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주후 2021년 3월 17일) 제목: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다" 말씀: 마가복음 1:7--11절 설교자: 양은규 부목사님 ---------------------------------------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온전함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마음 뺏기지 않겠습니다! 라고 외치시길 바라며, 오늘 본분은 마가복음이다. 오늘은 사순절 25일차 날이다. 사순절이라고 하면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고 참회하면서 기다리는 주간이다. 그래서 40일 전부터 사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40일의 시간을 기념하여서 모든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고난을 가르쳤고, 십자가의 신앙을 가르쳤다. 그렇게 사순절이 지나고 난 후에 그가 정말 예수님을 향한 그 십자가의 고백을 하면 세례를 베푸는 풍습이 사순절에 있었다. 사랑의 교회 우리도 예수님을 사모하면서 4월 4일 오후 4시에 부활절 연합예배를 우리는 이 교회에서 사모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더 온전해지는 그러한 기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마가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전파하였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세례 요한이 전파한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세례 요한이 모든 백성들에게 은혜의 길을 두 가지로 전파했다.
l. 하나님은 겸비하여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의 길을 주신다. -우리 곁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자복하고 회개할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그것을 돌릴 때에 기뻐하신다. 세례 요한의 첫 번째 전파는 자복하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다.
상상해보면, 세례요한이 엘리야처럼 옷을 입고 광야에서 외친다. 회개하라!, 죄를 자복하라!, 그리고 세례를 받으라고 한다. 세례요한의 모습이 굉장히 영향력이 있고, 능력이 있고, 힘이 있는 것 같다. 요즘 길거리에 확성기를 켜놓고 외친다. 그러나 아무도 그 소리에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 확성기도 플랭카드로 어떤 홍보도 없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나아와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요단강에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있다. 그 사람들 중에는 갈릴리, 에브라임 산지, 욥바, 가이샤랴 등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 모두가 광야를 지나서 요단강에 모였다. 이것이 얼마나 엄중하고 무거운 선택인가? 걸어서 왔다. 요한의 외침, 회개하고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말 앞에 선택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고 마음의 결정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물세례를 받지 않습니까? 이 물세례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편에서 하나님께로 향하여 나아가는 삶의 결단을 할 수 있는 행위, 그 은혜의 길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우리가 세례하면, 물로 세례를 주신다. 세례는 씻는 예식이다. 이 세례를 뜻하는 말은 베티죠는 완전히 적셔지는 것이다. 완전히 가라앉는 것이다. 완전히 담그는 것이다. 세례하면, 담임목사님이 물을 듬뿍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하신다. 세례라는 것은 실제로는 완전히 가라앉는 것, 완전히 적시는 것, 완전히 담그는 것, 식빵을 우유에 완전히 담궈 보았는가? 담궈서 꺼내면 먹을 수 없다. 녹아버린다. 요한의 세례는 죄에 빠진 인생, 그리고 죄에 젖어 사는 인생을 향하여서 나와라, 새 출발해라, 그리고 하나님께 빠지라고 외치는 것이다. 세례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새 출발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왔다라는 것은 어떤 말씀인가? (양목사님은 낙동강에서 세례를 목사님은 받았다고 한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세례를 묵상하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향하여 나아가는 새로운 은혜의 길임을 묵상할 때에 이 시간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자복하라고 하면, 아마 제일 먼저 받을 것 같다. 또 잠기고 잠겨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나아가는 은혜가 임할 때까지 받을 것 같다. 이 사순절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은혜의 길을 걷기를 축복한다.
2.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면 새 생명을 얻는다. 세례 요한이 두 번째로 외친 것은 바로 너희가 성령으로 세례 베푸시는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 곁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물세례를 받고 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자복하고 회개하는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외침을 듣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그 분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사람들은 돌아갔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언제 그분이 오셔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베풀어 주실까? 언제 그분이 오셔서 성령으로 푹 담궈 주실까를 기다리면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여러 날을 세례요한의 곁에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9절에 보면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 곁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을까요? 성령이 그들을 잠구실 그 메시아! 그 그리스도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러 오실 때에 제자들의 무리가 없었다. 예수님은 목수셔서 아마도 멋있는 옷을 입고 계시지 않았다.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늘 마가는 이사야의 글을 통해서 세례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동일한 맥락에서 이사야가 소개하는 예수님, 이사야가 소개하는 메시아는 어떤 모습인지 이사야 53장 2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사야 52: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요한복음에는 세례요한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그러니까 아무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세례요한조차도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리고 두 번이나 표현한다. 세례요한도 성려께서 지시한 바가 없었으면, 자기 앞에 오셔서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신 분임을 몰랐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직접 갈릴리에서 요단으로 내려 오셨다. 아무도 주목하는 사람이 없고, 수많은 사람들과 줄을 서서 세례를 받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아이시기에 죄도 없고, 회개할 이유도 없으시다. 그러니 세례를 받을실 필요가 없으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세례 받는 그 대열에 서 계시고 요한 베푸는 그 세례를 받으셨다. 요한은 그의 신발 끈도 풀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분에게 예수님은 직접 나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왜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같은 대열에서 세례를 받았을까?
