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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7월 26일)
제목: "깊은 슬픔을 노래로 바꾸시는 하나님"
말씀: 시편 39:1-1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자: 조충현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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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9:1-13,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1 0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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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며 수요일 저녁 기도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을 축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위로와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고 고침 받는 시간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말씀 부흥과 예배 부흥의 실체가 나타나는 수요 저녁 기도에 나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수요 저녁 기도회를 통해서 회복을 넘어 부흥의 역사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시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시편 39편 말씀입니다. -오늘 저는' 기쁨, 슬픔을 노래'로 바꾸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으로 우리 함께 성도님들과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독서하실 때 어떤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책을 읽을 때 은혜가 되는 저자를 만나면 시중에 나오는 저자의 책을 모두 사서 읽으려고 합니다. 얼마 전 하나님의 품에 안식하신 팀 켈러 목사님이 쓰신 고통에 답하다.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시편에 150편 중에서 긍정적인 메시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 시편이 두 개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읽었던 다윗이 쓴 시편 39편과 헬만이 쓴 88편입니다. 여러분, 일반적으로 시편에 나오는 시들은 적어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냐 찬양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시에서는 어떻게 긍정적인 메시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인지, 저는 굉장히 궁금해서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오늘 저는 두 편의 시 중에서 다윗을 쓴 39편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아멘. 저는 오늘 시편 39편의 말씀을 읽어가는 도중에 제일 먼저 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13절이었습니다. 13절을 세 번역 성경으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39:13,
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다시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나에게서 눈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돌려주십시오. 여러분 다윗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하나님을 향해 이런 슬픈 고백을 하는 걸까요?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한 번만, 나에게 눈길을 달라고 지금 다윗이 하나님께 마지막 13절 마무리하면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왜 이런 고통에 겪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시편 39편의 말씀을 묵상하며 내려가 보면 그의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통증 지수를 1에서 10으로 계산한다고 하면 아마도 다윗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아마도 구에서 10에 가까울 정도로 그런 고통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한 번만 나에게 눈길 한 번만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겠죠. 저는 이 시간 다윗의 깊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신앙의 자세를 보여줬는지 오늘 세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다윗은 고난 가운데 잠잠하고 침묵했습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잠잠하고 오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고난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작은 고난이든 큰 고난이든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 중에서 성도님들 중에 고난을 겪어보지 않은 분이 있으십니까? 혹시 있으시면 손 들어보시겠습니까? 없으시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작은 고난이든 큰 고난이든 그런 고난들을 겪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내 앞에 고난이 닥칠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시나요? 처음에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할 것이고, 화를 내기도 할 것이고요. 원망할 것 같기도 할 것이고요. 한탄하기도 할 것이고 그 시간을 지나면 우하에 멍만이 있기도 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감정은 고난 앞에서 쉼없이 요동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다윗은 고통의 수렁 속에서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요? 1절을 다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39:1,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다윗은 고난 앞에서 불평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불평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자 이 모든 행위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불평하는 혀를 억제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자신의 입에 재갈을 먹이겠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재갈이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재갈은 말의 입에 물리는 토막 같은 거죠.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사람의 입에 물리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고난 앞에서 입마개를 하고 자기 입을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왜 고통 앞에서 재가를 물고 입을 열지 않기로 다짐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셔서 기분이 상해서 입을 닫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을 괴롭히는 악한 자의 힘이 너무나 세서 겁나서 침묵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 데는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어서 좌절해서 입을 다무는 걸까요? 다윗은 침묵을 선택한 이유를 주님께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 9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9절입니다.
 
*시편 39:9,
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않음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침묵을 선택한 이유는 이 모든 고난이 주님께서 주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잠잠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닥치는 모든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시인 다윗이 행동했던 것처럼 잠잠히 침묵할 수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보통 사람들은 쉽게 열을 내고 흥분합니다. 감정은 모두 곤두서고 마음은 불붙듯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거침없이 신경질이 되기도 하죠. 여러분, 다윗이 침묵을 설득했다는 것은 결코 고통을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침묵은 고통 중에 성도가 선택할 수 있는 위대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뭐라고요? 침묵은 고통 중에 성도가 선택할 수 있는 위대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시에스(C.S) 루이스가 쓴 스쿠르 테이프에 편지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고참 악마인 스쿠르 테이프가 마귀의 영역을 아주 시끄러운 소음의 왕국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마침내 온 우주를 소음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를 위해 스쿠르 테이프는 다른 악마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침묵을 경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침묵이 악마들이 하는 일인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에 큰 위협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소음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았던 다윗은 고통 앞에서 잠잠히 침묵하며 주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래야 그곳에서 고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은 고난 가운데 어떤 모습을 보이십니까? 오늘 다윗이 주님 앞에 잠잠히 침묵하며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가 고난 앞에서 잠잠히 주님께 나아가면 어떨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의 해결책을 허락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혀의 재갈을 물고 있다가 고난 가운데 잠잠한 다윗의 태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뀔까요?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만 토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번째입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만 토로하였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시편 39:4,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여기에 본문에 보시면 4절에서 주어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 앞에서 잠잠히 입을 열지 않은 채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모든 괴로움을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4절에서 6절에 보면 메시지 성경으로 한번 보기 원합니다. 다윗의 심정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 무슨 일인지 알려주소서. 나의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소서. 죽을 날이 언제인지 알려주소서. 주께서 내 수명을 짧게 하셨으니 내 목숨 줄 건질 것 없을 만큼 짧습니다. 아 우리는 한단 이김. 아 우리는 모닥불 속 그림자, 아 우리는 허공으로 내뱉는 침. 기껏 모아놓고는 그대로 두고 갈 뿐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만 바라보며 이 시간 토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토로의 사전적인 정의는 마음에 있는 것을 죄다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토로(吐露)의 연속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고난 속에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오직 하나님께만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음에 있는 짐들을 토로할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나의 아픔과 고뇌(苦惱)를 토로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어느 종교도 인간이 신에게 고통을 토로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성도들이 고난의 터널을 지나며 겪는 모든 아픔을 들어주십니다. 여러분 다윗은 이번 한 번만 하나님께 토로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인생 자체가 토로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마주할 때마다 고난 앞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토로하였습니다. 시편 142편 1절과 2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편 142:1-2,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와께 간구하는 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한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 도다.
- 다윗이 하나님 앞에 토라고 한다고 할 때 토로하다. 라는 쏟아 붓다. 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사정을 숨김없이 쏟아 붓고 있습니다. 여러분 1절과 2절에 9절에 보십시오. 소리 내다. 불을 짓다. 소리 내다. 간구하다. 원통함을 하나님께 토로하다. 우한을 진술하다. 토로하다. 라는 동사 비슷한 동사들이 이렇게 많이 나옵니다. 이렇듯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과 슬픔 앞에서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게 드러낸 것은 몹시 중요합니다. 신앙을 내세워 감정을 부정하거나 지나치게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다해 쏟아놓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걱정, 근심을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쏟아 부으십시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토론을 듣기 위해 길을 열고, 들을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아멘. 고난은 우리의 시선을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게 하는 특효약입니다. 다윗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토로한다고 해서 조금은 마음의 짐이 내려놓을 수 있지만 완전한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 모든 시선을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의 고통의 무게를 하나님께 쏟아 부으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마음의 짐을 이 시간 내려놓고 하나님의 참된 평화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습니다.
 
-시편에 39편에 유일한 한 줄기의 빛은 7절 하반 절입니다. 우리 39장 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편 39:7,
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여러분 원문에서는 그것이라는 인칭 대명사가 따로 등장하여 나의 소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면 나의 소망, 그것은 바로 주님께 있습니다.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소망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망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향한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그분께 자신의 삶을 모두 위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신앙의 가치는 바로 소망인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 소망을 갖는 것보다 더 실질적인 것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소망이 상실되면 우리 앞에 닥친 시련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망 없고, 빛도 없는 흑암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경험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눈길 한 번만 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 외면당할 뿐 아니라 완전한 흑암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자신의 다른 열두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셨으며, 심지어 하늘 아버지에게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로 걸어가신 예수님 덕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우리의 삶에 가장 어두운 순간을 마주한다 하여도 우리의 소망은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6장 19절에서 이렇게 담대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쉬운 성경으로 함께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6:19,
19 우리가 가진 소망은 영혼의 닻처럼 안전하고 튼튼하며, 그 소망을 통해 하늘 지성소의 커튼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게 합니다. 우리 다시 한 번 있기 원합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은 영혼의 닻처럼 안전하고 튼튼하여 그 소망을 통해 하늘 지성소의 커튼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붙잡고 있는 소망은 영혼의 다처럼 안전하다고, 튼튼하다고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소망을 붙잡고 나아간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잠시 당하는 고난이 있을지라도 언젠가 하늘 지성소의 커튼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맛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소망을 우리 모두가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저는 한 가지만 오늘 적용을 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기억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기억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서 소망을 잃지 않도록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언제나 이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을 우리는 끝까지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약속의 말씀이 없는데요.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매일 날마다 솟는 샘물을 통해서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이 주신 음성을 들으십시오. 토요 성령 집회를 통해서 참 만족을 주시는 생수의 강을 여러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매주 토비세 때 담임 목사님과 함께하는 72구절을 암송하면서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 되도록 말씀 앞에 여러분의 삶을 맡기십시오. 개인적으로 저는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서 붙잡았던 소망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는 2012년에 정격 성 강경변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정격 성은 번개같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갑작스럽게 강경 변으로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의 위태로움을 겪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두 번의 간이식을 받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응급으로 간이식 수술을 하고 수술을 했는데, 하루가 지나서 제 몸이 이식받은 간을 거부하여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의료진이 모두 포기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려주셔서 두 번째 간 이식을 받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6년의 투병 생활을 하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이식 수술을 하고 무균 실에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던 기도 내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시 사명의 길로 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 제가 다시 하나님께 안아주심을 본당에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요?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붙잡았던 말씀이 시편 118편 17절이었습니다.
 
