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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반짝이는, 다다를 수 없는···

나 어릴 적 읍내에서 야산으로 올라가는 그 동네엔 담장 높은 집이 몇 채 있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담장 때문에 안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이층집들.

그 주변엔 어른 키 높이만 하거나 그보다 낮은 담을 두른 그만그만한 집들이 있었고,동네에서 조금 벗어난 야산 산비탈엔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집들이 나란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이 바로 앞마당인 격이어서,오가는 사람의 눈앞에 좁다란 마루 구석에 놓인 요강이며 누추한 살림살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집들.

그 산비탈에서 내려다보면 그만그만한 집들 사이에 자리한 담장 높은 이층집은 성채처럼 오만했다.

길에 나서면 너나없이 한 마을 사람인데,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각자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느낌.

뉴욕 롱아일랜드, 아주 작은 만(灣)을 사이에 두고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가 마주 보고 있다.

웨스트에그에 있는 개츠비의 궁전 같은 저택에선 파티가 자주 열린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넘쳐나는 술과 음식,화려한 옷을 입고 북적이는 사람들.

사람들이 개츠비에 대해 아는 건 그가 부자라는 것,누구나 와도 되는 파티를 자주 연다는 것 정도다.

옥스퍼드 출신이라는 둥,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는 둥,1차 대전 때 독일군 스파이였다는 둥.

사람들은 파티장에 모여 집주인의 정체에 대해 중구난방으로 쑥덕거린다.

농사꾼의 아들 제임스 개츠는 제이 개츠비라는 이름을 쓰던 장교 시절 상류층 여성 데이지를 만난다.

가난하고 야심만만한 이가 선망하는 상류층의 세계,아름다운 여성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그 세계로 가는 통로이자 그것을 완성할 수 있게 하는 상징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소유함으로써 그 세상에 발을 들였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개츠비의 생각을 훌쩍 뛰어넘는다.

"데이지가 특별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가 몰랐던 것은 '상류층' 여성이 어디까지 특별해질 수 있는지였다.

그녀는 개츠비에게 아무런 미련도 없이 자신의 부유한 가족의 품으로,풍족하고 넉넉한 인생으로 돌아가버렸다. "

손아귀에 넣은 순간 달아난 무엇, 잠시 쥐었던 그것의 감촉이 손에 아련히 남아 있다.

여기서 집착이 생긴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부자가 된 그는 데이지의 집 맞은편에 저택을 마련하지만 그들 사이엔 만이 있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상류층과 그들로부터 졸부 취급을 받는 신흥 부자를 갈라놓는 만이다.

선망하던 세계에 접근했지만 거기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요소가 더 필요하다.

데이지.

개츠비가 상상하고 꿈꾼 세상에 그녀가 없다면 그것은 미완성에 그치고 만다.

즉흥적으로 제 감정을 좇을 뿐인 부박한 여자 데이지,그녀가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걸 알면서도 개츠비는 그녀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알에서 갓 깨어난 오리새끼가 처음 본 대상을 어미라고 생각하듯,일방적인 붙좇음.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의문.

그러나 한 사람이 그의 생애 내내 오직 하나의 목적으로 일관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력투구했다면,그리고 그 결과로 오는 모든 것들을 감당해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받게 됐다면,이미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그런 의문.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5년에 발표한 [위대한 개츠비]에는 치솟는 주가와 밀주매매로 떼돈을 번 신흥 부자들의 흥청망청한 생활이 드러나 있을 뿐 뒤이어 미국을 휩쓸 대공황의 기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저물기 직전의 해가 내뿜는 환함처럼 화려한 파티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다가 파티장을 벗어나면 좁다란 만을 사이에 두고 관망하듯 대치하는 전통적인 상류층과 신흥 부자들.

자동차 정비소 같은 서민들의 삶은 그저 지나가는 길가의 풍경이 되고 만다.

서로 다른 두 세계는 데이지의 남편 톰과 정비소집 아내의 연애처럼 일시적으로 섞이는데,그 불륜의 불똥은 엉뚱하게도 개츠비가 꿈꾼 세계에 파국을 가져온다.

정작 원인을 제공한 톰과 데이지의 세계는 표면상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공고하게 이어지고.

