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폐수가 인근 바다로 흘러들면서 가두리 양식장들이 큰 피해를 봤습니다. 남해안에 나가 있는 OOO 기자를 불러보겠습니다.” “벌을 키워서 꿀을 따는 양봉 사업자들이 주변 과수원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벌들이 과수원 수분을 돕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방송 및 신문에서 이런 보도나 기사를 가끔 접했을 것입니다. 언뜻 보면 단순 고발성 혹은 화제성 보도처럼 보이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외부 경제’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외부 경제, 즉 경제의 외부성이 중요한 이유는 한 경제 주체의 행동이 제3자에게 영향을 주고, 이것이 자칫 경제 주체 간 갈등, 지역 갈등, 재산권 분쟁, 사회적 후생(복리)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의 외부성은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얼굴입니다. 양봉업자 덕분에 과수원 주인이 이익을 본다는 보도처럼 좋은 외부성을 미치는 경우 갈등의 소지는 적습니다. 그러나 공장과 양식업자 사이처럼 제3자에게 피해를 주는 외부성이 발생하면 두 당사자 간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이 필요해집니다. 경제학 책에선 좋은 얼굴을 한 외부성을 ‘외부편익’이라고 부르고, 나쁜 얼굴을 한 외부성을 ‘외부비용’ 혹은 ‘외부불경제(外部不經濟)’라고 부른답니다. 외부 편익은 사회적 후생을 높인다고 할 수 있고, 외부불경제는 사회적 후생을 감소시킨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경제학은 이런 문제를 정치적, 환경운동적 관점에서 풀기보다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해 효과적으로 풀라고 권합니다. 여러분이 정책 당국자라면 외부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싶으세요? 오염도 줄이고, 기업에도 도움이 되고, 피해자도 적절한 보상을 받는 방법은 없을까요? 경제학자들은 “무조건 배출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방식보다 오염배출세나 오염배출권 거래제도를 시행하라고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에 추천합니다. 오염배출에 세금을 물린다면 기업들은 오염을 줄여야 하는 가격 인센티브에 반응할 겁니다. 그럴 능력이 적다면 세금을 더 내게 되고 그 세금으로 피해자 구제에 나설 수 있습니다. 배출세 비용이 오염방지 시설 개선보다 비쌀 경우 기업들은 방지시설을 설치하려 하겠죠. 배출권 거래제도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데 주변 상가에서 나오는 음악이 방해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야 할까요? 4~5면에서 외부성을 더 알아봅시다.
수요예배(주후 2021년 2월 17일) 제목: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말씀: 사무엘상 13:8-15절 설교자: 소문수 부목사님 -----------------------------------
(사무엘상 13:8-15)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
▶온, 오프라인과 생중계로 예배드림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오늘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혜를 주시길 원한다. 어릴 때 자주 듣던 사자성어가 하나 있다. 바로 有備無患이다. 직역하면 갖춤이 있으면 염려가 없다는 뜻이다. 좀 더 의역하면 어떤 일을 당면할 때,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사자성어이다. 평생에 삶에 영향을 참 많이 미쳤다. 요즘에는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바뀌는 입시제도로 우왕좌왕하며, 준비하는 것이 해가 되는 경우도 있고, 대기업에 취업을 위해서 입사 준비를 하면서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에 혼신을 다해 준비했는데 정작 원서를 제출해야 할 때에는 준비한 것을 적을 칸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독특한 자기만의 스토리가 훨씬 더 많은 작용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하는 것이 참으로 힘겨운 모습으로 보여 진다. 아파트 값 등이 폭등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도 있다. 다 같이 힘들면, 버틸만한데, 상대적 박탁감이 짓누를 때, 우리는 변화무쌍한 세상 앞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코로나는 어떤가? 우리가 예견이라도 했겠는가!! 예견 못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당면하는 감정들 중에서 가장 많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불안과 불확실함이다. 미래를 대비해 준비해야 하는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오히려 미리미리 준비한 것들이 시간낭비와 낭패가 되다보니,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몰리게 되냐면, 소위 돈이 되는 곳으로 몰려가고, 마음이 빼앗겨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신조어 한 가지가 있다. 파이어족이다.
‘Fire’족이란 ‘경제적 자유와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다. 앞 글자를 따서 파이어족이며 영어로는 해고자이다.
