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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10월 1일)
제목: "끝까지 잘 감당하십시다"
말씀: 디모데후서 4:9~1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이삭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헌금송: 포에버 혼성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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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9~11,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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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할렐루야입니다. 왜 할렐루야인지는 설명을 더 안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 찬양대가 ‘아름다운 동산 주님의 동산’이 있는데 저 찬송은 우리 부친이 결혼식 할 때 불렀던 찬양이에요. 그러니까 70년 이상 한국교회의 영광스러운 찬양이었는데 참 명절에 부를 수 있는 그런 찬양인데, 여러분 가정 가정마다 주님의 아름다운 동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 주일 예배에 정말 사모에 나오셨잖아요. 많은 분들이 지금 지방에 내려가셔서 예배를 드리시는데 한국교회 5만여 교회 전체가 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동산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또 역으로 이때 가족들하고 같이 오셔서 지방에서 오신 분들 가운데요. 같이 예배드리는 분들은 주님의 치유와 위로와 능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번 명절 기간에 저희 교회는 많은 상을 당했어요. 많은 어려움 토로하신 많이 계시는데 어쨌든 우리가 주님의 부름 받는 그날까지 모든 성도들은 오늘 우리가 96장의 귀한 찬송을 고백했잖아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뭐에요? 위로, 없는 자의 뭐에 풍성, 눈 먼 자의 뭐에 빛이 되시고, 벌써 잊어버리셨습니까? 눈은 자의 빛이 되시고, 근데 고마운 거는 여러분들 오늘 찬양대 찬양하고 나니까 아멘 소리가 지난번보다 더 퍼센티지가 올라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까먹은 분들도 계세요. 그러니까 이 진리가 있어도 우리가 순종을 해야 내 것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 내 것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눈 먼 자의 빛이 되시고 없는 자의 풍성이 되시고 우는 자의 위로가 되시고 특별히 병든 자에 뭐가 됩니까? 고침이 되시고 수술이 있는 분들 치유가 필요한 분들 오늘 진정한 치유를 지금부터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잠깐 회복을 위한 부흥 시리즈를 잠깐 멈추고 오늘은 명절이기 때문에 평소에 제가 담고 있는 좀 우리 교우들이 평소에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해야 될 그런 내용들을 좀 같이 오늘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명절에 가시면 같이 우리 가족들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이분은 지금 신앙이 요즘 참 프레쉬 하구나. 또 계속 이렇게 좀 신앙이 좀 뜨거워져 있구나! 이제 그런 신앙을 뭐라고 하면 새싹 신앙이다. 싹이 잘 났다. 이렇게 근데 어떤 신앙은 또 예수 믿다가 시험 들어가지고 인간관계나 또 여러 가지,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기 신념도 안 맞는 것 같고 자기 생각에도 안 맞는 것 같고 이래가지고 시험 들어가지고 신앙이 시들시들한 신앙도 있어요. 근데 또 어떤 신앙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한 결 같이 푸르름을 간직하는 상록수 신앙이 있어요. 오늘 저와 여러분은 처음과 끝이 동일한 시종일관하는 한결같은 양은 냄비 있잖아요. 금방 뜨거워졌다. 금방 이게 아니고 어벤다운도 아니고 한결같은 신앙 유지할 수 있도록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확고한 믿음의 토대를 형성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오늘 본문에 보니까 바울 사도가 바울 사도가 거의 생애 마지막 때까지 마지막 중에 마지막 디모데후서 4장은 마지막 중에 마지막 유언이고, 또 오늘 본문은 그 마지막 가운데 또 마지막 유언이에요.

바울 사도는 수많은 인생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거치고 수많은, 수많은 질곡(桎梏)을 거치고 인생을 살아왔지만 오늘 제가 이 4장 본문 18절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한 거예요. 가슴이 뜨거워진 거 오늘 본문 18절 18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18,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께서 나를 뭐예요?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바울은 그를 죽이겠다고 특공대를 조직해 가지고 40여 명이 죽이겠다고 난리를 치고, 그다음 그 한 생애가 그렇게 많이 있었지만 결국은 바울의 마지막 고백은 주께서 나를 뭐요?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나를 구원하신다. 결국 이것이 피니싱 웰 이에요. 인생 마지막 성공이다 이 말이에요. 바울처럼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 두세 가지 교훈을 받아야 되는데, 첫째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 있어요.

