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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9월 9일 (860)


1. 사전적 의미는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방향 전환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는 용어는?
① 딥페이크 ② 빅스텝
③ 피벗 ④ 팻핑거

2. 다른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 제품을 위탁받아 생산해주는 업체를 가리키는 말은?
① 벤처캐피털 ② 데카콘
③ 파운드리 ④ 메가딜

3. 빅테크가 아닌 미국 기업 중에서는 최초로 지난달 28일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회사의 이름은?
① 버크셔 해서웨이 ② 보잉
③ 월마트 ④ 뱅크오브아메리카

4. 기업이 제품 생산 과정과 사용·폐기 단계, 협력 업체 유통망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해 공시하는 제도는?
① 스코프3 ② 매그니피센트7
③ PMI ④ ROA

5. 이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프랑스에서 체포돼 러시아와 외교 갈등 등으로 비화했다. 세계 4위 메신저 앱인 이것은?
① 위챗 ② 텔레그램
③ 디스코드 ④ 와츠앱

6. 주요국 증권거래소나 금융가에서는 이 동물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증시에서 ‘상승장’을 상징하는 이 동물은?
① 곰 ② 황소 ③ 비둘기 ④ 매

7. 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개인투자자의 매수세가 몰리는 주식을 말한다. 미국 게임스톱 등이 대표적인 이것은?
① 신주 ② 배당주
③ 자기주식 ④ 밈주식

8. ‘은행들의 은행’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화폐 발행 등의 독점적 권한을 갖고 있는 곳은?
① 특수은행 ② 투자은행
③ 중앙은행 ④ 상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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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SKY 지역비례로 뽑으면 교육 불평등 해소될까



그래픽=김선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지난달 말 나온 한국은행의 ‘입시경쟁 과열 대응방안’ 보고서가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중앙은행이 교육 문제에 목소리를 낸 데다 상위권 대학 신입생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맞춰 뽑자고 과감하게 제안했기 때문이죠.

보고서에 담긴 내용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입시 과열과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해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 학업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상식이 됐습니다. 한은의 문제 제기가 신선한 것은 지금의 대입 제도가 과연 기회의 균등이라는 가치를 충족시키고 있느냐를 되묻고 있는 부분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재가 제대로 육성되지 못하는 ‘잃어버린 인재(Lost-Einsteins)’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경제는 기회비용을 많이 따지는 분야입니다. 답지에만 오르고 선택되지 못한 대안들이 어느 정도 비용을 치르게 하는지 살펴보는 거죠. 그런 점에서 ‘잃어버린 인재’는 기우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주목해볼 부분이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와 관련해 지구 반대편 미국에선 흑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시정정책(Affirmative Action)이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폐지됐습니다. 지난 60여 년간 이어진 인위적이고 무리한 차별시정이 또 다른 차별을 낳았다는 반성이 일어난 겁니다. 흑인 등에 대한 대학 입학 정원 할당을 폐지하면서 반사효과로 아시아계 입학생이 늘었습니다. 교육에서 기회균등과 차별금지라는 두 가지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입시 과열이 인구집중·집값상승 불러
교육 기회균등 더 필요하다는 제언 많아



연합뉴스

이번 한국은행 보고서는 부모 경제력, 거주 지역 등 학생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배경이 대학입시를 좌우하는 불편한 진실을 다시 드러냅니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심화하면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고, 그 속에서 ‘잃어버린 인재(Lost-Einstein)’가 늘어나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문제의식입니다.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려고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고 집값이 상승하는 구조적 사회문제도 입시 경쟁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한은으로선 금리정책을 하나 결정하려고 해도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깨기 위해 ‘지역별 비례선발제’와 같은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낸 겁니다. 지금도 각 대학들은 지역균형전형 등 보완 수단을 시행 중이지만, 좀 더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한은은 “서울대 19학번 가운데 수시 지역균형선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평균 학점이 정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보다 높았다”며 주장의 근거도 들었습니다.


부모 경제력이 입시 좌우

리 사회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 통계로 확인됩니다. 먼저 부모의 경제력이 좌우하는 사교육의 존재입니다. 통계청 자료에서 작년 고등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를 살펴보면 월소득 2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은 38만원을 쓴 반면, 월소득 8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은 2.6배 많은 97만원을 지출했습니다. 거주 지역의 차이도 큽니다. 서울의 1인당 사교육비는 104만원으로, 읍면 지역(58만원)보다 1.8배 많았습니다.

이런 차이가 상위권 대학 진학률 격차로 이어진다고 한은은 설명합니다. 2005년 중학교 1학년 때 비슷한 잠재력(수학 성취도 점수)을 보인 학생들이 소득 상위 20%(5분위)에 속하는 경우, 5년 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하위 20%(1분위)보다 5.4배 높게 나왔다는 겁니다. 거주지로 봐도 비슷합니다. 2018년 전국 일반고 졸업생 중 서울 출신은 16%에 불과했지만, 서울대 진학생 가운데선 32%를 차지했죠. 보고서는 2010년 소득 상위 20%와 하위 80% 간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 중 75%는 학생 잠재력 이외의 ‘부모 경제력 효과’의 결과로 추정된다고 결론짓습니다. 또 2018년 서울과 비서울 간 서울대 진학률 격차 중 92%는 거주 지역 효과(부모 경제력+사교육 환경)에 기인한다고 덧붙였죠.

기회균등, 얼마나 보장해야 할까

하지만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계속 심화돼왔는지는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변수용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교육 성취(대학 진학 등) 측면에서 지난 50년간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학생의 읽기 점수(PISA, 국제학업성취도평가 기준)가 비례해 높아지고, 이 곡선의 기울기가 2000년보다 2018년에 더 가팔라졌다고 밝힙니다. 부모 경제력 때문에 학생의 읽기 성적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얘기죠.

교육 불평등 문제는 기회의 균등 외에 평가의 투명성과 공정성 측면에서도 제기됩니다. 쉽게 말해 지금의 대입전형 제도가 얼마나 공정한가와 관련된 논란입니다. 대표적으로 2017년 수능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면서 수능의 변별력 약화, 학생부 위주 전형의 비율 상향,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의 불공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학종을 두고 이른바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이란 비판이 많았죠.

한은 보고서는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검토하자고 제안하는데요, 이에 동의하는 교육 전문가도 적지 않습니다. 2022년 서울대 경제학부 박사 논문(‘한국의 경제 및 교육의 기회불평등 분석’, 오성재)에서도 “현 대입 제도의 경우, 기회균등 전형은 그 규모가 상당히 미흡하다.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기회균등 전형을 대폭 확대해야 실질적 기회균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서울대는 2025학년도에 3497명(정원 내 전형 기준)을 모집하면서 수시와 정시의 지역균형, 기회균형 전형에 모두 820명, 전체의 23.4%를 뽑습니다. 이 비율을 얼마나 더 높여야 공정한 대입전형 제도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요?

NIE 포인트
1. 선진국의 교육 불평등 정도는 어떤지 살펴보자.

2. 사교육이 제공하는 장점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3. 한국의 사교육 경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잃어버린 인재' vs '차별금지'
어느 한쪽도 가볍게 볼 수 없죠


연합뉴스

잃어버린 인재(Lost-Einsteins)’란 경제적·교육적 불평등 때문에 재능 있는 인재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회의 창을 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국의 아인슈타인으로 커나갈 잠재적 인재를 잃게 되면 혁신의 기운이 감소하고 경제성장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어요. 이는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하는 ‘개천용지수’와도 통합니다.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으면 대학 진학과 취업 등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이는 다음 세대에서 계층을 상승시킬 가능성을 줄이게 됩니다.


역차별 낳은 ‘결과의 평등’

그러나 상위권 대학 신입생을 지역 비례선발제로 뽑자는 한국은행의 제안은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자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대학 진학은 ‘출발점’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를 나왔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점이 많기 때문이죠.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다 보면 어떤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지 미국의 선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차별시정정책’(또는 소수인종 우대 정책, Affirmative Action)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미국 대학입시(SAT)에서 같은 점수를 받더라도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이 가산점을 받아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선 각 대학이 소수인종의 입학 비율을 아예 정해놓고 신입생을 뽑았습니다.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진보적 발상이 ‘결과의 평등’으로 과도하게 흐른 거죠.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도입한 이 정책은 교육 분야에서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는 관점에서 수많은 논쟁을 낳았습니다. 이 정책이 소수인종에게 ‘성공의 사다리’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이뤄낸 성과조차 인종에 의한 특혜로 평가절하받는 부작용이 일었어요. 그래서 “인종적 온정주의는 차별만큼이나 해롭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미국에선 2006년, 2013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아시아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며 위헌심사가 제청됐지만, 합헌 판정으로 제도가 유지됐습니다. 이게 작년에 위헌 판정을 받은 겁니다. 미국 헌법(수정헌법 제14조)은 인종에 따른 분류를 금지하고 있으므로 폐기해야 한다고 연방대법원은 밝혔죠. 미국에선 대법원의 보수 성향 판사가 9명 중 6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나온 판결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아무튼 지난달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발표한 올해 신입생 통계에서 아시아계 신입생은 작년보다 7%포인트 증가한 47%를 차지했습니다. 흑인은 15%에서 5%로, 히스패닉은 16%에서 11%로 줄어들었죠.

한은이 제기한 지역 비례선발제도 크게 보면 미국의 차별 시정 정책과 비슷합니다. 비록 학업성취도(학점)에서 기회균등 전형 출신이 뛰어났다고 하지만, 지금의 균등전형보다 숫자가 늘어나면 미국에서 나타난 편견과 질시, 오해와 역차별 등 여러 문제가 우리에게도 생겨날 수 있어요. ‘잃어버린 인재’를 막자며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할 거냐, 미국처럼 차별금지의 가치를 존중할 거냐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조기개입 나서는 선진국들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문제는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선진국에선 이와 관련한 제도적 장치를 발전시켜왔어요. 미국은 1960년대 존슨 대통령 당시 ‘빈곤과의 전쟁(The War on Poverty)’을 시작하면서 저소득 가정의 교육 불평등에 대처하기 위한 헤드 스타트(Head Start)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저소득 가정 아동의 사회성, 학습능력, 건강, 영양상태 등을 개선해 이들을 일반 가정의 아동과 동일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조기에 개입하는 제도입니다. 영국에서도 조기에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아이들이 발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1997년 슈어 스타트(Sure Start)라는 국가적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교육 선진국인 스웨덴은 모든 아동이 지역이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는 교육비 상한제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가구당 보육비 지출이 가구 수입의 3%를 초과하지 않도록 해 저소득 가정을 돕는 겁니다.

NIE 포인트
1. 헌법상 평등권 조항을 찾아보고, 개별 법률은 어떻게 보장하는지 공부해보자.

