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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3월 24일)
제목: ''부족해도 괜찮아요''
말씀: 시편 34:9~10절
설교자: 이의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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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4:9~10)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이 생수의 위쪽에는 비워져 있다. 약간의 비워져 있다. 밀폐된 물은 병이 약간씩 비워져 있다. 이 생수 안을 살펴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병을 잡을 때는 살며시 잡아주세요. 첫 개봉 시에는 물이 넘칠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이 물이 넘치지 않도록 적절하게 좀 부족하게 넣는다. 부족한 것은 여기까지가 좋다. 우리 인생은 여기에서 1%라도 아래로 내려가면 고통스럽고 힘들다. 뭐 그까짓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견디어야 하는 사람은 힘들고 매우 고통스럽다. 인간에게 힘들고 압박하는 단어가 있다. 완벽이라는 단어이다. 옆 사람을 보라 완벽한가를.... 완벽한 사람은 늘 완벽하기 위해서 힘들게 산다. 온전함이란 말씀으로 요즘 우리는 붙들고 산다. 온전함도 완벽함과 같은 단어이다. 이 온전함이란 완벽을 요구하는 단어 같아서 좀 무거운 단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온전함을 사모한다’ 로 바꾸어 쓰면 참 많이 다르다. 이 온전함을 사모한는 것은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성장 계획이다. 이것이 바로 온전함을 사모하는 것이다. 온전함을 사모하는 것은 부족함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이 부족하고 연약한 그 지점부터 온전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온전함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원리이다. 지난주일 온전함 시리즈의 담임 목사님 말씀 가운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고 말씀하셨다. ‘몸이 없으면 내가 없다’라고 하셨다. 교회는 조직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위한 유기체이고 교회가 생명력 있는 유기체가 되기 위해서는 잘못된 개인주의를 뛰어 넘어야 한다고 하셨고,. 나 때문에 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잘못된 개인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하셨으며,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대상들에 대하여 왜 빚진 자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이다. 그들도 역시 미래의 지향적으로 한 몸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대하여 빚진 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마음속에 굉장히 큰 은혜였다. 함께 울고 함께 웃을 때,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비로소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 온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명력 있는 유기체가 되기 위해서 잘못된 개인주의를 벗어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유기체로 되어야 한다는 점,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 안에 부족한 것들을 온전함으로 잘 채워가고 성장시켜가고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부족함, 제일 잘 사용하는 단어가 있는데 얼굴 자체가 부족하다. 남들이 있는 머리카락이 나는 없다. 전에는 스트레스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머리카락이 없어도 하나님은 머리카락 대신 내 안에 하나님은 다른 것을 주셨다는 것을 믿는다. 부족함은 생각해보면 시디푸스의 바위와 같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트의 왕. 제우스를 속인 죄로 지옥에 떨어져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다. 그가 밀어 올리는 바위는 산꼭대기에 이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그는 영원히 이 일을 되풀이하였다고 한다). 내가 부족함을 채운다는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부족함이 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너 부족한 것 알지?’ 한다. 언제까지 부족함의 바위를 옮기는 일에 인생을 허비하겠는가? 온전해지기 위해서 내안에서 가장 먼저 이 온전함이 시작되어야 한다. 온전함을 사모하는 나의 이 부족함, 내안에 있는 이 부족함을 믿음 안에서 어떻게 다루어가야 좋을지를 시편 34편을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나눈다.

 

I. 나 원래 참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나 원래 그래 어쩔?)

- 부족하다는 것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내가 부족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 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부족하지 않다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환자라고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부족함의 또 다른 표현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참아야 하는 일들과 견디어 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원하는 순간 즉시, 바로, 그 모양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인생은 인생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이 펼쳐지지 않았던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들이 성경에 등장한다. 요셉과 다니엘과 다윗이다. 이들은 원하지 않는 현실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요셉이 팔려가고 종살이를 하면서도, 다윗이 사울을 피해 유랑자로 평생 살면서도 12년을 살았고, 또 포로로 끌려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살았던 다니엘도, 내가 왜 이런 상황을 경험해야 하는지를 분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믿음의 사람들, 요셉과 다윗과 다니엘은 누구나 갖고 있는 자신의 인생의 한계와 수많은 현실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부족감을 열등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갖고 있는 현실의 부족함을 세상을 향한 불평과 원망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믿음의 부족함을 기도의 영역이라고 언제나 확인하며 하나님께서 한 걸을 더 나아갔던 믿음의 삶을 살았다. 내 부족함을 인정하는 일에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용기가 필요하다. 창피한 것은 창피하다. 머리카락이 없다고 자랑하는 것은 좀 뻔뻔한 것이다. 그러나 괜찮지 않다. 창피한데 창피하지 않은 척하려고 그냥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부족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면, 더 부끄럽다.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편하게 사는 것이 좋다.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편하다. 극복하고 벗어나는 것이 용기이다. 노력이 시도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9절에,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주를 믿는 성도들아 그를 경외하여라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새 번역 성경)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사울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다라는 것이며 하나님 한 분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내 생각 모든 힘을 다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집중하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경와 하는 자 되길 축복한다. 이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내 부족함을 온전케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믿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모든 사람들을 괜찮다라고 하신다.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일들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순간이 우리에게 펼쳐져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원한다면, 하나님만 생각하길 원한다.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얼굴 미인 한동대 이지선 교수이다.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렸지만 그녀는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에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전에 보지 못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그러진 얼굴과 옛 얼굴과 바꾸고 싶지 않다고 한다. 더 좋은 것을 하나님이 주셨기에 본인의 외모보다 지금이 더 좋다고 말한다. 우리 예배 가운데 부른 ‘나 가진 것이 없으나’ 찬양곡도 그렇다. 송명희 시인, 어려서부터 장애로 태어난 자이다. 가사를 보면, 은혜롭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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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찬양으로 눈물이 났다. 이 송명희 시인은 공평하신 하나님은 남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주시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족함 없는 믿음과 그 은혜를 자신에게 주셨다고 고백한다. 여러분도 삶에 부족함이 있는가? 그게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실지로 그 부족함을 채워주신다. 기도하면 더 커질 수 있지만 기도하고 견딜 수 있는 믿음과 생각을 주신다면, 부족함의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음을 믿는다. 내 인생의 부족함을 깨닫는 그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이루지고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이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고백하라. 나는 부족합니다라고,,,, 하나님은 나는 안됩니다라고 하면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실 것이다. 모든 부족함이 없게 해주신다고 하실 것이다. 사울은 가장 부족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부족했던 다윗도 가장 온전한 사람이었다. 내 삶의 주권자인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나 원래 참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 말은 부족한 상태로 머무른 것이 아니라, 더욱 내가 온전함을 사모하겠다는 내 결단의 시작이다. 이 결단으로 온전한 사모함의 시리즈를 계속 은혜 받아 더 온전을 이루어가는 믿음의 성도가 되길 바란다.