지금도 어떤 사람은 그저 변함없는 일상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다른 누군가는 '좀 더 나은' 무언가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최저 시급 아르바이트에 쫓기며 대학 공부를 하고 자존심을 짓밟히는 구조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부유해지는 꿈을 꾸거나,더없이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의 마음을 얻어 그 사람과 여생을 함께하거나,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명성을 누릴 거라는 꿈을 품은 채.

사람과 사람 사이,집단과 집단 사이를 가르는 경계를 뛰어넘겠다는 열망으로.

그 꿈을 이룬 곳,그렇게 오른 산의 정상에서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곳에 빛나는 무엇이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허위허위 오를 뿐.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한 소설가 김영하는 이 작품을 이렇게 요약했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우리는 표적을 향해 제대로 화살을 쏘아올리고 있는 걸까.

아니,내가 화살을 겨눈 채 쏘아보는 저 표적은 진정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인가.

이혜경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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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하는 옛 연인 데이지와 재회하는데···

위대한 개츠비 줄거리

미국을 대표하는 문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는 우리나라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등장해 많은 젊은이들에게 익숙한 고전이다.


'부와 성공에 대한 열망'과 '사랑하는 미녀를 차지하지 못하는 신분의 장벽'이라는 두 가지 콤플렉스는 피츠제럴드 문학을 평생 지배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이런 모티프가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아름다운 작품이며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든 이야기이다.


하나의 기막힌 '사랑 이야기'이자 보석 같은 문장과 기발한 풍자로 빛나는 이 소설이 소설가 김영하의 젊은 번역으로 비로소 그에 걸맞은 옷을 입게 되었다.

서부 출신의 엘리트 청년 닉 캐러웨이는 성공을 꿈꾸며 동부로 온다.


그의 사랑스러운 사촌 데이지 역시 부유한 톰 뷰캐넌과 결혼해 부촌인 이스트에그에 살고 있다.


사촌의 집을 방문한 닉은 톰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고 데이지 역시 그걸 알고 있지만 안락한 환경을 박차고 나올 마음이 없음을 알게 된다.


씁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날 밤,닉은 우연히 옆집 백만장자인 개츠비의 모습을 본다.


그해 여름,개츠비의 집에서는 주말마다 대규모의 호화 파티가 벌어진다. 파티에 초대받은 닉은 거기서 개츠비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5년 전에 데이지의 연인이었고 지금까지도 절박한 심정으로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


그래서 그녀 곁에 집을 사고 그녀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매주 파티를 연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개츠비와 데이지는 닉의 집에서 재회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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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꽃이 있을지도…

어쩌면 이 고백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요.

그러나 하지 않고서는,개인적으로 나쓰메 소세키에 관해 말하기 어렵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나를 소설가의 길로 이끈 소수의 작가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헌책방의 순례자였던 학창시절부터,그의 책들을 읽어왔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운명이었을까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글을 써보고 싶다,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지금까지도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가 평생에 걸쳐 소설을 쓴 기간은 말년의 십 년 남짓한 시간뿐이었습니다.

그가 사망한 때가 1916년,오십 세였으니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사십 세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쓰기 이전부터 나쓰메 소세키는 영문학자이자 하이쿠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1900년,일본 문부성이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이기도 해 일찍부터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가 서양문물을 접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 2년 동안의,다소 충격적이며 고독했던 체류 경험을 통해 그는 일본,동양의 '문학예술론'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일본문학에 대해 흔히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소설(私小說)'입니다.

주로 자신의 체험,경험을 적극적으로 소재로 삼은 소설을 뜻합니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쓴 가라타니 고진에 의하면 이 '사적인 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문학을 '인식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의 결합'이라고 생각한 그의 문학론이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지금도 널리 읽히는 그의 많은 대표작들이 있습니다.

첫 소설이자 화자를 '고양이'로 내세워 세태를 풍자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비롯해 「산시로」 「그 후」 「문」 「행인」 「마음」 등.

그중 「한눈팔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은 그가 사망하기 일 년 전 아사히신문에 연재했던,자전적 색채가 가장 강한 소설입니다.