*시편 118:17,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 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일날 사회자 목사님이 예배 부름 때 하셨던 말씀을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어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의인의 장막에 깊은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었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 도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 선포하리로다.’ 아멘.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 되십니다. 또 나의 구원이 되십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그가 살아갔던 것입니다. 드디어 오늘 그 소망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제 생명을 살려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바로 이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 증거 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담임 목사님의 돌보심과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충복이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안아주심의 본당에 예 드리시거나 부득이하게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분 중에 다윗처럼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고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병마와 씨름하는 분들도 있으실 것이고, 어떤 분들은 진로의 문제로 뜬눈을 밤을 새며 지세 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회사의 스트레스로 인해서 고통 받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중에는 가장으로서 가정을 온전히 세워가기 위해 부딪혀주려 노력하지만, 경쟁적인 문제로 회복되지 않는 어려움 가운데 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참한 현실 속에서 취해야 할 신앙의 자세는 단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의 소망 대신 예수님을 붙잡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당하는 고난이 힘들고 낙심되더라도 다윗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이 말씀 나의 소망이 죽겠나이다. 나의 소망이 오직 살아계신 주님께 있습니다. 라고 기억하며 이 말씀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소망만 붙잡고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키실 것이며, 우리의 삶에 믿음 보고 2.0을 써내려가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대신하여 우리를 위하여 가장 깊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가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다윗의 뿌리이시며,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온갖 모욕과 침 뱉음과 고통을 당하면서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않으시고 잠잠히 침묵하셨습니다.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과 그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 숨김없이 아버지가 할 만하시거든 이 자는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토로하셨던 주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으므로 고난에는 늘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심지어 그 뜻을 우리가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그분을 신뢰하며, 소망 가운데 오늘 다윗처럼 나의 소망은 죽게 있나! 라고 고백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라기를 다윗의 깊은 슬픔을 소망의 노래로 바꿔주신 그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거두시고 고난 가운데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토로할 때, 소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어떤 고난과 위기가 닥쳐도 하나님 앞에서 혀로 범죄 하지 않고, 이 모든 고난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고난 가운데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 가운데 나의 아픔과 슬픔을 토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기억하며, 나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고통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토로하고 쏟아 부어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땅에 잠시 당하는 고난 앞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의 소망되신 예수님을 꼭 붙잡아 깊은 슬픔을, 소망과 기쁨의 노래를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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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7월 22일)-부흥헌신 여름성령집회
제목: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말씀: 열왕기하 22:1~2
찬양인도:(쉐키나)
설교자: 박정호 목사님-초빙(순복음의정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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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2:1~2,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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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참 더운데 보시기에라도 좀 시원하라고 흰 양복을 좀 입고 왔다. 좀 튀는 것 같지만 이른 시간이기 때문에 졸ㄹ린 분들은 좀 깨셨으면 좋겠고, 제게 주어진 시간이 많이 없다. 저는 어떤 말씀을 전할까, 저는 순복음 교단 목사이기 때문에 성령운동을 한다. 방언기도, 심령기도, 통성기도, 신유기적, 이런 말씀을 좀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장로교회 교단에서 오셔서 순복음교회 목사가 하나님 말씀과 관련된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듣고 또 함께 찬양 드리기를 원하는데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 주실 줄로 믿는다. 열왕기하 221-2절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성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예수님 오실 때까지 꼭 기억할 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강조하시면서 경고해 주시는 말씀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아라. 왜냐하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만드실 때 하나님 모양 형상 따라 만드셨고, 하나님의 그 어마어마한 가능성과 능력과 잠재력을 주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고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나 죄가 임하고 그 죄의 결과로 죽음뿐만 아니라 죽이고 도둑질 멸망시키는 사단 원수마귀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속성이 있는데 그것이 뭔가 한 쪽으로 쉽게 치우쳐 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너무 좋은 것도요 너무 좋아하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싫어하는 것은 또 너무 시도하다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오늘 주시는 말씀 남은 2023년뿐만 아니라, 남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 특별히 우리 토비새는 4대가 함께 예배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할아버지, , 자녀, 손자 손녀까지,
 
제가 얼마 전에 유럽을 종교개혁 지를 탐방을 하고 왔다. 천년 넘게 하나님께서 기독교의 흔한 길을 허락하셨는데 세속화되고 타락하니까 마틴 루터를 통하여서 종교 개혁을 일으키셨고 또 혼자뿐만이 아니라 많은 동역자들, 종교 개혁자들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300년이 세월이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고 화형당하고 그리고 지켜낸 신앙인데 불과 이제 한 3주 됐나요? 3주 전 가서 보니까 다녀오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죠. 그 큰 성전을 짓고 그 많은 핍박과 그 힘든 신앙을 지켜낸 그 모습은 다 사라져버리고 그다음 세대가 방황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저들의 다음 세대는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봤다. 마틴 루터의 후예들은 어디 있는가? 존 칼빈의 찌빈 글리의 후예들은 어디 있는가? 반면에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 문제지만 유대민족은 보니까요. 조상 대대로 여러분들이 하는 것처럼 4대가 함께 토요일 날, 예배드리고 주일을 준비하는 기도회를 하는데, 4대를 뛰어넘는, 그렇죠? 30, 40, 50, 그 조상을 거슬러서 올라가고 올라가다 보면 신약의 인물이 나오고, 구약의 인물이 나오고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도 이제는 이와 같은 영성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성도의 삶을 우리가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도전의 말씀이죠.
 
첫 번째는 인간에게는 멈추지 못하는 속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양심이다. 양심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는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주셔서 스스로 안다. 아 이거 잘못됐구나! 이거 잘못된 생각이구나! 잘못된 말이구나! 잘못된 행동이구나! 문제는요.
 
- 멈추지를 못한다는 것이 문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 라고 하는 왕은 모든 남 유다 왕들 가운데 그 이전에 북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모든 북이스라엘 왕들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하나님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던 사람이다. 이유가 뭔가 오늘 본문 2절에 보니까 요시아 왕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한 삶을 살았다. 우리 본문 2절 말씀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열왕기하 22:2,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아멘. 사실 요시아의 할아버지 므낫세, 그 아버지 아몬 왕 또 그 아들, 여호 아하스라는 왕도 다 하나님께 범죄를 했다. 뿐만이 아니다. 열왕기하 상하, 역대 상하 역사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오는 모든 왕들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다. 그 성경에 보니까 그가 열조가 행하였던 대로 야외 앞에 악을 행하였다. 악을 행하였다. 이런 말씀이 계속 나오죠. 왕이 되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꼭 왕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보면 돈이 생겼다. 권력이 생겼다. 명예가 생겼다. 위치가 올라갔다. 그럼 우리 안에 욕심이 생기게 된다. 그 욕심 때문에 한쪽으로 확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요시야 왕은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어느 법정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판사가 피고에게 질문을 한다. 진주 목걸이를 훔치다가 붙잡혀온 피고인데 판사가 이 피고에게 묻는다. ‘왜 당신은 금방에서 진주 목걸이를 훔쳤습니까?’ 이에 피고가 대답을 한다. ‘! 제가요? 아침에 진주 목걸이 앞을 지나가는데 그 앞에 뭐라고 써있는가? ’이 놀라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그래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진주 목걸이를 취했다가 이렇게 붙잡혀 왔다.
 
여러분, 욕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스스로 멈추지 못한 결과이지 않습니까? 야고보서 115절에 보니까 욕심이 은퇴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을 한다.
*야고보서 1:15,
15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에게 멈추지 못하는 죄의 속성이 있다는 것이죠. 죄는 강한 것이다. 누가 나에게 죄를 줘서가 아니라, 아담 이후가 타락한 이후에 우리 모두가 죄 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안에서부터 이 죄 성이 계속해서 치고 올라오는데 그 힘이 보통이 아니다. 권력도 주어지면 놓을 줄을 모른다. 정욕이다, 쾌락이다, 불륜이다, 죄를 지으면서 멈추지를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고린도전서 927절에 보니까 사도 바울도 이런 고백을 한다.
 
