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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11월 17일)
제목: "내 영혼의 기적: 거듭남(My Spiritual Miracle : Born Again)"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21번째
말씀: 요한복음 3: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방요한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

*요한복음 3:1-8,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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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주간 동안 2천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이 예수님을 새로운 생명의 구주로 영접한 것은 너무나 축복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같은 또 이 강남이 아주 지성적인 곳이고, 똑똑한 곳인데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전도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영혼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구세주으로 영접한 것은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스펄전 목사님 말씀한 대로 자 읽어보겠습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이 구원받는 순간, 하늘의 새 예루살렘 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고 구세주의 기쁨에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넘칠 것이다. 천사들과 이미 앞서간 성도들은 이 기쁨의 강물에서 헤엄치며 즐거워할 것이다.”-찰스 스펄전 목사-


아마 너무나 놀라운 대잔치가 천국에서 열릴 것으로 확신합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스물한 번째(번째) “내 영혼의 기적: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내용은 기독교 신앙의 결정적인 소위 디사이시브한 결정적인 내용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거듭남에 대해서 좀 피성적으로, 슈퍼피셜하게 껍데기만 하는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오늘 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여러분들이 아시길 바라고, 오늘도 지난주 새 생명 축제에 참여하여 기독교 신앙을 갖기를 원하여서 처음 오신 분도 이 자리에 계실 터인데, 오늘 그분들에게 또 우리 모든 이미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오늘 핵심 진리 또 Born Again, 거듭나면 진리가 여러분들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교회는 제자훈련하는 교회고 소그룹을 통해서 순장님들이 계시고, 이렇게 다 계시는데 오늘은 제가 순장 한번 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 생명체 공동 제자 훈련을 한번 해 보겠습니다. 싫으세요.

다락방 소그룹 할 때는 스몰 그룹에는 이 귀납법적 질문이 너무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한 가지, 한 가지 질문도 하고 말씀드릴 때, 여러분들의 오늘 마음으로 좀 확인해 주시면 좋겠어요. 오늘 요한복음 3장 1절에서 뭐 본문은 한 15절까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여러분 8절까지 읽었습니다마는 여러분 요한법원 3장 16절은 어떤 구절이에요? 지금 다락방 하고 있잖아요. 대답을 빨리 하셔야 돼 요함보면 3장 16절의 어떤 구절이 성경했어요.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이 구약 신약 다 합해서 1189장인데, 1189장 가운데서 제일 중요한 구절이 요암보음 3장 16절이에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살아가셨다 갓 쏘 러브 더 월드(God so Love World), 이렇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나오게 된 오늘 배경이 오늘 이 본문이 자 니고데모라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어요. 1절 근데 이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인가, 바리스인 중에 니고데라는 사람이 유대인의 뭐예요? 지도자라 4가지 면에서 그는 종교의 지도자였어요. 소위 바리새인이고 경건한 사람이었어요.

*요한복음 3:1,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다음에 니고데모는 사회적인 지도자였어요. 그는 산해드린 공회원, 70인밖에 안 되는 산해들인 공예원의 회원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회의원이 본인들이 헌법기관이라고 하는 세 번째로는 지성적으로는요 랍비였어요. 랍비 영어로 레바이,, 그러는데 유대인의 레바이, 유대인의 랍비는 유대 세계에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사회 가운데서 최고의 지성인이었어요. 그리고 이것만 몰약(沒藥)과 침향을 100근이나 그냥 기부할 정도로 그 정도의 부자였어요. 한마디로 이 남자는요. 넘사벽 남자야. 그냥 아예 우리가 쳐다보지도 못할, 이런 남자야. 근데 그가 2절에, 밤에 예수께 찾아왔어요.

