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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12월 18일)
제목: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 마가복음 6:45~56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오정호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노창수 목사님(남가주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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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45~56,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53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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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창수 목사님(남가주 사랑의교회)
-코로나 시대에 와서 인사법이 바뀌었다. 코로나 펜데믹에서의 인사는 한 손을 들면 악수이며, 두 손을 들면 허그(hug)이다.
누구에게든지 인생살이는 순탄하지 않다. 사는 것이 정말 버겁고 힘들다. 크리스천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아니하던 삶에는 수많은 굴곡이 있고 아픔이 있고 또한 고난이 있다. 우수한 중견 간부로 행복하게 살았던 한 분이 있다. 그러나 빚보증을 섰던 남동생의 사업이 부도가 나자 그가 평생 땀 흘리며 모았던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부모님의 재산도 날렸다. 봉급도 압류당했다. 그가 목사님께 이렇게 하소연 한다. “목사님, 저희 집안은 5대째 기독교 집안입니다. 아버지가 장로이시고 어머니가 권사님이시고, 저는 어렸을 때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집안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런 심판을 내릴 수 있습니까?”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자신의 삶에 임한 풍랑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했을까? 험한 세상을 살다보면 풍랑을 만난다. 예상치 않은 크고 작은 풍랑을 만난다. 크리스천들도 풍랑을 만난다. 제자들도 풍랑을 만난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도 풍랑을 만난다. 제자들이 요나처럼 불순종하다가 풍랑을 만난 것도 아니다. 저편을 건너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풍랑을 만났다. 그것도 오병(五甁)이(二)어(魚)의 기적(奇蹟),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인 기적 후에 풍랑을 만났다. 성경에 보니까 밤 4경까지,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제자들은 적어도 6시간 내지 8시간 동안 풍랑을 만났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 출신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다고 벌벌 떨고 있다. 바로 이때 저쪽에서 희미한 물체가 물 위를 걸어온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두려워 떨고 있었던 그 희미한 물체를 보고 “귀신이다.” “유령이다.” 라고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이 아시듯이 서양귀신과 동양귀신이 좀 다르다. 서양귀신이 주로 남자이고, 동양귀신은 주로 여자이다. 서양귀신은 주로 검정색 옷을 입고 동양귀신은 주로 하얀색 옷을 입는다. 서양귀신은 머리에 기름을 발라서 올백을 하고, 동양귀신은 주로 머리를 앞으로 내린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가? ㅋㅋ 그러나 예수님은 남자이지만 검은 옷 대신해 흰옷을 입고 머리 기름을 발라 올백을 한 것이 아니라, 머리를 길게 풀고 계셨다. 예수님께 자신을 보고 귀신이다. 소리를 지르른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에 대해서 마가복음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에 보면 또 다른 사건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한 가지를 요청한다. 마태복음 14장 28절이다. 보면, *마태복음14:28,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역시 베드로다운 요청이다. 엉뚱한 요청, 어처구니 없는 요청이다. 지금 베드로는 물위를 걷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사실 그는 물 위를 걷데 해달라는 요청보다 살려달라고 요청을 했어야 한다. 어찌 되었든지 예수님께서 그의 요청을 들어주셨다. 그가 물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다시 물에 빠졌다. *마태복음14:30,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풍랑 속에서 두려웠던 베드로가 왜 살려달라고 하지 않고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는가? 그 이유가 있다. 마가복음을 보면, *마가복음 6:48,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베드로는 제자들이 탄 배를 지나가려고 하는 예수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예수님을 놓치면 죽을 것 같았다. 표준 번역을 보면 이렇게 번역을 했다. “나로 물위로 걸어서 주님께 오라 명하소서.” 그날 베드로의 목적은 물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었다. 예수님께 가면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즉시 배에서 뛰어 내려 물위를 걸어서 예수님께 가려고 했다.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다시 물에 빠졌다. 배에 타고 있는 이 11명의 제자들이 이 베드로의 어처구니 행동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한 번 상상력을 동원해 보기 바란다. 