치고 행복이 넘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먹구름이 찾아온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을 통해서 우리 안에 죄가 들어오게 되어졌다는 것이다. 죄는 인간과 자기를 파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죄는 인간의 기쁨과 마음의 평화를 빼앗아갈 뿐 아니라 구원의 기쁨조차도 빼앗아갔다. 그래서 다윗은 10편에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해달라 라고 기도하고 있다
 
*시편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의 매개 회복시켜주시오”
-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죄는 자유를 억압하고 죄는 서로를 이간질하고 결국 죄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로마서 6:23,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한다. 이 병에 걸리면 치료할 치료약이 없다. 이 병에 걸린 사람에게 찾아온 것은 어떤 사람도 예외가 없이 죽음에 이르게 되어 진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끝나면 우리에게는 절망이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셨다.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정말 인간이 들어야 될 참 복음인 것이다. 이 복음은 바로 우리에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바 되어주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어 주는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귀한 복음의 메시지인 것이다. 오늘 봉독된 말씀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 에게로다.
-어떤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죄에서 용서 안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져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특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라고 말씀하신다.

*갈라디아서 4:6,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느니라.’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허를 주셨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선행이나 우리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되어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3,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이 아니고서는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장애인 주일 기념 수요 찬양대에 처음오신 우리 장애인 성도 가족 여러분들 우리 가운데 아직도 이 놀라운 복음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이 시간에 “예수님 믿고 싶습니다.” “성령님 도와주십시오.” 요청만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하시고 그 예수님을 나의 구조로 영접하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시간 여러분들의 마음을 열고 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어지는 것이다. 사탄 마귀는 언제나 우리를 좌절케 한다. 우리의 평안을 빼앗아 가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를 슬픔과 절망 우울의 모든 요소들이 가득하게 하고 우리의 매일의 삶이 아픔과 고통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어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가? 범사에 감사하게 여겨지고 모든 일에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말씀이다. 세상 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없고 아무것도 내어놓을 것이 없지만,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이런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나중에 이부 순서에 우리 장애 선교부가 사역하는 영상을 보게 될 텐데 이 사랑부 형제자매들이 주일 예배를 사모하고 기대하는지 예배 가운데서 찬양하는 모습을 볼 때, 천사들이 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주 안에 기쁨이 없다면 어떻게 이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손을 올리면서 찬양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약점을 바라보면 어떻게 저런 모습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으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이 기쁨이다. 제가 웃으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지금 많이 긴장이 돼가지고 제가 사랑부 형제자매들하고 설교할 때는 언제나 기뻐요. 영상을 보시면 되는데 어르신들과 함께 이렇게 예배하면 늘 긴장이 많이 되어진다. 사투리가 나올까 싶어가지고 세상이 주는 기쁨은 여러분 하루 이틀 지나면 유효 기간이 끝난다. 근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유효 기간이 없다. 평생 그 기쁨 안에서 행복을 누릴 줄 믿는다. 제가 섬기고 있는 사랑이 복지관 지난 코로나 가운데서도 귀한 사익을 했다. 오래전에 담임 목사님께서 “이 사랑의 복지관 같은 기관이 북한에서도 세워져서 연약한 자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셔서 저희들이 바자회를 해서 그동안 조금 많은 돈을 모아 놨다. 근데 통일이 빨리 되면 우리가 북한에 가서 우리가 복지관을 지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사실 복지관 후원금은 3년 안에 사실 사용을 해야 된다.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저희들이 고민하고 여러분들 찾는 가운데 간에서 탈북해서 나마비로 내려와 가지고 행복한 삶을 원하던 분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태어났는데 자라면서 모르게 장애 아이가 되어졌다. 사실 북한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이 남한에 와서 환경에 적응하는 데도 굉장히 어렵고 힘든데 태어난 아이가 자기 아이가 되어주니까 이중고를 겪고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겠는가? 마침 저희 복지관과 연결이 되어져서 이분 14가정들을 저희들이 섬기게 되었다.
이 장애 아동들이 필요한 치료비와 또 이 과정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2년 이후에 작년 겨울에 저희들이 사역 보고를 했다. 그들이 사역하는 것 같이 이런 고백을 했다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힘든 시간에 사라이 교회가 자신의 이웃이 되어줘서 함께 이 무거운 짐을 지어주심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심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그들의 고백 가운데 그들이 보고하는 가운데 나타난 것이다. 혼자서 힘들다. 라고 끙끙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와서 그 힘듦을 함께 주고 그들과 함께 웃어주고 그들과 함께 울어주는 귀한 분들이 있어서 이 코로나 가운데서 이 남한에 내려와서 장애 아이를 키우는 그 어음을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고백을 하였다.

