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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93 회 경제상식퀴즈-문제 풀기(2021-02-01 ~ 2021-02-07)

1. 기업이 주가 관리나 투자 유치 등을 위해 투자자를 대상으로 홍보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말은?

  1. ① IR
  2. ② XR
  3. ③ VR
  4. ④ AR

2. 금, 달러, 미국 국채의 공통점은?

  1. ① 안전자산
  2. ② 기축통화
  3. ③ 사치재
  4. ④ 캐시카우

3. 기업에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이 되는 사업을 가리키는 말은?

  1. ① 안전자산
  2. ② 기축통화
  3. ③ 사치재
  4. ④ 캐시카우

4.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하자 저신용자와 서민들이 불법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었다면 이 상황에 가장 적합한 용어는?

  1. ① 외부효과
  2. ② 풍선효과
  3. ③ 낙수효과
  4. ④ 기저효과

5. 자동차, 철강, 석유, 조선, 화학 등과 같이 원활한 경제활동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산업을 통칭하는 말은?

  1. ① 유치산업
  2. ② 기간산업
  3. ③ 전방산업
  4. ④ 후방산업

6. 현재 국내 증시의 일일 가격 제한폭은 얼마로 설정돼 있을까?

  1. ① 10%
  2. ② 15%
  3. ③ 20%
  4. ④ 30%

7. 자산을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경제학 용어는?

  1. ① 상방경직성
  2. ② 하방경직성
  3. ③ 유동성
  4. ④ 유연성

8. 회사가 영업활동을 중단하고 보유자산을 모두 처분한다고 가정할 때를 가정해 산출하는 값은?

  1. ① 청산가치
  2. ② 존속가치
  3. ③ 내재가치
  4. ④ 순자산가치

 -한국경제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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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2월 7일)
제목: ''온전함으로 초대합니다''(You are cordinally invited to the teleios life).
말씀: 에배소서 4:11~16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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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배소서 4:11~16)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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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귀하게 쓰임받기를 바란다~ 돌아오면 회복되는데,
뭐가 회복되는가? 온전함이 회복함이다.
온전함 시리즈는 함께 참여해 주기 바란다. 마치고 나면 한단계 올라가길 원한다 한국교회는 오 만개 정도이다.
기독교가 메이저 종교이다.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부흥했다. 공항에 도착할 즈음 보면 십자가의 빛이 아름답다~ 한국교회가 산업화와 민주화와 기적을 이루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걸고 모든 교회가 좋은 것이다. 우리 사명은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는 것이다. 설명절에 역에서 내려가는 설렘처럼~~

회복의 구체적인 의미.온전함에서.
온전함 시리즈
before vs. after 비교해 보길 바란다.

 

4:1절에 보면,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4:2에 보면,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ㅡ처음부터 부르심에 순종하여 9가지 열매를

I. 예수 처음 믿을 때, 온전한 제자로.

온전한 자 - 우리는 처음 믿음때부터 온전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가 처음부터 온전한 교회가 되길 기도한다. 주님의 깊은 심정을 깨달아야 한다. 자식이 나약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없다. 주님도 자녀를 잘 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여기신다.

에베소서 4:11~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절에 -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위해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텔레이오스ㅡ온전함 신학

온전한 교회는
12절 성도가 온전해져야 그리스도의 몸된 것이다.

II. 온전함의 축(軸)과 기준

He gave

Perfect Sacrifice

우리가 세상적인 기준이 되어 있으면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서로를 경쟁과 비교는 사람의 속성이다.
부족한 사람은 나다.

고린도후서 10:12절-
12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인간이 만든 표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의 주님의 인성이 목표이다. 전인적 인격형성이다.


III.
온전함의 신비를 위해 쓰임 받는 교회.
-필이 꽂혀야 한다. 공동체의 우선 순위는 ㅡ 온전함이다. 정의 구제 평화 다 중요하지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이 영적인 성숙인 온전함이다. 온전한 인격


교회는 온전함의 신비를 위하여 쓰임받아야 한다-- 성도의 온전함과 평화와 정의도 온전함을 위해
온전한 자가 된다는 것...범사에 주님처럼,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좋은 교회
- 영적인 상태가 새롭게 새롭게
-영적 성숙, 영적 온전함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되어