※어느 성경학자의 설명을 보니, ※다른 교역자가 나누신 말씀 중에 레위기 16장에 대속제 일에는 검은 염소 두 마리로 제사를 드린다. 한 제사이다. 두 마리의 염소를 가지고, 한 마리는 아사세일=완전히 제거한다. -아사세일 염소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다 지워가지고, 광야로 내어보낸다. 그리고 낭떠러지로 몰아내 죽게 한다. 죽음으로써 백성들의 죄를 소멸하는 제사양식이다. 또 한 마리의 염소는 피와 기름, 고기까지 완전히 태워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낸다. 대속제일의 이 제사의 고기는 제사장이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 더러워서 먹을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만이 그 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의 죄가 너무 더러워서 먹을 수 없고, 하나님만이 백성의 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찔렸다. 오직 예수만이 구원이고,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다. 그분의 설명이 아픔을 느끼고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담임 목사님이 사용하시는 말씀 중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영단번이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백성의 죄를 덮어쓰고 나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향하여서 하나님의 기쁨이 거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사건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백성들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담당할 수 있는 그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로마서 8:4절에 보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우리는 온전함을 사모하며,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예수님은 영단번에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우리가 받는 회개의 세례를, 우리를 깨끗케 하시려고 그 대열에 서서 함께 그 몸을 담그신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를 제자의 삶을 살도록 은혜를 주시려고 성령으로 우리를 담그기를 원하신다. 그는 항상 우리 가까이 계신다. 이 주님 앞에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길 바란다. 우리의 연약함을 회개하며 슬퍼하고 그분 앞에 주님께 기도하자. 나는 생수가 필요하고 나는 목마름을 고백하자, 내 힘으로 안 되는 그것을 주의 성령에 푹 담구어 주시길 사모해야 한다. 그럴 때 예수님은 지금도 영단 번에 은혜를 우리에게 채우시고 만나주시고 우리를 성령으로 담구실 줄 믿는다. 우리 그리스도로 정결케 되길 원한다. 이 시간 감사의 겸손의 마음으로 엎드려서 새로운 은혜를 주시고, 성령의 은혜를 복음의 능력을 주시며,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가족, 형제, 이웃들에게 사랑의 선포 자가 되어야 한다.
♣요약 -첫째, 그리스도의 신분은 너무도 고귀하다. 그리스도가 너무 숭고하고 위대한 분이셨기에 세례 요한은 스스로 굽혀 그의 신메(신발끈)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7절)고 생각한다.
세례 요한의 성공적인 전도 및 세례를 통해 받아들인 제자들 속에서 복음교회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는 광야에서 세례를 주었지만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요한의 제자가 되어 그의 규율을 따르게 되었는데 세례 요한은 그들이 죄를 고백했다는 징표로서 그들을 자기 제자로 받아들여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후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자들이 되었는데 이것이 곧 겨자씨 한 알이 큰 가지로 됨과 같은 것이다. 이 본문은 예수의 세례와 시험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예수가 오랫동안 나사렛에게서 이름 없이 살아오다가 공생애로 들어가게 된 최초의 사건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일이었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나온 것을 볼 때,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겸손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순결하고 흠 없는 분이지만 자신이 더러워지기나 한 것처럼 세례를 받았다. 예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자 하나님은 예수께 아주 놀라운 영광을 돌리셨다. 예수께서 하늘이 갈라짐을 보셨다. 이로써 그는 하늘에서 내려 온 주님으로 인정받으셨다. 이 말을 마태는 '하늘이 (그에게)열렸다'(마 3:16)고 했으며 마가는 '하늘이 갈라짐을 보시더니'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도 하늘이 열리지만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예수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셨다. 이 말에 대해 초대 교회에선 일반적으로 한 줄기 찬란한 빛이 예수가 있는 곳을 비추었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들으신 하늘로부터의 소리는 그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용기를 주려는 뜻이었으므로 본문에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11절) 이라는 예수께 하신 말씀으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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