 

II. 부족해도 괜찮아요, 주님을 찾으면, 모든 좋은 것들로 부족함 없이 채워진다.

-성경을 읽다가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이다. 다윗이 이야기 한다. 내가 사자와 곰도 죽였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저 이방 블레셋 사람을 못 죽이겠냐고 한다. 사자와 곰처럼 반드시 그를 죽인다고 한다. 한 사람도 골리앗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벌벌 떠는데 심부름 왔던 그 어린 목동이 이야기 한다. 저 버릇없는 놈이라 하면서 어디서 하나님을 욕하고 다니냐고 한다. 혼자만 골리앗을 깐다. 돌았다고 한다. 양이나 기르는 아이가 하고 비하한다. 결국 그러나 죽인다. 골리앗을 죽인다. 이것보다 더 액션이 있나? 이것보다 더 반전은 없고 정말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그런데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사울이 보낸 모든 일들을 잘 해내기도 한다. 이스라엘 가운데 가정 충실하고 성실한 다윗은 사울 왕에게는 시간이 갈수록 고마운 신하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불편하고 불쾌한 존재가 된다.

 

*사무엘상 18:29절에, 29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골리앗을 죽인 이후 블레셋과 전쟁이 또 일어난다. 이 전쟁에서 다윗은 사울이 기분 나쁘게 한 번 더 강력한 승리를 이루고 만다. 인생에는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다. 인생에는 하나님이 필요한 두 개의 순간이 있다.

그 첫 번째는 고난과 고통이 나를 에워싸고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칠 때, 정말 죽겠다고 생각이 들 때이다. 솔직히 기도와 찬송이 안 되고 뭔가 나를 압박하고 짓누르는 것 같다.
둘째는 내가 노력하고 기대했던 것들이 이상으로 모든 것들이 잘 될 때이다.

이 두 상황은 다른 것 같은데 똑같다는 것이다. 어려울 때는 어려워서 하나님이 필요하고 잘 될 때에는 나를 잘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지 않도록 민감하게 하나님 뜻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하다. 다윗의 인생을 살펴보면 두 가지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다윗의 인생에 골리앗을 이길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승리가 이루어지는 순간 자신이 죽을 때까지 다윗을 포기하지 않는 추격자가 생긴다. 예상치 못한 인생의 복병이 생겨난 것이다. 다윗이 왕으로 섬기는 바로 사울이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사울이 아말렉과 전투하는 과정에서 승리한 후에 전리품을 취하는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불순종 하는 사울을 책망하시면서 사울 왕을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말씀하신다. 여화와의 말씀을 버리니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했기에 이제 하나님이 인정하는 왕이 아니라는 것이다. 후회셨다는 것은 노아의 홍수 때에 쓰여 진 비슷한 표현이 여기에 쓰였다. 사울이 이때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자기의 부족함을 잘 다룬다면 위기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의 자리로 옮겨갈 수 있을 텐데, 무너지기 시작한 이 상태를 더 깊이, 더 파괴적으로, 더 인본주의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 생각과 자기 마음을 따라 가다가 결국 단창을 가지고 다윗을 향하여 광야에 사로잡혀 던져버린다. 다윗은 그 일로 도피를 시작한다. 사무엘상 21장이 바로 오늘 이 시편 34편 9-10절의 배경이다. 사울이 창을 피해 도망치는 가운데 바두왕 아기스 앞에 갔다. 그때 사울이 다윗을 향하여 창을 던졌다는 근거가 되는 다윗이 만만이요, 사울이 천천이라는 말이 다시 듣게 되면서 이 아기스 앞이나 사울 왕 앞과 다를 바 없다는 상황을 파악한다. 그 순간 대문짝에 그적거리고 침을 흘리고 아주 제대로 미친 행동을 시작한다. 아기스 왕은 미치광이라고 비난한다. 성경에서 이보다 더 부족한 상태로 추락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상황을 놓고 보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든 곡식들이 다 사라졌을 때에, 오늘은 네 자식을 먹자라고 하는 상황들을 보면, 아무도 돕는 사람도, 함께 하는 사람도 없다. 다윗은 미치광이 같은 행동을 하고 겨우겨우 빠져 나온다.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극단적인 부족함의 상태, 나 홀로인데, 나 홀로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미치광이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 절망 중에 더 큰 절망의 상태가 된 것이다. 그 순간에 다윗은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그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을 얼마나 찾았을 것인가? 더 간절하게 더 크게 얼마나 하나님을 찾고 찾았겠는가? 아기스 왕 앞에서 아무도 도울이가 없었다. 거대한 골리앗 앞에 선 그 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어도 이 아기스 앞에 있는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미치광이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엄청난 모멸 사건 이후에 하나님은 다윗을 아둘람 굴로 가게 하신다. 여기에 400명이 다윗에게 주워졌다. 다윗은 이 아둘람 굴에서 큰 소리로 외친다. 젊은 사자들은 먹이를 잃고 굶주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찾는 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축복한다. 사람이 많고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은 다윗을 홀로 있게 하지 않으셨다. 골리앗의 전투 앞에는 모두 앞에서 싸웠다. 다윗은 하나님께 순종했던 것이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은 인생으로 전환된다. 돌 하나 던지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사백 명을 주셨다. 내 인생을 하나님 밖에 없다고 고백하면, 내 인생의 부족함을 하나님께서 직접 채우신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듯이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 이것이 온전함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인생의 믿음 생활의 방식이다. 부족해도 괜찮아요, 주님을 찾으면 가득 채워진다.