*고린도전서 9:27,
27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하면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나님의 선교회를 감당한다고 하면서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까 봐, 그 죄의 유혹에 사로잡혀서 멈추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항상 기억할 것은 주요 나로 하여금 멈출 줄 아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두 번째이다. 우리 속성 가운데 멈추지 못하는 속성과 함께 또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좌로 치우치거나 우로 치우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II. 두 번째는 좌로 치우치거나 우로 치우치는 속성.
-모든 사람이 좌에서 좌로 가는 게 아니다. 우해서 우로 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좌측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우측으로 끌려간다. 문제는요 좌가 됐든 우주가 됐든,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친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지 않습니까? 성격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어떤 사람이 이걸 좋아하는데 저기서는 싫어한다. 저것은 좋아하는데 이것은 너무 싫어한다. 모두에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는요. 이것이 됐든 저것이 됐든, 한쪽으로 너무 심하게 기울게 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치도 그렇고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제가 순복은 교단이지만 너무 비성경적으로 신비주의에 빠지게 되면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까지도 쫓아다니면서 신령한 척하는 거, 그게 문제이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 말씀을 붙잡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아예 자유주의에 빠져서 하나님까지 거부하는 그쪽으로 확 치우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요. 우리 성향이 한쪽으로 확 치우칠 수 있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치는 것을 항상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잘 아는 이삭과 리브가, 쌍둥이 아들을 낳지 않습니까? 에서와 야곱인데 아버지 이삭은 어떻게 된 것인지 형 이삭만 편애를 한다. 어머니 리브가는요. 동생 야곱만 사랑을 한다. 결국에는 그 두 부모가 한 아들만 편애하다가 한쪽으로 확 치우친 결과 그 형제가 원수처럼 지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이 새벽에 끼운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실 때, “하나님, 제가 죄에 대하여 멈출 수 있게 하여 주옵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라.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중요시 여겼기에 모세 이후의 리더십을 부여받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셨죠? 여호수아서 17절에 보시면
 
*여호수아서 1:7,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내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할렐루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러면 어디를 가든지 형통할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요시야 왕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셨다. 이유는 뭡니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은 유일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 병원 가면 저와 여러분들이 죄에 대해서 멈추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게 하는 이 속상을 잠잠케 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한번 따라 하실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III.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말씀을 듣자. 다함으로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 가운데 종로를 걸어가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1장 여호수아 18절에는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우리 여호수아 18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다.
 
*여호수아 1:8,
8 이 율법 책을 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지하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리하면 내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내가 형통하리라.
-아멘. 요시야 왕은 이 말씀을 붙잡은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8살에 왕이 되었다고 오늘 성경에 말씀을 한다. 8살에 왕이 되어서 18살 되던 해,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을 한다. 그리고 서기관이었던 사반을 통해서 성전을 수리하기 위해서 보내는데 3절 이하에 보면 그 할아버지 때부터 무너진 성전을 수비하다가 사라져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 책을 발견하는 것이죠. 그것을 발견한 서기관 사반이 요시야 왕에게 와서, 그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는 내용이 10절에 나오는데 10절에 보시면
 
*여호수아 1:10,
10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기아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중요한 것은 요시야 왕이 그 잃어버렸던 성경, 잊혀졌던 성경을 발견해서 서기관 사방이 읽어주었을 때 그 들은 말씀을 듣고 요시야 왕이 한 것이 뭔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기 위하여서 그 말씀을 붙잡고 그대로 행하면 형통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 그대로 하나님 약속의 말씀대로 실천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 13절 말씀은 같이 한 번 읽어보실까요? 13절 같이 읽는다.
 
*여호수아 1:13,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이 책에 우리를 위해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그러면서 그 말씀에 기록된 그대로 행하기 시작하는데 성경에 보니까 모든 백성들을 불러놓고 명령하기를 모든 바울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불사르라. 명령을 하고, 전국의 산당들에서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해달별과 하늘의 모든 별들을 분양하던 자들을 폐하고, 성전 안에 모든 우상들을 불살라서 빻아 가루를 만들어 평민들의 묘지에 다 하나님 말씀 그대로 요시야 왕이 실천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한 요시야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가?
오늘 이 새벽에 하나님 말씀 붙잡고, 주여, 내가 이 말씀 붙잡고 멈출 줄 알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정말 형통하고 평탄한 삶 살기를 원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다. 생각하시고 우리 25절 말씀 같이 한번 크게 읽어보자.
 
*열왕기하 23:25,
25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야 내 말씀 이대로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실천하고 순종한 왕은 요시야 왕밖에 없었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과연 약속하신 그 말씀 그대로 요시야 왕을 축복해 주시고 그 길을 평탄하게 하시고 형통하게 하신 것을 그렇다면 이 어린 왕이 어떻게 이 놀라운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 중요한 메시지인데요.
 
첫 번째는 그가 어려서 왕이 됐는데 남 유다가 흥하고 살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요시야 왕은 어려서부터 이 무너진 성전에 나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이다. 그 까닭에 하나님께서 요시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할아버지, 그 아버지 때 망하고 다 무너진 그 모든 남 유다를 하나님께서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한번 보실까요? 7절에 보시면 18, 18살 되던 해에 성전 수리하러 나갔는데 이런 내용이 나와요. 7절 말씀입니다.
 
*열왕기하 22:7,
7그러나 저희 손에 붙인 은을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행하는 것이 진실함이었더라.
-무슨 말씀인가? 성전 짓기 위해서 사람들이 은을 가지고 왔는데, 그걸 그냥 감동하는 자들에게 가져다주어라. 그리고 계수하지 말아라. 이유는 뭐예요? 너무 정직하기 때문에 회개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 할아버지 때부터 영적으로 우상숭배하고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제약된 길을 살았던 유다 민족 가운데 일어날 수 있었는가? 8살 때부터 18살 성전 수리 시작하는 그때까지 계속해서 요시야가 한 일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 것이다. 그 하나님이 역사하심이 그 완악했던 남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시는 것이다. 그 마음들이 부드러워지게 하는 것이다. 정직한 자가 세워지게 하는 것이다. 성전 지을 마음을 주실 뿐만 아니라 성전 건축 위해서 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자들이 생겨지게 하셨다. 우리가 항상 신앙 생활할 때 예배를 강조하지 않습니까? 예배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4대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함께 한 번도 아니고 매주 마다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할 때, 생수 되시는 예수님의 성령이 생수처럼 여러분들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가운데 운행하시면서 여러분들의 가정을 지켜주실 줄 믿는다. 교회를 지켜주실 줄로 믿는다. 나라를 붙잡아주실 줄로 믿는다. 8살이면 초등학교 나이지 않습니까? 어린아이가 됐든 노인이 됐든 누구라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요시야 왕처럼 예배드리며 기도할 때, 생수의 강되시는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역사해 주시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치유가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나도록 축복해 주시는 줄로 믿는다. 그렇게 성전에 나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지휘했던 요시야 왕이다. 그러다가 성전 수리해야겠다. 10년 뒤에 18살 되던 해 성전 수리를 시작하는데 세상에 성전 수리를 하다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할아버지 아버지 때, 다 믿는 자들을 멸시하고 하나 된 말씀을 불태워버렸던 그 성경책이 성전하면서 발견이 돼요. 8절 말씀 한번 읽어보시면 8이다.
 
*열왕기하 22:8
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아멘. 놀라운 일이다. 사라진 책이에요. 근데 하나님께서는 감춰두셨다가 성전 수리가 시작되는 그때에 발견되게 하시는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놀라운 보물이 있지 않습니까? 그 하나가 성전이다. 성전은 사람의 죄를 씻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세상 어느 곳에도 우리의 죄를 씻어낼 장소는 없죠. 그런데 유일한 장소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서 피의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다 씻어지지 않습니까? 죄로 타락한 양심이 치료되고 회복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 중에 값비싼 보물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이 주시는 깨끗한 양심인 줄로 믿는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이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죄 없으신 예수님의 보회를 의지하여서 천부여 의지하여 주 앞에 나오니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로 나의 죄와 허물을 씻어주옵소서.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럴 때 요한일서 19절에 말씀한다.
 
