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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좌(夜坐)/이매창(李梅窓)


밤에 혼자 앉아

 



西窓竹月影婆娑(서창죽월영파사) 
 
서창 대숲 달그림자 어른거리고


風動桃園舞落花(풍동도원무낙화)
 
복숭아 밭에 바람 부니 낙화가 춤을 추네


猶倚小欄無夢寐(유의소난무몽매)
 
여전히 작은 난간에 기대니 잠은 오지 않고


遙聞江渚菜菱歌(요문강저채릉가) 
 
강가의 마름 캐는 노래소리 아득히 들려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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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도(渡江圖) 畵題 
 
東湖春水璧於籃 (동호춘수벽어람)

白鳥分明見兩三 (백조분명견양삼)

楡櫓一聲飛去盡 (유로일성비거진)

夕陽山色滿空潭 (석양산색만공담)



    동호의 봄물 빛은 푸르다 짙어 남색으로 보이고
    나무위에 흰 새가 분명 세 마리 였었는데
    노를 젓는 소리가 나니 다 날아만 가네.
    저녁때가 되니 산의 그림자가 빈 호수에 가득 차 있구나.



    김홍도(金弘道, 1745(영조 21) ~ ?)
    조선 말기 화가.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畵士)
    또는 첩취옹(輒醉翁). 본관은 김해(金海). 도화서화원(圖畵署畵員)으로
    산수.도선·인물·풍속·화조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후대에 이름을 크게 떨쳤다.
    그는 40살 이전에는 정형산수(定形山水)와 도선인물화를 주로 그렸으며,
    40살 이후에는 진경산수(眞景山水)와 풍속화를 다루었다. 금강산을 많이
    묘사했던 진경산수의 경우 정선 등의 영향이 얼마간 엿보이지만, 탁월한
    공간구성이라든가 강한 묵선(墨線)과 태점(苔點)의 변화있는 구사,
    맑고 투명한 화면효과 등은 그의 특색이라 하겠다. 서민들의 생활상과
    생업의 이모저모를 간략하면서도 짜임새있는 구도 위에 풍부한 해학적
    감정을 곁들여 표현한 풍속화들은 정선이 이룩했던 진경산수화의 전통과
    더불어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동향을 대표하는 업적이다.대표작으로
    서원아집육곡병(西園雅集六曲屛) 군선도병(群仙圖屛;국보 제139호)
    단원풍속화첩(檀園風俗畵帖;보물 제527호)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
    무이귀도도(武夷歸棹圖) 선인기려도(仙人騎驢圖) 단원도(檀園圖)
    섭우도(涉牛圖) 기로세련계도 단원화첩(檀園畵帖)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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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숙강루(夜宿江樓)-김시습(金時習)

밤에 강가 누각에 묵다-

淸江秋月白(청강추월백)

맑은 강에 가을달 하얗게 밝은데
浪打古城頭(랑타고성두) 

물결이 옛 성 머리를 철썩철썩 친다.


遠浦漁燈迥(원포어등형) 

먼 갯포구에 고기잡이 등불 아득하고
滄波蜃氣浮(창파신기부) 

푸른 물결에 신기루 떠 있다.


蘋洲風力緊(빈주풍력긴) 

마름 뜬 모래톱엔 바람이 급하고
沙磧雁聲愁(사적안성수)

자갈밭엔 기러기 울음소리 시름겨워라.


一夜逢僧話(일야봉승화)

하룻밤 중을 만나 이야기하는데
團欒敍舊遊(단란서구유)

그 옛날 놀던 일 단란하게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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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학(畵鶴)/홍우원(洪宇遠)


그림 속, 학



蒼松偃石崖(창송언석애)
바위 언덕에 누운 푸른 소나무


下有一白鶴(하유일백학)
 아래에 흰 학 한 마리 앉았구나


獨立刷霜毛(독립쇄상모)
홀로 서서 눈같은 깃털을 씻으니 


何時奮長翮(하시분장핵)
어느 때나 긴 날개 떨치며 날아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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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보내고(用前韻奉呈水使沈公) - 초의선사(艸衣禪師)

 

수사 심공에게 전운으로 시를 지어 드리다


離來回首夕陽天  (리래회수석양천)

思入濛濛烟雨邊  (사입몽몽연우변)

煙雨今朝春倂去  (연우금조춘병거)

悄然空對落花眠  (초연공대낙화면)

그대 보내고 고개 돌린 석양의 하늘                 
마음은 안개비에 아득히 젖네                     
오늘 아침 안개비 따라 봄마저 가버리고            
빈 가지 쓸쓸히 혼자 떨어지는 꽃잎 보며 잠이 들다

 

   
출전; 초의시고(艸衣詩藁)

 

초의선사(艸衣禪師 1786-1866) 성은 장(張)씨이고 이름은 의순(意恂)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법호는 초의(艸衣)이며, 당호는 일지암(一枝庵)인 초의선사는 조선 후기의 대선사로서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하신 분이다.

그래서 다성(茶聖)이라 부른다.
5세 때에 강변에서 놀다가 급류에 떨어져 죽을 고비에 다다랐을 때

부근을 지나는 운흥사(雲興寺)승려가 건져주어 살게 되었다.

그 승려가 출가할 것을 권하여 15세에 남평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고,
이 후 대흥사(大興寺)에서 완호대사(玩湖大師)를 만나 구족계(具足戒,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고 초의(艸衣)라는 법호(法號)를 얻게 되었으며 불교(佛敎)의 삼장(三藏, 經藏, 律藏, 論藏)을 수학(修學)하고 대교(大敎) 과정(科程)을 마친 후 운수행각(雲水行脚)으로 여러 선지식(禪知識)을 찾아다니며 정진(精進)한 결과 경,율,론(經,律,論)에 모두 통달하게 되었다. 다산 정약용, 소치 허련, 그리고 평생의 친구되는 추사 김정희 등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는데, 특히 추사와 함께 다산초당을 찾아 유배생활 하시는 24년 배의 정약용을 스승처럼 섬기면서 유학의 경서를 읽고 실학정신을 계승하였으며 시부(詩賦)를 익히기도 하였다. 물론 초의스님은 다산 선생님께 다선(茶禪)의 진미를 더하였을 것이다. 다산은 《동다기(東茶記)》를 쓰고 초의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예찬하였다. 초의선사의 사상은 선(禪)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으로 즉, 차(茶) 안에 부처님의 진리[法]와 명상[禪]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塵穢除盡精氣入, 大道得成何遠哉
진예제진정기입, 대도득성하원재

차의 진예(塵穢, 더러운 티끌 먼지)없는 정기(精氣)를 마시거늘
어찌 큰 도를 이룰 날이 멀다고만 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흥사의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을 짓고 40여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에 전념하면서 불이선(不二禪)의 오묘한 진리를 찾아 정진하였으며,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기도 하였다. 한국의 다경이라 불리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우리의 차를 예찬하고 다도의 멋을 전하였다.
1866년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대흥사에서 서쪽을 향해 가부좌하고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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