 

III. 부족해도 괜찮아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삶의 순간순간들이 내 인생의 계획을 완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 과정이다. 이것이 자기 인생을 바라보는 성도의 관점이 되어야 한다. 다윗이 10년간 사울의 추격을 받는다. 사울이 죽을 때까지 다윗을 핍박한다. 이 핍박을 다윗은 불평하거나 대들지 않고 잘 견딘다. 시편 57편에 보면, 아굴람 굴에 있을 때에 비탄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시편 57:2절을 보면,

 

*시편 57:2, 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다윗은 이 고백을 통하여 당신의 그 십년을 지낸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듣고 있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사람이 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순한 표현으로 10년을 견딘 것이 아니다. 사울이 추격하는 위험한 순간순간도, 다윗은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엔게디 광야에서 사울의 옷자락을 베고 나서 다윗의 마음이 찔렸다고 하는데 그 말이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획대로 사울을 다루어가고 계시고 나를 향한 계획들을 이끌어 가시는데 감히 내가 사울의 옷자락을 자른 일에서 다윗은 괴로워한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하나님의 목적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다윗이 그 사건을 알게 된 것은 사무엘상 16장에 나타난다.

 

*사무엘상 16:13절에,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 성령께서 그날 이후로 다윗을 사로잡아 감동시켰다. 다윗을 감동시킨 것이다. 자신이 놀라고 두렵고 힘든 순간, 눈물을 흘려야 하는 그 고통의 순간에 왕이 된 이후에도 그 파란만장한 그 수많은 사건들 속에 다윗이 어떻게 평정을 이끌어 갈 수 있었을까? 여전히 한결같은 믿음의 자세를 가질 수 있었던 다윗의 행동의 근거는 무엇인가에 놀라운 통찰을 얻게 되었다. 바로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지금 성취하고 계심을 깨닫는다. 내 상황이 어떠하든지... 다윗은 자신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들을 이루어가고 계심을 삶의 현장에서 확인한다. 골리앗, 블레셋 군대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다윗은 허약한 사울왕의 추격을 피하고 또 피한다. 도망자가 아니라 승리자로 이끌 수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다.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어도 자신의 손으로 사울을 죽이거나 해롭게 하지 않는다. 부족하지 않는 다윗이 부족한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어떤 마음으로 도망을 갔을까? 다윗처럼,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면, 이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우리 인생의 일들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래서 시편 57편에 이렇게 찬송한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이 찬송을 들으면 담임 목사님이 떠오르며 힘 있게 찬송하시는 모습니다.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라고 한다. 다윗은 바울이 말한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소망의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에 등에 오는 단창을 피하기 위하여 시년동안 도망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질 때까지, 하나님의 시간표가 채워질 때까지 견디는 것은 죽는 것보다 힘들었을지 모른다. 소망에 대한 내용을 아무리 분명히 내가 알고 있어도 소망까지 도달하기까지 멀고 험하고 고통스럽다. 암도 그 과정의 아픔과 고통을 당해 보지 않고 그 고통은 모른다. 이 과정을 지나가는 절대적인 믿음, 하나님께 향하고 하나님께만 집중되어지는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찾지 않으면, 부족함이 없는 일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늘 아둘람 굴 앞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 한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다.

 

▶오늘 두 사람의 인생의 끝이 온전함 사모하는 사람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인생의 끝을 정확히 보여 주고 있다.

1. 사울-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 마음을 따라서 사울의 인생의 끝,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날에 함께 죽었다. 다 가졌는데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하나님의 영적인 빈털터리였던 그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다.

2. 다윗-하나님 없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그 인생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기간은 40년이며, 헤브론에서는 7년간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33년을 다스렸고,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존귀를 누리도록 죽으매 그이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된다.


-나이 많아 늙도록 존귀를 누리다가 죽었다고 한다. 부족했지만 언제나 부족함이 없었다. 그이 인생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성경에 담고 있다. 온전함의 시리즈를 한 주 한 주, 지나갈 때에 우리의 인생의 끝의 결론은 다윗과 같아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좀 부족해도 괜찮다. 왜냐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경외하고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 대한 계획을 이루어 가심을 믿어야 한다. 온전함을 사모하여 지치지 않고 힘 있게 달려가야 한다.