*요한복음 3:2a,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왜 밤에 찾아왔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보세요. 이분은 유대의 지도자였고 고위층이었어요. 근데 그 당시 예수님은 나이가 30대 초반에 목수 출신 초라한 분이었어요. 유대인의 최고위층이 목수 출신의 초라한 아마 최소한 나이가 40대 중반을 넘었을 것이고, 젊은 사람 젊은 목수 출신의 초라한 사람을 찾아간다 이거 대놓고 내가 간다고 크게 공포할 그런 일은 아니었어요. 그래 밤에 찾아갔어 왜 찾아갔냐 왜 찾아갔냐 오늘 2절 보세요. 2절,

*요한복음 3:2,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자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다. 우선 그가 찾아간 배경은 영적인 고뇌가 너무 큰 거예요. 겉으로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고, 겉으론 넘사벽 남자라도 그의 영혼을 휩쓸여 있었고, 그의 그의 영혼의 마음은 처절했고, 그런 마음속에 텅 비었고, 공허했고, 소위 강남에 잘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겉으로는 다 잘나갔지만 속은 텅텅 비고, 최근에도 어떤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분들이 즉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마음의 목마름과 처절한 공허와 절박한 심정이 너무나 커 가지고 동료들에게 알리고는 싶지 않은 그 일이었지만 영적으로는 그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내면은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예수님을 밤에 찾아온 거야.

마치 마르틴 루터가 그가 캐돌릭 신부로 사제였지만, 이 믿음의 문제 겉없는 놈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해결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그가 계단에서 떼굴떼굴 구르면서 내가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는가? 나중에 마르틴 루터가 “오직 의인을 믿음으로 살리라” 그걸 ‘소울라 피데, 소울라 스크립트로 말씀을 중심으로 해갖고 오직 내가 믿음으로 살리라. 그 깨닫기 전까지는 마르틴 루터의 영적인 고뇌가 말할 수 없던 것처럼 아니 누구들만 똑같았어요. 그래 와가지고 뭐라고 얘기하느냐 아까 2절 뒤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뭐예요?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겠다. 저 말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아 그래. 너는 표적에 관심이 있구나! 표적이 아니야.

니고데모가 이렇게 얘기한 이유는 오늘 요한복음 3장 앞에, 2장의 물이 포도주 된 사건이 나오고 수많은 유적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기적과 표적을 보고, 예수님께 찾아왔지만 예수님은 오늘 니고데모의 시선을 완전히 새롭게 돌려주시는 거예요. 너는 표적보고 나왔냐? 그 표적은 이 땅에 육신의 차원이야 표정은 이 땅의 차원이야. 표정은 이 땅에 현상적인 것이야. 이 표정은 이 땅에 물리적인 것이야. 근데 너는 그게 아니라 너는 영적인 눈을 열어야 돼. 영적인 시각을 새롭게 해야 돼 그러면서 3절의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요한복음 3:3a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제 너무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진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다 진실이지만 그러나 그 진리 가운데도 우리가 정말로 꼭 기억해야 할 진리들, 그게 아멘 아멘 히브리어로 아멘 아멘, 진실로 진실로, 너무나 중요해서 오늘 본문 이 3장 앞부분에만 세 번이나 오늘 3절, 5절, 11절, 진실로, 진실로, 진실로 진실로 진실로 진실로 이거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진리 입증 인증 마크예요. 마크 너무너무 중요 그러니까 그다음 줄임말 쓰신 바로 진실로 진정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a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오늘 복음의 진리, 오늘 예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고 그러지만, 종교인들이 많아요. 교회 안에, 누대를 누리는 신앙을 갖고 기독교를 문화처럼, 하나의 어떤 전통처럼 믿고 있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다 하나의 과정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여러분과 제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을 볼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이 거듭난다는 말이, 오늘 이 본문의 헬라어로 보면 아노뗑에 대해서 아노 뗀인데 이거는 거듭난다는 것은 위로부터 부어주신다. 이 말이에요. 위로부터 주신다 거듭난다는 말은 여러분과 제가 실력이 있어 가지고 이걸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주신다. 그래서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 예수님이 오늘 니고데모도 막겠다. 너는 물리적인 것 이 땅에 있는 어떤 현상적인 것, 땅의 일을 구하지만 이 거듭남에 관한 것은 표적이 아니라 이건 영적인 거야. 이거는 하늘의 일이야. 이거는 성령 역사하시는 것이야. 이걸 주님께서 이것은 그래서 땅의 일과 하늘의 일. 현상적인 것과 영적인 일. 육신의 일과 성령의 일 이거의 차이야 이걸 니가 깨달아야 돼. 누구 되면 이걸 못 깨달았어요. 땅에 일로 현상적인 일로 육신의 일로 물리적인 일로 깨달아 갖고, 그럼 거듭난다는 말이 아니 사람이 말이지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냐고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 날 수 있겠냐고,

