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0월 25일)
제목: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말씀: 이사야 22:5~14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 사님)
 
설교자: 김영준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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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2:5~14,
5 환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이르는 소란과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쳐 부르짖는 소리로다.
6 엘람 사람은 화살통을 메었고 병거 탄 자와 마병이 함께 하였고 기르 사람은 방패를 드러냈으니.
7 병거는 네 아름다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고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
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9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랫못의 물도 모으며.
10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하게도 하며.
11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2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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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렇게 수요일 저녁 기도회 함께하신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부흥의 실제를 경험케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22장 5절로 14절까지 말씀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으로 구약 성경 991페이지입니다. 이사야 22장 5절부터 14절까지 말씀을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이사야서는 남 유대 시대의 선지자였던 이사야가 자신의 백성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특별히 이사야 앞부분에서는 크게 한 세 가지 주제로 말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내가 바로 너희의 조상으로부터 함께하였고, 출애굽으로 인도하였고, 지금까지 인도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다. 라는 것을 선포하시는 내용과, 또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주변에 많은 강대국들이 또 그 전쟁의 위험과 또 어려움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너희는 그 세상의 권력이나 힘이 아니라, 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된다. 라는 말씀을 하고요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가 징계를 받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너희는 지금 누구를 바라볼 것이냐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하고 계시다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22장 말씀도 유다의 백성들이 또 예루살렘이 아까 언급했던 누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또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 유다 예루살렘 성은 큰 위기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 주변으로 많은 군대들이 쳐들어와서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아마 시기적으로 아수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공격받았던 그 시기로 추정이 됩니다. 2절에 보면,
 
*이사야 22:2-3,
2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들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라.
-소란하며 떠돌던 성, 즐거워하던 고울, 예루살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막 이렇게 잘 살고 있던 그 시끄럽고 소란스러웠던 성이었던 예루살렘이 지금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이 3절에 보면,
 
3 너의 관원들도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들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냐면 유다의 백성들이 그런데 분명히 적들이 쳐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칼이나 전쟁이나 그런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또 나라의 지도자 백성들은 다 도망을 가다가 적들에게 사로잡혀서 비참하게 굴복당하고 그렇게 도망을 가던 백성들은 함께 결박되는 상황 이 아주 비참한 상황을 이사야 선지자는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어땠을까요? 그 마음이 4절에 보면,
 
4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의 백성이 살아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암담하고 너무 비참한 그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이사야 선지자가 너무 슬퍼서 위로조차 하지 말라고 너무 힘든 상황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게 되는데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에 보면,
 
5 환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이르는 소란과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쳐 부르짖는 소리로다.
소난과 밟힘과 혼란의 날이 예루살렘에 오는 게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적들이 쳐들어와서 적들에 의해서 공격을 당하고 또 빼앗기고 비참한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 모든 환란과 심판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선지자는 그것을 보고 비통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가지 해결할 수 있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8절 말씀 앞부분에 보면,
 
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이제 위기 상황을 느꼈습니다. 소란하고 떠들고 그냥 안주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이 당장 이 상황이 큰 위기구나 지금 엄청난 어려움에 처해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우리 8절, 9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9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랫 못의 물도 모으며.
-지금 유다 백성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전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적들이 밖에 쳐들어왔기 때문에 전쟁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거, 어찌 보면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판단입니다. 그래서 성벽을 견고히 하는 것, 또 저수지를 만들어서 이 식수를 준비하는 것 전쟁에 가장 필요한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열람과 기르 인들로 구성된 병부, 마병 부대가 이제 곧 공격해 올 것이기 때문에 이 준비를 잘해야지만 방비를 잘해야지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더 철저하게 더 완벽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유다 사람들이 실수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을 하나 빼먹은 것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11절에 나옵니다. 우리 11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1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해야 될 한 가지를 놓쳤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지금 이 유다 나라의 주인이시며 자신들을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인도해 주시고 지금까지 함께하시고 보호하셨던 그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냐면, 옛적부터 지금까지 유다 백성들이 이곳에 살 수 있도록 또 그들이 그곳에서 안전하게 거할 수 있도록 보호하시고 지키신 분이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 백성들의 전부를 책임지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그 어떠한 강력한 군대가 온다 할지라도 수많은 족들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그 전쟁의 승패는 무기나 아니면 성벽의 높이나 아니면 먹는 거, 식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유다 사람들이 그 다른 것들은 다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될 것, 하나님을 앙망하고 바라보지 않았다. 라는 것이죠.
 