 

♣요약
우리가 온전함을 사모하여야 한다. 우리는 죄인이고 부족하다 우리의 영혼의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듯이 내안에 부족함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인정하고, 주님을 더 찾아야 한다.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찾으면 모든 좋은 것들로 채워주심을 믿고, 평생 흔들림 없이 살아가야 한다. 부족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지금도 이루어가시고 계심에 감사하며,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어떠한 상황도 극복하고, 온전함을 사모하여야 한다. 부족한 우리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에는 그의 존재의 아름다움과 온유하심 그리고 그의 섭리와 은혜의 후하심과 자비로우심이 다 포함된다. 그는 우리도 그와 함께 하나님을 구하고 그를 섬기며 계속해서 그를 경외할 결심을 하도록 권유한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즉 "그를 경배하고 모든 일에 마땅히 그에게 행해야 할 너희의 본분을 자각하라. 그를 두려워하여 피하지 말고 그를 경외하고 찾으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찾도록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여기서 그렇게 하는 자들은 이 부족한 세상에서도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약속이 주어진다. 그들은 영적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생활에 있어서도, 그들은 생활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부터 받아 누릴 것이다. 곧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그들을 좋은 음식으로 기르실 것이다. 그들이 그 이상으로 바라는 좋은 것이 있다면 무한하신 지혜 자께서 선히 여기시는 한 그것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다른 것으로 보충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절하시는 것이 있을 때라 해도 그것 없이도 족하게 지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은혜를 주실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게 될 것이다. 바울은 자족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풍족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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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99 회 경제상식퀴즈(한국경제)



1. 투자자로부터 모집한 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수익을 배당하는 부동산투자회사다. 상장해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이것은?
  1. ① 파운드리
  2. ② 리츠
  3. ③ 모기지
  4. ④ 쿼드

2. 반도체 수탁 생산에 집중하는 전문기업이다. 반도체 설계업체로부터 일감을 받아 제품을 제조하는 이곳은?

  1. ① 파운드리
  2. ② 리츠
  3. ③ 모기지
  4. ④ 쿼드

3. 미국, 인도, 일본, 호주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는?

  1. ① 파운드리
  2. ② 리츠
  3. ③ 모기지
  4. ④ 쿼드

4. 특정 주주에게 보유 지분율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경영권 보호가 목적인 이 제도는?

  1. ① 차등의결권
  2. ② 황제주
  3. ③ 황금낙하산
  4. ④ 스튜어드십 코드

5.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지침을 무엇이라고 할까?

  1. ① 차등의결권
  2. ② 황제주
  3. ③ 황금낙하산
  4. ④ 스튜어드십 코드

6.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뜻한다. 최근 국내외 경영계의 화두로 자리잡고 있는 이것은?

  1. ① ETF
  2. ② EMP
  3. ③ ESG
  4. ④ ELS

7. 수출 감소 폭보다 수입 감소 폭이 더 커짐에 따라 경상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나타냈다면 적합한 표현은?

  1. ① 유동성 함정
  2. ② 쌍둥이 적자
  3. ③ 불황형 흑자
  4. ④ 죄수의 딜레마

8. 자금 공급을 확대해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고 사람들의 화폐 보유만 늘어났다면 적합한 표현은?

  1. ① 유동성 함정
  2. ② 쌍둥이 적자
  3. ③ 불황형 흑자
  4. ④ 죄수의 딜레마
    -------------------------------------------------


    ☆ Cover Story'' ☆

    -국가의 경제 성적표'' GDP·GNI가 궁금해-

    “잘사는 나라에 살래, 못사는 나라에 살래”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잘사는 나라를 선택할 겁니다. 잘사는 나라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잘산다’는 개념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상식적으로 경제력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GNI), 국내총생산(GDP)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경제력 평가 잣대입니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GNI가 높고 GDP가 큰 나라에 사는 나라 국민들은 긴 평균 수명, 많은 교육 기회, 건강한 삶과 여가를 즐깁니다. 내가 사는 나라가 잘살았으면 하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겁니다.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아프리카 돕기. 1만원을 기부해주세요’라는 광고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해봤을 겁니다. “저 나라들은 왜 저렇게 못사나?”

    인류의 역사에서 ‘잘사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수천년간 절대빈곤 수준이었습니다. 이것을 ‘맬서스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인류가 깊은 함정에서 벗어난 때가 소위 ‘산업혁명 직후’부터였습니다. 대한민국은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부터입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에서 벗어난 직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아프리카 케냐보다 낮았습니다. 한국은 이후 피나는 노력을 펼친 결과 지난해 GDP 기준으로 세계 10위권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선진국이 우리보다 앞섰습니다.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졌습니다. 코로나 감염병이 세계를 강타한 이유도 있습니다만,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가지가 장애물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경제를 뒤흔든다는 분석과 지적이 많습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심하고 규제가 많아 기업의 체력을 저하시킨다는 우려도 있고요.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시장경제와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했습니다. 분업과 전문화, 자본 축적도 강하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들의 작동을 막는 게 많을수록 경제성장 동력은 떨어집니다. GNI, GDP 개념을 알아보고 이 두 가지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4, 5면에서 더 알아봅시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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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3월 21일)
제목: ''몸이 없으면 내가 없다''
말씀: (로마서 12:4~5)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윤하중 부목사님
기도: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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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4-5)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말씀을 통하여 필요한 은혜와 말씀에 맞는 봄비의 은혜와 단비가 되길 바란다.
영적으로 소생하기를 바란다. ‘몸이 없으면 내가 없다’는 온전한 시리즈 여섯 번째이다. 교회를 뜻하며 교회는 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가 없으면 내가 없다는 뜻이다.

