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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12월 12일) 제목: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말씀: 빌립보서 1:27-30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설교자: 김영석 부목사님 ---- *빌립보서 1:27-30,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 ▶빌립보서를 쓸 때에 사도바울은 로마의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혹시 내일이라도 처형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한 치 앞의 미래도 가늠할 수 없는 캄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차라리 이 세상을 떠나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편을 더 사모했습니다. 바울은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 아니오, 예수님 계신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관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천국을 향한 분명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부터 그가 품게 된 복음의 뜨거운 열정은 여전히 그 가슴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만일 그가 지금 세상을 떠난다면 이 땅에 남아 있는 성도들은 절망에 휩싸일 것이고, 지도자를 잃은 교회는 큰 타격을 입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좋으나, 교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 육신으로 있겠노라고 그렇게 결심합니다. 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1:24,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교회를 위해 복음전도를 위해 다시금 삶의 의지를 붙잡은 것입니다. 놀랍게도 성령님께서는 바울에게 그가 성도들과 다시 만나 함께 거하게 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25절에서, *빌립보서 1:25,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이제 바울은 감옥에서 나와서 교회에 돌아올 것이고. 교회와 온 성도들은 우리가 바울을 위해 드린 기도가 응답된 것을 보면서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26절에서 말씀하듯 복음과 주님을 향한 그들의 자랑이 다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온 바울로 인해서 크게 풍성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언제 또 어떻게 감옥에서 풀려나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또 바울만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도 적대적인 환경에서 아주 힘겹게 교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내가 곧 감옥에서 나와서 너희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그때까지 어떤 어려움과 핍박이 있다 하더라도, 너희가 복음의 신앙을 굳세게 지키기를 원한다라는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27절과 28절에서, *빌립보서 1:27-28,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를 향한 온갖 공격과 또한 거짓이 난무하던 상황 속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오직 피 묻은 복음의 신앙을 굳게 지키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다양한 가치와 신념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허물고 거짓으로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공격하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부정하며 성경적 신앙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수많은 불건전한 시도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굳건히 서 있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복음의 신앙 위에 굳건히 서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우리가 구체적으로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됨을 지키며, 협력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27절 후반부에서 말씀합니다. 화면을 보시고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II. 첫째는, 하나됨을 지키며, 협력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빌립보서 1:27,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온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을 품고 협력할 때에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강철 대오를 이루어 단단하게 하나되어 영광스러운 교회의 기품을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의 주류에 굳게 서서 한마음과 한뜻을 품어 교회의 하나됨을 힘써 지키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 즉 이 민족 더 나아가 전 세계를 복음으로 품는 위대한 사명에 진심과 전심으로 협력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사탄은 교회가 주님을 믿고 한 마음으로 협력할 때에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관심이 늘 어디에 있냐 하면, 교회의 분열(分裂)에 있습니다. 언제든지 기회를 엿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 안에 분열을 조장합니다. 사탄은 헬라어로 디아볼로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디아는 무엇무엇 사이에라는 뜻의 접두어이고 볼로스는 던진다 라는 뜻의 발로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사이에 던진다. 즉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어지럽히고 훼방하고 이간질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또 무슨 일이든지 함부로 불평불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에게 틈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존심이 상하고, 감정이 상하고, 이런저런 일들로 섭섭한 감정을 품게 될 수 있습니다. 그때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그 틈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탄의 관계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의 연합을 위해서 공동체원 모두가 자기를 부인하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자기부인이란 무엇입니까? 담임 목사님의 저서 온전론을 보면, 자기 부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며 관여했던 모든 고리를 끊고 인생의 최종 결정권을 주님께 드린다는 것이다.” -온전론 17p- -아멘 원어로 볼 때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와 어떤 대상의 연결고리를 끊는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자기부인은 자기중심성이라는 아주 지독한 우상을 단호하게 끊어내는 것입니다. 모든 자기중심적인 안전, 이익, 행복, 명예 이런 모든 우상을 다 끊어내고 오직 주님이 주신 사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태도 그것이 자기부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의 기간 동안 계속해서 자기 부인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26,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9:23,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또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다툼과 갈등이 생길 때 엎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때 기도해야 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님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실까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결판 내신 바로 그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모든 신적 특권을 기꺼이 포기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리하셨습니다. 사탄에 대한 예수님의 필승 전략은 자기 부인과 권리포기였습니다. 성경님은 바로 이 자기 부인과 권리 포기가 승리의 길이라고 말씀하시며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겸손하라. 온유하라. 오래 참으므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명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권리와 감정을 내려놓고 우리 공동체에 주신 사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온전히 하나되어 승리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각각 기질이 다르고 직업도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중에는 로마에 협력하던 세리마태도 있었고, 로마에 대항해서 투쟁하던 열혈당원 시몬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때 더 높은 자리를 두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목도하고,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내리신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 부인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었고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남을 낮게 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툼이 그쳤습니다. 다투던 그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통해 생명의 복음이 전 세계 더 나아가 모든 민족을 향해 물이 바다 덮음같이 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됨을 힘써 지키며,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기쁜 마음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를 통해 복음이 힘 있게 선포됩니다. 말로만 전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동과 모습이 더 큰 소리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육신이 살아 있어서 스스로를 내세우고 여전히 다투고 분열한다면, 여기서는 결코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모든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힘으로 하려고 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 달리신 십자가로 가까이 가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의 아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그 십자가에서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 샘물 같은 보혈에 내 영혼을 적실 때 내 안에 없던 힘이 생겨날 것입니다.