2. 미국의 차별시정정책이 60년간 미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아보자.
3. 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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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9월 18일)
제목: "복음의 능력, 변화된 삶으로 증명하라"
말씀: 로마서 12:1-2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셜교자: 장단희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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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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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뭐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화에서 변화 받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한 가정을 그리고 한 사회를, 나라와 민족을, 세계 열방을 변화시키시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누군가는 로마서 말씀을 이렇게 말합니다. 22쪽 16장 433절 7100개의 단어가 불꽃이 되어서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을 불태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정수가 담겨 있는 로마서 말씀을 통해서 온 어거스틴, 마틴 루터, 존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로이드 존스 등 우리가 많이 아는 신앙의 선진들이 참 변화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변화를 삶으로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될 사실은 이 복음은 증명한다는 것이 증명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은 그 자체로서 증명이 되어집니다. 스스로 증거 하기에 하나님 말씀은 충분합니다. 그러나 죄악에서 구원받은 인생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하여서 그의 새롭게 변화된 삶을 통하여서 그의 삶의 모습들을 통하여서 성화된 삶의 모습들을 통해 나타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삶 자체로써 복음이 저절로 증명되어야만 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과연 지금 이 삶을 살고 계십니까?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부르신 삶의 현장 가운데 여러분의 변화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온 세상 가운데 찬란하게 드러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읽으셨던 로마서어 12장 1절 말씀을 한목소리로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 로마서 12: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I. 첫 번째, 복음의 능력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도록 합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입니다. 로마서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율법으로서는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없으며, 율법으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 예수 그리스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말씀을 성취하시고, 완전한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제 삶과 구원의 은혜를 받을 하느님께서는 로마서의 모든 전반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복음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말해줬다면 이제 12장부터는 실천 편 그렇게 살아가라. 정리하면 이제 로마서의 이 복음의 말씀을 우리가 머리에서 심장으로 가지고 내려와서 삶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어떤 한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시험 기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아주 자신이 잘 필기한 것뿐만 아니라 옆에 친구가 필기한 것 또 복사 실에서 파는 것, 여러 모든 것까지 핵심자료들을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학생의 시험 성적을 보니깐 잘 나오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자료들은 산더미처럼 많은데 정작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죠. 제 얘기는 아니고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의 이야긴데 자료들을 모았다는 것만으로는 점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그저 성경 말씀이 내 옆에 있다는 것으로만 예수님을 그저 입으로만 시인했다고 나 예수님 믿어요. 라는 이 말로써만 살아간다면, 복음을 와해시키는 곳입니다. 믿음은 곧 삶 자체가 되어야 됩니다. 우리는 믿음을 살아냄으로써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야만 합니다. 로마서 1장 16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헬라인에게로다.
-아멘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음으로 복음의 은혜 안에 복음의 능력 안에 오늘 우리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복음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오늘로 맞서 12장 1절 말씀은 아주 중요한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라는 말씀 바울의 서신의 강화 체에서는 접속사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오늘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로마서에서 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복음에 관한 모든 것이 집약된 그러므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궁극적으로 살아내야만 하는 그 믿음의 삶에 대해서, 실천에 대해서, 오늘 바울은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한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를 위하여서 죽기까지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목숨까지 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우리를 살리신 그 사랑으로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되리라’ 아멘!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이 뜨겁게 불타오르던 2천년 즈음에 저의 씨디플레이어도 아주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아주 유명한 앨범이었던 예술 전도단 고영헌씨 부흥2천 앨범이 나왔었죠. 정말 CD가 뜨거워질 때까지 들었던 그 앨범 중에 1곡이 바로 ‘너의 푸른 가슴속에’ 거기에는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너의 푸른 가슴 속에 하늘의 불타고 있다면 그 나라 주 영광이 너의 삶을 주께 해드려라.’ 주위에 이제 일어나 너의 믿음 나의 마음 가운데 십자가의 흔적이 있다면, 하늘에 불이 타고 있다면,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이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믿음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드리는 것이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이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삶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 시간 함께 로마서 5장 8절 말씀을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로마서 5:8,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이 삶은 가능합니다.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그 사랑으로 나를 위해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사랑으로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 라는 나는 이 신앙 고백이 진정 나의 마음의 중심 우리는 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진정으로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으로 나를 살려내신 십자가 사랑의 그대에 젖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사도바울은 다메섹 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고 수일을 금식하며, 통곡하며,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때 그의 전 존재가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인생이 되었죠. 그리스의 십자가 사랑을 전존재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전 존재적인 삶을 오직 예수 그리스밖에 그리스도께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관통하는 믿음, 그 은혜를 진정으로 경험하는 우리 모두의 삶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저 머리로써만 성숙한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전 존재적인 부분을 하나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부분적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분만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분만 하나님께 내어드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이 되어야 되는 것이죠. 문자 그대로 몸 바쳐 하나님께 나의 삶이 되어야 됩니다. 우리의 몸 자체도 주님 오실 때 영광스러운 부활체로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실제적인 전인의 헌신과 섬김이 나의 삶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그러한 헌신이 되어야 되는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서 삶이라는 바로 리빙입니다. 리빙을 뜻합니다. 영구적이고 완전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어떻게 내가 거룩한 산재물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 안에 영속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죠.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항상 하나님께 나를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래 어떤 존재였습니까? 로마서 6장 23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로마서 6:23,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아멘. 우리는 본래 사망이었으나 죽음이었으나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구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생을 얻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나는 지금 나의 삶을 누구에게 드리고 있습니까? 어디로 드리고 있습니까? 나의 삶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나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 복음이 관통한다면, 과연 지금 나의 삶의 목표와 방향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늘 이것을 질문하고 깨닫게 하시며, 선포하십니다. 이 시간 함께 로마서 6장 13절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로마서 6:13,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아멘. 누군가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은 절대 그 은혜를 누군가가 나를 위해 죽어서 내가 살아내게 되었다면 우리는 결코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그 사람을 잊지 못합니다.
 
한 대학생 청년이 신문 기사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평생을 한순간 허비하지 않겠노라 다짐하였습니다. 왜 이런 고백을 했을까요? 심장 이식을 받았는데, 장기 기증을 통하여서 심장 이식률을 받았는데 한 사람은 사고로 말미암아 뇌사가 되어서 자기에게 심장을 주고 그 목숨을 받아서 이제 본인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하루하루는 어떠했을까요? 또 소방관이 된 한 청년이 한 소방대원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어떤 고백을 하였느냐, 저는 그 순간을 물이 불어나서 캠핑을 갔을 때, 물이 불어나서 강물이 불어났을 때, 나는 건전했는데 힘이 다 빠져서 소방대원 아저씨가 물에 떠내려갔을 때, 내 평생의 다짐은 나도 소방관이 되어서 사람을 구해야겠다. 그래서 그분이 소방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과연 어떨까요? 한국 교육의 아버지 헐버트 선교사님은 이렇게 보게 됐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는데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어떻게 모든 것을 드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살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지체를 나의 삶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거룩한 삶, 그것이 무엇일까요? 오직 말씀의 진리 위에 서는 삶인 줄 믿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타협하지 않고 말씀의 진리만은 붙들은 삶,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지배하는 삶,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아가는 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서 항상 나를 들이는 삶이 나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번에서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전체 문장은 가지고 오지 못하였지만 1번에 대한 것을 질문입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이론은 무엇입니까?” 답을 함께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여기서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그러므로, 나는 주를 위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늘 영적 예배입니다. 영적 예배는 본래 원어 적 의미로 볼 때 합당한 곧 그리스도께서 목숨 값으로 사신 나, 그리스와 연합한 존재로 살아가는 나, 합당한 곧 이치에 맞는 삶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는데 내가 당연히 살아갈 지,정,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합당하게 살아가게 될 삶의 예배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한 사람의 인생이 주 앞에서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면 역사는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온 세상 가운데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잘 아시는 ‘전능자의 그늘로 알려진 시멜리엇은 70년 전 그해 30대 나이에 영광의 문’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높여 드릴 수 있다면 나의 목숨조차 기쁘게, 기쁘게, 기쁘게 내놓으리라.” 선교사님의 순결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에콰도르의 아오카 부족, 이 민족 가운데 복음만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나를 들을 때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또 우리에게 이 가운데서 어떠한 삶을 살라 이어서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읽으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한목소리를 듣겠습니다.
 
*로마서 12: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II. 두 번째,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변화가 된 살아가게 합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이 변화 받은 삶을 살게 하십니다. 새로움과 변화는 거듭난 자가 살아가야 될 마땅한 삶입니다. 나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는 가능합니다. 나의 존재로서는 우리는 결코 살아갈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이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에 이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기에 우리가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의 은혜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내 삶 가운데서 성령의 임재를 구하며 나아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안아주심의 본당 가운데 날마다 모든 기도의 시간 가운데 예배시간과 모든 시간 가운데 가득한 임재를 부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 임재를 경험한 우리가 살아가야 되는 것은 무엇이냐 변화된 삶이죠. 2절 말씀을 통해 바울은 1절에서의 가르침의 실체, 곧 구체적인 삶의 태도를 언급합니다. 12장 전체에서 이 모든 것을 실제적인 성화의 삶을 나타내 주는데, 오늘 2절 말씀에서 그 핵심을 본질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즉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명합니다. 이 세대라 함은 장차 영원히 임할 하나님의 나라와는 대조되는 세대, 즉 영원한 것과는 대비되는 일시적인 것들이죠. 한시적인 시대를 의미합니다. 이 시대의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 정말 가치 없고 볼품없는 것인데 아무런 진리가 없는 것인데 마치 진리인 마냥 떠들어댑니다. 아무것도 아닌 가치인데, 마치 그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그 존재를 부풀게 보입니다. 이 세대는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듭니다. 하나님과는 반대되는 모든 것들, 자본주의와 인본주의 동성애를 앞세워서 그것들을 거대하게 보이게 하며, 마치 그것들이 재미인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타락하고 오염되고 그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가 없는 것이 이 세대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제가 이 세대의 구별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대의 구별법을 아십니까? 그 중심에 말씀에 절대 권위가 없다면, 그것은 이 세대입니다.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다면, 그 중심에 하나님이 자리 잡고 계시지 아니하시다면, 그것은 이 세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는 그것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그것을 본받으려 하십니까?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십자가 복음을 관통하여 오직 하나님께로만 나아가는, 말씀에 굳건한 진리의 반석 위에서는 우리 모든 삶이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부르신 삶의 그 자리에서 날마다 우리의 삶을 개혁하며 복음이 삶 자체가 되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이 나의 삶 되고, 나의 삶 자체를 통하여서 복음이 저절로 증명되어지는 나의 삶 우리로서는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죄악의 눈이 어두운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영적인 안목이 열리는 것이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거듭난 존재가 되었고, 완전히 다시 태어난 존재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새 창조 하신 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이전 것들은 모든 것이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는 그 인생이 나의 인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와 연합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죄의 종노릇 하는 인생처럼 살고 계신건가요? 그런데 왜?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며 그것들에 두려움에 휩싸여 마치 그 앞에서 복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복음을 전락하시는 전락시키는 그 삶을 살고 계십니까?
 
잘 아시는 존 파이퍼 목사님 설교 중에 이러한 예를 들었는데요.
내 아버지에게는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한 가지 불타오르는 사명이 있었는데, 무엇이냐 어딜 가든지 항상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존 파이퍼 목사님은 지금은 더 오래된 해일 텐데 48년 그 이상을 매일과 같이 부엌에 있는 벽걸이에 걸려있는 액자의 이 문구를 보면서 사셨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한번 함께 읽어볼까요?
 
“한 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아멘!
-어디서 많이 들어보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모일 때마다 늘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살겠습니다. 다짐하며, 다짐하고 또 고백하고, 선포하며 우리가 우리의 인생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 앞에 날마다 삶으로 살아내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로 하여금 이 세대가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이 나라 이 땅 위에 역사를 일으키실 줄로 믿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무디 주석으로 아주 잘 알려진 ‘트와이트 무디’가 있습니다. ‘트와이트 무디’는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별명은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또한 선교 동원가이기도 하였습니다. 무디가 살았던 19세기는 어떠한 시대였느냐 산업혁명과 그리고 진화론, 자유주의 이단이 정말로 흥황하고 폭발하던 그러한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시기 가운데 무디가 살아가고 있었죠. 무디는 크리스찬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선데이 크리스천이었죠. 부모님의 신앙을 물려받긴 하였으나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게 교회를 다녔던 그러한 인생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이제는 가족의 생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시카고에 있는 삼촌의 구두 방에 가서 17살 18살 청소년 시기에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에게 1855년 4월 20일 킨볼 선생님이 찾아왔습니다. 무디의 나이 열여덟 살, 그때 선생님이 무디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무디 너를 사랑하시고, 너를 위해 너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했니?’ -그때 무디는 인생에서 지금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가장 뜨겁고 가장 놀라운 인생의 순간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날 그 장소에서 모두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삶의 목표, 삶의 모든 방향 자신으로 향했던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한명의 인생이 변화되는 역사가 그날 이루어졌습니다. 무디가 성령으로 거듭난 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은 날, 무디는 고백하였습니다. “주님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세대의 산업혁명, 진화론, 이단 등이 만무하던 그 시대에 한명의 인생이 변화하였습니다. 그때 어떠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나, 어린이 전도에 대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미국 전역에 기도운동, 전도운동,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복음을 모르는 세계 많은 나라들에 나가서 내가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하고선 우후죽순처럼 일어났습니다. 이 영향은 우리나라까지 끼쳤습니다.
 