 

I.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오늘 본문 12장 5절을 보면,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이며, 우리 교회에서 용어로 이야기 하면 영 가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적 가족이 되었다는 것,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이며 서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관계라는 것이다. 오늘 이 코로나가 우리에게 정신 번쩍 들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한 사람의 건강이 끝나지 않고 그 건강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너의 건강이 없으면 나의 건강이 없고, 나의 건강이 없으며,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말한다. 환경적으로 말씀 앞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다. 이 내용은 교회의 한 몸이라는 것이다.

 

4절에 보면
12: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한 몸의 지체를 가졌다는 것이다. 5절 뒤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다. 이 내용은 바울이 교회가 서는 곳마다 계속해서 그 지역이 서도록 확신의 생각을 이렇게 반복한다.

 

고린도전서 12:12-14절에 같은 내용이 나오고 있다.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 모두는 ⓐ한 몸으로 ⓑ 한 성령으로 ⓒ 한 소망을 가지고 ⓓ한 주님을 ⓔ한 믿음으로 ⓕ한 세례를 받고 ⓖ한 하나님 아버지를 섬긴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기를 믿는다. 모두가 다 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에 하신다. 몸은 몸인데 한 몸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를 둔 자는 국경을 넘고, 인종을 뛰어넘어 전 세계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머리가 그리스도이시니까 그렇다. 모든 교회와 모두가 다 영광스런 교회가 한 몸임을 확신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인종이 다 다르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순간 육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남녀노소 모두가 다 영 가족이며, 권속이 된 것이다. 영 가족이 된 것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떠나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한 가족이다. 특정한 그룹이 아닌 교회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며, 한 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후에 분명히 재확인해야 하는 것은 리컨 컴폼햐여 하는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는 것이다. 이 교회는 로마교회, 고린도교회, 향해서도 한 몸을 강조한다. 우리는 한 몸으로 한 성령을 받아, 한 소망을 가지고 한 주님을 한 세례를 받고, 한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다. 바울이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회복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삼위일체, 이런 핵심적인 것이 일치하면 한 교회로 회복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세계 교회 선교의 절박성, 성령님의 주권, 거룩한 공교회의 중요성, 등이 왜 중요한 것인가를 알듯이 이런 내용이 일치가 되면 ‘장감성순침’ 모두가 일치가 되면 한 몸이다.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 성결교, 요새는 침례교 등이다. 교단이 나누어져 있어도 핵심교회와 핵심사역의 토대만 같이 간다면 다 한 몸인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 중에도 나온다.

 

유다서1:3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 믿음의 핵심 교회,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삼위일체 교리,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과 부활, 재림의 교리, 피의 구원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단번의 믿음의 도이다. 개신교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기독교이다. 우리는 기독교가 한 몸이 되어서 믿음의 도를 가지고 믿음이 계승을 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복음주의 신학자의 말에 의하면,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초자연적인 사회이다. -JJ 패커-

-왜 초자연적인가? 사회는 빈부귀천과 초등 나온 자와 박사님과 함께 하기 어렵지만, 그 무학하고 박사도 모두가 성경 읽고 초자연적인 은혜를 받는 것이다. 여당야당이 다 예배하는 것이다. 시골 할머니도 교호에서 은혜 받으면 믿음으로 세계를 위해 기도하면 은혜로 성령 충만으로 초자연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일반적인 것으로 이해가 안된다하지만 교회는 초자연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초월적이다.

 

 

II. 교회는 조직체가 아니라(기계적 연명) 그리스도로 함께하는 생명의 유기체이다.

-교회는 조직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유기체이다. 조직체는 생명 없어도 기계적 연명은 하나 생명이 없으면 죽는다. 생명체는 지체가 떨어지면 죽는다. 그 조직체는 존재하긴 하나 유기체는 생명이 없으면 죽는다. 우리의 몸은 무조건 반사 작용한다. 조직체는 조건반사이다. 라인이 있다. 우리 몸은 생명체이다. 유기체이다. 유기체. 무조건적인 반응은 음식이 들어오면 위산등 위작용을 한다.

 

-다윗에게 골리앗이 와가지고, 다윗이 믿는 하나님을 골리앗이 하나님 조롱할 때, 다윗은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로 대항한다. 무조건적인 반응을 했다.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 다윗의 형들은 목동이 되가지고 형제들이 양치기가 아니냐고 한다. 조직적 반응을 했지만, 생명의 관계로 판단해야 한다. 교회가 조직체가 되면 안 된다. 생명의 은혜가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유기체적으로 생명의 관계로 회복 되어야 한다. 100시대에 하나님의 교회가 되려면, 포스트코로나로 살아나려면 생명이 살아야한다. 조직체로 비난치 말고 생명으로 판단하라. 하나님의 교회는 생명으로 연결되고 유기체적으로 연결된다.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은 특별한 차원 생명적 유기체적 ~조직체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 교회가 생명이 이끄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조직이 이끄는 교회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는 여전도회장, 남전도회장 등이 없는 교회이다 제자훈련 교회는 생명이 이끌기 때문이다. 생명의 능력의 깊이로 움직이면 생명의 공동체가 되며 사활이 달려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답게 되려면 전 세계 일만 명의 선교사가 있기를 소원한다. 가장 대표적은 다락방이다. 생명의 능력으로 돌아간다. 특새에도 생명의 능력이 있기에 다 모인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영적 세포 유기체의 생명의 역사가 지속되어야 한다. 생명의 은혜가 우선되어야 한다. 조직으로 하지 않고 생명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여의도 광장—80년대 초에 김중권 목사님의 주관으로 빌리그램 전도 집회가 있었다. 백만 명 모이면 걱정도 있었다. 전염병이나 무슨 걱정이 있을 것을 염려했다. 그렇게 많이 모이면 북한에서 미사일도 날라올 수 있다고 염려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복음의 역사는 초월적이기에 해결되었다. 생명의 역사로 폭발적인 단초가 되었다.