♣요약

온 지 얼마 안되는 성도들도 전심으로 온전함을 사모하면, 온전한 제자가 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완벽한 구원의 중심 축(軸)이 되어 주시니 교회와 모든 훈련을 통해 손으로 만져지는 온전한 순종으로 시대를 관통하길 기도하며, 군대에 쿠테타가 일어나고 있는 미안마를 긍휼히 주님께서 여겨주셔서 하나님의 공의가 임하시고, 이 혼란 속에서 선교사님과 교민들을 안전하게 지키시기를 소원한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교회에는 여러 직책이 있다. 직책맡은 자들은, 교회가 불경건하고 거짓된 교리에 빠지지 않고 믿음의 순수성을 지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도달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주신 선물이 무엇인가를 말해간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11절).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화평과 화목의 사역이었다. 사역의 선물은 그리스도의 승천에서 말미암은 결심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은 두 종류의 직분이라고 하겠다. 먼저 특수한 직분들로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들이 있다. 여기서 사도가 가장 큰 직분이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적과 교훈을 목격해 왔던 자들로 그들을 복음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설명해주는 일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복음 전도자란 사도들이 임명한 사람들로 전도 여행에 있어서 사도들의 사역을 도와주었다. 다음은 일반 사역자들로 목사와 교사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두 명칭이 한 직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직분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즉 목사들은 종종 감독이나 장로로 불리고 있는 자들이며 교사들은 권면함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여긴다. 교회는 이렇게 다양한 선물들을 갖고 있으니 얼마나 부유한 곳인가! 그리스도는 교회에 대해서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신가!
3)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크신 목적과 계획 : 그리스도의 선물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의도되어진 것이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12절).

즉 죄로 말미암아 혼돈되고 잘못된 자들을 온전한 영의 상태로 인도해 주고 그들로 그 가운데서 더욱 진보케하여 각 사람으로 전체의 유익에 기여케 하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절).

즉 그들의 은혜를 더해가며 새로운 신자를 받아들임으로 그리스도의 상징적인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모든 것은 우리로 하늘 나라를 준비케 하기 위해서 예정된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이 말은 단지 사색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사랑으로 충분히 전유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이는 우리에게 은혜와 은사가 충만하게 됨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어린아이와 같은 연약함을 벗어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에서 나타나는 모든 은혜로 완전히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한 세계에 이르기까지는 결코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성장해 가게 된다. 이제 하나님의 거룩한 성직 임명에 있어서 그의 계획이 무엇이며 그 직분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결과를 무엇인가를 보도록 하자.

①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14절).
이는 곧 더 이상 지식에 있어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고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우리의 판단력이 변덕스럽지 아니하고 쉽게 모든 시험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의 시키는 대로 좌우되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어린 아니는 쉽게 강요되어진다. 우리는 중심을 잃은 배처럼 이리 저리로 요동하며 그리고 공중에 떠도는 구름처럼 여기저기 떠다니는, 아무 진실성도 견고성도 없는 바람에 비유되는 그러한 교훈들을 유의해야 하겠다. 악한 자들은 사람의 궤술과 교활한 간계로 약한 자를 속여 넘어뜨리기 위해서 매복하고 있는 자처럼 속이고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 자들에게서 우리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성령과 빛과 은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②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15절).
사랑은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울러서 진리에 유의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다툼으로서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와 화평 이 둘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③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5절). '그에게까지'란 곧 그리스도 안에 더욱 깊이 뿌리를 박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범사에'란 즉 '지식과 사랑과 믿음에'하고 하겠다. 우리는 어린 아이되는 것과는 반대로 성숙하게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욱 알게 될수록 그리고 그를 더욱 믿게 되고,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될수록 우리는 모든 은혜에 더욱 넘치게 될 것이다.

④온 몸이 각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 …자라게 하며(16절). 바울은 여기서 자연적인 몸과 그리스도의 상징적인 몸 사이를 비교하고 있다. 몸의 각 지체들이 서로 연합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고 일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은혜 안에서 영적으로 더욱 진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은 전체 몸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은사를 받는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16절).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영적 성장에 큰 보탬이 된다. 몸이 스스로 세우는 것은 사랑안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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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 주후 2021년 2월 6일)
제목: "지팡이의 반전과 역습"
말씀: (출애굽기 7:8-13절)
설교자:김성웅 부목사님
사회:김도훈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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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7:8-13절)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지팡이와 뱀으로 변하는 이적을 베풀게 하신다. 이 이적은 앞으로 벌어질 출애굽 사건의 성격과 내용을압죽해서 보여준다. 본문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무엇을 하시는지 발견함으로써 은혜를 나누기를 바란다.