 
마침 여러분들이 지난겨울의 추운 가운데서도 사랑의 쌀을 주셔서 또 사랑의 쌀과 함께 성탄절을 맞이해서 제가 이 가정들마다 방문해서 쌀과 케이크를 전하면서 필요한 가정에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었더니 그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뻐했는지 모른다. 이런 놀라운 기적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그 기쁨이 여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고, 정말 이 강대상을 통해서 지역으로 올라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파하게 되어 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웃음을 잃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웃음을 되찾게 해주는 강력한 능력 있는 복음인 줄 믿는다. 우리가 천국 가서 이 기쁨을 누리겠지만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음을 통해 잃어버린 기쁨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면서도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이 기쁨 가운데 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도록 기쁨의 통로로 우리를 사용해 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란다. 혹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 마음에 여러분들 얼굴 표정에 저처럼 이렇게 굳어 있거나 얼굴이 밝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을 한번 체크해 봐야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죄로부터 용서함 받고 영원히 죽어야 되는데, 영원히 지옥 가서 그곳에서 형벌을 받아야 되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나와 상관없이 나의 능력과 지혜와 관계없이, 어떤 모습이든지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 기쁨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기뻐하고 오늘도 이 자리 사모해서 이곳에 와서 예배하는 줄 믿는다. 여러분들 정말 예수 믿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줄 믿는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사모하지 않는가?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에 원래 하나님의 의로우심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 심판을 받아야 되는데,

*로마서 1:17,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들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되어져서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의롭지 않은데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라고 인정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 증거 되어졌고, 이 복음을 우리가 가지고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장애인주 기념해서 우리가 수요 찬양을 드리면서 물론 앞자리에 우리 소망부, 사랑부 형제자매들 가족들이 이렇게 다 앉아 있는 거 보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얼굴만 봐도 예수 믿는지 안 믿는지 알 거야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야 정확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이렇게 알지만 저는 우리 친구들이 우리 형제자매들이 얼굴만 보면 아 이 형제자매가 예수를 믿는구나!“ 알게 되는 거다. 놀라운 기적이다. 이런 경지까지 가기가 쉽지는 않다. 여러분 우리 친구들은 비록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해도 주일날 교회 오는 모습이 너무너무 행복하다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저는 형제자매들과 정말 복음 때문에 이들이 기뻐하고 매일 주일마다 춤을 춘다. 아까도 우리 쉐키나와 찬양할 때 춤을 춘 친구들이 나오고 싶은데, 혹시 여러분들이 당할까 싶어가지고 그 친구들은 자제하고 평소에 아주 온순하고 서 있는 친구들만 나왔다. 혹시 여러분 궁금하시면 주일날 한번 와보아라.
팔딱팔딱 뛰는데 저는 그걸 잘 못해요. 우리 친구들은 뒤에서 앞에서 찾아가면 손을 들고 찬양한다. 저는 사역 가운데 형제자매들과 이런 찬송을 부른다.

 
♬찬송가 565장 ‘예수께로 가면’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근심 걱정 없이 정말 즐거워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다. 예수께로 가면 맞아주시고 나를 사랑해서 용서하셔요. 예수께로 가면 손을 붙잡고 어디서나 나를 인도하셔요.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
 
-오늘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오늘 우리 모든 사랑부, 소망부 형제자매들 어린아이 같이 예수께로 가면 기쁘고 차장이 나오고 근심 걱정이 다 살아지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곳에 복음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여러분 오늘 가사처럼 우리의 삶이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예수님을 만나기만하면 주님이 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이 기쁨을 우리에게 주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어떤 환경이 온다고 할지라도 어떤 상황이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기쁨이 충만하다. 사실 우리 형제자매들 보면 장애라고 하는 이 높은 장벽이 있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데 이들 마음속에 복음 되신 예수님이 계시니까 그 장벽을 뛰어넘어서 매 주일마다 직장 가운데서, 사회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양할 수 있게 되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14장 17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병관과 희락이더라.”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즐거움이요 희락이라고 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다. 여러분들 매 주마다 여러분들 기쁨으로 교회 오시기를 바란다. 여러분, 혹시 기쁨이 없다고 할지라도 매 주마다 교회를 향해서 수요일 저녁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올 때마다 기쁨으로 나오면 그것은 또 기쁨이 생성되어지는 것이다. 혹시 아직도 여러분들 마음속에 기쁨이 없다면 이 시간이 기쁨 되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정말 기쁘고 행복한 삶이 되어주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한다. 오늘 주신 말씀 때문에 복음 때문에 일평생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기쁨을 잃지 아니하고 항상 기쁨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한다.