 

III. 교회는 생명력 있는 유기체가 되기 위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

-개인적이 되면 안 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잘못된 개인주의이다.
-잘못된 개인주의 경계를 필히 해야 한다. 개인이 먼저 되면 모래알 소비자생각.. 맘에 안 들면 떠나고 교회/설교쇼핑 1)한 몸이 되어 2)지체를 이루고 이런 인식은 개인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는 일이다. 교회는 개인이 모인 공동체가 아니다.

 

12:5절 뒤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순서를 거꾸로 하면 안 된다. 몸이 먼저인가? 지체가 먼저인가? 몸이 먼저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있고, 지체로서 존재한다. 순서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이후에 나아갈 방법이다. 교회인 몸에 붙어 있어야 한다, 몸에 붙어있지 않으면 생명 없는 죽음이다. 분리된 지체는 생명 없는 죽음이다. 잘못된 개인주의 경계, 개인이 먼저 되면 모래알, 소비자 생각.. 맘에 안 들면 떠나고 교회/설교쇼핑 등이 그렇다. 소중한 사람이니 그리스도 몸에 붙어있어야 한다. 교회에 내가 붙어있다. 예수님의 교회가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이다. 포도나무를 보면, 예수님의 몸이 둥치이다. 내 능력으로 포도나무의 열매가 맺히는 게 아니다. 눈물로 강력한 소원을 가지고 거룩하게 하나님의 교회에 붙어있어야 한다.
-내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

로마서 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이 가졌던 평생의 그의 어떤 신앙을 보면, 내가 빚진 자는, 복음을 전했다. 그 헬라인이나 이방인이 바울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그들이 빚진 자가 될 수 있지만, 복음을 듣는 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복음 전한 바울이 왜 빚진 자? 바로 그들의 듣는 자가 있어야 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생명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바울의 생명력 있는 사역이다. 바울이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했고 그들이 있기에 존재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기에 복음이 된다. 개인이 큰소리 칠 게 아니다. 왜곡되고 호도된 개인주의가 되지 않아야 한다. 나홀로 신앙생활은 안 된다.반드시 다락방과 연결하여 다락방을 통해 은혜 나눔 필요하다.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안에 빈부귀천과 유무식을 초월하여 은혜를 부어 주실 때에 우리의 공동체가 잘못된 개인주의를 버리고 온전한 한 몸을 이루어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 되어야 한다.

-바울은 본문에서 성도들의 관계 혹은 교회를 사람의 몸과 그 몸에 속한 지체들로 비유합니다. 몸에 속한 여러 지체는 각각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이다. 이러한 비유는 몸의 통일성과, 각 지체의 다양성과 이에 따르는 기능의 다양성, 그리고 여러 지체들의 상호 보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성도들은 이렇게 각기 다양한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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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새(주후 2021년 3월 20일)
제목: ''영가족 하나님의 공동체''
말씀: 마가복음 2:1~5
설교자: 천동원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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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1~5)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천동원 부목사님
-우리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인생의 함께 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가족중 경사가 있으면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가족 모두가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비단 가족만이 아닌 주위 사람들도 내 일처럼 기뻐하며 함께 동참하게 된다. 물론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 일도 간혹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같이 이웃을 곁에 두고 있다면 함께 즐거워할 줄 믿는다. 역으로 가족 중, 어려운 고통을 당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 역시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다. 가족 모두가 고통스럽다. 육신의 질병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족이 있을 경우 그 가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가정에 웃음기가 없다. 침울하며, 그 집안의 공기조차 무겁다. 함께 아는 이웃들조차 침통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 중풍병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본문은 이 중풍병자가 어떤 고통을 당했고, 또한 이 중풍병자가 얼마만큼 견디어 왔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위중한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중풍병자가 절실히 만나야 할 사람은 의사였다. 자신의 질병을 치료할 명의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찾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열두 해 혈루 증 않는 여인이 많은 의사를 찾는 것처럼, 있는 가산조차 다 허비했던 그 비참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찾아간 것처럼 이 중풍병자 역시 그랬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이 중풍병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급히 글 메어다가 예수님께 나올 만큼 절박하고 위중한 상황이었다. 본문 말씀은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에서 동일하게 다루고 있는 사건이다. 마가복음은 이 사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마태 누가에서 표현하지 않는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던 사람들의 명수가 언급이 된다. 요약하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평소에 중풍병자를 알고 지냈던 그를 침상에 누인 체 메고 온 것이다.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과 문 앞에 들어설 자리도 없는 것이다. 그때 생각한 것이 네 사람이 이 중풍병자를 침상 채 지붕으로 옮겨다가 지붕을 뜯어내고 예수님 앞에 데려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그 질병을 고쳤을 뿐 아니라 죄 사함과 구원의 은총까지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문 3절에 보면,

 

3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는 일에 집중하고 모든 이들이 공동체를 귀히 여기시며 공동체 은혜로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의 본성 자체가 공동체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은 삼위일체가 되신다.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으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서로 사랑하시고 서로 교제하시며 서로 의존 하시고 서로 영광을 받으신다.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고 계신다. 우리가 잘 아는 창세기를 보면,

창세기1: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을 가리키는 히브리 단어는 엘로힘은 복수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표현한다.

