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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11월 10일)-추수감사절 제목: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I Lay Down My Life for the Sheep)"-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20 말씀: 요한복음 10:10-15 대표기도: 김승진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요한복음 10:10-15,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할렐루야!!! 오늘 우리의 생명과 소망이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은 한 해에 감사의 총량을 다 모아가지고 예배드리는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신년도 시작하면서 올해 시작하면서, 2024년이니까, 2024번의 감사를 드리게 해 주십시오. 그랬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천 번의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주소가 어디예요? 여기는 반포대로 121번지인데 하나님의 주소가 뭘까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Father in Heaven!, 파더 인, 하늘이 주소입니까? 하나님의 주소는 시편 22편 3절에 보니까, *시편 22편 3절,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야가 그랬어요. 옛날에 개혁 판에서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님의 주소는 찬송 중에 거하시는 것이 주소입니다. 그리고 시편 100편 4절에 보니까, *시편 100편 4절,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 집 주소의 문이 뭐냐 하면, 감사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찬송과 감사가 하나님의 주소입니다. 알 사람만 알도다. 실제로 여호사밧 왕이 모압과 암몬의 대군들이 쳐들어왔을 때에, 어떻게 이겼느냐? 하나님의 주소를 가지고 이겼어요. 역대하 20장 21절에 보니까, *역대하 20:21,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막 전쟁은 이렇게 해야 한다. 군사는 어떻게 해야 한다 이런 거 하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뭐 하며 이르기를 찬송하며 또 그다음에 여호와께 뭐 하세 감사하세. 그러니까 찬송과 감사가 영적 전쟁 실제 전쟁을 승리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찬송과 감사가 이 전쟁의 슬로건이 된 것입니다.감사함으로 문을 열면서 찬양으로 전쟁의 승리가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찬송과 감사가 우리에게 어떻게 있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우리의 삶의 영적 전쟁과 수많은 삶의 상황들이 해결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편 116편 17절에 시편 기사가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시편 116편 17절,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내가 주께 감사죄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우리 앞에 있는 앞으로 닥치는 수많은 상황들을 여러분 찬송과 감사로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찬송과 감사의 수준이 우리의 미래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오늘 진심으로 이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을 향한 찬송과 감사가 회복이 돼야 하는 것이에요. 회복할 수 있겠어요? 그 회복을 위해 진짜 우리가 뭘 감사해야 할 것인가, 오늘 젊은이들 말로 깨알같이 참된 감사 제목을 한번 마음으로 적어보세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눈물과 찬송으로 눈물과 찬송으로 이렇게 깨끗이 씻어진 창문에 미래의 밝은 빛이 스며들게 될 거예요. 좀 표현을 해서 알아들으셔야 되고 그래서 우리가 오늘 추수감사주일날, 깨알 같은 감사로 주님 앞에 오늘 찬송과 감사가 주님의 주님이 계시는 주소라면 이 마음을 다 담아가지고, 오늘 한 해에 모든 감사의 총량을 다 담아가지고 다 감사하자! 주께 찬송 한번 찬송하고 말씀 계속 나누면 어떨까요? 이거 하려고 지금까지 설명한 거예요. 지금 다 우리 다 손을 펼치시고 다 감사하자 줄게. 한 해에 모든 감사의 총량을 다 모아서 주님께 찬양할 때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의 장래가 미래의 은혜의 빛이 빛을 비추게 되고 더 감사의 제목이 커지게 될 겁니다. -찬송.... 다 감사하자 주께 다 감사하자 주께 다 감사하자 주께 주님께 다 기도하자 주께 다 기도하자 주께 다 기도하자 주께 주님께!!~~~ -그냥 마음을 모아서 한번 감사를 표현해 봤어요. 제가 지금 감기가 걸렸거든요. 감기가 걸리든 말든 목 감기가 있든 말든 감사를 총량으로 표현할 때 하나님은 또 필요한 은혜를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 추수 감사 주일날, 우리가 뭘 더 감사해야 되나? 그중에 오늘 우리 예수님 시리즈 가운데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주시는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감사하면 진짜 감사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에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지만 주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하면 그것이 여러분들의 미래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그게 아주 아주 순수하게 한번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주님이 주신 음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10장입니다. 요한복음 10장을 일컬어서 목자의 장이다. 고전 13장은 사랑장이다. 