♣요약
오늘 장애인 주간 기념 수요 찬양 입을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처럼 우리 모두가 복음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아직도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님 도와주셔서 꼭 예수님을 만나는 결신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도가 영적으로 빚진 것은 먼저 복음을 받은 것과,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과, 다른 성도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은 것이다. 이신칭의(以信稱義), 이는 행위나 공로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2부,
이제 잠시 우리 특별 순서를 좀 진행하려고 한다. 먼저 우리 장애인 선교부 영상을 좀 보도록 하겠다. 이곳은 사랑의 교회에서 가장 사랑이 넘치는 사라이 교회 장애인 선교부 예배 현장이다. 함께 은혜 현장으로 가보실까요. 장애인 선교부는 발달장애인과 함께 예배하는 사랑부 청각장애인 성도들이 예배하는 소망부가 매 주일 기쁨으로 예배하는 문제이다. 사랑부는 1부 8시 이후 10시 3 4부 12시에 예배를 드리고 소망부는 오후 2시 20분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장애인 교성부 예배는 언제나 기쁨의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성도들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다윗처럼 자유하고 찬양하고 있다. 성도들의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천국 자치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다. 예배를 위해 성도들이 직접 대표 기도를 한다. 비록 언어 표현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장애인 선교부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춰 매주 일 은혜로운 말씀을 준비한다. 성도들을 위한 다양한 그림 자료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예배 중에 서로를 축복하며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합심하여 기도한다. 이 시간을 통해 성도도 스스로 기도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장애인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많이 응답해 주시리라 믿는다. 말씀의 능력을 장애인 전교구 성도들도 누리게 하고자 매주 성경 암송과 성경 쓰기를 진행하고 있다. 72구절 말씀을 좀 더 잘 암송하기 위해 손동작을 암송하고 글씨 쓰기가 힘든 성도를 위해 성경을 따라 쓰기로 진행한다. 예배를 마치고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교과 공부 시간이 있다. 장애인 선교부는 공과를 G 러브 비전에 맞춰 예배, 훈련, 사랑 섬김, 복음 전도의 큰 주제로 자체 제작하고 있다. 같은 공문을 설교를 통해 먼저 듣고 교과 공부를 통해 반복 학습을 함으로 성도들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삶에 적용하도록 도와준다.

※간증시간.