이 파이어족은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의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해고 시키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며 그때까지 모은 돈을 가지고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를 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득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을 지칭하여 ‘파이어족’이라고 말한다. 9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문화인데 한국에도 전해진 것이다. 작년에 주식 계좌를 살펴보면 20대 30대라고 한다. 재테크에 투자한 그 사람들이 거의 전체 30퍼센트라고 하며 미투, 동학개미, 영끌, 설명하지 않아도 익숙한 단어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준비야말로 인생의 노후대책이라고 말한다. 이 불안한 상황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은 다 제외하고 경제적인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 자기 스스로를 해고하기 위해서는 모든 삶의 시간을 경제와 돈에 맞추어져야 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지한 신앙적인 고민과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를 이런 진지하게 질문들이 전혀 마음에 자리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을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준지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두 인물을 살펴보며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첫째 인물은 바로 사울이다.
성경 본문은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을 놓고 벌어지는 내용이다. 사울과 사무엘은 모정의 약속을 한 것 같다. 길갈에 사무엘이 간다고 했고, 사울에게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사무엘의 제사의 시작으로 신탁을 받고 행해야 할 일이었다. 사울은 눈앞에 보여 지는 것은 사기가 떨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고, 점점 더 흩어지는 모습이 보여 진다. 사울은 뭔가를 보며주어야 해서 결단을 하게 된다. 사무엘과 약속한 7일이 지났기에 사무엘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번제 제물을 가져오라 하고 사울은 제사들 드린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사울 앞에 등장한다. 그런데 사무엘은 왕이 범죄 했다고 왕위를 폐위 시킨다. 오늘 13-14절에 보면,
삼상 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섬삼 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내용을 보면, 사무엘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울은 기다렸다. 약속했던 날까지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사울은 전쟁을 두고 무언가를 해야 할 리더의 역할이었다. 오히려 사울의 판단이 옳게 느껴져서 사무엘의 폐위는 좀 과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사울과 사무엘을 보면, 찜찜한 부분이 풀리지 않았는데, 의외의 질문에서 해답을 찾게 되었다. 그 해답은 사무엘상 13장 1절을 보면 찾아볼 수 있다.
삼상 13:1절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 앞에 환영받는 왕은 아니었다. 비록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모든 백성이 사울을 왕으로 단번에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삼상 10:27절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 하였더라” -하나님깨서 기름부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사울 왕을 따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작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전쟁은 이스라엘과 접경에 있는 암몬과의 전투였다.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으로 암몬을 상대하기 힘들었다.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조소하며 마치 위해 주는 것처럼 위장된 표정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그것은 삼상 11장 2절을 보면,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언약의 협상은 오른쪽 눈을 다 빼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협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치욕적인 말이다. 성경 후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은 굉장히 가슴이 아프다. 이들은 7일간의 말미를 달라고 한다. 그때까지 전쟁할 때까지 찾아보겠다고 한다. 이게 이스라엘의 반응이다. 바로 그때 사울이 등장한다. 사울이 이 소식을 듣고 사울은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다. 소를 가지고 밭을 갈고 있다가 소의 각을 떠서 이스라엘 전체에 보내고 전쟁할 남자를 모집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였는데 30만 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사울은 전쟁을 하여 승리로 이끌어 냈다. 비로소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게 된다.
삼상 11:12절을 보면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진정한 견고한 왕권이 세워진 것이다. 이 전쟁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성경에서는 2년간을 말하지 않는다. 13장 1절에서 이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일어난 것에 주목하게 되었고, 아마 사울은 이스라엘 나라를 어떻게 지고 나갈지를 고민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릴 이스라엘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 또 왕으로서 이스라엘 나라 앞에 서야 하는지, 하나님 앞에 서야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시간이 그 2년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하나님께서 그 2년을 허락하신 상황이라는 것이다. 오늘 13장은 사무엘과 사울과의 관점으로 읽어야 될 본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울의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묻고 있다. 사울에게 상황이 위급하니 사무엘도 없으니 이 혼란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을 준비할 것이냐고, 어떤 왕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준비 시킬 것이냐라고 하나님이 사울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울은 하나님 앞에 대답을 한다. 자신이 제사를 드려 승리를 갖고 오는 것, 자신의 경험, 지혜, 모든 계략으로 전쟁의 승리를 이끌어내고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제사라면, 사무엘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율법이 없을지라도 그런 것을 무시한 채 오직 승리에 마음을 빼앗기며, 이스라엘을 자신이 이끌어가겠다는 오만불손한 대답을 하나님 앞에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혼란하고 불안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우리와 겹쳐진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큰 당면하는 일들이 있고, 주식과 부동산의 열풍이 불고 있다. 철저한 자본주의가 시장을 낳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 정치, 경제 어느 것 하나님 편안함이 없는 지금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 같다. “너희는 지금 이 위기에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라고 “전쟁 같은 이 시기에 너는 나의 앞에서 무엇을 준비하며 너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도 거대한 물살에 휩쓸려 버리고 만다. 그리고 마치 사울처럼, 부득이하게 핑계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둘째 인물은 바로 에스겔이다.