히브리서 11장은 교회 생활을 하신 분들은 믿음장이다 이런 얘기하는데 요한복음 10장은 무슨 장이라고요? 목자의 장이다. 선한 목자의 장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선한 목자에 대해서 주님 우리의 목자 되어 주심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냐면 11절과 14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11,14,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I am the good and the Shepherd).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나는 뭐예요? 선한 목자라 나는 사람 목자라고 그러는데 여기에 원어를 더 보면요. 영어도 보면 나올 수 있는데 ‘아이 엠 더 굿 앤 더 쉐퍼드(I am the good and the Shepherd).’, 이게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적당한 선한이 아니고 그냥 적당한 목자가 아니라 유일하게 선한 목자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선하고, 유일하게 선한 목자이다. 이 더, 더가 붙어가고 유일하고 유일하고 유일한 목자이시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이 교회를 지으면서 한 번씩 제가 설명합니다마는 크게 두 가지 하나님 저쪽에 선한 목사가 있고, 또 하나는 이쪽에 우리 돌아온 탕자를 안아주시는 아버지 모습이 나와 있는데 평소에는 잘 안 보일 겁니다. 근데 오늘 같은 날 한번 보셔야 돼요.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보이시는지 모르겠어요. 보입니까? 어린 양을 목에 매고 계시는 사랑 목자가 보이십니까? 그러면 감사한 일입니다. 감사해요. 이 선한 목자가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뭐냐, 마태복음 2장에 주님이 이 땅에 초림하실 때, 성탄에 초림하실 때 뭐라고 되어 있냐 하면, *마태복음 2장 6b절, 6b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내 백성 이스라엘에 뭐가 되리라 목자가 되리라. 주님이 이 땅에 오시면 뭐가 되리라고요? 목자가 되리라. 그리고 요한복음 21장 보면, 베드로가 사고치고 잘못하고 정말 가슴아리하고 예수님 배신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예수님 그 참 실패한 양, 엉터리 양, 엉덩이에 뿔난 양, 그 베드로를 향하여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묻고, 그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뭐라 말 “내 양을 먹이라.” 수많은 삶의 실패와 우한과 수많은 고난 가운데서 잘못한 가운데서 인생 해결 방법은 뭐냐 니가 양치고 니가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깨달아가지고, ‘니가 착한 양이 되고 니가 착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니가 목자의 삶을 살면 그것이 너의 인생을 앞으로 최고로 값지게 할 것이다.’ 아멘! 제가 기침하면 또 기침 따라하지 마시고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깨달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요한이 이걸 깨닫고 그의 계시록 언어 구사를 통하여 완전히 한 방을 팍 뜨리는데, 요한계시록에 마지막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우리 크게 우리가 합독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아멘 요한계시록 7장에서 뭐로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에서 우리 모두에게 한 방울 콱 쳐주시는 거예요. 보라. 어린 양과 그들의 뭐가 된다고요? 목자가 되어가지고 선한 목자 마지막 순간까지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선한 목사를 우리가 어떻게 잘 이해하고 잘 깨달을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16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0:16,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뭐라고 나오냐 선아 목사 그들도 내 뭘 듣는다고요? 음성을 듣고 그러니까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잘 깨달으려면 깨달으려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는 것이에요. 주님의 음성을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미풍처럼 부드럽고 세미(細微)한 음성도 듣기를 바라고 폭풍처럼 강하고 우렁찬 음성도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제가 들은 이 말씀이 이 내용을 못 깨닫고 이해 못하는 분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 우스갯 소리인데요. 서울 학생이 부산에 갔는데 부산 지하철에 갖고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휴대폰을 떨어뜨렸어요. 그걸 주우신 부산 어른이 뭐라고 얘기했냐면 사투리로 이게 니끼가? 그랬더니 그 서울 학생이 그걸 일본말로 알아듣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ㅋㅋㅋ 그랬다는 거 이런 것만 또 남지 말고 알아들어야 되는 거야 아시겠죠? 선한 목자가 그래 선한 목자가 뭔가? 선한 목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인가? 첫 번째로 선한 목자는 어떤 분인가? 오늘 7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0:7,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여기 이제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랬을 때 이 헬라어를 ‘에고 에미’ 나는 아이엠 뭐뭐다. 이러는데 ‘나는 선한 목자라’ 아이엠더 굿 셰퍼드(I am the good and the Shepherd). 그러는데 오늘 7절에 보니까 아이엠더 쉽 게이트( I am the Sheep gate=나는 양의 문이라). 또 양의 도울 문이라. 나는 양의 뭐라고요? 문이시다. 양의 문이시다. 