*요한일서 1:9,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뿐만 아니다. 그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두 손 높이 들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보시는 것이다. 회개한 양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해 주신다. 히스기아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얼굴을 벽으로 향한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내가 네 눈물을 보았고 네 기도를 들었다. 생명을 연장시켜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거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저들이 가졌던 아주 귀한 보물 중에 하나가 뭔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이지 않습니까? 성경책은요. 보물 지도와도 같다. 보물 지도는 아무리 오래되어도 그 가치가 손상되는 법이 없어요. 지금도 보물 지도가 있다고 하면 그 보물 지도 따라가느냐 하면 감춰진 금은보화가, 보석이 여러분 발견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근데 여러분 하나님의 복은요. 우리 눈에 보이는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의 복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복은 한 번 따라 하실까요? ‘하나님의 신령한 복이다.’ 그 복이 뭔가 그 말씀을 통하여서 내가 있어야 할 위치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서 복 줄자를 찾고 계신다. 복을 받으려면 복 받을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위치에 있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복을 구하고 복을 따라다녀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강도가 강도 짓을 하려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들으실 수가 있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붙잡고 그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께서는요. 저와 여러분들이 있어야 할 위치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이 뭐예요? 내 교만을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는 것이다. 감사하지 못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꾀 따라서 세상 사람들을 따라서 살았던 것을 보게 하는 것이고, 그러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그 축복의 자리로부터 멀어졌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속상한 것이죠.
 
아 내가 마귀에게 속았구나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있어야 할 자리는 이곳이다 말씀을 하셨구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로 삼아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을 회개하지 못하고 씻어내지 못하고, 있어야 될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엉뚱한 자리에서 마귀에게 죄에게 종 노릇하면서 살았구먼! 그걸 깨닫게 되면요. 억울하고 원통해서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울부짖어 기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있어야 될 자리를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제가 있어 엘 자리를 알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축복 나와 나의 가정 가운데 아니 우리 자손 가운데도 허락하여 주소서. 하나님의 선교 사명 잘 감당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 성경에 보니까 서기관 사반이 와서 요시야 왕에게 잊혀졌던 그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대로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11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을 한다.
 
*열왕기하 22:11,
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그의 옷을 찢으니라. 왜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이 말씀을 붙잡지 못했을까? 이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까? 왜 남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되는 자리에 있지 못했을까? 탄식하면서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한 것이죠. 그 후에 요시아 왕이 하늘이 뭔가 제사장들을 통하여서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기도하도록 부탁을 한 그리고 여선지자 훌다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도록 하죠. 하나님께서는 여선지자 훌다를 통하여서 두 가지 약속을 주셨는데, 두 가지를 말씀을 하시는데, 첫 번째가 유다 왕과 백성들이 우상 숭배한 것, 그 죄가 크다는 것이다.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죠. 요시야 왕이 그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 숭배했던 죄를 결국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훈련받은 이후에야 완전히 새로운 민족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본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뭔가 요시야 왕 때에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연기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할 것을 이미 아셨어요. 그러면서도 두 가지 희망을 주신다. 옷을 찢고 통곡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들으셨다. 하나님께서 그 통곡하고 그 기도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요시야 왕 때는 남 유다를 망하지 않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나라 민족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겠다. 그리고 정말로 한 세대 30년 동안, 그 나이 39살이 될 동안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붙잡아주시는 것을 본다. 결론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 말씀 앞에서 우리가 옷을 찢고 통곡하며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내신 그 보유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회개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저 여러분들의 양심이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수의 강이 넘쳐나기를 원하시는 것이고, 그리고 또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멈출 줄 알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 뜻 가운데 정모를 걷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 하나님이 요시야를 축복해 주시고 그 길을 평탄하게 하시고 그 세대 동안 그 나라와 그 민족을, 그 인생을 책임져주시고 형통케 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 말씀 붙잡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 후손들과 이 나라 민족을 축복해 주실 줄로 믿는다. 형통하게 하실 줄로 믿는다. 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을 우리 잘하는 시편 11절로 2절까지 말씀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습니까?
 
*시편 1:1~2,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한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
2 오직 야외 율법을 증거 하여 그의 율법을 지하로 묵상하는 자로다.
-아멘,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 나와서 기도하며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자, 그 말씀을 붙잡고 있어야 위치를 알아, 하나님 뜻 가운데 살기를 원하는 자들을 형통하게 하시는가? 평탄한 삶을 살게 하시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시고, 베드로전서 29절이다.
 
*베드로전서 2:9,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거기서 끝나면 안 돼요. 소유된 백성이 되었으니 이는 어두움 가운데 있던 저와 여러분들을 귀한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신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선교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죄악 가운데 죽어가는 많은 아까 유럽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대한민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가 예수 믿는다고 카톨릭 포함해서 20%인데 그 수가 점점 줄고 있다. 다음 세대는요 미전도 종족이 되어버렸다. 3%, 3%도 어린아이를 키우는 30, 40대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여러분들의 자녀의 자녀 세대, 어린 자녀들의 세대는요. 예수 믿는다고 손 들어봐라 줄 세워놓고 물어보면 손드는 아이가 100명 중에 한 명이다. 1센트밖에 안 되는 이 대한민국 가운데 오늘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셔서, 토요일마다 새벽을 깨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말씀 붙잡고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시고 여러분들의 길이 평탄하게 되기를 원하시고, 형통케 하는 삶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여러분, 그 복을 받아 하나님의 선교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주신 말씀 붙잡고 죄에 대하여 멈출 줄 아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가정 4대뿐만 아니라, 5, 6, 10대 계속해서 자자손손이 천대까지 하나님의 복을 받는, 하나님의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하는 가문이 되시기를 바라고, 우리 사랑의 교회 까닭에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다시 한 번 일어나 빛을 바라고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의 손결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놀라고 귀한 일들이 다시 한 번 재연되어지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요약
말씀 붙잡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성도의 삶을 사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교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요시야 왕과 같이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서기를 원하고, 말씀 붙잡는 자로, 말씀에 순종하여 나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이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다가 복을 받아 일어나 빛을 발하는 하나님의 선교 사명 감당하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한다. 부족하고 연약하나 나를 제사장으로, 만민에게 그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자로, 선교 적 삶을 살아가는 자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요시야는 아주 어렸을 때, 즉 8세부터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세라. 영국에도 이런 어린아이가 왕이 된 적이 있는데, 그는 에드워드 6세이다. 어린 요시야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나쁜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곧 그들의 실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셔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악한 행위에서 충고를 받게 하셨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을 보자. 하나님께서는 아비인 므낫세는 무시하셔서 자기 죄 가운데서 멸망하도록 버려두시고, 그의 아들인 요시야는 선택받은 그릇으로 사용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상황이 너무 곤란하기 때문에 하지 못하실 일은 없다. 그의 좌우편이 모두 실수로 가득 차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요시야를 지켜 바른 길을 가게 하셨다. 따라서 그는 미신 속으로도 오만함 속으로도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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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7월 19일)
제목: "하나님의 보호막 아래"
말씀: 예레미야 20:9~13
찬양인도:
설교자: 신성식 부목사님
ㅡㅡㅡㅡㅡㅡ
*예레미야 20:9~13,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ㅡㅡㅡㅡㅡ
 
▶우리가 공사하는 장소를 지나가보면 보호막이 쳐저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보호 장비를 설치한다. 오늘 우리 인생에도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위험들이 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보호막이 되어 주셔서 우리의 안전을 지켜 주시는 줄로 믿는다. 하나님의 보호막 아래 들어갈 때, 진정한 안전이 있다. 여러 우리 인생의 경험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막아래 들어가는 시간 되시고 오늘 무더운 날씨 속에서 우리 안아주심의 본당에 나오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 시간, 이 예배가 하나님의 보호막이 되시길 간절히 원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장 안전한 하나님의 보호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때로 우리가 넘어진다 할지라도 다치지 않는 장치, 우리 하나님의 그 보호막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이 말씀 가운데 11절 말씀을 같이 한 번 더 보겠다.
 
*예레미야 20:11,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오늘 이 말씀 가운데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다. 라고 예레미야가 믿음으로 고백했다. 그렇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힘들 때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용감무쌍한 용사처럼 예레미야 곁에 서 게셨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위협과 암살, 음모들에서 그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보하심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레미야가 원망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예레미야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다. 그래서 선지자를 어렵게 했던 사람들을 힘을 쓰지 못하게 하시고, 모두 무너지게 하는 그들이 예레미야를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마치 두려운 용사처럼 지켜주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쳐놓으신 보호막을 순간적으로 보지 못하였다.
 
지난 주간에 많은 비가 내렸다. 전국적으로도 많은 피해가 있는 것을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보았다. 저는 제자 반 단기 선교로 중국 연변을 지난주에 다녀오게 되었다. 가기 전에 일기 예보를 보니까, 저희가 4박 5일 동안 가게 되었다. 4일 동안 계속해서 비 예보가 되어 있었다. 한 번 여러분에게 묻겠다. “선교지에서 우산을 사용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 우산을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옷을 준비해갔는데요. 포장도 뜯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다. 물론 비는 내렸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비가 안 내리고 버스에 올라타면 어떻게 비가 또 쏟아지고 그러한 일들을 경험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단선을 떠나기 전 토비새가 기억이 났다. 토비새에서 그 중에 우리 우크라이나에서 온 우리 소녀 합창단 공연이 있었던 토비새가 저희가 단선을 떠나기 전 마지막 토비새였다.
 