첫째.  뱀을 만드신 이유.

-왜 하나님께서 애굽의 마술사들도 할 수 있는 이적을 행하시는가? 여기 9절에 나오는 뱀은 히브리 말로 '타님'이다. 창세기 1장 21절, 이사야 27장 1절에서도 같은 말이 쓰여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다. 이집트를 비롯해서 고대 근동 신화들은 하나같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서 혼란과 어둠과 죽음을 일으키는 큰 괴물이 있다고 봤다. 이 바다의 악한 신과 창조를 주도하는 창조의 신이 맞서서 싸우는 각축전이 세상이고 바로 인생이라고 보았다.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은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행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적은 어떤 메시지를 갖고 있는가?
신이라면서 벌벌떠는 그 큰 바다 생물, 그게 뱀이든 악어든, 고래든 용이든, 그것들은 신이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지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내가 참신이다. 내가 창조주 하나님이다. 오직 나만이 왕이다.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적이다. 이렇게 볼 때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로 살면서 임금도 못받아서 참 불쌍하니까 내가 해방해 준다는 무슨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다.

출애굽은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신 나를 너희가 받아서 살겠느냐? 무거운 짐진 자들 너희를 내가 건져 낼텐데 너희는 나만 붙잡고 나를 따르겠느냐고 이것을 결정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신앙적 사건이다. 눈을 우리에게로 돌려보자. 우리도 어떠한가?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유일신론자인가? 맞다. 하지만 우리는 점검해 봐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고 하면서도 거의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은 우리의 마음 속에 어떤 것들이 있지 않는가?? 우리가 우상 따위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대놓고 절은 하지는 않지만, 마치 라헬이 드라빔을 깔고 앉아 있었던 것처럼, 소중히 여기며 감추고 애지중지 하면서 깔고 있는 것들이 혹시 있지 않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나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를 당한다고 하면 용수철처럼 팅겨나와서 사람을 가맂 않고 대든다. 더 괴로운 것은 기도하자고 하면 그게 그렇게 어려운데 이렇게 제 권리가 침해되면 자동모드로 이렇게 되는 것이 참 괴롭다. 세상 사람은 어떠한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양 하면서도, 세상 즐거움을 다 버렸다고 하면서 기도하게 된다. 주여 세상 즐거움도 자랑도 어느정도를 주시면 주님이 가장 귀한 분이라며 고백하겠다고 이런 마음이 들때가 많이 있다. 다시 한 번 결단해야 한다. 나쁜 것이 아니지만 비록 좋은 것이라고 해도 내 마음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은근슬쩍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조차 이 시간에 직시하고, 치워버리기를 기도하자.  하나님이 정말 왕이시고, 창조주라고 한다면, 하나님 답게 바르게 섬기는 충성스러운 자가 되어야 한다는 기도를 해야 한다..

둘째.  뱀을 만드신 방법.

-모세는 지팡이만 쥐어주면, 물을 자꾸 내려치는 사람이었는데, 지팡이로 땅을 내려치라든지 아니면 지팡이를 창처럼 바로에게 쏘아라는 것이 아니고 왜 던지라고 하셨는가? 이 던지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1장 22절에서 바로의 명령을 받고 애굽사람들이 히브리 사내 아이들을 나일강에 집어 던졌다 할때, 던진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 아론의 지파이는 히브리 사내 아기들이 나일강에 던져지는 것을 상기시키는 상태로 던져지고 있다.  무엇을 전하고 있는 행위인가? '애굽사람들아, 너희가 히브리 사내 아이들을 수장시켰지? 내가 그걸 다 보았고, 내가 그것을 보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흘린 눈물을 다 보셨고, 그들이 겪은 아픔을 다 알고 이제 갚아 주시기 위해서 일어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유일한 신이시고 창조주이시다. 위대하신 분이시다. 동시에 참 친절하고 성실하고 세밀하게 우리를 이끌어 나가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가장 절박하게 느껴지는 것 두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하나는 나는 무엇을 먹고 살까? 앞으로 어떻게 살까 하는 문제이다.
두번째는 나는 어떻게 해야 인정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이다.
사람들이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가 가장 절박한 문제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먹이시는가? 하나님은 광야의 만나와 같은 신비한 일용할 양식을 통해서 우리를 분명히 기필코 먹여 살리신다. 우리가 호의호식 못할때가 있다. 하지만 시편 37편 25절에 나온 것처럼 의인의 자식이 문전 걸식(門前 乞食)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라고 이 시인의 고백이 응하는 방법으로 바로 그런 모습으로 먹여 살려 주시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신 것을 보면,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을 확신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살 수 있도록 하실까? 오른 손을 까닥만 해도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느데, 만약에 오른 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은밀하게 인정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안알아주면 어쩌나 피곤하고 짜증나는 인정추구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남에게 나를 보여야 하니 내 내면보다 내 겉을 꾸며야 하고, 그리고 호세를 떨어야 하는 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안알아주면, 무섭게 돌변해서 공격하는 이런 삶에서 우리는 벗어난 사람들이다. 하도 작아서 숨어 있는 듯 있어도 이미 우리를 아신다. 우리가 흘렸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다 헤라시는 분이시다. 세상이 우리를 나일강에 던지는 듯한 두렵고 아픈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함께 우리 조금 더 견디기를 결심하자.