찬송가 가운데 선한 목자 대신 우리 주 하고 난 다음에 2절에 양의 문이 되신 예수여~~ 오늘 앞 예배 마치고, 난 다음에 많은 분들이 목사님이 양의 문이 그냥 양문교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양의 문이라는 것이 어마어마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걸 오늘 깨달았습니다. 그래요. 주님은 다시, 선한 목자이자 뭐라고요? 양의 문이시다. ▷선한 목자는 어떤 분인가? I. 첫 번째로, 주님은 선한 목자이자, 양의 문이시다. -이스라엘은 양을 키울 때 방목을 하지만 양 우리 울타리를 만들고 그 가운데 문을 만듭니다. 그 문 앞에서 목자가 지키고 있으면서 양들이 그 문을 들락날락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밤에는 그 안에서 양 울타리 안에서 양의 문 안에서 보호를 받는데 곰과 늑대와 이리의 발톱으로부터 양들이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은 쉽게이트(Sheep Gate)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 양의 문은 지킴과 보호를 뜻하는 겁니다. 양의 문 안에 있는 것과 양의 문 밖에 있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것이 우리가 선한 목자 대신은 특별히 양의 문 대신은 예수님의 품 안에 있는 것과 예수님 품 밖에 있는 것은 천지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양의 몸 밖에는 도둑들이 우글우글하다고 그랬어요. 오늘 본문에도 절도요 강도요 도둑들이 많아요. 그리고 양의 문이 된다는 것은 9절 뒤 앞부분 보니까, *요한복음 10:9,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내가 양의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뭘 받는다고요? -구원을 받는다. 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구원의 뜻도 있고 우리 생활 가운데서 받는 축복도 다 포함돼 있는데 양의 문에 이 예수님만이 양의 문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만이 이 세상에 수많은 질서, 수많은 진리들이 있다고 그러지만 예수님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가지고 구원자가 되신다. 그 뜻이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문은 생명의 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맹수의 밥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그 약의 피를 문설주 양의 머리를 발랐을 때 문설주에 발랐을 때 죽음의 천사의 칼날이 그걸 피했었지 유월절 패스오버(passover)로 지나가 버리신 거예요. 오늘 이 생명의 문, 진리의 문 양의 피의 문을 통하여 구원받게 하신 그 양의 문 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런데 동시에 양의 문이 되셔가지고 들어가며 구절 뒤에 들어가며, 구원 얻게 할 뿐만 아니라 들어가며 나오며 뭘 얻으리라 꼴은 양의 문을 들락날락하면서 꼴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목자는 양의 문을 들락날락하는 양들을 보면서, 아, 오늘 병들었구나 이 양이 아프구나 이 양이 어렵구나. 이 양을 내가 도와줘야지 매일매일 점검하면서 필요를 채워주고 꼴을 먹여주는 것이 필요를 채우는 분이에요. 오늘 이 양의 문대 이 양의 문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되는 것이에요. 또 하나 양의 문이 되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 보니까 3절 4절에 보니까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면서 불러 인도하여 내는데,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가면서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거로 따라온다고 그랬어요. 양의 문이 되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앞서 인도해 주시는 목자가 되셨다는 거예요. 뒤에서 무슨 회초리 들고 막 때리고 엉덩이를 때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에요. 아니라 앞서 인도하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어떨 때는 절교하듯이 어떨 때는 정말 마음을 담아가지고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해 온 제목 중에 하나가 주여 우리 성도님들 모든 삶의 여정 가운데 우리 주님께서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앞서 인도하시는 은총의 표정을 받게 하여 주십시오. 양의 문이 되시고, 앞서 인도하시는 주님이시다. 이렇게 선한 목자가 양의 문이 되시고, 앞서 인도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양이 갖고 있는 최고의 단점과 무력함이 극복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두 번째로 선한 목자는 양의 무력한 현실을 극복하게 하신다. II. 선한 목자는 양의 무력한 현실을 극복하게 하신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양은 무력합니다. 양은 미련합니다. 양은 약합니다. 빨리 뛰지도 못합니다. 공격(攻擊)도 못하고 수비(守備)도 못하고 연약(軟弱)한 동물입니다. 게다가 눈도 나쁩니다. 그래서 그래서 눈이 나빠가지고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양은 죽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죽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죽을 때 돼지나 개는 죽을 때 난리 납니다. 동네가 시끄럽습니다. 그래서 잡아먹습니다. 근데 양은 양은 죽을 때 아무 소리도 없이 툭 죽습니다. 제가 한번에 호주에 가가지고, 이 양 체험한다고 양 농장에 갔는데, 저보고 양털을 깎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양터를 깎는 게 이발기계 비슷한 바리깡 같은 거였어요. 그걸 가지고 깎는데요. 깎다가 제가 좀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냥 깎다가 피부를 깎아가지고 그냥 피가 막 나는 거야. 내가 내가 막 기절을 하는 거야. 내가 너무 불쌍하고, 너무 아프겠다 이랬는데, 양은 아무 얘기도 안 하고 가만히~~... 진짜 기가 막힌 거예요. 다시요. 마음이 아파하고 깎는 내가 비명을 질렀어요. 