에스겔은 사울보다 더 처참한 가운데 놓여있다. 왜냐하면, 사울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나라가 세워지는 혼란 가운데 있었지만, 에스겔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나라가 완전히 망하여서 불안함과 불확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절망과 소망 없음에 상태였기 때문이다.
에스겔 1:1-3절을 보면.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 선지자는 25세 꽃다운 나이에 포로로 잡혀갔다. 이 나이는 어떤 나이인가하면, 어릴 때부터 에스겔 가문에 어릴 적부터 제사장이시던 조부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커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 귀한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려고 꿈을 키워왔던 어린 에스겔이며, 수습 제사장으로서 본격적으로 배워 나가는 시기였다. 정식 제사장의 나이가 30-50세로 규정하는 것을 보면, 25세의 나이에 수습 제사장의 나라의 멸망은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에스겔의 나라가 망한 것이다. 공동체가 망했다. 개인도 망했다. 이 현실 가운데 에스겔은 두 가지의 끈을 붙잡고 이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두 가지의 열쇠를 붙잡고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는 에스겔인 자기 인식과 사명의 정체성으로 미래를 준비한다. 3절에 보면 -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나라가 망했는데 누구도 에스겔을 제사장으로 임명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지금 자기의 신분으로 봉사를 할 만한 나라도 없고, 성전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제사장, 나 에스겔’이라고 고백하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본질적인 질문 앞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정체성을 부여잡고 어려운 이 시기를 이겨내는 이 첫 번째 열쇠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과 현실 속에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키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호와의 말씀이 나를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를 에스겔을 세우고 있다. 세상이 우리를 무엇이라고 평가하는지, 주변의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나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에스겔이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제사장 나 에스겔’ 바로 자기 인식이라는 것이다. 이 강력한 확신은 외부의 어떤 도전도 대적할 수 있을 만한 무기가 될 줄 믿는다. 세상은 말한다. 더 빨리 뛰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고,,,, 더 치솟고, 빠르게 떨어지는 돈의 가치를 보고 있지 않느냐고,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지만 그 세상 속에서는 어떠한 해답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세상은 가면적이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한 줄로 믿는다. 그 영원한 말씀이 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에 대한 자기 인식이야말로 에스겔이 붙잡았던 중요한 실마리인 첫 번째 Key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미래를 준비한다.
-에스겔이 자기 인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1절에 답이 있다. 에스겔 1:1절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 그 나라가 멸망했다는 것은 그 나라의 신이 망하였거나, 그 나라를 버렸다라고 생각했다. 나라를 잃은 것도 좌절이지만,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런 마음 중에 하나였다. 오늘 에스겔은 무엇을 보았는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계심을 보았다. 역사의 주관자로 하나님이 계심을 본 것이다. 에스겔은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인식의 변화가 얼마나 크고 재미있는지를 알게 된다. 치킨 집 예화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우리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힘은 복원력이다. 실패 앞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이 강력한 힘이다. 의연하게 꿋꿋하게 일어나는 힘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다. 오늘 이 마음이 에스겔에게 있었다. 그리고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적인 확신의 마음을 가지고 하늘이 열리는 모습을 기억하며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정리하면, 사울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해야 했다. 백성이 흩어지고 천지가 개벽된다 해도 이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마음에 내적인 확신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해야 했다. 사울은 현실의 고통과 속에서 그저 자신의 합리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만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온전한 헌신이다.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적당한 선을 비벼서 적당하게 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는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우겨쌈으로 인도하신다. 왜 그러신가? 그것은 하늘이 열려있음을 발견하게 하시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함으로 하나님을 사모하여 다시 회개하여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삶의 미래와 인생을 준지하게 되는 것이다. 불확실한 시기를 우리는 지나가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열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깨달아서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 부어지기를 바란다. 핑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자아가 깨어져서 자기 인식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간구해야 한다.
♣요약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제사였고, 말씀을 떠난 제사였으며, 성급히 드린 제사였으므로, 믿음이 없는 제사였고, 진실이 결여되었고 형식적이며, 이기적인 제사였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헌신과 충성, 감사와 교제가 담겨져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분이 있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롭고 지식이 있는 자, 공의를 사랑하고, 진실한 자, 율법을 순종하고, 성도를 위해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바른 교훈으로 성도를 권면하는 자.결국 중간에 실수하고 범죄했던 지도자라 하더라도 끝까지 신본주의적인 자세를 가진 지도자가 하나님께 합당한 지도자임을 말씀하신다.