담임 목사님과 함께 우리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우크라이나와 북한을 위해서 중보 기도 했던 그 시간이 기억이 났다. 선교지에 가서 선교사님의 그 사역의 모습들을 보면서 고군분투 하시는 정말 그 어려운 현장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서 목숨을 열어놓고 사역하시는 그 현장들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 사랑의 교회가 오랫동안 연변 과기대 UST(유스트) 사역을 위해서 우리가 많이 애를 썼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사역들이 중단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가 기도하고 뿌려놓았던 그 씨앗들이 하나도 되지 않고 오히려 평양 과기대, 그 사역에 그 연변 과기대, 출신 졸업생들이 교수 요원으로 또 많이 들어가서 그 사역이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그 현장의 소식들을 듣게 되었다. 그 사실을 들으면서 우리의 마음들이 참 뜨거워졌고, 우리 담임 목사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처럼, 평양에서 특새하는 그날이 속히 올 수 있겠구나! 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참 비가 억수가지 쏟아질 때에, 우리가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서, 담벼락 처마 밑에서 겨우 몸만 가리고 비를 피하고 있을 때에, 누군가가 와서 우산을 내밀어준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그 우산은 크고 멋진 두 사람을 다 커버할 수 있는 우산이 아니라 작은 우산이다. 혼자 쓰기에도 부족한 작은 우산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그 우산을 쓰고 폭우를 지나갈 때에, 그 포구를 지나갈 때에 겨우 머리만 그 속에 넣고 비를 피한 그 사람의 마음, 두 사람이 다 옷이 다 젖을 수 있는 그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우산을 내밀어주었던 그 우산 속에 들어가서 함께 비를 피하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의 귀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인생의 복구 가운데 몸을 웅크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못하는 그 많은 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작은 기도의 우산에 펼칠 수 있고, 우리의 우리가 붙잡은 그 기도의 지팡이를 내밀어주실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가 원래 온 교회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면서 얼마나 많은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모른다. 저도 교구에서 한 집사님이 기도 지팡이를 요청해서 급하게 기도 지팡이를 가지고 그 집사님에게 전달을 해 주었다. 근데 그 지팡이를 받자마자 그 여 집사님이 너무나 깜짝 놀라시는 것이다. “목사님, 어떻게 제 차량 번호를 알고 계셨습니까?” “예 제가 제 사무실에 있는 것 중에 하나를 골라서 가지고 갔던 그 지팡이 번호가 그 집사님의 차량번호였다. 오늘도 보니까 그 집사님이 와 계셨다. 오셔서 5시에 오셔가지고 제가 5시에 교회 도착을 했는데 오셔서 중보 기도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집사님은 개인적으로 또 가정에서 많은 기도의 제목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서 많이 힘을 얻고 또 원래 제자 훈련도 하시고, 얼마 전에도 단기 선교도 다녀오시고, 오늘 중보 기도도 하시는 그 우연히 전달되었던 차량 번호와 똑같은 그 지팡이를 받아들고,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신다는 그 확신을 가지시는 그 모습을 보았다.
 
다시 하나님의 보호막을 보게 되었던 예례미야 선지자는 마음에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하시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보호막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원한다.
 
I.첫 번째로 하나님의 그 보호막 안에는 탄식하면서도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입니다.
-한번 같이 한번 볼까요? “탄식하면서도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이 거부하고 거절할지라도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선지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조롱이었다. 예례미야는 자신이 수치를 당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탄식했던 것처럼 예레미야의 수치는 하나님의 수치였고, 그가 당하는 조롱이 하나님을 향한 조롱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처럼 예레미야의 삶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진 삶이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의 삶도 하나님의 보호막 아래에서 하나님과 연결된 삶이되시기를 바란다. 우리 자신의 죄와 연약함으로 피난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으로 인해 수치와 비난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에 내 죄와 연약함으로 인해 당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슬퍼하며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으로 인해서 당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으로 인해 받는 그 핍박에는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들에게 하늘의 상이 크다. 라고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다. 마태복음 5장 11절, 12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겠다.
 
*마태복음 5:11-12절,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중간에 기뻐하고 어떻게 해요? 즐거워하라. 그리고 오늘 본문의 9절 말씀도 같이 한번 보겠다.
 
*예레미야 20:9,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아멘. 예레미야 선지자는 고통으로 인해서 다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려고 했다. 연약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사명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레미야의 선지자의 그 내면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음을 고백하면서 어떻게 표현했는가? 나의 마음이 마치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고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 라고 고백했다. 오늘 이 고백이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의 고백이 되실 수 있기를 원한다. 답답하다는 이 표현이 히브리어로는 ‘라라’는 단어이다. 이 뜻은 ‘지치다’는 의미로서 그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도 이와 같이 탄식하면서 사명을 감당하시는 우리 많은 성도님들이 계신다. 때로는, 그만하고 싶고 때로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고 싶지만, 그러나 우리 속에서 꿈틀거리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세워지는 것에 대한 강력한 소망의 이 시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줄로 믿는다. 저에게도 항상 복음에 대한 열정을 일깨우는 말씀이 있다. 우리 아마 성도님들 중에 90% 이상이 좋아하시는 말씀일 것이다.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다. 암송할 수 있으시지만 자막을 띄웠다. 같이 읽겠다.
 
*요한복음 3장 16절,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이 말씀은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지금으로부터 한 45년 전의 스토리이다. 그때 암송했던 말씀이다. 한 줄 말씀이 뭐가 대단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한 절이 아니라 요한복음 3장 전체를 암송했다. 예 조금만 놀라주셔서 감사하다. 그래서 제가 시골 교회 이 암송 대표로 노회에 열리는 그 대회에 참여하게 됐다. 하도 작은 시골교회였기 때문에 암 속에 나가겠다는 지원자가 저 혼자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가 교회 대표로 출전을 하게 되었고. 저는 이제 경남 마산이라는 곳인데 그때 이제 경남도 노회에서 그때 모인 그곳에는
한 100여 개 교회에서 하는 대표 주자들이 나와 있던 그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제가 시상을 했을까? 못 했을까요? 예 했기 때문에 오늘 제가 이 얘기를 하겠죠? 예 2등을 했다. 1등을 해야 박수를 받을 수 있는데, 요한복음 3장은 참고로 36절까지 있다. 근데 제가 중간에 암송을 하면서 좀 바뀔 때도 있고 두려움이 있었는데 3장 16절에서 너무 힘을 받아버린 거예요. 이 말씀을 우리가 잘 하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36절까지 끝까지 완주를 할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이 말씀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되었고, 이 말씀을 암송했던 그 시간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제가 힘들 때마다 붙잡아주셨던 그 말씀의 은혜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저를 살릴 뿐 아니라 또한 저희 가정을 붙잡아주시고 살려주셨던 귀한 말씀이 되었다.
 
저희 둘째 아들이 이제 있다. 둘째 아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 제가 이제 사랑의 교회에 오게 되었다. 사랑의 교회 참 오래 있었다. 그애가 이제 유치원에 다닐 때 집에서 이렇게 게임을 하면서 게임 아이템에다가 제가 그 당시 했던 사역이 이제 호스피스 사역이었다. 그 게임에다가 유치원 다니는 둘째 꼬마가 호스피스 사역 그 이름을 정해놓고 게임을 하는 그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 아들이 저는 나중에 목회를 했으면 좋겠다는 그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우리 담임 목사님처럼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는데요. 지금은 우리 담임 목사님처럼 키만 그 정도 따라갔다. 지금 185 정도 되는 싫어 우리 담임 목사님을 따라가서 앞으로 영성만 따라가면 되는데요. 그래도 그 고3 다닐 때 학교 친구들을 10명 정도를 새 생명 축제로 인도해 왔고, 지금은 총신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오늘 제가 설교하는 이 날에 우리 단기 선교로 출발을 해서 오늘 사역 지를 향해서 떠나갔다. 참 뒤돌아보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 제가 외웠던 그 요한복음 3장의 말씀이 저를 살렸고, 힘들 때마다 제가 넘어질 때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일어났던 그 기억들이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보시면 우리가 그 가장 단순한 말씀이지만 한번 보시고, 우리 다시 한 번 기억하시죠 하나님 어떤 하나님이신가? 그 하나님이라는 단어 속에 가장 큰 사랑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등장한다. 예 정확하게 나왔다. 제가 앞에 노란 부분을 읽으면 여러분이 한번 지혜 숫자를 읽어주세요. “하나님이 세상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얻게 하심이라.”. 3장 16절에 가장 큰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는 제가 뒤돌아보니까 이 말씀이 저를 살리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가장 큰 확실한 하나님의 사랑이시를 인도해 주셨던 것을 고백하게 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너희를 위해서 살아갈 때에 주님을 위해서 사실 때, 반드시 핍박도 있을 것이다. 많은 현실적인 불이익과 손해를 당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으면 하늘의 상이 크게 될 줄로 믿는다.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그 상황 자체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줄로 믿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음에 대한 실제적인 증거거든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에 하나님 앞에서 누리게 될 상급이 그 상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확정 시켜 주시는 보존해 주시는 것이 바로 이 땅에서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상금에 보증이 되어진다는 귀한 사실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막 아래에서, 어떠한 어려움과 탄식의 상황에서도 탄식하면서도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나가시는 복된 우리 성도님들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II. 두 번째로 우리 하나님의 보호막 아래는 연약함 속에서도 찬하나님을 송하는 자리입니다.
-같이 한번 보겠다.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한 예레미di 선지자는 결국 그들이 대적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임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과정에서 선지자는 자신의 내면을 다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갚아주시기를 부탁하고, 다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 13절 말씀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아멘.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면서도 자기 영혼의 깊은 침체를 막지 못하는 연약한 질그릇 같은 선지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모습은 현실의 삶 속에서 믿음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시는 우리 성도님들도 동일하게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하나님만을 의지해 간구하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의 무게가 너무 커서 힘들어하는 예레미야처럼, 오늘 우리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의 무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통해서 순금같이 정결하게 만드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기를 원한다.
 