I. 첫째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다.
-오늘 데마는 뭐라고 하냐면, 데마 본문을 보겠어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10절에 뭐라고 돼 있어요?

*디모데후서 4:10,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우리는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 뭐냐? 데마는 시작은 좋았어요. 근데 끝이 안 좋은 거예요. 데마가 어느 정도 시장이 좋았냐 하면 골로새서 4장 또 빌립보서 1장 같은 데 보면요 바울의 골로새서 4장 보니까, 나의 동력자 마가와 데마가 너에게 무난하느라. 그렇게 바울의 동역자의 반열에 들어섰어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갈 정도로 그렇게 용맹했어요. 그럼 그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러분 시작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끝이 안 좋으면 더 비참하죠? 한때 우리 신앙생활 처음 잘한다고 그러고 막 또 그러다가 근데 나중에 급전직하 대마를 보면서 그런 걸 느끼는 거예요. 마치 저 롤러코스터 저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대로 내려박는 그런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분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거예요. 데마는 처음에 바울을 보니까 바울이 굉장했어요. 바울이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나고, 심지어 바울의 수금만 던져도 막 죽는 사람은 살아나고 난리가 나니까 야 세상에 이런 희한한 게 어디 있냐? 이 사람 따라가면 내가 이제 내 인생 성공이 될 것이다. 이렇게 바울을 따라가는데, 나중에 가만히 보니까 바울이 오늘 이 시점에 보니까 바울이 순교당할 것 같거든, 로마 감옥에 갇혀가지고 이제는 선교당할 것 같으니까 아이고 이 바울 따라갔다는 내 인생 종치겠구나. 이런 생각해가지고 시험이 드는 거예요. 미혹의 영이 사탄이 그를 충동질해 가지고 시험했던 것 그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 그래서 우리 초대교회 전성 사에 보면 데마가 대산을 끌어와서 뭐 했나 그 이방 신전에 창부가 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비참한 그런 결과가 일어났다. 이런 초대교회 전성사가 있어요. 우리가 뭐 이런 교회의 전상을 보면서 데마를 보면서 깨닫는 것이 뭐냐? 처음에 화려하게 시작할수록 끝이 안 좋으면 안 되고 처음에나 끝이 동일한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럼 데마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데마가 급전직하 한때는 바울의 동역자요. 한때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갈 정도의 동지였는데 어떻게 이리 될 수 있었을까? 가만히 따져보면 미혹의 영에 쏟고, 참 진리에 대한 눈이 어둡고 그런 거 있지만 한두 가지를 생각을 첫째는 뭐냐 하면 데마의 속사람의 능력이 없는 거예요. 우리 식으로 하면 복음을 통한 진정한 속사람의 능력이 한결같지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속사람 우리가 왜 약합니까? 우리가 못 먹어서 허약합니까? 못 입어서 해약합니까? 아닙니다. 선진제국은 선진국에 가면 대통령도 햄버거 먹고 거지도 햄버거 먹습니다. 먹는 거 비슷한 거 많아요 입는 거 비싸죠. 캘리포니아 같은 데 가면 사시사철이 비슷하기 때문에 특별히 옷도 잘 입을 것도 없어요. 다 비슷비슷해요. 근데 사람의 능력과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오느냐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믿었다 복음을 믿었다 했을 때에는 늘 제가 강조하지만 어마어마한 거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속사람이 새롭게 된 것이에요. 우리가 우리 휴먼 빙, 우리 인생 자체가 이노 빙 우리의 속사람 자체가 완전히 트랜스 폼(transform) 된 거예요. 이전 것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된 것이에요. 새 사람의 능력이에요. 데마는 한때 자기 의지와 어떤 자기 신념 가지고 이렇게 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속사람이 진정 능력 받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속사람의 능력은 어떻게 결정됩니까? 주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결정되는 거예요.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결정됩니까? 주님을 향한 전적 위탁의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그 전적 위탁의 능력을 끝까지 지속하느냐, 아니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이에요. 