아마 제자들이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 “저 베드로, 또 사고 쳤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해주실 텐데, 저렇게 나서니까 잘난 척 하니까 또 물에 빠지지, 저애는 항상 그게 문제야! 말보다 행동이 앞서. 가만히 있으면 주께서 알아서 해 주실 텐데 왜 저렇게 나서는지 몰라. 챙피해 죽겠어.” 했다. 맞다 베드로는 다혈질이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변화 산에서 기도할 때, 베드로가 “주를 위해서, 모세를 위해서, 엘리야를 위해서 텐트를 짓겠습니다.” 라고 자원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혔을 때, 흥분한 베드로가 칼을 뽑아서 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 다시 나타나자, 베드로가 고기를 잡다 말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예수님께로 간다. 베드로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조금 다르다. 베드로가 무작정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마태복음 14:28~29,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베드로가 다혈질인 베드로가 그날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나로 물위로 오게 하소서. 예수님이 오라 명하니.” 그 말씀에 순종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물위를 걸어갔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저편으로 건너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다 풍랑을 만났다. 베드로가 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다시 물에 빠지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는가? 순종하다가 풍랑을 만나고, 순종하다가 물에 빠지는 것이 복이다. 왜냐하면 순종하다가 풍랑을 만나면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다. 순종하다가 풍랑을 만나면 물위를 걷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순종하다가 풍랑을 만나면 내 인생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초점은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이 아니라, 풍랑이 잠잠하게 되는 기적도 아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주목해야 될 점은 바로 풍랑 중에 베드로가 만난 예수님이시다. 풍랑 중에 있는 베드로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씀하신 그 예수님이다. 베드로가 만난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저와 여러분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세 가지로 스케치를 하고 있다. I. 예수님은 풍랑을 만난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마가복음 6:48,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배에 태워서 저편 벳세다로 건너가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가셨다.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칠 흙 같이 어두운 밤에 풍랑으로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치는 제자들을 보았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방치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찾아오신다. 물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찾아오셨다. 그런데 이 48절에 지나가려고 하시매, 라는 표현이 나온다. 굉장히 중요한 표현이다. 예수님은 왜 풍랑 중에 있는 제자들을 지나가려고 했는가? 이 지나가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가? 제자들이 풍랑 중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 풍랑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잠시 보고 지나가려고 하셨는가? 이 지나가려고 하는 말은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현현’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에게 나타내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청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나를 보면 죽는다.”라고 말씀하시고 모세를 반석 틈에 세우시고, 하나님이 지나가시면서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가리셨다. 그날 모세는 하나님의 등을 보았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와 영적싸움에서 대승을 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영적으로 탈진해서 죽고 싶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힘을 주시고 그리고 주님께서 세미한 음성을 들려 주셨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 풍랑 중에 있는 제자들에게 지나가시면서 주님의 영광을 그들에게 드러내고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뜻밖에 풍랑을 만났는가? 이 성탄 시즌을 맞이하는데,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이 성탄 시즌을 맞이하는데도, 삶에 크고 작은 풍랑으로 인해서 낙담하는 분들이 계시는가? 우리 주님은 풍랑 중에 있는 여러분을 보고 계신다. 외면하지 않으신다. 찾아오신다. 그리고 그분이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믿으시는가? II. 예수님은 풍랑을 만난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분이시다. -그날 물에 빠졌던 베드로가 어떻게 나왔을까? 첫째, 물에 빠진 베드로가 기도했더니 물이 얼어서 걸어서 나왔다. 