--- 사울은 사무엘이 오기 전에 제사를 드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그에게 길갈에서 칠일을 기다리라고 한 적이 있다(10:8). 아마도 이같은 특별한 경우를 두고 그 명령을 최근에 다시 한번 내렸던 것 같다. 이 명령을 사울은 어겼다. ①사울은 사무엘이 없는데도 대담하게 제사를 드렸다. ②사울은 사무엘의 지시를 받지 않고도 블레셋과 싸우려고 결심했다. 사울은 자신감에 넘쳐서 여호와의 선지자를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거나 충고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사자를 보내서 사무엘의 생각을 알아보지 않았다. ㉡사무엘이 오자 사울은 자기가 한 것을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당당했던 것 같다. 즉 사울은 같은 제사장으로서 사무엘을 나가 맞으며 문안했다. 그는 나가서 사무엘을 축복했다. 그는 지금 마치 자신을 완전한 제사장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사무엘에게 약속을 어겼다고 책망했다.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11절). ㉣불순종했다고 사울을 책망하자 그는 자기가 한 일을 정당화했으며 전혀 회개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사울이 어떻게 변명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울은 자기가 신중해서 이러한 불순종한 일을 하게 된 것처럼 변명했다. 또한 사울은 자기가 경건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순종한 일을 하게 된 것처럼 변명했다. 사울이 아주 경건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고 나서야 블레셋 사람들과 대결하겠다고 한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한 터였습니다"하고 사울은 말했다. 하지만 마침내 그는 양심에 거슬려서 그런 일을 했다고 시인한다.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한다.
▷이러한 잘못에 대한 형벌을 사울에게 선고 하였다.
1)사무엘은 그에게 그의 죄악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사울이 자신과 자신의 이익에 손해되는 일을 행하였다고 책망한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또한 하나님과 그의 다스림에 반역하였다고 책망한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죄는 어리석음이요 죄인은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2)사무엘은 사울의 운명을 선포한다. 사무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준다. 즉 가벼운 죄란 없다. 왜냐하면 죄를 지어도 될 만큼 하찮은 하나님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죄악은 우리가 당당히 서있는 천국을 빼앗아 간다. 사울은 두 세 시간을 참지 못해서 나라를 잃은 것이다.
주일예배(주후 2021년 2월 14일) 제목: ''온전(穩全)함의 대헌장(大憲章)''(Magna Carta of Teleios) 말씀: 골로새서 1:27~29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
(골로새서 1:27~29)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지금 우리는 역사의 대변곡점에 서 있다. 현생 인류를 가리키는 ‘호모사피엔스’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사피엔스로의 변화 속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인간상을 반영한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정체성의 몸살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람들이 의지했던 사회의 근간이 완전히 흔들리고, 예전에 없던 것들이 새로운 규범이 되는 변이와 혼돈의 상황일수록 신앙인이 꼭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 “어떻게 하면 신앙적 차원에서 객관적이고도, 변함 없는 진리로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흔들리는 세상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무엇보다 추구해야 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온전함이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온전히 닮기 위해 “온전함의 대헌장”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온전함의 대헌장이 우리 영가족의 심령에 뿌리를 내리고, 이를 통해 예수 믿는 자로서 날마다 성숙하고, 매일 전진하며, 하루하루 더욱 새롭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다른 어떤 메시지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무언데, 너무나 부담되지만 한 편으로는 특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온전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직격탄처럼 물에 물탄 듯 하지 아니하고 온전하라고 하신다. 과격하다.
l. 거룩한 과격함.
*고린도후서 7:1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 적당히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부담이다. 지옥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 삶의 현실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움심 정도가 아닌 조금 더 급진적 과격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변화이다. 어둠에서 빛이다.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이다. 나약한 삶에서 전적인 위탁으로의 근본적인, 급진적인 것이다. 이 세상의 가치관이 전복하고, 뒤집어 엎는 과격성과 급진성을 말한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9:5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 온 세 사람을 소개하신다.
첫째 사람은 선생님이 가는 곳에 내가 어디든 따라간다고 하자. 예수님은 잘했다 하지 아니하시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것이 없다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너 나 따르면 노숙자 되고 집의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하신다. 두 번째 사람은 방금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 좀 치르로 따르겠다고 하니, 칭찬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르를 전파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합당치 않다고 하신다. 가족을 돌보는 것을 무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라고 하신다. 주님을 따르는 자가 취해야 할 마음가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세번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고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자,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겠다고 안전한 법칙을 떠나서 모험이며, 순교의 길을 말씀하신다. 세상 가치를 뒤집는 일, 목숨까지도 내놓는 것이라 하시는 것이다.