세상의 가치를 보면 당장 지금 위기의 상황이니까, 당장 지금 적들이 쳐들어오는 절제절명의 순간이니까 그 상황을 빨리 모면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이전에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이 상황에서 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십니다. 12절에 보면,
 
12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다시 말해서 지금이라도 당장 바짝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회개하고 애통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메어 달려야 한다. 라는 것이죠. 간절히 주님을 찾아야 하는데, 유다는 유다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13절에 보면,
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자포자기(自暴自棄)합니다. 이제 끝났다. 하나님이고 뭐고 우리 이제 다 끝났을 거야 내일 죽으리니, 그냥 이 상황을 즐기자 현재를 즐기자.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죽어도 좋다 그저 즐기자.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은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을 14절에서 합니다.
 
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아주 큰 진노를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유다는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사야 26장 10절에 보면
 
*이사야 26:10,
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이런 위험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악한 사람들은요. 아무리 은혜를 배우고 은혜를 받고 의를 배워도 결국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위엄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 불의를 행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때부터 예전부터 그들을 인도하셨고 그들은 그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배웠을 것입니다. 많이 들었고 그들조차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수많은 은혜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였고,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오니까 그냥 자포자기하고 포기하고 그 하루하루를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여전히 근심과 어려움 앞에 넘어져 세상의 것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바라보기보다는 자신들의 힘으로 그것을 이겨내려 하다가 그것도 되지 않자 포기하고 말아버리는 것이죠.
 
지금 우리 유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한번 좀 비교해 보기 원합니다. 한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여러 가지 위기와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였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나의 힘으로, 내가 가진 것으로, 나의 지혜로 내 계획으로, 내 생각으로 아니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나의 경험으로,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힘으로, 그것들을 이겨내고 그것 들고 한번 싸워 승리해 보자라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그렇게 해서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당장은 이긴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내가 가진 것이, 우리의 지혜와 생각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의 것을 거두어 가시는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느냐 신뢰하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떤 연약함이나 또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 우리의 감정으로 인한 그런 것들로 인해서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또 하나는 우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고 싶은데 이 주변의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서 그런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2016년에 개봉했던 ‘신은 죽지 않았다.’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시리즈인데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인공이 고등학교의 역사 교사로 나옵니다. 어느 날 오빠를 먼저 읽고 실의에 빠져 있는 제자에게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 기독교인이었던 이 조사가 위로를 해줍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역사 수업 시간에, 역사의 인물들 이야기를 쭉 하는데 예수님이 거기에 이제 포함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이 제자가 이 선생님한테 묻습니다. 왜 예수님이 포함되어 있지 않냐고, 공식적인 수업 시간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색채를 띠는 것이 좀 곤란했지만 이 선생님이 가장 그래도 나름 객관적으로 그 제자에게 사 학생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해줍니다. 그런데 이 설명이 문제가 됩니다. 결국에는 이 기독교인이었던 이 교사가 했던 이 언행 때문에 이것이 밖으로 흘러가게 되고, 이것이 문제가 돼가지고 학교와 또 학교 이사회 또 시민단체들이 이 교사를 향해 공격해 오기 시작을 합니다. 시민단체 대표로 나왔던 사람이 조금 무서운 사람이었는데요. 나중에는 이 교사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냐면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그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을 단 한 번만 그냥 내가 잘못 말했다 내가 실수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교사로서의 직분이나 직위 모든 것을 유지시켜주겠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영화의 내용은, 기독교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과 신앙 그것을 걸고 세상과 타협하라. 라고 그렇게 강요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한 기독교인이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그 삶의 모든 것들을 나의 신앙과 나의 신념과 바꿀 수 있느냐?라는 문제였죠. 이 영화는 한 7년 전에 개봉된 영화인데 실제 미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 현재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코로나를 지나면서 신앙을 지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쉬운 일이 아닌가를 우리는 다시 한 번 느끼고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의 것을 포기해야 되고, 내가 올라가고, 내가 원했던 것을 포기해야 되고, 더 늦게 가야 되고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더 이런 공격과 위협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는 예전에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을 가지고 신앙의 그 결과가 결정됐다면 지금 이제는 사느냐, 죽느냐보다 더 큰 위협으로 하나님을 우리가 1순위에 두고 하나님을 가장 우선에 두고 살아가야 되는데 하나님은 2순위로 3순위로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그것은 별로 나쁜 것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면서 그렇게 공격해 온다. 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느냐? 그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도 있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상황과 환경들이 특별히 이 사회의 분위기들이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럴 때일수록 어떻게 해야 될까요? 세상은 잠시 하나님을 내려놓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그것이 합리적이고 그것이 올바른 가치이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을 합니다. 지금 당장 교회에 가는 것보다 내가 내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요. 내가 지금 당장 기도하고 주님의 은혜를 받는 것보다, 세상적인 것을 하나 더 하는 것, 하나 더 이루는 것 그것이 지금은 더 중요하다. 나중에 기도하고 나중에 은혜 받아도 된다. 라고 이야기한다. 라는 것이죠.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그 대답이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을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다윗인데요.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던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었고 그런데 사울왕의 오해를 사서 결국에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쫓겨 도망을 다니다가 이제 블레셋에까지 피신을 하게 되죠. 자신이 그렇게 싫어했던 그 원수라고 생각했던 그 나라에 피신해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마 다윗 입장에서는 참 안타까웠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큰 어려움이 찾아오는데요. 이 블레셋에서 살고 있던 다윗이 자기네 사람들과 함께 한 성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이 블레셋의 왕이 다윗에게 다윗 군대와 함께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앞에 참정하기를 요청을 합니다. 지금 다윗이 이 블레셋에 가서 살고 있는 것도 지금 마음이 무너지는 상황인데 자신의 동족들과 전쟁하는데 그 과정 앞에서 싸워야 되는 상황에 놓여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렇지만 다윗이 지금 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백성 사람들과 함께 그 선호에 나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블레셋 왕의 부하들이 다윗을 믿지 못해서 다윗이 다시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문제는 또 여기서 발생을 합니다. 다윗이 자기의 성으로 돌아가니까 다윗이 잠시 부재하였던 것을 안 아말렉 사람들이 이 섬으로 쳐들어와가지고 성을 다 불태워버리고, 다윗의 가족들과 그 사람들의 가족들을 다 포로로 끌고 가버린 그런 일이 발생을 합니다. 지금 다윗은 매우 비참했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30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사무엘상 30장 3절에 보면,
 