*요한복음 3:4,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아 그렇게 니고데모가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거듭나면 무슨 일이라고요? 영적인 전적인 거듭나면 전적으로 뭐예요? 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근데 리보데모는 이걸 깨닫지 못하고 아 이게 사람이 다시 거듭날려면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까? 우리가 수학을 할 때, 엑스가 있고, 엑스 3승이 있어요. 근데 엑스와 엑스 3승은 더할 수가 없어요. 왜 못다 하는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땅의 일과 하나님의 일에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땅의 일과 1차원의 세계와 3차원의 세계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3차원의 세계와 영적 세계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이 거듭나면 문제는 철저하게 영적인 차원임을 믿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영의 눈을 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 거듭남은 전적으로 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듭나면 전적으로 영적인 차원의 핵심인 성령 역사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순원 여러분, 거듭남은 이성적으로, 학문적으로, 상식적으로 돈 많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억만금을 가지고 금강산에 들어가고 도 닦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신학적인 신학자였던 니고데모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오늘날도 학식이나 경륜이 높은 사람들도 지성인들도 육적 차원에서는 영적인 차원으로 올라가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거듭남이다. 이 말이에요. 영적 차원의 신비한 거예요. 그래서 신학교 교수님들 가운데서도 이 거듭남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분도 있어요.

육적 차원으로, 지성적 차원으로, 물리적 차원으로, 현상적 차원으로만 이해하니까, 거듭남은 아노 땐,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거듭남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영적 눈을 갖는 것이고. 거듭남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이 말씀은 다 성경적 근거가 다 있어요. 거듭남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썩을 육신이 썩지 않을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에요. 자 그렇다면

그럼 어떻게 거듭날 수 있나?
그러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나 거듭나는 길을 주님이 제시해 너는 지금 표적을 보고 현상적인 것 물리적인 거 이 땅 일만 생각하는데 아니야. 이건 하늘의 일 영적인 일 영원한 것이야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뭐 어떻게 거듭나는 것일까? 5절 시작,

*요한복음 3:5,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아멘 아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다시 진실로 진실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2가지 물과 성령으로만 거듭날 수가 있다. 그래서 영적으로 거듭나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면 정통신학 해석은 물은 회개(悔改)를 말하고 성령(聖靈)은 성령이세요.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죽임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성경에 나타난 사건도 이 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기적과 진리가 깨달아지는 것이에요. 우리가 창조를 창조하신 분은 법칙을 만들면 법칙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에요. 초자연적의 세계 은혜가 이 성경이 나타나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 땅에는 동물이 아니라, 영적 존재기 때문에 그래서 물과 성령, 근데 이 물은 세례를 의미하고, 뭐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신학적으로 ‘핸디아티스 용법이라고 다른 단어를 가지고 하나를 강조한다. 이런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물도 성령이고 성령도 성령이다. 크게 보면 그런 거 있습니다마는 성령으로 거듭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물은 세례인데, 세례의 의미는 다음 줄 우리가 세례식을 합니다. 아마 우리 교육 역사상 학습세례 최근에 들어서 거의 거의 400명이 다음 줄 학습 세례를 베풀게 되는데 세례의 핵심은 뭡니까? 세례의 핵심은 회개가 세례의 핵심이에요.