▷먼저 부족한 종이 저희 막내아들 준우로 말미암아 이 시간 귀한 감정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질병 치료와 출산을 우석의 힘에 의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집안 어른들 말씀으로는 저도 친가와 외가의 친척 중 세 분의 무속 인이 소위 영험한 국가 백일기도를 드려서 삼신할머니가 점지 하에 태어났으며 예수 믿으면 큰일 난다고 하셔서 저는 어릴 적부터 교회를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저는 4남매 장남으로 장성하여 결혼 후 두 딸을 낳았으나 가문에 대가 끊긴다며 아들 낳기를 종용하는
친척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그 당시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화제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1995년 각고의 노력 끝에 아내는 둘째 딸과 일곱 살 차이 나는 막내아들 준호를 출산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만 준호를 얻은 아내는 세상을 모두 가진 듯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된 준호를 데리고 집안의 결혼식에 다녀온 뒤 준호는 밤새 고열로 울음을 그치지 않아 출생했던 병원에 갔더니 단순 감기라는 처방을 받았고 며칠이 지나도록 열이 떨어지지 않자 몇 가지 검사 끝에 세균성 뇌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의사는 완치를 장담하며 준호는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거의 매일 고열과 특수 검사의 고통 속에서 차도가 없어 다른 종합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 다시 한 달간 입원 치료 끝에 퇴원을 하였으나 준호가 네 살이 되던 해 내막염 후유증으로 인해 심한 경기를 시작하면서 119 구급차와 병원 응급실을 단골처럼 찾게 되었으며 결국 발달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의료소송도 생각했습니다만 아픈 아이를 담보로 돈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소송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제게 주어진 모든 휴가를 준호의 치료에 사용하면서 아내와 함께 명의로 소문난 병원 한의원 침술사 기 치료사 승마 수영 각종 운동시설 언어치료실 등 좋다는 곳을 백방으로 찾아 매달렸으나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아내와 제가 준호의 치료에만 매달리는 동안 준호가 태어날 무렵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둘째 딸은 세 살 위인 큰 딸이 돌봐야 했습니다. 둘 다 엄마 아빠의 손길이 한참 필요한 때였는데 정말 미안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그랬던 딸들이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잘 자라줘서 결혼 후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준호의 교육과 장애 치료를 맡아줄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아내는 대학 다닐 때 믿었던 천주교를 멀리하고, 저의 부모님을 따라 불교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끝에 준호와 같은 아이들을 돌보는 수녀원을 찾아가 아내는 천주교로 개종하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도 큰 도움이 되질 않자 또다시 영험하다는 사찰을 찾아가 일러준 비법대로 실행해보았으나 그것 또한 준호를 제대로 치료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는 교회 복지관을 찾아가게 되었고 다시 종교를 바꿔 사랑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종교를 자주 바꾸는 것이 교회의 제자 사회 훈련과 전도 폭발 과정에 매달려 밤늦도록 고생하는 모습이 싫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라 그냥그냥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준호가 열세 살 되던 해 저는 직장의 건강검진 과정에서 신장 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준호의 치료도 막연하던 차에 저마저 암 선고를 받고 나니 제 인생이 모두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암 치료와 요양을 위해 직장에서 승진도 포기한 채 한직으로 물러나 소망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이 셋을 돌보면서도 지극 정성으로 저를 간호해주던 아내의 모습에서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고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 평소 가족들을 주일 예배에 데려다 주는 저에게 아내가 말했던 우리도 남들처럼 부부가 함께 손잡고 교회 다니는 게 소원이라는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동안 부모님과 친척들의 반대로 교회 다니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던 저는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 주님이 인도하시는 사랑의 교회 본당에 첫 걸음을 옮기게 되었고, 2007년 새 생명 축제에서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에 북받쳐 오르는 회계와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준으로 인해 하늘의 원망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의 무지와 방심과 교만으로 준호의 인생이 바뀐 것이라고는 생각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나 준호는 이제 저의 인생에서 더 이상 애물단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이듬해 저는 그동안 포기했던 서기관 승진과 짧은 기간 내에 부이사관으로 다시 승진하여 모 광역시 기관장을 역임한 후 명예롭게 공직을 퇴임하였으며 신장 암도 완치되어 지금은 전문 자격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아내와 저는 시기는 다르지만 교회 강대상에서 세례 감정을 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준호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크나 큰 은혜였습니다. 저는 나이 예순을 넘겨 사랑의 교회 제자 사회 훈련을 신청하여 훈련 수료 후 지금은 사랑부 다락방 순장과 교구장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고 있으며 아내와 함께 10년째 예배 안내 봉사를 감당하며 지역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익한 종을 불러주셔서 믿고 다듬어 사용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해준 사랑의 교회는 가난 아기가 느끼는 어머님 품 같은 곳이었습니다. 다락방은 하나님을 몰랐던 저에게 말씀을 통해 세상 적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은혜 받는 곳이었고, 특별히 사랑부 다락방은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서로 나누는 위로와 교제의 장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다락방에 참여하기를 망설이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이 다락방에 오셔서 환난을 산 소망으로 있게 하신 주님을 만나보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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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4월 23일)
제목: "신앙의 깊이 측정"
부제: 지성소 신앙의 은혜
말씀: 에스겔47: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남동우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에스겔47:1~5,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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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예배에 은혜의 지성소가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 자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가 기도한 대로 오늘이 작은 부활절이다. 영광의 대관식이다. 영광의 잔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 가운데 이 시간이 가장 피크가 되어야 나머지 삶도 은혜의 지성소의 물이 흘러서 은혜의 축복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구한 찬송이다. 강단에 모란 작약이 피었다. 오늘은 장애인 주일인데 1년에 함께 축하의 자리이다. 축하의 꽃인 것 같다. 예배에 함께 하고 또한 수고하시는 교사들과 교역자님과 모두께 감사의 박수를 전하자. 예수 믿는다는 것은 감사하고 좋은 것이다. 지난주일 CAL세미나 너무 잘 마쳤다. 제가 특새 하고 CAL세미나 하고 목소리가 갔다. 그러니까 목이 갔지만 거룩한 목소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양해하기 바란다. 120기 제자훈련 37년 동안 CAL세미나를 했다. 얼마나 감사한가! 전 세계가 한결 같은 역동성을 가지고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리고 CAL세미나 중에 하나가 우리가 교회 성장 방법론을 전달하는 노하우가 아니고, CAL세미나의 목회의 본질과 사역의 뿌리가 무엇이냐? 그리고 어떻게든 흔들릴 수 없는 토대, 근거와 신념과 뿌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다루고 싶다. 뿌리가 깊으니까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CAL세미나를 통해 목회자로, 중직 자가 살고, 지역교회가 살면 교회가 사는 줄로 확신한다. 교회가 살면 이 민족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신앙의 깊이 뿌리로 지성소의 신앙으로 부제로 붙여보았다. 19번째 부흥헌신 ‘신앙의 깊이를 측정’하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다.


흔히들 신앙의 나이가 있고 신앙의 경력, 신앙의 연수, 신앙의 역사를 묻는다. 엄격히 말하면 신앙은 나이나 길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 신앙은 깊이에 의해서 결정된다. 묻겠다. 적당히 교회 10년 왔다가 가는 것과, 1년 제자훈련 제대로 하는 신앙과의 누가 더 깊이가 있겠는가? 누가 더 신앙의 깊이가 있는가? 1년 제자훈련이다.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제대로 제자훈련이 신앙이 깊은 것이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포도원 일꾼의 비유가 있다.