둘째, 물에 빠진 베드로가 기도했더니 몸이 부웅 떠서 날라서 나왔다. 셋째, 물에 빠진 베드로가 기도했더니 예수님의 손잡고 나왔다. 셋째, 틀렸다. 마태복음 14:31절을 보면 *마태복음 14:31,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베드로가 예수님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베드로의 손을 잡아주신 것이다. 물에 빠진 베드로가 예수님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베드로의 손을 예수님이 잡아주셨다. 그것도 즉시 손을 내밀어 잡아주셨다. 일류 역사상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씩이나 물위를 걸었던 사람이 있다. 성이 베씨요, 이름이 드로이다. 베드로이다. 첫 번째는 혼자 물위를 걸어보았고, 두 번째는 예수님과 함께 물위를 걸었다. 첫 번째는 혼자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졌다. 두 번째는 물에 빠져 “나를 구원하소서!” 외치는 베드로의 손을 붙잡으신 예수님과 함께 물위를 걸었다. 누가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날 배 바깥으로 나오는 이런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린 최고의 선물이고, 물위를 걷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베드로의 기준, 예수님의 최고의 선물이다. 예수님이 물에 빠진 베드로의 손을 붙잡으셨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여러분의 손을 붙잡아 주신다. 우리의 손을 절대 놓지 않으신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가 힘들면 붙잡았던 주님의 손을 놓고 싶다. 교회 생활도 다 그만두고 싶고, 다락방도 그만 다니고 싶고, 제자훈련, 사역훈련도 순장사역도 그만 하고 싶고, 만사가 귀찮고 힘들고 고통이 내 삶에 엄습(掩襲)해 오면 내가 붙잡았던 주님의 손을 놓고 싶다. 그것이 우리의 연약(軟弱)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기도하기 바란다. 내가 주님의 손을 놓아도 주님은 여전히 내 손을 붙잡고 계신다. 그리고 그 손을 절대 놓지 않으신다. III. 예수님은 풍랑을 만난 우리를 끝까지 동행하는 분이시다. 자,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해도 될까요? 이 풍랑이 언제 그쳤을까요?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올 때 풍랑이 그쳤는가? 아니면 예수님이 베드로와 함께 걸어갈 때 풍랑이 그쳤는가? 이 풍랑이 언제 그쳤는가? 마태복음 14장 32절을 보면, *마태복음 14:32,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예수님과 베드로가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셔도 풍랑이 일어난다. 예수님이 내 손을 붙잡고 계셔도 여전히 풍랑이 내 삶에 엄습해 온다. 예수님 믿으면 만사형통?, 무병장수? 그것 거짓 복음이다. 예수를 믿어도 세상이 악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당한다. 풍랑이 있다.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셔서 저 영원한 아버지의 집에 갈 때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는데 그 영원한 아버지 집에 갈 때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풍랑을 언제든지 만난다. ※제가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 부임(赴任)한 지 얼마 안 된다. 개인적으로 큰 풍랑을 만났다. 저희 아버님이 고혈압, 당뇨, 간, 신장, 전립선 등으로 무지 고생하셨다. 일주일에 세 번 투석도 하셨다. 일 년 반 동안 고생하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저희 어머님은 길을 걸어가시다가 자동차에 치이셨다. 갈비뼈가 금이 가고 그 사고로 2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셨다. 지금도 자동차 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계신다. 저희 장모님은 갑자기 간암 판정을 받으셨다. 위 70%를 잘라냈다. 저희 장인어른은 지금 노환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인생의 풍랑이 찾아온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어떤 풍랑이 있는가? 흘러간 세월만큼 풍랑이, 크고 작은 풍랑이 많이 있지 않은가? 엊그제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와서 군대 가고 또 시집 장가가서 아들 딸 낳고 엊그제 직장생활 한 것 같은데 2-30년 훌딱 지나가고, 그 세월이 흘러간 만큼 여러분의 삶에 크고 작은 풍랑이 얼마나 많았는가? 아마 책으로 쓴다면 몇 권은 나올 것이다. 저희 교회는 성도들이 딱 둘로 갈라졌다. 아주 오래전에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이민 온 김포공항 파,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들어온 인천공항 파, 그런데 얼마 전에 새로 등록한 분이 1950년대에 미국에 들어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배 파도 있다. 인천공항 파, 김포공항 파, 배 파이다. 엊그제 미국 온 것 같은데 몇 십 년이 후딱 지나갔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간 것만큼 인생의 풍랑도 참 많았다. 그런데 제가 감히 여러분에게 한 가지 예언하려고 한다. 여러분의 인생이 얼마 남았든지 죄송하지만 크고 작은 풍랑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베드로처럼 예수님께로 나아와야 한다. 그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찾아오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삶을 붙잡아주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이 땅에서 저 영원한 아버지 집에 갈 때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예수님은 풍랑을 만난 여러분과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Take courage It is I Don't be afraid. -여기서 나야 나, 노창수야, 엄마야, 나야 아빠야가 아니다. 