새들도, 기러기도 방향 감각이 있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데, 양은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여우도 저녁이 되면 꼬리를 끌고 자기 굴 속으로 들어가는데, 양은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양은 사자처럼 세지도 못하고, 소처럼 받아서 공격도 못하고, 여러분 양이 만약에 개처럼 달려들고 들이받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양이 왈왈 짖는 거 본 적 있습니까? 그러면 그 양은 미친 양입니다. 하기는 요새는 세상이 희한해져가지고 그런 양이 있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양은 수비(守備)도 못합니다. 토끼는 토끼는 수비를 못하지만 그래도 빨리 뛸 수 있어 가지고 도망을 갈 수 있는 양은 뛰지도 못합니다. 쥐는 작은 동물이지만 날색의 구멍 속에 쏙 들어가면 보호가 됩니다마는 양은 미련해가지고 두에서 뛰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0:14,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한다. 이렇게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존재이고 방향 감각이 없고, 자기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는 존재이지만 딱 하나 착한 목자를 만나게 되면,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약육강식의 시대에 양이 멸종되지 않는 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아마 그 양 자체로는 벌써 멸종되고 멸종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 양이 멸종되지 않은 이유가 목자가 있기 때문에, 멸종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영적 가족 여러분, 이 귀한 명절 추수함사절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양과 같음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착한 목자 되신 주님 때문에,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DNA를 받아 우리도 착한 양이 되어야 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양처럼 힘든 존재예요. 누가 우리를 비난하면 우리도 비난할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가 개처럼 짖을 수가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어렵게 하면 뿔난 소처럼 처받을 수가 있습니까? 많은 경우 저에게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목사님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또 대신 뱀처럼 지혜롭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근데 제 생각 저는 뱀처럼 지혜로운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맨날 뭐라 그러면 당하고, 맨날 공격받으면 피 흘리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방어(防禦)용 기재가 없어요. 방어용 방어 무기가 없어요. 따라서 저나 여러분은 목자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오늘 고백해야 하는 것이 대형 교회가 강하다. 천만의 말씀!!!~~, 우리는 다 양들만 여기 모여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나중에 얘기하겠습니다마는 이 양을 주님은 제물로 받으신 것이에요. 여러분 그 강한 사자를 제물로 받으십니까? 호랑이를 제물로 받으십니까? 그 똑똑한 여우와 늑대를 제물로 안 받으시고, 이 힘없고 연약한 양을 주님이 재물로 받으시는 것이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할 말 다 하고 고개 다 들고 자기 원하는 대로 큰소리 치고 하고 싶은 대로 말 다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건 예수 믿는다 하면서 자기 스타일대로 살면 제가 볼 때, 그거는 좀 정상 양이 아니에요. 미친 양 죄송합니다. 정신줄 놓은 양이에요. 원래 우리는 멸종 당할 만큼 무력한 양이기 때문에, 선한 목자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우리는 선한 목자 없이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무력 곱하기 100제곱 무무무무무무력한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오죽하면 뒤에 요한복음 15장 5b에 뭐라고 말씀하는가? *요한복음 15장 5b, 5b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뭐예요? 아무것도 탓이 없네. 나띵(Nothing!), 노바디(Nobody!!),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다시 우리는 선한 목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랑할 수가 없는 존재이고, 우리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 아멘@!!!~~ 그래서 주 없이 살 수 없네.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는 거예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십시다. 살다 보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 달 내내 감기 걸리면 어떡할까요? 갑자기 여러분 심정지가 오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 교회 명예 목사님 같은 하영록 목사님 지난번 특새 2주 전에 와가지고 특새하고,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갔는데, 갑자기 심정지가 왔어요. 거의 이제 돌아가시나 그랬는데, 이제 다시 좀 의식이 돌아왔어요. 근데 문제는 뭐냐 하면 심장을 다시 또 갈아 끼워야 되는 거예요. 세 번째 심장을 갈아 끼웠는데 말이 됩니까? 이거 어떻게 하면 좋아요? 이걸!!! 