*누가복음14:26,33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냥 욕심을 채우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자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이다. 그 당시 예수님을 저항할 정도로 영적인 그 사람들에게 문화충격이었다. 너희 아버지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것은 새로운 차원이다. 주님이 얼마나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싶으셨으면, 얼마나 자신이 있으시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겠는가? 이것이 아니면,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이 없다고 하신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에게도 강력한 큰 충격이었다. 주님은 하나님처럼 온전한 것처럼 온전하라 하신다. 아버지를 닮아가라는 것이며, 아버지처럼 닮아가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온전함으로 다 닮을 수는 없지만,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는 영이 열리길 바란다. 새로운 삶의 길이다. 이것이야말로 온전한 길이다. 바울도 감옥에서 그 고통을 딛고도 주님을 닮아가라고 하고 있다. 적당한 신앙생활이 아닌 것이다. 급진적이며 거룩한 과격성이다. 주님의 따르는 온전함을 따르려면, 나를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이심을 깨달아야 한다. 얼마나 자신 있으시면 과격하시겠는가? 온전히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ll. 온전한 제자란.
▷온전하심 '만큼'이 아니라, 온전하심 '같이' 이다.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서신서에 온전한 제자란 개념이 바리새적인 것이 아닌, 제자가 스승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제자가 찾아가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주님 온전함=Teleios 골로새서1:22 너희를 1) 거룩하고 2) 흠 없고 3)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온전함(Teleios) : 부족한 부분이 없이 채움받는 것 -> 부족한 부분을 보완시키는 것 -> 점점 다듬어 주시는
골로새서2:2 이는 그들로 1) 마음에 위안을 받고 2)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3)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4)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골 2: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lll.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온전함.
니고데모의 부족함을 채워준다고 하심. 빠진 것이 있다고 한다. 물질 문제가 있다하심
비포(before) ㅡ에프터(after).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 시켜 주시길 원한다. 기도의 제목이다. 주님 온전함이 주님처럼 되기 위해 나아갈 때 보완해 주실 것을 믿는다ㆍ 고봉 ㆍ등정이다.
주님 온전함이 주님처럼 되기 위해 나아갈 때 보완해 주실 것을 믿는다ㆍ 고봉 ㆍ등정이다.
*골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➀거룩하고 ➁흠 없고 ➂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하나의 온전함의 예이다. 점점 닮아가는 축복을 주시길 원한다.
-하나의 온전함의 예이다. 점점 닮아가는 축복을 주시길 원한다. -부족함 채우기 위해 첫째:마음의 위안ㅡ격려ㆍ은혜가 되는 말만 하라. 성령이 주시는 위로 둘째:연합ㅡ피스메이그커(piece maker)로 서로 보완하면서 그리스도를 깨달아져야 한다. 셋째: 모든 풍성함 ㅡ영적 부요함.
적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에 대하여,,,, 바울이 감옥에서 이전 시켜 주신다.
어떻게... 29 절 나도(바울,지도자)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1)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2)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다락방이 온전함 이루는 영적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세 가지가 같이 가야 한다. ➀개인영성(개인QT) ➁소그룹- 다락방 ➂예배(주일예배)
▷온전함을 위한 헌장 땅끝까지 이세상의 끝날까지, 예수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부요하신데 우리가 누리지 못하면 안된다. 이것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 은혜의 광맥을 찾게 될 것이다.이미 예수님의 퍼펙트한 것을 예수님을 전파하고 권하고 가르친다 이것이 다락방이다 영적변화의 산실이다. 반드시 다락방에 참여해야 한다. 그자리 필요하다.
봄학기 다락방에서 온전함이 이루어져야 하고, 채워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 순장님이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하고 주님처럼 되는 갈망이 필요하다. 플랫폼으로서 함께 동지가 누구인가를 깨달아서 우리 동역자들과 온전함을 추구하고 함께 수고하고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야한다. 개인큐티, 소그룹, 예배가 삼각대가 되어 함께 서로 연합하여 온전함으로 이루어 가야 한다.