한국초기선교사 한국 최초의 영한사전을 번역했던 계일 선교사님은 무디에게 격려를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조선 땅으로 가는 그 발걸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거다. 또한 한국으로 넘어와서 1907년 평양 대 부흥을 주도했던 하디 선교사님도 무디가 일으켰던 그 학교와 그 교육을 받고서는 그 영향력을 받아서 이 땅 가운데 찾아와 많은 일들을 하였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그렇게 이 땅으로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모두 가자! 모두에게로,,, 외치면서 그렇게 달려갔습니다. 시대의 어떤 풍파가 오든, 이 세대가 어찌하든 성령께서 한 인생을 변화시키시니 그때의 부흥이 일어났고, 기도운동이 일어났으며 세계 복음의 확장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적을, 기적이 실체가 되는 것을 우리 사랑의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무디 목사님의 노스필드에 있는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제가 요한일서 2장 17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아멘!
 
*요한일서 2:17,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된 사람은 영원한 것을 바라봅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고 변화된 한 사람을 통하여서 이 세상이,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인생입니다. 우리가 이 삶을 마지막으로,
 
III. 세 번째,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분별하다. 라는 언어적인 뜻은, 하나님의 뜻을 무엇인지 발견해라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 가운데 무엇인지 발견하고 또한 그 안에서 배우라는 것이죠. 곧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아라. 다시 말해서 새로움과 변화 받은 인생 삶의 모든 부분들을 심지어 문제라 할지라도 다시 한 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모든 문제가 오히려 은퇴의 자리 세상의 풍파가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되는 그 역사의 자리로 바라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 뜻을 구하고 계십니까? 가까이는 내 삶과 가정, 더 나아가서는 이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듯이 무엇인지 발견함, 우리는 그 참 진리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의 절대 진리를 수호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우리 사랑의 교회에 주신 비전과 사명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믿음의 분량과 분수대로 성화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 녹음을 영화롭게 사는 삶을 살라 말합니다. 우리 교회에 주신 나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과 분수는 무엇입니까? 왜 이 땅 가운데 사랑의 교회를 이렇게 하나님께서 귀하게 세우셨을까요?
 
이 땅의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통과라는 파도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향한 그 안에서 나와 우리 사랑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그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될 진리와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명 진심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가 본받고 바라볼 것은 이 세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만이 오직 올바로 소개돼야 합니다. 사명 진심으로 주의 영광을 위해 전진해야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의 온 성도는 10월 27일에 광화문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 자리가 여러분에게 어떠한 것으로 다가오십니까? 한국교회연합 예배, 큰 기도회가 그 역사의 날이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다가오십니까?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나라 위에 역사를 일으키실 줄로 믿습니다.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의 정의를 물같이 교회를 마르지 않는 샘같이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고백은 나누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모든 삶과 재산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복음전파를 위해서 바쳤던 바로 모라비안의 리더 진젠 도르프입니다. 그는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단 한 가지 열망이 있으니 곧 그분이다. 오직 그분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복음을 전하다가 죽고 외치는 것이다.” -모라비안의 리더 진젠 도르프(경건주의 선구자)-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사랑의 기회를 통해 변화된 나를 통해 이 복음의 능력을 세상 가운데 찬란히 드러내실 줄 믿습니다. 나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일에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리스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구원에 은혜가 나를 두르고 변화시키셨다면,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라면, 이제 나의 삶 자체가 복음이 되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성령께 붙들려 가는 곳마다 복음에 영향을 끼치며 하나님의 영향을,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시는 모든 영 가족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복음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아 나로서는 할 수 없으나, 성령의 능력으로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를 통해 온 천하만국에 드러나기를 간구해야 한다. 매일 나를 드림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며, 삶 속에서 항상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깨달으며 이 세대의 거짓된 풍조를 말씀의 진리로 막아서며 굳건히 하여 시대 영향력이 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가 변화를 받아서 우리의 삶을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우리의 가정 가운데서도 우리가 한 번 더 양보하고, 한 번 더 희생하고, 한 번 더 참아내면서 우리가 발 담고 사는 가정과 우리가 또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처럼 사는 것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을 온몸과 마음으로 깨달아 알게 하실 줄 믿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사로잡힌 인생이 되어 나의 전 존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예배의 삶이 되고, 전적으로 타락한 사상과 풍조가 물밀 듯 밀려오는 시대 속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말씀중심 복음중심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내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 가운데 찬란히 드러내는 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또한 나의 삶 자체가 복음이 되어 가는 곳마다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삶이 되어 맡겨주신 부르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사명진심으로 살아가며,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으로 증명해 갈 때, 이 땅과 온 세계열방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가 임하실 줄 확신해야 한다.
수요저녁기도회 설교자: 장단희 부목사님-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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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15일)
제목: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말씀: 창세기 22:13-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
대표기도: 남동우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문진호 부목사님(2부) 이기호 부목사님(3부), 임상규 부목사님(4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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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13-18,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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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명절이 될 때마다 신앙의 토대의 뿌리로 간직해야 할 내용들을 한 번 제가 강조하는데 그래서 오늘 지방에 내려간 성도들도 많이 계십니다만 또 역 귀경하신 분들도 계시고 그래서 제가 여러분 명절 선물을 좀 드리고 싶은데 뭘 하나 하는데 오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돈을 주시지’, 그런데 이게 돈 보다도 훨씬 소중한 거에요. 오늘 이 말씀 제가 저의 목회에 목자의 심정이 늘 저에게는 중요하지만 또 동시에 오늘 이 말씀이 아주 중요한 우리 사역의 토대가 된다. 이렇게 여러분 신앙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오늘 주인공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우리에게 믿음의 조상이라고 그랬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란 말은 우리의 삶의 교과서가 된다. 뭐가 된다구요? 교과서가 된다. 소위 롤 모델, 그러니까 역할 모델이 된다. 우리의 삶의 본보기가 된다. 아브라함이 뭐 무슨 본보기가 되나? 키는 아브라함 한 사람 때문에 아브라함의 생애에 그의 인생, 자기는 그렇게 될 줄 몰랐을 거에요.
 
지금부터 4천 년 전 아브라함이 살았던 그 삶을 살아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걸 잘 살고는 자기로서는 끝인 줄 알았는데 4천년 뒤에 지금 우리가 이 추석날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본보기를 가지고 우리도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본보기를 가지고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근원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때문에 아브라함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아브라함의 후에가 되면 그렇게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이렇게 돠는 줄도 몰랐을 거에요. 우리 인생의 교과서가 되는 줄도 몰랐을 거에요.
 
우리 성도들이 가장 소중하게 우리 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서초동의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맞춤형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한가위가 시작되 명절 복된 주일이 되었는데 제가 잠깐 우리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를 멈추고 오늘은 명절 좀 선물을 드릴려고 합니다.
 
명절 좀 선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많은 성도들이 지금 고향 방문을 하고 있고 또 역기경으로 오신 분도 계시는데요. 명절 선물을 드릴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용돈을 주시지 내 용돈보다 더 귀한 것 꼭 정말 필요한 것 제가 명절 주일 될 때마다 정말 우리가 평생 기억해야 할 어떤 신앙의 지침이랄까 토대라 할까 기둥이랄까 그런 내용들을 제가 1번씩 말씀을 나누는데 오늘 드릴 선물은 자 평소에 제가 목자의 심정과 또 오늘 이 드리는 말씀 너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니라. 오늘 말씀대로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아니 목사님 나는 내 한 몸 가누기도 힘든데 나만을 위해 살기도 힘든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하는 그런 분들 계시면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지금 주님이 주신 음성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신앙의 정점이에요.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의 이삭을 바치라는 그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모레아 산에서 바치려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이제 오늘 이 하나님의 테스트에 아브라함이 성공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오늘 이후부터는 아브라함의 큰일이 많이 나오잖아요. 오늘 이게 아주 그냥 아브라함의 어떤 신앙에 아주 야크라이맥스가 정점이에요. 여러분 아브라함을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 그랬잖아요.
 
그리고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라고 그럴 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중요한 축복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겐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축복의 대상이 아니라 땅에 모든 족속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축복의 근원이라는 것이에요. 조금은 쉬운 말로 하면 아브라함이 축복의 유통자가 되는 거예요. 축복의 소통자가 되는 것이 이게 왜 이래 중요한가. 하면 아브라함은 자기가 이렇게 그 시대에 지금부터 한 4천여 년 전에 그 시대에 이렇게 살았는데 자기 산 것으로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까 그 아브라함의 그 삶이 우리 신앙의 교과서가 된 거예요. 본이 된 거예요.
 
아주 교본이 된 거예 로 역할 모델을 한 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내용을 잘 듣고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 그대로 여러분들의 삶에 적용하고 꾸준하게 여러분들이 살아가시다 보면 나중에 여러분들의 자녀 손들이 아 우리 할아버지가 내 신앙의 역할 모델이었다. 별로 반응도 내 할아버지가 아주 할아버지 아린 분들은 내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 뭐 저도 부친이 있고, 저희 할아버지 계셨습니다마는 우리 할아버지가 저에게 역할 모델이셨어요. 근데 우리 할아버지는 나한테 역할모델이라고 생각 안 하셨을 거예요. 근데 그 할아버지의 역할 모델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종을 치시고, 새벽에 새벽이슬을 맞으시고 기도하시고 뭐 특별하신 분이었어요. 야!! 그런데 손자가 오늘 여러분들의 이 얘기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 그러니까 오늘 이 내용을 여러분들이 진짜 남 얘기로 받지 말고 여러분의 말씀으로 받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제가 지난 주일날 우리가 진흙이 아니라, 뭐라 그랬죠? 소금이라고 그랬잖아요. 우리가 소금으로 사는지 안 사는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윤리적으로 어떻게 되나, 좀 우리가 구별되는 삶을 사 이런 것도 있겠지만, 결국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를 원하는 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나, 여러분들의 마지막에 어떻게 되나, 여러분들 끝이 어떻게 되나 우리 교회 용어로 말하면 Finishl well 하는가?
 
오늘 이 예배를 들어오는 방송으로 들어올 모든 분들은 여러분들의 말씀을 통하여 Finishl well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40대, 50대가 인생의 피크가 그러라고 그러는데, 우리는 40~50대가 인생의 피크가 정점이 아니고, 우리는 점점 성화되어 가지고 주님 만나는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정점이 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자 오늘 이 내용은 어느 산에서 된 일이에요.
 
모리아 산에서 된 일이에요. 근데 아브라함은 단순히 모리아 산에서 그냥 이삭을 바치는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걸 나중에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모리아 산의 사건 아브라함 그것이 끝이 아니라, 나중에 이 모리아 산,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다윗이 금 600세겔을 주고 샀어요. 사실은 모리아 산 전체를 다 산거에요.
 
그리고 그 모리아 산에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죠?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건축을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솔로몬 예루살렘의 성전을 건축하고 그걸로 끝이 아니라, 나중에 그 모리아 산 골짜기 또 모리아 산 이 끝자락에 예수님께서 골고다의 십자가를 치고 주님께서 우주적 성전이 되어 주셔 가지고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단순한 것이 아니라, 모리아 산 이삭의 사건 같은데, 사실은 이것이 예루살렘 성전과 오르난의 타작마당과 그다음에 또 뭐죠? 아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우주적 성전의 죄, 그러니까 본인은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이게 어마어마한 일이 된 거예요. 조금 더 들어가면 조금 더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을 주신 축복이 창세기 3장의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그 불순종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난 저주가, 오늘 아브라함의 이 이삭을 바치는 순종의 사건을 통하여 그 모든 불순종을 통한 저주의 역사가 끊어지고, 너무나 놀랍고 신비한 구원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에요. 이걸 바울이 나중에 깨닫고 난 다음에 로마서 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이거는 어마어마한 해석이에요.
 