어젯밤 12시 정도 갖고 사모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어젯밤에 지금부터 몇 시간 전에 같이 울면서 기도하고,, 여러분 ‘내 노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준비한 것도 없는데’ 여러분들 ‘이 어려운 시대에 내 자녀는 어떻게 키울까?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특별히 우리 교회에 속한 자영업자들 얼마나 애를 많이 쓰십니까? 4차 산업시대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이 60~70대 80대 어른들, 저는 한 번도 했잖아요. 은행 저기 뭡니까? 뭐죠? 스마트폰으로 계좌이체, 이런 걸 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지금 끝나면 저는 무기력한 양처럼 저는 콕 죽을 거예요. 아마 우리는 아무 능력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딱 하나만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에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그랬어요. 유일한 사람, 목자 여러분, 제가 약간 추상적인 것 같습니다마는 여러분 꿈이 없으면 인생의 꿈이 없으면 힘이 없어 현실을 이길 능력이 없어요. 인생의 결핍이 있으면 그 결핍 때문에 두려움을 이길 수가 없어요. 많은 상처가 있으면 그 상처가 여러분의 삶의 발목을 잡을 거예요. 그런데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이 양들이 꿈이 없는 인생에 꿈을 갖게 돼 가지고 꿈을 갖고 힘이 다시 회복이 되는 것이에요. 그다음에 결핍이 없는 사람들이 그 결핍이 선한 목자를 통해서 만족이 되니까 다시 두려움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에요. 상처 있는 인생이 선한 목자 통한 상처가 치유되니까 상처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사실 이 요한복음 10장의 배경은 요한복음 구성이에요. 요한복음 9장에 뭐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이 날 때부터 한 많은 인생 날 때부터 맹인이 되었으니까 꿈이 없어요. 앞을 못 보니까,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니까 결핍의 인생이에요. 날 때부터 상처부터 해 사람들이 와가지고 니가 무슨 죄가 있었으면 날 때부터 이렇게 맹인이 되나? 그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어요. 그런데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오늘 나는 선한 목자라. 9장 10장은 오늘 사실은 맹인된 이 맹인들을 이용해 먹는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주님이 질타하시고, 대신 나는 선한 목자라 그걸 깨닫는 순간 이 시각장애인 이 맹인은 영의 눈이 떠지고, 또 주님이 직접 육의 눈을 고쳐주시고 다시 꿈과 꿈을 회복하니까 다시 힘이 회복되는 것이에요. 그의 모든 결핍이 치유가 되는 것이에요. 그의 발목 잡던 상처를 통하여 모든 것들이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치유하여 주시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다시 살아갈 힘과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양으로서 무기력한 내가 나는 부족한 양입니다. 나는 마치 맹인과 같습니다. 나는 부족한 양입니다. 나는 주님 없이는 못 삽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 되신 주님 없이는 못 삽니다. 라고 깨닫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그 순간 많은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게 뭐냐? 나를 두렵게 하는 대상들이 더 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오히려 그 두려움의 환경들이 나를 목자 되신 주님께 더 집중하게 만들고, 내 장래도, 미래도, 노후도, 죽음도, 경제 문제도, 직업의 문제도, 자녀 문제도, 더 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무력한 존재이지만 주님이 나를 주님이 나의 선한 목자라고 할 때에 방향 감각이 없고 무능력하게 짝이 없는 내가 선한 목자를 통하여 해결함 받게 되는 겁니다. 그 하영록 목사님 사모님하고 통화를 하는데, 이런 우리 사람 목자 되신 하나님 이 막히면 그러니까 굉장히 담담하게 그 어려움 가운데서 그리고 그 심장을 세 번이나 가려야 되는 그런 상황이 앞에 놓은 걸 볼 때, 우리가 겪는 수많은 어려들은 어려움도 아니에요. 가만히 있는 거 봐요. 다들!!!~ 여러분과 저의 능력과 가치는 어디서 결정됩니까? 세상에는 그들의 실력과 능력과 지혜로 자기의 삶을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마는 우리는 무력함과 약함, 양들의 어떤 모자람, 그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선한 목자에 대한 내 마음의 의탁과 확신을 선한 목자에 대한 목자 지수가 내게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서두에 말한 대로 내 인생의 미래가 결정이 될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주님은 나의 선한 목자다.’ ‘양들의 무력함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걸 이 감사 주일날, 아주 그냥 처절하게 여러분의 것으로 고백할 때,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지혜가 될 것입니다. 억만금으로 바꿀 수 없는 진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윗은 그의 위대한 어떤 시즌에도,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 시즌에도, 다 통할 수 있는 위대한 진리를 다윗이 고백하는 것이에요.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선한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걸 여러분들이 오늘 다 외우고 다 압니다마는 이걸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금은(金銀)보화(寶貨)로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우리에게 주신 강력한 진리라고 믿고, 일마다 때마다 어려울 때마다, 이걸 10번, 20번 고백하게 될 때에, 여러분도 상상할 수 없는 희한하고도 놀라운 결과와 능력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날 것이에요. 