저희 교회에 순장님 한 분은 27번 이상의 방사선 치료를 원래 받으셨다. 그 방사선 치료를 많이 받으면서 결국에는 식도가 허물어져서 제대로 음식물을 삼키지도 못하고 힘든 그 상황 가운데서 마지막 순장막 모임에 나오셔서 그 순장님이 이런 고백을 했다. 이렇게 연약함이 있고 불편함이 있지만 “목사님, 순장님들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 그 속에서 다른 환우들에게 소망을 전하기를, 복음을 전하기를,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의 그 사랑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순장님의 그 모습 속에서 많은 도전들을 받았다. 아픈데 도무지 빠지지 않고 긁을수록 살 속 깊이 들어가서 더 깊은 아픔을 만들어낸 그 육체의 가시, 사도 바울이 간절하게 세 번이나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우리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인데요 같이 한번 보겠다.
 
*고린도후서 12:9,
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아멘.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내 은혜가 너희에게 족하다. 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언뜻 보면 이 바울의 기도는 거절당한 기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이 하나님의 응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바울이 그 연약함 속에, 육체의 가시 속에서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은혜에 반응하면서 그 본문의 말씀 속에 도리어 크게 기뻐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왜 저에게 주시지 않은 것이 이렇게 많습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깨닫기 시작했다. 라는 것이다. 질병 때문에, 연약함 때문에 주시지 않은 것을 묵상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은 것이 얼마나 많은 우리의 모습인가?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뒤돌아보면 받은 것이 너무나 많다. 라는 것이다. 우리 성도님들이 오랫동안 기도하고 계시지만 응답이 없는 기도의 제목들이 있으신가? 이제 그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우리 교회와 연약한 지체들과 믿음의 능력자들을 위해서 축복 기도로 나아간다면 기적 같은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는다. 때로는 이 세상이 우리를 알아봐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게 되실 때에 알아주심을 본당에서 우리 주님께서 베풀 만한 자비와 은혜를 허락해 주실 줄로 믿는다. 우리 다시 한 번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 다시 한 번 더 이 말씀을 읽도록 하겠다.
 
*고린도후서 12:9,
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아 저도 이렇게 단기선교를 다녀오면서 목감기가 생겨버렸다. 저에게는 참 너무 큰 과업을 앞두고 있는데, 단기 선교를 다녀온 그날 저녁부터 너무너무 심하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그런 상황이 되고 말았다. 오늘 마침 바울이 그 육체의 가시처럼 연약함에 대해서 고백한 것처럼, 참 매일 아침마다 참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이렇게 나와서 준비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오늘 이만큼이라도 또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줄로 믿는다. 아마 저를 아시는 분들은 참 제 목소리가 참 크다. 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참 알고 있는데, 오늘 이 시간, 이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오히려 이 연약함의 그 은혜들을 오히려 체험하게 하시고, 또 나눌 수 있는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줄로 믿는다. 우리 인생의 어떤 고통과 연약함 속에서도 우리 인생의 보호막이 되어 주시고, 연약함을 통해서 순금같이 정결하게 만드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III. 우리 하나님의 보호막 안에서 찬양과 기쁨이 최종적인 언어가 되는 자리입니다.
-같이 한번 읽겠다. “찬양과 기쁨이 최종적인 언어가 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최종적인 언어가 뭐라고요? 찬양과 기쁨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서,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는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계가 있는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은 분명히 한계가 있는 불완전한 기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무한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살일 때에 우리 안에 무한하며 끝없는 그 기쁨이 충만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삶이 쉽지 않아서 태산을 넘어가는 것 같은 힘든 일이 있다 할지라도, 오직 우리 주님 안에서 빛 가운데 걸어가심으로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의 기도를 통해서 신실한 자들의 기도는 궁극적으로 탄식에서 찬양으로,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탄식이나 두려움이 자동적으로 찬양이나 기쁨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가르침은 항상
찬양과 기쁨이 우리 성도님들의 최종적인 언어가 된다. 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왜 비탄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이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기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의 마지막 그 최종적인 은혜가 될 수 있는가?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10절까지 보면 많은 탄식이 있다. 그러나 오늘 예레미아 선지자는 11절에서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신뢰를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간청하면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반드시 도와주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13절에 보시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뻐한다. 오늘 12절, 13절 말씀 같이 한번 보겠다.
 
*예레미야 20:12-13절,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할렐루야 12절의 간절한 그 기도와 오늘 13절에 감사의 그 찬양 사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간섭하시고,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예레미야의 그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의 바탕을 두고 예리미야 선지자는 아직 도래하지는 않았지만 그 도래하지 않은 구원과 도움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미리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양을 올려드린 것이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의 어떠한 삶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간섭하시고, 개입하시는 분이시라는 이 예레미야의 믿음이 오늘 이 수요 예배, 수요 기도에 나오셔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집중하시고 하나님의 보호막 안에 나아가기 원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의 고백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그 인도하심의 손길이 얼마나 귀힌가? 가장 최선의 삶으로 우리 인간이 생각할 때에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최선의 삶으로 아름답게 인도해 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으신 아버지께서 앞으로 우리 사랑의 교회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 어떤 삶 속에서도, 어떤 삶에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고, 간섭하시고, 개입하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
 
백두산 천지에서 떨어지는 백두산의 폭포가 있다. 그런데 백두산 천지에서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두만강을 거쳐서 동해로 흘러가고요 왼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무슨 강을 거쳐 가겠는가? 압록강을 거쳐서 서해로 올라간다고 한다. 똑같이 백두산 천지에서 그 폭포에서 오른쪽으로 가느냐? 왼쪽으로 가느냐? 에 따라서 한 줄기의 물은 동해로 올라가고, 한 줄기의 물은 서해로, 이 동해와 서해가 얼마나 먼 거리니까 그런데 그 발원지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출발하는 지점이 같고 한 방향인 것 같지만, 나중에는 엄청난 간격이 생기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동일하게 우리의 출발이 불평과 원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찬양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어떤 삶 속에서도, 오늘 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간섭하시고, 개입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믿음의 방향 전화를 이루었던 예레미야의 그 선택이 오늘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의 선택이 되실 수 있기를 원한다.
 
