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10월 16일)
제목: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말씀: 마가복음 5:25-34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설교자: 김대규 부목사님
----
 
*
마가복음 5:25-34,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여러분 나비효과라는 말을 여러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라는 분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서 사소한 변화가 전체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라고 하는 이론입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공기 흐름을 바꿔서 토네이도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또한 그 크기를 결정할 수도 있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여러분,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종종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물론 스포츠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기다리겠지만, 이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가장 간절히 기다리는 분들 중에 한 분이 한국의 치킨집 사장님들입니다.
 
왜냐 하면은 저 멀리 바다 건너서 벌어지는 경기가 한국에 있는 우리 치킨집 사장님들 하고는 무관할 것 같지만 그러한 경기가 벌어질 때마다, 특별히 우리나라 선수들이 출전할 때는 치킨 집 매장이 굉장히 오른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뭐 미국에서 경기가 벌어지든 유럽에서 경기가 벌어지든 이 멀리 떨어진 한국의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치킨집 사장님들의 매출이 오르게 되고, 굉장히 행복해하고 기뻐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건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인해서 내 삶이 바뀌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내가 계획한 대로 내가 예상한 대로 하나하나 이루어지면서 내 삶이 지금까지 흘러오셨습니까?
 
여러분, 그러한 부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우리 삶에는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큰 사건들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작은 사건 작은 사고들로 인하여서 내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내가 계획대로 되어 진 것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하여서 이리저리 흘러서 와 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그렇죠. 이러한 요인들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육신의 질병(疾病)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몸이 아프거나 가족 중에 누군가가 큰 질병에 걸렸을 때에 우리는 많은 계획이 틀어지게 되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우리 삶에 다가오게 됩니다. 여러분 작은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 오늘 수요저녁기도회를 마치고, 나는 은혜 충만한 상태로 집에 돌아가서 10시 전에 샤워를 하고 잠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알람을 3시에 맞춰놓고 3시가 되면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정갈하게 옷을 입고 어디 나옵니까? 특새에 나와야죠. 특새에 나와서 나는 은혜의 비를 흠뻑 맞고 또한 특세가 맞춰진 이후에 아주 가까운 집사님과 또 티타임을 하면서 특새의 은혜를 나누고 그동안 못다 한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겠다. 그리고 출근을 해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처리해야겠다. 라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계획대로 나는 오늘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10시 전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났는데 웬일인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몸에서 열이 나고 기침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독감 증세가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절대로 벌어지면 안 되겠지만요. 그래서 특새를 나오질 못해요. 그러면은 내가 계획했던 일들이 틀어집니까? 안 틀어집니까? 틀어지게 되죠. 내가 만나고자 했던 집사님과의 티타임도 할 수 없고 교제도 할 수 없고 또 출근도 할 수 없어서 내가 처리해야 될 일들도 뒤로 미뤄놔야 됩니다. 여러분 이런 독감(毒感) 증상(症狀)만 있어도 하루의 삶이 내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쉬어야 될 운명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렇게 육신의 질병이 내게 다가왔다라고 하는 것은 그 질병을 치료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병이 중하면 중할수록 우리는 그 병에 얽매이게 되고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삶도 뒤바꿀 수 있는 것이 육신의 질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의 가버나움이라는 한 도시에서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진 한 여인의 이야기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성경은 이 여인의 이름도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냥 혈루 증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이라고 소개합니다. 출혈이 멈춰지지 않는 이 병을 앓고 있는 이 여인의 삶에 어려움과 비참함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아픔과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이 병을 무려 12년 동안 앓아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기를 원하는 것은 이 여인이 이 병을 가지고 12년의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에 이 여인에게 도대체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까요? 여러분 이 혈류(血流)증(症)이라고 하는 병은 육신적으로도 굉장한 고통을 가하는 질병입니다. 이 질병으로 인해서 여인은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이 여인은 부정한 여인이 되어서 사람들과의 접촉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여인과 접촉하게 되면 그 사람도 부정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병이 불치병이었기 때문에 이 병이 타인에게도 옮길 수 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병에 걸린 사람들을 철저하게 배척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 여인은 종교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병을 앓고 있었고, 타인과 접촉하면 안 됐고, 치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여인은 가족들과도 격리되었고, 사회적으로도 수치의 시선을 받으면서, 12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의 기록에서 이 여인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26절에 나와있습니다. 26절엔 뭐라고 기록 하냐? “많은 의사들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중하여졌던 차에.” 많은 의사들을 찾아갔지만은 고침을 받지 못했고, 가진 것들을 다 허비하였고 오히려 효험이 없고 더 고통을 받았고 더 중해졌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 캄보디아의 단기 선교로 갔을 때에 이 캄보디아 땅에서 많은 어려운 분들을 만났습니다. 특별히 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요. 저희 제자 반 식구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있는 헤브론 병원이라는 병원에 방문했습니다. 이 병원은 한국에서 건너간 의료 선교사님들이 세운 캄보디아에 세운 병원이었습니다.
 