셋째.  뱀을 만드신 결과.
-지팡이가 뱀이 되었는데 바로가 놀라는 기색이 하나도 없다. 왜 놀라지 않는가? 그것은 자기들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쪽에 가


♣요약

사랑의교회 기드온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부활의 산증이 되기를 간구하며, 방향을 잃은 세대 앞에 의의 나침반으로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우리 교회 믿음의 4대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께 뿌리내린 일상 예배를 통해 9가지 조화된 열매를 맺는 신실한 가지 되어야 하며, 주인이 부르심에 달려나오는 신실한 종들이 되며, 가정과 교회, 민족과 열방을 위해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의 마음이 너무 강퍅하여 웬만한 표적과 이적으로는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모세를 준비시키기 위함이다. 악할 대로 악한 세상 사람들의 마음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들의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도록 힘써 전도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때에 모세는 80살, 아론은 83살이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모세와 아론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이들이 구속 사역의 담당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는 인간의 시간표와 같지 않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술객들의 지팡이도 모세의 지팡이처럼 뱀으로 변했지만 모세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렸다. 이처럼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아무나 쉽게 흉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탄의 역사가 아무리 능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는 반드시 멸망당하고 만다. 지팡이 뱀과 물이 피로 변한 이적의 차이 -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이적은 징벌의 의미가 담기지 않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이적일 뿐이다.

그러나 물이 피로 변한 재앙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자에 대한 징벌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적을 믿지 못하고 불신앙에 머무를 때 더 큰 재앙을 자초하게 됨을 알 수 있다. 모세가 처음으로 바로를 대했을 때는 단지 하나님의 지시만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가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증명하는 기적을 행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1) 바로는 '이적을 보이라'고 말할 것이다(9절).
그는 확신을 얻고자 열망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아무 것도 행할 수 없으리라는 기대로 이 말을 할 것이다.
(2) 그러므로 4:3의 지시대로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아론이 그의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즉시 뱀이 되었다. 이것은 바로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다.
(3) 이 이적은 너무도 분명해서 부인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애굽 술객들의 속임수 이적에 의해 그 권위를 상실하고 신뢰성을 잃게 되었다.
모세는 본래 애굽의 학문으로 교육받았었다. 그래서 그는 오랜 은거 생활 동안에 마술을 익혔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그리하여 술객들이 불려나와 그와 대결하게 되었다. 애굽 술객들의 지팡이들도 뱀들이 되었다. 이 일에 대해 어떤 이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 일을 그의 능력으로 행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악한 천사들의 능력에 의해 행하여졌다고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시기 위하여 미혹하는 영이 기적을 베풀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대결 팡이가 변하여 된 뱀이 다른 뱀들을 다 삼켜 버린 것이다. 그것은 바로가 어느 편이 참인가를 알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바로는 이것이 변화되지 않았다. 즉 그는 애굽의 술객들도 뱀을 만든 이상 그들과 모세 사이의 대결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성웅 부목사님 설교 토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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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2월 3일)
제목: ''주 안에서 기뻐하라''
말씀: 빌립보서 3:1절
설교자: 하상범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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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서신서이다. 4장 밖에 안되는 서신서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바로 기쁨이다. 기쁨이란 기뻐하다는 단어가 16번 나온다. 대부분 서신서들은 그 교회의 문제들을 다룬다. 빌립보서는 그런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그리고 신약에 나오는 대부분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기보다 기쁨의 충만에 대해서 다룬다. 기쁨이라는 단어는 발신자 바울과 수신자 빌립보 교인들의 객관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에는 매우 사용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먼저 발신자 바울의 상황이다. 사도행전 28장에 잘 묘사되어 있다. 바울은 로마에 죄수의 신분으로 연금상태가 되어있다.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는데 사형으로 종결될 예정이 것이다. 문자 그대로 삼가 죽음의 상황에서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다. 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고린도후서 8장 1-2절을 보면, 형제들아~


환란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 가운데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를 보면, 빌립보 교회 안에 내분이 일어남을 볼 수 있다. 빌립보 교인들의 상황은 환난과 가난과 내분이라는 삼중고에 처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고난이 닥치게 되면 우리는 3가지를 알게 된다. 