*마태복음 20:16,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신앙도 길이도 중요하지만 깊이가 중요하다. 우리 교회도 신앙의 깊이와 뿌리가 내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법칙과도 이와 같다. 나무의 뿌리도, 건물의 높이는 기초공사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얼마나 튼실하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식으로는 다 안다. 다 알지만 그것이 깊이나 뿌리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겉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겉만 멀쩡하면 속을 수가 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3,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 핍박과 유혹에 뜨거운 이글거리면서 사람을 막 뜨겁고 힘들게 하더라고 변함이 없이 꾸준하게 열매를 맺는 이유는 그 뿌리의 근원이 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평생, 우리의 현장이 은혜의 깊은 강수를 마칠 수 있고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우리의 뿌리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잎사귀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내가 신앙의 깊이가 있는가, 없는가의 측정은 내가 열매가 있는가, 없는가이다. 여러분 3년 내로 여러분 때문에 예수 믿는 분이 있는가? 한다. 여러분 때문에 정말 신앙의 어떤 열매의 변화가 되어서 그런 분들이 주위에 있는가? 우리가 그런 면에서 감사한 면이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내가 왜 이러는가? 나 때문에 귀한 영향을 받아서 예수를 믿는다든지 나 때문에 주님 길에 들어서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지, 내 신앙의 수준과 내 측정이 어느 정도인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을 오늘 본문을 가지고 보면, 에스겔서의 47장을 보면, 에스겔의 환상을 보면,


*시편 1:3,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에스겔이 본 환상 가운데 에스겔서 전체가운데 노른자위 말씀이고,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과 함께 오늘 성소에서 물이 흘러 나와서 온 천지가 사막과 적시고 척박한 땅이 적셔져서 죽어가는 것이 다 살아나는 이런 영광스런 일이 보는데, 이 환상을 갖게 된 배경은 에스겔이 25세에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간 이후에 이때가 에스겔이 50세가 된 것이다. 25년이 흐른 뒤이다. 45장에 보면 내가 포로로 잡혀가서 한 25년 쯤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오늘 이 환상을 보고 성전물이 흘러나와가지고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은혜가 이 영광스런 이런 것을 볼만한 그런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포로로 잡혀 와서 바벨론 척박한 환경이었다.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늘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수많은 인생 가운데 ‘큰 짐을 지고 나는 아니냐?, 나는 끝났다’는 그런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자리 잡을 수가 있는데 여러분, 가장 척박한 시기가 가장 영광스런 환상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걸 믿음으로 우리가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음성이 있는 것이다. 아멘. 세밀한 음성이 들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 성전으로부터 물이 나와서 큰 강을 이루어가지고 죽은 바다를 살리고 강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완전한 회복과 우리 식으로 말하면 회복을 넘어 부흥이 되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지성소 신앙의 회복이다. 1절에 보면,


*에스겔 47:1-3,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여러분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오늘부터 우리 교회 계단 쪽에 물이 흐르게 건축되어 있다. 나중에 멋있게 보여드리겠다. 영상으로 보여 주겠다. 에스겔 47장2절에 보면 성전에서 나온 물이 어디로 가는가?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물이 나와서 3절부터 보면,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줄자를 가지고 이제 측량을 한다. 한 척이 50센티 정도이다. 그러니까 1천척, 500미터 정도이다. 500미터 측량하는 것이니 그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는 것이다. 어떤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고 우리의 신앙을 진다하는 것이다. 500미터를 물을 건너 오라가 하셨다. 에스겔 강물을 건너니까 물이 어디까지 찼는가?