따라서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형편 가운데서 너무 모든 것이 너무 잘 돼가지고, 내 자신만 의뢰하고, 환경만 의뢰하고, 내 상황만 의뢰해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속사람의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근데 몸이 아프다든지, 아니면 뭐 환경적으로 어렵다든, 자식이 골 때린다든지 죄송합니다. 하여튼 아니면 정말 어렵다든지 이런 것 때문에 어떻게 마음 둘 데가 없어가지고 내 인생에 내 삶에는 주님 밖에 내 삶의 유일한 위로와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하고 주님께 전적 위탁한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바로 속사람의 능력을 결정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세상 일이 너무너무 잘 돼가지고 주님만 저처럼 위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속사람은 약한 것이고, 내가 좀 힘들고 어려운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니 이거 주님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주님께 전적 위탁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자체가 여러분들의 속사람의 능력을 강화시켜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찬송을 해도 속사람의 은혜가 있는 사람은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속사람이 강건하지 못한 사람은 늘 자기중심이에요. 자기중심 자아가 살아있는 것이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아를 깨뜨리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속사람의 능력을 강건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상황 속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우리의 속사람의 능력이 강화되는 기회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없으면 못 사는 것이에요. ♬나는 주님만으로 참 만족을 누리네. 세상 영광 다 준데도 주님과 못 바꾸네. ~♬.

II. 둘째 데마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그 비전이 없었다.
-데마에게 뭔가 내 생애를 바쳐도 될 만큼, 내 생애 전체를 불태워도 될 만큼 더 큰 하나님이 주시는 그 비전이 없었어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없었어요. 그의 생애를 붙잡고 그의 인생의 수레를 끌고 나갈 만한 한 결 같이 흔들림 없는 큰 사명과 목표가 없었어요. 데마가 도중에 하차한 이유는 웬만한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더 큰 삶의 목표가 약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더 큰 비전이 없었다는 것이에요. 세상 살다 보면 이런저런 우여곡절 우수(憂愁)사례(事例) 많이 있지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사명과 비전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난 지금도 기억 하는데, 어릴 때 우리 부친은 저한테 현아, 현이는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에게 매라. 초등학교 다닐 때, 포부의 수레가 뭔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지만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에게 바라라.

여러분의 사명과 비전과 여러분의 꿈들을 주님에게 메고 가는 평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요즘 이 아시안게임 하는 걸 제가 이 소식을 들으면서 왜 왜 저렇게 큰 감동이 있을 것인가? 아시안게임 우승했다고 해서 큰돈이 들어옵니까? 그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국가대표를 하고 올림픽 대표를 하면 사람들이 왜 가슴이 뛰는가? 그분들의 기사를 읽어보니까 그들이 개인의 이익보다도 더 큰 조국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발음을 잘 해야 되겠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것이 그래서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광스러운 경험치를 얻는 것이에요. 더 큰 자신보다도 더 큰 무엇에 사로잡힌다는 것 고귀하고 특별한 것인 거예요. 그러니까 더 큰 삶의 목표, 하나님이 주신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 있으면 웬만한 어려움이 와도 흔들림이 없다 이 말이야. 6절 보세요. 오늘 본문 16절에 보니 내가 16절에 보니까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나와 함께한 자가 뭐예요? 하나도 없어.