1.그 고난이 우리의 복음을 얼마나 빼앗아 가는 것을 알게 된다.
2. 고난 중에 주님 한 분 만으로 충분한가라는 도전을 받게 된다. 
3. 시편 44:25절에 시인의 상황을 알지 못할지라도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처하게 되면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 역시 절망감과 애통함과 울분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마음은 혼란스럼움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고난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그것들이 우리가 취해야하는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함몰 공동영상이라고 있다. 내면세계 질서와 영적 성장을 작성한 고든 맥도널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외부적 상황에 의해서 우리의 내면이 갑작스럽게 함몰되어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땅이 함몰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푹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푹 꺼진 그 상황가운데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외부적 상황 때문에 마음이 꺼졌다면,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면 고난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그 마음을 빌립보서 2:5절에 
-그 마음 가운데 고난 앞에 서 있는 가운데에 사랑하는 너희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로고 말한다. 빌립보서 2:18절 --이와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 마음을 품으면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시기 때문에 너희들도 나와같이 고난 앞에 서 있지만 기쁨 가운데 거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고난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면, 이미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가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충만케 하실 것이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마음을 품는자가 기쁨 가운데 거하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끝으로 적용하자. 

사도 바울은 실천적으로 그들에게 적용해야 할 것을 말하기 전에 그이 형제들을 부른다.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지금은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시켜서 서로에 대해서 점점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다. 무언가를 할 의지 마져도 꺾어 놓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우울과 코로나 불루는 우리의 희망의 불씨를 점점 꺼뜨려 가는 것만 같고 우리의 마음을 점점 움추려들게 만드는 것 같다. 요즘과 같은 때에 더 의미가 있는 단어가 바로 나의 형제들인 것 같다. 왜냐하면, 빌립보서 1:7-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형제들인 성도들에게 그 나의 형제들이라고 부를 때에 속에 담겨있는 사랑의 고백이 그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너희들을 향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왜 당연한가하면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들을 사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기 때문에 빌립보 너희들을 사랑하고 너희들을 기뻐하고, 너희들을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방식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가?

스바냐 3:17절-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히 부르시며 기뻐하시리라.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먼저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이,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기뻐 나를 불러 주셨던 먼저 불러 주셨던, 가만히 있어도 춤을 추어 주셨던 그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내 안네 있기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사랑의 순서가 다르다. 세상은 조건이 채워지거나 자걱을 주거나 나에게 이익이거나 나에게 만족이 있거나, 내게 유익이 있어야지만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것이 없어도 사랑할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사랑을 했는데 나에게 이익이 없어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주었는데 그 사랑이 나에게 돌아오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힘이고 사랑의 역사이다. 지금 목양 교역자 목사님들과 전도사님이 문고리 심방을 한다. 한 번도 얼굴을 못뵌 성도들에게 전화를 하고 교회가 준비한 선물을 가지고 간다. 담임 목사님께서 목자의 심정으로 목양의 마음을 가지고 카드를 가지고 방문을 한다. 어떤 성도님은 문고리에다가 방문을 하기 전에 간식을 문고리에 걸어두기도 하고 어떤 분은 도착시간에 맞추어서 미리 나와서 얼굴을 못뵈어도 미리 인사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또한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고, 문고리에 걸어두고 오면 문자가 오거나 고맙다고 전하고 있다. 그 기쁨을 경험하고 있다. 먼저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그 분들을 통해 넘치는 기쁨이 다시 돌아오는 그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형제들아, 이것은 코로나 고난 가운데서도 꺼져서는 안되는 목양일념의 마음인 것이다. 