*에스겔 47:4~5,
4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500미터 가니까 발목, 그 다음에는 1000미터 가니까 무릎, 그 다음에 1500미터 가니까 허리쯤 차고, 2천미터 가니까, 온 몸이 건널 수 없을 만큼 큰 강이 된 것이다. 가면 갈수록 퍼져 가면 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이다 여기는 물론 성경적으로 구원사적으로 보면 강 전체가 영향을 받을 정도로 복음의 온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줄로 믿는다. 그런 복음의 확장설로 되어 있지만 신앙을 우리가 볼 때에 옛날 어른들은 조금은 우리식으로 표현하지만 신앙은 발목신앙이 있고, 발목으로 왔다 갔다 한다. 또 무릎 신앙은 좀 은혜 받아가지고 무릎으로 기도하는 신앙이 있고, 허리 신앙은 봉사를 좀 열심히 섬기고 잘하고 있고, 그다음은 온몸에 은혜를 받아가지고 지성소 신앙이 있다. 그냥 깊은 신상의 깊은 경지에 닿았다는 것이며 옛날 어른들에 의하면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신앙의 생수의 강이 어느 정도 흐르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우리 신앙의 측정 도는 어디인가? 측량할 때 어느 정도인가? 발목신앙은 아닌가? 그 다음에 기도는 하는가? 봉사는 하는가? 온몸으로 지성소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것을 성전 뜰 신앙, 성소신앙, 지성소 신앙, 이렇게 말씀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오늘 이 말씀을 앞에 놓고 선대의 어른들이 성전 뜰을 이야기 할 때, 성전 뜰은 모든 사람들이 성전에 볼 수 있는 외곽 지대이다. 여기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고, 외적 종교 예배의식이 여기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성전 뜰 신앙이라는 것은 종교인들,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이며, 찬송처럼 찰싹거리는 그 얕은 물가에서 이렇게 보는 것이며 껍데기만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중심, 유아기적인 신앙으로 볼 수 있고, 성소신앙은 제사장들만 들어가서 밖에서 피와 향과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다. 성소신앙은 번제물과 물두멍을 지나서 성전 뜰에나 믿음으로 전진해서 성소에 들어가는 신앙이다. 예수님을 위해 봉사도 하고 남을 위해 기도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소 신앙이 있다할지라도 성소에 들어가 제사장들도 절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누구도 대제사장외에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데 하나님이 정해주시는 그 시간외에는 제사장도 감히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단 대세사장만 1년에 한 번씩 일시적으로 몇 시간동안 거의 소복수준으로 입고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것이다. 잘못하면 그냥 죽어나왔다. 그래서 지성소는 두려움의 자리였고, 자기 죽음의 자리였다. 그런데 이 구약의 대제사장이 거의 죽음을 통과한 자리가 지성소인데 여기의 신양은 뭐냐면 지성소는 대 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 막는 휘장이 밑에서 부터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찢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은혜의 자리, 강력한 임재의 자리,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의 장소가 된 줄로 믿는다. 다시 말하면, 성전 뜰은 그냥 들어가면서 밟으면 되는 것이고, 성소에는 그냥 마음이 낮아지고 무릎을 꿇고 기어서 들어가는 것이고, 지성소에는 대제장이 완전히 죽어서 들어가는 것이다. 완전히 납작 엎드려서 죽은 것처럼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신앙의 단계를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성전 뜰, 발목신앙을 성소, 지성소를 이야기 하는 것처럼 발목신앙을 이야기 한 것처럼. 바울 사도는 예수를 믿어도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The carnal Christian, 예수를 믿어도 세상의 사고방식과 영향을 너무 받아가지고 믿기는 믿는데, 안 믿으려고 하니까 지금까지 믿은 게 너무 억울해서 그냥 포기할 수는 없고 그냥 그 단계만 지나면 젖을 먹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육적인 그리스도는 젖을 먹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이유식, 단단한 것을 못 먹는 것이다. “주님 사랑해요,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 되기 원합니다.” 라고 이런 찬송도 한다. 그런데 누가 옆에 와서 그냥 프라이들 건드리고 누가 뭐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면 팩한다.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도 자기의 죽음의 선이 없다. 그런데 히브리서 5장에 보니까,