*디모데후서 4:16,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기가 막힐 삶, 바울이 법정에서 고통을 당할 때 다 그를 버리고 떠나버렸어요. 그래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바울의 속사람의 능력이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다들 도망가도 오케이! 대신 다 버리고 도망갔지만 17절에 완전히 반대 17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시면

*디모데후서 4:17,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시면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우는 사자같이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이럴 때, 저럴 때 온갖 환경을 통하여 우리를 시험하고 물어 뜯고 다 하는 거야. 그래도 시험 안 드는 이유는 바울은 더 큰 하나님의 비전에 ‘복음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게 하고 나니까 주께서 자기와 당신과 함께 다 하는 그것을 느끼게 되니까, 웬만한 일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 이방인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갖고 더 큰 비전을 갖고 있으니까,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제가 ‘2033, 50’ 비전을 저게 뭔가 그러지 말고 이런 내용들이 나왔을 때 여러분 기억을 하시고 여러분 가정을 이루어 가시든지 여러분들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나에게 더 큰 비전에 사로잡히라고 하시는 거구나. 내 배만 두드리다가 인생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더 큰 비전에 사로잡히게 하시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웬만한 비전은 웬만한 어려운 환경은 그냥 툭 튀어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16절 16절 뭐라고 되어 있어요?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나와 함께한 자가 뭐예요? 하나도 없어 변명할 때라는 것은 뭡니까? 법정에 서서 자기변호하고 말할 때에 다 버리고 도망갔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허물 돌리기를 원치 않았어요. 그 이유는 뭐냐 17절에 주께서 더 강하게 나와 함께 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럼 내 비전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그 비전을 위하여 생애를 드렸기 때문에, 내가 사자의 입에서 우리가 지금 이방인의 사도가 다 될 수는 없지만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에 주신 비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2033년이 될 때까지 이 민족의 주의 50%가 예수 믿게 하여 주십시오.

다시 말하면 북한은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에요. 한때 강남의 유행어가 있어요. 80년대, 90년도에 그때 막 우리 한국교회가 불타는 날 때, 그때 강남의 유행어가 뭔지 압니까? 아직까지 교회 안 가고 있냐? 이게 강남의 유행어였어요. 그때 그걸 누가 정말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비전을 가지고 다 잡았으면 우리 민족 50% 복음화 되었을 텐데,,, 속사람의 능력과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가지고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과정들을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III. 셋째 중간에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나 끝이 좋은 인생이다.
-마가를 통하여 배운 것은 뭐냐? 중간에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끝이 좋은 인생이 됐어요. 마가 요한이라고 볼 때 마가는 라틴식 이름이고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에요. 마가는 여러분 부잣집 도련님이었어요. 오순절 성령 강임 때 어디에 성령께서 역사하셨죠? 마가의 다락방이죠. 여러분 다락방에 120명이 들어가면 그 집이 큰 집입니까 작은 집입니까? 해석이 되시죠?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어디서 기도했어요? 사람들이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마가의 집에서 기도했어요. 그러니까 집이 컸기 때문에 부잣집이었기 때문에 예배와 기도 처소를 제공하는 그런 신실한 집안이었어요. 그리고 마가의 그 집안에 삼촌이 지금 생질이 마가니까 삼촌이 바나바인데 바나바 그 집안에 바나바도 부유했기 때문에 사도행전 4장에 보니까 자기 집에 집을 팔아가지고 헌금을 하는 얘기가 나와요. 그 정도로 부잣집 도련님이었어요. 그래갖고 은혜를 받아갔고 내가 바울과 함께 또 전도 여행을 해야 되겠다. 1차 전도여행을 하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그 당시에 무슨 뭐 ktx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비행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교통수단이 없으니까 늘 걸어 다니니까, 부잣집 도른놈이 뭐야 발톱이 다 빠지고 그다음에 뭡니까? 그다음에 진물이 나고 난리가 나니까, 이 견뎌내겠어요? 풍찬노숙하고 걸어야 되고 그래서 사도행전 13장에 보니까 너무 고생이니까 도중하차를 해버렸어요. 이 사건 때문에 잘 아시는 대로 사도행전 15장 39절에 보니까 마가를 2차 선교에 데리고 가려고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할 때 영적 거장인 바나바와 바울이 대판 싸웠어요. 제 얘기가 아니고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졌다.