*로마서 4:17,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죽은 자가 살아나고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프롬 낫팅 투 썸팅(From nothing to something) 아무것도 아닌 게 있는 것이 되는 건데, 지금 우리로 말하면 오늘 이 시간 실적해 가지고 내가 진짜 내가 힘들다 경력 단절이 돼야 지금 힘들다. 하는 그런 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계신다 할지라도 이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 가지고, 오늘 제가 같이 기도하는 기도 제목을 같이 나누고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의 대로를 오늘 열어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에 있는 줄로 확신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윌리엄 윌버 포스’라는 그 영국의 유명한 국회의원이었는데. 좋은 신앙인이에요. 이 말씀을 자기가 그대로 받고 갑자기 마음속에 아 내가 천하만민 오늘 이러면서 16절을 좀 보세요. 16절 같이 또박또박,
 
*창세기 22:16-18,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그리고 종합적으로 오늘 18절, 오늘 설교 제목처럼 시작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걸 윌리엄 윌버프로서는 보다가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천하만국에 복을 줄 수 있는 축복의 유통자가 된다. 그러면서 갈라디아 3장의 바울이 해석한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이방인이나 그다음에 이스라엘 사람이나 여러분 종과 자유자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에요. 당시의 남자와 여자도 넘을 수 없는 벽이고, 특별히 이방인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을 뗄 감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이방인과 이스라엘 사이 이거는 완전히 벽이에요. 그런데 그 모든 걸 초월하는 모든 벽을 부술 수 있는 축복의 근원이 돼야 되겠다. 그걸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제목이 뭐냐면 당시에 노예 무역 제도는 그 당시의 경제 가장 큰 근간이었어요.
 
그 모든 경제의 근간을 다 처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윌리엄 윌버폴스에게 믿음 주시고 기도 제목 주셔갖고 노예 무역제도를 폐지하는, 정말 하나님 나라의 혁혁(赫赫)한 인물이 되는 것이 참 놀라운 것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몇 가지를 기본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 있어요. 그 주신 것을 토대로 해가지고 아브라함이 천하만국의 축복의 소통 자가 된 것인 줄로 믿으셔야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3가지를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뭘 준비를 시켜주셨는가 첫째, 보세요. 뭐라 14절을 보겠습니다. 14절을 보니까,
 
I.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창세기 22:14,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자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된다. 하는 이 말씀이 과거형이에요. 아니면 미래형이에요. 조금 이따 여러분들 숯 양이 다 준비되었는데 이미 준비되었어요. 근데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는 것은 미래형이었어요. 어린 숫양이 준비가 되는데 크게 보아 가지고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이것은 어린 숫양이 준비되는 정도가 아니라, 어린 숫양이 예표가 되어 가지고 앞으로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그 주님을 믿고 사건을 믿고, 구세야주와 주님으로 영접할 때 앞으로 오고는 수많은 사람들과 세대들에게 어마어마한 복음의 신비가 체험된다는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과거 시제를 써야 되는데, 미래 시제를 쓴 것이 여기에 복음의 깊은 신비가 담겨있는 줄로 믿습니다. 미래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요한복음 8장 56절에 보면요. 놀라운 말씀이 있어요. 이 말씀이 옛날엔 해석이 잘 안 되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8:56,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여호와의 산에서 뭐 한다구요? 준비되리라. 그 여호와의 산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이걸 통하여 나중에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사고 솔로몬이 거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이방 많은 사람들이 와서 거기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리고 모든 예루살렘의 성전은 땅의 모든 족속이 와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을 응답하시는 축복의 장소가 되게 만들어주신 것이에요. 그런데 그런 모든 내용들을 나중에 아브라함이 보고 기뻐하였다.
 
예수님 이 말씀을 할 때에 사람들이 아니 너는 50도 안 됐는데 어떻게 네가 아브라함 얘기를 하겠느냐고 그렇게 말을 막 했거든요. 그럴 때, 야!!! 주님께서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기뻐하였느니라. 그래서 창세 1장 7절에 보면요. 아브라함은 선지자라 그랬어요.
 
*창세기 20:7,
....‘그는 선지자라.’
-여러분 지금 오늘 예배를 드리고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냥 오늘 설교 듣는다. 이게 아니고 오늘 이것이 여러분들의 말씀으로 체화가 되고 고백이 되고, 선포가 될 때에 주님이 예배하신 귀한 것들을 보고 즐거워할 때를 주님이 주실 것이에요. 귀한 것이에요. 이걸 깨달은 사도 요한은 이 내용을 깨닫고 요한일서 5장 18절에 뭐라고 말씀하시죠.
 
*요한일서 5:18,
18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라.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양의 보혈의 능력이 함께할 때에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축복을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그게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보너스 축복이에요. 이거 참 우리가 마음 저는 이게 어릴 때부터,,, 야, 나는 부족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그대로 받아 누리면 악한 자가 나를 만지지도 못한다. 저는 이거 에누리 없이 믿습니다. 오늘 말씀과 이 방송을 통한 예배에 참여하면서 또 별관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 마음을 다 같이 해 가지고 ‘주여, 우리 성도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무슨 뭐 보굴관이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에요.
 
오늘 이 시대의 수많은 참 타락하고도 더럽고도 오염된 부패한 수많은 흐름들이 있는데, 그 흐름들이 여러분과 저를 한국 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만지지도 못하게 해 주십시오. 그게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였다. 아브라함이,,, 두 번째로는 뭐가 나와 있습니까? 그걸 위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 준비되는데 두 가지 준비를 시켜주시는데, 하나는 뭐냐면 13절에 보겠습니다. 13절에, 같이 우리 여러분들 이렇게 해서 13절의 시작,
 
II. 일용할 삶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창세기 22:13,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하나님이 이제 모리아 산에서 제물 되는 이런 내용들, 이삭을 드리는데 하느님께서 이삭 대신에 뭘 준비시켜 놨어요. 숫양이 있는데, 그다음에 수풀에 걸려있는지라. 자 이걸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하시는데 먼저 일용할 양식과 필요를 준비시키시고, 일용할 양식과 일용할 필요를 채우신 주님이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이거예요. 그 얘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거, 일용할 삶의 피로를 채우시는 하나님, 무슨 말이냐 숫양이 수풀에 걸려 있다는 것은 아주 우리 뭐 제자훈련 하는 분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겠습니다마는, 지금 아브라함의 이때 나이가 120세쯤 됐어요. 몇 살쯤 됐다고요? 120세예요. 120세가 되면 힘이 있고 재빠르고 빡빡합니까? 아니면 좀 이렇게 좀 이래도 되잖아요. 좀 이렇게 좀 한 박자가 늦잖아요. 한 박자가,,, 교회도 가보면 젊은 분들이 많은 교회는 찬송가를 빨리 부르고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은 경우에는 리듬이 천천히 가요. 천천히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만약에 이 숫양이 양이 수풀 걸려 있지 않고 돌아다니면 아브라함이 그 재물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120세가 되었는데 못 잡아요.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예민하게 아브라함의 처지를 생각 하셔 가지고 아마 슬로비디오처럼 이래 나타나면 안 될 거예요. 그럼 또 옆에 이삭 있지 않습니까? 이삭은 지금 묶여있어요. 지금 이상하게 못 도와줍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다 필요를 아시고, 수풀에 딱 걸려가지고 다 있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숫양을 잡아서 주님께서 아브라함의 필요를 아시고 떠먹여 주셨어요. 우리가 축복의 근원이 된다. 큰 사명이에요. 우리는 축복의 소통 자와 유통자가 큰 사명이에요. 또 하나님 예비하신 준비하신 걸 기대도 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꼭 필요한 것, 일상에 필요한 것, 정말 주님이 응해주시면, 떠먹여주시는 것이에요. 인생을 살다 보면 기도 제목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정말 어려운 일들 많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순순하게 믿을 때, 하나님은 그냥 순수하게 하나님도 반응해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수많은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신명기 2장 7절에 뭐라고 말씀하시냐, 크게 합독합니다.
 
*신명기 2:7,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내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할렐루야!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도 부족함 없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심지어 시편기자가 10편 84편 6절 7절 보면, 더 마음이 찡하게 하는 게 있어요.
 
*시편 84:6-7,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우리가 눈물골짜기가 배제된 그런 인생은 없어요. 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갑니다. 그런데 눈물 골짜기가 지나갈 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은 눈물 골짜기가 많이 샘이 되게 해주신 것이 무슨 말인가 광야 같은 이 땅에서 눈물 골짜기를 지나지는 지나가는 인생들에게 그 눈물 골짜기가 우리를 살게 하시는 샘물이 된다. 이 말이에요. 그 다음에는 또 더 놀라워 7절에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무슨 말입니까? 죽을 것 같이 괴로운 그런 시간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어떤 의미를 주냐,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것이 기력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힘을 얻고 더 얻어 한다. 한 단계 올라가는 그런 삶을 살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자, 산에서 준비되리라. 숯불의 숫양을 준비하신 하나님, 그다음에 이제 또 하나 더 준비하게 하시는 그것이 뭐냐면 12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요. 12절 뒤에 보니까,
 
III. 영혼의 필요를 채우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22:12,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 경외한다는 말은 성숙하게 하나님의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을 경유하는 자리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적인 일용할 피로를 채워주실 뿐 아니라, 영적인 피로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영적인 피로를,그래서 저는 제가 뭐 이렇게 다 말씀을 드릴 수 없지만, 이걸 베드로가 깨닫고 난 다음에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베드로후서 1:3-4,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주님은 우리의 육신의 피로를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시는데, 어떤 노래를 주시는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나는 아까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우리 한 몸 가누기도 힘든 우리 인생에, 신기한 능력으로 제가 황송하고 좀 어떨 때는 좀 부끄럽지만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만들어주시는 거에요. 우리가 뭐라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해주신다. 여러분, 이걸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과연 그런가 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쳐다볼 때에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품, 신성한 하나님의 성품,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축복이 사랑의 교회와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한분 한분들에게 확인되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61세 되신 어떤 여자 집사님이 계시는데, 코로나 기간 동안에 몸이 너무 아팠는데 본인이 몸이 아플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너무 아파 가지고 그 어머니 병수발을 들다가 이분이 그냥 뭐 온라인 예배드리고 막 이렇게 하면서 다 그냥 막 나가떨어졌어요. 몸이 너무 막 그냥 아팠어요. 그런데 내가 이러다가는 온라인 들으다 내가 죽겠구나 싶어갖고 이제 마칠 때 돼 가지고 현장 예배에 오셔갖고 은혜를 받았어요. 어느 현장 예배와 내가 여기서 살겠구나! 하는 그런 어떤 영점 기름 부분부터 은혜를 받았어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죠. 그런데 작년에 한국교회 섬김의 날에 대한 광고를 듣고 아 내가 몸도 아프고 이러지만 그래도 내가 한번 한국교회 섬김의 날에 대해 한번 내가 봉사를 해볼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가 가지고 자원 봉사팀에 들어갔고 작년에 우리 7천여 명의 한국교회 섬김의 날 우리 작년 9월 달 했잖아요. 와가지고 이제 작년에 집회를 하는데 뒤에 섬기다가 첫날 저녁에 주여 삼 칠천여 명의 목회자들이 모여 가지고 주님, 우리를 살려 주시고 주님 우리를 베풀 만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면서 주여 삼창을 하는데, 그 집사람이 같이 주여 삼창하다가 갑자기 불을 받아버렸어요. 그래 가지고 뭐 어깨 통증뿐만 아니라, 관절이 아프고 온몸이 아픈데 갑자기 머리도 발끝까지 쉬어하더니, 싹 치유가 됐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걸 순전하게 하나님이 우리의 육신과 영적인 필요를 채우신다는 걸 믿고 뭐 이런 걸 다 몰라도, 하여튼 순전하게 말씀 받아들이고 할 때, 저는 다 모르지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한 스타일대로 하나님께서 일마다 때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복음의 신선도예요. 신선도,,, 예 제가 정리를 하겠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사회에서는 몰렉 같은 신은 아들을 바쳐가지고 이방신들은 그 바쳐진 소위 인신공양의 파워와 능력을 가지고 신이 아주 힘을 발휘하는 거예요. 그것이 고대 근동사회의 신관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는 이걸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제물 되는 것에 대한 구약의 예표를 보여주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인신 제사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 이삭을 바치는 게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어린 양 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당시 고대 근동사회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뭘 할 수 있는가, 세상의 신은 그랬는데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해 주셨는가? 그러니까 이삭 바치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표현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그 당시에 인신공양의 잘못된 이방의 모든 어떤 이런 제도들과 신적 관념들을 다 처리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성경에 보면 앞에 22장 앞에 보면 아 이삭을 보고 말했어요. ‘하나님이 준비하실 거야.’ 아들 바치라고 그랬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준비하실 거예요.
 