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희생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나타날 것입니다. 분열이 그치고 하나 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살아온 배경도 성격도 직업도 다르지만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온전히 하나되어 협력하고 우리가 이 일에 힘쓴다면 우리는 주님의 날카로운 새 타작(打作)기가 되어서 이 세상을 전 세계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하나됨을 힘써 지키며 협력하는 일에 힘을 쏟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힘을 쏟아야 할 일은 복음에 대한 반대에 담대히 맞서는 일입니다. II. 둘째는, 복음에 대한 반대에 담대히 맞서는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하나 될 것을 강조한 동시에 복음에 대한 반대에 대항해서 담대하게 맞설 것을 권면합니다. 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1:28,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복음의 위대한 사명을 위해서 전신전력하는 그 길에 작은 것 하나까지도 문제 삼으며 대적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 자신도 복음을 수호하고 전파한다는 그 이유로, 말로 다 못할 고생을 겪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사는 인생에게 가해지는 위협과 공격의 무게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충을 겪게 될지를 너무나 잘 안 것이죠. 그래서 그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절대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라. 오히려 복음의 야성, 영적 기백을 품고 복음에 대한 반대에 담대히 맞서서 주신 사명과 방향을 붙잡고 정면 돌파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8장 31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8:31,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아멘 지난주 토비새에서 담임 목사님을 통해 주신 말씀과 같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일에 담대하게 거침없이 정면 돌파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복음 전파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입니다. 대한민국 기독교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순교자 기념 박물관을 몇 곳 방문해 보았는데, 가장 먼저 가본 곳이 바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한 선교사님들이 그 먼 곳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통하 보이지도 통하지도 않는 조선 땅, 그곳에 와서 모진 박해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중임을 의지하여 얼마나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했는지, 그 역사의 기록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복음화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희생으로 맺어진 열매임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이 이와 같은 삶입니다. 그 길에 대적이 있고 핍박이 있지만 그로 인한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거침없이 복음을 위한 사명에 끝까지 충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난에 처한 교회를 격려하면서 하나님이 보상하실 때가 반드시 있다고 격려했습니다. 하나님은 대적들의 행위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고, 복음 때문에 고난받은 일꾼들에게 넘치는 위로를 베푸실 것이라고 힘주어 선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고난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 보면요. 단대하고 조롱하며 훼방하는 무리들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미워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미워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위축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 뒤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담대하고 대범하십시오.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선으로 악을 갚는 그 대범함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 박해받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상이 크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에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고린도 후서 4장 17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17,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장차 누릴 영광과 상급을 기대하면서 지금의 역경을 오히려 기뻐하며 끝까지 사명을 위해 정면돌파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을 호류지라고 부릅니다. 니시오카 가문은 화재와 멸실의 위험이 있는 호류지를 자그마치 1400년 동안 대대로 지켜왔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크고 오래된 건축물을 짓는 목수를 미야 다이쿠 즉 궁목수라고 부르는데 이 니시오카 가문이 바로 궁목수 가문입니다. 그들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시간들을 지탱하는 목조 건축물을 세울 수 있었던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그것은 근본적으로 건물을 짓는 재료 건축 자재가 달랐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즉 천 년 이상을 지탱할 수 있는 노송을 썼다는 것입니다. 니쇼카 가문은 천 년 이상을 지탱하는 건축물을 지으려면 천 년은 된 노송을 써야 한다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들은 나무의 생명력을 그 나무가 오랫동안 견뎌낸 연수로 평가했습니다. 천 년을 견딘 나무는 그렇게 천 년 이상을 쓰임 받았습니다. 견딤이 있어야 쓰임이 있다. 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을 견디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영원토록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어차피 견뎌야 할 고난이라면 감사함으로 견뎌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견디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참으신 것은 앞에 있는 기쁨을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우리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 말씀을 한목소리로 공독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2,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아멘,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 이후에는 반드시 기쁨과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난 모진 고난과 어려움을 힘든 고초를 겪으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난 이후에 있을 상급과 기쁨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모든 박해와 또 공격을 담대하게 맞서시기 바랍니다. 견딤이 있어야 쓰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담대히 맞서 싸우시고 더 나아가 복음의 사명을 위하여 모든 장애와 방해들을 정면돌파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 복음의 신앙을 수호하고 전파하는 그 길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발걸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길을 걸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한 번도 빠짐없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힘차게 살아가십시오. 이를 위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힘써야 할 첫 번째 일은 하나 됨을 지키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자기 권리 감정 자존심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고 기쁨으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복음에 대한 반대에 담대하게 맞서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의 신앙을 위해 사는 우리를 비웃거나 비난하는 자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고 전파해야 합니다. 비록 그 길에 고난은 고난은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冕旒冠)을 우리에게 씌워주실 것입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그 칭찬이면 충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세상의 금과 은 그 어떤 보아가 없어도 온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그 칭찬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복음의 신앙을 위한 발걸음에 더욱 힘을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세상에서는 우리가 환란을 당하지만 담대하여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처럼,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우리의 대장 되신 주님을 따라갈 때에, 한 영혼이라도 거룩한 진영에서 이탈하는 자가 없기를 기도해야 한다. 모두가 온전히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의 하나됨을 지기며, 협력하는 일에 지혜롭게 힘쓰고, 십자가에서 세상 권세를 이기신 대장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복음에 대한 어떤 공격과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담대히 맞서서 나아가야 한다. 대장 되신 예수님을 따라 정면 돌파하여 그렇게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헌신하는 모든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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