*사도행전 15:39,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제 얘기가 아니고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졌다. 이 말이 됩니까? 이게 그 영적 거장들이, 마가 때문에 그 정도로 골칫거리였어요. 근데 오늘 11절에 본문 11절에 이 본문은 바울의 유언 중의 유언 최후의 유언이라고 그랬어요.
*디모데후서 4:11,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 전에는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이 대판 싸우고 있는 원인을 제공했는데 지금은 복음 사역에 너무너무 유익하다. 마가는 중간에 넘어지긴 했지만, 나중에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이 되어가지고 베드로를 따라다니면서 통역관 역할을 또 하고 그리고 그 놀라운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복음주의에 의해서 마가복음이 없으면요. 자유주의 신학으로 넘어갈 만큼 마가복음은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부사가 뭐냐 곧 즉시예요. 영어로 이미디어틀리 곧 즉시(Immediately). 날에는 자기가 비리비리하고 또 그냥 시험 들고, 중하차하고 이런 잘못된 인생을 살았는데 마가복음을 기록하면서 아니야 복음은 즉시야. 음은 바로 순종해야 돼. 그래서 마가복음 군더더기가 별로 없어요. 16장까지 있으면서 아주 확실하고 분명한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리고 더 중요한 거 이제, 중요한 거는 누가 닥터 누가 11절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누가 함께 있다고요 누가 만나고요? 그 니까 이 누가는 시작부터 끝이 한결같은 인생이었어요. 오늘 이 일부 예배 나오신 여러분들과 저는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시종일관(始終一貫) 한결같은 시들시들하지 아니하고, 새싹 신앙부터 시작해가지고 늘 푸른 상록수 신앙의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하는, 근데 누가가 어떻게 이렇게 처음 누가 잘 감당할 수 있었는가? 누가의 직업이 뭐라고요? 다시 누가의 직업이 뭐라고요? 의사, 의사 의사는 정치한 사람들입니다.

정치(精緻)하다는 말은 정교(精巧)하고 치밀(緻密)합니다. 정교하고 치밀하지 못하면 어떻게 수술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그 환자들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근데 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갖는 약점이 하나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전체를 못 보는 거예요. 마이크로 한 사람은 메크로가 안 되는 거예요. 또 메크로 한 사람들은 마이크로가 부족할 수 있는데 놀라운 거는 누가는요 역사학자였어요. 그래서 여러분 누가가 뭘 썼어요? 누가 복음 쓰고 누가가 또 뭘 썼어요? 사도행전을 바울이 썼어요. 제가 우리 제자 훈련할 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사도행전을 바울이 썼다. 그러면 나는 돌아가시고 싶다고,,, 사랑의 교회 성도들 수준에서는 사도행전을 다시 누가 썼다고요? 누가가 썼어요. 사도행전은 성경에 나타나는 역사 행전이에요. 역사적 통찰력이 막강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었어요. 그 정치하고 치밀하고 똑똑하고 섬세하고 디테일한 그 누가가 전체 역사를 메크로 하게 보고 하나님 나라 전체에 대한 눈이 열린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 나라 역사의 전체의 눈이 열린 이유가 뭘까? 제가 한번 묵묵하게 생각해 봤어요. 아마 누가는 요한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요한은 누 누가에게 아마 많은 말을 했을 거예요. 그게 요한복음을 통하여 확정된 것이니까. 그러니까 복음의 진리 누가 닥터 누가 의사는 의사이지만 정치자지만 전체를 보는 눈을 가졌는데, 그 요한이 말한 신비한 복음의 능력이 돼서 이 누가가 눈이 열려가지고 그 눈이 열려서 성령의 역사에 충만해가지고 하나님께서 누가를 쓰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다고 했을 때, 누군지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고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암송할 때 하는 것인데, 육신의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성령이 뭘 한다고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누가는 성령의 생각을 하니까 사도행전 1장부터 28장까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이 생긴 것이에요. 