그리고 아브라함 믿음 어디까지 나왔냐면 히브리 11장을 보면, 이 사건을 해석을 하면서 설령 이삭이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려 주실 것을 믿었느니라. 그랬어요. 놀라운 이 복음의 깊은 내용을 깨닫는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걸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은혜가 아브라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교과서가 되고, 하나님께서 그의 육신의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떠먹여주신 것을 통하여 힘을 얻어 이 삶을 실천하니까 그 아들이삭이 그걸 그대로 본받았어요. 교과서 본 대로 하는 거예요. 그냥 그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파고 괴롭히고 이삭 거 빼앗아가고 다 한다더니, 이삭이 It’s OK!, 그냥 넉넉하게 이렇게 이삭이 그 주위에 축복의 근원이 된 줄로 믿습니다. 유통자가 됐어요. 그리고 이삭이 나중에 말년에 야곱의 아들 요셉을 품에 안고 교육을 했어요.
 
그러니까 요셉이 이삭 할아버지에게 받은 그 교육을 가지고 아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눈물 골짜기를 은혜의 샘물을 만들어주신 주님이심을 믿고 찬양합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채우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뭐 이런 비슷한 내용들 말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요셉이 자기가 잘해 가지고 감옥에서도 그 종살이 하면서도 자기가 잘해 가지고 거기서 축복 유통자가 돼갖고 나중에 요셉 한 사람 때문에 고대 근동사회가 다 복을 받고, 모든 굶주림을 해결된 줄로 믿습니다. 그야말로 요셉이 고대 근동사회에 요셉의 창고를 열어 축복의 유통자가 된 것입니다.
 
생명의 공급자,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의 수혜자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이 말씀을 깨달은 사람은 제가 한 번씩 강조합니다마는 시골의 무학 한 할머니도 세계를 위하여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시고, 가난한 달동네의 청년들도 이거 하나 깨닫고 흙 수저로 태어났다고 고민하거나 아파하거나 세상을 비관하거나 한탄하고 세상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생명의 씨앗으로 박히면,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생수가 되면, 이 말씀이 씨앗으로만 있으면 안 되고, 이것이 생수가 되어서 발아가 되고 거기에 싹이 움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되면, 남들이 볼 때 초라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내 것이 끝까지 유지만 하면, 그의 인생이 finishing well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본다 할지라도 거기에 걸 맞는 누가 봐도 아 예수인 삶 다르구나! 하는 그런 축복을 받게 되는 줄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에 맞는 어떤 제가 경험할 뭐가 없나 하고 제가 기도하다가, 2010년도에 에딘 버러 선교 100주년 대회가 있었어요. 그것은 1910년도에 지금부터 한 114년 전이죠. 1910년도에 전 세계의 첫 번째 전 세계 월드 미션 컨퍼런스, 또 더 퍼스트 월드 미션 컨퍼런스가 에든 버럿 대학교에서 있었어요. 에든 버러시였었어요. 그걸 기념해 가지고 100주년을 하는데 그 100주년 하는 첫날 저녁에 제가 키노트 스피커였어요. 월드 리폼드 펠로십 해가지고 세계 게이름 모여갖고 에든버러 대학교 강당에서 말씀을 전했어요.
 
제가 한 50번 정도 사고 싶은 말씀을 그 말씀을 전하고 난 다음에 이제 저는 그 끝나고 바로 LA에 있는 우리 칼 세미나 집회를 인도하러 가야 되는데, 제자훈련 지도자로 가야 되는데 갑자기 끝날 때쯤 돼가지고 아이슬란드의 대폭발 화산대 폭발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비행기가 뜨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리고 여기 우리 얼마나 있어야 되나 보니까 며칠을 더 있어요. 비행기 뜰 때까지는 화산재 가라앉아야 되니까. 그걸 뜰 때 뜰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거기에 있기가 뭣해 가지고 에딘버러에서 런던에 와가지고 이제 런던에서 사역을 하려고 런던 그 킹스 크로스라고 역에 딱 도착을 했는데 에든버러에서 한 5시간 정도 걸려요 도착을 했는데 뒤에서 누가 제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보니까 덕 버셀이라고 당시에 로잔 총재였어요.
 
그래서 저녁에 좀 자기하고 식사같이 할 수 있냐고 좀 얘기할 수 있냐 오케이, 그래서 인제 대화를 하는데 앞으로 10월 달에 그러니까 2010년 10월 한 6개월 정도 남았는데 로잔 3차 세계대회를 위하여 한국 교회가 약속하겠는데, 지금 거의 안 들어오고 있다. 좀 어떻게 좀 도와줄 수 없나 그래서 제가 기도하고, 알아보겠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제가 그 LA로 가가지고 LA에서 그 칼 세미나를 인도하는데 마치고 난 다음 어떤 미국에 있는 사업하시는 장로님을 제가 만났어요. 만나갖고 제가 기도하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고 한국 교회가 역할을 해야 되는데 어떡하면 좋습니까? 좀 장로님 기도해 보세요. 그리고 저도 기도하겠다고 그리고 전 서울 들어왔어요. 들어왔는데 1주일 뒤에 그 장로님이 목사님, 말씀 듣고 제가 로잔을 위하여 100만 불을 내겠습니다. 그랬어요.
 
여러분, 지금도 100만 불은 큰돈이지만 14년 전에 100만 불은 지금 2~30억과 마찬가지일 거예요. 아마 그래갖고 저희 교회도 좀 협조를 하고 그렇게 해서 한국교회가 17만불 이상을 만들어서 로잔 대회에 헌금을 했어요. 첫날 저녁이, 첫날 저녁이 이제 ‘아시안 나잇’이라고 그래갖고 저보고 첫날 저녁에 순서대로 좀 인도하라 특별히 기도회를 인도해 달라고 제가 영어도 스트레스 받고 난 못 한다고 그랬어요. 근데 무조건 그래서 할 수 없이 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갖고 북한에서 탈북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있었어요. 저희 교회에... 근데 걔를 알아보니까 그의 아버지가 북한 고위층이었는데. 탈북을 하고 중국에서 목사님을 만나갖고 이 복음을 들은 거예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어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이분이 이 귀한 예수님을 나 혼자만 알면 어떻겠나, 아니 이건 아닌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탈북한 북한 고위층이 다시 평양으로 들어갔어요. 평양으로 들어가 가지고 전도하다가 총살당했어요. 그리고 얘만 고아로 남겨진 거예요. 그걸 우리가 너무 가슴이 아프고 얘를 도와 그래서 얘를 몇 달 동안 훈련을 해 가지고 그 첫날 저녁에 이 고등학교 2학년 아이가 한 25분간 영어도 잘 못하는데 훈련을 하니까 됐어요. 그래 가지고 간증을 하고 눈물 콧물 그리고 4500명 세계 지도자들이 와가지고 하여튼 그날 그냥 불이 떨어졌어요. 난리가 난 거에요.
 
그리고 마치고 난 다음에 이제 인제 갑자기 인터뷰 한다고 그러는데 전 세계 뭐 기자들이 막 그냥 난 제 생에서 그런 거 처음 봤어요. 뭐 UP AP 로이터 뭐 UPI 이런 통신사들이 막 뛰어 들어오는데 대화를 하고 그런데 그 간증을 들은 분 중의 하나가 미국의 바이올라 대학교에 베리콜이라고 총장님이 계셨어요. 이분이 너무 은혜를 받아 가지고 얘를 4년 풀 스칼라십을 주겠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그래서 시티컬리지에서 공부를 좀 하고 들어갔고 이제 4학년 졸업 제가 몇 년 전에 바이올로 대학교를 방문하는데 뒤에서 누가 목사님하고 허그를 한 거예요. 보니까 그애야, 너 뭐 하냐? 그러니까 보니까 또 남자아이하고 같이 있어요. 1.5세 미국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인데 꿈이 뭐냐? 앞으로 선교를 나가겠다고, 그리고 나는 걔들이 애 낳으면 반드시 선교사 시킬 거라고 내가 생각이 돼요. 자 제가 그냥 좀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화산재 폭발이, 화산재 폭발로 끝난 것이 아니고, 로잔을 위하여 섬김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시고, 그 탈북하신 북한 고위층이 총살당한 것은 너무 아픈 일이지만 거기서도 끝이 아니고, 그 딸이 세계적인 모임 세계 최고의 선교모임에서 첫날 저녁에 간증하게 하시고,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졌냐, 그가 또 남자친구를 만나고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고 그 자녀들이 만약에 될 때, 이게 그야말로 여러분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런 것이 그냥 단순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에 이것이 어떤 식으로 접목이 될지 그리고 이런 것들을 믿고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한 연대기를 가지고 같이 우리가 네트워킹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축복의 근원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지난 월요일 날 우리가 10월 27일 날 온라인으로 100만 명, 오프라인으로 현장에 100만 명 200만 명이 한국 교회가 연합 예배를 드리고, 그다음 큰 기도회를 한다. 지난주는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다음 주에 다음, 다음 주 외국인들이 오셔 가지고 집회를 하기 때문에 제가 이 말씀드릴 기회가 별로 없어서 오늘 드리는 거예요.
 
10월 27일, 10월 21일 한국교회 섬김의 날 우리 8천여 명의 사역자들이 와서 우리 교회에서 집회하는 것 말고 10월 27일 날 광화문 시청 앞 서울역 용산까지 또 서대문에서 또 종로까지 100만 명이 모여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주님 우리가 이 시대를 향한 선한연대기를 갖고 정말 여 우선 우리가 목표가 ‘악법 차별 금지법’ 이거 저기 뭐야? ‘소수인권법’ 법으로 하는 미명 아래 그야말로 복음의 역사를 훼손하는 이런 일이 있으면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힘을 모으는 그것이 주님 나라를 위한 이런 축복의 근원이 되기 위한 선한 연대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월요일 날 메디아데이, 우리가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를 위하여 그날 최병남 목사님 여러분들 아실 텐데 최 목사님이 본인의 자녀들은 텍사스에 태어나고 자랐는데, 텍사스가 나름 미국에서는 바이블벨트라고 하는 곳이지만 차별금지법, 소수인권법이 통과가 되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가 생각할 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소수의 인권을 장려한다. 그래갖고 다수의 기독교는 학교 가서 기도도 못 해, 근데 소수라고 하는 이슬람은 와가지고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기도할 장소까지 만들어주는 거예요. 다수의 뭐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학교 갖고 가질 못해, 근데 소수라고 하는 이슬람은 뭐예요? 꾸란을 갖고 가는 거예요. 이게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게 정상이 아닌 것만 사실이에요. 맞습니까?
 