저희 대학부 시절의 후배가 이 병원에서 의료 선교사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 반 식구들과 함께 이 후배를 만나고 격리하러 갔습니다. 병원 안에서 치료받고 있는 많은 캄보디아인 분들을 만나 보았는데 저희 팀 눈에 인상 깊게 들어왔던 분들은 병원 안에서 치료받았던 분들이 아니라, 이 병원에 들어오지 못한 채로 병원 밖에서 자신의 순서만을 기다렸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저희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헤브론 병원은 한국에서 간 의사 선생님들로 구성 의료진이 구성되어 있었고, 또 최고의 의료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캄보디아에서는 가장 좋은 병원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치료비도 거의 무료였기 때문에 캄보디아에서 육신의 질병을 가지고 어려움을 당한 분들이 이 병원에 물밀듯이 찾아옵니다. 이 밖에서 모여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분들은 하루 이틀 1주일을 기다린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냥 천막 아래서 그냥 하염없이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역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어떻게든 치유함을 받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모인 분들입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간절함과 애절함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캄보디아와 같은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빈곤 계층으로 빠지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질병이라고 합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하나가 아프게 되면, 그 병을 치유함 받기 위해서 병원을 찾아가게 되고 자신의 소득 대비 의료비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그 의료비를 감당하다가 가족 전체가 새 빈민층으로 빠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이야기를 선교사님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여인도 처음부터 빈곤(貧困) 계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 중에서 병에 걸려서 의원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여인이 혈루 증을 앓았을 때에 많은 의원들에게 찾아가서 치료를 시도했다라고 하는 것은 이 여인에게는 어느 정도 재산이 있었다라고 우리는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병에 걸리기 전에 이 여인의 삶의 환경은 그리 나쁘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예기치 않게 찾아온 이 질병으로 인해서 이 여인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蕩盡)하고 여기저기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치료를 시도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용하다는 곳에 찾아가서 미신적인 치료를 받아보기도 하고 이리 저런 약을 써봤지만 다 헛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속기도 했던 것입니다. 어떤 치료도 받을 수 없었고 이 여인의 병은 점점 중하여졌고 이 여인의 삶은 절망 속으로 점점 빠져가던 차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여인이 한 소식을 듣습니다. 여러분 어떤 소식입니까? 예수라는 분이 우리 마을에 온다. 라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이 마을에 오시기 직전에 ‘거라사’ 라는 곳에서 귀신 들린 사람의 그 삶을 치유하시고 기적을 베푸셨기에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예수님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이 군중 속으로 나도 가야겠다. 라고 이 여인은 결심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마을에 당도하셨을 때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스토리와 이야기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한번 만져서 나도 내 병 한번 치료해보자 라고 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했는데 내 병이 나았다라는 소문이 여기저기에 퍼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희망에 사람들은 예수님 곁으로 모여 들었고 그들은 서로 밀치면서 예수님 옷자락에 어떻게라도 한번 손을 대볼까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이 여인이 치유함을 받았다라고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여인이 성경에 기록될 수 있었던 이유 이 여인이 치유함을 봤었던 이유는 첫 번째 간절함입니다.
 
