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새-(2020. 5. 30)
제목: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2:13)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믿음 계승을 위한 가장 중요한 말씀의 절대적인 진리를 계승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정말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를 바란다. 믿는 자 가운데 역사한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인 진리로 이 역사는 히스토리가 아니라 Working(일하시는 것이다). 역사는 그냥 이 세상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실제적으로 일을 하시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볼 때마다 더 많은 간절함이 있고, 사모함이 있고, 또한 귀한 교회라 하는 인식이 박혀있었다.. 목회자의 아들로서 신앙의 프레임, 어떤 조직 신학적인 복음화가 머리 속에 인식되어 있었다. 부친은 장로교 12신조가 있는데 주일마다 매주 하나씩 하셨다. 조상은 해 오셨기에 한국교회의 강점을 살려나가는 것이 되었고, 나름 익숙해져서 내가 고백되어지고 일방적으로 교회에서 하는 것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으로 확장되어가는 것이다. 내 것으로 내 삶으로 체화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활연구인 귀납법적 성경연구가 있는데, 그것이 전에 선교단체에서 pbs가 있었다(Personal Bible Style). 개인 성경연구를 하는데 개인 성경연구를 처음으로 공부한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이다. 6권까지가 있다. 21세 때에 은혜를 매장마다 은혜가 되었다.
토비새의 나오는 성도들은 모든 믿는 사람의 본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주를 본받는 자가 되고 모두의 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도 믿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한다. 나도 저렇게 본이 되는 자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가 어떻게 세워지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요즘 확진 자가 늘어나서 방역지침을 잘 지키기를 바란다. 주일을 예배하는 기쁨으로 누리고 시간이길 바란다.


I. 우리 사랑의 교회가 지난 주일날 앞으로 코로나 사태 이후의 몇 주간의 방향을 통하여 수 년 간의 예배가 결정될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끝까지 꼭 지켜나갈 것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1.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진리를 지킨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지킨다.
3. 성령의 능력과 주권이다.
4. 거룩한 공교회의 중요성.
5. 세계 선교의 절박성.
6,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소중성)
-이것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


이것을 지켜 내기 위해서는 분별력이 중요하다.
II.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잘 못된 이단들을 드러내게 하시게 하신다.
1)신천지를 드러내시고,
2)동성애를 드러내시고,
3)공산주의 우한 폐렴을 드러내시고,
4)극단적인 이슬람(라마단) 드러내게 하시고,
5)마지막에는 안티 기독교 세력을 드러내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해 주시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주의 백성들은 철저하게 무장이 되어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통해서 우리가 흔들림 없이 믿음의 계승을 통해 내 것으로 고백이 되어서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러한가를 보며 자기 신앙으로 고백이 되어야 오래 간다. 내가 불쌍하게 여겨지지 않는가? 아주 마스크가 독특한 분위기이다. 그 모습이 그렇다. 모두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한다. 담임 목사님도 목사님들을 불쌍히 여겨라.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가지고 가정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기를 바란다. 마스크를 쓰고 이렇게 새벽에 나와 예배함을 주님을 주님 사랑하시는 것을 많이 본다. 우리가 그래서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통해서 내 것으로 고백되고, 내가 공부해서 사랑의 교회 제자훈련으로 적용을 통해서 묵상으로 내 것으로 고백하여야 한다.


내 것으로 고백을 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에 절대적 권위를 위해서 주신 말씀은?
1. 계시를 주셨다.
2. 영감을 주셨다,
3. 조명을 주셨다.
-그래서 오늘 살전 2;13절에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교회처럼 데살로니가 절대적 성경의 권위를 정리를 하겠다.
지난주에는 계시를 공부했고, 오늘은 영감에 대해 하겠다.
1) 영감- 영감에 대해서 설이 있다.
-영감에는 성경 전체가 다 영감이라는 것이다.
부분적 영감설-성경 전체가 영감이 아닌 자유주의적인 신앙이다. 괜찮은 신학자들도 가감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기계적 영감설이 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딱 받아 적었다는 것이며 기계적이라고 말하고 한다.
부분적인 것은 성경전체가 다 영감이 아니다. 다른 것을 추가하거나 감한 것이다. 너무 과한 것임.