토비새(주후 2021년 2월 12일) 제목: ''찬양하며 살게 하시려고 나를 부르신 예수님'' 말씀: 이사야 43:21절 설교자: 윤정수 집사님(초빙 오페라 가수) -담임 오정현 목사님 ---------------------------------------------------------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2:20절 ㅡ단기선교 통해 주님을 더욱 찾게 한 구절이다. 24살에 성령님을 노래사역에서 만나 확신했으며, 노래선교 농어촌 봉사 ㆍ선교사역을 했다. 유학을 못 갈 처지였다. 그러나 늘 나에게는 말씀이 인도했다. 유학을 가기 전에 요한복음 안에서 6개월간 읽고, 예배하고, 기도했더니, 물이 변하여 기적을 주신 것,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을 받으면서 스코트랜드 왕립국악원에 입학의 오디션이 있어서 보았는데, 하나님은 장학생으로 선발되게 해주셨다. 또한 어머니의 기도와 도움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찬양 고백을 하나님이 받으신 것이다. 그곳에서 마치 하나님이 보내주신 장애인 선생님을 만났다. 소리를 뽑아 주신 선생님을 받았던 것이다. 스코트랜드에 서포트는 없지만 좋은 분들 만나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셨기에 장학금으로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영국 런던 등 가는 곳마다 1위를 입상하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감사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높아지니 나에게 잠시 교만이 찾아왔다. 콩크르 우승하고 나서 나중에는 또 교만하게 하니 자신을 치셨다 그래서 생활이 너무 어려워졌고,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지만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드시고 다시 도전하게 해주셨다. 그러던 때에 스페인 콩크르를 가게 되었고, 거기서 큰 성과가 있어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이라 여기며 최선을 다했다. 싸구여 케스트룸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곳에서 나의 부족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깊이 있게 노력하게 했으며 노력한 결과 그곳에서 성과를 크게 내게 도우셨다. 국제 콩크르였는데, 하나님 은혜로 본선 무대에 서게 했던 것이다. 프로가 되는 기회가 되었다. 12명으로 뽑혔을 때, 사라고사에서 과거의 가족과 어려움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때에 나는 경쟁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가가 인간이 주는 평가가 중요하지 않아서 모두가 경쟁자가 중보기도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함께 한 친구가 있어 중보했다. 결과 상관없이 자유함을 얻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셨고 거기에서도 1위를 해서 그 이후로 일 년 정도 살 수 있는 상금을 받아서 살게 되었다. 영국에서 더욱 유명해지자 우수인재비자를 받게 되었다. 2011년이었다. 그러나 영국에 다시 거주하면서 옆에서 8살 차이나는 여자로 피아노 반주해 준 사람이 아내가 되었고, 런던에 숨만 쉬어도 한국의 강남의 3배이다. 그래서 힘들었다. 어마한 세계인들과 겨루느라 오디션 볼 때마다 항상 힘들었다. 독일에서 오디션도 힘들었다. 런던에서 살면 너무 비싸서 가족을 모두 다 데리고 다녔다. 너무나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오페라로 떠돌아 다녔고 가족들이 큰 고생을 많이 했다. 오페라와 음악으로는 동양인들이 거의 없었다. 모든 극단에서는 귀족 시인 유력가문 백인 아들 주인공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잘해야 했다. 여러 가지 룰들이 있었다. 너무 노력하다 보니 성대가 상했다. 암울한 시기가 왔다. 실패하면, 일이 없기에 일이 없었다. 아내와 상의하니, 아내에게 다른 것은 안된다고 했다. 40세까지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융자 받아서 살았다. 그 이후 라이프 로드 싱어즈로 가르치는 선교사인 생명길 선교를 하게 되었다. 실크로드에서 선교사역으로 하게 된다. 하나님께 제일 젊을 때 드려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아내와 상의하여 선교에 임했다. 중앙아시아 선교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 가운데 아이가 아프고 이중고를 견디어 내야 했었다. 그곳에서도 찬양하고 기도하는 사역을 했다. 그 가운데에 영국에서 큰 오디션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목이 너무 안 좋아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첫 곡 부르고 나니 목이 나갔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서 기도했다. 겨우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울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나는 아닌 것 같다고'...2주일 지나서 연락이 왔다. 하나님은 나를 주인공이 되게 해주셨다. 스웨덴 ㆍ영국 등에서 주인공 계약을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다. 큰 기적이었다. 그렇게 좋은 극장에 서계 하심은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깨달았다. 라이프 로드 싱어즈는 찬양단체아 함께 함도 큰 힘이고 사역이 되었다. 함깨 한 단체이다. 지금 영국에서 3년 계약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코로나로 영국이 난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있었다. 그것이 큰 은혜이며 계획임을 알게 하셨다. 나의 나약함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찬양할 때 약함이 능력되게 하심을 알았다. 지금 그 사랑을 체험하면서 한국에서 이렇게 사랑받게 하고, 과거 대학시절, 우리 사랑의 교회에서 2년 간의 찬양봉사를 기억하게 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과 목사님들께 감사한다.