이것이 고난 가운데 느끼는 넘치는 기쁨이다. 바울은 이제 실천해야 할 것들을 말한다. 실천해야 할 것은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독교인들이 기뻐해야 하는 기쁨의 근거와 영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말을 해주기 위해서 주 안에서 기뻐해야 된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쁨의 참된 근거는 무엇인가? 2장에 나와있다. 그리스도의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무엇인가?
고린도후서 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쁨이다. 나의 공로가 아닌 에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기쁨, 예수님께서 만들어 주신 기쁨이 우가 가지고 있는 기쁨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22절, 17:13절에 보면,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공로로 주어진 그기쁨은 외적인 사건이나 환경적인 조건으로 채워진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다. 피로 사주신 아무도 빼앗을 수가 없다라고 하셨다. 그 기쁨을 우리가 온전히 충만히 가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한 신학자는 그 기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주안에서의 기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한다. 외적인 사건에 영향을 받아 내부에서 솟아나는 적개심과 공포심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벽으로 막아 변하지 않는 기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그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참여하는 길에 들어셨다라는 그 기쁨이다. 오늘의 인생이 고달프지만 영광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즐거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완전한 생명은 마지막 때에 이루어지지만 그 미래는 이미 여기서 현실성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미 구원의 기쁨에 실제적으로 참여하고 누리게 되는 그 은혜가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울의 모습이 바라 그 모습이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죄수의 신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습인가? 기쁨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 바울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자신의 내부를 기쁨의 벽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적개심과 공포를 기쁨의 벽으로 막아내고 있기에 옥중에서도 기쁨의 편지인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기뻐한가?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에 힘입어 인생의 어두움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내 안의 기쁨의 벽을 세워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기쁨을 온전함으로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둘째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영역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기쁨의 영역은 빌립보서 2;9-11절에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할 영역은 만유를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주권의 영역 안에서 예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서를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사단의 권세를 꺾고, 죽음을 깨뜨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능력에 의존하고 그이 온 우주를 통치하는 권세에 순종하는 자이다. 예수님의 주권의 영역 안에서 예수님의 주권적 통치아래서 하는 행동일 수 있다. 그래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하는 이 말은 주의 힘입어 기뻐하라라는 말이며, 다르게 표현하면 주에 순종하여 기뻐하라라는 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이 말을 적용하면, 이렇게 표현한다. 세상과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자적인 간섭에 힘입어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것역시 사도 바울은 이론가가 아니다. 자신의 삶의 실질적으로 체험한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빌립보서 1:1절에 보면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종이라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이라고 말하고 있다. 종이라는 표현은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는 자신을 비하 시키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종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비하가 아닌 모든 인생은 그리스도 예수님께 예속 되어져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 16장에서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가게 되는 배경이 나온다.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고 싶었는데 성령이 소아시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로 가게 하신다. 바울은 그 성려의 음성에 순종하여 마게도냐로 향하게 된다. 첫째로 간 곳이 빌립보이며, 첫 만남은 루디아 여인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되고 귀신 들린 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데 기적을 본 간수에게도 복음을 전한다. 그 사건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땅으로 갔는데도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영적인 희열을 경험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6절에서 보면, 세상과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권자적 간섭으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 있기에 환난을 만나도 주권자적 영역 가운데에서도 기뻐하라는 것이다. 에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내뜻대로 안되는 것 같아도 세상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자적 간섭에 기뻐하길 바란다. 우리 주님의 주권자적 영역에 기쁨으로 서 있어야 한다. 이러할 때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안에 꺼지지 않는 기쁨의 빛을 보여주어야 한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주님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요약
인생의 어두움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외적인 환경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더라도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기쁨의 벽을 세워  변하지 않는 기쁨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세상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간섭에 힘입어서 기뻐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빌립보 교회가 비록 신실하고 번창해 가는 교회였다 할지라도 유대교화 하려는 교사들에 의해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행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안에서 기뻐할' 것을 권고한다. 우리가 신앙으로 위로를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그 신앙을 고수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하게 될수록 더욱더 우리는 주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을 달가운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주를 멀리하게 될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니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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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베(주후 2021년 1월 31일)
제목: "영적 건강 측정"
말씀: 요한복음 15:4-5절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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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한 해의 11개월을 새롭게 걸어가야 할 앞에 놓고 영적 건강 측정'이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심정을 깨닫기를 바란다.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이 육신의 건강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군이기에 그 위험으로 보호 받을 수 있도록 목회자인 나로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면역력을 강화시켜 주시길 주님께 기도한다. 
비타민 씨를 많이 먹어야 하고, 음식도 조절하고, 손도 잘 씻고, 자기 몸을 체크하고 점검하여야 한다. 그런데 육신의 건강뿐 아니라 우리 영적 건강이 어떤지를 봐야 한다. 육신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은 차이가 있다. 육신의 건강은 건강하지 않으면 당장 피곤하다. 면역력이 약해진다거나 혹사하거나, 몸을 굴리면, 입안이 터지고 몸살이 나고 피곤한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건강은 어느정도 측정할 수 있다. 검사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영혼의 건강은 표도 안나고 측정이 안된다.
영적세계는 깊은 것이기 때문에 영을 혹사시킨다든지 영은 잘못 다른지를 이야기를 안한다. 영혼은 상처받았다고 당장 호소하지 않는다. 영혼의 건강이 안좋을 때에 처음에는 잘 못 느끼고 거의 막판에 가야 느낄 수 있다.미귀에게 패배해서 영적 단물이 다 빨아먹히고 나중에서야 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하고 영적 건강을 체크해서 미리미리 영적 건강 체크해서 강건하기를 바란다. spritual medical chek이다. 영적 메디컬 체크이다. 혹시 사람들이 육신의 건강이 안좋을 때는 몸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굳어져서 딱딱해진다.영적으로도 보면 한국 사람들은 이 체면문화, 가면문화, 가면문화, 간판문화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은데 실재 속으로는 안그런게 얼마나 많은가! 바리새인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멋있고 건장해 보였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 일반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것도 많다. 신의 건강과는 다르게 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모두가 영적 건강이 무엇보다도 문제가 있을 때 주님의 열망과 하나님 나라 비전과 영정들이 다 사라지고 있다.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영적 건강이 잘 체크되어 가지고 다시 한 번 강건하길 소망한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영적 건강을  재대로 체크할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의 관심이다. 오늘 뒤를 보다가 마음을 확 때리는 구절이 있다. 5절 뒤에 보면 나를 따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신다. 오늘 이 사실 주님을 떠나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을 절실하게 처절하게 실체를 깨달아야 한다. 