 

창세기 1:26-27절에-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공동체이신 하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형상과 모양으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공동체를 발견하게 오늘 치유사건은 공동체이신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믿음을 통해 일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바라고 있다. 이 본문을 접할 때 교회를 떠올리게 된다. 이 중풍병자의 아픔과 고통을 통해서 믿음의 영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가족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하는 가족 구성원 같은 영적인 가족, 영원한 가족이며 영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담임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영 가족’이란 말씀이 참 들으면 들을수록 은혜가 된다. 교회는 조직이나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가족이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린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형제, 자매라는 단어가 130여 차례 이상 언급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보시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영 가족이다. 본문에서 중풍병자를 데려왔던 그들이 규모 적으로 교회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구체적으로 언급된 네 명의 사람들은 우리의 다락방처럼 느껴진다. 다락방에서 영 가족들이 모여서 깊은 문제와 고민을 함께 나누며 세워져 나가는 모습이 떠올려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8년째 사역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사랑의 교회의 형제, 자매의 삶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어떤 집사님의 예를 들어본다.

순원 집사님의 한 분이 허리통증을 24시간 앓았다고 한다. 통증이 시간적 주기가 있는데 그분은 지속적으로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도 고치지 못한 일이어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던 중 순장님의 권유로 이 순원에게 특새를 권면 했다고 한다. 먼 거리를 두고 특새에 참여하고 순종하였다. 그 통증을 참으면서 교회를 오가며 버스와 교회에 도착까지 4시간을 보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순종했다. 순종하여 특새에 참여한 것이다. 마치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순원들이 함께 부축해서 특새에 참여했다. 이 집사님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것을 현장에서 기자가 찍은 것이었다. 순원들이 부축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특새 레터지에 소개된 것이다. 장면을 보니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이 순원과 함께 특새를 완주를 한 것이다. 결국 특새 후에 부활절도 참여하였는데 담임 말씀 앞에 통증이 깨끗이 사라졌다고 한다. 훗날 고백하기를 통증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이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했다고 한다. 고통 속에 지낼 때 차라리 주님 곁으로 가고 싶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랬던 집사님이 주일 말씀을 듣고 이제 그 통증이 깨끗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감격이었겠는가! 어찌보면 그 중풍병자를 침상 채 메어 지붕을 올라갔던 무모했던 네 사람처럼, 다락방 순원들이 순원집사님을 모시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마치 중풍병자를 치유하셨던 그 은총이 손길이 동일하게 이 순원 집사님에게 내려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 가족을 통해 은혜 나눔과 간증을 하게 하심과 본문의 공동체를 증명한 것처럼, 우리 또한 함께하는 믿음의 영적인 영 가족을 통해 함께 세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 담임 목사님.
우리는 영 가족이다. 영적 가족이다. 우리는 영광과 고난을 함께 할 영적 가족이다. 부부가 소중한데, 신앙 가진 부부가 더 소중하다. 왜냐면 신앙을 가진 부부는 가끔 다투지만 잠시만이다. 천국까지 같이 가기 때문이기에 서로 잘하게 된다. 다투면 안 된다. 이런 생각하면 서로 잘해야 한다. 혼자서 제자 반 7개 하면서 주일 설교 다하니 너무 피곤했지만, 은혜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힘든 시기가 있었다. 우리는 영원한 영 가족이 가슴을 치게 했다. 오늘 토비새 나온 자들은 영적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내일은 교회 론에 대해서 말씀을 한다. 코로나 이후에 돌파할 수 있는 마음 주시길 소망한다. 지금까지 21일간 65만 명이 국내 인구 대비 1프로 좀 넘게 백신을 맞은 것 같다. 코로나가 속히 종식 되에 올바른 예배를 드리기를 기도하자.

 

♣요약
그리스도께서 얼마 동안 변방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시다 그의 본거지인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리자 곧 사람들이 그를 찾아 왔다.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1,2절). 왕이 있는 곳에는 알현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을 만큼 그리스도를 알현하려는 무리들의 수효가 많아서 그들을 모두 영접할 만한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계신 집으로 구름같이 몰려드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는 매우 복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아마 그들 가운데는 병만 치유 받으러 온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고 또 단지 그의 모습을 보려는 호기심 때문에 나온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이 모두 모이고 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 중엔 평일에 집에서 도를 전하는 것이 시간과 장소를 적당하게 선택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리스도는 그것을 전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병든 자는 중풍병자로서 전혀 치료가 불가능했으므로 마치 시체처럼 침상에 실려 네 사람에 의해 운반되었다. 이렇게 운반되어야 할 정도로 그 중풍병자는 가련했지만 그를 침상에 실어서라도 운반한 것은 그 운반한 사람들에게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정 많은 이들, 친척 또는 이웃들은 그 중풍병자를 그리스도에게 한번만이라도 데려 갈 수 있다면 더 이상 그를 운반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당히 힘든 일이지만 중풍병자를 그리스도에게 데려 왔던 것이다. 그들은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낼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 집은 다락방이 없는 단층집으로 지붕이 올려졌다. 그래서 중풍병자를 운반해 온 사람들은 문 앞에 모인 많은 무리 때문에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 모든 방법을 동원한 끝에 그 중풍병자를 그 집 지붕으로 들어 올렸다. 그런 다음 그들은 지붕을 뜯어내고 중풍병자의 침상을 끈에 매달아 그리스도가 말씀을 전하고 있는 집 안으로 내렸던 것이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믿음과 열심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에 의하면 그들은 열심 때문에 그냥 가지는 않았을 것이며 또 축복하지 아니하면 그리스도를 가게 하지 않았을 믿음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저희의 믿음이란 그들이 중풍병자를 데려온 일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병든 자를 데려왔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했다. 참되고 강한 신앙은 다양하게 작용하여 이성의 결함을 극복하기도 하고 또 감각의 결함을 극복하기도 하므로, 어떠한 믿음으로 나타나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이 믿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실 것이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사용된 '소자'라는 호칭은 매우 다정한 표현이다. 그리스도는 참된 믿음을 지닌 자들을 자기 아들로 삼으시기 때문에 중풍병자라도 아들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매우 간절했으므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가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죄의 결과로 병이 생겼다는 생각을 없애고 병의 원인인 죄를 깨닫게 하여 죄를 용서받는데 더욱 관심을 쏟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병에서 회복된 것이 죄의 용서를 받아 비롯된 것일 때 그것은 진실로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어떤 결과를 없애는 길은 그 원인을 제거하는 데 있다. 죄를 용서받는 것은 모든 병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므로 결국 병이 치유되거나 그 병의 상태가 호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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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98 회 경제상식퀴즈