회개가 무슨 뜻인가 세련의 회계를 상징하는데 회계는 뭐냐 나는 영적으로 문제가 있다. 나는 영적으로 행복하지 않다 나는 너무 처절하다 내 영혼은 너무 공허하다 따라서 나는 내 영혼의 문제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내 영혼의 문제는 구원자가 오셔서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가능하다. 그걸 깨닫는 것이 회개예요. 그걸 깨닫고 나아가는 것이 세례를 받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영적으로 볼 때 우리는 파산자이고 우리는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내 힘으론 절대 구원받을 수 없고, 따라서 나는 영적으로 완전히 파산 상태이기 때문에, 주요 내가 파산 상태인 걸 고백합니다.

라는 그것이 회개인 것이에요. 그 내 힘으론 절대로 안 되기 때문에 마치 절벽 위에 큰 큰 낭떨어지의 절벽에 그 조그마한 절벽 떨어졌는데 죽지는 않고 절벽에 그 나무에 내 나뭇가지에 내 몸이 걸려있는 거예요. 지금 떨어져 죽기 직전이야. 그 내 힘으로는 안 돼 누군가 위에서 와서 그 절벽에 걸려있는 나를 딱 집어서 올려야 되는 거예요. 그 나는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나를 집어서 올릴 올리 올려야만 가능하다. 내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는 그것이 회개다. 이 말이에요.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위로부터 손이 내려와 가지고 번쩍 들어 올려줘야 하는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 회개다 이 말 그리고 이 회개는 양심의 가책과 혼동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양심의 가책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으로 끝납니다마는 회개는 자신의 잘못이 아 내가 이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내가 내 잘못 정도가 내게 하나님 앞에서 내가 범죄를 했다는 깨닫는 순간, 그래서 회개는 자기 절망과 자기 무력함을 선언하고 하나님만이 자신의 소망이라 조망되심을 고백하는 것이 회계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영혼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세상적으로 아무리 잘 나가두요 그 슬픔이 늘 늘 영혼(靈魂)의 슬픔이 있어요. 뭔가 행복하지가 않아 세상에 잘나가도 강남에 잘 나가도요 그 영혼이 주름져 있어요. 왜냐하면, 영혼의 문제가 해결 안 되고 있으니까 영혼의 문제는 내 이모론 절대 해결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오늘 이 강남에 수많은 영혼이 주름져 있는 영혼들이 성령의 다리미로 딱 반듯하게 펴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6절과 7절에서,

*요한복음 3:6-7,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다시 한번 말씀하시는 거예요. 뭐라고 말해요? 육으로 난 것은 뭐예요? 육으로 난 것은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너는 육의 차원에서 영의 차원으로 올라가라. 너가 현상적 차원에서, 영적 차원으로 올라가라. 물리적 차원에서 땅의 차원에서 하늘의 차원으로 올라가라. 그래서 너가 이렇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물질 세계와 영의 세계를 다시 확인하시고, 드디어 드디어 8절에 뭐라고 말씀하느냐,

*요한복음 3:8,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바람이 임의로 분다. 성령의 역사도 마치 바람이 임의로 부는 거와 동일하다 아마도 니고데모와 예수님 말씀하시는 그 공간에 바람이 불었던 것 같애. 자 바람 자체는 보지 못한다. 영적인 세계기 때문에, 영의 세계에서 구원이 필요하고 거듭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람 자체가 있다는 것은 깨닫는다. 바람이 부니까,,, 영의 세계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이 거듭나는 우리가 실체적으로 바람이 임의로 불고 우리가 센스를 하는 것처럼, 이걸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자, 오늘 여기까지 여러분들이 어떻게 보면 이제 중요한 서론, 본론까지 가서 이제 마지막 중요한 결론이 있습니다.