I. 첫 번째, 간절함입니다.
-여러분 간절함이 무엇입니까? 이것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간절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 마음의 자수는 간절하지 않은 사람들과 아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여러분, 수많은 청년들이 배우자 기도를 합니다. 배우자 기도를 해요. 여러분 우리 교회 대학부 20대 초중반에 우리 대학부 형제자매들이 배우자를 위해서 하는 기도가 간절할까요? 청년부 30대 중후반에 우리 형제자매들이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게 더 간절할까요? 여러분 어려운 문제입니까? 예 그러면은 아 그럼 20대에 우리 대학부 형제자매들이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게 간절할까요? 우리 40대 이상의 우리 기도원 공동체에서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게 더 간절할까요? 네 알 수 있겠죠? 네 왜 그럴까요? 20대에는 내가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나는 결혼할 수 있다. 라는 어떤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예 기도하죠. 내가 20대니까 나는 기회가 많다 그런데 세월은 금방 가게 되죠. 어느덧 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서 10년 20년 가게 되면, 그 기도는 절박하게 됩니다. 이 기도가 마지막이다.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게 되죠.
 
여러분, 축구선수 안정환 씨 아세요. 안정환 씨가 하는 축구팀을 만들어서 하는 프로그램 2개를 제가 기억합니다. 하나는 아주 몇 년 전에 했던 ‘청춘 FC’라는 프로그램이고, 하나는 요즘도 하고 있는 ‘뭉쳐야 산다’ 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하니까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이 청춘 FC라는 프로그램은 축구 선수를 꿈꾸면서 열심히 축구를 했지만은 부상으로 인해서 때로는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해서 또한 여러 가지 방황들로 인해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기 꿈을 접어야 했던 청년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방송사에서 이러한 청년들을 모아 가지고 다시금 축구팀을 꾸려주고 이들을 훈련 시켜서 다시금 프로 팀에서 지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청년들이 훈련하고 경기할 때 그들의 간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들의 눈빛에선 이 기회가 마지막이다. 이 선수들은 몸이 부서져라 뜁니다. 죽기 살기로 훈련하고 경기장에서도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붓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사람들을 모아서 축구하는 축구팀을 만들어서 축구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뭉쳐야 찬다. 라는 프로그램인데요. 과거의 다른 종목 배드민턴이라든지. 역도라든지 사격 올림픽에 나와서 금메달을 땄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던 분들 또 야구나 축구 농구에서 스타플레이어들을 모아 가지고 축구단을 만들었습니다.
 
은퇴한 선수들을 모아 가지고요. 여러분 여기에 모인 선수들에게 간절함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없었습니다. 이들은 실수해도 웃기도 하고, 힘들면 걸어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간절함의 차이죠. 이 뭉쳐야 찬다.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모인 선수들은 이 축구하는 것이 자기의 삶에 일부 즐기는 것이지. 전부가 아니고 마지막 기회가 아니기에 자기 몸을 그냥 부서져 가면서 축구하진 않습니다. 감독을 맡은 안정환 씨의 자세도 다릅니다. 이 청춘 FC라는 이 청년들을 모아놓고 가르칠 때는 화를 내면서 진심으로 애타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들을 질책하면서 이 선수들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후자의 프로그램에 있어서 선수들이 열심히 뛰지 않고 넘어지고, 실수할 때는 함께 웃으면서 실수하면서 그냥 즐기면서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의 차이입니까? 간절함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모여 있지만 이 중에서 간절한 사람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한 명은 회당 장 야히로 였고, 1명은 이 혈류 증을 앓는 여인이었습니다. 회당 장 야히로는 자식의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저는 특세 때 부르짖는 또한 수요예배 때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수많은 분들 중에 자녀의 문제로 기도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다른 기도 제목들로 기도할 때보다 자녀의 문제로 자녀의 기도 제목들로 기도할 때에 더욱 애타게 더욱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저는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회당이라고 하는 것은 그 마을의 문화 교재 어떤 종교의 중심지입니다. 회당장이라고 하는 것은 그 회당이라고 하는 곳에 예배를 전체 관리하면서 그 지역에서는 꽤나 존경받고 덕망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회당 장이 한낮 나사렛에서 온 청년의 발 앞에 납작 엎드립니다. 엎드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엎드렸죠. 딸이 죽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딸이 죽어가고 있는 과정 속에서 이 혈루 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자신의 전 재산을 써가면서 이 병을 고치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이 회당 장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동원하면서 자기의 딸을 고쳐보려고 노력했지만은 그 딸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죽어가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 자기 딸을 살려야 한다는 이 간절함, 이 간절함 때문에 예수가 배를 타고 건너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떻게든 자기의 집에 먼저 모시고 가야겠다. 라고 하는 마음에 자신의 딸을 살려내야겠다. 하고 하는 마음에 이 예수의 발 앞에 납작 엎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혈루 증을 앓는 여인은 어떻습니까? 이 여인은 군중들 앞으로 나오는 것 그것으로 만으로도 굉장한 용기를 내야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은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됩니다. 이 여인의 존재만으로 더럽고 부정한 여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쩌면 사람들 앞에 나와서 사람들의 눈에 뛴다면, 이 여인이 율법의 조항을 어겼다고 비난받고 처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여인이 나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조항도, 사람들의 비난도 이 여인이 예수의 곁으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분, 간절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이것 아니면,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것만을 향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집중하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내 문제를 해결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간절함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에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치유받길 원했지만, 마음속에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음에도 치유함 받지 못 했습니다. 옷자락이나 한번 만져보지 그러면 고침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진짜 되겠어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까. 열심히 가서 옷자락이라도 만져보자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면 내 병을 반드시 고칠 수 있다.
 