우리가 앞으로 이 차별금지법, 소수인권법이 통과되고 나면 정말 축복의 근원이 되는 이 기회가 놓쳐지게 되는 것이에요. 10월 27일 날, 우리가 함께 모여 가지고 모두가 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릴 때 우리 모두가 다 축복의 근원이 될 때 그것이 한국 교회 새로운 부흥의 물꼬가 터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하여 통일로 가는 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어제 새벽에도 말씀드렸지만 100만 명이 그냥 판문점으로 북한까지 가버리면 어떨까요? 500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다 함께 평양으로 가면 어떨까요? 예 500만 명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축복의 근원이 되면 세상이 뒤집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오늘 이 은혜가 우리 온 성도들에게 평생 동안 여러분의 것으로 확인되게 해 주셔서 목자의 심정으로 시대를 바라보며, 축복의 유통자로서 살게 될 때 여러분들을 통하여 이 시대의 역사가 새롭게 집필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요약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여호와 이레로 예비하여 주시는 줄 믿고,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축복의 유통자로 살아가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무한자원에 참여할 때, 눈물 골짜기를 은혜의 샘물과 소낙비로 바꾸어 주시는 줄 확신하며 나로 말미암아 반드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 모두가 은혜의 선한 연대에 금식하며 함께 할 때,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를 통하여 강력한 부흥의 르네상스를 경험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선한 연대에 거룩한 나비효과가 일어나서 한국 교회와 세계 복음주의 교회 쇠퇴를 막는 하나님 나라에 주시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는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는 은총의 소통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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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9월 14일)
제목: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말씀: 사무엘상 11:14
대표기도: 임병영 부목사님(목양행정팀)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창목회(교역장님들) 찬양연합회
말씀봉독: 정현선 어린이(초등부), 한민재 어린이(소년부)
명절음악회 사회: 조성환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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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1:14,
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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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함께 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외상 11장 14절, 한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봉독은 초등부 정현선 어린이와 소년부 한민재 어린이가 봉독하겠습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호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이제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라는 제목으로 토빗의 말씀을 전해 주시겠습니다. 성경봉독 다시 올라와요.
 
왜냐하면, 오늘 이렇게 한복을 다 입고 왔는데 올라 우리 같이 아유 얼마나 이뻐요!! 아이구야 가만있어 몇 학년이야 4학년이요. 또 저 6학년 다시 한번요 다시 한 번 봉독 해봐!! 아이 얼마나 이쁜지, 우리 박수 한번 따 주세요. 우리 둘이 한번 하고 우리 다시 한 번 합시다. 한번 다시 해요. 시작 ~~
참 참 따뜻한 광경이고 지난번에 우리 토요비전새벽예배 오신 여러분 어떤 분들이 사랑의교회 토비새는 대가족 예배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가족이에요? 대가족 예배. 몇 대가요? 4대가, 요즘은 2대가 같이 모이기도 힘든 세대인데 4대 같이 모여 가지고 오늘 우리 저 우리 두 아이는 4학년 6학년 두 아이는 평생 못 잊을 거예요. 그리고 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이거 아마 평생 못 잊을 거예요. 저 두 아이는 나라를 새롭게 할 아이들이에요.
 
여러분 정말 나라를 한국이 한가위와 구정은 위력이 세기는 쎕니다. 그런데 우리 사랑의 교회 주님의 은혜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아가야 할지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허락해주실 줄 알고 믿습니다.
 
저희는 지금 10월 6일부터 금식기도 한 주간,
10월 14일부터 특별 새벽부흥회, 또
10월 21일부터 한국교회 섬김의 날,
10월 27일날 한국 교회 대연합 예배 및 큰 기도회 날입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교우들은 이제 뭐 익숙하게 이거는 다 될 거다. 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분들은 그게 되겠나? 거기다가 또 보너스 축복으로 9월 21일, 22일, 이제 다음주 토요일 날 주요일 날, 그다음주 또 토요일 날, 주요일 날, 10번에 걸쳐서 ‘글로벌 리더 부흥사경회’가 있어요. 말씀 사경회가 있어요. 이거는 여러 평생 한 번도 맛보기 힘든 그런 시간이 될지 몰라요. 그런데 이 일을 통하여 저는 그렇기도 하는 거예요. 믿음의 4대가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으로 무장되는 시간이에요.
 
아멘!! 그리고 한국 교회는 전 세계에 지금 이렇게 집중력을 가지고 집중력을 가지고 한국 교회가 100만이 모인다. 온라인 100만, 오프라인 100만, 아마 그때 될 거예요. 이제 여러분들 되겠나 하겠지만,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래 다 되는데 이렇게 집중력 있게 할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어요. 전 세계 그리고 강남에 이 안아주시며 본당을 주시고 오늘 이 토요 명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토비새를 드리고 이와 같이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이런 나라도 전 세계 거의 없어요. 맞습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사명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 사명은 뭐냐, 나라를 새롭게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나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일신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날이 갈수록 새럽게 발전하는 모습), 이 뵐 때마다 매주일 매주일의 한 역사가 돼야 되는 것이 그래서 이제 제가 그래도 한국 교회가 집중력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저는 해외에서 21년을 살았기 때문에, 나라를 비교할 수 있잖아요. 또 아이 트레블 더 올 오브 더 월드, 웬만한 나라는 제가 다 옛날에 다 다녀봤어요. 그것도 그냥 뭐 관광을 한 것이 아니라 집회를 주로 하면서 그러면서 다녀보면서 느낀 거 중의 하나가 한국 교회 가진 큰 강점이 있어요. 그중에 하나가 뭐냐면요 찬송 자본이 있어요. 뭐가 있다고요.
 
찬송 자본은,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서 전 세계 교회에서 100만 명이 모여 가지고 인애 하신 구세주여!~~ 인애 하신 구세주여~!! 그다음 부흥의 불길 타오르기 하소서. 그리고 이래 찬성을 하면 세계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은 찬송을 버전이 달라요. 그 미국 같은 경우도 어떤 데 이런 찬송 쓰고, 어떤 데는 이런 찬송 쓰고, 성경도 뭐 NASB, NIV, ESB, 또 뭐 이 여러 성경도 여러 버전들이 많은데,,,
 
우리는 성경 1권, 찬송 1권, 이거는요 있을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만약 100만 명이 모여 가지고, 100만 명이 모여 가지고, 우리가 함께 찬송을 부르고 함께 기도하고, 100만 명의 같은 가사를 가지고 찬송을 하고, 그 기름 부분과 능력을 가지고 은혜를 받으면요. 나는 이번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100만명 모여가지고 고대로 파주로 올라가고, 임진각 지나가지고, 평양까지 100만 명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될까? 아 나는 저는요. 나중에 안 되면 우리나라 그냥 예수님들은 천만 명이 모여 가지고 그냥 그대로 휴전선 지나가 버리는 거예요. 앞에서 몇 명 죽지 뭐. 나도 죽고 몇 명 죽지 뭐... 저는 그 생각을 요즘 하면서, 야! 100만 명이 모여 가지고, 파주로 해 가지고 저기 뭐야? 물론 지뢰밭이 다 있겠지만, 어 지뢰밭 위에 다리를 놓아 가지고 말이죠. 같은 성도들 100만 명이 그냥 평양까지 가버리는 거야. 그게 영권이고, 능력이고 기름 부으심이에요. 그걸 나라를 새롭게 하는 것이 어디로 갔어요? 어디로 갔어요. 길갈로 가서, 길갈이 어떤 곳이에요? 오늘 보면은 길갈이 어떤 곳이에요.
 
길갈은 가나안에 가난한 땅에 들어가고 첫발을 디딘 곳이에요.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을 확인하는 할례를 처음 한 곳이에요. 국가적으로, 전 민족적으로 할례를 시행해서, 할례는 뭐예요? 인간의 모든 힘을 다 내려놓고 아 하나님밖에 없다. 할례가 뭐예요? 내 자신을 주장할 거라면, 성결해야 한다. 그래서 길갈은 국가적인 제의, 국가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 정치적으로 제의적인 중심지였어요. 그래서 ‘우리가 일어나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는 뜻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의 방법대로 우리가 집중할 때에 하나님은 이 나라를 새롭게 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걸 그래서 이런 내용을 가지고 시작하는 누가 뭐 우리 저 부산의 세계록에 손현보 목사님이 열심히 힘을 냈지만, 또 우리가 열심히 하지만 이건 누가 이해하겠어요. 한국은 또 성도들은 또 이렇게 하지만 지도자들은 생각이 다른 분들이 너무 많아요. 또 심지어 어떤 사람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자기는 그리소니 아닌 것처럼 맨날 그리스도인을 조롱하고, 비방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그러면 됩니까? 안 됩니까? 누가 잘못하면 같이 아파하고, 같이 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식이 잘못하면 너 이 새끼 죄송합니다. 너희 자식이 너 내 자식 아니야. 발로 차고 그냥 욕하고 그냥 신문에 광고 내고, 그냥 비난하고 피켓 듭니까?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의 가슴에 더 큰 구멍이 나서 같이 아파주고, 같이 가슴앓이 하고 같이 아파하고 이러는 거죠. 그게 부모의 마음이고, 목자의 심정이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게 지난 주간에 백석 교단이 한국 제3큰교단 백석교단 그다음에 고신 고신 아시죠. 고신 좀 센데 고신교단, 그다음 침례교 알죠? 침례교 대표적으로 또 대신이라는 데도 있어요. 4교단이 지난 주간 교단총회를 했는데, 고신교단, 백석 교단은요, 교단에서 그냥 10월 27일 날 다 모이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교단총회에서 결의를 해버렸어요. 침신도 가자. 대신도 결의하고 있을 수가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해요.
 
이제 문제는 우리 교단으로서 합동하고, 그다음 통합, 합동통합, 참 이름은 또 합동통합, 우리 교단하고 한국교회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2교단인데, 이제 다음다음 주간에 교단총회 할 때, 그 교단총회에서 또 같이 결의하고 그러면 이번에 10월 27일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이 이거 이걸 위해 앞장서서 기도하는 정말 선봉장들이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를 통하여 역사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겁니다. 다시요. ‘사무엘이 백성들에게로 가라되 오라 우리가 어디로 갔어요? 그다음 뭐예요? 나라를 새롭게 하자. 뭐로요 말씀으로, 찬양으로, 기도로, 하나님 날에 대한 꿈으로, 예 그래서 이 일이 여러분들에게 제대로 잘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바라고 이 일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실천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제 친척 동생 가운데 분석 철학을 하는 철학자가 있어요. 서울대 철학 박사를 하고, 이제 대학 교수인데 어느 날 형님 나 목사 되겠습니다. 목사 되는 거 쉽지 않은데, 그래갖고 조금 늦게 목회자가 됐어요. 그래서 이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나한테 뭐 형님, 목사 제가 이 학자로서 교수로 가는데,, 목사와 목사로서의 뭐 인제 오케이를 해야 되는데 저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래서 제가 “야 니 얼굴 표정부터 바꿔라” 했어요. 주중에 우리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그 얘기를 나는 기억도 별로 안 나는데, 형님이 나한테 니 얼굴 표정부터 바꿔라. 그러면 내 얼굴 표정을 내가 왜 바꿔야지? 이 친구는 뭐냐하면, 철학 전공이냐 분석철학이 전공이야. 이 분석을 한 거예요. 내가 얼굴을 왜 바꿔야 되는데? 그러면서 아 교수와 목사의 차이가 뭔가, 분석 철학자 얘기를 들어보세요. 교수와 목자 목사, 학자와 목사의 차이가 뭔가, 학자는 진리를 찾는 것이고, 그래서 교수는 진리를 찾아서 선포하고 진리가 전달되면 된다는 거예요. 결과는 중요하잖아요.
 