이게 제일 소중한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이 거듭남이라는 것은 회개를 통하여 거듭난다고 그러는데 참된 회개는 어떻게 하는가? 회개는 내 몸을 불사르고 내가 엉엉 울고 그 다음에 막 나 이기 뭐 이 그런 과정도 있겠지만, 저도 그런 과정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진짜 거듭났다고 느껴졌을 때가 언젠가?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신실한 주의 종들 지난 2천년 우리 초대 신약 교회 이후의 교회 역사에 하나님 앞에서 참되게 거듭났을 때, 거듭난 사람들이 가졌던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인가? 아 하나님이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데, 내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구나! 라고 회개할 때에, 그것이 거듭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깨달아야 참된 회개를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깨달아야 참된 회개(거듭남)를 할 수 있다”

-오늘 이것 좀 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근하기와 조금 다른 차원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가 뭘 깨달아야 된다고요. 거듭나려면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깨달아야 된다. 이 말이에요. 오늘 이 귀한 예배 시간, 오늘 여러분 예배 마치고 라면 식사하러 가실 거죠. 그건 육신의 양식을 드시는 것이고. 오늘 진짜 중요한 영어양식을 드시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게 뭐냐,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깨달아야 거듭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걸 사도바울은 깊이 깨닫고 로마서 5 8절에,

*로마서 5:8,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뭔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 처절한 사랑을 내 것으로 깨달아야 내 것으로 깨달아야 우리가 회개하고 거듭날 수가 있다. 이 말이에요.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우리는 지금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들어 나를 살아 다 알아요. 그런데 적당히 알면 안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누가 나를 위해 돌아가셨는가? 누가 나를 사랑하시는가?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거야. 이해가 안 가지만 이해가 안 가지만 죄인인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과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에요. 여러분, 그 십자가의 사랑과 고통이라는 걸,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가면 안 되는 거예요. 왜 그러냐 우리는 밑천이 우리는 거듭나지 않으면, 육의 사람만으로 끝나면 우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돼 있다는 것이에요. 이건 엄청난 문제예요. 여러분 기껏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육신의 산만을 위하여 그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을 당하셨겠어요? 나는 오늘 여기서 영책에 눈을 뜨게 된 거예요.

여러분 앞으로 30년 40년 더 살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젊은이들의 6~70년 더 살 수가 있고 인생 100년인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인생 100년만을 위하여 그 처절한 십자가의 고통을 주셨겠느냐 이 말이에요.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니에요. 여러분 개, 돼지는 이 땅에서 이 땅의 삶으로 끝이야.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개, 돼지를 위하여 소를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말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성경은 우리를 우리 영적 존재인 우리를 육신의 표적과 이 땅에 몰입되어 있는 우리를 영의 눈을 뜨게 하시사 너희들은 육적인 존재가 아니야. 너는 육신의 허물과 제로 있었던 죽은 존재가 아니야. 허물과 제로만 있으면 너는 육신적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아. 영원한 존재 인간만 그런 거야.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기가 막히게 또 뭐냐 하면,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100년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형벌을 주님이 내 속에서 받으신 것이에요. 난 여기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다시요. 30년 40년 50년 100년을 위하여 주님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우리의 영혼을 위해 주님이 돌아가신 것이에요. 그 주님의 처절한 십자가 있다는 것은 영원한 멸망도 있다는 뜻이에요. 처절한 십자가의 고통이 있다는 것은 지옥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인간은 이 땅에서 삶이 끝이 아니에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에요. 십자가 피 흘린 처절한 그 사랑은 너무나 놀라운 거에요.

우리 이 땅의 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을 위해서 돌아가신 것이에요. 이 이영적인 눈이 열려 깨달아지는 순간 주님이 그게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십자의 처절한 고통을 앞에 놓고 그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에요.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의 다 이루었다. 오늘 이걸 육신의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으로 깨달아 가지고 저와 여러분이 십자가 이 사건을 사랑을 받아들일 때, 그때 우리가 비로소 거듭났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죄를 지어 갖고 범죄해 가지고 형벌을 받는다. 그런 뜻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피적인 것이고.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죄 문제를 해결하도록 주님께서 처절한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는데, 이 십자가의 사랑을 거절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옥하는 것이에요.