이건 제 얘기가 아니고, 다윗이 그가 어릴 때부터 목자의 삶을 살고, 목동이었던 다윗의 삶이 이 내용 안에 그대로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그는 찌는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비바람이 치던 폭풍 가운데서, 한밤에 가파른 베들레헴 골짜기에, 한밤에 매서운 추위와 냉기 속에서, 사나운 맹수로부터 양을 안전하게 보호했던 그의 목자로서의 경험이 이 구절 속에 다 담겨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가 이걸 가지고 그 양을 치면서 곰과 사자의 발톱으로부터 양을 어떻게 보호했는지, 내가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셔가지고, 내가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그 진리와 그 능력 가지고 골리앗 앞에서도 사무엘 17장에 보니까,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나를 지켜주시지, 이 민족을 하나님이 우리 어린 양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양처럼 되면, 하나님이 이 민족을 지켜주실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그가 선한 목자가 곰의 수염을 뽑아버리면서 사자의 입을 찢으면서, 양을 보은 걸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 고백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일생을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은 목자이신데 인생의 어떤 문제를 만날 때도,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그가 선한 목자가 곰의 수염을 뽑아버리면서 사자의 입을 찢으면서 양을 보호한 걸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 고백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일생을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은 목자이신데 인생의 어떤 문제를 만날때도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자녀가 속썩이고, 가족들이 속썩이고 그렇다 할지라도, 회사에 상사가 여러분들을 고통을 준다 할지라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수만번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순간 문제가 해결된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이렇게 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다윗이 체험한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이 5절입니다.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함께 보죠. *시편 23:5,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가 뭘 차려주신다고요? 상을 차려주신다. 나는 어릴 때, 이걸 읽을 때에, 하나님이 내게 무슨 상 주나? 어워드, 상을 주시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내 테이블 내 식탁을 차라 주시는 거예요. 아주 아름다운 식탁을 차려주시는 거예요. 누구 앞에서? 원수 앞에서 여유만 많은 은혜를 주시는 그 사망의 뭉침한 골짜기, 죽음의 골짜기를 다 지나갈 때에 주님이 나의 목자시라고 진실로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그러냐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신다. 하나님이 상을 베풀어 주신다고 상을 베풀어주신다. 무슨 뜻입니까? 모든 우리의 문제들은 식탁에서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실 때 해결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식탁의 중심에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과 함께 식탁을 하는 것이 식사를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식탁에 예수님이 아니라, 원수를 앉히고 있어요. 남편과 다툼이 있을 때, 아내는 그 식탁에 분노를 앉혀놓는 것이에요. 누군가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때, 그 여러분의 식탁에 목자 대신에 증오를 앉히는 거예요.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여러분의 식탁에 원망과 복수를 대신 앉힌다면 그것은 원수의 목적에서 내게 상을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를 깨닫는 것이 아니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증오 대신에, 분노 대신에, 원망과 복수 대신에, 여러분 인생의 식탁에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앉히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그 식탁이 감사가 있고, 그 식탁 음식 자체가 여러분들을 주님과 함께 치료받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분노와 증오와 복수를 가지고 식탁에 얹어놓은 줄은 말 말고 선한 목자 되신 주님과 함께 식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사람 목자 되신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본문에서 주신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11절에, *요한복음 10:11,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뭘 버린다고요? 목숨을 버린다. 목숨을 버린다. 목숨을 버린다. 어떤 뜻인가 하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28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0:28,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뭘 주신다고요? 영생을 주시다. 