원제 道草는 '길가에 난 풀' 혹은 '한눈팔다,해찰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

한눈을 파는 것.이 소설의 주인공인 겐조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어려운 것을 만났을 때,가능한 해답을 회피하려고 택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한눈팔기」는 대학교 선생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겐조가 돈을 요구하는 양부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산문집 「유리문 안에서」에서 회고했듯,그가 태어나자마자 다른 집 수양아들로 보내진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모든 작가에게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필연적으로 느껴지는 한 편의 소설이 있게 마련입니다.

「한눈팔기」는 작가가 죽음을 예측하고 쓴,자신의 반생을 돌아본 소설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희귀한 문학의 문(門)을 열고 들어가려 할 때, 빼놓고 읽을 수 없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나에게 예외적이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근대문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든가 지성을 바탕으로 한 에고이즘의 글쓰기를 보여주었다든가 하는 점이 아닙니다.

그가 끊임없이 던진 "나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라는 질문 때문입니다.

그의 글쓰기는 그 질문에 대한 고뇌의 결과물,성숙과 발전의 고찰이라고 해도 지나치진 않습니다.

그런 질문이 없다면 자기 상대화를 통해 타자성을 발견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한 발견을 보여주는,거의 마지막 소설이 바로 「한눈팔기」입니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자연주의적 문단에서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소설.

십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 작가처럼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써낸 작가는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드물 거라고 합니다.

그건 가라타니 고진의 말처럼 그가 글쓰기에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근대소설이라는 고전적 관점에서 보면 일부러 거기에 적응하려 하지 않았던 작가의 '적극적 의지'를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소설은 진흙 속에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또한 소설은 호기심과 갈증 속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한눈팔기라는 숙고의 시간과 질문 속에서 태어납니다.

보고 느낀 모든 것을 문학으로 끌어올 수 있는 힘은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물리적인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도 묘사하고 그릴 수 있는 것도 언어 때문입니다. 그것은 '문학'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언어가,소설이 진화해왔다는 자명한 사실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고 나쓰메 소세키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가감 없이 진솔하게.'

이 글의 제목 '거기엔 꽃이 있을지도'는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돼 쓴 영시의 일부분입니다.

 그 다음 구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게 많이 있겠지.그러나 꿈속에서조차 나는 거기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나의 장소는 여기이지 거기가 아니니까.

' 작가,소설가의 장소는 아름다운 무엇이 많이 있는 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써야 합니다.

가감 없이 진솔하게.

거기엔 반드시 꽃이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그것이 이야기의 출발이자 소설의 기원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경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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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던 養父가 갑자기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데…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국비장학생으로 영국에서 유학한 소세키는 당시 런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목격하고 도시인의 불안과 고뇌를 체험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인생관과 문명관은 이후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귀국 후 대학 강사로 활동하면서 발표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크게 호평을 받으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많은 작품에서 변화의 시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일본 근대문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아사히신문이 조사한 '지난 천 년간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작가' 1위에 오르며 일본의 국민작가로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

「한눈팔기」의 주인공 '겐조'는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소위 엘리트 지식인이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와 보니 가족들의 생활은 형편없다.


아내와 아이들은 가난에 허덕이고,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장인은 주식으로 재산을 탕진해 겐조에게까지 손을 벌리는 처지가 되었다.


잊고 살았던 양부가 갑자기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가 하면 불쾌한 기억만 남아 있는 양모까지 찾아온다.


고지식한 겐조는 사람들이 찾아와 이런저런 부탁을 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전부 받아들인다.


그러고는 혼자 끙끙거리면서 애꿎은 아내에게 화풀이를 한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하지만,아내의 눈에는 남편이야말로 스스로 담을 쌓고 우유부단하며 편협한 인간이다.


양부가 요구한 돈을 마련해준 다음,일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겐조는 토해내듯 씁쓸하게 말한다.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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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는 모두 자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어느 날, 내가 자는 동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무진장 빨리 도는 바람에 하룻밤 새 몇 천 년이 지나갔다고 치자.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누군가 흔들어 눈을 떴더니 거기 최첨단 미래 소재의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지구가 당신만의 별이 됐다고 이렇게 계속 잠만 잘 건가요?"

"나만의 별이 됐다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요?"

그녀는 하늘을 가리켰다.

"우리의 과학 기술은 너무나 발달해서 한 별에서 모여 살 필요가 없어요. 우주에는 별이 무한하게 많거든요. 지금은 별 하나에 한 사람씩 살아요. "

"그럼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만 하나요?"