예 갑자기 목소리가 많이 좋아졌다.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기쁨과 찬양을 선택하는, 믿음의 방향 전환을 이루시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 되실 수 있기를 원한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마지막, 우리 하나님 앞에서 최종 언어가 기쁨과 찬양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란다. 연약한 우리 인생의 보호막 되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기뻐하고 자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삶이되시길 원한다. 인생의 어떤 어려움 속에서라도 우리 인생의 보호막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성도님들의 어려움에 간섭하시고 개입해 주시는 분이심을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인생 속에서 영원히 함께 동행 해 주시고, 보호막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기쁨과 찬양의 그 최종 원으로서 사명을 뭉치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요약
우리 인생에 주님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보호막이 되어 주시고, 간섭하시고, 개입하셔서, 우리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귀한 시간으로 역사해 주실 것을 믿고, 기쁨과 찬양이 되어서, 우리들의 최종 언어가 되심으로 연약한 우리 인생의 보호막 되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기뻐하고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보호막 아래 예비하신 은혜를 사모하여 끝까지 변함없이 기도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켜 나아가야 한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고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그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불이므로 그 말씀을 들은 자는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하고 외치는 것이 자신의 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박해와 조롱을 받는 자신의 처지를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탄원한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고 했다. 이 말은 흠 없는 예레미야에게 조그마한 흠이라도 발견되면 고소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당시에 복음을 전하기가 힘들고 어려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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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7월 3일 (805)
1. 다음 중 현재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지 않은 곳은?
①서울 강남구 ②서울 서초구
③서울 용산구 ④서울 마포구
2. 반도체 수탁 생산을 뜻하는 용어로 세계 시장 점유율은 대만 TSMC가 1위, 한국 삼성전자가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것은?
①팹리스 ②파운드리
③머신러닝 ④유니콘
3. 특정 주주에게 보유 지분율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경영권 보호에 도움을 주는 이 제도는?
①차등의결권 ②황제주
③황금낙하산 ④스튜어드십코드
4.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뜻한다. 세계적인 경영 화두로 자리잡은 이 약어는?
①ETF ②EMP
③ESG ④ELS
5. 수출 감소 폭보다 수입 감소 폭이 더 커짐에 따라 경상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나타내는 상황은?
①무역장벽 ②쌍둥이 적자
③불황형 흑자 ④유동성 함정
6. 기업이 임직원에게 일정 시점에 일정 수량의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는?
①콜옵션 ②풋옵션
③통화옵션 ④스톡옵션
7.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등에 상장되지 않은 주식이다. 높은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 위험이 큰 이것은?
①대장주 ②배당주
③자사주 ④장외주식
8. A라는 나라는 일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사람은 원하는 때 모두 취업할 수 있다. A국가의 상태를 잘 표현한 말은?
①직접고용 ②간접고용
③완전고용 ④불완전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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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기대이론·게임이론으로 본 수능과 사교육 논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사교육 문제가 핫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당장 올해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불안합니다. 다른 학생들도 내년 이후 대학입시 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선 상황을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그 이후 교육부의 여러 조치에서 핵심은 ‘수능의 정상화’입니다. 공교육 교과과정에 없는 문제를 수능에 출제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이런 지적에 공감합니다. 맞는 말이니까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학교 교육과정에 없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는 당연하다”고 찬성했습니다.
다만, 수능을 5개월 앞둔 시점이다 보니 단계적인 수정을 통해 현장 혼란을 최소화했어야 한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또 이번 조치로 사교육 시장이 되레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살펴봐야 합니다.
수능과 사교육은 독자 여러분이 직접 당사자인 문제입니다. 당장 마주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슈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기회를 가져봅시다. 성적 향상과 명문대 진학의 ‘기대’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는 ‘불안’으로 사교육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하는 기대이론과 게임이론도 이해해봅시다.
킬러문항 없어도 '변별력' 갖춘 수능…일관성 있는 입시 제도를 기대합니다
대학입학 전형은 각 대학이 자기 대학에서 가르칠 학생을 선발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학생 선발권은 원칙적으로 대학에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학들은 학생 선발권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대학의 서열화가 만연하고 일류 대학 입학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 정부가 대입 전형에 관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가가 주관하는 입학시험입니다.
30년 운영된 수능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54학년도 ‘대학 입학 국가연합고사’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후 ‘대학 입학자격 국가고사’(1962~1968학년도) ‘대학 입학 예비고사’(1969~1981학년도) ‘대학 입학 학력고사’(1982~1993학년도) 등의 국가고사가 치러졌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학년도부터 시행됐고요.
30년간 운영된 수능은 출제 및 채점 오류 논란과 물수능(지나치게 쉬운 수능)·불수능(지나치게 어려운 수능) 같은 난이도 널뛰기 문제로 자주 비판받아왔습니다. 교과 이기주의와 대학의 편의주의 등으로 왜곡됐고, 역대 정부가 수능을 교육정책의 손쉬운 도구로 생각해 여러 가지 간섭을 하는 바람에 크게 변질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비판과 지적에도 수십 년간 전국 단위 시험을 이렇게라도 유지해온 것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도 나옵니다.
대학교수도 풀기 어려운 문제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은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에 대해 “수십만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며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공정한 수능’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킬러 문항은 왜 수능에 포함돼왔을까요. 평이한 문항만으론 성적이 높은 학생들의 실력을 가름하기 어렵다 보니, 킬러 문항을 포함시켜 그 문항의 정답 여부에 따라 등수를 정하려 한 것입니다. 사실 시험을 시행하는 입장에서는 수험생을 대상으로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킬러 문항을 출제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대학교수도 풀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더라도 최대한 어렵게 꼬아서 만들면 되니까요.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킬러 문항은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입니다. 윤 대통령의 지적 후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킬러 문항은 확실히 제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수능 대비반부터 만드는 현실
킬러 문항도 문제지만 수능엔 또 다른,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수능이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의 인재가 갖춰야 할 능력을 측정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수능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지식’을 ‘짧은 시간 내’에 ‘실수없이’ 발휘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를 필요로 하는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는 능력을 측정하려면 먼저 교육 과정에 그런 내용을 반영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개혁도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 현실은 이런 해법을 마련하기에 너무 척박해 보입니다. 당장 윤 대통령 발언과 정부 조치를 ‘물수능 시행’으로 받아들인 사교육업계는 “실수하지 않도록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고 물수능 대비반부터 서둘러 개설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수능’ 지침이 미래를 준비하는 수험 제도를 토론하는 계기가 되는 게 아니라 어느새 ‘물수능’ 논란으로, 이게 다시 ‘사교육 강화’ 쪽으로 왜곡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 가지 더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수능 및 대입 전형과 관련해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인데요. 바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꾸준히 시행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번 정부가 ‘공정한 수능’을 넘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과정과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평가 방법을 만들어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대합시다.
NIE 포인트
1. 수능에 대한 여러 비판과 지적을 정리해보자.
2. 킬러 문항이 왜 불공정한지 설명해보자.
3.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내용에 대해 토론해보자.
학력주의 가치관을 넘어설 수 있어야 사교육의 폐해를 해소할 수 있어요
사교육은 영어로 ‘private tutor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1992년 학계에선 사교육을 가리키는 새로운 표현으로 ‘shadow education’이 등장했습니다. 처음 이 표현을 사용한 학자들은 ‘공교육과 유사한 학교 밖 학습활동’이란 비교적 중립적 의미로 썼습니다. 이후 공교육의 형태를 모방한다거나 공교육에 비해 특징이 불분명하다는 등 사교육의 음성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하는 연구들이 등장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교육은 좀 더 높은 성적을 올리거나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려고 학교 밖에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노력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에 대한 인식은 중립적이거나 음성적이라기보다 부정적에 가까운 게 사실입니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힘들어하는 분이 많은 상황이라 ‘경제력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사교육은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사교육비 26조원
사교육, 특히 사교육비 문제는 수십 년 넘게 사회적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모두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 대책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지난해에는 26조원에 달했습니다. 이처럼 사교육 수요가 계속해서 생기는 이유는 뭘까요. 학력주의(credentialism)가 대표적 요인으로 꼽힙니다. 학력이 능력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류 대학에 입학하는 것에 과도한 중요성과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탓에 자연스럽게 사교육 수요가 커집니다. 학력주의를 고정관념이나 편견이라고 쉽게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름 탄탄한 근거가 있거든요. 명문 대학이나 인기 학과에 입학하면 졸업 후 고소득 유망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님이 자식의 사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대이론과 게임이론
사회적으로 학력주의 가치관이 강하더라도 모든 개인이 사교육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사교육 선택 결정은 ‘기대이론’과 ‘게임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기대이론은 개인의 의사결정에서의 동기 유발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기대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여러 가지 대안 중 자신의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가장 클 것 같은 대안을 선택합니다. 사교육을 선택하는 대안은 수능 성적을 높여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다는 ‘기대’를 크게 만들고, 그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의 동기를 유발하는 힘이 학교교육에만 충실하게 참여하는 등의 다른 대안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이론은 합리적 의사결정자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결과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경쟁적 게임 상황에서는 상호의존적 선택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3분의 1 이상이 사교육에 대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심리적 불안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심리적 불안은 상호의존적 선택을 부채질합니다. 결국 게임이론에 따르면 ‘다른 학부모의 사교육 선택행위에 대한 본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교육 참여’인 겁니다. 사교육 업체들은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최대한 활용합니다.