*히브리서 5:14,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이제는 젖뗄 때가 되었다. 이유식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지만 그런데 만약에 20세 정도의 청년이 대학교 1-2학년이 맨날 집에 가서 젖이나 먹고 집에서 이유식이나 달라고 하면 걸 맞는 자가 아니다. 맞지가 않다. 이제는 좀 장성한 사람의 분량이 되어가지고 좀 자기 죽음도 깨닫고 좀 성숙도 하여야 하는데,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크게 보면 한국교회 대부분 다 비슷하다. 일반 성도들이 발목신앙을 이야기 한다면 은혜의 깊은 수준의 측량을 생각해본다면 교회만 왔다 갔다 예배를 빠지지 않고 착실히 나오는 사람을 ‘다’ 군이라고 한다. 나군은 우리 교회 같으면 영적 성숙을 위해 나름대로 이렇게 훈련에 참여하는 분들이 ‘나’군이다. 가군은 말씀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는 분들이다. 우리 교회를 말하자면 순장(구역장)들 같은 경우 제자반이나 사역반도 말씀으로 섬기고, 이것을 우리가 가군이라고 한다. 가나다라 군으로 나누어 보았다. 저는 소원이 6개월이면 6개월, 1년이면 1년, 그 시기가 지나면 라 군에 있는 자들이 제발 다 군으로 올라가기를 바란다. 주일에 잘 참석하는 성도는 다 군은 훈련을 받아서 영적 재생산에 참여하여 이런 신앙의 단계를 마치고 나서 종합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발목 신앙에서 온 몸에 은혜를 체험하는 그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제가 청년 때 선교 단체에서 훈련을 받는데 그 선교단체는 그 수준을 어떻게 이야기 하냐면 그 수준을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컴벌젼 하다고 한다. Commvolt라고도 한다. 예수님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 그다음은 예수님을 믿고 훈련된 사람을 Disciple이라고 한다. 그다음에 또 다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 받고 나서 그 양육의 일을 담당하는 자에게 Disciple maker라고 한다. 그래서 Disciple maker로 오랫동안 살면서 영향을 미치고 더 큰 사명을 가지고 더 크게 쓰이는 사람을 Leader of the Disciple maker라고 한다. 그래서 컴벌트, 디사이플, 디사이플 메이커, 디러 오브 디사이플이다. 이것을 내 수준으로 만들고 어떻하든지 이 컴볼트가 디사이플 메이커가 되고 리더 애브 디사이플 메이커가 될 수 있도록 다시 마음을 모으고 집중을 했었다. 자 다시 말하자면 여러분과 제가 발목신앙이나, 성전 뜰 신앙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성도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교부시대에 기록으로 보면 세례와 성찬을 2-3년을 안 준적이 있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제 모든 이단으로부터 어떤 유혹으로부터 나름 자신을 추스릴 수 있게 되면 은혜를 주고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러니까 그 이단들이 설칠 수가 없었다. 사랑의 교회는 처음 오시면 새신 자 교육을 받으면 첫 번째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두 번째는 ‘성경이 무엇인가?’ 세 번째는 ‘교회가 무엇인가?’ 네 번째는 ‘어떻게 믿음 생활 잘 할 수 있는가?’ 이 정도를 거치고 난 다음에 우리 교회 성경 대학이나 여러 프로그램 교육을 하면서 다락방에 들어가고 제자 훈련을 1년을 하고 나면 우리교회에서 이단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긴다. 어느 정도 파악을 한다. 비교적 훈련을 제대로 마치고 나면 2단이나 3단이라든지 이런 이단을 차단하게 될 능력이 된다. 이것이 영적 성숙도가 측정이 된다. 그러면 이런 말씀을 놓고 우리는 무엇을 측정해야 되는가? 무얼 적용해야 할까?


첫째, 자기 십자가와 자기 죽음을 측정해야.
-이것은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오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축복이 있는데,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려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구약에서는 지성소가 열리기 위해서는 대제사장이 납작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 수소와 염소와 양이라는 제물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그 십자가의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그 휘장이 찢어지는 것이고 오늘 21세기 AI 쳇 GPT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뭐냐면 구약의 수소와 양이 필요한 것처럼 오늘 내가 제물이 되어가지고 내가 십자가가 되어서 내가 죽음을 선언하고 내가 대속 주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이다. 저는 오를 설교를 하려고 하면서 그런데 컨디션이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 내가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오늘 말씀이 내 제물이 되는 말씀이 되게 해달라고, 주님 내가 제물되는 말씀이 되게 해달라고, 그러면서 구약의 이 지성소에 대제사장이 들어갈 때,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에 은혜를 받았다.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희생 제물이 있어야 한다. 희생제물의 죽음은 마치 한 세트럼 되어야 한다. 죽음과 지성소는 한 세트처럼 연결되어 있다. 희생제물이 없이는 제물을 드리는 죽음이 제사가 없이는 지성소가 열리지가 않는 것이다. 지성소는 1년에 대제사장이 대속죄인 날 한 번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에 백성의 죄와 민족의 죄를 속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삼중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성전에 문지방에 흐르는 물의 그 양광을 체험하기 위하여 지성소의 깊은 은혜가 있어야 하는데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대 속죄로 들어갈 때 3중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첫 번째는


첫 번째는 어린 수송아지를 취하여서 자신의 죄와 가족과 속죄 죄를 먼저 드려야 했다. 그 피의 일부분을 지성소로 가져가서 지성소 앞에 뿌렸다. 이런 과정 가운데 어떤 실수나,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죽는다. 그만큼 엄중했다.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자기의 죄와 가족의 죄를 위해 속죄 죄를 드리고 그 피의 일부를 하나님 앞에 뿌렸다. 지성소에 뿌린 것이다.


두 번째는 염소 두 마리를 가지고 한 염소는 제비를 뽑아서, 한 마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이고, 잡아서 그 피의 일부분을 지성소 안으로 가져가서 거룩한 제단 위에 염소의 피를 뿌렸다.
세 번째는 대제사장이 안수를 하고 머리에다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전부다 실어서 광야로 쫓아버렸다. 레위기 16절을 보면,


*레위기 16:10,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제가 40여 년 전에 신학을 하면서 머리에 모든 민족의 죄를 얹어놓고 음미하고 쫓겨나는데 내가 막 눈물이 났다. 그리고 주로 절벽에다 쫓아 내놓고 떨어져 죽도록 만든다. 지성소를 들어가기 위한 자기 희생과 죽음과 그것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신앙의 깊이에 의하여 내 신앙 깊이가 있냐면 자기 죽음과 십자가를 위하여 순종이 내게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봐야 한다. 내가 이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 내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리라.’ 라고 했을 때에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보면,