♣요약 테너 윤정수 집사님과 라이프 로드 싱어즈를 인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방에 선포하게 하시며 거룩한 나팔수로 쓰임 받게 되기를 우리는 기도해 주고 온전함을 사모하여 주일설교 시리즈를 통해 우리가 과거의 습관과 태도를 버리고 사랑 안에서 참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영가족 모두가 한 몸을 이루어 주님 사랑으로 연결되고 결합하여 시대를 관통(貫通)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지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즉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이요, 증거자가 되기 위해서 선택되었다. 본래 모든 인생의 목적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증거는 쉼없이성령의 능력을 받아 부끄러움과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어야 한다.
♣수요저녁예배(주후 2021년 2월 10일) 제목: "결국 더 영광(榮光)스러운 것" 말씀: 누가복음 12:22-34절 설교자: 신성식 부목사님 -------------------------------------------
(누가복음 12:22-34절)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제비는 한 새끼를 위해 3주간 먹이면, 제비가 날 수 있다고 한다. 그때까지 제비를 키우기 위해서 이천여 번이나 먹이의 곤충을 잡아다 먹여야 한다고 한다. 조류학자들의 의하면 지구상에는 약 천억 여종의 조류가 산다고 한다. 그 많은 새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들이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가? 그들은 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들의 먹이를 준비해 놓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새들이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고 우리 하나님께서 새들을 기르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리석은 부자가 열정을 다해 창고를 짓는 모습과 매우 대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계신다.
22절 앞부분을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내 곳간과 내 소유와 내 생명이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주장했던 어리석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있는 것이 영적으로 건강한 모습이고, 이 어리석은 부자의 새로 지은 창고에 쌓아 둔 재물을 사용해 보기도 전에 죽고 말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말았던 이 삶을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또 많은 사람들이 은퇴 이후의 삶을 계획한다. 노후의 그 삶을 준비하는 것은 지혜롭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삶을 소홀히 하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자기 백성들이 세속적인 목표를 넘어서서 생각하도록 도전하시고 우리들이 받은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도록 오늘 우리에게 도전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이 세상의 압력에 대해 염려하시는 대신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으로 빚어져 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코로나 시대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다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우리 속에 이루어 가시고 온전(穩全)함을 사모하시며 정금(精金)을 재련(再鍊)하는 거룩한 용광로(鎔鑛爐)가 되어서 온전함이 온전히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자 되기를 간구한다. 현재 인생에 압박감이 가중되고 있다면 과거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우리 인생의 모든 염려들을 하나 씩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고 우리 주님께 맡겨 드리고 다시 한 번 주님께 돌아와서 주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이 저녁이 되기를 원한다.
l. 우리 하나님의 나라에는 풍성하게 충만하게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의 영과 육이 다시 한 번 힘을 얻는 귀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먹고 마시는 것이 생존의 필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먹고 마시는 것, 의복이나 소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 이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의 것으로 이 땅의 문제로 근심 한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선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결국에는 우리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밖에 없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기본적인 필요들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믿음과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본적인 필요들을 충분하게 공급 받을 수 있다고 약속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면서도 여전히 세상처럼 염려하고 있다. 이 제자들이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었더라면 더 이상 걱정과 염려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로마서 4장 17절에 보면, -그가 믿은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인생의 우선순위(優先順位)를 올바로 지키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항상 그들을 돌봐주시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의 삶, 우리의 필요한 것, 우리 주님이 알고 계신다. 때로는 우리가 걱정과 염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지 않는 이방인과 다른 점은 우리는 우리의 이 모든 염려와 걱정을 알고 계시는 분, 이 문제들을 능히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로 믿고 있다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의 걱정과 염려를 뛰어넘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 되기를 바란다.