주님이 목숨을 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영생이란 말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뜻이에요.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28절 뒤에 보니까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도록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이것은 10절에 있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한다. 그 어바운던트 라이프(Abundant Life)와 이터널 라이프(Eternal Life)가 같이 가는 거예요. 풍성한 생명과 영원한 생명이 같이 가는 거예요.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의 손에서 이 영생, 영원한 생명을 빼앗을 자가 있다. 없다 없다는 것이에요. 환난(患難)이나 곤고(困苦)나 마귀(魔鬼)나 어떤 불행이라도 주님의 손에 빼앗을 자가 없던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선한 목자라고 생각하면 흔히들 그냥 착하다 그래 가지고 조금 약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 선한 목자 되신 주님 어린 양으로서 그냥 말 침묵하면서 그냥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되신 주님께서는 그 선한 목자를 부활하게 하여 주셔서 그 양을 부활하게 하셔서 유다의 사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29절 오죽하면 그들을 시작, *요한복음 10:29,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그래서 저는 그 목숨이 경각한 날,은 임종할 때에, 제가 28절 29절을 암송하면서,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 이 선한 목자를 믿는 그 순간 영생을 우리에게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그리고 특별히 오늘 28절에 중요한 거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내가 너희에게 그들에게 뭘 주노니 영생을 준다.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이것은 시세가 과거 시제나, 미래 시기만 한 게 아니라, 이거는 현재 시제에요. 오늘 주님이 나의 선한 목자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 여러분들이 영생을 영원한 생명을 지금 이 땅에서 현재적 삶으로 누릴 수가 있는 것이에요. 영생을 현재 시제로 체험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흔히들 우리가 영생이라고 그러면 죽고 난 다음에 나중에 영생이다 그 정도가 아니에요. 이 땅에서 영원한 생명의 예고편을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선하심, 주님의 인자하심, 선한 목자의 능력, 선한 목자의 자비, 선한 목자의 긍휼과 보호하심을 이 땅에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고편으로서 누릴 수 있도록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이게 아주 놀라운 것인데 주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위해 오셨어요. 마태, 마가, 누가 공관복음은 천국이라고 말하고 혹은 하나님 나라라고 말했어요. 근데 신비한 복음서에 요한복음은요.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는 말 대신에 영생이라는 말로 바꿨어요. 여러분과 제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천국을 이 땅에서 예고편으로 체험해야 되는데 그 체험을 어떻게 하느냐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목숨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이것을 누구도 빼앗을 수가 없다고 그랬는데 영원한 생명의 예고편을 이 땅에서도 맛볼 수가 있다 없다 있다고 오늘 선포해 주시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오늘 저녁부터 우리는 새 생명 축제를 합니다. 수천의 영혼들이 태신자로 올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제가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인생이 결코 넘지 못하는 허무와 죄와 죽음의 문제를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오늘 말씀을 할 것입니다. 그걸 깨닫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맞이하고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깨닫는 그 순간부터 영원한 생명의 예고편을 지금 이 순간 오늘 저녁부터 예수 안 믿는 분들이 처음부터 수많은 분들이 누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영생은 영원하다는 뜻인데, 삶이 영원하다 할지라도 이 삶이 만약에 고난과 죄악과 슬픔의 삶으로만 영원히 산다면 그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영생이라는 것은 영원하고 길다. 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영원한 분이시니 전적으로 영생은 우리가 이 땅에서도 하나님적인 삶을 사는 것이 천국적인 삶을 사는 것이에요. 그래서 영생은 한마디로 하나님적인 삶을 사는 것이에요. 하나님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예수님적인 삶을 사는 것이에요. 그리고 예수님 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예수님의 가장 key는 선한 목자 양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세요. 그러니까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 이 땅에서 천국 하나님 나라 이 땅에서도 우리가 예고편을 맛보기 위하여 예수님적인 삶, 하나님적인 삶, 천국적인 삶의 키는 뭐냐?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그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DNA가 우리에게 들어올 때, 우리는 착한 양이 되는 것입니다. 