“사교육은 죽지 않을 것”
2020년 발표된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서 공교육 정상화 정책 논증 분석’ 연구 논문(부산대, 김정근)에 따르면 과거 정부들이 공교육이 내실화되면 사교육비가 경감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추진한 수많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입시 제도 개선과 학원 규제를 통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정책 목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사교육이 미래에도 죽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번 정부도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내놨습니다. 이번엔 다를까요. 정부 정책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 사회가 학력주의 가치관과 학생 및 학부모의 ‘불안 심리’에 대해 좀 더 성숙한 자세로 지혜를 모아가야 합니다.
NIE포인트
1. 사교육이 왜 문제인지 생각해보자.
2. 학력주의 가치관을 설명해보자.
3. 기대이론과 게임이론의 개념을 정리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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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7월 10일 (806)
1.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단기간에 과도하게 급등한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을 뜻하는 말은?
①언더 슈팅 ②오버 슈팅
③블랙 마켓 ④레몬 마켓
2. 국제통화기금(IMF)이 만든 ‘특별인출권’을 가리킨다. 회원국이 보유하면 외환보유액으로 인정되는 이것은?
①IFRS ②BIS ③SDR ④MSCI
3. 국내총생산(GDP)에서 국세와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국민의 세금 부담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인 이것은?
①재정건전성 ②재정자립도
③조세부담률 ④국민부담률
4. 주식 액면분할의 효과로 가장 거리가 먼 것은?
①주식 수 증가
②액면가 하락
③거래 촉진
④자본금 감소
5. 국민연금의 ‘이것’은 장기적으로 40%까지 내려갈 전망이다. 퇴직 전 평균 임금 대비 연금의 비율인 이것은?
①만기환급률 ②소득대체율
③한계대체율 ④한계효용
6. 주가가 일정 범위 안에서 등락을 거듭할 때 ‘이것’에 갇혀 있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것에 적절한 말은?
①음봉 ②가격제한폭
③국장 ④박스권
7. 기업이 보유한 자기 회사의 주식을 말한다. 주주 환원 정책 차원에서 회사가 매입 또는 소각하기도 하는 이것은?
①우선주 ②실권주③자사주 ④배당주
8. 도시의 무질서한 확장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설정, 개발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지역은?
①그린벨트 ②그린워싱
③그린본드 ④그린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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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돈풀기 같은 포퓰리즘이 국가경쟁력 떨어뜨려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최근 발표한 ‘2023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64개국 중 28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27위)보다 한 계단 떨어진 순위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 국가재정(나라 살림)을 방만하게 운영한 결과 재정적자가 악화하고 국가채무가 늘면서 ‘재정 경쟁력’이 지난해 32위에서 40위로 여덟 계단 추락한 것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돈풀기 포퓰리즘이 국가경쟁력 순위를 떨어뜨렸다는 평가입니다.
IMD는 매년 4대 분야(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를 평가해 국가별 순위를 매깁니다. 우리나라는 ‘경제 성과’가 22위에서 14위로 껑충 뛰었고 ‘기업 효율성’과 ‘인프라’는 모두 작년과 같은 순위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돈 풀기’ 정책 후유증으로 ‘정부 효율성’ 평가에서만 순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번 결과는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 커졌기 때문입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8년 35.9%에서 지난해 49.6%로 뛰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재정 위기 불감증으로 내년에도 이런 추세를 막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IMD와 세계경제포럼(WEF) 등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에 대해 알아봅시다.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려면 경쟁 제한적 정책을 폐지하고 친시장적 정책을 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해봅시다.
국가경쟁력 실점 요인 보완해야
더 나은 나라 만들 수 있어요.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러 나라를 비교할 수 있는 다양한 지수(index)가 등장했습니다. 다국적 기업이 해외투자 의사결정을 할 때나, 국제기구가 개별 국가에 대한 원조전략을 수립할 때처럼 국가 간 비교를 위한 지수의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국가경쟁력 지수를 비롯해 불투명성(opacity)지수, 부패지수, 세계화지수, 민주화지수, 전자정부화지수, 행복지수 등이 그런 예입니다.
IMD와 WEF의 평가
국가경쟁력 지수를 발표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입니다. IMD는 1989년부터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발표해왔습니다. 4대 분야(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를 기준으로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데, 각 분야는 5개 세부 부문으로 이뤄집니다. 그러니까 총 20개 부문을 평가하는 것이죠.
분야별 세부 부문은 경제 성과의 경우 국내경제, 국제무역, 국제투자, 고용, 물가 등이고, 정부 효율성은 재정, 조세정책, 제도여건, 기업여건, 사회여건 등입니다. 기업 효율성은 생산성, 노동시장, 금융시장, 경영관행, 태도·가치 등이며, 인프라는 기본인프라, 기술인프라, 과학인프라, 보건환경, 교육 등입니다.
IMD는 ‘2023년 국가경쟁력’ 평가를 위해 통계자료 163개와 설문조사 문항 94개를 활용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순위가 상승한 세부 부문은 국내경제, 국제투자, 고용, 물가, 노동시장, 경영관행, 태도·가치, 과학인프라, 보건환경, 교육 등입니다. 이 중 고용의 경우 4위로 평가받았는데 고용률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입니다. 다만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와 제조업 취업자 수가 계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60세 이상 취업자 수가 늘어난 결과라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인구 고령화가 향후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에 큰 부담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WEF는 1993년부터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 교수가 1990년 제시한 국가경쟁력 분석 이론인 ‘다이아몬드 모델’이 WEF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터 교수는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생산요소 조건, 시장수요 조건, 연관산업, 경영여건, 정부 등을 제시했습니다. WEF는 2020년부터 국가경쟁력 평가를 중단했습니다.
IMD와 WEF의 국가경쟁력 평가는 그동안 국가경쟁력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측정(평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각종 통계자료와 함께 설문조사 결과를 사용하는데 설문 대상자의 타당성과 대표성이 확보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측정(평가)에 쓰이는 자료가 바뀌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국가경쟁력 지수를 연도별로 비교하려는데 각 연도에 쓰인 자료가 다르다면 지수가 변화한 게 해당 국가의 경쟁력이 바뀌었기 때문인지, 자료가 달라졌기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국정운영 평가 수단
국가경쟁력 평가에 이런 약점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론 매우 유용합니다. 국가경쟁력 평가는 ‘개별 국가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총체적 능력’을 평가하려고 경제적 지표는 물론이고 정부 정책과 사회적 인프라 관련 지표를 포함해 수백 개 자료를 활용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료들에 대한 국가 간 비교 결과를 제공합니다. 각국은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분야별로 상대적 우위와 열위를 확인하고 국가전략 수립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8년 국가경쟁력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국가경쟁력 지수를 정책결정의 중요한 지표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객관적 수단이란 점에서도 유용합니다. IMD의 이번 평가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이라는 실정(失政)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국가경쟁력 평가라는 객관적 결과가 지적하는 우리의 문제와 약점을 잘 살피고 보완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IMD의 국가경쟁력 평가 방법을 정리해보자.
2. 국가경쟁력 평가의 약점을 설명해보자.
3. 국가경쟁력 평가의 유용성에 대해 토론해보자.
노동개혁 같은 친시장적 정책이, 국가경쟁력 수준을 끌어올리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부 규제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됐습니다. 이에 근거한 ‘규제개혁이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 역시 오랫동안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볼까요.
규제를 통한 정부의 역할
국가경쟁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목표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장기적인 번영입니다. 경제 성장과 번영은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견인합니다. 달리 말하면 기업의 생산과 경영이 얼마나 효율적인지에 따라 국가경쟁력의 상당 부분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업의 생산 및 경영효율성이 국가경쟁력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아닙니다.
기업의 생산과 경영활동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자본과 노동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개별 기업이 결정하지만, 자본과 노동이 안정적으로 기업에 공급될 수 있도록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의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입니다. 정부는 이런 역할을 규제정책을 통해 수행합니다.
정부가 규제를 제대로 만들어 집행하면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은 예측 가능한 경제환경 속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포획이론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규제는 국가경쟁력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규제와 국가경쟁력의 관계에 대해선 오랫동안 부정적 인식이 우세했습니다. 그 이유는 규제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한 포획이론(capture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포획이론은 198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티글러가 제시했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규제기관이 규제를 당하는 소수 집단에 의해 포획당하고, 그 결과 규제가 소수 피규제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스티글러는 “규제는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정치적으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소수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인이나 규제기관이 규제를 만들게 하면 그 규제로 사회적 후생손실(social deadweight loss)이 발생하고, 후생손실은 자원낭비와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하므로 결국 국가경쟁력과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규제 약해야 국가경쟁력 높아져
포획이론의 설명처럼 현실에서도 규제가 국가경쟁력에 영향을 미칠까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정부 규제가 해당 국가들의 국가경쟁력 지수(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연구 보고서(고려대 행정학과 최진욱 교수)가 있습니다. OECD 30개 회원국의 2004년 현재 IMD 국가경쟁력 지수가 전년도 정부 규제 수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종합적인 규제 정도가 약화될 경우 국가경쟁력 지수는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부적인 규제정책 중에서는 기업들의 신규 사업 진출과 관련된 규제가 다른 규제정책에 비해 국가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보고서는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생산에 투입되는 자본의 규모를 키우고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상당한 재원을 확보해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이에 비해 규제개혁은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면 되므로 이런 부담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올해 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노동규제가 사업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가 지난해 44위에서 37위로 상승했습니다. 순위 상승이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조사 대상 64개국 중 37위라는 점은 여전히 노동규제 개혁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2004년 연구보고서뿐 아니라 대다수 경제학자가 공감하듯, 규제개혁을 통해 경쟁을 제한하는 정책을 폐지하고 친시장적 정책을 사용해야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아울러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과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 없이는 국가경쟁력 제고를 논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NIE 포인트
1. 국가경쟁력에서 기업의 역할을 생각해보자.
2. 포획이론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3. 정부규제와 국가경쟁력의 관계를 설명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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