*사무엘상 30:3,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 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지금 다윗은 점점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갑니다. 블레셋에 온 것도 힘들었는데 자신의 백성들과 전쟁을 해야 되는 그런 절제절명의 위기를 겨우 모면하고 왔더니 자신의 가족들이 다 잡혀가고 자진해서는 다 불타버린 그런 상황입니다. 4절에 보면,
4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라고 기록을 합니다. 얼마나 참담하고 절망스러운 상황입니까? 사무엘 상 30장 6절에 보면 그래서 사람들이 다윗에게 다윗을 순간적으로 원망해가지고 이 모든 것이 다윗 때문에 벌어졌다 라고 생각을 해서 다윗을 돌로 죽이려고 합니다. 이 절제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선택할까요? 다윗은 그 절체절명 위기 상황에서 유다의 백성들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우리 사무엘서 30장 6절 말씀인데요.
 
*사무엘상 30:6,
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어떻게 하였습니까? 다급하였을 때 다윗이 그 사람들을 향해서 야, 잠시만 멈춰봐! 지금 우리 이 상황을 좀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잘 준비해서 빨리 우리 사람들을 데리고 오자. 이 얘기를 모면하려면 진정해야지, 라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에요. 그 이전에 다윗이 가장 먼저 한 선택은 무엇이었냐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인하여 다시 한 번 힘을 얻었다. 라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자신의 죽음과 가족의 죽음과 더불어 함께하던 모든 사람들이 원망하고 또 절망이 겹쳐오는 상황 속에서 다윗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힘을 얻었습니다. 다윗은 그 어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신뢰함으로 다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다윗에게 그 어떤 방법을 가르쳐 주시거나 이 상황을 어떻게, 어떻게 해결해야 된다.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을 열어주셨거나 그런 것을 보여주신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믿는 그 하나님,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내가 목자 때부터 골리앗 앞에 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 주셨던 그 하나님이라면 내가 다 힘을 얻을 수 있다. 라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결국에는 그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사람들의 가족들을 모두 무사하게 구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니요. 하나님께서 그 이후의 문제 해결 방법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그 방법대로 아주 순조롭게 그 모든 어려움들을 해결해 나갔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요 어려울수록, 위기일수록, 정말 내 인생에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일수록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당장 내가 무엇을 할까를 찾기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다시 한 번 힘을 얻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주인 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진 것들, 그것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친히 일하셔서 우리의 삶의 어려움들을 극복해 해 나가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까요? 저희 집에도 지금 두 명의 자녀가 있는데요. 자녀들을 키우신 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한 두세 달 3~4살 된 아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길을 가고 이렇게 있습니다. 근데 길을 가다가 이 아이가 이제 넘어졌어요. 넘어져가고 무릎을 좀 무릎에 상처가 났습니다. 그럼 이 아이가 어떻게 할까요? 아빠를 바라보면서 아빠 제가 지금 여기 상처가 3cm 정도 났는데, 당장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연고를 바르고 또 회복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할까요? 전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넘어지는 그 순간 자식에게 고통이 찾아오면 그냥 엄마 아빠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립니다. 엄마 아빠 소리 지르면서 아무 말 하지 않지만, 엄마 아빠는 그 아이에게 달려가서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를 위로해 주고, 그 상처를 치료해 주고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해줌으로써 그 아이가 다시 기분이 좋아지도록 해주기 마련이죠.
 