우리는 그런 것이 아닌 우리는 유기적인 영감(Organic aspiration)을 받은 사람들이다.
한 개인의 인격, 한 개인의 개성, 한 개인이 가지는 지성을 하나님이 다 사용하셔서 성경의 감동으로 적은 것이다. 예를 들어서 모세를 하나님이 사용하셨을 때에 모세가 가진 그의 배경 실력 능력 다 사용하신 것이다. 모세는 애굽의 법률학 적인 모든 학문에 통달했다고 하고 있다. 법률학 수사학, 모든 계통의 학문에 특히 법률학자와 같다. 통달할 실력자인 모세 5경은 방대하고 세밀하고 잘 조화되어 지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사야는 왕궁 선지자였다. 그는 시인이었다. 그의 시적인 그 은사로 하나님의 영적인 위엄과 왕적인 선포로 살았다. 아모스는 시골 출신 목자였다. 그는 시골의 소박한 항취가 나타났다. 다윗은 시의 천재이며 음악의 마에스토로였고, 솔로몬은 지혜와 잠언을 기록했고, 누가 사도행전 누가복음을 역사적 안목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당대의 최고의 바울의 율법학자인 바울은 어릴적부터 교육을 철저하게 받아서 치밀하고 완벽하며 논리적이다. 바울의 그 모든 지성의 토대를 하나님은 사용하고 계신다. 이런 사람의 개성을 가지고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이것이 유기적 영감설이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 성령의 감동을 불어넣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불어넣어 주셨다.
베드로후서 1:21-"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경에 적시적소에 이렇게 말씀하셔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신다. 성경의 영감설에 우리는 당당하게 느끼며 귀하게 여긴다. 영감이라는 것은 완전하고 초자연적이며 문자적이고 변함이 없다. 그래서 수 백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정리가 되었다. 따라서 절대적 권위임을 믿는다.


2) 조명-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진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과 이 기록된 성경이 Saying word이다. 이 사이에 하나님의 뜻과 기록된 것, 하나님의 심정이 기록된 것, 이것 사이에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깨달으려면 중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조명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기록된 사이를 깨닫는 것이 조명이다. 계시는 하나님의 진리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조명은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기록된 말씀이 조명을 통하여 깨달아지는 축복을 주시길 바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명은 고전에 나오고 있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이것이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서 깨달아져서 접수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깨달을 수 없다. 그리고,
고전 2: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래서 조명은 성령님을 통해서이다. 계시와 영감과 다 성령님의 역사가 있지만 특별히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기록된 말씀이 깨달아 지기 위해서는 조명이 필요하다. 존 스토트 목사는 어느 비석 개막식에 개막하기 위해서는 커버를 씌워놓는다. 참석한 사람 중에 안대를 한 사람이 있다. 이 비석에 있는 것을 안대를 하고 있는 자는 못 본다. 그러나 안대를 벗어야만 비석에 있는 천을 벗겨내서 보게 되려면 안대를 벗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벗어내는 것을 조명이라 한다. 절대적 성경의 권위를 이해하기 위해 비석의 큰 천을 걷어내는 것이 계시 안대를 벗는 것은 조명이다. 계시로 기록된 말씀을 안대를 벗어서 깨닫는 것이며, 우리의 비늘이 벗겨지시길 원하신다. 돈 많은 자들이 얻고자 한 자들도 안대를 벗어버리면 조명을 통해 깨달아진다. 하나님은 과연 계시인가? 평생 추구하고 했던 인생의 질문의 답이 다 나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비늘을 벗어지게 하는 것이다. 조명을 통하여 안대를 벗어버리면 이것이 깨달아 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님의 조명을 통하여 깨달아진다.