*갈라디아서 5:24,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의 지성소 신앙의 수준은 수많은 유혹과 수많은 온갖 것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억지로 못 박을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내가 얼마나 이것이 될 런지, 그래서 모든 지성소 신앙의 깊이는 자기희생과 수준에 의하여 영적 깊이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유가 없다. 고린도후서 12장 1저에 보면,


*고린도후서 12:1,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더이상 인생으로 태어나서 영적인 깊이와 수준으로 말하자면 더 이상 논할 수가 없는 최고의 3층전에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알 수 있는 과정에서 보면, 바울사도가 어떤 자가 3층 전에 올라갔다고 말한다. 더 이상 인생으로 태어나서 최고의 삼층 천에 올라갔다고 말한다. 자기희생과 자기 욕심을 못 박는 것이 나오는데 바울은 인정을 하지 않았다. 바울이 굶고 태장 맞고 판선 당하고 너무 바울은 힘들고 했어도 그 이후에 인생이 경험할 수 있는 3층천을 경험한 것이다. 우리도 그리 경험해야 한다.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얼마나 능동 적을 지고 가느냐에 여기에 달려 있다. 자지 죽음으로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우리의 심령에 지성소가 열리기를 확신한다. 대부분의 경우 경험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십자가에 못 박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지성소의 깊은 신앙의 수준을 위하여 제물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고린도후서 12장
둘째. 주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을 측정.
-자기 죽음만 통과하면 되는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은 무엇인가? 주님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뢰와 사랑을 측정해야 한다. 이 예배를 드리고 나면 이전보다 더 주님을 사랑을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이다. 자기를 사랑한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느냐? 우리에게 큰 병이 걸리고 큰 우황이 있을 때, 그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고통과 고난이 있을 때 그것은 고통과 고난을 낭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쉽지 않지만 그것을 통하여 오히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면 그 고통과 사랑이 낭비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제물 되어서 주니 앞에 내가 능동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지만 이것을 통해 주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을 하여야 한다. 병 때문에 슬퍼하는 자도 있고 병 때문에 천국을 더 사모하는 사람이 있다. 큰 병이 있으면 평안과 불안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고, 아니 내 생명을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신앙의 깊이를 깨달으면 “네가 나를 이전보다 더 사랑하느냐?” 라고 하신다. 베드로 보고도 그러하셨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네가 진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셨다. 네가 정말 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아들ㅇ르 보고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신다. 그게 지성소 신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낭비되지 말고 주님을 더 신뢰하고 주님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말씀을 정리하겠다. 오늘 날 지성소가 어디인가? 성전이다. 교회이다.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 지성소이다. 우리가 사모하는 이유는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은혜가 있는 것이다. 내 혼자 특새에 와서 어린양의 피로 내가 들어갑니다. 라고 주님을 사모합니다. 예배합니다. I enter the Holly!! 그런 찬송을 할 때에 함께 찬양을 할 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성소는 더 이상 물리적인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 직장,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임재 하셨다면 그곳이 바로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적 예배와 다락방과 우리의 삶의 현장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가 되기를 바란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 침상이 거룩한 지성서이며 직장에서 전력투구하면서 하나님의 임재 있으면 못 산다고 영적으로 그냥 허리를 동이고 온 몸으로 주님 앞에 반응하면서 주님 나를 살려달라고 십자가에 못 박으면 그 순간 그 자리가 거룩한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오늘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란다. 우리 신앙이 성전 뜰인지, 성소인지, 지성소인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젖이나 먹는 신앙인지, 이제는 단단한 것을 먹는 신앙인지, 라군에 있는 자는 다 군으로, 다 군은 나군으로, 나군은 가군으로 들어 가야한다. 다 손을 펴고 ”그 어린양의 피로“ 찬양을 하자.


♧요약
어린 양의 피로 그 거룩한 지성소로 들어가는 은혜를 주심을 찬양한다. 주님의 보혈의 피로 지성소로가게 하신 주님을 경오하며 영광돌리며, 내가 성전 뜰 신앙이라면 성소에 올라가야 하며, 내가 지성소의 깊은 은혜를 깨달아서 나무의 높이가 뿌리에 의해서 결정되듯이 신앙의 성숙은 길이가 아니가 깊이에 있음을 믿고 얕은 물가에 있지 말고 깊이 있는 강수를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라는 망학 미래는 암울했던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소망의 계시로 임재하신 것처럼 사방이 막혀서 낙심하는 나에게 주 보좌로부터, 성전으로부터, 임재의 물이 흘러나와서 참 회복과 치유가 경험되고 해결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나의 육신적은 신앙과 고통으로 낭비되지 말고 깊은 지성소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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