왜 그렇습니까? 엄마 아빠는 그 아이가 지금 왜 울고 있는지, 왜 엄마 아빠를 쳐다보고 있는지, 왜 거기서 슬퍼하고 있는지, 왜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눈빛만 바라봐도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 딸인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될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어떤 거 이전에, 그 어떤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힘든 상황이라면 내가 무언가 고민되고 답답한 상황이라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떠오를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자주 고백하는 찬양의 가사처럼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은 주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 나라는 주님의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온전한 신뢰가 필요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쉽지 않습니다. 위기가 오면 당연히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먼저 찾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또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한 번 정도는 괜찮아, 그냥 이번에는 그냥 이거 방법대로 해도 돼, 이거 이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서도 그런 어려움이 있고요. 주변에 이 환경과 세상의 어떤 공격 가운데서도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단은 이제 우리를 아예 넘어뜨려서 교회를 떠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우선순위를 바꾸게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하나님은 2순위, 3순위로 만들어가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어려움들을 혼자 해결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나 혼자 끙끙대고 알다 보면 내 마음속에는 연약함들 때문에 내 생각과 내 계획이 먼저 나오기 마련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라고 하는 또 신앙 공동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혼자서는 힘들지만요. 혼자서는 내가 무너질 것 같지만 옆에 있는 분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 담임 목사님들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 모든 영 가족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어서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 각자의 어려움들도 다 이겨낼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는 힘듭니다. 나 혼자는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함께하면 함께 부르짖으면 우리의 개인적인 어려움들도 개인적인 아픔들도 주님께서 하나씩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까 우리 이야기했던 영화의 이야기처럼 세상은 점점 우리를 그렇게 옥죄어 옵니다. 마치 이제 하나님의 신앙 생활하는 것이 조금씩은 뒤로 밀어서 조금씩만 타협하면 되는 것처럼 그래도 하나님이 벌하지 않을 거야라고 유혹합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우리의 삶의 시선을 고정할 때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이사야 26장 3절, 4절 말씀 함께 고백하기 원합니다.
 
*이사야 26:3-4,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이 고백이 이사야의 고백이지만 이 시간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께서 심지가 경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어떠한 역경이 우리 안에 온다 할지라도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우리의 모든 삶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고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서 더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하여 우리의 심리를 굳게 하고 아까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그분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항상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은혜, 축복의 대로로 걸어가는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가 너무 연약하여서 우리 삶의 고난과 역경 앞에 또 세상의 유혹 앞에 주님을 가장 먼저 바라보고 신뢰하기보다는 내 생각을 내 방법이 우선되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하여 우리의 마음을 굳게 해서 언제나 주님으로 인하여 힘을 얻고, 용기를 얻는 그런 주의 백성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험한 세상 가운데서 흔들림 없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어떤 환경과 어떤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에게만 피해야 됨을 깨달아 전적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물을 모으며, 가옥을 계수하고 성벽을 견코케 하며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다. 산헤립의 위협을 느낀 히스기야는 다윗 성 서편의 기혼 샘에서 실로암 못에 이르는 지하 수도관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 모두는 인간적인 방책에 불과하다. 성도가 진정으로 의뢰하고 앙망해야 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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