12년 동안 누구도 고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라면 내가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반드시 마음을 입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구혼자시기 때문에 이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 여인은 나올 수 있고 만졌던 것입니다. 때문에 율법의 제한도 사람들의 시선도 그녀의 용기를 꺾을 수가 없었고 그녀는 용기있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어떠한 기도 제목과 여러분 어떠한 문제가 있으십니까 물론 수많은 기도의 제목과 문제를 우리는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수많은 기도 제목만큼 우리 가운데에 간절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님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라고 우리가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던 것처럼 우리 또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몸부림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벽마다 우리는 잠을 설쳐가면서 만5천 명의 성도들이 이곳에 모여서 또 온라인으로 하나님께 모여서 부르짖습니다. 여러분 저는 모두가 응답받기를 바랍니다. 진심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응답 받을까요? 저는 간절한 분 하나님께 집중하는 분이 응답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이 기도가 내 문제를 해결할 내 어려움을 해결할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다 여러 옵션 중의 하나다. 라고 생각하면 여러분 그 기도는 절대 간절할 수 없고 하나님 아닌 것에 우리가 여전히 의존한 채로, 기도 한다면, 그 기도는 응답받기 힘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언제 응답하시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나는 하나님밖에 답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니면 답이 없습니다. 라는 마음의 간절함을 가지고 나올 때, 하나님 응답하십니다. 여러분 이 여인도 마찬가지고 회당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쩌면 이 여인에게는 12년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야히로의 딸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특별히 뒤에 나오는 회당장의 딸은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옷자락을 만지는 사건을 통해서 여인과 대화하면서 지체자의 시간 때문에 죽어버립니다. 이 회당 장은 모든 소망과 희망이 꺾어져 버린 상태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때까지 기다리셨다가 회당 장 야히로의 딸을 살리십니다. 여러분, 물론 우리가 그때까지 그 시간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고난이지만 여러분, 우리 고난 뒤에 뭐가 있습니까? 축복이 있다. 라고 하는 사실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이 고난이 내가 하나님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오직 하나님만 붙들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두 번째는 내 간절한 믿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반응하신다는 것입니다.
 