또 착한 장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목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두 우리에게 깨닫도록 많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 목회자로서, 지난 40년이 넘는 동안 제가 목회하면서, 저의 목회의 중요한 우선순위는 뭐였나?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은혜 받는다고 하면,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은혜 받는 환경이 되기를 원한다. 그거에 대해서는 저는 전력투구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 성도들의 은혜 받는 일이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어떻게 하면 은혜받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한결같이 평생을 은혜 받는 사람 될 수가 있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력합니다. 우리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가 찌르면 찔리고 누가 칼을 찌르면 피하는 연약한 존재. 근데 딱 하나 우리가 우리의 생애가 하나님 영적으로 성공하려면 딱 하나입니다. 우리가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깨닫고 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착한 양으로서 우리나 모든 것에 무력하지만 무력 곱하기 100제곱이지만, 그러나 오늘 사는 목자 되신 주님을 제대로 깨닫게 되면 원수 앞에서 식탁을 베푸시는 하나님 은혜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양은 무력합니다. 그러나 양은 주인에게 도움을 주는 아주 특별한 동물입니다. 양처럼 모든 것을 주는 동물이 없습니다. 살아서는 양의 털을 주인에게 주고, 양의 젖은 새끼에게도 주지만 절반은 또 주인에게 주고, 죽으면 양고기를 주인에게 주고, 가죽도 주인에게 주는 것입니다. 양고기가 되게 맛있습니다. 양갈비가 최고입니다. 아까 말씀한 대로 다 주고 더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은 사자를 받으시지도 않고, 타이거를 받지도 않으시고, 일이나 늦게도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노력하고 노력하여 이 약을 주의 향기로운 재물로 받는 것입니다. 흠 없고 순전한 양을 주님은 반드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양의 은혜가 있을 때, 우리도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착한 어린 양으로 골고다 십자가 끌려가셨습니다. 하나의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 어린 양처럼 순수하게 피 흘려주셨습니다. 그 양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붙잡으시고, 부활하게 하시고, 유다의 사자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양은 영어로 lamb, 램, 비 이즈 묵음, 램 약자입니다. 그런데 렘이 라이언, 헬라어, 유다의 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력합니다. 우리는 정말 세상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이 땅의 복잡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말입니다. 우리 물을 감동받아 그러나 오늘 이 말씀 통하여 저와 여러분이 착한 목자, 착한 양이 되면, 우리를 통해서 부활의 영광과 능력, 유다의 사자의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 양과 목자의 능력을 가지고, 인생 수많은 여러 가지 장벽들을 목자의 심정을 지닌 강력한 인생의 박해를 새롭게 구축하여 승리할 수 있도록 오늘 추수감사절에, 여러분 생에 가장 강력한 감사 양과 목자의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무력한 나를 앞서 인도하시는 주님께 '깨알 같은 찬송과 감사'를 올려 드릴 때, 감사의 능력으로 '미래의 승리'를 결정하게 하게 하는 지혜로 인도하심을 믿고, 분노와 원망과 증오와 복수의 식탁'에 생명주신 선한 목자를 주인으로 모실 때, 온전한 꿈과 만족과 치유주시는 영생의 삶'을 이 땅에서도 살아 내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초대한 수많은 태신자들이 '새생명축제'(11.10-13)를 통해 모두 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여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 평생'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준비하고 섬기는 날이 되어야 한다. -거센 길도, 돌작밭도 넉넉히 지나갈 수 있는 튼튼한 생의 바퀴로 무장되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충성된 양과 목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소망하며, 오늘 여호사밧 왕이 여호와께 감사하세라고 선포하면서 그 감사의 능력으로 모압의 연합군을 물리친 것처럼, 오늘 주님이 내게 주신 이 목자 되신, 내가 착한 양과 착한 목자가 된 이것이, 우리의 삶에 가장 강력한 감사의 제목이 되어서, 우리 인생의 식탁의 중심에 분노와 증오와 원망을 모시지 말고, 목자 되신 예수님을 중심에 모셔가지고, 그 목자와 식사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천국적인 삶, 하나님적인 삶, 예수님적인 삶에 예표를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올해 연말 여호와가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이 민족의 목자 되심을 선포함으로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진실로 고백할 수 있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덧입혀 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 밤부터 감사와 영혼, 구원이 어우러진 새 생명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앞서 인도하시는 은총의 표징(表徵)을 보여주시는 우리 주 선한 목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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