ll.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우리가 참으로 믿고 신뢰한다면, 어떤 염려와 걱정도 이겨 낼 수 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구할 때,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축복받은 사람의 대명사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어떤 인생의 절망의 구덩이에 있다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왕관의 보석처럼 삼아 주셔서 우리 주님의 강력한 영적 병기, 비밀 병기로 쓰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실 줄 믿는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힘든 문제들로 좌절하면서 마치 어두운 구덩이에 깊이 빠져 있는 것처럼 힘듦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구덩이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너무 힘이 들어서 하나님을 부를 힘조차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내 소리를 듣지 못하실 것 같을 그러한 시련의 힘든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라도 우리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 가장 힘든 순간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부르시는 것, 가장 어려운 순간 낙심할 수밖에 없는 순간, 내 모든 힘이 빠진 것 같은 그 상황 속에서도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시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주시고, 맞아 주시고, 손잡아 주시고, 일으켜 주실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회복의 출발점이 되는 줄 믿는다. 연 초에 문고리 심방을 하면서 힘든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이겨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교구의 성도님들을 본다. 그 중에 한 분은 코로나 가운데에서 연로하신 아버님을 모시고 하루 종일 외출도 못하고 집에서 아버님을 케어 하는 집사님을 만났다. 현관 문 앞에서 엽서와 작은 패키지를 전달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힘을 얻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 당면한 적들의 공격의 종류와 세기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그때 피난처 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피하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피하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점이며 축복이 됨을 믿는다. 내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상황을 주관(主官)하시고 섭리(攝理)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라면, 그분께 염려를 맡김으로 우리 인생의 어떤 염려도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신다. 친히 이 모든 것을 움직이시고 섭리 하신다. 우리 인생도, 우리의 삶도, 우리의 모든 것도 우리는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만물 속에 있는 우리를 우리 주님께서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전능하심을 믿고 신뢰한다면, 이 세상의 어떤 염려와 걱정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그 은혜들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 12;32절에 보면,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는가? 적은 무리라고 말씀하신다. 연약하지만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고 계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기 자녀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복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자기 자녀들과 나누기를 기뻐하신다. 제자들만이 아니라 이 시간 우리들도 적은 무리이다. 사도 바울도 질그릇처럼 연약하다고 말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을 보면,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 질그릇처럼 연약한 우리의 약함과 깨짐과 결함(缺陷)의 모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속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와 힘없는 자를 통해서 일하신다. 우리가 어떤 약함과 무능함 속에 있다 할지라도 이것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와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우리가 힘든 시기를 살아가면서 연약함과 압박감으로 마치 갇혀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우리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으로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이 되는 줄 믿는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능력과 실존을 드러내시는 그 기회로 우리를 제자 삼아 주신다. 현재의 우리의 삶에서 현재의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복종하는 것이며, 장차 하나님 나라를 우해서 헌신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 훨씬 빨라 보이고 쉬어 보이기도하고, 나아보일 수도 있다. 보물을 땅에 쌓으면 결국 땅에 있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게 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로 염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더 이상 소유에 관심을 갖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에 영광을 우해서 보물을 쌓는 것은 이 세상의 염려가 하나 둘 씩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해변 가에서 한 움큼의 모래를 두 손에 잡아보면 우리 손에 남는 것은 손가락 마디마디로 모든 것이 빠져버린다. 우리 삶 속에서 이 양손으로 모두 모아본다. 그 순간 우리 손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달려갈 때, 우리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가 양손 가득 우리 삶 속에 채워지게 될 것이다.
lll.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결국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나의 영적인 현 주소를 점검하게 된다. 좀 편리하게 살고 싶어서 하나 둘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던 것들을 지금은 놓아버릴 수 없는 자리를 찾게 놓았고, 물질이 나를 자유하게 하기 보다는 나를 구속하고 지배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세상이 사용하는 방식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하면 다 될 것처럼 보일지라도 또 그렇게 살아가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우리 주님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아무런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신앙은 영원한 것을 본다. 당장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목숨이 재물보다 더 귀하다. 까마귀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의 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아무리 염려하고 연약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아시고 하나님 나라를 구할 때에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기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일 때가 있다. 우리 하나님 앞에 말씀하시지 않으시면 어떤 손해가 있다 할지라도 요동(搖動)하지 아니하고 선교사님들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선교사님을 기억한다. 이 세상이 알아봐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 위해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이 코로나 시대에서도 묵묵히 믿음으로 걸어가는 선교사님들을 우리 주님께서 보호하시고, 도우실 줄 믿는다. 아프리카에서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고, 사역하시다가 숨지신 선교사님, 고 유순열 선교사님의 사역과 헌신을 주님께서 모두 받아주실 줄 믿는다. 하나님 나라를 영원한 기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가장 영광스러운 것으로 믿는다. 우리를 부르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이 땅에서 몰라주어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알아봐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을 믿는다. 그것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하나님의 축복이 됨을 믿는다.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며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 요약 우리가 질그릇처럼 깨어지기 쉽고 연약하지만 우리를 사용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에, 우리의 필요한 것을 아시기에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이 우리를 몰라준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알아봐주시고, 결국 더 영광스러운 것으로 채워주심을 믿는다. 어떤 환경에서도 끝까지 변함없이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자되어 영광스럽고 존귀한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의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생활에서 의식주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주님은 의식주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염려하지 말라’ 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노력할 때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물처럼 먹을 것만 추구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라 하셨고, 더 나아가서는 영혼을 위하여 ‘구하라’ 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육신보다 먼저 영혼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신 의식주 문제는 영원한 삶의 준비와 연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쌓아둔 보물은 영원히 썩지 않는 보물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방법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물질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곧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