II. 두 번째, 내 간절한 믿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반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떠밀리듯 예수의 곁으로 다가간 여인은 드디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댑니다. 그때 12년 동안 이 여인을 괴롭히고 삶을 처절하게 망가뜨렸던 혈루증이 완전히 나음을 얻습니다.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보통 병이 치유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어떻게 치유돼야죠? 출혈의 양이 오늘 내일모레 점점 줄어들면서 치유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에, 그 순간 이 여인의 모든 병이 깨끗이 치유함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치유(治癒)의 방식이고, 하나님의 회복의 방식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번에 예수님께선 단번에 이 여인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옷자락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묻습니다. 누가 내 옷자락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물으셨을까요? 여러분 정말 몰라서 물으셨을까요? 능력이 나가긴 나갔는데 이게 누구한테 나갔을까? 예수님께서 몰라서 물으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아셨습니다. 이 여인의 아픔도 이미 아셨고, 이 여인이 그 군중 속에 있다는 것도 이미 아셨고 이 여인이 옷자락을 만져 자신으로부터 능력이 나갔다. 라는 것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왜 굳이 물으셨을까요? 여러분 예수님의 질문에 의도를 잘 파악해야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도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파악하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 있던 제자들은 그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뭐라고 대답합니까? 그리고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을 하죠. 예수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사람들이 이렇게 예수님 많이 스치는데 옷자락을 만진 사람이 1~2이겠습니까? 예수님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주 상식적인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아니다. 누가 만졌다라고 그러시죠. 그때 한 여인이 바들바들 떨면서 예수님에게 나옵니다. 예수님 제가 만졌습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아주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 치유함 받고 돌아가기를 계획하고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굳이 이 여인을 그 수많은 군중 앞에서 불러 세우십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씀하시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의 옷자락을 간절한 심령으로 만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능력을 베푸시고 반응하셨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반응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오직 예수님을 바라고 나올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지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들을 드리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기도하는데, 혹시 내 기도는 듣지 못 하실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절망 가운데에 간절함을 가지고 나온 이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는 한 사람의 기도이며 여러분 그 한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들으십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오늘 그 1사람의 기도 오늘 본문의 여인의 기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굳이 이 여인이 조용하게 돌아가게 놔두지 않으시고 사람들 앞에 부르시고 치유함을 받았다. 네가 구원함을 받았다. 라고 선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여인의 치유가 단순히 개인적인 치유를 넘어서 개인적인 기도에 응답을 넘어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치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능력을 나타내시는 분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이 여인의 질병으로부터의 고통 그리고 예수의 치유와 회복을 통해서 단순히 개인이 누리는 이익을 넘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여인이 간증하고 드러내기를 예수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의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며 증거 하기 위해서 이 여인의 십이 년여의 고통의 삶 혈루 증의 삶이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이 여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것들을 선포하시면서 육신으로부터 회복 사회적으로 회복 가정으로의 회복을 선포하시며 이 여인의 인생이 비참하고 눈물 흘리는 인생이 아닌 이제는 예수 그리스 은혜로 말미암아 기쁨과 감사 감격의 인생으로 완전히 뒤바뀐 인생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예수의 은혜로 인하여서 구원에 기쁨과 감격과 은총과 감사를 누리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라고 하는 것 이것을 넘어서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 라고 하는 그 구원의 기쁨은 우리가 단지 죽어서 얻는 복이 아닌 단지 응답의 기쁨만이 아닌 이 세상에서 이것을 우리가 누리면서 증거 하면서 완성하며 살아가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후에 이 여인의 삶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여인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겠습니까? 여인은 날마다, 날마다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이것들을 간증하며 나누며 살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인생 가운데 예, 예수 그로스의 은혜와 능력과 구원자 됨을 간증하며 살았겠습니까?
 
외경에는 이 여인이 십자가를 들고 가는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에게 수건을 건네고 예수님의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라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나는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리겠다. 라고 하는 것이 이 여인의 삶의 자세였고,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꼭 3가지만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특새의 기간 동안에 우리가 기도하면서 우리 평생이 기도하면서 꼭 3가지를 꼭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1)첫째는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둘째는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 기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 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세 번째는 전하는 인생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 응답 기적을 체험하며 이것을 나만 누리는 기쁨과 감사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드러내며 간증하며 전하는 인생으로 여러분들의 삶이 쓰임받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에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며 우리의 삶을 통해서 구원의 은혜가 이루어져 감을 누리는 존귀한 성도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언 드립니다. 아멘
 
♣요약
그 혈루증 여인은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그녀는 그 혈루증, 불치병을 포기할 처지임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는 강한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치유해 주셨듯이,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맡기며 우리도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주님께 집중하고 확신하면 주님은 우리가 행하는 일에 개입하시며 우리의 부족하고 약함을 치유해 주실 것을 믿고, 우리를 항상 도우심을 확신하여 주님이 명령하신 지상명령을 수행해야 한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