I. 첫번째 영적 건강 체크를 위하여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영적건강의 가장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교만이다. 
영적교만이란 주님을 떠나서 내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을 떠나서 내 실력 내 능력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교만이다. 
주님의 보좌에 앉으셨는데 우리 모두가 다 마음의 소원,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은 깜깜한 밤에 번개가 짜자작 치듯이 일도양단이란 말이 있다. 칼을 가지고 단칼에 치듯이, 건곤일척도, 하늘과 땅을 가르듯이 쫘악하는 것이 뭐냐면, 주님을 떠나서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젊을 때는 내 능력, 내 실력이 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진리이다. 

내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이것을 고백하고 서게 해달라고 해야한다. 이것을 우리 성도들이 고백해야 하고 한국 교회가 고백해야 한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님 없어도 내맘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독립선언이다.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이것이 제자훈련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전전위탁(토털 커뮤니먼트)인 것이다. 
한해 내내~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에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II.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첫째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삶에서 일이 복잡하고 큰 일을 앞에 놓고 많은 일들이 있어도 기본은 단순,명료, 순전, 명징한 것이다. 아주 심플한 것이다. 단순명료는 이 말은 일은 안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복잡하게 일을 하셨다. 바울 사도도 많은 일을 하다. 이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양다리가 아니다. 어쩡쩡하게 한 발은 세상, 한 발은 예수님께 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등대가 흔들림이 없다. 그 등대의 불빛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럴때 우리의 집중력을 흩으리지 아니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그런데 사람들이 많은 경우 흔들림 없는 등대의 불빛에 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배의 불빛에 흔들리는 것이다. 그 미혹되어 가지고 영적 집중력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지나가는 배의 불빛은 무엇인가? 그것은 화려하고 좋아보이고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과 재물이 반짝반짝 하는 것이다. 결국에 이것은 지나가는 것이며, 유혹에 불과하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58세인 분이계시는데 우리 엄마는 나만 보면 양치질해라 하신다고 한다. 누가 모르겠는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기본인데 우리도 이 한 해동안, 모든 내용들을 주님 앞에 놓고 주여! 單純 明瞭, 純全, 明徵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라고 해야한다. 이것은 이중적이지 아니하고 도울 마인드가 아니고 오직 쟁기를 잡고 뒤를 봐라 보는 것, 한 발은 세상에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호세아서에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영적 집중력을 가지고 지나가는 불빛에 흔들리지 말고 딱 흔들림 없는 고정된 인생에 등대에 집중하여 그래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단순명료해진다. 그리고 인생의 등대 불빛을 바라보고 고도의 집중이 된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을 하면