학생들이 그 진리를 믿든 안 믿든 교수는 일단 자기가 생각한 진리를 그냥 선포하면 된다는 근데 자기 깨달은 게 뭐냐 목사는요. 진리대로 살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목회를 해보면서, 진리대로 살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수가 어려워요? 목사가 어려워요? 그거는 뭐 답이 그건 정확하죠. 그거는,,, 이 친구가 분석 철학자인데 응용 철학이 안 되면 목사님 못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난 주말 만났는데 그 친구 얼굴이 환해요. 학자 얼굴에서 목회자 얼굴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제가 또 추가를 했지 오목사, 걔도 오목사에 오시니까 “오 목사, 얼굴 표정이 바뀌어야 되는데 더 중요한 거는 니가 지금 평소에 무표정하게 있는 그 모습이 너의 미래야!” 형님 무슨 말을 니가 무표정하게 다 있는 그 모습이 너의 미래야. 우리의 평소에 얼굴 표정도, 다들 여러 지하철에서 앉아있는 여러 모습부터, 나는 지하철 가면 너무 재미있어요. 사람들의 얼굴 모습이요. 전부 다 각개처럼 전부 다 무표정이야 그리고 장래가 없는 얼굴이야. 거의 시체 같은 얼굴이 있습니다. 근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소금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자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포로 우리를 진흙에서 소금으로 바꿔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그 은혜를 가지고 여러분, 오늘 이 명절 잔치하면서 오늘 기쁘고 감사해가지고 내일 주일 예배, 또 지방에 가서 여러분들 모두가 다 정말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세우는 자의 얼굴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들 미래가 그리 돼야 됩니다.
 
바로 이어서 사무엘상 뒤에 19장 가면요. 제가 지난주에 우리 명절을 박희천 목사님 모시고 제자들이 좀 모여가지고 같이 점심을 먹었어요. 항상 점심 값은 제가 내요. 그런데 박 목사님이 오늘 한 말씀 해달라고 그러니까 너무 명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9장에 보면 뭐가 있냐 하면, 라마나욧이라고 했는데 여러분 라마나욧요? 압니까라마나욧에 사무엘이 운영하던 신학교가 있었어요. 그 선지 선지생도가 있었어요. 근데 그 라마나욧에 너무 영감과 능력이 넘쳐나 가지고 그 선지생도들이 막 하나님 은혜를 받아가지고, 불을 받아가지고, 다 예언을 하는 거예요. 예언 예언을 하는데, 예언을 하는데 아 거기에 다윗이 이제 피하러 갔다가 다윗이 이제 사울 왕의 어떤 추적을 피해 도망을 갈 라마나욧에 숨었어요. 그러니까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다윗을 찾으러 왔다가, 라마나욧에 와 가지고 이 생도들이 다 막, 그 막 능력을 가지고 예언을 하고 변화가 되고, 난리가 나니까 아니 사울 왕도 있잖아요. 예언을 하는 거예요. 영향을 받아가지고,,, 그것도 빨가벗고 있잖아요. 벌거벗은 채 이언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뒤에 나옵니다. ‘사울도 선지자냐?’ 예언을 하니까 사울왕도 선지자냐? 사무엘상 19장 한번 읽어보세요.
 
*사무엘상 19:24,
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고 왔다가 그 자리가 너무 뜨겁고 능력이 있으니까, 능력이 있으니까 이 죽이려고 했던 이 문제 있는 사람도 와 가지고 변화가 됐다는 것이에요. 아멘!! 여러분 불은 뜨거워요? 안 뜨거워요? 불이 뜨겁다는 걸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까? 불이 뜨겁다는 걸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지요? 그러니까 불이 불에 뜨거우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뜨거운 거예요. 사랑의 교회 성도들 앞으로 우리 10월 27일 날, 100만 명이 오픈을 해 왔고 완전히 꽉 찰 거예요.
 
그래서 지금 kEY가 뭐냐 하면요. 교황이 왔을 때, 전국에서 캐둘릭 믿는 사람들이 버스가 1800대가 왔대요. 버스 전국에서 근데 우리나라 목표가 전국에서 3천 대가 와야 돼요. 버스가,,, 와야 되고, 그다음에 대한민국 지방교회나 지역 교회 가운데서 뭐예요? 봉고차 하나 없는 교회가 거의 없어요. 없는 교회는 또 우리 교회 굳이 복귀해 가지고 또 주면 되는 거고, 그러니까 전부 그리고 저게 뭡니까? 다 못 들어도 괜찮아요. 그리고 지하철 오고 해갖고 서울역 아마 이분들 서울역으로 와가지고, 그 근처를 꽉 채우면 되는 거예요. 와가지고 같이 찬양하고 같이 하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 기도와 제 생각은 그래요.
 
대한민국 교회는 10월 27일을 딱 기점으로 해 가지고, 10월 27일에 온 교회와 안경 안 온 교회가 이렇게 딱 나눠지게 될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요. 다 우리가 함께 참여하여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그리고 그 능력과 은혜가 너무 귀해 가지고, 우리 오늘 교육자들 찬양했는데, 오늘 찬성 선곡도 잘하고 잘 했는데, 무슨 위대한 찬성할 필요가 없고, 내 신앙 고백을 잘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거예요.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쉬운 분 아쉬운 마음뿐일세.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여 나의 생명과 나의 참사망은 오직 주위에 수뿐일세 할렐루야♬~~ 이런 고백을 이런 고백을 진짜로 하면요. 주위가 같이 뜨거워지는 거예요.
 
그 엉터리 사울 왕이 말이에요. 그 엉터리 사울 왕이 벌거벗고 예언을 했어요. 예언을 오늘 우리의 기백과 우리의 기도와 헌신이, 우리의 헌신 때문에, 이 자리는 명절이기 때문에 평소처럼 이렇게 다 많이 못 모이지만,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똘똘 뭉치면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그렇게 하면 이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에요. 나는 꿈꿔요. 대한민국 500만 명만 그대로 쫙 해가지고 그냥 휴전선을 넘고, 500만 명이 찬송하면서 있잖아요. 500만 명 모여가지고 쫙 가면 어떻게 될까? 통일되지 않을까? 하나님이 주실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사무엘상 11장 14절 크게 합독하고 우리 다음 순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사무엘상 11:14,
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우리 함께 이런 소명을 가지고 할 때에 하나님 여러분들이 영적 용량을 키워주시고,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하느님께서 예배하신 귀한 일들을 물 붓듯 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경봉독한 아이들 이름이 다시 뭘까? 아까 얘기도 있었는데, 잠깐 정현선, 한민재 어린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여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오늘 이번 명절 기간 동안 큰 은혜주시고, 앞뒤 좌우를 호위하시고,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능력과 은혜 때문에 사울 왕 같은 사람도 와가지고 변화 받을 수 있게 하시고, 그리고 불이 뜨겁다고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그랬죠? 불은 뜨거우니까,,, 우리가 뭐 우리가 이런 마음 가지고 우리가 늘 주님을 섬기고, 사역하고 은혜 받고 이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수많은 일들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10월 27일 이후에 한국 교회는, 10월 27일에 적극 참여한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가 좀 나누어지게 될 거예요. 나눠준 이거는 좋은 의미에서,,, 참여하자는 분들이 참여한 교회의 영향을 받았다. 언젠가 우리가 복음으로 남북을 통일할 수 있는 그날도 오리라고 믿습니다. 정말 500만 명이 다 그리스노인들이 찬송하면서 있잖아요. 찬송하면서 휴전선을 돌파하는 그날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날은 올 수 있도록 은혜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이제 다음 순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조성환 목사님 닥터죠 우리 조성환 목사님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요약
믿음의 4대가 7천 기도용사가 기도로 가정 제단을 회복할 때, 민족의 영적 맥박이 다시 고동치게 하시고 대한민국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임하게 하실 줄 굳게 믿으며, 민족 고유 명절인 추석에도 함께 모인 온 가족들이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며 인생의 우선순위를 회복할 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기적의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 모든 영가족들이 금식기도(10.6), 특새(10,14)와 한교섬(10.21)과 한국교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10.27)를 통해 간절히 부르짖을 때, 부흥의 불길이 힘차게 타오르기를 우리 함께 전심을 다해서 주님의 참된 예배자로,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자로 거듭나고 주일예배에 늘 참석하여 본당에서의 쉐키나의 영광과 고향의 따스함을 경험하여 생명과 피의 복음으로 천국시민의 정체성을 회복하자.
 










=====(명절 음악회-토요비전새벽예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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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9월 11일)
제목: "하나님만을 끝까지 신뢰하는 제자"
말씀: 누가복음 12:1-12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강경식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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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2:1-12,
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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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중에 특별히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수많은 기적(奇蹟)들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사람들이 얼마만큼 모였는지를 보면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서로 밟힐 만큼 모였다. 라고 합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아마도 여기에 계신 모든 우리 손님들의 생각을 해보면 아마 다닥다닥 붙어서 예배를 드리는 숫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기적을 베푸시는 그분이 지금 이 시간에 오신다면 아마 이 시간은 예수님을 보려고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10월 27일 광화문에서 한국 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그때 현장에서 서로 밟힐 만큼 모여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때 현장에서 서로 밟힐 만큼 모여서 하나님께 나갈 때 그때가 우리가 하나님께 전심으로 나아가는 시간이고 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귀한 은혜가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동성(同性)애(愛)라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성경을 왜곡하고 또 기독교인들의 입을 막으려는 그러한 그들의 모든 시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무력화(無力化)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믿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주변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무리이고 한 부류는 제자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말씀보다는 떡을 먹고 배부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모두 떠났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핍박(逼迫)이 올 때 비록 두려움 때문에 한순간 잠시 부인은 했지만, 끝내 예수님을 위해서 한평생 살았습니다. 본문 10절에서,
 
*누가복음 12:10,
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말로 인자를 거역(拒逆)하면 용서(容恕)를 받지만 성령(聖靈)을 모독(冒瀆)하는 자는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성령을 모독한다는 것은 그 해석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영향력(影響力)있는 설득력 있는 해석을 보면 성령을 모독한다는 것은 구원과 관련하여 성냥의 메시지와 사역을 단순히 이례적(異例的)인 거부가 아니라, 지속되고 일관(一貫)되게, 끝까지 그리고 또한 결정적으로 부인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결국 성령을 끝까지 거부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 수순(數旬)으로 구원(救援)을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⓵오늘날 교회 안에도 무리와 제자가 있습니다. 육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자신에게 어려움이 찾아들면 교회를 떠나는 그런 사람들은 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⓶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順從)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제자(弟子)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비에 참여하시는 모든 우리 성노님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고 섬기는 주님의 제자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진정한 제자로서의 모습이 어떠해야 되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온라인으로 참여하시는 분들과 이 자리에 참여하시는 모든 우리의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시고 있을 줄 믿습니다. 또한 주님의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지를 귀 기울이시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I. 첫째,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外飾)을 주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러분은 바리세인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바리세인은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고 그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고 또 구조 율법이라고 하는 것을 연구하고 또 중요시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敬虔)하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었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尊敬)을 받았고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도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경건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자부(自負)하고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의 은혜를 배제(排除)시키려는 그런 움직임이 그런 모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분리(分離)주의자 또는 벽을 두르는 자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바리새인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는 내용이, 누가복음 18장 9절에서 14절에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9-14,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비유한 바리세인의 모습을 보면 이 바리새인은 철저하게 세리와 구분을 짓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두 사람이 성전으로 올라가기도 하는데,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에 십일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돈이나 물건을 강제로 빼앗는 그런 토색(土色)도 하지 않고, 불의(不義)도 또 간음(奸淫)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보면 이들은 얼마나 경건합니까? 반면에 세리(稅吏)는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자기는 죄인(罪人)이라고 기도(祈禱)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이 세리는 납작 엎드려 가지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謙遜)하게 하나님의 은혜(恩惠)만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중에 누구를 예수님이 의롭다고 하셨냐? 바로 세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아도 자신을 높이는 사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스스로 높아져서 남과 벽을 두르는 분리(分理)자가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젠가 매스컴에서 한 아파트 단지를 보도에 하게 되었는데, 그 아파트 단지 안에 보면 정문이 두개입니다. 한 단지 안에 정문이 두 개고, 그 정문은 각각 하나는 일반(一般) 분양(分讓) 아파트용이고 또 하나는 임대(賃貸)아파트 용이었습니다. 단지 내에서 일반분양동과 임대 동을 나누어서 분리(分離)한 것입니다.
 