요한을 통하여 깨달은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이 뭐냐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 이 말씀이 곧 뭐예요? 하나님이시더라. 그러니까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 그리고 14절에 보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 우리 가운데 거하셨는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되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복음적 진리와 성령의 역사에 눈을 떠가지고 성령으로 깨닫는 은혜와 진실 그래서 그 예수님이 뭐 은혜와 뭐예요?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니까 그 누가가 깨달은 역사적 시각과 통찰력과 누가 깨달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뭘 깨달았는가? 요한이 깨달은 그 진리가 그대로 누구에게 연결이 되고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연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태초의 말씀이 계시느라.’ 이 말씀이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시고 예수님이 천지창조에 동참하시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독생자의 영광이고 그 독생자의 영광의 핵심이 뭐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와 진리라는 것이에요. 누가는 여기에 대해서 저의 눈을 떴기 때문에, 누가복음도 마찬가지고 사도행전도 마찬가지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능력을 그 사도들의 그 어떤 그 본질을 계승을 한 것이에요. 너무 중요한 얘기인데 이 은혜는 뭡니까? 은혜는,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통한 선물이 은혜예요. 진리는 뭐예요? 이건 하나님의 뜻이에요.은혜가 선물이라면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서 우리가 눈을 열고 그 진리를 우리가 순종해야 진리가 진리 되는 것이에요. 이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누가는 이 사실을 가지고 사도행전 전체를 쭉 써 내려가는데, 그럼 오늘날 여러분과 저는 누가를 통하여 한결같은 신앙의 진실을 가지고 시종일관의 능력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가 냄비 끓듯 왔다 갔다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어벤다운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너덜너덜하지 아니하고, 신앙에 시들시들하지 아니하고 한결 같은 걸 쭉 유지를 하려면 적어도 누가가 보았다. 누가 누가는 나와 함께 있느니라. 바울은 사도 끝까지 갈 수 있는 그 안복이 뭘까 오늘 누가 깨달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사도행전을 서 기록해야 우리도 같이 내 기록해 가야 된데 그게 진실이에요. 그리고 진실은 우리가 순종해야 우리 것이 되는 것이에요.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느냐 하면 제가 요즘 우리나라를 가만히 보면요 진영 논리가 복음적 진실을 뛰어넘어버렸어요. 적어도 사랑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라면 명절이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히 보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 뜻으로 본 한국 역사, 그런 말이 있지만 우리는 복음과 진실로 본 한국 역사에 대해서 눈을 열어야 되는 것이 다시 진영 논리가 복음적 진실을 뛰어넘지 아니하고 복음적 진리가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우리 한국교회를 향한 우리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적 진실이 뭐예요? 건국 누가 하게 하신 거예요. 독립투사들이 애를 쓰긴 했지만 그거는, 그거는 메인이 아니에요. 건국은 누가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6 25 전쟁 누가 막아주셨어요? 저 공산당 비 진리 저것들이 내려와 남침을 했는데, 다시 누가 막아주셨어요? 인천 상륙 작전 누가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이게 복음적 진실이에요. 그 외에 나머지들은 다 우수마발(牛溲馬勃)이에요.