"일단 우주선 안에 들어가서 외치세요. 저별로가! 그러면 원하는 별로 갈 수 있어요.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이별로가, 라고 외치세요. "

우리는 가까운 별로 가서 과연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사는지 만나보기로 하고 우주선에 올라탔다.

저별로가! 내가 외쳤다.

덜컹덜컹 우주선이 움직였다.

너무 빨리 가면 여행의 묘미를 잃을까봐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대기권을 벗어나자 우주공간으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걸 보니까 언젠가 읽은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

"어떤 소설인가요?"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예요.

태어나자마자 납치돼 팔려온 여자아이 이야기예요.

이름은 라일라.

하지만 진짜 이름은 몰라요.

북아프리카에서 부모 없이 비참하게 살던 라일라는 마찬가지 처지였던 후리야 덕분에 스페인을 거쳐 파리까지 가죠.

거기서 세네갈 출신 노인 엘 하즈를 만나 이런 말을 들어요.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게 많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나서게 될 거야.' 저렇게 아름다운 별 사이로 여행하니 그 말이 생각나네요. "

"그래서 라일라도 우주여행을 하나요?"

"아시겠지만, 우리 시대에는 우주여행 비용이 너무 비쌌어요.

대신에 하나의 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죠. 몇십억 명이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고, 껴안고 또 때리고, 달래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그렇게 몇십억 개의 삶이 별 하나에 모여 있었죠."

"별 하나에 몇십억 사람들이라 상상할 수 없군요. "

"맞아요, 하지만 지금과 비슷하기도 해요.

비록 라일라가 우리처럼 우주선을 타고 가는 건 아니지만 마치 여행하듯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니까요. 지금 가는 별은 어딘가요?"

"고양이별이군요. "

"우리가 고양이별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낸다는 건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별들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에요.

그래서 고양이별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특별해지는 거죠.

라일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걸 깨닫게 됩니다.

즉, 특정한 인생의 한 시기를 누군가와 보낸다면, 그건 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인간을 만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걸.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특별하고 소중해진다는 걸.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라일라는 관찰해요. "

"관찰?"

"예, 관찰. 마치 낯선 지방을 방문한 아이처럼.

또 그 모두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듯이.

파리에서 라일라가 한 일은 이런 거예요. '

나는 모든 구역들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쇼세 당탱, 오페라, 마들렌, 세바스토폴, 콩트르스카르프, 당페르 로슈로, 생 자크, 생 탕투안, 생 폴.

오후 세시에도 잠든 듯 조용하고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부자들의 구역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구역도 있었다.

어떤 구역은 무척 소란스러운데다가, 둘러보면 교도소 울타리와 흡사하게 붉은 벽돌로 된 기다란 담, 계단과 난간과 공터들, 이상한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 찬 먼지투성이 공원들.

' 또 이런 문장도 있어요. '나는 지리학과 동물학 책을 읽었고, 졸라의 [나나]와 [제르미날], 플로베르의[보바리 부인]과[세 가지 이야기], 위고의[레미제라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카뮈의[이방인]과 [페스트], 슈바르츠 바르의[마지막 의인]

'……"

"끝이 없군요. 라일라는 시간이 무척 많았던 모양이군요. "

"그렇다기보다는 자기 생을 사랑했기 때문이죠."

"혹시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자기 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정확하게 그 말을 하려는 겁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알아내려고 애쓸 겁니다.

책뿐만 아니에요.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춤도 추고, 외국에도 갈 거예요.

가능한 한 모든 걸 맛볼 겁니다.

이 삶에 눈멀고 귀먹고 입 다문 사람이라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신세나 마찬가지죠.

자유로운 물고기라면 자신의 입과 코와 눈과 귀로 자기 앞의 삶을 맛보고 냄새 맡고 보고 들을 거예요. 그게 바로 황금 물고기죠."

"그렇다면 그건 자유 물고기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도착할 시간이 다 됐네요. 그 황금 물고기가 하는 일은 뭔가요?"

"자신에게 돌아가는 일이에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순간 성장해요. 바뀌고 또 바뀌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죠. 마치 우주를 떠돌다가 이별로가, 라고 외친 것처럼. 우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

"이런, 이런. 뭔가 잘못됐군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어요. "

"제가 이별로가, 라고 말해서인가요?"