이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가 거부했기 때문에, 이 십자가의 사랑이 무지하다든지, 이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에게 앞 이 십자가의 사랑을 가지고 우리에게 우리에게 막 이렇게 육박 접근 하시는데, 그걸 우리가 모르고 그걸 거부하고 그걸 반항하고 그걸 무시해서 안 믿고 그럴 때, 우리가 거듭나지 못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앱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이요. 내가 수많은 질문을 주고받고 싶은데 그러나 시간의 제한 때문에 모두의 마음에 아 예수님이 왜 그 처절한 사랑을 십자가를 지셨을까? 우리를 향한 우리의 영원한 멸망을 해결해 주시고요. 주님이 그렇게 하셨구나 그래서 완전한 하나님이 미천한 우리를 사랑하신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완전한 하나님이 미천한 우리를 사랑하셨다.”

지옥이 없다면 십자가는 그 의미를 잃는 거예요. 지옥이 없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의 과잉 반응이 될 뿐이에요. 이 땅의 삶이 전부인데, 그걸 위해 십자가 돌아가신다 그건 너무나 센스가 아니에요. 그건 너무나 아닌 거예요. 그건 너무나 과한 거예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는 것은 아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지옥이 없다면 하나님과 단절되는 십자가의 저주를 주리 받으실 필요가 없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3장에 13절에 보니까,

*갈라디아서 3:13,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뭐라고 돼 있냐 그레스오께서 우리를 위하여 뭘 받으셨다고 저주를 받으셨다 그런 십자가 있다는 것이 영원한 멸망이 있다는 증거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은 이 땅에 사랑의 십작으로 우리를 향하여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뒤에 17절을 보면, 뭐라고 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 그 유명한 구절을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3:17,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를 젖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한 삶을 이 사랑을 거절하면 우리는 거듭나지 아니하고, 이 사랑을 받으면 이 사랑을 우리가 그대로 믿으면, 우리는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가 왜 멸망했습니까? 예수님 팔아먹은 가르주다가 왜 망했습니까? 왜? 영원한 형벌을 받았습니까? 가롯유다가 예수님 팔아먹고 은삼십에 팔아먹고, 그래서 큰 게 아니에요. 그것도 나쁜 거지만, 예수님은 가롯유다를 끝까지 사랑해가지고 십자가에 그 팔아먹고 난 다음에 십자가대로 돌아가시면서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마지막까지 기회를 줬는데 가롯유다는 자기 판단, 자기 정죄, 자기 자기 죄의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 가지고, 거기서 뱅뱅 돌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영적인 문제를 못 본 것이 가르지다 왜 지옥 갔는가? 회개를 못해서 정도 같다. 이 정도가 아니에요. 가롯유다는 십자가의 사랑을 거부했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이에요.