둘째는 주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주님과 나만이 아는 그 친밀한 감탄사를 가지고 회복하라는 것이다. 이런 뜻이다. 새벽에 자다가도 깨면 침상에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나같은 인생이 뭔데 주님 나같은 인생이 무언데 수치와 모욕을 다 당해 주시고 대신 ...기가 막힌 것이다. 주없이 살 수 없는 것의 찬양도 그렇다. 주님과 더 친밀해져야 한다. 이 땅에서의 더 나은 삶만이 목표가 아니고 주님과의 더 친밀함이 목표이다. 그래서 더 친해져서 주님의 심장을 느낀다. 주님과 친밀하면 두려움이 없다. 죽음은 죄 때문에 온 것이다.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안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은혜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피로  영적으로 회복되어서 주님과 관계가 회복되면 죽음 자체가 주님과의 친밀함의 극점이다. 죽는 그 순간이 최고의 성화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이다.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고 감사한 것이다. 분리되었던 인생이 내가 죽는 그 순간이 오매불망 주님과 만나는 것이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이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이것이 신앙이다. 육신의 몸이긴 하지만, 진짜 영적으로 보면 내가족이 주님과 만나는 것이 최고의 성화이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 신앙의 깊은 은혜이다. 세상적으로 볼때 대단한 분이라도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행복이며 그 순간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며 영적으로 깊은 것이다.

이것이 그냥 찬송 중에 눈물이 난다.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그 귀한 보배 피로 날 구속하소서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영광됩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 서리 힘 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도다
내 주는 나의 생명 또 나의 힘이라 주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얻으리 주 없이 살 수 없네 내 주는 아신다
내 영의 싶은 간구 마음의 소원을 주밖에 나의 마음 뉘 알아주리요 내 마음 위로하사 평온케 하시네
​주 없이 살 수 없네 세월이 흐르고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사나운 풍랑일 때 날 지켜주시니
내 곁에 계신 주님 늘 힘이 됩니다~~ 아멘

III. 셋째 영적으로 건강해지면 과실을 많이 맺는다.
우리는 꽃보다 열매이다. 꽃보다 과실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열매이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하고 중요한 것은 과실이다. 나무 자체는 목재로도 못 쓴다. 뗄감으로도 별로 의미가 없다. 조경수로도 못 쓴다. 포도나무의 제일 중요한 것은 열매이다. 열매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  8절에 보면. -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을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은 하늘에 영광이고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참된 제자는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다. 우리는 열매를 말할 때 열매는 성령의 열매이다. 바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아홉가지 열매이다. 이 아홉가지 열매를 한 사람이 조화롭게 잘 맺어야 한다. 그래서 완벽하게 맺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가지로서 접붙여 있으면, 주님께 포도나무에 접붙여 있으면, 우리도 나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순명료하고 이중성없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삶의 등대를 분명하게 하면, 이 아홉가지 열매가 조화롭게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균형잡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나에게 어떤 열매가 있는지를 봐라보라. 나에게 무슨 열매가 있는지를 보게 됨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꽃이 아니라 열매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꽃 성도가 아니라 열매 성도가 되어야 한다. 열매는 생명을 연장한다.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아버지께서 제거해 버린다 하신다.
- 영적인 삶의 열매로....
주없이 살수없어...주님과의 친밀함
--왜 순장하나, 봉사, 예배... 주님과의 더 나은 관계를 위하여

요한복음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중요한 것은 꽃이 아니라 열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빌립보서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열매맺는 삶
- 하나님과 함께 해야 열매맺을 수 있다. 하나님을 위해서... 보다
- 전적위탁
이스라엘 2,000년 된 올리브나무

마태복음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요한복음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유다서1:12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포도나무 가지 같이 주님께 붙어있으면 자연스럽게 열매맺는다. 극상품 열매를 맺기위하여


♣요약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할 필요성: 너희가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과실을 맺을 수 없으나 내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니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4,5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가장 훌륭한 증거는 열매 맺는 생활이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가 많은 선을 행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 안에 있는 믿음의 역사를 따라 항상 살아가는 자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삶인 것이다. 그 삶은 선을 행하는 데에도 필요하다. 그것은 모든 선의 근원이며 원천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즉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바르게 행할 수 없다.

즉 어떠한 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라 우리에게 유익이 될 만한 열매가 될 수 없다. 우리는 포도나무가 울타리로 지탱되고 나무가지가 뿌리에서 수액을 공급받듯이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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