시편 27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영적으로 우리는 이런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지속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가 다 성령님의 조명이 깨달아져서 내 것으로 하라. 계시, 영감, 조명을 말했다. 이 절대적 권위를 방해하는 계략이 있었다. 초대교회 때는 수많은 박해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자라지 못하게 하려고 성경을 없애려 했다.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성경을 일반사람들이 읽지 못하게 하는 악한 마귀의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잘못된 지성인이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려고 온갖 공격의 행동을 하고 있다.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고, 온갖 참소, 불화살로 공격하고 있다. 18세기까지 성경을 못 읽지 못하게 하려고 마귀가 지배했다. 19세기 인간의 지성을 통해 내부공격을 했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의 공격이었다. 기독교 이미지를 먹칠하는 21세기 내부 사람들끼리 공격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안목을 가지고 내부 총질 싸움에 우리가 약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올바로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지속하고 지켜야 한다. 우리는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 믿는 것은 있다. 오늘 2020. 530일 토비새에 참여한 자들은 성령강림주일을 앞두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짜 중요한 것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기름을 부음 받아서 선포하는 것이다. 선포하면 역사가 일어난다. 인간의 합리적 지식도 포문을 이루지만 성경의 절대적 권위이기에 선포하면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신다. 정말 중요하다. 선포하면 역사하기에 암송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72구절을 암송하는 것이다. 어떻게 암송할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디모데후서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그래서 어려서부터 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능력이기에 그렇다.
찰스스펄전- “성경은 마치 동물의 왕 사자와 같다. 누가 사자를 변호하고 보호해 준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자는 풀어 놓아주면 스스로 방어한다. 성경 말씀도 이와 같이 역사할 것이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선포하면 계시와 영감과 조명이 자연스럽다. 우리의 삶의 능력이 채워질 것이다. 가정도 공동체도 그래서 새로워진다. 이번 주는 어떻게 접목하고 있는지를 보기를 바란다. 주일학교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보아라 이 소리는 카톡의 소리이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소리이다. 자녀에게 물려주는 말씀이 이사야 영원하며 절대적인 말씀이라 여겼다. 그때부터 청소년 부모들과 카톡방을 넣어 기도를 시작했다. 30초도 안 걸리는 말씀이지만 너무 의미가 있었다. 힘이 되는 하나미의 말씀이 적용되는 것은 암송되어지고 실제로 선포되어질 때 최고의 선물은 기도이다. 기도에 절대적인 말씀에 근거로 기도를 한다면 실체가 아이들에게 실천하는 것이다. 선포 되어져서 살아 움직여서 자녀들의 삶에 실체가 되기를 바란다.


후 예배
사람의 교회 부임이후 성경말씀에 암송의 복음주의 쇠퇴를 막는 것이다. 주빌리티 800차 기도회이다. 국가정책에 얽매이지 말고 와서 다음주에 기도해서 평양에서 예배하는 날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613일 성경에 절대적 권위를 적용할 청년부가 어떻게 할 것인지 보여줄 것이다. 사랑온 게시판 4000번 성경을 준다 사랑온 게시판에 4사천번에 목사님의 성경을 2권을 주게 된다. 가장 은혜스럽다는 사람에게 줄것이다. 사랑온 5000천번 입학금을 면제해 줄것이다. Sega를 하나님이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즐거운 마음으로 암송한다. 꼬배기를 먹고 꼬인 일들이 다 사라지길 기도한다.
요약
내 것으로 고백을 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에 절대적 권위를 위해서 주신 말씀이다.
1. 계시를 주셨다.
2. 영감을 주셨다,
3. 조명을 주셨다.
이들이 사도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이런 자세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살펴볼 부분은, 어떤 말씀이 믿는 자 가운데 역사합니까이다.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바로 그 말씀이 믿는 자 가운데 역사한다는 사실이다. 믿는 자의 삶 속에서 역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응답을 기다리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응답으로 기다리지 사람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때로는 귀를 기울여도, 때로는 무시해도 될 때가 있다. 그것을 판단하는 몫은 순전히 내 자신의 판단력에 달려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다는 것은 그 말씀을 내가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 원위를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면, 거기에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흘려듣지 않게 될 것이며,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과 인도하심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깨닫기 위해서는 성경의 절대적 권위로 받아야 한다.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아 이렇게 암송하고 주님과 항상 친밀하여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며,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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