"그런 모양이네요. 잘됐네요. 그 소설 얘기 계속해주세요. "

그래서 나는 다시 ?~황금 물고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주 상세하게 설명할 계획이었다.

※이 코너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cafe.naver.com / mhdn)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김연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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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 매매단에 납치된 흑인 소녀의 인생역정


▶ '황금 물고기' 줄거리


르 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의 항구도시 니스에서 태어났다.

1963년 데뷔작 [조서]로 르노도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이후 [홍수] [사막]과 같은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작가적 재능을 발휘했다.

2008년에는 '지배적인 문명 너머 또 그 아래에서 인간을 탐사한 작가'라는 평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일컬어지는 그는 또한 지한파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 중 [허기의 간주곡]은 서울에 머무를 당시 집필한 소설이기도 하다.

[황금 물고기]는 19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순수문학으로는 이례적으로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킨 작품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나고 자랐는지도 모른 채 어린 나이에 인신매매단에 납치된 한 흑인 소녀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다. '밤'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녀 '라일라'는 어릴 적 누군가에게 유괴되었다.

그녀의 기억이라곤 자신을 잡아 검은 자루 속에 집어넣은 커다란 손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들뿐이다.

팔려온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지내던 그녀는 주인 노파가 죽자 가혹하게 자신을 부리는 아들 부부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프랑스로 떠난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이후의 삶 역시 녹록지만은 않다.

세상의 거친 탁류에 휘말려 미국으로, 다시 프랑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삶을 찾아나가던 라일라는 마침내 황금 비늘을 반짝이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 아프리카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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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과 惡을 오가며 인간의 경계를 넓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농사일에 바쁜 어른들은 보이지 않았고 닭과 거위,개,돼지처럼 들에 데려가도 별 소용이 없는 가축들만 집에 그득했다.

특히 닭은 마루며 방까지 올라와 먹이를 찾다가 먹이가 없으면 화풀이를 하듯 마루와 방바닥에 똥을 갈겨놓곤 했다.

마루나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책들은 닭똥을 닦아내기 위해 한두 장씩 뜯겨나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늘 바닥을 굴러다니면서도 그런 기박한 운명을 면한 예외적인 책이 있었으니,하드커버 표지에 케이스까지 딸린 「명화와 함께 읽는 이야기 성서」와 「햄릿」이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구약성서의 이름 모를 저자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햄릿」은 학생이 많던 집안의 역사로 미루어 누군가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산 책이 분명했다.

한 면은 한글로,한 면은 영어로 된 이른바 '영한대역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왼쪽 면에 있는 한글로 번역된 「햄릿」만 읽게 되었는데,진도가 쑥쑥 나가는 게 다른 책과 차별되는 성취감을 주었다.

「햄릿」이 형식으로는 생소한 희곡인 데다 번역자가 영어 대역이라는 점을 의식해서 최대한 직역을 했는지 무슨 말인지 모를 게 많았다.

그렇지만 읽고 또 읽어 백 번을 읽으면 뜻은 자연히 알아지는 법이라고 누군가 말한 대로 영한대역본 「햄릿」을 읽고 또 읽어 백 번을 넘어서자 극중 등장인물의 생각과 대사,이야기의 흐름은 훤히 꿰게 되었다.

그 덕분으로 훗날 셰익스피어는 물론이고 유진 오닐,사무엘 베케트,이오네스코 같은 희곡 작가들의 작품이 실린 희곡집이 그리 낯설지 않게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현대의 희곡작가들과 구별되는 점은 그가 기본적으로 뛰어난 시인이고 극중 대사가 무운시(無韻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약의 어세가 없는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이런 특색을 살리기가 대단히 어렵다.

원어로 읽는다면 처음부터 어세에 맞는 단어를 골라 희곡을 쓰면서도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자유자재로 성취해낸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훨씬 더 강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나,예나 지금이나 그건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또한 번역본으로는 알 수 없는 원본의 말놀이, 양의어와 다의어 구사, 은유, 인유, 함축만 가지고도 셰익스피어는 수사학의 대가로 불릴 만하다.