여기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나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다. 나다. 자연의 섭리를 다스리시고 귀신세계를 다스리시고, 질병을 다스리시고,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 나다.” 그러니 안심하라. 믿는가?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늘 풍랑을 만난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들지? 이 성탄 시즌을 맞이해서 많은 사람들은 기뻐하는데 속으로는 너무나 낙담이 되어서 사는 게 버겁지?” “나만 겪는 것 같아서 속상하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불공평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그래도 잊지 말라, 나다. 나야, 전능하신 하나님이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너를 붙잡고 있다. 나와 동행 할 것이다. 나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역시 성탄 아닌가? 높고 구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성탄의 기쁜 소식이다. 그분이 여러분의 손을 붙잡고 계신다. 여러분과 동행하고 계신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다. -제가 요한계시록 읽다가 한 단어가 제 마음이 각인이 되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말씀이다. *요한계시록 3:5,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1:27,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생명책에 기록된 것 결코 지우지 아니한다.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간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저희 어머님은 연로하시다. 곧 90이 되신다. 그런데 종합병원이다. 그런데 저희 어머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 따로 있다. 저희 어머님이 두려워하는 질병은 치매이다. “목사님, 저에게 치매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한다. 참 치매는 무서운 질병이다. 치매에 걸리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른다. 치매에 걸리면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한다. 심한 경우는 집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더 심한 경우는 가족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미국 연방 대법원 최초의 여성 판사였던 센드라 옥한은 남편과 54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는데 아내는 알아보지 못하고 요양병원에 있는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치매가 무서운 질병이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치매에 걸리셨는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평생 예수님을 섬기고 평생 복음을 전한 분, 목사님이 치매에 걸리자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우리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가? “네가 나를 잊어버려도 나는 절대 너를 잊지 아니한다. 내 생명책에 기록된다. 네가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설령 나를 망각하고 잊어버려도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주께서 영원히 기억한다.”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믿는가? “네가 연약해서 주님을 망각해도 생명책에 기록된 자녀들, 주님이 붙잡아 주시고 기억하신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 “힘들지? 사는 게 버겁지? 가진 것 남부럽지 않게 많고 손에 쥔 것 많은데도 여전히 마음에 공허함이 있지, 내게로 돌아와라, 내가 너를 위해서 왔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주님이 주신 찬양이 있다. 우리 같이 부르고 기도하면 좋겠다.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를 부르자.♬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1.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신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 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2.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 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요약 주님이 우리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 주신 주님을 바라보오니,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주님의 손을 놓고 싶을 때에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의 손들 붙잡고 계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이 땅에서 풍랑 중에도 우리와 동행하실 줄 믿고 바라보며 살기를 원해야 한다. 삶이 버겁고 주님의 손을 놓고 싶을 때도 아버지 집에 갈 때까지 주님은 우리를 붙잡고 계심을 굳게 믿고 위로하시는 예수님께로 달려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복음전파 외에 각색 병자들을 고치셨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병자, 여기서는 죄인을 고치는 의사로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말씀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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