1. 평생직장을 선호하기보다 개인별 상황에 따라 비정규직·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근로자가 많아지는 현상을 말하는 신조어는?

  1. ① 긱이코노미
  2. ② 데이터 경제
  3. ③ 골든크로스
  4. ④ 롱테일 법칙

2.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돕기 위해 제공하는 증여, 차관, 기술원조 등의 ‘공적개발원조’를 뜻하는 말은?

  1. ① OPEC
  2. ② OLED
  3. ③ OTT
  4. ④ ODA

3. 증시와 관련한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은?

  1. ① 황제주가 동전주보다 비싸다
  2. ② 코스닥 상장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이 어렵다
  3. ③ 황소장과 곰장은 반댓말이다
  4. ④ 액면분할하면 주식 수가 감소한다

4.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이 극심하다고 판단될 때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카드로 가장 거리가 먼 것은?

  1. ① 추가경정예산 편성
  2. ② 기준금리 인하
  3. ③ 적자재정 확대
  4. ④ 보편적 증세

5. 증권시장에 상장하지 않은 기업이 기존 상장 기업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상장하는 방식은?

  1. ① 직상장
  2. ② 우회상장
  3. ③ 인적분할
  4. ④ 물적분할

6.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을 수 있는 ‘틈새시장’을 뜻하는 용어는?

  1. ① 니치마켓
  2. ② 하이퍼마켓
  3. ③ 베어마켓
  4. ④ 그레이마켓

7.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A사 주가는 어제 2만원으로 마감했고 오늘 상한가를 기록했다. 오늘 A사 주식의 종가는 얼마일까?

  1. ① 2만2000원
  2. ② 2만3000원
  3. ③ 2만6000원
  4. ④ 3만원

8. 외국인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국내에 진입해 법인 설립, 인수합병(M&A), 기술제휴 등에 나서는 ‘외국인직접투자’를 뜻하는 약어는?

  1. ① FDI
  2. ② FTA
  3. ③ FDA
  4. ④ F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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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한국경제 -

''미래 친환경차'' 수소차 혁명은 진행 중


정부가 2030년까지 자동차 온실가스를 24% 감축하고, 전기·수소차를 수출하는 ‘친환경차 수출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제4차 친환경자동차 기본계획’을 지난달 발표했습니다. 전기·수소차 보급을 늘리고 충전소 등을 확대하는 한편 배터리 등 성능 개선을 위한 기술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입니다.

전기차와 수소차는 전기로 모터를 돌려 바퀴를 굴리는 자동차입니다. 휘발유 경유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이산화탄소(CO2) 등 배출가스가 전혀 없는 저공해 자동차죠.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이 발명돼 운송혁명을 일으킨 이후 자동차는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꾸준히 발전해왔습니다. 휘발유와 경유를 쓰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이어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동시에 쓰는 하이브리드카, 내연기관을 전부 없앤 전기·수소차까지….

그런데 유럽연합은 앞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운행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배출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죠.

독일과 네덜란드는 2030년, 영국은 2035년,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2040년 화석연료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가 2030년, 싱가포르가 2040년 화석연료차 퇴출을 선언했고 중국도 베이징자동차 등 자동차 업체들이 2025년부터 화석연료차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자동차 천국’인 미국은 아직 화석연료차 중단에 소극적이지만 캘리포니아가 2035년부터 휘발유차 판매를 금지하는 등 일부 주에서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휘발유와 경유 등을 연료로 하는 내연기관차를 대신해 전기차와 수소차가 앞으로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내연기관차가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각국의 규제가 강화되리라는 분석이죠. 하이브리드카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수소차로 가는 중간단계 정도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기·수소차의 주행성능은 이제 화석연료차에 버금갈 정도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넥쏘는 7000원대인 수소 1 충전으로 96.2를 갈 수 있어 동급인 투싼(1600원대 휘발유 1리터당 12) 보다 경제적입니다.

글로벌 수소차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현대자동차는 ‘수소차 시대’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수소경제를 중요한 정책방향으로 설정하고 관련 예산을 집중 투입하고 있습니다. 수소차 시대가 다가올까요? 그 가능성을 4, 5면에서 알아봅시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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