여러분, 제가 말씀드렸잖아. 고려는 귀족의 나라 불교가 핵심, 이조는 사대부의 나라 양반의 나라 뭐가 핵심이에요? 유교의 핵심, 그러나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백성의 나라 기독교가 정신이 된 나라인 줄 믿습니다. 이게 복음적 진실인 거예요. 그런데 내가 유튜브라든지, 한 번씩 보면요 황모모란 이상한 역사학자들이 나와는 순 거짓말들이에요. 전부 다.. 완전히 진영 논리야. 여러분들 속아 넣으면 안 돼요. 여러분 다른 거 아무리 얘기하더라도 우리나라가 건국이 안 됐으면 다 꽝이에요. 하나님이 이 민족을 건국시켜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복음적 누가는 이런 역사적 통찰력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도 복음적 진실을 얘기하고 그렇게 얘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진영에 안 맞다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교회는 그런 거 많이 없는데요. 어떤 다른 데 가보면요 이 좌파 진영 논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얘기하면요. 얘기하면 그냥 나가버리는 거예요. 이게요. 진실이 복음적 진리가 자기 신념을 이기지 못한 거예요.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복음적 진리가 여러분들의 삶의 이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나라는 뭐라 뭐라 뭐라 해도 공산주의에 안 된 것이 진짜에요. 역사가들은 늘 얘기합니다. 우리 남 잘 되는 거, 우리 막 우리 왜냐하면 왜 우리는 남 잘 되는 거, 우리 속에 좋아하잖아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나라에 우리나라는 미국 같은 큰 나라들은 남 잘 되면 같이 박수 치고 같이 잘 되는데 우리는 한반도 내에서 수천 년 내려오면서 옆집에 숟가락이 뭐가 있는지 다 알기 때문에, 저거 나와 비슷한 인간인데 잘 돼 그러면 그냥 무고하고 이런 게 이런 게 역사적 명맥이 흐르는 게 많이 있어요. 그래서 유명한 얘기가 있어요. 대한민국 어떻게 공산화 안 됐나? 그게 기적이고, 우리는 다 공산주의, 공산주의 될 만한 그런 사회주의적 성향이 우리에게는 충만한 나라에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고소가 고소, 고발이 얼마나 많아요? 공산당은 선전 선동의 규제예요. 자식도 부모를 고소하는 게 그게 공산주의 흐름이에요. 문화혁명을 보세요. 과거에 북한에 침략해가지고 남한 와가지고 다 점령해가지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 보세요. 가족을 죽이고, 부모를 고발하고, 근데 중국은 진짜 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얼굴이 동글동글 하잖아요 중국은 그런데 그 중국이 공산화됐다. 이걸 또 기적이야 이게.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야 정말, 왜냐면 제가 이 말씀 들은 한국교회 교회 내에도 어연 논문이 너무 많고 한결같지도 못하고 우리 안나가 가난한 교회 성도들을 만든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교회 내의 좌파 세력들이, 교회 내에 이런 논리를 가지고 교회를 찌르고, 목회자가 부자가 많죠. 그래도 그 목회자를 찌르고 난리 치고 이렇게 해가지고 교회가 어려워져 가지고 교회가 어려움당한 게 너무 많다 이 말이에요. 우리는 복음적 진실에 눈이 열려가지고 여러분 진리는요 순종해야 진리가 되는 거예요. 은혜는 하나님이 주권적 역사를 주시는 것인데, 진리는 우리가 순종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복음적 진실에 눈을 떠가지고, 여러분 공산주의 사회는 3%만 5%만 난리 쳐도 그 사회는 공산주의가 되는 거야.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힘이 없어요. 3% 5%가 똘똘 뭉치고 선전 선도에 능하고 그다음에 이 전투력 강화하고 이러면요 감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유일하게 감당할 사람이 한국 교회예요. 만약 한국교회 없었으면 우리 진짜 어려워질 뻔했어요. 진짜. 그러니까 여러분 정신 바짝 차리고 나는 일부 예배에 이런 설교를 해도 아무도 안 나가는 거에 대해서 할렐루야. 감사. 아마 아마 아마 아닙니다. 주는 경우 아마 3~4부 때는 한두 번 나갈 수 있을 거야. 아마 내가 볼 때 난 지금도 선연이 기억해요. 명절이니까 이런 얘기 맙시다. 선영이 국가보안법 폐지, 그때 막 심각해졌을 때, 내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어요. 한 2~3년밖에 안 돼가지고 막 힘들었을 때 교회는 불처럼 부흥하고 그랬을 때, 옥목사님이, “야 옥목사 이럴 때 교회가 바로 가야 안 되겠나?” 맞습니다.