근데 이 일반분양 아파트 사람들이 임대 아파트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 정문만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까지 둘러서 서로 오고 가는데 있어서 제안을 받게 했습니다. 임대 아파트 사람들이 넘어올까 봐 울타리까지 쳤다는 내용을 보면서 사회가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벽(壁)을 두르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우리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은 하나이듯이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서로 분리를 한다면, 이것은 바리새인의 모습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러한 모습은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생득적 개념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인 사람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여러 가지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을 해야 합니다. 서로가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인 모습이 반영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능 속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인정(認定)하고 화합(和合)하며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우리가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본문에 돌아와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外飾)을 주의하라고 했을 때, 외식의 근본적인 뜻은 무엇일까요? 외식의 사전적인 의미는 겉만 보기 좋게 꾸며 드러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그렇게 했다면, 아마 애교스러운 모습이겠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외식을 주의하라고 하신 것은 외식이 나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외식이 나쁠까요? 외식은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영적인 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석구석 뻗어나가는 이스트처럼 잘못된 영향력(影響力)으로 많은 사람들의 그 영혼을 타락(墮落)시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외식이 무서운 것은 겉을 꾸미는 것에 그 방점(傍點)이 있기보다는 속을 숨기는 것에 방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을 끝까지 신뢰(信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뭔가를 더 잘했을 때 우리는 시기(猜忌)하고 질투(嫉妬)하고 심지어는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회개(悔改)를 해야 하는 것이 성경적이죠.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 마음을 숨기고 아닌 척합니다. 그렇게 되면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외식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 누가복음 16장을 살펴봐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주인의 소유(所有)를 낭비(浪費)하는 청지기에 대한 비유(譬喩)가 나옵니다. 이 내용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면서 결론으로 하셨던 말이,
 
*누가복음16:13,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의 이 이야기를 듣고서 반응이 있었는데, 그 반응이 이렇습니다.
 
*누가복음16:14,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결론적으로 바리새인이 외식했던 이유는 자신들이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 다른 것이 있음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바리새인의 겉으로 드러난 경고는 사람들에게는 통했을지 몰라도 하나님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읽은 본문 앞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비판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점심을 청(請)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고 식사(食事)를 하시게 됩니다. 당시 구전 율법인 장로들의 전통에서는 손뿐만 아니라 팔뚝까지 씻어야 했습니다. 바리세인이 이 예수님의 손 씻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이 여기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1:39,
39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장로들의 유전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의 위선적(僞善的)이고 외식(外飾)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비판받은 내용은 겉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의 문제는 내 마음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1:40,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외형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내면도 만드셨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바리새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꿩이 도망갈 때 자기 머리만 땅에 대고 눈을 감으면 숨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도 모르게 일을 하려고 할 때 주변을 살펴보게 되는데 그때 아무도 보지 않으면 비밀(秘密)이 될까요? 본문에,
 
*누가복음 12:2,
2 감춘 것이 드러날 것이 없고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2:3,
3 또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고 말씀합니다. 이 두 말씀이 연이어서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그것을 어떻게든지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머리가 좋아서 내 주변 사람들을 다 속였다고 혼자서 좋아하는데 사실은 속인 것이 들통 나는 것을 혼자만 모르고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의기양양(意氣揚揚)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아마도 웃음이 나와서 참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하는 생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유명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5:3,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초대 기독교 당시엔 재물(財物)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자기의 소유를 팔아 서로 통용(通用)하였습니다. 모두가 자기 밭과 집을 팔아서ㅡ 사도들 발 앞에 두면 이 사도들은 필요에 따라서 나눠주었기 때문에 당시의 초대 기독교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바나바도 자기 밭을 팔아서 사자들 앞 발 앞에 두었습니다. 바나바는 그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稱讚)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들도 사람들로부터 존경(尊敬)을 받고 싶었는데, 반면에 돈에 대한 욕심(慾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둘이 말을 맞추고 돈의 일부를 숨기고 나서, 돈의 일부를 한 밭을 팔았다. 라고 그들 앞에 두었습니다. 그때 그들도 이렇게 말합니다.
 
‘사탄이 내 마음에 가득하여 내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췄느냐,’라고 반문(反問)하였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베드로는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5:4,
4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그리고 나서 아나니아가 거짓말을 한 이후에 혼(魂)히 떠나가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근데 이 사실을 몰랐던 아내의 삽비라도 3시간이 지나고 나서 동일하게 거짓말을 하다가 그녀마저도 혼이 떠나 죽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저희 동네에 갤러그라는 게임기가 설치가 됐습니다. 슈팅게임인데 위에 있는 적을 아래에 있는 비행기가 쏴 맞추는 게임입니다. 당시의 이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이 50원 동전을 놓고 게임하는 것인데, 이 너무 재미있다 보니까 제가 집에 있는 동전을 하나씩, 하나씩 긁어모았습니다. 근데 이 동전이 부족하게 되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의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동전만 건드렸는데 욕심이 커지다 보니 겁이 없어져서 지폐까지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점점 이 돈이 없어지는 것을 눈치 챈 아버지께서 비밀이 없나 봅니다. 덫을 놨는데 저는 세상에 있는 그 모든 돈은 갤러그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 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너무나 빠져들었습니다. 근데 그게 덫인지도 모르고 덜컥 손에 쥐다가 현장에서 잡히게 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허락도 없이 가져가려고 한 것은 도둑질이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悔改)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순종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근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갤러그만 생각났었는데 그 회개 기도한 이후에 놀랍게도 전혀 게임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전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마음을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마음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 마음이 유지(維持)된다. 라는 것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약(制約)된 행동도 다 드러나지만 반면에 의로운 행동도 하느님께서 다 드러내 주십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나의 의로운 모습을 알아주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주변에서 알아주지 못해서 손해 적은 없으셨습니까? 괜찮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악한 마음과 행동도 하나님이 다 아시지만, 하나님을 향한 의로운 마음과 행동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들이 안 본다 해도 하나님께선 다 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귀를 위해서 묵묵히 기도하는 그 눈물의 기도 몸이 약하지만 가정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애쓰시는 그 모습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한국 교회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도(祈禱)하고, 헌금(獻金)하고 봉사(奉仕)하는 그 모든 행위가 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을 여러분이 믿으시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겁니다. 분명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 그 모든 행동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위한 그 모든 헌신(獻身)을 은혜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성경에서는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審判臺)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1:6,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느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하지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하나님을 향한 순전(純全)한 마음을 아시고 가정과 교회를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다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으로 꼭 품어주시고 안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II. 둘째,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어떤 핍박에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친구라고 본문 4절에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인데, 이것이 본문 이 본문은 유일하다고 합니다. 친구는 특징적으로 친한 사이를 말을 하는데,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비밀(秘密)을 공유(共有)할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비밀을 공유할 수 있을 만한 친구들이 몇 분이나 있으십니까 단 한 분이라도 계시면 그분은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친구라고 하시면서 진정한 진짜로 두려워할 자가 누구인지 설명합니다. 진짜 두려워할 사람은 몸만 죽일 수 있는 자가 아니라, 죽인 이후에 지옥(地獄)에 던져 넣을 수 있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박해(迫害)를 받았듯이 자기도 또한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도 그런 핍박(逼迫)을 받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핍박의 끝은 육체(肉體)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權勢) 있는 자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이 말은 모든 힘의 절정(絶頂)에 누가 계시다는 겁니까? 바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로 하여금 핍박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이후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 하나님만을 끝까지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하시게 됩니다.
 
바로 ⓵참새와 ⓶머리털 이야기입니다. 당시 참새는 작고 흔한 새였습니다. 이 참새는 당시 로마 시대에 사용되던 동전인 앗사리온 두 개로 다섯 마리가 팔린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는 앗사리온 동자 하나를 가지고 참새 두 마리를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앗사리한 동전 하나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의 16분의 1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루에 노동을 8시간으로 둔다면 이 16분의 1은 30분이죠. 이 30분을 해당하는 것을 노동을 했을 때, 2마리를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1마리의 가격은 15분 정도 일한 데나리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오늘날 시급으로 하면 1만 원 정도 쳤을 때, 2500원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이게 정말 싼 세일임을 알 수 있어요. 아사리온 2개 가지고 5마리 샀다면, 1마리 가지고 한 아사리온 가지고 2마리를 산 것으로 비하면 1마리를 더 준 거죠. 그만큼 덤으로 줄 만큼 참새는 가치가 그렇게 크지 않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값싼 새라고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죠. 반면에 희귀종 스펙스 마코 앵무새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값이 나가는지 2억 6천만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희귀종이기 때문에 시장에 유통되는 새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 참새가 이 마코 앵무새의 가격을 따지면 10만분의 1의 가치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하찮게 보이는 참새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참새들보다 귀(貴)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참새의 생명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너희를 기억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생명을 소홀(疏忽)히 여기겠느냐는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살펴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하여 여러분의 앉고 일어섬을 모르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눈물의 기도, 간절한 기도에 그 소망을 소홀히 여기시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기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다음은 머리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하루에 50개에서 80개 정도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 머리에서 50~80개가 언제 떨어졌는지,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쁜 일상 속에서 내 머리카락이 어디에서 어떻게 빠졌는지, 신경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빠진 이 머리카락 하나라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다 세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이 셀 수 없는 머리털을 하나님께서 셀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를 뛰어넘는다는 말인 것이죠. 그 하나님의 지식은 사람의 지혜를 뛰어넘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과 지혜를 다 알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혜와 지식을 신뢰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핍박을 받을 때, 그 핍박(逼迫)이 하느님께서 미처 손을 쓰지 못해 가지고 실수해 가지고 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 라는 것입니다. 계획과 뜻 아래에서 허락(許諾)된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받는 핍박의 현장에서 성령님은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 할 때, 가르치시는 분이라고 성령은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누가보검 12장 11절과 12절입니다.
 
*누가복음 12:12-13,
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이렇듯 핍박(逼迫)의 현장은 외로운 현장이 아니라, 성령께서 제자들과 함께하는 현장입니다. 우리에게 핍박의 현장은 어디입니까? 세상에 나가서 복음(福音)을 전하는 현장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성경이 옳다고 외치는 현장입니다. 그 현장에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막막해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야 될지 정확하게 설명을 해 주실 겁니다. 성령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알려주시고자 하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계시고 우리를 친히 다스린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여 주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8절에, 베드로가 박해를 받는 중에 대 제사장을 위시하여 당시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모였을 때, 어떻게 말해야 될지 성령을 통하여 성령이 충분한 말씀을 하게 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6장 10절에는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는 모습에서 그가 성령의 은혜 속에서 지혜와 성령으로 말을 한다. 라고 증언(證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약속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약속을 실제로 이행(履行)하는 분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이 우리는 하나님만을 끝까지 신뢰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특별히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날선 비판을 자주 하셨습니다. 우리 생각하기에 너무 하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심하게 비판하셨는데 그런데 그런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의식하는 것은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 과장(誇張)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 자신들의 그 내면에 죄악 된 모습을 감추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회귀하지 않는 이유는 감추면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內面)까지도 만드셨기에 모든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장 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아무리 핍박을, 핍박이 몰려오더라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핍박의 상황에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사실을 믿고, 핍박 가운데서도 성령님께서 함께하셔서 할 말을 가르쳐주실 것을 믿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만을 끝까지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참새 한 마리도 그리고 떨어지는 머리카락 하나도 기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분명히 여러분과 저를 기억하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게 외식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내면도 아심을 확신하고, 오직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으로 가득 채우기를 소망해야 한다. 성령께서 알려주시고자 하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계시고 우리를 친히 다스리심을 믿고, 우리 옆에 지체들을 더욱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다가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마음을 갖고, 우리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느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은혜를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한다. 항상 말씀으로 교훈해 주신 대로 하나님만을 끝까지 신뢰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外飾)을 주의하라고 명령하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어떤 핍박에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셨으니 우리는 이 말씀을 실천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주님을 온전하게 닮아가려 노력하는 기쁜 제자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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