여러분, 베드로는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베드로도 똑같이 예수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예수님 저주까지 했습니다. 아주 잘못입니다. 베드로 어떻게 회복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가 나를 진짜로 사랑하느냐? 너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한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베드로 향한 그 사랑을 다시 주님이 베드로를 향한 그 사랑을 베드로가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베드로는 구원받은 것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서 혹시나 기독교의 깊은 진리를 모르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주님의 이 사랑을 거부하는 분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차원의 문이 열리면 깨달아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날마다 울어요. 왜 우는가? 내가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님을 더 사랑하지 못하여 울고 있다는 거예요. 세상에 수많은 눈물이 있어요. 고통이나 상처나 질투나 수치나 절망과 서러움 억울함 때문에 눈물이 있어요. 기쁨과 감격의 눈물도 있어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과 전혀 다른 차원의 눈물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주님을 더 사랑하지 못한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엄마가 언제 제일 섭섭한가 자식이 생명을 자기 자식을 아예 생명 다해 사랑해 주는데도 자식 고개 바짝 들고, 엄마가 뭐 날 사랑하냐? 엄마가 엄마는 나 사랑하지 않어? 자식들의 그런 반응을 보일 때 엄마의 가슴 무너지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여러분 다시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처절한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 영원한 열멸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이 땅에 적당한 것이 아니에요. 성경의 진리 중엔 진리 중의 하나가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의 얘긴데, 돌아온 탕자는 자기 아버지 밑에 있을 때는 아버지가 잘 아버지가 자기 삶을 구속하고 자유를 없애고 아버지 밑에 있는 것이 불편했어요. 유산 받아 가지고 저 멀리 가 자기 마음대로 허랑방탕 했어요. 근데 보니까 엉망이 자기 삶이 오늘 여기 다 있지만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인생은 그 누구도 그 자연스럽게 생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인간의 깊은 슬픔을 그 공허를, 그 고뇌를, 그 영적인 어떤 파산 상태를 누구도 해결할 수 없어요.

그 어떤 부자도, 그 어떤 지식인도, 그 어떤 권력자도, 절대로 해결 못해요. 그리스도의 처절한 사랑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래서 돌아온 당사가 집으로 돌아와 가지고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고, 하니까 아이고 내가 이 아버지의 사랑을 왜 내가 몰랐지? 내가 이 아버지 사랑을 먹으러 내 마음대로 왜 살았지? 나 이제 남은 인생이 아버지 사랑을 깨닫고 이 사랑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아야지. 라는 고 순간 그 돌아온 탕자는 거듭나게 된 것이 오늘 우리는 죄를 지어서 우리가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이 처절한 십자가의 사랑을 거부하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는 것이에요. 오늘 이 사랑 여러분 가지고, 우리 새생명 축제 마치고 이제 지난 어제 그저께 WEA 월드 이벤저리컬 얼라이언스라고 세계복음주의연맹 내년도 10월 27일날 총회를 할려고 어제 다 출범 예배를 드렸는데, 오늘 이 중요한 순간에 한국 교회와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이 이 순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무장되어 또 성경의 절대적인 진리 성경의 무오성을 믿고, 우리 앞에 있는 수많은 공산사회주의 문화 막시즘 그다음에 뭐예요?

앤티 기독교, 그다음에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무슬림에게 우리가 곧 우리가 따라잡힐 판이야. 지금 이거 20~30년대로 다 따라잡힐 판이에요. 공산주의, 문화 막시즘, 엔티 기독교, 차별금지법 동성애 확산, 이런 것을 이 순전한 복으로 막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으면 우리의 수많은 과오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말할수 없는 주의 크신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 놀라운 사랑이 내게 임했네. 예수님은 오늘 거듭난다는 것은 육신의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이야. 그리고 물과 성용으로 특별히 회계를 통한 일을 하게 되신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걸 기억하고, 다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거부하지 아니하고 모두가 다 거듭난 은혜를 갖고 영원한 생명의 역사가 여러분들 모두의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축복합니다.

요약
우리의 영혼에 거듭남의 기적이 일어난 2.006명의 결신자를 주님께 올려드리며, 진실로 진실로 위로부터 영적인 차원에서 거듭나야 한다. 영원한 형벌과 저주의 지옥을 해결하신 예수님으 처절한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할 때, 대롱대롱 매달린 자기절망과 죄의 절벽에서 주님의 무한 사랑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사랑의 교회가 세계복음주의 연맹(WEA)과 함께 세계복음주의의 쇠퇴를 강력하게 막아설 때, 지상명령 성취를 완수하는 전세계적인 부흥으로 비상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진리가 깨달아져서, 한 명도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거부하는 자가 아무도 없어야 한다. 그 사랑을 우리의 삶에 가장 강력한 은혜로 받아 이 땅에 주신 사명을 은사대로 완수할 수 있어야 하며, 영적으로 성공하는 인생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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