하지만 내가 청춘기에서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셰익스피어를 읽고 감탄한 것은 그런 기술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인물이 언제나 현재적이고 현대인의 삶이며 철학,가치관과 유비해서 재해석될 수 있도록 생생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샤일록은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의 화신이고 앤토니오는 친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수 있는 의리 있되 불운한 상인일 뿐인가.

바싸니오는 선량하고 운 좋은 구혼자이고 포오셔는 보기 드물게 현명한 신부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읽고 또 읽다 보면 샤일록이 앤토니오가 될 수 있고 앤토니오가 바싸니오가 되며 누구나 어릿광대 란슬럿트가 될 수 있다.

전형적이고 뻔한 인물이 보기에 따라 선악이 갈리며 해석에 따라 운과 불운이 뒤집힌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던 그라쉬아노, 설리어리오가 극중 흐름을 뒤바꿀 수 있다.

포오셔의 시녀 니리서는 역할이 포오셔의 화신이 되기도 하고 아교처럼 관습과 인물 사이의 틈새를 메운다.

기독교도 애인 로렌조와 사랑의 도피행을 감행한 샤일록의 딸 제시커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현대인의 표상이다.

마치 우리 문학의 사설시조가 형식면에서 그렇듯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독자와 배우,관중의 인식과 상상의 범주 속에서 최대한의 인장력을 시험하는 듯 한껏 놀아난다.

「베니스의 상인」은 기승전결의 틀로 완결되지 않는 위대한 자연과 닮았다. 셰익스피어의 극중 공간은 희극이나 비극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인생의 불확실성이 가진 자장으로 충만하다.

「베니스의 상인」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샤일록은 종교와 인종의 차별로 핍박받고 그에 저항하는 전사로 변신할 수도 있다.

앤토니오는 은행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대출받고도 운이 나빠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공룡기업 총수가 될 수 있고,포오셔는 교활한 법 적용으로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하는 법무법인 변호사로 해석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한 인간이 악마처럼 잔인하고 비루한 데서 신과 같은 고결함과 지선을 가진 존재로 얼마든지 변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에는 범주가 보이지 않는다.

신화와 전설,민화,역사 등을 망라한 수많은 문학적 텍스트,비문학적 텍스트가 인용되면서 경이롭고 자족적이며 생명력 넘치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 또한 무수히 인용되고 변용되어 다른 텍스트에 생기를 불어넣을 운명을 갖고 있다.

그럼으로써 셰익스피어는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의 경계선을 최대한 길고 먼 곳으로 늘려놓는다.

※이 코너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cafe.naver.com/mhdn)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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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못 갚으면 살 1파운드를 떼어주기로 하는데...

베니스의 상인 줄거리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평가받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64년 영국 중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1586년 고향을 떠나 런던에서 배우 겸 작가로 극단 활동을 시작했다.

1590년경 첫 작품으로 「헨리 6세」를 집필했고,1592년경에는 극작가로서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며 큰 명성을 얻었다.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그가 이 작품을 쓸 당시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 아래 상업이 번성한 반면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상을 반영해 여러 극작가들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와 '살 1파운드를 담보로 한 채무 계약'을 소재로 작품을 썼지만,그 어떤 작가도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을 뛰어넘는 인물을 창조하지는 못했다.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이 작품은 베니스의 부유한 상인인 앤토니오에게 그의 절친한 벗 바싸니오가 고민을 털어놓는 데서 시작된다.

바싸니오는 귀족인 포오셔에게 청혼에 필요한 돈을 빌리려 하지만 앤토니오의 전 재산이 무역선에 실려 항해 중인 터라 할 수 없이 이들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찾아간다.

 평소 앤토니오에게 멸시를 받아온 샤일록은 돈을 빌려주면서 갚지 못할 경우 앤토니오의 몸에서 살 1파운드를 떼어내기로 조건을 건다.

앤토니오의 도움으로 바싸니오는 악명 높은 상자 뽑기 시험에 도전해 포오셔와 성공적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가 사랑을 쟁취하는 사이 돈을 갚을 기한이 지나 앤토니오는 법정에 서게 되고,샤일록에게 살 1파운드를 떼어줘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원제: The merchant of Venice

저자: William Shakespeare(1564~1616)

발표: 1596년 추정

분야: 영국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베니스의 상인

옮긴이: 이경식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66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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