그래서 임시당회를 소집해 가지고 우리 교회는 지금 남북이 대치된 상태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바로 가는 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우리 교회 당회가 정식으로 우리는 폐지하는 거 반대합니다. 그게 그때 우리의 결론이었어요. 그래갖고 제가 일부 예배 마치고 광고 시간에 우리 국가보안법 폐지는 지금 남북 대치된 상황에서 만약에 폐지돼가지고 공산당이 이 사람들이 막

다 작당을 해가지고 난리 치면 아무도 못 막으니까 국가보안법 폐지는 지금은 시기상조 안 된다고 하니까요. 일부는 박수를 하더라고 특별 광고 2부부터 응응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사람이 나오기 3부부터 많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 사업을 그날 제가 그 광고하고 우리 교회 한 한 20~300명 교인들을 놓쳤어요. 내가 지금도 가슴이 너무너무 아파. 한 주에, 여러분, 다시 얘기합니다. 복음적 진실이 진리가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다른 거 다 필요 다른 거 복잡한 얘기 많아요. 다 있겠지만 우리나라 건국 안 됐으면 우리나라 이미 공산화 벌써 됐어요. 아시겠어요? 사실 건국 누가 있습니까? 6.25 누가 이기게 했습니까? 지금 휴전선 저거 안 무너지는 건 누가 하시는 겁니까? 물론 국가가 애써 수고하지만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셔서 서 안 뚫린 거예요. 사랑의 교인들은 적어도 여기에 있어서는 확고하게 신념을 갖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들이 기도하셔가지고 우리 마가처럼 회복되거나 아니면 누가처럼 끝까지, 끝까지 데마처럼 처음에는 화려하지만 중간에 나가떨어지는 그런 분들이 아무도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마지막 부분 보니까 데마, 마가, 누가 얘기하고 난 다음에, 쭉 이제 끝인사에 19절부터 브리스가와 아굴라 및 오네시보로 집안의 문을 쭉 해가지고 사람의 눈이 쭉 나오죠? 브리스길라, 아굴라 오네시보로 모든 사람들 바울의 동력 자 이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 영적 거상도 동지들이 없으면 영 가족이 없으면 끝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디모데, 누가, 마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바울은 좋은 믿음의 후배를 남겨가지고 교회를 돌볼 일꾼들을 세워서 남겼습니다. 누가를 남겼고 남겼습니다. 우리 다 함께 끝까지, 지금 아시아 올림픽 하고 있는데, 올림픽 보고 잘하네. 이러지 말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나도 신앙생활의 챔피언이 돼 봐야지’.

여러분 신앙생활의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복음적 진실이, 진리가 세상 진영 논리를 뛰어넘기를 이렇게 마음이 결심하고, 우리 누가처럼 역사적 통찰력과 성령의 능력을 의존해 가지고 승리할 수 있도록, 오래간만에 아주 옛날에 불렀던 찬양, 우리 30~40년 열심히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주님 뜻대로 살기로 우리가 주님의 온전하시고 완벽한 뜻이 있는 거예요. 살기로 그다음 뭐예요? 노 터닝 백, 노터닝 백, 뒤돌아서지 않겠네 끝까지 가겠네. 이 찬송 흐름은 어떻습니까? 제가 1부는 엄청 좋아할 걸 제가 압니다. 근데 4부는 이 찬송 잘 모를 거예요. 이게 우리 옛날 주님 뜻대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도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주님 뜻대로 할 뒤돌아서지라. 뒤돌아서지 않겠네... 할렐루야. 누가 뭐라던 간에 이 역사적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마음 둘 곳 없는 세상에서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께 맡기고 전적 위탁하여 속사람이 강해지는 평생이 되고, 데마처럼 속사람의 능력이 허약해가지고, 마가처럼 자기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사랑하여 중도에 넘어질지라도 회개하여 일어나 끝이 좋은 누가처럼 시종일관 한결 같은 역사적 통찰력과 성령의 역사와 복음적 진실에 눈을 뜬 상록수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께 전적으로 매게 맡기고 날마다 주님께 전적 위탁하며 속 사람이 강해지는 자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가 함께 있어서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 이유로는 여러 사람이 그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다'고 말한다. 이 현세를 사랑하는 것은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도에서 떠나는 이유가 된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떠나갔고 또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누가는 계속해서 바울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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